쥐어 뜯기

잡기장
내일이면 단체를 그만 둔지 일주일째. 사실 그 즈음부터 설렁설렁 다니긴 했고, 지금도 온라인으로 서버관리를 하고 있으니 분명하게 딱 앞과 뒤가 나눠지진 않다. 하지만 사람 마음이란 건 확실히 달라지는 듯 싶다. 어딘가에 가야 하고, 기본적으로 뭔가 해야 하는 일들, 지켜야 하는 규칙, 매끄럽고 껄끄러운 관계가 주는 스트레스, 이런 것들로부터 자유로와 진 지금의 내 마음이란. 물론 댓가가 크긴 하다, 수입이 없다는 것.

어제 회의에서 모처럼 하고 싶은 말을 꺼내놨기에 즐거운 탓도 있어 오늘 아침 일찍 가야할 곳이 있었지만 뒷풀이를 갔다. 모닝콜을 해주겠다는 사람도 있고하니 마음 편하게, 그러나 약간만 마시고는 또 음주자전거행으로 잠잘 곳으로 갔다. 거러나... 폰을 진동으로 해놓고 잤다는거, 그나마 저 멀찌기 이불 위에 올려놨다는거.. orz 결국 아침 약속을 펑크냈다.

놀라서 벌떡 일어나보니 이미 상황은 종료. 얼릉 사죄의 메시지를 문자로, 게시판글로 올렸다. 여전히 알딸딸한데 미안하긴 되게 미안하고, 또 어제 내가 한 행동이 몇개 아쉬운 것이 있었는데 그게 또 생각나고... 그러다보니 조바심이 또 나더라. 바로 컴퓨터를 켜고 포스팅을 하나 하고는, 메일함을 열어 이곳 저곳 메일들을 쏘고는 정신없이 일을 시작했다. (이런게 안 좋은데..) 서버에 해킹이 들어왔단다. 끌끌...

어느정도 일을 마무리져 놓고 나니 배가 고프다. 하루 종일 아무것도 먹지 않은 것이다. 밖에 나가 가까운 식당에 가서 된장찌개를 시켜 먹고는 그나마 약간 여유롭게(사실은 처진거지-_-) 있다보니 요론 생각 저런 생각이 슬슬 고개를 디민다. 어제 하고 싶었지만 못 한 말, 일단 삭힌 말을 생각한다. 그때 말하고 싶지만 못했던 것은 아직 내 생각이 정리되지 못한 때문. 지금껏 늘 정리안하고 말하고 다녔지만 때로는 정말 나도 풍부한 내용을 잘 정리해서 말하고 싶을때가 있다.

그 중 한 가지는, 운동의 방향성에 대한 것. 추상적인 이론, 바탕이 되는 동의, 그런 것들의 역할과 한계.
난 이것을 NP-hard 문제라고 생각한다. NP-hard 는 문제를 푸는 일반적인 방법을 발견할 수 있는가(혹은 다항식으로 표현해서 현재 인간이 가능한 수단(컴퓨터 등)으로 그 답을 풀어낼 수 있는가) 를 확신할 수 없는 문제를 말한다. 복잡도가 너무 높아 풀기가 어려우니 아예 "풀기 어려운 문제"라고 묶어둔 문제들이다.

현대 물리학은 기존의 패러다임을 뒤엎는 중요한 개념들을 채택하느냐 하지 않느냐의 갈림길이다. 사실은 어느 정도 그 방향이 옳다고 판단되지만 그것을 뒷받침할 수 있는 수학이 정립 안되어 있는 상태랄까. 그 개념중의 대표적인 것이(혹은 어찌보면 모두 이것인데) "불확정성의 원리"다. 인간의 인식 능력, 계산 능력이 발달해서 새로운 것을 발견하고 더 복잡한 것을 들여다 보기 시작했는데, 그것을 기존의 방식으로는 도저히 설명할 수가 없다. 그런데 어찌보면 "정확히 설명할 수 없음"이 진리일 수 있다. 옛날에 원자의 구조를 배울때, 전자는 핵 주위를 일정한 경로로 도는 것으로 이해했다. 하지만 정말 인간이 원자의 구조를 관측할 수 있는 정도까지 가니, 사실은 이게 어떤 큰(!) 범위내에 있다, 혹은 어느 정도의 가능성으로 거기에 있다고 밖에 말할 수 없게 되었다. 수학에서 "NP problem"으로 보류했듯, 물리학에서도 지금까지의 방식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새로운 준거틀이 필요해졌다고 할까.

NP 로 분류했다고 해서 그것을 푸는 것 자체를 포기하는 것은 아니다. 대신 여러 가지 "근사값"을 구하는 다양한 알고리즘을 활용해 특정 범위에서 유효한 값을 구해낸다. 그리고 이미 이렇게 얻은 (축적된) 결과를 가지고 우리는 비행기를 만들고, 배를 만들고, 인터넷에서 최단 경로를 알아내 데이터를 주고 받고 하고 있다. 구체적 현실은 이미 이론이 얼마나 명쾌하게 설명할 수 있는지 없는지간에 계속 변화해 가고, 점차 복잡도가 증가하는 방향으로 흘러간다.

물리학과 수학의 관계처럼, 이론은 현실을 뒤따르는 것이고, 현실을 단순화해서 그 시점에 유효한 설명을 해내는 것다. 운동에 있어서도 "이론"이라는 것은, 너무나 복잡하게 얽히고 설켜 있는 현실에 대해 일단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야 할 부분이 있는게 아닌가 한다. 과학이 지금 그렇듯. 뭐냐면, 모든 경우에, 언제나 항상 적용 가능한 한가지 이론을 발견하려는 시도를 잠시 보류하고 (NP) 구체적 현실에서 근사값을 찾아내 축적하는 노력에 더 힘을 기울이는 것이 나을 수 있다는 것이다. 다양성이 비록 혼돈을 가져올지라도 그걸 부정하고 한가지 이론만을 고집하는 것, 그것으로 모든 것을 해석하려고 붙들고 있는 것은, 정말 진보를 막는, 그 자체로 퇴행일 수 있다. 아인슈타인조차 양자역학에 대해 혐오스런 반응을 보였다지.

어쩌면 지금 우리에게, 답을 찾는 우리에게 절실히 필요한 것은 질문을 계속 더 던지는 것이고, 그러기 위해서는 역시, 여러 맥락에서 나오는 말이지만 "좀 더 살아봐야 한다"는 것. 그리고 명쾌한 이론을 못 던지지만 계속 현실은 움직인다는 것, 그리고 그 현실이 바로 대중(개개인이 아닌 전체 구름)이라고 보면, 활동가들이 대중과 분리되서는 절대 그런 이론을 만들어 낼 수도, 현실을 변화시킬 수도 없다는 생각이다. 활동가가 그 스스로 대중이어야 한다는 것은 어떤 것일까? 힘든 일을 포기하고 쉽게 산다는 것은 아닐 것이다. 그저 자기가 처한 상황에서, 스스로 하고 싶은 것들을 하며 즐겁게 살려고 노력하는 것. 그래서 그런 실험과 행동의 결과가 쌓여, 어느 순간 전체 대중을 이해하고, 현실을 명쾌하게 설명할 수 있는 이론도 정립하고 할 수 있게 되지 않을까한다.

아.. 지금은 정리된 생각을 말하는게 아니라, 이런 생각을 한번 글로 쓰려고 하다보니 역시 공부를 좀 더 깊게 해보고 싶어졌다는 말을 하고 싶은 차였다. .. 오랫만에 수학과 물리학 개념들을 들여다보니 다른 할 일은 손에 못잡고 시간이 이렇게 흘러버렸다. 머리에 쥐가 난다. 그동안 활동하면서 이런 "즐거운"고민들을 할 여지가 없었는데.. 원래 지각생은 운동과 과학을 무리하게 연결시켜 내멋대로 생각하길 좋아한다. 깊이가 없어어 그렇지. 오늘 하루를 이렇게 보내고 나니 정말 내가 그만뒀구나. 이제는 하려던걸 해야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마 다음 포스팅은 "외판원 문제"가 될듯.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2007/04/26 21:35 2007/04/26 21:35
Trackback Address :: http://blog.jinbo.net/h2dj/trackback/388
쥬느 2007/04/26 22:34 URL EDIT REPLY
음..추천..
지각생 2007/04/27 00:03 URL EDIT REPLY
아.. 땡큐.
Name
Password
Homepage
Secr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