몬스터

잡기장
작년에 TV에서 방영한 "몬스터"를 다시 봤다. 백수 생활을 더 이상 유지하기 어려워지고 있어서, 이때 아니면 언제 하랴 싶어 마구마구 이것저것 구해보고 있다. 우걱우걱, 와작와작. 꿀꺽.

며칠동안 조금씩 나눠보다가, 어제는 한 스무편(TV판은 총 74편이다)을 몰아서 봤다. 그 덕에 잠든 시각은 아침 6시반. 누군가가 일어나는 기척을 느끼며 얼른 불을 끄고 잠을 잤다. 1시가 넘어 일어났는데 내가 나갔는지 죽었는지 너무 조용하니까 슬쩍 문을 열고 내 생존여부를 확인하는 엄니.

"몬스터"를 처음 본건 내 군 생활 막바지에 발가락을 다쳐 병원에 입원해였을때다. 군 병원에서는 그냥 마냥 퍼질러 있는게 아니고 점호도 하고, 적당히 일도 하고 그래야 하는데, 난 발을 다쳐 걷기에 불편하다는 이유와, 이미 짝대기를 4개 달았다는 이유로 암것도 시키지 않았기에 편하게 드러누워 책을 읽으며 늦가을을 보냈다. 일중독만능잡부행정병에게 이보다 더 좋은 요양은 없을테다. 제대 전날까지 사무실 나가서 일을 했을 정도이니(뭐, 사실 놀아봤자 놀만한 것도 없고 빨리 나가고 싶어 괴로우니까).

있던 책은 금방 다보고, 다시 읽고 해도 시간은 너무 많다. 같은 병동에 있는 사람하고 별로 얘기하고 싶은 맘도 없다. 다들 또라이군바리들이다. 그 안에서도 위계질서 만들고 못되게 행동하는 꼬라지가 별로다. 다들 심심하긴 더럽게 심심하니 어떻게든 자기 있던 곳에서 하던대로 하려고 하고, 다른 부대 사람들 모였을때 하듯 있는 얘기 없는 얘기 지어내며 무용담을 늘어놓기 바쁘다. 짬이 있을때 실려온게 다행이다 싶었다. 물론 그때는 잡담의 가치를 우습게 보던때이기도 했다. 친절한데 벽을 세우고 일정 거리를 유지하는 건 지금보다 조금 더했다.

그래서 조금씩 걷는게 스트레스가 안될때쯤 이곳저곳 돌아다니며 기웃기웃거리고, 괜히 들쑤시고 뒤적거리다가 우연히 몬스터 18권을 발견하게 됐다. 지금 생각하면 어찌나 안타까운지. "몬스터" 보신 분들은 다 공감하실거다. 맨 뒷 장면들을 미리 본 다음에 이 만화를 본다는게 어떤건지 -_-

그래도 마지막 권만 보고도 왠지 빨아들이는게 있고, 앞 이야기가 무지 궁금해서 기억속에 강하게 남아있었다. 나중에 전권을 다 갖고 있는 사람 집에 갔다가 1권을 펼쳐 본 후, 바로 처음부터 끝까지 다 읽어버렸다.

그러다 이번에 다시 TV판 애니를 구해 보게 된 것인데...

역시 그때의 감동이 다시 몰려오면서 다른 생활에 지장을 초래하면서까지 (시간으로나 심리적으로나.. -_-) 이걸 봐왔고, 오늘 새벽에야 끝에 도달했다.
안 그래도 요즘 부쩍 고독을 느끼고 있던 터라, 이 만화에 깔려 있는 느낌이 조금 더 뭐랄까 휴지가 물을 빨아들이는 느낌(-_-;;)처럼, 아냐.. 그만 두자. -_-;; 어쨌든, 정말 재밌게 봤다. 역시 잘만들었단 말야..

많이들 보셨겠지만, 결말이 그렇다보니 여운이 남아서,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이걸 받아들이고 있나 함 찾아봤다.
오호... 이렇게 볼 수도 있구나. 다양한 관점으로 해석하는 것들을 보며 새삼 감탄하며 이리 저리 나름 생각해보고 있는데, 많은 사람들이 공감하는 해석이 있었다.

"진짜 괴물"은 무엇인가. (물론 사람들은 "누구인가"로 묻곤 한다.) 마지막 장면에 나오는 회상신에서, 안나와 요한의 어머니가 두 아이 중 한명의 손을 놔버리기에, 두 아이 모두 몬스터가 될 뻔하지만, 실제 실험에 끌려갔던 안나가 누군가의 진심어린 말 한마디로 구원을 얻는 반면, 죄책감을 더해 이중압박에 시달린 아이가 몬스터가 되고 만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진짜 괴물"은 "요한의 어머니"라고, 그렇게 말하고 꽤 많은 사람들이 거기에 동의하는 듯하다.

이 포스팅을 왜하냐? 바로 이 해석이 맘에 안들어서이다.


좀 더 생각해보고 얘기해보고 싶지만, 내가 받아들일 수 없는 부분은
 "절대선악"의 존재, 그리고 그것이 특정한 개개인에게 귀속되는 문제 (누가 몬스터다. 식의 말), 그리고 그것이 전가되는 방식이다. 즉 "절대선 혹은 절대악이 있는데", "그것은 태어날때부터 혹은 만들어졌다해도 특정한 누군가가 갖고 있는 것이며", 이 만화에선 그것이 "아이를 버리는 순간의 어머니다" 혹은 "그 어머니가 아이를 몬스터로 만들어냈다"는 해석이다.

앞선 두가지는 따로 써야겠다. 왠지 쓰기 시작하면 길어질 것 같으니. 물론 세가지가 다 연관된 거긴 한데.. 여튼 난 불만이고 억울하다. 내가 그 어머니라면.

당시 상황을 한번 추측해보자. 이 만화에서 불쾌한 부분 중 하나가 당시 사회에 대한 지독한 편견을 깔고 배경을 만들어놨다는 것이지만 일단 그대로 받아들여보자. 생명에 대한 존중은 없고 인간이 가치판단되는 풍토에서, "가장 뛰어난"(어떤, 누구의 관점에서?) "독재자"를 만들기 위한 실험이 진행된다. 우생학적으로 뛰어난 인종들의 교배를 위해 이성애 커플이 의도적으로 만들어지고(쌍둥이의 아버지는 그런 "임무"를 맡았다) 그렇게 태어난 아이들은 철저한 프로그램에 의해 육성된다. 그것으로부터 달아나려했지만 실패한 쌍둥이와 엄마는, 그를 사랑하게 되어 마음을 고쳐먹은 "실험자"에 의해 한 명의 아이만 실험대상으로 선택되어지는 상황에 몰린다. 그 "실험자"는 결국 엄마가 포기한 한 아이를 데려갔다가 "구원"하는 역할로 그려진다.

하지만 난 의심스럽다. 그는 정말 마음을 고쳐먹은게 맞는가? "이건 실험이요." 쌍둥이 엄마에게 한 명의 아이를 내어줄 것을 강요하는 상황에서 거듭 하는 말이다. 그 아이를 데려가서 실험을 하는 것이 아니라 사실은 그 상황 자체가 실험의 클라이맥스가 아니었을까? 어머니에게 두 아이중 하나(구분하기조차 어려운 쌍둥이)를 선택하고 포기하게 하는 상황. 그리고 당시의 시대적 배경과 이 실험자들의 잔혹성과 치밀함(움직일 여지가 안 보이는). 그 "실험자"가 자신을 사랑하고 두 아이를 구해내고 싶어한다는 것을 알지 못하는 엄마에게는 "모두 죽음 (혹은 빼앗김-몬스터가됨)"과 "한 아이를 살림" 간의 선택이었다. 둘 아이중 누구를 내어주느냐의 선택은 작은 것이고 "모두 죽느냐, 한 아이만 죽느냐"는 상황이다. 자, 이런 상황에서 그 엄마는 어떻게 할 수 있었을까? "요한의 어머니가 진짜 몬스터"라고 말하는 사람들은 그럼 본인의 경우는 어떻게 할 수 있었을까? "차라리 나를 죽여. 아무도 내어줄 수 없어"라고 말해야 하는가? 모두 죽는 선택을 하는게 옳은가? 어머니의 권한으로 "몬스터가 될 바엔 다 죽는게 낫다"는 결정을 내려야 하나?

사람들은 아마 이런 그림을 원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끝끝내 거부하고 두 아이를 지키다가 결국 아이는 뺏기고 죽음을 당한다. 죽어가며 "남겨진 한 아이"에게 한 마디 한다. "사람은 뭐든지 될 수 있어. 너희는 보석이야. 절대 몬스터가 되선 안돼" 바로 "실험자"가 끌려간 한 아이를 구해내며 하는 말. 어쨌든 "어머니"는 아이들을 "죽음을 무릅쓰고 끝까지" 지켜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러지 못하고 한 아이를 버렸다는 것. 한계 상황에서 자신의 죽음이 곧 두 아이 모두의 죽음일 수 있는 상황에서 자신과 한 아이를 선택한 (이렇게 본다면) 선택은 잘못된 것이고, 어머니는 무조건 숭고한 모성애를 발휘해 끝까지 아이를 버리지 않았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한 아이의 손을 놨으니 이보다 나쁜 일이 어디있는가? 어머니가 아이를 버리다니! 그 아이의 충격은 어쩌란 말인가? 내 눈에 보이는 것은 "어머니의 역할을 다하지 못한" 여성에 대한, 당시 상황과 맥락을 고려하지 않은 비난과 책임 전가이다. 이렇게 말할 수 있는 것은 "실험자"에서 "구원자"로 둔갑하는 프란츠의 존재가 있어 더 그렇다. 쌍둥이 엄마를 사랑해서 모든 걸 바꾸어 놓고자 했고, 극한의 정신적 충격을 받은 어린 아이에게 "진심어린 한마디 말"로 구원하는 남자 - 그래서 아마 많은 독자들에게 끝내는 용서를 받을 것 같은 인물.

실제로 이 만화의 원작자가 이런 생각을 한 것인지는 모르지만 어쨌든 "어머니가 몬스터다"는 식의 해석이 많이 나오고, 공감을 얻고 있는 것에 대해 불만스럽다. 사실 세번째로 다시 보니 그동안 내 가치관이나 생각하는 방법이 달라진 것도 있어서 군데군데 불만스런 부분이 좀 보인다. 어쨌든 이 만환 또 봐도 재밌다. 시간되면 "고독"과 "이름", 이 만화의 주요 키워드에 대해서도 얘기하고파. 사실 그래야 "어머니가 몬스터였다"는 것에 대한 충분한 반박도 가능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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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12/10 17:21 2007/12/10 17: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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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인 2007/12/10 17:56 URL EDIT REPLY
오오... 몬스터는 언제 봐도 멋있는 만화였죠. 아마 수호지, 삼국지, 임꺽정, 장길산 이후 가장 많이 봤던 작품이었던 거 같아요. 못해도 만화로 스무번은 넘게 봤으니까요. 에니까지 치면 삼십번은 넘게 본 듯 하군요.

그런데 몬스터를 보고 "어머니가 몬스터였다"는 해석을 하는 사람은 한 번도 본 적이 없어요. 상당히 이색적인 해석이네요. 그리고 어머니는 죽지 않았죠. 나중에 덴마가 아이들의 어머니를 만나기도 하구요.

이 작품에서 가장 중요한 키워드는 "이름"이죠. 이름이라는 것은 존재를 실체화시켜주는 장치입니다. 그런데 '몬스터'를 만드려 했던 이들, 그리고 '몬스터'가 되어버린 쌍동이 남자 아이는 그 이름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고 거듭 강조합니다. 음... 계속 이야기하면 덧글이 넘 길어질 거 같은데, 어쨌던 그런 의미에서 생각해보면 '몬스터'는 결국 집단의 이해를 위해 정체성을 상실한 개인과 그 개인을 통해 자신의 이익을 추구하는 집단을 상징하는 "이름"이 아닌가 해요. 언제 시간이 나면 이 부분에 대해 포스팅을 하고 싶네요. ㅎㅎ
디디 2007/12/10 23:42 URL EDIT REPLY
흠 -_- 엄마가 몬스터라니 누가 그런 소리를 해! ㅋㅋㅋ
ScanPlease 2007/12/11 01:06 URL EDIT REPLY
몬스터는 제가 대학에 와서 처음으로 본 만화책인데.ㅋ 내용 기억 하나도 안나요.ㅋㅋㅋ
근데, 이 글 보니, 갑자기 어렸을 때 TV로 봤던 메칸더V가 생각나는군요. 거기서 악당중에 지미의 엄마가 있었다는...
지각생 2007/12/11 03:21 URL EDIT REPLY
행인// 흠 행인이 꼭! 시간이 나면 좋겠어요 ㅋ

디디// 검색해보니 나오더라구. 근데 꽤 많은 사람들이 그걸 받아들이는 것 같아서.

스캔// 정의와 평화를 지키는 우리들의 믿음직한 메칸더.는 어찌지내고 있을까요 ㅋㅋ
행인 2007/12/11 14:07 URL EDIT REPLY
지각생/ 음... 인터넷 검색을 해보니까 몬스터를 요한의 어머니로 보는 의견들이 꽤 있나보네요. 상당히 재미있는 해석인데, 제 관점에서는 전혀 동의하지는 못하겠군요. ^^

우라사와 나오키의 작품은 어떤 것이든 참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들죠. 일본판 "순돌이아빠"(혹은 멕가이버)를 보여준 마스터 키튼이나 아직 연재가 끝나지 않은 20세기 소년 같은 작품들 보면 그 흡입력이 대단하다고 느껴질 정도니까요.

몬스터는 독일에서도 엄청난 격찬을 받은 작품이죠. 독일어 더빙판을 구해보려고 했는데 그건 못구하겠더군요. ㅠㅠ 아마 전혀 색다른 맛일 터인데...

몬스터에 대한 이야기는 진짜 시간이 나야할 듯 해요. 이건 사실 어디서부터 이야기를 꺼내야 할지 모를 정도니까요. 시간이 나길 고대해 보죠. ㅋ
지각생 2007/12/11 23:35 URL EDIT REPLY
독일어 더빙판이라.. 분위기 잘 살아나겠다. 보고 싶은데요 :)
칸나일파 2007/12/12 09:47 URL EDIT REPLY
갑자기 다시 보고 싶어지네...요즘 우라사와 나오키의 플루토도 열심히 보고 있슴다. 일본 친구 많은 누나 말로는 정작 일본에서는 인기 작가가 아닌 듯하다고 말하던데...암튼 스토리 구조 만큼은 정말 캡이죠...근데 20세기 소년은 언제 끝나나??
지각생 2007/12/13 03:22 URL EDIT REPLY
흠. 플루토도 얘기만 듣고 안봤는데.. 아 한번 뭘 보고 얘기하고 그러니 다른 거 보고 싶은게 계속 나오네요 ㅎㅎ
한판붙자!! 2007/12/14 10:46 URL EDIT REPLY
몬스터가 티비판이 있었군여.
아, 보고잡다, 보고잡다, 보고잡다.
근데 74편이라니 두렵군요.
지각생 2007/12/18 00:46 URL EDIT REPLY
각 편이 20분 안팎쯤 됐던것으로 기억합니다. 하루에 세네편씩 계속 보면 언젠간 다보겠죠. 근데 한번 보기 시작하면 계속 다음편 다음편 보다보니 하루 스케줄 다 망가지고 한 소리 듣기도 했다고 하네요. ㅋ
요즘은 TV리모콘을 제가 잡았을땐 애니채널을 꼭 들려보곤 합니다. 혹 잼난거 또 놓칠까바서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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