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통의 전화가 나를 짜증나게 했다.
IT노조 홈페이지에는, "일터Q&A"라고, IT노동자들이 취업과 업무에 대한 정보를 주고 받는 게시판이 있다. 누가 이 회사 어떤가요? 이런 식의 질문을 올리면 경험이 있거나 정보를 갖고 있는 사람이 답을 해주고 이런 게시판이다.
원체 IT노조가 알려지지 않은데다, 취업과정과 일하는데서의 어려움을 대개 자신의 문제로 돌리고 마는 사람이 많다보니 이런 게시판이 있다는 것조차 모르는 사람이 많다. 그래서 지금까지는 별로 시끄러울 것 없이 지내왔는데..
얼마전 "악덕업체 블랙리스트"를 만들자는 글을 누가 올렸다. 사실 처음 나온 얘긴 아니다. 또 회사들은 소문에 의하면 자기네들끼리 "IT노동자 프로파일" 혹은 "블랙리스트"를 만들어 서로 공유하고 있다고 한다. 이러다 보니 원체 불안한 사회적 약자인 IT노동자들이 회사를 상대로 강하게 권리를 주장하는 건 어렵다. 정규직이 거의 없는 IT업계에서, 혹 이런 블랙리스트에 오른다 하면 지금 이후 다음 일자리를 구하는 데 지장이 많지 않겠나.
그렇기 때문에 "일터 Q&A"는 당연히 철저하게 익명으로 글을 올릴 수 있게 해놨다. 꼭 이런 상황이 아니더래도,
"인터넷은 익명이 기본이다"
근데 저 "악덕업체 블랙리스트"만들자며 누가 몇개 업체를 거론하고, 그것이 검색을 통해 노출되자 업체들이 난리를 피운다. 그리고는 사이트 운영하는 IT노조에 전화를 해서는 "당신들 뭐냐? 우리 회사 비방하는 글 지워달라"고 그런다. 전에 이 게시판은 IT노조 말고 어떤 개인이 운영하는, 그러나 조금 인지도 있는 커뮤니티에 있던 것인데 그때도 이런 식의 압박때문에 게시판 운영이 어려워져서, IT노조로 옮겨오게 된것이다.
오늘도 두 통의 전화를 받았는데, 짜증나 죽겠다. 바람 부는 양화대교 위 선유도 공원 입구에서 자전거를 세워놓고 한참 입씨름을 하고, 노조 사무실 바로 앞에서 들어가지 못하고 또 한참 입씨름을 했다. 자전거를 들고 3층으로 가려면 두 손을 다 써도 시원찮은데 계속 한손으로 전화기를 들고 있으려니.
근데, 참 웃긴다.
누가 자기 회사 안 좋은 곳이다. 이런 말을 했는데 그게 사실이 아니라면, "그건 사실이 아냐. 넌 대체 뭣땜에 뭘 근거로 그런말을 하니" 하고 덧글이나 답글로 반박을 하면 될게 아닌가?
근데 그러질 않고, "관리자"에게 전화해서 "이거 이거봐. 이거 사실무근이야. 너가 지워줘" 이런다. 실제로 그 글이 근거 없는 악의성 비방글이라 해도, 그에 대해 다른 글로 대응하지 않고 바로 관리자에게 직접 접촉해서 그의 권력으로 글 자체를 강제 삭제하는 조치를 할 것을 강요하는 회사들. 솔직히 "너 캥기는 거 있지?" 이렇게 묻고 싶지만 그렇게 하면 불 지르는 거 같아서 참고 "우린 그럴 수 없다. 반박글을 올려라. 사람들 근거없이 그냥 어디가 나쁘다 이런말하는거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는다. 우리보고 삭제하라 그러지 마" 이러고 말지만 속은 부글부글 끓는다.
이거 아주 비겁한 거 아닌가? 친구랑 싸움났을때 바로 부모나 선생에게 달려가 일러바치고 "재 때려줘" 하는 거 같다. 글의 내용에 인신공격적인 내용이 있고, 도저히 심장 떨려 맞 상대할 수 없는 상황이 아니라면, 글의 내용에 문제가 있다면 글로 반박하면 되는데, 아예 그럴 생각이 없이 관리자에게 직접 전화해서 지우라고 협박하고, 운영 원칙을 설명하고 거절하면 바로 정보통신윤리위원회같은 개념없는 사람들에게 쪼로록 달려가 "쟤네 글 지우라 해조" 이러고 있다. 그러면 정통윤에서는 제대로 상황판단 못하고 "너 왜 그래. 빨리 지워" 이러고 있다. 한심하기 짝이 없다. 두쪽 다 소통에 대한, 특히 웹의 성격에 대한 기본적인 마인드가 없는거다. 또 문제를 정도가 아니라 권력에 의존해 쉽게 해결하려는, 아주 치졸한 사고 방식이라고 생각한다.
또 웃기는 게, 게시판을 익명으로 운영하는 것에 대해 "어떻게 그럴 수 있냐"는 식으로 나오는 사람이 있다. 아니 참나, 어디 외계에서 오셨수? 인터넷은 익명성을 기본으로 하는 거고 최근 이런 저런 핑계로 권력자들이 사람들 통제하려고 실명제를 도입하고 확산하려고 애쓰는 판인데. 나참. 익명 게시판이라니까 아주 이해할 수 없다는, 실명이 기본이 아니냐는 식으로 얘기하는데는 기가 찬다. 정말 어쩌다가 이렇게까지 됐나. 상식이 뒤집히고 있다. 이 몇 사람들만 그런 거겠지. 착각들 말기 바란다. 지금 좀 밀리곤 있어도, "인터넷의 생명은 익명성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