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12/26

잡기장
조용하고 덜 익숙한 곳을 찾아 미문동에 갔다. 라면을 부셔먹으며 시간을 보내고, 오랫만에 기타를 잡아봤지만 어색하다. 전기장판이 있어 좋다. 난로를 키고 장판 위에 누워 마구 메모를 끄적인다. 내 욕구에 대해. 낮에 누군가가 꿈이 뭐냐고 물었는데 아무 것도 떠오르지 않았다. 꿈이야 한동안 없으면 어때. 잊어버렸어. 원하는게 뭐야. 없는거야. 너 살고 있는거 맞니. 살고는 있지. 그러게 내가 왜 이렇게 됐지.


따뜻했으면 좋겠다. 맛있는걸 먹고 싶다. 속을 까보일 수 있는 친구가 옆에 있으면 좋겠다... 5만원만 어디서 굴러떨어져라. 섹스..는 하고 싶은거 맞겠지. 자전거 탈때 안 추웠으면 좋겠다. 지금 입고 있는 것 말고 다른 옷이 있으면 좋겠다. 잘하는 거 말고 못하는 거 남들 앞에서 얼굴 달아오르는데 막 하고, 그때 사람들의 격려를 듣고 싶다. 이 전기장판이 빨리 따뜻해졌으면 좋겠다. 나를 편하게 생각하는, 대해주는 여성과 얘기하고 싶다. KLDP에 TTS를 만들어보자고 제안해볼까..일단 시작하면 관심 있는 사람들이 함께할지 모른다. 나도 뭔가 하나 만들어내서 공동체에 기여하고 싶다. 이제는 늦어버린, 하지만 얘기하고픈 걸 노래로 만들고 싶다. 우울하진 않게... 한참 메모장을 채워보니 대부분 일상적으로 이뤄지고 있는데 그걸 당연시 해서 그게 내가 원해서 된거라는 것도 모르고 있는 것도 많았다. 원하는게 이뤄지는게 적지 않구나.

다른 쪽으로 생각이 뻗어나가서 메모 한참 쏟아내니 막차가 아슬할 시간이다. 춥긴 하지만 이런 분위기 나쁘지 않다. 문득 눈 덮인 산장에 혼자 사는 중년 남자의 이미지 - 어느 영화에서 봤거나 소설에서 상상했던 - 가 떠오른다. 물론 그 중년 남자는 비밀을 간직하고 있고, 아픔을 갖고 있었지만 혼자 살면서, 시간속에 묻어버리고 있다. "늑대" 그래 내 동물점은 늑대였지. 역시 난 혼자 사는게 아직까진 자연스러운건가. 그게 차라리 편하고 왠지 있어 보이고 내게 자연스러운 것 같지만.. 그걸 원하지 않는다. 정말로 절대로 간절히. 적어도 가끔 찾아오는 친구라도 있어야 한다.


(원스 OST - "If you want me")

돌곶이역에 들어서자 한 아저씨가 살짝 부딪히고 간다. 뭐라고 계속 중얼거리는데 살짝 들리는 거나 분위기가 좋은 소리같진 않다. 아마 한참 전부터 계속 저러고 왔겠지. 뭐가 그리 열받으셨나. 바로 앞에 한 이성커플이 안타까운 이별의 시간을 갖고 있다. 개찰구를 사이에 두고 여자는 이쪽, 남자는 안쪽이다. 손을 흔들고 웃으며 여자는 돌아서고, 남자는 계속 이쪽을 보며 손을 흔든다. 여자는 한 걸음 걷고 다시 돌아본다. 서로 보며 웃는다. 크리스마스를 행복하게 보냈나보다. 좀처럼 헤어지지 않는 두 사람의 사이를 내가 가로지른다. 카드를 찍고 들어가며 엠피쓰리의 볼륨을 높이고 약간 흥얼거린다. 남자의 뒤쪽으로 갔을때 슬쩍 돌아본다. 두 사람은 여전히 서로를 보내기 아쉬워하고 있다. 그 모습을 보고 옆을 스쳐가며... 새삼 놀라웠다. 닭살 돋고 메스껍고 시샘나는게 아니라 그냥 오직 부러웠다. 난 느껴보지 못한 그런 기분 속에 있을 두 사람이 왠지 아름다워보인다. 마침내 돌아서 계단을 내려오는 그 남자. 난 빤히 그의 얼굴을 바라본다. 그의 기분을 느낀다. 그를 따라간다. 경쾌한 발걸음에 점점 나와 거리는 멀어지지만 계속 그 남자를 바라본다.

주위를 둘러본다. 별로 커플이 많지 않다. 이성이던 동성이던. 열차를 타고, 난 한쪽 끝에서 다른 쪽 끝으로 객차를 돌아다니며 사람들을 본다. 지금껏 지하철을 타며 양쪽에 앉아 있는 사람들을 빤히 쳐다보고 간 적이 없다. 겁나잖아. 근데 지금은 뭔가 찾는 사람의 심정으로 사람들을 보고, 귀를 쫑긋 세우고, 몸에 힘을 빼고 걸어다녔다. 아까 두 사람과 같은 기운을 내고 있는 사람들이 또 있을까 해서. 근데.. 어찌된게 다들 따로따로더라. 한쪽 끝에 이르러, 그냥 자리에 앉았다. 앞에 있는 여자와 눈이 마주친다. 왠지 심상치 않다. 불편하다. 안 그런척 했지만 지각생은 왕자병이 있다. 그런 시선 원치 않아. 날 그냥 편하게 바라볼 수는 없니. 어차피 내게 더 다가올 것도 아니잖아. 물론 다가오면 난 도망치겠지만. 그냥 편하게 나와 얘기해줘. 도망치는 것도, 매번 분명한 선을 긋고 낮은 담을 쌓아놓는 것도 싫어. 이런 생각을 한답니다.


감정이 전부가 아니라고. 낭만적 이성애란 것도 이데올로기일 뿐이라고. 물론 난 그런것에 약하지만. 그전까지 내가 알고 있는거, 상상하던건 흘러간 옛노래의 가사 같은 거였지. 내가 생각하는 대로의 관계를 만들기 위해, 아무래도 역시 "나"는 변화가 필요하다고 생각했지. 그래서 언젠가... 가능성이 희박하지만 내가 좋아하는 그 사람과 그런 관계를 만들 준비를 할거라고. 그렇게 자신에게 말했지. 그냥 아무것도 모르고, 용기 없는 그대로 자신에게 솔직할 수 있었으면 좋았을건데. 내 부끄러운 면을 그렇게까지 악착같이 감추려고 애쓸 필요가 없는건데.

계속 무언가를 찾아다녔지만, 사실 처음에 갖고 있던 것마저 잃어버린건 아닌지. 무엇을 얻고, 무엇을 잃은 걸까. 지금의 난 뭘 갖고 있고, 관계속에서 무엇으로 존재하는 걸까. 반쪽이나마, 혼자만이었을지 모르지만 갖고 있던 그 설렘이 지금 남아있긴 한건지. 그 두 사람의 무엇을 나도 갖고 있는건지. 아냐, 분명 아직 남아 있긴 한데 되게 약해져 있는걸꺼야. 오랫동안 내가 계속 스스로를 힘들게 해서.


이렇게 될 거라면, 난 대체 뭘 왜 그리도 두려워했던걸까. 지금을 처음부터 예상하고 준비해온건가. 빌어먹을 동시성이로군. 최단거리를 달리는 빛의 굴절.


Are you really here or am I dreaming
I can’t tell dreams from truth
For it’s been so long since I have seen you
I can hardly remember your face anymore
When I get really lonely and the distance calls its only silence
I think of you smiling with pride in your eyes a lover that sighs

If you want me satisfy me
If you want me satisfy me

Are you really sure that you believe me
When others say I lie
I wonder if you could ever despise me
You know I really try
To be a better one to satisfy you for you’re everything to me
And I do what you ask me
If you let me be free

If you want me satisfy me
If you want me satisfy me

If you want me satisfy me
If you want me satisfy 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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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12/26 03:27 2007/12/26 03: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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쥬느 2007/12/26 09:59 URL EDIT REPLY
각생 메리2008 되길! ㅋㅋ
원스 지겹다 지겨워 :-/
지각생 2007/12/26 13:18 URL EDIT REPLY
그런가.. 원스는 지겨운건가.. orz
ㅎㅎ 배신자 쥬느도 메리2008~
디디 2007/12/27 08:07 URL EDIT REPLY
지각생을 와방 편하게 대해주는 -ㅅ-) 토토가 생각나는군. 무은득- ㅋㅋㅋ
지각 2007/12/28 04:46 URL EDIT REPLY
괜한 농담때문에 난 이제 불편함
디디 2007/12/28 14:18 URL EDIT REPLY
토토뿐 아니라 나도 그렇고 편하게 지내는 여자들이 꽤 많다는 거지. 지각생에겐 -_- 불편은 무슨. 사춘기녀 ㅋ
지각생 2007/12/28 14:43 URL EDIT REPLY
그래 사춘기다 ㅋ 사춘기가 도통 끝나지 않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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