활동에 대한 고민

잡기장
쌓아둬봤자 고민이 깊어지지도 않는 지금, 잊어먹지나 않게 그냥 꺼내놓으려함.

지각생은 지금껏 "정보통신활동가"라고 하는, 정확히 규정하기 어려운 정체성을 스스로 부여하고
뭔가 나랑 비슷한 처지에 있는 사람들의 존재를 좀 더 돌출시키고 싶어해왔다.
성과가 없지 않아, 이제 어디 가면 "정보통신활동가 머시기"라는 이미지가 살포시 씌워지는 것 같지만
그럼 대체 지금 뭐하는거냐고 스스로 물어보면, 여전히 애매하다. 컴퓨터 다루고, 홈페이지 손봐주고, 인터넷에 대해 말하고, 자유소프트웨어 홍보하고, 개방과 공유의 정신을 선전하고, 조직 문화에 대해 변화를 제안하고, 별볼일 없는 숨은 사람들의 느슨한 연대와 협력의 파워와 진정성!을 말하고 다닌다.만.
역시 컴퓨터에 문제가 발생했거나, 홈페이지를 개편하고 싶을때 말고는 사실 떠올려지고, 가까워지고 싶지 않은게 "그 활동가"라는 생각이 스스로 든다.

다른 사람들의 인식에 대한 아쉬움과 함께, 뭔가, "그 활동가"들이 다른 사람들과 잘 엮이지 못하거나, 그들이 갖고 있는 생각들이 다른 사람의 그것들과 잘 섞이지 못하게 만드는 어떤 제약, 혹은 풀지 못한 어떤 질문들이 있어서 그런건 아닐까. "정보통신활동가"라고 스스로 정체성을 갖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면, 먼저 "우리"끼리 질문을 던지고, 답을 찾아야할 부분이 있는 건 아닐까.

1. 정보통신활동은 기술 중심의 활동인가
2. 그 활동은 남성 중심/주도의 활동이며
3. 그 활동은 (1,2번과 어쩌면 연관되서) 엘리뜨의 활동인가
4. 그 활동은 도구, 특효약에 의해 문제를 우회하는, "서두르는" 활동은 아닐까.
5. 그 활동은 환경/생태 문제와 어떻게 "실질적으로" 만나지는가.
6. 그 활동이 갖는 권력은? 추구하는 권력은? 실제로 발현되는 권력은?

이 중에서 1,2,3번은 어쩌면 쉽게 문제의식에 동의될 수 있겠고, 오랫동안 많은 사람들과 토론해야할 문제다.

4번은 내가 전에 일하던 단체에서 사람들간의 소통의 문제와, 홈페이지 제작 의뢰가 들어온 곳의 고민을, 그 자체로 고민하기 보다 다른 기술적 재치를 발휘해서 쉽게 해결할 수 있다고 주장한 적이 몇번 있었는데, 사람들의 반발이 좀 심했다. 그때는 그들이 내 아이디어를 이해하지 못해서 그렇다고 생각하고 억울해했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그건 아니었다.

어떤 문제가 있을때, 사람들이 좀 전통적이고, 비효율적인 방식으로 소통하며 그 과정에서 어려움이 있다고 치자. 이때 약간 옆에서 지켜보던 어떤 "똑똑한" 사람이 뭔가 방법을 제시했는데, 그는 이 방법을 쓰면 당신들의 고민은 전혀 다른 방법으로, 다른 차원에서 해결될 수 있다. 그 문제 자체는 사실 별게 아니다. 이런 식으로 말한다고 하자. 그리고 그 새로운 "방법"이라는 것이, 제안한 사람 외에는 그 원리를 이해하기 힘든(그때의 상황에서는) 것이라고 하면, 과연 그 방법을 채택할 수 있을까? 하는 것이 옳을까?

분명 어떨때는 채택할 가치가 있을 것이고, 그 전의 방식이 너무나 많은 대가를 흘리고 있는 상황이라면 채택할 수 밖에 없겠지만, 어쨌든 그런다고 해도 채택하는 데에 있어 역시 논의와 합의가 필요한 것은 분명하다. 그럼 그 "옆에 있던 제안자"는 이제 자신이 포함된, 새로운 논의를 이끌어가야하는 책임을 갖게 된다.


5번은 사실 내가 지금 가장 고민하는 것 중 하나다. 내가 지금 살고자 하는 방향은 전기기술문명과 어느 정도 거리를 두는 삶이라 할 수 있는데, 내가 해왔고, 지금 내가 속한, 연결된 사람들의 망에서는 아직 수요가 있는 작업들이 대부분 나를 컴퓨터와 여러 기기들을 놓지 않게 만든다. 환경문제에 대해서는, 통신기술이 종이 사용을 줄인다 이런 식으로 쉽게 환경에 대해 생각하지만 지금 IT가 쓰고 있는 엄청난 에너지, 발생시키는 오염물, 탄소 등을 생각하면 뭔가 조금 더 깊은 질문과 변화가 필요하다.

에이 이런 것보다 그냥 내 고민은, 사람들이 인터넷을 좀 더 적극적으로 주체적으로 활용하길 바란다면 나는 더 그 전부터 한참동안을 컴퓨터와 인터넷을 끼고 있어야 하는데, 그러기 싫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나는 컴퓨터를 멀리하고 사람들에게 좋다 좋다 써봐라 그러는게 먹힐 리가 없는 것이고.
이제 생각나는데, 정말 내 고민은-_-, 주변에 "친환경/생태주의적 삶"을 사는 사람들과 교류하고 닮고자해도, 뭔가 어려움이 있다는 것이었다. 일단 그들의 말과 생각은 내가 참 좋아하고, 받아들일 수 있다. 반면 내가 생각하는 것을 그들에게 다가갈 수 있는 언어로 번역하는 것은 힘들다. 뭔가 내 삶의 반과 다른 반쪽이 서로 접점을 찾지 못하고 따로 따로 사는 느낌. "두 개의 삶"을 살고 있는 듯한 느낌. 내 안에서도 만나지 못하며, 다른 이들과도 잘 만나지 못한다는 느낌. 한쪽의 삶의 경험과 성찰과 깨달음이 이 다른 한쪽에 잘 스며들지 못한다는 느낌. 또 그 반대도 마찬가지이고.
그래서 지금까지의 나의 삶, 그리고 앞으로도 한동안은 지속될 삶과 일, 놀이의 "방식"이
내가 아끼고 지향하고 배우고 싶고, 그래야할 다른 한쪽과 얼마나 더 매끄럽게 앞으로도 잘 살아갈 수 있을지. 뭐 이런 고민이라는 건데, 제대로 썼는지 모르겠다.

좀더 내 느낌과 생각을 "날로" 쓰고 싶은데 그러지 못했다.
그냥 주변에 보면, 누군가가 하는 일, 사는 방식은 그가 지향하는 가치와 어떠어떠하게 연결되는 것도 같고, 그래서 그는 일상에서 많은 생각을 하며, 계속 자기 자신에게 자극을 주고 계속 나아갈 수 있는 여건인 듯 싶고, 그래서 사람들과 나눌 수 있는 말이 많은 것 같다면, 내가 하루 종일 일하고 돌아왔을때 "나 이런 저런 일을 했다"고 사람들에게 쉽게 말할 수 있는 구석이 사실 거의 없다는 것때문에 답답하다. 그리고 그 일 하루 종일 하다보면 생태적 삶에 대한 내 고민을 키워갈 수 있는 여지를 찾기가 참 힘들다는 것.

그래, 말하다 보면 계속 원래 말하고 싶었던것에 가까워지는 법이다.
그냥 위에서 했던 말 그대로이다. 내가 하루 종일 힘들게 뭔가 일하고 돌아왔을때, "오늘 이런 저런 일을 했는데, 세상에 이런 일이 있었지 뭐야. 이런 느낌을 받았어.. "하고 누군가와 한참이고, 속 시원해질때까지 풀어놓고 싶지만, 내가 좋아하는 같이 살아가는 사람에게 그런 얘기를 10분 이상 할 수 없었다는 것이 참 안타까운 일이다. 반면 그런 얘기를 오래 할 수 있는 사람들 속에 있을때는, 저 위에서 말한 대여섯개의 고민 중 3,4개 이상은 대부분 걸리기 때문에, 오래 얘기하다 보면 불편하고 짜증난다. 그래서 그렇다. 그래서 그렇다.

또다시 내 하소연이 됐지만, 사실 위에서 얘기한 6개의 질문은 정말 "본격적으로" 꾸준히 많은 얘기들을 주고 받고 싶은 부분이다. 4월 2,3일에 정보통신활동가 워크샵을 하는데, 저런 질문들을 좀 제기해볼까하는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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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3/25 11:41 2009/03/25 11: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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앙겔부처 2009/03/25 12:37 URL EDIT REPLY
고민을 말로 잘 풀어내셨네연
잘 모르겠지만 지음도 정보통신활동가구, 새로 입주한 빈집 3인지 4인지; 식구들 중에도 있지 않나요?

글구 전문분야 잘 모르면 천천히 설명하고, 속상했던 거나 이것저것 얘기하면 좋을 것 같아요. 가까운 사람이랑요. 글구 서로를 알기 위해 서로의 분야를 관심갖구 공부해야 할 거구. 애인이 아니어도요.
너무 이상적인 얘긴가?? 지각생이 이상적인 담론이 실현되는 공간에 살고 있는 것 같아서.
지각생 | 2009/03/27 22:07 URL EDIT
감사감사 ㅎㅎ 그렇게 되면 참 좋겠는데 쉽지 않네요. 뭔가 내 스스로 자신이 없다 보니 더 말하는게 시원찮은지도 모르겠고.. 역시 대체적으로 그런 말들이 많이 안 돌다보니 내용이 어렵고 아니고를 떠나 일단 생소하고 재미의 뽀인트를 잘 못 찾는듯..
무나 2009/03/25 13:26 URL EDIT REPLY
지각~ 폭탄 맞았다는 얘기 들었어~ 심심한 위로의 말을 전할게
그나저나, 어제 도영에게도 얘기했지만, 언제쯤이면 우리 imc 두리팔 홈피가 수정될까? 테크들이 손놓고 있으니 어찌할 바를 모르겠네. 범이나 도영은 두리팔에 대해 아직 잘 모르겠다고 하고. 저번에 홈피 소통게시판에 정리해두었던 문제점들 좀 빨리 해결 안될까나? 아니면 범에게 좀 가르쳐주면 안되나?
지각생 | 2009/03/27 22:09 URL EDIT
흑 넘 고맙소. 생각보단 잘 될듯 하오. 이제 조금씩 상태가 회복되어 가니 imc 사이트, 조만간, 정말 조만간 손 볼거임 ^^ 급한 거를 조금 해결한 다음 범 혹은 누구던 공유해서 같이 해보겠소
공룡 2009/03/25 22:30 URL EDIT REPLY
휴우~. 미안한 일 투성이네. 부족함이 많은 나로구나. 뭔가 얘기 나누고 토닥이고 그러면서 살고 싶은데 말이야. 퇴근길에 용산 지날 때마다 지각생이 지금 거기 있나 싶어 전화해볼라도 방해가 될까 싶어 망설이다 그냥 온다오. 걱정하는 마음 의지하는 마음 크다는걸 아는가, 이친구야!
지각생 | 2009/03/27 22:11 URL EDIT
흠. 공룡이 뭐를 미안해 하는지 아직 모르지만 ㅋ 그게 날 걱정한다는 말이라면 고맙소. 오히려 내가 친구들에게 걱정을 많이 끼치고 있는 것 같아 미안하달까?
지음 2009/03/27 03:40 URL EDIT REPLY
이 사람하고도 얘기하기 힘들고, 저 사람하고도 얘기하기 힘들고... 그래서 많이 힘들겠지만... 정확히 그 포지션이 누구도 가질 수 없는 지각생의 특별함일꺼야. 저 질문들에 스스로 납득할 수 있는 정도의 대답만 낼 수 있다면, 다들 좋아라하지 않을까?
지각생 | 2009/03/27 22:13 URL EDIT
ㅎㅎ 이해해줘서 고맙네. 질문을 일단 밖으로 내놨으니 이젠 어쩔 수 없이 계속 고민하며 답을 찾아야겠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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