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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니스커트 쳐다보는 짓 좀 그만했으면 합니다

  • 등록일
    2005/11/15 11:33
  • 수정일
    2005/11/15 11:33

http://blog.jinbo.net/autismee/?pid=39

 

 

미니스커트 쳐다보는 짓 좀 그만했으면 합니다.

* 어제 쓴 그만 좀 쳐다봐라는 포스트에 대한 포스팅. 피곤하기도 하고 CSI도 보고 싶고 해서 감정만 휘갈겨 놨었는데 오늘은 좀 머릿속이 정리가 된듯.

 

너는 다리도 예쁜데 왜 짧은 치마를 안 입고 다니냐는 둥 니 다리로 짧은 치마 입다니 사람들에 대한 배려가 없다는 둥 여름이면 벗고 다니는 여자애들이 많아서 눈이 즐겁다는 둥, 그런 얘기는 좀 그만했으면 합니다.

자폐도 짧은 치마를 입고 다니면 아주 그냥 뭇 사나이 씨들의 시선에 깔려 죽을 것 같던데(심지어 어떤 색히는 계단 올라가는 자폐 뒤에 찰싹 붙어서 따라오다가 이쪽에서 한번 째려봐주니 도망가기도 하드라) 쳐다보는 짓도 그만했으면 합니다.

 

1.

 

남들 보라고 일부러 벗고 다니는데 봐 줘야지.

 

예, 독심술이라도 익히셨나보군요. '벗고' 다니는 여자애들의 마음이 읽히나 보네요. 아니면 '벗고' 다니는 여자애들이 전부 사토라레였던 모양이군요.

 

그런데 자폐는 한번도 남들 보라고 벗고 다닌 적 없습니다.

자폐는 본인의 의사가 왜곡되어 전달되는 유형의 사토라레였던 모양입니다.

 

왜 유독 한국사회에선 그런지 모르겠지만 여성들이 외모를 치장하는 것은 남들 보라고 치장하는 건줄 아나봅니다. '벗고' 다니는 것뿐만 아니라 화장 안 하던 애가 갑자기 화장으로 하고 와도 '너 소개팅 나가냐' 라는 소리를 듣나 보더군요.

단지 본인이 '벗고' 싶어서 '벗는' 거고 화장하고 싶어서 화장하는 겁니다.

남들 보라고 하지 않았습니다. 무공도 익히지 않은 주제에 남의 마음 지레짐작하지는 말아주세요.

 

2.

 

내 다리에 따라붙는 '시선'이 왜 불쾌하냐구요.

 

일단 피상적인 이유로는 이런 것이 있겠군요.

 

한국사회에서 성폭력 경험을 종종 겪어온 여성들은, 따라붙는 그 시선이 어떠한 폭력을 행사할지 모른다는 두려움에 그 시선이 매우 무섭습니다.

쉽게 얘기하면 쳐다본 후에 일어날 변태짓이 예견가능하기 때문에 존나 무섭습니다.

 

실제 변태짓을 하는 색히는 몇 놈 안 되겠지만 변태짓 하는 색히가 남성 중엔 극소수일지라도 당하는 여성의 입장에서는 그 몇 안 되는 숫자가 크게 느껴질 수도 있다는 걸 명심해주세요.

한국사회에선 워낙 다반사로 일어나는 변태짓이기 때문에 본인도 당할지 모른다는 두려움에 떨 수밖에 없어요.

 

무서우면 짧은 옷 입지 않으면 되지 않냐구요?

여보세요, 강도질 당하는 게 무서워서 늘 거지차림으로 입고 다니라고 이 사람 저 사람 말씀하고 다녀보세요.

피해자가 조심해서 범죄를 막을 수 있는 게 아니라 가해자가 발생하지 않도록 하는 것이 범죄 예방의 기본입니다. 피해자 중심주의 라는 단어를 좀 신중히 생각해보세요.

 

3.

 

내 다리에 따라붙는 '시선'이 불쾌한 가장 큰 이유는 아마 이것일 겁니다.

 

쟤 다리 존나 이뻐.

 

하며 다리만 바라본다는 것은 곧 여성의 몸을 대상화하는 행위입니다.

 

여성주의에서 항상 얘기하는 것은 여성의 몸을 대상화하지 말아라, 그렇게 대상화한 여성의 이미지를 팔아먹지 말아라 하는 것입니다.

 

지난 몇천년 동안 여성은 인간으로 대접받지 못했다는 사실들은 알고 계시겠지요. 여성은 인권이 없다(by 루소) 라는 이야기라든지 중세시대엔 여성은 영혼이 없는 걸로 취급되었다든지 하는 역사학적 얘기는 너무 기니까 넘어가도록 하지요.

여하튼 그 '인간으로 대접받지 못한' 사실 자체가 많이 희석되었다고는 해도 여전히 여성은 그 자체로 인격체로 대접받기 보다는, 그냥 으로 대접받기 일쑤입니다. 그러니깐 이라는 하나의 사물로 대접받기 일쑤라구요.

 

소위 말하는 '나가요 가수'들의 에 대해 지대한 관심을 기울이시는 사나이 씨들 중에 그녀들이 어떠한 노래를 부르고 어떠한 활동을 하며 어떠한 생각을 갖고 있는지에 특별히 관심있는 사람들 있습니까. 좀 유명해진 채* 씨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관심이 가는 것 같지만 왠만하면 그냥 벗고 나오면 좋다더군요. 완전 감상용으로 취급하더라고요. 그녀라는 인간 자체에는 별로 관심이 없나보더라구요.

 

짧은 치마를 입은 여성의 다리를 강렬한 시선으로 쳐다보는 행위, 여성의 다리에 대한 평가를 내리면서 입을 옷을 손수 골라주는 행위와 같은 것은 여성을 감상용으로 취급하는 가장 기본적인 단계입니다.

 

여성의 다리를 쳐다보면서 내가 이 여성의 다리를 쳐다보면 이 여성이 기분 나빠할 것이다, 라는 생각 한번이라도 해보신 적 있나요?

여성의 다리에 대한 평가를 내리면 이 여성이 기분나빠할 것이라는 생각 한번이라도 해보신 적 있나요?

여성에게 '넌 짧은 치마를 입으면 안 돼' 라고 말을 할 때에 그 여성이 짧은 치마를 입고 싶어하는지 아닌지에 대해 한번이라도 생각해보신 적 있나요?

아마 없을 겁니다. 있다면 저런 말 안 나오죠.

 

당신이 여성의 몸에 대해 이러저러한 행위를 할 때에 당신은 이미 그 여성의 주체성은 거세시키고 있는 거라는 얘기죠. 그 얘기인즉슨 여성을 인간으로 보기보단 하나의 사물로 취급하고 있는 거라는 얘기이기도 하구요.

 

세상에 어느 누가 자길 물건 취급하는 데 기분이 좋겠습니까.

사람을 물건 취급 하지 말라고 중학교 도덕책에서도 누누히 얘기하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이건 기초 상식입니다.

 

4.

 

지난 여름에, 얼핏 보면 섹스할 때에 입을 속옷 같은 슬리브리스를 입고 광화문 지하보도에서 누군가를 기다린 적이 있었더랬습니다.

자폐 가슴에 꽂히는 뭇 사나이 씨들의 시선에 깔려 죽는 줄 알았습니다.

근데 재미난 것은, 노골적으로 쳐다보시는 분들은 대부분 중장년층이었는데 청년층은 흘끗 보다 말고, 흘끗 보다 말고, 그러시더군요.

감히 일반화시켜서 말할 수는 없겠지만 아마 흘끗 쳐다보다 말고 하시는 분들은 본인의 행위가 별로 옳은 행위가 아니라는 것은 아시는 모양인 것 같습디다. 아마 그 감각 자체가 나이가 들면서 무뎌지나 봐요.

 

그렇게 노골적으로든 아니면 흘끔이든 시선의 대상이 되는 사람은 몹시 불쾌합니다.

짧은 치마를 입고 나가도 타인의 시선에 신경쓰지 않아도 되는 그런 한국에서 살았으면 좋겠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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