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드바 영역으로 건너뛰기

한숨소리 더 커지는 중소영세 노동자들의 사연

  • 등록일
    2004/09/25 01:59
  • 수정일
    2004/09/25 01:59

안타까운 사연들,

반복되지 않도록 무엇을 해야 할까.

분명한 것은 "노동부"는 해결해 주지 않는다는 것이다.

우리 스스로가 해결하는 수밖에.

http://www.labortoday.co.kr에서 퍼온 기사입니다.

 

http://www.labortoday.co.kr/news/view.asp?arId=43161

 

추석을 닷새 앞둔 23일 서울 마포 서부지방노동사무소. 점심시간인데도 3층에서 진정서를 접수하는 사람들, 근로감독관의 출석요구서를 받고온 사람들로 끊이질 않는다.

“진정서 접수하려면 돈 내야 돼요? 돈 내는 거면 그냥 가게.” 한 아주머니가 취재하러 온 기자에게 묻는다.

“돈 안내도 돼요. 아주머니 무슨 일로 오셨어요.”

유자현(가명, 50)씨의 사연은 이렇다. 직업소개소를 통해 파출부 등 여러 가지 일을 5년 넘게 해온 유씨는 최근에는 은평구의 한 횟집에서 일당 5만원을 받기로 하고 주방 일을 했다. 그런데 일한 지 1주일 만에 주인은 “소개비 10%를 별도로 내는 것이 아깝다. 안쓰겠다”고 했다. 문제는 1주일치 돈을 못 주겠다는 것.



“네가 한 게 뭔데”…억울해서 잠도 못자

“네가 무슨 주방장이냐. 네가 한 게 뭐 있냐. 놀러 왔지.” 주인의 트집과 모욕, 무시에 아주머니는 서러움을 느꼈지만 참았다. “주방, 홀, 담배 심부름 등 다 했는데 그러면 설거지 값이라도 달라.” 유씨의 말에 주인은 달랑 4000원을 던져줬다.

“아침, 저녁으로 전화해도 주인은 피하기만 하고, 한 푼 받으려고 차비에 시간 낭비에, 이렇게 시달리면서도 보호받지를 못하니 너무 억울해요. 내가 종가집 맏며느리인데 추석 생각하면 밤에 잠도 못 자요. 심장도 뛰고.”

“여지껏 파출부 일 5년 하면서 이런(체불) 일은 처음이에요. 일한 대가가 ‘탁탁’ 나오니까 그동안 재밌게 일을 했죠. 그런데 이번에 이런 일 당하니 완전 의욕상실이에요.”   
 
용산전자상가 DVD유통업체에서 3년6개월을 일했다는 이창윤(가명, 29)씨도 진정서를 접수하고 있었다. 퇴직금 500여만원을 석달이 지나도록 받지 못했다. “주겠다, 월말로 하자, 어렵다고 하더니, 추석 앞두고는 피하더라고요. 사장이 (퇴직금) 줄 마음이 없다고 판단해 진정을 넣으러 왔어요.”

광고 쪽으로 업종전환을 계획 중인 이씨는 같이 살고 있는 여동생이 용돈도 주고 해서 버텼지만 석달을 쉬다보니 이제 동생까지 어려운 상황에 처했다. 저축해놓은 것도 없고 돈 나올 곳은 퇴직금뿐인데, 추석은 또 다가왔다.

“목포가 고향인데 내려가기 싫죠. 그냥 부모님 얼굴만 보고 빨리 올라올 겁니다.” 이씨는 월급날 되면 외려 화를 내던 사장이 자꾸 떠오른다. 내가 정말 일을 잘 못했던 걸까. 올해 미룬 결혼, 내년에는 어떻게 될지. 고민은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명절을 앞두고는 참고 참다 도저히 안 되겠어서 찾는 분들이 많죠.” 30년 넘게 근무했다는 방정강 명예상담원의 말이다. “하루에 약 70여명 정도 와요. 요즘은 더 많아졌죠. 대부분이 체불문제에요. 다들 사정이 딱하고 어려워 상담하면서도 참 안타까워요.”

▲ “이제 다른 직장도 못들어 가겠어요.” 체불로 인한 마음의 상처는 너무나 크다. 의기소침해진 자신을 다잡아보려 하지만 쉽지 않다.  ⓒ 매일노동뉴스
고객상담실 옆의 근로감독관 대기실에서는 삼십대의 회사원이 상기된 표정으로 앉아 있었다. 소득세 환금액 미지급금 40만원을 받으려 하는데 다니던 건축사에서 ‘근로소득원천징수영수증’과 심지어 ‘퇴직증명서’까지 떼주지 않더라는 것. “왜 이렇게 사람들이 무책임하나. 공무원들도 똑같다. 약속시간을 지켜야지. 휴~.” 안산에서 서울 마포까지 몇 번을 오고가는 번거로운 일에다가 약속시간이 미뤄지자 그는 짜증이 났다.

“엄마, 나 용돈 좀 보내줘”

체불로 인한 생계 문제는 말할 것도 없지만, 심적인 고통 역시 이루 말할 수 없었다. 대부분 변변한 노동조합조차 없는 중소규모 사업장에서 일하는 여성, 비정규 노동자들로서 깊은 한숨과 눈물만 가득했다.

안동에서 서울로, 다시 안동으로 내려간 20대의 박연수(가명)씨. 체불로 인해 겪게 된 경험은 그의 젊은 가슴에 깊은 상처를 남겼다. 고향 선배 소개로 3년 전부터 다닌 신생건설업체. 통신기술자인 그는 경리업무와 사장의 비서 일을 하면서 자신의 돈까지 회사에 바치며 열성으로 일했다. 그는 그러나 올 6월말에 퇴사를 하면서 두달치 급여와 퇴직금·미지급금 등 500여만원을 받지 못하리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8월말까지는 꼭 주겠다던 사장은 이후 “주기 힘들다”고 하더니, 9월 들어서는 전화도 받지 않는다. 답답한 마음에 서울로 올라와 만나니, 사장은 안면을 몰수한 채 “집도 압류된 판이고 이혼까지 하게 생겼다”며 ‘배째라’식이었다.

몇 달을 기다린 게 허무해진 그는 곧바로 진정서를 접수했고, 23일이 첫 출두일이었다. “믿는 도끼에 발등 찍힌 꼴이죠. 같은 회사 다니던, 결혼을 앞둔 남자친구 체불까지 합치면 900여만원이에요. 둘 다 이번일로 망가진 것 같에요. 다른 일자리도 알아봤지만 일주일 만에 그만 뒀어요. 예전같이 ‘부딪히면 되겠지’하는 자신감도 없어지고, 포기하게 되더라구요.” 

의기소침해진 맏딸. 그는 부모님께 처지를 말씀드리지도 못하다가 8월말 생신 때서야 알리게 됐다. “엄마, 나 용돈 좀 보내줘.” 부모님 선물은커녕 고향 내려갈 돈이 없어 전화하는 딸의 처지. 그는 어머니의 객지생활과 억척스런 삶을 얘기하며 눈물을 흘렸다. “노동부에 신고하면 돈을 받을 수는 있는거냐. 네 고생한 건 받아야지.” 그는 “부도나면 (체불임금은) 거의 못받는다는데, 추석에는 또 무슨 면목으로…”하며 근로감독관실로 향했다. 

23일 오후 3시경, 방배동에 위치한 서울강남지방노동사무소는 더욱 붐볐다. 진정, 고소고발 등 접수는 끊이지 않았고, 5층 근로감독관실 계단에는 오고가는 사람들로 분주했다.

한 무리의 젊은이들이 계단에서 체불임금 처리를 어떻게 해야 할지 논의하고 있었다. 20여명의 직원이 무려 5달치의 월급을 받지 못했던 것. 그들은 더 이상 얘기하지 않으려 했다. “사장님과의 관계도 그렇고, 혹시나 불이익이 따르지 않겠어요. 죄송합니다.” 

“남들은 추석선물 들고 고향가는데…”

그 옆에 초조한 기색이 역력한 김씨(64)가 한숨지으며 앉아 있었다. 8년간 경비 일을 하던 곳에서 8월 중순 “젊은 사람과 교체해야겠으니 이달 말로 나가달라”는 갑작스런 통보였다. 최소한 한달은 여유를 줘야 자리도 알아보고 하는데, 추석을 앞두고 해고통보니 김씨는 너무 억울해 ‘부당해고’ 진정서를 접수한 참이었다. 자세한 이야기를 해달라는 기자의 말에 김씨는 “좋은 일도 아니고, 이득될 것도 없는데…”하며 머리를 긁적이며 돌아섰다.

계단 곳곳에 붙여진 종이 한 장이 눈에 들어왔다. ‘센소늄(브랜드명 네띠플러스) 대표를 상대로 한 ‘체불’ 진정인들은 건물 지하식당에 모여 달라’는 공지였다.

텔레마케팅 업체인 이 회사가 7월말 부도를 내고, 사장은 달아났던 것. 70여명의 텔레마케터들은 한달에서 석달까지 각자의 ‘체불임금 확인원’을 떼려 했지만 여의치 않았다. 기본급 85만원 외에 인센티브나 사측에서 매달 지급한 10만원의 핸드폰 요금은 고스란히 떼일 수밖에 없는 것. 회사는 사업자 등록도 되어 있지 않았다. 소득세는 월급에서 꼬박꼬박 떼가면서도 회사는 세금을 내지 않았다는 얘기다.

20대에서 40대까지의 다양한 구성만큼 그들은 ‘대표자’도 없이 개별적으로, 또는 몇몇 친분있는 사람들끼리 진정을 넣었다. “직원들 이직률이 높다보니 서로 잘 몰라요.” 정형준씨(가명, 25)는 “회사 사정이 어렵지만 건물보증금으로 해결해주겠다”던 임원들의 말을 믿었지만, 임원들은 회사 자산을 정리하고 도망간 상태였다.

“최소한 귀경길 내려가는 차비는 줘야죠.” “남들은 추석선물 들고 고향가는 데 못가죠.” “본인명의로 되어있는 휴대폰 요금 때문에 신불되어서 그거 막고야 가까스로 취업했어요.” “억울해서 포기 못해요. 정당하게 일한 것 받아야죠.” “노동부에서 부르니까 안올 수도 없고, 와보니 처리된 건 없고 (노동부가) 우리 편이 아닌 것 같에요.” “실질적인 지휘감독은 실장이 했어요. 그런데 노동부는 사장만 진정이 가능하데요.” “사업주는 고작 2천만원 이하 벌금에 불과하네요.”

지푸라기라도 잡고픈 20대 남녀 노동자들의 아픈 상채기는 쉽게 아물 것처럼 보이지 않았다.  

▲ 사장은 놀음하러 전국을 방랑하는데, 그런 사람을 노동부는 신고한 사람에게 찾아오란다. 뒤편의 텔레마케터들은 “남들은 추석선물 들고 고향가는 데, 우린 뭐냐”며 하소연한다. ⓒ 매일노동뉴스
식당에서 이 광경을 지켜보고 있던 김정인씨(가명, 62)는 자신만 억울한 사연이 있는 줄 알았는데, 체불에 시달리는 사람들이 너무 많아 놀라는 표정이었다. 김씨는 서울 신사동에서 실내포장마차 주방장을 하다 7월경 한달반 급여를 받지 못했다. “너무 억울하고 분하다. 일하기 전후로 7개월여 놀다보니 신불 신세다. 요즘 사글세 집값은 물론이고 버스카드도 없이 다닌다.”

“놀음하러 다니는 사장 우리보고 찾아오라니”

아주머니는 눈물로 호소했다. “포장마차 주인은 카지노로 노름하러 다닌다는데 사업자등록증도 확인이 안돼 고발도 못할 판이다. 폐업하고 또 다른 데 가서 사기치는 상습범이다. 사람들이 귀찮아서 안한다는 것을 아는 인간 같다. 돈이 들더라도 끝까지 해볼 생각이다.”

곁에 있던 남편이 말을 거들었다. “노동부가 힘이 있는 건지, 없는 건지 모르겠다. 민원인들이 오죽 답답해서 오는가. 그런데 (노동부는) ‘못 받을 테니까 가지마라’ ‘우리보고 사장 찾아와라’ 이런 말만하고….” 
 
하루 벌어 하루 먹고살고, 한달 벌어 한달 사는 노동자들에게 체불은 엄청난 생활의 타격이다. 생활유지 어려움은 물론, 심한 마음고생을 누가 보상할까. 애처로운 사연을 듣고 답답한 마음에 담배 한대 피우러 올라간 옥상의 간이 휴게소. 모여 앉은 사장과 임원들의 말이 비수처럼 등 뒤에서 들려온다. “(체불임금) 못 받을 때는 지랄지랄하더니, 받고나니까 ‘고맙다’ 소리도 안 해. 하이고.”

‘방귀 뀐 놈이 외려 성질’내는 꼴이었다. ‘정당하게 일한 노동의 대가를 받겠다’는 노동자와 ‘돈 몇푼 못준 것 같고, 못살게 구냐’는 식의 사용자들의 의식의 차이는 너무나 컸다. 한자리에서 일했지만 그들은 너무나도 다른 꿈을 꾸고 있었던 것일까.

취재를 마치고 지하철을 타고 돌아가는 길. 휴대폰이 울린다. 오전에 서부노동사무소에서 만난, 식당일 하셨던 아주머니다. “추석 전에 기사 나와요. 어디서 보면 되요. 답답해서요. 사장 주민번호도, 사업자등록증도 모르는데, 진정서 서류에는 그걸 쓰라는데 어떻게 해요.”

 
이수현 기자  shlee@labortoday.co.kr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