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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집안 대청소를 하면서 차라리 이게 적성에 맞겠다는 생각을 했다.
어디더라 여성주의 저널 보니까 가사노동도 숙련노동으로 취급해야 한다고 하던데.
귀찮으면 귀찮은 대로 살지만, 맘 먹으로 꼼꼼한 스탈이라 할 만 한가보다.
저녁으로 라면 끓인게 도무지 뱃속을 떠나지 않아 자정을 넘겼는데
이제는 출출한 감이 든다. 이게 뭐란 말이냐.
드라마 보고 나서 한밤 중에 한강에 나갔다 왔는데
이제 아빠 아빠 정도밖에 할 줄 모르는 아기의 아빠에게 '형'이 아닌 '삼촌'이라는 호칭을 듣고
잘 걸어가다가 흙바닥 위에서 갑자기 다리를 일자로 좌악 찢고 앉는 여자분도 보았으며
유유히 흘러가는 한강물을 바라보면서 혼자놀기도 해 보았다.
그래도 재미가 없다.
누가 얼마 전에 '운동이 재미가 없어서 그런다'는 표현을 하던데
딱 그 말이 맞는지도 모르겠다. "도통 재미가 없다"
자려고 누워서 생각해 보았는데 이 프로세스(대기업에 취직한 친구가 가르쳐 준 용어)에 따르면
역할의 부재 -> 목표의 부재 -> 개인적으로 발휘할 수 있는 역량의 부재 -> 재미없음.
아씨 이거 뭐 작년 여름 쯤에 여럿 아해들이 자기는 좀 어떻게든 빨리 정리하면 안 되겠냐고 샬랑거리던 딱 그 프로세스 아닌가. 이 자식들이 나는 지들하고 어떻게든 잘 해 볼라고 용 쓰고 있었는데. 그게 목/표/지/점. 이었단 말이다. 하여튼.
그럼 이 빌어먹을 프로쉐스를 깨는 방법은 무엇일까. 가만히 보니 중간 정도의 약한 고리라는 건 애초부터 없는 것 같고 원인 타격밖에는 방법이 없는데. 역할의 부재. 이걸 풀어서 말해보도록 하자. 역할이 부재하니 목표도 안 생기고 의무감도 없다. 때론 운동이란 건 발목 잡혀서, 등 떠밀려서 하는 것도 있거든? 왜 그 졸업의 노래 보면 그런 구절 있다. "앞에서 끌어 주고 뒤에서 밀며~~"
여하튼 왜 역할이 없냐. 두 가지다. 두 가지인 것, 같다. 사실은 한 가지일 지도 모른다. 아니면 서로 다른 것인데 대립하다 보니 하나로 통일되었는지도 모를 일이지. 여하튼!! 하나는 기간제 신분이란 것. 둘째는 능력이 개판이란 것. 뭐가 뭐를 규정하는 건지는 나도 헷갈린다.
아 근데 솔직히 말해서 내가 기간제인 건, 100% 내 책임인가? 솔직히 100프로 그렇게 돌리는 건 오버라고 생각한다. 이 바닥 분위기 자체가 다운 되어 있고, 무조건 정규직화(?-지어내려니 참 별 짓을 다한다)하려는 것은 10년 전 분위기니까 그런 게지. 후퇴는 후퇴다. 그런데 한편으론, 솔직히 필요가 없으니까 제기하지 않는 것 아니겠어. 그럼 왜 필요가 없는가. 그것은 능력의 문제에 따르겠지 아마.
젠장. 그러면 대체 나는 수 해 동안 무얼 했고, 왜 그 모양이었냐 이거다. 올해로 접어들면서 그래도 목표는 하나는 세웠었고, 여기서 서브로 덧붙인 것이 공부 열씨미 하는 거였는데 저놈의 프로세스 때문에 서점에서 석 달 전에 사놓은 책 10쪽 읽고 책꽂이에 꽂혀 있고 한 달 전에 사놓은 책 맨날 가방 속에만 쳐박혀 있다. 이건 못 났다고 하는 수 외에는 해설이 안 되는거니까. 몰라 그렇다고 치자.
결론적으로는 뾰족한 수가 없다는 거다. 그리고 재미가 없는 것은 확실하다는 것이고. 그리고 재미가 없다고 하여 판을 뒤집고 때려친다고 해서 해결될 문제는 결코 아니라는 거이다. 사는 게 재미가 없으니까. 왜. 운동이 재미가 없으니까. 그래도 아직 운동권으로부터 환골탈태할 생각은 안 드니.
여튼, 재미가 없으니 별의별 궁리를 다한다. 드라마를 꼬박꼬박 챙겨 보면서 과거에 탐닉하고, 공상에 빠져들며 혼자놀기를 통해 드라마 주인공과 닮아가는 양상에 바져 드는 것이고, 손바닥만한 쬐끄만 놈으로는 이제 도무지 만족을 못해 철컥 철컥 프레임을 들여다 보면서 찍는 DSLR에 군침이 돌아 수 년 전에 길거리에서 현금 만 원을 바로 준다는 이유로 수입도 없는 이가 손에 쥐었던 신용카드를 팍 긁어버릴까 하는 망상을 하는 것이다.
혹은 안그래도 얼마 전에 추억의 만화 슬램덩크를 완독하면서 참.. 만화 속의 주인공들은 승부욕에 투지가 불타 올라 목표를 잡고 사력을 다해서 뭔가 이루어내고 감동적인 해피엔딩을 만드는데 대체 나는 뭐하는 꼴인가를 생각하게 만들었는데 우연스럽게도 내가 청소년 시절 재미있게 읽었던 딱 두 편의 만화 중 나머지 하나 (그 하나가 슬램덩크고) - 바로 이나중 탁구부. 라는 이름을 인터넷 돌아다니가 접했기에 그거나 한 번 찾아서 다운받아 볼까 하는 생각.
쌔끈한 자전거라도 한 대 마련해서 (5년동안 탄 녀석은 녹이 슬고 너무 낡아 도무지 나가지를 않으므로) 바람을 가르며 전용도로를 달려보고 싶다는 생각이 간절한데 며칠 전에 어떤 노무 쉐끼가 자전거 타이어의 바람을 몽땅 빼놓는 어처구니 없는 째째한 만행을 저지른 탓에 그것조차 무산된 현실이 정말 열받아 죽겠네.
아주 그냥 불끄고 자려다 일어나서 혼자놀기 생쑈를 하는구나.
아, 그래도 내일 아니 오늘은.. 계획대로 하자. 계획대로 하자. 계획대로 하자.
차츰차츰 땡땡이 치는 잔머리가 늘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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