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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의 새벽 20주년 헌정음반을 들으며

  • 등록일
    2005/01/02 00:57
  • 수정일
    2005/01/02 00:57

집회 장소에서 민중가수들의 씨디를 사는 것 외에 레코드점에서 씨디를 사 본 건 정말 몇 년 만인지도 모른다. 옛날에 락 음악이니 뭐니 찾아서 듣던 추억을 떠올리며 여기저기 둘러보다가 눈에 띄어 구입한 음반.

 

박노해, 노동의새벽 20주년 기념 음반.

만 원이 넘는 가격에 조금 망설이다가 뒷면에 "이 음반의 모든 수익금은 이주노동자들의 권익을 위해 쓰여집니다."라는 문구에 '아주 나쁜 건 아니잖아?'하는 생각으로 결국. 샀다.

 

음악적으로는 굳이 얘기하지 않겠다. 괜찮다.

다만 내가 지금 이렇게 글을 쓰는 건 문득, 박노해에 대해서 하고 싶은 말이 생겨서다.

또, 마침 자주 들르는 홈페이지 옛날 글들을 뒤적이다가 읽은 글이 있어서다.

 

대학 새내기 시절, 학교 앞 장백 서점에서 처음 내 돈 주고 샀던 책이 바로,

박노해 시집인 "노동의 새벽"이었다.

물론 간간이 술자리에서 선배들로부터 "박노해는 배신자"라는 얘기를 듣곤 했지만, 어쨌든 그 시집은 나한테 정말로 소중했다.

혹여 부모님에게 들킬까 책장 깊숙이 깊숙이 넣어 두었지만,

한밤중에 꺼내 읽던 그 시들은 정말 나의 가슴을 울리곤 했다.

손 무덤..

가리봉 시장..

노동의 새벽..

이불을 꿰매면서..

 

학교 생활도서관에서는 아무도 읽지 않는 것 같은

노동해방문학을 읽으면서 알 수 없는 열정에 빠져들곤 했다.

 

하지만 운동을 제대로 접하고 하게 되면서

그런 것들은 다소간 씁쓸함으로 전환되어 갔다.

박노해는 뭘하고 있는지 몰랐지만, 가끔 한겨레에 외국에서 뭔가를 하고 있다는 백태웅(이정로)의 매끈한 칼럼(?)이 실리곤 했다.

 

그리고 한 2년 전인가?

나는 박노해에 대해서 다시 듣게 되었다.

새내기로 들어온 후배 한 명과 무던히도 친해보려고 애썼는데,

그 녀석이 박노해가 조직한 무슨 단체에서 일하고 있다는 거였다.

나눔문화 어쩌고던가.

사실 그 후배를 통해 전해들은 박노해의 모습은, 정말 영 아니었다.

언젠가 그 후배 역시 진지하게 나한테 물어온 적이 있다.

자신이 그 사람을 믿어야 하는가-

'새로운' 무언가를 해야 한다는 이유로 '있는' 사람들과 어울리는 그러한 모습으로부터 무엇을 배워야 하는가를-

 

..

그리고 이제 2005년이 되었다.

시간이 참 많이 지났다.

투쟁의 기억들은 너무나 오래 된 것처럼 느껴질 지 모른다.

하지만, 투쟁은 '기념' 속에 가두어질 그런 것이 아니고

무언가 '옛 것'으로 치부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현실은 분명히 다르니까.

사람에 대해서는 생각하지 말자.

시에 대해서만 생각하자.

차라리.

 

마지막으로 뒤적이던 옛날 글에서 덧붙인다.

 



김규항, , 야간비행, 2001 중

- 달콤 쌉쌀한 초콜릿

[" 그 사람에 대한 제 생각은 간단합니다. 불신감, 이 한단어로 족할 것 같습니다.
그의 변명은 간단하겠죠. 우리는 너무 조급했다. 내 그릇이 작았다.
다른 건 모르겠지만 최근의 신작 시를 읽을 때, 저는 예전의 그의 글과 마찬기지로
그 특유의 '가쁜 호홉', '어떤 집요한 욕망' 을 느낍니다.(.....) 그가 연예인이
되기로 작정했다면 , 좀 덜 짜증나는 연예인이 되기를 바랄 뿐입니다."]

올해 초, 모스크바 유학 중인 옛 사노맹 조직원이 내 글을 읽고 보내 온 편지다.
나는 글에서 출소 이후의 박노해를 두 번 언급했고 그 글들은 박노해에 대한 분명한
경멸을 담고 있었다.

준법서약서를 쓰고 나오는 자신을 정당화하기 위해 준법서약서를 거부하고
남기로 한 동료들을 "유연하지 못하다" 하고, 진보의 기본을 져버린 자신의
'새로운 진보론'을 강변하기 위해 여전히 진보의 기본만은 놓지 않으려는 엣 동료들
을 "낡았다" 하는 인간에 대한 경멸 말이다.

나는 박노해가 다시 고난에 찬 혁명가가 되라는 게 아니다.
우리 중의 누가 그에게 그런 걸 요구할 수 있겠는가. 박노해는 할만큼 했다.
우리는 그의 과거만으로도 그에게 존경을 보낸다. 나는 이제 (이미 그러고 있듯)
그가 안락하길 바란다.

그러나 박노해가 자신이 선택한 안락이 마치 새로운 진보의 방식인 양, 진보의 미래
비젼이라도 되는 양 떠들어댐으로써, 여전히 그에게 호의를 갖는 순진한
사람들을 헷갈리게 하고 여전히 진지하게 진보의 갈 길을 모색하는 사람들에게
아픔을 주는 일은 용서받을 수 없는 악행이다.

거짓 선지자가 된 전직 혁명가는 피할 수 없는 자기 혼돈에 빠지고 그 혼돈은
더욱 깊어만 간다. 출소 직후 넘쳐나는 휴대전화를 개탄하던 그는 이제 자신의
신간 표지를 'TTL풍' 으로 만들어 달라 요구하고, 출소 직후 하루 다섯시간
노동하며 사는 농촌공동체를 만들겠다 약속하던 그는 이제 "세상을 배우기 위해"
주식투자를 해보겠다 말한다. (이 가련한 현실감)

박노해 말마따나 세상은 변했고 진보도 변하건만, 변하지 않은 그 '가쁜호홉'
은 여전히 자신을 시대를 앞서가는 혁명가라 불리고 싶게 하고, 변하지 않는
그 '집요한 욕망' 은 여전히 자신을 최고의 상품으로 만들게 한다.

한겨레에 실린 박노해의 신간 '오늘은 다르게' 광고엔 유흥준을 비롯한 지성들의
주례사가 도열했다. 그 지성들에게 박노해는 달콤함 (분명한 현재인)에 쌉쌀함
(더 이상 위험하지 않은 과거인)까지 곁들인, 달콤쌉쌀한 초콜릿이다.

그 지성들은 천천히 초콜릿을 씹음 시민계급에 의한 노동계급의 인수합병을
자축한다. 하지만 내 귀엔 벌써 그들의 새로운 대사가 들리는 듯 하다.
"무슨 초콜릿이 이리 달기만 해. 싸구려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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