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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6/02/05
    드라마 시청 소감(4)
    나은
  2. 2006/0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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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은
  3. 2006/02/05
    솟구친다(1)
    나은

드라마 시청 소감

  • 등록일
    2006/02/05 23:58
  • 수정일
    2006/02/05 23:58

오랜만에 드라마를 봤다. 서울1945.

울었다. ㅠ.ㅠ

한 혁명가를 탈출시키려다가 죄없는 소녀들이 일본 헌병들의 총에 맞아 안타깝게 세상을 떠나는 장면에서-

 

함흥 제련공장에서 노동자들이 일본 노무자들과의 임금차별 철폐, 연장근로수당 지급을 요구하며 공장점거파업에 들어간다. 그리고 이 파업투쟁의 배후에는 문동기라는 지도자를 중심으로 하는 콤그룹이 존재하고 있었다. 조직원들은 유혈침탈을 우려해 문동기를 미리 피신케 하려 하지만 그는 파업현장에 눌러 앉는다. 비장한 얼굴로 파업노동자들과 뜻을 함께 하겠다는 것. 여기까지가 토요일 밤에 본 부분이다. 사실 그 장면 보면서 저거 좀 아닐 수도 있는데.. 하는 생각을 했다. 뜻은 가상하나 조직이 자칫 궤멸될 수도 있는 상황에서 최후선은 보위가 되어야지. 쁘띠 출신들의 소부르주아적 영웅주의를 경계해야 한다고 수다한 에피소드들에서 겪지 않았는가.

 

그리고 오늘 10화. 헌병대는 배후에 대한 무조건 사살 방침을 가지고 공장을 침탈한다. 겨우 공장을 빠져나오긴 했으나 이미 함흥 전역에서 삼엄한 체포망이 좁혀 들어오고 있었다. 결국, 그는 배를 타고 청진으로 도피하려 하나 결국 부두에서 발각되어 사살당하고 만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그의 탈출을 돕던 한 가족-아버지와 주인공으로 나오는 한은정, 그녀의 어린 두 여동생-이 희생된다. 아버지는 총에 맞아 의식불명이 되고, 헌병대의 무차별 사격에 어린 두 여동생은 끝내 숨지고 말았던 것. 혹시나가 역시나였던 것이다. 판단오류가 너무나 큰 희생을 불러왔다. 얼마 전 읽었던 경성트로이카에서도 이재유의 순간적인 판단오류 혹은 망설임이 조직의 붕괴라는 결과를 낳았었다.

 

어쩌면 개인은 너무나 약한 지도 모른다.

다만 할 수 있는 것이라곤 끊임없이 교훈을 각인하는 것.

그리고 사람들과 함께 지혜와 노력을 모으는 것.

그게 진정한 대안이겠지.

나머지는 운에 맡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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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 서른에 우린 .. 노래마을

  • 등록일
    2006/02/05 01:09
  • 수정일
    2006/02/05 01:09



나이 서른에 우린 - 노래마을

 

나이 서른에 우린 어디에 있을까
어느 곳에 어떤 얼굴로 서 있을까
나이 서른에 우린 무엇을 사랑하게 될까
젊은 날의 높은 꿈이 부끄럽진 않을까
우리들의 노래와 우리들의 숨결이
나이 서른엔 어떤 뜻을 지닐까
저 거친 들녘에 피어난 고운 나리꽃의 향기를
나이 서른에 우린 기억할 수 있을까


나이 서른에 우린 어디에 있을까
어느 곳에 어떤 얼굴로 서 있을까
나이 서른에 우린 무엇을 사랑하게 될까
젊은 날의 높은 꿈이 부끄럽진 않을까
우리들의 만남과 우리들의 약속이
나이 서른엔 어떤 뜻을 지닐까
빈 가슴마다 울려나던 참된 그리움의 북소리를
나이 서른에 우린 들을 수 있을까

 

===

밤길을 걷다 귀에 꽂혔다. 정말 나이 서른에 어떻게 되어 있을까.

한 2년 정도 공백을 넘으면 정말 서른 쯤 되어 있겠다. 불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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솟구친다

  • 등록일
    2006/02/05 00:53
  • 수정일
    2006/02/05 00:53

짜증이 솟구친다.

한 동지의 자기평가서를 읽었다.

다 내탓이오 헤벌레 하면서 자학하는 못난 심성은 나에게도 있으니 그건 넘어가도록 하자. 그러나 몇 개의 문구를 마주하고서는 짜증이 닥치지 않을 수가 없다. '있는 사람도 쳐 낸다', '정리시키는 과정이 폭력적이었다' 참으로 어처구니가 없다.

 

내가 지난 한 해 동안 학을 뗀 것은 상식이 안 돼 있는 인간들 때문이었다. 그 누가 '완벽'을 말했던가? 요구했던가? 절대기준을 요구했던가? 아니다. 솔직히 소박하게 말하자면 딱 두 개였다. 맺은 약속은 지키자. 인간에 대한 예의를 갖추자. 한 두 번 참아주었나? 도대체 사회생활의 기본이 안 되어 있는 사람들을 놓고 대체 뭘 할 수 있단 말인가. 심히 걱정되기 짝이 없다. 운동을 안 한다 해도 사회에서 적응을 잘 할 수 있을까? 애도 아니고, 나이도 이십줄이나 쳐먹은 것들이 하는 짓거리라고는. 역으로 성실히 활동에 임했던 사람들이야말로 무던한 상처를 입었다. 부인할 수 없는.

 

할 만큼 했다. 나도 살아야겠기에 내가 살아 있을 만큼만 남겨 두고 할 만큼 했다.

절대 그런 일 없으리라고 믿었던 동기마저 전화 안 받는 거 보고 비웃음도 픽 던졌다.

 

예전처럼 자학하지는 않는다.

더럽고 속쓰려도 가는 거다.

다만, 좀더 치밀하게- 능구렁이의 허물을 태워버리고.

 

 

p.s : 나한테 조직가의 기질은 지금은 없는 것 같다.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면 생기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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