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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나간 지 3일째, 미래는 예측불허라...

우연과 우연이 겹쳐 필연이 된다고...역사는 그렇게 만들어진다고 선덕여왕이 읊조리더만...

우리의 다툼은 일상의 그것과 별로 다르지 않았었는데...

그저 아이들을 챙겨야 하는 데 우리 둘 다 그것을 하기 위해 몸을 일으키는게 너무 싫다 보니 서로에게 떠밀다가 말이 좀 거칠게 나갔는데...

그러다가 조금은 익숙해진 이혼 어쩌고 하는 대사들이 오갔지...

싸움은 별로 긴 시간 동안 이루어진 것도 아니었다.

내가 그대가 나가세요. 했고 그가 말없이 나갔는데 그것으로 끝이었다.

그건 정말로 끝이 될까...

며칠이 지나면 그가 돌아올까...

여느 때와 다른 점, 그와 내가 둘 다 서로를 맞추기 위해 싸움을 오래 하는 것에 지쳐 있다는 것이다.

그 전의 어느 때처럼 나는 그에게 전화하지 않고 그는 내게서 전화가 없으므로 혹은 기다리지 않으므로 냉전 상태를 전환할 수 있는 아무러한 계기가 주어지지 않는다.

흠...이러다가 별거가 계속되고 어쩌면 정말 이혼수속을 밟을지도...

사실...

이런 류의 고민을 하는 것도 귀찮다.

가족 간의 감정전이란 얼마나 소모적이고 비생산적인가...

나는 할 일이 있고 생각할 것이 있고 행동해야 할 여러가지가 있는데 뜻 맞지 않는 가족과 뜻을 맞추기 위해 이러저러한 일을 해야 하는 것이 귀찮다.

충분히, 결혼 후 가정 혹은 가사를 위해 나의 많은 것들을 빼앗겨왔다.

그리고 그에게 말했듯이 정말이지 나는 그가 딱히 필요치 않다.

더구나 그가 가사와 육아를 반분하지 않고 늘상 조력자의 위치에 있는 한 그 약간의 도움이 있던 없던 나는 크게 다르지 않다. 가사는 나의 것이고 사회생활도 나의 것이고 내 생의 고민도 나 혼자만의 것이다. 그가 아예 없는 3일 째의 아침이 밝았지만 그가 있었던 어느 아침도 나는 혼자 일어나 아이들을 챙기고 어린이집에 보내거나 병원에 가거나 집안을 치우거나 한 후에 출근하고 밥 먹고 시장보고 귀가해서 저녁밥을 지었다. 그가 필요한 것은 저녁시간에 할 일을 그가 분담해 주는 것이었는데 그 양이 적다 보니 그리고 그러기 위한 신경전이 많다 보니 그가 있으나 없으나 별로 다르지 않은 저녁시간이 흘러갔다......

이리하여 나는 그를 버리는 것인가....

그의 경제적 외조는 그에게 있어서는 퇴근 후 집에 와서 쉴 수 있게 하는 가장 커다란 이유였는데 나는 그것에 너무나 적은 가치를 부여했고 때로는 완전히 무시했다. 그의 말처럼 그는 나보다 2배 정도 더 벌지만 그와 나의 밖에서의 노동시간은 차이가 없었기에 그와 나의 노동은 똑같이 평가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나는 알아듣기 쉽게 말하기도 했다. 그가 2배 더 번다고 해서 가사노동을 절반만 해서는 안된다고. 내가 그보다 반 밖에 못 번다고 해서 가사노동을 그만큼 더 많이 해야 하는 건 아니라고.

그는 그런 이유는 아니지만 결과적으로 가사의 반분을 하는 것에는 끝내 적응하지 못 했다. 마음으로도 이론으로도.

그리고 나는 그와 적당히 살아가는 것을 이제는 그저 귀찮다라고만 생각한다.

나는 결혼 후 7년을 낭비했고 더 이상 낭비하고 싶지 않다.

더 이상 글 쓰지 못 하고 생각하지 못 하고 생을 고민하지 못 하고 삶의 가치를 부여하고자 노력하지 않는 생활 속에 파 묻히는 시간을 보내고 싶지 않다.

그가 돌아올 수 없는 이유, 그에게 돌아오라고 말할 수 없는 이유는 단 한 가지 뿐이다.

가사노동은 절대 반분이 되어야 한다.

그리하여 가사는 내게 전업이 아니라 부업이 되어야 한다.

모든 일하는 여성에게 직업과 가사는 양립되는 것이 아니라 모든 노동자들이 그렇듯이 일하고 와서 집은 자기 생활을 챙기는 곳이 되어야 한다. 당근 아이가 있다면 아이들을 챙겨야 한다.

그가 퇴근 후 쉬고 싶은 것처럼 나도 퇴근 후 쉬고 싶다.

그럼 돌봄이 필요한 아이들은 누가 돌보는가? 아이돌보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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