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습작 - 열 아홉의 그녀 3

그녀에게 전화를 해서 이야기를 주고 받으며 무언가를 나누거나 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수다, 그것은 전화왔다고 알려주면서 자리를 비켜주거나 적어도 전화기 앞에서 아이들이 부담없이 머무를 수 있어야 가능한 것이다. 그녀의 집에 전화는 가게에 하나 있었고 그것이 브랏찌되어 안집의 거실에 하나 있었다. 그리고 전화는 오직 가게에서 먼저 받아 집안의 어른이 아닌, 조막만한 계집애에게 부러 목청 높여 전화 받아라아 하고 외쳐주고 그러고도 통화시간을 기다려 줄 만큼 아이에 대한 배려를 담은 매개는 아니었다, 그녀의 부모에게 있어서. 무언가를 먹어라. 하는 말은 하루에도 몇 번씩 했고 저 애는 입이 짧아서. 새앙쥐처럼 빼빼 곯아서도 제대로 먹는게 없다고 탄식을 했지만 그 외에 무얼 해 주어야 하는 지에 대해 그녀의 부모는 아무 것도 몰랐다, 정말로. 나중에 아이들을 보살피는 그녀를 옆에서 보면서 그녀의 아버지가 우리는 애들 데리고 놀이터 한 번 갈 줄을 몰랐는데. 하면서 비난인지 한탄인지 모를 말을 중얼거린 것처럼.

그녀는 항상 여보세요. 하고 낮고 무감한 목소리로 전화를 받았다. 뭐 해? 하고 물으면 그냥 있어. 하고 밥 먹었어? 하면 응. 하고 바쁘냐 어쩌냐 해도 그냥, 뭐. 하고 짧게 끊어 대답했다. 화제를 잇지 말라는 듯. 용건만 간단히. 하라는 듯. 그 조차도 그녀에겐 여유가 없는 듯 했다. 송화기 너머 전화를 끊으라는 엄마나 아빠의 고함소리가 타 넘었고 수화기를 만지작 거리는 그녀의 불안함이 말끝을 재게 잇는 목소리에서도 느껴졌다. 몇 번인가 전화를 하다가 채 안녕.하지도 못 했는데 수화기를 내려놓는 소리를 들으면서 진은 화법을 달리했다. 나야. 하고 말하고 시간 있느냐. 언제 있느냐. 어디로 나올테냐. 거기로 나와라. 몇 시에. 하고 그럼, 이따 봐. 하고 끊었다. 그녀가 숨을 돌리며 천천히 수화기를 내려놓는 모습을 상상하니 저도 마음이 놓이는 걸 느끼면서.

그녀는 떡볶이를 좋아했다. 고등학교 앞에는 짜장떡볶이가 유행했는데 그녀의 패거리들과 함께 먹노라면 항상 몇 번 들지도 않았는데 젓가락 집을 것이 없다고. 네가 느리니까 그렇지.하고 말 했지만 먹는 걸 보고 있으니 흡사 서른번 씹기 운동을 하는 비만녀와도 같다. 눈치 보는 그녀. 앞사람이 수저를 놓으면 곧 따라 놓는다. 기다려주는 것도 부담스럽다는 듯.

 

" 마저 먹어. "

" 아냐. 다 먹었어. "

" 흠..."

이 애는 매사에 제 욕심을 차리는 법이 없다. 하는건 돌려 말하는 거고 대체로 눈치를 너무 본다. 보통 친구들 사이에서 누가 점잖은 척을 하고 누가 사소한 양보를 하는가. 요리실습을 하면 누구나 도마와 칼을 잡고 싶어하지, 행주를 빨거나 설겆이를 하고 싶어하지 않는다. 작은 키의 아이들을 앞으로 나오라 하여 번호를 정한다 하였더니 1번이 된 아이가 엉엉 울었다던가. 하여 그 자리로 밀려나오면서도 이게 창피해야 하는 일인가 싶었다는 그녀. 그럼 키작은 사람들은 모다 부끄러워하며 기죽어 살아야 하느냐구. 그녀는 세인들의 편견이 잘못된 것이니 그에 휘둘릴 것 없다고.

" 네 말이 맞지만 보통, 그렇게 사람들의 기준을 다 무시하고 살면..."

그녀, 눈을 들고 쳐다 본다. 슬쩍. 금방 시선을 돌리며.

" 외롭지 않아? "

" 잘난 척 한다고 생각하겠지..."

그녀는 제 말을 다 못 끝내고 진의 외롭지...하는 말 때문인지 허를 찔린 듯 낭패한 표정이 되었다.

" 글쎄... "

그녀는 외로와한다. 그조차 내색을 안 하면서. 세상 만사에 무심한 척을 하며. 네게 내가 무엇을 하였는데. 하고 말하고 싶은 듯. 그나마 꽃이라도 받았으니 상쇄할 수 있겠으나 고백을 하고 1년여가 지난 뒤였으니 의심을 못 버린다. 네가 내게 무엇을 원하는가. 하는 눈빛.

패거리의 친구들 얘기를 하면서 그녀는 너와 친구하는 것에 별 감흥이 없다 하는 듯하다. 일상의 여자애들은 오며가며 대화를 나누고 대화를 나누다 떡볶이도 먹으러 가고 집에 와서 전화하면서 수다도 떨고 몇 더 끌어모아 나이트도 가고 그러다가 미팅도 한다는 듯. 학창시절의 친구들이란 그런 것이려니. 반이 갈리고 학교가 달라지면 자연스레 멀어지고 혹여 집이라도 가까우면 가끔 만나 근황을 주고 받기도 하면서. 다들 그렇게 친구를 갖고들 있지 않느냐며. 네가 나를 친구하고 싶어하는 건 의외이나 같은 중학교를 나와 우연히 몇 번 마주치다 몇 마디 얘기 나누다 서로의 집도 그닥 멀지 않고 하니 이리 같이 분식점을 올 수 도 있는 게지. 이렇게 친구가 될 수도 있겠구나. 하는 얼굴. 글쎄...

진은 조금, 아니 많이 늦었구나. 하는 생각을 한참 지나서도 계속 하게 되었다. 그녀는 마음을 열지 않았다. 고등학교에서의 첫 1년 동안 상처를 많이 받은 듯. 세상은 잿빛이며 인생은 절망스럽구나. 감성을 나누고 사상도 나누고 지와 사랑도 나눈다 생각하였던 짝궁이 미련없이 이과를 선택해 가는 것을 보고, 저 이가 어째 저러한가. 나와 함께 철학과 문학을 논했던 이가. 내가 써 보낸 수많은 편지와 거의 일기에 가까왔던 생각의 나눔이 저 이에겐 그저 사춘기의 방황이었을 뿐인가. 나르찌스처럼 데미안처럼 그리고 짜끄 티보처럼 저는 친우를 사랑한다 생각했는데 어찌하여 저렇게 무감할 수 있는가. 제가 알지 못하는 수학 2를 공부하고 그에 몰입하기에는 너무 건조하게 느껴졌던 물리와 화학을 공부하겠다 하는 짝궁을 이해하지 못 하면서 그녀는 내 슬픔에 동조하는 이가 없다. 내 절망에 함께 답을 구하고자 하지 않는 구나. 아직 세계와 인간에 대한 믿음과 진리를 얻지 못 했는데, 어찌 저렇게 구체적인 현실을 바라보고 미시적인 물리의 법칙을 탐구하겠다 하는가. 너는 이과를 가겠다 하나, 나는 그에 동반할 수 없다. 그것이 오히려 더 슬프나, 네겐 나의 동반이 아무러하지도 않구나...

" 여자애들은 보통 문과를 선택하지. 이과에선 남자애들과 경쟁해야 하는데... "

흠...말하나 마나다. 그녀는 현실의 구조에 관심이 없다. 진은 그녀가 아예 인식을 못 하는 것은 아니나 거기에 가치를 두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다. 중요한 것은 그 학문에 몰입할 만큼 애착이나 적어도 취향이 있는가 아닌가이다. 그녀는 물리를 선택했다. 보통의 문과 여자애들이 선택하는 생물이 아니라. 화학이나 지구과학을 쉽게 암기로 편재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입시준비에서의 효율성을 염두에 두지 않았다. 그나마 물리가 공부할 만 하다하는 그녀는 특히 운동법칙에 대해 관심을 보였다. 아인쉬타인에 대한 책을 읽었을 때는 잠시 원자의 반감기같은 것을 흥미롭게 들여다보았으나 핵문제와 과학자의 양심에 관한 장이 말미에 나오자 사회적인 문제와 과학의 학문성 같은 것을 고민하느라 더이상 즐겁지 않아졌다 했다.  그녀는 몰입할 수 없었다. 사회적 관계성을 떠난 학문에 대해서도, 예술에 대해서도, 그리고 자신의 개인적인 욕구에 대해서도.

그녀가 무엇을 욕구했을까. 보통의 여고생들이 그러하듯 주목받고 싶어했고 인정받고 싶어했으며 또 사랑받고 싶어했다. 청소년들의 심리적 특성, 그대로. 하지만 그걸 표현해 내는 방식은 개개인들의 성향에 따라 다를 것이다. 직설적으로 혹은 은근하게. 외향적이거나 혹은 내성적으로. 그녀는 후자였다. 기대를 저버리지 않고 아주 극단적으로 그러하였다. 때때로 반동형성의 양상으로 나타날 만큼 그녀는 자기 억제의 성향이 강했다. 얼마나 강했냐 하면 자신의 욕구를 스스로도 인식하지 못하고 잊어버릴 만큼. 그녀는 자신이 아무것에도 욕심이 없다고까지 생각했다. 

그녀를 만나러 온 것이 많이 늦었다고 생각한 것은 그 때문이었다. 그녀는 더이상 누군가를 동경하지 않았다. 사랑한다 느끼지도 않았고 욕심을 가져보려 하지 않았다. 내가 사랑한다 해도 너는 나를 사랑하지 않을 것이다. 혹여 사랑 비슷하게 할 수 있다 해도, 그건 너의 착각이거나 다른 종류의 감성일 것이다. 각각의 개인들은 그 자신의 생이 있으니 자기 앞에 사랑이 필요할 때 사랑하는 것이지 타인을 위하여 사랑하는 것은 아닐찌니. 그녀는 영화나 소설 속의 연인들을 보면서는 음, 그네들 또한 자신의 인생을 사랑하는 것이고 그 궤가 맞아들었을 때 서로를 연인삼은 것 뿐이다. 하고 통찰했다. 글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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