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습작 - 열 아홉의 그녀 5

방문을 열고 들어가니 그녀는 의자를 돌려놓고 창 앞에 앉아 있다. 타인의 책상을 살펴보고 있지 않았다는 듯? 창문을 조금 열어 둔 것을 보니 거리를 향해 있는 동생의 방과 달리 마당을 보고 있는 것이 마음에 들었던 듯.

" 딸기 먹어. "

그녀는 응. 하고 간단히 답했지만 성겨하는 표정이다. 무척. 왜? 딸기 땜에?

거실의 한 쪽 벽에 놓인 피아노를 보고서도 그녀는 좋은 피아노네. 하였다. 윤기나는 밝은 갈색의 피아노는 진이 어렸을 때 엄마가 사 주신 것이었다. 비싼 건 줄은 알았지만 뭘 보고 좋다고 하는 건지 진은 몰랐다. 식탁 앞을 지나 진이 제 방으로 들어가자 하였을 때도 침대도 있네. 하였다. 별로 좋은 침대는 아닌데? 그녀는 창문에 커텐 대신 블라인드가 걸려있는 것에도 주의를 집중했다. 커텐 치렁이는 게 귀찮아서. 하였더니. 응, 아니. 가정집에서 보는 건 처음이어서. 하였다. 그녀 앞에 보여 보니 어쩐지 우리 집이 부자인 것처럼 느껴지는군. 하는 진이었다.  

" 난 내 방을 갖게 된지 얼마 안 되어서. 별로 어떻게 꾸며야 할 지 모르겠더라구. "

남매였기 때문에 진에게 자기 방은 아주 어렸을 때부터 주어져 있었다. 물론, 남동생이 태어난 뒤 집안 형편이 좋아졌다는 조건이 기저에 있긴 하였으나. 그녀 또한 남매들 중의 딸이었을텐데. 진은 들어가보진 않았으나 그녀의 집을 알고 있었다. 어느 저녁에 헤어지면서 집 앞까지 바래다 준다 하였더니 시장이 보일 때 쯤 되어서 저기 보이는 상가건물의 2층이라 하면서 엄마아빠가 가게 앞에 나와계실지도 모르니 그만 안녕하자 하였다, 그녀가. 제가 몰래 사귀는 보이프렌드도 아닌데, 왜 그래야 하나 싶었지만 그녀는 부모님에게 무슨 말이든 길게 설명하는게 귀찮다고 하였다. 그리고 아빠는 무슨 일이든 꼬치꼬치 캐어 물으시니 저의 친구들은 모다 학을 뗀다고. 굳이 인사하지 않아도 괜찮다고. 그러면서 이층의 연이어 있는 창문들 중 하나를 가리키면서 저기가 제 방이라 하였다. 그래. 하고 들어가는 그녀를 지켜보다가 계속 서 있어 보니 아니나다를까, 창문들 중 하나에서 커텐이 살짝 걷히면서 미소를 지어보이는 얼굴이 나타난다. 손을 흔들며. 똑같은 모양의 창문들에 걸린 커텐은 모두 똑같이 뭔가 나뭇가지같은 무늬가 있는 연노랑색이었다.  

" 좋겠다. 이렇게 조용하고 아늑한 방이 있으니. 마당도 있고. "

" 자주 놀러와. 우리 집은 식구가 적어서 거의 비어있다 시피 하니까. "

그녀, 흠칫 놀라며 쳐다본다. 진은 왜? 하면서 마주 보았으나 곧 밖에서 문소리가  난 데 이어 마루 위를 걸어오는 발소리가 들렸다. 남자녀석들이란...꼭 제 존재를 온 집안에 알리며 들어오곤 한다. 몸무게 좀 더 나가서 그런 건 아닐게다. 사춘기도 늦게 맞고 있는 주제에 키만 컸지 얼굴은 애 같은 녀석이.

" 웬일로 ! 동생이 일찍 왔네. "

하면서 진은 마루로 나갔다.

" 누가 왔어? "

동생은 식탁 위로 가방을 내려 놓으며 현관 쪽을 턱짓하며 물었다.

" 웬일이야. 일찍도 다 오고. "

" 누가 왔냐구? 여자지? "

" 그럼, 내가 남자애를 집에 오라 했겠냐? "

" 누난, 그게 더 어울릴 것 같은데, 뭘. 요즘엔 아침운동하면서 도장 애들하고 안 어울려? "

문을 열고 뒤따라나온 그녀는 인사를 해야 하나. 하는 듯 어색한 표정, 엉거주춤한 자세로 걸어오다 말고 섰다.

" 내 동생이야. 이수. 이름이 윤 이수야. "

" 안녕하세요. "

아...놔...깍듯하기도 하네, 이 아가씨가.

" 네에...안녕하세요. "

이수는 저도 같이 공손히 인사를 하더니 식탁 위에 올렸던 가방을 도로 줏어들고 제 방으로 들어갔다. 쓱 한 번 돌아보면서.

뒤통수로 쳐다보듯, 눈을 사시로 뜨고 귀를 쫑긋거리던 그녀는 문 닫는 소리를 듣고서야 훅 하고 숨을 내쉬었다.

" 아, 배 고픈 것 같다. 빵 구울까? "

" 응. "

토스트에도 토스트기계에도 관심없는 듯한 그녀. 빤히 쳐다보면서 말한다.

" 몇 학년이야? "

" 중 2.  키만 컸지, 나이는 더 어려. 학교 일찍 들어가서. "

" 대따 잘 생겼네... 그럼 너랑 몇 살 차이야? 네 살? "

" 음...그렇지. "

진은 말을 먹었다. 그녀가 잘 생겼다고, 그것도 대따. 라고 말하는 것이 우스워선지, 아님 웃기지도 않아선지 알 수 없었다. 나이 차이를 굳이 묻는 것에도 순간 헷갈리고 있었다. 아, 세 살 차인데. 저도 학교를 일찍 들어갔으니. 근데 말하면 안될 것 같았다. 그녀는 학교를 늦게 들어가서 보통보다 한 살이 더 많았으니. 큰일날 뻔 했네. 진은 입안에 침이 말랐다. 뭣 때문인지 몰라도.

그녀는 식빵을 맛으로라기 보다 갓 구워낸 바삭한 질감으로 맛있게 먹고 갔다. 진이 잼을 더 바를 꺼냐고 물었으나 아니라면서. 단 걸 좋아하는 건 아니라는듯. 바래다 준다 했으나 어둡지도 않은데. 하면서 동생방을 흘낏 건너다 보며 그냥 가겠다며.

음...진은 뭔가 동생 때문에 제대로 안되었다는 생각에 울컥 짜증이 났다. 빵 잘라 담았던 접시를 덜컹거리며 개수대에 넣어두는데 기척도 없이 이수가 나와있었다.

" 씻어 두라고. 엄마 와서 저녁 차릴 때 귀찮쟎아. "

식빵 먹으면서 뭘 접시까지. 하더니 식탁 앞에 앉아 마저 중얼거린다.

" 버터 나이프에 포크까지. 아주 공주님이시구만. "

" 뭐라 그러냐, 너. "

" 걔 뭐야? 소꿉장난 해? 고등학생들끼리? "

" 야, 너 누나한테 말버릇이 그게 뭐냐? 너하고 나이차가 몇 인데. "

" 얼씨구. 누나야말로 나하고 네살이나 차이나냐? 두살 반밖에 안되면서, 뭘 그렇게 늙은 척을 하고 싶어 해? 왜, 그 여자애가 한 살 어리다구 깔볼까봐 그래? "

" 그런 애 아니거든. 누가 다 저같은 상황인 줄 알아. "

인상 팍 쓰면서 내가 무슨 상황 ! 하면서 빽 소리를 지른다. 자식, 혼자 찔리기는.

나야말로 찔리네. 하는 진은 음, 두 살 차이구나. 하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녀의 생일이 몇 월인가. 담에 물어봐야겠다고 생각하면서. 2년하고 몇 개월이 더 나는 건 아니겠지...설마. 순진하게 기대하는 열 일곱의 진, 그러나 열 아홉의 그녀가 잔머리를 굴리는 만큼 얼마나 더 성숙할 지에 대해선 감도 못 잡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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