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습작 - 열 아홉의 그녀 6

오늘처럼 비가 오는 날이었다. 다행히 바람은 불지 않았으나 장대같이 굵게 쏟아지는.

맞으면 아플 것 같았다. 저는 아니라도. 함께 비를 맞고 있던 동생 이수는 아니라도. 그렇게 작은 어깨와 작은 발을 가진 그녀는. 여름이라도 추울 것같은 반팔 티셔츠에 어울리지 않는 체크무늬 조끼를 걸치고 기장 긴 티셔츠 아래로 역시 체크무늬의 플리츠 스커트를 휘감고있는 그녀는 맨발에 굽낮은 슬리퍼를 신고 있었다.  발등 위로 흙알갱이가 묻은 걸 떨어내고 싶은 듯, 그녀는 장대비가 내리는 처마밖으로 한 발을 슬쩍 내밀었다 얼른 집어넣었다 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수는 제가 얼마나 더 크냐는 듯 그녀의 어깨 위에서 턱을 한참 높게 치켜들고 한길 건너만 응시하고 있다.

빗길에도 홱 지나가는 버스와 뒤미처 따르는 자가용과 택시들 위로 진을 발견하자 턱을 옆으로 기울이며 눈짓을 하는 이수는 니 친구 꼴 좀 봐라. 하는 표정이었다.

그녀는 한참이나 망설이고 머뭇거리며 현관을 들어서기를 거부했다. 괜찮아.라는 말만 연발하며. 우산만 빌려주라며. 집에 가야 돼. 라고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중얼거리며.

" 감기 걸린다니까. 빨리 들어와. 집엔 나중에 천천히 가구. 한낮인데 왜 그래. "

말하면서 진은 흘낏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잔뜩 먹장구름이 낮게 내려앉은데다 천둥까지 칠 기세다. 번쩍.

그녀는 소스라치듯 놀라며 어깨를 떨었다. 입술을 딱 붙이고 있었으나 순간 부르르 떨리며 이빨까지 부딪히기 시작했다. 물 먹은 테가 잘 안 나는 조끼 안, 하얀 티셔츠가 몸에 딱 달라붙은 채 주르륵 흐르는 물방울을 밑단까지 안 가서도 후루룩 떨어뜨리고 있는 그녀, 오한이 나는 듯 했다.

손목을 잡아 끌다시피 하여 집안으로 들어왔다. 젠장...헨젤이 쥐어주는 뼈다귀도 이처럼 가늘지는 않으리, 뼈 모양을 본떠낼 것 같은 그 피부는 어린시절 처마끝에 매달린 고드름을 떼어 손 안에 쥐었던 때처럼 차갑게 미끌거렸다. 마룻바닥에 물 떨어지는 것을 수습하고 싶어하는 그녀의 등을 떠밀어 제 방 안으로 넣고 커다란 수건을 가져다 머리에서부터 씌워 주었다. 서랍에서 새로 산 티셔츠와 예전에 입던 반바지를 한참 뒤적거려 찾아내어 침대 위로 던져주고 주전자에 물 끊여 따뜻한 차를 타오겠다. 말하고 방을 나왔다. 그녀에게 몸을 닦고 옷을 갈아입을 시간을 주기 위해.

" 어디서 만났어? "

이수의 방으로 들어가 문을 닫고 물어보았다. 옷을 갈아입고 있던 이수는 바지 허리춤을 얼른 올리며 인상을 팍 쓴다.

" 노크 ! "

" 알았어. 근데 어디서 만났어? "

" 바로 거기지, 어디야. 횡단 보도 앞에 서 있길래, 우리집 가려나 했더니 우산도 안 받고 완전 생쥐꼴이 되어갖곤 저쪽 네거리로 가지 뭐야. 거긴 뚝방길 밖에 없는데. "

" 그래서? "

" 뭘 그래서. 그럼, 그냥 가라 그러구 냅둬? 뚝방 공사한다고 다 헤쳐놔갖구 비오면 미끄러워서 위험한거 몰라? 안 그래도 산책로 폐쇄된 뒤로 깡패들만 돌아다니는데 거길 왜 가? 이 비를 다 맞으면서. 누나 친구, 좀 이상한 거 아냐? "

 하면서 이수는 머리를 손가락으로 가리킨다.

" 이 자식이! 말 조심 안 해 . "

하고 말하는 진의 목소리는 바깥쪽을 돌아보면서 잦아들었다.

" 어디 가냐 그래도 말도 없고 보고도 못 본 척 하구 그냥 막 가더라구. 그 꼴을 해 갖군, 내가 아니라도 네거리에 서 있던 경찰이 잡으러 올 태세였다구. "

" 경찰이 왜? "

이수는  한심하다는 듯 누나를 쳐다보았다.

" 신발 짝짝이로 신은 거 못 봤어? 머리는 산발에, 입술은 터져서 피 흘리고.  흙탕물 뒤집어쓴 채 고개 푹 숙이고 뚝방길로 올라가는데, 그게 자살이라도 하겠다는 품이지, 정상이냐구. "

그리고 이수는 이어서 중얼거렸다. 쫄딱 젖어서 젖탱이, 방탱이 흔들고 가는데...

" 야, 임마 ! "

빽 소리치는 진에게 손을 내저으며 알았어, 누가 뭐래? 하고 일찌감치 항복한다.

" 내가 붙잡아 두지 않았으면 어느 깡패같은 놈들이 따라붙었을 지 모른다는 얘기야. 그래도 돼? "

" 아, 그래, 암튼 잘 했다. "

그녀가 방에서 나올까 싶어 얼른 나가려는 진의 뒤에서 한마디 더 해보는 이수.

" 그러면 안 되겠으면 나한테 고맙다고 해야지. "

" 뭐? "

" 애인 구해줬는데, 고맙지 않냐? 아직 따 먹지도 못 했는데... "

" 야 ! "

그예 진은 동생의 멱살을 잡았다.

" 지가 찔리니까, 흥분하고 그래. 아니면 말지, 왜? "

" 너..."

진은 멱살 잡았던 손을 놓고 조용히 말했다.

" 너, 진짜 말 조심해라. 거실엔 아예 나오지도 마. "

" 누나야말로, 조심하라구. 방에만 있지 말구..."

쾅 닫고 나가는 진의 남은 그림자에 대고 마저 말하는 이수.

" 아주...사고 치기 딱 좋은 분위기라구.  그 여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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