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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개의 게시물을 찾았습니다.

  1. 2010/09/28
    창작중-우리 함께 이불을 털어요.
    외딴방
  2. 2010/09/28
    창작중-사랑, 현신하다.(2)
    외딴방
  3. 2010/09/28
    창작중-혜정의 사랑
    외딴방

창작중-우리 함께 이불을 털어요.

집을 얻었다.

엄마는 굳이 그럴 필요 있냐고 하셨지만, 굳이 그러겠다는 딸에게 길게 말하지 않았다.

" 생활비는 용돈 이상 더 줄 수 없다. "

" 괜찮아요. 집세가 나가는 것도 아니고 옥탑방 공과금이 얼마나 된다구, 용돈도 알바로 충당할 수 있다니까. "

레슨비로 여느 부잣집의 고액과외비 만큼은 아니라도 동생 이수의 학원을 생각할 수 없을 정도로는 가정경제에 타격을 주었기에 진은 대학에서는 가능한 손을 벌리고 싶지 않았다.

" 네 방은 세를 줄 생각이니 집에 왔을 때 불편한 건 감수해야 한다. 대신 매달 받은 월세를 통장으로 부쳐줄테니. "

" 그러지 않아도 된다니까, 피아노 과외해도 되고 다른 알바꺼리도 천지라니까. "

엄마는 미간을 찌푸린다.

" 대학을 만만히 보지 마라, 더구나 요즘 같은 시국에. 나는 네가 강의실과 맥주집만 오가면서 낭만 운운하는 대학 생활은 하지 않았으면 좋겠구나. "

" 알았어요, 열심히 할께요. 학과공부도 세상공부도 "

엄마의 불안을 모르는 바는 아니었다. 항상, 아주 어렸을 때부터도 엄마는 아이들이 자신과 다른 인생을 사는 것에 대해 불안해 했다. 세대차이가 난다 해도 할 수 없는 일이라고 포기하는 맘도 없지 않았지만 엄마의 인생에서 사회는, 특히 한국사회는 아주 느리게 변하고 있는 것 같았다. 68년의 격변을 한국사회를 넘어 유럽의 소식을 통해 조망하고 있었던 탓인지도 모른다. 새로운 패러다임을 구축하고 있는 유럽에서 한참이나 뒤떨어져있는 한국사회를 불행하게 직시하면서도 전태일 이후 현장으로 들어가고 있는 동지들과 함께 하지 못했던 자신의 인생에 관대하지 못했다.  어쩌고 저쩌고 중략...

 

 

 

 

 

 

혜정의 학교에서 진의 학교를 지나 뒤편 주택가에 얻은 옥탑방은 넓은 창을 가지고 있었다. 진은 혜정의 학교에 가까운 곳으로, 혜정의 학교와 자신의 학교 사이에 집을 얻고자 하였으나 창에서 바라보이는 대공원의 숲 때문에 복덕방에서 보여준 마지막 집으로 결정하였다. 또 옥상 위에 마련되어 있는 평상과 옥상의 출입구를 개방하지 않는 다는 조건이 맘에 들기도 했다. 반지하층을 포함하여 3층 위 옥상에 작은 창고 하나 크기의 옥탑에 집주인은 샌드위치판넬을 이어붙여 욕실과 기다란 부엌을 만들었다. 본디 창고방과 욕실과 부엌은 각각의 벽으로 나뉘어 있었으나 지난 겨울, 오랫동안 혼자 살던 늙은 택시운전수의 실수로 화재가 난 후 올수리를 했다고, 방과 부엌을 하나로 트고 보일러도 도시가스로 교체했으며 천정이며 샷시도 새로 하느라 먼저 살던 사람의 보증금 말고도 돈이 많이 들었다며, 완전 새집이라고 같은 동네에서 철물점을 한다는 할아버지는 큰 소리를 쳤다.

" 이만한 집을 그 돈에 얻는 걸 아주 복 받은 걸로 생각해야 할께야. 보게, 이렇게 훤히 트여 밝고 너르고 저기 씽크대며 문짝이며 다 새것 아닌가, 뭐시냐 그 오삐스텔이나 한가질세 ! "

 그러고도 할아버지는 진이 한 말은 아니었지만, 옥탑이라구 시비하지 말라면서 그것만 아니면 훨씬 더 쳐 주는 방이라고, 그것도 머스마들 아니고 여대생이니까 양보한 거라고 한참을 더 떠든다. 아마도 복덕방 아저씨가 의뢰를 받으면서 어쨌든 옥탑이니 가격을 조정하라고 했던 모양이다. 진이 얌전하게 감사하다고 말하는 것을 듣고서야 돌아서면서 주인은, 흘낏 천정을 올려다본다. 새로 올린 천정의 석고보드를 뚫고 새 형광등이 은색 날개를 펼치고 달려있는 것이 불안해 보였나? 진도 따라서 흘낏 천정을 올려다 보았다. 아, 완전 새집이라니까, 신혼살림 차려도 되는 집이여! 하면서 주인은 또 너스레를 떤다. 진은 네!  깨끗이 쓸께요. 하고 주인이 내려가는 것을 보고 수도세는 꼭 받으러오기 전에 챙겨주어야지 하는 생각을 했다.

혜정에게 집주인 얘기를 하다가 보니 천정 속이 좀 불안하게 생각된다. 올수리를 했다지만, 욕실은 오래된 양변기에 세면대도 없고 벽도 기존의 빨간 벽돌과 새로운 샌드위치 판넬의 접합이 부자연스러워보인다. 욕실은 화재에 피해가 없었던 듯, 그럼 새로 친 천정 속은 어떠할까 하는 의심이 들었지만, 안 보이는 것을 두고 신경쓸 게 무언가 싶다. 혜정이 그런 눈치를 챘는가 한숨을 쉰다. " 그럼 택시 아저씨는 보증금도 못 받고 나갔다는 거네? 세 살던 집에 불 나면 살던 사람이 물어야 하는거야? 집 주인이 관리 의무 있는 거 아닌가? " " 글쎄? 화재 원인에 따라...다르지 않을까? "  불 났던 집이 어떻다는 얘기는 들어본 적 없지만, 자꾸 이런 화제로 얘기하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는 생각을 하며 진은 창문을 열었다. " 근데, 이 창문 진짜 크다. 공원 숲이 저 끝까지 보이쟎아. 시원해서 좋겠지? "

" 응, 근데 겨울엔 춥지 않을까? " " 하하하, 너 하나 춥지 않게 할 능력은 있으니까 걱정마셔. " 진은 이렇게 말하니 진짜 신혼부부가 첫 둥지를 틀며 하는 대사 같아 괜히 웃음이 더 크게 나왔다. 옥탑방의 문 밖에는 마당처럼 쓸 수 있는 옥상도 있고 반지하층이 있어 계단도 2층 반만 올라오면 되는 이 집이 맘에 들었다. 게다가 혜정은 계단 쪽의  햇빛이 그대로 들어오는 유리로 된 반원형의 벽이 멋있다는 말도 했다. 설마 혜정이 없어 자신이 더 추위를 느끼게 될 줄은 전혀 모르고 진은 여기서  봄, 여름, 가을 그리고 따스한 겨울을 보낼 것을 생각하며 기분이 좋아진 끝에 " 내년에도 재계약하고 쭉 살아도 좋을 것 같지? " 하고 말했다.혜정이  " 계약을 해마다 다시 하는가 보지? " 하고 말하자 그제서야 " 그러는 것 같던데? " 하고 자신없는 대답을 하면서.

 

결국 침대는 새로 샀다.  더블로. 엄마에게 넓은데서 자고 싶다고 말하니 그래, 집의 네 방보다 훨씬 크니 그래도 되겠구나 하시며 침대는 좋은 걸로 해야 한다는 말에 대신 입학선물은 없다는 말도 잊지 않았다. 그리고 책상이며 책장, 옷장 같은 건 이삿짐 차로 옮겨오고 거실 한 쪽에 있던 오래된 윈저 의자 하나를 더 얹어왔다. 별 말이 없는 엄마, 식탁은? 하시다가 피아노 땜에 안되겠구나 하신다. 물론 충분한 공간은 안되겠지만, 진은 커피나 맥주를 마시면서 편하게 걸터앉을 수 있는 작은 티테이블 셋트를 구입할 생각을 하고 있었지만, 그건 혜정의 취향을 존중할 예정이었으므로 아무 말도 안 했다. 혜정은 함께 가자는 말에 신나하며 동대문 시장을 누비며 커다란 창에 어울릴 만한 커다란 커튼을 골랐다. 진은 취미가 없어 잘 몰랐지만 하얀 레이스의 속커텐과 겨울에도 지장없을 만한 제법 두터운 감의 겉커텐, 커텐집게며 타슬을 만지작거리는 혜정을 보고 집 꾸미기나 홈패션같은 것에 관심이 있었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동대문을 나와 을지로의 가구 거리를 돌아다니는 것에도 혜정은 즐거워했다. 예쁜 의자를 유심히 보고 사무용 책상 중에서넓고  디자인 잘 빠진 책상을 보면서 만져보고 싶어했다. 살까? 했더니 막 웃는다. " 엇다 놓을라구? 이런 건 전원주택이나 적어도 마당 넓은 단독주택은 되야 어울리는 가구들이라구. " 한다. 하지만 엄마는 신당동에 살 때도, 별거 후 이사온 집도 단독주택이지만 이리 예쁜 가구들 놓는 것에 신경쓰지 않았었다. 마당도 꽤 되었는데...하고 생각하며 진은 의외로 혜정이 공주님 취향을 갖고 있구나 하고 생각했다. 평소에는 전혀 티도 안 내더니? 결국 혜정은 공주님 취향을 여지없이 증명하며 하얀색 라탄의자, 테이블셋트를 고른다. 네 생각은 어때? 하고 혜정은 남의 집 살림 준비하는 걸 따라온 것 뿐이라는 자세로 물어봤다. 진은 상관없다고 말하려다가 정말 멋질 것 같다라고 고쳐 말했다. 옥탑방에 두기는 분명 부담스러운 크기이고 컨셉도 안 맞을 것 같았지만, 햇살 좋은 가을날 옥상 마당에 내어 놓으면 그럴 듯 하겠다는 생각은 들었다. 혜정의 분위기에 전염된 것 같았다. 갈수록 낭만적이 되어가고 있는 진이었다.

 

혜정과 함께 밥을 해 먹었다. 진이 유일하게 할 수 있는 건 카레라이스였다. 그리고 라면끓이기 정도? 혜정은...별로 다르지 않았다. 그 애는 오빠와 남동생 사이의 유일한 딸이었고 엄마가 전업주부도 아니었지만 보통의 여자애들보다 부엌일을 할 줄 몰랐다. 아빠가 힘에 부쳐 짜증내는 엄마에게 " 가시나 뒀다 뭐할끼고, 좀 시키라 ! " 하고 말했지만 그 때마다 엄마는 " 시집가면 다 할텐데, 지겹도록....놔 둬라, 내 좀 쉬었다 밥 차려 줄테니. " 하셨고 가끔 너무 난장판인 집안 꼴을 보며 " 손 뭉뎅이 뿔라짔나, 청소 좀 하그라 " 하는 정도셨다 한다. 그래서 청소했어? 아니, 내가 막 빗자루 들을 라고 헀는데 기분나쁘게 말을  내시니깐 성질나서 걍 던져두고  나왔지. 하는 혜정, 아주 착한 딸이다. 그래도 청소는 자주, 아침이면 내내 온 집안을 하느라 땀범벅이 되기도 했다고 한다. 그리고 자기가 요리를 못 하는 건 순전히 엄마, 아빠가 경상도출신이기 때문이라며, 원래 경상도음식이 맛이 없다고 한다. 그런 말이 있나? 하고 넘어갔다.

함께 먹는 밥을 위해 우리는 시장을 봤다. 감자와 양파와 당근, 그리고 계란은 기본으로 항상 비치하는 식재료들이다. 여기에 햄을 넣거나 없으면 없는 채로 잘 해 먹는 것은 카레라이스였다. 서로 하기 싫은 날이면, 많이 해 뒀던 카레라이스를 3일 동안 계속 먹기도 했다. 혜정, 질리지도 않고 먹을 때마다 맛있단다. 밥과 김치 외에 자주 할 수 있는 반찬은 계란후라이였다. 몇 달 동안 계란후라이는 그보다 난이도 높은 계란말이로 진전되지 않았다. 술집에서 안주로 나오는 계란말이는 두텁고 잘 말아져 있었다. 학생식당에서 두어 쪽 주는 계란말이도 좀 얇고 물컹하긴 했지만 비단두루마리처럼 잘만 말아져있었다. 근데, 우리가 후라이팬에 잘 저은 계란물을 붓고 좀 있다 말을라치면 다 깨지고 부서져 얼른 두번 연속 뒤집지만  말았다라고 표현하기에는 무리가 많은 형상을 하곤 했다. 거기서 일보전진한 것은 순전히 혜정의 공이었다. 어느날, 계란말이하는 법을 자취하는 선배언니한테 물었다며, 정답은 바로 " 익기 전에 돌리라 " 는 것이란다. 과연, 이론만으로도 머릿속에서 몇 번이나 연습을 했는지 혜정은 잘 달군 후라이팬에 잘 저은 계란물을 붓더니 끈기있게 기다린다. 제법 요리사처럼 후라이팬 손잡이를 들고 한쪽으로 기울여 펼쳐진 계란부침의 한쪽만 먼저 익는 걸 확인하더니 양 손에 숟가락과 뒤집개를 각각 들고 드럼 주자가 첫음을 잡는 것처럼 심혈을 기울여 계란말기를 시작한다. 돌돌돌, 제법 3회전, 4회전까지 겹으로 만다. 와! 대단하다! 진은 정말 감탄하며 혜정의 손놀림을 보고 환호를 했다. 그 후로 우리들의 밥상에 계란후라이가 올라오는 일은 없었다. 작게 채썰은 당근과 양파를 넣은 계란말이처럼 영양가높고 맛좋고 보기에도 예쁜 밥반찬도 별로 없다.

하지만 혜정의 요리솜씨는 그 이상 나아가지 않았다. 식재료의 다듬기부터 시작되는 요리의 마지막 단계인 간 맞추기에 이르러 혜정은 씽크대 앞에 서서 왔다갔다 하는 것에  지쳐했고 입맛을 잃어 정작 다 차린 밥을 먹는 것에 의욕없어 했다. 그 애는 매사에 강단이 있어 술을 마셔도 마지막까지 버텼고 3학년 남자선배와 소주로 내기를 하여 밤을 새우기도 했다. 하지만 작은 체구에서 비롯되는 체력의 한계는 단기전으로 승부할 수 없는 대부분의 일에선 금방 바닥을 드러내며 항복을 하거나 미리 포기를 하곤 했다. 그 애는 한 자리에 오래 서서 하는 요리하기가 맞지 않았다. 보다 더 테이블 주위를 왔다갔다하며 셋팅을 하는 것에 힘을 기울였고 보람을 느꼈다. 가능한 모든 접시와 컵과 수저받침대나 내프킨까지 동원하여 예쁘게 상차림을 하고 그 앞에 앉아 오래 식사하는 것을 좋아헀다. " 넌 식사를 눈으로 하냐? " 고 핀잔을 주었지만 이쁘지 않은 것은 먹지도 못 했다. 통째 올라온 생선을 싫어했고 가능한 시선 조차 두지 않으려 애쓰곤 했다. 그 애에게 시장통의 뼈다구찜이나 순대국 속의 간, 내장탕 따위는 너무 힘든 시험같은 것이었다. 나중에 노동자들과의 식사에서 그런 메뉴를 참아 넘기는 것이 자신이 대중성을 갖는데 실패하게 한 핸디캡이었다는 말을 할 정도로.

그 애를 위해 요리의 대부분을 담당했지만, 정말로 그 이외의 것에선 완벽한 써비스를 받았다. 깨끗함의 기준이 다른 혜정은 창틀에 먼지가 오래 묵는 것도 싫어했고 티비의 검정부분에 자꾸만 쌓이는 먼지를 어케 없애나 하는 것 따위를 갖고 오래 고민했다. 설겆이를 다 하고 나서도 뜨거운 물을 한번 더 끼얹기 위해 가스비 아까워하지 않으며 한 솥의 물을 끓여내기도 했다. 덕분에 집은 항상 전담청소부가 있는 부잣집도련짐의 방처럼 깨끗하게 정돈되어있었고 기분이 내킬때면 쉽게 카페테리아의 분위기를 연출해 낼 수 있었다. 북적거리는 시장 한가운데를 뚫고 유일하게 그 애가 사 들고 온 것은 한 단의 프리지어 혹은 안개꽃이었고 가끔 해바라기 한 송이이기도 했기 때문이다. 팔걸이가 있는 하얀색 라탄의자는 금방 먹고 일어나는 식탁의자보다 훨씬 편안해서 우리는 자주 거기서 식사 외에 커피나 얼음쥬스를 마시며 독서를 했고 음악을 들으며 맥주와 계란말이를 앞에 놓고 늦은 밤까지 분위기를 잡곤 했다.

더블침대의 패드는 아니었지만 이불, 특히 홑겹의 여름이불 외에 다른 것들은 혜정이 혼자 들고 털고 개어놓기엔 힘에 부쳤다. 더구나 그 애는 왜 먼지를 이불 속에 돌돌 말아넣느냐며 꼭 마당까지 들고 나가 몇 번이고 털고서도 햇빛에 비치는 먼지들이 떠도는 것을 보며 직성이 안 풀려 볕 좋은 날이면 옷장안 맨 아래에 깔려있는 이불까지 안고 나와 말리곤 했다. 깨끗한 환경과 정리정돈된 상태에 대한 욕구가 그리 높지 않은 편이었지만 진은, 다른 어떤 일보다 그 애가 이불을 터는 것에 적극적으로 함께 하곤 했다. 그 애와 마주 서서 이불을 털고 그 커다랗고 다소 무겁기까지 한 이불을 널어 말리고, 그걸 걷기 위해 저녁에 귀찮은 몸을 일으키는 것에 기꺼워하면서 진은 우리가 함께 있다는 것을 실감했다. 함께 사는 사람들이 함께 이불을 터는 모습의 아름다움을 어느 책에선가 보았다며 혜정은 그렇게 가사분업을 한다면 여자에게 결혼이 인생의 무덤이라는 말을 누가 하겠냐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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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중-사랑, 현신하다.

나는 너의 피조물이다.

네가 원하는 형상을 갖고 네가 바라는 행동을 한다.

손끝으로 숨을 불어넣듯 너의 펜 위에서 눈을 와짝 뜨고

오랜 동면에서 몸을 일으킨 스핑크스처럼

너를 먹어치울 것이다.

 

 

진은 매일, 혼자서 천미리의 우유를 마셨다.  

더 이상 크지 않아도 좋을 만한 신장, 그건 여고에서나  통하는 말이었다. 푸른 콩나물 시루의 검은 보자기를 떨쳐버릴 듯 앞다투어 크고 있는 남학생들을 버스정류장에서 목격할 때마다 진은 불쾌했다. 그,  여학생이라는 신분은 누군가의 마누라가 되기 전의 관례나 절차에 불과하다는 듯 내어놓고 쳐다보며소근대는, 시선과 화제의 주인공들인, 등 넗고 가다좋은 허여멀끔한 남학생들이 혜정의 학교에도 있을 것이었다. 매일처럼 ㄷ 자 모양의 교사 안 쪽에 조성된 정방형의 화단 사이로 난 보도 위를 걸어 상급생들은 도서관을 가거나 체육수업을 받으러 나갈 것이다. 화단을 향해 있는 교실의 창문에서 환호와 수다와 핸드 싸인을 받으며. 그 속에 숨어 눈으로 펜으로 가슴으로 찍은 오빠를 향한 강렬한 시선 속에서. 그들의 드러낸 팔뚝과 커다란 손아귀, 울렁이는 목젓을 훔쳐보며 두근거리는 풍만한 가슴의 처녀들 속에서  무엇으로 그 애을 빼내올 수 있을지를 탐구하며 진은 우유를 마셨다. 고기를 먹었고 밥을 고봉으로 퍼서 싹 비워냈다. 또래보다 작은 몸집에 성격도 까탈스러워 젓가락을 깨작거리고 있던 동생의 경멸어린 시선을 받으며.

아침이면 일찍 일어나 체조를 했고 저녁이면 잠자리에 들기 전까지 조깅을 했다. 중학교 앞의 뚝방길을 따라 우이천의 진원지를 찾아가기라도 할 것처럼 뜀박질을 해서 도착한 인근 자치구에서 새로 조성한 체육공원의 시설들을 유감없이 활용해 주었다. 갑자기 운동매니아가 됐냐며 여자축구에라도 나갈 꺼 아니면 근육 생기기 전에 그만두라는 동생의 핀잔에 주먹으로 응수하며 사내들의 몸짓을 흉내내기도 했다.

품에 안으면 도망치고 싶어도 그 완력에 눌려 꼼짝 못 하게 하고 싶었다. 자신의 넓은 어깨에 기대면 다른 두꺼운 가슴팍 따윈 생각도 안 나게 하고 싶었다. 손을 잡고 거리를 걸어도 여느 킹카와 함께 걷는 여자들에 지지 않는 자부심을 느끼게 해 주고 싶었다. 그 애의 자랑스러운 남자가 되고 싶었다. 아니 사내들 이상으로 열락을 줄 수 있기를 바랬다. 왜 그럴 수 없겠는가? 누가 질과 클리토리스의 만족을 위해 페니스가 아니면 안된다고 말하는가? 진은 자신이 할 수 없는 일은 없다고 생각했다. 그 애의 눈빛과 손짓과 입술의 움직임을 읽고 그 말하지 않고 있는 열망에  현신으로 대답할 것이며 그를 통해 종국에 그 애와 하나가 되리라고 진은 마음먹고 있었다.  

 

 

그의 시선이 손톱 끝에 머문다. 키틴질의 게찜을 통째 부숴먹을 것같은 격정을 안고.

흐트러진 고수머리 사이로 내비치는 인적없는 계곡 아래 암반같은 목덜미에 키스하며

완전히 잠들 줄 모르는 동공이 눈꺼풀 아래서 흔들리는 걸 안타깝게 내려다보며

산골 소녀처럼 애무할 때마다 더 굳게 다물어지는 입술을 벌려  밖으로 나온 내장을 좇아

그 몸 속으로 들어가고 싶다는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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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중-혜정의 사랑

첫사랑을 잃고 눈 둘 곳은 없었다.

사방이 벽, 벽으로 둘러막힌 듯한 공간, 입시에 매달리는 한편 자기방치에 다름아닌 매일의 수다에 몸을 맡기고 있는 동급생들 속에서 버텨온 1년이 길고 길어서 또다시 시작되는 2학년을 망막한 맘으로 맞고 있었다.

슈토름의 호수를 읽으며 잃어버린 첫사랑을 바람 속에 실려보내고 있던 라인하르트와 같은 얼굴을 하고 혜정은 시니컬하게 웃는 법을 배우고 있었다. 그런 웃음, 지리 선생님의 공허한 웃음에 갈가리 찢기듯 상처투성이가 되어가던 혜정은 주변의 아이들에게 냉소적인 농담을 던지며 웃기 시작했다. 친구가 된 그들은 크게 웃는다. 재밌다며. 지리선생님의 " 우리나라, 좋은나라 ! 자 따라해본다 ! 우리나라 좋은나라 ! " 하는 외침에 크게 웃으며 크게 따라하던 것처럼.

자신을 버리고 이과를 선택해서 가버린 전혜린과 함께 했던 친구를 원망하는 것도 잠깐, 결국 그애가 남기고 간 상처는 그 아래 깊이 패여있던 오래된 상처 때문에 더 아프게 느껴졌던게다. 혜정은 죽음에 대해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바라볼 무엇이 있어 생을 지속해야 할까. 죽음 이후 아무런 대안도 없다는 것이 생에 대한 미련을 부여잡게 하고 있었다. 하지만... 아무것도 없는 빈 가슴으로 시간의 흐름만을 느끼고 있다는 것은 고통이다. 존재하지 않는 혜정에게 아무 관심도 없다는 듯, 무심히 시간들은 곁을 지나갈 뿐이었다. 국어선생님을 만나는 것만이 유일한 위안이었지만, 그 분과의 거리를 좁히는 것은 불가능한 것처럼 느껴진다. 결혼소식이 파다하게 퍼졌다. 혜정은 즐겨읽던 시집에서 윤동주의 사진을 빼냈다. 가지고 다니던 연습장에서 부룩 쉴즈의 사진 위에 덧끼워두었던 랭보의 사진도 빼냈다. 더 이상 시를 쓰지 않으리라. 선생님은 이제 자신이 만나 무언가를 기대할 수 있는 마지막 여지를 없앴다. 아내와 어머니의 길을 걸어갈 그 분과 정립할 수 있는 관계는 스승과 옛제자라는 것 뿐일터이니.

혜정이 좋아했던 역사 속의 여성들, 시몬느 보봐르와 루 살로메와 코코샤넬 그리고 윤심덕을 생각할 때와 같은 이미지가 국어선생님에게 있었다. 입시만 중요했던 고교에서 단지 귀찮은 일꺼리 밖에 안되었을 걸스카우트 대장을 맡으며 나름대로 아이들의 숨통을 틔워주고 싶어했던 분이었다. 수업시간에 단편적으로 흘릴 수 밖에 없었던 사회적 삶에 대한 메시지를 스카우트정신을 통해 알려주고 싶어했던 분이었다. 그분과 사상을, 철학을, 문학과 인간애에 대한 신념을 나눌 수 있기를 바랬지만 그 분에 비해 혜정은 너무 어렸다. 이미 열여덟이었지만 입시 외에 가르쳐준 것이 없는 학교에서 학생으로 머무르고 있는 혜정은 서른세살의 국어선생님, 결혼에 대한 압박에 시달리고 있는  이 땅의 모든 과년한 여자의 하나일 수 밖에 없었떤 그 분의 곁에서 할 수 있는 일도 가질 수 있는 위치도 없었다.

선생님의 댁은 종암동에 있었다. 고려대학교의 국문과 교수였던 아버지의 책에서 인세가 들어오지만 몇 푼 되지는 않는다며 거실에서 남동생과의 얘기를 정리하고 혜정을 데리고 방으로 들어갔다. 자신의 갓난아이가 누워있는. 표정없는 얼굴로 담담히 아기에 대해 아무 생각이 들지 않는 다는 얘기를 한다. " 내가 이렇게 매여있을 수 밖에 없다는 것이 참 이상하게 느껴져. " 어떻게 해도 벗어날 수 없는 걸까, 결혼을 해야 한다는 압력으로부터. 선생님은 소개를 받고 3개월 만에 결혼식을 올렸다. 이제 그 분이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 혜정은 더 이상 나눌 말이 없었다. 갓난아기가 누워있는 선생님의 친정집에서 광주를 얘기할 수도, 난쏘공을 얘기할 수도, 노동자파업을 얘기할 수도 없었다. 선생님은 이미 생각하고 논쟁할 수 있는 마음의 기지를 잃고 있었다.

혜정은 돌아와서도 갈 곳이 없었다. 고등학교는 중학교보다 더 나빴다. 결론을 낼 수 밖에 없다. 이 청춘의 나이에 3년 머슴살이처럼 요구받고 있는 수험생활을 끝내지 않고서는 만날 수 있는 사랑이 없다. 대입까지 남은 2년이 너무 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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