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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개의 게시물을 찾았습니다.

  1. 2010/09/25
    19 금 혹은 보안사항임(3)
    외딴방
  2. 2010/09/25
    창작중-용서할 수 없는 자라도 이해할 수는 있다.
    외딴방
  3. 2010/09/25
    창작중-여.우.사.이
    외딴방

19 금 혹은 보안사항임

원래 쓸라구 했던게 이게 아닌데, 삼천포로 빠졌다.

동화창작반에서 동화창작을 할라니 당췌 떠오르는 게 없어 어린시절 친구 얘기를 쓰다가 사춘기시절 좋아했던 여자애가 생각나서 한참 생각하다 보니 내가 좋아했던 사람들이 전부 여자들이라.....내가 레즈비언인가 하는 의혹에 사로잡혔다.

ㅎㅎㅎ 솔직히 초등학교 동창생은 오래 붙어있긴 했지만 걔가 좋았다기 보다 걔가 주는 크라운산도가 좋았고 걔네집에서 놀 때의 편안함을 좋아했었으니 열외다. 내가 정말로 좋아했던 윤.  정말 오랫동안 맘 속에서만 살았던 이였다. 만화책에 간간히 나오던 동성애 코드 땜에 정말 푹 빠져들었다. 중학시절 친했던 두 친구, 고교시절 사춘기의 절정에서 많은 걸 나눴던 한 명의 친구와 한 명의 선생님, 아 그 선생님이야말로 좋아했던 것에 더해서 내 인생의 터닝포인트를 만들어준 사람이었다.  운동은 대학에서가 아니라 그 선생님이 빌려준 사회학 관련 서적을 통해 내 의식에 각인되었었다. 그 후로 내게 영향을 끼친 사람이 없다. 오히려 내게 비판의 주표적이 되었던 선배들 몇 명이 있었을 뿐이고 덕분에 대학생이라는 신분과 스펙을 내 인생에서 삭제하는 데 톡톡히 공헌했던 걸로 기억된다. 하지만 노동자 생활에서는 막판에 함께 투쟁했던 동지를 한 명 친구로 건져내어 지금도 돈독히 지낸다. 흠...그 친구를 포함해서 내가 좋아했던 이들은 모두 여자들이다. 아, 남편을 포함해서 사랑할 만한 남자를 만나지 못 한 것은 내가 너무 잘나서였을까 내가 너무 까칠해서였을까.  여성해방이 이룩되지 않는 한, 남자를 인생의 의미로 사랑하기는 힘들 것 같다. 걍 하던 대로 여자를 사랑해야겠다.

 

ㅋㅋㅋ 그래서 내가 진짜로 쓰고 싶은 것은 여자를 사랑한 여자의 이야기이다. 남자를 사랑한 남자의 이야기는 장 정일 이후 정말 지겹도록 보았고 이젠 주말마다 티비에서도 보고 있다.

삼천포로 빠진 이야기를 이어나가면 보안에 걸릴 것이 많아서 또 현재진행형의 사람들과 연루되니 더이상 쓸 수 없을 것 같다. 그리고 즐겁지도 않다.

두근 두근 즐거울 게 분명한 사랑이야기를 쓰고 싶은데....

진보넷 블로그라 써도 될 지 걱정스럽다.

게다가 19금으로 이어질 수 밖에 없으니...걍 문 닫고 숨어서 써야 할라나....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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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중-용서할 수 없는 자라도 이해할 수는 있다.

혜정을 찾을 수가 없었다.

고등학교 졸업식 전날까지 헤드폰과 이어폰을 만드는 전자제품 공장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던 혜정은 거기에도 노조가 생겼다며, 단지 교정이 넓어서 선택했다는 대학에선 인근 성수공단의 체불임금을 남겨둔채 야밤의 제품반출을 시도하는 구사대와 몸싸움을 하던 여공들이 다쳤다며 분개하더니  채 1학년을 다 마치지도 않고 사라졌다. 티비에서는 가자 북으로! 를 외치는 대학생들을 몽둥이로 두들기는 영상이 편집 속에서도 연신 내비쳤고 대통령직선제에도 유유히 권좌를 장악한 우익이 세를 과시하는 가운데 시민들은 민주주의를 위해 연신 빨아대는 흡혈에 고통스러워하고 있었다.

" 한국의 민주화는 끝났어. " 라고 백기완의 낙선을 두고 더 이상 희망을 볼 수 없다고 인하대의 운동권이라는 친구오빠가 말하더라며 혜정은 6월 항쟁은....우리들의 승리가 아니야....라고 중얼거렸다. 그 애는 더 이상 문학소녀가 아니었다. 오래도록 사춘기의 몸살을 앓던 내성적이고 연약하기만 하던 아이도 아니었다. 아빠에게 맞은 뺨의 붉은 손자욱을 가리던 반항하는 십대도 아니었다. 스물 하나, 그 후로 그의 인생을 철저하게 규정했던 이십대의 운동권 인생을 그 애는 모든 인연을 끊고 잠적하는 것으로 본격화했다.

그 애가 다닌 학교는 서울에서 몇 안 되는 독문학과가 있는 4년제 종합대학교였다. 꿈이 없어.....사회에 나가 뭘 하고 싶은 지 모르겠어서, 고교를 졸업하자 마자 취직을 하는 건 아무래도 아니라며 고 3의 수험생 생활을 그야말로 공부에 매진했던 그 애였다. 왜 독문학과를 가느냐고 묻자, 여자아이들이 선호하는 사범대나 영문과를 가는 건 시집 잘 가려고 가는 것 같아서 싫고 법대는 너무 어렵고 또 웃길 것 같고 경제학과는 수학 때문에 안 된다며, 독일철학을 원서로 공부하고 싶어서? 하지만 사실은 그저 전혜린의 분위기에 딸려가는 거라고 말하면서 혜정은 배시시 웃었다. 그런데 독일어는 불어만큼의 분위기도 없고 발음이 자기가 내기엔 너무 뻘쭘하다며 게다가 짜라투스트라에서 슈바빙의 안개 낀 아침을 느끼긴 어렵겠다면서 그냥 번역된 독일의 원전들을 보기도 바쁘다고 혜정은 한창 쏟아져나오기 시작하는 맑스엥겔스 저작들을 사는데 용돈을 다 털어넣고 있었다.  그 애와 대학의 낭만을 느껴본 건 아직 학생운동을 하는 선배들의 귀여운 후배 노릇을 하고 있던 오월의 축제와 골방에 처박혀 세미나합숙을 마친 후 조금 남은 여름방학끝에 한가로이 교정을 거닐었던 며칠 뿐이었다.

" 아무리 읽어도 주체사상은...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어. 이건 유물사관이랑도, 변증법하고도 인식론적으로 연계가 안돼. 휴우.... "  혜정은 한숨을 쉬며 자신의 직속 선배와 대판 싸웠다며 어떻게 해야 할 지 모르겠다고 고민했다. 혜정과 자유롭게 맥주를 마시고 엠티를 핑계삼아 가까운 춘천에라도 다녀오고 싶었던 윤 진은 고민하는 혜정에게 할 말이 없었다. 데모가 뜨던 말던 별로 영향이 없었던 예술가들의 무리 속에 있는 윤 진에게 아무런 비난도 비판도 하지 않는 혜정은 무슨 생각에서였는지 " 너까지 이런 고민을 할 필요는 없어. 나두 확신이 없는데 뭐...." 그리고 덧붙였다.  혁명 후 러시아에서도 예술가들은 단죄의 대상은 아니었어. 그랬어야 한다고 생각해. 인간의 역사는 사회혁명보다 더 큰 틀거리 속에 있다고... 윤 진은 그 애가 보는 소설책을 잘 몰랐던 것처럼 그 애가 소장하고 있던 사회과학 서적도 한 장 떠들어본 적이 없었던 지라 무슨 소린지 하나두 알아들을 수가 없었지만 자신을 특별히 여기고 있다는 느낌은 확실히 받았었다.

그런데 자기에게조차 한 마디 말도 없이 그야말로 뾰로롱 사라졌다. 그 애의 학과 선배들 중 이름을 들을 적이 있는 사람을 과사무실에서 만났다. 안 그래도 혜정의 아빠가 온 학교를 뒤집어놓고 갔다며 아주 학을 떼었다며 진저리를 치면서 말했다. 사실은 자기들이 기껏 키워놓은 후배를 피디그룹에서 빼갔다고. 과에서 자기를 같은 동아리에 있는 3학년 언니의 따라지라고 부른다고 삐져서 말하던게 생각났다. 혜정을 주체성있는 한 인간으로 생각하지 않는 언사에 윤진은 그 애가 보다 낮이나 밤이나 처박혀 살던 동아리실을 찾았다. 2학년 알피라는 화학과의 우직스러워보이는 여자가 여름방학 후 동아리엔 거의 안 나타났다면서 학생회관이 아닌 대운동장 스텐드 밑의 구석진 곳에 자리잡은 학내에서 거의 유일한 피디써클이라는 곳의 동아리실을 알려주었다. 맨날 밥먹자고 쫓아다녔지만 가뭄에 콩 나듯 한 번씩 학생식당에서 자리를 함께 했을 뿐이라며 네모난 얼굴의 예비역이 우리 쪽으론 안 왔다고 한다. 대체 이, 부지만 서울시내 제일로 넓다 뿐이지 학생운동은 쓰다만 플랭카드와 신나냄새로 꽉 찬 한 동의 학생회관을 중심으로 문과대와 사회대 앞의 민주광장 안에서 다 이루어지고 있는  이 손바닥만한 행동반경을 갖고 있는 학생운동권에서 혜정은 어디로, 어느 선을 타고 빠져나갔단 말인가?

나름 주변을 정리하는데 순서를 밟고 상대를 배려하느라 에너지를 소진했던 혜정이었다. 중학시절 몇 안 되는 친구들과 멀어지는 것도 천천히, 고등학교의 패거리들과 함께 어울리다가 얽혔던 남학교의 후까시들과 인연을 끊는 것도 입시공부를 해야 한다고 몇 번이나 만나 설득하느라 1년 여가 걸려서 윤 진으로 하여금 울화통이 터지게 하던 소심가였다. 윤 진은 그 애가 데모를 한다고 시내에 택이 있다고 비택이라 말할 수 없다고 혼자 몇 번이고 버스를 갈아타고 나가는 것을 보고, 그리고 저녁에는 일곱시 뉴스를 통해 자욱한 최류가스 속에서 몽둥이찜질을 당하며 피투성이가 된 대학생들과 아우성치는 시민들을 카메라에 잡은 영상을 보면서 몇 번이나 말하려고 했었다. 혜정아, 너에겐 어울리지 않아. 그 작은 몸으로 옥쇄파업을 하는 노동자들처럼 팔에 팔을 걸고 군중들 속에 있어봤자 몰아치는 전경들보다 더 빨리 튀는 너의 그 동지들의 발에 채여 너의 전력질주는 소용이 없을 거라고. 학생운동도 대학시절의 빼놓을 수 없는 낭만 중 하나라고 뻔뻔스럽게 읊어대며 인민에 대한 사랑을 떠드는 입술로 취업준비를 착실히 하는 도서관에서 건진 잘 빠진 여학생과의 키스와 함께 대학이라는 또 하나의 기득권을 결코 놓치지 않으려는 우리 시대의 대학생들이 하는 운동 속에서 너는 또다시 고립될 꺼야. 입시에 매몰되었던 고등학교에서처럼. 부모의 직업이라는 귀속계급에서 한치도 벗어날 수 없었던 기독사립학원의 중학교에서처럼. 하지만 그 애의 고집스럽게 꾹 다문 입술은 대학에서의 한 계절, 한 계절이 갈수록 더욱 다시 벌어지지 않았고 간간히 웃음을 날리던 순진한 표정에는 침울과 의혹이 도사린 비장함이 갈수록 짙어져갔다. 맑스주의가 답을 주지 않는다면....삶의 진리는, 희망은 어디에서 찾을 수 있을지 모르겠어. 나는 여기서 답을 찾아보겠어. 끝까지 가 볼꺼야. 대학생이 아닌 노동자들 속에서. 노동자계급만이 희망이야. 60년대 빈농이었던 아빠가 도시빈민에서 부동산폭등기에 한 몫 잡은 걸 기화로 자수성가에 성공하면서도 구질구질한 가난과 설움 속에서 습성화된 가부장적 폭력으로 가족들을 공포와 불안 속에 살게 한 어린시절을 혜정은 용서할 수 없어했다. 우리 부모가 자기 노동력에 기반한 자영업주가 아니라, 그래서 쁘띠비지의 간사하고 비열한 속성을 내성화하지 않고 하루 품으로 하루도 버티기 힘든 공장노동자로 살았다면 그래서 아마 계속 가난하고 일상의 불편에 온 에너지를 소진하며 어쩌면 자식들을 대학에 보낼 돈이 없어서 피지배계급의 재생산에 머물렀을지도 모르지만 사람에 대한 애정과 소박한 품성을 유지할 수 있었을 지도 모른다고. 그건 개인으로서가 아니라 집단으로서 존재하는 프롤레타리아만이 가질 수 있는 계급성에서 나오는 연대의식에서 나오는 인간애라고. 혜정은 그 기대와 희망의 끈을 힘겹게 붙들고 있었다. 분명히 그 애는 다시 공장으로 간 것이 틀림없었다. 학생아르바이트가 아닌, 먹고 살기 위해 취업을 갈구하는 노동자계급의 일원으로. 울산? 아니면 인천? 학교의 선배들이 아니라면, 그 애가 함께 한 ' 동지' 들은 누구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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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중-여.우.사.이

의외로.

혜정을 만나 한가한 시간을 보내는 것은 쉽지 않았다.

학교가 다르다는 것이 이렇게나 불리한 조건일 줄을 중학교 때는 몰랐다. 반이 다르다는 것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었는데...윤 진은 지난 시절이 아쉽게 느껴졌다.

우연을 가장하지 않고 그 애의 학교 앞에 갈 수 있었지만 한 번 가 보니 다시 가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았다.

그렇다고 하교 후 외대 앞에서 보자니 도착하면 저녁시간이 되어버렸다. 한국사회에서 학생신분으로 산다는 것은 직장인으로서 사는 것과 다르지 않다.  아침자율학습은 수당없는 조출이었고 야간자율학습은 제 돈내고 밥 사 먹으면서 매달리는 성과를 위한 야근이었다. 실적을 내지 못 하면 여지없이 열반으로 좌천되거나 경쟁에서 열외로 밀리는. 황금같은 주말에도 피곤에 지친 몸을 일으키지 못 한 채 방바닥에 붙어있다가 하루 해가 뉘엿뉘엿해져서야 정신이 돌아오지만 월요일을 생각하면 외출은 한참 고심한 끝에야 감행할 수 있는 사치였다. 뭐...이런 싸이클에 혜정이 충실했다고는 할 수 없었지만 말이다, 한국의 고등학생들에게 주어진 일상의 규제와 스트레스를 피해갈 수는 없었다.

" 오늘은 야자 있는데. "

반포까지 가는 피아노레슨이 있는 날을 피해 혜정의 학교 앞에 왔지만 도무지 하교하는 학생을 볼 수 없어 들어가본 교정에서 들은 말이었다. 그렇게 말한 여자애는 무거워 보이는 배낭을 메고 정문에서 바로 바라다보이는 2층짜리 교사 안으로 쏙 들어갔다. 교실이 있는 것 같아 보이지 않는데? 국기가 게양된 조회대 뒤의 현관으로 들어서니 커다란 거울을 가운데 두고 왼쪽 오른쪽 2층을 가리키는 화살표 옆에 서무실, 교무실, 도서실 등의  팻말이 써 있었다. 대부분 입실을 끝낸 듯 몇 안 되는 남녀 학생들이 각자의 짐을 지고 바쁜 듯 계단을 오르고 있었다. 따라서 가 보니 2층의 왼쪽에 양호실, 그 뒤로 피아노실이란 팻말이 붙어있다. 가 볼까 하는 생각이 불쑥 들었지만 혜정과는 인연이 없는 곳이다. 문득, 미션스쿠울이었던 중학교에서 해마다 있었던 합창대회가 생각났다. 그 애는 엘리야의 하나님이란 노래에서 하이소프라노파트를 맡았었다. 엉망이었다. 연습 때 반주를 맡은 아이가 결석을 해서 윤 진이 대신 피아노를 치면서 보았던 지휘를 맡은 아이도 지도를 하던 음악선생님도 그 곤혹스러움을 참는 표정이란 !  아이들이 꺼려하는 하이소프라노에서 그 애를 뺄 수 없었다는 것이 문제였고 계속되는 불협화음에 그 애는 아이들이 첫음을 시작한 후에 슬쩍 섞여드는 수법을 쓰더니 점점 목소리가 작아졌고 대회날에 이르러서는 그냥 입모양만 보여주는 것으로 위기를 모면했다. 어떻게 할 수 없는 음치라고나 할까....그러기도 쉽지 않았을텐데...개인적으로 친했던 음악선생님은 기말고사 성적을 정리하면서 " 이 애는 필기는 백점인데 실기점수를 합산하니 평균 이하로 떨어지네...이거 참 내가 준 점순데 츳츳....." 하면서 상위권에 랭크된 우수학생의 평균을  자신이 끌어내리는 것 같다며  미안해 했다.  빙긋 미소를 떠올리며 윤 진은 도서실 문 안을 들여다보았다. 감독선생이 아직 들어오지 않은 듯 여기저기 의자를 끌고 책들을 늘어놓는 아이들이 눈에 띄였다. 그 속에서 나는 딴세상이요 하듯 고개를 쳐박고 열공 중이거나 사색? 중인 아이들로 구성된 도서실 야자의 수용자들은 그래도 영수 열반으로 편재되어 교실에서 야자를 하는 것보다는 낫다는 우월감으로 위로받고 있었다. 혜정의 말에 의하면 그랬다. 부산하게 수다를 주고 받는 패거리 들 속에서 일어나는 혜정은 옆엣 아이들에게 웃으며 뭐라고 말하더니 문 쪽으로 나왔다. 가슴에 교과서는 아닌 듯한 책 몇 권을 껴안고 있었다. 윤 진을 보고 깜짝 놀란다. 저번처럼 더듬진 않는다. 야자 있는 날이라고 방금 아래층에서 들었던 말을 한다.

" 근데 넌 어디 가? "

" 아, 아직 시작 전이거든, 얼른 교무실에 다녀올려구. 선생님한테 빌린 책을 갖다드려야 해서. "

슬쩍 들여다본 책의 제목은 들어보지 못 한 것이었다. 머나먼 쏭바강? 제 2의 성? 이게 뭐지? 윤 진은 선생님이 빌려 준 책이니 의심할 수는 없다고 생각했지만 뭔가 껄적지근한 것이.... 그 애를 따라가서 교무실 앞에서 기다렸다. 오후 5시가 다 되어가는데  종례를 마치거나 감독을 들어가거나 하는 선생님들이 오락가락 하면서 교무실은 한창 분주한 판이었다. 열려진 교무실 문 사이로 그 애가 젊지만 세련되어 보이지는 않는 여선생과 얘기하는 모습이 보였다. 윤 진은 그런 옆얼굴을 본 적이 없었다. 밝고 편안한 표정으로, 보통의 선생과 제자 사이에선 발견하기 어려운 유대, 신뢰, 호감과 애정 같은 것이 그들 사이에 흘렀다. 교무실을 나오는 그 애의 가슴엔 또 다른 책이 한권 소중히 품어져 있다. 8억인의 나라...이건 또 뭔가요? 윤 진은 그 애가 중학시절과 다르지 않게 교과서 아닌 책들을 읽는 걸 계속 하고 있다는 걸 알았다. 근데 인문계고교에서 학생에게 문학서적도 아닌 책을 대 주는 선생이라?

" 넌 야자시간에 혼자 책 보냐?"

" 하하...그게...수업시간에 실컷 본 교과서를 또 들여다본다는게 지겨워서..."

암기로 되는 과목들이라면 모를까 고교에서 시험기간에 공부하는 것으로 좋은 성적을 내기는 어려울텐데 하고 윤 진은 생각했지만 중학시절 최상위와 최하위를 오르내렸던 그 애의 석차를 알고 있는 윤 진은 여전하군 하는 생각을 했다.

" 입시, 걱정 안 돼? "

" 글쎄....내가 상정한 목표가 아니라...  "

의욕이 생기지 않는다고 혜정은 말했다. 저렇게 독서에만 열중하다가 소설가라도 되려나 했더니 아닌게 아니라 시를 쓰고 있다고, 국어선생님이 봐 주신다고 한다. 친해 보였다. 보통, 여학생들은 젊은 남자선생을 좋아하는데, 좀전에 교무실에서 핑크빛 베개를 책상 위에 떡하니 올린 채 하얀 얼굴을 파묻고 자고 있던 남자선생도 무척 젊어보였다.

" 하하하, 그 선생님 대학 졸업하고 처음 부임한 영어선생님인데, 인기 캡이야. 얘들이랑 뒤밟아서 집도 아는데 단칸방에서 자취하고 있더라고. "

이 혜정, 너 스토커냐? 뒤 밟는거 습관된다하고 속으로 중얼거리며 슬쩍 기분이 나빠지는 윤 진이었다. 야자를 땡땡이치라곤 차마 할 수 없어서 윤 진은 다른 친구 얼굴이나 보고 가겠다며 혜정과 도서실 문 앞에서 헤어졌다.  땡땡이를 칠까 말까를 고민하는 듯 관리 안되는 표정으로 혜정은 문 안으로 떠밀리듯 들어갔다. 그 애의 자리 근처에서 예의 그 ' 네 명'의 멤버들인 게 분명한 아이들이 손짓하는 게 보였다. 중학 때와는 달라진 혜정의 일부였다. 곧 그 애들에게 뭐라고 하면서 웃음을 떨구고 있는 혜정, 그다지 자연스러워보이진 않는다.

중학시절 혜정이 패거리 속에 있는 건 본 적이 없었다. 그 애의 초등학교동창생말고 친하게 지내는 한, 두명이 있다는 건 강당이나 체육시간에 반복적으로 곁을 지키던 얼굴을 보아 알고 있다. 그 중 한 명이었던 학교의 유명한 날라리는 학년이 바뀌자 그 애의 곁에서 보이지 않았고 혜정이 그 날라리친구들 속에 묻혀다닌다는 얘기도 없어서 은근한 걱정을 털어버렸던 생각이 났다. 그리고 졸업할 때까지 그 애는 혼자 중학교의 교문을 총총히 빠져나갔었다. 하교길에서 보았던 그 애의 어깨 혹은 옆얼굴은 늘 심각한 가정문제라도 있는 양 굳어있었고 조그마한 입을 꾹 다물고 발밑만 응시하고 걷는 고집스러운 모습이었다.

" 고등학교 와서 새친구들은 많이 사귀었어? "

" 응...글쎄...."

혜정은 1학년 때 짝궁과 지금도 자주 만난다고 했다. 자기는 절대로 갈 수 없는 이과를 선택해서 다시 한 반이 될 수 없었다고 말하면서 실의에 찬 표정을 보였다. 넌...친구 따라 강남가냐...하는 생각을 하며 개랑 많이 친한가 봐? 하고 떠보자 교환일기도 썼다고 한다. 윤 진으로선 흉내도 못 낼 일이었다. 아무리 하기 어려운 말이라도 걍 면전에서 얘기하는 게 낫지, 편지는 커녕 수업시간에 종횡무진 날아다니던 쪽지 한 장에도 제대로 된 문장을 써 본 적이 없었던 윤 진이었다. " ? " 아니면 " OK "  혹은 쌩까는 게 윤 진이 하는 대답의 다였다. 혜정이 중학시절 유일하게 조회대에 올랐던 것도 교내 백일장에서 입상을 했을 때였다. 그 애는, 윤 진이 초등학교시절 숙제검사로 겨우 썼던 일기를 지금도 매일 쓰고 있을 것이 틀림없었다.

하릴 없이 교정을 돌아보았다. 개교 3년 차의 학교답게 새 건물, 깨끗한 벽이었다. 본관 뒤에 있는 ㄷ 자 모양의 교사는 공주사대의 건축물을 모방한 것이라더니 2층까지 뻥 뚫려 시원해보이는 회랑은 자못 넓어서 중학교 때 강당건물의 천정 높은 홀을 생각나게 하였다.  강당건물의 홀을 나오면 잘 손질된 화단과 작은 연못도 있는 야트막한 언덕이 고등학교 교사를 지나 야외음악당까지 이어져있는 중학교의 넓은 교정을 혼자 걷고 있는 혜정을 점심시간이나 때로는 아이들이 다 하교한 시간에도 발견할 수 있었다. 피아노연습을 하고 나오다가,  그 애가 학교의 뒷산으로 가는 건 아닐까 하고 윤 진은 한참이나 지켜보았었다. 그 애는 그렇게 혼자 산책하기로 학교에서의 모든 자유시간을 때우고 있었다. 그러나 교실의 의자에 붙박히지 않을 수 있는 시간들을 다 때우기에 이 공립고등학교는 너무 작은 부지 위에 세워져있었다. 게다가 운동장을 포함하여 학교의 한쪽 면은 높이 솟아있는 가림막으로 둘러쳐져 있었는데 그 얇은 천은 알알이 박힌 검은 가루로 잿빛풍경을 연출하고 있었다. 정말이지 건강을 위해서라도 산책하면 안될 것 같은 교정이었다.

정말 의외였지만 고등학교에서 혜정은 꽤나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평소에는 네 명의 패거리와 하교길을 함께 하더니  그 패와 또 다른 공식적인 써클활동도 하고 있었다. 스카우트 입단식이 있다며 1박 2일 엠티를 간단다.물론 그 앤 걸스카우트다. 그런데 당연할 수도 있겠지만 보이스카우트와 함께 간다는 것이었다. 윤 진은 골치가 아팠다. 일일찻집 앞에서 길거리 헌팅을 하던 모습이 떠올랐다. 남녀공학에서 써클활동을 하는 아이들의 진짜 목적은  건전한 이성교제의 공간을 허가받는 거라고, 여고에서 국제로타리활동을 하는 애들과 함께 싸잡아 비난하던 정원의 말이 떠올랐다.  혜정이 학교의 남학생들 얘기를 하는 걸 본 적은 없었지만, 걸스카우트 대장이 그 책을 빌려주던 국어선생님이라는 것 또한 들어 알았지만, 공부도 잘 하고, 운동도 잘 하고 스카우트 활동까지 하는 혜정이 남학생들의 주목을 받거나 적어도 자연스럽게 남학생들을 만날 기회가 많을 것은 쉬이 예측되는 일이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예측이 빗나갔다는 것을 윤 진은 여름방학 때쯤엔 확신할 수 있었다. 혜정은 나날이 떨어지는 성적과 함께 담임의 관심을 잃어갔고 체력장의 윗몸일으키기나 달리기 같은 데서 강단으로 승부하는 기록치 외에 모두가 어울려 하는 피구나 발야구에서의 순발력은 제로 수준이라는 걸 드러내면서 아이들의 관심에서도 멀어져갔다.그리고 써클활동을 하는 아이들의 부티나는 의상과 소지품, 화젯거리에 어울리는 흉내도 낼 수 없었던 혜정은 보이스카우트는 고사하고 걸 스카우트의 동기들 사이에서도 경원시되고 있었다. 그럼에도 혜정은 여름방학 때는 스카우트에서 지리산을 간다고 했다. 그건 5박 6일이나 되는 일정이었다. 거길 가기 위해서 아빠와 한참을 싸웠다고도 했다. 부모님 두 분 다 가게에 매여 하루 종일 일하면서 삼남매를 키우는 혜정의 집에서 고등학교 써클활동은 쉽지 않은 사치이기도 했다. 혜정은 정말로, 단지, 스카우트 대장을 맡고 있는 사람이 그 국어선생이기 때문에 써클활동을 하고 있었다. 그게 더 나쁘다는 걸 오래지 않아 윤 진은 느꼈다.

어느날, 지리선생님이 잡혀갔다고 우울해하던 혜정은 학교가 난리가 났다며 흥분을 감추지 못 했다. 아침 자율 학습에 늘 턱걸이하는 시간에 도착하던 혜정은 칠판 위 태극기 액자 옆과 천정에 붙어있던 몇 장 밖에 못 보았지만 온 학교에 총학생회장 직선제를 요구하는 벽보가 나붙었다는 것이었다. 학생주임과 교련, 생활지도부선생을 주축으로 한 우악스러운 포스의 남자선생들이 몽둥이를 들고 그 벽보를 뜯어내며 아이들을 조용히 시키느라 뛰어다닌 끝에 겨우 소란이 가라앉았지만 학교는 오랫동안 귀엣말과 숨은 회합 속에서 긴장과 분주함을 이어나갔다. 그런 것 같다고, 3학년 선배들의 민주 어쩌고 하는 조직에 맨날 꼴찌를 도맡으면서도 관동별곡을 가르치는 시간에 이 험한 산중에서 가마를 메고 진땀을 흘리는 하인들에게 수려한 산천경개가 눈에 들어왔겠냐며 꼬집던 작문선생님이 연루되었고 더불어 그 국어선생님도 딸려갈지도 모르겠다며 혜정은 걱정이 태산이었다. 그 옆얼굴엔 입시공부에나 매여있어야 하는 자신을 한심스러워하는 자괴감이 깃들어있었고 혜정은 그 우울과 소외감 속에서 국어선생님에게 시가 아닌, 장장 10장에 이르는 편지를 써 보냈지만 아무 답변도 받지 못했다며 슬퍼했다. 그리고 간첩혐의로 잡혀갔던 지리선생님을 면회하고 온 국어선생님에게서 곧 나올 수 있을 것 같다고 증거도 없는 조작사건이라는 말을 들었다며 그러나 다시 교단으로 돌아오지는 못 할 것 같다면서 혜정은 고통스럽게 말했다.  

" 지리 선생님의 그 표정이 잊혀지지 않아..."  끝없이 떠들거나 진도나가 달라고 요구하는 학년톱의 부잣집 아이와 같은 교실에 있다는 것이, 한심하다는 표정으로 지긋이 자신들을 쳐다보던 지리선생님 앞에서 너무나 부끄러웠다는 얘기를 혜정은 비감하게 읊조렸다.

그 후 고 3이 되어 입시준비를 하겠다던 혜정은 대학을 가지 않으려면 취직을 하거나 시집을 가라고 아빠가 말했다면서 주변을 정리했었다. 뭉쳐다니던 패거리 중에 키가 큰 한 친구는 갑자기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가정형편이 어려워져 인문계고교 3학년에 특별학급으로 편성된 취업반으로 갔다가 2학기부터는 공장을 다닌다고, 전국이 데모로 들끓었던 여름 이후 계속되는 노동자파업의 물결 속에서 그 애가 어찌되었을 지 모르겠다며  혜정은 답답해 죽겠다며 눈물을 흘렸다.그리고 입시가 끝난 그 겨울 그 애가 다니는 공장에서 아르바이트를 한다며  소식을 뚝 끊었던 혜정은 대학 1학년을 마치기 전에 잠적했다.  이 혜정, 여기서 우리가 사랑을 이야기하기에 대한민국의 고등학교는 너무나 척박하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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