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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1/05/11
    습작 - 열 아홉의 그녀
    외딴방
  2. 2011/05/11
    습작 - 열 아홉의 그녀
    외딴방

습작 - 열 아홉의 그녀

나중에 그녀가 대학에서 데모를 하러 다니고, 낮에.

밤에는 세미나를 하러 다닐 때. 학교를 벗어나서 알 수 없는 여러 대학의 여러 남녀들과 어울려 세미나를 하느라 그녀는 주로 밤에 모였다. 룸이 있는 카페들이나 아니면 누군가의 자취방에서. 그리고 지하철이 끊길 때쯤 막차를 탔고 여느 대학생들처럼 남자들은 여자들을 바래다주지 않았다. 물론 커플이 된 여자애들은 아니었지만. 그녀가 몰라서 그렇지, 커플이 되어가는 중이었던 남학생들은 여학생들을 집까지 바래다주었을 지도.

하지만 그녀와 그녀의 여자동기는 항상 혼자 집으로 돌아왔다. 그녀는 집이 큰 길가에 있어서 자기는 위험한 골목길이라는 걸 잘 몰랐다고. 하지만 그 여자동기는 그녀의 학창시절 친구들이 많이 그랬던 것처럼 조용한 주택가에 집이 있었다고. 그렇게 어둡고 좁은 골목길을 여자 혼자 가는 건 위험하다고. 운동을 하는 남녀 대학생들은 서로를 차별하지 않는다고 생각했지만 사회가 만들어놓은 차별을 간과하는 것은 어리석은 짓이었는데.

그런 골목길을 지나 집으로 가던 동기는 정말로 집 근처에서 성폭행을 당했었다. 나중에. 한참 나중에 그 사실을 그녀에게 말해 주었는데 그녀는 뭐라 위로해야 할 지. 그냥 담담히, 그런 건 그냥 사고같은 거니까. 너무 상처받지 말라고. 우리들은 모두 그런 현실에 분노하고 너를 사랑한다고. 다행히 친구는 많이 힘들었지만 많이 도와주었던 친구가 있어서 잘 극복할 수 있었다며. 그리고 그 친구와 결혼하게 되었다고 하였었다.

 

그녀는 여자들은 위험해. 하고 다시 중얼거렸다.

" 힘으로는 남자들을 당해낼 수가 없으니까. 공정한 싸움이 안돼. 싸우면서 크는 아이들이라거나, 몸으로 한 판 붙고 나면 더 친해진다거나 그런 건 여자애들에겐 해당이 없지. "

그리고 나서 그녀는 한참 말이 없다. 여자를 향해 진심으로 완력을 사용하는 어떤 남자들의 무지함과 천박함을 생각하는 듯. 비참한 표정, 그늘이 이마에 드리웠다.

그녀는 남자들의 더 강한 완력을 싫어했다. 더 넓은 어깨도. 더 크고 굵은 가슴이나 팔뚝. 나중엔 오동통한 돌쟁이 사내아이의 더 무거운 체중조차. 무거우니까 더 힘들어. 하면서. 골목길을 뛰어노는 남자아이들의 빠른 달리기솜씨나 욕지기와 함께 거칠게 내뱉고 가는 남자아이들의 고함소리에도. 미간을 찌푸리며 고개를 돌렸다. 그런 걸 남자다움이라고 말하는 혹은 말하고 싶어하는 아줌마들, 할머니나 할아버지, 빙그레 미소를 걸고 아들을 쳐다보는 퉁퉁한 뱃살의 사내들을 피해 그녀는 시선을 멀리 두고 걸었다. 알고 지내고 싶지 않으니 말 걸지 말라는 듯이.

 

그래서일까, 그녀가 좋아하는 남자들은 하나같이 다 샤프했다. 마른 체형에. 순한 표정, 조용하고 부드러운 목소리. 아무리 화가 나도 상욕을 하지 못 하고 혼자 툴툴 거리는 소심가들. 츱...오래 사귀지는 못 했다. 쪼잔해서들.

 

그녀는 조용히 차를 마시며 환담을 나누는 걸 좋아한다. 커피를 마시면 꼭 비스켓을 하나. 피아노연주가 들어있는 음악이 있으면 더 좋다. 튀는 음악, 노랫말을 알아들을 수 있는 가요, 비트가 있어 배경으로 깔기에는 부담스러운 곡이 나오면 그녀는 입을 다물었다. 귀로 상대방의 말을 다 알아듣지 못 해 표정은 점점 멍해져갔고 결국 빨리 헤어지기를 원하며 시간을 확인하곤 했다.

" 다른 음악 없어? "

 하고 그녀가 요청하는 일은 드물었다. 진은 그녀와 사귀며 밥을 먹고 영화를 보고, 또 연극을 보며 덕수궁이나 프랑스문화원을 돌아다녔으며 그러지 않는 더 많은 시간을 정독도서관의 잔디밭에서 보냈다. 나중에는 그녀가 다녔던 대학 캠퍼스의 호수 주변, 오래된 문과대의 허름한 외벽 아래 그리고 고전음악감상실에서 홀로 앉아 있는 그녀를 찾아내고는 했다. 그리고 학교 앞의 작은 찻집들을 찾아 전전했다. 주로 조용한 음악을 틀고 있는 곳으로.

그녀가 상대방에게 자신의 요구를 전하기보다는 빨리 헤어져 혼자가 되는 쪽을 택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기에. 진은 그녀가  떠나고 싶어하지 않을 만한 장소를 찾기에 집중했다.

아낌없이 주는 나무

샤갈의 눈 내리는 마을

어린 왕자

이런 제목의 간판을 달고 있는 카페들이 대체로 그녀의 취향에 맞았다. 크고 넓은 창과 함께, 테이블 구석엔 밤시간이 아니라도 곧잘 사용되는 낮은 촛대와 밝은 색깔의 초가 놓여있고.

그녀에게 가장 추천해서는 안되는 데이트코스는 스포츠경기 관람이었으며 두번째로는 액션영화였다. 그녀는 거의...고문을 견디는 표정으로 자리을 지키곤 했다. 그것도 꼭, 정말로 그 동행했던 사람과 헤어져서는 안되는 불가피한 목적성이 있었을 경우에만. 결국 그런 것들이 그녀를 사람들과 자연스럽게 어울리게 할 수 없는 요인이 되었다. 너무나 어색하게 참고 있는 그녀를 사람들은 편하게 느끼지 못 했으므로. 티비 앞에서 그녀는 시선을 멀리 혹은 빗겨두고는 했고, 드라마 속의 배역들을 변별해 내지 못 했으며 주변사람들의 수다 중에 등장하는 이름이 극 중 인명이 아닌 연예인의 이름인 것 때문에 더욱 혼란스러워했다. 결국 티비보기를 포기하고 노래방가기를 꺼려하고 담배를 피울 수 있는 곳이 아닌 술자리를 기피하는 그녀는 학창시절 이후에도 편하게 알고 지내는 지인을 얻지 못했다. 거기다...남자의 완력과 여자의 순종, 돈 벌어오는 기계와 같은 남편과 하녀처럼 가사서비스에 몰입하는 부인들을 보면서는 결코 그네들과 말 나누기를 하지 못 했다. 그녀가 누구와 대화할 수 있겠는가. 자신의 집에서도. 결혼한 시댁의 사람들과도. 그들과 같은 사고방식을 가진 남편과 공유하는 자신의 집에서도. 그녀는 항상 혼자 있고 싶어했다. 열 아홉살에도, 그 이후에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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습작 - 열 아홉의 그녀

여성은 불안하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신에게 여자로 태어나지 않게 해 주신 것을 감사하다고 했다던가.

 

그녀를 뒤에서 안는 것은 금지되었다. 이수 때문이 아니라 그 이전에.

진이 그녀에게 다그쳐 묻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은 그녀의 불안증과 비명과도 같았던 그 외침이 자꾸 마음에 남았기 때문이었다. 넋을 놓고 잠들지 못 하는 그 수면장애와 함께.

 

" 왜 그러니? "

그녀의 어깨에 한 팔을 두르면서 초딩 때부터의 동무인 양 물었다. 그녀의 친구, 기억하는 한 집에서 학교 가는 길 중간 어디쯤에 집이 있었다는 5학년 때의 친구는 두 명이었다.

한 명은 골목과 골목을 누벼 한 가운데, 다른 한 명은 큰 길 가까운 아담한 단독주택에. 골목 속의 집도 단독주택이었으나 가내공장을 하시는 아버지와 함께 엄마, 언니들, 그외에 한둘 더 있는 여공들 사이에서 그녀는 동무와 함께 부엌 위 다락방에서 놀았다고 했다. 열 두어살 먹은 계집아이들이니 소꿉놀이를 한 건 아니고 주로 만화책을 함께 봤었다던가. 그 친구와 무얼 더 했는 지는 기억에 없다고, 저에게는 좋아하는 만화책을 함께 읽고 얘기 나눌 수 있는 것이 좋았었다고, 같은 반에 또 다른 아이가 한 명 같은 만화를 즐겨 보며 다음 편이 언제 나오는지 출판사로 전화를 하기도 하던 여자애가 있었지만 그 애와는 친할 수가 없었다고. 부티나는 차림새와 사람을 깔보는 듯한 말투로 얘기하는 그애와 저는 누가 더 공부를 잘 하나 하는 걸로 비교되긴 했으나 친하지는 못 했다면서. 만화 좋아하는 애들이 공부도 잘 해. 하는 말을 하던 그애보다 마당까지 평상과 지붕을 이어놓고 요꼬기계를 늘어놓은 사이로 만화방에서 빌려온 꾸러미를 가슴에 안고 통과하여 다락방으로 기어올라가 함께 배깔고 만화를 봤던 그 친구는 공부를 못 했는데, 친하기는 쉬웠다고.

아담한 쪽의 단독주택에 살던 친구의 이야기는 별로 하지 않았지만 진은 자신과 중학시절 같은 반이었던 그 애에 대해 이야기하지 않는 그녀를 이해했다. 초등학교의 친구가 중학시절까지, 그래서 사춘기적 감성으로 계속 벗이 될 수 없었던 것에 대해 그녀는 편하게 추억하지 못 했다.

 

" 중학교 때 별로 친하지 않은 동급생이 우리 동네에 살았는데. "

그녀는 너도 보아서 알지 않느냐며 자신의 집은 시장통에 있는 상가건물이라고. 시장통을 조금 벗어나면 조용한 주택가가 있는데. 하면서.

거기 줄 지어있는 낮은 단독들 중의 한 집이 그애네 집이라고. 자신이 알게 된 건 장사를 하시는 부모님이 그 집딸이랑 같은 학교라며? 하시더니 같은 반이라며? 하시더라고.  서로의 부모님들이 동네 이웃이지만 주택가의 회사원 혹은 전업주부와 시장통의 장삿꾼 내외와는 별로 왕래가 없었다고. 그 가게에 뭘 사러 혹은 왜 우리 가게에 안 오나. 하는 둥의 혼잣말을 하는 경우 외에는.

진은 이 애가 왜 그 친하지 않았던 중학시절의 동급생 이야기를 하나 싶었지만, 그냥 참고 들었다. 왜 그녀가 뒤에서 불쑥 나타나는 사람 그림자에 그렇게나 놀라는 지, 놀라고 나서 안전을 확인한 후에 그렇게나 슬퍼하는지.

" 그 집 앞에서 어떤 남자가 뒤에서 확 껴안는거야...."

" 그런 일이 있었어? "

진은 가슴을 꾹 누르며 짐짓 태연하게 말을 받아주었다.

" 대문이, 왜 지붕이 있어 화분이나 뭐 채소같은 걸 심기도 하쟎아. 장독대랑 이어서. "

" 응, 그래. "

" 그래서 대문 앞에 구석진 곳으로 서 있으면 잘 안 보여. 거기 사람이 있는 줄 몰랐는데...어두워서...새벽이었거든. "

" 새벽에 왜? "

왜 새벽에 골목길을 돌아다니냐구...진은 머리가 아프다. 이 애가...다 자란 처녀 아이가.

" 새벽에 왜 그 집 앞을 지나갔는데? "

그녀는 아니 뭐. 하면서 주저주저하더니 생긋 웃어보인다. 밤산책이 이어져서. 라는 말이라도 할까 싶었으나.

" 신문배달 하느라. "

" 신문배달? 네가? "

그녀는 이젠 내어놓고 웃으며 어색함을 얼버무리려 한다. 왜? 내가 키가 작으니까? 하고 따질 것 같은 눈으로.

" 여자애들도 많이 해. 고등학생들이나, 뭐 남자애들은 중학생들도 하쟎아. "

" 그래, 그래서? "

진은 그녀가 왜 신문배달을 해야 했는지도 의아했으나 그 새벽에 더 무슨 일이 있었는가에 침이 말랐다.

" 아냐, 별 일 없었어. "

" 그래? "

" 응, 내가 놀라서 소리를 빽 질렀더니 그...남학생도 놀랐는지 금방 도망가더라구. "

" 남학생이었어? "

" 응. 고수머리의, 고등학생이나 아님 재수생? 뭐 그런 것 같던데. 그냥..."

그녀는 잠깐 생각하더니 이어 말했다.

" 신문배달은 되게 일찍 시작해. 거의 한밤중에 보급소에 가서 신문을 받아다 난 몇 부 안 되어서 다 돌릴 때 쯤에 겨우 새벽빛이 조금 대문들의 색깔을 알아보게 해 주거든. 그 남자애는..."

진은 말대답해 주는 걸 잊었다.

" 내가 모자도 쓰고 점퍼에 바지입고 긴 머리도 잘 안 보였는데, 키가 작아서 여자애라는 걸 눈치챘나 봐. 아마...미리 거기 숨어서 기다리고 있었는지..그냥, 여자애를 한 번 안아보고 싶었던 가 봐. 근데 소리를 지르니까 너무 놀랐나 보더라구."

그녀는 어색하게 웃으며 내가 비명지르면 좀 찢어지는 목소리지. 하면서.

진은 웃음이 안 나온다. 뭐라고 대답 치기도.

" 큰일날 뻔 했네. "

" 응. "

그녀는 바로 그 신문배달을 그만 두었다며. 여자애들은 너무 불안해. 하고 중얼거린다.

 

" 신문배달해서... 돈 벌어서 뭐 할라구? 학생이? "

" 글쎄... 유흥비 마련? 학생이니까? "

하면서 막 웃는 그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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