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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산> 걷고 또 걷다.

아무래도 주말이 걸리지만 별로 할 일도 없는 항주에 하루 더 묵기가 싫어져 그냥 황산으로 떠나기로 한다. 하긴 남들은 하루밤 자고 떠나는 곳에서 사흘이나 머물렀으니 떠날 때도 된 것이다. 서부버스터미널로 가서 툰시행 버스표를 끊는다. 황산 바로 입구 마을은 탕구라는 곳인데 툰시에서 한 시간 반쯤 떨어져 있는 곳이다. 굳이 한시간 반이나 떨어진 곳으로 가는 이유는 기차역이 툰시에 있기 때문이다. 중국은 기차표 구하기가 쉽지 않아 언제든 도착하자마자 기차표부터 구해 놓으라는 조언을 이래저래 들어온 터다. 국경절이 아직 일주일이나 남았는데 국경절 탓인지 아님 원래 중국의 기차표 사정이 그런 건지 원래 떠나려던 날 표도 그 다음날표도 심지어 그 다음날 표도 메이요우(중국에서 들을 수 있는 가장 절망적인 말로 없다는 뜻이다)다. 단지 있는 건 딱딱한 의자밖에 없다는데-중국 기차는 말이지, 같은 기차에 칸이 다른 네 종류의 좌석 또는 와석이 있는데 대략 가격 높은 순서에 따라 푹신한 침대-딱딱한 침대-푹신한 의자-딱딱한 의자로 나뉜단다-이 딱딱한 의자가 딱딱할 뿐만 아니라 등받이는 90도이며 심지어 입석도 있어서 한 서너시간만 가도 고문이라는 얘기가 가이드북에 나와 있다--:; 황산에서 구이린 까지 22시간..차라리 수수료를 내자 싶어 기차역 근처 여행사를 찾아가 봐도 이상하게 기차표는 취급하지 않는단다. 그렇다고 황산에 마냥 잡혀있을 수도 없어 일단 차장에게 딱딱한 침대가 있으면 바꿔 달랠 요량으로 딱딱한 의자표를 끊는다. 


상해에서 쑤저우로 올 때 탔던 푹신한 의자차. KTX보다 쾌적하다. 얘라도 있으면 좋으련만 쩝..  

 

황산에 도착한 날이 금요일이니 담날 황산을 올라가려면 사람들이 그리 피해야 한다는 주말을 끼고 올라가게 되는 셈이니 하루정도 툰시나 둘러보리라 생각하고 있었는데 막상 아침이 되니 그냥 올라가고 싶어진다. 어차피 내려오자마자 씻지도 못한 채로 기차를 탈 일도 꿈만 같고 무엇보다 매도 먼저 맞는 게 낫다고 하루종일 산에 올라갈 걱정을 하는 것 보다야 그냥 오르는 게 속이 편할 것 같다는 게 솔직한 심정이다. 부랴부랴 슈퍼에 들러 물이랑 사발면, 과자 등속을 사고 나오다 36원(한 5,000원쯤 될거다)짜리 가짜가 너무나 분명한 아디다스다(아다디스거나 아도니스가 아니라 아디다스라고 쓰여있다^^) 가방을 집어든다. 짐은 만드는 게 아니랬는데 여튼 비닐 봉투를 들고 올라갈 수야 없는 터.. 정 안되면 쓰고 버리지는 마음으로 가방을 산다.


황산입구에서 드디어 만들어 두었던 비장의 무기! 가짜 학생증을 꺼낸다. 성인입장료 200원, 학생은 반값인 100원이다. 표 구입까지는 무사히 끝났는데 입구에서 다시 학생증을 보잔다. 모자를 푹 눌러쓰고 학생증을 꺼내 주었더니 이 아저씨, 나 한 번보고 학생증 사진 한 번 보고 계속 고개를 갸우뚱 거린다. 안다 알어 나도 미안하다야.. 그치만 니네 입장료가 좀 비싸야 말이지.. 생글생글 웃으며 이거 나 맞아요.. 했더니 급기야 이 아저씨 너 몇 살이냔다. 가만있어보자 학생증 출생연도가 82년생으로 돼있으니까 내가 몇 살이냐? 갑자기 계산이 안 돼 그냥 트웬티 세븐하면서 나도 무지 찔린다. 뭐 아저씨 할 말은 많은 것 같은데 영어는 짧고 어쩔 수 없이 보내주면서도 영 개운치 않은 얼굴이다.


황산은 입구부터 정상까지 아니 반대편 하산로까지 모두 계단으로 되어 있다. 이중 좀 덜 힘들다는 구간이 서쪽으로 올라 동쪽으로 내려오는 건데 양쪽 모두 케이블카가 다닌다. 이 케이블카의 유혹이 만만치 않았지만 가격도 넘 비싸고 무엇보다 한번은 올라줘야 한 십년은 자랑할 수 있으리라는 얄팍한 계산에 그냥 걸어오르기로 한다. 케이블카로 10분이면 오른다는 운곡사에서 백아령까지 구간을 그냥 계단만 따라 두시간 반을 오른다. 다리는 그간 걸어다닌 덕을 봤는지 견딜 만한데 숨이 차서 오르기가 쉽지 않다.  담배를 끊든가 해야지 원 하다가 산을 끊는 게 더 낫겠다고 생각을 고쳐먹는다.^^한삼십분은 정말 죽을 것 같더니 한 시간을 지나치니 그냥 아무 생각이 없이 걸어진다. 산 입구부터 자욱하던 안개는 갈수록 심해져 그나마 경치라도 보면서 가면 위안이 되련만 그저 올라가는 계단만 분간될 뿐이다. 주말이라는데 사람이 별로 없네 하면서 오르고 있는데 웬걸 케이블카 내리는 곳을 지나자 한국, 중국 할 것 없이 단체 관광객이 떼로 몰려 다닌다.


 

이런 계단이 계속된다. 

 

숙소 역시 메이요우다. 그저 주말이면 좀 비싸려니 했지 숙소가 없을 거라곤 미처 생각을 못해서 잠시 당황이 된다. 게다가 여기는 산꼭대기이고 내가 아는 숙소는 두군데 뿐인데 둘다 메이요우라면 어쩌란 말이냐.. 갑자기 비박..노숙 따위의 단어가 떠오르며 몸이 굳어지더니 한국단체관광 온 아줌마들한테 사정을 해 볼까 별 생각이 다 난다. 다행히 앞서거니 뒤서거니 올라온 중국학생들이 사정을 눈치채고 자신들에 숙소에 사정을 해서 넣어준다. 아마 외국인은 못 묵는 곳인 것 같은데 뭐 모양새도 비슷하니 들통 날 염려도 없고 노는 침대에 돈 받으니 누이 좋고 매부 좋은 셈이어서 숙소측에서도 굳이 마다하지는 않는 눈치다. 어쨌든 친절한 중국인들 덕분에 비박 신세는 면하게 되었으니 신세를 톡톡히 진 셈이다.


미리 사들고 온 신라면 사발면으로 저녁을 때우는데 헉 사발면이 이리 맛있어도 된다는 말인가. 라면 먹다 울 뻔했다^^일회용 커피까지 한 잔 마시고 이미 해가 진 숙소 주변을 배호하다 돌아와도 시간은 일곱시가 조금 넘는다. 화장실에서 대충 세수만하고 발을 물휴지로 닦고 잠자리에 든다. 도미토리 20인실은 저녁 8시 30분에 불이 꺼진다. 산꼭대기에서 딱히 할 일도 없고 아침 일찍 일출도 봐야 하니 일찍 자자는 것인데 아무리 고된 길을 올라왔어도 8시 30분에 잠이 드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불끄면 잠은 오게 되어 있다.^^


20인실 도미토리의 일부. 일층에서 자는 사람이 몸을 뒤척이면 그 진동이 고스란히 온 몸으로 느껴진다.

 

일출지점이 어딘지 몰라 그냥 중국인들을 따라나선다. 아직 캄캄한 산길을 손전등 하나에 의지해 한 20분이상 올라간다. 일출이고 뭐고 그저 주저앉고만 싶다고 생각할 무렵 일출지점에 도착한다. 내 생애 일출을 본 건 딱 한번이다. 사오년전 정동진 영화제에 갔다가 술 먹고 본 일출이 유일무이하다. 그렇게 많이 갔던 동해에서도, 수학여행에서도, 심지어 제주도에서도 해는 그 모습을 보여주지 않더라는 얘기다. 그.런.데. 황산에서 일출을 본 것이다. 기대가 과했는지 해 뜨기 전까지 에이 사진만 못하네.. 해가며 시건방을 떨다가 막상 해뜨는 모습을 보니 갑자기 숨이 멎을 것 같은 상태가 된다. 구름이 많아서 채 다 떠오르기도 전에 일부는 구름속으로 들어가 버리긴 했지만 해는 분명히 봉우리 너머에서 그 모습을 보여주었던 것이다.


 

 


 

대체 본 것의 반의 반도 보여줄 수가 없으니 카메라는 왜들고 다니는지 모르겠다.

 

내려오는 길-이라고 생각했던 건 나의 오산이었지만-은 날이 환하게 개여 있다. 푸른 하늘 너머로 구름에 싸인 봉우리들이 선명하게 제 빛을 드러낸다. 비로소 내가 황산에 와 있구나 실감이 나기 시작한다. 사실 내려오는 길이라 혼자 믿어 의심치 않았던 그 길은 정상으로 갔다가 내려가는 길이었던 것이다. 다시 네 시간동안 계단을 올라 정상에 다다른다. 이번에서 시시각각 다른 모습을 보여 주는 산의 자태에 그저 힘든 줄도 모르고 걷는다. 문제는 하산길인데 내려가는 계단이라 만만하게 생각했던 그 길에 다리가 말썽을 부린다. 그 많던 사람들은 모두 케이블카를 타고 내려갔는지 간혹 짐 나르는 아저씨를 제외하곤 올라오는 사람도 많지 않다. 그런데 내려가는 길에 다리가 거의 지 혼자 놀기 시작하는 상태가 된다. 이건 쉬어도 나아지질 않고 계단 하나를 내려가는 온 신경이 집중되는데 거짓말 쫌 보태서 차라리 올라가는 게 났겠더라는 말이다.


 

 


 

 


 

여기도 마찬가지.. 사진 좀 잘 찍었음 좋겠다.

 

여튼 황산이라는 큰 숙제를 마친 지금은 정말 숙제 마친 어린아이 같은 기분이다. 딱딱한 의자가 걱정되긴 하지만 뭐 숨이 차거나 다리가 풀리지는 않을 거 아니냐는 말도 안되는 생각으로 위안을 삼는다. 황산으로 오면서부터 슬슬 여행하는 맛이 나기 시작한다. 주변 풍광도 조금씩 달라지고 있다. 이제 사람들도 좀 찍고 싶은데 아직은 카메라를 들이댈 용기가 나지 않는다. 그리고 곧 국경절이다. 대체 표는 언제까지 없을 것이며 관광지에 사람은 또 얼마나 많을 것이며 물가는 또 얼마나 비싸질 것인지 도통 가늠이 되질 않는다. 안되면 이래저래 견디는 수 밖에.. 참 그 아디다스 가방 벌써 쟈크가 고장 났다는 사실을 마지막으로 알려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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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주> 조용한 호수의 도시

 

항저우에서의 첫날을 보내고 다음날 일찍 서호를 보러 나선다. 워낙 큰 호수라고 들어서 한바퀴 둘러볼 엄두는 못 내고 그저 호숫가를 따라 걸어 다닌다. 물가에 식당이나 매점 따위가 있긴 해도 산책로며 벤치같은 것이 깔끔하게 정리되어 있다. 게다가 중국인들의 생활필수품 자전거도 서호에 진입이 금지되어 오랜만에 느긋하게 거리를 걷는다. 한시간쯤 걷다보니 얼추 호수의 1/4은 돈 거 같아 보인다. 뭐야.. 별로 안 크잖아.. 다시 돌아가는 것도 어정쩡해 그냥 한 바퀴 돌아보기로 한다. 서호는 바다에다 제방을 쌓아 만든 인공 호수라는데 그 호수 가운데 다시 호수 강바닥의 흙을 긁어내 만든 바이디와 수디라는 둑길이 호수를 가르고 있다. 그 둑길 위로 놀며 쉬며 걸어다닌다.


 

 서호위로 한가롭게 떠다니는 배들, 사실 한가롭진 않고 열심히 고기잡이 중이다. 


 

 같은 날 서호

 

세시간쯤 걷다가 다리도 아프고 해서 유람선을 타기로 한다. 섬 가운데에 무슨 삼도라는 세 개의 섬 중 두개를 돌아보고 제자리에 내려주는 배인데 이 놈의 배가 첫 번째 섬에 내려주고는 기다리지도 않고 바로 떠나버리는 거다. 섬이라야 손바닥만한 곳에 호심정이라는 정자 하나만 달랑 서 있다. 다시 선착장에 갔더니 다른 배가 서 있고 끊었던 배표를 보여주니 그냥 타란다. 그리하여 다음 섬까지는 무사히 도착을 했는데.. 이 섬 역시 이전 섬보다야 약간 크지만 한 바퀴 도는데 십분이 걸리지 않는다. 게다가 온통 공사 중이다. -뭐 중국 전체가 공사 중인 것처럼 보이기는 하지만 말이다- 문제는 다시 배를 타야 하는데 내가 탄 곳으로 내리는 배가 뭔지를 모르겠더라는 것이다. 내가 탄 곳의 명칭을 알아야 적어라도 보여줄 텐데 것도 모르겠고 표를 보여주니 무조건 타란다.. 에휴 운에 맡기자 싶어 아무 배나 올라탔더니 운도 없지 이 배가 내가 한시간 반전에 걸었던 곳에다 내려준다. 


다시 걸을 엄두가 안나 택시를 탈까 하고 있는데 호수를 한 바퀴 도는 전동차가 눈에 뛴다. 대략 서울랜드 입구에 있는 코끼리차 비슷한데 레일은 없는 자동차라 생각하면 된다. 다행히 구간구간 사람을 내려준다. 두시간 전만해도 누가 저런 걸 타나 했는데 쾌재를 부르며 냉큼 올라탄다. 배 탔던 곳을 조금 지나 다시 걷는다. 어느새 날이 흐려지더니 호수 서쪽은 하얗게 물안개가 피어오른다. 서쪽에서 보면 더 이상 호수가 아니라 바다처럼 느껴진다. 이제 식당도 매점도 보이지 않고 몇몇 현지인들만 호숫가를 산책 중이다. 역시 같은 호수라도 시간에 따라, 날씨에 따라 혹은 마음에 따라 모든 것이 다르게 보이는 법이다.   


웬지 쓸쓸해 보이는 의자


 

어디서나 염장지르는 것들은 꼭 있다^^

 

다음날은 자전거를 탄다. 숙소에서 자전거를 빌려 자전거길이라고 나섰는데 도로 한 편에 줄만 그어놓은 길이다. 내 자전거 실력이야 그저 넘어지지 않고 달리는 정돈데 그것도 호수공원처럼 차 절대 없는 자전거 길에서나 가능한 수준이다. 그런데 이 곳 중국의 차들과 사람들은 교통신호 절대 무시.. 차도 인도 보도 안가림.. 등등을 이미 봐 왔던터라 사거리 하나만 지나도 등줄기에 식은 땀이 흐른다. 그렇게 삽십분 정도 가다가 정신을 차리고 보니 뭔가 이상하다. 왜 모든 자전거가 나를 향해 오고 있는 거지? 알고 보니 나만 역주행을 하고 있었던거다. 으.. 미안해라.. 근데 이 사람들 고맙게도 저쪽으로 가라든가 왜 이리 다니냐든가 뭐 그런 제스쳐 한 번을 안 한다. 횡단보도를 건너 반대편으로 달리니 자전거 타기가 훨씬 수월해진다. 조금씩 적응이 되는 것인가?


서호를 지나 영은사쪽으로 길을 잡는다. 중국의 도로는 안내판이 기가 막히게 잘 되어 있다. 어디나 이곳이 무슨 도로인지 동쪽인지 서쪽인지 표시가 되어 있는 것이다. 즉 지도가 있고 한자를 읽을 줄 만 알면 목적지까지 찾아가는 일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영은사를 둘러보고 다시 방향을 롱징차 마을로 잡는다. 지도상에는 그리 먼길은 아닌데 바로 가는 길이 없다. 일단 서호쪽으로 나왔다가 방향을 튼다. 엉덩이가 슬슬 아파오지만 자전거 타는 재미에 힘든 줄도 모르고 달린다. 그런데 롱징차 마을 가는 길에 산길이 버티고 서 있다. 롱징차마을로 간다는 버스가 다니는 걸로 봐서 이 길이 맞긴 한데 웬 산길 더구나 입구에 자전거 가지고 가지 말라는 표지까지 붙어 있다. 다시 돌아와 지도를 살펴봐도 이 길밖엔 길이 없다. 에이 설마 얼마나 멀겠어 하면서 경고를 무시하고 자전거를 끌고 산길을 오른다. 오르막이라 타지는 못하고 그저 끌고 산길을 오르는데 땀이 비오듯 한다. 그렇게 산길을 한 한시간이나 걸었을까 이번에는 한계령에서나 볼 수 있는-내눈에 그렇게 보였다는 얘기다^^- 구불구불한 오르막이 나타난다. 포기다. 올라갈 자신도 없을뿐더러 오는 건 또 어쩐단 말이냐.. 올라왔던 길을 다시 자전거를 타고 내려 가는데 스릴 만점이다.


 

 영은사 입구의 석불

 

 숙소로 돌아오는 길에 좀 더 남쪽으로 내려가 보기로 한다. 원래 갈 생각이 없었던 육화탑이라는 곳인데 탑 꼭대기에 오르면 도시 전체가 보인다나 어쩐다나 하는 곳이다. 육화탑 근처에 도착하니 강이 보인다. 서호가 아니라 첸탕강인가 하는 거의 한강보다도 큰 항저우의 주요 지류다. 이때쯤 그러니까 추석지나고 이삼일쯤 뒤에 만조에 의해 강물이 역류하는 모습을 보러 사람들이 많이 모인다고 하는데 원래 어디로 흘렀는지도 모르니 역류해도 별로 이상하지도 않다. 사실 강가에 모인 사람들이 역류 때문에 모인 건지 늘 그리 많은 건지도 알 수는 없다.^^


육화탑에서 내려다본 첸탕강

 

다시 자전거를 타고 까르푸로 간다. 스낵코너에서 가장 만만한 국수를 먹고 있는데 사람들이 먹는 음식 중에 우리네 떡국떡 같은 것을 간장에 야채와 함께 볶아주는 것이 보인다. 앗! 저것은 궁중떡볶기가 아니더냐.. 배가 너무 불러서 더 먹을 수도 없고 낼 아침에 다시 와서 먹자니 시간이 없고 아쉬움에 입맛만 다신다. 까르푸에서 과일이랑 몇가지 간식거리를 사서 숙소로 돌아온다. 그래도 안 다치고 돌아온 게 어디냐 안도의 한숨을 내쉬는데 나중에 보니 여기저기 멍투성이다. 그럼 그렇지.. 내일은 롱징차 마을만 버스로 둘러보고 황산으로 떠나야겠다. 이렇게 되면 황산 등반이 주말에 걸리긴 하지만 정 안되면 그냥 산 밑에서 하루 더 버티면 될 일이다. 근데 차마을로 가는 산길은 얼마나 더 올라갔어야 하는지 낼 버스타고 가면서 꼭 확인해 봐야겠다. 


롱징다원. 이리 큰 주전자며 다구 따위가 주위경관을 완전히 망쳐 주신다. 그리고 그 산길은 그때 포기하길 잘 했다. 그후로도 오랫동안 오르막이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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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주> 음... 소주 마시고 싶다.

  

 

여행오기 전 가이드북 무게라도 줄여보려고 책에서 필요한 부분만 분철해 왔는데 나중에 확인해 보니 쑤저우 부분이 덜렁 빠져 있다. 매번 상해-소주-항주를 세트로 놓고 분류하다보니 당연히 그 파트에 들어있을 줄 알았는데 얘가 나름 다른 지역이었던 모양이다. 어차피 한나절만 둘러볼 예정이라 인터넷에서 돌아볼 곳 몇 개만 받아 적고 내려서 지도나 하나 사야지 하고 있는데 마침 유스호스텔 로비에서 쑤저우로 가는 한국인 여행자를 만난다. 더 정확히 애기하면 중국에서 공부하고 있는 공무원의 부인인데 세살박이 아이와 같이 여행 중인 중국거주 한국인이다. 이런저런 수다 끝에 쑤저우로 동행하기로 한다. 마침 중국어가 가능한 사람이라 그저 가이드 앞세우고 가듯이 손쉽게 쑤저우에 도착해 따라서 숙소를 잡는다.


북경과 상해에 이어 세 번째 들어가는 유스호스텔인데 대도시와는 달리 사뭇 가족적이다. 리셉션 언니 오빠들도 어찌나 수줍음이 많은지 뭔가 부탁하는 내가 괜시리 미안해질 정도다. 마침 도착한 날이 추석이라 간단한 파티가 있다고 하는 걸 잠깐 야시장이나 둘러보고 들어가야지 하다가 버스정류장을 못찾아 두어시간 헤매다 보니 이미 너무 늦은 시간이다. 마침 내 동행도 아이와 함께 근처 공원 어디선가 하는 추석맞이 축제에 참가했다가 늦는 통에 파티는 무산되었지만 밤에 맥주 한 병씩 나눠 마시는데 월병이랑 오징어포, 해바라기씨, 계란 삶은 것 등의 안주가 줄을 이어 들어온다. 파티때 먹으려고 준비해 둔 음식이라는데 조금 미안해진다. 근데 이 숙소에는 손님이 우리 셋밖에 없다는 말인가? 여튼 6인실 도미토리를 셋이서 편하게 쓴다.   


쑤저우를 흔히 물의 도시라고 한다. 과연 그 명성답게 도시 전체를 운하가 감싸고 있고 일부는 도시 사이로도 물길이 열려 있다. 그 운하 사이로 관광객을 위한 보트며 청소하는 보트 따위가 오가는데 물은 그리 깨끗해 보이지는 않는다. 하지만 수상생활을 업으로 하지 않는 도시에서 운하를 보는 것은 꽤 색다른 느낌이다. 또한 북경이나 상해처럼 대도시가 아니어서 건물도 야트막하고 오래된 도시답게 가로수들도 모두 아름드리 나무라 색다른 운치가 있다. 보통 아침 일찍 쑤저우에 도착해 한나절 정원과 유적지만 둘러보고 가면 분명 실망할 것 같긴 하지만 머무르면서 찬찬히 여기저기 걸어다니면 어느 도시든 그 도시만의 매력을 느낄 수도 있을 것 같다.    



 

 쑤저우 시내(라기 보단 약간 변두리)


 

 도시를 운하가 감싸고 있다

 

뭐 그렇다고 해서 내가 정원이나 유적지를 안 갔느냐 하면 아직 유적지 관람병이 완치된 게 아니므로 당연지사 하루의 유적 관람 스케쥴을 짠다. 차이가 있다면 먼저 가이드북을 보고 꼭 가야할 곳과 가지 많아도 될 곳을 가려낸다는 것 정도일텐데 그래도 가야할 곳이 서너군데가 찍힌다. 그렇게 찍은 곳이 졸정원, 유원, 반문, 호구 네 군데인데 유원을 두고 고민에 빠진다. 유적 관람에 고민이 점점 깊어지는 이유는 첨에 언급했던 이렇게 유적지나 관람하며 다니는 여행이 과연 제대로 된 여행일까 뭐 이런 차원도 있지만 현실적으로 입장료의 압박이 만만치 않다는 것도 주된 이유가 된다. 걸핏하면 담장 막아놓고 기본이 20원, 30십원에, 비싼 곳은 60원, 70원이니 이렇게 서너군데 돌면 그 비용도 만만치 않아진다. 더 중요한 건 그게 과연 그 입장료의 가치를 하는 걸까 하는 것인데 내가 눈이 낮아서인지 뭐 별로 그 가치를 못하는 것들도 상당수 있더라는 것이다.


유원의 경우 북경에서 이화원 봤지, 상해에서 예원 봤지, 쑤저우에서 졸정원 볼 거지 근데 뭐 내가 대단한 정원 애호가라고 40원이나 내고 유원까지 볼꺼냐 하는 생각이었는데 헉, 그 놈의 가이드북에 따르면 유원이 이화원, 졸정원 등과 함께 중국의 4대 명원이라는 것이다. 그래 아무리 그래도 쑤저우 4대 명원도 아니고 그 넓은 중국에서 네 손가락안에 꼽는다는데 여긴 들어가줘야지 하면서 또 슬쩍 들어간다. 동남아 다니면서 우스개소리로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기준 너무 널럴한 거 아냐 했더니 중국문화유산 기준도 꽤나 널럴한 모양이다. 졸정원을 본 후라 그런지 사람이 좀 적다는 빼곤 별 차이점을 모르겠다.


 

 


 

위가 졸정원, 아래가 유원 - 비슷하지? 나중에 사진 정리하면서도 헷갈렸다.

 

가이드에게 귀동냥으로 들은 얘기론 졸정원의 정자 네 개 주변에 심은 식물에 따라 4계절을 표현하는데 이를테면 봄의 정자에는 복숭아 나무가 심어져 잇어 봄에는 도화가 피고, 가을의 정자에는 낙엽송이 심어져 있어 가을에 단풍이 든다는데  여름이나 그런지 그냥 줄창 푸르기만 해서 잘 구별도 안가더라는 말이다. 어디 졸정원뿐이랴, 유원도 비슷한데 정자마다, 나무마다, 창살 하나에도 사연도 많더만 아는 만큼 보인다더니 그저 잘 만든 정원이네.. 이런데 살았던 사람은 좋았겠다는 생각 이상이 안 드니 몰라도 너무 모르는 걸까.


쑤저우에서 가장 좋았던 곳은 반문이라는 곳이다. 이전에 군사적 이유로 쌓았던 성벽이 있는 곳인데 이제 그 성벽 안 쪽을 공원화 해놓은 곳이다. 성벽에서 내려다보면 아래로 수로가 흐르고 저물녁에는 서쪽하늘을 붉게 물들이는 노을도 볼 수 있다. 그러고 보면 내가 가장 좋아하는 건 공원인가? 북경에서도 북해공원이 아니 더 정확히 얘기하자면 북해공원 위쪽에 입장료 안 내고 들어가는 그 동네 공원이 가장 인상적이었고, 상해도 그저 강주변을 걷는 게 좋았던 것 같다. 모르겠다. 입장료를 안 내서 좋았던걸지도^^


 

반문에서 본 운하


 

 반문에서 본 해질녘

 

 그저 도시 분위기와 숙소 분위기가 좋아서 -인터넷도 로비 테이블에서 랜선이 바로 빠져 우아를 떨면서 할 수 있다. 물론 가격도 싸다- 예정보다 하루를 더 머물고 쑤저우를 떠난다. 수로 사이를 다니는 배를 타보고 싶었는데 혼자서는 쾌속선 밖에 탈 수 없단다. 이 조용한 도시를 쾌속선으로 달릴 일 있나.. 혼자 다니는 여행자는 할 수 없는 게 너무 많다. 아쉬운 마음에 항주로 가는 13시간짜리 밤배라도 탈까 생각하다가 이내 맘을 고쳐먹는다. 다들 후회할 거라고 말리는 코스다. 게다가 항저우까지는 버스로 두 시간밖에 안 걸린다. 버스는 또 다른 물의 도시 항저우로 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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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해> 대도시는 이제 그만

상해로 가는 밤기차는 생각보다 쾌적하다. 사람도 그리 많지 않고 2층과 3층 침대차 승객을 위한 -침대가 3층으로 되어있다- 좌석이 통로에 작게 마련되어 있어 계속 누워서 가야 하는 걸까 하는 고민도 말끔히 해소해 준다. 무엇보다 인건비가 싼 이 나라는 아직도 우리나라 70년대처럼 끊임없이 안내하는 언니가 오가며 쓰레기도 치워주고 화장실도 청소하고 뭐 기타 등등의 편의를 제공해 준다. 단지 상부라고 표시되어 있는 3층간의 경우 그저 눕는 것 외에는 할 수 있는 게 없고 당연하게도 진동이 장난이 아니며 행여나 자다가 떨어지면 순식간에 비명횡사할 가능성이 도사리고 있긴 하다. 그래서 그런지 이 상부의 티켓이 그중 저렴하다고 한다.  


 

 이 기차다. 3층에서 행여 떨어질세라 자다 깨다를 반복하며 무려 10시간 이상 버텼다. 뭐 밤 10시면 불을 끄기 때문에 딱히 할 일도 없다.

 

 상해에 도착하니 다시 한여름이다. 북경에서 내리는 비 때문에 제법 쌀쌀해져 챙겼던 긴팔 겉옷까지 껴입고 내리니 배낭 무게에 겹쳐 땀이 비오듯 흐른다. 대략 부산정도의 위도밖에 안되는 것 같은데 이게 웬 횡액이란 말이냐.. 당분간은 인도차이나 반도에나 가야 입겠지 했던 반바지를 꺼내 입어야 할 것 같다. 뭐 상해야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대략 짐작이 가는 정 안가게 높은 건물들이 나날이 올라가고 있는 대도시다. 한강보다 물살이 약간 세 보이는 황푸 강변에 서울의 63빌딩만한 건물들이 꽤 여럿 서 있는, 야경이 이쁘긴 하지만 뭐 한강다리 근처에서도 제법 만날 수 있는 그런 도시라는 말이다.


 

 그래도 야경사진 한 장.. 흔들린 건지 뭔지 모르겠지만..

 

 

이곳에서도 지도 한 장 들고 걸어다닌다. 북경은 그나마 반듯반듯한 도로 덕분에 버스타고도 헤매지 않고 돌아다녔는데 여기서는 그것도 여의치 않고 도시는 작은데 길 막히는 수준으로 봐선 택시비도 만만치 않게 나올 듯 하여 걷는 것 외에 다른 선택의 여지는 없어 보인다. 걸어다니면 좋은 건 시장이나 뒷골목 언저리에서 사람들 사는 모습을 잠시나마 엿볼 수 있다는 건데 상해도 예외는 아니어서 고층빌딩 뒤로 보이지 않던 사람들의 살림살이들이 드러난다. 그저 며칠 본 것에 불과하지만 상해가 북경보다는 빈부격차가 심해 보인다. 이상하게 거지도 노숙자도 상해가 훨씬 더 많다.


 

 여행자들의 사진에서 빠지지 않는 빨래 사진.. 나도 함 찍어봤다.

 

빨리 상해를 벗어나고 싶다. 그래도 북경은 대도시지만 사람사는 냄새가 조금이라도 느껴지는데 반해 상해는 나날이 발전해가는 천민자본주의 단면을 보는 것 같아 씁쓸한 느낌뿐이다. 게다가 여행 떠난 지 일주일 넘게 도시만 보고 다녔더니 이건 좀 아니지 이런 생각도 떨칠 수 없다. 하지만 쑤저우, 항저우, 황산으로 이어지는 다음 일정도, 아니 거의 모든 여행 일정이 관광지 위주로 되어 있으니 그게 그거인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빌딩 숲은 이제 당분간 그만 봤으면 좋겠다.


상해에서 가장 이쁜 정원이라는 예원인데.. 이 앞에다 무지 큰 쇼핑거리를 만들어 놔서 그저 사람들의 물결에 휩쓸려 다녀야 한다.



신천지라는 압구정동 카페거리쯤 되는 언저리에 있는 중국공산당 창당대회장소. 상해임시정부청사도 여기 어디라는데 론리플래닛에는 한줄의 언급도 없어 찾는데 실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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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과장을 만나다.

 

천진항에 내리니 김과장이 나와 있다. 대학동기인 김과장은 몇 년전부터 현대자동차 북경지사에서 근무 중이다. 자기 말로는 현대자동차의 주요 부품이라고 하는데 모든 부품은 교체 가능하고 또한 유효기간이 있다는 점을 그도 모르는 바는 아닐 터, 그러나 지금은 부요 부품으로써의 임무를 맹렬히 수행하고 있는 중이다. 북경이라는 한국과 비교적 가까운 곳에 있는 관계로 접대가 업무의 반일 그에게 내 방문이 또다른 짐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잠시 스쳤으나 80년대에 잠깐 유행했던 구호 하나로 지우기로 한다.

동.기.사.랑. 나.라.사.랑.

 

배에서 만난 여학생 세명과 나, 한사람당 10kg은 족히 넘을 배낭을 4개나 싣고 북경에 도착해 숙소를 정하고 나니 새벽 한시가 훌쩍 넘는 시간이다. 카스 대신 연경 맥주가 놓여 있다는 사실 말고는 서울과 별다를 바 없는 술집에서 간만에 이런저런 얘기를 나눈다. 주로 공통의 인물에 대한 안부에서 옛날 이야기로 이어지는.. 남들은 재미없지만 우리끼린 두고두고 곱씹어도 재밌는 이야기들이 오간다. 여행은 무슨.. 그저 반가운 사람과 만나서 노는 게 재일 재밌는 일인 것 같다.


자칭 내 오래비인 감과장은 말은 부럽다, 잘했다 하면서도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그도 그럴 것이 내 영어 안되는 거야 이미 오래전부터 일고 있었을 터.. 그렇다고 중국어를 하나, 아님 나이가 적길 하나, 뭐 하나 믿을만한 구석이 안 보이니 그도 그럴 만 하긴 하지만 말이 안되면 필답이라도 해라, 음식 종류라도 몇 가지 적어주마, 배낭은 또 왜 이리 무겁냐며 잔소리다. 하지만 이제 그놈의 한자는 이제 쓰는 게 아니라 그리는 거고.. 음식이야 설마 굶기야 하겠으며.. 그리고 내 배낭으로 말하자면 나 역시 뭐 그렇게 무겁게 지고 다니고 싶어서 일부러 무게를 늘린 건 아니란 말씀이다.


여튼 그녀석 덕분에 북경 근교를 차로 다니는 호사를 누리는가 하면 저녁마다 맛난 식사와 슬을 먹고 있다는 말이다. 더구나 술자리가 끝나면 음주운전이긴 하지만 유스호스텔 앞에 내려주니 이건 서울에서도 받아보지 못한 서비스가 아닌가 말이다. 배낭여행자가 여행 초기부터 이래도 되는지 심히 걱정스럽지만 내 배낭 여행은 아무래도 상해부터가 시작이지 싶다. 지금은 뭐 워밍 업 정도로 그저 북경에 패키지 여행, 그것도 디럭스급으로 왔다고 생각하기로 한다. 이럴 줄 알았으면 오기 전에 어디 다른 도시에 나가 있는 동기 없나 샅샅이 뒤져볼 걸 그랬나 보다^^.

 


 

김과장과 같이 찍은 사진을 올리려고 했으나 뭐 유부남의 사생활 보호차원에 이 한몸 희생하기로 한다. 용경협에서 김과장이 찍어준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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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경> 북경 패키지 5일

 

내게 여행이란 아직은 끊임없이 걷는 일과 끊임없이 보는 일 두 가지로 요약된다. 떠나기 전에 여행이라는 그림은 그저 휘적휘적 뒷골목이나 걷다가 길거리 음식이나 사먹고 맘에 드는 곳이 있으면 며칠이고 지겨워질 때까지 머물다가 떠나는 것이었다. 근데 이게 웬걸.. 막상 북경에서의 나는 하루종일 무언가 보러다니지 않으면 뭔가 놓치고 있는 것 같은 조바심에 가이드북에 나와있는 온갖 관광지를 다 돌아다니고 있다. 여행은 일년이라도 내가 북경에 있을 날은 어차피 사오일쯤인데 이것도.. 저것도.. 요것도 봐야 할 것만 같은 것이다.


덕분에 가이드북에 나와있는 친절한 5일 일정을 두루 섭렵하였으니

첫째날은 그렇다 치고(김과장과 놀았다)

둘째날은 천안문-자금성-북해공원-경산골목-후통

셋째날은 만리장성-명십삼릉

넷째날은 이화원

다섯째날 천단공원에 발마사지까지

(물론 저녁에는 저녁마다 술먹고 놀았다.)


한 일주일 죽어라 놀다가는 여행자가 하는 짓을 죄다 한 것이었다.

그러다 보니 얼마나 바빴는지 도무지 늦잠 잘 시간도.. 여행기 올릴 시간도.. 아니 메일 한 통 쓸 시간도 없더라는 얘기다. 이것도 여행의 과정이라면 과정일 텐데 아직은 뭔가 봐야한다는 욕심을 버리기가 쉽지 않다. 언제나 되면 시간에 대해서도, 공간에 대해서도 초연해 질 수 있을지.. 벌써부터 너무 많은 걸 바라는 지도 모르겠다.


 


 

아직도 내가 일산의 PC방에 있을지도 모른다고 의심하는 분들을 위해 누가 봐도 중국이 틀림없는 사진 두장 증거(?)로 제출함

 

북경 아니 중국에 와서 처음 느낀 것 <생각보다 ..하지 않네> 이다. 이를테면 바가지 생각보다 심하지 않네.. 사람들 생각보다 불친절하지 않네.. 물가 생각보다 비싸지 않네.. 등등 하기사 떠나기 전에 오죽 이런저런 소리를 많이 들었어야지.. 안그래도 걱정인 상태에서 이런저런 소리를 들으니 아마 지레 방어기제가 작동을 시작한 거 같다. 여튼 북경을 생각보다 건물과 도로가 크다는 걸 제외하고는 나의 모든 기대(?)를 저버린 곳이 되었다. 


어디나 사람사는 곳인데 이런저런 일들이야 생기기 마련이겠지만 그저 눈치껏 적응 가능한 수준이더란 것이다. 예를 들면 물 같은 경우 뭐 1.5원에서 4원까지 다양한 가격이 존재하는데.. 이게 유원지 가격인지 외국인에 대한 바가지인지 구별이 안 갈때.. 잠시 서서 현지인에게 받는 가격을 지켜보다가 아무말없이 딱 그만큼만 잔돈 내밀고 냉큼 물 집어들고 자리를 뜨는 정도의 센스^^만 있으면 된다는 것이다.


물론 몇가지 적응안되는 것들도 없지 않은데 대표적인 것이 파란불 빨간불 구분없이 도로를 질주하는 자동차, 자전거, 사람들이다. 근데 것도 가만히 보고 있으면 꽤 합리적인 구석이 있다. 그저 자기가 가도 괜찮다고 판단되면 언제든 도로를 건널 수 있는 것이다. 차 한대도 안다니는데 단지 빨간 불이라는 이유만으로 계속 기다려야 하는 일은 얼마나 불합리한가?  물론 여전히 도로를 건널 때 신경이 곤두서기는 하지만 적당한 신호위반의 쾌감을 온 몸으로 체득하고 있는 중이다. 뭐 담배꽁초 아무데나 버리는 쾌감도 만만치 않다^^


그래.. 다 사람사는 곳이다 생각하며 편안하게 맘 먹는 게 최고인거 같다. 가끔 내가 살아오던 것과 다른 규칙을 만나면 그저 이렇게 사는 사람들도 있구나 하면 될 일이다.


 

뜬금없이.. 적당한 사진이 없다 말이다.

 

 5일간의 북경일정을 마치고 저녁기차로 상해로 떠난다. 꼬박 14시간이 걸리는 기차여행이다. 기차를 이렇게 오래 타본적이 있었던가.. 북경을 떠나는 날 며칠간 오락가락하던 비가 하루종일 내린다.


 

 비내리는 북경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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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출발이다

떠나기 일주일 전부터 할일들과 민나야 할 사람들이 한꺼번에 밀어닥치기 시작하더니 떠나기 전날에는 절정을 이룬다. 결국 전날이 되서야 간신히 짐을 싸고 밤에는 다시 술자리 사이사이 연결 불량 외장하드와 사놓고 꺼내보지도 않은 전자사전 겸용 mp3의 프로그램을 까느라 격론이 이어지더니 이래저래 해결이 된다. 대체 떠나기 전에 내게 있었던 그 많은 시간 내내 내가 한건 도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처음 떠나니까 봐주는 거지 다신 이런 불량여행자에 대한 환송은 기대도 말라는 엄포에 준비기간 내내 제 일처럼 염려하고 챙겨줬던 사람들이 새삼 고맙다.


떠날 시간이다. 프레이야의 충고대로 표를 4인실으로 바꾸고 환송나온 사람들과 인사도 하는 둥 마는 둥 출국장으로 들어선다. 아직 배낭이며, 크로스백이며, 배에서 먹으라고 챙겨준 도시락 가방의 무게가 적응이 되지 않아 기우뚱거리다 돌아보니 사람들이 보이지 않는다. 순간 철렁한다. 이제 혼자다. 다녀야 할 여정의 무게가 조금씩 느껴지기 시작한다.

 


뭐 대략 이런 배라는..

 

4인실이긴 하지만 승객은 나 외에 한명뿐이다. 한때는 중국과 홍콩에서 장사를 하셨다는 50대의 멋쟁이 아주머니.. 중국에서 한국으로 왔다갔다를 백번은 했다는 그분은 일찌감치 잠자리에 드시고 나는 배안을 쏘다니기 시작한다. 뭐 상상한 거 보다 그리 크지 않은 이배는 10분면 내부 구조를 꿰뚫을 수 있을 만큼 구조 또한 단순하다. 추석맞이 보따리 아줌마, 아저씨들이 승객의 80%쯤 되는 것 같고 나머지는 학생이나 그냥 여행자 같은데 눈씻고 봐도 배낭족은 노란 머리 이외에는 보이지 않는다.


천진에 도착하기까지 여덟시간 가량 남아있다.

아직 내가 떠났다는 실감이 나진 않지만 적당한 긴장감과 설레임이 마음을 들뜨게 한다.

뭐 그것만으로 충분하지 않은가.. 걱정은 나중에 해도 늦지 않을 테니까.

 


 

 옆에서 보면 이렇게 보이기도 한다는..


 

a/s 잔천페리 4인실 되겠음/ 맞은편에 이층침대 하나 더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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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을 나서다 (D-1)

일산에서의 환송파-뤼를 위하여 집을 나선다. 사실 여행은 오늘부터 시작된다. 나는 오늘 한국에서 하루묵는 여행자인 것이다^^

 


 

 

집이 근사해뵈지만 죄다 사진빨인 것이다.

 

 


                                                                                                                                                                                    떠난다니 좋아들 하는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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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겠다.. 부럽다..(D-6)

요즘 가장 많이 듣는 말이다. 거의 모든 사람들이 언제 가냐고 묻고는 -뭐 가끔 잘 갔다왔냐고 넘겨짚는 사람도 없진 않다^^- 바로 좋겠다.. 하면서 정말 부러운 표정을 짓는다. 나도 누군가가 떠난다고 할때, 그것이 비록 이삼일의 짧은 여행일지라도 아마 그런 말을 해 왔을 것이다. 근데 사실은 말이다. 뭐 좋지 않은 건 아닌데 날짜가 다가올수록 그게 마냥 부러운 일만은 아니라는 생각이 자꾸 든다는거다.

짐을 싸면서.. 집이며 친구며 다 고만고만한 상황이라 어딘가 집을 맡겨 놓는 일도 결국 신세를 지는 일이 된다는 걸 생각하며 가급적 부피를 줄이려고 애를 쓴다. 이 경우 가장 좋은 방법은 버리는 건데 버리는 게 또한 나의 취미이자 특기인고로 마냥 갖다 버리다가 순간 정신이 든다. 그러면서 안 올것도 어닌데.. 이걸 버리면 돌아오선 어쩌지.. 하는데 까지 생각이 미치면 일년반이란 기간이 그리 긴 것도 아닌데 너무 많은 걸 정리하고 가는게 아닌가 살짝 우울해진다. 아디 짐뿐이랴.. 집도.. 일도.. 다시 시작하기엔 심지어 나이도 만만치 않단 말이다.ㅠㅠ

사람들을 만나면서.. 여전히 촬영을 하고, 편집을 하고, 영화제를 진행하고, 쌓여있는 과제들에 대한 토론회며 세미나에 대해 준비하고, 일상적으로 살아가는 고민을 하는 사람들틈에서 결국 돌아와야할 자리는 여기일텐데 뭐 때문에 그리 긴 기간 이 자리를 비우려고 하는 것일까 의문이 들때가 있다. 어제 술자리에서 선배한테 형, 일년반이라는 기간이 그리 긴 건 아니지만 미디어운동은 그래도 많이 달라져 있겠죠? 했더니 그 양반 눈치도 없이 아마 전체 지형이 달라질거며 한마디 덧붙인다. 액트 과월호 읽으며 공부 좀 해야 할껄.. 헉.. 갔다오면 바보 소리듣는거나 아닌지 모르겠다.

무엇보다 떠나려고 하니 조금씩 두려워진다. 가장 두려운 건 가자마자 이렇게 외로울껄 왜 왔나.. 하면서 여행에 대해 회의를 느끼는 거일텐데.. 거의 모든 여행사이트 앞에 있는 왜 떠나는가 따위의 자기 다짐들이 그저 의례적인 수사로만 보였는데 이젠 그런 다짐이라도 해야 하는게 아닌가 하는 소심한 생각이 머리를 쳐든다. 아무런 기대도.. 바람도.. 갖지 않겠다고 생각한 게 욕심일지도 모르겠다. 사실은 아무것도 변하지 않을꺼야란 생각은 아무 것도 변하지 않을까봐 두려운 것의 다른 표현일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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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주일 남았다(D-7)

도대체 사무실 그만두고 두달간 무었을 했단 말인가. 멀게는 학교때 시험부터, 가깝게는 직장생활때 보고서 제출까지 전인생이 벼락치기의 연속이란 말이더냐. 여행준비까지도 벼락치기라니.. 평생 이러고 살지 싶다.ㅠㅠ

첨엔 집이나 빠지면.. 하고 탱자탱자 놀았고 담엔 뭐 떠나는 일정이야 조정 가능하잖아.. 하면서 여유만만이었고 떠나는 날을 정하고 나선 뭐 어찌 되겠지.. 하는 심정이었는데 이젠 큰일났다 하는 불안감이 엄습한다. 이삼일전부터 해야 할 일과 사야할 것의 목록을 정리하고 한줄씩 지워나가고 있는데 목록상이야 대략 한줄이지만 그게 하나 처리하는데 반나절씩 잡아먹는 것이다. 뭐 국제현금카드 해도 그렇다. 목록상에서야 "국제현금카드 만들기" 한줄이지만 일단 어느 은행 만들어야 하나 검색하는데 한두시간, 은행 두세곳 가는데 두세시간-우리동네엔 농협 밖에 없어 버스타고 나가야 하는 상황이다- 그나마 우리은행은 바로 만들어 주지도 않더라는 말이다. 누가 여행은 꿈꿀때가 더 아름다운거 같아요.. 같은 귀신씨나락 까먹는 소리를 했단 말인가. 꿈꾸는 것에 실제 준비가 포함된다면 결코 동의할 수 없다.

오늘도 "적성검사 연기 및 국제면허증 발급" 한줄을 지우기 위해 오전 한나절은 날아갈 거고 오후엔 일요일에 나갈 짐들을 싸느라 땀깨나 흘려야 할 판이다. 게다가 오늘 내일 저녁은 이틀 연속 환송회를 빙자한 술자리가 있다. 평상시 행태로 미루어 보면 그건 곧 내일과 모레는 오전이 없다는 말이 된다^^. 여행 정보도 정리해서 가야 하는데.. 대략 북경에 도착이야 가능하겠으나 그 뒤에는 PC방에서 살아야 할 판이다. 뭐 그건 그거고 여기서 정리해야 할 일들이나 빼먹지 말았으면 좋겠다. 이러다가 배에서 자다 벌떡 일어날지도 모르겠다. 아.. 그거 처리 안하고 왔는데 하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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