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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여행경비 총정리

 

다들 아실 것이다. 여행오기 전에 내가 하던 일들 중 가장 시간을 많이 잡아먹었던 일이 무엇인지.. 그건 바로 돈 계산하는 일이다. 뭐 많게는 일년에 십억 정도는 가뿐하게-뭐 꼭 그런 건 아니지만^^- 맞췄다. 그것도 입출금 건수가 하루에 거의 백건이 육박하는 상황에서 말이다. 맞다. 잘난 척 좀 했다. 용서하시라.. 심심해서 그랬다. 여튼 그게 습관이 됐던 건지 아님 그전부터 있던 습관이 일이 된 건지는 확실히 모르지만 누구처럼 일기 끝에 매일 쓴 돈을 고백하지는 않았으나 저녁마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문서인 엑셀을 가지고 꼬박꼬박 여행 경비를 정리하지 않았겠는가 말이다. 물론 필터로 검색이 가능하도록 분류까지 했다. 계속되는 잘난 척을 이해하셔야 한다. 난 너무 심심하다.


먼저

중국비자 35,000원

인천발 천진행 배표 130,000원

그 외 중국에서 35일간 쓴 돈 5,610.1위안(*130=729,313원)


그럼 분류 들어가 보자.

많이 쓴 비용 순서대로 나열해보면

1등은 교통비 되시겠다. 1391.5위안(*130=180,895)

2등은 간발의 차이로 숙박비 1270위안(*130=165,100)

3등은 각종 관광지 입장료, 역시 만만치 않다. 1187.5위안(*130=154,375)

4등은 식대 및 간식 그리고 음료 852위안(*130=110,760) 먹는 건 저렴하구만!!

그 외 잡비들

담배 및 맥주 321(*130=41,730)

인터넷 177(*130=23,010)

생필품 143.9(*130=18,707)

말 그대로 잡비 : 세탁, 마사지, 전화, 엽서 등등 267.2(*130=34,736)


종합해보면 전체적으로는 90만원쯤 든 것으로 계산이 나오지만 아마 환율, 환전수수료나 ATM수수료 등을 고려해보면 그보다 이삼만원은 더 썼을 것으로 생각된다. 이것도 뭐 사이트 들어가 보면 정확한 계산이 나오겠지만 현재 인터넷이 안 되는 관계로 필요하면 알아서들 확인하시라.


정리하자면 배값이나 비자피 등을 제외하면 35일간 73만원 쯤 쓴 셈이니 하루에 2만원이 조금 더 든 셈이다. 원래 중국은 하루 3만원 쯤 생각하고 있었는데 생각보다 저렴하게 다닌 셈이다. 많이 절약된 부분은 결국 숙박비로 도미토리만 다닌 덕이 아닌가 싶다. 의외로 싼 식비가 한 몫 거든 것도 빼놓을 수 없겠다. 단지 중국의 관광지 입장료는 물가대비 넘 비싸다--;:


궁금한 점 문의 환영!!!

마지막으로 퀴즈 하나! 내가 중국에서 젤 많이 쓴 영어 문장은 무엇일까?

힌트!! 문장에 주목하사라. 내가 구사할 수 있는 있는 영어문장 몇 개 안된다.


마지막으로 보너스!! 팬들의 열화(?)와 같은 요청에 힘입어 사진하나 올린다.. 나다.


아... 심심하다. 이상 끄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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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린> 경계의 안과 밖

중국에서의 마지막 관광지가 될 스린을 다녀온다. 이곳이 쿤밍에서 아마 가장 유명한 관광지일 텐데 버스로 한두 시간 가량 가면 있는 곳이다. 숙소에서 70원짜리 투어를 판매하고 있는데 가격도 가격이지만 말도 안 통하는 웨스턴들 하고 섞여서 가기도 싫고, 정해진 시간에 돌아와야 하는 것도 내키지 않아 그냥 로컬 버스를 타고 가기로 한다. 동부터미널에서 8시 30분에 떠나는 버스를 타기로 하고 조금 서둘러 유스호스텔을 나선다. 물론 오늘도 일등으로 방을 나서는 사람이 된다^^ 그래도 제법 유명한 관광지로 가는 버스인데도 관광객으로 보이는 사람은 하나도 보이지 않는다. 죄들 투어로 다녀오는 모양이다. 터미널에서 내려서 다시 버스로 갈아타고 10분쯤 달리니 석회암 기둥들이 조금씩 보이기 시작한다.


다시 가짜학생증을 이용하여 학생표를 끊고 입장한다. 뭐 여기도 입장료가 너무 비싼 관계로 (성인80원/학생55원) 죄책감 같은 건 느끼지 않기로 한다. 스린은 석림 뭐 영어로는 스톤 포레스트라는데 석회암의 돌기둥들이 무수히 서 있는 곳이다. 바다 화석이 발견되는 것으로 봐서는 한때는 바다였을 거라는데 그 한때가 언제였는지는 모르겠고 잘 상상도 안 되지만 그저 물밑에 저런 바위들이 있었겠거니 하면 그도 그럴 듯해 뵌다. 여행 오기 전 주워들은 정보에 따라 관광지로 조성된 곳을 지나 무작정 걷는다. 공원 입구에 그리 많던 관광객들은 하나도 없이 사라지고 어느덧 혼자다. 그리고 앞뒤로는 무수한 돌기둥들뿐이다.



스린. 무수한 석회석 돌덩어리들이 지천으로 널려 있다.


그래도 지들이 만들어 놓은 길이니 가다보면 어디로든 연결이 되겠지 싶어 길을 따라 마냥 걷는다. 석회암 바위들은 끝도 없이 이어지고 도무지 되돌아 나갈 수도, 더 가기도 부담스러운 지점까지 그저 길은 한길로 이어진다. 조성된 관광지는 한참 벗어난 것 같고 한적한 길을 따라 걷던 재미는 약간의 불안감으로 변한다. 도대체 되돌아가기 전에는 이 석회석 돌덩어리를 벗어날 방법이 안 보이는 것이다. 게다가 돌덩어리 사이로 길을 조성해 놔서 어떤 곳은 빠져 나가기도 힘들만큼 좁거나, 가파른 계단을 사정없이 내려가 줘야 하는 경우도 있다. 사람들이 많을 때는 그렇게 그저 한적하게 혼자 있고 싶다가도 막상 아무도 안보이니 겁이 더럭 난다. 늘 그런 것 같다. 경계에서 벗어나고 싶은 욕구와 막상 벗어났을 때의 두려움은 항상 공존하고 그 때문에 제대로 경계 안에서는 바깥을, 밖에서는 안을 꿈꾸는 것 이 아닐까?

 


 


얘들이 생각보다 붙어있어선지 스린 속으로 들어가면 바로 방향감각이 상실된다. 


결국 그 지역 소수민족이 산다는 마을 언저리까지 갔다가 왔던 길을 되짚어 나온다. 그래봤자 입장료 받는 넓은 테두리 안쪽일 텐데 제법 먼데까지 온 것 같은 뿌듯한 마음이 든다. 그리곤 온 길을 되짚어 나온다. -그길 밖에 없더구만- 조성된 관광지와 그 밖의 경계선 근채의 풀밭에 앉아 가장 편안한 마음으로 앉아서 한참을 쉰다.  적당히 가깝고 적당한 먼 자리.. 그쯤이 가장 편안한 지점이 된다. 뭐 경계가 안 보일 때 까지 멀리 나가는 건 이제 불가능한 일이 아닐까 싶다. 뭐 그게 나라면 것도 어쩔 수 없는 일이다. 단지 그게 나라는 걸 너무 늦게 깨닫는 게 문제이긴 하지만^^ 그리곤 스린을 빠져 나온다.


 


이 돌들 사이에서도 벼며 옥수수가 자란다. 멀리 민가도 보이고..


내일이면 베트남으로 간다. 원래 일정이 불분명했던 중국이었지만 이럭저럭 계획대로 끝낸 셈이 된다. 기대보다 훨씬 좋았던 나라였다. 문제는 한달이 넘어가면서부터 뭘 봐도 그러려니 싶다는 건데 이 병은 나라를 바꾸면 치유가 되는 건지 점점 심해지는 건지 아직은 알 수 없다. 베트남이라는 나라가 심정적으로 사람을 많이 괴롭히는 나라라는 소문이 벌써부터 심한 스트레스를 준다. 허나 어쩌랴 길은 가야하고.. 헉 이건 아니다. 뭐 어차피 갈 길 이라면 매도 먼저 맞는 것이 낫다는 심정으로 간다. 바가지 까짓 꺼 너무 심하지 않은 선에선 써 준다, 거짓말 뻔히 보이는 농담 정도로 받아 준다, 뭐 이런 맘이긴 하지만 내가 베트남을 떠날 무렵에 생각보다 좋은 나라였다고 아니 그리 나쁘지 않은 나라였다고  말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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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쿤밍> 베트남 비자 받다.

 

누군가가 잠든 나를 깨운다. 눈을 떠보니 6시 20분, 열차는 벌써 쿤밍역에 들어서고 있다. 긴장이 풀리기는 했나 보다. 아무리 쿤밍역이 종점이라지만 승무원이 -아니 여긴 복무원이다^^- 깨울 때까지 자다니.. 주섬주섬 짐을 챙겨들고 내린다. 이제 새벽 공기가 제법 차다. 택시를 타고 차화빈관으로 간다. 기차에서 내내 차화빈관으로 갈까, 험프로 갈까 고민했지만 아무래도 택시기사가 험프의 위치를 알 것 같지 않다. 다행히 일곱 시 조금 넘은 시간인데도 체크인을 해준다. 자기도 뭣해서 그냥 샤워나 하고 베트남 대사관에 가서 비자 신청을 먼저 하기로 한다.


문제는 베트남 대사관의 위치를 모른다는 것인데.. 론리에는 쿤밍에는 아예 베트남 영사관이 없다고 나와 있는바 위치가 있을 리 만무하고 베트남이 대략 15일 무비자이다 보니 인터넷에도 대사관 위치에 대한 언급은 없다. 예전 하우아시아가 쓴 글에서 베트남 비자를 쿤밍에서 받을 수 있다는 정보만 믿고 그냥 베트남 대사관을 찾기로 한 것이다. 뭐 무식하면 용감하다고 정보가 없으면 없을수록 더 용감해지는 것 같긴 하다. 일단 도미토리 데스크에 묻는다. 근데 문제는 이 양반들 도무지 베트남이란 말을 못 알아듣는 것이다. 내가 아무렴 베트남 그랬겠는가^^ 나름 굴려서 비엣남 엠바시 어쩌구 해도 전혀 모르겠다는 표정이다. 그래서 비자 어쩌구 했더니 환하게 웃으며 나가서 왼쪽 골목으로 가면 있다는 거다. 그리 가깝다니.. 역시 위치가 좋은 곳이라더니.. 의외로 쉽게 찾아진다 하며 쎄쎄하고 돌아서는 데 뭐 베리 굿이라나 나이스 플레이스라나 하는 말이 뒤통수를 친다. 대사관이 아무리 친절해도 그렇지 뭐 베리 굿에다 나이스 플레이스씩이나.. 이상하다 하고 가보니 거기는 피.자.집.이었던 것이었다. 비자랑 피자랑 헷갈렸던 모양이다^^


여튼 대행의 유혹을 뿌리치고 우여곡절 끝에 베트남 비자를 신청한다. 생각보다 나오는 건 빠른데-2박 3일만에 나온다- 가격은 400원으로 만만치 않다. 아무래도 15일 만에 베트남을 주파하기는 힘들고 베트남에서 연장 신청하는 건 130달러라니 이 방법 밖에 없긴 하다. 베트남이란 곳이 좀 껄끄럽기도 하고, 남아 있는 중국 비자 일정이 아깝기도 해서 여러 가지로 머리가 복잡했는데 막상 비자를 신청하고 나니 이제 결정이 됐다 싶어 한편으로 편안해진다. 베트남에서 가장 먼저 가게 될 사파와 박하가 각각 토요 시장과 일요 시장이 유명하다니 금요일 밤차로 국경도시 하커우로 가서 토요일 아침에 국경을 넘어 사파로 들어가기로 한다.


베트남 비자 Valid from 15/10/2005 until 15/11/2005이 선명하게 찍혀 있다. 안 선명한 건 사진을 잘못 찍은 탓이래두--:;


그러면 쿤밍에 있게 되는 날은 사오일쯤 되는 셈이다. 새로운 도시에 도착하면 으레 그렇듯이 뚜벅이 투어로 하루가 간다. 뚜벅이 투어란 대략 가이드북에 있는 지도와 그 지도 안에서 이동 가능하다고 보여 지는 관광지들 사이를 걷거나 버스를 타고 이동하면서 시내 지리를 익히는 건데 종일 걷게 되는 경우가 많다. 뭐 쿤밍이라고 예외겠는가.. 거리 노점에서 파는 각종 먹거리와 좌판들에 넋을 놓고 다니다가 결국 남쪽 끝에서 북쪽 끝까지 마냥 걷는다. 이제 탑들도, 절들도, 호수도 시들해져 여기가 가이드북에 나온 거긴가벼.. 하면서 눈도장만 찍고 다니다가 갑자기 내가 뭐하고 있는 건가 싶은 생각이 든다. 발길에 채인다던 한국인 여행자 본지는 어언 삼주 가까이 되고, 매일 과묵한 하루하루를 보내면서 혼자 행복했다가 심심했다가도 한두 번이지 이렇게 언제까지 다닐 수 있을런지.. 대체 왜 다녀야 하는 건지.. 여행 시작하고 처음으로 돌아가고 싶다는 생각을 해본다.


시내 북쪽에 추이후 공원 이렇게 않아서 악기도 연주하고 노래도 부르는 팀이 꽤 여럿 있다.


 그러다 신나면 춤도 추고


 이 동네 아이들 안 같게 때깔이 심하게 고운 아이들


그래도 사람이 살 수 있는 원동력이란 게 시간이란 놈이라더니 담날 늘어지게 자고 났더니 약간 낙관적으로 변한다. 계림까지는 도미토리 인간들의 바지런함에 치를 떨었는데 이곳 쿤밍에 오니 게으름뱅이들이 많다. 일단 배낭이 커지고 -이건 장기여행자들이 많다는 것 일테고- 얘들이 전반적으로 지저분해 뵈더니 이 인간들 아침에 아무도 안 일어난다. 어찌나 맘이 편안해지는지.. 결국 9시 가까이 되서야 내가 일등으로 일어난다^^ 그래도 또 습관적으로 갈 곳을 만들어 나선다. 이번엔 쿤밍에서 약간 떨어진 서산이란 곳으로 버스를 타고 간다. 이제 로컬버스 타는 데는 거의 선수가 된 것 같다. 가이드북에 나온 대로 5번 버스 타고 가다가 6번 버스로 갈아타고 가는데 아무한테도 안 물어보고 그냥 목적지까지 갔으니이게 어찌 된 일인지 나도 모르겠다^^


서산은 쿤밍에서 15km 정도 떨어져 있는 덴이라는 호수를 끼고 있는 산인데 이 산 중턱쯤에 있는 석굴인 룽먼 즉 용문에서 바라보는 덴호수의 경치가 때.때.로. 환상적이라는 것이다. 이 서산에서 룽먼석굴로 들어가는 입구에 네얼묘가 있다. 론리에 의하면 네얼은 뛰어난 작곡가로써 현 중국의 국가를 작곡하였으며 공부를 더하기 위해 일본에서 러시아로 가던 중 익사하였다고 되어 있다. 그때 그의 나이는 23살이었단다. 그의 묘에는 인민음악가 네얼묘라고 되어있고 묘를 둘러싼 담벽엔 인민들의 투쟁의 모습이 부조되어 있다. 요절한 천재음악가와 혁명 그리고 이제 관광지가 된 그의 묘지 사이에서 묘한 아이러니를 느낀다. 이후에는 물론 룽먼 석굴도 갔으며, 거기서 덴호수도 바라보았고, 가이드북에 나와 있는 대로 덴호수를 가로지르는 작은 길을 찾아내려고 30분간 노력하다 포기하고 케이블카를 타고 덴호수를 넘어 운남에 산다는 26개 소수 민족을 박제해 놓은 민족원이라는 데도 가고 뭐 그렇게 하루를 보낸다. 


네얼묘. 동상 뒤로 그의 묘가 있고 그 뒤로 부조된 벽면이 둘러쳐져 있다.


시산 룽먼에서 바라본 덴호수. 저 호수 가까이서 봐도 물감 풀어놓은 듯한 초록색이던데.. 멀리서나 봐야 예쁘지 가까이서 보면 좀 섬뜩하다.


 민족원의 어느 소수민족 마을. 원래 민속촌이라는 게 그렇듯 몇 개의 구획으로 나눠 소수 민족들의 문화를 소개하고 있는데 무슨 동물원 구경하는 것도 아니고 좀 그렇다. 하지만 뭐 그 마을로 트레킹을 간다고 한들 뭐 다르겠는가. 다 그런거다.


여행이 한 달을 넘어서면서부터 자연스럽게 몸과 맘이 널럴해지기 시작한다. 고구마 왈 지나친 술은 간을 딱딱하게 만들고 지나친 경치는 마음과 눈을 딱딱하게 만든다더니 이제 어떤 관광지든 제법 특별하지 않으면 어떤 걸 봐도 그러려니 싶다. 관광지 구경이 아니라 여행이 하고 싶어진다. 근데 관광지 구경이 아닌 여행은 어떻게 하는 건지 아직 방법을 모르겠다. 그래도 낯선 길거리를 걷고 사람들을 구경하는 일은 아직 재미있으니 그렇게 다니는 거 아닌가 싶다. 아님 친구를 사귀어야 하나.. 그럴러면 동남아고 뭐고 다 집어치우고 필리핀에 틀어박혀서 영어 공부라도 몇 달 해야 하는 건가 하는 생각도 들고.. 여튼 몸 편하고 맘 복잡한 쿤밍에서의 며칠이 지나가고 있다.

 


그래도 먹는 일을 멈출 순 없다. 윈난 토속 음식 치궈지, 닭에 여러 가지 약초를 넣고 끓인 건데 몸에는 좋을지 몰라도 맛은 뭐 그럭저럭..


 

 


 이것 역시 윈난 토속음식 궈챠오 미센, 위의 쟤들과 국수를 뜨거운 국물에 담궈서 먹는 요리이다. 같이 넣는 부재료의 종류에 따라 가격이 천차만별이다. 국물은 비교적 담백한데 그 정도 국물 온도에 부재료들이 제대로 익었을까 약간 걱정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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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숙소 이야기

-글쓰기 전에 koooo와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쓰고 있음을 미리 밝힌다-


처음으로 해외여행이란 걸 갔을 때는 일행이 있었으므로 4인실 혹은 2인실 두개를 썼었고 그 담 두 번인가 혼자 갔을 때는 당연히 싱글룸에 묵었다. 길지 않은 여행이었고 캄보디아나 라오스 모두 에어콘 있는 싱글룸이래야 10불을 넘지 않는 가격이었다. 뭐 라오스의 경우는 느닷없이 일행이 생겨 더블룸에 묵은 경우도 있긴 하다. 그 정도면 가뿐하게 혼자 묵을 수 있는 정도의 가격이 아니겠는가. 하지만 장기 여행의 경우는 문제가 달라진다. 뭐 큰 맘 먹고 싱글룸으로만 다닐테야 한들 불가능한 일은 아니겠지만 그래도 여행 경비 중에 숙박비가 차지하는 퍼센테이지가 만만치 않은 고로 대략 다인실 즉 도미토리라는 곳으로 다니게 되기가 십상인 것이다.


이미 밝힌 대로 중국에 오기 전까지 단 한 번도 도미토리에 묵어 본 적이 없다. 따라서 도미토리에 대한 여러 가지 걱정들이 앞섰던 것이 사실이다. 뭐 처음 떠오른 생각은 얘들이 남녀 구분은 하나 뭐 그런 거였고 그 다음은 짐들이랑 뭐 이런 건 그냥 놓고 다녀도 되나 하는 현실적인 고민이었다. 뭐 가장 고민이었던 건 사실 그저 누군가와 같은 공간에서 살아야 할 때 오는 기본적인 불편함들을 참을 수 있을까였지만 그거야 또 안 참으면 어쩌겠는가. 결국 돈과 편안함 둘 다를 추구할 수야 없는 노릇이 아니겠는가 말이다. 여튼 그런 고민들을 안고 도미토리 생활을 시작한다.


중국에서는 싱핑과 룽성처럼 아주 작은 동네가 아니고선 전부 유스호스텔로만 다닌 것 같다. 유스호스텔이 기하급수적으로 늘고 있고 시설과 가격 면에서 나은 점이 많다보니 그런 것 같기도 하고 숙소에서 다음 숙소의 정보를 얻는 것도 유스호스텔끼리 가능하니 자연스럽게 그렇게 되는 것 같다. 한국에서 만들어온 유스호스텔증의 본전을 뽑겠다는 의지도 작용했을 테고.. 일년에 회비가 이만 오천원쯤 됐던 것 같은데 대략 하루에 한 오원 정도 할인된다. 고로 아직 본전은 못 뽑았다는^^


항저우 유스호스텔 숙소입구


이 유스호스텔 분위기가 동네마다 좀 다른데 아무래도 작은 도시가 좀더 가족적인 것 같다. 시설은 대부분 깨끗하고 침대는 주로 원목스러운 나무색이다. 이게 국제 유스호스텔의 권장사항인지 여튼 한참 때 우리나라 저학년 어린이방스러운 모습을 상상하면 된다. 샤워실이나 화장실 등속은 대동소이하다. 개인 짐들은 대략 사물함이 따로 있어 중요한 것은 거기다, 그렇지 않은 것은 그냥 참대위에 두고 다닌다. 가장 큰 차이점은 로비일 텐데 이것의 운영 방법에 따라 도미토리 문화가 확 달라지는 것 같다. 즉 로비를 개방하고 탁자 등을 갖추어 두고 DVD등의 시설과 음주 등을 편하게 할 수 있도록 하면 왁자하니 자유로운 모습들이 연출된다. 이런 분위기가 가장 좋았던 곳은 쑤저우와 구이린 정도였던 것 같고, 사람이 많고 일처리가 사무적일수록 이런 곳도 구획을 정해놓고 식사 인구나 음주 인구만 받기도 한다. 물론 가격도 비싸고.. 상하이나 항저우가 그랬던 것 같고..


차화빈관 휴게실, 눈치챘겠지만 글쓰다 찍었다. 노트북 보이나? 

 

여튼 인간들도 가지가지인데 북경에서는 그냥 한국 친구들 끼리 묵어서 별 불편함 없이 생활했었고 상해로 오니 그래도 남녀 구분은 하네.. 동양권이라 그런가 했었다. 그런데 항저우로 오니 이번엔 남녀 구분없이 온통 동양애들만 한 방에 몰아넣는다. 이번엔 색깔 구분이군.. 처음으로 코고는 얘들땜씨 잠 못 이루는 불상사가 생긴다. 뭐 내가 코를 골았는지는 나야 알 수 없는 노릇이니.. 대략 아니겠지 한다. 황산까지 오니 남녀불문, 색깔불문 선착순이 된다. 이게 구이린으로 오면 좀더 엽기적이 되는데 비수기다 보니 4인실에 대략 둘이 묵게 되는 경우가 많은데 드문드문 6일 있는 5일 동안 남자랑 둘이 잤다. 그중 마지막 2일은 팬티만 입고 자는 프랑스 아저씨랑 둘이 잤다는 거 아니겠냐.. 차라리 17인실이 낫지 이것도 보통 고문이 아니다.


계림 플라워 유스호스텔 4인실


또 인간들 왜 이리 일찍 일어나서 설치는 지 부스럭거리는 소리에 눈을 떠보면 대략 6시도 안된 시간에 나갈 준비들을 하고 있다. 그래도 들어오는 시간들은 늦어 낮에는 거의 혼자 있을 수도 있으나 이도 한 도시에서 오래 있을 경우 가끔 생기는 일이고 그나마 로비 따위가 영 편하지 않을 때 한해 생기는 일일뿐 나도 한 번 나가면 어지간해서는 잘 시간 전엔 잘 들어가지 않게 된다. 왠지 답답한 느낌도 들고 편안하지는 않은 듯 하다. 마지막으로 쌍쌍이 다니는 애들, 어지간하면 더블룸 쓰면 좋으련만 왜 이층침대 점거하고선 하나는 비워두고 좁은데서 둘이 자는 지 원.. 거 혼자 잘래도 이층에서는 떨어질까 불안하더구만.. 쩝


여튼 이곳 차화빈관은 명성대로 친절, 신속, 정확 뭐 깨끗 등등을 모두 갖추고 있다. 단지 호텔 위주로 운영되다 보니 도미토리는 좀 뒷전인 건데 뭐 그러면 또 어떠랴.. 이곳에는 제법 여행자같은 애들도 보이고 밤낮으로 어디론가 떠나고 또 들어오는 사람들로 늘 붐빈다. 적당히 가족적이며 적당히 거리감이 느껴지는 그런 분위기다. 이곳에서 매일 저녁 맥주 한병씩 마시면서 나흘을 묵었다. 쿤밍에서 차화빈관과 더불어 유명하다는 험프로 옮길 생각도 안 한 건 아니었는데 배낭 무게를 생각하며 꾹 참았다. 첨에는 그 배낭 맬 때 진짜 뒤에서 잡아당기지마 란 말이 절로 나왔는데 이젠 잘도 메고 돌아다닌다. 얘기가 딴데로 샜다^^


중국은 둘이서 밀월여행 오지 않는 한 유스호스텔로 다니는 게 제일 간편할 것 같다. 위치나 시설, 가격 면에서 최강이다. 한달이상 다닐꺼면 유스호스텔증 하나 만들어 오는 것도 남는 장사일테고.. 그리고 도미토리 친구 사귀기도 좋다는데 것도 뭐 영어 좀 될 때 얘기고 그냥 눈 마주치면 핼로우니 하이 정도에 너 어디서 왔니? 너 어디로 가니? 이상 대화가 진행되지 않는다. 그리고 대략 서양애들 나를 중국인으로 보는지 영어로 말 잘 안시키는 고마운 경향이 있다. 아주 편안하다^^ 베트남도 도미토리가 있긴 하다는데 숙소 가격이 비싸지 않으니 싱글룸의 유혹이 살짝 느껴진다. 젤 좋은 건 둘이서 더블룸을 쓰는 게 가격대비 최강인데.. 아무래도 그런 기대는 깨끗이 접어야 할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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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룽성> 뒹굴뒹굴의 진수를 맛보다.

결국 싱핑에서 뒹굴뒹굴 이틀 만에 짐을 싼다. 중심거리가 이백미터 남짓한 동네에서 이만하면 오래 놀았다 싶기도 하고 노트북도 연결이 안 되니 뭐 더 이상 할 일이 없어진 탓이다. 무엇보다 이틀을 뒹굴거리니 좀이 쑤신다. 어차피 버스가 양수오를 들러서 가니 양수오에서 하루쯤 있다 갈까 싶은 마음에 다시 방을 알아본다. 처음 도착했던 날보다 도미토리는 두 배, 싱글룸은 네 배가 올라 있다. 시제 거리는 온통 나들이 나온 중국인들 천지다. 연휴가 맞긴 맞구나 하면서 다시 버스를 타고 구이린으로 나온다. 버스가 다행히 기차역 앞에 선다.


다시 기차표를 끊으러 간다. 연휴가 9일까지고 쿤밍까지는 22시간이 걸린다니 지들도 10일에 출근은 해야 할 테고.. 그럼 대략 9일표는 있지 않을까 기대하면서, 그래도 혹 몰라 10일, 11일까지 메모한 종이를 들고 길게 늘어선 줄 끄트머리에 선다. 다행히 9일표가 있다. 큰 기대는 안했는데 갑자기 표가 있다니 누구 표현대로 복권에라도 당첨된 것 같다. 하지만 9일까지는 아직 6일이나 남아 있다--;:. 구이린에 처음 왔을 때 묵었던 화만루 영어로는 플라워 유스호스텔로 다시 간다. 거기서 다시 어영부영 이틀을 보내고 -결국 호수에 가서 야경을 봤다. 예쁘더만..- 계단식 논으로 유명한 룽지티텐을 보러 다시 계림을 떠난다.


구이린에서 두시간 정도 버스를 타고 가면 룽성이라는 마을이 나오고 거기서 다시 버스를 타고 산길을 굽이굽이 돌아 한 한시간쯤 들어가면 룽지티텐이라고 불리는 계단식 논들이 있는 핑안 마을에 도착하게 된다. 뭐 논씩이나 보러 그 먼 길을 가나 생각하시는 분들 계실게다. 나도 그랬으니까.. 근데 이 논들이 거의 800m 높이의 산봉우리까지 닿아 있다는데 주변 경관과 어우러져 꽤 볼만한 경치를 만들어내고 있다. 여기도 예외 없이 입장료가 있는데 이번에는 산 입구 마을 초입에서 버스로 올라와 직접 걷어 가신다. 입장료를 내면서 저 돈은 마을 사람들이 1/n로 나눠 가지는 것일까 아님 국가로 들어가는 것일까 궁금해졌지만 뭐 물어볼 수도 없는 노릇이라 그냥 궁금한 대로 두기로 한다.


룽지티텐의 계단식 논들, 벼가 조금씩 익어가고 있다.


계단식 논들 사이로 보이는 일군의 기와집들이 숙소 집결지인 핑안 마을이다. 누구는 동양 버전의 알프스라는데 그럴 듯 하지?


주차장에서 내려 다시 배낭을 메고 산길을 굽이굽이 올라간다. 처음보다 많이 익숙해지긴 했어도 배낭 메고 걷는 길은 여전히 고난의 행군이다. 주변에 가마꾼도 있고 -앞뒤에서 한명씩 둘이서 대나무로 만든 가마에 사람을 태우고 계단을 오른다- 대나무 광주리에 배낭이나 여타의 짐 따위를 마을까지 실어주는 아주머니들도 계속 따라오지만 가마 타는 일이야 아무리 생각해도 코미디고 내 배낭 그 광주리에다 실었다간 광주리 뜯어지기 십상이니 그저 죽어라 배낭 메고 오르는 것 이외에는 도리가 없다. 그래도 경관 좋은데 방을 잡아야지 하는 욕심에 꼭대기까지 간다. 욕심은 때로는 고래도 춤추게 한다?! 결국 마을 젤 꼭대기에 있는 숙소에 참대 하나를 쓰기로 하고 3인실 도미토리에 묵는다. 그러나 그후로 아무도 들어오지 않아 결국 본의 아니게 싱글룸에 묵는 호사를 누리게 된다. 


구이린으로 다시 오면서부터 제법 날씨가 선선해진다 했더니 이곳은 한낮을 제외하고는 긴팔을 입어야 할 만큼 쌀쌀하다. 짐을 풀고 마을 안내판에 적혀 있는 대로 뷰포인트 2지점에서 1지점까지 천천히 걷는다. 계단식 논들 사이로 만들어 놓은 좁은 돌길이다. 한여름에는 온통 푸르렀을 이 논들도 조금씩 황금빛으로 변해가고 있다. 걸을 때마다 마른 풀 향내가 난다. 풀이 마르면서 나는 냄새를 맡아본 적이 있는가? 마른 풀에서는 뭔가 따뜻하면서 쓸쓸한 내음이 난다. 나 역시 뭐 고향이랄 것도 없는 서울 변두리에서 어린 시절을 보내기는 했지만 방학 때마다 들렀던 외가집이며, 그 유년 어느 언저리에서 느꼈을 법한 향수가 아련히 떠오른다. 걷다가, 앉아서 마냥 산등성이를 바라보다가 다시 걷다가 하다보니 어느덧 해가 뉘엿뉘엿 진다.


 

다시 달력시리즈. 이건 9월 달력


그냥 10월로 하지 뭐


다음날도 그저 그렇게 하루가 간다. 간만에 늦잠을 자고 아무 것도 하지 않고 뒹굴 거리다가 여행 시작하고 처음으로 낮잠도 잔다. 괜시리 베트남 가이드북도 꺼내서 읽다가 오후에는 다시 마을로 잠시 산책을 나갔다가 들어온다. 어제보다 훨씬 한산해진 것이 이제 국경절 연휴가 끝나가나 싶다. 산에서는 해가 빨리 진다. 저녁 먹고 맥주까지 한 잔 마셨는데도 고작 8시다. 도미토리에서 못해 본 짓을 재빨리 시작한다. 노트북에서 음악을 틀어 놓고 받아온 e-book을 읽는다. 하루끼의 단편들 몇 개 그리고 산울림.. 뭐 스피커 없이 듣는 노래는 노트북 전 주인의 말대로라면 딱 AM 라디오에서 듣는 노래 같다는데 뭐 산울림 노래랑 비교적 잘 어울리는 듯도 싶다. 어제까지만 해도 손님들도 번잡하던 숙소 앞 식당도 10시가 조금 넘자 조용해진다. 창 밖으로 쏟아질 듯한 별들이 보인다. 조금씩 행복해진다. 


웰빙 아침식사. 여기서 파는 고구마랑 이름을 알 수 없는 감자 비슷한 뿌리 식물, 삶은 달걀과 계림에서 사온 사과 그리고 일회용 커피


 

저녁식사. 두부가 떨어졌다고 해서 시킨 쇠고기구이.. 로스구이 같은 건데 중국식 양념이 되어 있어 꽤 맛있다. 그리고 뒤에 저 문제의 맥주. 이 지역 맥주라고 해서 시켰는데 맛이 맥주가 아니다. 캔을 유심히 살펴봤더니 헉 11도다. 저거 두 캔 먹으면 소주 한 병 먹은 거랑 같다는 말씀. 어쩐지 알딸딸하더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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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음식 이야기

혼자 여행다니면 좋지 않은 점 중의 하나는 다양한 음식을 맛볼 수 없다는 것이다. 일단 한 끼당 한가지 밖에 맛볼 수 없는 데다가 끼니를 때우는 수준이 아니라 요리를 먹겠다 생각하면 둘이나 셋이 먹을 때보다 비용은 두세 배 더 들지요, 먹다가 반쯤은 남길 용기도 있어야 하지요, 음식점에서 뻘쭘한 분위기 견딜 수 있는 뻔뻔함은 기본이지요, 이런 삼박자를 두루 갖춰야 하니 쉬운 일은 아닌 것이다. 이거야 사실 여행에서만 적용되는 것은 아닌바 그간 쭈욱 혼자 밥 사먹은 경험에 의하면 한국에서도 크게 다르지는 않다. 어지간한 전골류는 기본 2인 이상이고, 피자는 마트에서 파는 조각 피자 이외는 언감생심이며, 심지어 중국요리도 짜장면과 짬뽕 이외에는 선택의 여지가 없다. 혼자서는 그저 김치찌개나 비빔밥이나 먹어야 하는 신세인 것이다.


자.. 뭔 서론이 이렇게 긴고 하니 먹는 얘기를 쓰려는데 아무리 생각해 봐도 국수랑 만두랑 볶음밥 이외에는 먹은 게 없다는 고백을 하기 위해 변명이 길어졌다. 게다가 군것질 안 즐기는 버릇이 고쳐질 리 없어 뭐 크게 길거리 음식 먹은 것도 없고, 술은 거의 맥주 한 병이 전부이니 안주 먹을 일도 없고 그래서 사실 뭐 먹을 것에 대해서 쓸 게 거의 없다고 보면 된다. 지금 집 떠난 지 한 25일 됐으니 그래도 한 60끼니쯤은 먹었을텐테 특별히 떠오르는 음식도 없고, 그렇다고 음식 때문에 크게 고생한 적도 없고, 아직은 한국 음식 먹고 싶다는 생각도 별로 안 드니 그저 맹숭맹숭할 따름이다.


북경에서 먹은 국수. 처음 시킨 국수라 잔뜩 긴장하고 먹었는데 나름 고기도 있고,야채도 있고, 면발도 쫄깃해 맛있게 먹었다.


 상해 예원에서 먹은 샤오 뭐 라는 만두.. 워낙 유명한 집이라 한 30분 줄서서 산 뒤 길거리에서 먹었다. 만두에 야채가 하나도 없고 고기만 똘똘 뭉쳐 있다. 양이 너무 많아 반만 먹고 놔두니 반은 어떤 할머니가 달라고 해서 그냥 드렸다.


황산 기차역에서 먹은 계란 볶음밥, 볶음밥이 아무리 맛있으면 뭐하냐구요.. 김치도 하다못해 단무지도 없이 저거 먹는 일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사실 고백하자면 중국 음식 심하게 입에 맞는다. 누구는 상차이 때문에 입에도 댈 수 없다고 하고 누구는 느끼해서 한숟가락 뜨기도 괴롭다는데 첫날부터 어 맛있네.. 했으니 아무리 걸어도 살이 빠질 리가 있냐 말이다. 흑흑.. 게다가 양은 또 좀 많이 주냔 말이다. 그저 좀 괴로운 건 국수면 국수, 만두면 만두, 볶음밥이면 볶음밥 이외엔 단무지 한조각도 안나온다는 건데 일식 삼찬이 그립긴 하지만 이것도 그럭저럭 적응이 된다. 게다가 어떤 유스호스텔에서는 나름 세트 메뉴 같은 걸 만들어서 밥이랑 요리 조금, 반찬 두어 가지, 국 등을 한세트로 팔기도 하고, 시장에서는 우리나라 반찬가게 같은 데서 이것저것 골라서 먹을 수도 있으니 맨날 단품만 먹는 것도 아니라서 그냥저냥 먹고 다닌다.


주로 시장이나 기차역 혹은 버스터미널 근처에서 파는 골라먹는 음식이 정말 맛있는데 문제는 영어 메뉴가 없는 것은 당연지사요, 주인은 100% 영어를 못하니 시키는 것이 대략 난망이다. 그래서 생긴 요령은 대략 이러하다. 무지 먹고 싶다는 표정을 짓고 옆에 서 있는다. 그냥 서 있으면 안되고 대략 밥의 위치와 먹고 싶은 음식을 찍어두어야 한다. 그러고 서 있으면 중국어로 뭐라 뭐라 물어본다. 물론 못 알아듣는다. 그때 밥의 위치를 손으로 가리키며 반찬들을 애절한 눈으로 바라보며 영어로 몇 마디 해 준다. 뭐 그냥 아무 말이나 해도 된다. 단지 밥을 그냥 얻어먹을 요량은 아니라는 것만 사실만 확인시켜주면 되는 것이다^^. 그럼 백이면 백 다 알아듣는다. 먼저 반찬을 고르게 하고 고른 반찬 숫자에 따라 돈을 받기도 하고 손가락으로 돈을 표시하면서 칩 같은 걸 사오라고 하기도 하지만 여튼 못 먹은 경우는 없다. 이 경우 고기 두어 가지에 나물이랑 두부 부침 가끔 계란 후라이도 먹을 수 있어 단품 식사의 괴로움에서도 해방될 수 있다. 가격도 저렴해서 대략 오원(650원) 정도다. 


계림 칠성 공원 앞 식당에서 고른 뷔페식 식단, 근데 아직도 그 고기가 뭔지 궁금하다. 뼈는 닭이었는데 고기 맛은 닭이 아니었던 것이다 --;:


룽성 버스터미널 앞의 가게. 이것저것 고르면 죄다 섞어 기름 듬뿍 넣고 다시 볶아 주신다. 그래도 맛있다.


그래도 아직 음식 고르는 일은 무지 어렵다. 처음엔 대도시만 다닌 탓에 사진보고 골라먹을 수 있는 집이나 영어 메뉴판이 있는 집이 많아서 그나마 좀 수월하게 다녔는데 대도시를 지나니 온톤 한자투성이인 메뉴판만 덜렁 나온다. 중국 음식은 재료와 조리법으로 되어 있다는데 아무리 봐도 뭐가 재료고 뭐가 조리법인지 구별도 모호한데다 면이랑 밥이랑 탕 정도는 구별하겠는데 구별해도 별 소용이 없는 것이 이게 항상 생각하는 거랑 다른 종류가 나와 주신다는 특징이 있다. 다행인건 다른 게 나와 주셔도 대부분 입맛에 맞긴 한다^^ 게다가 과일이 무지 흔해서 대략 사과며 복숭아 뭐 그 비싼 커다란 포도까지 대략 한 십원만 주면 무지 많이 사서 며칠동안 먹을 수 있다.


그나마 아는 요리, 싱핑에서 먹은 마파두부


여기서 먹은 최악의 음식은 우습게도 스파게티였다. 양수오에서 여행자 거리를 만나니 느닷없이 서양 음식이 먹고 싶어지는데 태국이며 라오스에서 먹었던 맛난 음식들이 눈에 아른아른 하더라는 것이다. 거리도 비슷하니 맛도 그만저만 하겠지 싶어 적당한 카페를 골라 들어선다. 대낮부터 스테이크는 오버질이고 피자는 뭐 피자헛 크기만큼은 안 되도 대략 어린애 얼굴만하니 다 먹기 어렵고 그래서 낙착을 본 것이 스파게티였는데...  이것이 면을 덜 삶았는지 혹은 덜 볶았는지 뚝뚝 끊어지는데다가 위에는 치즈요, 아래는 기름으로 흥건하니 아무리 비위 좋은 나도 두 젓가락 먹고 더는 입에 대지를 못 하겠더라는 거다. 결국 스파게티는 먹지도 못하고 느끼함을 달래려 커피까지 마시고 나왔다는 뭐 대략 그런 야그다.


싱핑장의 볶음국수. 김박사의 볶음 국수보다야 못하지만 그래도 그럭저럭 맛있다.


싱핑장의 찰떡. 노란색에는 설탕이, 흰색에는 깨가 들어있다. 1원(130원)에 네 개인데 두 개만 먹어도 배부르다.


여튼 제대로 된 음식 못 먹는 이런 사정은 다른 나라를 간다 해도 별로 달라질 것 같지 않아서 인도차이나에서도 국수나 볶음밥 그리고 만두 대신 스프링롤이나 오지게 먹고 다닐 것 같은 불길한 예감이 든다. 그리고 과일 대신 과일 쥬스나 마시고 다닐테고.. 자.. 이 난국을 타개할 묘안들을 제시해 주시라.. 뭐 현지남을 사귀라는 둥 여행남를 꼬시라는 둥의 현실 불가능한 대안은 절대 사양이다. 뭐 그런 남들 있으면 음식이 문제겠는가? 안 먹어도 배부르지 않겠는가 말이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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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싱핑> 드디어(?) 사기당하다.

아침에 서둘러 싱핑으로 가는 버스를 탄다. 잠시 요우타오(중국식 꽈배기, 아침대용으로 종종 먹는데 맛있다^^) 사러 나간 사이에 본 놀랍도록 많아진 중국관광객 숫자에 드디어 국경절이 시작되었구나 피부로 느낀 탓에 대략 체크 아웃 시간을 맞추는 게 방 잡는데 유리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서다. 버스는 약 삼십분 가량을 달려 싱핑에 도착한다. 사실 싱핑에서의 또 다른 기대는 싱핑에 인터넷이 되는 숙소가 있다는 정보를 접하고 나서부터인데 생긴 것이데 방에서 인터넷을 할 수 있다면 삼일도 안나가고 혼자 놀 수 있겠다, 사람들이란 하루종일 메신져나 해야지, 하면서 잔뜩 부풀어 있었던 것이었다.. 워낙 작은 동네라 숙소 이름만 가지고도 쉽게 찾아진다. 일본인 아저씨가 운영한다는 그 숙소는 외관이 번듯하진 않았지만 강이 바라보이는 곳에 위치하고 있다. 좀 비싸더라도 저기서 묵는거야 하고 들어서는데 웬걸 방이 없단다. 그래서 내일은요? 했더니 심드렁하게 여긴 방이 하루에 200원이니 저기 싼 데 가서 알아보란다.


분명 내가 본 여행기에는 둘이서 60원에 그것도 한달 정도 전에 묵었다고 되어있는데 이게 국경절 특수란 말인가 슬슬 걱정이 된다. 나가서 삐기 아줌마에게 못이기는 척 방값을 물어보는데 가격을 말해주지도 않고 대뜸 전화다. 좀 있으니 웬 청년이 오토바이를 타고 나타난다. 방이 얼마냐니까 80원이란다. 저거 잘못타고 갔다가 방 맘에 안들면 다시 데려다 줄 턱도 없고 배낭 메고 돌아올 일이 꿈만 같다. 노우를 외치는데 어라 잡지도 않는다. 삐기 아줌마 얼마를 원하냐길래 50원이라고 어리버리 대답하니 이번엔 따라 오라며 앞서 걷는다. 그러더니 다리건너 들판지나 웬 농가주택에 데려다 주신다. 여기 낮에는 전원주택이라 치고 밤엔 어쩌란 말이냐.. 안 그래도 안 잘 판인데 집주인 60원 아니면 안된다길래 얼씨구하며 돌아 나온다. 정말 이러다 다시 양수오에 가야 하는거 아닌가 생각도 나고 괜시리 우울해진다.


배낭메고 다녀 본 주변 방들 가격도 만만치 않아 고민하고 있는데 이번에 새로운 삐끼 아줌마가 등장하시어 또 다른 아줌마에게 넘겨주신다. 강을 등 뒤로 하고 버스 내렸던 곳으로 하염없이 걸어가니 뭐 그저그런 숙소가 등장한다. 방이 의외로 넓고 환해서 40원에 이틀이요.. 했더니 안된단다. 40원에 잘 거면.. 하더니 1층 구석의 창고 같은 방에다 시트를 새로 깔고 부산을 떤다. 그냥 50원에 묵기로 하고 방에 들어오니 맘이 편해진다, 20일 만에 혼자 써 보는 방이다. 동네도 조용하고 정말 뒹굴뒹굴이 가능할 것 같은 예감이 든다. 게다가 인터넷은 시간당 2원이라는 감동적인 가격이다. 대체적으로 대도시에선 10원, 소도시에선 5원, 상해에서는 무려 20원이나 했었는데 이건 거의 횡재 수준이다.


50원짜리 숙소 동방 빈관, TV도 나온다. 중국어로 더빙된 대장금도 봤다^^^^


담날은 미뤄뒀던 배를 타기로 한다. 계림에서 양수오까지 오는 배가 외국인에게는 대략 450원 정도를 받는다는데 그 구간 중 가장 절경이라는 양디-싱핑 구간만 배를 타기로 맘을 먹는다. 숙소를 나서니 이번에는 어린 여자애가 배타라고 잡는다. 그래, 어차피 매표소도 안보이더만 가격이나 알아보자 싶다. 싱핑에서 양디가는 구간을 물어보니 거기까지는 안가고 중간쯤까지 가는데 200원이란다. 어차피 깍일 가격이라 막 부른다 이거지.. 그래 니맘대로 불러라 나야 안 타면 그만이지 하고 여유를 부리는데 자꾸 얼마면 가겠냐고 묻는다. 이게 거의 중국인들의 공통적인 흥정 방법인데 먼저 되도 안하는 금액을 부른 뒤 난색을 표하면 얼마면 사겠냐고 되묻는 식이다. 그래 얼마가 문제가 아니라 나는 양디까지 왕복을 원한다고 했더니 이번엔 300원이란다. 헉 꼬마가 간도 크지.. 양수오에서 숙소가 20원이었대니.. 참나.. 그냥 노땡큐 했더니 200원, 150원까지 내려간다. 100원에 양디까지 가자고 했더니 다시 처음에 말했던 그 중간 지점을 들먹인다. 됐다.. 다른 데 가서 알아보지 하고 있는데 이 꼬마 근 한시간을 내 옆을 떠나지 않는다. 게다가 삐끼 세상에도 의리는 있어 다른 삐기가 붙어 있으면 일단 접근을 안하는 것 같은 것이 어제만 해도 그 많던 삐끼님들이 얼씬도 안해주신다.


어영부영 얘를 어떻게 떼내나 하고 있는데 이 꼬마 드디어 포기했다는 표정으로 100원에 양디까지 가겠다는데 분위기 아무래도 찜찜하다. 양디까지 왕복이 맞느냐고 재차 확인해도 그렇다는데 도리가 있나.. 돈은 갔다 와서 주겠다고 할까 싶었는데 보아하니 배주인에게 팔아넘겨지는 분위기니 것도 쉽지 않고 설마 흥정이 어렵지.. 내용을 속이겠냐 싶기도 하고, 그래도 어린앤데 싶기도 해 찜찜한 채로 100원을 주고 그냥 배를 탄다. 아니나 다를까 이 배 한시간쯤 가더니 처음 꼬마가 말한 지점에서 정확히 회선해 원래 자리로 돌아온다. 즉 원래 약속한 지점의 반정도만 갔다가 되돌아오는 배였던 것이다. 헉 이렇게도 속는구나 싶은 게 피식 웃음이 나온다. 그래 니가 생각하는 딱 100원어치만 태워준거로군 싶다. 그래도 두시간은 배를 탔고 한 삼사십원쯤 바가지를 쓰긴 했지만 굳이 한시간쯤 더 가고 싶은 마음도 그리 크지 않아 그러려니 하기로 한다. 뭐 나도 중국정부를 상대로 입장료 100원이나 사기치지 않았냐 말이다.^^ 배에서 내려 살짝 흘겨줄려고 했더니 요 좁은 동네에서 어디로 사라졌는지 그 꼬마는 통 뵈질 않는다. 오늘 일당은 다 채운 것일까? 14살에 이름이 제니-웬 제니?-라는 영어도 곧잘 하던 그 꼬마는 앞으로 어떤 모습으로 살아가게 될까? 뭐 험한 세상 최소한 나보다는 잘살지 싶다.



배에서 본 풍경. 날이 잔뜩 흐리더니 내릴 무렵에 빗방울이 떨어진다.


배를 타고 나도 시간이 한참 남는다. 시간당 2원짜리 인터넷은 노트북 연결이 안된다. 안되는 실력에 IP랑 DNS값까지 넣어봐도 그저 연결할 수 없다는 메시지만 나오고 일하는 애한테 물어봐도 지는 아무것두 몰라유 하는 표정이다. 컴퓨터에다 한글을 깔아볼까 하다가 에라 내 한계를 넘어서는 짓은 하지 말자 싶어 그냥 웹서핑이나 하다 나온다. 뒹굴뒹굴은 머릿속에선 황홀한데 현실에선 꼭 그렇지도 않다. 무지 심심하다. 내일은 또 뭘 하지? 마침 장날이라니 장이나 구경하고 다시 양수오로 나가야 하나..  국경절은 아직 일주일이나 남았는데 벌써부터 좀이 쑤신다. 기차를 포기하는 한이 있더라도 움직일 방법을 찾아야 겠다.


싱핑의 3일장. 야채도 팔고


국수도 팔고


고기도 판다.


 그러다 어제 그 꼬마 여자애를 만난다. 살짝 흘겨줬더니 천연덕스럽게 웃기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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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수오> 드디어 감기몸살이다.

급기야 콧물에 재채기까지 전형적인 감기 증세가 옴 몸을 휘감는다. 그래 양수오에 가면 싱글룸을 잡아서 한 며칠 뒹굴거려야겠다며 마침 국경절이니 어차피 움직이지도 못 할 거 차라리 잘 된 거라고 혼자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양수오로 떠난다. 내가 기대한 양수오는 조금 번잡하기는 해도 제법 시골티가 나는 한적한 곳 일거라는 것이었다. 그러나 버스가 도착한 순간 나의 그러한 기대는 산.산.조.각. 난다. 이건 거리만 똑 따놓고 보면 카오산보다 더하면 더했지 결코 덜하지 않은 가장 안 중국적인 여행자 거리였던 것이다. 물론 배경은 확실히 중국 산수화인데 말이다. 사실 내가 여행자 거리를 싫어한다거나 뭐 그런 건 아니고 아직은 적당히 복잡한 여행자 거리가 맘이 더 편한 것도 사실인데 그냥 뒹굴거리기엔 생각보다 번다해 보인다는 거다.    


그래도 조금은 익숙한 거리의 느낌 때문일까, 마음은 편안해진다. 몇군데 숙소에 들어가 싱글룸을 알아보니 가격도 가격이지만 너무 어둡거나 너무 좁거나 맘에 드는 게 한 군데도 없다. 그래서 다시 나를 타이른다. 여긴 쉴만한 곳이 아니니 싱핑에 가서 그때 쉬자고.. 그때까지 아픈 거 잠시만 보류하자고.. 그리곤 익숙하게 다시 유스호스텔로 간다. 가격이 정말 착해진다, 하루에 20원. 한사나흘 머무르려던 계획을 바꿔 이틀만 있기로 한다. 리셉션에선 10월 1일에는 방이 연장이 안되니 반드시 체크 아웃을 해야 한다고 다짐을 둔다. 양수오에서 30km 쯤 떨어진 싱핑이란 곳으로 옮길 생각인데 막상 방이 없으면 어쩌나 싶다가도 설마 나 하나 잘 데 없겠어 하며 걱정을 접는다.


시제(西街)


시제의 카페 , 카오산 저리 가라다.


주변을 이리저리 쏘다니다 도저히 몸상태가 영 엉망이라 그냥 숙소에 들어온다. 씻고 안마나 받은 뒤 약 먹고 일찍 자기로 한다. 일단 나가서 두 시간짜리 발과 바디 마시지를 받는다. 아 정말 좋다. 이렇게 하고도 우리나라 돈으로 만원이 안 된다. 딴 건 몰라도 마사지 받는 돈은 하나도 안 아까운데 자꾸 이래도 되나 맘이 불편해진다. 여행에 무슨 규칙이 있는 것도 아닌데 여행을 잘하고 있나 하는 강박도 참 버리기 힘든 병이지 싶다. 숙소로 돌아와 처음으로 사온 감기약을 먹는다. 우리나라 감기약이야 또 수면제가 다량 함유되어 있지 않은가? 양수오에 와서 초저녁부터 잠만 자고 있는 나를 도미토리 사람들이 들락날락 하며 신기한 듯 쳐다본다.


담날 일어나니 온 몸이 개운했다..라면 얼마나 좋을까? 뭐 현실은 바램과 달리 그냥 견딜만한 정도였다. 양수오에 도착하면서 만난 수십명의 삐끼 아주머니들의 유혹을 뿌리치고 그냥 자전거나 타기로 한다. 동굴 투어는 사진 보니 중간 중간 기어가기도 하고 머드천 같은데서 진흙 범벅이 되기도 하던데 그거 라오스에서 다해본데다 혼자 얼마나 뻘쭘할 것이냐.. 누구 머드 묻힐 사람도 없고.. 그래서 포기. 배는 싱핑에서 탈 거니까 두 번 탈 필요는 없지.. 또 포기. 그래서 자전거만 타기로 한다.. 이번에는 제법 큰 자전거다. 발이 간신히 닿는다. 양수오에서 한 시간쯤 걸린다는 월양산을 목적지로 잡고 왕복 두 시간, 산에 올라가는데 한 시간, 그럼 오후에는 뭐하지 하면서 페달을 밟는다. 


월양산 가는길


월양산 가는길2

 

월양산에는 아직도 칼을 든 강도가 출몰하니 절대 일행과 떨어지지 말라는 경고가 론리에 나와 있다. 헉 그냥 강도도 아니고 칼을 든 강도라니 좀 아니 많이 무섭다. 그래도 그렇지 입장료도 받는 곳에서 것도 대낮에 강도가 출몰한다는데 대체 공안은 뭐하고 있단 말인가. 아마 가이드북 쓸 당시에 그런 일이 한 건쯤 있었겠지 하면서도 산으로 올라가는 입구에서 참 혼자 가지는 못하고 같이 올라갈 만한 사람을 기다려본다. 이 사람 많은 중국에서, 게다가 이 유명한 관광지인 양수오에서, 심지어는 내일부터 지들의 2대 명절인 국경절인데, 어찌 산에 올라가는 사람이 이다지도 없단 말인가. 십 여분을 기다리다가 그냥 혼자서 올라간다. 어째 내려오는 사람도 없는지 어디서 바스락 소리만 나도 흠칫 놀란다. 결국 아무도 없는 산길을 걸어 혼자 정상까지 간다. 근데 무서우니까 힘을 확실히 덜 드는 것 같다. 숨차는 줄도 모르고 오르다가 정신차려보니 정상이다. 근데 이건 또 뭔 조화속인지 밑에서 그리 기다려도 오지 않던 사람들이 정상에 있으니 속속 들이닥친다.


월양산. 달모양의 구명이 있어 월양산라고 불린단다.


 

월양산에서 바라본 전경


다시 자전거를 타고 돌아온다. 론리에서 하루쯤 일정을 잡고 떠나라고 했던 위룽허로 가는 비포장도로가 눈에 들어온다. 저기나 갈까.. 잠시 망설이다 그 길에 들어선다. 한 100m 쯤 비포장도로를 가니 더 이상은 갈 수 없다고 이쯤에서 자전거를 돌려 나가야 한다고 머리는 말하는데 다리는 계속 페달을 밟고 있다. 자전거만 타면 무슨 춤추는 분홍신을 신은 여자애처럼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계속 달리게 된다. 뭐 다행히 해가 질 무렵 쯤 되면 멈추기는 한다^^한구비를 돌아 달리면 달릴수록 그림 같은 마을이 눈앞에 펼쳐진다. 이제 돌아 나갈 수도 없을 만큼 들어왔는데 바람 한점 그늘 하나가 없다. 그저 땡볕에 비포장도로를 묵묵히 달리는 수 밖에.. 가끔 내려 담배 한대피면서 어디를 둘러봐도 달력그림 같은 마을에서 그냥 한참씩 쉬었다 간다. 오후 내내 그렇게 비포장도로를 달렸더니 아직도 엉덩이가 얼얼하다.


달력6월

 


달력7월


달력8월


그러다 마을을 만난다. 도시에서 좀처럼 볼 수 없었던 사람들의 온기가 느껴진다. 커다란 나무 아래에 삼삼오오 모여서 더위를 피하고 있는 한가로운 모습이며 지나는 집들 언저리로 보이는 남루한 살림살이들도 정겹다. 그러나 마을엔 사람만 사는 게 아니라 개도 산다. 송아지만한 개들이 그냥 돌아다닌다. 등줄기가 서늘해진다. 대개는 못 본 척 지나치면 되는데 어느 마을에선가 집안에서 맹렬히 짖으며 뛰어나오는 개 두 마리와 부딪힌다. 엄마, 아부지, 하느님, 부처님 순식간에 별 생각이 다 난다. 다행히도 대문 앞에 멈춰 서서 더는 나오지는 않는다. 휴우.. 한숨이 절로 나온다. 그 담부턴 마을만 나오면 긴장이 된다. 차라리 그냥 논길을 가는 게 마음이 더 편해진다.


결국 어스름이 되서야 양수오로 다시 돌아온다. 이번에는 멍이 아니라 화상이다. 화이트닝은 커녕 피부가 화끈거려 이삼일 지나면 벗겨질 판이다. 어쩌자고 그 땡볕을 대책도 없이 달렸단 말인가? 오이라도 하나 사서 붙여볼까 하다가 도미토리 꼴불견 10위안에 들어갈까봐 참기로 한다. 그러고 보니 점심도 굶었고 가이드북에서 봐둔 피쥬위라는 요리를 먹기로 한다. 양수오에 있는 리강이라는 강에서 잡은 민물고기에다 맥주를 먹였다나 아님 맥주에 담궜다나 하는 요린데 반을 남기더라도 이건 먹어야지 하면서 식당으로 들어선다. 론리의 영향은 대단해서 메뉴보고 고민할 것도 없이 맨 앞줄에 떡하니 자리 잡고 있다. 이거주세요 밥이랑 맥주랑.. 좀 기다리니 요리가 쟁반에 나온다. 이걸 다 먹으라고? 물론 다 먹었다^^


 피쥬위.. 맛있겠지?


너무 심하게 달린 탓이지 감기도 다 나은 듯싶다. 이리되면 싱핑에서 쉴 핑계가 하나 사라지는 셈인데.. 하면서도 살짝 앓고 지나가 준 감기가 고맙다. 낼은 싱핑으로 간다. 정말 뒹굴뒹굴의 세월이 올지 그 뒹굴뒹굴을 내가 견딜 수 있을 지 알 수 없지만 최소한 여기보다는 조용한 곳이겠지 하는 기대를 가져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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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림> 호수에서 보낸 오후

 계림북역에 내려 계림역까지 택시를 탄다. 한 번에 가는 버스가 보이지 않는데다 배낭까지 메고 헤맬 엄두가 나지 않는다. 택시는 시내 중심가를 가로질러 가고 주변으로 동글동글한 카르스트 지형-그렇다니 그런가 보다 하는 거지 카르스트 지형이 뭔지 나도 확실히는 모른다- 특유의 산봉우리들이 자못 이국적인 느낌을 자아낸다. 여기도 항주처럼 시내는 제법 높은 건물들이 들어서 있고 여기저기 맥도날드며 KFC 간판들이 시내를 점령하고 있다. 역에 내려 유스호스텔을 찾아간다. 허접한 입구에 비해 실내가 깨끗하다. 가격도 상해서부터 도시마다 5원 단위로 싸지고 있다. 앗싸!


도착한 날 비가 내리더니 목이 아프고 콧물이 나기 시작한다. 그래 아플 때도 됐다 싶은데 그래도 양수오나 가서 아프자고 나를 추스른다. 담날 그냥 몸이 안 좋은대로 시내 구경을 나선다. 그 동글동글한 봉우리마다 계단을 만들고 담장을 쳐 입장료를 받는다. 가이드북에 소개된 봉우리는 대략 5개.. 그 중에 <아름다운 경관이 한눈에 들어온다>는 독수봉과 <아름다운 경치를 조망할 수 있다>는 복파산을 제치고 <산정상에서 둘러보는 전망은 장관이다>라는 데차이샨 우리말로는 첩채산을 오른다. 황산을 오르고 나니 이까짓 산쯤이야 그저 언덕처럼 느껴졌다..고 말할 수 있으면 얼마나 좋으랴만 다시 숨이 턱에 까지 찬다. 실연 말고도 면역이 안 되는 것이 사실 여럿 있다^^


첩채산에서 바라본 계림 시내, 숨차게 올라간 보람을 느낀다.


<지구 한가운데로의 여행 세트>처럼 보인다는 루디옌 우리말로 노적암을 과감히 포기하고  이번에는 칠성공원으로 간다. 동굴 하나를 과감히 포기하고 왔더니 이건 또 무슨 유혹이라는 말이더냐.. 공원 입장료는 35원인데 공원안의 동굴을 가려면 30원을 더 내야 한단다. 그래, 그래도 동굴하나는 봐야지 하며 또 65원짜리 표를 끊는다.


공원입구의 벤치에는 중국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옹기종기 모여 노름(?)에 전념하고 계신다.

 


낙타봉. 워쩌 낙타같은겨?


공원 안에 폭포도 있고


나는 비만 호랑이^^ 저거 올라타고 사진 찍는 데 10원이다. 근데 좁은데 가둬놓고 얼마나 먹여놨는지 차마 눈뜨고는 보기 힘든 지경이다. 에구 호랑이 팔자도 원..


칠성암.. 죄다 조명발이다.


오후 네시 무렵에 시내 중심에 있는 호수에 도착한다. 요술왕자의 부인인 고구마가 얼마 전 중국에 왔다가 쓴 글에 의하면 자기는 계림에서 호수가 특히 호수의 야경이 가장 아름다웠다고 쓴 글을 보고 야경을 꼭 보리라 다짐한 터다. 그러나 야경을 보려면 아직 세시간이나 더 있어야 하니 그냥 호수나 한 바퀴 돌아보자고 걷는다. 근데 이게 뭐 서호도 아니고 쉬엄쉬엄 걸어도 한시간에서 한시간 반이면 한 바퀴를 돌 수 있는 거리다. 그래도 야경을 보겠다는 욕심에 쉬었다 또 쉬었다 하면서 세시간을 보낸다. 마침 MP3나 듣자 하고 틀어보니 받아 논 노래라는 게 연가라는 이름의 CD다. 다들 알지? 이미연의 연가라고.. 모르나.. 그냥 삼사년전 유행하던 사랑 노래 묶음라고 보면 되는데 세시간 내내 줄창 내가 얼마나 너를 사랑했는지 아냐는 둥 내가 널 잊어주길 바라냐는 둥 이게 그때의 댓가인가 보다는 둥 둥둥둥을 듣고 있으니 괜시리 옛날 남자들도 떠오르고^^ 내가 왜 이러고 있는지도 모르겠고 심지어 여기가 중국인지 한국인지 내가 계림 호수에 있는지 일산 호수에 있는지도 모르겠더라는 것이다.


 호수 위의 이란성 쌍둥이탑

여기 중국맞다니까요^^

 

드디어 해가 지고 그 아름답다는 야경은 언제 보여줄래나 기다리고 있는데 야경은 커녕 산책로에 불도 안 켜진다. 어 뭐 이래.. 좀더 기다리면 보여줄래나 했더니 일곱시에 배처럼 생긴 식당에 불하나 켜지곤 그만이다. 이제 열도 나는 것 같고 배도 고프고 더 이상 호수 구경도 싫고 이 호수가 아닌가벼 하는 맘으로 숙소로 돌아온다. 그리곤 못내 아쉬운 맘에 인터넷으로 다시 그 글을 읽는다. 그 호수가 맞다. 글 밑에 있는 사진을 보니 낮에 본 것들에 죄 불이 켜져 있는 것이다. 이런.. 이거 국경일에만 켜는 거 아냐?^^ 양수오 갔다가 오는 날 혹시 가능하면 늦은 시간에 다시 한 번 가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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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차에서 만난 사람들

 

좀 심하게 엄살을 부렸다 싶긴 하지만 떠나기 전엔 정말 걱정이었다. 좌석 불편한거야 어떻게 견뎌본다 하더라도 도난 사건도 많다지, 담배는 막 피워댄다지, 사람들 심하게 시끄러운데다가 지저분하기까지 하다지 뭐 안 좋은 풍문들만 머릿 속을 오락가락 하는데 출발 시간은 점점 다가온다. 그래도 한 번 타봤다고 그 와중에 슈퍼에 들러 물이랑 빵이랑 과일 등을 사서 바리바리 고장난 아디다스 가방에 짊어지고 대합실에 들어선다. 아니나 다를까 대합실에 사람들은 또 왜 그리 많은 것이며, 사람들이 들고 있는 짐들은 또 왜 그리 많은지, 이러다 배낭을 무릎에 안고 있어야 하는 거나 아닌지 걱정이 밀려온다.


이래저래 사람들을 따라 개찰구를 지나 역구내로 들어선다. 허걱, 이번에는 차량 호수 표시가 없다. 이 역이 시발역이 아니니 잘못하다간 배낭 메고 뛰거나 아님 아무데나 올라타서 좌석 사이를 끝도 없이 걸어야 할 판이다. 표를 꺼내 여기저기 물으니 기다려야 할 곳을 알려준다. 내 아무리 봐도 별 표시가 없더구만, 그 양반들은 그걸 어떻게 아는 건지 지금 생각해도 알다가도 모르겠다. 어쨌든  무사히 차에 올라타곤 살짝 놀란다. 생각했던 것 보다 좌석의 상태가 너무 좋은 탓이다. 물론 두줄, 세줄 씩 총 다섯줄로 이루어져 있고 서로 마주보고 가야 한다는 게 살짝 당혹스럽긴 했지만 그 사이엔 작은 탁자까지 있으니 이만하면 매우 훌륭하지 않은가 말이다.


 

 딱딱한 의자칸. 짐칸 밑에 걸려있는 수건들을 승무원 아저씨들이 수시로 다니면서 예쁘게 다시 걸어준다. 왜 그러는지는 나도 모르겠다.

 

게다가 이 기차표의 이름이 딱딱한 의자 즉 硬座 아니던가 근데 생각만큼 딱딱하지 않더라는 말이다. 물론 등받이는 90도가 확실하더만.. 처음 30분쯤은 좋아 좋아를 연발하면서 그냥 이거 타고 끝까지 갈까 하는 생각도 했었는데 한시간쯤 지나니 생각이 달라진다. 앉아서 가는 거야 그렇다 치고 긴긴밤을 어찌 앉아서 세운단 말인가. 게다가 내 자리는 3인 좌석의 중간에다가 기차 진행 방향과는 반대인 거의 최악의 자리인 것이다. 그 중 높은 사람으로 보이는-뭐 복장 색깔이 좀 다르고 모자 쓰고 있는-아저씨에게 자리가 있으면 바꿔달라고 말해본다. 첨부터 적어 보여주는 건데 괜히 캔 유 스피크 잉글리쉬는 외쳤나 보다-내 인생에 이런 날 올지 정말 몰랐다- 그랬더니 이 아저씨 그때부터 도무지 알아듣기 힘든 발은으로 뭐라뭐라 하는데 정말 후회가 몰려온다. 그제서야 적어놓은 쪽지를 보여준다. 硬座 - 硬臥 이 아자씨 얼굴이 환하게 펴지더니 오케이를 연발한다. 그러고는 알아보고 오겠다는데.. 다녀오더니 이번에는 영어로 쓰신다. 하드한 베드는 없어요. 그러나 소프트한 베드는 있어요. ㅋㅋㅋ 됐다 그거 탈거였으면 그전에 표 끊어 탔다.  


이제 적응의 시간이다. 좌측에 아줌마, 우측에 아저씨, 전방 135도 각도에 인물 안 되는 청년, 전방 90도에 매우 시끄러운 또 다른 아저씨 그리고 정면에 앗.. 드뎌 꽃청년 발견이닷!! 꽃이 중국에 와서 고생한다 해도 그리 할 말은 없지만 그래도 이만하기가 쉽냐 말이다. 게다가 이 청년 과묵하기까지 하다-중국에서 과묵하다는 건 정말 타고 나지 않으면 가지기 힘든 미덕이다^^- 꽃청년을 제외한 매우 수다스러운 3인방이 끊임없이 중국어로 질문을 해대는데 팅부동, 워스 한궈런도 한 두 번이지 대략 난감이다. 영어는 원, 투, 쓰리도 안 통하지, 그나마 사간 여행 중국어 책에는 깍아주세요, 영수증주세요 따위의 말 밖에 없지, 그래도 그럭저럭 혼자 여행한다, 결혼은 안했다. 북경-상해 거쳐 계림 가는 길이다, 등등의 취조를 당한다. 내 꽃청년의 호기심 어린 눈빛만 아니었어도 일찌감치 자는 척이라도 했으련만 덕분에 도란도란 -사실 매우 시끄러웠지만- 얘기를 나누며 간다. 뭐 대략 대장금 얘기랑 애니콜 즉 삼성과 현대자동차 뭐 그런 얘기였는데 우리가 일본 사람 만나 키무라 다쿠야 좋아요, 소니 알아요 하는 거랑 비슷한 정도의 대화였던 것이다. 


 

좌우의 아주머니와 아저씨. 저 중간이 내 자리였던 것이다. 꽃청년은 사진 찍는 것을 한사코 거부해 결국 카메라에 담는 것은 실패했다.     


기차타기 전에 샀던 귤을 나눠주니 사람들도 주섬주섬 먹을 걸 나눠준다. 바나나, 해바라기씨, 껌까지 기차에서 주는 거 받아 먹지 말라는 말도 잊고 넙죽넙죽 죄다 받아먹는다. 시간은 흐르고 잘 시간을 다가오는데 어찌 자야하나 그저 버텨보지는 심정으로 앉아 있는데 마주보는 사이에 있는 작은 탁자에 엎드리기도 하고 의자 사이 공간에 발을 쭉 뻗기도 하며 나름대로 잘 준비들을 한다. 꽃청년이 자기 옆자리를 조금 내주며 발을 뻗으라고 권한다. 차마 그럴 수는 없어 한두시간은 버티다가 결국 나도 모르게 다리도 뻗었다가 탁자 위로 머리를 들이민다. 그랬더니 또 불편한대로 자리를 만들어 준다. 그러다 어영부영 날이 밝는다. 저녁은 사발면으로 때웠으니 아침은 이사람들 차 마시라고 둔 더운물 받아다가 커피랑 사가지고 탄 빵이나 먹어야겠다 하고 있는데 꽃청년이 국수를 사서 먹으라고 준다. 고맙긴 한데 이걸 먹어도 되는 건지 어찌할 바를 모르겠다. 그렇다고 국수 값을 줄 수도 없고.. 국물까지 확 부어놨는데 무를 수도 없고...  그냥 고맙게 먹기로 하면서도 맘 한구석이 불편하다. 그리 넉넉해 보이는 차림새도 아니었는데.. 어쩌나 하다가 여행중국어책을 뒤져 단어를 조합해 적는다. 쎄쎄 미엔티아오 하오츨(고마워요 국수 맛있어요) 보여주니 씩 웃는다.


계림 전 정거장을 지나자 저마다 다음에 내리라고 일러주느라 다시 차안이 소란스럽다. 어제 영어로 하드한 베드는 없다던 그 아저씨도 담이라고 알려준다. 그래도 이번엔 적지는 않으신다^^주섬주섬 가방을 챙기는데 문제의 자크 고장난 아디다스 가방이 눈에 들어온다. 내리기 전에 함 고쳐보겠다고 주머니칼을 꺼내 설치니 이번에도 꽃청년이 받아서 대신 고쳐준다. 잘생기고 과묵하고 친절한데다 손재주까지.. 마지막까지 감동의 연속이다. 이제 내릴 시간이다. 20시간 22분.. 나도 나름 긴 여행을 했다고 생각하는데 우리 좌석 중에 내가 가장 빨리 내리는 사람이라니 .. 이 사람들은 대체 얼마나 더 가야 하는 것일까? 언젠가 중국여행기에서 본 글귀.. 가난한 사람들의 인내는 부자들의 그것과 비할 바가 아니라는 말이 새삼 떠오른다. 결국 열차는 계림역에 도착하고 아쉬운 마음을 뒤로 하고 짐을 들고 내린다.


그새 정이 든 건가.. 내린 뒤 다시 열차를 거슬러 창문 근처로 간다. 내가 어딘지 두리번거리고 있는 사이에 누군가 손을 흔드는 것이 보인다. 사람들이다. 마지막으로 환하게 웃으며 손을 흔들고 돌아서는데 무언가 뜨거운 것이 목에서 올라오는 거 같다. 내가 왜 이러지.. 이러다 진짜 눈물이라도 쏟을 것 같다. 목에서 올라오는 무언가를 꿀꺽꿀꺽 삼키며 지금은 울지 않겠다고 이를 악문다. 또다시 낯선 도시다. 아직 집 떠난 지 한 달도 되지 않았는데 이 감정은 또 뭐란 말인가. 그냥 조금 외로운 모양이라고.. 곧 괜찮아 질 거라고 생각하는데 기어이 눈물이 흐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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