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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고> 5달러 사기치다 아니 사기당한건가

 

일행이 아침에 떠나고 나는 밤버스라 만달레이 성이나 보러 간다. 10불짜리 입장료가 아까워서라도 하나라도 더 볼 요량이었는데 볼 것 아무것도 없다는 교장선생님의 말씀과는 달리 만달레이 성은 그런대로 볼 만이다. 한 면이 3킬로미터나 되는 이 넓은 성은 식민지시대와 이차대전 그리고 현재 미얀마 정부에 이르기까지 모두 군사시설로 이용해 거의 폐허가 되다시피 했지만 그나마 중앙의 왕궁은 어설프게나마 복원을 해 미얀마 왕조의 왕궁의 모습을 짐작아니마 할 수 있게 해 놓은 곳이다.


미얀마에서 마지막 밤버스가 될 바고행 버스는 예상대로라면 새벽 5시에는 바고에 도착해있어야 하는데 정신없이 자다가 눈을 떠보니 해가 중천에 떴는데도 그냥 신작로 한 가운데 서 있다. 언제 퍼졌는지도 모르겠는데 여튼 차가 퍼져 어디서 보내주는지도 모르는 버스를 마냥 기다리고 있는 중인 것이다. 필리핀에서 선교사 공부를 했다는 아저씨의 통역에 의하면 한 시간쯤 뒤면 버스가 올 것이도 여기는 양곤에서 150칼로 떨어진 곳인데 아마 바고는 그 중간쯤일 거라고 한다. 에효.. 원래 바고에 도착해 황금바위가 있다는 짜익티요로 가려는 계획은 일단 무산이 되고 길가에 앉아 마냥 버스를 기다린다.


버스가 퍼져 길가에서 다음 버스를 기다리고 있다.


결국 한시간 반이 지나 버스가 오긴 왔는데 나야 선교사 아저씨가 챙겨 줘 자리에 앉기는 했지만 일부는 서서 간다. 게다가 차비를 또 내란다. 이게 말이 되나 싶어 따지려는데 현지인들이 아무 소리도 안 하고 차비를 건네준다. 나만 바가지 씌우는 것도 아니고 현지인들도 암말 안하고 내는데 싶어 그냥 돈을 내고 말긴 했지만 도무지 이해가 안되는 시스템이다, 하긴 미얀마는 차의 수입이 거의 규제되다시피 해 심하게는 이차대전 때나 굴려다녔을 법한 차들도 종종 눈에 띄는데 그간 차가 안 퍼진 것만 해도 운이 좋았다고 해야 할 것 같다. 결국 차가 바고에 도착한 시간은 12시 무려 7시간 연착인데도 돈은 돈대로 더 내고, 누구한테도 미안하다는 소리 한마디를 못 들어봤다는 거 아닌가. 나 아무리 한국이 좋네 싫네 해도 이럴 땐 정밀 대한민국이 살기 좋은 나라인 것만 같은 생각이 든다^^


결국 일정을 바꿔 바고 시내를 먼저 돌아본다. 자전거를 타도 될만한 동네인데 지도가 없어 그냥 사이카로 돌아본다. 바고 역시 사원 전부를 보는데 10달러인데 인터넷 정보에 의하면 입장료 없는 사원만 둘러보고 5시 넘어 직원들이 퇴근하면 주요 사원을 보라고 되어 잇다. 하지만 주요 사원은 한시간 안에 보기 어려운데다 입장료는 별로 아까워하는 성격이 아니라 그냥 입장권을 끊어야 겠다 생각하고 행선지를 말해 놓았는데 이 사이카 기사 계속 자기한테 10달러를 달란다. 미쳤냐? 넌 내가 호구로 보이냐? 싫다. 필요하면 다이렉트로 직접 내겠다 했더니 드디어 속내를 드러낸다. 어차피 10달러는 정부가 먹는 돈이니 자기에게 다른 사람에게 받은 입장권이 있으니 너랑 나랑 5달러씩 나눠가지잖다. 근데 그 입장료라고 꺼내는 걸 보니 유효기간이 자난 입장료이다. 이거 기간 지났다고 했더니 어쨌든 니가 가고 싶은데 다 무료로 들어가게 해 주면 나중에 너는 나한테 5달러를 주면된다고 해서 에라.. 속지 뭐 하고 오케이한다. 결국 어떤 파고다는 직원이 퇴근한 듯 보이고, 어떤 파고다는 원래 입장료가 없는 듯 보이고, 어떤 파고다는 옆문으로 살짝 들어갔다 나오고 등등의 편법으로 보고 싶은 곳은 모두 무료로 들어갔다 나오는데 성공한다. 뭐 좀 찝찝하긴 하지만 약속은 약속이니 5달러를 건네준다. 뭐 왠지 속은 것 같은게 사기를 친 건지 당한 건지 알수가 없다. 

 


바고의 한 승원에서.. 뭔가 외우느라 정신이 없다.


담배 만드는 가내 공장.. 이런 어린 아이들도 하루종일 담배를 만다.


마지막으로 석양을 보러 올라 간 힌타공 파고다에는 낫공양 준비가 한창이다. 낫은 이 나라 특유의 정령신앙이 불교와 결합해 생긴 것으로 우리  나라의 절에 산신을 모시는 것과 비슷한 맥락으로 이해하면 된다. 싸이카 기사가 짧은 영어로 가끔 이파고다에서는 댄스페스티벌이 열린다고 해서 파고다에서 웬 댄스 하고 말았는데 알고보니 우리나라 굿판 비슷한 것이 열린다는 소리였던 것이다. 오늘은 준비만 하고 내일하고 모레 이틀동안 열린다는 것으로 봐서는 제법 큰 굿판인 모양이다, 짜익티요 갔다가 돌아오면 두어 시간 구경도 할 수 있을 듯도 싶다.


다음날은 숙소에 짐을 맡겨두고 근처에 있는 짜익티요에 다녀온다. 짜익티요는 우리나라 설악산에 있는 흔들바위처럼 비스듬하게 서 있는 바위로 중력의 법칙에 따르면 떨어져야 하는데 안 떨어져 영험하다고 해 바위에 탑을 세우고 금칠을 해 모셔둔 곳인데 미얀마의 쉐다곤파고다, 만달레이의 마하무니 파고다와 함께 미얀마 불교의 3대 성지로 불리는 곳이다. 외국인들에게는 론리 미얀마편 표지 사진 덕에 더 유명한 곳이기도 하다. 이곳은 산밑에서 정부가 운용하는 트럭을 타고 40여분을 올라가다가-2.5톤 트럭에 무려 60여명을 태운다-다시 70도 경사의 가파른 길을 40여분 걸어야만 갈 수 있는 곳이다. 가파른  길을 걷는 건 질색이지만 바고에서도 양곤에서도 딱히 더 할일이 남아있지 않아 그냥 가보기로 한다.


짜익티요 파고다


다른 각도로 보면 이렇다


아니게 아니라 산길은 심하게 가파르다. 그래도 바위 주변은 제법 공원처럼 만들어 놓아 금칠한 바위보다 그 바위를 보려고 몰려든 사람들을 구경하는 재미가 쏠쏠하다, 선셋을 보고 다시 40분을 걸어 픽업타는 곳으로 내려오니 7시에 떠난다는 마지막 픽업은 7시반이나 되어 70명은 넘어 보이는 사람들을 태우고 불빛하나 없는 산길을 미친 듯이 달린다. 다리하나 제대로 움직일 수 없는데 무슨 청룡열차라도 타는 것 같다. 아 이러다 차라도 전복되면 떼죽음인데 대체 정부에서 운영한다는 트럭이 이래도 되나 투덜대다가 내려 시계를 보니 올라갈 때 40분 걸렸던 길을 18분만에 내려 왔다. 아무래도 운전기사가 정상은 아닌 듯 싶다.


짜익티요는 일찌감치 관광지가 되어서 그런지 미얀마 특유의 다정다감함도 찾아볼 수 없는 그저 바가지 씌우려는 찬절만 가득한 곳이다. 언젠가 미얀마 다른 지역도 모두 이곳처럼 변하겠구나 싶은 게 마음이 쓸쓸해진다. 산 밑에서 하루밤을 자고 다시 바고로 돌아와 이번에는 자전거를 빌려타고 낫공양 하는 곳으로 다시 가본다. 점심 먹고 다시 시작했다는데 벌써 굿판이 한창이다. 장고 비슷한 북이며 징이 딱 우리 나라 굿판이다. 도착해보니 큰 무당으로 보이는 사람의 사설이 한창인데 차이가 있다면 큰무당이 여장을 한 남자이다. 계속해서 여장한 남자들이 나와 춤을 추면 신도로 보이는 할머니가 돈을 옷에다 걸어주기도 하고 음식상을 주기도 하는 것까지 거의 굿과 흡사하다. 그래도 외국인이라고 들어가서 사진 몇장을 찍어도 별 제지는 없다. 내친김에 그냥 눌러앉아 구경도 한다. 굿은 4시경에나 끝이 난다.


정령신인 낫에게 바치는 제단이 차려져 있다


춤추는 무당 언니 아니 오빠^^


간만에 즐거운 구경을 마치고 양곤으로 가는 버스를 예약한다. 내일은 일요일이라 항공권 리컨펌을 위해서는 늦어도 열두시까지는 양곤에 도착해야 한다. 그리고는 딱히 할일은 없다. 그냥 하루밤을 자고 방콕으로 돌아가는 일만 남아 있다. 방콕에서는 바로 라오스로 갈 예정이니 라오스에서 열흘 그리고 운남에서 보름을 보내고 나면 티벳으로 갈지 한국에 한 번 들어가게 될지 윤곽이 잡힐 것이다. 지금 생각으론 한 번 갔다와도 좋겠다는 생각이지만 그저 운명에 맡기는 수밖에 다른 방법은 없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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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달레이> 헌돈은 돈이 아니다

 

미얀마 제2의 도시만달레이는 미얀마의 마지막 왕조인 공파웅 왕조가 영국에게 무너지기까지 미얀마의 수도였던 곳으로 볼거리가 굉장히 많은 곳이지만 복잡한 시내와 매연 덕분에 여행자들이 그리 오래 머무르는 곳은 아니라고 한다. 나 역시 하루 만에 매연을 피해 나왔던 교장선생님의 경험과 시뽀에 가기 전 새벽에 잠시 느꼈던 매연의 괴로움으로 그리 오래 머물 생각이 있었던 곳은 아니었다. 하지만 도착한 시간이 저녁이다 보니 그래도 두 밤은 자야겠다 생각하다가 결국 사흘이나 머문 곳이 되었다.


물론 공기는 무지 나쁘긴 하지만 뭐 죽을 만큼은 아닌 것이 관광지가 주로 만달레이 외곽에 있어 저녁에만 잠시 괴로우면 되는데다가 내가 흡연자라 그런지 어지간한 공기는 그럭저럭 견딜 만 하더라는 것이다. 첫날 오전에는 밍군을 다녀온다. 밍군은 만달레이에서 배를 타고 한 시간쯤 가야 하는 곳인데 밍군힐이라는 거대한 파고다가 완성조차 못한 채 서 있는 곳이다. 완성되었다면 150미터나 되었을 거라는 피라미드를 연상시키는 이 파고다는 공파웅 왕조의 마지막 왕인 보도파야 왕의 명으로 건설d; 시작되었다고 한다. 그러나 노역이 만만치 않았던지 일꾼들을 잡으려고 인도로 도망가게 되거 이를 잡으려고 인도 국경을 칩입했다 영국군에게 침략의 빌미를 주게 되고 결국 공파웅 왕조는 영국 식민지가 됨으로써 완성되지 못하고 미완의 구조물로 남게 되었다고 하는데 꼭대기에 오르면 만달레이 시가지까지 보인다고 한다.


밍군힐에 있는 밍군파고다


밍군에서 만난 꼬마 스님들


원래는 만달레이 근교의 밍군을 오전에 다녀왔다가 오후에는 다시 아마라푸라라는 또다른 외곽에 있다는 우베인 다리에서 선셋을 보는 것이 일정이었는데 밍군가는 선착장까지 태워다준 기사 왈 오후에는 그냥 만달레이 시내를 둘러보고 내일 하루 종일 차를 대절해 사가잉, 인와, 아마라푸라 지역을 돌아보라는 것이다. 하루에 다 둘러볼 수 있냐니까 그렇단다. 어.. 그것도 괜찮겠다 싶어 일행들에게 얘기를 건네 본다. 다음날 널널하게 시내나 보려고 했다가 급하게 일정을 바꾸어 오후에 만달레이 시내를 돌기로 한다. 만달레이 시내 역시 전부 보는 데는 10불인데 선셋을 보려는 만달레이힐은 무료라 결국 사원 3개보자고 10불을 내는 모양이 되어 잠시 망설인다. 하지만 미얀마에서 가장 아름답디는 목조 건물인 쉐난도 승원 앞에서 맘이 바꾼다. 나 저거 보고 들어가서 싶은데요.. 저두요 뭐 이리 되어 그냥 10불짜리 입장권을 사는 데는 동의가 되었는데..


표 파는 공무원이 입장료로 낸 달러를 돌려준다. 이유인 즉슨 뉴머니로 달라는 것이다. 즉 새 돈만 받겠다는 건데 사실 우리가 가져간 달러들이야 다 뉴머니 아닌가 밀이다. 그걸  숙소에 내면 뉴머니든 올드머니든 주는 대로 거슬러 받는 건데 찢어지거나 형체를 알아 볼 수 없는 것도 아니고 그저 약간 낡은 돈도 안 받겠다니 게다가 지들 나라 돈도 아니고 남의 나라 돈을 나 참 정말 어이가 없는 나라다. 그래서 새 돈 없다니까 짯으로 내라는데 환율이 장난이 아니다. 게다가 외국인 전용 창구에 앉아 있는 직원들이 대체 누구 빽으로 앉아 있는 건지 영어 한 마디를 못하니 기가 막힐 노릇이다. 결국 옆에 있던 다른 미얀마인이 영어로 설명해 준다. 애들한테 이래야 소용없다. 헌 돈은 은행에서 받지를 앉기 때문에 어쩔 수 없다. 에휴 내가 졌다.. 하면서 결국 일행에게 새 돈을 바꿔서 낸다. 이 나라는 정부나 관료만 아니면 정말 다닐만한 나란데 꼭 그런 것들이 가끔씩 열 받게 한다. 

 

쉐난도 승원과 불경을 대리석판에 새겨 모두 판마다 모두 탑을 세워 보관햇다는두개의 파고다를 보고 나니 시간이 어느새 5시를 넘어 있다. 만달레이힐에서 석양을 볼려면 시간이 많지 않아 거의 천개가 된다는 계단을 뛰다시피 오른다. 헉헉거리며 도착하니 아직 해는 지지 않았는데 멀리 시가지가 온통 매연으로 덮혀 있다, 결국 해는 시커먼 매연 뒤로 넘어가고 만다.


쉐난도 승원, 목조 건물인데 건물 자체가 에술품으로 평가된다고 한다.


만달레이힐에서의 선셋, 저 거뭇거뭇한 것이 매연이다.


다음날은 만달레이 외곽을 돌아본다. 말은 택시인데 정체는 조그만한 트럭인 이름뿐인 택시에 앉아서 간다. 사가잉힐을 먼저 둘러보고 인와 지역은 호스카로 그리고 아마라푸라 지역은 우베인 다리에 선셋을 보러간다. 우베인 다리는 베인이라는 사람이 티크로 만들었다는 1.2킬로에 이르는 다리인데 주변의 경관 어우러져 매우 멋진 풍경을 만들어낸다. 사가힝힐에서, 우베인다리에서 영어공부가 하고 싶은 미얀마 백성들이 끊임없이 말을 붙인다. 성의껏 대답은 해 주지만 참 니 영어나 내 영어나 영어가 객지에서 고생한다 싶다. 그래도 두어시간씩 붙어서 사원에 대해 설명도 해주고 이메일 주소도 적어주고 하는 사람들을 보고 있으면 내 그렇게 환경 좋은데서 살면서 영어 공부 하나도 안 하고 뭐 하며 살았는지 조금 미안함 마음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우베인 다리에서 본 전경


우베인 다리


선셋을 보고 돌아와 커플과 마지막으로 저녁식사를 한다. 커플은 바간으로 나는 양곤 근처의 바고로 떠난다. 헤어지기 전 마지막 식사다. 여행 다니다 보면 대체로 일정이 맞으면 같이 다니긴 하지만 마음이 맞기가 쉽지 않은데 이 커플과는 참 편안하게 다닌 것 같다. 하지만 모든 만남에는 이별이 있는 법, 그저 담담하게 헤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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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뽀> 뭉그니를 때려주고 싶다.

 

새벽에 만달레이에서 갈아탄 버스는 다시 여섯시간을 달려 시뽀에 우리는 내려준다. 인레호수에서 6시차를 탔으니 꼬박 20시간이 걸린 셈이다. 특히 만달레이에서 시뽀까지 오는 버스는 전직이 일본의 유치원 버스였던 모양인데 버스의 뒤며 바닥이며 할 것 없이 짐과 사람으로 가득 차 있는 엽기 그 자체의 버스다. 인터넷에서 내려받은 <뭉그니의 미얀마 여행기>에 따르면 -물론 지극히 주관적이라는 부제가 붙어 있긴 했지만- 아주 널널한 곳으로 개인적으로 가장 좋았던 곳이라고 되어 있어 한적하게 쉬기에 좋은 곳 일거라는 기대를 하며 그 엽기적인 버스까지 타는 수고를 감수했건만 웬걸.. 한적한 곳이란 한적한 곳은 죄다 지나서 내려주는 곳이 번다하기 이를 데 없더라는 얘기다. 물론 도시의 번다함까진 아니지만 그래도 지나치게 한적한 시골을 기대했던 탓인지 첫눈에 이게 웬일 하면서 놀란 것이 사실이다.


시뽀행 버스.. 바닥은 토마토며 맥주로 가득 차 발 뻗을 곳도 없다.


그래도 오는 길이 너무 힘들어 한 사흘은 머무르기로 한다. 다음날 챨스게스트하우스의 챨스 할아버지를 따라 보트투어를 나간다. 챨스게스트하우스는 이 챨스할아버지의 트레킹으로 유명한 곳인데 사람이 많으면 보트투어를 해서 한 사람 숫자대로 돈을 나눠 내고 사람이 없으면 그냥 무료로 찰스할아버지 뒤를 따라 주변 마을 다니는 트레킹이 날마다 진행된다고 한다. 마침 트레킹을 신청한 사람이 8명이나 되어 보트 투어를 나선다. 이 곳 시뽀는 제법 높은 산중인데도 강이 흐르고 그 강을 따라 한참을 가니 어떤 마을에 당도한다. 마을을 다니며 파파야 농장에서는 파파야를, 파인애플 농장에서는 파인애플을 먹고 근처 승원에도 들러 놀다가 점심 먹고 돌아오니 어느새 저녁이다.


파파야 농장에서.. 이것이 파파야 나무다.


다음날을 그저 시장 구경이나 다니다 강 건너 사원에 일몰을 보러 올라간다. 산 밑까지 한시간을 걸어가 다시 산밑에서 20분쯤 오르니 파이브 부다힐이라는 사원이 나온다, 이 사원에 오르니 시뽀 전경이 발아래 보이며 멀리 해 지는 모습이 멋지게 펼쳐진다. 시뽀에서는 해지는 모습을 본 것만으로도 만족하기로 하고 내일은 만달레이로 떠나기로 하고 시뽀에서 중간 지점인 핀우린 구간만 기차를 타기로 한다. 원래 시뽀를 떠나는 기차가 만달레이까지 가기는 하지만 11시간이나 걸리기 때문에 여섯 시간쯤은 기차를 타고 중간에 내려 좀 빠른 픽업을 이용해 만달레이로 가기로 한 것이다, 원래 올 때처럼 버스를 타는 것이 가장 빠른 길이긴 한데 그 버스를 다시 탄다는 사실도 끔찍하고, 미얀마에서 기차를 한 번 타 보고 싶기도 하고 또 이 구간이 세계에서 두 번째로 높다는 곡테익 철교를 지난다고 하니 그 철교도 볼 겸해서 기차를 타기로 한 것이다. 시뽀에서 날마다 저녁을 먹던 미스터푸드에서 마지막 저녁을 먹고 잠자리에 든다. 이곳 시뽀는 9시면 정전이 되는 전기 사정으로 인해 미얀마 여행 중 가장 잠을 많이 잔 곳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만큼 푹 자다가는 곳이 되었다.


파이브 부다힐에서.. 선셋 사진은 이제 좀 지겨운 듯 해서리..


세계에서 두 번째로 높다는 곡테익 철교. 세계에서 제일 높은 철교는 어딘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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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레호수> 미쉘.. 모자를 벗지 말든지^^

 

깔로에서 두시간 거리에 있는 미얀마 여행의 백미라는 인레호수로 떠난다. 인레호수는 워낙 큰 호수라 호수의 오른쪽 상단부에 자리 잡고 있는 냐웅쉐라는 마을에 방을 잡고 주로 보트로 돌아보게 되어 있다. 깔로에서 우리를 태운 버스는 중간에 쉐냐웅이라는 갈림길에 우리를 내려놓고 떠난다. 이곳부터 냐웅쉐까지는 다시 택시를 타야 한다. 네 분의 선생님이 한차를 타시고 나는 다음 출발하는 차를 타고 갔는데도 같은 숙소에서 다시 만난다. 여튼 가이드북의 힘은 대단하다^^. 어쨌듯 숙소를 잡고 여장을 풀어도 시간은 11시 남짓이다. 어느새 선생님 중 한 분이 문을 두드린다. 주영씨도 내일 보트투어 할거죠? 아 네.. 했더니 어느 새 보트 투어는 그저 돈만 내면 알아서 할 수 있게 섭외까지 마쳐 놓으셨단다. 가끔 일행을 잘 만나면 여행이 이리 편해지기도 한다^^


세 분의 여선생님들은 벌써 어느 마을엔가 선다는 장구경하러 나가시고 나는 그저 방에서 빈둥거리다 오후에 교장선생님과 카누를 탄다. 호수 전체를 둘러보는 보트 투어와 달리 조그만 카누를 타고 수로 사이를 두어시간 다니다가 일몰을 보고 오는 것이다. 카누가 수상 가옥 사이를 미끄러지듯이 흘러 수로 사이를 가로지른다. 어느 지역쯤에서 사공이 호수 위에 핀 연꽃을 한송이 꺾어서 건네준다. 모터가 달린 요란한 보트와는 달리 손으로 때로는 발로 젓는 카누는 저녁 나절의 수로 위를 평화롭게 흘러간다.


인레 호수 위의 수상 가옥들


다음날 시작한 보트투어는 먼저 호수 주변에 돌아가며 선다는 장이 열리는 곳부터 방문한다. 상당히 춥다는 소문을 듣고 긴팔에 운동화까지 신었건만 호수 위로 불어오는 바람이 제법 차다. 시장을 거쳐 몇군데 기념품 가게를 들러 당도한 곳은 인떼인이라는 곳이다. 그저 가이드북에는 호수에서 조금 떨어져 있어 투어비를 조금 더 내야하는 곳으로 돈을 더 주고서라도 가볼만하다고만 되어 있는 곳이었는데 막상 가보니 기원전 2세기경에 만들었을 거라고 추정되는 전탑군이 밀집해 있는 곳이다. 누가 어떤 용도로 세웠는지도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는데 거의 방치상태로 있기는 해도 기원전 2세기 경의 유물이라고는 보기 어려울 정도로 정교한 조각들이 그대로 남아있어 보는 이의 눈길을 끈다. 아직 이곳까지 돌볼 여력은 없는 건지 여기저기 허물어져 가는 탑 사이를, 그 탑에서 떨어져 나왔을 것이 분명한 돌들을 밟으며 걷다가 문득 이게 얼마나 오래 버티어줄까 하는 데 까지 생각이 미치자 안타까운 생각이 든다.


인떼인의 유적들


인레호수는 워낙 넓어 어떤 곳은 물위에 마을이 형성되어 있고 어떤 곳은 바다라고 해도 믿을 만큼 넓은 물로 이루어져 있다. 특히 압권은 일명 플로팅가든이라는 수상정원인데 물위에 떠 있는 좁은 공간에 토마토며 꽃같은 수상 식물들을 가꿔 내다파는 곳이다. 이 땅위에는 사람이 올라설 수도 있는데 진흙이나 이끼를 밟고 서 있는 것처럼 좀 쿨렁거리기는 해도 사람이 걸어다니는 데 큰 지장이 없다. 이곳에서는 해초같은 것을 썩혀 거름으로 쓰기도 한다고 한다. 인떼인을 둘러보고 점심을 먹은 뒤 플로팅 가든이며 사원들을 돌아보니 하루가 간다. 세분 선생님들을 그날 저녁으로 만달레이로 떠나는 일정이다. 정말 일정 하나는 빡세게 짜 오신 모양이다.


호수에서 고기잡이를 하는 사람들


플로팅 가든, 재배한 꽃을 수확하고 있다.


서둘러 만달레이로, 양곤으로 떠나는 선생님들과 헤어지고 다음날은 자전거를 타고 마을들을 천천히 돌아본다. 갈대라고만 생각했던 하얀 꽃들이 핀 밭이 알고 보니 사탕 수수밭이란다. 하얀 꽃들을 피워 올린 사탕수수밭들 사이로 난 비포장도로를 따라 한참을 내려가고 있는데 반대편에서 자전거를 탄 어떤 서양 남자가 영어할 줄 아냐고 묻는다. 잠시 자전거에서 내렸더니 이 친구 론리플래닛에서 돈을 대고 마을 사람들이 노동력을 대어 만들었다는 다리가 있는 마을을 찾아가다가 포기하고 돌아오는 길이다. 나도 거기에 가는 길인데 대충 11킬로 쯤 되니 아직 한 시간은 더 가야 할 것 같다고 대답하자 이 친구 다시 자전거를 돌려 뒤를 쫓아온다. 스위스 사람이라는 데 이름이 미쉘이란다. 뭐 베트남 사람은 자기를 미셀이라고 불러서 맘이 상했는데 너는 발음이 좋다나 어쨌다나 수작이다. 미쉘이나 미셀이나 그게 그거구만.. 근데 이 친구 나한테 영어할 줄 아냐고 물은 게 무색할 지경으로 영어를 못한다. 참 노란 머리에 파란 눈에 흰 피부가 영어를 못하니 것도 보통 괴로운 일은 아니겠다 싶다. 이럭저럭 앞서거니 뒤서거니 다리에 당도한다.


일몰을 보고나니 어두워져 그냥 보트에 자전거를 싣고 돌아가기로 한다. 어디에 묵고 있냐니까 호수 옆에 있는 내가 눈독을 들였으나 가격이 비싸 침만 흘리던 그 방갈로에 묵고 있단다. -에휴.. 유로화 쓰는 나라에서 태어나든지 했어야 하는데^^-  그러더니 자기랑 저녁이나 같이 먹자고 한다. 사실 보트를 타기 전까지 보인 호의로 볼 때 밥 먹자는 소리 정도는 할 것 같았고 뭐 그러면 대충 먹어 줄 용의도 있었으나 이 친구 보트를 타자 부는 바람 때문에 모자를 벗는데 헉.. 내가 절대로 용서 안하는 외모의 소유자였으니 이른바 대.머.리였던 것이다. 그전까지 30대 중반의 아저씨는 온데간데 없고 갑자기 50대로 변신한 사람이 보트에 앉아 있더라는 것이다, 아무리 궁해도 대머리는.. 쩝 결국 사양하고 혼자 밥먹으러 간다. 그러나 미얀마 여행은 혼자 다닐 팔자는 아닌 모양인지 깔로에서 만난 커플을 다시 만난다. 신원 미상, 연령 미상의 이 커플은 그 다음 일정이 나랑 똑같아 자연스럽게 일행이 된다. 일행복은 있으되 아저씨 아님 커플이라니.. 도대체 대한민국 남자들은 혼자 여행 안다니고 다 뭐 하는지 모르겠다^^.


문제의 론리플래닛 다리.. 여기까진 분위기 괜찮았다니..


다음날은 커플과 자전거를 타고 온천을 다녀온다, 원래 혼자라면 자전거로 찍고만 오려고 했는데 일행이 있으니 같이 온천에 들어간다. 대중탕은 1불, 와국인 전용탕은 3불 추가라는데 구경하러 들어간 전용탕에 마침 아무도 없어 그냥 룽지를 빌려 입고 셋이서 들어간다. 햇살이 따가운데 온천에 들어가 있으니 처음엔 좋다가 점점 힘들어진다. 게다가 더운물이라 때가 부는지 온 몸이 가렵다. 그렇다고 온천에서 때를 밀수도 없고 그냥  퉁퉁 불려서 샤워만 한다. 그래도 간만에 더운물에 몸을 담궈서 그런지 제법 개운하다. 돌아가는 길은 다시 보트를 탄다. 혼자 다니면 부담이 될 텐데 셋이서 나눠 내니 그리 큰 부담은 되지 않는다.


제 수영복 사진을 기다리시는 분들께 바칩니다. 대략 이 사진으로 만족해주시기를^^  


다시 밤버스 탈 준비를 하고 떠난다. 다음 도시는 시뽀.. 만달레이에 들러서 다시 6시간가량 버스나 기차를 타야 도착하는 곳이다. 미얀마 최장시간 버스 여행이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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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깔로> 계절사이로 걸어가다

바간에서 만달레이로 갈까.. 깔로로 갈까 잠시 고민하다 다시 양곤으로 돌아가는 시간이 짧은 쪽을 택하니 깔로로 가기로 결정이 난다. 깔로는 인레호수 가는 길에서 조금 못 미처 있는 해발 1350미터의 조그만 산동네다. 이곳 역시 다른 식민지들과 다를 바 없이 조금 시원하다는 이유로 영국의 식민지로 개발되기 시작한 곳이라는데 대체적으로 고원지역이 그렇듯이 별로 볼거리가 있는 곳은 아니다. 여행객들이 여기에 머무는 이유는 거의 트레킹 때문인데 태국의 트레킹처럼 코끼리타기나 뗏목타기 등등의 화려한 놀거리는 없어도 아직 때묻지 않은 자연과 소수 민족이 모습을 볼 수 있다고 한다. 새벽에 깔로행 버스를 타러 나서는데 호텔직원이 도시락을 건네준다. 새벽에 나가니 숙박비에 포함되어 있는 아침은 그냥 못 먹는구나 싶었는데 의외의 정성에 마음이 따뜻해진다. 열어보니 식빵 두 쪽, 커피믹스 하나, 오렌지 그리고 삶은 계란이 들어 있다. 삶은 계란이라.. 어디 먼길이라도 떠나는 것 같다. 버스를 타니 교장 선생님이 보인다. 결국 이렇게 일정이 맞는구나 싶다.


게스트하우스표 도시락.. 새로 산 카메라 다른 건 다 괜찮은데 어두운데서 찍으면 사진이 이 모양이다.


깔로에 도착해 트레킹을 알아보니 일박 이일에 한 명은 15달러, 두 명이면 10달러 란다. 물론 식비와 숙박이 포함되어 있다. 생각보다 비싸지는 않네 하면서 교장선생님과 나 둘이서 트레킹을 신청한다. 신청을 해 놓고 설마 둘이 가는 건 아니겠지 했는데 아침에 가이드를 따라나서니 정말 둘 뿐이다. 아니 이래도 남는 게 있나 했는데 뭐 안 남을 것도 없는 것이 그냥 냅다 걷기만 하더라는 것이다. 그나마 다행인 건 깔로가 이미 높은 곳에 위치하고 있어 트레킹 코스는 오르막이 거의 없는 산길이라는 점이다. 산길을 따라 하염없이 걷다가 마을이 있으면 들러 보고 점심 먹고 학교가 있으면 들어가 보고 하다가 하루가 간다.


트레킹 도중 들른 마을


마을아이들. 한국에서 안 입는 옷이라도 수거해 가져다주고 싶은 맘이 간절했다는..


산정상에 있는 산장인 뷰포인트에 올라 선셋을 본다. 간만에 산 너머로 붉게 지는 일몰을 보고 있노라니 묘한 감흥이 밀려온다. 미얀마에서는 달리 할 일이 없어서 그런지 유독 일몰 챙겨 볼 일이 많이 생기는 것 같다. 산장주인인 네팔 사람이 만들어 주는 네팔 음식을 먹고 모닥불가에 앉아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눈다. 이곳의 인도인들이나 네팔인들은 주로 영국식민지 시절 영국인 주인을 따라왔다가 독립 이후 그대로 눌러 앉은 사람들의 후손이다. 이 네팔 아저씨도 예외는 아니다. 치앙마이 트레킹의 추위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여기도 추위가 만만치 않다. 저녁을 먹고 별이나 보려고 나섰더니 전기도 없는 산장이 온통 환하다. 오늘이 보름이란다. 쏟아질 듯한 별을 기대했건만 달빛에 가려 별은 그저 그런 빛이다. 치앙마이에서는 흐려서 별이라곤 안보이더니 여기선 풀문이라니 이래저래 별하고는 인연이 닿지 않는 모양이다.


뷰포인트에서의 선셋


산장 주인 아저씨


전기도 없는 산장에서 긴 밤을 보내고 다음날은 다시 걸어서 마을로 돌아간다. 영국 식민지 시절에 건설했다는 철로 위로는 영국식민지 시절부터 다녔을 법한 기차가 아직도 굴러다닌다. 그 기차길을 따라 가다 기차역에서 점심을 먹는다. 기차역에는 기차가 들어오는 시각에 맞춰 작은 간이장이 열리는데 점심이며 꽃, 야채를 파는 상인들로 북새통을 이룬다. 제법 간이역 같은 북적임은 기차가 떠나자 금새 가라앉는다. 오후에는 다시 논길을 따라 걷는다. 이미 추수가 끝난 누런 논 옆으로 새파란 야채가 자라고 있다. 산은 가을 산이고 밭을 보면 봄인데 정작 날씨는 한여름인 곳에서 세 계절을 넘나들며 트레킹을 마치고 나니 어느새 사흘이 지나 있다.


뷰포인트에서의 아침. 셀프로 찍었슴다.


기차가 들어오면 작은 장이 선다.


이 곳 깔로에서도 한국 사람들이 눈에 보인다. 한 팀은 여선생님 세분으로 이루어져 있고 또 한팀은 대학생으로 보이는 커플이다. 그 중 여선생님팀과 일정이 맞아 같이 인레 호수로 함께 떠난다. 으.. 전직 교장선생님 한 분과 현직 선생님 세 분이라.. 지금이 겨울방학이긴 겨울방학인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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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간> 백마 탄 기사를 만나다

양곤에서 오후3시에 출발한 버스는 새벽녘이 되어서야 바간으로 들어선다. 바간은 도시전체 입장료가 10불인데 새벽에 징수원들이 버스로 올라와 외국인으로 보이는 사람만 내리라고 한 뒤 표를 판다. 즉 표를 사지 않고서는 도시에 들어갈 수도 없는 것이다. 자다 내려 표를 구매한 뒤 바간 지도가 있길래 1000짯을 주고 하나 산다. 10달러나 받으면서 그냥 하나 줘도 되겠구만 궁시렁거리며 지도를 펴보니 버젓히 프리맵이라고 써 있다. 참 가지가지로 챙긴다 싶다. 이건 어째 민간인들은 이리도 순박한데 공무원들이 더하냐 말이다. 열받아봐야 나만 손해니 그냥 1000원 버렸다 생각하기로 한다.


바간은 11세기부터 13세기 몽고의 침입이 시작될 때까지 약 200년 동안 5,000여 기의 불탑이 세워졌다고 하는 미얀마의 대표적인 불교 유적지이다. 뭐 지금은 세월의 풍화에 따라 2,500여기만 남아있다고 하는데 이게 말이 2,500개지 야트막한 평원지역에 불탑이 수도 없이 서 있는데 붉은 흙 위에, 붉은 벽돌로 지어진 탑들이 붉게 물든 석양을 향해 서 있는 모습은 장관을 이룬다. 물론 2,500개를 다 둘러볼 수는 없는 노릇이라 몇몇 유명한 사원을 중심으로 하루 이틀 돌아보는 것이 일반적이다. 아무래도 밤새워 버스를 탄 뒤 바로 투어를 하기에는 무리인 것 같아 하루를 빈둥거리며 보내다 한국인 아저씨 한 분를 만난다. 라오스에서 한 번, 태국에서 한 번, 그리고 미얀마에서 세 번째 부딪히는 데 정년퇴직한 교장선생님이다. 방콕에서 만났을 때 미얀마에 나보다 4일이나 먼저 간다고 해서 만날 일이 없겠지 했는데 어찌어찌 또 만나버린 것이다. 아무리 한국 사람이 그리워도 사실 나이 많은 아저씨가 게다가 전직 교장선생님이 일행으로서야 그리 반가울 턱은 없는데 대충 다음 일정이 비슷하다. 그래도 다음 일정이 트레킹이니 혼자 가는 거 보다야 낫겠지 싶어 다행이다 생각하기로 한다.


첫날은 혼자서 호스카-뭐 별 건 아니고 말이 끄는 차 즉 마차다-를 타고 사원이 밀집되어 있는 올드 바간 쪽을 돌아보기로 한다. 조조라는 호스카 드라이버가 끌고 나타난 마차는 으아.. 백말이다. 내 인생에 백마 탄 왕자님이야 있을 리 만무하지만 비록 드라이버이긴 해도 -뭐 드라이버가 우리말로 하면 기사 아니던가- 백마 탄 기사 하나는 등장한 셈이다^^. 여튼 백마가 모는 마차를 타고 하루종일 탑들을 돌아본다. 아난다사원, 술래마니사원, 탓빈뉴사원, 담마얀지사원, 고도빨린사원, 밍글라쩨디 사원, 부바야 파고다, 쉐산도 파고다 등등 이름도 외우기 어려운 사원과 탑들이 저마다의 모양과 사연을 가지고 나타났다간 사라진다. 말이 모는 오솔길을 따라 이름 없는 사원에 들어가는 느낌은 그럴 듯한데 사원에 가면 어김없이 등장하는 사람이 있으니 뭐 당연하게도 물건을 파는 상인들인데..


이것이 호스카다


사원에서 바라 본 바간의 탑들


미얀마 사람들은 순박하면서도 집요한데가 있어 묘하게 사람을 피곤하게 하는데 바간에서는 그 정도가 지나쳐 거의 이성을 상실할 지경까지 만든다. 일단 이 상인들은 나전칠기 그릇이나 페인팅을 파는 것이 주목적인데 이상하게도 이 사람들이 사원을 관리하고 있는 구조로 되어 있다. 즉 옥상으로 올라가거나 벽화를 보려면 이들이 따주는 문을 통해서만 갈 수 있는데 그러면 일단 물어보는 말을 무시하기는 어렵게 된다. 대략 질문은 종이에 써서 외운 것처럼 동일한데 어디서 왔냐.. 바간은 처음이냐.. 미얀마는 얼마나 오래 있느냐.. 이름은 뭐냐.. 그리고 그 다음이 예쁘다이다. 그럭저럭 가족 관계까지 파악당하고 나면 사원 구경은 대략 끝이 나는데 이때부터가 시작이다. 페인팅 뭉치가 어디선가 등장하고 백여 장은 족히 되어 보이는 페인팅을 들춰가며 하나하나 설명을 시작한다. 다 들어주려면 한 시간은 걸릴 것 같다. 미안하지만 대략 그냥 가려고 하면 하나도 못 팔았다.. 니가 이 그림을 사주면 나는 정말 해피할 것이다 등등 이제까지 이야기를 나눈 인정상 차마 그냥 갈 수 없게 만든다. 그래도 끝끝내 뿌리치고 돌아서면 마지막으로 프레젠트라는 말이 나온다. 안 살거면 볼펜이라도 주고 가라는 것이다. 물론 미안한 표정으로 준비된 게 없다고 하면 또 그런대로 웃으면서 노프라블럼 이라는데 괜시리 사람 미안하게 만드는 힘이 있다. 하지만 처음엔 볼펜이나 좀 가져올 걸 하는 생각은 한 열 번쯤 반복되면 니가 나한테 볼펜 맡겨놨냐는 마음으로, 스무번쯤 들으면 짜증으로 삼십번쯤 들으면 사원 들어가기가 두려워지는 것으로 바뀐다. 참 웃는 얼굴에 침도 못 뱉겠고 여튼 아름다운 만큼 상인들도 꽤나 집요한 곳이 바간이다.


점심때  먹은 미얀마 백반. 향이 조금 달라 그렇지 한국 백반과 비슷하다.


사원에서 만난 아이들


담날은 자전거를 빌려 조금 먼 뉴바간을 둘러 본다. 관광객들은 유명사원이 몰려 있는 올드바간 지역에 집중되어 있어 나머지 사원들은 거의 방치된 채 버려져 있다. 자전거를 타고 지나다가 맘에 드는 곳이 있으면 들렀다가 다시 자전거를 타고 다니니 상인들에게 시달리는 것 보다는 이것이 훨씬 낫지 싶다. 뉴바간 어느 식당인가에 들어가 음료수를 마신다. 강변에 있는 식당인데 음료수가 1000짯이나 하는 나름 고급 식당이다. 의자가 반쯤 젖혀져 깜빡 잠이 든다. 눈을 떠 보니 음료수를 가져다 준 웨이터가 그대로 서 있다. 이곳 식당은 고급일수록 웨이터가 곁을 안 떠나서 좀 불편하다. 민망하다. 자고 있는데도 안 갈 줄을 정말 몰랐다^^. 다시 자전거를 타고 길을 나선다. 숙소로 돌아가는 길은 포장도로라도 군데군데 패인 데가 많아 일몰을 보고 나면 너무 어두워질 것 같아 해질녁에 맞추어 숙소로 돌아온다


사원에서 바라 본 바간의 탑들2


바간의 일몰


저녁에는 숙소에서 만난 부산에 사는 남학생과 거리를 걷다가 또 다른 선생님 한 분을 만난다. 가족과 함께 오신 사회 선생님이다. 누가 방학 아니랄까봐 선생님들 참 많이 본다. 전교조 활동을 하신다는 사회 선생님이 사주시는 맥주를 마시며 미얀마 현실에 대한 얘기를 잠시 듣는다. 미얀마 정부가 독재 정부는 분명한데 이 정권이 무너지면 바로 개입할 세력은 미국이고 민주화 세력의 대모격인 아웅산 수지 역시 미국으로부터 자유로운 사람은 아니라고.. 이 나라 사람들이 힘으로 민주화를 이뤄내기 전에는 이 정권이 무조건 물러나야 한다는 생각 역시 대안이 없다는 것인데.. 그저 여행자일 뿐이라고 가이드북에도 나와 있듯이 가급적 그런 애기들은 나누지 말자고 생각했던 것이 사실 고민하기 싫었던 것의 핑계는 아니었을까 싶다. 참 지하자원도 많고 땅도 넓고 가능성은 무궁무진한 나라인데 이 나라의 현실을 어떻게 바라봐야 할지 잠시 복잡한 마음이 된다.    


바간이 너무 좋아 며칠 더 머무르고 싶었지만 아직 일정이 가늠이 되질 않아 아쉬운 마음으로 다음 행선지로 떠날 준비를 한다. 앙코르와트도 좋았지만 바간은 색다른 매력이 있는 곳이다. 바간에 오면 좋아서 죽을 몇몇 인간들이 떠오른다. 첫 번째로 바이러스, 이 녀석은 아직 앙코르도 안 갔다와서 조금 의심스럽긴 하지만 그래도 오면 제일 좋아할 것 같고.. 다음은 쿠.. 어느 파고다 밑에서 술병 끼고 앉아 세월 가는 줄 모를 것 같고 마지막으로 조커.. 비교적 정상적으로 공부도 하고 와서는 행복해.. 행복해 하며 여기저기 돌아다닐 것 같다. 언젠가 미얀마에도 직항이 생기면 아니 그건 더 비싸겠고.. 육로가 열리면 중국에서든 태국에서든 밤버스타고 와서 바간에서 며칠이고 빈둥거리다 갈 수 있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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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곤> 남자도 치마를 입는다

안숙을 캄보디아로 떠나보내고 하루를 방콕에서 뒹굴거리다 미얀마행 비행기를 탄다. 여행 시작하고 처음 타는 비행기라 그런지 비행시간이 한 시간 남짓인데도 어디 다른 대륙이라도 가는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아마 비행기라는 이동 수단이 아니었으면 <안숙부재로 인한 여행 우울증>에 한동안 시달렸을텐데 환경이 변하니 안숙의 부재도 당연한 듯 받아들여진다. 양곤 공항은 익히 들어왔던 대로 뭐 우리나라로 치면 좀 큰 읍내 터미널 같은 분위기다. 당연 수순대로 삐끼님들의 안내를 받아 택시를 타고 화이트게스트하우스 소위 말하는 백악관으로 향한다.


양곤은 같은 동남아인데도 사람들의 옷차림새부터 거리 풍경까지 인도차이나의 다른 나라들과는 또다른 느낌을 준다. 먼저 옷차림은 남녀 구분없이 룽지라는 긴치마를 입는 것이 특징이다. 뭐 여자들의 것은 타메인이라고 부른다지만 대략 그냥 룽지라고 불러도 시비거는 사람은 없다^^. 이 룽지라는 옷은 직사각형의 커다란 천의 양귀퉁이만 꿰매놓은 것으로 다리를 사이에 넣고 적당히 접어서 시접부분을 둘둘 말아 허리께에 밀어 넣으면 그만인 편리한 옷이다. -뭐 룽지속에는 속옷도 안 입는다는 미확인 보도도 있다- 남자들 옷은 대략 체크무늬가, 여자들 옷은 꽃무늬가 주종을 이루는데 여튼 이 치마를 입고 자전거도 타고, 축구도 하고, 더우면 걷어서도 입고, 목욕할 땐 가슴께로 올려서 가운으로도 입고 등등 다양한 용도로 사용한다.


다음은 특징은 미얀마만의 특유한 화장 방법인데 여자들과 아이들 가끔 남자들까지 온통 얼굴에 노란색 가루를 칠하고 다닌다. 따렌까라는 나무수액으로 만든 이 화장품은 메이크업이자 썬블록의 역할을 한다는데 처음엔 액체지만 마르면서 얼굴에 노란 가루의 흔적을 남기는 것이다. 아마 이 흔적이 남아야 더 예쁜 것으로 인정이 되는 모양인데 그래서인지 특히 볼부분과 코부분에 간혹 나뭇잎 모양이나 특이한 무늬를 그려넣은 제법 세련된(?) 화장법이 선보이기도 한다. 여튼 이 화장법 역시 마얀마 사람을 구별짓는 독특한 전통이라 할 수 있겠다.


사진에서 보이는 치마가 룽지다


사원에서 만난 아이. 얼굴에 묻은 노란 흔적이 따렌까 자국이다.


이 동네 남자들의 특징은 주로 우리가 죠스바를 먹고 났을 때나 볼 수 있는 벌건 입을 하고 다니는 경우가 많다는 것인데 처음 보면 흠칫 뒤로 물러나게 될 만큼 섬찟하다.  이는 꿍이라고 부르는 입담배 때문인데 나뭇잎에 하얀 가루를 바르고 무슨 열매인가를 잘게 썰어 싸서 씹는 이 잎담배가 입전체를 붉게 물들이는 것이다. 게다가 이 입담배는 어느 정도 씹다가 뱉아 줘야 하는데 벌건 물이 입에서 확 쏟아지는 걸 보면 비위가 확 상한다. 단지 비위만 상하는 게 아니라 가끔 파편이 튀기로 하는 데 뭐 그리 유쾌한 기분은 아니다. 이 덕분에 그리 깨끗하지 않은 거리는 온통 벌건 물이 들어 있다. 누군가의 조언에 의하면 외국인들에게만 징수되는 비싼 사원입장료를 내지 않으려면 룽지를 입고 입담배를 씹은 다음 징수원을 향해 씩 웃어주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현지인들이 애용 상품이다.


양곤 거리는 매우 낡은 건물들이 그래도 무슨 유럽 뒷골목같은 분위기를 연출하고 있는데 미얀마가 프랑스의 식민지였던 다른 나라들과는 달리 영국의 식민지였던 영향이라고 한다. 그 때문인지 영어도 비교적 잘 통하고 나이가 든 사람일수록 영어 한마디 못 하는 사람이 없는 재밌는 곳이다. 하지만 수도라고 해야 영국 식민지풍의 건물을 제외하고는 전역이 거의 슬럼화 되어있고 보도블록이며 맨홀뚜껑이 거의 깨져 있어 걸을 땐 발밑에 온 신경을 집중해야 하는 대책이 안서는 곳이기도 하다. 그래도 그나마 여기는 수도라고 전기나 들어오지 양곤을 제외하면 저녁 두세 시간을 이외에는 전기도 들어오지 않고 그나마 수도시설이 없어 우기에 내린 비로 이루어진 웅덩이 물을 그냥 길어다 마셔야 되는 열악한 나라이기도 하다.


숙소 옥상에서 본 양곤시내


양곤에서는 쉐다곤 파고다만 보러간다. 만달레이의 마하무니 파고다. 짜익띠요의 골든락과 함께 .미얀마 3대성지로 불리는 이곳은 현지인들은 무료지만 외국인은 5달러인데 굳이 매표소를 찾지 않아도 징수원들이 귀신같이 외국인들을 찾아내 입장료를 받는다는 곳이다. 게스트하우스에서 준 지도대로 버스를 타본다. 미얀마버스는 숫자가 아라비아로 되어있지 않고 자기나라 고유의 글자로 되어 있어 버스타기도 쉽지 않다. 쉐다곤 파고다야 워낙 유명한 성지라 어째 물어물어 타기는 했으나 헉 이 버스 도무지 발디딜 틈도 없다. 5분 남짓이니 어찌어찌 견디긴 했지만 다른 버스들도 별반 다르지 않다. 앞으로 미얀마에서 버스 탈 일이 꿈만 같다. 나중에 수도 없이 보게 되는 익숙한 형태의 불탑 주변에서 하루 종일 기도를 하는 사람들 수백 명이 여기저기 흩어져 있다. 그러나 무식하면 용감하다고 사전 지식도, 가이드북도 없이 탑 한 바퀴 둘러보고 나니 뭐 별로 할 일도 없어 기도하는 사람들 틈에서 잠시 졸다가 자다가 다시 나온다.   


쉐다곤 파고다에서 기도하는 사람들


다음엔 쉐다곤 파고다가 우기에 잠길 때를 대비해 일부러 언덕을 쌓아 만들어서 그 흙을 판 곳은 인공 연못이 되었다는 깐도지 호수 쪽으로 가본다. 호수 주변에 철망이 쳐 있고 입장료가 1000짯 이다. 내지 뭐.. 하고 들어가 호수에 들어간다. 데이트 할 곳이 그리 많지 않은 듯 곳곳에 청춘남녀들이다. 에구 아주 염장을 질러라 하며 호수를 반쯤 도니 다시 입장료 내는 곳이 나온다. 이번엔 1300짯이란다. 살짝 약이 오른다. 뭐 그리 크지도 않은 호수를 부분부분 나눠서 곳곳마다 입장료를 받는단 말인가. 온 길을 되짚어 가기는 싫고, 입장료를 다시 내기는 더더욱 싫어 그냥 밖으로 나와 철조망을 따라 걸어본다, 길은 한산한데 이 호수 크지 않은 게 아니었던 것이다. 땡볕을 두시간이나 걸어서 간신히 입장했던 곳으로 되돌아오는 삽질을 하고서야 양곤에서의 하루가 간다.


깐도지 호수. 저 다리 위를 걸을 때만 해도 괜찮았다니^^


여튼 아침식사만 훌륭하다는 화이트게스트하우스에서 -미얀마는 거의 모든 게스트하우스에서 아침을 준다- 이틀을 묵으며 여행 루트를 짠다. 가이드북도 없고 인터넷도 무지 느린 이 동네에서 의지할 건 노트북에 내려받은 정보가 전부다. 일단 캄보디아의 앙코르와트와 인도네시아의 보르도부르 유적과 함께 아시아의 3대 불교 성지로 불린다는 바간부터 시작하기로 한다. 나머지는 그때그때 정해서 움직이면 될 일이다. 바간으로 가는 밤버스를 끊어놓고 시간이 남아 인터넷에서 누군가 추천한 강건너 달라시로 가 본다. 이곳도 외국인은 따로 돈을 낸다. 왕복 2불. 국가가 앞장서서 달러벌이에 혈안이 되어 있는 것 같다. 달라시에 다녀오니 터미널로 갈 시간이 다 되어 있다. 양곤에서는 한국 사람을 하나도 못 만났다. 미얀마에서도 혼자 여행할 팔자인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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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끄라비/피피>아쉬운 시간이 흘러간다

 

새벽에 방콕에 도착해 그날 저녁 끄라비 가는 표를 끊는다. 12월 30일 밤차는 성수기 가격이라며 차비가 1/3정도 더 올라있다. 그래도 31일과 1일에는 차가 운행을 안한다니 새해를 남부 해변에서 보내려면 별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다. 아. 치앙라이에서 하루만 덜 놀았어야 하는데 하면서 그냥 표를 끊는다. 게스트하우스 아저씨는 남부로 가는 밤차가 험하니 지갑이니 하는 것들은 자더라도 바닥에 깔고 자라며 조심하라고 신신당부다. 낮에 두시간 마사지를 받기는 했지만 이틀 연속 타는 밤차는 고역이다. 게다가 맨 뒤자리에 이스라엘리로보이는 상태 몹시 안좋은 남자들이 끊임없이 떠들어댄다. 확 패 주고 싶은데 그럴 수도 없고 역시 불의(?)를 보면 참는 게 최고라는 진리를 되뇌며 그냥 꾹 참고 잠이 든다. 이 버스는 남부로 가는 모든 인간을 싣고 달리더니 수랏타니에서 인간들을 분류하는데 푸켓.. 끄라비.. 피피.. 푸켓.., 끄라비.. 피피.. 이 세마디로 모든 인간의 분류가 이루어진다. 그래도 끄라비가 사람이 적은 편이다. 다시 세시간쯤 가니 끄라비다.


안숙이 인터넷에서 찍은 숙소인 반짜오파게스하우스를 찾아 헤매다 너무 덥다.. 배낭 무거워 죽겠다는 나의 징징거림에 못 이겨 결국 반짜오파는 찾지 못하고 그냥 짜오파 게스트하우스에 여장을 푼다. -나중에 보니 반짜오파는 바로 앞집이었다는^^- 결국 한해의 마지막날 남부에 도착을 하긴 한 것이다. 숙소 주인의 말로는 저녁에 파티가 있으니 참석하란다. 그러면서 한국남자 하나가 숙소에 있는데 오늘 투어를 나갔으니 저녁에 올 거라고 한다. 잘 생겼냐고 물었더니 이 아저씨 자기를 가리키며 잘생긴 건 자기란다. 원 농담도.. 왕 느끼하게 생기셨두만^^ 그러지 뭐 하면서도 파티라야 서양애들이나 벅적거릴텐데 싶어 시장과 동네를 한 바퀴 돌고 저녁을 먹고 맥주까지 한 잔 마시고 느즈막히 숙소에 들어선다. 숙소 로비에는 서양애들은 간곳이 없고 동네 주민들이 가득 모여 술을 마시고 있다. 이럴 줄 알았으면 좀 빨리 들어오는 건데 쩝.. 막 방으로 올라갔다는 한국 남자라는 친구를 방까지 찾아가 불러냈지만 대학생으로 보이는 이 친구 이미 상태가 말이 아니어서 다시 방에 올려 보내고 동네 주민들과 합석해서 술을 마시면서 해가 바뀌기를 기다린다. 동네의 또다른 게스트하우스 주인이라는 아저씨가 -그 아저씨의 느끼함도 만만치 않다^^- 안숙에게 지대한 관심을 보인다. 짜식.. 보는 눈은 있어 가지고.. 결국 새해맞이 폭죽이 터지고 해피뉴이어를 외친 뒤에야 술자리는 끝이 난다. 드디어 해가 바뀌었다. 아듀 2005.. 그리고 2006년 드디어 나는 불혹의 나이가 되었다. 아무래도 불혹하기엔 수양이 부족한 나는 어느 소설에 나온 그만큼 혹할 일이 많아지는 나이라는 해석에 동의하기로 한다.


새해 첫날에는 그 남학생과 함께 근처에 아오낭 비치로 간다. 이 친구 태국에 오자마자 끄라비로 내려와서 일주일 가까이 끄라비에 있었다는데 아오낭 비치만 못 가봤다나 어쨌다나 하면서 동행을 자처하는 데 결국 아오낭에서 배를 타고 들어가는, 자신은 이미 두 번이나 다녀왔다는 레이리라는 해변까지 같이 다녀온다. 덕분에 한국어 가이드 데리고 여행하는 듯 편하게 다닌다. 레이리 해변은 섬은 아니지만 제법 남쪽 해변의 바다 같은 느낌이 난다. 에메랄드빛 바닷물이며 야자수가 사진집에 보던 바로 그곳이다. 더구나 제법 근사한 방갈로가 자리 잡고 있어 한적한 휴가를 보내기엔 <이보다 좋을 순 없다>이다. 담에 밀월여행 오면 여기가 딱이겠다 해가며 서로 밀월여행 못 온 걸 아쉬워한다. 새해 첫날인데 떡국은 커녕 한국식당 하나 없는 이곳에서 뭐 먹어야 하나 고민하다가 시장에 들러 상추며 오이, 고추 등을 사서 방에서 쌈밥을 해 먹는다. 고기까지 구워 먹으면 금상첨화겠지만 그럴 수는 없어 그냥 참치캔을 사서 고추장과 함께 상추에 싸 먹는다. 그래도 한 병 남겨 둔 소주와 함께 제법 한국에서 먹는 것 같은 저녁 기분을 낸다.


이렇게 이틀을 보내고 나니 어느새 1월 2일이다. 안숙이 1월 5일에는 앙코르와트로 가야 하니 1월 3일 밤차는 타야 방콕에 돌아갈 수 있어 피피에 머물 수 있는 시간은 단 하루뿐이다. 아.. 하루만 더 있었으면 이 근처 섬을 다녀오는 보트 투어를 했으면 좋았을 텐테 특히 이 남자 친구 말로는 피피도 좋지만 그 근처 섬에서 하는 스노쿨링이 환상이라는데.. 여행이 아무리 길어도 결국 마지막에는 날짜가 아쉬워지는 모양이다. 치앙라이에서의 하루가 새삼 아쉬워진다. 끄라비에서 만난 남학생과는 방콕가는 버스에서 다시 만나기로 하고 피피에서 보낼 마지막 밤을 기대하면서 아침 일찍 피피로 가는 보트에 몸을 싣는다.


피피에 도착하니 성수기중에서도 최성수기답게 사람들이 바글바글하다. 선착장에서 숙소를 예약해서 이동하는 모양인데 좀 비싼 숙소에 묵자고 미리 생각했음에도 가격이 만만치 않다. 사진만 봐서는 숙소의 상태를 알 수가 없어 그냥 한 바퀴 돌면서 직접 숙소를 고르기로 한다. 배낭을 짊어지고 해변을 따라 걸어도 해변에 면해 있는 방갈로는 좀처럼 보이지 않는다. 내친 김에 좀더 걸어보자 해도 그럴 듯한 숙소는 나오질 않는다. 가이드북의 지도를 보며 한시간쯤 걸으니 땀은 비오듯 쏟아진다. 결국 원하는 모양의 숙소는 눈에 띄질 않는다. 방갈로를 찾으려면 조금 떨어져 있는 해변으로 가야 하나 보다 하고 배를 알아보니 가격이 터무니없다. 별 수 없이 다시 걷다보니 어라.. 처음에 내렸던 선착장이 다시 나온다. 어이가 없다. 결국 한 바퀴를 돈 셈이다. 다시 선착장에 있는 여행사에 들어간다. 피피섬에서도 제법 안쪽에 있는 롱비치의 숙소를 알아본다. 해변에 면한 방갈로는 전부 풀이고 언덕에 있는 방갈로는 에어콘방만 있단다. 예약을 할 경우 무료로 실어다 준다고 한다. 다른 대안에 없어 1500밧이라는 거금을 주고 언덕에 있는 방갈로를 예약한다.


여행사에서 태워다주는 보트를 타고 도착한 롱비치는 파란 바다빛과 하얀 백사장이 인상적인 해변이다. 방에 짐을 풀고 점심을 먹고 나니 어느새 오후다. 아 무슨 시간은 이리도 빨리 흐르는 건지.. 게다가 날씨가 그리 맑지는 않다. 잠깐이지만 슬쩍 비까지 내린다. 그래도 애써 빌려 온 수영복을 안 입을 수도 없는 노릇이라 흐린대로 수영복을 입고 해변으로 나가본다. 물에 들어가니 바닥까지 보일만큼 물이 맑은 것은 물론 해변에서 일미터도 떨어져 있지 않는데 고기들이 노는 것이 보인다. 그러나 두달 배운 수영실력으로 수영을 하는 것은 아무래도 무리인 듯 물장구만 치다가 그냥 백사장에서 누워 논다. 오히려 쨍한 날씨보다 그리 많이 타지 않을 것 같아 더 나은 것도 같다. 결국 사람들이 다 돌아갈 때 까지 백사장에서 누워 놀다가 들어온다. 아. 피피까지 와서 하루 밤밖에 못 자다니.. 아쉽다. 하지만 내일 배가 두시니 아침나절에 다시 한 번 해변에 나와 아쉬움을 달래기로 한다.


다음날도 날이 그리 맑질 않다. 그래도 아침을 먹자마자 다시 해변에 나가 한동안 놀다 체크아웃 시간에 맞춰 짐을 싼다. 첨에는 나가는 보트까지 무료라더니 막상 나갈 때가 되니 나가는 보트는 돈주고 타야 한다기에 그냥 배시간까지 롱비치에 머물기로 한다. 배낭을 모래사장 한 곳에 던져두고 수건 하나 깔고 앉아 있으니 그제서야 해가 난다. 여튼 날씨도 협조를 안 해준다. 우째 수영복 입고 있을 때는 얼굴도 안 뵈주더니 옷 다입고 앉아 있으니 해가 난단 말이더냐. 그래도 해는 보고 떠나네 하며 위안을 삼는다. 여튼 카메라는 아무래도 우리의 수영복 사진을 거부하기 위해 고장난 것처럼 보이니 정 궁금한 사람은 안숙의 비디오카메라에 찍힌 테잎을 재주껏 입수하도록.. 그 테이프는 이미 내손을 떠났으므로 더 이상 나에게 사진을 보여 달라고 조르지 마시기를^^


결국 아쉬움을 뒤로 하고 피피를 나와 다시 방콕으로 돌아온다. 20여일을 같이 다녔는데도 헤어지는 시간은 아쉽기만 하다. 그래도 언제까지 같이 다닐 수도 없는 일.. 결국 마지막 밤을 보내고 안숙은 끄라비에서 만난 남학생과 방콕에서 만난 여자 둘과 함께 앙코르와트로 떠난다. 나도 내일이면 미얀마로 간다. 차라리 혼자 다니는 게 더 나았을까 안숙의 부재가 크게 느껴진다. 그래도 어쩌겠는가.. 그냥 견뎌 봐야지.. 안숙이 나머지 여행도 무사히 마치고 건강하게 집으로 돌아가기를 바라며 멍하니 있다 주섬주섬 미얀마로 떠날 준비를 한다.


그래도 너무 맨숭맨숭한 것 같아서.. 치앙마이 트레킹 중 폭포에서.. 안숙 미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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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앙라이> 호의도 짐이 된다

크리스마스 이브에 도착한 치앙라이 한국인 게스트 하우스에는 방이 없다. 것도 한국인들로 다 찬 게 아니라 무슨 자격시험인가를 보러 온 태국 학생들도 만원이다, 주인아주머니의 배려로 안채의 손님방에 짐을 풀고 나니 벌써 저녁 무렵이다. 트레킹을 알아보니 뭐 일반 트레킹도 가능하긴 하지만 주인아저씨 차로 다니는 게 더 나은데 이 분이 방콕에 가셨다가 내일 저녁에나 오신단다. 어차피 트레킹은 모레나 할 생각이었기 때문에 내일까지 기다리기로 하고 치앙라이 나이트 바자를 한 바퀴 돈다. 치앙마이보다 규모는 작지만 더 아기자기하니 볼 만하다. 그래도 크리스마스 이븐데 하면서 화덕에다 구워 주는 피자와 스파게티까지 먹고 동네 교회에서 공짜 음식까지 먹고 들어오니 제법 북적일거라 생각했던 게스트하우스 앞마당엔 아무도 없다. 뭐 이런 경우가 있나 싶긴 하지만 그래도 그간의 주독이나 풀자 하며 일찍 잠이 든다. 특별한 날에는 아무 일도 안 생기는 건 비단 한국에서만 일어나는 일만은 아닌가 보다^^.


피자와 스파케티 먹기 전에 나온 크리스마스 프레젠트, 버섯위에 크림 소스같은 걸 올렸는데 너무 예뻐 먹기가 아까웠다.



피자와 스파게티, 우리의 크리스마스 만찬이다. 이 사진을 마지막으로 태국에서는 사진이 없다. 이미 밝혔듯이 카메라는 장렬히 전사했으니 미얀마편까지는 그냥 사진없이 보셔야 할 듯 하다.


다음날 돌아온다던 주인아저씨는 무슨 사정으로 하루가 늦어지고 나는 그저 책이나 읽으며, 안숙은 치앙라이 시내나 돌아보며 하루를 보낸다. 그날 저녁엔 술자리를 기다리다 지친 우리가 그냥 판을 벌인다. 게스트하우스 마당에서 캔맥주를 마시고 있으니 겨울에만 시간이 나 여행을 다닌다는 아저씨와 혼자 여행 온 스케쥴 빡빡한 삼십대 아가씨가 함께 한다. 대체 겨울에만 시간이 나는 직업이 뭘까 궁금했는데 이 아저씨 알고 보니 귀농하신 분이란다^^. 그래 농부는 겨울에는 쉬지, 이른바 농.한.기. 생긴 건 꼭 일본 작가처럼 생긴 이 아저씨는 이후 사흘 동안 우리와 동고동락을 같이 하게 되는데 그나마 이 아저씨라도 있었으니 망정이지 아님 그 많은 술자리들을 어찌 견뎠나 싶다^^ 여튼 그날 혼자서 오토바이를 타고 근처 온천을 다녀왔다는 아저씨말로는 매쌀롱이 온천에서 멀지 않다고 해서 오토바이만 탈 줄 안다면 오토바이로 가면 좋겠다.. 오토바이 탈 줄 알면 여행이 정말 편할 텐데.. 했더니 이 아저씨 오토바이 가르쳐 줄 테니 나는 배워서 타고 안숙은 아저씨 뒤에 타고 내일 매쌀롱에 가잖다. 뭐 술김에 그러자고 한다.


담날 나가보니 이 아저씨 자기가 어제 빌린 오토바이로 연습을 해 보자며 이것저것 가르쳐준다. 술김에 큰 소리는 쳤는데 막상 타려고 하니 무.섭.다. 그래도 안 탄다 소리는 못하고 한 번 올라타 본다. 의외로 중심잡는 건 어렵지 않은데 손잡이를 조금만 돌려도 가속이 붙으니 영 불안하다. 그나마 차 안다니는 골목길만 한 바퀴 돌고 내린다. 이 아저씨 그새 상황을 파악한 듯 오토바이 타고 가기는 어렵겠다 하는 표정이다. 그때 때맞춰 비도 내려주셔 그냥 버스를 타고 움직이기로 한다. 막 버스를 타러 나가려는데 소리도 요란하게 이 집 사장님이 돌아오신다. 이 집 사장님과 이 아저씨의 동생은 얼마 전에 게스트하우스 주인과 손님으로 만나 몇날 며칠을 술로 지새다 호형호제하는 사이가 되었다는데 이 아저씨를 무슨 친형님이나 되는 듯이 정선생님이라며 깍듯이 모신다. 덕분에 어영부영 우리도 정선생님 일행쯤으로 격상(?)한다. 우리가 버스를 타고 매쌀롱을 다녀오려 한다니까 느닷없이 같이 가자고 나선다. 본인의 차는 무슨 일로 경찰서에 있다면서 차까지 렌트해 오는데 그 일처리가 워낙 시끄러우면서도 순식간에 이루어져 정신을 차리고 보니 어느새 매쌀롱으로 가는 차안에 있다. 으.. 이게 투언지. 투어면 얼마인지.. 뭐 그런 건 물어볼 틈도 없다.


가는 길에 이 게스트하우스에서 지원하고 있다는 소수 민족 마을 한 곳을 들렀다가 매쌀롱에 도착하니 벌써 저녁 무렵이다. 매쌀롱은 장개석의 국민군이 후퇴에 후퇴를 거듭하다 결국 태국 국경을 넘어 정착한 곳으로 마을에 국민군의 기념관까지 있는 전형적인 중국인 마을이다. 사장님 말로는 대만에서 전폭적인 지원을 하는 곳으로 본토 중국인들은 관광도 오지 않는 곳이라 한다. 그곳에서 국수맛이 기가 막히다는 중국집을 찾아갔으나 이미 영업이 끝났고 아침에 내린 비 탓인지 안개가 심하게 끼어 경치도 구경하긴 어려웠지만 간만에 편안한 차를 타고 안개 속을 드라이브하는 기분은 그만이다. 차안에서도 사장님은 계속 자신이 지원하는 소수민족 마을 이야기, 치앙라이를 통해 내려오는 탈북자들과 그 탈북자들을 자신들의 돈벌이와 명예욕에 이용하는 기독교 엔지오 단체이야기에 열을 올린다. 마침 안숙이 탈북자 문제에 대해 관심이 있으며 다큐멘터리를 제작한다니까 당장 치앙라이로 와서 작업을 하라며 성화다, 모든 소스는 다 본인에게 있으니 와서 찍기만 하면 대박이라고 그냥 오기만 하면 된다는데 안숙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교묘하게 이리저리 피하느라 난감해한다. 여튼 안숙은 미스리도 됐다가 이동생-성이 이씨라^^-도 됐다가 하면서 사장님 관심의 대상이 된다. 덕분에 정선생님과 나는 편안하게 경치나 구경하면서 돌아온다.


미해병대 출신이라는 특이한 이력 외에도 말도 많고, 정도 많고, 술도 좋아하는 이 사장님에게-어느 정도로 술을 좋아하냐 하면 아주머니가 게스트하우스에서 파는 술까지 모조리 다 치워버렸을 정도로 많이 드신단다- 소수민족 마을지원과 탈북자 문제 이외에도 또 한가지 관심사가 있었으니 커피가 그것이다. 한때 마약 재배의 온상이었다는 이곳에 정부와 유엔의 규제로 대체 작물을 심기 시작하게 되는데 그것이 커피였다고 한다. 그 중 도이창-도이는 산이고 창은 코끼리이므로 대충 코끼리산이라는 곳이다-이라는 곳에서 몇몇 커피 농가들이 우리나라로 치면 협동조합 같은 만들어 공동 생산과 판매를 하는 것은 물론 커피전문체인점까지 내 그 사업 영역을 넓히고 있는데 이 사장님이 아마 그 도이창 커피조합에서 어떤 일을 하고 계시는 듯 하다. 사실 본인은 굉장히 많은 이야기를 하셨지만 결국 우리는 아무리 추리해도 그 역할이 무엇인지 정리해 낼 수 없었다^^. 여튼 매쌀롱에서 돌아와 거한 저녁과 함께 시작된 술자리는 일이차에 걸쳐 양주를 마시고 삼차로 게스트하우스 마당에서 맥주를 마신 뒤에야 끝이 난다. 뭐 우린 별 말도 못하고 그저 네네 아니, 뭐..를 연발하고 뭐 정선생님이라고 별 수 있나.. 아.. 네네 하다가 내일은 커피 농장에 가자는 말에 얼떨결에 그러죠.. 한다.


다음날 잠도 술도 채 깨기 전에 미스 리를 부르는 소리가 들린다. 채 샤워도 못하고 주섬주섬 나가보니 커피 농장을 올라가잖다. 그러더니 차에 타자 다시 일정이 바뀐다. 탈북자들을 한 번 만나보겠냐며 탈북자들이 수용되어 있는 곳이 있는데 빵이라도 넣어주고 가자고 하신다. 뭐 그것도 괜찮겠다 싶어 마트에 들러 빵과 물을 사서 간다. 그냥 이 돈만은 우리가 내겠다고 우겨 빵값을 내고 따라가 보니 태국 이민국이다. 말이 이민국이지 그냥 경찰서 유치장과 별반 다를 바 없다. 그래도 태국땅에서 잡혔으니 이곳에 얼마간 수용되어 있다가 한국으로 보내지는 모양인데 꽤 연세가 많은 할머니부터 귀를 다친 어린 아이까지 그 연령이며 상태도 다양하다. 그래도 한민족인데 목숨을 걸고 빠져나와 결국 이국땅에 수용되어 있는 걸 보니 맘이 편칠 않다. 한국으로 빨리 갈 수 있느냐 아니냐는 전적으로 돈에 의해 결정된다는데 여기에도 우리가 알지 못하는 커넥션이 존재하는 모양이다. 결국 사장님은 이 사람들이 조사받는데 통역까지 해 주시게 되어 그날 커피농장에 올라가는 일정은 무산되고 그냥 미얀마 국경지대인 치앙센과 골든트라이앵글을 돌아보는 것으로 하루가 지난다.


저녁엔 또 술자리가 이어진다. 뭐 내가 아무리 과음을 외쳤기로서니 사흘 연속 음주 게다가 과음은 쉬운 일이 아닌데다 술자리도 그리 즐겁지만은 않으니-사실 매번 자기 얘기만 늘어놓는 사람과의 술자리는 한 번으로 족한 법이다- 오늘은 좀 피하고 싶은데 이미 이런저런 신세를 진 다음이니 어쩔 수 없는 분위기다. 이 날 저녁쯤 되니 슬슬 황당해지기 시작한다. 도무지 일정도, 몸상태도 말이 아닌데다가 도대체 어디를 가는 건지, 이게 돈을 내는 건지 아닌지, 아니라면 이  호의의 정체는 무엇인지, 일정은 점점 늘어지는데 앞날을 알 수 없으니 조금 답답한 마음이 된다. 게다가 사모님은 무슨 이유인지 모르겠지만 화가 나신 것도 같고 대략 난감한 상황이다. 결국 정선생님에게 총대를 메게 하고 우리는 술자리를 빠져나온다. 뭔가 개운치 않다. 같이 다니던 정선생님도 그리 개운치는 않은 표정이다. 나중에 슬쩍 이런 기분에 대해 비췄더니 했더니 정선생님도 그렇단다.


글쎄.. 이런 경우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 지금도 답을 모르겠다. 상대방의 격의 없는 호의를 받아들이는 방법 아니 좀 일방적인 호의 표시에 대처하는 방법을 잘 모르겠다는 건데 사실 여행에는 절대 공짜가 없다고 생각하는 -뭐 어디 여행뿐이겠는가 인생도 대체로 그렇긴 하다- 나로서는 그 분이 생면부지의 우리에게 보여준 모습이 분명히 호의였음에도 내내 뭔가 확실한 것 없이 진행되는 상황이 불편함을 넘어 짜증스러움까지 이어지는데 참 어찌해야 할 바를 모르겠더라는 거다. 그렇다고 확실한 의사 표시를 하기에는 얼마간의 미안함도 있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어정쩡한 상태가 되어 버렸는데 사실 나의 그 어정쩡한 상태가 더 싫었는지도 모를 일이다. 사실 이 글을 쓰는 것도 좀 맘에 걸린다. 여튼 그 정도의 호의를 아무에게나 보일 수 있는 사람도 흔한 종류의 사람은 아닐진대 만약 이글을 읽게 되면-그럴 리는 없겠지만, 그런 면에서는 진보넷에 블로그를 개설한 건 꽤 괜찮은 선택이었던 듯 싶다^^- 자신의 맘도 몰라주는 싸가지 없는 인간에 대해 아마 맘이 몹시 상할 수도 있다는 것이 그 이유되겠다. 하지만 한편으론 자기중심적인 호의가 주는 불편함에 대해 그 분도 조금은 아셨으면 하는 맘도 한편으론 든다.


그래도 커피 농장까진 들렀다 가자고 안숙과 합의를 보고 담날 다시 차에 실려 도이창에 있다는 커피 농장에 간다. 커피 농장 가는 길은 우기에는 거의 길이 끊기다시피 한다는 굽이굽이 비포장 산길인데 경관이 매우 아름다운 곳이다. 이리저리 흔들리며 올라간 곳은 커피나무가 산을 덮고 있다. 이곳에서 열매 따는 것에서부터 말리고 가공하는 공정까지 모두 이루어지는데 그 규모가 제법 크다. 이곳에서 뽑아주는 커피 맛은 거의 예술에 가까운데 커피가 가지고 있다는 다섯가지 맛이 절묘하게 섞여 혀끝에서 감돈다. 이곳에서 점심까지 거하게 얻어먹고 내려온다. 내려와서 슬쩍 빠져 정선생민과 셋이서 술자리를 가진다. 이런저런 이야기 끝에 비용 애기가 나온다. 괜히 투어비 운운하면 오히려 화를 낼 것 같아 그냥 적당한 비용을 두고 오기로 한다. 게스트하우스의 매니저 격인 조카를 불러서 적당히 돈을 주고 아침에 일찍 사장님 내외가 자는 사이에 그냥 나온다. 이게 잘하는 건지 어쩐건지는 모르겠으나 그냥 그러는게 좋겠다는 생각이다. 막상 나오고 나니 그래도 그 덕분에 그냥 투어에서는 경험할 수 없었던 다양한 경험들을 한 소중한 곳이었다는 생각이 그제서야 든다. 중국으로 배타고 떠나신다는 정선생님과의 인사를 뒤로 하고 버스터미널로 향한다. 아무래도 치앙라이에서 너무 오래 있어서 인지 그냥 냅다 남부로 쏴야 할 것 같다. 그렇지만 낮차는 힘들 것 같아 다시 치앙마이로 가서 밤차를 탄다. 방콕에 아침에 도착하면 다시 그날 밤차를 타고 끄라비로 내려가는 일정이다. 윽 음주에 몸을 피곤할 대로 피곤한데 이틀 연속 밤차를 타야 하다니.. 체력이 받쳐줄지 모르겠다. 며칠만 있으면 나도 마흔이란 말이닷!! -사실 마흔이 되면 떨어지는 체력대신 그만큼의 배려와 참을성이 생겼으면 좋겠다는 바램이지만 나도 안다. 아무리 나이를 먹어도 그건 그저 생기는 건 아니라는 사실을 말이다, 그리고 사람은 그리 많이 변하는 것도 아니라는 사실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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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앙마이> 트레킹을 하다

 

사실 한달 만에 여행기를 쓰자니 이젠 기억도 가물가물한게 별다른 생각이 나지 않는다. 그냥 혼자 다닌 여행기라면 살짝 지어서 쓴들 누가 눈치채랴마는 이건 증인이 엄연이 있으니 그럴 수도 없고 게다가 그 증인이 어리버리한 인간도 아니니 대략 난감이다. 그냥 넘어가나, 사진으로 대충 때우나 별 생각을 다 해봤으나 그냥 넘어가면 더 이상 여행기를 안 올리고 싶어질 것 같고, 사진으로 때우자니 그나마 카메라가 치앙라이 어느 지점에선가 그 수명을 다하고 장렬히 전사했으니 그도 불가능해 막연히 일산주민이 찍은 동영상이나 편집해 올려줬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해보지만 돈안받고 찍은 비디오는 남의 결혼식 비디오도 둘째아이 돌날에나 갖다 주는 우리네 상태를 생각해 보건데 부지하세월일 것이 분명한 고로 그냥 기억나는 대로 써 보기로 한다. 뭐 안 읽어도 그만이다^^


치앙마이로 가는 여행사의 밤버스는 가격이 싼 대신 여행자들로 초만원이다. 이제 시즌이 시작된 건지 한국인들도 제법 눈에 뛴다. 태국의 버스는 대략 이층버스를 가장한 일층버스인 경우가 많은데 -좌석 높이는 이층인데 일층에는 사람이 거의 타지 못한다- 이 이층버스는 일층에 제법 응접실 같은 공간이 있다. 대학생처럼 보이는 한국남녀 둘이 냉큼 올라타서는 여기에 앉아도 되냐고 묻는다. 괜찮다고 했는지 일층에 널찍하니 자리를 잡고 앉는다. 뭐 그 자리도 좋아 보여 우리도 슬쩍 옆자리를 차지하고 앉는다. 또다른 한국청년 하나를 포함해 다섯 명이서 열명은 족히 앉아갈 공간을 차지하고 떠날 때까지는 좋았는데.. 이 버스 한 시간 가량을 달리다가 아유타야에서 다시 열 명 가까운 사람을 태운다. 행복도 잠시 초만원이 된 일층에서 발도 못 뻗고 밤새워 가야하는 신세가 된다. 더구나 악명 높은 에어컨 버스는 아무리 추운 날에도 절대 에어컨을 끄지 않는 전통을 자랑하지 않는가 말이다. 더구나 창가에 앉은 안숙은 문틈사이로 들어오는 바람까지 온전히 맞으며 태국에서의 신고식을 치르게 되는데 지금도 가끔 그 버스에 치를 떠는 안숙의 모습이 떠오른다^^


치앙마이에서의 안숙


버스가 도착하자마자 당일 트레킹에 오르는 최강 체력 이십대 초반 둘과 삼십대 초반 하나를 남겨두고 삼십대 중후반의 숙소잡기에 나선다. 아.. 이 얼마나 좋으냐 말이다. 둘이서 구하니 돈은 덜 들지, 방은 더 좋지 역시 여행에는 일행이 있어야 하는 법이다^^. 방을 잡아두고 트레킹 예약을 위해 치앙마이에서 가장 친절하다는 한국인 업소인 미소네 게스트하우스를 찾아 나선다. 뭐 길에 널려 있는 게 여행사긴 하지만 트레킹을 위해선 짐도 맡겨야 하고 뭐 트레킹 멤버 중 한국 사람이라도 하나 더 있으면 좋고 기타 등등한 이유로 그냥 한국인 숙소에서 트레킹을 신청하기로 한 터다. 조금 헤매긴 했지만 한국인 게스트하우스치고는 심하게 친절한 미소네에서 트레킹을 신청하고 내친 김에 트레킹을 다녀와서는 숙소를 아예 이곳으로 옮기기로 한다.


치앙마이 구시가를 둘러보고 나이트바자도 구경하고 이젠 이름도 기억나지 않는 무슨 호텔에서 무려 세금포함 삼백밧이나 하는-뭐 대략 칠팔천원 돈이지만- 샤브샤브 부페까지 먹고 돌아오니 벌써 하루가 지나 있다. 담날 트레킹은 출발 시간이 그리 빠르지 않아 여유있게 짐을 싸 픽업 장소인 미소네로 이동한다. 작은 배낭도 하나 빌려 옷이며 물 등을 싸고 나니 출발 시간이다. 막상 픽업트럭에 올라보니 한국인 게스트 하우스에서 신청한 보람도 없이 우리 둘을 제외하곤 전부 서양애들이다. 더구나 다국적군도 아닌 게 영국앤가 하나를 제외하고는 전원이 호주 애들이다. 게다가 나이 거의 이십대 초반이라 뭐 애초부터 어울리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뭐 사실 크게 어울리고 싶은 생각도, 어울릴만한 영어도 아니긴 하지만 말이다^^.


트레킹 코스는 시장을 보는 일부터 시작해 점심을 먹고 오후에서야 본격적으로 시작되는데 처음에 완만한 등산로를 오르다가 약간의 계곡을 건너는 등 뭐 이정도면 할 만하다 싶은 길이 두어 시간 이어지더니 마지막 30분가량을 밑도 끝도 없는 오르막을 올라가는 것으로 마무리된다. 헉헉거리며 따라가다 결국 더는 못가겠다고 잠시 뒤로 빠진다. 가이드가 2분만 더 가면 된다는 게 그 말을 어찌 믿는단 말인가.. 줄 뒤에 낙오되어 헉헉거리고 있는데 그래도 일행이라고 안숙이 옆에서 기다려준다. 잠시 후 정신을 차리고 보니 정말 일이분거리에 정상이 보이고 사람들이 거기 모여 쉬고 있는 것이 아닌가. 에휴 이분만 참았으면 스타일 안 구기는 건데^^ 여튼 어찌어찌해 라후족 마을에까지 도착한 시간이 다섯시 경인데 땀이 채 마르지 않은 탓인지 갑자기 추워가 느껴진다. 아무리 태국이라도 지금은 겨울철이고, 치앙마이는 북부인데다, 게다가 여기는 산 속인 것이다, 우리가 하루밤을 묵어야 하는 집 역시 대나무로 얼기설기 얽은 집이라 대체 바람이 막아질 것 같지 않다.


트레킹 숙소


라후족 마을 전경


마을 한 바퀴 돌고 가이드가 해 주는 저녁을 먹고 마을 아이들의 재롱 잔치까지 봐도 시간은 고작 여덟시다. 모닥불 앞에 옹기종기 모여 이어지는 가이드의 영어로 하는 말장난까지 들어줘도 시간은 아홉시나 됐을까 날은 더 추워지고 하늘은 흐려 그 예쁘다는 별도 보이지 않고, 호주애들은 술도 안마시고 노래도 안 부르더니 일찌감치 잠자리에 드는 분위기다. 우리도 안숙이 한국에서 가져온 소주 한 병을 쵸콜렛을 안주삼아 나눠 마시곤 잠자리에 든다. 옷이란 옷은 다 껴입고 침낭에 담요까지 서너개를 덮어도 별다른 온기가 느껴지지 않는다. 이럭저럭 잠자리에 들긴 했는데 바깥에서 들리는 바람소리가 무슨 전설의 고향이라도 찍는 것 같다. 이럭저럭 아침이 오고 그래도 얼어 죽지는 않았다는 안도감에 아침에 주는 따뜻한 커피며 차를 좋아라 마시고 다시 산을 내려온다. 내려오는 길은 훨씬 수월해 올라가는 중간에 폭포에서 잠시 놀다 내려와도 올라가는 시간보다는 덜 걸린다.


 

코끼리를 탄 안숙과 나. 고소공포증이 있는 안숙 심히 무서워하더군^^

코끼리 코,, 저건 바나나를 달라는 신호다. 안 주면 콧물 같은 것을 쏜다^^


산을 다 내려와서 코끼리타기며 래프팅, 뗏목 타기 등의 이벤트가 줄줄이 이어지는데 죄다 처음 해보는 것들이라 제법 흥미를 끈다. 특히 레프팅은 말 그대로 온 몸이 다 젖는다는 가이드의 말에 어릴 적 운동회에서나 입을 법한 조악한 색깔의 나일론 반바지를 하나씩 사입고 시작한다. 물살이 그리 세지 않아 크게 위험해 보이지는 않는데 제대로 된 래프팅을 해봐도 재미있겠다는 생각이 들만큼 스릴이 느껴진다. 래프팅을 마치고 돌아온 날 미소네 아주머니의 추천으로 동네 천막집으로 새우 부페를 먹으러 간다. 민물 새우긴 하지만 새우를 비롯해 각종 고기와 야채 뷔페가 199밧, 우리돈으로 삼천원 남짓이다. 구워먹어도 되고 수끼로 먹어도 되는데 우린 물론 양쪽을 다해 먹었다^^ 이젠 수끼는 지겨워.. 뭐 새우는 바다 새우라야 되는데 맛이 좀 떨어지지.. 등의 배부른 소리를 해가며 돌아온다. 여튼 안숙 오고 나서부턴 진짜 잘 먹는다.


치앙마이에서의 마지막날은 혼자서는 다니기 쉽지 않은 치앙마이 근교를 숙소에서 소개해 준 한국인 몇명과 차를 대절해 다녀온다. 한쌍의 부부와 한쌍의 남매 그리고 우리가 그 일행이다. 부부는 나이차가 좀 나보여 불륜으로 오해받기 쉬워 보이는 그러나 결혼한 지 10년이나 됐다는 커플이고 남매는 대학교 일학년 누나가 중3짜리 동생을 데리고 다니는데 그 누나도 고등학생쯤으로 보이는 커플이다. 치앙마이 추위를 우습게 보고 반바지 차림으로 나온 우리는 결국 숙소에서 사원에서 입으라고 챙겨준 긴바지를 내내 입고 다니는 만행을 저지르기에 이른다. 그게 방콕편 사진에서 보신 차림새 되시겠다. 저녁에는 미소네 게스트하우스에서 한달째 머물고 있는, 동남아만 8개월째 돌아다닌다는 해병대 출신의 박병장과 술자리를 같이 한다. 어제 우리가 맥주를 일인당 세캔씩이나 먹는 걸 보고 재들 정도라면 술먹을 하다고 생각했다나 어쨌다나 하는 인간이다. 그 친구 내숭 안 떠는 화끈한 언니들이라며 간만에 술친구 만난 분위기인데  뭐 상태가 썩 훌륭해보이지는 않지만 그런들 뭐 어떻겠는가, 뭐 같이 살 것도 아니고^^ 덕분에 두어시간 유쾌하게 보낸다. 이차 가자는 걸 뿌리치고 일어서는데 꽤나 서운해 하는 눈치다. 


대학생 누나와 중학생 동생 커플, 몽족의 전통 의상을 입었는데 좀 하얀 것만 제외하면 그냥 현지애들 같다.


일단 크리스마스 이브는 치앙라이에서 보내자는 생각으로 다음날 치앙라이로 이동하기로 한다. 치앙라이는 이전에 한나절 정도 있어 본 곳이긴 하지만 이번엔 그 주위에 있는 매쌀롱이나 치앙센, 골든트라이앵글까지 돌아볼 생각이니 새로운 곳에 가는 듯한 느낌이 든다. 일단 크리스마스에는 왕창 술을, 크리스마스 당일에는 휴식 그리고 크리스마스 다음날은 치앙라이 주변투어 그리고 그 다음날 방콕을 거쳐 남부로 내려가자는 야무진 계획을 세우고 치앙라이 입성했으나 뭐 인생이 아니 여행이 언제 그리 만만하던가.. 그냥 치앙라이에서 발목이 잡혀 날마다 과음에 시달려가며 무려 5일이나 머물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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