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드바 영역으로 건너뛰기

사람을 죽게하는 것과 살게하는 것

에스겔18:26-32

26. 만일 의로운 자가 그 의를 떠나 죄를 범하고 죽으면 그는 자기가 범한 죄때문에 죽는 것이며
27. 만일 악한 자가 그 악에서 떠나 법을 지키고 옳은 일을 행하면
그는 자기 생명을 구원하게 될 것이다.
28. 그는 자기가 행한 일을 깨닫고 그 죄에서 돌이켰으므로 분명히 살고 죽지 않을 것이다.
29. 그런데 너희 이스라엘 백성들은 ‘여호와가 공정하지 못하다’ 하고 말한다.
이스라엘백성들아, 어째서 내가 공정하지 않느냐? 오히려 너희가 공정하지 못한 것이 아니냐?
30. “나 주 여호와가 말한다. 이스라엘백성들아, 너희가 행한대로
내가 너희 각 사람을 심판하겠다. 너희는 회개하고 돌이켜 너희 모든 죄에서 떠나라.
그러면 너희가 죄때문에 멸망하지 않을 것이다.
31. 너희는 지금까지 범한 모든 죄를 버리고 마음과 심령을 새롭게 하라. 이스라엘백성들아,
너희가 어째서 죽으려고 하느냐?
32. 나 여호와가 말한다. 나는 그 누구도 죽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너희는 회개하고 살아라.

유다백성들은 계속하여 하나님의 법을 어기고,
그릇된 길에서 자신들의 살길을 찾으려고 안간 힘을 쓰고 있다.
사람이 망해가는 법을 좇아, 살길을 찾는 길은 어리석은 현상이다.
인생이 성공하는 소원이 가득히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실패하는 방법이나, 처세를 가지고 살아가면,
성공보다는 실패하는 예가 더 많이 자신의 주변에서 나타난다.

이스라엘이나 유다는 하나님의 택함을 받은 선민으로서,
그들은 자신들의 사명(하나님에 대한 유일신 신앙을 지키며,
주변인들에게 하나님의 선하심을 드러내는 일을 할 사명)이 있었다.
그것은 자신들의 신앙에 근거한 옳은 삶을 통해서 였다.
그러나 그들은 하나님을 섬기는 유일신신앙의 순결에서
이방나라들의 풍습이나 삶의 흔적을 좇아가서,
어리석은 우상숭배의 죄에 빠지게 되었다.

하나님은 항상 현재를 중시하고,
현재 사람들이 어떻게 살아가는 가를 살피신다.
사람의 삶도 현재가 중요하다.
과거에 어떻게 살았든 그것은 이미 지나간 과거의 일이다.

자신이 과거에 아무리 선한 일을 많이 하였다 하더라도
지금자신이 하는일이 옳지 않다면,
그 일이 자신을 더럽히고, 그일에 대해 하나님의 심판을 받을 것이다.
사람에게 있어 중요한 것은 자신이 지금 하는 일이 중요하며,
자신이 지금 만나는 사람이 자신이 결코 소홀히 대할수 없는 사람이며,
현재 자신의 모습이 어떠 한지를 살피는 일이 필요하다.
사람은 과거에 살지를 않는다. 다만 현재 주어진 시간안에 살고 있는 것이다.
과거에 잘한 사람은 그 잘한 일에 도취되어
현재에게 자신에게 주어진 일을 등한히 하기 쉽다.

악한 자가 과거에 지은 죄로 괴로워 하겠지만,
그러나 과거에 범한 허물이나 죄가 더이상 영향을 주지 않도록,
현재에 개관천선하여, 오늘 자신에게 주어진 새로운 기회를 선용하여
바르게 살기로 다짐하고 현재를 바르게 살아간다면,
그에게는 자신의 생명을 구원할 기회를 얻는 것이다.
과거에 받은 상처나, 지나친 과거지향주의는
현재를 살아가는 자신에게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날마다 자신을 새롭게 하는 일은 자신을 건강하게 살아가는 비결이다.
악인이 자신이 저지른 과거의 행적에 대해,
후회하고 슬퍼만하지 말고,
현재에 자기에게 주어진 시간이나 현재를 올바르게 살려고 하면,
그는 자신의 일을 잘할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된 것이다.

사람이 자신의 삶에 대해 하늘에 대해 불평하는 일은 어리석은 일이다.
사람이 각자가 가지고 태어난 분복이 있다.
어느 사람에게는 부를 받아, 부한 가운데에서 살고,
어느 경우는 건강하게 사는 경우도 있으며,
어느 경우는 불행하게 사는 경우도 있다.
어느 사람은 행복한 생활을 하는 사람도 있다.
처음에는 하늘에서 주어진 것을 살다가,
점점 어른이 되어가는 과정에서 결국에는 자신이 만들어가는 생애를 살아간다.

공정하게 모두에게 골고루 혜택을 받고 살아가도록 한
하나님은 언제나 사람들 각자에게 공정한 심판을 행하신다.
사람이 억울한 일을 만났을때에 자신의 처지나
문제해결에 대한 하소연이 들어지지 않을 때에,
그사회에 대해서, 여러 사람들에 대해서, 부당하다고 생각하기 쉬워진다.

이땅에 태어난 모든 사람들은 자신의 시간을
살아가는 한에서는 공정한 인생을 살아간다.
인생의 후반에 가서는 자신이 심은 것을 거두는 생을 살게 된다.
그리고 하나님은 사람들을 공정하게 판단하며,
그의 공정한 저울로 사람들을 심판하신다.
하나님의 판단은 항시 현세와 내세의 삶의 판단의 저울로 사람들을 평가하신다.

하나님의 공정성의 판단에 대한 극단적인 경우를 예로 든다면,
현세에서 의로왔지만 힘들고 고통스럽게 살았던 인생들은
내세에 마련한 영생과 영광의 복으로 살게 하신다.
그리고 현세에서 악하게 살며 사람들을 괴롭혔지만
그러나 편안하게 살았던 인생들은 나름대로
그들이 당하는 고통의 현장(형벌)을 통해 평가하신다.

사람은 자신이 행한대로 자신이 심은 것을
거두도록 되어있는 원리안에서 살아간다.
자연의 원칙안에 있는 세상은 무엇이든지 심은 것을 거두게 되어 있다.
하나님은 이세상을 이 원칙위에 다스리신다.
그가 사람들의 행위에 대해 반드시 그들이 행한대로 갚으시고,
그들에게 자신들이 행한 행위에 대한 합당한 결과를 얻게 한다.

개과천선이라는 말은 지난 일들의 잘못된 인생의 방향을 바로잡기 위해
지난날들의 잘못을 뉘우치고,
전혀 새로운 방향의 삶을 살기로 다짐하는 것이다.

항상 현재의 기회를 바로 사용하려면 구태의연한 태도를 버리려는 결단이 필요하다.
항구에 정박에 있는 배가 목적지를 향해 항해를 하려면,
정박해있는 부두에 붙들어 매둔 밧줄(자신을 댕기는 과거의 끈)을 끈고
항해에 나서야 할 것이다.

죄에서 벗어나는 길은 두가지로 생각해볼수 있다.
하나는 지은 죄에 대한 청산하려는 결단의 태도와
또하나는 자신안에 죄를 지으려는 성향들을 고치는 태도이다.
이것은 사람의 회개를 통해서 가능하다.
회개는 죄의 결과에 대한 준엄한 자신의 평가에 따르는 통한의 태도이며,
그리고 자신의 그릇된 죄질의 성향의 방향전환의 결단을 포함한다.

인생이 죄에 대해서 왜 생각해야 할 것인가?
죄는 인간의 모든 생활에 전반적으로 영향을 주기 때문이다.
교통법규를 위반한 사람은 그 위반한 행위에 대한 댓가를 치른다.
그리고 법을 어긴 사람들은 그 범법한 행위에 대한 법적인 구속을 받는다.
그것을 벗기전에는 모든 일에서 자유할수 가 없다.
그 위반이 자신의 활동하는 몸이나 생활을 영향을 주는 구속을 주기 때문이다.
(경범과 중범의 차이는 있지만, 법위반에 대한 것은 자신을 자유롭지 못하게 한다)

인간의 죄의 시작은 인류의 시조인
처음인간(아담, 하와)의 범죄에서 부터 시작이 되었다.
그들은 인간의 대표적인 사람들로
그들의 허물과 범죄가 그들의 후손인 모든 인간들 속에 영향을 주어,
그들과 같은 성향의 죄의 성향을 갖고 태어난다.
그들의 피가 온인류의 몸안에 흐르고 있는
죄를 짓게하는유전인자와 악한 성향등으로 나타난다.

고로 인간의 죄는 먼저는 원죄이다.
그리고 그들속에 있는 그 악한성향이 나타나
자신이 짓는 자범죄와 그리고 그에 따르는 모든 종류의 죄악이다.

인간의 법은 행위와 영향력에 대한 죄를 묻고,
드러난 죄의 결과를 판시하여, 죄에 대한 형벌의 대가를 치른다.
하나님의 법은 인간의 외형의 죄뿐 아니라,
내면의 죄와 타고난 인류의 원죄와
그죄의 영향력까지 사람을 살피시고 있는 그의 심판의 잣대가 있다.
고로 사람이 진정으로 자신이 죄에 대해 자유로우려면,
자신을 만드시고 존재케하신 하나님앞에 가서 해결을 받아야 할 것이다.

사실 죄의 시작이나 근본은 외형적인 죄의 행위에 있지않고,
죄를 짓게하는 내면의 태도나 성향이 더 문제인 것이다.
어느 사람이 남의 물건을 훔치는 기질이 있다면,
언제가는 타인의 물건을 도둑질할 것이다.
또한 마음속에 품고 있는 자신의 성향이 거짓되고, 오만하고,
악한 것으로 가득차 있다면,
언제가는 그런 것들이 외부로, 혹은 자신의 주변로 분출되어 나타날 것이다.
고로 인간을 고치려면, 즉 사람이 죄의 문제에서 자유로와 지려면
자신의 내면의 상태를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이다.

먼저는 사람의 마음이다.
그곳은 인간의 의지와 감성과 이성이 함께 어울러져,
자신이 어느 성향의 사람의 자아이든 그 자신의 자아의 지배를 받는 곳이다.
그 마음안에 두 주인이 서로 영향을 주고 받는다.
그 두주인은 인간의 옛자아와 새로운 자아이다.

먼저는 옛자아(타락한 이후에 갖고 태어난 인간의 죄의 성향과
그영향력의 지배를 받는 자아성)의 세력을 통해 자신의 마음이 지배를 받는다.
또한 새로운 자아(주 예수를 초청함으로 즉그가 영으로 마음의 세계에 들어가심으로
그 소우주의 혼돈과 무질서를 새롭게 변화시켜,
진정한 인간의 온전성을 세워가는 자아)이다.

마음의 끝(가장자리혹은 연결고리)은 인간내면의 두방향성에 의해 연결이 되어 있다.
그 방향성이란 육으로 가는 길과 영으로 이어지는 길이 있다.
육신으로 가는 길에는 인간의 몸에서 요구하는 육의 본성과
그 본성의 욕구충족의 추구하는 성향을 가지고 있는 세계가 있다.
그 세계에서는 본능과 인간의 타락한 본성의 욕구충족이 지배하는 세계로,
자주 혼돈과 고뇌에 사람을 빠지게 한다.
영으로 가는 길에는 인간의 고귀한 성품이 맞닿는 곳으로
그 끝에는 하나님의 영이 인간의 영과 연결되는 연결고리의 체계가 있어,
영적세계로 나가는 길이다.

그 영적세계에는 하나님의 인간속에 심은 인간성(종교성)이
비록 타락으로 변질되었지만,
인간속에 있는 하나님의 성품(영성)과 자질(하나님을 닮아가는 기질)이 있어,
그것을 통해 하나님과 연결이 되며,
관계가 성립이 되고, 교제가 이루어 진다.
그리고 영적인 세계의 질서를 통해,
내면과 마음의 혼돈과 공허를 새롭게 재창조하시는
하나님의 영의 도움으로 사람의 상태는
점점 질서와 창조의 채움으로 이어지게 되어 건강한 자아를 형성하며,
건전한 자신의 소우주를 만들어 간다.

사람이 죄를 지으면 그에 따르는 댓가를 치루어야 한다.
그 죄에 따르는 결과는 인간에게 죽음의 현실이 다가온다는 것이다.
그 죽음에 대한 인간의 불안과 절망은
모든 사람들 속에 있는 죽음에 이르는 병과 같이 사람들을 괴롭힌다.
그번민과 고통속에서 사람들은 자신들이 지었던
그리고 짓는 죄의 결과로 사람들은 죽어가는 것이다.

그렇듯 인간의 죄는 인간을 자유롭지 못하게 하는 타락한 인간세계의 필연의 악이다.
그 필연의 악을 제거하기 위해,
죄악로부터 자유를 얻는 길을 발견하는 일이 중요하다.
죄에 대한 형벌을 벗어나는 길은 그 죄에 대한 형벌의 채무를 이행하면 될 것이다.

인간이 당해야 할 죄의 형벌은 이미 인간의 대표로 나타나신 인간예수를 통해 이루어졌다.
그가 인간의 몸을 입고 이땅에서 사람으로 살았던
오직 한가지 가장 중요한 목적은 인간의 죄의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었다.
그가 해결하신 인간의 죄는 그가 모든 인간을 대신하여
인간들이 짓는 죄의 성향이나 모든 행위에 대해
형벌의 댓가를 치르심으로 해결될수 있는 길을 열어놓으셨다.

죄있는 사람들은 그앞에 나아가 그의 형벌치름을 의존하여,
죄와 그 죄에 대한 형벌의 영향으로 부터 자유할수 있게 되었다.
그래서 사람은 누구나 자신의 죄에 대한 회개를 통해
자신의 죄짓는 성향이나 악으로 빠지기 쉬운 혼돈된 내면을 새롭게 할수 있다.

살기 위해 살길을 찾아나서는 것은 당연한 사람사는 도리이다.
누구도 인간의 죄와 그에 따르는 죽음의 형벌에서 자유로울수 없다.
오직 그 형벌을 벗어나는 길은 하나님의 심판에서 벗어나는 길 밖에 없다.
그 길은 자신을 날마다 자신을 새롭게 하는 회개하는 삶을 살아가는 것이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