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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 감사

해마다 미국의 명절인 추수감사절때마다,
경험하는 것은 마땅히 갈때도 없지만,하루를 그냥 집에서 지내기가 일수 였다.
그렇지만, 추수감사절의 명절에 다음과 같은 일들이 기억난다.

처음 미국에 온 해에는 당시 이웃에있는한인교회의 어느 집사집에 초청을 받아,
처음 감사절 가족식탁에 초청을받아,
함께 칠면조고기와 호박파이등을 먹으며, 감사절을 경험하였다.
그 다음해에는 어느 미국인교회에서 유학생들을 초청한자리에 가서
함께 예배를드리며, 저녁을 함께 하며,
서로 나라마다 자기들의 장기나 특성들을 소개하며, 감사절을 보냈다.

감사절의 추억은 나에게 먼 이국생활에 따뜻함과 배려의 분위기를 통해,
자신의 유학생활에 활력을 주거나,
사람들사이에 나누는 정을 느끼게 하였다.
우리 조상들도 추석이나,설날등 명절에 함께 친척이나,
이웃들과 정겨운 정을 나누듯
이곳사람들은 추수감사절에 그런 인간의 정을 나눈다.

해를 거듭할수록 미국생활에 익숙해지면서,
추수감사절은 이곳 사람들의 생활속에 뿌리내린 전통으로 이해하게 된다.
여기와서 자주 들은 말은 서로가 감사한다.고맙다 하는 말들을 자주 인사를 주고받는다.
관공서에서 일을 처리하거나,
마켙에 물건을사도,서로 고맙다는 말을 주고 받는다.

나도 잘 안되는 영어하기에서 그래도 제일 많이 했던 말은 고맙다라는 말이었다.
나도 이곳에 여러해 지내다보니 감사하는 습성이 몸에 배이게 되었다.

사람이살면서,자신의 환경이나, 여러가지 인생의 현장에서,
자신에게 혜택을 받은 경우등을 경험한다.
미국생활에서 잊지 못하는 감사할 일이 생각나,몇자 적어본다.
한번은 갑자기 병원신세를 졌는데,
거기에 있는 전달훈집사라는 한인 의사가 너무 친절하게 대해주었다.
진통이 너무 심해 참을수 없어, 밤에 병원에 가는 것은 생각지 못하고,
그 의사집에 전화를 하여,
그 집에 밤늦게 찾아가, 그의 진단과 진료를 받았다.
너무나 고마운 한인이었다.
그후에도 그는 나의 병원생활을 수시로 체크해주며, 돌보아주었고,
당시나는 학생 보험을가지고 있었는데,
보험회사와 그의사의 도움으로 한푼도 내지 않고,
일주일간 병원생활과 수술비가 3만불 이상이나왔지만,
치료를 잘받았다. 고마운 동포의사였다.

캘리포니아에서 켄터키까지 일주일 정도 걸리는
대륙횡단하는 자동차여행으로 이사를 하게 되었다.
당시 중고자동차를 두대가지고 있었는데,
하나는 밴이고, 하나는 소나타 중고차였다.

캘리포니아 주를 벗어나는 지역에는 고갯길이 많이 있었다.
힘없는 중고차 밴이 뒤에 짐을(로스앤젤레스에 있는 친척이
김치랑,반찬이랑 마련해주어 그것을 뒷차에
잔뜩실어 뒷차를 견인하기가 힘들 정도로 실려 있었다) 실은 소나타차를 끌고
높은언덕길을올라가는데, 트랜스미션오일이 분출하여,
차가 잘움직이지 못하여,겨우 이웃 마을에 도착하였다.
주변에 있는 자동차 정비소를 찾아갔는데,
그날은 토요일오후라,정비소가 반난절만 일하여,월요일까지기다려야 만한다고 한다.
또한 차의 수리비가 트랜스미션을 갈아야 하는데, 1,500달러(1,500만원)가 든다고 한다.
갈길은 아직 멀기만 하고(여행거리 1,300마일; 약1,600 킬로미터의 1/5정도 온지점에서
차가 문제가 발생), 누구에게 도움을 받을 수 없는 처지여서, 막막했다.

마침, 우리가 두차를 연결하려면 유월이라는 이사전문업체에서
뒷자동차를 앞바퀴만 올려,견인하는 차를 빌려서,
그 지역에 있는 지점을 찾아가 그문제를 문의했는데,
거기에 있던 마음씨가 착한 종업원이 우리차를 살피더니,
이것은 트랜스미션오일만(15달러어치) 채우면,
차가 목적지가 갈수 있다고 한다.
그때,그종업원이 말대로 차는 무사히 올수 있었다.
지금생각해도 그에게 너무 고마운 생각이 든다.

그리고 이모든 감사할 일이 배후에는
신의 기이한도움의 손길과 신의 응답의 역사가 있었다.

신에 대한 개인적인 감사는 한번은 한국에서 동료들과 함께 바닷가 해변에,
하루 여름 수련을 가서 수영을 하다가,
해변의 바다의 소용돌이가 이는 지역에 빠져,
아무리 수영을 하여,빠져 나오려고 했지만,나올수 없었다.
내 힘이나 실력으로는 그곳을 빠져 나올수 없는 상황이었다.

나는 그때 내가 물에 빠져 죽는구나,생각이 들면서,
내가 믿는 신에게 절대절명의 순간에,
제발 살려 달라고 짧은순간에 긴급한기도를 드렸는데,
그때 갑자기 큰 파도가 내 등뒤에 부딪히면서,
그 부딛치는 힘에 의해, 그 소용돌이를 빠져나올수 있었다.
그 일로 신이 과연 살아계시는 구나,
그리고 신은 반드시 신의 자녀들의 울부짖는 소리에
응답하신다는 것을 경험하고 알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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