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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6/11/19
    믿음예찬
    목동
  2. 2006/11/10
    용서와 화해의 사역을 위한 제언
    목동
  3. 2006/11/08
    격려와 배려가 있는 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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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2006/11/05
    부모의 자녀에 대한 애정표현의 유형과 그 영향들
    목동
  5. 1999/11/30
    창조적인 성경교수법
    목동

믿음예찬

인간사회는 쌍방간의 계약으로 이루어진 사회적 특성을 가지고 있다.
서로 믿고 혹은 서로 믿어 주는 약속의 관계를 통해 인간관계가 형성된다.
신용사회라는 말도 특히 경제적 생활에 대해
각 사람에게 자신이 가지고 있는 재정능력이나 관리에 대한 믿음을 통해,
크레디 이라는 제도를 통해, 거래나 재정 관계에서 믿음으로
서로 거래 하는 사회를 말하는 것일 것이다.
예를 들어, 크레디카드를 발행하여 제시하는 회사가
수여자에게 돈을 감당할 재정능력에 대한 믿음을 통해 그를 신뢰하고,
카드를 내주며 그것을 사용하게 한다.
만일 크레디카드 사용자가 지불능력이 없는경우에 파산이 되는데,
미국에서는 자신이 감당할수 없는 재정관계나 부채가 발생시에는
파산신고를 하여 자신을 파산자로 설정하여,
자신이 재정을 감당할수 없는 자로 판정을 하게 된다.
그 사람의 재정능력에 대한 믿음의 상실일 것이다.

모든 인간관계에서 믿음은 관계를 형성하는 중요한 요소이다.
버스나 택시를 탈때에도 운전을 하는 기사들의 실력을 믿고 자신의 몸을 맡기는 것처럼,
모든 일상에 일어나는 일이나,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사람들은 서로 믿고 신뢰하는 가운데에 생활하게 된다.
예를 들어, 남자들이 이발소에서 자주 경험하는 일이지만,
이발사에게 자신의 얼굴을 맡기고
수염을 베는 면도를 하게 하는 것도 일종의 신뢰의 관계에서 이루어진다.
그리고 여자들인 경우에는 아이를 출산하는 산모가 산부인과를 의사를 신뢰하고
자신의 몸과 아이의 생명을 그 의사의 손에 맡기는 것이다.

믿음은 우리가 사는곳마다 필요한 인간의 가져야 할 성품이며,자질이다.
청춘남녀간의 연애를 하고, 혹은 더나아가 서로 뜻이 맞아,
평생의 반려자로 맞이하는 결혼에도 서로에게 믿음과 깊은 신뢰심이 요구된다.
그들의 연애나 결혼관계에 있어 서로에 대한 그들의 믿음은
서로 상대방의 인격을 맞대어,동등한 관계에서 성립되어있으면,
그 관계는 더 돈독하며, 건강한 남녀간의 관계라고 할수 있겠다.

정부와 국민사이에도 서로 보이지않는 믿음의 관계가 성립된다.
정부는 국민을 믿도록 인도해야 할 것이며,
국민은 정부를 신뢰하고,그들의 리더쉽을 따를때에,
좋은 국가의 상태를 유지하며, 발전하게 된다.
어느 단체의 리더와 그를 따르는 사람들과의 관계에도 서로간의 신뢰의 관계가 필요하다.
리더가 사람들에게 할수 있는 중요한 것중에 하나가
따르는 사람들에게 자신을 믿을수 있는 사람으로 각인되도록
그들에게 신뢰심을 심어주어야 할 것이다.

부모와 자식간에도 서로를 믿어주는 신뢰의 관계가 가정을 든든하게 세우며,
자녀의 건강한 성장을 통해, 가정의 발전을 이루어 가게 된다.
자녀가 조금 잘못했을때에, 자녀들의 인격에 치명적인 상처를 주는 불신의 말을 통해,
부모와 자녀들의 신뢰의 관계가 손상을 입게 된다.
자녀또한 자신들의 부모들을 향해, 끝까지 그 부모들의 사랑과 돌봄을 신뢰하고,
그들의 가르침에 순종하면, 그 가정은 서로 신뢰하는 가정이 되어,
자녀들이 앞으로 살아가는 삶에서,
험한 세파의 여러가지 어려운 일을 겪어도
능히 그 어려움들을 헤쳐나갈 힘을 가정으로 부터 공급받을 것이다.

사람이 자신을 믿는 일에 대해서도 생각해보면,
사람이 자기 자신에 대해 깊은 신뢰심을 갖고 있으면,
그는 무엇이든지, 자신에 대한 자질과 능력을 믿고 있기에
자신이 원하는 바를 이루어 갈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자신을 믿지 못하는 경우는 자신있게 아무것도 할수 없을 것이다.
어릴때부터 부모가 자녀들에게 그들의 인격을 믿어주는 습성을 통해,
자녀들이 자신에 대해 믿고 신뢰하는
자기자신에 대한 신뢰의 이메지(자아상)를 가져서,
모든 일에 있어서 자신감을 가지고 살수 있을 것이다.

믿고 사는 사람과 무엇이든지 의심하고 사는 사람들의 삶은 많은 차이가 난다.
그러므로 모든일에 있어 믿음은 인간의 삶을 바쳐주는
근본적인 토대의 사람의 가져야 할 성격이며, 특성이다.
우리가 사회생활을 하면서, 누구에게 사기를 당했다든가,
혹은 사랑하는 사람에게 배반을 당하고,
혹은 자신의 신뢰심에 깊은 상처를 입은 경우에,
모든 것이나 주변에 있는 사람들을 불신하게 되는 경향을 갖게 된다.
그럴경우에는 정말 자신이 믿을수 있는 사람과의 지속적인 관계나 가르침을 통해,
그런 불신하거나 혹은 모든 일에 의심하는 생태를 벗어나야 할 것이다.
그런 태도로 살경우에 현실생활에서 소극적이기 쉬워지고,
부정적인 사고방식으로 발전하기 쉬어지며,
자신의 미래의 전진적이고, 진취적인 삶에 장애가 된다.

물론 우리가 처음 만난 사람을 무조건 신뢰하라는 것은 아니다.
사람을 살필줄 아는 사려깊은 분별력이 모든 인간관계나 사회생활에서 필요할 것이다.
그래서 사람은 사귀어 보는 기간이나 겪어보고 나서 그 사람의 어떠 함을 알게 될 것이다.

서로 믿어주며 서로 신뢰하는 인간관계나 사회생활을 하는 것이,
자신의 삶을 더 발전시켜주는 삶의 환경이 될 것이다.
이렇게 서로가 신뢰하는 사이가 되려면
자신부터 믿어주는 사람,
그리고 남에 대한 믿음을 갖고 사는 사람이 되어야 할 것이다.

사람이 갖고 있는 이 믿음의 태도는 원래 어디서부터 왔는냐 하면,
신이 인간을 창조하고 그들에게 이땅을 살권한을 부여하는 가운데에,
그들은 신과 신뢰의 관계에서 출발하여,
신의 돌봄의 테두리안에서 서로 신뢰하며,
온전한 믿음의 사람들의 상태에서 살았다.
그런데 그 최초의 사람들이 얼마의 기간을 사는 동안,
삶을 살면서, 신의 의도를 위반하고, 신이 명하는 바를 거역하게 되어,
신과 인간의 믿음과 신뢰의 관계가 깨어져 버렸다.

그래서 그때부터 사람들이 사는 삶의 환경은 믿음이 깨어진 상태에서 살게 되어 버렸다.
사람들이 태어날부터 이 믿음과 신뢰의 관계를 계속유지하면서 살기란 쉽지않고,
이 믿음이 무너지면서, 인간안에 많은 문제를 야기하였고,
사람들이 사회에 서로 상처를 주고, 상처를 받고,
갈등과 투쟁과 전쟁이 야기되어, 사람들이 사는 곳이 험악하게 되었다.

그런 인생들에게 신은 찾아와서,
그들에게 잃어버린 믿음의 힘를 주며,
그들과의 신뢰의 관계를 회복하기를 원하는 것이다.
그래서 사람들이 신을 찾아 가는 것에서부터,
신과의 만남을 통하는 것이나,
그리고 더 나아가 신과의 모든 교제안에 살아가는 데에,
사람들이 가져야 할 제일 필요한 것은 이 믿음이다.
사람들이 신을 아는 지식을 추구하는것도
지식을 추구하는 이성의 능력으로는 신을 알수 없으며,
신과의 관계를 설정하는 것도 모호하게 된다.
마치 장님이 코끼리 더듬어,
자신이 더듬는 대로 인식하는 정도밖에는 안된다.

믿음을 가지고 자신의 자아의 눈을 떠야, 신의 본질을 알게되듯이,
신을 추구하는 것은 이성의 도구로 한계가 있으며,
믿음의 단계에 이르러야 신과의 관계설정을 통해,
신과의 신뢰의 교제의 경험을 통해 신을 이해하게 되는 것이다.
이것은 우리가 사람을 알고 그 사람을 경험하는 것은
단지 단순히 이성의 지식으로 아는 것으로가 아니라,
경험을 통해 신뢰의 관계의 형성과 교제를 통해,
진정한 앎의 단계에 이르게 된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그것은 과학자가 새로운 이론을 발견하는 것도 지식의 단계를 넘어서,
확신하는 단계에 들어서야 비로소,
자신이 연구한 이론이나 발견이나 발명이 효력있는 사물이 되는 이치일 것이다.

사람들이 인생을 살아가는 데에 그 믿음은 필수적이며,
모든 인간관계에 있어서나 모든 일을 추진하고자 하는데에,
자신의 삶을 유지하는 밑거름이 바로 자신이 가져야 할 믿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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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서와 화해의 사역을 위한 제언

인간사회안에서 발생한 갈등이나 분쟁의 와중에서, 상호 간의 일어나는 화해의 시도가
왜 개인적 차원에서 와 사회정치적인 차원에서 그렇게 힘들게 여김을 받는가?

이 화해하는 시도는 인간사회에 갈등이 있으며,
분쟁이 있다는 것을 전제하며, 그것을 해결하기위해,
용서하고 화해하는 과정에는 서로 용서하고,
악을 선으로 이겨야 하는 자신의 희생이나, 봉사가 요구되기에 그렇다.

인간이 사는 사회에는 어느 한 쪽에 있는 있는 사람들에게
하나님앞에서 누구나 평등하게 살 권리와 인간의 존엄성을 소중히 여기는 인간의 기본권이 무시될때에, 늘 갈등과 분쟁이 일어나기 마련이다.
그것은 그 사회에 정의가 실현이 되지 않고,
서로 차별화에 의해 갈등이 일어나며, 거기에 분쟁과 폭력이 발생하여,
그에 따르는 상처와 고통스런 현상이 일어난다.
그래서 갈등이 일어나는 때에는 언제나, 상처를 입은 측과 상처를 주는 측이 있기 마련이다.

1984년 노벨평화상을 받은 성공회주교 투투의 남아프리카공화국은
다민족사회에서 겪는 전형적인 인간차별화로 인하여,
그 사회에 겪은 계층간과 인종간의 분열의 현상이 일어나고,
그 분열과 갈등의 현장에 가해자측과 피해자측사이에 깊은 갈등의 골이 깊어 있었고,
그 갈등과 분쟁을 해소하는 과정에 많은 노력과 서로의 용서와 화해의 과정들이 필요하였다.
그 용서와 화해의 현장의 중심에 종교가 역활을 하였고,
함께 고통받는 자의 편에서 투투는 진실과 화해의 위원회를 중심으로
그 사회의 근본적인 갈등을 해소하게 되었다.

그 갈등이나 분쟁을 화해하는 개인적인 관점에서는
그 화해하는 과정에 반드시 가해자측에 대한 피해자들의 복수를 하려는 의지를 포기하고,
그 가해자들을 용서가 있어야 하는데,
그 용서하는 과정에 드러난 차별화나 폭력에 대한 피해자측의 자신들의 아픔들을 감당하고,
그 불합리한 일들을 용납하고 받아들이는 관용하는 마음이 전제되어야 할 것이다.
그 용서에는 자신들이 받은 상처나 고통에 대한 자기이해의 희생들이 요구되며,
그들의 아픔이나 상처에 대한 자기설득의 과정이 필요하다.
자기설득의 과정에서, 피해자들 자신들의 접근하는 관점에는
복수하려는 마음을 극복하려는 강한 사랑과 용서의 의지가 필요하다.

피해자측의 개인적인 복수하려는 의지의 해소를 추구해야 하는데,
그들 자신들의 복수하려는 심리적인 문제들을 극복하고,
그 심리적인 상태를 해소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그리고 그들의 조건적인 용서의 극복에도
그들의 용서를 하려는 조건적인 전제를 포기해야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그리고 더 나아가, 불평이나 불만의 해소를 하려는 관점으로,
그들의 탓으로 비난하려는 의지의 포기에는 피해자들의 자비를 실천하려는 강한의지와
정책적인 전략들이 필요하다.
마음에의 결심을 행동으로옮기려는 결단에 따르는
구체적인 용서의 행동의 실현이 따라야 할것이다.

용서에는 개인적인 사랑의 힘이 요구된다.
자신을 사랑하듯 타인에 대한 사랑을 하려는 의지가 용서를 가능하게 한다.
하나님의 화해는 하나님의 자기노력이나, 자기희생이 따르는 사랑의 결과에서 시작하게 된다.
인간의 죄를 용서하시려는 하나님의 사랑의 선취적인 측면이나,
사랑을 희생하여, 독생자를 인간의 죄에 대한 댓가를 치루는 희생의 제물로 설정하여,
하나님은 인간을 용서하는 하나님만이 겪은 희생적인 고통이 따랐다.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희생적인 고통가운데에 인간에 대한 화해가 이루어졌다.

이렇듯, 한편에서의 사람들의 용서에는 사회적인 조화나,
건전한 상호간의 관계회복을 이루는 데 일조한다. 사회적인 평화에 대한 노력이나,
투자를 해야 할 것이다.
이런 사회적인 평화의 분위기를 조성하기 위해 지속적인 도덕성회복의 켐페인이나,
평화건설위원회를 상주시켜 그위원회의 활동들을 통해
지속적인 인권,평화운동이 일어나도록 해야 할 것이다.

사회적이고 정치적인 관점에서 화해하는 과정에는
다음과 같은 일련의 활동이나, 운동을 이루어야 하기에
그런 화해를 일으키는 과정에는 힘들고 어려운 점들을 감당해야 할 것이다.
특히 가해자측이며 권력이나 힘을 가진자들이나,
사회적인 시스템이 자신의 기득권을 제한하고,
약자의 권리를 보장하는 사회적인 시스템이나,
도덕적인 사회적인 규약이나, 인간의 평등확립이나,
인간의 기본권리등을 보장하는 사회를 달성하는 과정들이 필요하다.

불평등이나, 인간차별화로 인하여 일어난 갈등의 간격이나 증폭을 줄이려면,
갈등의 원인을 해소하는 노력이 필요할 것이다.
갈등이 일어날때에, 쌍방에 대한 화해가 필요한 협력적인 노력이 필요하다.
이화해의 과정에서 가해자측은 자신들의 잘못된 행위를 뉘우치는 회개와
재발방지를 위한 사회적인 공정관리의 장치의 정착이 필요할 것이다.
그리고 더나아가 가해자들은
피해자측의 고통스런 삶의 현장을 회복해주려는노력이 필요하다.

가해자측과 피해자측모두는 불공정한 차별화로 인한
남용된 권력이나 폭력사용에 따르는 사회적인 치유의 과정이 필요하고,
그 불합리한 현실을 다시 재해석하여 함께,
진정한 정의의 사회가 실현될수 있도록 새로운 미래를 향해 나가는 적극적이고,
희생적인 노력들이 필요하다.
도덕성의 문제해결로는 인간의 악이 폭력으로 표출되어,
피해자측인 사람들에게 깊은 상처와 고통을 남기게 되는
그런 죄를범하는 인간의 양심의 기능의 회복과 상하게 되어 있는
인간의 도덕성을 회복해야 할 것이다.

어느 인간의 인종이나 낮은 사회적 계급들의 사람들을 차별화된 사회적인 의식이나,
차별화의 악을 조장하거나 방조하는 구조적인
악한 사회적인 시스템을 대안적인 사회적인 시스템을 세워 대체하게 하여야 할 것이다.
그리고 사회적인 규약에 대한 상호 자유와
평등에 대한 사회적인 보장과 기본적인 인권을 보장하는
장치의 회복을 시도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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격려와 배려가 있는 사회

이지구상에 있는 모든 것들이 지구의 당기는 중력에 의해
자신들의 존재가 지탱하고 있듯이
인간의 거의 모든 일들이 자연의 법적인 현상이나 작용에 의해 움직이고 있다.
인생들이 자신들이 중력에 의해 움직이듯,
인생들이 특별한 배려가 없이 법이 명하는 대로 살아가는 일이란
법적 준수나 법을 위반시 처벌만 기다리는 삭막한 인간생활로 여기게 된다.
모든 것이 법이 정해준 대로 살아야 하며,
배려는 없고, 법만이 영향을 주는 삶이란 사람을 더욱 고달프게 한다.

생활하면서, 특별하게 생일을 축하하다든가, 집들이를하다든가,
결혼기념을 축하하는 것은 평범하게 살기쉬운 일상의 생활에 의미와 활력을 불어넣어주게 된다.
특별한 날들이 없고, 그저 다람쥐 체바뀌돌듯이 변화가 없거나 무의미하다못해,
권태가 일어나는 상황이라면
자신의 생활에 활력을 불어넣는 삶의 에너지에 충전이 필요하다.
그 삶의 에너지는 자신을 향한 배려나 혜택을 통해 얻게 된다.

사람이 중력의 법칙대로, 자연적으로 되어진 대로 살아간다면,
결코 보다 가치있거나, 보람있는 삶을 살기란 쉽지 않다.
한 아이가 자라면서 수많은 희생과정성이 깃들인 부모의 돌봄이나,
가르침의 결과로 사람이 훌륭하게 성장하게 된다.
저절로 무엇이든지 그냥되어지는 법은 없다.
거기에 정성이 들어가고, 누군가의 수고와 희생의댓가로 자신의 출세나 성공이 이루어진다.
그런 일들 가운데에, 서로에 대한 희생과 기대감이 있고,
또한 서로를 향한 배려가 있고, 혜택이 있고, 봉사가 있고, 섬김이 있다.

만일 지구의 모든 인생들의 삶이
단지 중력에 의해 자연의 법칙대로 돌아가는 대로만 살아간다고 가정해보면,
인생들은 잠시도 자신을 지탱하지 못하는 천재지변이나,
자연의 힘에 의해 떠밀려, 존재하기도 쉽지않을 것이다.
지난 과거를 돌아보면 홍수가 나거나,
재해가 닥쳤을때에 조금만 더 도가 넘어가면,
더 큰 재난이나, 고통스런 상황을 맞이한 적이 많았을 것이다.
그러나 다행히 그런 고비들을 넘기는것이 우연히 이루어 졌다고 생각해서는 안되는 것은
그 배후에는 신의 배려가 있었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인간의 잘못에 대해 용서나, 용납이나,
혹은 사면이나 면책을 해주는 것이 없다면
인간의 행의에 대한 심판에 의해, 인간스스로는 설수 조차도 없을 것이다.
우리가 자녀를 키울때에도 매를 들고,
법으로 아이를 바로 잡으려 하면 우리의 대하는 잣대로 자신도 완벽할수 없을 뿐아니라,
아이들을 변화시킬수 있는 교육의 효과의 길로 유도하기란 쉽지않다.
오히려 그들의 잘못을 용납해주는 너그러움이 있고,
비록 실수를 했어도,그들을 받아주는 부모의 아량이 있어야,
아이들이 그가운데에서, 자신들의 실수를 용납하면서,
계속적인 격려가운데에 바른 길을 걸어갈수 있을 것이며,
발전적인 성장을 할수 있을 것이다.

사람을 바르게 인도하고,
특히 인간의 인성개발(영성, 지성, 감성)을 다루는 일에 있어서,
물리적인 법칙에 의존하는 법의 테두리가 아닌 관용과 용서의 배려가운데에
사람의 잘못을 고치게 되고, 사람들 자신을 변화시키며,
그리고 나아가서 그런 연약한 것들을 극복하고
자신을 보다 나은 단계로 발전시킬수 있는 것이다.
이런 원리는 사람을 가르치는 교육계에 뿐아니라,
인간의 다반사가 이루어지는 모든 인간관계나,
비지니스세계에도 서로 잘못을 용납해주고,
그들의 실력이나 노력을 믿어주고 하는 신뢰의 관계가운데에 비지니스가 성공하고
또한 사회도 발전할 것이다.
그렇지만 느스한 법적용이나, 안일한 법위반을 용납해서는 안될 것이다.

만일 어느사회든지 사람들을 엄격하게 구속하고 다스리는 법만 있다면,
그사회는 경직된 분위기에서 사람을 질식시킬것이다.
인간의 잘못이나, 허물을 용납하지 않은 비판과
법적인 구속만있는 전체주의사회나, 공산주의 사회에서 사람이 숨을 돌릴여유도 없고,
그런 구속적인 법규망속에서 사람들은 노예처럼 자신들을 포기하고,
배려나 혜택은 없고 의무나 맹종만 있는 험악한 상태에서 살아갈 것이다.

우리가 사는 사회에서 인간답게 살아가는 데에는
서로를 향한 배려와 격려와 관용이 있는가운데에 넉넉한 인간다움을 유지하고 살아갈수 있다.
이런 모든 인간사회의 배려나, 혜택이나, 관용등은
그 근저에는 인간에 대한 신의 용서와 배려와 신만이 줄수 있는 은혜가 있는 것이다.
사람이 사람답게 살아가는 데에는 신의 배려나, 관용에 의해,
서로를 받아줄때에 그렇게 살아갈수 있다.
사람이 물을 마시고, 공기를 마시고, 하늘의 창공을 바라보며,
자유롭게 활보하고 살아갈수 있는 것은 보이지 않는 신의 은혜의 배려라는 것을 알 필요가 있다.
그런 관점에서 법적인 구속의 힘보다는
사람을 옳은 데로 이끄는 종교의 힘이 올바르게 활용되고,
사람들에게 영향을 미칠때에,
그 사회나 그곳에 사는 사람들은 참된 삶을 살아갈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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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의 자녀에 대한 애정표현의 유형과 그 영향들

부모가 자녀(특히 어린 유아기에서 형성되기 쉽다)를
대하는 애정표현을 통해, 자기표현이나,
다른사람과의 감정교류와 마음을 연결하는 방법들을 자녀들은 터득하게 된다.
그래서 아이들은 어릴때에 그것을 통해, 인간관계의 형성을 어떻게 하는지를,
즉 사람을 대하는 태도나 방법을 배우게 된다.
부모의 양육에서 나타난 자녀에 대한 애정관계표현(감정교류와 상호 자아접촉및 영향)은
크게 네가지로 생각해 볼수 있다.

먼저는 안정된 부모의 사랑을 전제로 한 지속적인 애정관계인데,
이 관계는 부모가 지속적인 사랑과 관심을 가지고 자녀를 돌보며,
자녀를 대하는 부모의 사랑이 변치 않아,
자녀에게 안정감을 주어 자녀들이 감성적으로나 이성적으로 자신들을 표현할때나,
정상적인 감정교류를 통한 인간관계를 형성할때나
사회생활에서의 대인관계에 있어서 아주 긍정적으로 영향을 주어
좋은 인간관계를 형성하거나,
대인관계에 있어서, 건강한 관계나 교제를 형성하게 해준다.
즉 어릴때부터 부모와의 정상적인 관계안에서 돌봄을 받은 자녀가
나중에 인간관계나 교제에도 자신감을 가지고,
건강한 대인관계를 형성할수 있다.
이런 경우의 자녀들은 부모가 그들이 인간관계를 유지하고,
대인관계나, 능동적인 자신을 표현하는 환경을 조성해주는 것이
자녀를 더 건강한 인간관계나 사회생활을 하는 사람으로 키울수 있다.
만약 자신이 이런 부모가 아니라면
자신이 먼저 주변사람들에게 애정과 관심을 표현하고,
자신의 과거의 부모와의 관계를 점검해 보고 자
신을 다시 한번 재양육하는 과정을 통해, 건강한 감정적인 자신이 되어,
가까운 사람과 애정을 자주 나눌 필요가 있다.

다음으로는 부모가 자녀들에게 감성적으로 바르게 표현하지 않은 경우이다.
부모들은 자녀에게 가는마땅한 사랑표현을 주지않고,
자녀가 부모의 사랑과 애정의 결핍증을 갖도록 하여,
부모의 사랑에 대해 의문을 갖게 한다.
그리고 자녀들의 자아개념속에 부정적인 영향을 받게 한다.
그래서 그 자녀는 자라면서 인간관계를 형성하는 법을 배우기가 쉽지않다.
이런 경우는 괜히 좋아하는 사람에게
정상적인 애정관계나, 정을 표현하기를 꺼려 하게 된다.
그리고 사람들을 깊이 사귀지 못하는 인간 감정교류에 지장을 받기도 한다.
자신의 머리에 이성적으로는 사람을 사귀고 싶고,
사람에게 친근하게 대하고 싶은데, 자신의 감성이 따라 주지 않는다.
이런 사람의 어린 시절의 기억에는 상처난 경험도 있을 것이고,
따뜻한 애정을 받은 기억을 갖지 못하여,
다른 사람에게도 그런 자신의 부정적인 감정표현을 하게 된다.
이런 경우는 자신의 감정표현을 하는 것을 배우고, 주
변에 있는 사람들과 따스하고 정이 있는 관계를 유지하여,
인간관계나 감정교류에 대해 자신감을 갖도록 할 것이다.

다음은 부모가 자녀를 사랑하는 표현에 있어서 안정적이지 않고,
불안한 관계로 형성되어, 부모의 필요를 따라 애정을 표현하는 경우가 많아,
오히려 자녀들은 부모의 애정표현의 피해자가 되어
자녀들은 남들과의 사랑표현이나 애정관계나,
우정관계를 유지하기가 정상적으로 갖기가 쉽지 않다.
이런 경우의 사람은 잦은 인간관계의갈등을 겪기도 하고, 오해를 사기도 한다.
이런 자녀를 둔 부모들은 먼저 자녀에게 지속적으로 안정적인 애정표현을 알것이다.
자녀는 주변의 사람들과 정상적으로 건강한 관계나 교제를 갖지 못하고,
갈등을 일으킬때에, 부모는 그문제가 자신에게서 나왔다고 인정하고,
먼저 자녀에게 건강한 애정이나 관심표현을 할 필요가 있다.
이런 경우는 어릴때에 부모로부터 좌절되는 감정적인 경험들이 많아서,
자신안에 감정적인 불안을 떠안고 있다고 할수 있다.
신경질적인 사람들이 특히 그들이 애정에 굶주려 있는
자신의 내면에서 나오는 불만이 다른 사람에게 표출되어,
다른 사람에게 쉽게 상처를 주고,
자신도 그로 인하여 불만과 갈등을 갖게 된다.
어린 시절의 상처들로(성적인것이나, 혹은 육체적 학대들)로 인한
억압된 감정들을 끄집어 내어 그것을 해소할 필요가 있다.
그것을 해소하는데는 기억치유나, 내적치유를 통해 가능할 것이다.
기억치유나, 내적치유는 억압된 감정치유에 도움이 된다.
먼저 이것을 본인스스로 하려면
내면의 자신에 대한 일기를 써본다든가?
혹은 기도나, 혹은 그것을 가지고 신(하나님)에게 나아가,
그가 베푸는 자비(사랑, 은혜)의 힘으로 해소할 수 있을 것이다.

마지막은 부모와 자녀의 애정이나 사랑의 연계표현이 전혀 형성되지 않은 경우이다.
이경우는 부모에게 상당한 정신적인 문제가 있는 경우이며,
부모도 또한 정상적인 자신의 부모로 부터 애정이나 돌봄을 받은 적이 없다.
부모들은 자녀의 인격형성이나, 대인관계감정교류의 형성에 혼란만을 초래해
자녀들은 거기에서 쉽게 벗어날수 없다.
이 아이들은 이성적, 감성적표현에 있어서나,
행위표현에 있어서도 정상적으로 나타나지 않으며,
자신안에서 분열적인 자아 증상을 통해,
깊은 정신적인 갈등과 정서적인 혼돈과 불안을 경험한다.
이런 경우는 대개 부모가 건강치 못한 정서생활과
비인간적인 인간관계나, 문제의 가정에서 자녀들에게 영향을 주는 것이다.
이런 사람은 알코올 중독이나 마약중독에 빠지기 쉽고,
정신적인 질병에 걸리기 쉬운 성향을 갖게 된다.
이런 경우는 전문적인 상담인을 찾아
부모자신과 자녀가 동시에 자아상담이나,
인격상담등 전문적인 상담치료가 필요할 것이다.

그리고 부모나 자녀는 인생생활에서 겪는 문제를 다른데서 찾지 말고,
자신의 자아문제에 대해 다시 한번, 점검하고,
건강한 자아를 회복하도록 주변사람들의 사랑과 돌봄이 필요하다.
부모들은 자녀들의 정상적인 인간관계유지를 위해서,
자신의 주변부터 모든 인간관계에 있어서,
비정상적인 관계들을 정상적으로 할수 있도록
회복하는 노력을 해야 할 것이다.

사람은 이성과 감성이 두뇌에서, 작용하는 존재인데,
이성적인 활동도 중요하지만,
사람을 행복하게 하는데는 감성적인 요소들이 더 영향을 준다.
이 모든 사람들의 정서적인 문제에
사랑의 힘이 가장 큰 힘이며, 치료제임을 명심할 필요가 있다.
사랑은 모든 사람들의 정서적인문제들을 해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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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조적인 성경교수법

성경을 가르칠 때에 교사는 성경적인 관점에서
학생들의 관점으로 연결하는 책임이 있습니다.
성경교사는 성경의 세계에 대한 건전한 이해와 자기 개념을 가지고
학생들을 성경의 세계로 유도하여 그들로 하여금
성경의 세계에 대한 학생들의 가지고 있는 기존 세계관을 수정하여
성경을 이해하는 세계관으로 성경을 보게 하는
성경적 창조적인 교육 방법을 추구합니다.

교사는 먼저 성경전체에 대한 주제별적인 것들과
성경파노라마적인 계시 발전에 개괄적인 이해와
그 성경적인 개념들에 대한 기본 이해를 갖고 있어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자기 교수에 대한 개성적인 준비는 말씀에 대한 자기의 신앙과
그리고 평소에 교사가 갖고 있는 성경 다루는 바탕이 되는 기본 개념들을 세웁니다.

그런데 성경을 다루는 교사의 태도는 교사가 전하는 내용이상으로
학생들에게 영향을 주며, 성경의 진리를 전달하는 매개체로서
교사의 접근 방식은 중요한 가르치는 자의 메시지의 도구인 메신저로
교사가 성경책을 대하는 자신의 이해방식에 따라 학생들에게
좋은 영향을 주기도 하고 나쁜 영향을 주기도 하며
또 전혀 학생들에게 영향을 주지 못하는
전달자의 매너리즘(학생들에게 영향을 주지 못하는 그릇된 태도)이나
한계상황(자기도 이해하거나 경험하지 못한 것을 전달하는 데서
오는 교사의 미숙)에 빠집니다.

성경을 단지 학문이나 문법이나 문서로만 다루려는
학문적인 접근방법이 있는가 하면, 성경을 하나의 이데올로기로
혹은 철학적인 책으로 여겨, 관념적인 머리로만 이해하는
지식전달위주의 방법 등은 성경이 기록된 말씀의 세계에
넘어 있는 살아 숨쉬는 역동적인 메시지를
건지지 못하는 경우에 빠질 수도 있습니다.
성경은 영의 말씀으로 문자 속에 있는 살아계신 말씀이신 주님의 현존을 느끼며
그 속에서 그분과 교제하며 대화하여,
그 책 속에 있는 그분의 생명의 기운(성경은 성령의 사용하는 도구로
활용될 때에 메시지가 살아있는 말씀이 됨)을 경험할 때에
비로소 그 책 속에 있는 내용의 말들은
주님의 말씀으로서의 인격적인 영향을 주고 받을 수 있습니다.

성경교수법의 접근방법: 성경을 대하기 전에 성경교사와 학습자가
삶의 현장에서 이해하고 경험한 것을 나누는 단계,
배울 성경책에 대한 설명적인 단계, 그 책의 내용에 대한 이해력을 돕는 단계,
그리고 그 배운 것을 삶의 현장에 적용하게 하는 단계로 나눌 수 있습니다.

교사는 가르칠 교육에 대한 계획적인 안을 가지고 있어야 하는데,
하나님께서 사람들을 구원하기 위한 마스터 플랜을 갖고서 사람들을 인도하듯이,
성경교사는 자신의 가르침의 목적이나 내용과 결과에 있어서,
일관된 교안을 세울 것입니다.

가르침에는 네 가지 가르침의 단계들의 성취를 위해 각각의 목적과 방법등을 세웁니다.
서론적인 나눔의 단계에서는 학생들에게 가르칠 내용과
유사한 내용에 대한 학생들의 기존이해와 경험을 나누며
그들의 갖고 있는 선입관을 교사가 이해하고,
교사는 앞으로 가르침을 받을 내용을 통해
그들이 무엇이 필요한지를 파악하는 과정으로 그들과의 대화를 통해 알아갑니다.
그 그룹의 수준에서 배워야 할 필요적인 부분들,
그리고 교사를 통해 성경에서 배울 내용에 대한 이해의 준비하는 단계입니다.
학습자들이 왜 그 내용을 배워야 하는 지를 설명해주며
실질적인 성경공부의 단계로 나가게 합니다.

학습자들이 제기했던 질문이나 필요에 대한 그 가르칠 내용에 대한 의미와
그 내용에 나와 있는 용어이해와 그 내용의 문장이나 단락 분석을 통해,
전체적 개괄적 이해를 돕는 자료들을 제공하면서,
교사는 학생들로 하여금, 흥미를 갖고서 자신들이 알고자 하는
몰입하도록 시청각 교재나 교사의 짧고 명료한 강의나
혹은 학습질문법이나 문장이나 문맥 설문 조사 등으로

학생들이 쉽게 성경의 내용들에 접근할 수 있도록 유도합니다.
학생들이 성경공부를 통해 이해했던 내용들을 정리하여
자신들이 취할 내용과 필요치 않는 것들을 분리하여,
그 내용들을 체계적으로 습득할 수 있도록 유도합니다.
그리고 그 내용들을 실제적으로 적용하거나 자신들이 갖추어야 할
이해의 관점을 갖도록 학습자들을 그룹을 통해서
혹은 개별적으로 케이스 스터디를 하거나,
자기 역할 놀이등으로 그 말씀의 가르침을 실제 적용하는 단계로 나가게 합니다.

그리고 마지막 단계에서, 학생들의 반응들을 점검하여, 무엇이 문제이며,
혹은 부족한 부분을 보충하는 과정을 가지면서,
교사는 학생들의 피이드백을 통해, 다시 그 가르침의 내용들을
재차 강조하거나 학생들이 삶의 현장에서 적용하는 실제적인 실행방법이나
적용 사례 등을 구체적으로 적어보면서 정리하게 합니다.

그리고 나서, 그 가르침에 대한 자기 헌신이나 결단을 갖도록 유도합니다.
그래서 그 내용들이 학습자들의 삶의 현장에서 실질적으로 실행할 수 있도록 다짐하게 합니다.
그리고 나서 학생들을 그 가르침으로 복을 빌어 주며,
그 말씀의 살아서 그들에게 영향을 주어,
그들의 삶의 변화가 일어나도록 격려 합니다.

교사는 이제 전체적인 교수의 흐름이 단계별로 무리없이 진행되었는 지를 점검하며
무엇이 부족 하였는지와 강조한 부분들을 정리하여 다음 성경공부에 도움을 제공하는 자료로 남길 수 있습니다. 전체적인 흐름이나 가르침의 방식은 단순 명료하게 진행되도록 할 것입니다. 그리고 반드시 교사 자신이 그 가르침을 통해 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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