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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도자의 세움

세계역사나 민족의 역사는
인간이 중심이 되어 움직이기 보다는
그 역사를 움직이게 하는 지도자를 하나님이 세우시므로,
하나님이 역사의 중심이 되어 활동한다.

이스라엘은 광야에서의 생활을 청산하고 요단강을 건너,
약속의 땅에 들어가야 하는 시점에 와있다.
이스라엘의 영도자 모세는 하나님의 부름을 받고
자신의 달려갈길을 다 마치는 인생의 경주를 끝나게 되었다.
이제 이스라엘민족을 이끌 새로운 지도자가 필요한 것이다.

새로운 지도자는 새로운 일에 의해 생겨나며,
새로운 환경이나 삶의 조건들은 새로운 지도자를 요구한다.
지도자는 하나님이 만들어 내고, 시대가 만들어 낸다.
하나님께서 세울 자를 세우고, 폐할 자를 폐한다.
그에게서부터 모든 인물들의 지도력이 나온다.

여호수아는 하나님으로부터 이스라엘의 새 영도자로 명령을 받아,
새로운 사명의 일꾼으로 세움을 입는다.
그는 하나님의 선택을 받는다.
그의 멘토였던 모세의 지도아래 일찌기 그는 수종드는 일을 통해
지도자가 되는 길을 걸었다.
여호수아가 모세를 통해 지도자는 남을 섬기는 자임을 보고 배운다.
지도자는 자신의 의견을 따르기보다는 하나님을 섬기는 자로 있음을 배웠다.

사람들을 섬기는 자가 지도자로서 세움을 입는다.
모세는 자신이 지도자가 되어가는 과정을 통해,
그는 스스로 시행착오를 겪으면서, 지도자로 이스라엘에 드러나게 되었다.
그러나 여호수아는 모세를 받들어 섬기는 종의 생활을 하였다.
모세의 부관이 되어, 그의 그림자처럼 보좌하며, 모세의 지도력을 배웠다.

여호수아에게 모세는 훌륭한 멘토의 역활을 하였다.
그러나 일찌기 여호수아는 모세의 수하에서 모세를 섬기면서
그를 통해 지도자수업을 젊은 시절부터 받아왔다.
비전이나 꿈을 가지는 나이는 젊을수록 좋으며,
비전이 혈기왕성한 나이에 가지면서,
그 비전을 성취할 준비를 착실히 다질수 있다.
여호수아는 자신의 미래의 지도자상을 모세를 통해 배우고,
지도자로서의 갖추어야 할 품격을 자신의 스승으로부터 배웠다.

지도자 모세는 고통당하는 동족의 아픔을 생각하며,
이집트의 왕자의 신분을 저버리고,
이스라엘 자기 동족들과 함께 고난을 각오하는 희생의 모습을 보여주었으며
그들을 위해 하나님의 부르심을 따르는 결단을 보여주었다.
이스라엘백성들은 모세의 지도자의영도력을 따랐고,
모세이후의 여호수아의 새로운 지도력을 인정하였다.

모세는 지도자로서 하나님의 율법을 받아
그 율법을 통해 무리들을 하나님에게로 이끈다.
지도자는 자신이 무리들을 지도할 분명한 교안이나 지도철학이 있어야 한다.
백성들은 그 율법대로 살므로
자신들의 생명의 축복과 번영이 있음을 지도자를 통해 배운다.

지도자란 인도자이다. 고로 지도자에게는 새로운 비전이 있어야 한다.
그런 비전을 가진 자가 지도자로 세움을 입는다.
그는 자신의 앞서가며 따르는 무리를 인도할 사명이 있는 것이다.
고로 그는 앞을 내다볼 줄아는 지혜와 그들에게 지도력을 나타내야 할 것이다.

지도자에게는 또한 책임이 주어진다.
따르는 무리들을 바른 길로 이끌 책임자이다.
지도자는 따르는 무지들에게 모델이 되어 주어야 할 모범자이다.
삶의 모든 부분에 있어서 본이 되어야 한다.

지도자가 따르는 무리들에게 본이 되고.
자신의 지도력을 수행함에 있어,
먼저 자신안에서 자신의 삶이 형통하게 사는 것을 배운다.

지도자에게는 자기만의 형통의 비결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모세의 형통의 의 비결은 오랜 광야생활에서 터득한 하나님의 율법을 묵상하였다.
양을 치는 목자로서 그는 하나님을 가까이서 모시고
그의 말씀을 생각하며, 그 말씀을 묵상하는 일을 힘썼다.
그것이 지도자로서 자신을 지키는 가장 중요한 일이었다.

주님을 섬기는 종은 항상 그분의 말씀을 항상 간직하여,
그분의 말씀으로 그분을 섬겨,
그 말씀을 따라 살아가기를 힘써야 할 것이다.
하나님은 지도자에게 그의 말씀인 율법을 다 지켜 행하라고 하신다.
그 율법책을 네입에서 떠나지 말게 하라고 하신다.
그리고 자신의 마음안에 깊이 묵상하며 살라고 하신다.
자신에게 기록된 말씀을 통해
그 말씀이 살아있는 언어로 자신에게 들려지도록
부지런히 말씀앞에 자신을 나타내야 한다.

고로 주님의 말씀을 따라 생활하는 것은 자신의 모든 일을 유능하게 된다.
자신이 먼저 열심히 말씀을 묵상하고,
그 묵상의 깊이에 대한 노력을 기울여
더 나아가 그말씀의 유익한 것들을 간직하여 지키려는 순종과
열정에서부터 자신의 영적인 지도력이 나온다.

말씀을 묵상하는 일은 말씀을 사랑으로 대하는 자세로부터 말씀을 품고,
그 말씀의 영향력아래에 머물러 있기를 바라는 간절함으로
말씀을 따르는 영적생활이 유지되어진다.

지도자는 하나님이 세우신다. 그리고 하나님이 지도자와 함께 하신다.
하나님이 지도자를 책임지신다. 그리고 주님은 그에게 명령하신다.
지도자는 하나님의 명령을 따르는 자이다.
지도자는 하나님의 종이며 그분의 시종이다.
하나님을 섬기는 자이다.

지도자는 하나님을 섬기는 자인고로
그분이 무엇이라 하시는 지
그분이 무엇을 원하시는지를 살피는 일이
지도자가 하나님의 종으로서 해야 할 가장 중요한 일이다.

만일 하나님의 뜻을 살피는 일을 소홀히 하거나
그분의 지시를 따르지 않게되면
그날부터 그 지도자는 하나님앞에 쓰임받지 못하고
쓸모없는 인간으로 타인에게도 해를 끼치게 된다.

하나님은 자신이 세운 지도자에게 하나님의 동행하심에 대한 약속을 주신다.
내가 너와 함께 하리라.
이 말은 지도자가 어느 면에서나 하나님께서 그와 함께 하여
그의 지도력을 붙들어 주신다는 약속이다.

지도자는 자신의 지도력의 정체감을 알아야 한다. 그래야 지도자가 오만하거나,
권력을 오용하는 실수하는 범하지 않게 된다.
그것은 모든 권세와 권위는 하나님으로부터 나온다는 사실을 잘 인지해야 할 것이다.

정치 지도자는 백성들이 뽑지만,
그의 권력의 근원의 시작은 모든 권력의 근원인 하나님으로 부터 나온다.
올해에 있을 대통령선거에 뽑히는 지도자도 국민들이 뽑지만,
그의 권력의 힘도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것이다.
그것은 선한권세나 악한 권세등 모든 권세는 하나님의 권한하에 있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지도자와 함께 하므로, 지도자는 자신의 하는 일에 형통하게 된다.
하나님의 인정을 받는 것은 백성들가운데에,
민중들이 그의 지도력을 인정받는 길이다.

하나님께서 모세와 함께한 것 같이
여호수아에게도 너와 함께 하리라고 약속하신다.
하나님은 여호수아의 앞날에
너의 평생에 너를 당할자 없으리라고 말씀하신다.
하나님이 지도자와 함께 하시고 그를 세우시면,
그의 지도력을 막을 자가 없을 것이다.

하나님은 지도자 여호수아와 함께 하신다.
내가 너를 떠나지 않으며, 버리지 아니하리라 약속하시며,
그의 지도력의 앞날이 형통하리라.
그의 삶이 평탄하게 되리라 또한 약속하신다.

지도자에게는 무엇보다도 강한 마음이 필요하다.
흔들리지 않는 자세로 자신이 세운 지도철학을 관철하면,
소신있는 지도력을 발휘하게 된다.
하나님께서 여호수아에게 너는 마음을 강하게 하라, 담대히 하라고 격려하신다.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일을 맡기실때에,
그사람의 됨됨이를 보고, 그사람이 그 일을 수행할수 있는 능력과 지혜가 되어주신다.

새로운 일꾼으로 나서는 일, 새 일을 맡는 일등
즉 지도자로 세움을 입는 일에는 용기가 제일 필요하다.
사람을 다스리는 지혜도 용기있는 지도력에서 나온다.

여호수아는 그렇게 하나님의 사역자로 훈련을 받으며,
하나님을 섬기는 일부터 시작하여,
지도자로서 백성들을 잘 인도 하였다.
젊은 때부터 모세의 시종으로 자신의 상관를 섬기고,
그 지도자의 부관역활을 잘하였다.
그리고 그에게서 지도자의 노하우를 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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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공식적인 허위논증들(논리3)

4. 인격에 대적하는 논증법 (argument against the person) (3)
이허위에는 두사람의 논증자가 필요하다.
한사람은 자신의 논증을 진행하는데,
다른 논증자가 전번 논증자의 논증보다는
그 논증하는 사람 자신에 대한 인신공격으로 몰아부치는 허위진술이다.

이 허위에는 세가지가 있는데, 인신공격허위(라틴어:ad hominem) abusive,
환경오도(ad hominem circumstantial) 허위,
tu quoque(너도 그렇다의 허위:가식적인 것을 고발하는)이다.
인신공격허위는 두번째 논증자가 첫번논증자에 대한 말로 인식공격을 하는 경우이다.
환경오도허위는 반대 논증자의 주변환경의 영향을 받았다는 암시를 하여
그 반대의 논증에 대해 불신하는 허위이다.
너도 그렇다의 허위논증은 논증자를 불신하는 태도로 대하거나
혹은 논증자의 가식적인 것을 지적하여 논증을 무시하는 허위이다.
논증을 펴는 논증자 자신이 같은 일을 저지른 것을 의미한다.

5. 사고허위논증 (accident)
사고허위논증은 일반적인 규칙이 특별한 경우에 잘못 적용된 경우이다.
전제에서 인용된 일반적인 규칙이 결론에 가서특별한 경우에 잘못적용되어지는 것이다.
예: “연설의 자유는 제도적으로 합법적인 권리이다.
고로, 존 래디컬은 지난 주일 폭통을 일으키게 한 그의 연설로 인하여 체포되지 않아야 만 한다.”
이 허위논증은 특별한 경우에 규칙에 예외적인 것을 적용하는 사고를 일으키는 논증이다.

6. Straw men (가공의 인물논증)
이 허위는 논증자가 반대자의 논증을 용이하게 공격할 목적으로 흔들어 놓는 허위이다.
그 과정에서 반대자의 논증을 왜곡시키고,
결론에 가서 반대자의 진실한 논증을 파괴하려고 하는 것이다.
그렇게 하기 위해 논증자는 가공의 인물을 세워 그것을 넉아웃시켜,
진짜 사람의 논증을 물리치려는 수법이다.

7. 촛점을 빗나가게하는 허위 (Missing to point: ignoratio elechi, 증거를 무지하게 하는)
이 허위는 부적절한 특별한 형태를 묘사한다.
이 허위는 논증자의 전제가 하나의 특별한 결론에 가서 발생하는데,
다른 결론이 정확한 결론을 모호하게 만들어 버린다.
논증자는 논증자의 전제를 논리적으로 적용하는 것을 무시하게 되어,
촛점을 빗나간 결론에 이르게 한다.
어떤 경우에는 논증을 잡탕으로 만들어 버린다.
예: “오늘날 사회보장제도의 남용이 만연해있다.
우리의 유일한 대안은 그제도를 폐기하자는 것이다.”

8. 스낵고기 유도허위 (Red herring)
이허위는 주제를 바꾸어 버림으로
독자나 청취자의 관심을 돌리게 하여 논증자가 하고자 하는 논증을
다른 이슈로 가게 만들어 버린다.
이허위를 효과적으로 사용하기 위해,
논증자는 독자나 청취자에게 알리지 않고 논증의 원래의 주제를 바꾸어야 한다.
또한 청취자의 시선을 끌기위해 눈에 보이는 가시적인 이슈를 이끌어야 한다.
그리고 가공의 인물허위와 혼돈되는 것은
그것들이 모둔 청취자나 독자의 방향을 이끄는 효과를 얻으려는 것에 있다.
가공의 인물허위는 두사람의 논증자가 있어야 하나,
스낵고기 유도허위는 그렇지를 않을때가 많다.

9. 인정받지 못한 권위의 허위 (appeal to unqualified authority)
이허위는 일종의 다양한 허위이다.
인용된 권위자나 증인등이 신임을 줄수 없을때에 나타나는 허위이다.

10. 무지를 호소하는 허위
증명될수 없는 것이나 증명하지 않았던 어떤 것에서 나오는 허위이다.
질문에 대한 적극적인 시도를 하지만, 그 증명하고자 하는 시도도 쓸모없는 것이다.
이 허위는 재판정에서 묵비권을 행사하는 것으로 나타난다.

11. 서투른 일반화적용
이 허위는 귀납적(귀납법은 특별한 것에서 일반적인 것으로
연역법은 일반적인 것에서 특별한 것으로 적용하는 논증법)인 일반화에 영향을 주는 허위이다.
이 허위는 사고허위와는 정반대의 것이다.
사고허위는 일반적인 것에서 특별한 것으로 적용하는 것이나,
서투른 일반화는 특별한 것에서 일반적인 것으로 나타난다.

12. 거짓 원인
거짓요인의 허위는 전제와 결론은
아마 존재하지도 않는 어떤 상상하는 요인에 의존한다.
이 허위에는 세가지종류의 거짓허위가 있다.

1.이것후에 고로 이것때문에
한 사건이 다른 사건에 영향을 주는 원인으로
일시적인 연속적인 관계의 요인이 충분히 성립되지 않는 허위이다.
예: “검은고양이 내길을 가로질러 가기에, 나는 넘어져서 발목이 졉쳐졌다.
그것은 검은 고양이가 재수가 없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다.”

2.원인이 없는 원인
전혀 원인이 없는 것으로 인하여 일시적인
연속적인 것이상의 원인이 실질적으로 영향을 미치지 않는 허위이다.

3.지나치게 단순한 원인
다양한 요인이 어떤 효과에 책임을 지는 경우,
논증자는 이 요인들중에 하나를 선택하여 그것에만 유일한 요인으로 삼는 허위이다.
예: “교육의 질은 수년동안 고등학교에서 떨어져왔는데,
확실히 선생들이 이기간에 그들의 임무를 잘수행하지 못한 것이다.”

4.게임자의 허위
논증의 결론을 우연히 일어나는 게임의
독립적인 사건에 대한 가설에 의존하는 허위이다.
예: “평평한 동전을 던졌을때에, 앞면이 나오면,
나중에 던질때에는 뒷면이 나온다는 확률이 있을 것이다.”

13. 옆길로 미끄러지게 하는 허위 (slippery to slope)
다양한 허위를 일으키는 요인이 작용한다.
논증의 결론이 암시된 연결고리에 반응하는 것이며,
그리고 반응고리가 일어났을때에 충분한 이유가 없는 것이다.

14. 약한유추의 허위 (weak analogy)
유추로부터 오는 귀납적인 논증에 영향을 주는 경우이다.
약한 유추의 허위는 결론을 이끌어내는 것을 지원하는 유추가 충분하지 않다.

15. 질문청구하기허위 (begging the question)
이허위는 논증자가 부적절한 전제를 통해 결론을 지원하려는 환상을 갖는 것으로,
문제의 해결이 되는 열쇠인 되는 전제를 떠나다든가,
전제를 결론으로 다시 진술한다든가,
맴돌게하는 추리하는 과정을 통해 하는 것이다.
첫번째 형태는 질문을 청구하는 것이며,
둘째 형태는 논증의 전제가 다시 결론에 가서 하찮은 표현으로 재현되게 한다.
세번째는 맴도는 추리하는 과정을 추론의 연결고리를 통해 이루어진다.

16. 복잡한 질문하기 허위 (complex question)
이 허위는 하나의 질문을 두개의 질문으로 만들어
하나의 대답이 두개의 질문에 적용되게 한다.

17. 거짓 이분법 (false dichotomy)
이 허위는 either …or…의 선언명제적인 전제가 두개의 있을 법하지 않는 대안을 제시하며,
만일 그중에 하나가 유용하면, 논증자가
다른 바람직하지 않는 대안을 없애버려 결론에 이르지 않게 하는 것이다.

18. 억압 (감추어진) 된 증거 (suppressed evidence)
이허위는 귀납적인 논증에서 좋은 추리와 진실한 전제와 함께
이루어진 일관성이 있는 논증이라면,
억압된 논증은 중요한 증거가 될만한 요소를 갖고 있지 않은 것을 말한다.
이 허위는 가설의 허위로 분류된다.
왜냐하면, 그 허위는 전제들이 사실 없을 때에 만든 가설을 통해, 논증을 증명하려고 한다.

19. 다의성, 의미의 모호함 (equivocation)
이 허위는 논증의 결론이 말로 명시적으로나 암시적으로
논증의 서로 다른 두개의 뉘앙스(같은 말의 서로 다른 의미)안에서
표현되지않은 것에 의존하는 허위이다.

20. 표현의 애매함 (amphiboly)
이 허위는 모호한 상태에서 잘못해석하여,
논증이 그 거짓된 해석에 기초한 결론을 이끌러 낸다.
그 표현의 모호함은 잃어버린 콤마, 부적절한 수식어,
모호한 대명사의 사용, 부주의한 말의 사용등에서 나타난다.

표현의 애매함이 허위는 두가지 점에서 의미의 모호함과 다르다.
첫번째 차이에 대해, 의미의 모호함은 말이나 어귀의 의미의 애매함을 따르며,
표현의 모호함은 진술하는 종합적인 구조의 모호함에 빠진다.
두번째는 표현의 모호함은 어떤 면에서 모호한 진술들을 해석하는 잘못을 범하고,
의미의 모호함은 전형적으로 논증자자신에 위해 만들어 진다.

21. 조합상의 허위 (composition)
논증의 결론이 어떤 것의 부분으로부터 전체로 옮아가는 과정에
잘못된 전이를 통해 얻은 것에 의존하게 하는 허위이다.

22. 나눔상의 허위 (division)
조합상의 허위와는 정반대의 것으로, 전체로부터 부분적인 것으로
옮아가는 과정에 잘못된 전이에서 오는 것에 의존하는 허위이다.

평범한 일상 언어의 허위들(ordinary language)
이 부분은 두가지주제로 나누어 볼수 있다.
첫째는 일상언어에서 다른이들이 허위를 식별(detect)하는 것에 관한 것이다.
둘째는 자신의 언어중에 허위를 피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다른 사람의 허위를 간파하기
일상언어에서 허위를 간파하기 쉽지 않는 것은
논증할때에 여러가지 실수를 만들어내는 다양한 길이 있어서 그렇다.
하나의 모드가 하나 혹은 두개이상의 허위논증으로 복잡하게 얽여져 있다.
그리고 허위의 완벽한 형태가 잘 나타나지 않아, 식별하기가 쉽지 않다.
자주 전제와 결론이 표현되지 않아
증거의 속성이나 전제와 결론이 연결된 힘이 모호하게 알게 된다.

자신의 허위를 피하기
왜 사람들이 자주 비공식적인 허위를 범하게 되는가?
직접적인 해답을 주기가 어렵지만, 허위의 종류가 많아,
그것들을 식별하지를 못하고 그런 허위들을 범하는 것이 복잡하게 이루어지며,
혹은 서로 연결된 오류로 인하여 생긴다.

자신이 허위를 피하는 열쇠는 의도적으로
도덕적인 교육의 형태에 의존하기도 하지만,
논증자가 의도적으로 속이려는 형태로
어떤 것을 얻으려고 하는 부정직하게 지식을 사용하는 것임을 명심해야한다.

허위를 만드는 요인은 사람이나 사물에 대해 좋아하든지
혹은 반대하는 감정적인 기질이 결합된 부주의한 정신적인 태도이다.
그리고 처음 둘의 요인보다 어려운 것은
그것인 논증자의 세계관에서 나온 영향때문이다.

우리들이 살고 있는 세계를 조정하고 해석하는 세계관에 의해,
믿음, 자세, 습관, 기억들 가치들, 다른 요소들에 의해 허위가 일어난다.

허위를 피하기 위해 그 세계관의 영향으로부터 영향을 받은 논증에 대해,
논증자는 자신의 세운 견해(presupposition)에 대한 바른 지식이나
비판정신을 가지고 있어야 할 것이다.

Patrick J. Hurley 의 A concise introduction to logic 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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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리(2)

비공식적인 허위논증들(fallacies )
허위(fallacy)를 나타내는 진술들은
단순히 거짓전제들 (premises)을 의미하는 것보다 더 어떤 내용들을 포함하고 있다.
허위는 추리하는 과정에서의 오류(mistake)를 포함하며,
그 허위는 “그것에 따르지 않는다”
즉 전제에 의해 제기된 문제가 결론에 가서, 잘못된 것으로 판명이 되는 내용을 가지고 있다.
연역적인 것과 귀납적인 논증들은 허위들을 포함하고 있다.
만약 그렇다면, 그진술들이 거짓되거나 일관성이 없는 논증들에 위존하면 오류를 나타내는 것이 된다.

허위에는 공식적인 것과 비공식적인 그룹들이 있다.
공식적인 허위는 단순히 논증의 형태나 구조를 조사하여 확인할수 있는 것이다.
그런 허위들중에 연역적인 논증들중에 카테고리적인 삼단논법(syllogism), 선언명제적인(disjunctive) 삼단논법, 그리고 가설적인 삼단논법이 있다.

비공식적인 허위들은 논증의 내용을 조사하여 확인할수 있는 허위이다.
비공식적인 허위에는 22가지의 비공식적인 허위들이 다섯종류의 그룹으로 나누어진다.
관련적(relevance)인 허위들, 약한 귀납적인 허위들,모호성(ambiguity)의 허위들, 문법적인 유추(analogy)의 허위들이 있다.

관련성의 허위들(fallacies of relevance)
관련성의 허위들은 공통적으로 심리적으로는 맞는 전제에 맞는 결론을 펴고 있어도,
논리적으로는 전제와 결론을 서로 맞지 않는 비적절한 표현들이 나타난다.
이런 종류의 논증들은 논리적으로 맞지않으나, 감정적인 표현에 있어,
전제와 결론이 서로 연결되어있다.
고로, 이 허위들을 판단하고 분석(identify)하기위해,
여러종류의 감정적인 제안(appeal)들을 가진 형태들로부터 참된 증명을 분별해야 한다.

1. 강압적인 제안 (appeal to force)
이런 어필은 논증자가 다른 사람에게 결론을 이야기할 때에,
그 결론을 받아들이지 못하도록 그 사람에게 명시적으로나 암시적으로 해를 가하는 허위이다.
이 허위는 육체적인 위협을 가하는 것이 있고, 또한 심리적으로 해를 가하는 것이 있다.

예 1. “만일 내가 당신을 위협하는 것에 성공한다면,
그때에 내 월급을 올리는일이 수월 할 것이다.”
예2. “만일 내 동생이 당신에게 테레타비가 어린이 텔레비프로의 최고의 프로라고 우기다면,
사실 그 어린이 베스트 프로쇼안에 탈리타비가 보여질 것이다.”

2. 동정을 사는 제안 (appeal to pity)
이제안은 논증자가 독자나 청취자에게 동정을 일으키는 결론을 유도하려고 할때 일어난다.
이 논증은 아주 자주 쓰이는 것으로 학생이 교수에게 혹은 변호사가 재판관에게 쓰는 논법이다.
예: 납세자가 재판관에게/ 존경하는 판사님, 나에게는 비록 두아이가 있지만,
나는13명의 어린이들을 통해 세금을 돌려받을 자격이 있다는 것을 말씀드립니다.
당신이 나에게 세금포탈의 혐의를 발견한다면,
내 명성은 엉망이 될 것입니다. 아마 나는 직업을 잃게 되겠지요.
나의 불쌍한 아내는 절대적으로 필요한 식료품을 구입할수 없을 것이고,
우리아이들은 굶어죽게 되겠지요. 나는 분명히 죄가 없습니다.”

3. 사람들에게 호소 (appeal to the people)
이 제안은 독자나 청취자들이 자신이 제안한 결론을 받아들이오록
자신의 바람을 나타내는 것이다. 그것은 두가지가 있는데,
하나는 직접적으로 호소하는 것이 있고, 또 하나는 간접적으로 호소하는 것이 있다.

직접적인 접근법은 논증자가 많은 사람들에게 자신의 제안을 받아들일수 있도록
군중심리를 자극하여, 감정이나 열정에 호소하는 제안이다.
그러나 부정적인 감정즉 의혹이나 의심을 군중에게 일으키게도 하는 방법이다.
이제안은 과거 히틀러가 자주 썻던 방법이다.
간접적인 접근은 논증자가 자신의 호소를 군중이나
혹은 개인에게 차별적으로 이용하는 것으로, 밴드웨건논증법,
허무(공허함)에 호소하는 논증, 속물근성(윗사람에게 아첨하는 법)논증이 있다.

벤드웨건 논증은 논증자 자신이 원하지 않는 부산물을 낳게 하기 위해,
사람들을 뒤에 남기거나, 혹은 사람들을 내버려두도록(관심을 잃도록) 하는 것이다.
예: “ 물론 당신은 징 제품의 치약을 살기를 원한다.
왜냐하면 미국인의 90%가 징제품으로 이를 닦기 때문이다”

공허함에 호소하는 논증은 칭찬하든지, 설득하든지, 모방하든지,
자신이 사용하기를 원하는 아이디어로
논증자자신이 원하는 제품들을 연상하도록 하려는 논증이다.
최근에 미국의 TV에서 나오는 광고에서 나오는 문구에서 이방법을 쓴다.
예: “소수자, 자랑할 만한 것, 그것은 마린(제품이름)이다.”

속물근성논증법(appeal to snobbery)은 연상하는 작용을 이용하는
위의논증과 비슷하게 활용하는 논증이다.
예1: “롤스로이스(제품이름)는 누구에게나 위하지 않고,
선택된 소수자인 당신에게 주어지는 것이며,영국의 자동차회사들도 애용하는 것이다.”
예2. 엄마가 여자자아이에게/ “너는 슈퍼우먼같은 여성(wonder woman)으로 자라고 싶지 않니?
그러면 홍당무를 잘먹으려무나.”

Patrick J. Hurley 의 A concise introduction to logic 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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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리에 대한 기본적인 이해

논리(logic)의 목표는 우리자신의 논증들을 건설하는 안내로서
다른 이의 논증들을 평가하기 위한 기준으로서
사용되어지는 방법이나 원리들의 체계들을 개발하는 것이다. 

 

논리의 연구에서 기대할수 있는 유익들중에 하나는
우리자신의 논증들을 발전시킬때나 다른 사람들의 논쟁들을 비판할때에,
우리가 만들어가는 필요한 감각들에 대한 신뢰를 높이게 한다.

 

논증(argument)은 논리가 일어날때에,
우리가 믿고 주장하는 이유나 다른 사람들이 믿고 지원하는 주장들을
나타내는 진술된 하나의 문장이나 혹은 문장들의 그룹이다.

 

모든 논증들은 두가지 기본적인 진술그룹이 있는데,
하나는 전제(전술)에서 결론을 뒤받침하는 것이며,
또하나는 비록 주장하는 바가 있으나, 그 전술에서 밝힌 것이 결론을 지원하지 않는 것이다. 
이전의 것은 좋은 논증이 되나,. 나중의 것은 나쁜 논증이 된다.

 

논리의 목적은 논증들을 평가하는 것이나,
나쁜 논증으로 부터 좋은 논증을 구별하는 것을 허용하는 방법이나
테크닉을 익히는 학문으로서 목적을 달성한다.

 

진술은 무엇이 진실인지 거짓인지를선언하는 것을 나타내며,

그 선언적인 것을 지원하는 문장이다.

진실인지 거짓인지를 분별하는 것을 진리판단이라고 하며,
진실한 문장이 있을시에는 그문장은 진실하며, 거짓이 있을 때에는 가짜문장이다.
 
진술들은 하나혹은 그이상의 전제들과 하나 그이상의 결론으로

나뉘어진 논증등을 만들어낸다. 
전제는 이유나 증거들을 제시하는 문장들이며,
결론은 전제가 주장한 내용들을 지원하거나 암시하는 것을 증거해주는 문장들이다.

 

결론을 가리키는 키워드인 지시하는 접속사들은 이렇다:
"그러므로, 따라서, 결론으로 말하면, 그와같이, 결론적으로, 추측한다,  이런이유때문이다, 그래서, …을 포함한다.  암시한다." 등이다. 

 

전제를 가리키는 키워드인 접속사들은
"그런즉, 때문에, 그와같이, 왜냐하면, 그런이유때문에, ..으로부터 가정하는데, 주어진 것에 의하면," 등이다.

 

추리(추론)(inference)는 논증에 이해 표현되어지는 추리(reasoning)하는 과정이다.
추론은 논증들(arguments)을 통해 표현되어질 뿐 아니라,
조건적인 진술들에 의해서도 진술한다. 
조금 느슨한 의미로서, 추론들은 논증과 섞여서 사용되어진다. 
명제(proposition)는 진술(statement)의 의미하는 것이나 내용을 알리는 것이다. 

 

Patrick J. Hurley 의 A concise introduction to logic 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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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명된 삶이란

하나님의 나라의 신비를 통해 하나님의 목적과 영광이 나타나며,
하나님의 임재하심아래에 그분을 흠모하며, 경배하는 일꾼들의 삶들을 통해
하나님의 거룩한 뜻하심이 임하며, 실현되어간다.
그분을 섬기는 이들의 삶의 의무와 가치는
하나님께서 그들의 삶을 통해 나타나는 목표에 의해 높아지며,
자신들의 인생을 고귀하게 높여 고명한 인생을 살아가게 한다.

하나님나라의 신비는 하나님의 임재의 수수께끼, 하나님나라의 능력과 목적,
그리고 그 나라안에 살고 있는 인간의 의무와 가치를 통해 나타난다.
하나님은 모든 만물위에 초월된 존재이지만,
모든 만물가운데에, 내재하며, 인간들속에 신의 보좌를 펴고, 그들과 함께 하신다.
하나님의 임재는 하나님의 영광의 상징으로 나타난다.
옛적에 하나님은 이스라엘백성들과 40년동안을
낮에는 구름기둥으로 밤에는 불기둥으로 광야에서 그들과 함께 하신다는 상징으로 임재하였다.

하나님나라의 가치를 품고 살아가는 것은 여러가지 세상적인 것에 대해,
즉 돈, 명예, 능력, 성공, 여가, 육체적인 멋, 영향력등에 대해,
새로운 대안의 길을 제시하고, 세상적인 가치들을 판단하고,
사람들을 옳은 길로 들어올수 있도록 회개로 인도하는 역활을 하며 살아가는 것이다.
그리고 우리자신이 하나님나라의 시민이라는 자각은
세상의 거짓된 자만과 경멸되는 것으로부터,자신에게 진정한 자유를 얻게 한다.

하나님을 섬기는 이들이 하나님나라를 품고 사는 것은
세상적인 모든 것에 대한 새로운 자신들만의 아름다운 대안을 안고 살아가는 것이다.
그분을 섬기는 이들에게 있어,

돈은 무엇인가? 돈은 모든 인생들의 필요에 응답하며,
인생들의 요구에 부응할만한 능력을 갖고 있으며,
모든 인생의 삶의 전반에 놀라운 세력으로 다가온다.
세상에 속한 사람들은 그세력앞에 굴복하여,
돈을 자신의 삶의 주인으로 알고 사는 이들도 많이 있다.
그러나 하나님나라를 품고 사는 이들은 돈은
창조자의 그늘아래에 있는 인생들의 필요를 채워주는 수단에 지나지 않으며,
그돈을 관리하는 지혜를 통해 돈을 조정하며 지배하며 살아간다.

명예는 어떤가를 생각해보면, 세상에서 명예는 하루아침에 명성을 얻게 하고,
때로는 부를 얻게 하며, 권력을 누리게 하는 막강한 영향력이 있다.
세상의 유명인들은 그 명예앞에 굴복하며 명예를 유지하기 위해 애를 쓴다.
그러나 이 명예는 인생이 그것을 유지하는 것은
마치 쉴새없이 불어대는 바람을 잡는 것같은 속성이 있다.
오늘은 아무개에게 내일은 또 다른이에게 계속돌고 돌듯이 사람을 유혹하는 속성이 있다.
그러나 하나님의 나라를 품고 사는 이들은
세상의 명예의 일시적인 효력을 알고 있기에 거기에 연연하는 것보다는
사라지지 않을 영원한 명예를 추구하는 생을 살아간다.
신으로부터 오는 인간을 향한 명예는 영원히 지속되는 가치가 있으며,
생명을 바쳐서도 얻을 만한 가치가 있다.

인간이 추구하고 사용하는 능력을 생각해보면,
인간의 타락이후에 잃어버린 인간의 한계를 벗어나,
스스로의 인간적인 힘으로 초인적인 능력을 구하는 것은
사람들에게 여러 사술과 마인드 콘트럴과 뉴에이지에 몰입하게 하며,
인간능력의 극대화를 추구하지만,
인간의 한계는 죄를 범한 인생들에게 정해져있어,
그 능력은 인간을 영적인 어두운 세력에 노출시켜 자신을 신으로부터 버림받는 길로 인도한다.
그러나 신이 제한한 인간의 능력은
인간이 신의 품으로 돌아와 그에게 순종하며, 따르는 가운데,
신의 영(성령)의 활동과 인도로 인하여 인간은 죄를 해결하며,
자신속에 있는 죄로 인한 결과였던 자신속에 있는 불안이나, 불만, 무능, 그리고 무지등을 해소하며, 더나아가, 신의 약속안에 있는 구원의 능력의 혜택을 받으며 살아간다.

인생의 성공에는 세상적인 가치기준에 의하면,
겉으로 드러난 외형적 업적이나, 물질적인 판단에 의한 소유나, 소득을 추구하지만,
하나님나라의 사람들의 성공개념은 그나라의 가치기준을 따라,
하나님과의 바른 관계정립과 지속적인 교제에 의한 자기성장이나 성숙에 두며,
그 안에서오는 자신의 내면에서 나오는 기쁨이며,
자신의 삶의 가치창출(봉사, 헌신, 섬김, 희생을 통한 열매들)로 인한 자기 실현이며,
다가오는 하나님의 약속을 기대하는 소망을 붙들고 살아가는 처세로서의 만족된 태도이며,
자신의 모든 삶의 영역안에서 통하는 하나님과의 화평을 이루는 삶이다.
즉 자신안에서의 자족, 주변인들에게 주는 평안의 영향력,
그리고 자신의 삶의 전 영역안에서 이루는 조화된 자기완성이다.

오늘날의 여가된 생활은 많은 이들로 하여금,
감각적이고 육체적인 만족을 추구하여, 비디오게임이나,
엔터테이트먼트(육체적인 충동을 자극하는 선정적인 영화, 음악, 예술활동을 말하는 것이며
모든 경우를 말하는 것이 아님)에 몰입하며, 자신을 망각하고,
기계화된 대상을 통한 놀이(에 빠지는 경향이 있지만,
하나님 나라의 시민들은 자신의 여가된 시간을 통해,
자기완성에 도움이 되는 여가보내기를(영적인 여행, 묵상의 산책,
자연과의 내면의 대화) 통하여 자신을 만들어가는 일에 집중한다.

육체적인 멋으로 말하자면, 세상사람들은 겉으로 나타난 외형적인 꾸미기에 집중하여
전체적인 육체의 조화를 무시하여,
비조화대칭의 기형적인 성형과 모조된 자신의 외모만들기에 투자한다.
그러나 하나님나라의 시민은 비록 경과된 시간에 의한 육체적인 소모나 낡아가는 외모에
오히려 내면의 미를 가꾸는 일로 인하여,
늙어도 멋있게 늙어가는 젊어도 천박하지 않는
당대의 자신의 인생의 육체적인 자연의 멋을 드러내어,
자신이 소유한 육체를 잘 보존하여,
내면에 담겨있는 질(영적성숙, 인격성장, 자기이해의 발달)로 인한 외모의 그릇으로서의
건강한 자신의 반향을 통한 육체의 미를 나타낸다.

세상에 대한 영향력으로 말하자면,
세상사람들에게 있어서는 보이는 것이나, 일시적인 것들에 좌우되는 경향이 많이 있다.
당대에 끝이나는 결과에 매달리며,
미래나 영원세계에 대한 기대를 무시하고,
현재에 안주하여, 현재의 자신의 삶의 반경을 생각하며,
자신의 영향력을 (예를 들면, 자신만을 위해 물질적인 부를 축적하여 살지만,
결국에는 자신의 수명이 끝나는 것으로 자신의 영향력은 가치를 잃어버림) 추구한다.
하나님나라의 시민은 보이지 않는 영적인 영향력을 중시하며,
일시적으로 사라지질 않는 영원의 가치에 투자하여,
사람들에게 영생의 삶의 가치를 전달하여,
그들에게 하늘나라의 통치안에 머물러 살도록 인도하게 하며 함께,
그나라의 시민의 동반자로(자신만이 아닌 다른 이들을 위해서도
자신의 소유나 물질을 나눔으로써, 다른사람들에게 잘 살수 있도록 영향력을 주며,
그것의 가치는 영원한 가운데에서 신의 보답이 이루어 진다)세상사람들에게 영향을 줄 뿐아니라,
자신의 미래나 영원의 세계에 까지 영향력을 이루어 낸다.

하나님나라는 예수님이 말씀하신대로
그나라를 사모하는 자들이 어린아이의 심정으로서,
모든 삶의 영역안에서 새로운 시작, 새로운회개, 새로운 응답,
그리고 새로운 열림등을 통해, 하나님을 향해 지속적으로 자기자신을 드리며, 살아가는 것이다.
하나님의 나라의 메시지는
하나님나라의 비전을 듣는 이들(세상사람들이나, 구도자들이나,
혹은 불안과 실망을 안고 살면서 새로운 것을 기대하는 사람들)에게 전하며,
그들을 초청하여, 하나님 나라의 미션(사명)에 참여하도록 독려한다.
그것은 단순히 하나님에 대한 지식을 전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행하시는 세계에 초대하여,
그의 사역에참여하도록 하며,
자신들의 직업이나 삶을 통해 하나님나라의 구현이 실현되도록,
그래서 그들은 결국 자신들의 이웃을 사랑하며, 그 사랑을 실천하며,
그 사랑을 필요로 하는 곳에 베풀며 살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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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신학적인 표현양식과 메시지

크리스챤의 메시지는 시대에 맞는 자신의 소리를 내야 할 것이다.
시대상황에 대한 그리스도의 메시지는 시대를 판단하고,
시대를 인도하며, 시대를 구원하는 역활을 한다.
메시지는 영원성과 구원성을 가지고 있으며,
인간사회를 바르게 선도하는 역활을 한다.

크리스챤 메시지를 하나님의 역사에 대한 여성적인 신학표현과
여성적인 신학화모색을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그런 요구는 인간사회(예: 교회안에 있는 많은 여성들)의 한축인
여성들의 위치에 대한 신학적 해석이며, 인간사회의 다양한 계층에 대한
신학의 포괄적인 자기표현이다.

신학의 여성적인 표현은 인간구원의 전인적이며,
신학의 자기표현의 다양성과 효과성을 제공한다.
신학의 개념표시는 그 당시의 문화적이며, 사고적인 바탕에 의해 나온 말로서,
당시의 인간들의 사고개념이나 신이해를 나타낸다.

가부장적인 신학적표현에 대해
남성우위의 사회에서 겪고 당하는 남용으로 인한 상처에 대해
여성적신학 표현은 인간치유회복을 위한 신학적인 근거를 제공하여,
인간평등을 추구하는 사람들이 이해할수 있는
인간존엄의 신학적 이해의 기반을 마련할수 있다.

신학의 여성언어의 표현은 인간의 반을 차지하는 여성들의 역활과
여성들의 특징을 대변하는 신학적 표현으로
인간사회에 특히 기독교 사회에 활력을 불어 넣을수 있는 신학적 자기표현이며,
신학의 자기 역활에 대한 재발견이다.

통합적인 하나님의 인간사회의 개입역사에 대해,
여성적인 신학표현은 여성의 특성인 생명, 보호, 치유, 회복, 양육의
기능을 발휘하는 기독교의 메시지의 표현을 가능하게 한다.
신학의 여성표현은 또 남성위주의 신학적인 표현과는
다른 면으로서의 하나님의 다양한 성품과 활동에 대한 신학적인 이해이며,
유기적인 하나님 통치(하나님은 양성을 초월하신 존재)의 신학적인 표현의 행동양식이다.

사회의 다양성과 복잡성은 사회에 몸담고 있는 계층이나, 개인의 신분간에 필요한 요구나
상황적인 이해에 대해 바른 개념이나 생각들을 표현하여,
사람들에게 다양하게 접근하는 하나님의 통치에 대해 바르게 이해하고,
올바른 신학적인 해석을 내릴수 있도록 하는 융통성이 있는 신학적인 개념들을 제공해야 할것이다.

그런 와중에 기독교의 언어사용은 다양한 사회적인 현상들과 요구들을 이해하며,
복잡한 문화적이며 사회적인 구조안에 살고 있는 사람들에게
이해되어지는 언어로 표현되어야 할 것이다.
그 언어가 교회안에 머물러 있는 제도화된 언어가 아니고,
유기적인 언어로 인간사회에 다양한 구조안에서
(작금의 일반사회는 교회안의 사회보다 훨씬 여성의 권익을 옹호하는 쪽으로 움직이고 있음)
기독교메시지를 전달할수 있는 언어로 나타나야 할 것이다.

기독교의 섬김의 개념이나 종의 정신은
일반적인 사회적인 사회개념의 종의 개념과는 다르다.
신분계급이 낮은 사회나, 혹은 여성사회에 그리고 아이들사회에 통용되는 종의 개념이
기독교정신에 의한 봉사개념의 변형으로 인하여
기독교사회나 공동체안에서 섬김의 역할로서 종의 정신을 실현해야 할 것이다.
어두운 사회적인 현상이라 할수 있는 빈부격차, 계층간갈등,
신분의 차이에서 오는 사회적인 갈등이나 분열을 치유하고
봉합하는 섬김의 도를 실천하는 대안을 제시할수 있을 것이다.

기독교의 메시지는 그리스도화된 종의 정신을 표현하는 언어의 사용을 통해,
공동체사회의 진정한 하나님 나라의 종의 정신을 실천할수 있을 것이다.
종적인 사회, 가부장적인 사회의 사고시스템에 대해
공평과 정의의 사회가 실현되어지도록,
기독교의 여성적인 역활인 치유와 회복들을 알려야 하며,
섬김을 나타내는 가치있는 개념으로 세워야 할 것이다.

일반사회적인 개념의 종은 계급사회나, 종적인 사회의 권위나,
권세에 굴복하거나, 굴종하는 약자의 위치의 상표로 인시되지만,
교회안에서는 더 강한자, 혹은 힘있는 자가 교회의 공동체안에서 섬기는 자로 거듭나,
예수그리스도의 섬김의 정신을 실천하여,
일반사회안에서 흔히 일어나는 갈등이나 상처가 생기게 하는 종의 일반사회적인 개념에
대한 섬김이의 대안적인 제시나,
실현된 하나님나라의 모형으로 보여주는 계기가 되어야 할 것이다.

하나님의 용어의 남성적사용만을 고집하지 않고,
가부장적인 사회에서 상처와 고통을 받은 사람들의 삶의 문제를 해결하는 데에
하나님의 상처를 감싸주며,
치유하며 보호해주는 성품이 표현되어지는 것이
훨씬 상처받은사람들의 문제를 해결하는 데 도움이 된다.

하나님의 성품이나 인격에대한 여러가지 이름은 하나님의 성품과
활동의 충분함에 대한 이해를 알려주는 신학적인 필요한 표현양식의 다양화가 요구된다.
하나님에 대한 사실적인 것에 대해 하나님의 이름을 여성적인 표현을 사용하는데는
신학적인 가치있는 표현활동이며, 가부장적인 신학표현의 한계를 넘어가는 효과가 있다
(하나님의 어머님의 역활은 훨씬 인간구원에 있어 필요한 하나님의 활동이다).
하나님의 성품이나 사역에 여성적인 면을 발견하고 표현하는 것은
인간사회안에 가치있는 여성적인 역활의 가치와 의미를 발견 하는데 기여한다.

여성신학적인 언어는 여성의 권익을 보호하는 시대에
살고 있는 사람들의 또 다른 삶의 경험의 표현이며,
가부장적인 체계와는 전혀 다른 공동체의 상황하에서 나온 삶의 언어들이다.
고로 지금세대에 필요한 신학적인 시도로서,
전통적이며 강압적인 관계에 대한 변형을 통해
남성위주의 주류문화의 지배에 대한 평등을 추구하는 신학적시도를 가능하게 한다.
여성들에 대한 종(섬김)의 개념의 해방은
여성들에게만 더이상의 봉사의 의무를 지우게 하지 않는다.
따라서, 여성들의 제자도의 언어는 남성위주의 가부장적인 제자도의 배타적인 것과
왜곡된 면들을 깨뜨리는 가능성을 제공하며
가부장적인 교회안에 인간평등을 심는 것과
그 종적인 인간관계안에서 일어나는 인간갈등의 현장을 치유하는데 기여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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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의 현재와 종말에 대한 사회적역활

크리스챤 공동체는 하나님나라의 일원으로 살며,
동시에 또한 이사회의 소속된 일원으로 살아가면서
자신이 속해 있는 사회에 있어 이세상에 대해 저세상을 알리며,
일시적인 것에 대해, 궁극적인 것을 알리는 역활을해야 할 것이다.
인간의 죄와 세상의 종말에 대해 하나님의 자기계시를 표현하면서,
세상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과 구원의 메시지를 전해야 할 것이다.

교회는 세상의 도덕적 차원을 위한 윤리적인 잣대역활을 할뿐 아니라,
더 나아가, 교회의 새로운 윤리를 제시하며,
인간으로 하여금 올바른 윤리상을 갖도록
그리고 크리스챤들이 모델역활을 할수 있도록 훈련해야 할 것이다.
더 나아가, 인간사회의 윤리적인 문제에 대해 그문제의 근본적인 원인를 분석하여,
인간이 갖고 있는본성안에 있는 원죄의 자범죄와 사회적인 범죄에 대해
교회는 사회에 보다 높은 도덕적 기준을 제시하며, 사람들을 바른 길로 인도해야 할 것이다.

교회는 죄의 일시성에 대해, 구원의 영원성을 알려주는 역활을 하여야 할 것이다.
죄는 인간을 악으로 몰아가며, 인간의 죄의 폐해가 인간사회를 어둡게 만들지만,
그 죄의 어둠의 영향력안에 있는 사회를 향해,
인간의 악과 죄에 대한 폐해에 대해 심판과 정의의 역활을 하여야 할 것이다.
아울러 죄과 악으로 인한 폐해등,
차별, 고통, 분쟁, 질병등에 대한 치유적인 역활도 보조해야 할 것이다.

교회는 세상이 옳다고 여기는 악에 대해서 악이라고 말하지 않는 죄를 범할수 있다.
그러므로, 다수의 잘못이나, 사회적인 오류에 대해 교회는 바른 말을 해야 하며,
인간의 죄라도 사회적인 범죄로 취급되지 않는 것에 대해,
즉 일곱가지 죄악(교만, 시기, 분노, 게으름, 탐욕, 방종, 음란)들에 대해
언급하는 역활도 무시할수 없는 교회의 역활이다.
사회적인 법정에서 다루지 않는 실정법이 아닌
인간의 심성이나 본성에 대한 왜곡에 대해 잘못들을 지적하여 바른 길로 인도할 책임이 있다.
일반사회에 대한 책임의식에 있어서나,
혹은 편향된 사회적인현상에 대해,
가난한 자에 대한 책임이나,
다른 국가를 침입하는 전쟁을 일으키는 평화를 깨뜨리는 행위에 대해서도
바른 말을 해야 할 것이다.

부분적인 사회적인 현상인 알코올중독이나, 마약사용에 대해서,
교회는 인간양심에 경종을 울리는 제 목소리를 내야할 것이다.
교회의 목소리는 근본적인 성경적인 가르침에 의존하여,
사회적인 이슈나, 관심에 대해 자신의 기준을 보여주어야 하는데,
동성애에 대한 분명한 성경의 가르침을 제시하며,
그것의 윤리적인 잘못을 지적하며,
그리고 동시에 교회는 그 동성애로 인한
에이즈로 고통을 받는 사람들에 대한 봉사를 촉구하는 일도 해야 할 것이다.

교회는 사회의 어두운 면을 밝히는 빛의 역활을 하며,
분쟁이 있는 곳에 평화를 심는 역활도 해야 할 것이다.
종의 자세로 섬기며, 화해를 행하며,
사회를 변혁시킬만한 소망을 주는 역활도 해야 할 것이다.

평범한 사회적인 치유적인 과정과 화해에 대한 종교적예식은
진리를 찾고, 갈등을 해결하는 근원지로서 대화와 논쟁을 통해
교회는 자신의 역활을 감당하는 것이다.
교회의 소명은 자신의 정체감을 재발견하여,
세상에서 구별된 독립된 개체로서,
사회에 공헌하는 사회갱신의 타당성을 갖고 있어야 한다.

교회는 세상의 변두리로서 세상에 대해 자신의 사명을 하는 것이다.
교회는 그리스도인들에게 세상에 대한 위임의 책임 의식과
세상에 대해 구별된 의식으로 세상을 향한 미션을 감당하게 하는 것이다.
교회는 하나님나라의 대행기관으로서,혹은 하나님나라의 실현의 공동체로서,
인간사회안에 믿음,소망, 사랑의 실현을 위해 힘써야 할 것이다.

교회의 사회적인 양심의 기능으로서, 사회의 모든 할동이나 행위에 대해 평가를 내리고,
사회적인 행동에 대해 판단을 내려 그들을 옳은 길로 인도할 것이다.
교회는 또한 정상적인 윤리적인 믿음공동체로서,
윤리에 대한 소명을 갖고서,
교회는 사회에 대해 높은 도덕률의 모범을 보여야 할 것이다.

교회는 또한 사회적인 목표에 도달하기 위한 사회적인 노력에 협조하여,
공공의 유익을 위한 사회의 목적론적인 성취를 바라보면서,
교회 자신의 사회적 협력행위를 강화하며,
시간의 역사적 의식과 현대적인 관련성에 대해 기독교의 역활를 강조하며,
기독교의 세속사회와의 교류와 영향력행사를 통해
하나님나라와 세상나라의 상호성을 증진해야 할 것이다.

그리스도인들은 자신들의 언어로 자신의 믿음을 표현하는 것을 통해
그들이 살고 있는 당대의 사람들에게 영향력을 주어야 할 것이다.
그리고 교회는 대안공동체로 사회에서 아직 해결되지 못한 일이나 이슈에 대한
해결의 대안이나 정책적 제안으로 교회가 속한 사회에 건전한 이상향을 제시한다.

교회는 일반사회에 대해서 국외자의 공동체로
사회문제에 조정하는 역활을 통해,
사회적인 사건들에 대한 비상식적으로 대응하는 사람들에게
문제해결의 구체적인 기대를 가져오는 약속된 근거를 제공하기를 힘써야 할 것이다.

인간사회의 종말에 대한 교회의 격종을 울리는 역활을 한다.
종말에 대한 바른 지식과 예언의 노하우를 알고 있는 크리스챤들은 세상에 대해,
세계의 종말에 대한 경고를 통해,
인간세상의 제한과 종착에 대하여 세상이 준비할수 있도록 권면하며,
모든 인간활동에 대해, 종말의 시급성을 알리고,
그 할동들이 신의 다가올 심판에서 어떻게 살아남을 수 있는지를 설명하고,
세계의 종말을 바라보는 인간의 시각을 하늘의 메시지에 연결될수 있도록
가교의 역활을 해야 할 것이다.

교회는 종말의 준비하는 공동체로,
신의 약속이 실현이 되기를 기대하며,
현재와 종말사이를 이을 중간지대에 놓여있는 구심체로,
일시와 영원을 연결하는 역활이 요청된다.
일시는 그것이 사라짐을 통해, 허무함과 무익함을 알게 하고,
일상성에 오는 한계성을 극복할 대안의 메신저로
교회는 피안의 세계를 보여주어야 할 것이다.
교회는 이렇게 함므로써 세상에 대해 구원의 공동체로서 다리를 놓으며,
자신의 자리에서 세상이 하늘나라에 들어갈수 있는 문으로서의 역활을 감당해야 할 것이다.

교회는 현재와 종말사이에 놓여있는 영원한 기관으로,
세상에 대해 하나님의 도구와 기관으로 제 역활을 하여야 할 것이다.
교회는 현재와 종말사이를 오가며,
세상의 일시성안에 머물러 있는 사람들이
그 심판의 다가옴을 무시하고 살아가는데에 대해, 심판의 시급성을 알리고,
다가올 심판에 대한 준비를 강조한다.

교회는 역사적인 공동체로 사회를 변화시킬 자신만의 거룩한 이야기와
영향력을 주는 대안을 가지고 있어,
현재의 올바른 역사를 만들어가며, 그 시대에 역사의 올바른 방향을 제시하여,
종말을 준비하는 사회가 될수 있도록,
부패하고 어두워 진 사회를 맑게 하며
건강하게 하는 예언자적인 역활을 통해 사회를 갱신하며,
발전시키는 역활도 필요하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자신의 소망이 자신의 삶을 이끌어간다

사람은 자신이 무엇인가를 이루고저 하는 소망을 평소에 가지고 있다.
그 소망에 집중된 생각이 자신에게 계속적인 동기부여를 할 것이다.
자신이 바라는 바가 무엇인지를 살펴보고,
그것을 이루기 위한 노력을 평소에 생활에서 나타나도록 힘쓰게 되면,
그 바라는 소원들이 이루어 질수 가 있을 것이다.

이렇듯, 인생을 살아가는 처세에서,
무엇인가에 대한 기대감을 가지고 사는 것이
아무런 소망없이 사는 것보다 훨씬 발전하는 자신의 삶을 살아간다.

자신의 소망이 정확히 무엇인지를 생각할 필요가 있다.
구체적인 소원들을 적어보고,
그것을 이룰 과정과 단계들을 살펴보며,
자신의 현재의 생활에 무엇을 해야 할지를 잡아줄 것이다.
소망에는 구체적인 생각이나 계획이 뒷받침이 없는 막연한 소원이 있으며,
자신의 생각에 이룰수 있다는 가능한 소원이 있는가 하면,
혹은 자신의 생각에 불가능하다고 여기는 자기생각 넘어의 소원이 있을 것이다.

소망은 언제 필요한가?
자신의 앞날에 대한 분명한 이정표가 보이지 않을 때에,
그때에는 장래에 대한 구체적인 소망을 생각해보며,
그 생각들을 노트에 적어보며,
그것을 실현가능한 자신의 바라는 목록들로 세워보면
현재의 자신의 캄캄한 앞날에 대한 길이 보여질 것이다.

위에서 언급해듯이 소망이 주는 유익은
먼저, 자신이 해야할 일이나, 마땅히 가야 할길에 대한 이정표로
자신의 삶의 방향을 잡아준다.
소망을 세울때에,
자신의 소망에 대한 자신의 인생에 대한 근본적인 목적(인생의 전체적인 방향을
잡아줄 기본적인 카테고리등: 교사가 되는 길, 변호사가 되는 방향등)이나 시기이나,
주어진 환경에서 이룰 구체적인 목표(단계별로 세울 일시적인 성취에 대한 목록들:
어떤 교사가 될 것인지, 지역이나, 환경이나, 대상에 맞는 교사상,
어떤 계통의 변호사가 되는 단계별 성취목록 혹은 직급에 대한 목표)에 따라,
자신의 삶의 방향을 잡아갈수 있을 것이다.

소망의 활용면에 있어서,
자신이 세운 소망을, 자신의 생각의 창고나,
기억의 보고에 골동품으로 남겨놓지 않고,
늘 자신의 생각에서 끄집어 내어,
자신의 현재의 삶을 평가하는 기준으로 삼고,
과거를 살아온 삶의 족적을 살펴보는 교훈의 잣대로 삼으며,
미래를 살아갈 앞날에 대한 기대감의 방향타로 활용할수 있을 것이다.

자신이 바라는 대로 자신의 삶을 이루어 가는 모습이 인생의 삶의 특성이며,
혹은 인간의 기본적인 삶의 방식이며,
그리고 자신이 삶을 바르게 살아가는 삶의 기술이다.

지금 당신의 소망은 무엇이며,
평소에 가지고 있는 바라는 바대로 무엇을 이루려고 애쓰고 있는가?
그리고 지금까지 살아온 당신의 삶을 지탱해주는 삶에 대한 기대감이
무엇인지를 끄집어 내어 보고,
자신의 삶을 평가하고, 진단하며,
수정하여 새로운 앞날에 대한 새로운 기대감이나 소망을 안고 살아가기를 바란다.

인생은 바라는 대로 이루어진다.
인생에게 있어, 바라는 믿음(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허상이 아닌 실상:실제적인 것들, 이다)은
자신의 삶에서 이룰 힘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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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의 삶을 만들어가는 언어들

희망, 새로움, 창조, 밝음, 명랑함, 따스함, 낙관적, 초월함, 돌파력등 인생을 살아갈때에,
이 단어들을 생각해만 해도 우리의 마음이 푸듯하다.
짧은 인생에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도 많지 않은데,
우리가 겪는 일들이 늘 부정적이고, 절망적이며, 실망을 안겨주는 것이라면
우리의 삶을 통해 가치나 의미를 얻기는 커녕,
고귀한 삶의 자락에 넝마처럼 주렁주렁달려 있는 쓰레기같은 것들을
자신의 삶을 통해 남게 된다면, 우리의 사는 현실을 슬프게 한다.

그렇지만 새날을 맞이하고, 새희망에 부풀고, 새일들을 기다리며,
새사람을 맞이하려는 새마음안에 자신의 삶에 대한 소중한 것들,
사랑, 기쁨, 베풀어나눔,봉사, 감격등을 새기기를 바란다.

우리의 몸은 끊임없이 우리 몸에서 산소를 받아들여,
그공기속에 있는 신선함과 생명의 기운으로 우리의 몸을 지탱하며,
우리속에서 나온 찌꺼리를 몸밖으로 내보낸다. 그리고 우리는 생존한다.

우리의 마음도 끊임없이 새로운 생명력을 받아야
우리의 마음이 생존할수 있다.
희망, 사랑, 믿음의 단어들이 내안에 매돌며, 내안에 남아있어,
나를 힘있게 살게 하는 힘이 되도록, 좋은 양식을 찾아
내마음을 살찌우며 나갈때에,
비록 현실은 힘들고, 자신의 마음을 짓누르는 것이 다가올지라도,
그안에서 자신의 마음안에서 새로운 생명력을 통해
자신속에 부딪쳐오는 현실의 아픔이나, 실망들을
기쁨이나, 낙관으로 바꾸어 가는 인생으로 만들어가야 할 것이다.

내 안에 어느 단어가 많이 들어오는 지,
나의 브레인에 무슨 단어들이 많이 입력되고 있는지를 확인하고,
자신의 인생관이나 가치관에 영향을 주고 있음을 생각하여,
보는 책, 듣는 음악, 나누는 대화, 청중으로 혹은 시청으로,
혹은 구경으로, 혹은 감상으로
자신의 두뇌로 들어오는 무수한 단어와 그 단어들을 들어오는 정보들이
과연 자신을 이롭게 하며,
자신의 삶을 유익하게 하며, 자신의 하는 일에 도움이되며,
자신의 생활을 윤택하게 하는지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자신안에 맴돌고 있는 단어가 무엇인지,
그것을 찾아, 그것을 올바르고 건강한 단어들로 바꾸는 작업을 의도적으로 할필요가 있다.
부정, 불신, 투쟁, 미움, 증오,좌절, 배신,무례함, 불손함, 불경건함, 악의, 악행등
이런 단어들의 공격적인 침투의 영향에서 벗어나기위해,
우리안에 자신이 붙잡아야 할 단어들을 매일 생산하기위해,
좋은 생각, 건전한 정신, 따스한 마음, 고마운 마음,
창조적인 태도, 건설적인 자세, 옳은 의도,
선한 생각들에 영향을 주는 유익한 정보들을 모으는 일을 부지런히 해야 할 것이다.

자신의 이제껏 살아온 날들가운데에 많이 생각나는 단어들이 무엇이며,
가족간에 겪는 일들중에서 생각나는 단어들이 무엇이며,
대인관계에서 떠오르는 단어들이 무엇인지?
자신의 인생사전에 등록된 단어들이 어떤 단어들인지를 살펴보고,
사전수정작업을 다시해보면 어떨지...

인간은 언어적인 존재이며,
언어의 유희에 좌우되는 운명을 안고 살아가는 존재이다.
신은 언어를 창조하며, 인간속에 언어를 만들어 내는 능력을 부여하였다.

신의 언어는 세상을 만들어 내었고,
인간의 언어는 자신의 인생을 만들어 낸다.
고로 언어는 인생자신에게 있어,
자신의 표현이며, 자기창조와 자기생산의 기폭제이다.

언어가 나를 살리고 나를 죽이기도 한다.
생명의 언어, 소망의 언어, 기쁨의 언어 지속되는 자신의 앞날이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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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디의 일곱가지 사회악에 대해서

기독교인이 아니면서 가장 기독교적인 정신으로 살았던 인물중에 간디를 꼽을수 있겠다.
그는 그리스도에 대한 개인적믿음을 고백하지 않았지만,
자신의 사적이든 혹은 공적인 삶을 통해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실천한 사람이다.
그는 자신의 사회적인 활동이나 생활철학에 그리스도의 정신이 몸에 배어
자기희생과 자기헌신을 통해
인도나라와 사회에 많은 공헌을 하여, 인도인들의 정신적인 지주의 역활을 하였다.

그가 주장한 사회적인 악을 일곱분야에 대해 살펴보면, 먼저
Politics without principle
원리나 원칙이 없는 정치를 두고 사회악이라 하였다.
정치는 권력과 힘을 통해 사회에 살고 있는 사람들의 모든 생활에 영향을 미치고,
국가와 국민을 인도하는 역활을 한다.
그래서 정치지도자가 누가되는냐에 따라 나라의 운명이나, 방향이 달라질수 있다.
인간이 사는 사회에 지도자의 역활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정치를 하는 사람들은 자기 철학이 뚜렷한 것과 자기신념이나,
통치이념에 대한 분명한 원리를 가지고 있어야 할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그지도자를 따르는 국민들이 우왕좌왕하며,
사회가 혼돈에 빠질수 있으며,
무질서를 통해 국가나 사회가 발전하지 않고 퇴보하게 된다.

그러나 뚜렷한 원리와 공정한 원칙에서 출발하는 정치행위는
사회를 투명하게 하고,
또한 바른정치권력의 공정한 시행을 통해,
사회의 각분야에 좋은질서와 조화된 발전을 가져오게 한다.
인간의 정치행위와 권력은
인간사회의 전반에 걸쳐 좋은 영향을 인간사회의 모든 조직이나 활동에
건전한 생활철학이나, 모든 인간관계와 관리행위에 좋은 영향을 준다.

Wealth without work
불로소득이나 부당한 소득도 불의하며,
그리고 더 나아가 일하지 않는 부도 사회에 필요악이다.
사회에 대해 공헌하지 않으며, 부를 쌓아두고,
자신만을 위하는 일도 사회적으로 거부되어야 할 것으로 보고 있다.
더 나아가, 부의 편중이 심화되면,
빈부격차로 인한 사회적인 불균형이나 사회적인 계층의 갈등을 일으키고,
경제사회의 구조적인 악순환을 일으켜,
즉 부의 편중이나, 집중으로 인한 전반적인 사회의 여러계층에 대해 분배가 약화되어,
사람이 사는 여러가지 환경이나 여건들을 위협하게 된다.

그러나, 부를 쌓는 것은 부자체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그 부를 통해 사회가 요구하고 있는 사항에 대해 부응하며,
균형있게 자신과 타인을 함께 위하는 것으로 활용이 되어져야 할 것이다.
부의 경제적인 혜택은 신앞에 사는 인간누구에게나,
기본적인 삶의 요구와 인간다운 삶의 가치를 추구하는데 기여하도록
부의 분배가치가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그러면 모든 사회구성원이 더불어,
공존공영하는사회의 구조적인 경제발전을 이루는데 일조 할것이다.

Commerce without morality
도덕이 없는 상업행위도 또한 사회의 적이다.
자유 경제의 원리하에서 자본중심의 사회의 관심이 오로지 이윤을 극대화하고,
비지니스의 자본집중화와 이윤우선정책을 추구하기만하고,
기업의 사회의 전반적인 책임을 소홀히하는
그런 기업의 사회적인 활동은 비양심적인 처사가 되어,
사회의 발전에 저해가 될뿐아니라,
사회적인 책임을 무시하게 된다.
예를들면, 사람들이 주로 먹는 공공의 음식이나,
인스턴트 음식을 만드는 기업이 일정수준의 위생기준이나,
영양요소에 저해되는 요소를 사용하여 음식을 만드는 일등이며,
또한 기업의 독점행위도 지나치게 되면,
다른 기업의 공존과 공영에 위협이 되어,
사회구성원간의 서로의 생존문제에 갈등이 생긴다.

그러나 상업행위의 이윤추구의 목표는 일차적인 목표라면,
인간사회의 질서존중과 인륜의 가치를 존중히하는 상업행위는
단지 상업자신의 일차적인 이윤극대화만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이윤확대를 통한 이차적인 경제활동의 공정한 기여를 통해,
그사회에 살고 있는 모든 인간생활을 윤택하게 하며,
인간사회의 공동유익과 발전에 기여하게 되어,
인간사회의 문명의 혜택아래 살게 하여,
인간의 삶의 행복과 윤택한 생활환경조성에 기여하게 된다.

Pleasure without conscience
인간의 쾌락추구만의 오락행위나,
문화와 예술활동의 비양심적인 행위는 인간의 성품을 건전하게 인도하지 않고,
인간성을 타락시키는 어두움의 쾌락의 도구로 인간을 전락시킨다.
인간에게 전전한 오락이 필요하고,
인간의 취미나 문화예술활동을 통한 자기표현이나, 자기발전에 기여할수 있다.
인간의 재창조(레크레이션)의 활동에
활력을 불어넣어주는 인간사회의 엔터테이트멘트의 활용이나 발전이 이루어져야 하지만,
도리어 인간의 양심의 기능을 마비시키고,
인간의 고귀한 성품을 타락시켜,
범죄와 악행을 일삼는 인간군상들로 양산하는 데 일조하게 된다.
그래서 구조적인 개인인간의 악과 사회악을 낳게 된다.
그러므로 인간의 오락은 인간의 건전한사회활동이나
예술과 문화의 건강한 발전을 목표로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그러나, 건전한 오락이나 문화와 예술활동은
인간의 다양한 본능적인 욕구의 표현들을 좋은 방향으로 발전시키며,
그런 옳은 문화예술적인 표현양식의 발산을 통해
인간성의 성장이나 성숙으로 발전시키게 되어,
사회의 모든 관계나 조직속에,
풍부한 인간성이 넘치는 인간이 사는 사회를 만들어 가는데 일조하게 된다.

Education without character
사람의 인성교육을 무시하고, 단지 기능교육이나,
기술교육에 매달리는 것은 인간의 사람됨을 만들어가는 교육의 목적을 도외시하여,
비인간성의 인간들만 양성하여,
건강한 사회의 바로미터인 홍익(옳은) 인간개발에 실패하여,
인간이 사는 사회가, 밝아지지 않으며,
서로 믿고 신뢰하는 좋은 사회적 여건을 조성하는데 실패하기 쉬어진다.

반면에 교육이 향하는 목표가 인간속에 있는 좋은 덕성과 인성의 함양을 통해 이루어 진다면,
양심과 도덕성의일정한 수준을 갖춘 인간을 만들어 내는 교육을 할수 있으며,
그런 사람들의 양산은 사회를 밝게하며,
사람다운 사람이 살수 있는 아름다운 사회를 만드는 데 일조할수 있을 것이며,
더 나아가 다음세대에 건강한 사회적인 유산과 좋은 문화를 후대에도 물려줄수 있을 것이다.

Science without humanity
인간됨을 존중하지 않고,
인간의 생명의 자유와 존엄을 중시하지 않는 과학의 추구또한 사회악을 일으키기 쉽다.
과학은 세상에 널려져 있는 감추어 있는 신의 신비와 지혜를 탐구하는 것으로
인간의 생존과 번영에 기여하는 쪽으로 발전되어야 할 것이다.
인간생명의 생존과 번영의 목적을 무시하는 과학의 추구는 인간생명을 위협하고,
인간사회에 대해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고,
비인간적인 인간이 사는 삶의 환경이나, 사회적여건만을 조성하게 되기쉽다.
그리고 더나아가, 그런 과학의 추구가
단지 인간을 파괴하는 문명의 이기를 발견내지 발명하게 되면,
그것이 인간이 사는 사회에 위협이 되며,
그 문명이기는 인간이 사는 사회를 끊임없는 갈등과 투쟁을 부추기며,
인간이 사는 사회의 평화를 위협한다.

반면에 생명존중의 목표아래 과학의 추구는
인간세계의 감추어진 지혜의 보고와 자산이 드러나,
사람살기 좋은 사회를 만드는 일에 공헌을 하며,
인간 사회의 문명과 문화을 발전시키는
근본적인 사회의 과학발전적인 구조를 만들어가는 역활을 하게 된다.

And worship without sacrifice
희생이 없는 종교행위나 활동은 인간으로하여금,
자신이 신앞에 갖추어야 할 겸손한 태도와 책임있는 자세를 갖는 일에 대해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며,
그런 종교적인 접근은 당대에 살고 있는 사람들이
고민하고 고통당하는 문제에 대해 무관심하게 되며,
모든 인간사회의 모든 문화나, 문명활동의 방향성에 좋은 공헌을 하지 못하며,
인간역사의 의미나 발전에 대해 가치를 부여하지 못할 것이다.
그리고 그런 종교는 그 사회에서 도태되며,
당대의 사람들에게 외면당할 것이다.

그러나 자기 희생이나, 자기변혁을 통한 종교적인 추구나 활동은
당대사람들의 당하는인간적 고통과 고민스런 문제에 대해 의미와 가치의해답을 줄수 있으며,
더나아가 종교의 영향력있는 힘으로 바람직한 인간성 발전과
당대사람들의 개인의 인간구원에 중요한 영향을 주며,
당대의 사회의 모든 문제에 대한 사회책임성을 통해
종교자신의 희망적 역활을 할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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