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드바 영역으로 건너뛰기

격려와 배려가 있는 사회

이지구상에 있는 모든 것들이 지구의 당기는 중력에 의해
자신들의 존재가 지탱하고 있듯이
인간의 거의 모든 일들이 자연의 법적인 현상이나 작용에 의해 움직이고 있다.
인생들이 자신들이 중력에 의해 움직이듯,
인생들이 특별한 배려가 없이 법이 명하는 대로 살아가는 일이란
법적 준수나 법을 위반시 처벌만 기다리는 삭막한 인간생활로 여기게 된다.
모든 것이 법이 정해준 대로 살아야 하며,
배려는 없고, 법만이 영향을 주는 삶이란 사람을 더욱 고달프게 한다.

생활하면서, 특별하게 생일을 축하하다든가, 집들이를하다든가,
결혼기념을 축하하는 것은 평범하게 살기쉬운 일상의 생활에 의미와 활력을 불어넣어주게 된다.
특별한 날들이 없고, 그저 다람쥐 체바뀌돌듯이 변화가 없거나 무의미하다못해,
권태가 일어나는 상황이라면
자신의 생활에 활력을 불어넣는 삶의 에너지에 충전이 필요하다.
그 삶의 에너지는 자신을 향한 배려나 혜택을 통해 얻게 된다.

사람이 중력의 법칙대로, 자연적으로 되어진 대로 살아간다면,
결코 보다 가치있거나, 보람있는 삶을 살기란 쉽지 않다.
한 아이가 자라면서 수많은 희생과정성이 깃들인 부모의 돌봄이나,
가르침의 결과로 사람이 훌륭하게 성장하게 된다.
저절로 무엇이든지 그냥되어지는 법은 없다.
거기에 정성이 들어가고, 누군가의 수고와 희생의댓가로 자신의 출세나 성공이 이루어진다.
그런 일들 가운데에, 서로에 대한 희생과 기대감이 있고,
또한 서로를 향한 배려가 있고, 혜택이 있고, 봉사가 있고, 섬김이 있다.

만일 지구의 모든 인생들의 삶이
단지 중력에 의해 자연의 법칙대로 돌아가는 대로만 살아간다고 가정해보면,
인생들은 잠시도 자신을 지탱하지 못하는 천재지변이나,
자연의 힘에 의해 떠밀려, 존재하기도 쉽지않을 것이다.
지난 과거를 돌아보면 홍수가 나거나,
재해가 닥쳤을때에 조금만 더 도가 넘어가면,
더 큰 재난이나, 고통스런 상황을 맞이한 적이 많았을 것이다.
그러나 다행히 그런 고비들을 넘기는것이 우연히 이루어 졌다고 생각해서는 안되는 것은
그 배후에는 신의 배려가 있었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인간의 잘못에 대해 용서나, 용납이나,
혹은 사면이나 면책을 해주는 것이 없다면
인간의 행의에 대한 심판에 의해, 인간스스로는 설수 조차도 없을 것이다.
우리가 자녀를 키울때에도 매를 들고,
법으로 아이를 바로 잡으려 하면 우리의 대하는 잣대로 자신도 완벽할수 없을 뿐아니라,
아이들을 변화시킬수 있는 교육의 효과의 길로 유도하기란 쉽지않다.
오히려 그들의 잘못을 용납해주는 너그러움이 있고,
비록 실수를 했어도,그들을 받아주는 부모의 아량이 있어야,
아이들이 그가운데에서, 자신들의 실수를 용납하면서,
계속적인 격려가운데에 바른 길을 걸어갈수 있을 것이며,
발전적인 성장을 할수 있을 것이다.

사람을 바르게 인도하고,
특히 인간의 인성개발(영성, 지성, 감성)을 다루는 일에 있어서,
물리적인 법칙에 의존하는 법의 테두리가 아닌 관용과 용서의 배려가운데에
사람의 잘못을 고치게 되고, 사람들 자신을 변화시키며,
그리고 나아가서 그런 연약한 것들을 극복하고
자신을 보다 나은 단계로 발전시킬수 있는 것이다.
이런 원리는 사람을 가르치는 교육계에 뿐아니라,
인간의 다반사가 이루어지는 모든 인간관계나,
비지니스세계에도 서로 잘못을 용납해주고,
그들의 실력이나 노력을 믿어주고 하는 신뢰의 관계가운데에 비지니스가 성공하고
또한 사회도 발전할 것이다.
그렇지만 느스한 법적용이나, 안일한 법위반을 용납해서는 안될 것이다.

만일 어느사회든지 사람들을 엄격하게 구속하고 다스리는 법만 있다면,
그사회는 경직된 분위기에서 사람을 질식시킬것이다.
인간의 잘못이나, 허물을 용납하지 않은 비판과
법적인 구속만있는 전체주의사회나, 공산주의 사회에서 사람이 숨을 돌릴여유도 없고,
그런 구속적인 법규망속에서 사람들은 노예처럼 자신들을 포기하고,
배려나 혜택은 없고 의무나 맹종만 있는 험악한 상태에서 살아갈 것이다.

우리가 사는 사회에서 인간답게 살아가는 데에는
서로를 향한 배려와 격려와 관용이 있는가운데에 넉넉한 인간다움을 유지하고 살아갈수 있다.
이런 모든 인간사회의 배려나, 혜택이나, 관용등은
그 근저에는 인간에 대한 신의 용서와 배려와 신만이 줄수 있는 은혜가 있는 것이다.
사람이 사람답게 살아가는 데에는 신의 배려나, 관용에 의해,
서로를 받아줄때에 그렇게 살아갈수 있다.
사람이 물을 마시고, 공기를 마시고, 하늘의 창공을 바라보며,
자유롭게 활보하고 살아갈수 있는 것은 보이지 않는 신의 은혜의 배려라는 것을 알 필요가 있다.
그런 관점에서 법적인 구속의 힘보다는
사람을 옳은 데로 이끄는 종교의 힘이 올바르게 활용되고,
사람들에게 영향을 미칠때에,
그 사회나 그곳에 사는 사람들은 참된 삶을 살아갈수 있을 것이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