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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7/09/07
    주님에게 붙어있는 인생
    목동

주님에게 붙어있는 인생

참포도나무의 비유
요한 15:1-6
1.“나는 참 포도나무이고 내 아버지는 농부이시다.
2.나에게 붙어 있으면서 열매를 맺지 못하는 가지는 아버지께서 모두 잘라내시고 열매맺는
가지는 열매를 더 많이 맺게 하려고 깨끗이 손질하신다.
3.너희는 내가 너희에게 일어 준 말로 이미 깨끗해졌으니
4.내 안에서 살아라. 나도 너희 안에서 살겠다. 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어 있지 않고서는
스스로 열매를 맺을 수 없듯이 너희도 내 안에 있지 않으면 열매를 맺지 못할 것이다.
5. 나는 포도나무이고 너희는 가지다. 사람이 내 안에 살고 내가 그 사람안에 살면
그는 많은 열매를 맺는다.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것도 할 수 없다.
6.누구든지 내 안에 머물러 있지 않으면 가지처럼 밖에 버려져 말라 버린다.
사람들은 그런 것을 주워다가 불에 던져 태운다.

포도나무 비유는 예수님과 성도들과의 관계의 비밀을 알려주는 것이다. 그 비유를 통해 인격적인 관계안에서 그리스도와 성도들의 관계의 의미와 성격에 대해 알려준다.
예수님께서는 신앙인들의 신앙과 삶의 현주소가 어디어야 하는지를 말씀하고 계신다. 그분은 살아있는 분으로 지금도 신자들속에 살아서 역사하시는 분이다.

신앙인의 능력있는 삶의 비결은 예수님과 성도개인과의 관계에 의해 달려 있다. 그 관계는 생명의 관계이다. 예수님을 영접한 이후에 신앙인들은 그의 생명을 받아서 그의 생명의 영향력에 살아가게 되기 때문이다. 특별히 그 생명은 영적인 생명으로 하나님이 약속하신 영생의 삶을 보장받으며, 그 생명의 연결을 통해 신앙인안에 그와의 연결을 통해 생명이 유지가 된다. 고로 그 생명유지는 근본적으로 그와의 관계와 그에 따르는 교제의 실질적인 지속적인 연결을 통해 이루어진다.

그분과의지속적인 연결은 그로부터 끊임없는 생명의 흐름을 공급받으며, 그분안에 있는 하나님의 약속의 실현을 가져온다. 신앙인들은 신앙생활하면서도 믿음의 주이신 예수 그리스도와 따로 사는 경우가 너무 많이 있음을 본다. 과연 나는 그리스도안에 있는 자인가? 아니면 자신 혼자 애쓰고 영성생활에 노력을 기울이고 있는 것이 아닐까?

주 예수님은 하나님의 나라의 밭에 심어지신 포도나무이다라고 말씀하신다. 하나님께서 일구어 놓으신 밭에 심겨진 포도나무이신 그리스도는 이 땅에 세워진 하나님의 나라이다. 하나님은 열심있는 농부로서 창조시부터 그는 타락하여 하나님과의 영광된 관계에서 떨어져 나가 저주받은 땅에서 불안과 고통속에 살고 있는 인생들을 다시 그의 아들의 나라안에서 새롭게 태어나는 하나님의 친백성으로 세우기를 원하신다.

하나님의 보내심을 받아 이땅에 오신 예수 그리스도는 타락한 땅에 세워진 인류희망의 나무처럼 이세상에 심겨졌다. 그의 포도나무의 비유는 자신을 통해 이루어질 하나님나라의 범위아 영향력을 언급하고 있다. 누구나 그와의 관계를 통해서만 생명의 아버지이신 하나님나라에 속할수 있으며, 영원한 생명과 구원을 얻는 축복을 상속받는다. 구원받은 중생들이 예수 그리스도에게 붙어있어야 할 이유가 여기 있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부르심을 받아 그의 통치의 세계로 들어온 이들은 그과의 개인적인 관계를 통해 관계의 생명을 지속할수 있다. 이 관계의 지속은 그와의 개인적인 친분의 교제를 통해 가능할 수 있다. 만일 지속적인 관계유지에 실패한다면 그들이 맺은 관계설정이 무효화될수 있는 것은 그와의 관계는 개인적인 교제를 전제로 하고 있기 때문이다. 포도나무에 붙어있는 가지가 잎이 열리고 그 가지에서 열매를 맺게 되려면 지속적인 관계의 유지와 그와의 활발한 교제만이 그에게 붙어있는 가지로서 생명유지에 필요한 힘과 능력을 공급받아 자신의 역할을 할수 있는 것이다.

앞으로 가지로서 끊임없는 생명유지의 에너지를 공급받아, 열매맺을 가능성을 안고 있으면 농부이신 아버지 하나님께서는 그가지를 전지하며, 보다 열매가 잘 영글수 있도록 다듬는 일을 하신다. 더러운 것의 요소들을 제거하고, 잘 정리된 깨끗함을 유지하여 건건한 가지로 생존하게 하여, 열매를 맺을 때에 탐스러운 열매를 열리도록 배려하신다. 그 다듬는 일이나, 배려하는 일은 두가지를 겸하는 것인데, 훈련이나 단련을 시키며, 그리고 격려하는 일을 통해 가지가 가지로서 강건할수 있도록 만들어가신다.

믿는 사람들이란 그분의 말씀을 믿는 것이며 그분께서 약속하신 것을 믿는 것이다. 그의 약속안에는 사람들의 죄를 씻어주는 정화의 내용이 있으며, 그 말씀을 믿음으로 자신의 죽은 영혼을 살게 되며, 자신을 더럽히는 죄의 흔적들을 씻어낸다. 그 말씀을 통해 더러운 인간의 타락한 부분들을 드러내어, 그 정죄된 상태를 벗어나게 하는 힘이 그의 말씀에 있다. 그는 이땅에 생명의 말씀으로 오셔서, 그가 말씀을 통해 전해준 약속은 그의 십자가의 죽으심을 통해 피흘림으로 인생들의 죄를 씻어내는 정화의 능력을 발휘한다. 그분께서는 많은 사람들의 죄를 대신하여 그의 몸을 희생하므로 죄를 해결할수 있는 길을 열어놓으셨다.

자신들이 거듭나 변화받은 것은 그의 씻기시는 능력의 약속을 담고 있는 그의 십자가의 보혈을 통해 인간의 죄가 씻어지며, 없어져 버린다. 그리고 인생들으 그분안에서 죄의 정죄받음에서 해방되어, 자유로운 심령이 되어 새로운 생명의 약속을 받은 자로 살게된다. 그 생명은 하나님께서 사람들에게 주신 영원한 생명의 축복이다.

생명의 근원이신 예수 그리스도안에서 살아야 하는 것은 자신들이 거기에 붙어 있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예수님은 예수를 인정하고 그분을 받아들인 사람들에게 생명의 주인으로 함께 살기를 원하신다. 그는 그를 영접한 인생들안에 오셔서 잠시 머물러 있는 것이 아니라, 지속적으로 상주하여 그의 나라가 그들속에 이루어지기를 바라며, 그나라의 통치속에서 그는 인생의 주인으로 자신을 믿고 받아들인 그들의 생활속에 함께 살아가기를 원하신다.

그분이 자신을 믿은 사람들에게 가져오신 세계는 죽음과 불안과 절망에서 생명과 평안과 그리고 희망을 따라 살도록 하는 것이다. 그분을 따라 살면 그안에서 진정한 인간됨의 길을 발견하며, 인간의 자기한계를 극복하는 비결을 터득한다. 그안에서 하나님의 인간개선과 개종을 이루어 내며, 인간의 자애중심(자기가 자신에 대해 하나님이 되려는 의식속에서 갈등과 불안을 경험한다)의 제한되고 모순된 삶에서 하나님중심의 의인(하나님과의 정상적인 관계를 회복하며, 그분의 인도와 보호가운데에서 주님의 인정받는 의미있고 가치있는 진정한 평안을 경험한다)의 삶을 살아간다.

그분안에 포도나무에 붙어있는 가지의 생존과 번영을 보장받는다. 그분안에 인생의 목적이나 의미를 발견하고 더 나아가 자신의 삶에 대한 활력과 용기와 희망을 얻으며 무슨 일에나 충실한 열매를 맺는 생활을 하게 된다. 그러나 그분을 떠나서는 외로운 고독자처럼 자유인처럼 사는 것 같으나, 그의 삶은 늘 죄의 속박아래에 주어진 억압된 인간성의 한계와 불안가운데에서 살아가게 된다. 사람이 자신이 원하는 것을 다 얻는 것이 아닐뿐 아니라, 더 나아가 자신이 바라는 이상적인 일이나 자신이 좋아하는 일조차도 온전히 감당하지 못하여, 자신안에 있는 육욕이나 죄의 영향력안에 있는 탐욕적인 추구에 몰입하기 쉬어지며, 결국 허망하고 혼란스런 생활을 살아가게 되기도 한다.

주님밖에 있는 인생들은 그들이 당하는 인생의 처절한 상황은 인간시조의 원죄와 그 영향으로 인해 생겨난 부조화된 불안과 두려움의 마음에서 내면의 평안을 얻지 못하며, 결국에는 자신안에 있는 인간절망의 상태에서 탄식하며, 곤핍한 심령의 상태에서 메마른 생애로 마감하며, 결국에는 인간에게 하나님의 심판으로 향하여 나갈수 밖에 없다. 그의 종말은 심판으로 인한 파멸의 길에 놓이며, 후회와 회한의 삶을 살아온 자처럼 사라져 없어질 무의미한 생으로 마감할 것이다.

포도나무와 가지의 비유에서 그분을 믿고 영접한 신앙인들은 지속적인 그분과의 생명의 관계형성과 계속되는 공급되는 그분안에서 오는 삶의 에너지에 충전을 받으며, 그분안에서 생각하고 판단하고 행하는 일들이 옳은 방향으로 나가게 될 것이다. 그분을 믿고 따르는 것은 그분안에서 자신의 영적생활을 유지하며, 그분으로부터 오는 생명의 공기와 수분과 영양분을 섭취하여, 자신의 삶이 보람차며, 좋고 귀한 열매맺는 생으로 이어질수 있도록 그분에게 늘 붙어있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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