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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정규직 노동자들과 일하기

  내가 함께 일했던 병원노동자중 처음 만난 비정규직은 임상병리사였다. 대학병원에서도 정규직 임상병리사가 그만두면 그 자리를 비정규직으로 채우기 일쑤여서 임상병리사가 대학병원 정규직 일자리를 얻는 것은 하늘의 별따기와 같다.  그런데 그 해 병원노조에서 비정규직 문제를 해결하느라 애쓰는 과정에서 그 사람은 정규직이 되었다. 



  한두달쯤 지나서 병원 식당에서 직원들을 만났는데 분위기가 침울해서 물어보니 이 사람들 거취문제때문에 다들 심란하다는 것이다. 들어올 때부터 11개월단위로 2회까지만 계약할 수 있다는 것을 듣고 들어왔지만 '열심히 일하면 기회가 생기겠지' 하는 마음이 드는 것이 당연하고, 함께 일했던 정규직원들도 2년 뒤엔 헤어진다는 것을 알고도 정드는 것을 어쩔 수 없는 것이다. 그 때 직원들은 혹시 과장님이 애써주시면 어떻게 되지 않을까 기대를 걸었지만 정규직원 채용은 재단에서 결정나는 사항이고 일개 과장이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짧은 시간이지만 함께 일했던 사람들을 떠나보내는 것은 가슴이 아픈 일이었다.  아침 7시에 검진버스에 전날의 초과근무로 지친 몸을 싣고 하루를 시작하는 그녀들을 보면서 또래의 어떤 아이들은 한참 공부할 때라는 생각이 들어 안쓰럽기도 하고 어엿한 사회인으로 성숙한 면모가 대견하기도 하고 그랬었다.  그 해 겨울에 그녀들은 울면서 떠났고 나는 다시는 계약직원을 받지 않고 과를 운영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우리 과는 성수기 9개월은 검진이 아주 많고 비수기에는 거의 일이 없어서 계약직을 쓰지 않으면 성수기의 일을 줄여야 하는 상황이다. 

 

 노과장은 지역사회의 요구에 부응할 의무를 더 중요하게 생각했고 그 결과 우리과 업무량은 날로 늘어 임상병리사뿐 아니라 간호사, 산업위생사까지 계약직원을 채용하게 되었다. 계약직 일자리라도 원하는 사람들을 위해서 그  티오를 계속 유지하고 대학병원에서 훈련받을 기회를 주는 것이 아예 그 자리를 없애는 것보다 사회에 유익하다는 것이 노과장의 생각인 것 같다. 사실 계약직 티오도 하나 마련하려면 엄청난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올해 4월 함께 일했던 보건관리대행 간호사를 떠나보냈고, 11월엔 산업위생사가 계약종료인데 재계약이 불투명하고, 1월엔 두 명의 임상병리사를 보내야 한다. 어제 우리 과 정규직 임상병리사들과 점심식사를 하는데 너무 너무 괴롭다고 호소를 한다. 2년전에 '앞으론 정주지 말자고 결심했는데 정이 드는 걸 어쩌냐'는 것이다. 평범한 직장인인 이들도 이 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제도개선을 위한 투쟁밖에 없다고 말한다. 그런데 이번 병원노조파업에서 소극적일 수 밖에 없었다고 미안해 한다.

 

 내가 고작 할 수 있는 일은 임상병리사를 채용할 가능성이 있는 지인들한테 전화 한 바퀴 돌리는 것이다. 오늘 아침에  종합병원에서 진단의학과장으로 일하는 동생과 긴 통화를 했다. 우리 임상병리사들이 지난 2년간 얼마나 성실했고 훈련을 잘 받았는지 설명하고 부탁했다.

 

  이렇게 2년마다 온 과직원들이 비정규직 문제로 몸살을 앓다시피하면서 고민이 되는 것은 우리가 견지해야 할 원칙이 무엇인가 하는 것이다. '비정규직 철폐냐 차별철폐냐?' 이것이 문제이다.

  정규직원들이 할 수 있는 만큼만 과 업무량을 조절해야 할 것인가? (비정규직 안 뽑기- 실제로 업무량이 조절한다면 수익에 대한 압박을 감수해야 한다)

  비정규직이라도 차별받지 않고 일할 수 있도록 노력할 것인가?(상대적으로 좋은 계약조건과 훈련기회 제공, 물론 임금은 우리 과에서 결정할 수 있는 것이 아니므로 어쩔 수 없다)

  올바른 선택은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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