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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거리 출장교육

  올해는 우리 동네를 벗어나서 하는 일은 하지 않으려 했지만 거절할 수 없어 교육 약속을 해 버렸다. 아침 일찍 기차타고 멀리 대구를 지나서 무슨 관광호텔까지 가서 두 시간 교육하고 돌아오니 하루가 다 갔다.  가보니 준비한 교안이 상황과 별로 맞지 않는다. 교육대상은 별정직 집배원들이었는데 5인미만 사업장부터 100인이상 사업장까지 다양한 곳에서 노동조합의 대표자들이 왔다. 



  기차 시간때문에 한시간 먼저 도착해서 함께 노조 간부들과 점심을 먹었다.  짧은 점심시간 동안 누구를 어떻게 취직시켜주었고, 누군가 선거에 나갔다 떨어졌다는 이야기를 들으면서 '괜히 왔다. 아까운 시간 버려가며' 후회를 했었다.

   

    막상 교육에 들어가니 다른 후회가 들었다. 사전에 충분한 정보가 없어서 대상에 적합한 준비를 못했다는 데 대한 후회. 시골 작은 우체국에서  하루에 여섯시간 이상 오토바이를 타고 다니면서 각종 중량물을 배달하는 일을 하루 평균 10시간 이상 하는, 40대 중반의 힘없는 노동자들이다. 아픈 사람 손들어 보라고 했더니 교육참여자 오십명중 7명 정도가 관리가 필요한 요통, 4명 정도가 어깨통증, 2명이 손의 통증이 있다고 한다.

 

  근골격계 질환의 위험요인에 대해서 설명을 하니 여기저기서 투덜댄다. 그들의 주된 작업장은 거리와 수취인의 집이다. 30Kg 이상을 한꺼번에 들지 않도록 되어 있지만 수하물의 중량은 짐부치는 사람 마음대로 이고, 때로는 쌀자루를 부엌 뒤의 광까지 운반해야 하기 때문에 작업을 개선할 수 있는 방법이 없다는 것이다. 내 답변은 이렇다. "일단 머리를 맞대고 이야기해보자, 우선 추운 겨울에 오토바이 타고 다니면서 시린 무릎에 신문지조각이나 헝겊같은 걸로 두르는 것 대신 무릎보호대라도 요구해보자, 인력에 비해 일이 너무 많으면 당장 인력을 주지 않더라도 지속적으로 이야기를 해야 한다, 우는 아이 젖주는 법이다."   

 

 쉬는 시간에 많이 아픈 사람은 진찰을 하고 건강상담을 하겠다고 하니 대여섯명이 나와 나를 동그랗게 둘러쌌다. 사고에 의한 요추 골절(?)로 3개월 산재요양하고 복귀한지 일년되었다는 아저씨는 재요양이 가능한가를 물어왔다. 자세히 들어보니 6개월 요양 승인이 났는데 동료들 고생하는 거 생각해서 일찍 나왔고, 일년이 지나도록 통증이 가라앉지 않는다고 했다. 옆에서 다른 사람들도 '맞어, 아프다고 쉴 수가 있나' 맞장구를 친다. 꾸준히 인원감축이 있었고 한 사람이라도 아파서 안 나오면 남은 사람들이 일해야 하는 상황인 것이다.  인력충원은 꿈도 못 꾼다. 혹시 있다 하더라도 상당한 시간이 지나서 새로운 환자가 발생한 다음에나 가능할까 말까. 

 

  다시 교육을 시작하기 전, 노조 간부가 잠깐  나와서 하는 말을 들어보니 별정직과 정규직 차별이 민감한 문제인가 보다. 후생복지부장이라는 사람은 차별이 없도록 하려고 노력은 하고 있지만 예산문제로 힘들다, 노력을 계속 하겠다고 했다. 얼마나 노력하고 있는 지는 모르지만 글쎄..... 모호한 말을 반복하는 사람치고 약속을 지키는 경우를 못 보았다.

 

  남은 한 시간은 방향을 화악 바꾸어서  원래 준비했던 내용- 근골격계 질환 예방에서 노동조합의 역할-은 줄이고 근골격계질환의 치료와 개인 수준에서 할 수 있는 예방법에 대해 초점을 맞추었다.  가까운 거리에 일끝나고 찾아갈 변변한 의원 하나 없는 시골의 10인 미만 사업장의 비졍규직 노동자들에게 가장 현실적인 이야기는 어떨 땐 꼭 병원에 가야 하나, 어디가서 무슨 치료를 받는 게 좋은가, 집에서 할 수 있는 물리치료는 어떤 게 있는가, 가볍게 몸을 풀 수 있는 체조는 어떤 것이 좋은가...... 이 이상의 이야기가 무슨 소용이 있으랴.

 

  자는 사람 2명, 떠드는 사람 2명을 빼고는 진지하게 경청해주었다.  교육소감을 들어보니 모르던 이야기를 알게 되어서 좋긴 한데 그래서 뭐가 달라질 수 있다는 생각은 들지 않는 것 같았다. 

 

 <교훈1>

 이들이 자기 일터로 돌아가서 동료들에게 나누어 주고 함께 이야기 해볼 수 있는 유인물같은 것이라도 말들어 왔다면 좋았겠다. 한다리 건너 교육의뢰가 들어오다 보니 의사소통에 문제가 있었던 것 같다. 나는 조직적 대처가 가능한 규모인 우편 집중국 노동자가 교육 대상인 줄 알고 준비해서 갔던 것이다.

 

 <교훈2>

  원거리 출장교육은 되도록이면 하지 말아야겠다. 의뢰 전화가 왔을 땐 지난 번에 부탁받았던 파업 사업장 진료를 결국 못 해준 게 미안해서 엉겁결에 하겠다고 했다.  그 동네 산업의학 전문의를 소개해주는 것이 더 좋았으리라. 아저씨들이 하는 말도 사투리때문에 알아듣기 힘들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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