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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전 원내검진은 괴로워

  어제 밤에 눈이 펑펑 오길래 오늘은 편한 하루가 될 줄 알았다.  오늘 내 포지션이 오전 원내검진인데 폭설을 뚫고 건강진단받으러 올 사람이 몇 명이나 되겠냐, 내심 좋아했다. 그런데 웬걸 예약한 사람은 거의 다 왔단다.  눈오면 출장다니느라 고생하는 우리 과 직원들 생각하면 좋아하면 안되는데 눈온다고 좋아한 벌을 받은 듯.



   당뇨병을 앓고 있는 25년생 할아버지가 묻는다. 보건소 의사외에 만나본 적이 없다고 하시면서 큰 병원 의사는 뭐가 다를 것이라 잔뜩 기대를 품은 듯 하다. 질문내용은 '감각이 좀 둔한 느낌이 있는데 서울대병원에 가면 치료할 수 있느냐', 내가 없다고 하자 쌀쌀 맞은 표정이 되어서 나가버린다.

 

   천식때문에 2년전에 하던 사업 정리하고 조치원에 혼자 요양중인 36년생 할아버지는 밤에 잘 때 가슴이 두근두근하고 숨이 찬 듯한 느낌이 있다고 하셨다. 자세히 들어보니 일흔살이나 되었다는 것을 받아들이기 어렵다고 하신다. 천식때문에 혼자 시골에서 우울하게 지낼 필요는 없으니 주치의와 다시 상의하시고 뭐라도 좀 배우러 다니시든지 하여간 활기차게 사셔야 낫는 증상이라니까 웃으신다.

 

   며느님과 함께 들어온 65세된 할머니는 신경과, 소화기 내과, 정신과, 온갖 과를 다 가서 검사를 해보아도 특별한 이상은 없는데 여기 저기 애매한 증상을 호소하시길래 속상한 일 있냐고 물었더니 2년전 속썩이던 남편이 죽은 뒤로는 속상할 일 없다고 하신다. 며느리되시는 분은 포기했다는 표정......

 

  멀리 당진에서 온 49세된 여자. 농사일이 힘들어서 자궁근종이 생겼다고 믿고 있는데 우리 병원 산부인과 의사는 자궁근종 수술을, 동네 산부인과 의사는 관찰을 권유했다고 누구말을 들어야 하는지 물어본다. 우리 병원 왔을 때는 생리양도 많았고 빈혈도 있어 수술을 권유한 것 같은데 그 선생님이 "아무데도 쓸데없는 것(자궁), 가지고 있으면 뭐하냐?"하셨단다 (으윽. 산부인과는 정말 무서운 곳이야). 걸어다니는 여자 4명중 한명이 자궁근종이 있고 이제 곧 완경이 되면 크기가 줄어들 수 있으니 지켜보시되 증상있으면 수술을 고려하시라는 교과서적인 답변을 듣고 마음이 가벼워졌다고 일어선다.

 

 원내검진을 하면 사연많은 사람들이 많다. 국민건강보험공단에서 나온 용지를 꼭 쥐고 멀리 당진에서, 예산에서 큰 결심하고 오신 분들이니 하고 싶은 말이 오죽 많겠는가? 내 마음의 여유가 없을 때 그걸 다 들어주자면 끝이 없다. 그렇다고 짜를 수도 없고. 

 

 오늘도 자궁암 검진이 몇 건 있었는데 아주 괴로왔다. 할머니들은 검사하기가 어려워 산부인과에 도움을 요청했더니 전공의선생이 와서 몇 건 해주었다. 급하게 처리해야 할 특검 판정 몇 건 하고 나니 12시 반. 아아 오전 원내검진은 정말 괴로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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