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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택시기사 이야기

   아침 7시반에 집을 나서 학교들렀다가 기차타고 서울가서 치과들렀다가 점심시간에 친구만나고 세무서 들렀다가 동사무소 들렀다가 지금은 노동건강연대 사무실에 와 있다.  예정된 면접조사까지는 시간이 좀 있다. 이 시간을 아껴 일을 할 까 하다가 머리를 식힐겸 블로깅 시작.

 

  서울 한 번 나오기 힘들기 때문에 몰아서 일을 처리하다보니 서울은 나에게 언제나 정신없는 동네이다.  천안은 대중교통이 발달하지 않아 택시를 많이 타지만 서울에서는 지하철을 주로 이용한다.  오늘은 너무 힘들어서 택시를 탔다.



뭔가 분위기가 심상치 않은 양반이었다.

이야기하는 것을 즐기는 모양이다.

나를 붙들고 자신의 인생사를 브리핑 하더라.

전라도 어느 구석에서 태어나 배우지 못했으나 한 때 종업원 100명정도의 기계제조업체를 20년간 운영했고, 쫄딱 망한 뒤 택시를 10년째 하고 있는데, 어릴 적부터 무엇을 하든 열심히 한 모양이다. 당구가 삼백, 바둑이 3급, 볼링도 잘 치고.... 택시를 하면서 그 모든 것을 딱 끊고 택시에만 열중했고, 최고의 택시 기사가 되기로 결심했다고 한다.

 

보통 회사택시는 12시간 맞교대인데, 본인은 차량 한 대를 혼자 운영한다고 해서 깜짝 놀랐다.  그럼 하루에 일을 얼마나 하냐 물어보니 13시간 정도 한단다. 그래가지고 2인분 사납금을 맞출 수 있을까 고개를 갸우뚱 하는데 한달 순수입이 약 4백만원이란다.

 

그 비결은 손님을 감동시키는 것.

실제로 합승한 뻐꾸기가 돌아서 간다고 먼저 탄 사람 내리니까 미터기를 다시 꺽어주었다.

가끔 손님한테 택시비를 깍아줄 때 자신도 기분이 좋단다.

가끔 손님들도 자기한테 거스름 돈을 팁으로 주니 자기도 그렇게 하고 싶단다.

 

수입이 많은 시간대에 집중적으로 일하고, 장거리 단골손님이 많기 때문에 가능한 수입이라고 한다.  그러면서 택시 기사 수입이 월 4백만원이라면 사람들이 거짓말한다고 해서 장부를 적기 시작했다면서 장부를 보여주었다.

 

이 대목에서 뻐꾸기 질문, "아하, 아줌마를 아가씨라고 부르시는 것도 일부러 그러시는 거죠?"

뼈아픈 체험이 있었으니 38세된 비혼 여성한테 사모님이라고 불렀다가 온갖 짜증섞인 불평을 다 받았고, 그 이후론 여자가 타면 무조건 아가씨라고 부른단다.  뻐꾸기 생각엔 그냥 손님이라고 부르면 더 좋을 것 같은데....

 

곧 택시에 관한 연구결과를 출판할 예정이란다.  고수익을 올리는 비법 20가지, 손님을 감동시키는 법 5가지 등등 그동안 경험으로 입증된 비법을 공개할 예정이라고 하더라.  배우지 못한 게 한이 되어서 혼자서 영어공부도 해보았고, 요즘은 중국어 공부에 매진하고 있다고..

 

뻐꾸기의 두번 째 질문,

"그렇게 바쁘신데 가족들하고도 시간을 좀 보내시나요?

답변은 "그게 가장 아쉬운 점이지요.

마누라하고 같이 자 본 게 기억도 안나요"

 

재미있게 사는 분이란 생각이 들면서도 좀 안쓰러웠다. 

새벽 한시부터 네시, 돈을 가장 많이 벌 수 있는 시간에 일하려면

어쩔 수 없었겠지.

최고의 택시 기사가 되는 것보단

사랑하는 사람들하고 오손도손 지내는 게 더 행복한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잠시 스쳐지나갔고

이어서, 어디서 행복을 찾든 본인이 행복하다면 그 선택이 존중받아야 한다는 쪽으로 결론.  

 

그 대목에서 목적지에 다 와서 내렸다.

 

한편 나한테 한 이야기를 하루에도 수십번은 하실 텐데

대단한 에너지의 소유자라는 생각이 들면서, 

에너지가 너무 많은 사람은 주위 사람들을 피곤하게 할 수 있다는 것을

새삼 깨달았다.

가끔은 에너지가 주체할 수 없을 정도로 솟구치는 뻐꾸기,

내 주변 이들도 상당히 피곤했겠구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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