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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상자?

[책읽기365]호루라기를 부는 장자
입력: 2007년 08월 07일 18:32:52
 
내가 안식년을 보낸 보스턴의 집 근처에는 조그마한 ‘생크추어리(sanctuary)’가 있었다. 굳이 영어를 쓴 것은 ‘생크추어리’가 ‘휴양림’이라는 국역이 담지 못하는 ‘안식처’ ‘피난처’ ‘면죄’ 등 다양한 의미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과분하게 허락된 그 시간과 공간에서 나는 한국에서 싸들고 간 열 상자의 책들을 곶감 빼먹듯 하나씩 꺼내 읽었다. 그러던 중 나는 ‘그’를 만났고, 작은 해탈이나 한 듯 눈에 불이 번쩍하고 귀에서는 “둥 둥 둥” 소리가 났다.

‘그’는 바로 루쉰의 ‘호루라기를 부는 장자’(우리교육)에서 만난 ‘우(禹)임금’이다. 황하의 범람을 막기 위해 수년간 밤낮을 가리지 않고 전국을 누비며, 백성들의 의견을 수집한 우임금. 그는 종래의 방식을 고수하려는 관료들 앞에서 말한다. “나는 조사와 분석을 통해서 이전의 방법, 즉 ‘물을 막는’ 방법은 확실히 잘못이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앞으로는 ‘물을 소통’시키는 방법을 써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정책’을 전공한답시고 젠체하는 내게 그의 모습과 발언은 죽비같이 내 등을 쳤다. 특히 물을 ‘막지 않고’ ‘소통시킴’으로써 홍수를 막아내야 한다는 그의 주장은 백권의 정치학 교과서가 주지 못한 영감을 가져다 주었다. 이야기의 마지막 장면도 감동적이다. “여기 이 동료들도 모두 나와 같은 생각이오”라며 그가 가리킨 곳에는 “시커멓고 여윈 거지 같은 사내들이 (중략) 마치 무쇠로 만든 사람처럼 한 줄로 늘어서 있었다.” 이런 멋진 동지들을 가졌기에, 그는 훌륭한 정치가였으며, 진정으로 내가 되고 싶은 참으로 행복한 사람이었다.

〈신영전/한양대의대 교수〉


  몬트리올에 책을 얼마나 싸가지고 갈 것인가 고민하다가 홍실한테 전화를 했었는데 아예 가져가지 말고 가서 사보라고 했다.  주변에서 다들 비슷한 이야기를 해서 마음이 흔들리고 있었는데, 오늘 이 글을 읽으니 역시 하는 생각이 들었다.

 

  '역시'의 뜻은 신영전 샘과 내가 비슷한 취향이라는 것을 새삼스레 확인했다는 것이다.

나도 처음에 열 상자로 분량을 정했었는데..... 음..... 어찌할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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