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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이 막힌다.

   과 일이 너무 많아 허덕이는 동료들이 너무 안쓰러워 지원차 작업장 방문을 두 군데를 했다.  이게 정말 마지막이 될런지는 두고보아야 하겠지만 어쨌든 진짜 마지막이길 빌면서 몇 자 적는다.

 

  첫번째 작업장에선 일반검진 상담만 열 몇건 정도 했다.  상담을 하면서 평소 생산직 위주로 업무를 하다보니 사무직엔 좀 소홀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사무직엔 만성질환이 많은데 돌이켜보니 이곳에서 내가 사무직 건강상담을 한 게 몇년은 된 것같다. (물론 간호사는 하고 있음).

 

  한 남자가 오늘은 200에 도전해야지 하면서 팔뚝을 내민다.  혈압이 160/100은 가뿐히 넘은지가  이삼년은 되었는데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고 지내는 사람으로 최근 업무부서변경이후 수면부족과 높아진 근무긴장도 때문에 스스로도 위기감을 느끼고 있었다.  ( 이 사람 말고 상담한 대부분의 사무직 노동자들이 격심한 직무스트레스, 특히 과중한 업무를 호소하고 있었다).

 

  오늘은 단호하게 당장 병원에 가야한다고 했더니 시간이 정말 안 난단다.  과로사의 위험이 있으니 내가 사측에 근무중 치료를 강력하게 권고하겠다고 하고 오늘 가라고 했다.  옆에서 듣던 담당자는 처음엔 누구라도 대체근무를 시키고 병원다녀오라고 하더니, 나중엔 자기가 대체해서라도 보내겠다고 한다. 착하기도 하지. 그 담당자는 본인이 부정맥, 위궤양 등으로 고생을 많이 해서 그런지 타인의 건강문제에 대해서 동병상련을 느끼는 모양이다. 



 간효소수치들이 200-300대인 한 남자가 있었는데 간염이 있는 것도 아니고 좀 심란했다.  얼굴을 보니 누구에게도 사랑받은 흔적이 안 보인다.  면담태도가 부정적이라 첫 만남부터 긴 이야기할 상태가 아닌 듯 하여 일단 다시 혈액검사를 하고 다음 달에 간호사랑 면담을 하라고 했다.  담당자가 나중에 하는 말을 들어보니, " 그 형님은 48살인데 혼자 사세요. 결혼한 적이 없고 기숙사에서 사는데 매일 술을 마셔요.  혼자 살다보니 달리 할 일도 없고 밥먹기도 귀찮고 하니 라면 한 그릇 끓여놓고 소주마시는  거죠"

  그럴 줄 알았지만 듣고 보니 더 심란하다.  간이 더 나빠지면 수발들 사람도 없으니 건강관리를 잘 하시라는 말을 해야하는 걸까? 하루 12시간 일하고 나면 꼼짝도 하기 싫을텐데 친목모임같은 거라도 좀 해보라고 권고를 하는 게 효과가 있을까?

 

  두번째로 간 곳은 악명높은 대기업의 사내하청.  현장에 들어가려면 출입증 쓰고 휴대폰이나 저장장치들 다 맡겨놓는 것은 기본이고 나올 때는 공항에서 하듯 소지품 검사, 몸 검사를 하는 곳이다.  오늘 따라 몸이 좀 피곤해서 그렇기도 하고 그 거대한 왕국이 소름끼치지도 하여 일하기 싫었다.  주된 건강문제는 근골격계질환인데 물량조절을 모기업에서 조절하는 사내하청의 처지에 해결가능한 게 별로 없을 것이라 생각하니 여기서 힘빼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을 했었다. 

 

  일반검진 재검도 같이했다. 중년 여성노동자들이 우르르 왔다.  우리가 보건관리대행을 한 지 몇 달 안되어 내가 처음 가는 곳이다.  재검하면서 이것 저것 물어보니 대부분 약 3년정도 서서 일했고 하지 정맥류가 주된 문제였다.  그밖에도 일년이 넘은 팔꿈치 통증, 모든 사람이 다 아픈 어깨와 목.......한 여자가 우리 병원에서 종합검진하는 데 얼마냐고 묻는다.  국민건강보험공단에서 하는 암검진 받으시면 된다고 절차를 설명해주었다. 

 

  보고서에 세 가지를 썼다. 

하지정맥류 예방을 위해서 고탄력스타킹을 지급해주세요. 

암검진에 대한 홍보와 대상자통보를 해주세요. 

보건교육을 하게 해주세요.

 

  비쩍마르고 신경질적인 담당자는 의외로 관심을 보였다.  보고서싸인이 끝나고 일어서는데 간호사가 현장에 가자고 한다. 사실 가기 싫었다.  해결안되는 문제들을 보는 것, 마음만 무겁다. 그러나 아까 팔꿈치 통증이 1년이 넘은 아주머니 생각도 나고 해서 현장을 돌아보기로 마음을 바꾸었다.  이런 곳은 문제점이 무엇인지는 다 아는데 뾰쪽한 대안이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아니나다를까,  담당자 설명 들어보니 돈 안 들이고 할 수 있는 건 다 해보았고, 모기업에서 여러가지 안전비품도 다 사주었다.

 

   그러나 12시간 맞교대, 장시간 노동문제를 해결할 수는 없었다.  더 괴로운 것은 곧 자동화를 할 것이란 점이었다.  몇 달전에 자동화의 여파로 70명을 해고했는데  또 수십명을 짤라야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어쩐지, 건강상담할 때  노동자들이 "우린 안 먹는 약 없이 먹어가면서 일해요.  안 그러면 집에 가는 수밖에 없어요. 안 그래도 오래된 사람 눈치주는데....." 그러더라.   

내가 사람을 선별해서 짜르느라 마음이 많이 힘들었겠다고 하자 담당자 왈, " 그 다음엔 제 차례예요. 토사구팽이란 말 있잖아요"

 

  숨이 막힌다.

실업 아니면 과중한 노동, 이게 우리 사회의 가장 심각한 작업장 유해인자인데,  나는 무엇을 하고 있는 것일까?  기술적 대안만 추구하고자 한 것은 아니었다고 스스로를 위로해보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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