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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결사노릇

  아침에 자동차 부품을 만드는 외국계 회사에 가서 85명 검진을 했다. 주 유해인자는 소음과 오일미스트. 수검자들은 20대 중반의 젊은 남자들이 대부분이다. 이 회사는 본사 안전보건기준에 맞추어 관리를 하고 있는데, 보호구 착용을 안하면 인사고과에 반영한다. 우리가 작업장 순회점검하고 나서 중요한 내용은 이사급 관리자에게 직접 브리핑하는 곳이다. 작업장 개선이 비교적 잘 되고 있는 편. 오늘 만난 사람들중에 이 회사 입사이후 청력이 떨어지거나 오일미스트와 관련있는 눈, 피부, 호흡기 자극 증상이 있거나 근골격계 증상이 있었던 사람은 없었고, 현장에서 검사결과가 바로 나오는 혈압과 요검사상 이상자도 별로 없었다. 그러니 가뿐하게 3시간만에 검진 종료.



  검진결과에 따른 건강상담 10명 정도하고 보건관리대행일지 하나 썼다. 상담하러 온 현장 관리자에게 들어보니 회사는 나날이 매출이 증가하고 있고 바빠서 쉬는 날도 나와서 일할 정도이며, 은행돈 빌려쓰지 않을 정도로 부자라고 한다. 계속 들어보니 자동화가 꽤 이루어져 현장의 근골격계 부담작업은 좀 줄어들었다고 한다. 다행이군. 이 회사는 도통 감이 잡히지 않는 곳이다. 삼년 동안 보건교육 한 번 하지 않은 곳이 드문데 이 회사가 바로 그렇다. 이 회사엔 거기 노동자들은 아무도 모르는 비밀조직이 있는데 그건 바로, 노/동/조/합이다. 이런 곳에서는 일단 만성질환 관리라도 잘 하자는 마음으로 일하는데 회사문을 나설 때 찜찜하다.   

 

  이어서 그 근처 5분 거리의 자동차 부품업체를 예고 없이 방문했다. 한달 뒤에 특수검진이 잡혀있는데 좀 불안하다. 작년에도 이런 저런 이유로 검진을 계속 연기하다가 다른 병원에서 해서 우리 간호사가 건강관리 하기가 힘들었다고 한다. 올해는 대상 유해인자 선정을 둘러싸고 사측과 우리 산업위생사가 의견충돌이 있었는데 해결이 되지 않고 있으니 내가 나서서 문제를 해결해달라는 담당 간호사의 주문이다.

 

 전화해보니 안전관리자는 월차내고 없다고 한다. 내가 또 시간을 낼 수 없으니 그래도 강행. 가서 총무차창을 찾으니 자리에 없다. 노조 사무실에 올라갔다. 부지회장 만나서 특검 준비의 문제점을 설명하고 의논했다. 

 

  문제가 된 것은 모든 작업자가 하루 1-2시간정도 교대로 유기용제를 쓰고 있고 작업환경측정을 해 보면 톨루엔과 크실렌이 1ppm 정도로 조금씩 나오는데, 작업자 전원에 대해서 유기화합물 특검을 실시해야 하는가였다. 부지회장이랑 현장을 돌면서 확인해본 결과 하루종일 그 작업을 하는 사람은 약 12명정도이고, 다른 사람들은 불규칙적으로 소량 쓰는 것이라 한다.  부지회장은 주 작업자에 대해서만 특수검진을 실시하는 것에 동의했다. 결론이 났다. 특검실시에 관한 보건관리자 의견을 적어 총무차장을 만나서 설명했다. 내일 담당 간호사가 우리 과 검진팀과 세부 추진 계획을 의논한뒤 사측 안전관리자와 협상할 것이다.

 

 회의시간에 이 회사 특검준비하면서 작업환경측정 때 문제가 발생했다는 것을 들었지만 구체적인 내용이 파악되지 않았다. 보고의 내용은 '문제가 생겼다. 그래서 대사물 검사를 위한 소변채취가 중단되었다.'여기까지. 그 이후엔 아무것도 진행이 안되고 있고 답답한 담당 간호사가 나더러 한 번 가보자고 한 것이다.

 

  그래, 그 안전관리자가 우리 과 직원들 마음을 많이 상하게 했고 나도 별로 보고 싶지 않은 사람이긴 하다. 그가 나한테는 그래도 예의를 차리는 편인데, 나도 기분이 자주 상한다. 직원들은 오죽 마음이 상하랴. 하는 마음이 들면서도 답답하다. 우리 과 관련자중에 누구도 이 일을 해결해야겠다는 의지가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핵심은 올해부터 적용한 새로운 검진지침, 산업위생사가 특검 대사물 검체 채취에 협조하는 것에 대하여 동의가 충분하지 않다는 데 있다는 생각이 든다. 검진팀 직원들도 산업위생사들도 누구도 자신의 일로 생각하지 않는 것 같다. 그럼 누가 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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