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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험실의 노동자들

  지난 금요일 검진한 곳은 화장품과 건강식품 회사였다. 60명 밖에 안 되고 현장에 유해인자도 별로 심한 편이 아니라 가벼운 마음으로 갔다가 무거운 마음으로 돌아왔다. 그동안 이 회사의 연구소에서 각종 실험을 하는 사람들이 화학물질에 노출된다는 것은 알고 있었으나 그 심각성은 잘 몰랐는데, 검진하면서 들어보니 국소배기시설도 없이  화학물질을 취급하고 있었다.



작업환경측정보고서를 보여주고 메타놀이 조금 검출되었을 뿐이라고 설명하자 기가 막히다고 한다. 우린 메탄올은 거의 쓰지 않거든요.  시약 목록을 가져오라고 해서 보니 453종의 물질을 쓰고 있었는데, 그 이름 하나 하나를 들여다보자니 한숨이 나온다.

 

연구원들은 한달에 보름정도, 하루에 8시간 내내 실험을 하는데 사무공간과 실험공간이 분리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사실은 매일 노출되고 있었다. 이런 작업은 매일 다른 종류의 화학물질을 조금씩 쓰고 있으니 작업환경측정을 통해서 유해성을 밝히기가 어렵다.

 

증상에 따라 관련된 임상검사 오더를 내고 보건관리대행 업무일지에 국소배기시설 설치 등에 관하여 의견을 적었다. 회사에서는 이미 알고 있는 문제이다. 오래전부터 연구동이 지어지면 시설을 해주겠다고 말해왔다. 그렇게 시간이 일이년이 지났고 실험실의 노동자들은 오늘도 불안감을 느끼며 일하고 있다.

 

특수검진에서 누구 하나 직업병이라고 판정이 나거나 작업환경측정결과에서 뭔가 초과가 나오지 않으면 사업주는 꿈쩍도 하지 않을 것이다.  98년부터 일했다는 고참 노동자에게 '우리도 이야기 할 테니 너네들도 끈질기게 건의해라.'하고 말하니 애매한 웃음만 짓는다.

 

어쩔 수 없지 뭐. 계속 이야기하는 수 밖에.

 

오늘 노선생하고 저녁을 먹다가 2년전에 직업성 천식이 여러 명 발생했으나 역학조사가 무산되었던 작업장에 대해서 산업보건연구원의 역학조사가 시작되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또 환자가 발생하자 노선생이 여기 저기 쑤셔서 만들어낸 작품이다. 그래, 질긴 사람이 이기는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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