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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늦기 전에

  프린터 부품 만드는 꽤 탄탄한 중소기업에 9월에 갔을 때 왼쪽 어깨통증이 심했던 남자가 있었는데 물류팀에서 일하고 있었다. 진찰을 해보니 심한 근막통증후군도 있고 회전근개(어깨의 근육둘레띠) 손상도 의심되었다. 운동장애도 있어 팔을 뒤로 해서 등위로 올려보라고 했더니 허리 이상으로 올라가지 않았다.



 지금은 모두 세명이 일을 하고 있는데  일년전에 입사했을 때는 첫 3개월간 혼자서 일을 했다고 한다. 그 때 최소 30Kg 에서 최대 80Kg의 제품박스를 다루었는데 구체적인 작업내용은 넙적한 박스를 포장할 때 테잎을 둘러감는 작업, 그것을 손으로 들어 어깨 높이보다 높은 선반위에 올리는 작업, 하루 4-6시간정도의 지게차 운전 등이었다. 지금은 밑에 두 명이 있어서 관리만 하는데 바쁠 때는 간헐적으로 박스포장, 운반, 운전을 도와준다고 했다. 

 

  현장에 가서 동료작업자들은 증상이 없는지 확인해보았는데 둘 다 안 아프다고 했었다.  그래서 제품박스를 어깨높이 이하로 쌓고 무거운 것은 두 사람이 같이 들도록 하고 안전한 작업자세에 대하여 알려주었다. 

  환자에게는 현재는 어깨부담작업을 하지 않으니 작업조정은 필요없을 것 같고 적극적인 치료를 받는 게 중요하다고 설명했다. 증상으로 보아서는 어깨에 핵자기공명촬영술(MRI)을 해보아야 한다고 했는데 이게 값이 만만치 않은 검사이다. 약 40만원.  산재, 최소한 회사부담으로 처리하지 않으면 받기 어려운 검사이다.  그랬더니 '이제는 그 작업은 하지 않으니 좋아질지도 모른다. 문제를 일으키고 싶지 않다. 일단 한달정도 물리치료를 받아보고 호전이 되지 않으면 그 때 가서 회사에 이야기해보겠다"고 했다. 그래서 업무보고서에 그렇게 쓰고 나왔다.

 

  두달이 지나서 오늘 다시 만났다.

그 동안 물리치료도 받지 못했고 증상은 전혀 좋아지지 않았다. 들어보니 전에 이야기 한대로  무거운 박스는 2인 1조로 작업을 하고 높은 곳에 박스를 쌓지 않고 있고 테잎감는 일은 그 전 공정에서 해가지고 오도록 하여 부담을 덜긴 했지만 지게차 문제가 해결되고 있지 않다는 것이다. 지게차가 왼손으로 돌리면서 운전하는 것인데 하루 4시간씩 돌리다보면 어깨가 안 아플 수 없다는 것. 그래서 이제는 다른 두 사람도 아프기 시작했다고 한다. 

 

 양손으로 운전하는 지게차가 필요하다고 하여 값을 물어보니 왼손지게차는 약 700만원, 양손 지게차는 약 1500만원쯤 이라고 한다. 지게차를 바꾸어달라고 이야기를 해보았는지 물었더니 직속 상관인 부장이 바뀐 지 3개월이 되었는데 이 문제에 관심을 가져주지 않는다며 바로 어제 이 문제를 가지고 한판 했다고 한다.  작업개선과 정밀진단및 치료에 대해서 부장과 이야기를 할 테니 다시 의논해보시라고 하고 보냈다.

 

 문제의 부장을 만났다.

아픈 남자의 이름을 듣는 순간 그의 얼굴이 굳어진다. 상황설명을 하자 자신은 어제 처음 그 내용을 알았다고 한다. (아픈 남자는 그 전 부장에게는 이야기를 많이 했었지만 새 부장에게는 처음 말 한 것이다). 이런 때 흔히 아픈 사람이 평소 얼마나 문제가 있는 사람인가에 대해서 말을 하는데 오늘도 예외가 없었다.  내가 환자는 마음이 약해서 어떻게든 회사에 부담을 안 주고 스스로 해결해보려고 애를 써왔다고 말하자 그제서야 부장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제가 왜 모르겠습니까? 삼성은 더 합니다(부장은 삼성에서 이십년일하다가 여기로 온지 일년반 되었음). 아프다고 하는 순간 인사고과에 반영이 되어 애들이 아픈데도 꾹 참고 일해야 합니다. 어제 이야기 듣고 아픈 애들을 데리고 가서 제대로 치료 받도록 하려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사실 제가 여기 온지 일년 반이 되었는데 지게차를 바꾸어야 한다고 노래를 했지만 소용이 없었습니다. 조만간 다시 결재를 올릴 생각입니다"

 

 업무보고서에 이 문제의 해결을 촉구하는 내용을 다시 쓰고 보건관리 담당자에게 환자의 상태와 부장의 의견을 정리해서 설명을 하는데 담당자가 말했다. "일단 아프니까 치료부터 받으라고 해도 소용이 없어요. 찍힐 까봐 겁이 나나봐요."

 사업장을 나오면서 생각나는 사람들이 있다. 쫓겨날까봐 두려워 말도 못하고 아플대로 아플때까지 참았다가 병을 키워서야 치료받으러 가는 사람들......

 

  올 봄에 만난 한 아주머니는 가운데 손가락에 힘을 주어 분당 수백번 반복하는 작업을 한지 일년만에 인대가 끊어졌다. 아무도 이 분이 아픈 것을 몰랐는데 바뀐 산안법에 의해 근골격계 질환 유해요인 증상 설문조사 결과에 대한 상담중 발견해서 우리 병원에 보냈더니 너무 늦게 와서 수술도 불가능하다고 했다. 그 뒤로 회사에서 한달정도 휴가를 주었는데 일하든 쉬든 아픈 건 마찬가지라서 그냥 나와서 일을 한다는 소식을 들었다. 곧 있을 구조조정때문에 고치치도 못할 걸 가지고 괜히 병원에 갔었다고 하며 아프다고 짤리면 어떡하나 걱정하고 있다고 한다. 

 

  작년 5월에 만난 다른 사업장의 오른쪽 팔꿈치의 외상과염이 있었던 20대 청년은 쉬어야 하고 호르몬 주사와 같은 적극적인 치료도 받아야 한다고 말했지만 회사가 너무 바빠서 시간을 낼 수 없다며 여름 휴가때 가보겠다고 했다. 그 때만 해도 법개정이전이고 중소기업에서 근골격계질환에 대한 인식이 거의 없을 때라 회사측에서는 본인이 알아서 할 문제라고 답변했다. 가을에 그 회사를 다시 가서 그가 너무 늦게 병원에 갔으며 수술을 했다는 말을 들었을 때 내가 크게 잘못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더 강력하게 이야기를 했어야 하는 건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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