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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 거 아닌 이야기

     산업보건에 발을 담근지 어언 10년이 되었다.  제조업 중심으로 일해왔기에 내 경험과 지식이 제한되기도 하지만 서비스 업종이 실질적으로 산업안전보건법의 바깥에 존재하다 보니, 대형할인매장과 호텔 등의 보건관리를 하면서도 겉도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전공의 시절 만났던 한 작은 호텔의 주방장은 당뇨병이 있었는데, 기록을 보니 잘 조절되지 않았다. 긴 상담끝에 그의 긴 근무시간과 인체의 생체리듬을 무시한 근무시간대(오후에 출근해서 다시 집에 가면 새벽 3-4시), 불규칙한 식사시간과 야식습관, 규칙적인 운동같은 것을 할 짬이 없기 때문에 혈당 조절이 잘 안된다는 것을 알게되었다. 그리고 나는 더 말을 할 수가 없었다.
 
    대형 할인매장에 가면 본사 소속의 수십명의 사무직 정규직 노동자들을 빼고는 가지 가지 형태의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있었는데, 거기에 가서 내가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서 난감했었다. 전문의가 되고 나서 할인매장을 꼼꼼하게 돌아보고 나서야 그 건물들에 어떤 사람들이 일하고 있는지 겨우 알게되었지만, 그 이상 진도를 나갈 수는 없었다. 구체적인 이유는 그 즈음 내 업무가 검진으로 바뀌어 그 곳에 다시 갈 일이 없게 되었기 때문이지만, 계속 갔더라도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별로 없었다.
 
    세월이 흘렀다. 민주노총 서비스 연맹에서 서서 일하는 여성 노동자에게 의자를 주자는 캠페인을 했고, 노동부는 의자를 주라고 대형 매장을 중심으로 공문을 보냈고, 소수이긴 하지만 적어도 대형 마트의 캐셔들은 일하다가 손님이 없을 때는 앉을 수 있게 되었다. 한국산업안전보건공단은 서서 일하는 사람들의 근골격계질환 예방을 위한 가이드라인 개발 연구를 발주했고, 올해 내가 했던 가장 중요한 일 중의 하나였다. 이 과제를 하면서 그 동안 내가 이해하지 못했던 문제들에 대하여 하나 둘 베일을 벗기는 느낌이었다.
 
    올해는 서비스 연맹과 몇 번 만났다. 자문위원이라는 이름으로 만나서 세 군데 작업장을 둘러보고 노동자 건강을 위한 조언을 하거나, 조사 사업에 참여하기도 하고, 토론회도 두어 번 했다. 서비스 연맹은 의자 캠페인을 시작으로 의욕적으로 산재예방사업을 하고 있었고, 내가 좀 쓸모 있는 인간처럼 느껴졌다. 
 
    서비스 업종의 산재가 급증하고 있다. 지난 10년간 열배 정도 늘었다. 그 원인이 뭐냐? 어떻게 예 방해야 하냐? 하는 내용의 연구과제 공고가 났고, 우여곡절 끝에 입찰을 했고 선정이 되었다. 사실 여러 가지 이유로 하기 싫었었다. 처음 과제 공고가 났을 때만 해도 몸과 마음이 좀 쌩쌩해서 관심이 있었는데, 알아보니 내가 잘 할 수 있는 과제가 아니어서 마음이 돌아섰고, 서서 일하는 작업에 관한 프로젝트를 마무리하면서 상당히 피폐해져서 좀 쉬어야겠다 결심을 했더랬다. 하지만 또 다른 여러 가지 이유로 하게 되었다.
 
   그런데 여러 사람들이 바쁜데도 십시일반으로 도와주기로 했고, 이렇게 좋은 연구진과 함께 하기도 쉽지 않아서 다행이다 싶으면서도 계속 마음이 편하지 않았다. 일을 하나씩 하나씩 마무리 짓지 않고 이것 저것 펼쳐놓는 셈이 되어서 다시 쫓기는 마음이 든다. 이 걸 하기 위해서는 뭔가 하나는 포기해야 하는데, 마음 속에 이것 저것 다 붙잡고 있는 나를 발견했다.
 
   내 친구, 쑥 생각이 났다. 그이는 옷을 원래 잘 사지는 않지만 어쩌다 하나 사야 하면, 그전에 옷장속의 오래된 옷을 버린다고 했다. 나도 결국 이 프로젝트를 하기로 하면서 원래 방학때 하기로 한 일 두 가지를 이 프로젝트 이후로 연기하고, 이거 끝나면 2011년까지 절대 연구책임자 같은 일은 하지 말아야지 단단히 결심을 했다. 하지만 불편한 마음을 다시 들여다 보니, 아직도 내 마음에는 뭐가 잔뜩 들어있다.
 
    이번 주에는 서울을 세 번이나 다녀왔는데, 오가는 길에 줄곧 내가 무엇을 버려야 이 겨울을 잘 날 수 있을까 생각을 했다. 서울을 가면 간만에 신문을 사서 꼼꼼히 읽어보는데, 오늘은 잡지를 한 권 샀다. 인터넷으로 읽은 기사를 다시 읽고 싶어서였다. 이걸 읽고 또 읽고 나니 나한테 이렇게 말하고 싶어졌다.    야, 뻐꾸기, 너 엄살 좀 그만 피워라.  네 마음속에서 춤추는 거 다 별거 아니거든. 
 
*   모두들 한 번 읽어볼만한 기사라고 생각해서 소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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