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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출장검진을 나가서 오전8시부터 12시반까지 꼬박 100명을 검진했다. 평균 연령 40대에 여러가지 유해인자에 노출되는 곳이라 확인할 것도 많고 이야기해야 할 것도 많아서 끝나고 나니 진이 빠졌다. 회사 식당에서 밥 먹고 가라는 것을 얼른 그 자리를 뜨고 싶어서 그냥 나왔다.
1. 용접작업과 눈 건강
용접을 하는 어떤 이가 자신은 2년전 MRI 촬영결과 한쪽 눈에 시신경 손상이 발견되었는데, 그것이 용접작업에서 발생하는 자외선때문이라고 했다. 나도 그런 이야기는 처음 들어보는데, 어떻게 알았냐 했더니, 처음엔 이야기를 안 하다가 천기를 누설하는 것 처럼 조심스럽게 목소리를 낮추고 보험회사 자료에 나와 있다고 하더라. 으잉? 돌아오자 마자 펍메드에서 검색해보았는데, 글쎄... 그런 것 같지는 않다. 본인이 그렇다고 강력히 주장하니 뭔 소리인지 확인해보아야 겠다.
백내장 소견은 있으나 시력은 괜찮은 용접작업자는 3년째 수술을 하고 싶다고 한다. 복시가 있어서 살기가 영 불편하다는 것이다. 지난 검진에서 안과교수한테 자문을 구해보니 시력이 멀쩡한데 수술할 필요가 없다고 하면서 동네 병원에서는 돈이 되니까 할 지 모르겠다고 했던 케이스이다. 안과 교수의 말로는 복시도 심한 것이 아니어서 그냥 두면 된다고 하는데, 본인은 불편하고 답답하다고 호소한다. 비염에 경도 후각장애도 있었는데 이비인후과 의사는 비중격 만곡에 대해 수술을 권유했으나, 본인은 증상이 견딜만 하니 그냥 지내겠다고 한다.
검사를 해서 이상소견이 있어도 그냥 관찰을 하는 것이 정답인 경우, 참 난감하다. 용접공의 백내장은 유명한 질환이지만, 아직 쓸만한 렌즈를 떼어내고 인공렌즈를 붙이는 수술을 하고 싶다는데, 글쎄 그게 산재로 처리가 될 지?
2. 마음 상한 사람.
어떤 이가 왼쪽 발의 족저근막염 때문에 한달을 고생했다고 한다. 치료도 받았고 왼쪽 발을 자주 쉴 수 있도록 작업관리도 잘 하고 있지만 아직 증상이 남아 있다. 죽는 병은 아니니 좀 불편하더라도 서서 일하는 시간을 줄일 수 있는 만큼 줄이면서 지켜보자 했더니, 눈을 크게 뜨고 말했다. 죽을 만큼 아팠단 말이예요. 의학적으로나 작업관리쪽으로나 별로 할 수 있는 게 없는 상황에서 현실을 받아들여야 한다는 뜻으로 말한 건데, 기분이 많이 상했나 보다.
3. 딱히 할말이 없는 상황의 연속.
그 외에도 이명, 검사상 정상이나 설명안되는 이삼년간의 마른 기침, 어떤 장갑을 써도 파고드는 유리섬유에 의한 접촉피부염이 만성화되어 이젠 가끔씩 손가락의 굳은 살을 칼로 파내면서 산다는 사람..... 딱히 할 말이 없는 상황의 연속이었다.
이 회사는 두 동강내서 인수했던 외국계 자본이 얼마전에 분할매각해서 어수선한 분위기이다. 그래서 그런 것인지 원래 그런 문화인지, 연말이라 그런 것인지는 알 수 없으나 술을 어찌나 많이 오래 드시는지, 지난 검진때보다 혈압이 많이 높아진 사람이 여럿 이었다.
으으으 12월에 남은 출장검진이 무섭다. 다 이런 분위기의 작업장이거든. 그래도 가끔씩 웃으면서 안녕하신거죠?, 잘 지내세요? 하는 사람들이 있어 그나마 버틸 수 있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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뻐꾸기님 글에 나오는 사람들을 생각하면 인간이 살아간다는게 참 무시무시하다는 생각이 들어요. 잘 지내세요오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