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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감'과 '사과'의 차이

유감(遺憾)

ꃃ마음에 차지 아니하여 섭섭하거나 불만스럽게 남아 있는 느낌



사과(謝過)

ꃃ 자기의 잘못을 인정하고 용서를 빎



국제사회에서든 국내사회에서든

유감과 사과라는 말이 아주 교묘하게 쓰여지고 있다.

그렇다면 과연 유감과 사과의 차이는 무엇일까?







<의문점> 유감과 사과는 다르다?



"정말 유감입니다"

[로이터 2003-03-24 10:51]

【워싱턴=로이터 뉴시스】 캠프 데이비드 별장에서 돌아온 조지 W 부시 미 대통령이 23일(현지시간) 워싱턴 백악관에서 이라크전에서 사망하거나 포로로 잡힌 미군의 가족들에게 메시지를 전하고 있다



부시 ‘포로 성학대’ 공식사과

[한겨레 2004-05-07 18:52]



두 기사의 제목을 보면 확연하게 유감과 사과의 차이를 알 수 있다.

유감은 국어사전 그대로 불만스러운 느낌인것이다.

그러나 사과는 잘못했다고 하는것이다.

미국 대통령인 부시를 예를들자.

그는 사과라는 단어를 거의 쓰지 않았다.

2003년도의 포로로 잡힌 가족들에게까지도

유감이다라고만 표현했을뿐이다.

그러나 2004년도에 성학대로 확연이 달라진 여론추이에

사과라는 표현을 사용했다.

이처럼 유감과 사과는 확연히 다른것이다.

간단하게 말하자면

자존심 안구기면서 말할땐 '유감'이고

자존심 구기면서 말할땐 '사과'인것이다.

정말 말그대로 말장난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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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이 동북아 민족주의간 충돌을 자극 하는가

(평화네트워크 펌. 진보평론 기고글)

이준규(운영위원)/ 2005년 5월 13일


 

- 목 차 -


1. 미일동맹에 편승한 일본, 한국과 중국의 민족주의와 충돌하다

2. 동북아시아 ‘민족주의의 봄’과 미국

3. 탈냉전기 미국의 패권전략에 편승하는 일본

4. 중국의 대응: 중화민족주의, 혹은 중화패권주의?

5. 불확실한 동북아시아의 미래와 한반도의 선택


*진보평론에 기고한 글임.


1.미일동맹에 편승한 일본, 한국과 중국의 민족주의와 충돌하다


동북아시아는 역사 논쟁과 영토 갈등이 한창이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일본이 놓여 있다. 일본은 영토와 역사 문제를 두고 동북아시아 역내 모든 국가와 갈등을 벌이고 있다. 한 여론 조사에 따르면 동북아시아 국민들간 감정도 역대 최악인 것으로 나타났다. 동아일보와 중국사회과학원, 일본의 아사히신문이 공동으로 실시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한국인의 94%와 일본인의 61%가 ‘한일관계가 잘 돼가고 있지 않다’고 응답했다. ‘잘 돼가고 있다’는 대답은 각각 6%와 25%에 그쳤다. 이는 1984년부터 7차례 실시한 여론조사 중 가장 낮은 수치라고 한다. 또한, 중국인의 75%, 일본인의 61%가 ‘중일관계가 잘 돼 가고 있지 않다’고 답했으며, 중국인의 64%와 일본인의 28%가 상대국을 ‘싫다’고 답했는데, 이 또한 역대 최고치였다. ‘좋다’는 응답은 일본인의 10%, 중국인의 8%에 불과했다.1)


문제의 발단은 일본의 우경화에 의해 추동되어 왔던 일련의 흐름이 한국과 중국 민족주의의 가장 민감한 부분인 역사와 영토문제를 건드렸다는 데에 있다. 또한, 그후 일본의 대응은 사태를 상황을 더욱 악화시켰다. 일본 정부당국자들과 언론이 한국과 중국 정부의 강경한 반응에 대해 국내용으로 치부해 버렸고, 문제의 원인을 정확히 보려고 하지는 않고 국가간 관계와 외교에서는 ‘냉정함’이 필요하다는 식으로 오히려 책임을 떠넘긴 것이다. 게다가, 이토록 혼돈스러운 와중에 유엔안보리 상임이사국 진출을 밀어 붙인 것이다. 지난 4월16일과 17일에는 대규모 반일시위가 있을 줄 뻔히 예상하는 상황에서 일본정부는 “남중국해역에서 석유시추실험을 하겠다”고 발표함으로써 반일감정에 기름을 부었고 중일 외무장관 회담을 이틀 앞둔 지난 15일에는 2004년 중국이 일본영해를 침범했던 사실을 성토하는 보고서를 발표하면서 “중국이 일본의 주권을 침해했다”는 비난을 퍼부었다.


이 글은 최근 벌어지고 있는 역사, 영토 분쟁 원인의 한 측면을 살펴보고자 하는 것이다. 국가간의 차원을 넘어서 ‘국민Vs국민’의 감정대결로 이어지고 있는 영토와 역사분쟁은 다양한 원인을 들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 원인의 중요한 한 측면은 미국의 동북아 패권전략과 미일동맹 강화, 그리고 그에 편승한 일본의 ‘부상’이 주변국의 민족감정을 자극해서 발생한 것이라는 점이다.


이 지역-동아시아-에서 일본이 정치적?군사적 강국으로 부상한다는 것은 가장 민감한 사안이다. 첫째는, 일본은 제국주의 침략과 식민지배, 전쟁과 냉전으로 점철된 이 지역 복잡다단한 근현대 역사에서, 침략자였으나 그에 대한 ‘청산’을 하지 않고 패전 후에도 오히려 수혜자가 되었던 나라이다. 특히, 역사문제에 관한한 동아시아 다른 국가들과 한번도 ‘제대로 된’ 인식의 공유를 해보지 않았던 일본의 부상은 중국과 한국의 반감을 살 수밖에 없는 것이다.  둘째는 일본의 부상이 미일동맹이라는 이름으로 미국의 후원 하에 추진되고 있다는 점이다. 미일동맹은 중국과 북한의 ‘위협’에서 그 강화의 명분을 찾고 있다. 이것은 한국과 중국의 전략적 이해관계와 충돌한다. 뿐만아니라, 미일동맹의 이름 하에서 일본은 군비증강과 무력의 해외투사를 확대하고 있다. 이는 역으로 역내 주변국들의 경계심을 초래하는 것이다.


결국 탈냉전기 미국의 패권전략과 그에 기반한 동북아 전략이 국제무대에서 정치군사적 역할의 확장을 도모하고 있던 일본의 구상과 의기투합하고, 이러한 미일의 이해관계의 조합이 그와같은 흐름에 경계심을 갖고 있던 주변국들의 휘발성 강한 민족주의에 기름을 붓는 역할을 하면서 동북아시아 역내 민족주의의 충돌 양상으로 드러나고 있는 것이다.


2. 동북아시아 ‘민족주의의 봄’과 미국


탈냉전기의 세계는 서로 공존할 것 같지 않는 3개의 흐름, 즉 세계화(globalization)와 지역주의(regionalism), 민족주의(nationalism)가 혼재하고 있다. 특히, 한때 ‘국가의 소멸’이 언급되었던 것과는 달리 오히려 국가주의와 민족주의가 강화되고 있는 양상을 띠고 있는 것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동북아시아 지역도 예외는 아니다. 탈냉전기 동북아시아 지역은 세계화의 흐름에 맞춰 경제적, 문화적 교류가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으며, 그에 따라 동아시아 혹은 동북아 차원에서 지역적 문제를 사고하는 구상들이 제시되고 있기도 하다. 주로 일본에서 제기하고 있는 동북아시아 공동의 집 구상이나, 최근 활발하게 논의되고 있는 동북아 다자간안보체제에 대한 논의들은 대표적인 예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다른 한편에서는 민족주의적 경향성이 강화되고 있는 양상을 띠고 있기도 하다. 중국의 중화민족주의적 발상에 기반 한 동북공정(고구려사 논쟁)이 한국과 갈등을 빚었던 것은 그 대표적 사례이다. 2002년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켰던 한국의 ‘반미 촛불시위’도 결국은 냉전기에 제약 당했던 민족적 권리를 되찾기 위한 탈냉전적 도전의 일환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일본의 보통국가론의 논리가 전후 냉전시기 일본이라는 국가는 ‘비정상적인 국가’였기 때문에, 새로운 도전과 기회가 부과되고 있는 탈냉전기의 변화된 환경에서는 일본도 ‘정상적인 국가’(normal state)가 되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는 것은 같은 맥락에서 읽힐 수 있을 것이다.


이와같은 양상은 우선, 동북아시아의 복잡다단한 근현대사에서부터 그 원인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동북아시아 역내의 주요 행위자인 한, 중, 일 어느 한 국가도 정상적인 근대국가를 이루지 못한 것이 사실이다. 그렇기 때문에, 미완의 근대과제인 ‘정상적인’ 민족국가 건설(nation-state building)을 열망하고 있는 것이다. 또한, 탈냉전기 이데올로기에 기반한 진영대결의 균열선 흔들리고 있는 것도 중요한 요인일 것이다. 다른 이데올로기의 정당성의 근거가 사라진 상황에서 민족주의가 그 공백을 채우고 있는 것이다. 이데올로기와 진영대결의 구조에 의해 억제 되어왔던 민족적 과제의 실현에 대한 열망이 탈냉전의 세계에서 ‘봄’을 맞이하고 있는 셈이다.


문제는 이러한 민족주의가 극렬한 민족감정의 충돌로 비화될 수 있는 가능성을 보이고 있다는 점이다. 특히, 최근 일본과 한국, 일본과 중국 사이에 벌어지고 있는 역사와 영토를 둘러싼 갈등은 그러한 위험성을 보여주고 있다.


그러나, 갈등과 분쟁의 원인을 민족주의라는 이데올로기 그 자체로 환원시켜 버릴 수는 없다. 민족주의는 원래부터 그것이 놓인 역사적 맥락에 따라 긍정적인 역할을 하기도 하고 부정적인 역할을 하기도 하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오히려 관건은 최근 동북아시아 지역에서 일어나고 있는 한일, 중일 민족주의간 충돌의 ‘맥락’을 짚어 보는 것이 필요한 것이다. 최근 동북아 지역의 민족주의간 충돌의 맥락을 해명하기 위해서는 이 지역에 온존하고 있는 냉전적 잔재에 주목해 볼 필요가 있다는 판단인 것이다.


동북아시아는 탈냉전의 시간대와 냉전의 시간대가 공존하고 있다. 냉전의 구조가 창출한 2개의 분단국가-남북한, 중국과 대만-가 남아 있으며, 이들은 여전히 서로 다른 이데올로기를 지향하고 있다. 또한, 분단과 이데올로기 대립에 기반한 쌍무적 동맹질서가 온존하고 있다. 21세기 접어들어서는 이와같은 냉전적 질서의 잔재가 오히려 강화되고 있는 상황이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미국’이 있다.


특히, 부시행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냉전회귀적 동북아 전략은 일본의 보수우경화와 군사대국화의 자양분이 되고 있으며, 이로 인해 중국과 한국의 반발을 불러오고 있다. 이는 다시 일본내에서 민족주의적 동원을 강화하고 있는 보수우익에게 명분을 제공해 주고 그에 따른 일본의 공세적 대응을 초래하는 악순환을 반복하고 있는 것이다.        


3. 탈냉전기 미국의 패권전략에 편승하는 일본


1) 미국의 패권전략과 일본의 ‘보통국가’화의 만남


  미국은 탈냉전기 자국의 ‘헤게모니’ 유지와 ‘사활적 이익’의 수호를 위해 동맹국과 비용을 분담하려 하고 있다. 걸프전에서 일본의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역할’은 미국 입장에서도 미일 동맹관계에 대한 새로운 접근을 요구했다. 탈냉전기 유일의 헤게모니를 유지하고자 하는 미국의 입장에서 아시아 지역은 전략적 핵심이었고, 일본과의 동맹관계가 군사적 부담을 나누는 군사적 파트너쉽의 단계로까지 발전시켜야 한다는 판단에 이른 것이다.2) 이에 따라 미국은 미일동맹 강화를 통해 일본의 군사적 역할 증대를 독려하기 시작했던 것이다.


1996년 <미일 신안보공동선언>은 미국의 전략과, 탈냉전기 방위정책의 전환을 꾀하고 있던 일본의 전략적 이해관계가 맞아 떨어져 이루어진 결정판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선언은 21세기 미일동맹의 중요성을 강조하면서 그 협력 범위를 ”일본과 일본 주변지역, 그리고 전지구적(global) 차원으로 확대할 것"이라는 내용을 공식화했다. 이때, 이미 일본은 을 통해 캄보디아, 모잠비크, 르완다, 골란고원 등에 자위대를 파견하고 있었다. 1997년 <신가이드라인>, 1999년의 <주변사태법>은 이와같은 흐름의 연장선상에 놓여 있다. <신가이드라인>과 <주변사태법>이 도입한 ‘주변사태’라는 개념은, 해석에 따라 한반도와 대만, 그 이상의 지역까지 확대될 수 있다는 것이 중론이다. 말을 바꾸면, 일본의 해외 군사활동의 범위가 한반도와 대만, 혹은 그 이상의 지역까지 확대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부시행정부 출범이후 이와같은 흐름은 급물살을 타고 있다. 부시행정부는 1기 때부터 중국을 “잠재적 경쟁자”(potential competitor)로 상정하고, 북한을 “악의 축”으로 지명하면서 미-일-한으로 이어지는 ‘동맹축’을 재편, 강화하고 있다.3) 2기 부시행정부의 경우 1기의 기조가 더욱 강화되는 징후를 보이고 있다. 이와 관련해서, 본격화되고 있는 미군의 '군 변형'(military transformation)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미군의 ‘군 변형’은 테러 등 새롭고 예측하기 어려운 안보위협들에 대응한 전쟁을 원활하게 수행하기 위해 기동성, 유연성을 확보하는 것이지만, 아시아태평양 지역에서 보면 대중국 봉쇄 및 견제의 일환으로 이 지역 미군의 전력구조와 임무를 재편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2기 부시행정부의 펜타곤라인은 그러한 ‘럼스펠드 구상’을 실현하기 위한 진용으로 구성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미 한국과 미국 사이에는 군 변형의 핵심적 개념이라고 할 수 있는 ‘전략적 유연성’(strategic flexibility)에 대한 본격적인 협의가 시작되었으며, 미국과 일본 사이에서도 주일미군 재편을 위한 2+2각료급회담(외무, 국방장관회담)이 시작되었다. 특히, 올해 2월에 개최되었던 미일 2+2각료급회담에서는 미일동맹의 협력 범위에 대만을 포함해서 중국을 크게 자극했다. 결론적으로, 미국은 아시아태평양 지역에서 자국 이익의 최대 위협이 될 것이라고 상정하고 있는 중국을 “사전에 좌절시키기 위한” 견제, 압박 전략을 가속화하고 있는 것이다. 일본은 그 전략의 핵심적 파트너 역할을 하고 있다.


일본의 입장에서 보면, 주일미군과 주한미군을 축으로 하는 아시아태평양 주둔 미군의 재편에 호응하면서 국제사회에서 정치, 군사적 역할을 확장할 명분을 얻고 있다. 최근 일본은 유엔안보리 상임이사국 진출이라는 목표를 향해 적극적인 행보를 보여 왔다. 이 과정에서 가장 큰 장애가 불분명한 자위대의 위상4) 과 집단적 자위권을 금지한 ‘평화헌법’이라는 점은 미국의 관료들이 여러 차례에 걸쳐 ‘친절하게’ 가르쳐 준 바 있다.


일본은 부시행정부가 9.11테러 이후 벌인 두 번의 전쟁에 자위대를 ‘파병’했다. <테러대책특별조치법>을 통해 아프카니스탄 보복공격에 이지스함을 포함한 자위대를 아프카니스탄 ‘보복 공격’에 파견했으며, 2003년에는 <이라크부흥지원특별조치법>에 따라 전투지역인 이라크에 자위대를 파병하기에 이른 것이다. 일본은 지금도 미국의 ‘이라크 전쟁’ 수행의 최대 후원자이며 가장 믿음직스러운 동맹국으로 남아있다. 미국과 일본의 공동 군사행동이 증가되면 될 수록 자위대의 위상을 명확히 하고-즉, 정식 ‘군대’로 삼고- 집단적 자위권을 인정할 필요성도 증가된다. 이는 역으로 일본의 군사적 리스크를 증가시키는 것이기도 하지만, 또한 유일 초강대국인 미국의 지원을 받으면서 국제사회의 정치적 지분을 확대해 갈 ‘지렛대’가 되기도 한다.


일본의 군사대국화란, 이처럼 점증하고 있는 해외 군사활동이 막강한 군사력과 지속적인 군비증강에 기반하여 이루어지고 있는 경향을 통틀어 지칭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일본의 군사적 경향성의 확대에 ‘대국화’라는 단어를 사용하며 경계하는 중요한 이유 중의 하나가 여기에 있기도 하다. 일본의 군사비 지출 규모는 이미 세계적으로 ‘메달권’에 진입해 있는 수준이며, 첨단 군사기술에 있어서는 타의 추종을 불허하고 있다. 또한, 미군의 세계적 군사재편에 의해 주일미군이 변화하고 있는데, 자위대도 동맹군으로서 그에 따라 “첨단화”를 추진하고 있다. 자위대의 조직과 무기체계의 혁신이 뒤따르고 있으며5) ,미군이 신속성?기동성을 중심으로 하는 육해공 통합군 형태로 변화함에 따라 자위대도 3군 통합막료회의 기능강화와 특수부대 창설을 추진하고 있다. 또한, 미국산 무기수입과 일본산 첨단무기 부품의 대미수출의 장래를 제거하기 위해 작년 12월 발표된 <무기수출3원칙>의 완화는 이를 위한 조치의 일환이었다고 볼 수 있다. 특히, 미국과 일본은 미사일방어망(MD) 구축 사업을 통해 첨단무기시스템의 공동 연구에 임해왔으며, 올해부터는 본격적인 개발과 생산 단계에 들어설 것이다. 안보에서의 ‘미일 일체화’를 방위정책의 핵심으로 하고, 이를 위해 자위대를 “다기능적이고, 탄력적이며, 실효성 있는” 방위력으로 개혁할 것을 제시하고 있는 2004년판 <방위백서>와 <신방위계획대강>은 이를 반영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6)


2) 전후 60년의 역사를 부정하고 있는 일본


 탈냉전기 가속화되고 있는 일본의 군사대국화는 일본사회의 보수우경화와 동시에 추진되고 있다는 점에서 더더욱 주변국들의 우려를 자아내고 있다. 특히, 최근의 군사대국화는 보수우경화와 그에 기반한 제도적 정비로 뒷받침되고 있기 때문에 주변국들(특히, 중국과 한국)은 우려의 시선을 보내왔던 것이다. 일본에 우경화 경향성이 존재해 온 것이 새로운 것은 아니다. 그러나, 최근의 일본 우경화는 운동이나 사상의 영역에 머물러 있었던 우경화 경향이 구체적으로 제도적 성과물을 얻어내고 있다는 점에서 심각하다.7)


1999년의 <주변사태법> 뿐만아니라, 2003년에 통과된 유사관련 3개 법안(이하 유사 3법)은 대표적인 예라고 할 수 있다. 유사 3법이란 타국으로부터 무력 공격을 당했을 때를 대처하기 위한 <무력공격사태 대처법>, 유사시 자위대 활동을 원활하게 하기 위한 <자위대법 개정안>, 유사시 정부의 기능을 강화하고 효율화하기 위한 <안전보장회의 설치법> 등이다. 유사 3법은 ‘정상적인’(normal) 국가가 되기 위해서는 군사력의 보유와 사용에 제한을 받지 않아야 한다는 논리에 기반하고 있으며, 유사시 자위대의 운용과 자위대와 미군의 연합전력이 원활하고 효율적인 군사작전을 취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핵심적인 입법취지였다.8) 게다가, 당시 방위청 장관이었던 이시바시게루(石破茂)는 ‘일본이 공격을 받을 위협에 놓여 있다든지, 공격을 받았을 때 적진을 공격하는 것은 당연한 것’9) 이라고 주장함으로써 논란을 일으킨 바 있다. 이 발언은 일본이 ‘전수방위’(전수방위)를 ‘위협대응형’으로 바꾸겠다는 공언과 함께, 사실상의 전수방위 폐지와 선제공격론 보유를 의미하는 것이다.


이제 제도적 변화는 헌법의 개정으로 치닫고 있다. 헌법 개정의 핵심은 자위대 위헌성 논란과 해외파병의 장애가 되어 왔던 헌법 9조의 평화조항이다. 헌법 9조의 개정은 일본 보수우경화와 군사대국화의 마지막 제도적 관문이 될 것이다. 결국, 이것은 반세기가 넘게 버텨 온 일본의 전후체제, 즉 거번 맥코맥(Gavan McCormack)이 "46년 체제"10) 라 명명했던 그것의 ‘붕괴’라고 할 수 있다. 일본의 전후체제는 1946년 제정된 헌법을 기초로 해서 군비최소화-안보의 대미의존, 경제 우선주의라는 ‘정치외교적 현실주의 노선’과 헌법 9조의 평화조항을 기반으로 한 ‘평화주의’가 정립(鼎立)한 것이었다. 전후 일본의 제도와 이념은 이 양대 축을 중심으로 만들어지고 운영되어 왔다. 그러나, 이제 이 양대 축을 중심으로 유지되어 왔던 체제의 토대가 되었던 국내외적 토대는 붕괴되었고 전후체제는 더 이상 서 있을 자리를 찾지 못하고 있다. 그리고, 이 빈자리를 ‘군사적 보통국가’ 일본을 만들기 위한 제도들이 채우고 있는 것이다.  


주변국들의 입장에서 일본의 이러한 변화는 거대 경제력을 기반으로 부상하고 있는 군사대국 일본이 눈앞의 현실로 닥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또한, 전후 일본의 역사가 일본이 군비증강과 방위정책의 변화, 그리고 정치사회적 보수우경화에 대해 주변국들이 반발을 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것이다’.  


4. 중국의 대응: 중화민족주의, 혹은 중화패권주의?


1) 수면위로 떠오른 중일 갈등  


  2003년 10월 중국이 세계에서 세 번째로 유인우주선을 발사, 성공했을 때 일본의 거의 모든 방송은 특집을 내보냈다. 중국의 우주항공 발전과정을 다룬 프로그램들이었다. 물론, 일본이 중국에 대한 경계심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 어제, 오늘의 일만은 아니다. 1960년대 중국이 핵실험에 성공했을 때도 일본은 충격에 휩싸였었다. 그 직후 출범한 사토에이사쿠(佐藤榮作)내각은 이러한 상황 하에서 미국의 핵우산에 대한 의존과 자신의 핵무장을 포기하는 비핵3원칙-핵무기를 생산, 보유, 반입하지 않는다는 원칙-을 채택했다. 그러나, 여기서 핵심은 비핵3원칙이라기 보다는 미국의 핵우산의 확보라고 할 수 있다. 11)

최근 일본의 대중국 경계심은 개혁개방 이후 급성장하고 있는 중국의 경제력과 그에 기반한 군사력의 증강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일본의 중국에 대한 경계심이 가장 선명하게 드러난 것이 앞서 언급한 2004년 <방위백서>와 1995년 신방위계획대강을 개정한 2004년판 <신방위계획대강>이었다. <방위백서>와 <신방위계획대강>은 중국이 핵과 미사일 전력, 해군 및 공군력의 현대화를 추진하는 것에 대한 ‘경계심’을 명기(明記)하고 있다.


그러나, 역으로 일본의 군사대국화에 대해 경계심을 가지고 있는 것은 중국도 마찬가지다. 중국의 <인민일보> 인터넷 영문판 2005년 1월23일자12) 는 중국과 일본의 군사관계 전망을 다룬 분석기사에서 일본의 방위청과 당국이, ‘중국 군사위협론을 제기하는 것은 미일의 군사적 일체화와 해외에서의 군사활동에 대한 국내외 여론을 무마하기 위한 것’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또한, 중일간의 "위험한 징후"(dangerous sign)로서 작년 11월9일 일본의 언론들을 통해 보도된 중국의 일본 침략 가상시나리오 논쟁, 고이즈미 총리의 야스쿠니 신사참배 등을 들었다.

  위와 같은 인민일보의 지적은 현재의 중일간 현안이 모두 담긴 것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전자는 일본 방위청이 중국이 남서군도를 침략하는 가상시나리오 3가지를 세워 그에 대한 대처를 신방위계획대강에 명기하려던 것으로, 이는 중국과 일본이 영토와 해양 자원을 둘러싸고 분쟁을 벌이고 있는 댜오위다오(釣魚島, 일본명 센카쿠열도)와 동중국해에 관련된 것이다. 중국과 일본은 1960년대 이후 댜오위다오의 영유권을 둘러싸고 분쟁을 벌이고 있다. 또한, 최근에는 동중국해 가스전 개발을 둘러싸고 신경전을 펼치고 있다. 야스쿠니 신사참배 문제는, 중국에서 후진타오 체제가 출범한 이후 한때 진전의 기미가 보였던 중일관계가 급랭하게 된 이유가 되었던 역사문제의 핵심이다. 한일관계의 악화가 화제가 되었기 때문에 우리의 시야에는 들어오지 않았지만, 최근 중국과 일본은 이미 여러 차례 역사문제를 둘러싸고 충돌을 했었다. 한국이 일본과의 관계에서, 과거를 묻지 않고 ‘미래지향적인’ 관계를 형성하는 기조를 유지하고 있을 때도 중국은 고이즈미 총리의 야스쿠니 신사참배에 항의해 중일정상회담을 연기하고 있었다. 고이즈미 총리의 야스쿠니 신사참배를 계기로 냉각된 중일관계에 더해, 2003년과 2004년 연이어 발생한 일본인들의 매춘관광 사건은 중국인들의 반일감정을 더욱 격화시켰었다. ‘정냉경렬’(政冷經熱, 정치 관계는 냉각기이고 경제 관계는 뜨겁다)이라고 표현되는 중일관계는 이와같은 중국의 반일 정서가 반영되어 있다고 할 수 있는 것이다.


2) 미일동맹 강화에 대한 중국의 대응

  

  중국은 미일동맹의 강화가 자국을 견제하고, 포위하기 위해 추진되고 있음을 명확하게 인식하고 있다. 미국의 부시행정부가 공식문서를 통해 중국에 대한 견제를 그토록 공공연하게 밝히고 있는데, 이를 모른다면 오히려 비정상적일 것이다. 또한, 미일동맹의 강화에 힘입어 일본의 대중국 정책이 공세적으로 변화하고 있다는 것에 대해서도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다만, 중국은 미국과 일본의 대중국 정책에 대해 단기적으로 대처가 필요한 것과 중장기적으로 해결해야 할 것을 나누어 대처하고 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단기적 대처에 있어, 중국이 물러설 수 없는 부분은 역사와 영토문제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는 현재 중국의 민족적 정체성(national identity)에 직결되는 문제이며 현 중국 체제의 정당성(legitimacy)에 관련된 문제이기 때문이다. 또한, 전략적으로도 ‘사활적 이익’과 관련되어 있다. 예를 들면, 중국이 일본과 영토분쟁을 벌이고 있는 댜오위다오의 경우, 청일전쟁이라는 중국의 근대사와 막대한 양의 석유가 매장되어 있을 것으로 예상되는 해양자원의 문제가 공존하고 있으며 동중국해의 중요한 해상교통로의 확보에도 관련되어 있다.


대만의 경우도 중국의 미완의 근대과제 즉, 민족국가(nation-state) 건설의 문제이다. 대만은 단기적으로든, 중장기적으로든 중국의 입장에서 절대 양보할 수 없는 부분인 것이다. 특히, 중국은 일본이 양안에서 유사사태가 발생했을 때 미국과 함께 공동의 군사적 행동에 나서는 것에 대해 가장 우려하고 있다. 올해 2월 미일 2+2협의에서 미일동맹의 협력범위에 대만이 포함되었을 때 중국이 강하게 반발했던 것은 이런 이유이다. 1996년의 <미일 신안보공동선언>의 맥락에서 1999년에 성립된 <주변사태법>이 대만을 일본의 주변사태에 포함시키고 있음은 앞서 언급한 바대로이다. 일본이 미국과의 동맹 강화를 선언하면서 그 협력범위에 대만을 포함시킨 것은 역사와 영토문제 양자에 있어 중국에 대한 도전을 한 것이나 다름없는 것이라고 할 있을 것이다. 중국의 가장 민감한 부분들을 한꺼번에 자극한 셈이다. 이것이 올해 3월, 4월의 극렬한 반일시위를 촉발한 직접적 계기였다.


다른 한 측면에서는, 강화되고 있는 중국의 민족주의 경향성에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1970년대 말 개혁개방을 통해 시장경제의 도입을 통해 급속히 성장하고 있는 중국은 이제 사회주의 체제라고 부르기도 어려울 정도의 단계에 와 있다. 현재 중국을 지탱하고 있는 이데올로기는 사회주의라기보다는, 중화민족의 '자부심'과 '단일성'(unity)을 강조하는 중화민족주의라고 잘라 말할 수 있을 정도이다. 또한, 다른 측면에서 중화민족주의를 중국 당국이 조장, 활용하고 있기도 하다. 그것은 개혁개방이후 발생한 다양한 사회경제적 문제들을 무마하고 국가적 통합을 이루기 위한 ‘프로그램’(program)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이는 중국이 역사, 영토 문제 등에 집착하도록 하고 있다. 특히, 변경(邊境) 지역의 역사와 영토는 핵심적이다. 작년 한국과 중국 사이에 벌어졌던 고구려사를 둘러싼 갈등은 이러한 맥락에 놓여 있다.  


최근 강화되고 있는 중국의 민족주의가 중화패권주의로 발전할 것이라고 단정하기는 어렵다.13) 우선, 이미 언급한 것처럼 현재 중국의 민족주의는 중국 내부의 안정과 통합, 통일을 목표로 하고 있다. 또한, 향후 상당기간 중국의 국가전략은 경제성장에 중점을 두고 있다. 중국은 2008년 베이징 올림픽의 성공적 개최와 2010년 상하이 박람회의 성공을 최대의 과제로 삼고 있다. 이를 통해 개혁개방이후 지속적인 성장을 해 온 중국경제가 안정적인 궤도에 진입할 수 있다고 보고 있는 것이다. 경제적 성과(economic performance)를 통해 국내적 안정을 유지하고, 대외적 위상을 확보하겠다는 것이 국가전략인 것이다. 군사력의 측면에서 보더라도, 중국의 군비지출은 미국의 1/5에도 미치지 못하고 있다. 때문에 향후 상당기간 중국이 미국의 패권에 도전해서 정치, 군사적 도전을 할 가능성은 낮다. 오히려, 일방적인 미국의 패권에 견제와 협력을 병행하면서 실익을 추구하는 전략을 취할 것이다.


그러나, 중국의 민족주의가 ‘공격적으로’ 변화할 가능성을 부정할 수 없다. 특히, 최근의 경우처럼 미일동맹을 등에 업은 일본이 중국의 민감한 부분을 계속 자극한다면 원래 휘발성이 강한 민족주의의 특성상 그 결과는 예측하기 어렵다. 반일감정이 일본의 후원자인 미국을 향하는 반미감정으로 폭발할 수도 있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미일동맹의 강화에 힘입어 목소리를 높이는 일본의 보수우익들의 폭주가 지금처럼 계속된다면 중일간의 갈등의 향방은 예측하기 어렵다는 점이다.        


5. 불확실한 동북아시아의 미래와 한반도의 선택


주지하다시피, 일본은 동북아시아 역내 국가 모두와 갈등을 빚고 충돌하고 있다. 미국과는 오히려 더더욱 긴밀해지고 있지만 그에 비례해 동북아시아 주변국들에게는 신뢰를 잃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우선, 부시행정부가 밀어 붙이고 있는 미국의 동북아 전략이 얼마나 많은 문제점을 안고 있는가를 역설적으로 증명해 주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일본을 기축으로 삼는 미국의 동북아 전략에 대해서는 미국 내에서도 우려의 목소리가 나올 정도이다. 이러한 목소리는 동북아시아에서 일본의 고립이 미국의 위상에 대한 도전으로 이어질 지도 모른다는 위기감에서 나온 것이다. 그러나, 미국 내에서조차 미일동맹의 ‘공격적’ 강화를 통해 동북아와 아시아태평양 지역의 헤게모니를 유지하고자 하는 부시행정부의 전략에 의문을 제기하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는 것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또한, 미일동맹을 통해 중국을 견제하고자 했던 미국의 의도와는 달리 중국은 미국의 전략에 직접 대응하지 않고 있으며, 오히려 일본의 보수우경화에 대한 우려에 공감을 하고 있는 한국과 가까워지고 있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게다가, 중국은 러시와와의 관계를 밀접히 하면서 군사기술의 상호교류까지 추진하고 있다. 이것은 미국의 동북아시아 전략의 부작용을 의미하는 것이기도 하지만, 또다른 측면에서는 미국의 동북아시아 전략이 평화공존의 동북아시아 질서 창출에 장애가 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그렇다면, 우리의 대응은 어떠했는가? 작년 중국의 동북공정으로 촉발된 고구려사 논쟁에서와 마찬가지로 즉흥적이고 감정적인 대응에 불과했다고 하더라도 가혹한 평가는 아닐 것이다. 특히, 영토분쟁과 역사논쟁에 임하는 한국 민족주의는 그 부정적 모습을 여실히 드러냈다고 할 수 있다. 미국에 대한 반감으로 중국과 가까워졌던 한국의 민족적 감정은 고구려사 논쟁으로 다시 미국과 일본 쪽으로 경도되었다가, 일본과의 갈등이 발생하자 다시 중국으로 경도하는 행태를 보였다. 한국 민족주의가 대국 의존적 경향성을 여전히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증거이다. 또한 일본과 영토와 역사문제를 두고 대립하면서 보인 한국 민족주의의 ‘공격적 경향성’은, 민족주의가 21세기 한국을 이끌어갈 이념적 좌표가 될 수 없음을 일깨워주는 것이었다. 최근의 영토와 역사에 대한 논쟁은 오히려 우리에게 많은 질문을 던지고 있는 것이다.


한국정부는 “동북아 균형자론”을 그 답으로 제시하고 있다. 그러나, 정부가 제시한 ‘동북아 균형자론’은 개념의 모호성과 그 ‘사려 깊음’에 대한 의문은 차치하고서라도 격동하고 있는 동북아 질서 속에서 민족적 대안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특히, 협력적 자주국방과 한미동맹을 기본 축으로 하고 있는 동북아 균형자론은 동북아 불안정성의 원인을 잘못 해석한 것이든지 혹은 간과한 것이며, 국제사회에서 공감대를 얻을 수 있는 전략적 비전이라고 보기도 어렵다.


미일동맹을 기축으로 하는 미국의 동북아 전략과 동북아 국가들의 민족주의가 충돌하고 있는 상황 속에서 우리가 제기해야 할 비전은, 강대국 중심의 질서에 편입하고자 하는 욕구를 극복하면서도 민족적 경계를 넘어서는 평화와 공존의 비전을 제시하는 ‘전략적 숙고’로부터 제시되어야 할 것이다.    



1)동아일보, 2005년 4월27일.

2)  이와같은 전략적 판단을 담은 대표적인 보고서가 일명 ‘나이보고서’로 불리는 1995년의 <동아시아전략보고서>(East Asian Strategic Report)이다. 이 보고서는 동아시아 지역에서 미국의 헤게모니 유지와 이 지역의 안정을 위해서 미군은 향후에도 10만명 선을 지속적으로 유지해야 하며 "일본은 아시아전략의 중요한 파트너이며 아시아정책의 핵심요체이다"라고 강조했다. 이 보고서는  일본의 1995년 <신방위계획대강>, 그리고 <미일 신안보공동선언>, <신가이드라인>, <주변사태법>이 탄생하는 논리의 모태가 되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3)  부시행정부 1기 때 발표된 2001년판 4개년 국방계획검토보고서(QDR 2001)는 사실상 `중국의 부상과 그로 인한 미국 이익에 대한 위협을 사전에 견제하겠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21세기 미국의 세계전략과 아시아태평양 전략의 핵심이, 2002년 국가안보전략보고서에서 명기하고 있는 것처럼 “어떤 국가가 미국과 대등해지는 것을 사전에 좌절시키겠다”는 사전 억지개념에 입각한 대중국 압박전략이라는 것을 확인해 주는 것이다.

4)  전후 일본에서는 자위대가 창설되면서부터 자위대의 위헌/합헌 논쟁이 끊이지 않고 있다. 현재까지도 그에 대한 논쟁은 계속되고 있으며, 고이즈미 정권은 자위대의 존재를 헌법에 명기함으로써 그 논쟁에 종지부를 찍겠다는 의사를 여러차례 밝혀 왔다.

5) 일본은 F15 등 최신예 전투기와 최첨단 구축함인 이지스함 등을 보유하고 있으며, 앞으로 2척의 이지스함을 추가 도입하고 전투기의 작전범위를 5300Km까지 확대할 수 있는 공중급유기와 서태평양까지 초계범위를 확대할 수 있는 최신형 대잠초계기 도입도 추진하고 있다. 또한, 일본은 앞으로 2기의 정찰위성을 추가로 발사할 계획인데 이렇게 된다면 2003년 3월에 발사한 H-2A 정찰위성과 더불어 자위대 정보전력의 급상승으로 이어질 것이다.

6)  2004년에 발표된 일본의 <방위백서>와 <신방위계획대강>에 대한 소개와 간략한 분석은 평화네트워크 홈페이지 www.peacekorea.org의 동북아시아자료실의 ‘창설50주년 자위대의 변화’와 ‘일본 2004년 신방위계획대강’을 참조 바람.

7) 이와 같은 분석은 권혁태, ‘일본의 ‘우경화’와 동아시아평화‘, 이론과 실천 2005년 5월호.  

8)  특히, 무력공격사태법안의 경우 자위대와 미군의 연합전력이 원활하고 효율적일 수 있도록 물품, 시설, 용역을 제공할 것을 명기하고 있다. 일본 시민사회는 군국주의 시대 전시동원체제의 ‘부활’의 신호탄이라면서 격렬하게 저항했지만, 막상 중의원에서는 90%가 넘는 압도적 찬성으로 통과되었다.

9)  2003년 3월 국회 답변 과정에서의 발언으로 여기서 ‘적진’은 북한을 지칭한 것이었다.

10)  거번맥코맥 지음, 한경구, 이숙종, 최은봉, 권숙인 옮김, 『허울뿐인 풍요』, 창작과 비평사:1998.

11)  우메바야시히로미치, 「비핵지대와 ‘공동의 평화’」, 이삼성?우메바야시히로미치외 지음, 『동북아시아비핵비대』, 살림:2005, pp. 48-49.

12)  인민일보 인터넷 영문판(http://english.peopledaily.com.cn/)의 China-Japan differences moving frictions to military field,  January 23, 2005.

13)  이와같은 견해를 뒷받침하는 분석은 이남주, 「중국 동북공정의 논리와 대응방향」, 『황해문화』2004년 겨울호, pp. 225-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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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함께] 미국은 북한을 공격할 것인가?

임박한 미국과 북한의 충돌?
- 미국은 북한을 공격할 것인가?
PDF 파일 : 55-03.pdf    

5월 초 미국이 북한의 핵실험 가능성을 동맹국들에게 통보하면서 북핵 논란이 고조되고 있다. 미 정보당국은 북한이 함경북도 길주군 지역에서 지하 핵실험을 준비하는 징후를 포착했다고 밝혔다.

미 관리들의 대북 강경 발언이 잇따랐다. 미 백악관 대변인 스콧 맥클렐런은 7일 “우리는 강한 억지력을 갖고 있으며 어느 누구도 우리의 능력에 대해 오판해서는 안 된다”며 북한에  강하게 경고했다. 미 NBC 방송은 미 국방부가 유사시 북한의 핵 시설을 선제 타격하는 계획을 세웠다고 보도했다.

최근 미국의 언론은 북한이 곧 핵실험을 할 것처럼 주장하며 북한 핵실험 준비설을 부각하고 있다.

그러나 북한의 핵실험 가능성 문제는 미국 지배계급 내에서도 견해가 엇갈리고 있다. 미국과 일본 강경파들이 북한이 핵실험을 준비하고 있다고 주장하지만, 국무부 부대변인 톰 케이시는 “지금 북핵 프로그램에 새로운 평가는 없다”고 밝혔다.

일본 외상 마치무라 노부타카도 “북한의 핵실험 준비설과 관련해 여러 소문이 오가고 있지만 확실한 정보는 없다”고 말했다. “북한이 핵실험 관측용 관람대를 설치했다”며 북한 핵실험설을 유포하는 데 가세한 <뉴욕타임스>도 이틀 뒤 이런 정보들이 과장됐거나 조작됐을 가능성을 제기하는 기사를 실었다.

미국과 일본뿐 아니라 중국·러시아·한국 등 6자회담 관련국들이 모두 북한의 핵실험 준비설에 대해서 내부에서 입장이 엇갈리고 있다. 북한이 핵무기를 보유하고 있다고 선언한 마당에 핵실험 준비는 충분한 개연성이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당장 북한이 핵실험을 할지는 어느 국가도 확신하지 못하는 것이다.

이런 불확실성은 미국을 곤혹스러운 처지에 몰아넣고 있다. 그 동안 북한의 핵 보유 선언을 의도적으로 무시해 온 미국으로서는 북한이 실제로 핵실험을 강행한다면 더는 무시할 수 없는 상황에 놓이기 때문이다. 만의 하나 북한이 핵실험을 통해 핵보유국임을 입증한다면 위기 관리자로서 미국의 위신은 추락하기 십상이다.

이것은 북한 핵에 대한 미국의 딜레마, 즉 북한에 양보할 수도 없고 그렇다고 속 시원하게 북한에 군사적 공격을 하기도 어려운 처지를 드러낸다. 부시는 4월 말 “이라크 주둔으로 인해 미군의 능력에 어떠한 영향도 받지 않는다”며 큰소리쳤지만, 이것이 허세라는 것은 분명하다. 바로 얼마 뒤 미 합참의장 리처드 마이어스는 의회에 제출한 보고서에서, 미국이 이라크에 발목이 잡혀 있어 다른 분쟁 지역에서 미군의 작전 개입 능력이 크게 제약돼 있음을 인정했다.

미 국방부가 발간한 1998년 국방백서는 북한을 패퇴시키려면 전군에서 64만 명의 미군 병력이 소요된다고 추산한 바 있다. 따라서 미국이 이라크와 중동 지역에 발목이 붙잡혀 있는 한, 북한에 대한 군사 공격을 독자적으로 수행하기란 사실상 불가능하다.

그렇다고 미국이 북핵 문제를 UN 안보리에 회부해 UN이 북한을 군사적으로 공격하기도 어렵다. 안보리 상임이사국인 중국과 러시아가 이에 반대할 게 뻔하고, 미국의 핵심 동맹인 한국과 일본도 북한에 대한 군사 공격에 반대할 것이다. 북한에 대한 공격은 주요 열강이 포진한 지역에서 전면전을 초래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해서 북한이 핵 보유국이 되기 위한 준비를 차근차근 밟아 나아가는 듯한 상황을 미국으로서 무한정 방치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북한의 핵 보유 선언 이후 미국이 보인 모호한 태도는 국제 사회에서 미국의 위신을 떨어뜨렸다. 이 때문에 미국 지배계급 내에서 북핵 대응을 둘러싼 논쟁이 일어나고 있다.

따라서 현재 미국이 북한에 퍼붓는 으름장 뒤에는 북핵 위기를 제대로 관리하지 못하는 데서 나오는 초초함이 배어 있다.

최근 미국 관리들의 잇단 강경 발언은 안보리 회부를 협박해 계속해서 북한을 6자회담으로 밀어넣으려는 목적인 듯하다. 톰 케이시 미 국무부 언론국장은 6일 “우리는 현재 북한을 6자회담에 복귀시키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북한은 여태껏 그래 왔듯 미국의 실질적 양보가 없는 6자회담 참가에 부정적이다. 북한은 미국의 양보를 얻어내는 데는 핵무기가 제격이라고 생각한다.

현재 미국은 북한을 6자회담장에 끌어들이기 위해 중국에 큰 기대를 걸고 있다. 미국은 지난 4월 말 북한의 6자회담 복귀를 위해 중국에 대북 석유공급 중단을 요청했다. 실제로 2003년 중국은 북한으로 공급되는 송유관의 가동을 중단해 북한을 베이징 북-중-미 3자 회담으로 끌어낸 바 있다.

중국 역시 북핵 문제가 위기 국면으로 치닫는 것을 우려하기 때문에 북한을 6자회담에 끌어들이는 데는 찬성한다. 하지만, 5월 8일 열린 한-중 정상회담 합의문에는 북의 핵실험이나 유엔 안보리 회부 문제를 거론하지는 않고 북핵 문제에 대해 ‘깊은 우려’를 표하는 데 그쳤다.

미국은 한국에게도 북한 압박에 동참할 것을 요구하고 있는데, 이것이 6월 중에 열릴 예정인 한미회담의 주요 안건 가운데 하나가 될 것이다.

현재로서는 북한 핵실험 임박설은 다급한 처지에 있는 미국이 북한을 6자회담장에 끌어들이는 데서 관련국들의 도움을 얻기 위해 과장하는 측면이 커 보인다.

하지만 만약 북한이 실제로 핵실험을 강행한다면, 그것은 한반도를 비롯한 세계에 커다란 충격을 가져올 것이다. 그리 되면 6자회담을 통해 시간벌기를 하려는 미국의 구상은 물건너가고 새로운 국면이 펼쳐질 것이다. 동북아에서 핵경쟁이 가속될 것은 불보듯 뻔하다.

그렇게 되면 미국이 세계 최강대국으로서 자신의 위기 관리 능력을 보여 주기 위해 북한에 대한 제재 조치를 취하려 할 가능성이 높아지면서 한반도에 위기가 조성될 것이다. 그러나 그 때조차 상황은 미국의 뜻대로만 되지 않을 것이다. 미국이 이라크와 중동 지역에서 위기에 빠져 있는 한, 미국이 동원할 수 있는 힘은 언제나 그들의 바람에 한참 못 미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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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함께] 해방 60주년 기획연재

노힘에 대해 -최일붕

‘노동자의 힘’에 대해 편집자가 독자에게
 

지난 호 ‘노동자의 힘’(이하 노힘으로 줄임)에 대한 <다함께> 신문의 반박을 계기로 일부 독자들이 노힘 단체의 성격에 대해 문의를 해왔다. 이에 편집자가 답변하고자 한다.


전에 노힘은 노동자주의와 중도주의가 특징이었다. 이제는 거기에 종파주의와 초좌파주의가 더해졌다.

노힘은 맑스주의의 노동계급 중심성 원리를 노동자주의로 잘못 이해하고 있는 전형적 사례다.

물론 노힘의 기관지 <노힘>은 예전과 달리 단지 노동조합 쟁점들뿐 아니라 다양한 정치 쟁점들도 다루고 있다. 하지만 노힘의 활동은 아직도 노동조합 운동에 매몰돼 있고 그 한계에서 벗어나려 애쓰지 않고 있다.

그들의 희망과 달리 기관지는 조직가 구실을 하지 못하고 단지 선전가 구실에 머물러 있는 것이다.

정치 쟁점들에 대한 노힘의 선전주의적 태도는 자신의 사회적 기반과 충돌하지 않고도 노동자주의를 청산하겠다는 그 단체의 희망과 관계 있다.

예를 들어, 노힘은 자신의 일선 노조활동가 회원들이 반전 운동에 별 관심이 없는데도 사회 전체적으로는 반전 운동이 강력히 떠올라 간헐적으로 노힘에게 강한 압력을 가하는 상황을 2003년 초 이후 맞이했다. 그들의 대처 방식은 단지 선전 기구라도 움직이는 것이었다. 일선 회원들의 일상 활동과 연관되지 않은 선전이기에 노힘의 선전은 추상적이기가 그지없었다.

반전 운동과 관계 맺는 방식은 단지 최근의 가장 두드러진 사례일 뿐이다. 의정부 여중생 사망 항의 촛불시위, 한나라당의 노무현 탄핵에 반대한 시위, 의회에 진출한 사상 최초의 진정한 사회민주주의 정당(민주노동당)에 대한 태도, 우파 지도부가 들어선 민주노총에 대한 태도 등등도 마찬가지다.

노힘의 노동자주의는 ‘때때로 성공은 실패의 어머니’임을 보여 준다.

1980년대 후반 노힘의 전신인 ‘반제반파쇼민중민주혁명 그룹’(흔히들 ‘제파피디’로 줄임)은 당시에 폭발적으로 분출하던 민주노조 운동에 개입해서 칭찬할 만한 성과를 거두었다. 그 뒤 ‘제파피디’는 소련 붕괴의 여파로 조직이 와해되는 절체절명의 위기에 처했었다. 그러나 운동에 계속 남은 몇몇 지도자들이 노동조합 속에 내린 깊은 뿌리 덕분에 ‘제파피디’는 1996년부터 급속히 부활한 노동운동 속에서 다시 성장할 수 있었다.

그러나 바로 이것이 노힘의 모순이다. 그들은 1990년대 전반부의 일시적 조직 해체기에 노동자주의를 청산할 기회를 맞았으나, 노동조합 속에 내린 뿌리에 대한 미련 때문에 기회를 놓쳤다. 1996년부터는 노동조합 운동이 급속히 부활했으므로 노힘이 자신의 기반과 충돌하지 않고도 노동자주의를 청산하기는 불가능했다.

노동조합 운동이 비록 위기에 처해 있으나 요즘에도 여전히 강력하므로, 노힘은 자신의 주요 기반인 노동조합 좌파와 충돌하지 않고 노동자주의를 떨쳐버릴 수는 없다.

노힘의 중도주의는 노힘의 노동조합 기반과 관계 있다. 노동조합은 이데올로기와 관계 없이 사용자의 공세에 맞서 자신들의 권익을 지키기 위한 노동자들의 공동전선이다. 그러므로 노동조합으로부터 당을 건설하려는 단체는 노동조합의 혼란스런 이데올로기에 직면하게 된다. 노동조합원 가운데는 혁명적 사회주의자도 드물게 있겠지만, 우파적인 사람들도 있고, 각종 개량주의를 지지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일 터이므로 노동조합으로부터 당을 건설하려는 사회주의자들은 트로츠키적 의미의 중도주의, 즉 혁명적 사회주의와 개량주의 사이에서 동요하는 경향을 불가피하게 띠게 된다.

그래서 노힘은 회원인 이상욱 현대차노조 위원장에 대해, 금속연맹 집행부 선거에 대해, 1998년 현대차 공장점거 운동 당시 김광식 노조위원장에 대해, 그밖에도 수많은 경우에 분명하지 못하고 모호한 태도를 보여 왔던 것이다.

이런 비판에 더하여 민주노동당과 대비되는 선명성 부각 요구까지 결합돼 근래에 노힘은 초좌파적 종파주의마저 내재화하고 있다. 초좌파주의는 의회나 노조 또는 개량주의 정당을 그저 비난하기만 하고 그것과 밀접한 연계와 접촉은 기피하는 경향을 말하고, 종파주의는 이러저러한 구실을 들먹이며 현실 운동(현실의 인간들이 하는 일이니만큼 물론 결함이 많다) 동참을 회피하는 태도를 말한다. 필요하면 곡해해서라도 말이다.

이 같은 종파주의에 눈이 멀어 <노힘>은 ‘다함께’가 가시적으로 팻말과 펼침막 등을 통해 노무현 퇴진을 그토록 분명히 주장했는데도 노무현 퇴진 구호를 채택한 단체 목록에서 ‘다함께’를 제외했다.(지난 호 4면에 실린 허성호 편집국장의 답변을 보라. 또, 위의 사진을 보라.)

허성호 편집국장은 억지(“문학적 은유”)를 써가며 3-20 등 반전 운동의 흠집을 내려 그토록 애썼다.

심지어 그는 3-20이 “민주노동당의 파시즘적 행태들, 그리고 정말 파시스트들까지 참가한 대회였”고, “독도는 우리 땅”이라는 민주노동당의 배너 구호가 “국가주의적이고 파시즘적”이라고 했다.

이 대목에서 <다함께> 편집자들은 눈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었다. 심상정 씨 등 민주노동당 지도자들이 히틀러나 무솔리니와 사실상 동일시되다니!

1928년에서 1934년까지 스탈린의 지령에 따라 독일 공산당이 독일 사회민주당(SPD)을 “사회[주의적] 파시즘”으로 규정해, SPD와의 반나찌 공동전선 결성을 거부한 역사적 범죄가 떠올랐다.

노힘의 경우, 어떻게든 민주노동당을 우파, 국가주의자들, 준(準)파시스트들로 매도하고 자신만이 진정한 좌파임을 자처해야 하는 판에 민주노동당 내 좌파 ‘다함께’의 실체를 폭로하는 게 중요할 것이다.

우리는 제발 노힘이 맹목적 경쟁심에서 벗어나 민주노동당 등 다른 경쟁 단체들과 실천적 협력도 할 줄 알게 되기를 원한다.

노힘은 제4인터내셔널(FI)의 공식 한국 지부이다(http://reds.linefeed.org/usfi.html). 2001년 이후 제4인터내셔널은 국제사회주의경향(IST)과 통합을 논의해, 프랑스의 경우에는 IST에 속해 있고 ‘다함께’의 자매단체인 ‘아래로부터의 사회주의’가 FI 프랑스 지부인 혁명적공산주의자동맹(LCR)으로 통합하기도 했다. 우리도 노힘과 논쟁뿐 아니라 실천적 협력도 원한다.



최일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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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기는 나의 힘

글쓰기는 나의 힘!

디지털 사회에서 새롭게 조명받는 글쓰기…대중적인 설득력 지녀야 성공한다

▣ 글 김창석 기자 kimcs@hani.co.kr
▣ 사진 윤운식 기자 yws@hani.co.kr


△ 서울대 공대생들의 글쓰기 강의 모습. 빔 프로젝터를 통해 철저한 첨삭지도가 이뤄진다.

“지극히 평이하고 재미없는 글이군요.”
강의를 맡은 김재영 박사의 목소리가 날카로웠다. 빔 프로젝터로 벽에 쏜 글에는 밑줄과 함께 빨간색과 파란색으로 바뀐 부분이 유난히 많았다. 색깔이 화려한 것은 첨삭을 그만큼 많이 했다는 뜻이다. ‘조선 후기 과학에 관한 관점’이라는 제목이 붙은 이 글을 쓴 학생은 나름의 분석을 덧붙였다. “제 글의 문제점은 몇개 문장 단위로 조각이 나서 전체적인 글의 유기성이 떨어지는 점인 것 같습니다.”

5월3일 오후 1시 서울대 61동 교수학습개발센터 지하 1층. 이 대학 공대생들을 대상으로 한 ‘과학과 글쓰기’ 강의의 풍경이다. 강사의 설명이 이어졌다. “영어는 명사 중심의 글이지만, 우리말은 술어 중심의 글이죠. 한자어를 너무 많이 쓰는 것도 우리글의 매끄러운 맛을 떨어뜨리는 요소입니다.” 글의 전체적인 구도도 보면서 문장 하나하나도 지적해주는 방식이다.

대학국어 작문 위주로 바뀌고 있다

강의 이후 취재팀을 따로 만난 김 박사는 “현장에서 과학기술자들 절반 이상이 글쓰기 능력이 자신의 경력에 심각한 영향을 미친다고 말하고 있지만, 정작 이공계 학생들에 대한 글쓰기 교육은 아직 걸음마 단계”라면서 “그나마 학생 수가 적고 첨삭이 가능한 시스템을 갖추고 있어서 학생들의 글쓰기 능력이 상당히 빠른 시간에 발전하는 것을 느낀다”고 말했다. 그는 책을 하나 건넸다. 책 제목이 〈scientists must write〉였다. 외국 대학들에서 쓰는 이공계 대학생들을 위한 글쓰기 교과서였다. 서울대에는 아직 글쓰기 교과서가 없다. 현재 개발 중이다. 학교 당국은 신입생들이 교양필수 과목으로 수강해야 하는 ‘대학국어’ 과목을 기존의 읽기 위주에서 글쓰기 위주로 바꿨다. 실제로 글을 써보고 첨삭을 하는 방식이다. 대학 국어교육이 근본적인 대전환의 길로 접어든 것은 30년 만의 일이다.

‘글쓰기 교육의 강화’라는 기치를 내걸고 있는 서울대 기초교육원의 강현배 부원장(수리과학부 교수)은 이런 변화에 대해 “박사나 석사 논문에도 비문을 쓸 정도로 글쓰기가 엉망이라면 학문의 수준이 높아질 수 없다”며 “현재 약대가 필수로 바꾸고 있고 공대도 2007년부터 글쓰기 강의를 필수로 바꿀 계획”이라고 말했다. 그는 “비판적인 사고와 글쓰기가 분리될 수 없는 만큼 앞으로 글쓰기의 중요성은 더욱 강조될 전망”이라고 덧붙였다.


△ 최근 대학들에서는 '글쓰기교실' 이나 '글쓰기 강좌' 가 급증하고 있다. 사진은 서울대 기초교육원의 글쓰기교실.

글쓰기 열풍은 다른 대학들에도 상륙한 지 오래다. 가톨릭대는 교양교육원 기초교육원에서 글쓰기와 말하기 중심의 교육을 하고 있다. 이창우 교학부장(철학과 교수)은 “지식기반 사회의 핵심 역량인 문제분석 능력과 문제해결 능력을 강화하고 이를 타인에게 전달할 언어능력을 키우는 게 시급하다”며 “글쓰기는 지식기반 사회가 요구하는 핵심 기초능력을 키워주는 가장 효과적인 수단”이라고 강조했다. 글쓰기 교육이 필요한 이유에 대해 그는 “맞춤법같이 기술적인 능력도 부족하지만 자신의 생각을 조직적으로 전개하는 능력이 가장 부족한 것 같다”고 덧붙였다.

가톨릭대 이외에도 성균관대, 연세대, 숙명여대, 서원대, 서울시립대, 한림대 등이 글쓰기 교육 강화를 실천하고 있는 대학들이다. 영남대는 과학기술부 원자력 국장으로 재직하다 ‘대국민 공고문안을 잘못 썼다’는 이유로 좌천된 뒤 글쓰기 전문강사로 변신한 임재춘씨를 공대 객원교수로 초빙해 글쓰기 교육을 강조하고 있다. 임 교수는 “기술이 문제가 아니라 글쓰기가 문제”라고 외치고 다니는 ‘글쓰기 전도사’가 됐다. <한국의 이공계는 글쓰기가 두렵다>는 책까지 펴낸 그는 “이공계 출신들이 푸대접을 받는 이유 가운데 하나는 글쓰기 실력이 나빠 의사소통 능력이 떨어지기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성공하려면 글쓰기지수(WQ)가 높아야?

글쓰기를 강조하는 사회적 흐름은 대학 울타리를 넘어 사회 전체로 번지고 있다. 글쓰기가 개인의 문화자산이자 브랜드 가치를 높이는 핵심 노동이라는 인식이 퍼진 지는 이미 오래다. 가장 아날로그적인 노동인 글쓰기가 디지털화한 세상에서 오히려 가장 화려한 빛을 내고 있는 셈이다. 멀지 않은 미래에 사회적 성공의 기준 또는 잣대의 하나로 ‘글쓰기 지수’(WQ·Writing Quotient)가 등장하는 날이 올지도 모른다.


△ 어릴 적부터 가르치는 체계적 글쓰기는 비판적인 사고를 기르는 데 큰 도움을 준다.

입시와 입사 과정에서 글쓰기를 요구하는 수준과 비율도 점점 높아질 것으로 보인다. 이미 몇몇 언론사들에서는 영어능력을 측정하는 토익시험처럼 한국어능력시험 점수를 요구하고 있다. 과장 승진시험에서 논술시험을 필수적으로 통과해야 하는 한국전력공사 신기정 과장은 “종합사고능력을 평가하는 데 논술만큼 좋은 도구는 없다”면서 “시험 때마다 각 대학의 교수들한테서 복수의 시험문제를 받아 출제하고 있다”고 말했다. 최근 각 대학들이 논술을 본고사의 유력한 대안으로 거론한 직후부터는 또 다른 방향의 글쓰기 열풍이 불지 모른다는 예측도 나오고 있다.

지난해 상반기부터 <디지털 시대의 생존전략, 글쓰기의 힘>(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 펴냄)이라는 책을 준비해온 한미화씨는 “최근 출판계의 도드라진 흐름은 글을 맡길 수 있는 필자가 여러 분야에서 다양하게 생겨나 그 저변이 급격히 확대됐다는 점”이라며 “글쓰기의 전 분야에서 주체가 변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글쓰기의 권력지도가 변하고 있다는 것이다. 전통적 권력자들인 교수, 시인, 소설가 등이 힘을 잃었고, 각 분야의 전문가들 가운데 글솜씨가 있는 이들이 그 자리에 들어서고 있다.

그는 또 “가장 중요한 화두는 뭐니뭐니해도 인터넷”이라고 전제한 뒤 “인터넷이 일반화한 이후 역설적으로 글쓰기가 더 중요해졌다”고 강조했다. “이메일에, 홈페이지에, 블로그에 누구나 일상적으로 글을 쓰는, 또는 쓰고 싶어하는 환경에 놓여 있다”는 게 그의 분석이다. 이 때문에 “글쓰기는 디지털 시대에도 꼭 필요한 문화 유전자이자 문화 생존 전략”이라는 것이다.

전문가들도 이제는 글쓰기를 잘해야 자기 분야에서도 인정받고 대중과도 소통하는 진정한 스타가 될 수 있다. 전문가의 언어가 아니라 대중의 언어로 발언하는 것은 이제 전문가들에게 필수능력이다.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가 없었더라면 유홍준 문화재청장이 탄생하지 못했을 것이라는 분석은 그래서 일리가 있다. 그의 글쓰기가 지닌 대중과의 소통 능력이 없었더라면 그는 평범한 저술가로 머물렀을 것이고, 문화재 행정의 최고 사령탑 자리는 꿈도 꾸지 못했을 것이다. 각각 30만부와 7만부라는 판매량을 기록한 <과학콘서트>와 <물리학자는 영화에서 과학을 본다>라는 책이 성공한 뒤 두 책의 저자인 정재승씨는 박사학위 논문을 준비하던 젊은 과학자에서 카이스트 바이오시스템학과 교수가 됐다. 글쓰기가 직업적 성공을 이끄는 가장 강력한 도구였던 셈이다.

‘그들만의 리그’를 벗어난 전문가들의 질주


△ 글쓰기가 대학 국어교육의 화두가 되고 있다. 가톨릭대와 서울대의 대학국어 교재.

글쓰기와 애초부터 먼 것처럼 여겨지는 분야에서 글 잘 쓰는 전문가들은 그래서 더욱 극진한 사랑을 받는다. 화가 김병종·한젬마·김점선씨 등과 이주헌·노성두·박영택씨 등은 미술 분야에서 꼽히는 글쓰기 전문가들이다. 건축가 김진애씨는 책이 이름나 텔레비전에까지 진출한 경우다. 영화와 법 이야기를 대중적 언어로 풀어냈던 서울대 법대 안경환 교수, 문학을 하는 사람의 감성을 유지해 언론계의 사랑을 받고 있는 김형태 변호사, 시사적 감수성과 대중적인 문체로 각광받는 차병직 변호사는 법조 분야의 전문가들이다. 역사 분야의 치밀한 고증과 해석을 재담꾼의 수준으로 풀어내는 한홍구식 역사 글쓰기법 역시 다른 분야 전문가들의 벤치마킹 대상이다.

이곳에 언급된 전문가들의 공통점은 자신들의 영역을 보여주되 그 고갱이에서부터 주변부까지 두루 보여주는 진지함을 유지하면서도 대중적인 설득력과 소통력을 지녔다는 데 있다. ‘그들만의 리그’에서 ‘그들만의 언어’로 속삭이지 않고, 그것을 대중들이 알아들을 수 있는 이야깃거리로 만들어내는 능력을 지녔다는 것은 그들이 그만큼 녹록지 않은 인물들이라는 방증이기도 하다. 백승헌 변호사는 “전문가들은 일부러 글쓰기에서 ‘구획 짓기’를 하기도 하는데 판사들의 글쓰기가 대표적인 사례”라며 “전문가의 글쓰기가 대중적이지 못한 이유는 전문가 집단 안에서 통용성을 더 중요하게 생각하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봄이 와도 새는 울지 않는다”는 시적 표현으로 살충제의 남용을 경고한 레이철 카슨이 인류 최고의 생태학자는 아니지만, 그는 <침묵의 봄>이라는 저서를 통해 위대한 생태학자로 사람들의 기억에 남아 있다. 남쪽 비전향 장기수들의 감옥 안 역사는 우연히 동료 양심수가 된 소설가 김하기가 <완전한 만남>가 쓰지 않았다면 세상의 빛을 보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역사에 기록될 글쓰기가 아니더라도 생활을 정리하고 생각을 기르는 데 글쓰기 지수를 높이는 것은 생활인의 필수덕목이 되고 있다. 바야흐로 글쓰기 시대다.


글 못 쓰는 이공계, 보따리 싸라

설득력 있는 글로 성공한 최재천 교수… “과학 분야일수록 쉽게 풀어 쓰는 고도의 능력 필요”


△ (사진/ 한겨레 김태형 기자)

최재천 교수(서울대 생명과학부)는 글쓰기를 통해 ‘자기 분야에서 인정받기 → 대중과 소통하기 → 사회적 발언력 확보하기’에 잇달아 성공한 대표적 인물이다. 5월4일 연구실에서 취재팀을 만난 최 교수는 “디지털이 아무리 새로워진다고 해도 우리는 그 내용을 아날로그로 구상하고 채워야 한다”며 “궁극적으로는 모든 게 글쓰기로 통한다”는 평소 지론을 다시 한번 폈다.

그는 지난해 여성단체에서 주는 상을 받았다. 동물들의 세계와 비교해가며 호주제의 비과학적 측면을 비판한 점이 대중적인 호소력을 가져 결국 호주제 폐지에 도움을 줬다는 게 여성단체의 설명이다. 요즘도 양성평등 문제가 사회적 이슈가 될 때마다 기자들의 전화를 받을 정도로 사회적 발언력이 커졌다.

그는 “문인 친구들도 많이 생겼다”고 자랑했다. “은희경, 김형경, 공지영 등 대한민국에서 유명한 소설가들이 신간을 써낼 때마다 빠짐없이 책을 보내올 정도”라고 했다. 최 교수가 대중적으로 이름을 알린 계기는 잡지에 연재한 글을 모아 만든 책인 <개미제국의 발견>이 나오면서부터였다. <생명이 있는 것은 다 아름답다>(2001)가 나온 뒤로는 ‘문학적 형상화 능력까지 갖춘 과학자’로 인정받았다. 과학과 사회를 연결시키는 인문학적 토대와 함께 정확성·구체성을 추구하는 문장 스타일은 그의 글에 날개를 달아줬다.

그는 글쓰기 능력을 보는 사회 일반의 시각에 문제가 있음을 강조했다. 특히 “과학 분야는 글쓰기가 더 필요한 분야인데도 아직 사회적 편견은 그대로”라고 말했다. “외국에는 자연과학자는 글을 잘 써야 한다는 게 공식인데 우리나라는 고등학교 때부터 글 좀 쓴다고 하면 문과 가라고 하고, 못 쓴다고 하면 이공계로 가라고 한다”는 것이다. 과학 분야에 더 높은 글쓰기 능력이 요구되는 것은 “어려운 내용을 쉽고 설득력 있게 써야 하기 때문”이란다. 세계적인 과학 논문도 설득력 있게 쉽게 잘 써야 잘 인용된다는 것이다.

그가 자주 드는 사례는 DNA 이중나선 이론을 만드는 데 함께했던 제임스 왓슨과 프랜시스 크릭의 경우다. “사실 크릭이 실무적으로나 이론적으로 더 뛰어났지만, 사람들은 왓슨만 기억해요. 그 사람이 쓴 <이중나선>이라는 책 때문이죠. 대중적이고 솔직담백하고 멋지고 후련한 책입니다. 과학자가 썼다고 보기 어려울 정도죠. 그것 때문에 왓슨은 20세기 가장 위대한 과학자 가운데 한명으로 기록됩니다. 다른 경우도 마찬가지죠. 아인슈타인이나 파인먼은 또 어떻습니까.” 적어도 보여줄 게 있는 과학자 가운데 글을 잘 쓴 과학자들이 가장 유명해진다는 게 그의 주장이다. 학생들 중에도 “‘나는 글을 못 쓰니까 이공계 왔다’는 얘기를 하면 나는 당장 ‘보따리 싸라’고 호통친다”고 그는 전했다.

연구실을 나오기 전 그의 서가를 다시 한번 꼼꼼히 살폈다. 책이 많았다. 족히 수천권은 돼 보였다. 동네 비디오가게에서나 볼 법한, 바닥에 바퀴를 단 이중책장도 있었다. <법과 문학 사이> <담배와 문명> <다시 찾은 우리 역사> <로자 룩셈부르크 평전> 등이 눈에 띄었다.



남의 일기장을 탐하지 마라

글쓰기의 적들은 누구인가… 한줄짜리 댓글, 일률적인 논술시험, 일기장 검사


글쓰기 지수를 계량화할 수 있다면 한국인들의 평균 점수는 얼마나 될까.

모르긴 해도 좋은 점수를 받기는 힘들 것이다. 글을 쓰기보다는 휴대전화 문자메시지에 열광하고 인터넷 자유게시판에 다는 한줄짜리 댓글에 더 열심인 젊은 세대를 봐도 그런 예측이 가능하다.

전문가들은 대한민국의 글쓰기 지수를 떨어뜨리는 가장 큰 주범은 ‘획일적인 글쓰기를 강요하는 교육 시스템’에 있다고 말한다. 현재 대학입시에서 실시되는 논술시험이 대표적인 경우다. 논술 수준은 본질적으로 독서를 얼마나 많이 했느냐와 생각을 얼마나 깊게 했느냐에 따라 달라지는데, 지금의 논술은 천편일률적으로 테크닉만을 가르치기 때문이다.

서울대 기초교육원 강현배 부원장은 논술시험을 채점한 경험을 털어놨다. “수백명의 글을 읽는데 어떻게 그렇게 똑같은 내용과 똑같은 형식의 글을 쓰는지 소스라치게 놀랐어요. 그리고 그런 글을 반복적으로 읽다 보니 짜증이 나서 견딜 수 없었습니다.”

좋은 글쓰기는 개성적인 생각을 자기 식대로 펼치는 데서 출발하는데, 적어도 현재의 논술 대비 공부는 그것과는 정반대 방식으로 진행되고 있는 것이다. 타계한 국어학자 고 이오덕 선생은 이 때문에 “글짓기를 할 생각 하지 말고 글쓰기를 하라”고 강조한 바 있다.

이런 측면에서 볼 때 인권위 권고 조처로 논란이 일고 있는 ‘일기장 검사’도 글쓰기 지수를 떨어뜨리는 대표적인 경우로 꼽을 수 있다. 일기는 대표적인 자기성찰적 글인데다 본격적인 글쓰기의 첫 경험인 경우가 대부분인데, 이 소중한 경험을 망쳐놓기 때문에 어릴 때부터 글쓰기를 체질적으로 싫어하게 된다는 분석이다. 일정한 분량을 몇번 반복해서 베껴쓰는 글쓰기 숙제도 생산적인 글쓰기를 망친다. 개성적이고 비판적인 사고가 개입할 여지를 처음부터 막는 방식이라는 것이다.

다행히 한국에서도 대학입시를 위한 글쓰기가 아니라 어릴 때부터 창의적인 글쓰기를 체질화하자는 취지의 교육을 하려는 시도들이 있기는 하다. 지난 5월6일 서울 청파동 한 주택가에서 취재팀이 확인한 가정방문형 글쓰기 수업의 경우 ‘생활 속 경험을 자연스러운 글쓰기’로 유도하는 방식을 채택하고 있었다. 그날은 초등학교 5학년 학생 4명이 초등학생 수준에 맞는 이력서 쓰기를 수업 내용으로 삼아 글쓰기를 하고 있었다. 10년 이상 이런 방식의 글쓰기 교육을 해온 ㅅ교육 관계자는 “아이들과 교사들보다는 오히려 부모님들이 이런 식의 글쓰기를 이해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며 “당장 점수로 환산하지 못하는 글쓰기를 인정하지 않는 것”이라고 말했다.

프랑스 대학입학 자격시험인 ‘바칼로레아’에는 이런 시험문제가 나온다. 꿈은 필요한가, 사랑이 의무일 수 있는가, 행복은 인간에게 도달 불가능한 것인가, 감각을 믿을 수 있는가, 인류가 한 가지 언어만을 말하는 것은 바람직한가…. 대한민국의 글쓰기 지수가 진짜 높아지려면 고등학생들이 이런 질문을 두고 자유롭게 토론할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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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전] 맑스 엥겔스의 기념비 제막식에 즈음하여 -레닌

 

맑스 엥겔스의 기념비 제막식에 즈음하여


레닌


  지금부터 세계 노동자혁명의 지도자 맑스와 엥겔스의 기념비 제막식을 올리겠습니다.

  수세기 동안 인류는 한줌도 되지 않는 착취자들의 억압으로 고통받으며 신음해왔습니다. 이 한줌도 되지 않는 착취자들이 수천만의 근로자들을 조롱해왔던 것입니다. 그러나 전 시대의 착취자들-지주-에게 약탈당하고 학대받아 온 자가 뿔뿔이 흩어져 있던 무지한 농노적 농민이었다면 새로운 시대의 착취자인 자본가들은 피억압대중 속에서 이 대중의 선진부대인 도시 공장노동자, 공업노동자를 찾아냈습니다. 공장이 공업노동자들을 단결시키고, 도시생활이 그들을 계몽시켰으며, 공동의 스트라이크투쟁과 혁명적 행동은 그들을 단련시켰습니다.

  맑스와 엥겔스의 위대한 세계사적 공헌은 자본주의가 붕괴하며 그리하여 공산주의로 이행해 가는 것이 불가피하다는 사실을 과학적 분석에 입각하여 증명하였던 일입니다. 이 공산주의 아래에서는 급기야 인간에 의한 인간의 착취가 없어질 것입니다.

  맑스와 엥겔스의 위대한 세계사적 공헌은 온나라 프롤레타리아트에게 그들의 역할, 그들의 임무, 그들의 사명을 제시하였던 일입니다. 말하자면 자본에 대한 혁명적 투쟁에 곧바로 일어서서 이 투쟁 속에서 자신들의 주위에 모든 근로자, 피착취자를 결집시키는 일, 바로 이것입니다.

  우리는 위대한 사회주의자들의 이 예견이 막 실현되기 시작한 행복한 시대에 살아가고 있습니다. 우리는 모두 프롤레타리아트의 국제 사회주의혁명의 서광이 많은 나라들에서 비쳐오고 있음을 보고 있습니다. 각 국민들에 대한 제국주의적 학살의 형용할 수 없는 참화는 어디에서나 피억압대중들의 영웅적인 궐기를 불러일으키고 있으며 해방투재에서 그들의 힘을 수십 배로 높이고 있습니다.

  맑스와 엥겔스의 이 기념비가 수천만의 노동자와 농민에게 우리가 외롭게 투쟁하고 있지 않음을 끊임없이 상기시켜 줄 것입니다. 우리와 함께 선진 나라들의 노동자들이 계속 일어서고 있습니다. 그들의 앞길에는 또는 우리들의 앞길에는 더욱 격렬한 투쟁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공동의 투쟁 속에서 자본의 쇠사슬은 끊어지고, 사회주의가 최종적 승리가 최종적으로 승리하리라 확신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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되살아나는 사회주의자들

[해외논단]되살아나는 사회주의자들
[세계일보 2005-03-23 22:18]
누군가가 사람들을 경멸하고 자기네 정부 손에 수억명이 목숨을 잃게 한 어떤 사상을 옹호한다면 독자들은 그를 어떻게 생각할 것인가. 물론 내가 말하는 그 사상은 사회주의와 공상적 사회주의자, 페이비언 사회주의자, 국가사회주의자, 그리고 당연히 공산주의자들을 포함한 다양한 그 변종들을 가리킨다.

사회주의는 단지 정부(혹은 공동체)가 생산수단을 소유하고 통제하는 경제체제를 말한다.

공상주의자나 마르크스주의자, 혹은 페이비언주의자를 막론하고 지난 200년간 사회주의 실험이 경제적 실패와 개인 자유의 상실을 초래했다는 사실을 고려할 때 전 세계적으로 여전히 자랑스럽게 사회주의자를 자처하는 사람들이 존재하는 것은 무엇 때문인가.

사회주의 정당들은 여전히 유럽 일부와 라틴아메리카, 그리고 아프리카 상당 지역에서 인기가 있다. 최근 몇 개월간 스페인과 포르투갈에서는 사회주의 정당이 집권했다. 미국 대학가에서는 많은 교수와 학생이 사회주의자를 자처하고 있다.

이른바 ‘국가사회주의자’들은 수천만명의 목숨을 앗아갔다. 러시아와 중국, 캄보디아, 그리고 여타 지역에서 공산주의자들은 1억명 이상의 집단 죽음을 초래했다. 1992년 내가 우연히 크렘린에 있었을 때 러시아 인구학자들은 1923∼53년의 스탈린 통치 기간에 소련에서 6300만명의 ‘과잉 사망자’가 발생했다고 발표했다.

제3세계 사회주의자들은 자기네 나라를 반세기 동안 불필요하게 빈곤에 빠뜨렸다. 영국 민주사회주의자들은 1945년 클레먼트 애틀리 총리 하에서 정권을 잡았고 그 결과 영국경제는 파탄에 빠졌다.

다른 민주사회당 정부들도 마찬가지의 실패를 거듭했으며, 그 결과 80년대에는 경제성장을 재점화하는 데 명백히 필요했기 때문에 민영화가 대세를 이루었다.

하지만 사회주의자들은 계속 되살아나고 있다. 그들은 과거의 실패를 부인하거나 외면하며 다음 번에는 “제대로 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한다. 사회주의는 그 실제와 함께 이론 역시 결함을 지니고 있기 때문에 실패하고 있고 앞으로 계속 실패할 것이다.

1920년대의 탁월한 경제학자인 루드비히 폰 미제스는 사회주의가 자원을 올바르게 배분할 수 있는 가격체제에 대한 적절한 대안을 제시할 수 없기 때문에 제대로 기능할 수 없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노벨상을 받은 경제학자인 F A 하이에크도 ‘치명적 자만’이라는 자신의 마지막 저서에서 같은 주장을 폈다.

만약 우리가 사회주의 실험과 그 잘못된 이론의 실제 역사를 안다면 망상이나 악의에 빠진 경우를 제외하고 어느 누구도 사회주의자가 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교육계와 언론계 상당 부분이 대대적인 은폐 술책을 쓰고 있기 때문에 사회주의적 재난의 역사를 알지 못한다.

전 세계적으로 많은 교사들이 교실에서 사회주의적 모델이 실제나 이론적으로 작동되지 않는다는 자료를 가르치거나 도입하기를 꺼린다.

미국과 여타 국가들의 조사에서 압도적인 다수의 교수와 공립학교 교사는 정치적 성향에서 좌편향되어 있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따라서 그들이 사회주의 사상이 실패라는 역사와 이론을 가르치기를 주저하는 것은 놀랄 일이 못된다.

세계적으로 많은 전자매체는 정부의 소유나 통제 하에 있다. 미국에서는 전국공영방송(NPR)이 사회주의 정책의 끝없는 실패의 이유는 물론 그 사실조차 거의 언급하지 않은 채 민간부문의 실패 사례들을 지속적으로 방송하고 있다. 많은 NPR들은 영국 BBC 프로를 중계하고 있는데, 그 이유는 부분적으로 미국인들에게 사회주의적 사고방식을 선전하려는 것이다.

대다수 미국인은 정부 소유의 BBC가 영국 방송매체들, 특히 뉴스를 점차 독점하면서 좌익을 편들고 있다는 사실을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

워싱턴 타임스

정리=권화섭 객원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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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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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론회가 재미없는 이유 - 토론회 전문기자

[칼럼] 토론회가 재미없는 이유
오창엽     메일보내기
최근 각종 토론회들을 취재하고 있다. 확인해 본적은 없지만 다른 매체의 기자들에게 “국내 유일의 토론회 전문 기자입니다”라고 소개하곤 한다. 프로메테우스 기자들도 그러하지만 토론회를 좋아하는 기자는 드물다.

토론회 취재. 시간 많이 걸리고 골치 아프고 기사로 작성하기도 어렵다. 행사 개요만 소개하고 한두 명 발언을 소개하는 짧은 보도기사라면 모를까, 그 내용과 주제를 독자들에게 적절한 분량으로 그리고 쉽게 전달하려면 무척 많은 시간과 힘이 드는 작업이다. 게다가 독자가 그 자리에 참석하지 않아도 마치 참석해서 보는 것처럼 생생하게 전달하려면 영상으로 녹화하여 보여주지 않고서는 거의 불가능하다. 토론회를 담은 몇 시간짜리 인터넷 영상을 몇 명이나 보겠는가.  

말 보다 중요한 건 뜻

나의 토론회 기사 취재 목표는 뚜렷하다. 전문가들이 진지하게 연구하여 토론회 장소에서 치열하게 토론한 내용을 시간 순서대로 정리하고, 그 핵심 주제를 환기시키고, 각각의 주장을 정확하게 전달하되 토론자들의 ‘진단’과 ‘분석’과 ‘대안’의 공통점과 차이점까지도 드러내 주려고 한다. 토론회 현장에서는 발제문으로 대신하고 넘어가는 대목도 많다. 그럴 때는 그 자리에서 발언하지 않았어도 자료집을 참고해서 그의 말과 글을 종합한다. 말한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말하고자 한 취지와 뜻이기 때문이다.

나는 진지한 사회학 분야의 책들과 철학 관련 책들을 비교적 덜 지루해 하며 읽는 편이고 난해한 예술영화들도 인내심을 갖고 보는 편이다. 그래서 자료집을 참고하면서 토론자들의 발제와 토론을 들으며 보내는 토론회 참관 시간이 그리 괴롭진 않다. 그런데 대부분의 토론회가 진지하긴 하지만 열에 아홉은 재미없다. 진지하면서도 재밌는 토론은 MBC백분토론 밖에 없는 듯하다.

토론이란 무엇인가?

보도자료를 보아도 그날 사회자의 소개를 보아도 분명 행사의 이름은 ‘토론’회인데 그것이 이루어지지 않는 행사가 너무 많다.

토론(討論, discussion / debate)이란 기본적으로 대화다. 무엇에 대해 누구와 대화(discuss)하는 것이며 무엇에 관해 (서로) 이야기하거나 의논하는 것이다. 즉 토론은 옆 사람이든 앞 사람이든 다른 사람과 대화를 나누며 각 자의 견해를 밝히는 것이다. 토론은 그 문제의 이해를 높이고 그 주제를 논의해서 진단하고 대안을 찾는 일련의 의사소통 행위다. 대안을 못 찾더라도 제대로 진단이라도 하면 문제해결의 실마리가 생긴다.

대화가 사라진 자리에 방백만이

그러나 최근 내가 다녀본 토론회에 ‘대화’는 없고 ‘방백’만이 존재했다. 독백은 연극에서 어떤 ‘배우가 상대역 없이 혼자 말하는 행위 또는 그런 대사’를 말하고 방백은 ‘등장인물이 말을 하지만 무대 위의 다른 인물에게는 들리지 않고 관객만 들을 수 있는 것으로 약속되어 있는 대사’를 뜻한다. 토론회에 참석한 토론자들이 대화를 안 하고 방백을 한다는 게 믿어지는가. 실제로 참석해본 사람들은 무슨 이야긴지 이해할 것이다.

토론회에 초대되어 참여한 토론자들이 다른 토론자의 주장과 발언에 대해 시시비비를 따지지 않고 서로 박수만 쳐 준다. 주장에 동의해서 박수를 치는 지 떠드느라 고생했다는 건지 속내는 알 수 없다. 출연자들이 다른 토론자의 주장과 내용에 무관심하다면 그것이야 말로 차례로 방백을 한 게 아닌가. 요즘 토론회 자체가 요식행사요, 학예회 발표회와 다르지 않으므로 그 전체가 일종의 ‘연극’이라는 것을 부정하긴 어렵다. 그러나 왜 맨 날 독백과 방백만 있냐는 것이다. 등장인물들의 치열한 갈등과 대립이 포함된 논쟁이 있는 그런 연극도 해보라는 말이다.

치열한 토론은 섭외부터 다르다

앞서 백분토론이 재밌다고 했다. 백분토론은 방송국의 토론전문 프로그램이므로 다른 토론회들과 비교하면 억울할 것이다. 그러나 중요한 차이가 있다. 백분토론에는 입장의 차이를 가진 이들이 한 토론회에 등장한다.

정치인이든 학자든 반대 되는 입장을 가진 대표자들을 모아 놓고 싸움을 붙인다. 그러다보니 상대의 발언을 자르거나 무시하거나 못 들은 척도 하지만 결국 대화를 기본으로 한다. 토론 내내 긴장감이 넘친다. 사회자도 그런 차이를 봉합하려 하지 않는다.

문제는 토론의 기획자가 진정 치열한 토론을 기획한 것인가 아니면 그냥 사업 가운데 하나이니 관성적으로 그런 행사를 억지로 수행한 것인가에 차이가 있다. 기획자가 토론자들을 섭외하고 적절히 선정할 때부터 토론회의 분위기는 거의 정해진다.

훌륭한 사회자가 제대로 된 토론을 이끈다

그 다음 사회자의 몫이며 스타일이다. 성품 좋은 어른이 후배들 모아 놓고 순서대로 말하라고 해서 토론이 될 리가 없다. 대부분의 사회자들은 시간 배정과 약속도 지키지 못해 나중의 발제자들과 토론자들의 발언 시간을 줄인다. 그들 역시 발언 시간이 줄면 불편해 하는 게 아니라 그걸 핑계 삼아 ‘요점만 간략히’ 발표한다. 말 적게 하고 같은 돈 받으니 뒤에 배치되면 운이 좋은 것인가? 장소를 예약한 시간을 넘기기 일쑤여서 청중 질문과 토론을 반기지 않는다.

90년대 운동진영의 토론회에서는 논쟁하는 장면을 종종 보았다. 그 후로도 총선이나 대선 등 선거와 관련해서는 각 정당과 정치세력을 대변하는 토론자들이 다른 세력을 비판하곤 한다. 그러나 평소에 그런 논쟁은 일어나지 않는다. 선거 즉 표와 직결되지 않으면 입 아프게 논쟁하지 않는 것이다. 토론회에서 상대를 압도한다고 해서 대중의 지지가 바뀌는 것도 아니다.

서로를 비판하지 않는 완벽한 사람들

정치적 입장과 평소 사회를 보는 세계관이 비슷한 사람들이 모인다. 평소에도 친하여 같이 술 먹고 밥 먹는 사람들이 모인다. 표정만 봐도 무슨 뜻인지 아는 사람들 사이에 무슨 허심탄회한 토론이 필요하겠는가. 늘 비슷한 주제의 토론에 초대받는 사람들끼리 무슨 날선 비판이 되겠는가. ‘빨리 끝내고 어디 가서 술이나 한잔 하지’라는 말을 안 할 뿐 이심전심이다.

토론회에서 망신당하여 학계를 떠났다거나 운동을 접었다는 이야기를 듣지 못했다. 공개된 자리에서 비판을 받지 않기에 인식이 바뀌거나 그 조직의 노선이 달라지지 않는다. 그렇다고 해서 잡지의 지상논쟁이라도 활발한가. 세상에 그렇게 완벽한 이론가들 정책담당자들 학자들이 존재하는데 왜 잘못된 사회를 바꾸는 일은 그리 안 되는 것일까.

노동조합이나 무슨 연맹에서 하는 토론회는 조합비 걷어서 토론회 열고 자료집 찍고 발제자와 토론자들에게 수고비를 주지 않는가. 정당은 당비로 단체는 회비로 그런 행사를 치르지 않는가. 치열하게 진행할 토론회가 아니라면 차라리 그 돈으로 투쟁하는 조합원들 지원하거나 노조도 없는 곳들 지원하거나 어려운 사람들을 돕는 게 낫지 않을까.

한국의 토론문화가 수준이 낮다는 지적이 많다. 그럴수록 그러므로 이른바 ‘진보’를 공유하고 있고 ‘운동’과 관련된 단체와 학자들은 치열하게 토론에 임해야 한다. 세상을 바꾸어야 한다고 말만 할 게 아니라 자신들의 태도부터 근본적으로 바꾸어야 한다.

다음 글에서는 그 동안 직접 취재하고 지켜보고 기사화 했던 각 토론회들을 되돌아보고 그 내용과 형식을 비교 평가해 보겠다.
2005/05/14 [19:37] ⓒprometheu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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