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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경제와 복지국가(정승일 강연)

 

"최악의 공황이 온다…우린 정말 재수 없는 세대" (프레시안, 김덕련 기자, 2012-05-24 오후 12:05:19)
[강연] 정승일, '한국 경제와 복지국가' 강좌에서 김상조 등 정면 비판
정승일 복지국가소사이어티 연구위원은 23일 저녁 '세계 금융 위기, 왜 발생했고 왜 계속되는가'라는 주제로 서울 마포구 복지국가소사이어티 교육실에서 강연했다. 복지국가소사이어티에서 주최하는 연속 강좌 '한국 경제와 복지국가' 중 첫 번째 강연이었다. 이날 정 연구위원은 1929년에 시작된 대공황, 1997년 말 한국을 강타한 외환위기, 그리고 최근 국제적으로 관심을 끌고 있는 그리스 문제 등을 비교하며 한국 경제가 나아갈 방향에 대한 견해를 밝혔다.
정 연구위원은 "인류가 경험한 가장 큰 경제 위기는 대공황이며, 그 후 최악(으로 꼽을 수 있는 것)이 지금 우리가 겪고 있는 것"이라며 "그런 의미에서 우리는 정말 재수 없는 세대"라고 말했다. 이번 위기에 대해 정 연구위원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고 진단했다. "이제 2단계로 넘어가고 있다"는 말이다. 정 연구위원은 "대공황이 시작된 건 1929년이지만, 본격적으로 전개된 건 (그로부터 4년 후인) 1933년"이라며 지금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다고 말했다. 2008년 리먼브러더스 사태로 타격을 입었던 세계 경제가 안정되는 듯하다가, 최근 그리스 문제가 전면에 부각되면서 다시 출렁이는 상황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정 연구위원은 "그리스 사태는 쉽게 해결되지 않을 것이며, 그리스가 유로존에 남든 아니면 유로존에서 탈퇴하든 반드시 크게 터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와 관련, 정 연구위원은 그리스뿐만 아니라 이탈리아, 스페인까지 흔들리는 상황을 우려했다. 1997년 타이부터 한국까지 연달아 무너지며 동아시아 금융 위기가 발생한 것처럼, 유럽에서도 만약 이탈리아와 스페인까지 그리스 같은 상황이 된다면 큰일이 터질 것이라는 말이다.
정 연구위원은 "쓸데없이 공무원이 많고 복지가 과다하고, 그래서 망한 것 아니냐는 식으로 그리스를 비난하는 여론이 많다"고 지적했다. 이어 "이런 이야기를 유럽연합과 국제통화기금(IMF)에서 공개적으로 하고 있다"며 "이것은 앞뒤가 안 맞는 행동"이라고 비판했다. 사실상 그리스 국채를 사지 말라고 이야기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그리스를 도와줘야 한다는 건 아귀가 맞지 않는다는 것이다. 지금 같은 비상시국에서는 독일 등이 적극적으로 나서서 일단 그리스의 불부터 꺼주고, 그 다음에 장기적으로 구조 개혁 문제를 풀어가야 한다는 것이 정 연구위원의 판단이다.
이와 관련, 정 연구위원은 1990년대 한국의 경험을 반추했다. "1997년 외환위기가 터졌을 때 미국 경제학자 제프리 삭스가 국제통화기금을 비판했다. 삭스는 개발도상국을 위해 일하는 진보적인 학자라고 알려져 있지만, 실제로는 전형적인 신자유주의자다. 그런 삭스조차 금융자본주의에 대해서는 비판적이었다. 당시 삭스는 국제통화기금을 향해 '너희가 해야 할 건 불난 집에 가서 불이야라고 외치는 게 아니라 소방수 역할이다'라고 비판했다. 극장에서 불이 났을 때 조용히, 차분하게 끄는 게 아니라 불이야라고 소리부터 지르면 수백 명이 압사할 수 있(는 것과 같은 이치)다. 1997년에도 국제통화기금 뒤에 있는 미국이 조용히 400억 달러를 한국 정부에 꿔줬으면 (외환위기 없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었다."
정 연구위원은 "(역사적으로) 금융 위기의 패턴은 같다"고 진단했다. 금융 시장을 대폭 개방하면 흥청망청 달러 자금이 들어오고 그 결과 거품이 생기는 식이라는 것이다.
"박정희는 경제개발5개년계획을 하면서 첫 번째로 은행을 국유화했다. 대통령 산하 은행을 만든 것이다. 그러다 김영삼 정부 들어 은행이 본격적으로 민영화됐다. (…) 김영삼 정부는 외환시장에 대한 통제를 풀어버렸다. 그러자 한국의 은행들이 뉴욕이나 런던에 지점을 만들고 외국에서 (대규모로) 돈을 꿔오기 시작했다. 박정희 때는 그렇게 할 수 없었다. 은행들은 그때 봉이 김선달 식으로 장사를 했다. 외국에서 싸게(금리 3퍼센트 수준) 돈을 꿔서 한국에서 높은 금리(대출 금리 10%대)로 빌려줬다. 은행뿐만 아니라 종합금융사들도 그렇게 했다. 그 결과 외채가 급증했다. 김영삼 정부 초기에 400억 달러 수준이던 것이 말기에는 1400억 달러에 이르렀다. 이 중 400억 달러를 막지 못하면서 국가 부도가 난 것이다."
정 연구위원은 이 대목에서 "외환위기의 원인은 금융 시장을 마구 개방한 것이며, 그 책임을 재벌에게만 물을 수는 없다"고 주장했다. "IMF 위기가 터진 후 재벌의 탐욕을 비판하는 목소리가 높았다. 삼성, 대우 등 재벌들의 모럴 해저드(moral hazard) 때문에 금융 위기가 터진 것 아니냐는 것이었다. 이게 바로 자유주의 경제학이다. 탐욕의 과잉을 하느님, 즉 보이지 않는 손인 시장이 처벌한 것이라고 보는 방식이다. 그런데 (IMF 위기가) 재벌의 탐욕이 넘쳐서, 혹은 관료가 정경유착을 해서였다면 이승만, 박정희 때는 왜 안 터졌나."
정 연구위원은 "요즘 그리스에 대해 복지 과잉을 도덕적으로 비난하듯이, IMF 위기 때 한국에서는 복지가 없었으니 재벌과 관료의 탐욕을 비난했던 것"이라며 경제 문제를 도덕 이론으로 설명하려 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정 연구위원은 금융 위기를 막으려면 "보이지 않는 손이 아니라 보이는 주먹, 즉 정부가 나서야 한다"고 주장하며, 정부 개입에 부정적인 주류경제학자들을 비판했다. 아울러 금융 시장에 대한 통제, 주주자본주의에 대한 규제를 여러 차례 강조했다.
"(박정희 정권 때) 은행들의 외환 도입을 통제하던 경제기획원이 (김영삼 정부 출범 후) 없어졌다. 그 후 해외에서 돈을 꿔오는 걸 아무도 관리하지 않았다. 100퍼센트 확신한다. 만약 김영삼 정부가 '세계화', '박정희 체제 타도'라는 명분으로 경제기획원을 없애지 않았다면, 그리고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가입하지 않고 금융시장도 (대폭) 열지 않았다면 1997년에 외환위기가 터지지 않았을 것이다."
정 연구위원은 "(한국이) 박정희 때로 돌아가면 안 되지만, 그 시기에 잘했던 요소들은 채용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박정희 체제를 연상시키는 것들은 모두 폐기해야 한다는 식으로 접근하지 말자는 것이다.
정 연구위원은 1997년 외환위기의 경험을 돌아보며 경제 민주화론자들을 강도 높게 비판했다. 정 연구위원은 김상조 교수, 유종일 한국개발연구원 교수, 전성인 홍익대 교수 등 "정운찬의 제자들"을 거명하며 정면으로 비판했다. "외환위기가 터진 후 한국 정부는 자본을 투입해 은행을 사실상 국유화했다. 박정희 때로 돌아간 것이다. 이때 경실련과 참여연대 사람들 중 상당수는 은행 국유화에 반대했다. 진보 쪽이 원하는 게 관치경제를 철폐하고 박정희 체제를 없애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이들은 은행 국유화를 빨리 해소하라고 주장했다. 그런데 당시 정부가 어디에 은행을 팔 수 있었겠나. 그래서 해외 매각을 하게 된 것이다. 막강했던 그 시민단체들은 매각 과정에서 노코멘트(No comment)를 했다. 한 번도 비판한 적이 없다. 이게 무슨 진보인가.
당시 대우도 전체가 국유화됐다. 즉 산업은행 소유가 됐다. 그런데 이걸 매각할 곳이 국내에는 없었다. 그래서 외국에 판 것이다. 대우자동차는 헐값에 GM에 넘어가지 않았나. 쌍용자동차도 중국에 팔리고, 그래서 22명이 숨지는 사태가 벌어진 것이다. 이런 걸 가지고 요즘에 경제 민주화 이야기하는 분들이 '쌍용차 봐라. 재벌 때문에 저런 것이다. 그러니 경제 민주화를 해야 한다'라고 하는데, 난 당신들이야말로 쌍용차를 저렇게 만든 것 아니냐고 비판한다."
노무현 정부 초기인 2003년에 터진 '카드 대란'과 관련해서도 정 연구위원은 경제 민주화론자들을 거세게 비판했다. "노무현 정부는 처음에 (카드사들에) 구제금융을 제공하지 않으려 하다가 나중에 투입했다. 그냥 놔두면 (카드사는 물론) 은행까지 파산할 지경이었기 때문이다. 이걸 갖고 (지금의 경제 민주화론자들은) '시장 원리에 어긋나게 왜 카드사들을 살려주느냐. 이건 재벌 도와주기 아니면 관치금융이다'라고 비판했다. 상식에 어긋나는 이야기다. 왜 정부가 불을 끄는 것도 못 하게 하나. 대공황이 터졌을 때 대부분의 경제학자들은 '폭풍은 사라지고 불황은 끝날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번 폭풍우는 언젠가 끝날 테니 가만히 있자는 이야기였다. 경제 민주화론자들도 이와 마찬가지다. 이럴 거면 경제학자들이 왜 존재하나. 어떻게 하면 폭풍우를 뚫고 갈 것인지 길을 찾아야 할 것 아닌가."

 

"'재벌과 투기자본, 뭐가 더 나쁜가?" (프레시안, 김윤나영 기자, 2012-06-01 오전 10:42:46)
['한국경제와 복지국가' 강연] 이종태 "복지국가냐, 주주자본주의냐"
"민영화는 나쁘다. 그 중에서 공공부문이 외국 투기자본에 넘어가는 경우는 최악이다. 그나마 국내 재벌기업에 넘어가는 것은 차악이다. 그런데 일부 진보진영에서는 '재벌기업 민영화'는 극렬히 반대하면서 '투기자본 민영화'에는 침묵한다." 정승일 복지국가소사이어티 연구위원이 한 말이다. 국내 재벌들이 적어도 '지속가능한 기업경영'을 고려하는 것과는 달리, 기업의 존폐에는 관심이 없고 오로지 주주의 이익에만 봉사하는 투기자본은 국내 사회·경제에 최악의 영향을 미친다는 주장이다. 정 연구위원이 재벌개혁보다는 주주자본주의 규제를 강조하는 이유다. 
이종태 <시사IN> 기자는 최악의 민영화의 예로 최근 요금 인상 논란을 불러일으킨 서울시 메트로 9호선을 꼽았다. 이 기자는 "아무리 지하철 요금을 올려줘도 메트로 9호선의 경영 상황은 절대 개선될 수 없다"면서 "메트로 9호선의 부실기업화는 주주자본주의의 필연적 귀결"이라고 주장했다. 메트로 9호선의 수익이 주주의 이익에 반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메트로 9호선은 자본금인 1671억 원보다 3배가량 많은 5000억 원을 대출받았고, 적게는 6%에서 많게는 15%에 달하는 고금리 이자를 물면서 '부실기업화'의 수순을 밟았다. 2009년 개통 이후 메트로 9호선이 기록한 순손실 1634억 원 가운데 대출 이자비용은 무려 1000억 원에 이른다.
메트로 9호선이 '울며 겨자 먹기'로 고금리 이자를 물 수밖에 없는 이유는 메트로 9호선의 금융계 주주가 곧 채권자들이기 때문이다. 메트로 9호선의 주주인 맥쿼리한국인프라투융자사, 신한은행 등은 메트로 9호선 운영에 필요한 자본금 5000억 원을 '투자'하는 대신 고금리로 '빌려주기'로 결정했다.
주주들이 메트로 9호선의 순이익을 늘리는 데 관심이 없는 이유에 대해 이 기자는 "메트로 9호선에서 순수익이 발생하면 주주들은 법인세를 제하고 줄어든 배당을 받아야 한다"며 "반면에 적자라면 수익이 없는 만큼 메트로 9호선은 법인세를 낼 필요가 없고, 주주들은 고금리 대출이자를 통해 메트로 9호선이 내지 않은 법인세를 포함한 더 많은 수익을 챙길 수 있다"고 분석했다. 이 기자는 "문제는 이처럼 기업의 지속가능성에는 관심이 없는 주주자본주의가 전 세계가 돌아가는 법칙으로 받아들여진다는 데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1970년대까지만 해도 기업 입장에서 투자자들은 그저 외부인이었지만 1970년대 후반 이후부터 기업의 주인은 주주라는 분위기가 광범위하게 확산됐다"고 말했다.
이전까지 고용창출 등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중시했던 분위기도 1970년대를 전후로 오로지 주주에 대한 봉사만을 중시하는 방향으로 바뀌었다는 것이다. 그 결과 한국에서도 비정규직 확산, 기업 인수합병 시장의 활성화, 외주화 증대 등 신자유주의적인 변화가 이뤄졌다고 이 기자는 지적했다.
이 기자는 "정태인 원장, 이병천 교수는 금융자본주의를 신자유주의 현상의 단지 일부로만 간주하는 것 같다"며 "하지만 나를 비롯한 <선택>의 저자들은 신자유주의의 핵심을 주주자본주의, 혹은 (금융자본이 경제를 지배하는 현상인) 금융자본주의라고 본다"고 말했다. "신자유주의가 태양계라면 금융자본주의는 태양계의 핵심인 태양이다. 노동시장 유연화, 공기업 민영화, 시장 개방 등의 현상은 태양을 둘러싼 행성들이다. 그런데 정태인 원장은 (금융자본주의가 아니라) 노동시장 유연화, 공기업 민영화, 시장 개방 등의 현상을 묶어 신자유주의라고 본다. 그러면서 '재벌 규제 방안'으로 비정규직 노동자의 노조 설립, 최저임금 인상, 하청기업의 집단교섭권 부여, 공정거래위원회 강화, 소비자 권리 강화 등을 제시한다. 그러나 우리는 정 원장이 제시한 '재벌 규제 방안'조차 금융자본주의를 규제하지 않고는 해결할 수 없다고 본다."
<선택>의 저자들에 따르면 금융자본주의와 산업자본주의는 질적으로 완전히 다르며, 지속가능한 체제를 위해서는 금융이 경제를 지배하는 구조를 깨고 산업에 힘을 실어줘야 한다. 이들은 더 나아가 금융자본주의를 규제하지 않고는 다른 사회·경제적인 문제도 해결할 수 없다고 주장한다. 이는 <선택>의 저자들이 주주가치에 기반을 둔 운동인 '소액주주 운동'에 비판적인 이유이기도 하다. 소액주주 운동이 금융자본주의 체제에 기여한다고 보기 때문이다.
이러한 논쟁과 관련해 정태인 원장은 <프레시안> 기고에서 "금융세계화와 주주자본주의가 양극화의 근원이라는 점에 동의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정 원장은 "<선택>이 재벌의 경영권 보호를 제시하고 있을 뿐"이라며 "과연 경영권을 보호해주면 재벌들이 배당금을 줄여서 투자를 늘리고 하청단가도 올려주며 노동자 임금도 끌어올릴까"라고 반문했었다. 정 원장은 또 "한 국가에서 (주주자본주의를 규제하는) 효과를 낼 뾰족한 정책은 별로 없다. (다만) 동아시아 국가들의 공조와 세계적인 금융규제 강화의 진행에 맞춰 주주자본주의의 문제점을 시정해야 한다"며 "동아시아가 공동의 환율정책, 외환보유고 관리 정책을 사용하자"고 제안한 바 있다.
이러한 발언을 소개하며 이 기자는 "동아시아가 공동의 환율정책을 쓰는 것은 자본통제보다 어렵고 시간도 더 걸린다"며 "동아시아 공동 환율정책이 이뤄질 때 주주자본주의를 규제하자는 것은 아무것도 하지말자는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정 원장을 비판했다.
강연이 끝나자 청중의 질문이 쏟아져 나왔다.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주주자본주의 규제' 방안이 무엇이냐는 질문이 나오자 답변에 나선 정승일 연구위원은 기업을 안정적으로 꾸릴 만한 경영자나 창업자에게 이를테면 '1주10표'를 주자고 제안했다. "우리나라는 1주 1표밖에 허용이 안 된다. 반면에 미국에서는 1주 1000표인 주식도 발행할 수 있다. 예를 들면 페이스북이 상장하기 전 주식을 발행할 때, 창업자인 마크 주커버그가 20% 지분을 갖더라도 의결권을 60% 넘게 행사할 수 있게 하는 제도를 만들자는 것이다. 그러면 주커버그는 60%의 의결권에 대한 주식을 시중에 매각하지 않고 1주 1표짜리만 매각하면 된다. 창업자 프리미엄이 발동하는 것이다."
정 연구위원은 삼성그룹을 예로 들며 "삼성의 주주 중 80%가 마음만 먹으면 주주총회에 와서 이건희 회장을 몰아낼 수 있지만 그렇게 하지 않았다"며 "이건희 회장이 대주주 행세를 하면서 주가를 올리고 주주들의 배당금을 높여줬기 때문"이라고 운을 뗐다. 그는 "1주 10표제가 법률로 허용되면 이건희 회장은 주주들의 눈치를 볼 필요 없이 배당을 많이 하지 않아도, 자가 주식을 매입하지 않아도 된다"며 "이런 식으로 금융자본주의를 제어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종태 기자가 언급한 '메트로 9호선' 사례에 대해서도 정 연구위원은 "오스트리아나 영국에서처럼 민영화하더라도 황금주 제도를 사용해야 한다"고 말했다. 황금주란 단 1주를 갖고도 적대적 인수합병 등 주요 경영사항에 대해 거부권을 행사할 수 있는 주식으로, 주로 정부가 보유한다. 그는 "황금주 제도를 도입하면 서울시가 주식을 많이 안 가져도 메트로 9호선에 대한 의결권을 50% 넘게 만들 수 있다"며 "한국에도 이런 제도를 도입하는 것은 국제 기준에 어긋나지 않는다"고 말했다.
마지막으로 이종태 기자는 "대기업 계열사 해체와 약화에 반대하는 <선택>의 입장을 재벌 옹호로 오인해서는 안 된다"며 "<선택>의 문제의식은 주주자본주의와 재벌 중에서 양자택일하라는 것이 아니라, 주주자본주의와 복지국가 중에서 양자택일하라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대기업 계열사들을 해체해서 국내 대기업에 대한 주주자본주의의 영향력을 높인다면, 친노동·친중소기업·복지 정책들은 실행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경제민주화, 사회민주주의냐 진보적 자유주의냐 (프레시안, 한창호 복지국가소사이어티 정책위원, 2012-06-11 오전 9:12:02)
[강연] 복지국가소사이어티 주최 '한국 경제와 복지국가' 세 번째
요즘 언급되는 경제민주화는 사실상 재벌개혁이다. 그렇지만 경제민주화를 재벌개혁으로만 이해하는 것이 올바른 것일까? 이에 정승일 박사는 "참된 경제민주화의 궁극적 목표는 평범한 사람들, 국민들이 모두 행복하게 살아가는 복지국가의 구축으로 넓게 이해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에 따르면 재벌개혁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하고도 시급한 것이 바로 비정규직 문제 해결과 노동시간 단축, 청장년 실업자·미취업자 문제의 해결 같은 '노동민주화'라는 것이다. 또한 대학생이 직면한 살인적인 대학등록금 문제와 주거난 문제를 해결하고 600만 노인들의 노후 생존을 보장하는 '보편적 복지' 역시 참된 경제민주화이다. 평범한 시민들의 관점에서 볼 때, 이런 시급한 일들에 비해 왜 재벌개혁이 더 우선되어야 한다는 건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라고 정 박사는 아울러 힐난했다.
더구나 정 박사에 따르면 "재벌개혁은 그 자체가 목적이 될 수 없는 바, 모든 개혁은 그 개혁을 통해 달성하려는 궁극적 목적이 무엇인지를 분명하게 제시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즉 재벌개혁이 지향하는 궁극적 목표가 미국 월스트리트 유형의 주주자본주의를 만들겠다는 건지 아니면 스웨덴 유형의 복지국가인지를 만들겠다는 건지를 분명히 해야 경제민주화의 뜻이 분명해진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이런 맥락에서 정 박사는 "역사적으로 자유주의와 사회민주주의, 공산주의, 아나키즘, 생디칼리즘 등이 모두 자기 나름의 경제민주화론을 펼쳐왔다"며 "그런데 요즘 우리나라에서 운위되는 경제민주화는 자유주의에 입각한 경제민주화에 불과하다"고 일갈했다. 왜 자유주의만이 유일한 경제민주화냐는 반문이다. 또한 자유주의는 결국 '작은 정부, 큰 시장'을 지향하는 사상이며, 따라서 신자유주의와 큰 차이가 없고, 이 점에 관한 한 이른바 '진보적 자유주의' 역시 마찬가지라고 비판했다.
정 박사는 <선택>에서 말하고자 하는 것이 바로 자유주의와 사회민주주의, 공산주의 등 다양한 경제민주화론 중에서 우리 국민이 무엇을 선택할 것인가에 관한 것이라고 압축했다. 이에 대해 정 박사는 "특히 우리나라의 경우 1990년대 초반부터 지금까지 20년간 보수와 진보에서 모두 자유주의가 지배하여 왔다"고 말했다. 그것이 바로 공병호와 전경련·모피아, 김영삼·이명박 정부로 대표되는 보수적 자유주의이고, 또한 김상조·정태인과 김대중·노무현 정부로 대표되는 진보적 자유주의라는 것이다.
정 박사는 아울러 "진보적 자유주의로는 더 이상 한국 진보의 미래가 없다"고 단언했다. 그는 사회민주주의에 입각한 새로운 경제민주화의 프레임 즉, 스웨덴식 복지국가를 한국 진보가 국민들에게 제시할 국가 비전으로 선택할 때가 되었다고 말했다. 진보적 자유주의의 한계를 넘어서는 새로운 경제민주화로써 그가 제시하는 사회민주주의 복지국가 스웨덴은, 한편으로는 사기업과 시장 경제가 인정되어 재벌계 대기업이 큰 역할을 하며 경제가 대외 개방되어 있다. 그러면서도 유치원부터 초중고, 대학에 이르기까지 학비와 생활비가 전액 무상이다. 또한 세계 최고 수준의 여성복지와 노인복지, 건강·의료 복지 혜택이 이루어지고 있으며, 노동시간이 짧고 비정규직 문제가 거의 없다. 노동자 개인과 노동조합의 권리 수준 역시 세계 최고 수준이다. 또한 소비자 협동조합과 주택협동조합 같은 사회적 경제(social economy) 역시 매우 발전해 있다.
정 박사는 정태인 원장과 이병천 교수 등이 복지국가를 '사회복지의 확대'로만 한정시켜 잘못 이해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에 정 박사는 "사회복지의 확대(즉 보편적 복지의 확대)만으로는 복지국가를 만들 수 없다"며 "스웨덴식 복지국가를 만들기 위해서는 자본과 노동이라는 큰 두 영역에서 진정한 경제민주화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먼저 노동 영역에서 경제민주화가 필요하며, 그 핵심 목표는 개인과 개성의 해방, 즉 실질적으로 자유롭고 평등한 개인과 개성의 창조라고 그는 말했다. 또한 이를 위해서는 (보수적, 진보적 자유주의가 모두 강조하는) '자유 시장'이 아니라 적극적 국가개입 즉, 복지국가적 국가 개입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그것이 바로 노동민주화와 보편적 복지를 두 축으로 하는 종합적 복지국가라는 것이다. 정 박사는 "하지만 복지국가를 만들려면 자본 영역의 경제민주화도 필수적인 바, 그 핵심 목표는 자본(금융과 산업·기업)으로 하여금 이기적인 수익성 추구와 사적 부의 축적에만 매달릴 것이 아니라 생산적 투자와 기술혁신, 양질의 일자리 창출에 적극적으로 나서도록 하는 것"이라며 자본에 대한 사회적·민주적 통제가 필요하다는 것을 아울러 강조했다. 이 점에 관한 한, 복지국가는 '자본을 국가적으로 통제한' 박정희 경제체제로부터도 많은 긍정적인 요소들을 배워올 수 있다는 생각이다.
그렇다면 자본을 어떤 방법으로 통제할 것인가? 하나는 완전경쟁(공정경쟁) 시장을 만들어 '시장의 규율이 기업을 통제'하도록 하는 방법이다. 즉 대기업과 대기업집단(재벌그룹)을 잘게 쪼개어 수만 개의 중소벤처기업, 수천 개의 독립 대기업을 만들어 그들끼리 치열하게 (무한)경쟁하도록 하는 것이다. 게다가 대기업 및 재벌기업의 대주주(오너) 소유 지분 역시 잘게 쪼개어(이른바 '자산재분배') 수많은 소액주주들이 기업의 운명을 좌지우지하게 하면 된다는 것이다. 이것이 김상조·정태인·유종일 등의 진보적 자유주의가 말하는 재벌개혁이다.
그에 반해 정 박사는 "우리나라가 미래형 첨단 제조업을 대규모로 발전시키기 위해서라도 그런 식으로 대기업과 대기업집단(재벌그룹)을 잘게 쪼개고, 게다가 대주주 소유 지분 역시 잘게 쪼개어 '시장 규율과 주식투자자 규율이 기업의 주인이 되는 것'보다는 '불완전 경쟁'의 존재와 대기업 및 대기업집단(재벌그룹)의 존재 이유 및 이들의 효율성을 인정하면서도 그들을 사회적·민주적으로 통제하는 것이 사회민주화의 원리에 맞는다"라고 주장했다. 이것이 바로 사회민주주의라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정 박사는 복지국가를 제대로 만들려면 노동민주화와 보편적 복지를 통해 서민들의 직업과 생계를 안정시키는 것도 필수적이지만, 동시에 자본에 대한 사회적·민주적 통제를 통해 민간 기업들이 왕성하게 양질의 일자리 창출에 나서도록 하는 것도 매우 중요하다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의 경우, 한편으로는 스웨덴식 복지국가를 모방하여 친노동, 친서민적인 노동-복지정책을 대폭 강화하면서, 동시에 다른 한편으로는 외환금융시장에 대한 국가적 통제와 주주자본주의 통제, 대기업 및 중소 벤처기업과 협력하는 선별적 산업정책과 같은 박정희 체제의 유산과 전통을 잘 활용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정 박사는 (진보적) 자유주의자들이 금과옥조처럼 신성시하는 '공정 경쟁'에 대해서도 비판적인 태도를 취했다. 자유주의자들은 공정경쟁을 사실상 완전경쟁 시장으로 이해하고 있는데, 우리나라가 만약 1970-1980년대에 완전경쟁 시장을 추구했다면 과연 지금처럼 준선진국으로 도약할 수 있었겠느냐는 것이다. 박정희에서 노태우에 이르는 30년 동안 한국은 자동차와 전자제품에 대한 수입 제한, 달러화 유출입 통제 등 강력한 보호주의 정책(자본과 시장에 대한 국가적 통제 정책)을 펼쳤는데, 이것은 사실상 불공정, 불완전 경쟁 시장이었다는 것이다. 즉 한국은 자유주의자들이 말하는 것과는 반대되는 방식으로 경제성장에 성공했다는 사실을 자신의 주장에 대한 근거로 제시했다.
그러면서 정 박사는 "복거일과 공병호, 안병직 같은 뉴라이트 논자들은 마치 박정희 체제가 자유주의 체제였던 것처럼 착각하고 있다"고 비판하면서 "만약 박정희가 뉴라이트 인사였다면 1970년대부터 FTA를 했을 것이고, 그 경우 오늘날의 삼성전자와 현대차는 없었을 것이다"라고 단언했다. 또한 정 박사는 "박정희에서 노태우 대통령 시기에 이르는 반(反)노동, 반(反)시장, 친성장(성장지상주의)의 경제 정책 중에서 한국의 진보 세력이 앞으로 계승해야 할 긍정적 요소가 바로 '반시장, 친성장적인 국가의 통제'였다"고 재차 강조했다. 자본주의에 대한 사회적, 민주공화적 관리와 통제를 강조하는 사회민주주의 역시 그러한 국가 통제로부터 배울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려면 박정희식 경제체제를 제대로 이해할 필요가 있다. 정 박사는 "박정희식 경제체계의 두 축은 '반노동'과 '친성장' 정책이다"라고 분석했다. 우선 박정희 체제는 '근로기준법을 지켜라'며 분신한 전태일 열사로 상징되듯이, 철저한 반노동 체제였음이 분명하다. 이 점을 지적하면서 정 박사는 자신과 장하준 교수가 박정희 체제의 반노동적 성격에 눈을 감았다고 비판한 이병천 교수의 지적에 대해 '어처구니없는 비판'이라고 아울러 덧붙였다.
하지만 박정희 체제의 친성장주의는 곧 '친자본'이 아닌가? 라는 질문에 대해서는 "반드시 그렇지는 않다"고 답했다. 박정희식 경제체제는 친성장 체제(성장 지상주의 체제)였지, 반드시 친자본 체제는 아니었다는 것이 정 박사의 평가다. 예컨대 1970년대 당시 현대그룹이 새로 진출한 자동차나 조선 같은 중공업은 통상 자리 잡기 위해서는 약 10년 정도를 필요로 하며, 이 기간 동안은 수익이 나지 않는 무모한 투자가 있어야 한다. 하지만 박정희는 정책적으로 정주영 같은 재벌 오너들에게 정책자금을 지원하면서 투자를 거의 반강제했다. 자본주의 "기업"의 제1원리는 "이윤(수익성)"이지 "경제성장"이 아니다. 그런데 박정희는 10년 동안 수익도 나지 않을 대규모 투자를 국가적으로 강제하면서까지 '경제성장 제일주의'를 목적으로 했던 반시장주의, 반자유주의 정부였던 것이다.
이에 정 박사는 "우리나라도 복지국가를 제대로 만들고 발전시키려면 기업들이 왕성한 설비투자와 기술투자를 지속해야 하고 수백만 개의 양질의 정규직 일자리를 신규로 창출해야 한다"며 "만약 금융시장(증권시장)과 기업들이 '수익이 나지 않는다'며 이러한 일을 꺼린다면, 그들에게 '족쳐서라도(강제해서라도)' 그런 일을 하게끔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정 박사는 "우리가 <선택>에서 주장했던 것은 박정희 체제의 이런 일부 경제 정책 요소들이 복지국가 만들기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주장한 것이지, 박정희 정권 그 자체를 찬양하거나 박정희 시기에 있었던 정책들을 모두 지지한 것이 아니다"라고 덧붙였다. 최근 자신들을 향해 많은 진보 인사들이 '박정희 체제를 찬양'하고 있다고 비난하는 데 대하여, '헛다리짚고 있다'고 반박한 것이다.
그렇다면 경제민주화의 목표로 제시한 복지국가와, 민주화를 억압한 독재정권인 박정희 체제 사이에 그 무슨 친근성이 있다는 것인가? 정 박사는 스웨덴의 사례를 들었다. 사회민주당이 무려 70년 동안이나 장기 집권한 스웨덴은 전후 수십 년간 외환시장과 금융시장을 우리나라의 박정희식 경제체제와 같이 엄격하게 규제했다. 하지만 1980년대 중후반에 이러한 규제를 대폭 폐지했다. 그리고 그 결과 부동산 거품이 크게 만들어지면서 1992년 대규모 금융위기를 겪었다.
한국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한국은 김영삼 정부가 집권하자마자 '박세일 사단(자유주의 그룹)'의 의견에 따라 박정희식 경제체제를 대대적으로 해체하는 작업에 나섰다. 이후 '자본에 대한 국가적 통제의 사령탑'인 경제기획원이 1994년 해체되고, 1996년에는 OECD에 가입하면서 가입의 선결 조건으로 요구 받은 외환금융시장의 개방과 규제완화를 추진했다. 그 결과 1997년 말에 외환금융위기가 발생한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김영삼 정부가 표방한 '자유주의(세계화 정책)'가 친노동이었던 것도 아니다. 박정희 경제체제의 핵심이 반노동과 친성장(반시장)이었다고 한다면, 김영삼 정부는(이명박 정부 역시 마찬가지인데) 반노동, 친시장(친자본)이었다. 게다가 정 박사의 분석에 따르면 김영삼 정부에 이어 출범한 김대중·노무현 정부 역시 반노동, 친시장(친자본)의 범주를 벗어나지 못하는 정부였다는 것이다. 김대중·노무현 정부 하에서 크게 활약한 이른바 '정운찬 사단(진보적 자유주의 그룹)' 역시 '박세일 사단'과 대동소이한 친시장주의자들이었다는 것이다.
이렇듯 김영삼 정부에서 시작하여 김대중·노무현 정부를 거쳐 이명박 정부에 이르는 20년간의 '자유주의의 시대'에 박정희 체제의 반노동적 성격은 그대로 유지된 반면, 박정희 체제의 '친성장주의, 반시장주의'의 요소들은 계속 파괴되어왔다. 그리고 그 결과 오히려 민주정부 기간 동안 그 이전에 비해 경제 성장이 잘 안되고 빈부 격차는 군부독재 시절보다도 훨씬 심해졌다. 이런 식의 경제민주화를 '진보적 자유주의'의 이름으로 계속하겠다고 하는 것이냐고 정 박사는 반문했다.
한국의 경우 북유럽, 특히 핀란드를 주의 깊게 살펴볼 필요가 있다. 핀란드는 박정희식의 은행 국유화와 선별적 산업육성정책, 대기업-재벌그룹(노키아그룹) 육성 등 '박정희 체제의 유산'이라 불리는 요소들이 있었다. 그런데도 1960년대에 집권한 핀란드 사회민주당은 세계 최고 수준의 복지국가를 만들어냈다. 관치경제와 재벌그룹 등 박정희 체제의 유산이 우선 청산되어야만 비로소 그 바탕 위에서 복지국가 만들기가 가능하다고 말하는 한국의 진보적 자유주의자들이 얼마나 헛다리를 짚고 있는지를 잘 보여주는 것이 핀란드의 사례라고 정 박사는 말했다.
복지국가에서도 역시 소득의 단순 재분배(2차 분배)와 좁은 의미의 사회복지는 만능이 아니다. 제대로 된 경제민주화를 통해 양질의 정규직 일자리와 꾸준한 경제성장을 확보하지 않는다면 복지국가의 유지에 필요한 엄청난 재정지출을 감당할 수가 없다. 이에 정 박사는 "복지국가에 필요한 주요 재원인 소득세와 법인세, 부가가치세 등의 안정적 확보를 위해서도 자본에 대한 국가적, 사회적 통제를 통해 달성되는 왕성한 생산적 투자와 경제성장이 필수적"이라고 강조했다.
하지만 경제성장을 옹호한다고 하여 그것이 반생태주의적인 것은 아니다. 이에 정 박사는 "경제성장과 함께 노동시간이 단축되고 최고 수준의 복지가 달성되어 대다수 국민들이 당장 아등바등하는 삶에서 벗어나 훨씬 여유로워지면 독서와 문화, 교양을 통해 세상을 넓고 깊게 보는 것이 대폭 확산될 것"이며, "그렇게 되면 생태나 환경이 인류 공동체만이 아니라 자기 자신의 삶에도 매우 중요하다는 생태주의적 자각이 크게 확산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원자력 발전소 폐기가 유별나게 스웨덴과 독일 같은 복지국가들에서 보수정당 지지자들 사이에서도 크게 지지받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는 것이다. 물론 그런 생태환경적 자각이 친노동 복지국가가 된다고 하여 저절로, 자동적으로 달성되지는 않을 것이기에, 복지국가 운동 역시 친생태 계몽운동과 함께 생태주의 운동과 긴밀하게 협력해야 한다는 점을 그는 덧붙였다.

 

이건희와 삼성그룹을 생이별시키는 방법들 (프레시안, 한창호 복지국가소사이어티 정책위원, 2012-06-20 오전 7:42:53)
[강연] 복지국가소사이어티 주최 '한국 경제와 복지국가' 네 번째
재벌개혁은 우리 사회에서 오랜 기간 논의되어온 주제이다. 그만큼 한국 경제가 재벌 위주로 돌아간다는 방증일 것이다. 특히 재벌 가족들의 편법 상속이나 재벌그룹 계열사에 대한 일감 몰아주기 같은 문제들이 집중적으로 부각되면서 재벌은 반드시 개혁되어야 한다는 것이 최근의 중론이다.
문제는 재벌개혁이 잘못 진행될 경우 '아니함만 못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즉 마구잡이 재벌개혁은 자칫 우리나라 최대기업들의 소유지배 구조를 뒤흔들어 론스타 같은 사모펀드와 투기자본들만 좋은 일만 시킬 수 있다. 잘못된 방향의 재벌개혁이 자칫 '죽 써서 개주는' 행위가 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되는 이유이다.
정승일 박사는 강의를 시작하면서, 1주일 전에 이병천 교수가 <프레시안> 지상에서 "이건희와 삼성그룹을 생이별시키지 마라"는 제목의 긴 글을 쓴 것에 대해 "재미있는 제목의 글을 쓰셨다"고 말문을 열었다. 이전에 이병천 교수에 대해 장하준 교수와 정 박사가 '재벌가문(총수 일가)과 재벌그룹(제도)을 구별하지 못한다'고 반박하자, 이병천 교수는 재벌이라는 것은 재벌 총수가문과 재벌 그룹 기업들이 한 몸으로 엮인 것이므로 그 둘을 구분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고 지적하면서, 그렇다면 어떻게 재벌 총수를 재벌그룹으로부터 구분할 수 있는지 말해보라고 재반박한 것을 언급한 것이다.
정 박사는 이병천 교수의 글 제목을 얘기하면서, "재벌 총수를 재벌 그룹으로부터 구별하여, 실효적으로 떼어놓는 데는 수십 가지까지는 아니어도 많은 방법이 있다"고 말했다.
먼저 "재벌그룹이 파산할 경우 당연히 재벌가족을 재벌그룹으로부터 떼어놓을 수 있지 않느냐"고 반문했다. 1997년 외환위기 전까지만 해도 재벌그룹은 쉽게 무너지지 않는다는 통념이 강했다. 하지만 IMF 사태와 그에 따른 재벌개혁 과정에서 많은 재벌그룹들이 파산하고 해체되었다. 정 박사는 "1997년 이전에는 흔히 30대 재벌그룹을 말했다. 그렇지만 그 30대 재벌그룹 중 1/3이 그 이후 해체되었다. 실질적으로 온전히 생존하여 재벌그룹 형태를 유지한 것은 과거 30대 그룹 중 1/3뿐이다"라고 지적했다. 그래서 요즘에는 과거와 달리 30대 재벌이 아니라 10대 재벌이라는 말을 흔히 한다는 것이다.
정 박사는 이어 통합진보당이 실질적인 재벌해체를 지난 3월 공약으로 제시한 데 대해서도 "재벌해체가 별로 진보적인 정책이 아니라는 것은 30대 재벌그룹 중 1/3가량이 해체되고 1/3가량은 형체만 남은 1998년 이후 어떤 상황이 전개되었는지 잘 생각해보면 된다"고 충고했다. 재벌해체의 결과 대우자동차가 GM에 매각되고 쌍용차는 상하이차에 매각되지 않았느냐는 것이다. 또한 딤채 냉장고를 만드는 위니아만도(과거 한라그룹)와 오리온전기(과거 대우그룹)는 투기적인 영미계 사모펀드에 팔려 조각조각 해체되어 청산되었거나 지금도 그 과정을 겪고 있다는 것이다. 통합진보당의 재벌 해체론자들이 원하는 것이 이렇게 재벌 기업들이 해체되어 산산조각 나서 외국에 매각되거나, 본래 기업이 가지고 있던 가치와 경쟁력이 사라지는 것인지 정말로 물어보고 싶다고 한다.
정승일 박사는 "대우그룹, 쌍용그룹, 해태그룹 등이 부도난 후 채권은행들이 그 그룹 및 계열사들의 주인이 되었다"고 지적했다. 이병천 교수의 표현 그대로, 재벌그룹으로부터 재벌총수 및 그 가족들이 생이별하게 된 것이다. 그런데 이병천 교수 역시 그룹 체제가 갖는 장점은 인정한다고 한다. 단독의 독립 대기업 체제보다는 대기업들로 구성된 그룹경영 체제가 선진국 추격에 도움이 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정답은 간단하다. 정 박사는 "채권은행들이 재벌 가족을 대신하여 그 그룹들의 대주주 노릇을 하면 된다. 그런데 왜 그것이 안 되는 건가?"라고 의문을 제기했다.
정 박사는 대우그룹의 예를 계속 들었다. 대우그룹의 경우 먼저 1단계에서 채권은행단을 대표하는 당시 산업은행과 제일은행이 대주주가 되었다. 문제는 그 다음 단계이다. 채권은행들은 대우그룹이 거느리던 계열사들을 하나둘씩 매각하기 시작하였다. 왜 제일은행이나 산업은행 같은 은행들은 재벌그룹의 대주주 역할을 지속적으로 영위하면 안 되는 걸까?
정 박사는 이에 대한 대답을 알려면 이른바 '금산 분리'에 대해 알아야 한다고 말했다. 금산 분리의 역사는 1930년대 대공황 시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미국의 루즈벨트 대통령 정부는 대공황의 원인으로 지적된 모건(Morgan) 은행에 철퇴를 내리는 '글래스-스티걸' 법을 제정했다. 그리고 이 법에 따라 상업은행은 일반기업(산업자본)의 대주주 역할을 하는 것이 금지되었다. 일반기업의 부실화 위험이 그대로 은행의 부실화 위험으로 전이되는 것을 막기 위한 일종의 방어벽 설치 차원에서였다. 그렇다면 그러한 은산 분리(은행-산업자본 분리)는 매우 합리적이고 보편적인 조치가 아니었을까?
정 박사는 이에 "반드시 그렇지는 않다"고 대답했다. 당시 스위스나 독일 같은 나라들은 미국의 조치를 따르지 않았다. 예컨대 1920년대와 1930년대의 경제위기 속에서 독일의 다임러와 벤츠 자동차가 파산하였고 도이체방크라고 하는 채권 은행이 이들 회사의 대주주가 되었다. 당시 무수히 많은 독일 기업들에서 이런 일이 발생했다. 그런데 도이체방크는 다임러-벤츠의 대주주 역할을 회사가 정상된 이후에도 계속 수행하였다. 그 이후 70년간 계속 수행했으며 이것은 지금도 마찬가지이다. 더구나 다임러 그룹은 한국 재벌그룹처럼 대기업 그룹으로 성장해서, 자동차 사업만 한 것이 아니라 항공과 IT, 철도 등 다양한 사업을 하는 다양한 계열사들도 가지고 있었다.
독일만이 아니라 스위스나 오스트리아도 이런 식이었다. 그런데 그렇다고 해서 독일과 스위스, 오스트리아의 은행들이 은산 분리 원칙이 매우 엄격한 미국에 비해 더 금융위기(은행위기)를 겪었던 것도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였다. 금산 분리(은산 분리)라는 원칙이 지고지순의 절대 원리가 아니라는 증거다.
정 박사는 "글래스-스티걸 법과 같은 엄격한 은산 분리 원칙을 지키는 선진국은 미국밖에 없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서는 진보 세력조차 미국식 제도를 우상처럼 숭배한다"고 힐난했다. 한국에는 미국의 글래스-스티걸 법의 원칙이 은행법에 들어와 있고 따라서 시중은행이 비부실 기업(워크아웃 등을 졸업한 정상 기업)의 대주주 역할을 하는 것이 법으로 금지되어 있다. 단, 산업은행과 같은 국책 특수은행은 예외적으로 대주주 역할을 지속할 수 있다.
그렇다면 한국의 개혁적 진보 세력은 이 문제에 대해 실제로 어떻게 생각할까? 대표적인 진보개혁 경제학자인 김상조 교수는 "은행들이 산업기업의 대주주 역할을 하는 이른바 '독일식 은행 자본주의'를 한국에 도입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단언한다. 왜냐하면 한국의 은행들은 독일·스위스 은행들과 달리 독자적인 기업여신 심사능력이 없다고 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이유는 바로 한국의 은행들이 독일과 스위스의 은행들과 달리 박정희 체제의 유산인 관치금융의 관행에서 아직 벗어나지 못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즉 한국의 진보개혁 경제학자들 사이에는 한국 시중은행의 역할에 대한 근본적인 불신이 깔려 있다. 즉 한국의 은행들은 여전히 관치금융의 성격이 강하고 따라서 부실화된 대기업들에 제공되는 구제금융에서도 여전히 관치금융의 성격이 강하다고 본다.
이에 대해 정 박사는 "관치금융을 이유로 은행의 대주주 역할을 거부하는 것은 그야말로 '구더기 무서워 장 못 담그는 격'"이라고 비판했다. 오히려 김상조와 유종일 등 진보적 자유주의자들이 요구한 조급한 은행 민영화와 그 결과인 은행들의 주주자본주의화로 인하여, 은행들에 있어 고객 기업의 장기적 성장잠재력을 평가하는 심사능력 발전이 가로막히고 있다는 것이다.
정 박사는 "은행이 고객 기업의 대주주 역할까지 수행하면서 제대로 된 기업통제, 기업감독 역할을 수행하려면 제대로 된 산업전문가와 업종 전문가들이 은행 조직 내에서 조직적으로 육성되어야 한다. 그런데 과연 지금처럼 단기수익성 위주의 주주중시 경영으로 은행들이 운영될 경우 그것이 가능하겠느냐는 것이다"라고 덧붙였다. 이어 정 박사는 "진보적 자유주의자들의 관치금융 비판과 조급한 은행 민영화 요구야말로 우리 은행들에 있어 기업 대주주 역할을 원천적으로 봉쇄한 것"이라고 맹공을 퍼부었다.
그런데 단기수익성 위주의 경영은 모피아 경제 관료들도 마찬가지였다. 1997년 말의 외환금융위기로 정부가 부실은행들에 공적 자금을 투입하여 국유화시켰음에도 불구하고 당시 김대중·노무현 정부는 은행 국유화 체제를 영구화할 마음이 전혀 없었다. 당시 그 '민주정부'들은 은행 민영화에 주력했으며 민영화 가격을 높이기 위해 은행들의 주가 올리기에만 주력했다. 그렇기 때문에 당연히 국유 은행들조차 부실 재벌그룹들, 예컨대 대우그룹의 대주주 역할을 계속 수행할 의지가 없었다. 단기수익성과 주가 띄우기에 방해가 될 뿐이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아무튼 지난 반세기도 넘게 유지되어온 은산 분리 원칙을 갑자기 한국에서 폐기하는 것도 이상하지 않을까? 그래서 정 박사는 다른 대안을 제시했다. "은행계 산업 지주회사를 설립하고, 시중 은행들이 보유한 대주주 지분을 그 산업 지주회사에 이전시키면 된다는 것"이다. 이 경우 예컨대 현재 워크아웃에 들어가 있는 건설업체와 조선업체들의 경우, 그 채권은행인 우리은행이 산업 지주회사를 신설하고 그 지주회사를 통해 정상화된 건설사 및 조선사들을 지속적으로 지배하면 되지 않겠냐는 것이다.
이때 우리은행이 그 지주회사에 대해 대주주 역할을 하는 데서 발생하는 은산분리 원칙 침해에 대해서는, 은산 분리에 관한 은행법에 예외 조항을 신설하여 은행계 지주회사에 한해 허용하면 된다는 것이다.
그렇지만 그 경우 그룹 계열사의 부실화 위험이 은행 부실화의 위험으로 전이될 위험이 있지 않느냐는 질문에 대해, 정 박사는 "그런 위험 전이의 가능성은 그 중간에 있는 산업 지주회사가 제대로 된 차단벽 역할을 수행하도록 잘 설계하면 될 것"이라고 답했다.
놀라운 것은 스웨덴 최대의 재벌그룹이며 한국 재벌의 개혁방향으로 흔히 거론되는 발렌베리(Wallenberg) 그룹이 사실상 이런 식으로 운영되고 있다는 점이었다. 즉 SEB라고 하는 은행이 설립한 은행계 지주회사(holding company)로 출발한 Investor AB라고 하는 지주회사가 발렌베리 그룹의 핵심 지주회사 역할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핀란드에도 이런 은행계 기업그룹들이 여러 개 있다고 한다.
그런데 지금까지 말한 것은 어디까지나 재벌 그룹 계열사들이 부실해져 파산하였을 경우이다. 그렇다면 정상적으로 영업하고 있는 우량 재벌그룹들은 어떻게 해야 할까? 어떻게 하면 삼성그룹이나 현대기아차 그룹 같은 우량 재벌그룹에서 재벌가족을 그 재벌그룹으로부터 구별하여 떼어놓을 수 있을까?
정 박사는 삼성그룹의 사례를 들면서 "삼성은 누가 보아도 편법적인 방식의 상속을 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2005년경 이건희 회장의 재산이 4조원으로 알려져 있는데, 이재용에게 상속되는 과정에서 불과 16억 원만을 상속세로 냈다. 현행법상 상속재산의 50%인 2조를 냈어야 했다. 정 박사는 "이런 경우 '재벌과의 타협'은 있을 수 없으며, 이건희 회장은 몇 년간 감옥에 들어가 조용히 반성해야 한다"고 강하게 비판했다.
정 박사는 그렇지만 "만약 이건희 일가가 상속세를 법규대로 50% 납부한다면, 가뜩이나 쥐꼬리만 한 이건희 일가의 대주주 지분은 그 절반으로 줄어들게 된다"면서, "삼성그룹 전체의 결속력을 유지해온 대주주 지분이 이렇듯 더욱 줄어들게 될 경우, 국내외의 주식투자 펀드들과 투기자본들이 더욱 설치게 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그렇다면 이런 문제는 어떻게 봐야 하는가? 이에 대해 참여연대에서 활동하는 김진방 인하대 교수는 "그런 문제는 우리가 걱정할 필요가 없다. 그것은 '시장의 논리'에 맡기면 된다"고 말한 바 있다.
그런데 이에 대해 정 박사는 "이때 시장 논리란 바로 주식시장 논리와 M&A 시장 논리를 말한다"고 평했다. 또한 "주식시장과 M&A 시장은 주가 가치 극대화 논리를 따르는 법이며, 따라서 이 경우 삼성그룹을 쪼개고 해체하여 '매각 가치 극대화'를 추구하는 시장 논리가 작동하게 된다"고 설명했다.
이어서 정 박사는 "이 경우 삼성전자 같은 초대형 기업들을 인수하는 것이 국내 자본에게는 힘에 부치기 때문에 결국은 해외 자본에 매각될 가능성이 높다"고 지적했다. LG전자가 삼성전자를 인수하는 것 역시 독점 금지에 위배되기 때문에 불가능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정 박사는 이에 대해 "삼성전자와 여타 계열사들은 과거 국민의 혈세로 육성한 기업들이다. 왜 이런 소중한 기업들을 해외 자본에 매각하려야 하는가?"라고 아울러 반문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삼성그룹 해체로 인한 손실 가능성이 매우 크다고 하여 이건희 회장 일가의 편법 상속을 지금처럼 방치할 수도 없지 않는가? 이에 정 박사는 재벌가족들의 경영권 상속(대주주 지분 상속)에 대한 새로운 접근 방식을 제안했다.
즉 지금처럼 이건희 일가가 국세청에 현물(주식) 형태로 납부한 상속세를 시중에 매각하여 현금화할 것이 아니라, 국가가 그 현물주식을 계속 보유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 경우 그 주식지분을 보유하고 관리하는 역할을 하는 국가지주회사를 신설하거나 또는 국민연금 특별계정으로 운영하는 방안을 제안했다. 만약 이런 방안이 전면적으로 실시될 경우, 삼성그룹의 핵심 대주주는 이건희 회장 일가와 함께 국가(민주공화국)가 될 것이다. 이렇게 하여 이건희 회장 일가는 삼성그룹으로부터 부분적이지만 생이별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이재용으로부터 그 후손에게로 다시 상속될 때마다 국가는 상속세로 획득한 지분의 보유를 확대할 것이며, 따라서 언젠가 국가는 삼성그룹의 최대 주주가 될 것이다. 즉 이건희 회장 일가는 삼성그룹으로부터 거의 완전히 생이별하게 되는 것이다. 게다가 30대 재벌 특별법을 시행하여 이런 방식의 현물 상속세를 30대 재벌그룹에 적용하게 할 경우, 국가는 앞으로 수십 년 뒤 30대 재벌그룹의 최대 주주로서 그 재벌 그룹들에 대한 사회적, 민주공화적 통제를 수행할 수 있다는 것이 정 박사의 가설이었다.
정승일 박사는 "이와 같은 방안은 현재의 상속증여세와 여타 법제도의 테두리 안에서 얼마든지 시행 가능하다"고 강조했다. 즉 '국유화'라는 명칭에서 연상되는 엄청나게 급진적인 방안도 아니라는 것이다. 단지 필요한 것은 국가지주회사 또는 국민연금 특별계정에 관한 법을 새로 제정하여 그 기관이 위와 같은 일을 수행하도록 하는 발상의 전환이 필요할 뿐이라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위 방안은 대기업 그룹의 점진적 국유화라는 재계의 비난과 격렬한 저항에 직면할 가능성이 높다. 이에 대해 정 박사는 "그렇다면 다른 방식을 타협안으로 논의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것은 재벌가족의 상속 지분을 국세청에 납부하지 않고 공익재단에 기부하게 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 공익재단의 지배구조와 운영을 해당 재벌가족으로부터 완전히 독립된 방식으로, 그야말로 공익적 인사들에 의해 수행되게 하는 것이다. 만약 이렇게 될 경우, 예컨대 삼성그룹의 최대 주주는 이건희 가문에서 점진적으로 수십 년에 걸쳐, 그 공익재단으로 이전될 것이다. 삼성그룹으로부터 이건희 가문이 점진적으로 생이별하게 되는 것이다.
놀랍게도 정 박사에 따르면 스웨덴의 발렌베리 그룹이 현재 그렇게 운영되고 있다고 말한다. "발렌베리 그룹 소유지배 구조의 정점에 있는 지주회사인 Investor AB의 최대 주주는 발렌베리 가족이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즉 그 지주회사의 최대주주는 여러 개의 공익재단들이라는 것이다. 실제로 150년 전에 시작된 발렌베리 가문은 그간 5회가 넘는 재산 상속을 했는데, 그때마다 상속세를 납부하는 대신 여러 개의 공익재단을 만들어 그 재단에 자신들의 상속 지분을 현물로 기부했다.
그 결과 오늘날 공익재단은 발렌베리 가문을 제치고 Investor AB의 최대 주주이다. 물론 그 공익재단의 수익금은 역사와 언어학 등 인문학과 자연과학 등의 연구비로 쓰이고 있으며, 발렌베리 가문 일가에는 단 한 푼도 가지 않을 정도로 투명하다. 단, 그러한 기부에 대한 대가로 발렌베리 가문의 후계자들은, 그룹 지주회사인 Investor AB의 이사회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 물론 그 가족원들은 Investor AB에서 적은 지분만을 소유하고 있을 뿐이다. 더구나 이 경우, 경영 능력이 떨어지는 무능한 후계자들은 그 지주회사의 경영 일선에 CEO로서 나서는 것이 아니라 이사장(chair man) 또는 한갓 이사 역할만 하면 되기 때문에 '무능한 재벌 3세, 4세 경영'은 더 이상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정 박사는 아울러 설명했다.
마지막으로 정 박사는 한국의 경우 기업집단법의 제정이 시급하다고 역설했다. 이에 정 박사는 "나는 2006년부터 이미 기업집단법의 필요성에 관하고 말하고 써왔으며, 요즘에는 김상조 교수와 정태인 원장 등도 그것에 동의하는 것을 반갑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기업집단법에 관해 설명하기 위해 정 박사는 이미 지주회사(holding company) 체제로 전환한 LG그룹과 그렇지 못한 삼성그룹을 비교했다. "LG그룹의 경우 그룹 경영의 최상위에 있는 지주회사인 (주)LG가 상법상 주식회사다"라면서, 따라서 "(주)LG는 상장회사인 까닭에 공시의무도 있고, 감사위원회와 사외이사 선임 의무도 있어 상당 정도 투명성을 확보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이에 반해 삼성그룹의 경우, 그룹 경영 최상위에 있는 미래전략기획실이 아무런 법적 권위도, 법적 의무도 갖지 않는 임의 조직이다. 정 박사는 "따라서 미래전략기획실은 아무런 공시 의무도 없고, 그것을 감독하고 감시할 이사회도, 감사위원회를 구성할 의무도 없다"고 지적했다. 미래전략기획실은 투명성이라곤 전혀 없는 일종의 유령 조직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삼성그룹에서 총수 황제 경영을 총괄하고 있다. 기업집단법은 이와 같은 기형적인 현실을 타개하여, 미래전략기획실과 같은 그룹 경영 조직에 아예 상법상의 권리와 의무를 동시에 부여하면서 양성화, 합법화하자는 것이다.
이 경우 장점은 먼저 미래전략기획실로 대표되는 그룹경영 조직을 감시하는 이사회와 감사위원회가 상법상 의무화되고 또한 공시 의무도 부여된다는 것이다. 따라서 외부에서 삼성그룹 최상위 조직의 내밀한 활동을 감시하는 장치들이 합법적으로 작동하게 된다. 그 결과 삼성그룹의 편법 상속과 불법적인 비자금 조성 등이 지금에 비해 매우 힘들어진다.
또한 현재의 공정거래법상 재벌규제가 모두 폐지되고 상법상의 재벌 규제로 대체되기 때문에 재벌들의 구명 로비가 매우 힘들어진다. 즉 공정거래위원회 공무원들의 재량권 여지가 많은 행정 규제가 아니라 사법부 판사의 판결에 따르는 상법상 규제로 재벌 규제가 획기적으로 재편되는 까닭에, 재벌 규제의 일관성과 신뢰성이 대폭 향상된다는 것이 정승일 박사의 설명이다. 즉 사후적으로 계열사들에서 소액주주와 채권자에게 손해가 발생했을 경우, 사법부에 모기업 또는 미래전략기획실을 소액주주 또는 채권자가 고소·고발하고 그에 대한 판결을 공무원이 아닌 사법부에서 내리는 것이다.
또한 이렇게 기업집단법이 제정될 경우, 예컨대 삼성그룹의 경우 무능한 재벌 3세, 4세는 경영 일선(그룹 CEO)에 나서지 말고, 후선(그룹 이사회 이사장)에 머무르게 하는 '책임 경영'이 명확하게 된다고 아울러 말했다. 즉 지금처럼 이건희 회장이 북치고 장구 치고 자기 마음대로 역할을 바꾸어 가면서, 자신이 삼성그룹의 CEO인지, 삼성그룹의 이사장(chair man)인지 본인도 구분할 수 없는 상태를 지속하는 것보다는, 미래전략실의 최고 경영자(CEO)는 최지성 씨가 맡고 예컨대 이재용은 미래전략실 이사회 이사장(또는 이사)으로 뒤로 물러나게 하는 것을 법률적으로 명확하게 하는 것이 바로 기업집단법이라는 것이다. 정 박사는 "이 경우 재벌 가족은 재벌 그룹의 경영 일선에서 몇 발짝 물러나는 것이고, 그만큼 재벌가족과 재벌그룹의 생이별이 진행되는 셈"이라고 덧붙였다.
정 박사의 강연을 들은 일부 청중은 기업집단법에 대하여 "그렇게 되더라도 삼성그룹으로 경제력이 집중되는 것은 막을 수 없는 것 아니냐"고 의문을 제기했다. 차라리 출자총액제한 등의 수단으로 계열사 확대를 저지하는 것이 더 낳은 대안이 아니냐는 것이다. 이에 대해 정 박사는 "그렇다. 기업집단법은 재벌그룹의 계열사 확대를 저지하지 않는다"면서, "그렇지만 만약 삼성그룹이 항공산업과 제약산업 같은 미래첨단 제조업 쪽으로 신규 계열사를 만들고 그것의 육성에 전력을 다할 경우, 오히려 우리 국민들은 그것을 성원해야 할 것"이라고 답했다.
왜냐하면 항공이나 첨단 소재, 제약 같은 미래 산업의 경우 향후 5년, 10년간 대규모 투자가 필요하며 더구나 그 기간 동안 흑자가 날 가능성이 별로 없는데, 그런 일에 정부가 국민으로부터 거둔 혈세를 사용하느니, 이왕이면 삼성이나 현대차 같이 이미 돈 많이 벌고 있는 기업그룹들이 대신 해준다면 국민들로서는 얼마나 좋은 일이냐는 것이다.
이 경우 삼성그룹 또는 현대차 그룹으로 경제력이 더 집중되는 것이 사실이다. 그렇지만 그 집중된 경제력(기업집단)을 사회적·민주적으로 통제하고 감시하는 다양한 법적, 제도적 장치들을 만드는 것이 더 중요하다. 즉 정승일 박사는 "경제력 집중 그 자체의 긍정성과 효율성까지 약화시키는 장치들(출자총액제한 등을 통해)이 절대적으로 중요한 것은 아니다"라고 덧붙였다.
앞에서 말했듯이, 은행이나 국가, 공익재단과 같은 여타 이해관계자들이 삼성과 현대차 같은 재벌그룹의 대주주 또는 최대주주로서 역할하게 하여 그 집중된 경제력(재벌그룹 권력)을 사회적·민주국가적으로 통제하고 감시하는 장치를 만드는 것이 더 중요하지, '경제력 집중의 방지·약화'(출자총액제한 등을 통한)이 더 중요한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이건희에게 75% 소득세, 이걸 대선 공약으로" (프레시안, 김덕련 기자, 2012-07-05 오후 12:23:37)
['한국 경제와 복지국가' 강연] 정승일, '공급 고민하는 복지국가' 강조
"복지국가가 되면 성장이 안 된다? 말도 안 되는 소리다." 정승일 복지국가소사이어티 연구위원이 2일 저녁 복지국가소사이어티 교육실(서울 마포구)에서 '복지국가와 잠정적 유토피아'를 주제로 강연했다. 복지국가소사이어티에서 주최한 연속 강좌 '한국 경제와 복지국가' 중 7번째 강연이다.
정 연구위원은 1929년 대공황이 터지기 전후의 역사와 오늘날의 위기를 비교했다. 정 연구위원은 "오늘날 우리가 직면한 상황은 정말 재수 없게도 80년 전 세계 대공황 때와 매우 유사하다"고 지적했다. "공황이 터졌을 때 자본주의 시장 경제를 어떻게 할 것이냐" 하는 문제를 풀어야 하는 점도 비슷하고, "전 세계 진보 세력에게 자유주의, 긴축 논리에 적절히 대응할 논리가 별로 없다"는 점에서도 1930년대 초와 닮았다는 것이다.
정 연구위원은 "200여 년간 자본주의를 움직인 핵심 사상이 자유주의"라고 말한 후, 이를 보수적 자유주의와 진보적 자유주의로 구분했다. 정 연구위원은 레이건 전 미국 대통령, 대처 전 영국 수상 등을 보수적 자유주의의 사례로 들었다. 진보적 자유주의에 대해서는 이렇게 진단했다.
"영어로는 social liberal이라고 한다. 이를 대표하는 인물이 케인즈다. 1910년대에 영국 자유당이 역사적인 변신을 했다. 지지율이 계속 떨어지자, 당 내에서 새로운 흐름이 나타난 것이다. 처칠이 대표적이다. '자유, 시장 원리도 좋지만 대영제국의 영광을 위해 (시장에) 개입해야 하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다. 1919년 자유당은 집권하자마자 누진소득세를 도입했다. (특수 상황인) 전시를 제외하고, 누진소득세로 복지를 하겠다는 것은 이것이 최초였다. 이를 사상적으로 뒷받침한 것이 젊은 케인즈 같은 이들이었다. 이런 사상이 (대공황 때) 미국의 루스벨트 대통령에게로 넘어갔다."
이 대목에서 정 연구위원은 '경제 민주화론자'로 분류되는 진보 성향의 학자들을 비판했다. 정 연구위원과 장하준 케임브리지대 교수, 이종태 <시사IN> 기자는 <프레시안>을 통해 '경제 민주화론자'들과 한국 경제 성격 논쟁을 벌이고 있다.
정 연구위원은 "한국의 진보적 자유주의자들은 social liberal 전통을 가져온 것처럼 보이지만, 반드시 그렇지는 않다는 것이 문제"라고 말했다. "한국의 진보적 자유주의자들이 누진세와 복지를 강조한 건 몇 년 안 된다. 지난 20년간 이들은 박정희 체제를 비판하고 시장을 강조했다. 케인즈 경제학을 이야기하는데, 실제로는 국가 개입보다 시장을 강조하는 맨큐 같은 뉴케인지언과 비슷한 면이 있다. 이런 진보적 자유주의가 20년간 진보 세력을 이끌어왔다."
정 연구위원은 "김영삼·이명박 정부에서는 박세일·박형준으로 대표되는 보수적 자유주의가, 김대중·노무현 정부에서는 진보적 자유주의가 주도했다"며 "이 두 자유주의는 공통점이 많다"고 말했다. 정 연구위원은 진보적 자유주의에서 벗어나, 사회민주주의를 바탕으로 한 복지국가를 건설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 연구위원은 "보편적 복지국가는 성장과 대치된다고 하는 이도 있는데, 그렇지 않다"고 말했다. 또한 "투자, 생산, 공급"에 대한 적극적인 해법이 복지국가 건설에서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케인즈 경제학은 수요 중심 경제학이다. 소득과 소비가 주요 관심사다. 경제 민주화론자들은 '복지국가가 소비와 소득에 기반을 두고 성장한다'고 말한다. 일리 있는 측면이 있다. 복지국가가 되면 내수 시장이 커질 것이기 때문이다. GDP에서 수출이 차지하는 비중이 60퍼센트를 넘는데, 이걸 40퍼센트 정도로 낮춰야 한다. 일본은 15퍼센트 정도이고 미국은 5퍼센트도 안 된다.
하지만 이것만으로는 안 된다. 소득과 소비도 늘려야 하지만 그것보다 총투자를 늘려야 한다. 소득과 소비만 이야기하는 복지국가가 아니라, 자본도 늘리고 평생교육과 연계된 노동을 공급해 완전고용을 달성하게 하는 그런 복지국가가 필요하다. 투자, 공급, 생산과 이에 대한 사회적인 통제가 필요하다."
정 연구위원은 영국-미국과 독일-스웨덴을 비교했다. "흔히 '복지국가는 한물갔다'고들 한다. '케인즈 경제학은 1970년대에 무너지지 않았냐'고 말한다. 그러나 그건 공급을 중시하지 않는 복지국가였다. (수요 중심의 케인즈 경제학을) 문자 그대로 실천한 영국 노동당과 미국 민주당(의 방식)은 1970년대에 무너졌다. 그와 달리 독일과 스웨덴에서는 무너지지 않았다. 공급에 대한 고민을 했기 때문이다."
정 연구위원은 "스웨덴은 보편적 복지, 평생교육을 통한 적극적 노동시장 정책, 산업 정책을 통한 기업 육성 등을 한 묶음으로 해 복지국가가 됐다"며 높이 평가했다. 이어 "박정희 모델에는 적극적 노동시장 정책과 보편적 복지가 없었지만, 우리가 만들려는 복지국가는 보편적 복지, 노동권 보장 및 노동시간 단축, 평생교육 체제를 갖춘 나라"라고 말했다.
정 연구위원은 복지국가를 만들기 위한 재원 마련 방안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4대강 사업 등에 마구 쓰이는 예산"을 줄이는 등의 재정 낭비 방지 대책도 필요하지만, 세금 문제도 피해갈 수 없다고 지적했다. 정 연구위원은 "세금 낭비를 줄이는 게 우선이고, 세금을 더 걷는 문제는 그 다음"이라며, "복지국가5개년계획 같은 전략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정 연구위원은 세금 문제에서도 '경제 민주화론자'들과 의견을 달리했다. 정 연구위원은 "경제 민주화론자들은 법인세를 대폭 인상해 복지국가 재원을 조달하자고 하지만, 법인세를 더 거둬들일 필요는 없고 그동안 감면한 것만 없애면 된다"고 주장했다. 법인세를 낮추는 대신, 주주에 대한 배당을 줄이고 재투자 비율을 높이게 한 스웨덴의 경험을 참고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정 연구위원은 "공정 경쟁을 위해 소유 집중을 깨자는 것이 자유주의의 핵심"이라며 "(그와 달리) 난 종부세처럼 소유에 대해서가 아니라, 소득에 대해 과세해야 한다고 본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 정 연구위원은 "조세 수입 중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과 가장 큰 차이가 나는 것이 개인소득세"라며 "누진적 개인소득세 중심의 세수 확대"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각종 교육비 공제 등 개인소득세 비과세 및 감면 제도의 혜택을 가장 많이 보는 것이 대한민국 상위 30퍼센트"이며, 이로 인해 개인소득세에서 조세의 공평성 원칙이 무너졌다는 진단이다.
정 연구위원은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 같은 사람에게 33퍼센트가 아니라 프랑스처럼 75퍼센트의 소득세를 물리자'는 식의 이야기가 필요하다"며 "이런 걸 대선 공약으로 만들자"고 제안했다. 올랑드 대통령이 이끄는 프랑스 정부는 1년에 100만 유로(약 15억 원) 이상 버는 사람에게 75퍼센트의 소득세를 부과할 방침이다. 정 연구위원은 "이런 방안이 경제 민주화론자들의 재벌 개혁 방안보다 훨씬 효과적일 것"이라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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