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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이비드 맥낼리의 『글로벌 슬럼프』

 

 

http://www.newscham.net/news/view.php?board=news&nid=64590
자본주의 위기극복, 소통과 연대로 대안 창출해야 (참세상, 배성인(편집위원) 2012.01.09 17:42)
[신간안내] 글로벌 슬럼프(데이비드 맥낼리, 그린비, 2011)
“이러한 저항들의 정기적인 분출과 혁명의 유령은 실은 글로벌 슬럼프 때문에 촉발된 어떤 질적인 구조 변화의 산물이다. 우리의 도전은 이러한 시대의 임무를 완수할 능력과 결단을 갖는 것이다. 또한 우리의 도전은 정말 오랜만에 급진적이고 대중적인 반자본주의 운동을 조직하화 함으로써 이 국면에 대응하는 것이다.(312쪽)”
2008년부터 시작된 세계경제위기가 지속되면서 대중들은 크게 네 가지 문제에 대해서 관심을 갖게 되었다. 그것은 첫째, 이번 위기가 일시적인 위기인지 아니면 근본적인 자본주의 위기인가. 둘째, 이번 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인가. 셋째, 위기가 지속되면 비정규직을 비롯한 약자들은 어떻게 살아야 하나, 넷째, 자본주의 위기 국면에서 어떻게 투쟁하고 저항해야 하나 등이다.
캐나다의 대표적 진보학자인 맥낼리가 세계경제위기의 성격을 명료하게 설명하기 위해 『글로벌 슬럼프』를 발간했는데, 이를 강수돌/김낙중 두 분이 친절하게 번역을 하면서 우리의 궁금증을 해소해 주고 있다.
맥낼리는 이번 경제위기가 곧 극복될 일시적인 것이 아니라고 단호하게 주장하고 있다. 전 지구적인 수준에서 상당히 오래 계속될 것으로 보고 있다. 그것은 2차대전 이후 등장한 케인즈주의가 60년대의 베트남전쟁과 70년대의 오일쇼크로 인해서 균열되기 시작하면서 ‘슬럼프’에 빠졌고, 80년대에 등장한 신보수주의와 신자유주의로 인해 다시 ‘슬럼프’에 빠졌기 때문이란다. 저자는 이를 ‘글로벌 슬럼프’라고 규정하고 있다.
여기까지는 우리도 상식적으로 인지하고 있는 내용이라 별로 새로운 것은 없다. 그래서 자본은 항상 경제위기시 나타나는 자본의 위기를 민중의 위기로 전가하는 것이다. 문제는 민중들이 궁금해 하는 문제의식에 대해서 저자는 크게 세 가지의 선택지를 제시하고 있다.
첫째, ‘허리띠를 더욱 졸라매서’ 위기에 빠진 정치경제 체제를 자본의 입장에서 구출하는 것이다. 일종의 ‘신-신자유주의’가 나올수 있겠다. 결코 바람직하지 않은 이 방법은 심할 경우 극우 민족주의나 파시즘이 부활할 수도 있으며, 동원메카니즘과 착취가 더욱 강화될 것이다. 하지만 현실은 자본에게 이 방법을 민중들로 하여금 선택하게 만들려고 왜곡·조작하고 있으며, 실제 그러한 움직임들이 곳곳에서 나타나고 있다.
둘째, 착실하게 허리띠를 졸라매던 사람들이 더 이상 “이렇게는 못 살겠다”라고 외치면서 어느 정도 노동의 입장에서 기존 정치경제 체제를 ‘개혁’하는 것이다. 노동과 자본의 공생을 추구하는 일종의 ‘신케인즈주의’를 말한다. 이러한 입장도 현재 일부 국가에서 나타나고 있다. 하지만 이 방법은 일부 선진 자본주의 국가에게만 가능하기 때문에 결코 바람직하지는 않다.
셋째, 첫 번째의 ‘신-신자유주의’도 두 번째의 ‘신케인즈주의’도 아닌 완전 새로운 길을 만드는 것이다. 역자는 이 길을 어떻게 호명할지 모르지만 현실 자본주의나 현실사회주의를 모두 극복하는 방향이어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저자가 주장하고 있는 길도 역시 세 번째 길이며, 이 책을 통해서 길잡이 역할을 하고 있다.
이 책은 30년대의 세계대공황 이후 자본주의 흐름을 쉽게 정리하면서 현재의 위기를 ‘체제의 일반적 위기’가 아닌 신자유주의의 구조적 위기라고 단호히 주장하고 있다. 물론 문제의 근원이 자본과 자본주의 체제 자체에 있다는 것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그래서 국가권력이나 자본에 의한 소외감과 두려움을 깨고 아래부터의 변화가 모색되어져야 한다. 성찰과 연대를 통한 대중운동의 조직역량과 인프라를 튼튼하게 구축하는 일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각 부문운동사이의 활발한 소통과 연대가 이뤄져 저항을 넘은 대안의 창출까지 건강한 논의와 역량을 계속 이어 가야 한다.
그러면서 저자는 “반자본주의 및 인간적 자유를 향한 대의가 바로 우리가 희망을 잃지 않는 배경이며, 이런 희망을 안고 우리는 일상적 조직화 작업과 함께 다양한 이의 제기, 선전선동, 저항운동을 엮어내 필요가 있다”(315쪽)고 강조하고 있다.
맞는 말이다. 한국의 좌파들도 그렇게 동일한 문제의식을 가지고 실천운동을 전개해 왔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게 녹록치 않으며, 보다 중요한 것은 지속적인 굶주림과 배고픔이 인내력의 바닥을 드러내고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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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www.mediatoday.co.kr/news/articleView.html?idxno=98913
세계적 하청 시스템, 위기는 극복된 게 아니라 변형됐을 뿐 (미디어오늘, 박장준 기자, 2011-12-05  01:05:37)
[서평] 글로벌 슬럼프, 회복되는 경제 통계와 후퇴하는 인간의 삶
“이윤에 대한 청구권의 형태로 존재하는 자본가치 부분, 다른 말로 대출·주식·채권 등 다양한 형태로 표시된 지불 약속 증서는 자본의 미래 예상 수입이 하락함과 동시에 철저히 평가절하되고 만다. …… 미래의 특정한 날에 지불하기로 한 약속들이 서로 맞물려 수십 수백 군데서 어긋나고 만다. 나아가 이것은 얼마 지나지 않아, 그동안 자본의 발달과 함께 융성하게 된 금융체제 자체의 붕괴를 부른다. 결국 이 모든 것이 폭력적이고 고통스런 위기 상황을 초래한다.” - 칼 마르크스
19세기 쓰인 오래된 문장을 길게 인용하는 목적은 마르크스의 경제학 비판을 특권화시키고자 함이 아니다. 그를 탁월한 예언가로 만들고 싶은 것도 아니다. 다만 자본주의의 동역학에 대한 그의 분석을 곱씹어보자는 제안을 하고 싶어서다. 왜냐하면 바로 지금이 폭력적이고 고통스런 위기 상황이기 때문이다.
글쓴이 맥낼리는 오늘날 고통스러운 경제위기가 장기적으로 지속될 것으로 본다. 그는 이 위기가 20세기 헤게모니 국가 미국을 포함해 세계체계 중심부에 위치한 국가들과 그 주변에만 영향을 미치는 게 아니라고 설명한다. 그리고 자본의 빚을 국가의 빚으로 바꾸는 자본-편향적인 위기 극복 과정을 두고 (오바마의 경제 자문위원 래리 서머즈를 인용해) ‘회복되는 경제 통계와 후퇴하는 인간의 삶’이라고 명명한다. 그리고 문장을 반전시킨다. “인간의 삶에서의 후퇴가 있기 때문에 경제 통계가 회복되고 있는 것이다.” 이런 명백한 모순을 착목한 맥낼리는 지금의 위기를 ‘글로벌 슬럼프’(Global Slump)라고 부른다.
자본주의와 그 특수한 정세(conjuncture)로서 신자유주의에 대한 인식은 좌와 우가 제각각 다르고, 2008년 가시화된 경제위기에 대한 분석과 전망도 엇갈린다. 맥낼리는 ‘위기를 극복했다’는 주류경제학자의 견해를 단호하게 반박한다. 그는 유로존 내 국가들의 위기를 거론하며 “은행권 위기는 주권국가의 채무 위기로 그 형태가 변화된 (것)”이며 “위기는 형태만 변화되었을 뿐이다”고 단정한다.
맥낼리는 ‘만성적 위기론’을 주장한 급진적 정치경제학자에 대한 반론으로 1982년 이래 25년간 꾸준히 상승한 이윤의 추세를 보여준다. 좌파 지식인들이 브레턴우즈체제가 붕괴한 이후 40년을 통틀어 불황으로 보는 분석하는 것이 “자본주의 생산의 사회적·기술적·공간적 재구성을 무시하거나 혹은 철저히 평가절하했다”고 비판한다. 그에게 신자유주의는 ‘위기의 반증’임과 동시에 ‘회복’인 것이다.
맥낼리는 자본주의 재조직화로서 신자유주의의 특징을 ‘세계적 하청체계의 강화’와 더불어 ‘금융화’로 보고, 이에 조응하는 통치전략으로 ‘노동 규율 강화’와 ‘인종·여성에 대한 억압’을 든다. 신자유주의는 ‘노동자를 성과 인종을 기준으로 분할하면서 전체 노동자를 통제하는 방식으로 형성되는 세계적인 금융적 축적체계’이란 뜻이다. 그리고 맥낼리는 위기의 원인으로 ‘자본의 과잉 투자’, ‘이윤율의 저하’를 지목한다. 그러나 고전적 마르크스주의의 진단법과는 다르다. 브레너의 ‘장기 침체’나 하먼의 ‘공황’ 개념으로는 신자유주의의 팽창을 설명할 수 없다는 주장이다.
맥낼리는 신자유주의를 이해하는 세 가지 지침을 제시한다. ‘세계경제를 이해할 때 경제 규모가 가장 큰 몇몇 나라나 경제 대국들의 총합만을 살펴서는 안 된다는 것’, ‘세계 자본주의 평가는 국민경제 지표에만 초점을 맞출 수 없다는 것’, ‘2차 세계전쟁 이후 호황에 견줘서 이보다 못한 경우를 모두 공황으로 간주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그는 지난 25년간 신자유주의가 “⓵노동자 계급 조직들을 공격하고 개발도상국의 주권을 훼손함으로써, ⓶착취율을 증가시키고 제조업의 물리적 공간들을 재배치함으로써, ⓷거대한 전 지구적 신규 산업예비군을 창출함으로써, ⓸특히 동아시아 지역에 대규모 해외직접투자를 통해, ⓹린 생산방식과 같은 작업조직과 노동 강화의 새로운 체제와 신기술들을 도입함으로써” 자본주의의 새로운 성장 물결을 창출해 냈다고 분석한다. 또한 맥낼리는 “1980년대 초반 이후의 이윤율 상승 추세는 자본주의적 경기팽창 물결을 실증해 주었다”며 “이러한 변화들과 상호작용하면서 자본주의 금융의 대대적인 재조직화가 전개되었다”고 말한다.
맥낼리는 신자유주의의 ‘실력’을 인정하면서도 이에 저항하는 물결이 거세지고 있다는 것을 지적한다. 시작은 신자유주의의 가장 약한 고리인 주변부 국가부터다. 볼리비아에서는 2000년 수도 민영화에 반대한 운동이 성공했고, 이 과정에서 ‘적녹동맹’에 원주민이 결합해 새로운 ‘계급’을 보여줬다. 과거 프랑스의 노예 식민지였던 과들루프와 마르티니크에서는 2009년 초반, 수만 명이 수십 일 동안 대중파업을 해 최저임금 인상 등 더 나은 노동 조건을 만들었다. 2006년 멕시코 남부 오아하카에서는 100만 명에 이르는 사람들이 빈곤에 저항했고, 스스로 ‘민중의회’를 꾸려 도시를 운영했다. 맥낼리는 이 투쟁을 1871년 ‘파리코뮌’에 빗대어 ‘오아하카 코뮌’이라고 한다.
중심부 국가에서도 저항은 이어졌다. 맥낼리는 그리스, 이탈리아, 프랑스, 미국 등 국가를 가리지 않고 노동자운동이 일어나고 있다고 소개한다. 특히 흑인, 이주민, 노동조합이 결합된 새로운 운동주체들과 이들에 의한 새로운 운동방식들에 주목해야 한다고 제안한다. 바로 여기서 맥낼리는 자신의 역할을 끝낸다. 맥낼리는 ‘이윤압박설’이나 ‘위기순환론’에 빠지지 않고, 세계경제를 분석단위로 설정하고, 이윤율의 운동을 중심으로 분석한다. 그리고 신자유주의가 만든 ‘새로운 계급(투쟁)’이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 본다.
다소 아쉬운 점이라면 세계체계에 대한 문제의식이 월러스틴과 아리기의 ‘역사적 자본주의론’에 닿지 않는다는 것이다. 또 자본주의의 동역학이라고 할 수 있는 ‘이윤율의 운동’을 주장의 주된 근거로 삼으면서도 이를 기반으로 하는 ‘이론적 모델’을 적극적으로 제시하지 못했다는 점이다. 이는 맥낼리 자신에게 자본주의를 분석하는 시간대가 부재하다는 데 기인한다. 그에게는 이윤율의 이론 궤도가 없기 때문에 경험적 연구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글로벌 슬럼프’는 ‘신자유주의의 역사와 진실’(강상구/문화과학사/2000)을 읽은 독자에게 꼭 권하고 싶은 책이다. 그리고 ‘자본주의 역사 강의’(백승욱/그린비/2006), ‘일반화된 마르크스주의 개론’(윤소영/공감/2006)과 함께 읽어야 할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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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111182102415&code=900308
[책과 삶]신자유주의 붕괴, 자본과 타협보다는 저항을 (경향, 문학수 선임기자, 2011-11-18 21:02:41)
“우리의 가난은 그들의 풍요로움의 원천이고, 우리의 고통은 그들에겐 이득이다.” 셰익스피어의 <코리올라누스>에 등장하는 대사다. 신자유주의 30년의 팡파르가 끝난 지금, 99%의 사람들이 처한 현실은 400년 전의 연극 대사와 극적으로 맞아 떨어진다. 이 책의 저자인 데이비드 맥낼리(58)에 따르자면, 2008~2009년의 위기를 촉발한 악성 은행 채무는 “주권국가의 채무로 형태가 바뀌어” 사람들의 목줄을 죄고 있다. 많은 국가들이 채무의 증가를 막고자 “긴축시대를 선포”했다. “연금, 교육예산, 사회복지, 공공 부문의 임금과 일자리를 대폭 삭감”하면서 버티기 작전에 돌입한 것이다. 물론 그 압박은 99%의 몫이다. “세계적 은행들이 받은 구제금융 비용을 노동대중과 가난한 사람들이 대신 지불”하고 있다는 얘기다. 저자는 이 책을 쓰던 2010년에 벌어진 몇몇 사례를 거론한다. “라트비아는 교사의 3분의 1을 해고했고, 아일랜드는 공무원 연금을 22% 축소했다. 미국 캘리포니아 주에서는 90만 빈곤아동의 건강보험을 하루아침에 없애버렸다.”
이 모든 것의 궁극적인 목적은 “자본주의 지켜내기”다. 자본주의 엘리트들의 부와 권력을 어떻게든 보호하려는 것이다. 물론 “정부 개입을 배제한 자유시장 이데올로기”를 기치로 삼았던 신자유주의자들은 “정부로부터 역사상 가장 많은 구제금융을 받으면서 당혹감으로 위세가 약간 꺾인 모습”을 보여주기도 한다. 그래서 그들은 “정부 지출의 대폭적 삭감”이라는 “가혹한 필연성”을 강조하는 쪽으로 논리를 바꿨다. “이데올로기의 정당화 방식”을 변경함으로써 “위풍당당하게 경기후퇴를 견뎌내려는 것”이다. 여기에도 물론 음흉한 속내가 숨었다. 저자는 “사회적 약자를 위한 정부의 지출을 줄이는 것은 부자들에게 매우 이롭다”면서 “지출삭감은 가난한 이들로부터 부자에게로 엄청난 부를 이전하는 장치”라고 강조한다. 그리하여 99%의 비참한 삶을 담보로 “통계상 회복”이 겉으로나마 이뤄진다. 그것은 당연히 “대대적 해고와 임금 삭감, 사회 서비스의 대폭 축소를 통해 노동대중이 대가를 치른 결과”다.
캐나다 토론토의 요크대학에서 정치학을 가르치는 저자는 2차 세계대전 이후 세계경제가 걸어온 길을 책의 두번째 장에서 잠시 일람한다. 그는 1948년부터 1973년까지를 “유럽·일본·북미 등 세계를 지배하는 경제주체들의 경기가 급상승하면서, 서구 자본주의가 황금기를 구가했던 시기”라고 말한다. 그러나 “생산량을 3배로 키운 서구 자본주의”는 1970년대 초에 이르러 “이윤율 하락과 과잉축적이라는, 친숙한 패턴에 따른 호황의 둔화”와 필연적으로 직면했다. 이어진 “위기의 10년”을 거치며 “자본주의를 지켜내려는” 새로운 돌파구로 등장한 것이 신자유주의라는 얘기다.
저자는 그것을 “자본에 의한 노동의 패배, 새로운 불평등의 도래”라고 규정한다. 각국 정부는 “노동 유연화”를 부추기면서 “고용주들이 노동자들과 노조를 공격하는 것을 지원하고 격려”했다. 대량 해고와 공공부문 일자리 축소, 비정규직 확대 등으로 고용을 불안정하게 만드는 것은 신자유주의가 구사하는 음흉한 전략이라는 것이 저자의 진단이다. 아닌 게 아니라 영국 대처 정부의 수석 경제자문이었던 앨런 버드는 “실업 상승은 노동계급의 힘을 약화시킬 수 있는 매우 바람직한 방법”이라고 언급하기도 했다. 고용 불안정은 “규율과 처벌에 의한 통제를 강화”할 수 있는 좋은 여건이기 때문이다. 이런 기조에 따라 1980년대 초 북미와 유럽 각국에서 일어났던 노동자 파업은 차례로 분쇄됐다. “칠레, 페루, 볼리비아, 에콰도르 등 남미 국가들의 노조 조직률도 어처구니없이 하락”했다.
지난 30년간 신자유주의가 열성적으로 추진했던 “자본주의의 지리적 재편”은 자유무역협정(FTA)으로 요약된다. 약자의 입장에 선 국가의 노동자들이 더 열악한 삶으로 내몰렸음은 물론이다. 저자는 “신자유주의의 실험장이었던 칠레”의 국민소득에서 노동자 소득이 차지하는 몫이 “1970년대에는 47%였지만 1989년에는 19%로 급락했다”고 예시한다. “유사한 사태는 에콰도르, 페루, 아르헨티나, 멕시코에서도 발생”했다. 캐나다·미국과의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으로 혜택을 봤다는 멕시코에서는 “NAFTA가 체결된 지 15년 만에 인구의 80%가 빈곤 상태에 빠졌고, 상위 0.3%의 사람들이 전체 부의 50%를 차지”했다.
세계경제를 파국으로 몰고간 주범이 금융 부문이라는 것에는 재론의 여지가 없다. 저자는 “1973년 미국 경제에서 금융 수익은 전체 이윤의 16%였지만, 2007년에는 무려 41%를 차지했다”면서 “급증하는 부채의 부담은 신자유주의 시대의 핵심적 특징”이라고 말한다. “백인과 유색인종 간 차별과 분리에 근거한 종전까지의 대출관행으로는 이윤 창출에 한계가 있음”을 깨달은 은행들은 “보다 약탈적인 편입 방식을 사용하기 시작”했다. 이에 따라 “빈곤층 유색인종들은 과거에 받지 못했던 금융서비스를 받을 수 있게 됐지만, 그 대가로 터무니없는 조건들을 감수”해야 했다. “피부색을 가리지 않고 거의 모든 노동자들이 금융 수탈의 새로운 차원을 경험하는 와중에, 유색인종 노동자들은 더욱 강탈적인 착취”의 나락으로 떨어졌다는 얘기다. 저자는 신자유주의의 중요한 특성으로 “노동자 계급의 점진적인 소득 감소”를 꼽으면서 “인종차별을 받는 노동자 집단이 가장 심대한 타격을 입었다”고 잘라 말한다.
신자유주의의 전 지구적 확산에서 국제통화기금(IMF)의 역할은 막강했다. IMF 관리들이 구조조정 대상국의 재무장관에게 들이미는 전형적 조항들은 “혹독한 신자유주의 정책들을 포함”한다. 예컨대 “공공 부문을 민영화할 것, 사회복지 서비스를 대폭 줄일 것, 수천명의 교사·간호사·사회복지사를 해고할 것, 생필품에 대한 정부 지원을 철폐할 것, 금융 부문을 해외시장에 개방할 것, 최저임금을 인하하고 연금을 축소하며 노동조합을 약화시킬 것” 등이 그것이다. 1980년대부터 90년대까지 IMF 구조조정 프로그램을 겪은 나라들은 “100여개 국”이다. 그 결과는 이미 확연하게 드러났다. “가난한 사람은 더 가난해지고 고용은 더 불안해졌다. 다국적 기업들은 공공 자산을 더 싼값에 구매할 수 있게 됐고, 해외 은행들이 금융을 통제하게 됐다. 지역과 세계 엘리트들은 그 나라 바깥으로 재산을 손쉽게 이동시킬 수 있게 됐으며, 경제성장은 하향 곡선을 그렸다. 교육과 보건 의료 수준은 급격히 추락했고 유아사망률은 증가했다.”
저자는 신자유주의로 인한 작금의 파탄이 “단순한 주기적 불황이나 체제의 일시적 일탈이 아니다”라고 진단한다. 그가 말하는 “글로벌 슬럼프”는 “만성화한 전 지구적 경기침체”를 뜻한다. 그것은 ‘더블딥’과도 다르다. “(서로 연관된) 다차원적인 위기들이 지속적으로 발생하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부동산 거품이 꺼졌다가 국가 부채 위기가 터지고, 사회복지가 후퇴하고 실업률이 솟구치는 등 여러 종류 위기들이 장기간에 걸쳐 터져 나오는 것”이다. 결국 한계에 봉착한 자본주의가 중환자실에서 보여주는 위태로운 증세들인 셈이다. 그런 상황에서 저자가 앞으로의 변화와 관련해 주시하는 것은 “소위 서발턴(subaltern)이라 불리는 하위계급의 움직임”이다. “실업자, 비정규직, 여성, 이주민, 소수자, 사회적 약자들이 어떻게 대응하는가”에 따라 세상이 어떻게 변화할지가 결정될 것이라는 얘기다.
논리적으로 보자면 우리 앞에는 세가지 길이 있다. “(하위계급이) 별다른 저항을 하지 않고 위기에 처한 체제를 구하는 데 협조”한다면 “신-신자유주의가 나올 수도 있다”는 것이 저자의 진단이다. 자본에 의해 잠식되지 않은 공유지와 틈새시장, 사유화할 수 있는 공공 부문 등 “착취의 소재는 아직도 많이 남아 있기 때문”이다. 저자는 하위 주체들이 파시즘적 자본주의에 포섭된다면 “앞으로도 50~100년간 착취 구조가 건재할 것”이라고 내다본다. 또 다른 하나의 길은 “좀더 인간적인 자본주의”다. “자본주의 시장경제를 유지하되, 국가가 공공서비스를 시민들에게 직접 제공하는 사회복지국가 모델”을 만드는 것이다. 그러나 저자는 그런 모델은 이제 불가능하다고 단언한다. “국가는 부채더미에 오르고 사적 자본이 막강해진” 현재의 상황에서 “공공 부문은 계속 축소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결국 “사람이 먼저인가 이윤이 먼저인가 하는 근원적인 문제” 앞에서 “둘 다 추구하겠다는 절충은 모순”일 뿐이며 “이분법 속에서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 것이 현실”이라는 얘기다.
저자가 결론적으로 제시하는 ‘길’은 책에서 가장 많은 부분을 할애한 6장 ‘거대한 저항의 물결’에서 드러난다. 그는 신자유주의적 착취에 반기를 든 전 세계의 대항운동에 주목한다. 볼리비아의 코차밤바 주, 카리브해의 프랑스령 마르티니크 섬, 멕시코 오아하카 주에서 일어났던 대중봉기를 차례로 소개한다. 그리스의 급진좌파연맹(SYRIZA)과 프랑스의 반자본주의 신당(NPA), 남미의 신좌파 운동, 점점 급진화 경향을 보이는 미국 각지의 노동운동도 상세히 거론한다. 그 모든 대항운동의 공통점은 “노동자 대중의 직접적 이해에 기반을 둔, 급진적이고 조직화된 운동”이었다는 점이다. 그래서 그는 “국가가 통제하는 사회주의가 아니라 민중과 노동자의 공동체가 통제하는 새로운 형식의 사회주의를 고민할 때”라고 강조한다. 그런 면에서 보자면 저자는 ‘민주주의에 기반한 사회주의’를 강조했던 로자 룩셈부르크의 계승자다.
그는 바야흐로 세계 곳곳에서 터져나오기 시작하는 대항운동들을 “급진적 참여 민주주의”로 명명하면서 “새로운 진보 좌파 운동은 과거의 방식을 답습해서는 안된다”고 강조한다. “좌파의 역사는 항상 새로운 좌파의 역사였다”는 것이다. 결국, 자본과의 절충이나 타협을 거부하고 “민중과 노동자의 직접 참여를 통해 정치와 경제를 재구성하는 새로운 사회주의”를 상상하라는 것이 저자의 주문이다. 책의 말미에는 번역자들이 캐나다에 있는 저자의 집에서 나눈 대담을 수록했다.

 

http://news.hankooki.com/lpage/culture/201111/h2011111822363786330.htm
작금의 경제위기… 그 이면엔 '정치'라는 변수가 있다 (한국, 이윤주기자, 2011.11.18 22:36:37)
글로벌 슬럼프/데이비드 맥낼리 지음·강수돌 김낙중 옮김//그린비 발행·392쪽·1만7,000원
2008년 이후 경제위기에 대한 전문가들의 진단은 크게 둘로 나뉜다. 주류경제학에서는 가난한 사람들을 탓한다. 돈도 없는 사람들이 주택융자 신청을 많이 해서 '미국발(發) 금융위기'의 시발점인 서브프라임 사태를 만들었다는 것이다. 반면 비주류 학자들은 정부의 금융권 탈규제와 지원을 문제 삼았다.
캐나다 요크대학 정치학과 교수 데이비드 맥낼리는 이 이분법적 진단에서 벗어나 경제 변수에 정치를 포함시킨다. 마르크스주의와 여성주의, 반인종주의를 연구하는 그는 정치적 지형에서 좌파에 속하며 그가 연구하는 경제란 상품 가치에 노동을 포함시키는 정치경제학이다. 책을 번역한 강수돌 고려대 교수는 "조지프 스티글리츠, 장하준 등 자유주의적 케인스주의자와는 다른 각도와 방법론을 가지고, 현재 자본주의 위기의 원인을 진단하고 처방을 내린다"고 평했다.
저자는 작금의 경제위기가 일시적 경기 침체를 뜻하는 더블딥과 구별되며 오랜 기간 다차원적 위기들이 지속적으로 발생한 '슬럼프'라고 규정한다. 이 현상이 다국적 차원에서 진행되니 책 제목대로 세계는 지금, 글로벌 슬럼프에 처해있다. 저자는 이 위기의 원인이 자본의 과잉 투자, 이에 따른 이윤율 저하에 있다고 본다. 얼핏 마르크스의 공황이론에 빗댄 분석 같지만, 저자는 전통적 마르크스주의에서도 한걸음 물러나 있다.
책은 2차 세계대전 이후 자본주의 위기와 팽창, 금융화 과정의 역사를 정치 변수와 함께 정리하며, 전후 글로벌 자본주의를 네 시기로 나눈다. 지속적 팽창기(1948~1973), 세계적 경기침체기(1973~1982), 다시 지속적 팽창기(1982~2007), 그리고 글로벌 슬럼프(2007~?) 시기다. 특이한 것은 그가 1982~2007년을 '장기 침체기'가 아니라 신자유주의 팽창기로 본다는 점이다. 그리고 그 정치적 토대는 선진 자본주의 국가, 특히 미국과 영국에서 레이건과 대처의 노조 파괴, 자본의 구조조정과 해외 직접투자로부터 형성됐다고 주장한다.
금융위기의 결과는 곧바로 서민 경제의 파탄으로 이어진다. 전세계적으로 확산되는 반자본주의 운동은 이런 위기의 신호탄이다. 책의 후반부, 볼리비아 국민들의 물 민영화 반대 투쟁, 시카고 전기노동자연합 소속 노동자들의 공장 점거 사례 등 선진 자본주의에 대한 하위주체들의 저항을 소개하며 그가 제시하는 대안은 다음과 같다. 급진적 직접 민주주의 실천, 과거 노동운동과 청년 운동의 교류, 진보그룹의 분파주의 극복, 반자본주의 운동에 노동운동과 여성운동, 인종차별 반대 운동 혼합, 풀뿌리 민중 권력의 제도화, 저항세력의 인프라 형성….
원서는 2010년 1월 캐나다에서 출간됐는데, 국내 번역본에는 번역자가 올 7월과 10월 두 차례 저자를 인터뷰한 내용을 덧붙였다. 저자는 최근의 월가 시위에 대해 "볼리비아, 멕시코의 대중 항쟁이 선진 자본주의 국가로 확산되고 있음을 의미"한다며 "실업, 주택 압류, 사회복지 삭감 등으로 고통받는 노동계급과 더 직접적인 방식으로 결합하라"고 조언했다. 한국의 촛불시위, 희망버스 등 일련의 사회운동에 대해서는 "자본가들이 가장 경쟁력 높은 최고의 작업방식을 찾느라 혈안이 된 것처럼 사회운동 진영도 가장 훌륭한 실천 방식을 찾도록 심혈을 기울여야 한다"고 조언했다.
저자의 대안은 윤리적 당위성이 충분하지만, 현실에 적용하기에는 이상적이란 인상을 지울 수 없다. 글로벌 슬럼프에서 탈출할 수 있는 힘은 99%의 저항이 아니라, 1%를 제어할 제도적 장치에서 나오는 게 아닐까. 하지만 작금의 경제위기가 은폐하는 정치적 의미를 읽어낸 체계적인 분석만큼은 탁월하다.
 
http://economy.hankooki.com/lpage/entv/201111/e20111118175407118180.htm
[책과 세상] 경제 위기 원인은 자본가에게 있다 (서울경제, 김지아기자, 2011.11.18 17:54:07)
책은 현재의 위기 원인은 허리띠를 졸라매고 열심히 일한 노동자들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이윤을 추구하며 살벌한 경쟁을 부추기는 자본가와 자본주의 체제 자체에 있다고 말한다. 따라서 노동자들을 대량 해고하고 허리띠를 조르는 식으로는 위기 탈출이 불가능하다고 말한다. 또 금융위기를 촉발시킨 악성 은행 채무는 사라진 것이 아니라 정부의 공공 부채로 이전된 것일 뿐이라고 지적한다. 그리스 재정위기에서 드러나듯이 은행권의 위기는 주권국가의 채무위기로 그 형태가 변화됐다는 것이다.
현재 나타나고 있는 지표들 중 공황 경향을 보이는 것으로 가장 명료한 것은 통화와 신용의 공급이 축소되고 있다는 점이라고 저자는 지적한다. 투자와 지출이 향상될 때 신용은 확대되는데 선진 주요 7개국(G7)에서 상업 대출과 산업 대출이 감소되는 등 경기침체로 진행되는 기미를 보이고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적어도 향후 한 세대 동안의 정치와 경제는 아주 새롭게 '재구성'될 것이라는 게 저자의 전망이다.
책은 이 '재구성'을 위해 사람들간의 연대와 저항 활동이 활발히 일어날 것이라고 말한다. 특히 강제 퇴거당한 사람들, 인종차별과 분리로 인해 억압받은 사람들 등 사회적 약자들의 연대에 기반한 정치를 위한 운동이 계속 일어날 것이라는 게 저자의 전망이다. 저자는 "사람들이 함께 행동하는 것이야말로 무언가를 바꿀 수 있는 동력임을 깨닫기 시작했다"며 "하지만 이 때의 저항운동은 신자유주의가 보여주지 못한 미래의 비전을 제시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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