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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버트 프랭크,『경쟁의 종말』

 

http://www.pressian.com/books/article.asp?article_num=50120427131225
연봉 1억 직장인, 실제로 번 돈은… (프레시안, 최정규 경북대학교 교수, 2012-04-27 오후 6:17:14)
[프레시안 books] 로버트 프랭크의 <경쟁의 종말>
<경쟁의 종말>(안세민 옮김, 웅진지식하우스 펴냄)은 코넬 대학교 경제학과 교수 로버트 프랭크의 최근 저작 <The Darwin Economy>(2011년)를 번역한 것이다. 이 책은 지난 20년간 그가 쓴 <Choosing the Right Pond>(1985년), <The Winner-Take-All Society>(1996년), <Luxury Fever>(1999년), <Falling Behind>(2007년)의 연장선상에 서 있다.
프랭크가 앞서 펴낸 책들은 지위 추구 욕구라는 인간의 욕망과 점차 승자독식이 되어가는 시장 그리고 그곳에서 벌어지는 경쟁이 초래하는 파괴성을 구체적인 사례와 경제학적인 분석을 통해서 흥미롭게 설명하는 것이었다. 이번에 그가 쓴 <경쟁의 종말>은 기존의 진단을 아우르면서 처방까지 제시하고 있다.
물론 국내에도 소개된 <승자독식사회>(권영경·김양미 옮김, 웅진지식하우스 펴냄), <사치 열병>(이한 옮김, 미지북스 펴냄)과 같은 책에서도 프랭크는 부분적으로 누진 소비세라는 정책 처방을 제안했었다. 하지만 <경쟁의 종말>에서 그는 자신의 개입주의적 정책 처방의 근거를 한층 더 강력하게 그리고 한층 더 분석적으로 제시하고 있다.
로버트 프랭크는 사람들의 소비 중 상당 부분이 과시욕에서 기인한다고 주장하는 학자다. 그는 전작에서 자신이 가진 것을 상대방이 가진 것과 끊임없이 비교하려는 사람들의 속성 때문에 불평등이 발생하고, 그런 불평등이 사람들의 후생에 큰 영향을 준다고 주장했다. 또 그런 속성이 상대적으로 높은 지위를 둘러싸고 일어나는 경쟁 그리고 높은 지위임을 끊임없이 과시하려는 소비 행태로 이어진다는 사실을 흥미롭게 서술했다.
특히 <승자독식사회>는 사람들의 지위 추구 욕구와 함께 왜 시장이 점차 승자독식이 되어 가는가를 생생히 보여준 역작이다. 이번에 나온 <경쟁의 종말>에서 프랭크는 고민을 더욱더 진전시켜서 경쟁이 가져올 수 있는 파괴적 결말을 지적하고, 더 나아가 이를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를 이야기한다.
흔히 경쟁은 사회 전체의 파이를 크게 만들어준다고 이해되어 왔다. 경쟁이 있어야 사람들의 근로 의욕이 자극되고, 경쟁이 있어야 희소한 자원을 효율적으로 사용하게 되며, 경쟁이 있어야 기업, 관료 조직 등이 비효율성을 떨쳐 버리고 혁신을 할 수 있으며, 경쟁이 있어야 비리, 부패 척결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렇게 경쟁을 통한 체질의 개선과 경쟁을 통한 번영 및 성장이라는 말이 너무도 당연하게 받아들여지고 있다. 그러나 프랭크는 어떤 경우에는 경쟁이 바람직한 결과를 낳지 못하고 오히려 파괴적일 수도 있다고 이야기하면서 경쟁에 얽힌 어두운 측면을 드러내고 있다. 거추장스러울 정도로 화려하고 큰 수컷 공작의 꼬리, 움직이기 힘들 정도로 엄청난 체중을 갖는 수컷 코끼리물범, 수컷 말코손바닥사슴의 큰 뿔 등은 암컷을 차지하기 위해 경쟁 상대보다 조금이라도 더 화려하고, 조금이라도 더 덩치가 크고, 조금이라도 더 큰 뿔을 갖도록 하는 방향으로 경쟁이 진행되었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종 전체로 볼 때 천적에 아주 취약할 정도로 비효율적이고 왜곡된 결과에 이르게 되었다.
그렇다면, 어떤 경우에 경쟁이 이렇게 파괴적인 결과를 초래하는가? 프랭크는 경쟁을 통해 개인들에게 돌아오는 보상이 상대적인 능력에 달려 있는 경우, 즉 상대적으로 조금이라도 높은 지위를 갖는 개인에게 막대한 보상이 돌아가는 경우에 이런 결과가 초래된다고 이야기한다. 그리고 현대 사회는 점점 그러한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는 게 그의 주장이다.
상대방보다 조금 앞서는 게 유리할 때 모든 개체들은 상대방을 앞서기 위해 '필요 이상'의 노력을 기울이게 된다. 상대방 나라보다 조금이라도 강해지기 위해 군비 경쟁을 하는 것, 상대방보다 조금이라도 앞서기 위해서 근육 강화제를 복용하는 것, 상대방보다 조금이라도 앞서기 위해 아이스하키 헬멧 착용을 하지 않으려 하는 것 등도 보상이 상대적 지위에 따라 주어지는 경우에 나타나는 경쟁의 폐해들이다.
이런 경우 (가설적인 상황이지만) 모든 수컷들이 자신의 꼬리 크기, 몸집, 뿔의 크기를 반으로 줄일 수 있다면, 모든 국가들이 군비 지출을 반으로 줄일 수 있다면 이들 사이에 상대적 순위는 그대로 둔 채(따라서 이들에게 돌아가는 보상의 크기는 전혀 변하지 않은 채로), 헛되이 낭비되는 돈과 에너지를 절약할 수 있다.
프랭크에 따르면, 서로 경쟁을 함으로써 파이를 크게 만드는 경우가 아니라 의자 뺏기 놀이처럼 정해진 파이의 몫을 둘러싸고 경쟁이 벌어질 때, 그리고 상대방보다 약간 앞서면 약간 더 많은 몫을 차지하는 게 아니라 불비례적으로 너무 많은 몫을 차지하게 될 때, 경쟁이 가져다주는 폐해는 극심할 수 있다. 더 나아가 그는 상대적으로 높은 지위를 과시하려는 인간의 본성 때문에 소득 중 너무 많은 부분을 과시 소비에 쓰게 되기에, 돈 먹는 괴물은 정부가 아니라 과시 소비가 만연하고 낭비가 만연해 있는 시장이라고 단언한다.
이제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프랭크는 기존에 얘기했던 누진 소비세 도입을 넘어서는 아주 다른 방식의 개입주의적 처방을 제안한다. 프랭크는 누구도 침범하지 않으려 하는 자유주의적 원칙 "네가 번 돈은 네 돈"이라는 원칙이 옳지 않음을 입증하려 한다. 서로서로가 긴밀히 얽혀 있는 사회에서 내가 가져야 하는 정당한 몫은 내가 기여한 것만큼이어야 한다는 게 그가 내세우는 원칙이다. 그는 이에 입각해서 "네가 번 돈" 중에서 상당 부분은 사회가 그리고 우리 모두가 노력한 결과임을, 따라서 그것 모두가 "네 돈"이 아님을 설득력 있게 이야기한다.
같은 맥락에서 프랭크는 자유주의적 사고를 비판하는 데 이 책의 많은 부분을 할애하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카스 선스타인과 리처드 탈러의 <넛지>(안진환 옮김, 리더스북 펴냄)와 이 책을 함께 읽고 비교해보는 것도 좋겠다. <넛지>는 처음부터 끝까지 어떻게 하면 자유주의적 원칙에 위배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사람들의 선택을 좀 더 바람직한 방향으로 이끌 수 있을까를 고심하는 있는 반면, 프랭크는 아주 대담한 방식으로 왜 자유주의적 원칙이 문제를 해결할 수 없는지, 그리고 왜 전혀 다른 방식의 개입주의적 처방이 필요한지를 적극적으로 주장하고 있다. 따라서 행동주의적 관점에서(물론 두 사람에게서 행동주의적 관점은 많이 다르다) 쓰인 두 책을 비교해보는 것은 아주 흥미로운 지적 경험이다.
프랭크는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경제학자인 사람이다. 이 책의 곳곳에서 1980년대 후반부터 경제학에서 가장 중요하게 다루어지는 주제 중 정보의 비대칭성의 문제와 외부성 문제가 불평등 문제에 어떻게 응용되는지를 확인할 수 있다. 또 그는 경쟁의 파괴적인 측면을 강조하고 있고 조목조목 자유주의를 비판하고 있지만, 결코 경제학의 핵심 테마인 효율성/후생이라는 테두리를 벗어나지 않는다.
그러한 의미에서 이 책을 읽으면서 과연 경제학에 기초해서 세상의 문제를 어디까지 얼마나 이야기할 수 있는지를 살펴보는 것도 흥미롭다. 프랭크의 <경쟁의 종말>을 읽으면서 우리가 사는 현대 사회에서 '1퍼센트 대 99퍼센트'라는 심각한 문제에 대해서 경제학자도(!) 이렇게 훌륭한 답을 대놓을 수 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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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www.hani.co.kr/arti/culture/book/526102.html
오늘 우리에게 필요한 보이지 않는 손은 ‘분배’ (한겨레, 장동석/출판평론가, 2012.03.30 20:09)
<경쟁의 종말> 로버트 프랭크 지음ㆍ안세민 옮김/웅진지식하우스ㆍ1만5000원
소수를 위한 경쟁 신봉 비판, 다윈의 이론과 경제학 접목
“사회 전체 행복 방법 찾아야”

경제학의 아버지는 누가 뭐래도 ‘보이지 않는 손’의 창시자 애덤 스미스다. 하지만 100년 뒤면 경제학의 아버지가 애덤 스미스가 아니라 찰스 다윈이 될 거라고 주장하는 사람이 있다. <경쟁의 종말>의 지은이 로버트 프랭크는 자유주의자들의 문제 해결 방식인 ‘경쟁이 사회 전체의 최대 이익을 창출한다’는 믿음 자체가 ‘탐욕’이라고 규정하면서, 그 대안으로 찰스 다윈의 ‘자연선택 이론’을 제시한다.
자유 경쟁은 이미 세계 곳곳에서 문제를 드러내고 있다. 상위 1%를 위한 세상이 된 지 오래다. 애덤 스미스는 ‘보이지 않는 손’이 언제나 바람직한 결과를 보장한다고 믿지 않았는데도, 자유시장주의자들은 시장이 최대 이익을 창출한다면서 늘 완전한 자유시장을 주장한다. 정부를 낭비의 근원이라 공격하며 ‘보이지 않은 손’의 위대함을 여전히 설파하고 있는 것이다.
지은이는 자유주의자들의 주장을 “기생충 때문에 고생하는 환자에게 음식을 먹지 말라고 요구하는 의사와 같다”고 일갈한다. 때론 정부가 예산을 낭비하기도 하지만, 기업이 아닌 정부만이 가장 낮은 비용으로 최대의 효과를 낼 수 있는 주체라는 것이다. 오히려 낭비를 일삼는 것은 정부가 아닌 기업으로, 중요하다고 생각해 지출(투자)하지만 그것이 정말 중요하다면 다른 사람들도 비슷하게 지출(투자)하기 때문에 중복 낭비가 크다는 것이다.
지은이는 찰스 다윈의 ‘자연선택 이론’을 경제학과 접목시키며 말코손바닥사슴을 소개한다. 수컷 말코손바닥사슴에게 큰 뿔은 번식 경쟁에서 이기는 최대 무기다. 돌연변이로 뿔이 커진 수컷들은 경쟁에서 승리하면서 돌연변이는 빠르게 퍼진다. 하지만 뿔이 커지면 울창한 숲속에서 기동력은 떨어지고, 외부 포식자에게 잡아먹히기 더 쉬워진다. 그러나 수컷들이 종족 보존을 위해 “모든 사슴이 뿔의 크기를 절반으로 줄인다”는 대화합은 일어나지 않는다. 아무런 규제가 없는 무한경쟁 세계인 숲에서 어떤 수컷도 스스로의 뿔을 줄이지 않는 것처럼 자유시장의 무한경쟁이 소수의 가진 자들만을 위한 방편이란 것이다. 지은이가 100년 뒤 경제학의 아버지로 찰스 다윈을 지목한 이유가 바로 이 때문이다.
한국에서도 중산층이 현저하게 줄어드는 것처럼 지은이는 중산층의 몰락이 세계적인 현상이라면서, 경쟁이 아니라 ‘분배’만이 경제적 파이를 키워 몰락한 중산층을 살리고 복지를 실현할 수 있다고 강조한다.
물론 선결조건이 충족되어야 한다. 우선 누진소비세를 도입해야 하는데, 이 원론적 대안에 지은이는 타인에게 해를 끼치는 행동에 세금을 부과하자는 제안을 더한다. 이미 영국의 경제학자 피구의 이름을 딴 ‘피구세’가 속속 생겨나고 있다. 탄소세, 혼잡통행료, 담뱃세 등이 대표적인데, 지은이는 “자동차 중량에 따라 세금을 부과하자”는 색다른 아이디어를 내놨다. 중량이 무거운 차일수록 충돌 때 상대방 운전자에게 피해를 줄 확률이 높기 때문이다.
신자유주의 경제체제가 전세계적으로 공고해지면서 대다수 서민들의 삶은 팍팍해졌다. 결국 경쟁이 아니라 분배가 대안임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부자와 빈자, 개인과 사회 모두가 행복해질 수 있는 방법을 찾고 실행할 때”라는 지은이의 절박한 외침이 바로 오늘 우리 시대의 ‘보이지 않은 손’은 아닐까 생각해 본다.
 
http://www.munhwa.com/news/view.html?no=2012033001032730028002
‘보이지 않는 손’의 허점… 무한경쟁의 끝은 공멸 (문화, 김승현 선임기자, 2012년 03월 30일(金))
프랭크 교수는 ‘승자독식사회’가 애덤 스미스의 ‘보이지 않는 손’의 배신에 의해 구축된 것으로 봤다. 자신의 행동이 사회적으로 커다란 손실을 초래하더라도 이를 바꾸려는 수단과 동기가 결여된 ‘후회하지 않을 합리적 선택으로부터의 이탈’에 기인하고 있다는 것이다. 전형적인 ‘후회하지 않을 합리적 선택으로부터의 이탈’은 군비경쟁이다. 우수한 무기를 구매하기 위해 경비를 과도하게 지출할 수 있다. 그러나 한 국가만 지출을 줄인다면 해당국가만 피해를 보기 때문에 모두가 합리적인 선택으로부터 벗어났지만 아무도 후회하지 않는다.
그는 ‘보이지 않는 손’의 대안으로 찰스 다윈의 ‘자연선택론’을 선택했다. 책의 원제도 당초 바지 뒤춤을 들어 올려 바지가 엉덩이 사이에 끼게 하는 놀이인 ‘다윈의 낀 바지(Darwin’s Wedge·좀 더 학술적인 해석으로 ‘다윈의 쐐기’)’로 해서 이른바 승자독식사회의 ‘똥침’을 직설적으로 찌르려다가 ‘다윈 경제학(The Darwin Economy)’으로 참았다.
지난 수년간 경제성장률은 매우 낮았고 소득의 양극화는 심화됐다. 상위 계층의 호주머니는 계속 불어난 반면 물가 인상을 감안한 노동자의 실질 임금은 오히려 마이너스다. 저자는 이 같은 경쟁 과정 자체에 개별 동물의 이해관계가 종족 전체의 이해관계와 상충하는 결과를 초래하는 자연선택론을 적용했다. 예를 들어 수컷 말코손바닥사슴의 뿔은 외부 포식자에 맞서는 무기가 아니라 번식 경쟁에서 승리하기 위한 무기다. 돌연변이를 통해 큰 뿔을 가지게 된 수컷들은 경쟁자와의 경쟁에서 승리, 빨리 퍼져간다. 이는 개별 말코손바닥사슴에는 유리하지만 종족 전체에는 참담한 결과를 가져온다. 뿔이 커지면 기동력이 떨어져 잡아먹힐 가능성이 높아지기 때문이다. 모든 사슴이 뿔의 크기를 절반으로 줄이면 개별 사슴들도 손해 보지 않고 집단에게도 유리하지만 아무런 규제 없는 무한 경쟁 세계에서 어떤 사슴도 그렇게 하지 않는다.
저자는 “미래의 경제 질서란 경쟁이 아닌 ‘분배’”라며 누진소비세를 비롯해 탄소세, 혼잡통행료, 담뱃세와 같이 타인에게 해를 끼치는 행동에 세금을 부과하는 ‘피구세’, 저소득층에게 필요한 소득의 직접 이전 등을 대안으로 제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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