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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크스에 대한 ‘10가지 비판’ 반박- <왜 마르크스가 옳았는가> 테리 이글턴

 

http://www.yonhapnews.co.kr/culture/2012/09/12/0901000000AKR20120912095500005.HTML
이글턴 "마르크스는 획일성 아닌 다양성 추구" (서울=연합뉴스, 황윤정 기자, 2012/09/12 11:21)
전 세계적으로 경기침체가 깊어지면서 마르크스주의가 다시 주목받고 있다. 출판계에도 마르크스주의를 재조명한 책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신간 '왜 마르크스는 옳았는가'는 영국의 대표적인 마르크스주의 문학평론가이자 비평가인 테리 이글턴 랭카스터대 교수의 최신작이다.
"마르크스만큼 곡해된 사상가도 없었다"고 말하는 이글턴 교수는 이 책에서 마르크스주의에 가해진 10가지 '표준적' 비판에 대해 조목조목 반박한다. 마르크스주의에 대한 대표적인 비판 중 하나가 '마르크스주의는 폭력적이라는 것'. 마르크스주의 하면 흔히 유혈 낭자한 혁명과 봉기가 떠오른다. 이에 대해 이글턴 교수는 "마르크스는 어떤 혁명은 평화적으로 완수될 수 있었다고 믿었고 사회 개혁에 결코 반대하지 않았다"고 반박한다.
그는 혁명은 폭력과 혼란의 이미지를 연상시키고 개혁은 평화롭고 온건한 것으로 생각되는 경향이 있는데 "이는 잘못된 대립"이라면서 미국의 민권운동 등 "전혀 평화롭지 않은 개혁들도 많았다"고 지적한다.
이글턴 교수에 따르면 몇몇 혁명들은 상대적으로 평화로웠다. 대표적인 사례가 벨벳 혁명. 1989년 체코의 공산정권 붕괴를 불러온 벨벳 혁명은 피를 흘리지 않은 무혈 혁명이었으며, 1917년 볼셰비키 혁명도 놀랄 정도로 유혈이 적었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오히려 자본주의의 역사가 전 지구적 전쟁과 식민주의적 착취, 인종학살, 기근 등으로 점철돼 있다고 이글턴 교수는 지적한다.
또 '마르크스주의가 우리 모두를 획일적으로 만들 것'이라는 통념과 달리 마르크스에게는 제각기 독특한 개인의 자유로운 발전이 유일한 정치적 목표였으며 마르크스주의 유물론은 깊은 도덕적, 정신적 확신과 온전히 양립 가능하다고 반박한다.
"마르크스는 개인에 대한 열렬한 믿음과 추상적인 교리에 대한 불신을 품고 있었다. 그는 완벽한 사회(유토피아)라는 개념에 관심을 둘 여유가 없었고 평등이란 관념을 경계했으며 우리 모두가 등에 사회보험 번호가 찍힌 작업복을 입는 미래를 꿈꾸지 않았다. 그가 보고 싶어했던 건 획일성이 아니라 다양성이었다."
아일랜드계 노동자 집안에서 로마가톨릭 신자로 자란 이글턴 교수는 '정치적 행위'로서의 비평과 '제도'로서의 영문학을 분석해 명성을 얻었으며 문학과 문화, 비평과 이론 등에 걸쳐 40여 권의 책을 냈다.
하지만 저자의 이름만 듣고 책이 어려울 것이라고 지레 겁먹을 필요 없다. 이 책은 전작들과 달리 마르스크주의의 본질을 파헤치는 통찰력과 품위를 갖춘 대중 교양서에 가깝다. 책을 옮긴 황정아 한림대 한림과학원 HK교수는 "이글턴은 마르크스주의에 대한 비판 가운데 근거가 없지 않은 항목들이나 마르크스 자신의 요령부득한 발언들에 대해서도 '건전한' 상식에 기대어 인정할 것은 인정하자는 태도를 취한다"고 소개했다.
 
http://www.hani.co.kr/arti/culture/book/551778.html
마르크스에 대한 ‘10가지 비판’ 반박 (한겨레, 최원형 기자, 2012.09.14 20:21)
<왜 마르크스가 옳았는가> 테리 이글턴 지음, 황정아 옮김/길·1만7000원
영국의 마르크스주의 비평가 테리 이글턴(69)은 2년 전 방한 당시 자신의 새 책을 예고한 적이 있다. “2008년 금융위기 뒤로 카를 마르크스(1818~1883·사진 오른쪽)의 비전이 옳다는 것을 새삼스럽게 재확인”했으며, “‘왜 마르크스가 옳았는가’를 풀이하는 내용의 책을 준비하고 있다”는 말이었다. 최근 출간된 <왜 마르크스가 옳았는가>가 그가 예고했던 바로 그 책이다. 마르크스에 대한 가장 표준적인 비판 열 가지를 고르고, 그에 대해 이해하기 쉬운 언어와 특유의 유머를 섞어 조목조목 반박하는 형식을 취하고 있다. 그동안 써냈던 난해한 문화비평 작업들과는 사뭇 결이 다른 대중교양서다.
이글턴이 마르크스에 대한 비판들을 반박하는 것은 단지 마르크스주의에 대한 자신의 신념을 재확인하는 수준에 그치지 않는다. 사람들에게 너무도 확고한 현실이 돼버린 자본주의 체제가 스스로를 바꿀 가능성마저 무력화시키고 있는 지금 현실을 직시하게 하고, 이런 현실에 맞설 가장 강력한 무기, 곧 마르크스주의를 다시 그들 손에 쥐여주는 것이 그의 목표다.
책에 언급된 표준적인 비판 열 가지는 ‘마르크스주의는 끝났다’, ‘이론적으로만 괜찮다’, ‘결정론이다’, ‘유토피아를 꿈꾼다’, ‘만사를 경제로 환원한다’, ‘세계를 물질 덩어리로만 본다’, ‘이미 사라진 노동계급에만 집착한다’, ‘폭력적인 정치 행동을 선호한다’, ‘전권을 가진 국가를 믿는다’, ‘최근의 급진적 운동에 기여한 바 없다’ 등이다. 이글턴은 현실 사회주의권 몰락과 더불어 급격히 확산된 이런 통념들이 상식적으로만 따져봐도 잘못됐다고 질타한다.
가장 포괄적인 비판이랄 수 있는 ‘마르크스주의는 끝났다’를 보자. 많은 사람들이 마르크스주의는 한때 유용했지만, 세상이 너무 많이 바뀌어서 적합하지 않다고들 한다. 이에 대해 이글턴은 자본주의 체제는 변한 것이 아니라 심화된 것이라고 지적한다. 전 지구적 규모에서 자본은 전보다 더 집중돼 약탈하고 노동계급은 사실상 양적으로 늘어났다. 게다가 부의 불평등도 극적으로 심화됐다. 이글턴은 “마르크스주의는 주변부로 밀쳐졌지만 그 이유는 그것이 맞선 사회 질서가 더 온건하고 자애로워지기는커녕 예전보다 한층 더 무자비하고 극단적인 것이 됐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이런 방식으로 이글턴은 ‘집단을 우선시하고 획일적 미래를 꿈꿨다’, ‘의식보다 물질을 더 앞세웠다’ 등으로 다양하게 변주되며 확산된 마르크스주의 비판들을 뒤집는다. 특히 그가 이런 작업을 통해 드러내려는 마르크스의 진면목 가운데 가장 흥미로운 대목이 마르크스가 ‘제각기 독특한 개인들의 자유로운 발전’을 유일한 정치적 목적으로 삼았다는 점과, 자유·시민권 등과 같은 중간계급의 성취나 가치에 적극 동조했다는 점이다. 이글턴은 “개인의 자유로운 발전이 모두의 자유로운 발전의 조건이 된다”는 마르크스의 비전을 ‘사랑’이란 쉬운 말로 풀이하기도 한다. 적극적이고 독특한 그의 해석은 자본주의 체제가 폐기처분하려 했던 마르크스주의를 다시 우리의 삶 속으로 끌고올 수 있게 해주는 다리를 놓아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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