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켄로치에바친다④ 투쟁하는 작가주의의 최전선

투쟁하는 작가주의의 최전선
켄 로치에 바친다 ④
2006.11.09 / 정지연(영화평론가) 

현재의 감독 중 가장 실천적인 사회주의 감독 켄 로치는 역사적 거울을 통해 지금 노동계급의 우울과 좌절을 토로한다. 이제 중요한 것은 누구의 편에 서는가 하는 것만이 아니다. 이제 우리는 어디서 다시 시작해야 하는가를 고민해야 한다.

역사가의 태도! 1995년, 켄 로치가 <랜드 앤 프리덤>을 완성했을 때 세계는 논쟁에 빠져들었다. 물론 이것은 단순히 영화를 둘러싼 미학적, 문화적 담론만은 아니었다. 이 영화는 1939년 실패로 각인된 스페인 내전에 관한 배반과 분노에 대한 기록이었고, 영화가 개봉되자 스페인 극장가에서는 관객들의 자발적인 토론이 형성되는 진풍경들이 벌어지고 있었다. 무려 반세기가 지난 후에야 스페인의 역사는 망각의 늪으로부터 깨어나고 있었다. 한 평자가 켄 로치에게 왜 당신의 관심이 영국 노동계급으로부터 스페인으로 이전되었는가를 물었다. 그러자 그의 답은 명료했다. “역사는 우리에게, 우리가 어디에 서 있는지, 그것은 어디에서 오는 것인지, 우리의 상황을 설명해주는 것이다. 따라서 영화감독으로서 내가 해야만 하는 것은 역사를 지속적으로 탐구해 그것을 민중들에게로, 본연의 그들 것으로 되돌려주는 것이다. 왜냐하면 역사야말로 미래를 여는 열쇠이기 때문이다.”

이 대답처럼 올해 칸국제영화제에서 황금종려상을 수상한 켄 로치의 <보리밭을 흔드는 바람>은 그가 이미 <랜드 앤 프리덤>에서 보여줬던 역사가의 시선과 태도로 다시 한 번 무심한 세상을 향해 던지는 질문이다. 역사적 무대는 1920년 아일랜드다. 학살과 고문, 죽음과 고통으로 넘쳐나는 그곳에서 켄 로치는 스페인 내전의 전사들이 그랬던 것처럼 또다시 총을 들고 게릴라 투쟁의 한 전장으로 돌진한다. 그런 점에서 <보리밭을 흔드는 바람>은 <랜드 앤 프리덤>의 거울처럼 보인다. 전문 배우들과 자발적으로 참여한 시민들이 보여주는 역사적 한 순간들은 마치 뉴스릴이나 다큐멘터리를 보는 것처럼 생생해 숨이 막히고, 조바심 쳐진다. 켄 로치의 태도와 방법이 아니라면 어느 누구도 흉내 내지 못할 게릴라 전투의 소름끼치는 순간들이 지나가면, 역시나 예의 기나긴 토론들이 벌어진다.

내부의 적! <랜드 앤 프리덤>이 파시즘이라는 거대한 적을 넘어 좌파연대 그 내부에서 발생했던 균열과 종파주의에 대해 질문하고 반성했던 작품이었던 것처럼, <보리밭을 흔드는 바람> 역시 그들이 지금 무엇을 위해, 누구의 편에 서 있는가를 질문한다. 그러나 대답은 역사적 아이러니로 돌아온다. 거대한 적은 외부에 존재하지 않으며, 권력을 둘러싼 내부에서 발생한다. 한때 ‘조국’이라는 이름으로 투쟁을 함께했던 형제들은 노선의 차이로 인해 서로를 살육하는 끔찍한 비참으로 치닫고야 만다. <랜드 앤 프리덤>의 마지막 장면이, 스페인 내전의 역사로부터 현재의 런던 시점으로 넘어와, 할아버지의 장례를 치르던 손녀딸이 스페인의 붉은 흙과 수건을 손에 쥐고 번쩍 쳐들며 새로운 연대와 희망을 상기시켰던 것임을 기억하는 관객이라면, 이번 영화 <보리밭을 흔드는 바람>에서 보게 될 마지막 장면의 숨 막히는 암울함과 절망은 적이 당황스럽다. 그러나 그것은 2000년대에 들어선 켄 로치의 영화적 행보에서 이미 목격된 것이기도 하다. 영국 철도산업 민영화 이후 자신들의 생존을 위해 동료의 죽음을 방치할 수밖에 없었던 노동자들의 죄의식으로 관객의 마음을 짓눌렀던 2001년 작 <네비게이터>나, 세상에서 버려진 빈민가 아이가 결국 바다를 향해 걸어 들어가는 마지막 장면을 보여줬던 <스위트 식스틴>에서 우리는 이미 켄 로치의 비탄을 경험한 바 있다.

비극은 어디서 시작되었는가? 이른바 신자유주의, 즉 영국의 대처리즘 그리고 미국의 레이건 행정부에 의해 주도된 레이거노믹스 등으로 불리는 이 거대한 세계사적 흐름은 전 세계 노동계급에 대한 무자비한 탄압으로 가시화되고 있다. 그것은 비단 실업과 구조조정이라는 작업장의 첨예한 생존권 싸움을 넘어 우리의 일상으로 표면화되고, 문화와 가치들로 회귀한다. 이에 저항하는 문화적 표상들의 싸움은 몹시 고립되고 외로워 보인다. 거의 모든 영화들이 폭력과 쾌락과 상품가치의 스펙터클에 포획돼 있을 때, 같은 시대를 살아가는 또 다른 작가주의이자 좌파적 노선에 선 이들은 극히 적었다. 프랑스 노동계급의 삶을 드러내는 로랑 캉테나 알랭 기로디, 그리고 유럽의 변방 벨기에에서 역시 희망 없는 노동계급의 심리적 갈등과 윤리적 고뇌를 포착하는 다르덴 형제들처럼 그들은 매우 제한적인 이름들이다. 그나마 ‘세계 영화제’라는 특수한 시장을 경유하지 않고서는 우리가 그들의 영화를 보기란 거의 불가능하다. 영국 내부로 들어갔을 때조차도 켄 로치의 이름은 독보적이다. 물론 마이크 리를 빼놓을 수는 없다. 그는 노동계급의 보다 깊은 내면으로 침투해 들어가 그들이 살고 있는 삶의 건조함과 해방구 없는 절망 그 자체를 소묘한다.

그리고 이들과 다른, 이상한 또 하나의 트렌드가 있었다. 이른바 사회적 드라마라 불릴 만한 일련의 영화들은 스티븐 달드리의 <빌리 엘리어트>를 비롯해 <풀 몬티> <브래스드 오프>처럼 영국 키친 싱크의 후예임을 자처함과 동시에 대처리즘의 폭력으로 시작된 80년대 영국사회의 비극을 유머와 로맨스라는 장르적 방식으로 흡수한다. 이중에서도 스티브 달드리의 이력은 흥미롭다. 그는 1984년 영국 탄광노동자들이 총파업을 벌이던 바로 그 순간, 노동자들 곁에 선 증언자였다. 이 시기 켄 로치가 ‘1984년 파업에 동참한 탄광 노동자들의 노래, 시, 그리고 경험’이라는 부제의 다큐멘터리 <누구의 편에 설 것인가? Which side are you on?>를 연출하고 있었다면, 그는 연극 <돌이킬 수 없다 Never be the Same>로 노동자 파업을 지원하고 있었다. <빌리 엘리어트>는 바로 그러한 경험에서 탄생한 영화였다. 그러나 그가 켄 로치와 다른 점은 그 기억과 경험을 영국식 장르라는 상업적 타협으로 끌고 간다는 사실이다. <빌리 엘리어트>의 마지막 장면은 탄광 출신의 소년이 성공해 화려한 발레 데뷔전을 치르는 해피엔딩이었다. 그러나 실제 역사는 그렇지 않았다. 싸움은 처절하게 패했고, 심지어 많은 이들이 죽어갔다. 영국식 사회 드라마 영화들은 그 실패와 비참을 직시하는 것이 아니라 장르적 유머와 해피엔딩으로 봉합한다. 켄 로치의 진정성은 여기서 드러난다.

단순함의 미학! 켄 로치를 폄하하는 평자들의 주요 논지는 그가 형식에 대한 자의식을 갖고 있지 않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공허한 비판은 어느 누구보다도 형식 그 자체에 대한 자의식과 철학을 가진 그의 응답 아래 무가치해진다. “내용이 스타일을 결정해야만 한다. 영화는 반드시 핵심적인 경험과 생각을 바탕으로 만들어져야 하며, 카메라와 카메라의 스타일이 그것이 기록하고자 하는 대상과 그 앞에서 벌어지고 있는 사태보다 중요해져서는 안 된다.” 결국 그는 1969년 <케스>를 연출하며 만난 촬영감독 크리스 멩게스와 제작자 토니 가렛 등과 더불어 ‘꾸밈없고 소박하고 진지해지기 위한 가장 단순한 프레이밍’이라는 자신의 원칙을 설정한다.

사회주의자임과 동시에 원칙주의자인 켄 로치의 이러한 실천은 일회적인 작품들로만 투영되는 것이 아니라, 길게 이어지는 필모그래피를 통해서도 하나의 실천적 궤적을 형성한다. 60년대 프리시네마 세대와 더불어 등장한 그는 지금껏 여전히 노동계급의 일상을 소묘하면서도 그 안에 배태된 사회구조의 모순과 폭력을 성찰한다. 그러한 여정이 변별점을 경유하게 되는 지점은 1995년에 연출한 <랜드 앤 프리덤>으로부터 <칼라 송> <빵과 장미> 등을 통하면서다. 영국이라는 시공간 안에서 노동계급의 현실을 다루던 그의 카메라는 이제 스페인 내전의 역사로부터 식민지 니카라구아의 상흔으로, 그리고 첨단 자본주의이자 제국주의의 심장부 미국으로 넘어가 외국인 노동자와 노동조합에 대한 참여로 이어졌다. 이른바 새로운 인터내셔널리즘의 이러한 실천은 그러나 2000년대 발톱을 날카롭게 세운 블레어 정권의 영국에서 좌초되는 것처럼 보였다. “블레어 정권은 친미적이고 친자본적인 새로운 보수주의자”라는 그의 단언처럼, 그는 미국이 이라크에서 행하는 살육을 영국이 여전히 아일랜드에 행하는 폭력으로 비유한다. 1990년에 연출한 <히든 아젠다>에 이어 두 번째로 아일랜드 문제를 전면화한 이번 작품 <보리밭을 흔드는 바람>에서 그는 다시금 역사가 현재를 돌파하는 유일한 열쇠임을 상기한다. 그러나 돌파구 역시 단순하지 않음을 그는 안다. 그는 아마 이 영화를 연출하며 이 말을 떠올렸을지도 모른다. “혁명에서 성공하는 것은 어렵다. 그러나 더욱 힘겨운 문제는 혁명의 성공 그 이후에 닥쳐올 것이다.” 그가 베스트 영화로 손꼽는 질로 폰테코르보의 <알제리 전투>에 나오는 한 혁명가의 말이다. 적은 거대한 괴물 그것만이 아니라 그것에 익숙해지고 닮아가는 우리들 내부에서 생겨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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