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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TV, 송출중단 6개월..'가처분 기각 후 지난한 법정 공방 중'

진천규 대표, "고맙고 미안하다. 희망을 버리지 말자"

  • 기자명 이승현 기자 
  •  
  •  입력 2023.08.03 12:32
  •  
  •  수정 2023.08.03 18:06
  •  
  •  댓글 2
 
지난 1일 오후 진천규 통일TV 대표를 만나 송출중단 이후 경과와 현재 상황,  향후 계획에 대해 들어봤다. [사진-통일뉴스 이승현 기자]
지난 1일 오후 진천규 통일TV 대표를 만나 송출중단 이후 경과와 현재 상황,  향후 계획에 대해 들어봤다. [사진-통일뉴스 이승현 기자]

지난 1월 18일 방송 서비스 사업자인 KT의 일방적 통보에 따라 송출 중단 사태를 맞은 [통일TV]가 KT의 부당한 계약해지를 문제삼아 제기한 소송에서 최근 기각 결정이 내려져 앞으로 가처분 신청 기각에 대한 항고와 본안 소송으로 이어지는 치열한 법정 공방이 예상된다.

서울중앙지방법원 제50민사부는 지난 7월 20일 [통일TV]가 신청한 계약해지효력정지 가처분신청에 대해 기각 결정을 내린 것으로 3일 확인됐다.

[통일TV]는 "방송내용에 민원이 제기됐거나 법 위반 사실이 있다면 방송심의위원회나 방송통신위원회에서 주의나 경고, 시정조치 등 내부절차가 있어야 할 것이고 이에 대한 소명 기회가 주어져야 하지만 KT는 1월 18일 오후 5시 담당임원을 포함한 직원 3명이 PP업체 계약해지에 대한 서면통보를 한 뒤 단 2시간만인 오후 7시부터 방송이 끊겼다"며 계약해지 과정에서 절차상 하자가 있었다는 점을 가처분 신청의 핵심 취지로 제기했으나 재판부는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7월 20일 서울중앙지법 제50민사부의 결정문 표지. 통일TV의 계약해지효력정지가처분신청에 대해 기각결정을 내렸다. [사진-통일뉴스 이승현 기자]
7월 20일 서울중앙지법 제50민사부의 결정문 표지. 통일TV의 계약해지효력정지가처분신청에 대해 기각결정을 내렸다. [사진-통일뉴스 이승현 기자]

통일TV의 주장은 이렇다.

먼저 방송채널사용 사업자인 통일TV가 인터넷 멀티미디어방송(IPTV)을 제공하는 사업자인 KT가 운영하는 '지니TV'를 통해 송출한 콘텐츠는 국가보안법상 이적표현물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것이므로 계약해지의 실체적 사유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

KT는 지난 1월 "통일TV를 운영함에 있어 김정은 찬양의 내용과 북한체제 우월성 선전 등 법적, 사회적, 국가적 공익을 저해하는 내용을 지속적으로 송출한 것이 계약해지 및 송출중단의 사유"라고 밝힌 바 있다.

다음은 송출중단 결정 절차의 문제이다.

△'채널 편성 정책 변경' 등에 대해 채널사업자와 상호협의하에 변경할 수 있고 변경 약관 시행 15일 이전에 해당 사업자와 이용자에게 고지해야 한다는 양사간 계약의 규정된 절차를 위반했다는 점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이 이용약관 변경신고를 수리하기 전에 KT측이 채널 송출을 먼저 종료하여 인터넷 방송법과 관련 시행령을 위반한 점 △채널계약 관련 평가기준 공개와 평가결과 통보, 채널계약 변경 관련 공식 소명절차 마련, 송출 중단 1개월 이전 시청자에 고지 의무 등 방송통신위원회 제정 '유료방송시장 채널계약 및 콘텐츠 공급절차 등에 관한 가이드라인'의 규정을 지키지 않은 점 등을 지적했다.

이에 대해 재판부는 우선 '신뢰관계가 파괴되어 계약 존속을 기대할 수 없는 중대사유가 있는 경우 그 계약관계를 곧바로 해지할 수 있다'는 대법원 판례와 해지에 앞서 시정요구나 이행의 '최고'(독촉 통지)를 거쳐야 한다는 규정이 양사간 계약내용에 없다는 점을 들어 KT의 계약해지가 절차적으로 위법하여 무효라는 단정을 하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절차상의 하자에 대해 KT측에 기울어진 결정을 한 것인데, 중대 결정을 계약 당사자에 사전 고지없이  할 수 없다는 상식에도 반한다는 의견이 많다. 

심각한 문제는 통일TV가 송출했던 컨텐츠에 "김정은을 찬양하거나 북한 체제의 우월성 등을 선전하는 북한 제작영상물이 상당부분 포함되어 있던 것은 명백하다"고 판단한 것.

국가보안법상 이적표현물에 해당하는지, '채널사업자가 공급한 컨텐츠가 법적, 국가적, 사회적 또는 도덕적으로 공익을 저해하는 경우 모든 법률적 책임을 진다'는 양사간 계약을 위반한 것인지에 대해서는 이후 본안 소송에서 다룰 일이라고 미루었지만 이에 대한 재판부의 판단은 명백하다.

북측 [조선중앙텔레비젼] 영상을 편집해 방송한 통일TV의 '북녘의 하루', '생생북녘' 등 프로그램에 대해 국가보안법 위반 소지가 있다며 6개월 전 송출 통보를 해 온 KT의 주장을 그대로 인정한 것이다.

지난 1일 서울 중구 필동 사무실에서 만난 진천규 [통일TV] 대표는 "국내 지상파 방송사를 비롯해 주요 언론사들이 대부분 북측 [조선중앙TV] 화면을 편집해 방송에 활용하고 있는데, 유독 [통일TV]의 방송내용이 국가보안법 위반일 수 있는 근거는 무엇인가"라며 헛웃음을 쳤다. 

2018년 9월 19일 한국프레스센터에서  진행된 통일TV 출범 기자회견. [통일뉴스 자료사진]
2018년 9월 19일 한국프레스센터에서  진행된 통일TV 출범 기자회견. [통일뉴스 자료사진]

그러나 이걸로 끝이 아니었다. 기가 막힐 일은 계속됐다.

가처분 신청에 대한 기각결정이 내려지기도 전인 7월 12일 과학기술정보통신부에서 '등록취소' 절차를 통보해 온 것.

진 대표에 따르면, 주무부처인 과기정통부는 지난 7월 12일 '거짓이나 그밖의 부정한 방법으로 등록·변경등록을 한 때 이를 취소할 수 있다는 방송법 제18조를 근거로 '등록취소' 처분을 예정하고 있으니 의견을 진술하거나 증거를 제출할 수 있도록 청문 예정일인 7월 24일까지 정부세종청사로 출석하라'는 '처분사전통지서(청문실시통지)'를 보내왔다.

송출중단 통보가 명백한 절차적 문제를 안고 있었기 때문에 가처분 신청에서 최소한 일부라도 '인용' 결정이 나올 것으로 기대하면서 지난 6개월간 [통일TV]의 새로운 활로를 고민하던 그로서는 예상하지 못한 일이었다.

가처분신청에 대한 일말의 기대를 갖고 기다렸지만 결과는 7월 20일의 기각결정이었고 여기에 법인말소 위기까지 발생하다보니 엎친데 덮친 격이 되어 버렸다.ㅡ

진 대표는 앞선 송출중단 조치도 그랬지만 법인 등록취소 역시 초유의 일이라고 했다.

가처분신청 결과가 나오기도 전에 등록취소 예정통보가 온 것이 꺼림직했지만, 남은 일주일은 청문 준비를 하기에 너무 촉박한 일정이어서 우선 다급하게 일정연기부터 사정했다. 그렇게 청문 예정일은 오는 8월 7일로 미뤄진 상황.

이후 남은 절차와 대응은 △가처분신청 기각결정에 대한 항고 △계약해지에 대한 문제는 본안 신청에서 다루라는 결론이 나왔으니 손해배상 청구소송과 함께 본안소송을 준비하는 일 △등록취소 청문에 대비해 철저히 소명 준비를 하는 것 등이다. 

손해배상청구액은 지금은 뿔뿔히 흩어진 통일TV 직원 16명과 협렵업체 직원 4명, 가족을 포함해 총 50명의 생계 비용과 투자금에 대한 피해액 등을 감안해 결정했다. 

송출중지된 1월 18일부터 앞으로 법원에서 인용결정이 날때까지 3년이든 4년이든 최종 판결이 날때까지 계속 손해배상청구액은 적용될 것이라는 설명이다.

다만 여러 법률적 대응과정에서 통일TV의 신청과 청구가 모두 받아들여진다고 해도 KT와 계약기간이 1년으로 되어 있기 때문에 올해 12월 31일이면 자동연장없이 계약해지가 불가피할 것이라는 판단은 하고 있다. 그렇지만 끝까지 하기로 했다.

희망의 끈을 놓을 수는 없기 때문이다.

송출중단 이후 유튜브를 통해 몇 편의 방송을 올리고는 있지만 의미있는 대안으로 생각할 수는 없는 형편이다. 진 대표는 "하고는 있는데, 그냥 숨만 쉬고 있다는 정도"라고 말했다. 역시 문제는 다시 재원이다.

방송을 시작한 작년 8월 17일부터 5개월동안 경상운영비로만 매달 1억원 넘게 지출되었다. 송출대행사에 송출료로 월 1,800만원씩 내면서도 수신료는 한푼도 받지 못했다. 

약 200명에 달하는 다수의 소액투자자들이 모아 준 투자금은 이미 바닥이 난지 오래다. 

주주들과 후원회인 통일TV협동조합 조합원들, 짧은 기간이지만 열성적으로 통일TV를 지지하고 즐겨 시청했던 시청고객들에게 미안한 마음도 크다.

진 대표는 그들 모두에게 "그러나 희망이 있다. 아직은 희망을 버리지 않기를 바란다"고 당부하고 또 호소했다. 

"언젠가 남북관계는 열릴 것"이며, "통일TV가 원상복귀되는 과정이 남북관계 발전의 기폭제가 될 것"이라는 포부도 밝혔다.

숨가쁘게 바쁘고 앞으로도 지난한 일정이 기다리고 있지만 미룰 수도 없고 누가 대신해 줄 수 있는 일도 아니다.

진 대표는 통일TV 설립 초창기부터 부사장으로 힘을 보탰던 최재영 목사가 다시 큰 어려움에 처한 통일TV의 재기를 위해 다시 나서주어서 힘이 된다고 했다. [사진-통일뉴스 이승현 기자]
진 대표는 통일TV 설립 초창기부터 부사장으로 힘을 보탰던 최재영 목사가 다시 큰 어려움에 처한 통일TV의 재기를 위해 다시 나서주어서 힘이 된다고 했다. [사진-통일뉴스 이승현 기자]

어렵고 힘들었던 통일TV 설립 초창기부터 부사장으로 힘을 보탰던 최재영 목사가 다시 큰 어려움에 처한 통일TV의 재기를 위해 다시 나서주어서 힘이 된다고 했다.

최 목사는 "통일TV의 불씨는 살려가면서...그러니까 통일TV를 살려달라는 얘기거든"이라고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가처분신청이 일부 인용이라도 되면 방송을 재개하려던 계획을 세웠는데 뜻밖에 기각결정 통보를 받았고, 지금 사무실에는 명도소송까지 들어 온 상황이라 상당히 어려운 처지에 내몰렸다고 하면서도, 두 사람은 "아직 포기할 단계는 전혀 아니"라고 현재의 상황을 설명했다.

한편, 통일TV는 2018년 9월 출범식을 갖고 개국을 준비해 왔으며, 2021년 5월 과학기술정보통신부로부터 '방송채널사용사업자' 인가를 받은데 이어, 지난해 7월 20일 당시 KT 올레TV와 멀티미디어 방송 콘텐츠 공급 기본계약을 체결하고 8월 17일부터 방송을 시작했다가 5개월만인 지난 1월 18일 일방적인 송출중단 통보를 받았다.

특히 지난해 7월 20일 KT가 당시 올레TV(현 지니TV)를 통해 통일TV의 콘텐츠를 공급하기로 계약한 것을 두고 이틀 뒤인 7월 22일 북한 방송 선개방을 발표한 윤석열 정부가 취한 선제적 조치라는 해석이 나왔으나 이후 대북 강경 기류로 정책기조가 바뀌면서 전격 송출중단 결정이 내려졌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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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러시아-아프리카 정상회담, 다극 세계로 가는 이정표

  • 장창준 객원기자
  •  
  •  승인 2023.08.03 08:37
  •  
  •  댓글 0
  • 우크라이나의 곡물은 대부분 고소득 및 중간소득국가에 수출된다. 이에 반해 러시아의 곡물은 아프리카와 기타 저소득 국가에 수출된다.

    미국과 나토 회원국들은 모스크바가 "굶주림을 무기화"한다고 비난하지만, 이것처럼 역겨운 선전도 없다.

    러시아의 노력에 대한 아프리카의 우애적 포용은 사멸해 가는 서방 헤게모니에 박히는 또 하나의 대못이 될 것이다.

    러시아-아프리카 정상회담을 다룬 Strategic Culture Foundation(SCF) 사설을 소개한다. SCF는 모스크바에 본사를 둔, 러시아의 싱크 탱크 중 하나이다. 미국 정부는 SCF를 러시아의 정치적 수단으로 간주하고, 2021년 SCF에 제재를 가했다. 우리 언론은 지난주 개최된 이 정상회담을 거의 보도하지 않았다. 이 사설은 이번 정상회담에 대한 러시아의 시각을 읽을 수 있는 좋은 텍스트이다. <역자주>

    ▲ 2019년에 이어 두번째 러시아-아프리카 정상회의가 지난 주 러시아에서 열렸다.

    지난주(7.28~29)에 개최된 러시아-아프리카 정상회담은 가장 시의적절한 시기에 열렸다. 이 회담에 대한, 심각하고 끔찍한 왜곡(wrench)이 진행되고 있지만, 러시아와 아프리카 정상들의 만남은 궁극적으로 인류를 위한 더 나은 미래를 예고하는 중요한 변화를 보여주었다.

    NATO에 의해 촉발된 대리전이 우크라이나에서 진행 중인 가운데, 거의 50개 아프리카 국가의 지도자들이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주최한 이틀간의 상트페테르부르크 포럼에 참석했다.(2019년에 열린 러시아-아프리카 정상회담에는 40여 개의 아프리카 국가가 참석했다-역자주)

    우크라이나의 분쟁은 500일 넘게 격렬한 양상으로 진행되고 있고, 미국 주도의 서방 국가와 러시아 사이에 통제 불능 상태에 빠질 위험이 커지고 있다.

    워싱턴과 NATO 동맹국들은 피비린내 나는 전쟁을 종식하려는 어떠한 외교적 시도도 거부한다. 전형적인 서구의 오만함은 평화적 해결을 요구하는 아프리카의 목소리를 일축했다.

    이 전쟁은 세계 식량 공급과 가격에 큰 영향을 끼쳐 13억 인구를 갖는 아프리카를 강타했다. 러시아는 세계 공급량의 약 20%를 차지하는, 세계 최대의 밀과 다른 곡물의 공급국이다. 우크라이나는 약 7%를 공급한다.

    푸틴 대통령은 이번 정상회담에서 “한편으로는 서방 국가들이 우리의 곡물과 비료 공급을 방해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현재 세계 식량 시장의 위기 상황에 대해 위선적으로 우리를 비난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7월 17일 러시아는 지난해 체결한 흑해 곡물 협정(*)에서 탈퇴했다. 이 협정은 러시아에 부과된 서방의 일방적(그리고 불법적)인 제재를 종료하는 대가로 흑해를 통한 우크라이나 농산물 수출을 보장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서방 국가들은 그 협정을 이행하지 않았다.

    * 흑해 곡물 협정(Black Sea Grain Initiative)

    유엔과 튀르키예의 중재로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사이에 체결된 곡물 협정이다.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중단된 우크라이나의 곡물 수출을 재개하기 위해 지난해 7월 체결되었다.

    120일 시한을 둔 협정이 지난해 11월 한 차례 연장(1차 연장)됐고, 올해 3월에도 연장이 합의된 바 있다.(2차 연장) 2차 연장은 60일 시한을 설정했다. 60일 시한 만료 직전인 5월 17일, 러시아와 우크라이나는 2개월 추가 연장에 합의했다. 7월 18일 0시(7월 17일 자정)가 시한 만료 시점이었고, 러시아는 7월 17일 협상 만료를 선언했다.

    7월 17일 우크라이나 정권이 크림반도로 가는 케르치 대교(Kerch Bridge)를 폭격하자(지난해 10월에도 이 대교에서 폭발이 발생해 통행이 중단된 적이 있다-역자주) 러시아는 즉각 곡물 협정을 탈퇴했다. 두 명의 러시아 민간인을 죽인, 케르치 대교 공격은 모스크바의 인내 한계선(last straw)이었다. 흑해 곡물 협정은 우크라이나 화물이 케르치 교량 공격에 가담한 잠수정 드론과 같은 NATO 무기를 비밀리에 운송하는 데 사용되었다.(러시아 정부의 입장과는 차이가 있다. 러시아 정부는 곡물 협정 탈퇴와 케르치 대교의 폭발은 직접적인 관련이 없다고 발표했다-역자주)

    ▲ 케르치 대교는 크림반도와 러시아 본토를 연결한다.

    서방의 경제 제재에도 불구하고 러시아는 지난해 1,100만 톤 이상의 밀과 기타 곡물을 아프리카 국가에 수출했다. 이번 정상회담에서 푸틴 대통령은 식량 공급이 아프리카 시장에 계속될 것이라고 확언했다. 러시아 대통령은 또한 식량 불안정의 위험에 처한 몇몇 아프리카 국가에 대한 추가적인 곡물 무상 수출을 발표했다.

    이번 정상회담의 최우선 의제는 식량 주권이었다. 러시아는 우크라이나의 수출 부족과 상관없이 아프리카에 곡물 공급을 보장하겠다고 다짐했다.

    미국과 유럽의 나토 회원국들은 모스크바가 "굶주림을 무기화"하고 "세계의 가난한 사람들을 굶주리게 한다"라고 비난하는데, 이것처럼 역겨운 선전도 없다.

    유엔 데이터에 따르면 우크라이나 수출의 가장 큰 몫(80% 이상)은 고소득 및 중간 소득 국가들에 돌아갔다. 아프리카 및 기타 저소득 국가로 향하는 우크라이나 곡물은 3%에 불과하다. 러시아는 아프리카와 기타 저소득 국가의 주요 곡물 공급처였다. 서방은 자신들의 곡물 거래를 ‘인도주의’로 치장하지만, 그들의 곡물은 가난한 나라가 아니라 소수의 부유한 나라에 수출되었다. 또한 서방 곡물이 간 곳은 민간 기반 시설에 대한 테러 공격을 수행한 우크라이나 정권이었다.

    아프리카 국가들은 우크라이나 분쟁이 쇠퇴하는 패권을 지탱하려는 미국과 서방에 의해 촉발된 것임을 잘 알고 있다. 아프리카의 이런 시각은 아프리카 국가들이 나토와 상반된 입장을 피력한 데서 잘 나타난다. 남반구의 다른 지역과 마찬가지로 아프리카 대륙은 러시아를 고립시키고자 하는 서방의 노력에 동참하기를 거부해 왔다.

    역사적으로도 아프리카는 서방의 식민, 신식민 지배로부터 독립하기 위해 러시아의 지원을 받아왔다. 아프리카 국가들은 아프리카에 대한 제국주의적 미국과 유럽의 개입과 달리 그런 개입을 한 번도 해본 적 없는 러시아에 대해 호의적 입장을 취해 왔고, 연대 의식을 갖는다. 미국과 유럽의 정치인들은 아프리카를 "거지소굴(shit-hole)"로 간주하고, 아프리카인들이 미국과 유럽의 개입을 원하고 있다고 왜곡한다.

    다극 질서에 대한 모스크바의 지지와 국가 주권에 대한 러시아의 존중은 아프리카 국가들에 깊은 반향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이번 정상회담에서 푸틴과 함께 연단에 오른 아프리카 연합(African Union)의 아잘리 아수마니(Azali Assoumani) 의장은 아프리카의 완전한 독립과 주권에 대한 러시아의 연대와 헌신을 높이 평가한다고 말했다.(아프리카 연합은 러시아와 함께 이번 정상회의의 공동 호스트이다-역자주)

    푸틴은 나라의 주권이 일회성 성취가 아니라 끊임없이 강화되고 보장되어야 하는, 지속적인 지위라고 언급했다. 푸틴은 아프리카 국가들이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유럽 식민 지배 세력으로부터 정치적 독립을 달성했지만, 금융과 무역에 대한 다양하고 교활한 신식민지 지배 수단을 통해 그들의 발전이 계속 방해받았다는 역사적 사실을 언급했다.

    아프리카가 갖는 글로벌 국가로서의 거대 잠재력은 식민주의 유산 때문에 아직 실현되지 않고 있다는 사실 자체가 미국과 서방의 기만에 대한 기소이자 폭로이다.

    그러나 서방의 패권이 무너지는 등 세계는 급변하고 있고, 이를 통해 아프리카 국가들은 새로운 경이로운 발전의 가능성을 기대할 수 있게 되었다.

    이번 정상회담에 아프리카 국가들이 적극적으로 참여한 것은 새로운 다극 세계를 포용하여 아프리카를 자유롭고 성공적인 대륙으로 만들려는 열망과 결의의 증거이다. 서방은 아프리카 대륙이 이번 정상회담에 불참하도록 다양한 압력을 넣었다. 그러나 그 더럽고 낡은 책략은 역사의 흐름을 막지 못했다.

    다극화된 세계의 적절한 파트너십을 통해 아프리카의 번영은 지난 여러 세기 동안 그 대륙을 약탈하고 예속시킨 서구 열강의 풍요로움이 아니라 오롯이 아프리카와 아프리카인의 풍요로움이 될 것이다.

    최근 서방의 지원을 받는 대통령에 대한 니제르의 쿠데타(*)는 서방에 대한 아프리카의 반감을 보여준다. 서아프리카에서 지난 3년 동안 프랑스나 미국이 후원하는 정권에 맞서 7번의 쿠데타가 발생했다. 이번 주 니제르에서와 마찬가지로 아프리카 시위대는 러시아 국기를 흔들었다. 이는 워싱턴과 유럽 식민 지배에 대한 아프리카인의 저항을 상징한다.

    ▲ 니제르 쿠데타를 지지하는 시위대가 러시아 국기를 들고 있다.

    * 니제르 쿠데타

    알제리와 나이지리아 사이에 위치한 니제르에서 7월 말 군부 쿠데타 발생했다. 2년 전 출범한 니제르의 모하메드 바줌 대통령은 서아프리카 지역 내 서방과의 동맹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해왔으며, 미국과 프랑스는 니제르에 군사 기지를 두고 있다.

    군부 쿠데타를 지지하는 시위 참가자들은 “타도 프랑스”, “외국군 기지 철수”라는 피켓을 들었고, 러시아 국기를 든 모습도 관찰되었다.

    아프리카의 식량 주권은 서방 강대국이나 우크라이나에 의존하지 않고 달성될 수 있다. 게다가 훨씬 더 중요하고 더 큰 그림이 아프리카를 손짓한다. 아프리카의 농업적 잠재력은 아프리카 대륙에 충분할 정도의 식량을 공급할 뿐 아니라 나머지 세계에 대한 식량 수출국이 될 수 있다. 그 유익한 미래에 대한 유일한 장애물은 서방 국가들의 정치적, 경제적 제약이다. 아프리카 국가에 대한 서방의 특권과 통제는 노예 제도의 착취처럼 시대착오적이다.

    서방의 불법적인 패권 추구에 맞서고, 서방 지배의 사악한 메커니즘(미국 달러, 일방적 제재, 금융 부채 등등)으로부터 독립하기 위해 다극화를 추구하는 러시아의 노력은 역사의 순리에 부합한다.

    러시아의 노력에 대한 아프리카의 우애적 포용(fraternal embrace)은 매우 정당하며, 사멸해 가는 서방 헤게모니에 박히는 또 하나의 대못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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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창준 객원기자92jcj@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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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호 선장 윤석열은 '리더'인가, '보스'인가?

[박해성의 여의대교] 분열에 기대는 정치, 왜?

박해성 티브릿지 대표  |  기사입력 2023.08.03. 05:13:22

 

지난달 18일에 서울시 서초구 서이초등학교의 한 교사가 스스로 생을 마감했습니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이 비극적이고 충격적인 사건은 교육 현장과 과정이 어떠해야 하는가, 라는 묵직한 질문을 우리 사회에 던져주고 있습니다. 교사와 학부모, 교사와 학생이 서로의 위치를 인정하고 이해하며 존중하는 일이 누군가를 죽음으로 내몰 만큼 어렵고 불가능한 일이었던가, 곰곰이 생각해보는 계기가 됩니다.

 

윤석열 정부와 여당인 국민의힘은 '교권 회복'에 힘을 싣는 모양새입니다. 7월 26일 당정협의회를 열고 교원지위향상법 개정안, 초중등교육법 및 아동학대처벌법 개정안 등의 법 통과를 추진하기로 했습니다. 특히 학생인권조례가 '진보 교육감'들 주도로 도입됐다는 점을 강조하며, 개정 의사를 밝히기도 했습니다. 

 

학생인권조례는 2010년 10월 5일 경기도 교육청이 처음 공포했습니다. 이후 약 10년간 광주, 서울, 전북, 충남, 제주 등에서 잇따라 제정됩니다. 교육청별로 세부적인 차이는 좀 있습니다만, 학생을 인권의 주체로 보고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가 학교에서 존중받도록 하는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학생인권조례를 사태의 주범으로 지목한 여권의 논리는 간단합니다. 학생의 인권이 '지나치게' 강조되어 '교권'이 침해당했다는 겁니다. 정말 그럴까요? 교사와 학생의 인권은 서로 양립 불가능한 가치일까요? 정부·여당은 서이초 교사의 사망 사건을 두고 일부 교육감들의 진보성향과 학생인권조례 탓을 하며 무엇을 얻고자 하는 것일까요?

 

올해 5월 16일 윤석열 대통령이 주재하는 제20회 국무회의가 열렸습니다. 정부 출범 2년 차를 맞은 첫 국무회의였습니다. 윤 대통령은 회의를 개최하며 14분에 걸친 모두발언을 했는데요, '이념'이라는 단어를 다음과 같은 대목에서 여섯 차례 언급합니다. 

 

① 과거 포퓰리즘과 이념에 사로잡힌 반시장적 경제정책, ② 이념적, 반시장적 부동산 정책, ③ 이념적, 정치적 (원전) 정책, ④ 정치 이념에 매몰된 국가 정책, ⑤ 획일화된 교육, 정치 이념적 교육, ⑥ 이념적, 반시장적 정책을 정상화.

 

모두 전임 문재인 정부의 정책을 비판하는 데 동원된 표현입니다. '문재인 정부 = 이념적 = 반시장적' vs. '윤석열 정부 = 정상화 = 자유민주주의'의 대립 구도를 만들어 반복해서 강조하고 있습니다. 내 편과 남의 편을 나누고, 내 편은 옳고 남의 편은 틀렸다고 주장하는 전형적인 편 가르기입니다. 여기서 대통령은 '이념'이라는 매우 편리한 딱지를 들고 나왔습니다. 

 

딱지 붙이기는 경제, 부동산, 탈원전, 교육 등 대표적인 정책 분야에만 국한하지 않습니다. 문재인 정부 시절의 코로나19 방역 정책을 '이념적 정치방역'이라고 규정하거나(5.11, 윤 대통령, 코로나19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 회의), 문재인 정부와 더불어민주당을 '반국가세력'으로 몰고(6.28, 윤 대통령, 한국자유총연맹 연설), '가짜 독립유공자 용납 불가' 운운하면서 친북 논란 공적 재평가를 시사하며(7.3, 박민식 국가보훈처 장관 SNS 글), 마음에 들지 않는 언론은 '공산당 신문·방송'으로 규정합니다(8.1, 이동관 방송통신위원장 후보자 출근길 질의응답). 

 

분열적인 수사 없이는 현 정부 정책 기조의 정당성을 제대로 설명하지 못하는 집권 세력의 얄팍한 타산이 안타깝습니다. 이렇게 양산된 불신과 불화를 치유하고 통합과 사회적 연대의 가치를 살리기 위해 앞으로 우리가 치러야 할 대가가 얼마나 클지 걱정스럽습니다. 

 

지난해 3월 9일에 치러진 제20대 대통령선거에서 윤석열 후보가 48.56%, 이재명 후보가 47.83%를 얻어 두 후보의 득표율 차이는 0.73%p포인트에 불과했습니다. 역대 대선 중 최소 득표율 격차였습니다. 선거 이틀 전에 한국갤럽이 성인 1000명을 조사한 결과 우리 국민의 이념 성향은 보수 28.8%, 중도 31.1%, 진보 26.0%의 분포를 보였는데요, 박빙의 대선 결과를 중도층이 갈랐다고 볼 수 있는 비율입니다. 

 

최근 두 달간 정당 지지도를 분석해보면 국민의힘은 33~35%, 더불어민주당은 29~34%, 무당층은 27~32% 수준입니다(한국갤럽 자체 조사. 상세 사항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 홈페이지 참조). 대체로 3:3:3의 유권자 지형이 형성돼 있다고 봐도 좋을 것 같습니다. 윤석열 정부 2년의 성적표를 받게 될 내년 4월 국회의원 선거에서도 중도층의 투표 참여 여부와 표심이 승패를 결정할 가능성이 큽니다. 

 

집권 중반에 치러지는 총선을 보통 '중간선거'라고 부르는데, 이는 정부·여당에 대한 평가를 중심으로 한 신임투표의 성격을 갖습니다. 그래서 보통 '국정 안정·지원 vs. 정권 견제·심판'의 캠페인 구도가 수립됩니다. 지난 2020년 총선에서는 '코로나 극복'을 어젠다로 내세운 여당과 '조국, 부동산, 내로남불' 이슈로 공세에 나선 야당이 맞붙어 집권세력의 승리로 귀결되었습니다. 

 

총선이 약 8개월 남은 지금 시점에서 여야는 '강 대 강' 대치를 계속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여권으로서는 힘을 실어달라고 호소할 만한 명분이 부족하고, 야당인 더불어민주당은 '윤석열 정부가 잘못한다'라는 비판 여론을 결집할 만한 킬러 이슈가 마땅치 않은 것 같습니다. 여야 모두 핵심 지지층의 결집은 공고한 편이지만 중도·무당층을 움직일만한 동력을 만들어내지 못하고 있습니다. 

 

7월 28일 공개된 한국갤럽 조사 결과를 보면, 중도층의 59%는 윤 대통령의 직무 수행을 부정적으로 평가하고 있습니다. 무당층 역시 '잘못하고 있다'라는 응답 비율이 56%에 이릅니다. 만약 이대로 선거를 치른다면 집권 세력은 중도·무당층으로부터 불신임 카드를 받을 가능성이 큰 상황입니다. 

 

이념을 내세워 끊임없이 편 가르기를 시도하는 여권의 속내가 짐작이 갑니다. 비판을 수용하는 포용적인 국정 운영으로 폭넓은 지지를 확보하기보다는, 민주당 핵심 지지층과 진보층을 여론으로부터 고립시키겠다는 전략으로 보입니다. 이 과정에서 진보-보수 진영 간 혐오는 물론, 중도·무당층의 정치 외면 현상이 더 심각해질 것입니다. 불행하게도 윤석열 정부와 국민의당은 그래도 괜찮다고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또 그렇다고 해도, 교사의 사망 사건과 같은 사회적 문제까지도 교육감의 이념을 거론하며 사안의 본질을 흐리는 정치적 선택은 지나치다는 생각입니다. 사회 구성원들의 지혜를 한데 모아야 할 이 시점에 윤석열 정부는 분열에 기대는 비겁한 정치, 자기 진영 뒤로 숨는 무능한 정치를 또 한 번 보여주고 있습니다. 패거리 정치라고 불러도 어색하지 않을 정도입니다. 

 

리더와 보스의 차이에 대해 들어보셨습니까? 언론인 출신의 문화평론가 홍사중 씨의 <리더와 보스>라는 책 내용 중 일부를 제 방식대로 요약해보겠습니다. 리더는 '우리'라고 말하며 사람들을 이끌고 간다. 대중의 눈으로 세상을 보며 무엇이 잘못되었는가를 알려준다. 희망을 주며 지지자를 만든다. 반면 보스는 '나’'고 말하며 사람들을 몰고 간다. 자기 눈으로만 세상을 보며 누가 잘못하고 있는가를 지적한다. 겁을 주며 부하를 만든다. 

 

여러분이 보시기에 지금 대한민국호의 선장, 윤석열 대통령은 리더입니까? 보스입니까?

 

 

박해성 티브릿지 대표는 여론조사 전문가이자 정치·선거, 빅데이터, 공공정책 분야의 컨설턴트입니다. 2019년부터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위원으로 활동하고 있으며, 2022년 대통령직속 자문기구인 국가균형발전위원회 위원으로 위촉돼 지역산업·경제분과위원장을 맡아 국가적 과제 해결에 참여하고 있습니다. 직업인으로서, 비판적 시민으로서의 감수성과 현실을 직시하는 균형감각을 신념으로 삼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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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일보, LH 철근 누락 ‘네 탓 공방’에 “국민 안전 놓고, 무책임”

  • 기자명 윤수현 기자 
  •  
  •  입력 2023.08.03 07:48
  •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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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신문 솎아보기] 윤석열 “우린 반카르텔 정부” 선 긋기 나서

조선 “이 문제까지 정쟁화, 혀 차”… 한국 “야당 국정조사 수용해야”

한겨레, 정부 책임론 제기 “여당과 감사원 등이 총동원되는 모양새”

이동관 후보자 재산 검증 시작… 아내에게 재건축 아파트 지분 1% 넘겨

국민 안전과 직결되는 한국토지주택공사(LH)의 철근 누락 사태를 두고 정치권이 ‘네 탓 공방’을 하고 나섰다. 국민의힘은 LH 철근 누락 사태 책임을 문재인 정부의 문제로 돌리며 당시 정책 결정자를 조사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반면 민주당은 현 정부 책임론을 제기하고 있다. 이에 주요 아침신문들은 3일 정치권이 정쟁에 매몰되어 국민 안전을 뒤로 하고 있다고 강하게 비판했다.

LH 철근 누락 사태는 단순한 ‘실수’이거나, 국지적 사건이 아니었다. LH가 발주한 공공주택 단지(무량판 구조 적용 단지) 중 15곳에서 철근이 빠져있었던 것으로 드러났다. 이 중 5곳은 이미 입주를 마쳐 주민 안전이 우려되는 상황이다. 특히 15개 단지 설계사 중 13곳은 LH 퇴직자들이 다닌 적이 있는 ‘전관 업체’라는 비판도 나오고 있다. 시공이 아닌 설계 문제로 파악된 10곳 단지 중 전관 업체는 8곳이었다.

▲한국토지주택공사

LH에 구조적 문제가 드러나고 있지만 정치권은 ‘네 탓 공방’에 열중하고 있다. 상대 정권이 제대로 관리·감독을 하지 못했다는 것. 민주당은 철근 누락 LH 아파트 15개 단지 중 13곳은 윤석열 정부 출범 후 공사를 진행했거나 준공을 완료했다고 주장했다. 윤석열 정부 책임론의 근거다. 반면 윤석열 대통령은 “모두 우리 정부 출범 전에 설계 오류, 부실시공, 부실 감리가 이뤄졌다”며 “우리 정부는 반카르텔 정부”라고 선 긋기를 했다. 국민의힘은 문재인 정부의 주택정책이 문제의 원인이라고 주장했다.

▲8월3일 한국일보 사설.

이에 대해 한국일보는 3일 사설 <부실 공사·국민 안전까지 ’네 탓 공방‘ 해서야>에서 “여야가 건설업계의 고질적 부패구조를 청산하기 위해 머리를 맞대도 모자라는 지금 국민 안전을 놓고 벌이는 정치 공방은 무책임할 뿐”이라고 지적했다. 한국일보는 정치권이 건설업 전반에 대한 부패 카르텔 청산에 나서야 한다면서 “특히 정부 여당은 국민생명·안전보호는 국가의 최고 임무이자 존재 이유임을 망각해선 안 된다. 야당도 불안에 떨고 있는 국민들을 위해 필요하다면 ‘순살아파트 국정조사’를 수용해 부패의 전모를 낱낱이 밝혀내야 마땅하다”고 했다. 이어 “문제의 아파트가 어느 정부에서 지어지고 완공됐는지를 놓고 서로 정권 탓만 하고 있다면 그런 의지가 없다는 것밖에 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8월3일 조선일보 사설.

조선일보 역시 사설 <아파트 부실공사까지 전·현 정권 네 탓 공방, 모든 걸 정쟁화 고질병>에서 “부실시공은 시공사와 하청업체, 감리업체 간의 유착·비리 구조, 건설 현장의 오랜 악습과 인습이 합쳐진 결과일 것”이라며 “어떤 정권도 이런 문제까지 관여하지는 않는다. 그런데 국민적 관심이 커지자 상대 진영을 정치적으로 공격하기 위한 수단으로 이용한다. 머리를 맞대고 대책을 논의하는 것은 기대하기 어려운 정치권이지만 이 문제까지 정쟁화하는 것을 보니 혀를 차게 된다”고 했다.

▲8월3일 한겨레 3면.

한겨레는 문제 해결 주체인 정부여당 책임론에 무게를 뒀다. 정부여당이 갈라치기에 나서 문제 해결을 더디게 하고 있다는 비판이다. 한겨레는 3면 <여당 “철근 누락, 전 정부 조사해야” 윤 대통령 발맞춰 안전문제 정쟁화>에서 “(정부·여당이) 이번에 문제가 된 무량판 구조 부실시공이 문재인 정부 시절 이뤄졌다고 주장하면서 책임을 전 정부로 돌린 것이다. 윤 대통령이 건설산업 이권 카르텔을 언급하며 전 정권을 지목하자 여당과 감사원 등이 총동원되는 모양새”라고 했다.

▲8월3일 한겨레 사설.

또 한겨레는 사설 <부실 아파트도 전 정권 탓, ‘갈라치기’ 매달릴 때인가>에서 “입주자와 입주 예정자들의 불안이 커져가는데도, 집권 세력은 또다시 ‘전 정부 탓’을 들먹이며 책임 모면에 급급한 모습”이라며 “건설산업 전반의 총체적 부실 문제를 점검하고 대책을 마련해 국민에게 제시하는 것이 집권 세력이 해야 할 급선무”라고 했다.

▲8월3일 서울신문 4면.

현재 국회 국토교통위원회에는 부실공사 관련 법 13건이 계류 중이다. 감리 단계에서 철근 누락 등 부실시공을 적발할 수 있는 건축법·주택법 개정안도 발의됐지만 진척되지 않고 있다. 서울신문은 4면 <뒷북치고 ‘복붙’하고 쏟아지는 법, 법, 법> 보도에서 “서이초 교사 사망 사건, 철근 빠진 지하 주차장 붕괴 사고 등 상식을 외면한 사건·사고가 잇따르자 여야는 앞다퉈 ‘입법’에 열을 올린다. 사태를 바로잡겠다며 법안을 쏟아내고 뒷전으로 밀려났던 관련 법을 끌어올려 졸속으로 처리하는 식”이라고 했다.

▲8월3일 서울신문 사설.

이어 서울신문은 사설 <부실공사 방지 입법 외면한 국회 무슨 할 말 있나>에서 “지난 4월 발생한 인천 검단 아파트 지하주차장 붕괴 사고가 이번 사태와 동일한 ‘철근 누락’ 때문이었는데도 사태가 이 지경이 되도록 관련 법안이 국회 상임위에서 낮잠을 자고 있다는 사실은 개탄스럽기 그지없다”며 “일하지 않고도 세비를 꼬박꼬박 받아 가면서 국회의원들은 정쟁만 일삼고 법안 처리는 뒷전이다. 부실공사 방지 입법 책임을 방기한 국회는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다”고 강조했다.

▲지난달 28일 제6기 방송통신위원장 후보자로 지명된 이동관 대통령실 대외협력특보가 1일 오전 과천정부청사 방통위 인근에 마련된 후보자 사무소로 출근해 기자들의 질의응답에 답하는 모습. 사진=미디어오늘.

이동관 방통위원장 후보자, 재산 검증 시작됐다

이동관 방송통신위원회 위원장 후보자 재산에 대한 검증이 시작됐다. 이 후보자는 51억여 원의 재산을 신고했는데, 이명박 정부 청와대 대변인·홍보수석으로 재직했을 때보다 3배 가까이 늘었다. 주요 언론의 이 후보자 재산 검증이 시작됐다. 경향신문은 1면 <“선수들이 쓰는 방법”으로…이동관 부부 ‘재건축 재테크’> 보도에서 이 후보자가 재건축 대상 아파트 지분 1%를 아내에게 넘기는 방식으로 제태크를 했다고 지적했다.

▲8월3일 경향신문 1면.

경향신문은 “이 후보자 측은 재건축조합 대의원회에 참석하는 등 사업 추진 과정에 적극적으로 관여했다”며 “이 후보자의 아내 김모씨는 2012년 조합총회에서 대의원 자격을 얻어 2021년 조합이 해산할 때까지 회의 현장에 참석하거나 서면 결의 방식으로 의사 결정권을 행사했다”고 했다. 공인중개사는 경향신문에 “지분을 1%만 넘기는 것은 주로 증여세를 최소화하고 조합원 지위를 양도하기 위해 ‘선수’들이 쓰는 방법”이라고 전했다.

▲8월3일 한겨레 5면.

한겨레는 5면 <이동관, 강남 재건축서 수십억 벌고 3년간 배당소득만 5억> 기사를 내고 “(이 후보자가) 부인에게 석연찮은 ‘지분 쪼개기 증여’를 했는데, 이를 재산변동 사항으로 신고하지도 않았다”고 지적했다. 또 한겨레는 “20~30대인 이 후보자의 자녀들도 많게는 1억 원이 넘는 예금과 주식을 보유하고 있다. ‘무직’이라고 신고한 이 후보자의 큰딸(34)과 둘째 딸(33)은 각각 예금 6493만원, 예금과 주식 1억4990만원을 보유하고 있는데, 출처는 확인되지 않았고 서류상 증여세 납부 기록도 없다”고 했다.

▲8월3일 한겨레 사설

특수교사 논란에 구조적 문제 주목 한겨레, 교권 강조 조선일보

웹툰 작가 주호민 씨가 자폐 성향이 있는 자녀를 가르치던 초등학교 특수교사를 아동학대 혐의로 고소했다. 이를 두고 장애 학생의 교육 권리와 교권이라는 근본적인 문제가 아니라 자극적 보도만 양산되고 있다. 한겨레는 사설 <교사·학생 모두 궁지로 모는 특수교육 실태 돌아봐야>를 내고 “학교 내 약한 고리인 부실한 특수교육 시스템이 교사와 학생 모두 궁지로 몰아넣고 있는 것은 아닌지 돌아보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번 사건을 계기로 특수교육 시스템을 점검할 필요가 있다는 제언이다.

한겨레는 “2013년 8만6633명이었던 특수교육 대상 아동이 지난해엔 10만3695명으로 늘었다. 하지만 이들을 제대로 가르치기 위한 교사는 여전히 부족한 실정”이라며 “장애 특성에 맞게 전문적인 교육과 돌봄이 필요하지만, 일선 교육 현장에선 최소한의 법정 기준도 지켜지지 않는 경우가 허다하다”고 했다. 그러면서 “영국이나 미국은 통합학급을 중심에 두고 특수교사 배치 확대와 전문성 확보, 가족과의 협력 등에 적극 나선다. 교육 당국이 특수교사에 대해서는 ‘교권 침해 대책’으로만 좁혀서 보지 말고 특수교육 시스템 전반을 돌아보고 개선책을 마련하길 바란다”고 강조했다.

▲8월3일 조선일보 사설.

구조적 문제에 집중한 한겨레와 달리, 조선일보는 교권 침해에 주목했다. 조선일보는 사설 <아동학대로 교사 고소 남발, 오죽하면 보디캠 달고 싶다 하겠나>에서 “오죽하면 부당한 아동학대 신고에 대비해 보디캠을 달고 싶다는 교사들이 적지 않다고 한다. 고의 또는 중대한 과실이 없는 한, 교사의 정당한 학생 지도가 아동학대라는 누명을 쓰지 않게 신속히 관련 법을 고칠 필요가 있다”며 “이번 기회에 교사들도 수긍할 만한 적절한 절차와 기준도 만들어야 한다”고 했다.

▲8월3일 한국일보 8면

한국일보는 8면 <정서적 학대·훈육 구분 모호… 판사 따라 교사 운명 갈렸다> 보도를 통해 법원의 아동학대 사건 판례를 살펴봤다. 한국일보는 보육교사가 피고인인 아동학대 사건 판결문 20여 건을 분석했다. 한국일보는 “유죄 사건의 대부분은 신체적 학대의 반복성이 드러난 상황에서, 아동을 차별하거나 고립시키는 행위가 정서적 학대로 인정된 경우”라며 “정서적 학대를 판단하는 기준 역시 '고의성'이다… 결국 동일한 행동, 예컨대 아동에게 소리를 지르는 행위가 상황에 따라 학대인지 훈육인지 판단이 달라질 수 있다는 얘기”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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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같은 폭염, 1년 중 94일 지속되는 시대가 온다

  • 분류
    알 림
  • 등록일
    2023/08/03 08:14
  • 수정일
    2023/08/03 08:14
  • 글쓴이
    이필립
  • 응답 RSS

기상청, ‘미래 열 스트레스 전망’ 분석 결과 발표

민주노총 전국건설노동조합(건설노조) 조합원이 2일 서울 용산구 대통령실 앞에서 열린 폭염대책 마련 촉구 기자회견에서 폭염대책 법제화를 촉구하며 냉수를 마시는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2023.08.02 ⓒ민중의소리
요즘처럼 극한 무더위가 21세기 후반에는 기후변화로 인해 1년 중 94일을 차지할 것이라는 충격적인 전망이 나왔다. 이는 지금보다 10배 이상 증가한 수치다.

기상청은 2일 오전 포항공과대학교 기후변화연구실 연구진이 한반도와 동아시아를 25㎞ 크기 정사각형 격자로 나누어 분석한 ‘미래 열 스트레스 전망’ 분석 결과를 발표했다.

연구진은 ‘열 스트레스에 대한 미래 전망 분석’ 결과, 현재 우리나라 모든 권역에서 9일 미만으로 발생하는 ‘극한 열스트레스 일’이 21세기 후반(2081~2100년)에는 90일 이상까지 늘어날 것이라고 전망했다. 또 최대 지속 기간도 현재 3~4일에서 70~80일로 늘어날 것으로 분석했다

‘극한 열스트레스 일’은 전체 면적 중 10% 이상에서 ‘열스트레스 지수’가 상위 5%를 초과하는 날의 연중 일수를 말한다.

이 중 ‘열 스트레스 지수’는 기온, 상대습도, 풍속, 복사에너지 등을 종합해 인간이 실제로 느끼는 열 스트레스를 단계별로 나타낸 지표로, 26~28도는 보통, 28~30도는 높음, 32도 이상은 매우 높음으로 분류한다.
지난해 질병관리청의 전국 온열 질환 감시체계 자료에 따르면 온열질환자는 열 스트레스 지수가 30도 이상일 때 급격하게 증가하고, 32도를 넘기면 가장 많이 발생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연구에 따르면 이대로 온실가스가 고배출 또는 초고배출되는 시나리오에서 한만도의 기온은 지금보다 7도 이상 올라 전국 평균 34.6도와 35.8도로 전망되며, 극한 열 스트레스가 발생하는 일수도 온실가스 초고배출시 94.2일까지 늘어나는 것으로 전망했다. 현재 기후에서는 연간 7.6일 수준인 것에 비하면 기하급수적 증가다.

특히 극한 열 스트레스가 연속으로 발생하는 기간도 대폭 늘어나는데, 현재 3.5일 수준에서 초고배출시에는 무려 77.6일간 이어질 것으로 전망했다. 요즘 같은 극한의 무더위가 6월부터 9월까지 연일 이어지게 될 것이란 뜻이다.

다만 ‘재생에너지 기술을 활용해 화석연료 사용을 최소화하고 친환경적인 경제 성장을 추구’하는 초저배출 경로로 갈 경우, 열 스트레스 발생일은 절반 수준인 평균 48.8일로 낮출 수 있을 것으로 전망했다. 

이와 관련, 이준이 부산대 기후과학연구소 부교수는 “이미 견디기 힘들 정도로 열 스트레스가 심각한데, 온실가스를 줄일수록 열 스트레스 일수를 상대적으로 줄일 수 있는 것을 보여준다”며 “2050년 탄소중립, 2030년 국가 온실가스 감축 목표를 달성하기에 충분하지 않은 온실가스 감축을 위한 노력을 모든 부문에서 가속해야 한다”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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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인영 전 통일부장관, '전방위 통일부 무력화 공세' 중단 촉구

남북관계 파국으로 이끌 부적격 인사 비판.."통일부 본연의 사명은 대화와 교류 협력"(전문)

  • 기자명 이승현 기자 
  •  
  •  입력 2023.08.02 23:59
  •  
  •  수정 2023.08.03 01:00
  •  
  •  댓글 0
 
이인영 전 통일부장관이 지난해 4월 6일 오전 퇴임을 앞두고 고별 기자간담회를 하고 있다. 이 전 장관은 '돌아보면 저는 빛나는 주자도 아니었고, 박수를 받을만한 역전극을 펼쳐보지도 못했다'는 소회를 밝히면서 '한반도에 조성된 평화의 위기'를 반드시 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통일뉴스 자료사진]
이인영 전 통일부장관이 지난해 4월 6일 오전 퇴임을 앞두고 고별 기자간담회를 하고 있다. 이 전 장관은 '돌아보면 저는 빛나는 주자도 아니었고, 박수를 받을만한 역전극을 펼쳐보지도 못했다'는 소회를 밝히면서 '한반도에 조성된 평화의 위기'를 반드시 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통일뉴스 자료사진]

이인영 전 통일부장관이 윤석열 정부의 김영호 장관 임명 강행과 통일부 대규모 인원 감축 등 일련의 조치에 대해 '통일부 무력화 시도'라며 이의 중단을 촉구했다.  

이 전 장관은 12일 '통일부는 통일부다'라는 제목의 성명을 발표해 "윤석열 정권의 통일부 공격이 도를 넘었다. '대북지원부' 프레임으로 본심을 드러내더니 급기야 사실상 부처 폐지 수준의 조직축소를 공식화했다. 대통령실을 앞세워 통일부 직원들을 흔들고 무자격 인사를 장관과 주요보직으로 임명했다"고 하면서 이를 "전방위적 통일부 무력화 공세"라고 짚었다.

이같은 행위는 △변명의 여지 없는 반헌법적 일탈행위 △통일부의 핵심 사무를 불능상태로 만들고 무력화하겠다는 것 △헌법적 사명을 포기하고 부정한다는 선언 △전임 정부를 반국가세력으로 규정한 못된 일탈의 연장이라고 작심 발언을 했다.

문재인 정부 후반기 2020년부터 2022년까지 제41대 통일부장관을 지낸 4선 국회의원으로서는 이례적이라 할 정도로 윤석열 정부의 통일정책을 격렬히 비판했다.

평소 언행이 신중하기로 정평이 나있는 그가 그동안 침묵을 깨고 이 정도 수위의 발언을 한 것은 최근 김영호 장관 임명 강행과 대대적인 조직개편 예고에 대해 상당한  수준의 위기의식을 갖고 바라보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성명서의 제목부터 예사롭지 않다. 지난해 7월 통일부가 탈북어민 북송사진과 동영상을 공개하면서 북송에 관한 기존 입장을 전면 번복한 것에 반발해 통일부 노조에서 "통일부가 정쟁의 도구가 아니라 남북관계 핵심부서로서의 본연의 역할과 기능을 찾아야 할 것"이라는 논평을 발표할 때 사용한 '통일부는 통일부다'라는 제목을 의식적으로 가져다 쓴 것.

대화와 교류․협력이 막혀있을수록, 긴장이 격화될수록 대화의 물꼬를 트는 노력을 강화해야하고 마땅히 통일부가 그 일을 해야한다는 소명의식에 대한 응원과 지지 의사를 분명히 한 셈이다.

이 전  장관은 윤 대통령의 대북지원부 주장부터가 사실과 다른 편협한 인식과 독단의 소산이라고 하면서 남북관계 경색으로 인해 관련 조직을 축소할 수 밖에 없었다고 한 주장에 대해서도 "차라리 평화와 공존 공영이 싫고 통일부가 눈엣가시라고 하는 편이 솔직하지 않겠는가"라고 직격했다.

신임 김영호 장관에 대해서도 '사실상 우익 가짜뉴스의 유사 생산자'이자 '대북정책 정보를 사적 이익과 수익창출에 이용'한 비판과 의혹을 받고 있다며, '남북관계를 파국으로 치닫게 할 인사'라는 부적격 평가를 내렸다.

그가 "유포해온 내용 또한 외교와 대북정책을 위험에 빠뜨릴 극우적 주장이 다수였다"고 하면서 "급변하는 한반도 정세와 불안정한 상황 관리에 필요한 자세와 능력은 찾을 수 없고, 오히려 상황을 더 악화시킬 우려만 커졌다"고 거듭 비판했다.

통일부 축소 조치에 대해서는 "눈앞의 정세를 빌미로 통일부 본연의 대화와 교류․협력 업무를 폐기하고 대결적 방향으로 업무를 조정하면, 대화 국면이 펼쳐질 때는 두 손을 놓겠다는 것인가"라며, "이것이 대한민국을 오늘만 살고 내일은 없는 나라로 만들겠다는 것과 무엇이 다르다는 말인가"라고 개탄했다.

이어 "북한의 도발도 문제지만, 이렇게까지 남북관계와 한반도 정세를 관리하지 못하는 상황은 대중․대러 외교의 실패 역시 방증하는 것"이라며, "통일부를 희생양 삼는다고 그 책임을 면제받을 수는 없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 전 장관은 이 성명을 DMZ 평화의길, 2023통일걷기 행사 참석 중 화천 수리봉에서 썼다고 덧붙였다.

 
성명 전문

“통일부는 통일부다!”
- 윤석열 정권의 통일부 무력화 시도 중단을 촉구합니다.

윤석열 정권의 통일부 공격이 도를 넘었습니다. ‘대북지원부’ 프레임으로 본심을 드러내더니 급기야 사실상 부처 폐지 수준의 조직축소를 공식화했습니다. 대통령실을 앞세워 통일부 직원들을 흔들고 무자격 인사를 장관과 주요보직으로 임명했습니다. 전방위적 통일부 무력화 공세입니다.

대통령이 선봉에 섰습니다. 변명의 여지 없는 반헌법적 일탈행위입니다. 우리 헌법은 평화적 통일을 대한민국의 사명이자 대통령의 책무로 명시했습니다. 통일부는 이러한 헌법적 가치와 사명을 실현하는 주무 부처입니다. 또한 이에 근거해 지난 반세기 남북의 대화와 협력을 담당해왔습니다. 대화와 교류․협력을 담당하는 조직을 통폐합하고 인력을 대거 감축하겠다는 것은 통일부의 핵심 사무를 불능상태로 만들고 무력화하겠다는 것입니다. 헌법적 사명을 포기하고 부정한다는 선언입니다. 전임 정부를 반국가세력으로 규정한 못된 일탈의 연장입니다.

남북관계와 대북정책에 대한 대통령의 편협한 인식과 독단이 근원입니다. 애초 대통령의 대북지원부 주장은 팩트없는 ‘자기암시’라고 할 수밖에 없는 것이었습니다. 최근에는 대북 지원이 통일부의 주요 사업도 아니었습니다. 대통령이 그토록 흔적을 지우고 싶어 하는 문재인 정부 시절에도 대북 지원은 이전 정부와 비교해 별로 없었습니다. 북한을 적으로 규정하고 대결적 대북정책만 강조해오다 보니 사실이 들어설 자리조차 없어진 것입니까. 대북지원부 주장은 사실에 대한 심각한 왜곡이자 못된 낙인입니다. 헌법과 법률에 명시된 통일부 본연의 기능에 대한 부정입니다. 

남북관계 경색으로 관련 조직의 축소가 불가피하다는 옹색한 변명은 거두길 바랍니다. 차라리 평화와 공존․공영이 싫고 통일부가 눈엣가시라고 하는 편이 솔직하지 않겠습니까. 그렇지 않고는 남북관계를 파국으로 치닫게 할 인사를 장관으로 임명한 것을 설명할 수 없습니다. 신임 장관은 사실상 우익 가짜 뉴스의 유사 생산자였다고까지 비판받아 왔습니다. 대북정책과 정보를 사적 이익과 수익 창출에 이용해왔다고도 합니다. 이쯤되면 국무위원 자격이 없습니다. 유포해온 내용 또한 외교와 대북정책을 위험에 빠뜨릴 극우적 주장이 다수였다고 합니다. 급변하는 한반도 정세와 불안정한 상황 관리에 필요한 자세와 능력은 찾을 수 없고, 오히려 상황을 더 악화시킬 우려만 커졌습니다.

대화와 교류․협력이 막혀있을수록, 긴장이 격화될수록 대화의 물꼬를 트는 노력을 강화해야 합니다. 누군가는 해야할 일이고 통일부가 마땅히 할 일입니다. 통일부가 긴장부가 아니지 않습니까? 70년대 중앙정보부의 2중대도 아니고, 안보실 2중대도 아니지 않습니까? 통일부 축소는 남북관계와 한반도 평화를 관리할 최소한의 안전장치도 남겨두지 않는 것입니다. 길을 뚫고 길을 만들어야 할 때 아예 걸음을 옮길 두 발 중 한 발등을, 제 발등을 찍는 것입니다. 이념적 흑백논리로 미래의 기회마저 걷어차는 것입니다. 

불변의 정세는 없습니다. 영원할 것만 같던 냉전도 무너졌습니다. 눈앞의 정세를 빌미로 통일부 본연의 대화와 교류․협력 업무를 폐기하고 대결적 방향으로 업무를 조정하면, 대화 국면이 펼쳐질 때는 두 손을 놓겠다는 것입니까. 이것이 대한민국을 오늘만 살고 내일은 없는 나라로 만들겠다는 것과 무엇이 다르다는 말입니까. 어리석고 또 어리석습니다.

윤석열 정권은 대한민국의 현재와 미래의 불확실성을 높이는 행위를 중단해야 합니다. 대선 과정의 통일부 폐지론부터 지금의 통일부 축소까지, 통일부의 고유성과 전문성을 없애버리겠다는 것은 퇴행을 넘어 역사에 대한 쿠데타나 다를 바 없습니다. 쿠데타로 집권한 전두환 정권도 남북대화를 추진했습니다. 통일부에 대화와 교류․협력 업무가 강화된 것도 전두환, 노태우 정권 시절이었습니다. 

그 극단적 적대의 시절, 전두환 군사정권 시절에도 대화는 진행되었습니다. 경제를 위해 기본적 평화는 유지해야 했기 때문입니다. 대한민국이 가진 유일한 기회, 보수와 진보를 막론하고 모두가 주목했던 평화성장의 가능성을 왜 유독 윤석열 정권만 없애려 혈안입니까? 대한민국의 성장판을 다 뜯어내고 무엇을 얻으려 하십니까? 대한민국의 발전이 여기서 멈추면 과연 누구만 좋아합니까? 냉전의 한계 속에서 북은 그렇다 치고 미국, 일본, 중국, 러시아의 틈바구니에서 우리는 과연 어떻게 살아야 합니까?

분명히 말합니다. 통일부를 때린다고 한반도 정세 관리능력을 상실한 무능을 덮을 수는 없습니다. 북한의 도발도 문제지만, 이렇게까지 남북관계와 한반도 정세를 관리하지 못하는 상황은 대중․대러 외교의 실패 역시 방증하는 것이 아닙니까. 통일부를 희생양 삼는다고 그 책임을 면제받을 수는 없습니다. 관료 사회를 확실히 장악하고 다가올 총선에 대비해 지지층을 결집하겠다는 속셈이 아니라면 이럴 수는 없습니다. 그 또한 오래가지 못할 것입니다.

북한에게도 대화 복귀를 촉구합니다. 작금의 사태에는 북한도 원인을 제공했습니다. 남북관계 발전과 한반도 평화라는 근본적 본분을 잊은 윤석열 정부도 문제지만, 북의 군사적 도발과 무기 실험이 남북을 군사주의 대결로 몰아가는 것도 사실입니다. 남과 북 모두 ‘공포에 의한 평화’는 지속 가능하지 않다는 것을 명심해야 합니다. 우리끼리의 평화와 통일을 만들지 못할지언정 군사경쟁을 가속화 해서는 안됩니다. 북한도 핵과 미사일이 아닌 대화를 통한 문제 해결에 적극적 자세를 보여야 합니다. 

지난해 7월, 통일부가 돌연 탈북어민 북송에 관한 입장을 번복하자 터져 나온 통일부 직원들의 외침, “통일부는 통일부다!”라는 엄정한 선언을 상기합니다. 어쩌면 이 정권의 통일부 손보기가 이때부터 시작됐을 수도 있지만, 역설적으로 바로 이 외침이 통일부가 암흑의 시기를 견디는 힘이 될 수도 있을 겁니다. 온갖 시련 속에서도 통일부는 자기의 사명을 버리지 않았습니다. 통일부 창설이래 지난 50여 년 역사가 증언합니다. 그 어떤 편견과 선입견, 오기도 역사로 축적된 시간을 무위로 돌릴 수는 없습니다. 

옳습니다. 통일부는 통일부입니다. 이 험한 시절이 설령 또 어떤 모습을 띤다 해도 역사의 분수령, ‘마침내 진실의 시간’은 올 것입니다. 통일부 가족들의 지혜와 인내를 응원합니다.

2023년 8월 2일 

DMZ 평화의길, 2023통일걷기 중 수리봉에서
대한민국 제41대 통일부 장관, 국회의원 이인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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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후급변에서 교실현장까지…붕괴하는 한국사회, K-민주주의도 공범

[장석준 칼럼] '전능한 대리인 선출' 넘어 시민이 권리·의무 조율 주역인 '일상의 민주주의'로

장석준 출판&연구집단 산현재 기획위원  |  기사입력 2023.08.02. 10:01:33

 

작년에 개봉한 박찬욱 감독의 영화 <헤어질 결심>은 수많은 대사를 유행시켰다. 그 중에서도 내게 인상적이었던 것은 남자 주인공인 형사 해준의 "나는요, 완전히 붕괴됐어요"라는 대사다. '붕괴'는 어쩌면 이 영화 전체를 요약하는 말이기도 하다. <헤어질 결심>은 "원전 완전 안전"이라는 표어를 내세우는 대한민국의 한 핵발전소 소재 도시에서 벌어지는 '붕괴'의 이야기다.

 

'붕괴' ― 지금 한국 사회에서만 관심을 끄는 말은 아니다. 오히려 나라 밖에서 더 떠들썩하다. 기후 급변 때문이다. 매년 북반구에 여름이 닥칠 때마다 기온 상승 신기록이 깨지고, 날씨의 변덕이 더욱 극심해진다. 급기야 UN 사무총장은 '지구 온난화' 대신 이제 '지구 열대화'라 불러야 한다고 선언하기까지 했다. 기후 재앙으로 인한 문명의 붕괴가 이미 시작된 것 아니냐는 수군거림이 곳곳에서 들린다. 

 

물론 한반도 역시 이런 전 지구적 기후 재앙에서 예외일 리 없다. 한데 대한민국에서는 붕괴하는 게 이것만은 아닌 것 같다. 지난주에 서울 서이초등학교 교사의 비극이 있고 나서 우리는 새삼 이 나라의 학교가 붕괴 중임을 확인했다. 학생과 교사, 학부모, 학교 당국이 가해자와 피해자로 만날 수 있는 곳이 우리의 '학교'라는 쓰라린 진실에 뒤늦게 눈떴다.

 

학교는 사회 전체에서도 특히 그 미래를 생산하는 역할을 하는 부위다. 그런데 바로 이 부위가 이런 형편이다. 가뜩이나 기록적인 출생률 저하로 고민하는 사회가 그나마 있는 후세대를 미래 시민으로 키우는 과정에서도 이미 실패를 기정사실화하고 있다. 이렇게 미래를 스스로 잡아먹는 사회에 '붕괴'라는 말 외에 다른 어떤 진단을 내릴 수 있을까.

 

참으로 희한한 노릇이다. '붕괴'라는 진단을 받는 이 사회는 또한 최근까지 곳곳에 'K'라는 수식어를 붙이며 세상에서 가장 앞서나가는 나라가 됐다고 자축하던 그 사회다. 특히 'K-민주주의'라는 말에는 미국이나 일본을 능가하는 민주주의 수준을 달성했다는 뿌듯한 자부심이 담겨 있었다. 

 

한데 그런 민주주의를 자랑하는 나라가 어떻게 민주주의의 배양지인 학교를 이토록 처참한 상황에 빠뜨릴 수 있다는 말인가? 붕괴의 와중에 K-민주주의는 도대체 무엇을 하고 있는가? 

 

K-민주주의는 붕괴의 공범 

 

이 대목에서 나는 감히 말하고 싶다. K-민주주의는 붕괴에 맞서는 처방이 될 수 없다. 붕괴의 원인을 해결하기는커녕 이를 늦추거나 피해를 줄일 수도 없다. 오히려 K-민주주의야말로 우리 사회를 이 지경에 빠뜨린 몇 가지 중대한 요인 중 하나다. 현재 한국의 민주주의는 붕괴의 유일한 원인까지는 아니어도 어쨌든 이를 더 부추기고 복잡하게 만드는 역할을 하고 있다. 

 

K-민주주의라지만, 결국은 1987년에 틀을 갖추어 지금껏 이어지는 민주주의, 즉 1987년형 민주주의다. 이 무렵, 대다수 한국 시민에게는 특정한 형태의 민주주의 이해가 뿌리를 내렸다. 거리의 시민들 사이에서 '대통령 직선제'가 '민주주의'와 등치되고 이후에 정치적 관심과 열정이 대통령 직접선거에 쏠리는 경험을 반복하면서 독특한 민주주의관이 단단히 자리 잡았다. 또한 이 민주주의관은 민주노동조합이나 대학교 총학생회처럼 민주주의를 앞장서서 실천하는 시민사회 조직을 통해 한국 사회에 깊이 스며들었다. 

 

나는 지금 이 민주주의의 공백과 한계, 오점과 결함이 극명히 드러나고 있다고 본다. 이 민주주의는 한 마디로, 선출된 대리인에게 모든 것을 위임하는 것으로 만족하는 민주주의다. 직접선거로 선출된 대리인에게 모든 권한을 위임하는 것을 민주주의 자체와 동일시하는 민주주의 ― 이것이 87년형 민주주의의 핵심 내용이다. 

 

이런 선출된 대리인의 가장 대표적인 표상은 물론 대통령이다. 다수 대중의 의지는 대통령 한 사람에 집약돼 표출되며, 이 대통령의 성공과 실패가 곧 한국 민주주의의 성취 수준을 보여주는 지표가 된다. 그리고 이런 메커니즘이 직접선거로 대표를 뽑는 모든 민주적 결사체로 확산돼 재생산된다. 지방자치단체, 정당, 노동조합, 학생회 등등으로 말이다.

 

한 동안은 이런 민주주의관이 실제로 역사적 성과를 내는 것처럼 보였다. 현재의 헌정 체제를 기획한 장본인들인 양 김씨가 대통령을 역임하던 때에는 그랬다. 대중의 개혁 열망과 의지를 대변하는 유능한 대리인이 온갖 난국을 헤치고 개혁을 실현한다는 서사가 실물로 전개되는 것만 같았다. 이렇게 1990년대와 2000년대 초를 겪으면서, 그리고 거리에서 '민주주의'를 외쳐본 경험이 있는 세대가 어느덧 중장년이 되면서, 87년형 민주주의는 이 나라에서 민주주의의 거의 유일한 버전이 됐다. 

 

노무현 대통령은 이런 상황에서 나올 법한 가장 비극적인 배역이었다. 그는 87년형 민주주의 서사의 완벽한 본보기로서 극적으로 대통령에 당선됐다. 양 김씨에게 쏟아졌던 것 이상의 높은 기대가 그 한 사람에게 향했다. 하지만 누구보다 민감하게 정치의 본질을 꿰뚫고 있던 노무현 대통령은 이런 서사가 더는 현실이 될 수 없음을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87년형 민주주의의 틀(혹은 함정)에서 벗어나려고 거듭 시도했다. 선거제도 개혁, 연립정부 구상, 대통령에서 물러난 뒤의 뼈아픈 성찰 등등. 

 

그러나 노무현 대통령이 냉철히 직시한 이 문제적 상황을 그의 지지자들은 그만큼 뚜렷이 이해하지 못했다. 대선을 통해 만들어지는 거의 50% 대 50%의 대결 구도와 이것이 반영된 행정부-입법부 대립 관계가 어떤 영웅적 대리인도 지지자의 요구를 관철할 수 없게 가로막는다는 것을 직시하지 못했다. 말하자면 대한민국 제6공화국에서 87년형 민주주의 서사는 이제 현실과 만나는 지점을 모두 잃고 말았다. 그럼에도 선출된 대리인에 대한 권력 위임이 민주주의라는 생각만은 끈질기게 남았다. 대선 때마다 더욱 강력히 재생산되는 '신화'로서 말이다. 

 

촛불항쟁 직후인 문재인 정부 초기는 어쩌면 이런 상태에서 벗어날 수 있는 더 없이 좋은 기회였을 것이다. 박근혜 대통령 탄핵에 동의한 여러 색깔의 정당을 바탕으로 다양한 의견과 입장, 세력 사이의 잠정적 합의를 통한 정치를 실험할 기회였다. 이런 경험이 쌓일수록 87년형 민주주의 이해가 새로운 이해에 길을 내줄 가능성이 커질 수 있었을 것이다. 선출된 한 사람의 대리인에 대한 환상적 기대 대신 토론과 협상의 지난한 과정을 '민주주의'라 받아들일 가능성이 열릴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잘 알다시피 이 기회는 유실됐다. '촛불정부'를 자임하던 세력은 '적폐 청산'이라는 구호 아래 의도적으로 87년형 민주주의 서사의 생명을 연장시켰다. 그리하여 다시 한 번 '신화'를 강화시키는 방향으로 치러진 대선에서 우리는 윤석열 정부를 그 결과로 받아들게 됐다. 학교 이전에 정치는 벌써 한참 전부터 붕괴하는 중이었다.

 

사회가 사회의 문제들을 스스로 대면하는 민주주의 

 

여기까지만 말하면, 한국의 교육만큼이나 정치도 붕괴하고 있다는 이야기는 될지언정 87년형 민주주의가 학교 붕괴에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에 관해서는 답이 될 수 없다. 도대체 둘 사이에는 어떤 긴밀한 연관관계가 있는가?

 

나의 답은 한국의 시민사회가 87년형 민주주의의 틀에 갇힌 탓에 제대로 된 민주적 훈련을 거치지 못했다는 것이다. 시민들은 삶의 여러 장소와 순간마다 서로 다른 입장에서 권리와 의무를 조율해야 한다. 민주주의란 단순히 시민에게 전보다 더 많은 권리를 부여하는 것을 뜻하지 않는다. 시민 자신이 권리와 의무의 복잡한 조율 과정의 주역이 되는 것을 뜻한다. 달리 말하면, 조율 과정에서 결정권을 함께 나누면서 동시에 그 책임을 떠맡아야 한다.

 

이것은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숱한 충돌과 시행착오를 겪고 난 뒤에야 부분적이고 잠정적인 합의에라도 도달할 수 있는 그런 과정이다. 이 과정의 어려움을 덜어줄 이론이나 공식 따위는 없으며, 이 과정을 겪지 않고 그 결실만 누릴 수 있는 비법 역시 없다. 따라서 어떤 사회든 이런 힘든 수련 기간을 몸소 체험하는 수밖에는 없으며, 이를 인내하는 것이야말로 민주주의의 성숙 단계로 나아가기 위한 마지막 결정적 요소다. 

 

민주적으로 선출된 대리자에 대한 전권 위임을 민주주의라 이해해 온 한국 사회는 이제껏 이런 도제 기간을 제대로 밟지 못했다. 상대적으로 민주적 권리 확대에 우호적인 시민들조차 단지 자신들이 지지한 선출직 공직자가 과감하게 그런 개혁에 나서길 기대하고 기다릴 뿐이었다. 투표가 끝나고 난 뒤에는 결실을 기다리는 시간만 남아 있을 따름이었다. 지난 30여 년 동안 시간은 그렇게 허비되었다. 

 

그러나 더 이상은 이렇게 허비될 수 없다. 오늘날 우리가 마주하는 쟁점들, 저 모든 '붕괴'의 사안들(기후 급변부터 한국의 교실 현장까지)은 사회의 모든 구성원이 스스로 대면해야만 풀어나갈 수 있는 것들이다. 독재 잔재를 뒤집는 일은 양 김씨 같은 특출한 대리인에게 맡길 수 있을지 몰라도 우리의 일상 곳곳에서 탄소 배출을 줄여나가거나 학교에서 학생, 교사, 학부모, 교육 당국의 관계를 새롭게 짜는 일은 그렇지 않다. 시민들의 토론과 합의 과정을 통해서만 그나마 길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결국, 지금이야말로 87년형 민주주의에서 벗어나야 할 때다. 사회가 자신의 문제들을 스스로 대면하는 민주주의로 나아가야 할 때다. 

 

이것은 물론 87년형 민주주의의 기둥 노릇을 하는 대통령제의 개혁에서 출발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이는 어디까지나 출발점에 불과하다. 민주적으로 선출된 전능한 대리인의 환상에서 벗어나기 위한 최소 조치일 뿐이며, 이 환상은 사회 각 부분이 일상적으로 참여하는 논쟁과 협상, 잠정 합의들로 대체되어야 한다. 이제부터 대통령이든 국회의원이든 모든 선출직 공직자의 과제는 사회의 모든 영역에서 이런 민주적 과정을 여는 일이 되어야 한다.

 

한시 바삐 이 방향으로 나아가지 않는다면, 미래는 이와 정반대되는 쪽으로 기울고 말 것이다. 전능한 대리인의 환상을 바탕으로 난마처럼 얽힌 위기들의 해결을 약속하는 새로운 유형의 지도자가 민주적 절차를 통해 대중의 지지를 받으며 부상할 것이다. 그러나 일단 이런 권력이 들어서고 난 뒤의 상황은 87년형 민주주의의 기준으로도 더는 '민주주의'라 할 수 없을 것이다. 시민사회가 풀지 못하는 문제를 해결한다며 시민사회를 해산시키는 정치가 시작될 것이기 때문이다.

 

한 세기 전에 이런 정치는 '파시즘'이라 불렸다. 그때에도 이것은 붕괴와 쌍을 이루며 힘을 얻은 선택지였다. 우리는 지금 절체절명의 기로에 서 있다. 

 

 

 

장석준 전환사회연구소 기획의원은 오랫동안 진보 정당 운동의 정책 및 교육 활동에 참여해왔으며, 자본주의 위기에 맞선 진보적 사회과학을 재구성하고자 글로벌정치경제연구소에서 연구 및 출간 사업을 하고 있다. 지은 책으로 <레프트 사이드 스토리 : 세계의 좌파는 세상을 어떻게 바꾸고 있나>, <사회주의>, <장석준의 적록 서재>, <신자유주의의 탄생 : 왜 우리는 신자유주의를 막을 수 없었나> 등이 있고, 옮긴 책으로 <국가 대 시장 : 지구 경제의 출현>, <안토니오 그람시 : 옥중수고 이전>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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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외치게 된 "안녕들하십니까?"

2013년 철도노동자들은 고속철도를 떼어 내 철도를 민영화하려는 박근혜 정부에 맞서 23일간 파업을 벌였다. 국민 속으로 들어가 국민과 함께 철도민영화의 문제점을 얘기했고 많은 국민이 “안녕들하십니까?”라는 외침과 함께 철도노조의 투쟁을 지지하고 철도 민영화를 반대했다.

10년이 지난 지금 정부가 추진했던 철도 민영화 정책은 실패했음이 드러났다. 주식회사로 출범해 더욱 효율적인 운영을 하겠다는 ㈜SR은 투자자들이 투자금을 회수하자 부채비율 2,000%를 넘어서며 스스로 자립할 수 없는 상태가 되었다.

코레일과 ㈜SR, 두 철도회사의 경쟁으로 더 많은 시민이 열차를 이용할 기회를 박탈당하고 예매 전쟁을 치르고 있다. 정부의 분할정책으로 모든 철도 이용객이 지금보다 10% 낮은 요금으로 고속철도를 이용할 기회를 잃었다.

코레일과 ㈜SR의 분리로 열차를 갈아탈 때 환승할인은커녕 별도의 기차표를 구해야 하고 진주, 포항, 여수에서는 곧바로 수서역에 갈 수 없다. 지역 철도 운행의 적자를 보전했던 교차보조를 축소함으로써 수익성 압박으로 지역의 일반열차 운행이 줄어들고 있다.

정부는 세금을 쏟아부으며 비효율적이고 차별적이며 불편한 경쟁체제를 억지로 유지하려 하고 있다. 정부가 3,600억 원을 쏟아부은 ㈜SR은 고객센터 업무를 민간에 넘겼고 고속철도차량 정비업무를 민간에 넘기고 있다.

정부는 부산발 SRT 열차를 줄여 여수, 진주, 포항에 투입하겠다고 한다. 예비열차도 없는 SRT를 무리하게 신규 노선에 투입하면 새로운 피해와 갈등이 생긴다.

또한 이 경쟁체제를 근거로 철도의 운영부문과 시설유지보수부문, 철도의 관제 업무를 쪼개려 하고 있다. 영국과 일본에서 열차의 운영과 유지보수, 관제 업무를 이원화한 결과로 대형 열차 사고를 겪은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한국철도는 다시 갈림길에 서 있다. 더 많은 국민과 지역을 연결하고 공공철도를 통해 생명과 안전을 지키는 이동 수단이 될 것인가 아니면 조각조각 쪼개져 무한 경쟁 속에서 기업의 생존을 다투는 파편화된 이동 수단으로 전락할 것인가 하는 갈림길이다.

철도노동자들은 국민과 함께 20년간 철도민영화를 저지하며 국민의 철도를 지키고 있다. 윤석열 정부가 철도노동자들과 국민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철도민영화 정책을 강행한다면 철도노동자들은 국민과 함께 총파업을 포함한 강력한 투쟁으로 반드시 저지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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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비판 언론에 ‘이념 딱지’ 붙인 이동관, 방통위원장 자격 없다”

  • 윤유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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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3.08.02 07: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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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수정 2023.08.02 1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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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신문 솎아보기] 경향 “이동관, 입맛 따라 ‘언론사 선별’ 속내” 비판

전관예우, 불법하도급, 원가절감…언론이 분석한 ‘철근 누락’ 원인은

“국민안전 문제는 꼭 전 정부 탓” 윤석열 ‘책임 누락 국정’ 지적한 한겨레

▲ 이동관 방송통신위원장 후보자가 8월1일 오전 청문회 준비 사무실이 마련된 경기도 과천시의 한 오피스텔 건물로 출근, 취재진 질문에 답하고 있다. ⓒ 연합뉴스

이동관 방송통신위원장 후보자가 지난 1일 “공산당의 신문이나 방송을 언론이라고 이야기하지 않는다”며 “그걸 기관지 내지 영어로 얘기하면 오건(organ)이라고 한다”고 말해 현 정권에 비판적인 언론을 겨냥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2일 아침신문에서 한겨레는 이 후보자가 편협한 언론관을 드러냈다고 비판했다. 한겨레는 1면 기사에서 “윤석열 대통령의 인사와 자신의 언론 장악 논란 등에 대해 비판적 태도를 취하는 언론을 겨냥한 발언”이라며 “현 정권의 입맛에 맞지 않는 매체는 ‘공산당 기관지’로까지 몰아세우는 의도로 풀이된다”고 했다. 경향신문도 1면 기사에서 “이 후보자가 ‘언론을 선별하겠다’는 속내를 드러냈다”고 했다.

▲ 한겨레 기사 갈무리.

▲ 경향신문 기사 갈무리.

한겨레는 사설에서도 “비판 언론에 ‘이념 딱지’를 붙인 이 후보자는 방통위원장으로서 자격이 없다”고 비판했다. 한겨레는 “‘공산당 신문·방송’이라는 부정적 프레임을 비판 언론에 뒤집어씌우려는 교활한 의도가 뚜렷하다”며 “이런 비뚤어진 언론관을 갖고 어떻게 정치적 중립성과 독립성을 철칙으로 삼아야 할 방통위 수장이 되겠다고 나선 건지 개탄스러울 따름”이라고 했다.

아울러 “특정 언론을 구체적으로 지목하진 않았지만, 실은 ‘특정 진영의 정파적 이해’ 운운함으로써 현 정부에 비판적인 목소리를 내는 언론을 교묘하게 폄훼한 것이라는 사실을 국민 누구도 모르지 않는다”며 “무엇보다 국내 언론을 ‘공산당 신문·방송’에 비유한 것 자체가 친정권 언론이 아니면 이념적 딱지를 붙여 공격하겠다는 악의가 읽히는, 부적절하기 짝이 없는 행태”라고 했다.

▲ 한겨레 사설 갈무리.

 

전관예우, 불법하도급, 원가절감…언론이 분석한 ‘철근 누락’ 원인은

한국토지주택공사(LH)가 발주한 아파트 15개 단지에서 인천 검단아파트 지하주차장 붕괴 사고 원인과 동일한 ‘철근 누락’이 확인됐다. 2일 대다수 아침신문은 1면에서 철근 누락의 원인을 분석했다.

▲ 2일 아침신문 1면 갈무리.

대다수 아침신문들은 공공기관 임원들의 전관예우에 주목했다. 경향신문이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과 공동 분석한 결과, 문제가 된 15개 단지 중 13곳의 설계사가 LH 퇴직자들이 현재도 근무 중이거나 오랫동안 대표이사 및 고위급 임원으로 지낸 전관 업체였다.

경향신문은 위의 분석 결과를 담은 기사 <‘철근 누락’ 15개 단지 설계사 중 13곳에 LH퇴직자 근무했다>에서 “철근 없이 시공한 공공주택 단지의 설계업체 대부분이 LH 퇴직자들이 근무하는 ‘전관 업체’인 것으로 드러났다”며 “철근 누락 원인 대다수가 설계 오류로 판명 난 만큼 업체 선정에 대한 ‘LH 책임론’이 커질 것”이라고 했다.

▲ 경향신문 기사 갈무리.

동아일보도 1면에서 LH 등 공공기관 임원들의 전관예우 문제와 불법 하도급 관행을 주요 원인으로 꼽았다. 전문인력은 부족한데 아파트 건설은 급증하는 상황 등 건설시스템의 총체적 부실을 지적하기도 했다. 동아일보는 “시공이 제대로 이뤄지는지 살피는 감리가 업계 관행에 따라 ‘봐주기식’으로 이뤄진다는 지적도 나온다”며 발주처와 시공사의 전문성도 떨어진다고 했다. 사설에서도 안전과 품질보다는 비용 절감과 이윤 극대화를 앞세우고, 이를 위해 적당주의를 용인하는 ‘부실 문화’가 뿌리 깊게 박혀 있다고 지적했다.

▲ 동아일보 기사 갈무리.

조선일보는 1면에서 “‘빨리빨리’로 대표되는 공사 관행과 ‘무조건 더 싸게’를 강요하는 비용 절감, 외국인 일색인 근로자 등 국내 건설 현장의 특성상 무량판 공법을 완벽하게 구현하기 어렵다는 지적이 나온다”며 국내 건설 시장은 발주처와 시공사, 감리사가 이권으로 엮여 있는 경우가 많다고 했다.

사설에서도 “시공 건설사가 설계 감별 능력을 키우고, 모듈화 공법을 발전시켜 공사 현장 표준화를 앞당기는 등 해야 할 일이 많다”며 “건설 현장의 적당주의, 나태와 태만, 안전불감증, 비리 등 수십년 인습과 악습이 사라지지 않는 한 모든 조치가 소용없을 것”이라고 했다.

▲ 조선일보 기사 갈무리.

중앙일보도 1면 기사 <철근 빼먹은 아파트 그 뒤엔 ‘관·건 카르텔’>에서 “건설업계와 전문가들에 따르면 건설 이권 까르텔의 꼭대기에는 공기업과 지자체가 있다”며 “업계에서는 ‘전관’의 폐단으로 이런 어처구니 없는 일이 벌어졌다고 본다”고 했다.

▲ 중앙일보 기사 갈무리.

한겨레는 1면에서 원가 절감과 미숙한 작업을 주요 원인으로 꼽았다. 작업 미숙의 원인으로는 기술과 경험이 부족하고 무량판 구조에 대한 이해도가 낮은 설계사무소들이 LH 퇴직자들을 영입해 설계용역을 많이 따냈을 가능성이 거론된다고 했다.

홍성용 대한건축사협회 홍보위원(건축사)은 한겨레와 인터뷰에서 “국내 아파트 건축 현장에서는 원가를 이유로 숙련된 기술자를 쓰지 않고 있고 인테리어 목수 등 숙련공은 보수가 낮은 아파트 사업장으로는 넘어가지 않는다”며 “건축은 설계 오류가 생겨도 시공·감리에서 이를 바로잡는 안전장치가 있는데, 무량판 구조 분야에서는 안전을 책임질 기술자와 숙련공이 절대 부족한 점이 사고로 이어진 것 같다”고 했다.

▲ 한겨레 기사 갈무리.

 

“국민안전 문제는 꼭 전 정부 탓” 윤석열 ‘책임 누락 국정’ 지적한 한겨레

윤 대통령은 철근 누락 아파트 단지 문제와 관련해 “건설산업의 이권 카르텔”을 근본 원인으로 지목했다. 그러면서 “현재 입주민이 거주하고 있는 아파트의 무량판 공법 지하 주차장은 모두 우리 정부 출범 전에 설계 오류, 부실 시공, 부실 감리가 이뤄졌다”며 문재인 정부 책임론을 강조했다.

이를 두고 한겨레는 윤 대통령이 ‘철근 누락 아파트’ 사건을 두고 다시 이전 정부를 탓했다며 국민적 우려가 큰 사안에 무한책임을 지기보다 전 정부에 책임을 돌려 지지층을 결집하려 한다고 지적했다.

한겨레는 기사 <윤 대통령, ‘아파트 철근 누락’까지 문 정부 때리기>에서 “윤 대통령의 전 정부 탓은 새삼스럽지 않다. 그는 집권 1년이 지났음에도 남북문제나 외교·안보 문제, 재정 운용 문제 등을 포함해 대부분의 분야에서 전 정부를 비난해왔다”며 “그러나 윤 대통령의 언급은 국민의 생활 안전과 관련한 문제에도 남 탓을 앞세우면서 진영 간 갈등을 키운다는 지적이 나온다. 사실상 대통령실이 내년 4월 총선을 의식해 전 정부, 야당 때리기를 강화하는 것 아니냐는 분석이 있다”고 했다.

▲ 한겨레 기사 갈무리.

경향신문은 윤 대통령의 발언을 두고 “‘이권 카르텔’은 윤 대통령이 문재인 정부와 더불어민주당을 포함한 야권을 싸잡아 비판할 때주로 사용하는 표현”이라며 “현 정부의 책임론에 미리 선을 긋는 동시에 핵심 국정 어젠다로 삼는 ‘이권 카르텔 타파’를 강조하는 계기로 삼는 모습”이라고 했다.

사설에서도 이 와중에 윤 대통령은 아파트 부실시공을 정쟁 소재로 사용하려 하고 있다며 “관재(官災)로 판명난 오송 지하차도 참사에 제대로 된 사과도 없었던 윤 대통령이 이런 말할 자격이 있는지 의심스럽다. LH의 보강공사 은폐나 윤석열 정부 관리·감독 미비로 발생한 안전사고는 오롯이 윤 정부에 책임을 물어야 한다”고 했다.

▲ 경향신문 기사 갈무리.

조선일보는 기사 <‘엘피아 카르텔’에 무너진 안전…전관 업체가 감리 독식>에서 “이번 사태가 이른바 ‘엘피아’로 불리는 LH 출신들의 전관(前官) 카르텔 때문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문제가 된 LH 아파트들의 시공사, 감리사 고위직에 LH 출신들이 취업한 사례가 많은데, 이들이 관리 부실을 눈감아줬다는 의혹”이라고 지적하면서 윤 대통령의 문 정부 책임론을 언급하며 “보 없이 기둥 위에 지붕을 바로 얹는 방식인 무량판 공법은 문재인 정부 초기인 2017년부터 보편화됐다”고 했다.

▲ 조선일보 기사 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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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범죄 처단 관점으로 접근” 윤 대통령의 교권 처방이 ‘최악’인 이유

교사 출신 국회의원 강민정이 짚은 교권 추락 현주소...‘민원 창구’ 전락한 교사들의 갈급한 전문성과 자율성 권리화

 
1일, 윤석열 대통령이 국무회의에서 ‘학교 규칙을 어긴 학생’을 ‘범죄자’로 묘사했다. 서이초등학교 교사의 죽음 뒤, 교원들은 ‘교권 침해’ 상황을 적극적으로 알리면서도 “대립 구도로 보지 말아달라”는 점을 누누이 당부했다. 교사는 학생의 인권 축소도, 학부모와의 갈등도 바라지 않았다. 교사로서 가르칠 권리를 보장해달라는 간절함을 윤 대통령은 손쉽게 ‘갈라치기’로 받아넘겼다.


“가장 최악의 상황이다.” 교사 출신의 강민정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이날 국회 의원회관에서 민중의소리와 인터뷰하며 윤 대통령의 국무회의 발언에 이같이 분개했다.

윤 대통령이 “‘학생 인권을 이유로 규칙을 위반한 학생을 방치하는 것’은 ‘인권을 이유로 사회 질서를 해치는 범법행위를 방치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고 주장한 데 대해 강 의원은 “대통령이 범죄를 처단하는 관점으로, 검사스러운 방식으로 이 문제에 접근하겠다고 선언한 것이다. 문제를 최악의 상태로 만들 것”이라고 우려했다. 강 의원은 “법과 가장 마지막으로 만나야 하는 게 교육”이라며 헌법에 쓰인 것처럼 자주성, 전문성, 정치적 중립성 등 고유한 특수성을 최대한으로 지켜야 하는 영역이 ‘교육’이라고 강조했다.
 

강민정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1일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 집무실에서 민중의소리와 인터뷰하고 있다. 2023.08.01. ⓒ민중의소리


25년을 교사로 일한 강 의원은 중학교에서 아이들에게 역사와 사회 과목을 가르쳤고, 1·2·3학년 담임을 두루 맡았다. 입시 부담에 짓눌린 아이들, 뒷바라지에 조급한 부모들, 교육전문가가 아닌 말단 행정 직원이 된 교사들. “누구도 행복하지 않은 교육”이라는 숙제를 안고, 의정활동을 해온 강 의원의 휴대전화에는 요즘 하루에 2천 개가 넘는 문자메시지가 몰려든다. 주로 “교권이 제대로 설 수 있게 해달라”는 말, 입법적으로 문제를 해결해달라는 요청이다.

강 의원은 “교육 문제와 관련해 이렇게 문자가 많이 온 적은 처음”이라고 했다. 현장에서 홀로 문제를 참고 감당해 온 교사들이 이제는 해결을 위해 적극적으로 움직이며 집단으로 연대하고 있었다. 강 의원은 이 행동을 “절박감”으로 느꼈다. “교육이 안고 있는 총체적인 문제가 한꺼번에, 가장 아픈 방식으로 표출됐다.”

정책에서 교권은 늘 뒷전이었다. 교육 문제는 대부분 입시에 한정돼 다뤄졌고, 교육 주체인 교사의 기본권을 향한 관심도는 떨어졌다. 강 의원은 교권 추락의 근본적인 원인 중 하나로 교육부와 교육청 등 행정당국이 교원을 교육 전문가로 보지 않고, ‘교육 정책 실행자’로만 여기는 점을 짚었다. “교육 행정은 교사들이 교육 활동 주체로서 어떤 지원과 시스템을 필요로 하는지에 관해 사고하지 않는다. 당국이 정한 교육 정책을 실행하는 사람으로 생각하고, 끊임없이 지시와 지침을 내린다. 그 지시와 지침은 보고와 평가가 수반된다. 교사들은 자긍심을 상실하고, ‘나의 정체성은 교육자인가, 말단 행정 직원인가’ 혼란이 온다.”

교육 당국부터 교사를 주체적인 존재로 존중하지 않으니, 학부모와 사회도 같은 시선으로 교사를 바라본다고 강 의원은 지적했다. 과거와 비교해 “가정의 역할과 기능이 축소된 것”도 하나의 원인이다. “가정에서 해야 할 교육을 학교에 요구하고, 가정과 학부모의 책임 경계가 명확해지지 않으면서 학교와 교사가 완전히 모든 것을 전담하는 게 당연한 구조로 됐다.”

강 의원은 “‘학교는 무엇을 하는 곳인가’에 대한 정체성과 사회적 인식, 기준이 흔들리고 있다. 교사의 역할이 충돌하며 ‘다 감당하는 게 당연한 것’으로 돼 버렸다”고 꼬집었다. 교실에서 무엇인가 ‘일’이 터지면 수습은 늘 교사의 몫이고, 모든 책임이 한 명의 교사에게 전가되고 있다. 정부는 ‘학령인구 감소’를 거론하며 학교의 인력과 예산을 축소하는데, 갖은 요구 사항들은 “막무가내 떠넘기기 방식”으로 부과되는 중이다. 그야말로 ‘교사 무한 책임제’다. 강 의원은 “우리 사회는 교사의 전문성을 계속 평가절하하는 방향으로 가고 있다”고 지적했다. 교권 하락이 학생의 학습권 침해로 이어지는 건 당연한 결과다.

강 의원은 정부에 “교사의 전문성을 인정하고, 교육의 자율적 주체로 인정하라”고 촉구했다. 국회에서 교원지위법, 초중등교육법, 아동학대처벌법 등 교권 보호 대책 입법이 논의되는 건 의미 있게 평가했다. 다만 “선생님들이 느끼는 절망의 상태를 약간 벗어날 수 있는 개선책”이라며 “충분하지 않다”고 말했다. 강 의원도 학교교권보호위원회 실효성 문제 해결을 위해 ‘교권 침해 즉시 보호 장치 마련’ 등 사각지대를 메울 법안 발의를 준비 중이다. ‘교사 정치기본권 보장’ 입법은 “오랜 희망 사항”이다.

학생인권조례 개정과 ‘교권 침해 행위’ 생활기록부 기재를 대책으로 내놓고, 진보 교육감과 전 정부 책임론을 거론하는 여당을 향해 강 의원은 “문제 해결에 대한 진정성”을 물었다. 민주당에는 “대안 마련에 적극적인 역할”을 당부했다. 강 의원은 지난달 27일 국회 본회의 5분 자유발언에 나서 “한 교사가 죽음으로까지 고발하려 했던 암울한 교육 현실을 바꾸기 위해 여야 가릴 것 없이 모든 의원이 함께 나서달라”고 호소했다. “여러 방안이 논의되고, 바뀌는 과정에 정쟁이 끼어들 틈은 없다”고 간절히 요청했다.

다음은 강 의원과의 일문일답.
 

강민정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1일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 집무실에서 민중의소리와 인터뷰하고 있다. 2023.08.01. ⓒ민중의소리


- “인생의 절반 가까이 학교에서 아이들을 만나면서 좋은 선생님이 되고 싶다는 일념으로 살아왔다. 많은 교사들이 저와 같은 생각으로 오늘도 아이들을 만나고 있다”, 강 의원은 4년 전 21대 국회 비례대표 후보로 나서며 이렇게 말했다. 서이초 교사의 죽음을 보고 많은 생각이 교차했을 거 같다.
“한국 교육이 안고 있는 총체적인 문제가 한 번에, 가장 아픈 방식으로 표출됐다. 가까운 원인은 학부모로부터 시작된 교권의 문제라고 한다면, 보다 근본적인 원인은 교육 현장에서 교사의 자율성, 교육 지원 체제, 교육 행정 시스템 등이 제대로 갖춰지지 않은 것이다. 교육 개혁을 얘기한 지가 몇십 년이 됐는데, 해결이 안 되고 계속 켜켜이 쌓이고 쌓였다. 교사들이 자긍심을 갖기 이전에 한 인간으로서 삶이 거의 붕괴하는 지경까지 갔다.”

- 젊은 교사들을 중심으로 직업 만족도 저하, 퇴직 등 경향이 뚜렷하다. 강 의원은 교권 침해의 원인을 구체적으로 어떻게 진단하나. 교사의 기본권은 왜 추락했을까.
“교사가 교육 전문가로 우리 사회에서 인정받고 있지 못하는 게 가장 큰 원인이다. 교육부와 교육청은 교사를 정책의 대상으로 본다. 말단 정책 실행자로 생각하고, 끊임없이 학교와 교사한테 지시와 지침을 내린다. 선생님들은 끊임없이 이걸 이행하고, 그것과 관련된 무수히 많은 보고서를 작성해서 올린다. 수십 년 동안 계속돼 왔다. 교사가 자기 정체성의 혼란을 느끼게 만드는 굉장히 중요한 원인이다. 교육부나 교육청이 교사를 교육 주체로 존중하지 않는데 어떻게 학부모나 사회가 교사를 존중할 수 있나.”

“가족의 형태가 많이 변화한 것도 하나의 이유다. 과거에는 한 가정 안에서 해결이 안 되는 건 마을이 함께, 공동체가 해결하는 게 많았다. 교육과 돌봄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지금은 가정의 기능과 역할이 굉장히 축소됐고, 마을은 거의 해체, 붕괴됐다. 아이에게 필요한 기능들이 없어지고, 모든 것을 학교와 교사가 완전히 전담하는 게 너무 당연한 일이 됐다. 경계가 명확하지 않게 되면서 가정에서 해야 할 교육을 학교와 교사에 요구하는 현상, 과도하고 불합리한 민원이 점점 증가했다. 돌봄과 복지를 모두 교사가 감당하는 게 교육 기능의 확대나 변화는 아니다. 어떠한 원칙을 정확히 견지한 상태에서 기능이 부과된 게 아니고, 떠넘겨진 거다.”

- 수업 연구를 위한 시간이 절대적으로 부족해 보인다.
“아주 부족하다. 행정 업무도 많고, 특히 초등학교의 경우 학부모들이 더욱 개입하니 많은 민원과 요구를 감당해야 한다. 시간과 에너지를 써야 하는 일이다. 이 민원을 제어할 수 있는 시스템이 학교에 없고, 교사가 다 개인적으로 응대하고 감당해야 한다. 교사들의 무력감과 부담, 요구 사항이 잘 해결되지 않는 데서 오는 절망감은 계속 커질 수밖에 없다.”
 

지난달 29일 정부서울청사 인근 도로에서 열린 서이초 교사 추모식 및 교사 생존권을 위한 집회에서 참가자들이 추모 영상을 보며 흐르는 눈물을 닦고 있는 모습. 2023.07.29. ⓒ뉴스1


필요한 정책·예산 잘 알지만 발언권 없는 교사의 무권리 상태”

- 낮은 연차와 높은 연차의 교사들이 각각 느끼는 업무 고충은 다를 거 같다.
“총체적으로 교육이 어려운 상황에서라면 경험이 적은 신규 교사들이 느끼는 부담과 고통은 더 크고 무겁게 다가간다. 충분히 적응할 때까지 지원받을 수 있는 보호장치가 있어야 하는데, 학교 안에는 그런 게 없다. 다만 어디에나, 누구나 하고 싶어 하지 않는 기피 업무는 있다. 업무의 구조와 총량이 바뀌지 않는다면 낮은 연차든, 높은 연차든 시달리고 고통받는 업무를 누가 해도 올바른 건 아니다. 해결책이 제대로 마련되지 않기 때문에 선생님들끼리 ‘폭탄 돌리기’ 방식으로 업무에 대처하는 현상도 일부에서 나타날 수밖에 없다. 교사들이 학교 운영과 교육에서 발언권을 법적으로 보장받지 못하는 것도 문제다. 오래전부터 나온 이야기지만 학생회, 학부모회, 교사회 등을 법정 기구화해 공식 채널로 만들고 합리적인 의사소통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

“교사의 퇴근 시간 이후 학부모가 전화하고, 문자 보내는 걸 제도로 엄격히 금지해야 한다. 불시에 수업 시간에 교실로 들어오는 학부모에 대해서는 ‘교육 활동 방해’로 정해야 한다. 그리고 아주 특별한 경우가 아니라면 학부모는 학교장이 만나야 한다. 모든 문제를 교사들에게 일임하고, 학교장이 관리자 차원에서 한 발 떨어져 보는 건 맞지 않다. 현재는 학교에서 학부모 민원을 어떻게 처리하는지에 관해 법적으로 정리된 게 아무것도 없다.”

- 강 의원이 교직에 있을 때와 비교해 학교와 교권은 어떤 점이 나아졌고, 어떤 점이 후퇴했나.
“교권은 전반적으로 약화했다. 교사의 전문성을 사회는 계속 평가절하하는 방향으로 갔다. 그러니 온갖 복잡한 요구들이 논쟁도 거치지 않고 들어왔다. ‘입시에 성공할 수 있는 교육을 해달라’는 요구, ‘전인적인 교육을 해달라’는 요구, ‘가정에서 못한 부분을 학교에서 감당해 달라’는 요구. 사회복지사가 해야 될 일이나 돌봄 기능 같은 게 이제는 너무 자연스럽고 당연하게 학교가 해야 하는 일이 됐다. 학교의 정체성이 흔들리고, 그 안에서 교사의 역할은 충돌한다. ‘민원을 받는 기구’가 된 교권은 엄청 취약한 상태다.”

강 의원은 교직의 마지막을 보낸, 서울의 첫 혁신학교(북서울중학교)에서의 기억을 떠올렸다.

“혁신학교 경험의 핵심은 학교와 교사에게 자율성을 준 것이다. 굉장히 많은 권한을 줬다. 그 권한을 행사하는 과정에서 교사는 자긍심을 느끼고, 교육적 전문성도 높아진다. 학부모도 그런 교사의 교육의 결과로 아이들이 변화하는 과정을 눈으로 확인하니 신뢰도가 높아진다. 교사에 대한 학생들의 신뢰도는 말할 것도 없다. 현재 학교에서 교사를 정책 실행 대상자로 보는 건, 곧 교사에게 자율성을 주지 않음을 의미한다. 교권이 말 그대로 ‘교육할 권리’이지 않나. 교사에게 자율성을 부여하는 것, 즉 교육 활동의 결정권을 주는 것에 대해 교육 당국은 깊이 고민해야 한다.”

- 교원들로부터 업무 경감, 인력 및 예산 투입에 관한 요구가 강하다.
“부적응 학생을 위해 교내 정규직 상담교사, 보조교사, 사회복지사 등 전문성을 가진 선생님의 배치는 당연히 해야 한다. 다른 학생들의 학습권 보장을 위해서도, 한 명의 교사가 혼자 감당하지 않도록 다양한 인프라를 구축하고 해결방식을 마련해야 한다. 임시방편으로는 안 된다.”

- 교사의 정치적 권리, 노동자로서의 권리를 보장할 법률안은 21대 국회에서 마련될 수 있을까.
“나의 희망 사항이다. 최근 드러난 교권 문제들도 교사의 정치 기본권과 아주 중요한 관계가 있다. 교사는 정치적 발언권이 없기 때문에 그동안 중요한 교육 정책, 예산 등 결정 과정에서 철저히 배제됐다. 현장에서 절박한 정책과 예산을 가장 잘 아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지 않은 것이다. 그래서 교육 문제는 늘 해결이 안 된 채 꼬이고, 또 정치권에서는 뒷전으로 밀려났다. 박정희 군사독재 시절 도구화한 교사의 정치 기본권을 되찾아 주는 것, 교사의 ‘무권리 상태 회복’은 교육 문제 해결을 위해 꼭 필요하다.”

 
더불어민주당 강민정 의원(왼쪽부터), 유기홍 의원, 박광온 원내대표, 정춘숙 의원이 지난달 24일 오후 서울 강남서초교육지원청에 마련된 서이초 교사의 추모공간을 찾아 조문하는 모습. 2023.07.24. ⓒ뉴시스


“학생 인권 vs 교권” 한가롭고 불순한 정부 접근방식

- 최근 ‘교권 실태’를 진단하는 정부·여당의 인식을 어떻게 평가하나.
“완전히 잘못된 진단이다. 정쟁으로 이 문제 접근하려는 불순한 접근방식이다. 어떻게 인권을 그렇게 대립적이고, 제로섬으로 보나. ‘학생인권조례 때문에 교권이 문제 됐다’는 인식은 이 문제를 해결할 진심이 있는지, 진정성에 의문을 품게 한다. 선생님들이 바라는 것도 학생 인권을 약화시키자는 게 아니다. 생활기록부 기재도 마찬가지다. 학교폭력 생기부 기재를 시작한 뒤, 이 기록을 지우거나 미루기 위한 가해자 측의 행정소송은 16.6배, 행정심판은 5.1배 늘었다.”

- 윤 대통령이 1일 국무회의에서 학생 인권을 이유로 해서 규칙을 위반한 학생을 방치하는 것은 인권을 이유로 사회 질서를 해치는 범법행위를 방치하는 것과 다를 바 없는 것”이라고 발언했다.
“가장 최악의 상황이다. 어떤 범죄를 처단하는 관점으로 대통령이 이 문제에 접근하겠다고 선언한 거다. 지난번에는 조례 개정을 언급했는데, 오늘은 이 문제를 완전히 ‘범죄 카르텔 척결’ 식으로 접근했다. 교육은 법과 가장 마지막에 만나야 한다. 그만큼 교육이 가지고 있는 독특한 특수성, 지켜야 하는 것이 있다. 헌법이 말하듯 자주성, 전문성, 정치적 중립성이 최대한 지켜져야 하는 영역이 교육인데 이걸 또다시 검사스러운 방식으로, 범죄를 처단하듯이 접근하는 건 문제를 최악의 상태로 만들 거다.”

- ‘교권 보호 입법’ 논의 국면은 장기화할 것으로 보인다. 지난달 27일 강 의원의 본회의 5분 발언 언급처럼 이 시간에 “정쟁이 끼어들 틈은 없다.” 여야가 입법 논의 과정에서 가장 유의해야 할 점을 꼽는다면.
“여야는 '교육을 살린다’는 기준 하나로 움직여야 한다. 이번에도 문제가 터지자마자 제대로 들여다보지도 않고 ‘학생인권조례 때문이다’, ‘진보 교육감 때문이다’ 식의 발언이 여당에서 나왔다. 올바르지 않은 접근 방식이다. 학교의 상태를 제대로 진단하고, 학교 구성원들을 위한 진짜 해법을 마련하는 자세를 견지해야 한다. 교사와 학부모를 적대적인 관계로 상정하는 것도 정치권이다. 이러한 인식이 오히려 사태 해결을 어렵게 한다.”

- 많은 교사가 집회에 참여하며 목소리를 내고 있다. 이 계기를 살려야 한다는 간절함이 있다.
“굉장히 고맙게 생각하고 있다. 교사들은 그동안 자기 목소리를 내는 것에 방어적이고, 주저했다. 입시 문제도 학부모 문제도 아닌, 진짜 중요한 교육 주체들의 문제. 누구도 관심 갖지 않은 교사들의 문제가 본격적으로 드러나는 계기가 됐다. 뜨거운 땡볕에도 자기 목소리를 내는 자리를 만들고 앞장서 참여하는 것에 고맙다.”

- 앞으로 열릴 집회에 참여할 의사가 있나.
“사실 지난달 22일 서이초 교사를 추모하며 열린 첫 번째 집회에 가고 싶었는데 일정이 맞지 않아 못 갔다. 대신 유튜브 중계로 현장을 봤다. 그런데 선생님들이 ‘정치적인 집회가 아니다’라고 강조하는 모습을 보며 오히려 정치인인 내가 가지 않는 게 더 맞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나는 국회에서 해야 할 역할을 하며 ‘멀리서 그러나 가까이 연대’하는 방식으로 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 끝으로 전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이번 사태를 통해 현재 상태로는 교육이 거의 불가능할 지경이라는 현실이 드러났다. 제대로 해결하지 않으면 학생, 교사, 학부모의 고통도 생기지만 사회 전체적으로 엄청난 불행이다. 지금은 ‘위기적 상황’이다. 이 문제점을 심각하게 인식하고, 그에 맞는 해법을 제시하고 추진해야 한다. 임시방편, 임기응변으로 해결하는 척 시늉만 내면 같은 일은 반복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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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토 학살 100주기, 日 정부는 진상 공개하고 공식 사죄하라

시민모임 독립, 특별법 제정 촉구 간토학살 100주기 1인시위 돌입 (전문)

  • 기자명 이승현 기자 
  •  
  •  입력 2023.08.01 23:41
  •  
  •  수정 2023.08.02 00:50
  •  
  •  댓글 0
 
시민모임 독립은 간토 학살 100주기를 맞아 1일 낮 12시 서울 종로구 율곡로 6 주한 일본대사관앞에서 '간토학살 100주기 8월 일본대사관 앞 시위 기자회견'을 개최하고 이날부터 한달간 계속될 1인 시위에 돌입했다. [사진-통일뉴스 이승현 기자]
시민모임 독립은 간토 학살 100주기를 맞아 1일 낮 12시 서울 종로구 율곡로 6 주한 일본대사관앞에서 '간토학살 100주기 8월 일본대사관 앞 시위 기자회견'을 개최하고 이날부터 한달간 계속될 1인 시위에 돌입했다. [사진-통일뉴스 이승현 기자]

자연의 섭리는 365일을 돌고 돌아 세상은 어제와 같은 듯 다른 매일의 일상을 겪지만 올해 9월 1일은 각별히 기억하고 또 기억해야 할 날이다.

한달 뒤 9월 1일은 간토대지진 조선인 학살 100주기가 되는 날이다.

100년전 그날 오전 11시 58분 일본 도쿄와 간토(關東, 관동) 남부지역에 리히터 규모 7.9의 강진이 발생했다. 큰 화재가 발생했고 불길은 9월 3일까지 이어졌다. 일본에서 발행된 '국사대사전'의 기록에 따르면 사망자만 약 10만명, 부상자와 행방불명자는 약 15만명, 이재민은 약 340만명에 달했다. 

숱한 인명피해가 있었지만 더 참혹한 재앙은 자연재해로 인해 발생한 불안과 공포, 불만이 극에 달한 민심을 달래기 위해 일본 정부가 유언비어를 퍼트리며 간토지역에 거주하던 식민지 조선인을 대상으로 조직적이고 계획적이며 끔찍한 대량학살을 자행한 일이다.

일본 정부는 100년이 지나도록 과거의 죄악에 침묵하고 참상의 진실을 지금까지 덮고 있다. 당연히 사과는 없다.

지난 2021년부터 간토대지진 조선인학살을 기억하며 진상규명과 공식사과를 촉구해 온 시민모임 독립(이사장 이만열)은 간토 학살 100주기를 맞아 1일 낮 12시 서울 종로구 율곡로 6 주한 일본대사관앞에서 '간토학살 100주기 8월 일본대사관 앞 시위 기자회견'을 개최하고 이날부터 한달간 계속될 1인 시위에 돌입했다.

참가자들의 요구는 일본 정부의 간토학살 진상공개와 공식 사과, 그리고 국회의 간토학살 진상규명 특별법 제정 촉구로 모아졌다.

상상을 초월하는 잔혹한 제노사이드 범죄에 대해 일조협회가 1963년 '조선인희생자 조사위령특별위원회'를 구성해 진상조사를 전개하고 1973년부터 도쿄 요코아미쵸 공원에 조선인 희생자 추도비를 세우면서 공식 추도식을 시작한 이래 50년을 이어온 조선인 희생자 추도식을 지내는 등 양심적 일본 시민사회의 분투가 있었지만, 일본 정부는 지금까지 학살사건의 정확한 진실을 밝힌 바 없기 때문이다.

해방된 조국의 정부도 100년이 다 되도록 이에 대한 공식조사는 물론 일본 정부에 자료 공개조차 요구하지 않았다. 철저한 무관심 그 자체였던 것이다. 그래서 100주기를 맞아 윤석열 정부는 간토학살 진상규명에 즉시 나서라는 요구도 제기했다.

무엇보다 여야 국회의원 100명이 발의한 '간토 대학살사건 진상규명 및 피해자 명예회복에 관한 특별법안'을 21대 회기가 끝나기 전에 반드시 제정할 것을 촉구했다. 

다시는 이런 야만적 행위가 일어나지 않도록 일본의 양심과 한국의 후손들이 꼭 기억하자는 의미이다.

이만열 시민모임 독립 이사장 [사진-통일뉴스 이승현 기자]
이만열 시민모임 독립 이사장 [사진-통일뉴스 이승현 기자]

이만열 이사장은 맨 먼저 마이크를 잡고 "오염수 투기를 두둔하는 한국의 정부 여당의 모습은 기이하기까지 하다. 도대체 당신들이 섬겨야 할 국민은 어디에 있나? 일본 정부를 두둔하고 섬기는 이유가 뭔가?"라며, 정부여당을 직격하는 일성으로 인사말을 시작했다.

이어 "간토대학살의 진상규명은 시대적인 과제이며, 일본 정부는 자료공개로 협조해야 한다"며, "역사범죄를 은폐하는 것은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는 것과 같다. 일본 국민과 정부의 맹성을 촉구한다"고 일갈했다.

이 이사장은 "사건의 진실을 드러내는 것은 오래된 원한을 심화시키기 위한 것이 아니라 용서와 화해로 승화시키는 계기를 만들기 위함"이라며, "아직도 간토지역을 정처없이 헤매고 있는 귀천혼령(歸天魂靈)들을 위로, 안돈시키는 계기도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부영 자유언론실천재단 명예이사장 [사진-통일뉴스 이승현 기자]
이부영 자유언론실천재단 명예이사장 [사진-통일뉴스 이승현 기자]
간토학살 특별법을 대표발의한 유기홍 더불어민주당 국회의원 [사진-통일뉴스 이승현 기자]
간토학살 특별법을 대표발의한 유기홍 더불어민주당 국회의원 [사진-통일뉴스 이승현 기자]

이부영 자유언론실천재단 명예이사장은 "우리 동포 수천명을 학살하고도, 제대로 수습도 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사과도 하지 않는 일본의 처사에 대해 우리 대통령이 기억이나 하고 있을 지 궁금하다"며, "우리는 78주년 광복절을 맞이하여 일제의 식민지배에 대한 인정과 사죄를 다시 일깨우고, 일본의 후쿠시마 핵 폐수 투기가 인류와 지구생태에 대한 영구적인 죄악으로 남을 것이라고 경고해야겠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지난 3월 간토학살 특별법을 대표발의한 유기홍 더불어민주당 국회의원은 "당시 대한민국 임시정부 독립신문에 6천여 명이라고 추정했던 것이 지금 우리가 알고 있는 희생자 숫자일 뿐 100년전 일본 도쿄 한 복판에서 학살된 희생자가 도대체 몇분이나 되는지 지금 아무도 정확히 모르고 있다"며, 학살사건의 진상규명을 위해 특별법이 반드시 통과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 "일본 정부와 군부에 의해 영문도 모른채 방화범으로 몰리고, 우물에 독을 탄 불순분자로 몰려서 죽창에 찔려 학살당했던 우리 선조들의 명예회복을 위해서도 특별법 통과가 꼭 필요하다"고 말했다.

20년전 일본변호사협회가 간토대지진 당시 조선인학살에 일본정부의 책임이 있다는 사실을 밝혀내고 이에 진상규명에 협조할 것을 촉구했지만 사건 10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자신들의 책임을 인정하지 않는 일본정부가 이제와서 스스로 그렇게 할리가 없다고 하면서 "윤석열 정부는 우리 선조들 6천여명이 억울하게 학살당한 이 사건의 진상을 밝힐 것을 일본정부에 떳떳하게 요구하라"고 촉구했다.

한일 과거사 현안은 1965년 한일청구권협정으로 모두 해결되었다는 윤석열 정부의 주장과 달리 간토학살은 청구권협정에서 다뤄지지도 않은, 관계없는 사건인만큼 우리 정부가 지금이라도 진상규명에 협조해 줄 것을 거듭 당부했다.

 
기자회견문 (전문)

간토 학살 100주기, 다시 8월 일본대사관 1인 시위에 나선다

일제강점기 재일 조선인에게 아주 중요한 민족운동이 있었다.

1923년 간토대지진 조선인 학살사건에 대한 진상규명 및 규탄 운동이다. 예컨대 1924년 3월 오사카 나카노시마 공회당에서 열린 조선인 학살 규탄대회가 있다. 무려 30명의 보고자가 연단에 올랐고, 흥분한 참석 청중은 7천 명에 달했다.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가?

1923년 9월 1일 오전 11시 58분, 도쿄를 중심으로 간토 일대에 진도 7의 대규모 지진이 발생했다.  9월 3일까지 화재가 계속되었다. 도쿄와 그 주변 가옥 45만 채가 파괴됐고, 사망자와 행방불명자가 10만 5천여 명에 달했던 자연 재해였다.

하지만 더욱 참혹한 재앙은 지진 이후에 발생했다. “조선인이 방화하고 있다”, “조선인이 우물에 독약을 풀고 있다”, “조선인이 부녀자를 강간하고 있다”는 등의 가짜뉴스가 조직적으로 유포되었다. 이것이 빌미였다. 

계엄령 아래서 군인과 경찰, 민간 자경단은 무차별 조선인 학살을 자행했다. 전대미문의 제노사이드 범죄였다. 당시 임시정부 기관지 <독립신문>은 조선인 희생자 수를 6,661명으로 추산했다. 일본 사회의 조선인 혐오가 극명하게 드러난 사건이었다. 

이 사건을 경험한 조선인들은 일제와 같은 하늘 아래 살 수 없음을 뼈저리게 깨닫는다. 이들은 조선에 돌아오거나 일본에 남는다. 이 비극의 역사를 끝낼 운동을 전개한다. 자주독립을 향한 새로운 여정의 시작이었다. 

해방 후에도 재일 조선인을 중심으로 진상규명 및 규탄 운동은 지속되었다. 

진실을 향한 역사전쟁이었다. 재일사학자 강덕상과 금병동이 1963년 편찬한 <현대사 자료 6: 간토대진재와 조선인>은 이렇게 출간된 역작이다. 양심적 일본 시민사회가 함께 했다. 

일조협회는 1963년 ‘조선인희생자 조사위령특별위원회’를 조직하고 진상조사를 전개한다. 1973년 도쿄 요코아미쵸 공원에 조선인 희생자 추도비를 세우고 공식 추도식을 시작한다. 올해 9월 1일에도 열리는 이 추도식은 50년을 이어온 행사다. 

사단법인 봉선화 니시자키 마사오 이사의 노력은 눈물겹다. 1982년 대학생으로 이 사건을 접하고 조선인 학살 장소 아라카와 강변에 자리잡는다. 40년 넘게 진상조사와 추도 활동을 하고 있다. 2003년 일본변호사연합회가 간토대지진 조선인 학살이 일본 정부 책임이라며 고이즈미 당시 총리에게 사죄와 진상규명을 권고한 것은 이런 노력의 연장선에 있다. 

한편으로 놀랍고, 한편으로 부끄럽다. 이 모든 활동이 대한민국 정부의 철저한 무관심 속에 진행됐다. 2014년 19대 국회 여야의원 103명이 간토대지진 조선인학살사건 진상규명 특별법안을 발의한 것은 전환의 계기였지만, 그조차 회기만료로 폐기됐다. 

역사는 기억하는 자들을 위해 복무한다. 한국 시민사회가 연대한 ‘간토학살100주기추도사업추진위원회’가 발족했다. 재일동포와 일본 시민단체들도 100주기 추도사업을 준비하고 있다. 21대 국회의 유기홍 의원을 포함한 100명 여야 의원들이 다시 ‘간토 대학살사건 진상규명 및 피해자 명예회복에 관한 특별법안’을 발의했다. 

역사전쟁의 새로운 국면이다.  

시민모임 독립은 2021년과 2022년에 이어 ‘기억’을 위한 활동을 진행한다. 

일본 정부의 간토 학살 진상공개와 사과를 요구하는 8월 일본대사관 1인 시위를 전개한다. 21대 국회가 19대 국회의 전철을 밟는 것을 반대한다. 이번에는 진상규명특별법이 반드시 제정되어야 한다. 100년 전 조선인 학살사건의 진상을 규명하고 다시는 이런 야만 행위가 일어나지 않도록 일본과 한국이 함께 기억해야 한다.

도쿄 요코아미쵸 공원에서 50년 동안 추도식을 이어온 고령의 미야카와 야스히코 일조협회 도쿄도 연합회장은 현장을 찾은 시민모임 독립 방문단에게 말했다. “간토 조선인 희생 100주기, 이제 싸움은 시작입니다.” 맞는 말이다. 싸움은 이제 시작이다. 우리가 8월 한 달 동안 일본대사관 앞에 다시 서는 이유다.

우리의 요구

1. 일본은 간토 학살 진상을 공개하라
1. 일본은 간토 학살 공식 사과하라
1. 국회는 간토 학살 진상규명특별법을 즉각 제정하라
1. 윤석열 정부는 간토 학살 진상규명에 즉각 나서라


2023년 8월 1일 

시민모임 독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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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여정 담화의 의미와 ‘미국의 벼랑 끝 전술’

  • 이정훈 통일시대연구원
  •  
  •  승인 2023.07.30 08:57
  •  
  •  댓글 0



 

​​​​​​​1. 한국인은 모른 채 지나간 ‘7월 위기’

2. ‘위임에 따라’ 직설적으로 대변하는 김여정 부부장

3. ‘벼랑 끝 전술’을 쓰고 있는 미국

4. 달을 보고 짖는 개

1. 한국인은 모른 채 지나간 ‘7월 위기’

김여정 담화와 북한(조선) 국방성 담화가 7월 중 연이어 여러 차례 발표되었다. 연이어 발표된 내용은 긴박하고 심각했다. 담화는 과거 푸에블로호 나포 사건이나 미국의 EC-121 정찰기가 동해상에서 공중 격추되는 것과 유사한 충격적 사건이 재연할 수 있는 상황임을 경고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 분위기와 실제 위험 상황을 비슷하게라도 전하는 한국언론은 거의 없었다.

이번에 위험을 감지한 미국이 북에 대한 공중 정탐행위를 중지하고 한 발을 빼면서 그러한 심각한 사태는 다행스럽게 모면했지만, 만약 그러한 일이 실제 벌어졌더라면 한국민은 돌아가는 상황을 파악조차 못 한 채 전쟁 위기 국면으로 자신을 내맡겨야 하는 처지가 되고 말았을 것이다.

문제는 이러한 상황이 다시 재연될 수 있으며 언젠가 실제상황으로 터질 수 있다는 점이다. 더 심각한 것은 그 과정에서 한국정부와 한국언론이 미국의 앵무새 역할 이외에 아무런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렇다면 미국은 왜 평상시 북에 대한 공중 정탐 경계선을 넘어선 위험한 영공침해 정탐 비행을 의도적으로 감행하며 ‘7월 위기’를 연출했는가이다. 또 이번 북의 담화와 대응을 보면 차후 전개될 북미관계 양상과 본질을 추론할 수 있다. 이를 살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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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위임에 따라’ 직설적으로 대변하는 김여정 부부장

김여정 부부장(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 선전선동부 부부장 겸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국무위원회 위원)은 북의 입장을 여과 없이 직설적으로 대변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그런 면에서 김여정 부부장의 담화나 발표는 전통적 외교 표현과는 거리가 멀다. 원래 북의 외무성 담화도 자신의 입장을 에둘러 말하지 않고 표명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김여정 부부장의 담화는 북의 공식기구보다 더 분명히 북의 입장과 특히, 북 최고지도자의 입장을 직접적으로 전달하는 기능을 수행하고 있다.

북한(조선)과 미국의 과거 성명이나 발표를 돌아보면, 어떤 현안에 대한 미국의 외교적 발언은 무엇이 본심이며 진실인지 알 수 없는 경우가 많다. 오히려 정반대로 해석하면 진실에 가까운 경우가 많았다. 반면 북의 발표나 김여정의 담화는 언론에서 쉽게 접하기 어려운 북미 간 내밀한 고급 정보를 담고 있는 경우가 많았으며 포커페이스의 미국발표보다 언론과 기자들이 궁금해하는 내용을 해소해 주는 경우가 많았다. 그 진위를 떠나 북의 입장을 말 그대로 해석할 때 실제상황과 진실의 퍼즐에 부합하는 사례가 많았다는 이야기다.

현재 북미 간의 대화나 접촉은 2019년 2월 하노이 북미정상회담 합의 실패 이후 완전히 단절된 상태이다. 물론 하노이 합의 불발은 당시 트럼프 행정부가 자초한 것이다. 미국이 현재 북미 간 여러 대화 채널이 있다고 하지만 이 역시 너스레에 불과하다. 현재 북미 관계는 남북관계처럼 단절되어있다. 이번 사태를 통해 다시 확인되는 것은 미국은 위험한 ‘대북 위협 곡예’와 함께 내심 또다시 ‘시간 끌기 외교용 대화국면’을 원하고 있다는 점이다.

북은 이에 대해 만약 미국이 또다시 계선을 넘을 시 핵 억제력의 행사, 즉 공중요격과 전술핵도 부득불 쏠 수밖에 없다는 강경한 태도를 보였다. 북은 미국의 계선을 넘은 공중 정탐비행과 40여년 만에 전략핵잠수함( SSBN) 켄터키함을 동원한 이례적 군사위협을 통해 북의 정면대결전 입장이 일보후퇴하길 기대했다고 판단하는 것으로 보인다. 한마디로 이번 담화에서 북은 미국이 ‘대북적대정책 폐기’ 의향이 없는 상황에서 오히려 협박하고 어르며 기만적인 대화국면을 재개하려는 미국의 의도와 이중적 태도를 정면거부했다고 볼 수있다.

북 국방성 담화와 연이은 김여정 담화의 핵심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1) “핵탄두를 탑재한 미전략핵잠수함의 조선반도전개는 1981년이후 처음으로 핵충돌위기라는 최악의 국면까지 현실적으로 발생할 수 있다.” (북 국방성, 2023년 7월 10일)

2) “조선동해에서는 몇차례나 미공군 전략정찰기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주권이 행사되는 령공을 수십㎞나 침범하는 사건이 발생하였다.” (북 국방성, 2023년 7월 10일)

3) 미군이 북측 경제수역을 침범하지 않고 그 바깥에서 정탐행위를 하는데 대해서는 직접적인 대응은 하지 않을 것이지만 만약 또다시 해상군사분계선을 넘어 북측 경제수역을 침범할 시에는 분명하고도 단호한 행동으로 대응할 것임을 위임에 따라 반복하여 경고한다. (김여정, 2023년 7월 10일)

4) “미국이 아무리 머리를 굴려보아도 지금 우리와의 협상조건, 거래거리가 될수 있는것을 찾아낼수가 있겠는가?설사 미국이 몇년전 전임자가 공약했던 미국남조선합동군사연습의 잠정중단과 같은 낡은 수를 또다시 꺼내들거나 기껏해서 련합군사훈련의 축소나 전략자산전개중단과 같은 가역적인것을 가지고 그 누구의 구미를 돋구어보자고 접어들 가능성도 예견해볼수 있다.

시간벌이를 위한 그런 얄팍한 술책에 넘어갈 우리가 아니다. 미전략자산이 조선반도에 진입하는것은 마음만 먹으면 10여시간이면 전개가 완료되고 합동군사연습도 병력을 재투입하여 재개하는데 길어서 20일이면 충분할 것이다. 물론 환상적이기는 하지만 설사 미국이 남조선주둔 미군철수와 같은 전략적인 속임수를 꺼내들고 남조선으로부터 군대와 장비를 말짱 들어내간다고 해도 우리는 해외주둔 미군무력이 다시 들어와 《대한민국》을 군사요충지로 만드는데는 보름정도밖에 걸리지 않을것이라는 점을 모르지 않는다.” (2023년 7월 17일)

5) “나(강순남)는 이 담화를 통하여 미군부측에 전략핵잠수함을 포함한 전략자산전개의 가시성증대가 우리 국가핵무력정책법령에 밝혀진 핵무기사용조건에 해당될수 있다는데 대하여 상기시킨다.” 강순남 국방상 담화 (2023년 7월 20일)

이 성명들이 의미하는 것은 이 사태가 한반도 핵전쟁의 출발점이 된다는 것을 최고의 수준에서 바로 경고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번 사태에서 미국을 상대한 것은 외무성이 아니라 국방성과 김여정 부부장이다. 외무성을 거칠 필요도 없이 국방성이 바로 북의 입장을 표현했으며, 여러 단계를 거칠 필요 없이 김여정 담화가 북 최고지도자의 의중을 미국에 전달했다.

북의 강대강 정면대결전 의도는 전혀 변함없음이 확인되었으며, 미국은 이 위험한 곡예를 더는 할 수 없이 처지가 되었다. 미국이 의도한 특별한 핵전략 자산 총동원이라는 호기에 찬 위협은 사실상 실패했으며 그에 부수적으로 따를 수 있는 북미 대화국면 유도 가능성도 미국은 단념해야 하는 입장이 되었다.

 

3. ‘벼랑 끝 전술’을 쓰고 있는 미국

벼랑 끝 전술이란, 마치 당장이라도 전쟁을 할 것처럼 상대를 밀어붙여서 적국의 양보를 얻어내려는 외교적 협상전술을 말한다. 당장이라도 판을 엎어버릴 기세로 상대를 공갈협박하여 상대의 양보를 얻어내는 전술로 사용된다. ‘벼랑 끝 전술’(Brinkmanship)은 북한(조선)이 단골로 쓰는 전술이라고 언론이 주로 보도하는데 벌어지는 현실은 정반대이다.

이번 미국의 벼랑 끝 전술의 주요한 목적은 우선 아직도 독자 핵개발의사를 단념하지 못한 한국 수구보수와 북이 개발한 다종의 전술핵으로 실제 안보위기를 체감하는 한국정부를 안심시키는 조치일 것이다. 다음으로 최대의 전략자산 전개와 동시에 진행된 실질적 전쟁위협으로 북의 입장변화를 유도하려는 시도로 보인다.

사실 이러한 전술은 새로운 것이 아니라 미국이 과거 여러 반미국가에 대해 군사적으로 협박하던 전통적 수법이다. 미국이 벌인 7월 ‘벼랑 끝 전술’ 실패 이후 미국의 가능한 외교나 군사전략이 무엇일지 알 수 없다. 그러나 북미간 긴박한 무력대치와 설전을 통해 이미 아래와 같은 분명한 가이드라인은 몇 가지 정해졌다고 볼 수있다.

1) 다시 7월과 같은 유사한 상황이 미국에 의해 재발된다면, 지난 시기 북미간 충격적 사건으로 즉각 전쟁위기로 돌입했던 ‘푸에블로호 나포사건’ 혹은 ‘EC-121기 격추사건’과 같은 전쟁위기의 시발점이 된다는 점이다. 이러한 사태의 진전은 과거상황과 다르게 상호 핵무력이 긴박한 대치상태에 있는 한반도에서 일방이 물러서지 않는다면 곧바로 전술핵전투로 비화할 가능성이 높다. 또 이것이 전략핵무기 사용으로 발전하지 말라는 보장은 없다. 그것이 북이 7월 ‘화성18호’ 시험을 이 기간에 다시 재개한 이유일 것이다.

2) 미국의 시간끌기용 북미 대화전술에 북이 응할 가능성이 전혀 없다는 것이 다시 확인되었다. 북은 미국의 이른바 조건없는 대화전술을 북을 호전 세력으로 몰며 국내외 여론을 호도하는 미국의 의도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고 있다. 이와 더불어, 북은 미국이 한미연합훈련중단, 평화협상 더 나아가 ‘환상적’ 주한미군 철수 등 북의 구미에 당기는 새로운 대화의제를 테이블에 실제로 올려 ‘대화를 위한 무용한 대화’를 재개하려는 의도를 갖고 있다고 보고 있다. 그럼에도 북의 태도는 미국이 이미 지나간 ‘트럼프 버스’를 다시 잡으려 하지 말고, 스스로 대북적대정책을 포기하는 조처를 실행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3) 담화내용을 보면 미국이 애써 과거에 싱가포르 북미정상회담 성명이 살아있다고 선전해도 북은 이를 이미 휴지조각으로 보고 있다. 따라서 과거 협상공식인 북미관계 정상화와 연동된 한반도 단계적 비핵화와 그 협상공식도 완전히 사라졌다고 볼 수 있다. 이제 남은 것은 그 어떤 무용한 협상자체가 아니라 점증하는 한반도 핵전쟁위기와 미국 본토 안보위협에 대비해 미국이 전후 70년 대북적대정책을 스스로 철회하는 길만 남아 있다는 이야기다. 미국 스스로 대북적대정책 폐기의 진정성이 없다면 주한미군 철수를 협상용으로 테이블에 올려도 북은 협상에 응할 의사가 없다는 이야기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미국정부가 평화협정 이야기를 흘리거나 미국의회 일부에서 평화협정 소리가 간간히 들린다고 해서 북미관계의 변화가 크게 있을 것 같지는 않다. 사실 ‘사이비 평화협상’도 많으며 평화협정의 수준과 종류가 매우 다양하기 때문이다. 미국이 협상을 하려면 지난 베트남 하노이 북미정상회담(2019년 2월)에서 결심했어야 했다. 당시 북은 일정하게 양보를 하더라도 미국과의 협상으로 북미관계를 정상화하려고 했다. 하노이 북미 협상실패 이후에도 북은 2020년 1월 노동당 중앙위원회 전원회의의 결정인 이른바 ‘정면대결 노선’까지 무려 1년 동안 미국의 태도변화와 협상복귀를 기다렸다.

그러나 그것이 미국 지배세력 내부의 합의건, 트럼프 행정부의 역량과 의지부족이건 미국은 진정한 협상을 할 준비가 되어있지 않았음이 증명되었다. 미국이 그러한 준비가 되지 못한 것은 지금도 마찬가지이다. 따라서 상당기간 북미 대화는 없을 것으로 보이며, 정면대결노선에 기초한 북 핵억재력(핵능력)의 무한확대도 변화가 없을 것으로 보인다.

 

4. 달을 보고 짖는 개

한국주류언론과 언론에 등장하는 군사 전문가라는 사람들이 북의 군사력을 무시하거나 폄하하는 것은 일종의 관행이다. 미국정부가 언론을 통해 흘리는 평가를 그대로 베끼는 것은 물론, 그에 대해 아무런 민족적, 주체적 관점이나 문제의식 없이 기사를 쓰는 것도 오랜 관행이다. 그러나 이제 무엇을 무시하거나 감추기에는 눈에 보이는 현실이 너무 많은 것을 증명하고 있다.

미국언론을 따라 북한(조선) 핵의 소형화, 경량화, 정밀화, 다종화는 먼 미래의 일이라 부정하던 한국언론은 앞으로 할 말을 잃게 되었다. 현실은 북이 이 모든 것을 거의 완성하여 실전훈련으로 적용됨을 보여주고 있다. 북이 민족이 공멸할 전략핵을 한반도에서 사용할 가능성은 없다. 전략핵은 분명 미국용이다. 그러나 한반도와 동북아 권역 용도의 소형화, 다종화된 전술핵 사용은 전혀 다른 국면으로 발전하고 있다.

최근년 한미 연합훈련의 내용은 기존에 상상하던 재래식 전쟁연습이 아니다. 상호 공격적인 선제 핵공격과 대응 전술핵 훈련으로 양상이 완전히 바뀌었다. 북도 이미 시험이 끝난 다종의 전술핵(화성8형 극초음속 미사일, 핵방사포, 핵무인수중공격정 해일, 전략순항 미사일 화살-1,2형, 최근 선보인 무인기)을 올해부터는 본격적으로 실전에 적용해 대응하는 훈련으로 바뀌었다.

이로 인해 드러난 한국 국방의 무방비, 무대책 상태는 가히 충격적이다. 한미연합 방위력으로도 날로 첨단화, 지능화, 무인화 되는 북의 비대칭 핵전략에 대응하는 것은 불가능한 한계지점에 이르렀다. 한국군 장성들의 의식구조가 정상이 아니라는 것은 알고있지만, 이 정도 국방상황에도 미국만 믿고 아무런 반성과 대책이 없다면 그것은 이들이 최소한의 양심도 없다는 이야기이다.

특히 미국은 북한(조선)이 미국의 전략자산 전개 (핵투발잠수함, 핵항공모함, 전략폭격기)에 대응해 최근 모의 전술핵탄(EMP탄= 전자기펄스탄)발사로 지속적으로 대응하고 있다는데 충격을 받았을 것으로 보인다. 북은 올해들어 회피기동하는 화성8형 극초음속미사일과 순항미사일 등에 EMP 전술핵탄을 탑재하여 투발하는 실전 연습을 진행 중이다. 미국은 현재 이를 막을 묘수가 없다.

참고로 EMP탄이 발사되면 직접적 폭발반경의 인명피해는 없으나 군사 전자장비는 모두 먹통이 된다. 쉽게 말해 항공모함도, 날아오는 전략전투기도, 핵잠수함도 고철 덩이리로 변한다는 이야기다.

김여정 담화를 분석하는 한국언론 보도를 보면 한심하기 그지없다. 북의 담화에서 “대한민국”이라는 표현을 쓴 것이 북이 정식으로 ‘2개 한국정책’을 인정했다는 기사는 황당하기에 앞서 민망하다.

한국언론이 해야 할 역할은 현실을 오독하는 특별한 재능을 보이는 것이 아니다. 아주 상식적이고 기본적인 이야기를 해야 한다. 허무맹랑한 대결이 아니라 한국정부가 6.15정신을 회복하고 한국 보수조차 평화협정을 심중히 타산해야 할 때이며, 한국정부가 정전70년이 지나도록 타국에게 맞긴 빼앗긴 군사주권(군작전지휘권)부터 회수하라고 설득해야 한다. 비상시 미국의 허락 없이 총 한 방 쏠 권한이 없는 대한민국의 수치를 이제라고 그만두라고 해야 한다.

한국언론을 보면, 달을 가리키면 손가락 끝만 보고, 마치 달을 보고 밤에 짖는 개와 같다는 생각이 든다. 무엇을 보고 짖는지는 알 수 없으나 분명한 것은 그것은 이성의 소리가 아니라 해괴한 울부짖음이라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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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틈만 나면 자유 되뇌어놓고 언론자유 무참히 훼손한 인물을"

  • 기자명 김예리 기자 
  •  
  •  입력 2023.08.01 08:10
  •  
  •  댓글 0

[아침신문 솎아보기]

한겨레·경향 공영방송 장악 노골화 우려 사설

철근누락 아파트에 서울신문 뺀 8개 신문 사설 내

윤석열 대통령이 28일 이동관 대통령실 대외협력특별보좌관을 방송통신위원장 후보로 지명한 가운데 방통위가 공영방송 경영진 해임 절차에 돌입했다. 여당인 국민의힘에서는 공영방송 민영화론에 불을 지피고 있다. 일부 신문들은 여당과 방통위가 ‘이동관표 밑그림’을 따라 방송장악을 노골화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여당 간사인 박성중 의원이 31일 “세계 각국의 방송은 1공영·다민영 체제인데 우리는 다공영·1민영 체제”라며 “KBS도 2TV는 민영화해서 선진국 체제에 맞춰야 된다”고 말했다. KBS 1TV와 EBS만 공영으로 유지하고 MBC와 KBS 2TV를 민영화하자는 주장이다. 이동관 방송통신위원장 내정자가 지명 소감으로 “영국 BBC나 일본 NHK와 같은 국제적으로 신뢰받는 공영방송이 있어야 한다”고 밝힌 데 대한 호응으로 읽힌다.

▲1일 아침신문 1면

▲1일 경향신문

현재 직무대행 체제인 방통위는 남영진 KBS 이사장 해임 절차에 돌입했다. MBC 대주주인 방송문화진흥회 검사·감독을 다음달 4일 실시한다. 이에 한겨레는 “한상혁 전 방통위원장에 대한 기소와 이를 구실 삼은 면직, 윤석년 한국방송 이사의 기소·해임에 이어 일사천리로 후속 수순 밟기에 나선 것”이라며 “이런 무리수와 속도전의 목표가 방송장악에 있음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고 했다.

▲1일 경향신문

더불어민주당은 31일 이동관 방송통신위원장 내정자 인사청문회 준비에 본격 돌입했다. 이 내정자의 과거 방송 장악 시도 전력과 아들 학교폭력 무마 의혹 등에 대한 ‘송곳 검증’을 예고했다.

한겨레는 “해임된 윤석년 전 이사에 이어 남 이사장까지 해임하면 총원 11명인 한국방송 이사회의 여야 구성이 기존 4 대 7에서 6 대 5로 뒤집힌다”며 “이사회는 한국방송 사장에 대한 해임 제청 권한을 갖고 있다. 이사회 구성을 이렇게 바꾸면 사장 교체를 비롯해 정부·여당 입맛대로 한국방송을 좌우할 수 있는 환경이 완성된다”고 했다.

▲1일 한겨레

한겨레는 MBC 대주주인 방문진 구성 또한 여권에 유리하게 바꾸려는 시도가 본격화했다고 했다. 홍석준 국민의힘 의원은 31일 “방문진과 문화방송의 관계도 고민해야 할 포인트”라고 말했고 지난 3월부터 방문진에 대해 ‘먼지털기 감사’를 해온 감사원은 권태선 방문진 이사장의 소환을 통보했다. 방문진 구성 또한 여권에 유리하게 바꾸려는 시도가 본격화한 것이다.

한겨레는 “이 모든 일을 주도할 인물로 윤 대통령이 선택한 ‘전문가’가 바로 이동관 특보”라면서 “이명박 정부 당시 공영방송을 비롯한 언론 장악 시도 뒤엔 항상 이 특보가 있었다”고 우려했다. 한겨레는 “정부·여당이 이렇게 노골적으로 방송장악을 밀어붙이는 배경에는 내년 4월 총선이 있다. 자신들에게 절대적으로 유리한 방송 환경을 확보하겠다는 포석”이라고 했다.

경향신문은 방통위와 여당의 이 같은 움직임을 두고 “여당이 공영방송 민영화에 군불”이라는 평가를 내놨다. “‘이동관표’ 방송 장악 밑그림인지 의심스럽다”며 “세계 최초 공영방송인BBC는 방송 채널이 4개여서KBS2TV 민영화가 글로벌 스탠더드라고 볼 근거는 없다”고 했다.

▲1일 경향신문

경향신문은 여당이 이 내정자를 두고 “묻지마식 엄호”에 들어갔다고 꼬집었다. “이 내정자가 뻔히 드러날 사실에 거짓말을 계속하는데도 국민의힘은 ‘문제없다’ ‘무혐의 처분됐다’고 감싸고 있다”고 했다. 이 내정자는 2012년 아들의 하나고 재학 시절 학교폭력 문제로 김승유 재단 이사장과 통화한 걸 ‘사실 확인차’라고 했지만, 김 전 이사장은 “(아들이) 시험은 보고 전학을 가게 해달라”고 부탁했다고 말했다. 이 내정자는 앞서 전학 조치가 학교 선도위원회 결정이라고 밝혔지만 선도위는 열린 적이 없다.

▲1일 경향신문

경향신문은 “이 내정자는 현직 대통령 특보의 방통위원장 직행과 ‘언론장악 기술자’ 전력만으로도 방통위원장 자격이 없다. 지금이라도 윤 대통령이 하루속히 지명을 철회하는 게 국민 뜻에 부합한다”고 밝혔다.

반면 중앙일보의 최민우 정치부장은 이 내정자 후보 지명 철회를 요구하는 언론·시민사회 움직임에 대해 “오히려 ‘권언유착’ 정황은 문재인 정부에서 더 노골적”이었다고 주장했다. 최 정치부장은 ‘최민우의 시시각각’ 칼럼에서 MBC가 대통령실의 이동관 내정자 지명 발표 당일 관련 뉴스를 메인에 6꼭지 배치했다며 “알레르기 반응”이라고 했다.

▲1일 중앙일보

그러면서 “MBC 노조는 청와대 홍보수석과 대변인으로 언론 총괄한 이 후보자를 김재철 사장 배후로 지목했다”며 “이동관-김재철 커넥션의 증거가 여태 나왔나”라고 되물었다. 이동관 내정자가 청와대 홍보수석을 지낼 당시 수석실이 MBC를 비롯한 언론 장악에 나선 일은 보도로 드러난 바 있다. 국가정보원은 이동관 당시 홍보수석실 요구로 지상파 라디오와 시사프로그램 등 방송장악, MBC ‘정상화 전략 추진방안’ 등 언론장악 문건을 생산했으며 이것이 시행에 옮겨졌다.

최 부장은 2017년 8월 더불어민주당 워크숍에서 배포됐다는 ‘언론적폐 청산’ 과제 문건을 두고 “문건 내용은 대부분 실현됐다. 고대영KBS사장, 김장겸MBC사장은 문재인 정부 1년도 안 돼 쫓겨났다”며 “이동관 결사 반대의 속내는 트라우마보다 ‘도둑이 제 발 저려서’ 아닐까”라고 했다. 그러면서 “흥미로운 건 임명 전부터 탄핵설이 공공연히 나온다”며 “한국 정치의 타락이 이 지경까지 왔다”고 했다.

이종규 한겨레 저널리즘책무실장·논설위원은 저널리즘책무실 칼럼에서 “(윤석열 대통령은) 취임 이후에도 틈만 나면 ‘자유’를 되뇐다. 그래놓고는 언론 자유를 무참히 훼손한 인물을 방송 정책을 총괄하는 자리에 앉히려 한다”며 “더욱이 이동관 후보자는 윤 대통령 자신의 휘하에 있던 수사팀이 ‘방송 장악 문건’ 작성 지시자로 지목한 조직의 책임자였다”고 했다.

▲1일 한겨레

반면 세계일보와 국민일보는 이동관 내정자 지명을 둘러싸고 여야의 공방을 양쪽 같은 분량으로 다뤘다.

▲1일 세계일보

▲1일 국민일보

‘철근 누락’ LH 아파트에 신문들 “2023년 맞나”

4월 인천 검단 아파트 지하주차장 붕괴 사고의 주요 원인으로 꼽히는 ‘철근 누락’이 한국토지주택공사(LH)가 발주한 아파트 15곳에서 추가로 확인됐다. 기둥만으로 위층을 비롯한 건물 하중을 지탱하는 무량판 구조에는 보강 철근이 필수인데, 이를 빼먹은 경우가 6곳 중 1곳에 달했다.

이에 서울신문을 제외한 일간지 8곳이 모두 사설을 내 비판했다. 경향신문과 국민일보, 동아일보, 세계일보, 조선일보, 중앙일보, 한겨레, 한국일보다.

다수 신문이 국토교통부에 민간 아파트에도 전수 조사에 나설 것을 주문했다. 한국일보는 “무엇보다 공기업인 LH가 발주한 공사에서 이런 부실이 비일비재했다는 점에 정부도 깊이 반성해야 한다”며 “민간 아파트에도 신속한 전수조사가 뒤따라야 함은 물론”이라고 했다.

▲1일 한국일보

▲1일 동아일보

▲1일 조선일보

동아일보도 “철근 누락 아파트는 LH현장만의 문제가 아닐 것”이라며 “정부는 민간 아파트 300여 곳을 전수 조사하겠다고 하는데 부실 사례가 더 많이 나올 수 있다”고 했다. 조선일보도 “전국에 부실 공사 널렸을 것”이라고 밝혔다.

경향신문과 한겨레도 민관 이권과 부실 구조의 전모를 밝히라고 했다. 경향신문은 “보완 공사와 손해 배상은 당연하고, 필요하면 아파트를 철거한 뒤 재시공하는 방안까지 검토해야 한다”고 했다.

▲1일 경향신문

▲1일 한겨레

한겨레는 “민간 아파트 약 300개 단지에 대해서도 전수조사를 한다고 하는데, 한곳도 빠뜨리지 말고 철저히 조사(해야 한다)”며 “시공 단계에서 철근을 누락한 이유와 책임자도 하나하나 끝까지 밝혀야 한다”고 했다.

▲1일 세계일보

▲1일 국민일보

▲1일 서울신문

서울신문은 사설을 내지 않았고 기사에선 LH를 건설 카르텔로 조명하고 ‘엘피아(LH+마피아)’라는 조어를 쓴 비판도 나온다고 밝혔다. 서울신문은 이들 9개 일간지 가운데 유일하게 민간 건설사(호반건설)가 대주주인 신문으로 꼽힌다.

 김예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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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살 아파트' 철근공 "아파트 철근, 20~30년 전의 반만 넣고 있다"

[인터뷰] GS건설 검단 현장 노동자 "우리가 봐도 불안했다... 불법 하도급이 문제"

23.08.01 07:08l최종 업데이트 23.08.01 07:08l
5월 2일 오후 인천시 서구 검단신도시 모 아파트 건설 현장에서 구조물이 파손돼 있다. 이곳에서는 지난 4월 29일 지하 주차장 1∼2층의 지붕 구조물이 무너지는 사고가 발생했다
▲ 붕괴 사고 발생한 인천 아파트 건설 현장 5월 2일 오후 인천시 서구 검단신도시 모 아파트 건설 현장에서 구조물이 파손돼 있다. 이곳에서는 지난 4월 29일 지하 주차장 1∼2층의 지붕 구조물이 무너지는 사고가 발생했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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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4월 붕괴한 GS건설 검단 아파트 지하 주차장처럼 한국토지주택공사(LH)가 발주한 다른 아파트 단지 15곳에서도 철근이 누락돼 있었다는 정부의 추가 발표가 나온 가운데, 문제의 검단 공사 현장에서 9개월간 일했던 한 철근 노동자가 어렵게 인터뷰에 응했다.

20년 이상 경력의 철근공 A(50대·남)씨는 7월 31일 통화에서 "LH 발주 아파트에 유독 무량판(들보·벽 없이 기둥으로만 천장을 떠받치는 방식) 구조가 많다"라며 "검단처럼 절반이나 빠지는 경우는 없지만, 전단 보강근(천장 무게를 지탱하기 위한 철근)은 작업 시간이 오래 걸리기 때문에 대부분 다른 현장에서도 80% 정도만 들어간다"고 말했다.

2022년 1월부터 10월까지 GS건설 검단 아파트 공사 현장에서 일했다는 A씨는 "철근공은 시키는 대로 철근 작업을 할 뿐이지만, 검단 현장은 우리가 보기에도 전단 보강근이 너무 적게 들어는 것 아닌가 싶어 현장 소장에게 '이건 좀 이상하다'는 얘기를 했었다"고 회상했다.

그는 "검단 현장 내에서도 붕괴 사고가 난 지점은 바닥에 암석이 나와 유독 공기가 많이 늦춰진 곳이었다"라며 "공기를 만회하려 빨리 빨리 하다 사고가 난 것 같다"고 했다. A씨는 "당시 철근공 70여 명 중 60여 명이 베트남 출신 이주 노동자였다"고도 했다. 그는 현재 다른 현장에서 일을 하고 있다. 검단 현장에서 일했던 노동자의 공개 증언은 이번이 처음이다.

앞서 지난 5일 국토부 건설사고조사위원회는 4월 29일 발생한 GS건설 검단 아파트(AA13-2블록 1666세대) 지하 주차장 붕괴 원인에 대해 천정을 떠받치던 기둥 32개 중 절반 가량인 15개에서 전단 보강근이 누락됐다고 발표해 '순살 아파트' 파문이 일었다. 국토부와 LH는 전날(30일) 전국의 LH 발주 아파트 단지 91곳의 지하 주차장을 조사한 결과 15곳에서 전단 보강근 누락을 추가 발견했다고 밝혔다.

다음은 A씨와의 일문일답.

"현장에서도 '이상하다' 싶었다"
  
큰사진보기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이 30일 오후 LH서울지역본부에서 열린 공공주택 긴급안전점검 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이 30일 오후 LH서울지역본부에서 열린 공공주택 긴급안전점검 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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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검단 아파트 지하 주차장이 붕괴했다는 소식을 듣고 어땠나.

"그 현장에서 나온 지 꽤 지났지만 선명하게 기억이 났다. 20년 넘게 철근 일 하는 동안 이런 적은 처음이다. 당시 현장에 전단 보강근이 한 차로 10톤 넘게 들어왔는데, 안 넣어도 된다고 해서 폐기 처분됐던 것으로 안다. 우리야 시키는 대로 하는 입장이지만, 전단 보강근이 너무 적게 들어가길래 현장 노동자들도 '이래도 되나' 싶었다. 현장 소장에게도 좀 이상하다고 말했지만 설계 구조가 그렇다고 했다. 도면대로 시공하는 입장에서 '왜 철근 안 넣냐'고 더 말할 수는 없다."

- 무량판 구조가 위험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다른 아파트 지하 주차장도 무량판 구조가 많은가.

"검단도 그렇고, LH (발주) 공사에 무량판이 많다."

- 다른 무량판 지하 주차장에서도 전단 보강근이 빠지는 경우가 많은가.

"아니다. 이렇게 절반씩이나 빠지는 경우는 없다. 하지만 그렇다고 모든 기둥에 전단 보강근이 다 들어가는 현장도 없다. 한 80% 정도 들어간다고 보면 될 것 같다."

- 왜 80%만 들어가나.

"전단 보강근은 어려운 공정은 아니지만 품이 많이 들어가고 시간이 오래 걸린다. 공사 현장에서는 공기가 생명이지 않나. 하루하루가 다 돈이니까. 전단 보강근은 두께 13mm, 길이 340mm로 기둥 하나에 적어도 700~800개, 많으면 1000개 들어간다. 손 빠른 철근공 기능공들이 하루 종일해도 기둥 6~7개 채우면 많이 채운 거다. 그러니 100% 다 넣는 경우가 드물다.

전단 보강근은 다른 철근에 비해 돈도 안 된다. 철근 공사 도급 계약은 철근 무게를 기준으로 하는데, 전단 보강근은 손만 많이 가지 일반 철근들보다 작고 가볍기 때문이다. 요즘 철근 1톤당 도급비가 35만~36만 원 정도 한다."

- 붕괴된 검단 아파트가 다른 곳보다 전단 보강근이 많이 빠진 이유는 뭐라고 보나.

"설계 과정까지 알 수는 없지만, 같은 아파트 현장의 다른 지점들도 그 정도는 아니었는데 유독 붕괴가 난 곳이 심했다. 그 자리가 원래 현장 출입 통로로 쓰였어서 제일 마지막에 공사를 했는데, 바닥에서 암(석)이 나와서 공사가 한 3~4개월 늦어졌다. 흙이면 그냥 파면 되는데, 돌은 계속 발파해가면서 파야 하니 오래 걸린 것이다.

공사하는 입장에서는 거기를 빨리 올려야 다른 데도 마무리를 할 수 있으니 더 서둘렀던 것 같다. 전단 보강근뿐만 아니라 콘크리트 양생도 다른 데는 보름씩 했는데 그곳은 2~3일 정도밖에 안 하고 넘어갔다. 이건 인부들끼리 했던 말인데, 바닥에 돌이 나와서 위에 공사를 좀 덜 신경 쓴 것 아닌가 싶기도 하다. 아래 지반이 튼튼하다고 생각한 것이다."

"나도 불안... 20~30년 전 아파트보다 철근 절반밖에 안 들어간다"
  
큰사진보기인천 검단신도시 아파트 지하주차장 붕괴 사고와 관련해 시공사인 GS 건설이 5일 사고가 난 아파트 단지 전체에 대한 전면 재시공 계획을 밝혔다. 재시공 계획 단지는 총 17개동, 1천666가구에 달한다. 6일 촬영한 GS건설의 검단신도시 아파트 건설현장. 지난 4월 사고가 발생한 구역이 가려져 있다.
▲  인천 검단신도시 아파트 지하주차장 붕괴 사고와 관련해 시공사인 GS 건설이 5일 사고가 난 아파트 단지 전체에 대한 전면 재시공 계획을 밝혔다. 재시공 계획 단지는 총 17개동, 1천666가구에 달한다. 6일 촬영한 GS건설의 검단신도시 아파트 건설현장. 지난 4월 사고가 발생한 구역이 가려져 있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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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순살 아파트' 파문으로 불안감이 커지고 있다.

"솔직히 아파트 짓는 나도 불안하다. GS건설에서 사고가 났지만 다른 곳도 다 비슷하다. 요즘 아파트들은 20~30년 전에 지은 아파트들보다 철근을 절반밖에 안 넣는다. 예전에 아파트 10개 동이면 철근이 7천~1만 톤은 들어갔다. 요즘은 철근 강도가 높아졌다면서 굵기도 얇은 걸 쓰고 개수도 덜 넣어서 5000톤도 안 들어간다. 기술적으로 괜찮다고 하는데 이렇게 철근이 많이 빠져도 되는지, 공사하는 사람이 보기에도 불안 불안하다. 우리끼리 '운 나쁘면 무너진다'고 한다.

- 무엇이 문제인가.

"비용 절감이 문제다. 공사 현장 100이면 100 쓰는 방법이 설계 변경이다. 처음에는 두께 22mm 철근 쓰겠다고 허가를 받아놓고 나중에 철근 강도를 높였다는 이유로 19mm나 16mm로 바꿔버리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철근 톤수를 줄이려는 것이다. 철근 시세는 톤당 100만~130만 원 정도다.

또 지금 공사판은 80~90%가 외국인 노동자들이다. 검단 현장은 하루에 일하는 철근공이 70~80명 정도 됐는데, 내국인은 나를 포함해 겨우 11명뿐이었다. 나머지는 전부 베트남 출신이었고, 간혹 중국인이 끼어있는 식이었다. 베트남 노동자 일당은 19만~20만 원, 내국인은 25만~26만 원이다. 단가 차이도 많이 나지만, 베트남 노동자들은 대부분 20대라서 업체들이 선호한다. 반면 내국인 철근공은 대부분 60대다. 일도 힘든데 인간 취급도 안 하니 젊은이들이 안 온다. 이러니 현장에 숙련공 맥이 끊긴다. 숙련공이 없어질수록 부실 시공이 더 늘어날 수밖에 없다. 외국인 노동자들은 입국하자마자 이튿날부터 '깔꾸리(철근결속기)' 들고 나와서 일한다."

- 앞으로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게 하려면 무엇을 해야 하나.

"내려오는 철근 하도급 단가가 20년째 제자리다. 근데 그 사이 인건비는 두 배로 올랐다. 20년 전 철근공 일당은 10만~11만 원이었다. 그러니 비용 절감에 목을 매지 않겠나. 공기 줄이는 수밖에 없는 거다. 철근 적게 넣을 수밖에 없는 거다. 다단계 하도급 중간에 다 빠져나가니 실제 현장만 안 좋아진다. 검단 현장도 내국인들은 저층까지만 하고 단가가 안 맞아 현장에서 다 나갔다. 다른 곳도 똑같다. 언제까지 이럴 거냐."


[관련기사]
"철근공 90%, 값싼 이주 노동자"...'순살 자이', 이게 끝이 아니다 https://omn.kr/24qqd
"기성금 못 받아 신용불량자"... 철근업체 사장들이 본 '순살 아파트' https://omn.kr/24xpv
 
 
태그:#GS건설#철근#LH#순살아파트#국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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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지화 폭탄 던졌다 국정조사 재촉한 원희룡...피한다고 괜찮을까?

  • 분류
    아하~
  • 등록일
    2023/08/01 08:49
  • 수정일
    2023/08/01 08:49
  • 글쓴이
    이필립
  • 응답 RSS

분석도 안 끝난 강상면 “최적안”이라

 

  • 발행 2023-07-31 18:34:20

 고 규정했다가 특혜의혹 키운 국토부

서울-양평 고속도로 기자회견을 지켜보는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 ⓒ뉴스1
서울-양평 고속도로 종점 변경 논란은, 국정조사까지 언급되던 사안은 아니었다. 더불어민주당이 7월 5일 TF를 구성하기로 했을 때도 그랬다.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이 다음 날 “날파리 선동”이라며 사업 백지화를 선언하면서, 양상은 달라졌다. 모든 언론이 해당 이슈에 주목하기 시작했다. 심지어 여권에서도 국정조사가 필요하다는 얘기가 나왔다. 국토교통부는 변경안인 ‘강상면안’이 “최적안”이라며 예비타당성조사를 통과한 안보다 낫다고 주장하는데, 이 같은 주장의 근거가 아직 마련돼 있지 않은 사실이 원 장관의 백지화 선언 후 국회 현안 질의 등을 통해 드러나면서다.

국정조사가 실제 이루어진다면, 공흥지구 건을 포함해 김건희 여사 일가의 부동산 재산 형성 과정 등이 공개적으로 다뤄질 수밖에 없을 것으로 보인다. 그래서인지, “백지화”를 말했던 원 장관은 국정조사 말고 “여야 노선검증위원회”를 꾸려서 사업을 재개하자는 말을 슬쩍 꺼내고 있다. 여당도 “정치공세”라며, 야당의 국정조사 요구를 거부하고 있다. 정부·여당은 이같이 국정조사를 막는데 주력하는 모습이다. 하지만 국정조사를 무조건 미룬다고 정부·여당에 좋기만 할까?

 

 

 

여권에서도 “국정조사” 얘기가 나오는 이유
심상정 “강상면안이 왜 최적? 납득할 근거 없다”
국민의힘 의원조차 “왜 최적안이라 했나?”


국토부가 “최적안”이라고 부르는 ‘강상면’이 정말 “최적안”이 되려면, 국책연구기관인 한국개발연구원(KDI)의 예비타당성조사를 통과한 ‘양서면안’보다 ‘B/C’(비용 대비 편익) 분석에서 높은 점수가 나와야 한다. 그런데, 당초 국토부가 “최적안”이라고 부르는 강상면은 B/C 결과조차 나오지 않은 상황이다. 국토부가 근거조차 마련하지 않은 상황에서 “최적안”이라고 부르며, ‘김건희 일가 특혜의혹’을 키운 셈이다.

 

 

 

현안 질의하는 심상정 정의당 의원 ⓒ국회 인터넷의사중계시스템 중계 화면 갈무리

이에, 지난 26일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현안질의에서 심상정 정의당 의원은 “원안인 양서면은 예타를 했다. B/C 분석 결과가 있다. 그런데 대안 노선으로 제안된 강상면안은 B/C 분석을 안 했다”라며 “그렇다면 강상면안이 왜 ‘최적노선’인가? 국민이 납득할 수 있는 근거가 없다”라고 지적했다.

이를 지켜본 여권 인사인 유승민 전 의원은 31일 KBS 라디오 ‘최경영의 최강시사’에 출연해 “가장 핵심은 ‘아무 근거도 없이’ 예타 원안을 변경안으로 수정했다, 이 사실이 드러난 게 제일 심각한 문제”라고 짚었다. 이어 “국정조사를 해 봐야 한다”며 “국정조사를 한다면 모든 포커스를 거기에 맞춰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민주당은 지난 27일 국회에 국정조사 요구서를 제출했다. 요구서에는 국토부가 2021년 예비타당성조사까지 통과한 ‘서울-양평 고속도로’ 노선의 종점을 2023년 5월 양평군 양서면에서 김건희 여사 일가의 토지가 다수 위치한 강상면으로 돌연 변경하면서 특혜 의혹이 불거졌는데 원 장관은 사업을 독단적으로 백지화하며 사회적 혼란을 초래했으니, 정상적인 사업 추진을 위해 노선 변경의 주체와 경위 등 진상규명이 필요하다는 취지의 내용이 담겼다.

국정조사가 실제 이루어질 경우, 여당 입장에서는 방어하기가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원희룡 장관에게 질문하는 김희국 국민의힘 의원 ⓒ국회 의사중계시스템 영상화면 갈무리

실제, 지난 26일 국회 현안 질의에서도 김희국 국민의힘 의원이 원 장관에게 설명할 기회를 주기 위해 “왜 국토부가 강상면안을 최적안이라는 뉘앙스를 풍겼는지 그 배경을 설명해 보라”고 했지만, 원 장관은 “그건 용역회사에서 그렇게 이름을 달았기에”라며 민간용역회사가 그렇게 봤고 국토부 실무진도 이에 별다른 이의가 없었기 때문이라고 답했다. 이 같은 답변에, 김 의원은 참다못해 “그것은 국토부가 잘못하는 것”이라며 “대안1과 대안2 혹은 예타안과 타당성조사 기관 및 자치단체와의 협의안 이렇게 2개 안이 제시되어야 한다”라고 꼬집었다. 왜 분석도 끝내지 않은 상황에서 국토부가 김건희 여사 일가의 땅이 몰려 있는 강상면안을 “최적안”이라고 규정해 논란을 일으켰느냐는 지적이다.

국정조사가 실제 진행된다면, 이 같은 상황이 반복해서 나올 가능성이 높다. 이런 탓에, 여당은 야당의 국정조사 요구를 “정치공세”라며 반발하고 있다.

윤재옥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31일 최고위원회의 후 기자들과 만나 “지금 국정조사를 하려면 법을 위반한 객관적 사실이 드러나고 여러 가지 국정조사 요건을 갖춰야 된다고 우리 당은 본다”라며 국정조사에 반대한다는 입장을 분명히 했다. 또 민주당의 국정조사 요구에 대해 “빨리 고속도로가 건설돼야 한다는 국민적 기대는 아랑곳하지 않고 정치적 공세를 취해 정부를 흔들고, 총선을 앞두고 선거 전략으로 활용하겠다는 뜻”이라고 주장했다.

다만, 만약 국정조사를 해야 한다면 국정조사를 미룰수록 여권에 불리할 것으로 예측된다. ‘서울-양평 고속도로’ 종점 변경을 주도적으로 추진한 인물이 김건희 일가 비리 의혹 사건인 ‘양평 공흥지구 특혜 의혹 사건’에서 허위공문서 작성 혐의로 송치된 공무원인 것으로 드러나고, 2012년 공모 신청이 이루어지고 2016년 개통된 남양평 IC가 만들어지는 과정에 대해서도 의문이 제기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서, 국정조사를 미룰수록 2024년 총선에 영향을 미치게 될 가능성이 높을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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