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출된 문서는 문서 파일이 아닌 문서를 찍은 사진 파일이다. 문서를 접었다 편 흔적도 역력하다. 해킹이 정보기관에 잠입하여 파일을 빼낸 것이 아니라 내부자가 사진을 찍어 유출한 것으로 보인다.
▲ 유출된 파일에는 최근 우크라이나 전황이 포함되어 있다.
오스틴 미 국방부 장관은 유출된 문서가 2월 28일과 3월 1일 작성된 것이라고 인정했다. 이것으로 ‘위조와 변조’ 가능성을 거론했던 윤석열 정부의 해명은 설 자리를 잃었다.
공교롭게도 유출된 문서에 등장하는 김성한 국가안보실장과 이문희 외교비서관이 대화한 시점도 3월 1일이다. 한국과 미국의 시차를 감안하면 거의 실시간으로 도청 보고서가 작성되어 미 국방부에 전달되었음을 시사한다.
김성한-이문희 대화 재구성
유출된 대화는 미국의 포탄 제공 요청에 대해 김성한 국가안보실장과 이문희 외교비서관이 나눈 것이다. 이해하기 쉽게 대화 형태로 재구성하면 아래와 같다(파일 원문은 기사 하단에 수록했다).
이문희
실장님, 우리가 미국에 포탄을 제공하면 미국이 이것을 우크라이나에 보내지 않겠습니까? 그러면 미국이 최종 사용자가 되어야 한다는 우리의 원칙에 위배가 됩니다. 이미 NSC에서도 이런 우려가 제기된 바 있습니다. NSC에서도 우려가 나왔듯이, 만약 미국 대통령이 우리 대통령한테 전화를 직접 걸어 포탄 제공을 요청하면 더 난감해집니다.
실장님, 우리가 이 문제에 대한 입장을 정확하게 정하지 않은 채 한미 정상 통화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김성한
나도 그게 걱정입니다.
이문희
우크라이나에 살상 무기를 직접 지원하지 않는 원칙을 우리 정부는 공개한 바 있습니다. 그런데 이 원칙을 유지한 상태에서 미국에 포탄을 제공하면 우리는 이 원칙을 위반하게 됩니다. 따라서 이 문제를 풀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우리의 입장을 변경하는 것입니다.
김성한
그 문제는 좀 더 생각해 봐야 합니다.
이문희
임기훈 국방비서관이 포탄 제공에 대한 우리의 입장을 3월 2일까지 확정하기로 약속했다고 합니다. 실장님께서 임 비서관을 만날 필요가 있습니다. 그래서 만약 필요하다면 NSC를 열어서 논의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김성한
그렇게 간단한 문제는 아닙니다. 이게 국내적으로 굉장히 민감한 내용입니다. 예를 들어 우리 대통령의 미국 방문 일정을 발표할 때 우리의 원칙을 변경하는 내용이 함께 거론된다면 우리 국민들이 뭐라고 생각하겠습니까? 국빈 방문과 무기 제공을 맞바꾸었다고 생각하지 않겠습니까?
이문희
그러면 이 일을 어떻게 처리해야 하는 겁니까?
김성한
한 가지 방법이 있습니다. 미국이 원하는 것은 우크라이나에 포탄을 빨리 공급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가 미국에 판매하지 않고 33만 발의 155mm 포탄을 폴란드에 파는 방법이 있지 않겠습니까?
이문희
그것도 하나의 방법이 될 수 있겠습니다. 우리가 폴란드를 최종 사용자로 지정하여 폴란드에 무기를 판매하면 폴란드가 그것을 우크라이나에 보낸다? 폴란드도 동의할 것 같습니다.
▲ 유출 파일에 우리 국가안보실 관계자의 대화 내용이 상세하게 담겨있다.
보이지 않는 실권자 임기훈, 상관 다그치는 이문희, '묘수' 찾는 김성한
위 대화에 3명이 등장한다. 대화를 나눈 당사자인 김성한 실장과 이문희 비서관, 그리고 두 사람의 대화에 등장하는 임기훈 국방비서관이다.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무기 제공’ 3인방이라고 할 수 있다. 다만 김성한보다는 이문희가 더 적극적인 태도를 보인다. 이문희는 다그치듯이 김성한을 몰아붙였다.
김성한은 국내 정치적 파장을 우려했다. 국가안보실에서 대통령의 방미 일정을 발표할 때 무기 제공 원칙을 변경하는 내용을 함께 발표하는 방안이 거론되었던 것 같다. 김성한은 그 방안에 반대 입장을 표명한다. 국빈 방문과 무기 제공이 한미 사이에 거래되었을 것이라는 의심을 살 수 있다는 것이다.
이문희은 김성한의 우유부단한 모습이 답답하다. 이문희는 3월 2일까지 포탄 제공 문제를 결정하기로 확약했다는 임기훈의 말을 김성한에게 상기시킨다(세 명 중 임기훈이 무기 제공에 가장 적극적이라고 할 수 있다).
두 사람이 대화를 나눈 시점이 3월 1일이니, 임기훈이 확약한 날짜는 하루밖에 남지 않았다. 그래서 이문희는 김성한에게 빨리 임기훈을 만나서 3월 2일까지 결정을 반드시 해야 하는 상황인지를 확인한 후, 필요하다면 NSC를 빨리 열어야 한다면서 상관을 다그친다.
코너에 몰린 김성한이 '묘수'를 낸다. 한국의 포탄을 우크라이나에 빨리 보내는 것이 미국의 궁극적 목적이니까, 우리가 굳이 국내 정치적 파장을 불러일으키면서까지 미국에 포탄을 보낼 필요가 있느냐, 폴란드에 직접 보내는 것이 더 좋지 않으냐고 제안한다.
이문희는 반색하며 동의를 표한다. 폴란드를 최종 사용자로 해서 포탄을 폴란드에 보내면 폴란드가 우크라이나로 무기를 보낼 것이라고 좋아한다.
밝혀야 할 진실들
위 대화에는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할 몇 가지 사안이 등장한다. 그리고 바로 그 점이 도청했다는 사실 못지않게 밝혀내야 할 진실이다.
첫째, 이문희는 살상 무기를 제공하지 않는다는 우리 정부의 원칙을 변경해서라도 미국의 포탄 제공 요청에 응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국가안보실은 이 사안을 엄정히 조사하고 이문희 역시 진실을 밝혀야 한다. 외교정책을 다루는 사람이 정부 원칙보다 미국의 요구를 우선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둘째, 두 사람의 대화는 윤석열 대통령의 방미 일정 발표 시 무기 제공 원칙 변경을 동시에 발표하는 방안이 NSC에서 논의되었을 가능성을 시사한다. 즉 미국의 요구를 우리 정부의 외교 원칙에 우선하여 접근하는 NSC 멤버가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비서관인 이문희는 NSC 멤버가 아니다. 대통령, 국무총리, 외교부 장관, 통일부 장관, 국방부 장관, 행정안전부 장관, 국정원장, 비서실장, 안보실장, 안보실 1, 2차장이 NSC 정식 멤버이다. 이 중 누가 그런 주장을 했는지 밝혀져야 한다.
셋째, 임기훈이 3월 2일까지 최종 입장(final stance)을 확정하겠다고 확약한 대상이 누구인지 밝혀져야 한다. 이문희가 상관인 김성한을 다그치는 배경엔 임기훈의 3월 2일 확약 사실이 존재한다. 미국의 3월 1일 두 사람의 대화를 도청하고 즉시 본국에 보고한 것도 이와 관련되어 있다고 봐야 한다. 따라서 임기훈이 확약한 대상은, 혹은 임기훈에게 3.2일까지 확정하라고 요청한 사람은 도청 문제의 진실을 밝히는 데서 ‘키맨’이라고 할 수 있다.
넷째, 임기훈에 대한 즉각적인 조사가 이뤄져야 한다. 김성한과 이문희는 이미 공직에서 물러났지만, 임기훈은 여전히 국방비서관직을 수행하고 있다. 임기훈은 가장 적극적인 무기 제공론자이며, 윗선의 지시를 받아 무기 제공에 관한 집행 책임을 맡고 있는 인물로 보인다. 만약 대화 내용처럼 임기훈이 3월 2일 확약설을 유포시켜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무기 제공’을 독촉한 인물이라는 것이 확인되면 그 역시 공직에서 물러나야 마땅하다.
윤석열 정부, 대여 방식으로 미국에 포탄 제공 결정
4월 12일 동아일보 보도에 따르면, 윤석열 정부와 방위산업 업체는 대여 형식을 빌려 미국에 155mm 포탄 50만 발을 제공하기로 계약했다. 유출된 대화의 33만 발보다 더 많아졌다. 미국은 자신의 포탄 비축분으로 우크라이나에 공급하고, 한국에서 임대한 포탄으로 비축분의 부족을 메운다는 것이다.
계약 시점이 3월이라고 하니, 김성한-이문희 대화가 유출된 이후 계약이 체결되었다. 위 대화 내용에 따르면 계약은 3월 7일 윤석열 대통령의 미국 방문 발표 전후해서 체결되었을 가능성이 높다.
우리 정부의 무기 거래 원칙을 변경하는 것도 여의찮고, 폴란드에 제공하는 것도 여의찮다는 판단을 한 것으로 보인다. 방식은 달라졌지만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무기 제공’은 관철되었다.
국가안보실, NSC 구성원 상당수는 우리가 제공하는 포탄이 결국 우크라이나에 제공될 것임을 알고 있었다. 따라서 ‘대여’는 눈 가리고 아웅이다.
지난해 폴란드에 포탄을 수출할 때, 포탄 표면에 찍혀있는 대한민국이라는 글자를 지우고 보내더라는 이야기도 오래전에 들은 것도 같다.
South Korea Mired in End User Concerns Related to U.S. Push to Obtain Ammunition for Ukraine
Yi Mun-hui, Secretary to the President for Foreign Affairs at South Korea's National Security Office(NSO), on 1 March informed NSO Director Kim Sung-han that the South Korean National Security Council(NSC) was mired in concerns that the U.S. would not be the end user if South Korea were to comply with a U.S. request for ammunition.
The NSC reportedly was also worried that the U.S. President would call South Korean President Yoon Suk-yeol directly.
Yi stressed that South Korea was not prepared to have a call between the heads of state without having a clear position on the issue, adding that South Korea could not violate its policy against supplying lethal aid, so officially changing the policy would be the only option.
Yi urged Kim to solicit the thoughts of Im Ki-hun, Secretary to the President for National Defense at the NSO, since Im pledged to determine a final stance by 2 March. Yi advised that Kim should then discuss the matter further with the NSC if it were still necessary.
Kim expressed his concern over how the issue would be perceived domestically: if the announcement of Yoon's state visit to the U.S. were to coincide with an announcement that South Korea changed its stance on providing lethal aid to Ukraine, the public would think the two had been done as a trade.
Kim then suggested the possibility of selling the 330,000 rounds of 155-mm ammunition to Poland since getting the ammunition to Ukraine quickly was the ultimate goal of the United States.
Yi agreed that it may be possible for Poland to agree to being called the end user and send the ammunition on to Ukraine.
Yi noted that the draft legislation on allowing advanced countries to be named as end users for arms exports was in the process of becoming law, but South Korea would need to verify what Poland would do.
북한이 13일 고체연료를 사용한 대륙간탄도미사일(ICBM)로 추정되는 미사일 1발을 쏘았다. 14일 아침신문들은 고체연료 미사일은 포착이 어려워 정부가 강조해온 ‘3축 방어체계’가 무력화될 위험이 커졌다고 보도했다.
합동참모본부는 13일 “오전 7시23분쯤 평양 인근에서 동해상으로 발사한 탄도미사일 1발을 포착했다”며 “미사일은 고각으로 발사돼 약 1000㎞ 비행 후 동해상에 탄착했다”고 밝혔다. 미사일은 평양 동남쪽 인근에서 일본 홋카이도 방향으로 날아갔다. 합참은 이번 미사일은 북한이 과거 열병식에서 공개했던 여러 신형 무기체계 중 하나일 가능성이 크다고 설명했다.
▲14일 아침신문 1면 갈무리
▲14일 경향신문
신문들은 북한이 고체연료를 사용한 ICBM을 처음 발사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전했다. 북한은 지난 2월 인민군 창건 75주년 열병식에서 신형 고체연료 ICBM을 공개했다. 고체연료는 액체연료와 달리 운반과 주입 과정을 생략할 수 있어 즉각 발사할 수 있다.
신문들은 고체연료 미사일이 한국형 킬체인 가동을 무력화할 수 있다고 전했다. 경향신문은 “(고체연료 미사일은) 액체연료를 쓰는 미사일보다 작은 크기로 설계할 수 있다. 북한의 핵·미사일 공격 징후를 탐지해 도발 원점을 선제 타격한다는 ‘킬체인’을 비롯해 ‘3축체계’를 구성하는 한국형 미사일방어체계(KAMD), 대량응징보복(KMPR)에 가용할 수 있는 시간은 더 줄어들 수 밖에 없다”고 했다.
▲14일 국민일보
국민일보는 “(고체연교 미사일은) 은밀하고 기습적인 발사로 한·미 탐지망에 노출되는 시간을 최소화하면서 목표물을 타격할 수 있는 것이다. 따라서 북한이 고체연료 탄도미사일을 전력화한다면 한·미의 대응은 더욱 어려워질 전망”이라고 했다.
동아일보는 “핵 소형화와 함께 고체연료 ICBM은 북한 핵무력 완성의 ‘최종 관문’으로 꼽힌다”며 “북한의 ICBM 위협이 완전히 새 국면에 들어섰다는 의미”라고 했다. 세계일보는 “다만 통상 사거리가 5500㎞ 이상이 되어야 ICBM으로 분류하는데 이번 미사일은 그보다 사거리가 짧은 것으로 파악돼 고체연료 ICBM 기술을 완성됐다고 보긴 어렵다는 분석도 나온다”고 했다.
▲14일 동아일보
▲14일 세계일보
이번 도발은 북한이 남북 공동연락사무소와 군 통신선 등 연락 채널을 일방적으로 끊은 지 6일 만이다. 북한이 탄도미사일을 발사한 이날은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 추대 11주년이다. 지난달 27일 단거리탄도미사일을 발사한 뒤 17일 만이자 올해 9번째 탄도미사일 발사다.
신문들은 이번 도발에 새 무기체계를 시험하려는 목적 외에도 핵무력 과시 의도가 있다고 분석했다. 경향신문은 “남북 통신선 단절 이후 연쇄 도발의 시작일 수 있다”며 “지난 7일부터 남북공동연락사무소와 서·동해 군 통신선을 통한 정기 통화에 응하지 않고 있다. 이달에는 김일성 주석 생일인 태양절(15일), 조선인민혁명군 창건 91주년(25일) 등이 몰려 있다”고 했다.
앞서 김정은 위원장은 지난 10일 당 중앙군사위원회 제8기 제6차 확대회의를 주재하고 “우리의 전쟁억제력을 더욱 실용적으로, 공세적으로 확대하고 효과적으로 운용해야 할 필요성”을 강조했다고 조선중앙통신이 11일 보도했다.
한편 일본 정부는 북한이 동해상으로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을 발사하자 긴급 전국 경보 시스템인 ‘J-얼러트’를 발령해 홋카이도 주민들에게 건물 안이나 지하로 대피하라고 안내했다. 20여분 뒤 ‘낙하 가능성이 사라졌다’며 경보를 정정했다. 홋카이도 주민들은 출근 중 휴대전화로 피란 경보를 받고 지하상가 등으로 일시 대피했다. 일본 정부 관계자는 북한 미사일이 일본 배타적경제수역(EEZ) 밖에 떨어진 것으로 보인다고 전했다. 경향신문과 동아일보가 이를 전했다.
▲14일 동아일보
신문들은 관련 사설을 내고 정부의 안보 태세 강화를 주문했다. 북한 대응법에 대한 주문은 갈렸다. 한국일보는 사설을 내고 “군 당국이 고체연료 사용에 무게를 실으면서 상황은 어느 때보다 엄중해졌다. 미국 백악관과 인도·태평양사령부가 심야 규탄성명을 낸 것도 위협의 심각성을 보여준다”며 “윤석열 대통령은 이달 말 한미 정상회담에서 확장억제 실행력을 비롯해 확고한 대북 공조 대응책을 확인해야 할 것이다. 북한은 혹여 7차 핵실험이나 ICBM 정상각도 발사같이 국제사회가 더는 용인하기 힘든 오판을 하지 않기 바란다”고 했다.
한겨레와 경향신문은 외교적 돌파구와 정세 관리를 강조했다. 한겨레는 “북한의 이런 움직임은 동아시아에서 강 대 강 군비 경쟁과 위태로운 긴장 고조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는 점에서 극히 유감스럽다”며 “미국과 중국이 북핵 해결에 공조하던 시대는 가고, 중국은 러시아와 함께 ‘한-미 군사훈련의 부정적 영향’을 비판하며 북한 핵을 두둔하고 있다”고 했다. 이어 “정부는 안보 태세 강화와 함께, 달라진 국제 정세 속에서 외교적 돌파구를 만들어낼 전략을 마련해야 한다”고 했다.
▲14일 한겨레
경향신문은 ”한·미의 안보 태세는 강화돼야 하지만, 무엇보다 한반도에서 우발적 충돌이 일어나지 않도록 정세 관리에 노력해야 한다. 남북 모두 최고의 선과 출구는 힘이 아니라 대화임을 잊어선 안 된다”고 했다.
반면 동아일보는 “한미가 공동으로 핵무기 운용을 기획하고 실행하는 견고한 상시 억제체제를 갖춰야 한다. 그래야 무모한 핵 도발은 김정은 정권의 종말을 부를 것이라는 엄중한 경고도 제대로 먹힐 것”이라고 했다.
논란 부른 국가안보실 차장 기밀문건 설명 “언론에 묻지말라니”
미국 기밀문건 유출에 따른 대통령실 도·감청 의혹에 대한 김태효 국가안보실 1차장의 대응이 논란을 낳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의 26일 국빈 방문 일정 협의차 11일(현지시간) 방미한 김 차장은 현지 공항에서 취재진이 유출 문건에 나오는 안보실 관계자 대화 내용의 진위를 묻자 “구체적으로 묻지 말라”며 답변을 거부했다. 이어 “같은 주제로 물어보면 떠나겠다”며 관련 질문을 가로막았다.
김 차장이 전날과 뒤바뀐 입장을 내놓은 점도 논란을 키웠다. 그는 전날 출국길 “상당수 정보가 위조됐다는 데에 한미의 평가가 일치한다”고 말했지만, 이날은 “미국이 어떤 악의를 가지고 (도·감청을) 했다는 정황은 발견되지 않았다”고 했다. 미국은 국방부를 비롯한 관계당국이 기밀 유출 사실을 인정했고, 폴란드 총리가 어제 미 언론 인터뷰에서 우크라이나 포탄 제공에 대해 한국과 논의해왔다고 말한 것과는 동떨어진 대응이다.
한편 동아일보는 미국 정보기관의 동맹국 감청 의혹을 둘러싼 한미 양국의 발표에 확연한 온도차가 감지되면서 “한국이 미국의 설명 취지를 제대로 이해한 게 맞느냐”는 우려가 여권에서 나오고 있다고 전했다.
▲14일 동아일보
한국일보는 관련해 사설 <안보실 차장, 언론에 화내며 묻지마식 동맹 두둔해서야>를 냈다. 한국일보는 “취재진에 유감을 간접 표명했다지만, 그가 보인 고압적 말투와 태도는 국민 관심사에 성실히 응해야 할 공직자의 자세와 거리가 멀었다”고 했다.
한국일보는 “국가 간 정보전이 동맹도 봐주지 않을 만큼 치열하다는 건 공공연한 사실이나, 그것이 노출되면 해당국에 경위를 묻고 재발 방지를 요구하는 게 주권국으로서 합당하다”며 “김 차장이 이번 방미 기간에 이행해야 할 중요한 숙제 중 하나”라고 했다.
▲14일 한국일보
반면 조선일보는 재발 방지를 요구하지 말고 내부를 점검해야 한다는 논조의 사설을 이어가고 있다. 조선일보는 “(미국이) 감청도 사실이란 것으로 여러 논란에 종지부를 찍은 것이다. 빌 번스 미 중앙정보국 국장도 같은 날 이를 인정했다”며 “김 차장이 밝힌 것과 상반된다”고 했다.
조선일보는 “미국 정보기관의 전 세계 감청은 공공연한 비밀로 새로운 문제가 아니다. 미국만이 아니라 능력을 가진 각국의 정보기관이 다 하고 있다. 한국도 한다. 이런 문제는 냉정하게 대처하면서 내부적으로 우리 감청, 방청 능력을 다시 점검하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모든 일을 정쟁화하는 민주당이 문제”라고 했다.
한편 조선일보는 이 사건을 한국 정부의 미숙한 내부 소통 문제로 규정했다. “정부 외교안보팀은 이런 국내 정치 사정까지 고려해 치밀하게 대처해야 한다. 그러나 목전의 한미 정상회담과 미 의회 상·하원 합동 연설에 흠이 될까 봐 마치 미국의 감청이 사실이 아닌 것처럼 강변하다가 망신을 당했다”고 했다. 이어 “정상회담에서 일본 측이 독도 문제를 언급한 것처럼 일본에서 보도됐는데 외교부 장관은 ‘정상회담 내용을 구체적으로 말할 수 없다’고 마치 무언가 있었던 것처럼 말해 논란을 키웠다”고 했다.
▲14일 조선일보
한편 미 언론 보도를 통해서는 도청 정황이 뚜렷해졌다. 경향신문은 “문건 유출 용의자가 특정되고, 분량 역시 당초 알려진 100여장이 아니라 최소 300장에 달한다는 미 언론 보도가 나오는 등 도청 정황이 뚜렷해지면서 미국에 대한 비판 여론이 이어지고 있다”고 했다. 미국 정부는 국가안보를 위해 도청을 포기할 수 없다고 했다. 경향신문은 존 커비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 전략소통조정관이 12일 폭스뉴스 인터뷰에서 “국가안보를 지키는 데 필요한 일”이라며 “앞으로도 계속할 것”이라고 말했다고 전했다.
▲14일 경향신문
미국 기밀문서를 대량 유출한 인물은 미군 부대에서 일하는 20대 초중반 남성이라고 미국 워싱턴 포스트가 보도했다. 그는 WP가 인터뷰한 채팅앱 디스코드 대화채널 회원 2명에 따르면 해당 채널의 리더 ‘OG’는 지난해 말부터 기밀 문서들을 공유해왔고 종종 극우 성향을 과시했으며 인종차별적이고 반유대주의 성향을 드러내기도 했다. 워싱턴포스트는 OG와 비슷한 나이의 군인과 공무원 수천 명이 기민문서에 접근할 수 있다고 전했다. 국민일보, 동아일보, 서울신문, 세계일보, 조선일보, 한겨레, 한국일보가 이를 보도했다.
시민단체가 검찰총장과 서울중앙지검장을 상대로 특수활동비·특정업무경비 지출 기록을 공개하라며 낸 소송에서 최종 승소했다. 이에 따라 윤석열 대통령이 검찰 공직에 있을 때 특활비 등을 지출한 내역도 공개될 것으로 보인다.
대법원 2부(주심 이동원 대법관)는 13일 시민단체 '세금도둑잡아라' 하승수 공동대표가 검찰총장·서울중앙지검장을 상대로 낸 정보공개 거부 처분 취소 소송에서 원고 일부 승소로 판결한 원심을 심리불속행 기각으로 확정했다.
심리불속행 기각은 원심 판결에 중대한 법령 위반 등 특별한 사유가 없으면 대법원이 별도의 결정 이유를 설명하지 않은 채 상고를 기각하고 원심을 그대로 확정하는 제도다.
이번 대법원 판결에 따라 대검찰청과 서울중앙지검은 2017년 1월1일부터 2019년 9월30일까지 지출한 특수활동비와 특정업무경비 집행 정보와 증빙서류, 업무추진비 지출 증빙서류를 공개해야 한다.
앞서 하 대표는 대검찰청과 서울중앙지검이 지출한 특수활동비·특정업무경비·업무추진비 집행 내용 등의 정보공개를 청구했다가 업무추진비를 제외하고 '공개 거부'를 통보받자 2019년 소송을 제기했다. 당시 하 대표가 공개를 요구한 기간 검찰총장은 김수남·문무일·윤석열 총장이었고, 서울중앙지검장은 이영렬·윤석열·배성범 지검장이었다.
특활비는 기밀 유지가 필요한 수사나 정보수집, 이에 준하는 국정 수행에 직접 드는 경비로, 대통령실·국회·국가정보원·검찰 등에 할당된다. 그러나 다른 예산과 달리 지출에 대한 증빙이 필요하지 않다. 불투명하게 사용되다보니 특활비가 '쌈짓돈'으로 사용되고 있다는 정황과 이에 대한 비판이 늘 뒤따랐다.
1심은 대검찰청의 특활비·특정업무경비 등 지출 기록을 모두 공개하고 서울중앙지검의 지출 기록은 일부만 공개하도록 판결했는데, 2심은 공개 범위를 일부 변경했다. 특활비의 경우 대검찰청·서울중앙지검 모두 집행일자, 집행금액과 이에 대한 지출증빙서류는 공개하라는 취지이다. 또 업무추진비의 경우 대검찰청은 모든 집행 건에 대한 지출증빙서류를 공개하고, 서울중앙지검은 지출증빙서류 중 제3자의 사생활의 비밀 또는 자유를 침해할 우려가 있는 것을 제외하고 공개하라는 것이었다.
검찰은 이에 불복해 상고했지만, 대법원은 하 대표 측의 손을 들어줬다. 하 대표는 자신의 페이스북 글을 통해 "이로써 판결이 최종 확정됐다"며 "이제 자료를 공개받는 것만 남았다"고 기대감을 표했다.
"공무원 조직을 이렇게 몰아붙이면 공무원들은 일을 못합니다. 그러면 행정 수혜대상인 국민들만 불행해집니다."
김창룡 방송통신위원회(방통위) 전 상임위원(차관급)은 방통위를 겨냥한 검찰의 수사, 윤석열 정부의 불통 행보에 깊은 우려를 나타냈다. 그는 현재 윤 정부가 보이고 있는 행태들이 "민주주의 사회에 맞지 않다"라며 "대한민국의 위기"라고 진단했다.
지난 5일 임기를 마친 김 전 상임위원은 12일 <오마이뉴스>와 퇴임 후 첫 인터뷰를 진행했다. 이날 인터뷰에서 그는 검찰이 몇 달 동안 강도 높게 진행하고 있는 방통위의 TV조선 재승인 심사 관련 수사에 대해 "무리한 수사다. 정치적 목적이 있다고 의심된다"고 강하게 비판했다.
"한상혁 혐의에서 빠진 '점수 수정'... 왜 빠졌는지 언론 물어야"
검찰은 지난 2020년 방통위의 TV조선 재승인 심사 과정에서 의도적인 감점이 있었다고 의심하면서 몇 달째 수사를 이어오고 있다. 검찰은 한상혁 방통위원장에 대해 구속영장까지 청구하는 강수를 뒀지만, 법원은 이를 기각했다(관련기사 : 한상혁 구속영장 기각... "앞으로 무고함 소명, 직원들 억울함 풀 것" https://omn.kr/23ar4). 당시 재승인 심사 업무를 맡았던 방통위 과장과 국장, 민간인인 심사위원장은 현재 구속 기소된 상태다.
김 전 상임위원은 "한상혁 위원장 영장 청구 내용을 보면 (검찰이 주장한 핵심 혐의인) '점수 수정' 혐의는 빠져 있다"라며 "영장에서 왜 빠졌는지 언론들이 물어야 할 것 아닌가"라고 분통을 터트렸다.
그러면서 김 전 상임위원은 검찰의 무리한 수사는 공무원 조직을 마비시킨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한 조직을 이렇게 파도처럼 한꺼번에 몰아붙이면 관료들이 일을 못한다"며 "공무원들을 위축시키면 그 수혜대상인 국민들이나 기업들도 덩달아 피해를 볼 수밖에 없다. 이렇게 하면 정부는 절대로 성공하지 못한다"고 단언했다.
그는 지난 4일 공개한 퇴임사에서도 "도주 우려도 없고, 증거 인멸도 하지 않는 공무원들을 허접한 논리로 구속까지 시키는 데 대해 분노와 실망을 금할 수 없다"라며 "억울하게 구속된 공무원, 심사위원장 교수는 당장 풀려나야 하고, 이들의 명예는 회복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 전 상임위원은 검찰 수사로 향후 방통위의 방송사 승인 심사가 제대로 되지 않을 것이란 우려도 내비쳤다. 그는 "(검찰 수사 이후) 재승인 심사를 위한 심사위원 구성도 쉽지가 않다"라며 "괜히 심사 갔다가 검찰 수사를 받을 수 있고, 자칫하면 저렇게 구속까지 될 수 있을 것이란 인식이 퍼져있다"라고 실무상 겪는 어려움을 토로했다.
▲ 김창룡 방통위 전 상임위원은 대통령실과 법무부 등이 언론사를 상대로 고소·고발전을 벌이는 일은 "민주주의 사회에선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꼬집었다.
윤석열 정부에 대한 전반적인 평가를 묻자 김 전 상임위원은 상기된 목소리로 "민주주의 위기"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그는 윤 대통령이 소통 없는 일방통행을 하고 있다고 진단하면서 대통령실과 법무부 등이 언론사를 상대로 고소·고발전을 벌이는 일은 "민주주의 사회에선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비판했다. 최근 대통령이 횟집 앞에서 도열한 의원들과 인사를 나누는 장면이 노출된 것을 언급하면서 "대통령의 흐트러진 모습이 노출된다는 것은 대한민국이 망가지고 있다는 신호"라고 한탄했다.
김 전 상임위원은 국민일보 기자를 거쳐 인제대 교수를 지낸 언론학자다. 지난 2019년 11월 고삼석 전 상임위원의 후임으로 방통위 상임위원에 선임돼 잔여 임기를 채웠고, 문재인 대통령 추천으로 2020년 3월 연임돼 3년 임기를 채우고 퇴임했다.
"직원들 감사 중 눈물 흘리기도...검찰 수사로 방통위 신뢰 무너져"
다음은 김 전 상임위원과 나눈 일문일답이다.
- 3년간의 방통위 상임위원 임기를 마치고 지난 5일 퇴임했다. 소감은?
"공직은 항상 책임과 엄격함, 공정함을 요구하는 자리라서 압박감이 컸다. 막판에 방통위에 대한 감사원 감사와 국무총리실 감찰, 그리고 검찰 수사 이런 게 한꺼번에 덮치다 보니까 정신적으로 많이 힘들기도 했다."
- 퇴임사에서 방통위에 대한 검찰의 종편 재승인 심사 관련 수사에 대해 "무리한 수사"라고 비판했다. 그렇게 비판한 이유는.
"공무원들은 대통령이 누구든 적극 행정을 통해서 국민과 국가를 위해 일하도록 임무가 주어져 있다. 감사원이 장기간 감사를 하고 포렌식까지 해서 검찰 수사를 의뢰하고, 그것도 부족했는지 총리실이 감찰을 했다. 한 조직을 이렇게 파도처럼 한꺼번에 몰아붙이면 관료들이 일을 못한다. 공무원들을 위축시키면 공무 수행의 수혜를 받아야할 대상인 국민들이나 기업들도 덩달아 피해를 볼 수밖에 없다. 물론 행정기관이 잘못했으면 벌을 받아야한다. 하지만 중범죄 혐의가 드러났으면 모를까, 그런 상황도 아닌데 이렇게 하면 그런 정부는 절대로 성공하지 못한다."
- 방통위 직원들도 많은 어려움을 겪었다고 들었다.
"감사원 감사 때는 아예 방통위 안에 사무실을 차려서 직원들을 오라 가라 하니까 직원들이 본업에 충실할 수 없었다. 감사를 받으면서 눈물을 흘렸다는 직원도 있었다. 지금 구속된 공무원들 중 한 명은 방통위 직원들이 3년 연속 최우수 직원으로 뽑은 과장이다. 그리고 국장은 올해 정년 퇴임 예정이었다. 종편 심사에 (부당하게) 관여할 동기가 전혀 없는 사람들이다. 그리고 행정직 공무원들의 경우 윗선이 부당한 지시를 하면 그대로 따르지 않는다. 검찰이 이렇게 몰아붙이면서 방통위에 대한 국민들의 신뢰는 무너졌다. 앞으로 방통위가 방송 심사나 승인을 해야 하는데 무슨 권위가 설 수 있겠나. 이는 국가적 손실이다."
- 검찰이 한상혁 방통위원장에 대해 구속영장을 청구한 혐의를 보면, '점수 수정'에 관여했다는 부분은 빠져 있다. 'TV조선에 대한 재승인 점수를 의도적으로 수정했다'고 검찰이 의심하는 중점 혐의가 빠진 것인데 어떻게 보나?
"지금까지 진행 상황을 보면 검찰은 엄청난 큰 범죄가 있는 것처럼 난리를 쳤다. 그런데 정작 위원장은 구속되지도 않았고 위원장 영장 청구 내용을 보면 '점수 수정' 혐의는 빠져 있다. 정말 의도가 있었다면 2020년 당시 TV조선 심사에서 재승인 기준 이하(650점)로 점수를 줬어야 맞다. 하지만 TV조선은 재승인 기준 이상의 점수를 받았다. 당시 TV조선은 재승인을 받았다는 것 자체에 안도하는 분위기였다. 뒤늦게 이를 문제 삼아 몰아붙이는 것은 다른 정치적 의도가 있다고 의심된다.
언론 보도도 문제다. '점수 조작'이라고 떠들었던 언론들은 다 어디 있나. 검찰은 '점수 수정'을 주요 범죄 혐의로 보고 수사했는데, 정작 한상혁 위원장의 구속 영장에는 왜 그 혐의가 빠졌는지 언론들이 물어야 할 것 아닌가. 일부 언론들이 '점수 조작'이라고 검찰 입장을 일방적으로 대변하는 말을 쓰는데, 혐의가 확정되지 않은 상황에선 중립적 단어로 '점수 변경' 내지 '점수 수정이라고 해야 한다."
- 지난해 검찰 수사가 본격화된 이후 TV조선을 비롯해, 올해 재승인 심사를 받은 방송사들이 유례없이 높은 점수를 받으며 무난하게 재승인 심사를 통과했다. 사실상 재승인 심사 제도가 무의미해졌다는 평가도 있다.
"이제 재승인 심사를 위한 심사위원 구성도 쉽지가 않다. 괜히 심사를 했다가 검찰 수사를 받을 수도 있고, 자칫하면 저렇게 구속까지 될 수 있을 것이란 인식이 퍼져있다. 지난번 심사 때도 심사위원 구성이 정말 쉽지 않았다. 위축 효과가 있을 수밖에 없다. 점수를 짜게 줬다가 문제가 생길까 해서 점수를 올려주는 이런 풍조가 조성되지는 않을까 우려된다."
"YTN 매각, 정부 비판 미디어 손보겠다는 의도"
- YTN의 지분을 가진 공기업들이 지분을 매각하려는 절차가 진행 중이다. KBS 수신료 분리 징수도 추진될 것으로 보이는데 어떻게 보나?
"현 정부를 비판하는 미디어를 찍어서 손보겠다는 의도로 의심한다. YTN 최대주주지분 매각은 방통위 심사를 거쳐한다. 그러니까 지금 검찰 수사도 방통위 상임위원 구성을 인위적으로 손보려 했던 것은 아닐까 의심이 들 수밖에 없다. 정치권 일각에서는 방송사를 이대로 두고는 내년 총선을 치를 수 없다는 그런 얘기들도 나온다. 때문에 방송사 임원진을 바꾸는 작업도 하려는 게 아니냐는 의심이 든다. YTN을 보수, 경제 언론들이 인수할 것이란 얘기가 들리는데 뉴스 보도 전문 매체가 그렇게 인수되면 우리 사회 전체로 봐서도 굉장히 건강하지 못한 방향이다. 그런 일이 실제로 발생하게 되면 반대에 나설 것이다."
"윤석열 정부의 미디어 정책이라는 게 과연 존재하는지 되묻고 싶다. 미디어 정책이라는 걸 지금까지 들어본 적이 없다."
- 그렇다면 질문을 바꿔서, 미디어를 대하는 윤석열 정부의 방식은 어떤가.
"매우 문제가 많다. MBC의 대통령 비속어 보도 사건을 볼 때, MBC만 딱 찍어서 마치 거짓말하는 혐오 집단으로 몰아붙였다. 권력이나 대통령을 감시 견제하는 역할은 용납하지 않겠다는 태도다. 미디어는 대통령과 국민을 이어주는 역할을 한다. 그런데 지금 정부와 미디어가 소통이 되고 있나. 소통을 하겠다고 용산으로 옮기면서 제일 먼저 내세운 게 출근길문답(도어스테핑)이었는데, 지금은 사라졌다. 국민들에게 정책 설명이나 홍보도 안 하고 있다. 최근 법무부 장관 등 고위공직자들이 직접 언론사를 상대로 소송까지 하는 것은 그야말로 민주주의 사회에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다."
- 윤석열 대통령은 언론 대응 논리로 '가짜뉴스'를 자주 이야기한다. '가짜뉴스'를 연구한 전문가 입장에서 어떻게 보나?
"정치인들은 '가짜뉴스'란 용어를 자기 편의적으로 쓴다. 용어 자체를 남용 내지 오용한다. 자기에게 불리하거나 마음에 들지 않으면 가짜뉴스라고 하지 않나. 대통령이 첫 번째로 생각해야 하는 건 책임감이다. 대통령의 결정은 우리 사회에 큰 영향을 미친다. 대통령이 이런 책임을 잘 수행하느냐를 언론이 감시, 견제한다. 그런데 지금은 언론의 지적과 견제를 대통령이 받아들이고 해명하고 토론하는 과정이 사라졌다. 일방적으로 가짜뉴스라고 몰아붙이고, 대통령이 하는 말만 믿으라고 하는 거 아닌가. 내 멋대로 하겠다는 건 고위 공직자의 자세가 아니다."
"대통령의 실패는 국민의 실패"
- 다수 언론들이 윤석열 정부를 비판하고 견제하는 역할을 제대로 못하고 있다는 지적도 있다. 언론학자의 관점에서 이 상황을 어떻게 진단하나?
"공감한다. 언론이 기능을 제대로 하려면 대통령과의 소통을 요구해야 한다. 대통령이 여론을 반영하지 않고 여론을 듣지 않는 건 독재자의 행태다. 그런데 정작 주요 미디어들이 대통령의 이런 문제들을 제대로 지적하지 않고 보도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특히 외교·안보 문제에 있어서 국민이 알아야 할 소식들을 외국 언론을 통해서 안다는 건 한국 언론이 실패했다는 증거다."
-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대통령이 국민과 소통을 무시하는 것은 민주주의 자체를 부정하는 일이다. 지지율 하락을 위험신호로 받아들여야 한다. 단순히 콘크리트 지지층만 끌고 가겠다는 것은 정말 자살행위라고 생각한다. 대통령의 실패는 국민의 실패다. 대통령이 장관들 데리고 술을 마시고 의원들이 거기에 도열을 하고, 이런 대통령의 흐트러진 모습이 공개된다는 건 대한민국이 망가지고 있다는 신호다. 너무 안타깝다."
북한이 고체연료를 사용한 신형 대륙간탄도미사일 '화성포-18'형을 처음으로 시험발사했다. [사진-노동신문 갈무리]
북한이 '고체연료 다단계 엔진'을 사용한 신형 대륙간탄도미사일 '화성포-18'형을 처음으로 시험발사했다고 밝혔다.
[조선중앙통신]은 14일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현지지도한 가운데 13일 "공화국전략무력의 전망적인 핵심주력수단으로, 중대한 전쟁억제력의 사명을 수행하게 될 새 형의 대륙간탄도미싸일 《화성포-18》형 시험발사가 단행되였다"고 보도했다.
"시험발사는 대출력 고체연료 다계단발동기들의 성능과 단분리 기술, 각이한 기능성조종체계들의 믿음성을 확인하고 새로운 전략무기체계의 군사적효용성을 평가하는데 목적을 두었"으며, "주변국가들의 안전과 령내비행중 다계단분리의 안전성을 고려하여 1계단은 표준탄도비행방식으로, 2,3계단은 고각방식으로 설정하고 시간지연분리시동방식으로 미싸일의 최대속도를 제한하면서 무기체계의 각 계통별 기술적특성들을 확증하는 방법으로 진행하였다" 알렸다.
이번에 시험발사한 '화성포-18'형은 고체연료 엔진을 사용한 첫번째 ICBM.
합동참모본부(합참)은 북한이 전날 오전 7시 23분경 평양 인근에서 동해상으로 탄도미사일을 고각으로 발사해 약 1,000km 비행 후 동해상에 탄착했다고 발표했다.
'화성포-18'형 시험발사 장면 [사진-노동신문 갈무리]
단분리 과정 [사진-노동신문 갈무리]
'화성포-18' 형에서 찍은 지구 [사진-노동신문 갈무리]
통신에 따르면, 김 위원장은 시험발사 현장에서 준비공정을 직접 지켜본 뒤 시험발사를 승인했으며, 장창하 대장이 시험발사 임무를 맡은 '미사일총국 제2붉은기중대'에 발사명령을 내렸다.
통신은 "분리된 1계단은 함경남도 금야군 호도반도 앞 10km 해상에, 2계단은 함경북도 어랑군 동쪽 335km 해상에 안전하게 란탄되었"으며, "시험발사를 통하여 신형전략무기체계의 모든 정수들이 설계상요구에 정확히 도달되였으며 신형대륙간탄도미싸일이 보다 군사적효용성이 큰 위력적인 전략적공격수단으로 된다는 담보와 신뢰를 가질 수 있게 되였다"고 발사결과를 평가했다.
'화성포-18'형 시험발사 준비 [사진-노동신문 갈무리]
'화성포-18'형 외형 [사진-노동신문 갈무리]
발사대기 중인 화성포-18'형 [사진-노동신문 갈무리]
《화성포-18》형에 대해서는 "국가핵무력건설 전망계획에 따라 공화국 전략무력이 장비하고 운용하게 될 신형 대륙간탄도미싸일"이라며,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을 방어하고 침략을 억제하며 국가의 안전을 수호하는데서 가장 강위력한 핵심주력수단으로서 중대한 자기의 사명과 임무를 맡아 수행하게 된다"고 소개했다.
김 위원장은 시험발사를 지도하면서 '경이적인 성과에 대만족'을 표시하면서 "날로 악화되고 있는 조선반도안전환경과 전망적인 군사적위협들에 대처하여 보다 발전적이고 선진적이며 강위력한 무기체계 개발을 지속저긍로 빠르게 다그치는 것은 우리 당과 공화국정부의 일관된 립장"이라며 "새형의 대륙간탄도미싸일 《화성포-18》형 개발은 우리의 전략적억제력 구성부분을 크게 개편시킬 것이며 핵반격태세의 효용성을 급진전시키고 공세적인 군사전략의 실용성을 변형시키게 될 것"이라고 이번 시험발사의 의의에 대해 언급했다.
또 '핵에는 핵으로, 정면대결에는 정면대결로 대답할 것'이라는 '대적 대응투쟁방침'을 재차 강조하고는 "우리 당과 공화국정부는 고질적인 침략적 정책과 위협적인 군사적 준동으로 조선반도의 환경을 위태하게 하고 우리 인민의 평화적인 삶과 사회주의 건설투쟁을 방해하고있는 적들에게 더욱 분명한 안보위기를 체감시키고 부질없는 사고와 망동을 단념할 때까지 시종 치명적이며 공세적인 대응을 가하여 극도의 불안과 공포에 시달히게 할 것이며 반드시 불가극복의 위협에 직면하게 만들어 잘못된 저들의 선택에 대하여 후회하고 절망에 빠지게 할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김 위원장은 '화성포-18'형 시험발사장에도 '김주애'로 알려진 딸을 동행했다. [사진-노동신문 갈무리]
김 위원장의 '화성포-18'형 시험발사 현지지도에 부인 리설주 여사와 김여정 당 부부장도 함께 했다. 조용원 당 조직비서, 리일환 당비서의 모습도 눈에 띈다. [사진-노동신문 갈무리]
통신은 "새로운 전략무기체계에서의 성공은 공화국핵전략무력과 그 발전의 직접적 담당자인 우리 미싸일과학기술집단이 우리 당의 전략적기도를 관철함에 항상 철저하고 완벽하며 그 언제든 자기의 중대한 사명을 결행할 수 있게 준비되여 가고 있음을 실증해준 계기로 된다"고 말했다.
지난 3월에 미국의 실리콘밸리은행, 스위스의 크레디스위스 은행과 같은 몇몇 금융기관들이 위기에 빠지자 이 금융기관들의 주주, 채권자, 고액 예금자, 그리고 영향력 있는 금융시장 분석가들은 즉각적인 국가개입을 요청했다. 실제로 정부들은 빠른 속도로 위기에 빠진 금융기관 지원에 나섰다. 정부들은 법으로 정해진 예금보호 한도와 상관없이 예금 전액을 보호해 주겠다고 선언했고, 어려운 금융기관을 지원할 대규모의 긴급 장기대출 프로그램을 마련했다. 또한 정부들은 위기에 빠진 금융기관들뿐만 아니라 비슷한 처지에 있는 다른 금융기관들에 대해서까지 지원을 늘리겠다는 의지도 밝혔다. 파산한 금융기관들은 금융당국 주도로 다른 금융기관에 싼값으로 넘겨졌는데, 그 손실분은 결국 국민 세금으로 메우게 될 터이다.
위기에 빠진 금융기관에 대한 이러한 국가 개입은 새삼 많은 논란을 일으켰다. 무엇보다 또다시 납세자의 세금으로 금융기관을 구제해야 한다는 사실이 논란이었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여러 나라들은 금융규제를 대폭 강화하는 내용의 법안을 제정했다. 예컨대 미국은 2010년에 다양한 금융규제 내용을 담은 도드-프랭크 법안을 제정했는데, 무려 16개 장과 541개의 조문으로 이뤄진 2,300여 페이지 분량이었다. 이 법안의 핵심 내용은 덩치가 큰 금융기관이기 때문에 구제해 주어야 한다는, 이른바 대마불사 문제를 해결함으로써 앞으로 금융기관 구제에 납세자의 세금이 들어가지 않도록 하겠다는 것이었다. 세금으로 금융기관을 구제하는 사태를 막기 위한 노력은 금융안정위원회(FSB)와 같은 국제협력 기구를 통해서도 이뤄졌다. 금융안정위원회는 2011년에 대마불사 문제 해소를 위해 각국이 따라야 할 정책 방향을 제시했다.
그럼에도 이번에 파산한 실리콘밸리은행 처리 과정은 여전히 납세자의 세금이 부실 금융기관 구제에 들어가고 있음을 보여준다. 실리콘밸리은행의 2022년 대차대조표를 보면 돈이 들어온 쪽은 예금이 1,731억 달러, 차입금 224억 달러, 자기자본 163억 달러로 나타난다. 돈이 운용되는 쪽은 대출이 740억 달러, 유가증권 1,201억 달러, 기타자산 177억 달러로 합계 2,118억 달러이다. 미국의 연방예금보험공사는 파산한 실리콘밸리은행의 자산을 인수하여 그 가운데 시장에서 쉽게 팔 수 있는 자산 720억 달러를 다른 은행에 넘겼는데 이때 165억 달러가량의 손실이 생긴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는 나머지 자산에서도 상당한 규모의 손실이 발생할 수 있음을 짐작하게 한다.
정상적인 청산 절차를 따라 실리콘밸리은행을 처리한다면 다음과 같을 것이다. 예를 들어 실리콘밸리은행의 장부상 자산 2,118억 달러의 예상 처분 가치가 1,718억 달러라면(곧, 400억 달러의 손실이 발생한다면) 이 돈으로 먼저 예금보호 대상 예금(전체의 5% 미만으로 알려짐)을 지급하고 나머지로 고액 예금과 차입금을 지급할 것이다. 그런데 자산을 처분해도 고액 예금과 차입금을 다 지급할 수 없으므로 고액 예금자들과 채권자들은 보유 금액에 비례해서 손실을 떠맡게 될 것이다. 대체적인 추산에 따르면 실리콘밸리은행의 고액 예금자들이 실제로 떠안아야 하는 손실 금액은 최소 200억 달러에 이른다고 한다. 그렇지만 미국 연방예금보험공사가 고액 예금도 보호해주겠다고 약속했으므로 결국 이 손실 금액은 공적자금으로 메워야 한다.
공적자금을 통한 부실 금융기관 구제를 두고 벌이는 좀 더 본질적인 논란은 그것이 이른바 시장원칙을 벗어난다는 점에서 생긴다. 영업에 실패하여 지급 불능 상태에 빠진 사적 기업을 국민 세금으로 지원해주는 것은 시장원칙의 기본이라 할 수 있는 자기책임 원칙에 어긋난다. 기업 이익이 나면 주주와 채권자가 챙기고 손실이 나면 사회가 떠맡는 구조를 두고서 시장원칙을 얘기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더욱이 공적자금을 통한 금융기관 지원으로 이익을 얻는 대상은 고액 예금자, 주주, 채권자와 같은 사회의 부유층에 속하는 사람이 대부분이다. 그래서 노벨경제학상을 받은 스티글리츠 같은 경제학자는 영업에 실패한 금융기관을 납세자의 세금으로 구제하는 것을 부자를 위한 사회주의라고까지 했던 것이다.
공적 자금을 통한 부실 금융기관 구제가 이른바 시장논리에 어긋난다는 점과 또 이를 누구든 쉽게 알아챌 수 있어서 정치적인 이슈로 발전할 가능성이 높다는 점 때문에 구제금융을 제공하는 당국은 그것이 구제금융이라는 모습을 띠지 않도록 세심하게 배려하지 않을 수 없다. 그리하여 납세자의 세금이 들어가는 명백한 금융기관 구제에 대해서도 그것이 구제금융이 맞는지 그렇지 않은지에 대한 논쟁이 벌어진다. 실제로 실리콘밸리은행의 고액 예금 보호를 두고도 그것이 구제금융인지 아닌지에 대한 논쟁이 벌어졌다. 나아가 금융당국은 구제금융이라는 용어 사용 자체를 꺼린다. 구제금융이라는 용어 대신에 구제 프로그램을 나타내는 영어 대문자의 여러 명칭(TALF, BTFP와 같은)이 생겨나는 이유는 이 때문이다.
사실 일시적인 자금 부족에 빠진 금융기관에 대한 지원 논리는 금융산업의 특성에서 나온다. 어떤 금융기관의 파산은 금융업무의 특성상 쉽게 산업 전체의 위기로 퍼져나갈 수 있고, 나아가 금융 부문의 혼란은 실물 부분의 어려움으로 이어질 수 있다. 따라서 공적으로 그러한 금융기관을 지원할 필요성이 생기는데, 거기에서 발전한 것이 중앙은행의 최후 대출자 기능이다. 중앙은행은 위기에 빠진 은행에 대해 수익성 악화 때문에 생긴 지급 불능 상태가 아닌 한 우량 증권을 담보로 벌칙 금리를 부과하여 충분히 자금을 제공해준다(이른바 배젓트 원리).
지급불능 상태에 빠진 금융기관 지원을 위한 논리는 시스템 위기론에 바탕을 둔 대마불사론, 또는 시스템적으로 중요한 금융기관 구제론이다. 이는 부실 금융기관에 공적자금을 투입하기 위해 좀 더 세련된 형태로 다듬은 논리라 할 수 있다. 이 논리의 핵심은 덩치가 큰 금융기관일 경우 그것의 청산이 미칠 파급력의 크기를 고려하여 부채가 자산보다 많은, 다시 말해서 자기자본이 전혀 없는 금융기관에 대해서까지 지원 대상을 확장하자는 데에 있다. 이러한 지원은 중앙은행 최종 대출자 기능을 통한 지원과는 성격과 방식이 다르다.
그렇다면 어떤 금융기관의 청산이 시스템 위기를 부를지 그렇지 않을지, 또는 시스템 위기가 나타난다면 그 크기가 어느 정도일지를 사전적으로 어떻게 알 수 있는가? 사실 사전적으로는 이를 알 방법이 없다. 그렇기 때문에 공적자금을 통해 금융기관을 구제할 때 금융당국은 위기의 가능성과 예상 피해 규모를 크게 과장하는 경향이 있다. 이는 사후적으로도 마찬가지인데, 예를 들어 2008년 금융위기 때 보험회사인 AIG에 대해 1,680억 달러를 지원했던 사실을 두고 당시 재무부장관이었던 폴슨은 "만약 AIG가 파산했다면 금융시스템은 완전히 붕괴했을 것이고 실업률은 어렵지 않게 대공황 시기의 25% 수준까지 올라갔을 것"이라고 허풍을 떨었다.
공적자금을 통한 부실 금융기관 구제는 시장 원칙에서 벗어나지만 이를 통하지 않고서는 금융자산의 가격을 유지할 수 없다는 점에서 이것은 딜레마이다. 엄밀히 얘기하면 금융자산가나 금융당국의 선택이 시장원칙 쪽이 아니라 현실적인 이익 쪽으로 이미 기울어 있다는 면에서 이것은 딜레마랄 것도 없다. 금융자산가 계층은 위기가 닥칠 때는 항상 예금자 전액 보호와 부실 금융기관에 대한 국가 개입을 요구할 것이고 현재의 신자유주의 이념 지형에 큰 변화가 없는 한 금융당국은 그것을 받아들일 것이다.
▲실리콘밸리 은행(SVB) 파산으로 다시금 납세자의 세금이 공적자금으로 쓰일 것이다. 금융기관들은 돈을 벌 때는 시장의 자유를, 어려울 때는 정부의 개입을 요구한다. ⓒ연합=Reuters
덩치 큰 금융기관은 살려주어야 한다는 논리의 기원
공적자금을 통한 금융기관 구제 논리 가운데 대표적인 것이 이른바 대마불사론이다. 이 논리의 요점은 금융기관의 부실 정도가 아니라 규모를 따져서 구제 여부를 판단한다는 데에 있다. 덩치가 큰 금융기관의 파산은 시스템 위기로 번질 수도 있기 때문에 이를 막기 위해 부실이 크더라도 구제를 해 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 대마불사론은 금융사산의 가격을 떠받치기 위한, 곧, 금융 세력의 이익을 보장하기 위한 여러 논리들 가운데 하나이다. 다른 여러 금융 논리와 마찬가지로 미국에 기원을 둔 대마불사론은 금융자산이 급속하게 팽창을 시작하던 무렵에 나타났다. (우리나라는 1997년 외환위기 이후에 공적자금을 투입하여 금융 구조조정을 한 바 있는데, 이때 적용한 논리도 바로 이 대마불사론이었다.)
1980년대 들어서 미국과 영국 주도로 펼쳐진 금융자유화와 금융규제완화를 계기로 전세계의 금융자산이 본격적으로 불어나기 시작한다. 1980년의 전세계 총생산(GDP)은 11억 달러였는데, 맥킨지 보고서에 따르면 같은 시기 전세계 금융자산(주식, 채권, 펀드증권, 대출채권의 합계)은 12억 달러였다. 이때는 금융자산의 규모와 총생산의 규모가 엇비슷했음을 알 수 있다. 2010년에 이르면 전세계의 총생산은 63억 달러, 금융자산은 219억 달러로 늘어난다. 30년 사이에 총생산은 5배가량, 그리고 금융자산은 18배가량 증가했다. 이리하여 금융자산 규모는 총생산의 4배에 이르렀다.
이자나 배당의 청구권에 지나지 않는 금융자산의 가격은 가공적인 성격을 갖는다. 그 이유는 그것의 가격이 미래의 현금흐름에 대한 기대를 바탕으로 계산해낸 가상적인 수치에 근거를 두기 때문이다. 금융자산의 가격 계산에 현금흐름에 대한 기대가 반영되는 탓에 거기에 불확실성이 끼어든다. 따라서 금융자산의 가격 변동성은 매우 크게 나타나고, 이러한 변동성은 투기 거래의 밑받침이 된다. 그렇지만 금융자산의 가격도 결국은 실물 부문의 이자와 배당금 지급 능력에 의존하는 한 그것의 과도한 팽창은 언젠가는 위기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이리하여 1980년대 들어 금융자산이 팽창하면서 금융기관들의 파산도 함께 늘어난다.
사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뒤부터 1980년까지는 큰 은행의 파산이 드문 현상이었고 따라서 대마불사론이 불거질 일도 없었다. 그러다가 금융자유화와 규제완화를 거치면서 주요 나라들에서 1980년대 중반부터 금융기관 파산이 잦아진다. 금융자산가 계층은 자연스럽게 금융기관 파산에 대해 자기의 손실을 최소화하면서 나아가 그 손실을 사회의 자원으로 메우려는 노력을 기울인다. 그런 노력의 과정을 통해서 개발된 논리의 하나가 대마불사론인 셈이다. 이 대마불사론은 구체적인 정책으로도 이어진다.
파산은행의 처리 방법은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예금자 보험금을 지급한 다음 아예 청산하는 방식이고 다른 하나는 공적자금을 투입한 다음 계약이전(P&A)을 통해 다른 금융기관에 넘겨서 영업을 계속하도록 지원하는 방식이다. 청산 방식은 금융기관 주주, 채권자, 고액 예금자들이 금융기관 운영 실패에 따른 책임을 지는 것이므로 거기에서 별다른 논란거리가 생기지는 않는다. 그러나 공적자금 투입 방식은 금융기관 부실 책임자와 부실에 따른 손실 부담자가 서로 다르다는 점에서 거기에서 논란이 생기는 것은 필연적이다. 그런데 1980년대 이후 미국이 주로 사용한 파산은행 처리 방식은 후자였다.
그렇다면 자본잠식 상태인 은행에 대해서 공적자금을 투입할 수 있는 근거는 무엇인가? 이에 대해서 처음 제시된 근거는 지역사회에 꼭 필요한 은행이라는 개념이었다. 경영 실패로 자본 잠식에 빠진 은행은 주주, 채권자, 고액 예금자가 손실을 분담한 다음 청산할 수 있다. 청산하지 않고 그 은행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기존 주주나 새로운 주주가 자본을 추가로 집어 넣어야 한다. 주주가 아닌 공적 부문이 추가 출자를 할 수 있게 하는 논리 근거가 바로 지역 사회에 꼭 필요한 은행이라는 개념이다. 자본잠식 상태인 은행을 공적 부문이 지원하는 것은 시장 원칙에 어긋난다. 그럼에도 지역사회가 그 은행을 꼭 필요로 한다면 공적 부문은 지역민의 편의를 위해서 자본 잠식 은행일지라도 자본을 출자하여 그 은행의 영업을 지원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 다음에 제시된 논리는 대마불사론이다. 미국에서 대마불사 문제가 처음 불거진 것은 1984년 자산규모 미국 8위인 콘티넨털일리노이 은행이 지급불능 상태에 빠졌을 때이다. 미국 예금보험공사(FDIC)는 당시 10만 달러였던 예금보호 한도를 없애서 고액 예금자를 보호했을 뿐만 아니라 채권보유자에 대해서도 전액 지급을 약속했다. 은행의 고액 예금자와 채권자의 보호는 결국 은행 주식 가격의 유지로 이어진다. 왜냐하면 은행을 청산할 경우 은행 주식은 휴지조각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예금보호 직후 열린 청문회에서 청문위원이었던 맥키니(Stewart Mckinney) 의원이 대마불사(Too Big To Fail)라는 용어를 처음 사용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같은 청문회에서 통화감독청 청장은 미국의 11개 대형 은행들이 파산을 당하더라도 콘티넨털일리노이와 비슷하게 처리할 것이라고 얘기했는데, 이는 대마불사 논리를 이 은행들에게도 적용할 것이라는 사실을 함의한다.
이후 대마불사 논리가 적용될 대상은 점차 확대되는 쪽으로 가닥을 잡아간다. 처음에는 11개 대형은행에 한정되었던 대마불사론 적용 은행이 나중에는 그보다 더 작은 규모의 은행들로 확대된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에는 그 대상이 은행뿐만 아니라 투자은행, 보험회사, 펀드 등 거의 모든 금융기관으로 확대된다. 금융안정위원회는 국제적으로 적용될 대마불사 금융기관을 지정해 놓았고 각국의 금융당국도 국내에서 적용될 대마불사 금융기관을 정해 놓았다. 그러나 그러한 지정이 특별한 의미를 갖지는 않는다. 왜냐하면 이번 실리콘밸리은행 처리 과정에서 보듯 대마불사 금융기관이라고 지정해 놓은 것보다 규모가 더 작은 은행이 파산 위기에 빠지더라도 실제로는 구제의 대상이 되기 때문이다.
아울러 예금자 보호도 더 두텁게 하는 쪽으로 점차 나아갔다. 예금보험 한도액는 1984년 당시 10만 달러에서 나중에는 25만 달러 수준으로 조정된다. 그러나 이 예금보호 한도액도 그다지 큰 의미는 없다. 왜냐하면 파산 은행이 실제로 생겨서 위기가 닥치면 그 한도는 대부분 폐지되기 때문이다. 대형 금융기관을 구제한다는 대마불사론은 사실상 대마불사론이 아닌 것이다.
▲스위스 크레딧 스위스 은행의 파산은 유럽은 물론, 세계 금융계를 불안의 늪에 빠뜨렸다. 지난 4일(현지시간) 스위스 바젤의 CS 은행 앞 사거리의 횡단보도에 빨간 불이 들어왔다. ⓒ연합=AFP
공적자금을 통한 금융기관 구제의 나쁜 효과
어떤 금융기관의 파산이 금융시장 전체의 위기로 번질 수 있다는 사실을 근거로 삼아 국가가 공적자금을 통한 구제금융에 나서면 그에 따른 여러 효과들이 발생한다. 그러한 구제금융이 실제로 금융 시스템 위기를 막는 데 도움이 된다는 사실은 분명하다. 문제는 그것이 국민 일반의 부담과 지역금융, 서민금융의 희생을 바탕으로 이뤄지기 때문에 나쁜 효과가 두드러질 수 있다는 점이다.
첫째, 금융기관 대형화가 촉진될 수 있다. 금융기관 대형화가 촉진되는 형태는 다양하다. 예컨대 금융시장에 대한 믿음이 흔들릴 때 작은 금융기관의 예금은 파산 위험이 상대적으로 낮은 큰 금융기관으로 옮겨갈 수 있다. 이번에 미국의 실리콘밸리은행 파산 사태 때도 예외 없이 그런 현상이 나타났다. 또한 금융당국은 공적자금을 투입한 파산 금융기관의 자산을 보통 다른 금융기관에 넘기는데 그 결과 그 자산을 인수한 금융기관의 대형화가 촉진된다. 대마불사론에 따라 금융기관의 규모가 크면 클수록 생존 가능성이 높아질 것이라는 믿음은 은행들 사이의 인수합병에 대한 유인을 제공함으로써 대형화를 촉진한다. 더욱이 대마불사 금융기관으로 지정되면 시장 평균보다 낮은 금리로 자금을 조달할 수 있게 되는데, 이 때문에 얻는 경쟁상의 우위도 금융기관 대형화를 촉진하는 유인으로 작용한다.
일반적으로 위기를 거치면서 자본이 대자본으로 재분배되는 과정은 하나의 경향이라 할 수 있다. 그런 면에서 대형화 자체는 문제가 아닐 수 있다. 실물 부문의 성장에 대응하여 금융 부문의 규모가 커가는 것은 자연스런 흐름이다. 그러나 공적자금을 투입한 부실 금융기관 구제와 그에 따른 대형화는 서민, 지역 금융기관의 위축을 부를 수 있다. 우리나라 외환위기 이후에 지역은행이나 서민 금융기관의 영업이 위축된 중요한 이유가 부실의 정도가 아니라 덩치의 크고 작음에 따라 구조조정이 이뤄졌기 때문이라는 점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둘째, 금융자산 불평등이 커질 수 있다. 공적자금을 투입하여 부실 금융기관을 구제하는 것은 그 금융기관의 주주, 채권자, 예금자를 보호하는 효과를 가져온다. 예를 들어 예금자 보호 한도를 없애서 고액 예금자의 예금을 보장하면 그 자체가 국민 세금을 고액 예금자에게 이전시키는 효과를 만들어낸다. 더욱이 위기가 퍼져나가는 국면에서 고액 예금자를 보호하면 그들은 정상적인 때보다 더 높은 금리의 이자를 받게 되며 이를 바탕으로 위기 국면에서 값이 떨어진 유가증권, 부동산 등의 매입에 나설 수 있다. 이런 과정을 통해 자산 불평등이 심해지는 결과가 나타날 것이다. 또한 출연이나 부실자산 매입 등의 방식으로 공적자금을 투입할 경우에는 부실은행의 주가를 떠받치는 결과가 될 텐데, 이러한 과정도 마찬가지로 자산 불평등을 키울 것이다.
셋째, 납세자 돈으로 부실 금융기관을 구제하는 과정이 끊임없이 반복될 수 있다. 이는 대마 불사론에 따른 이른바 도덕적 해이의 결과이다. 미쉬킨은 대마불사론에 따른 부실 금융기관 구제가 반복되면 대형 금융기관들은 안정성보다 큰 위험을 동반하는 높은 수익성을 추구하게 되고 이는 또 다른 금융기관 파산 가능성을 높인다고 얘기한다. 부실 금융기관 구제가 또 다른 부실 금융기관 구제를 부를 수 있다는 것이다.
어떻게 할 것인가?
대마불사 논리는 덩치가 큰 부실 금융기관을 구제하기 위한 근거이다. 금융당국은 대마불사 논리에 따라 공적자금을 투입하여 파산 위기에 빠진 대형 금융기관들을 구제한다. 그렇지만 그 결과 일반 납세자들의 미래 부담은 늘고 자산 불평등은 증가한다. 이런 면에서 공적자금을 투입하여 부실 금융기관을 구제하는 정책의 성격은 비교적 명백하게 드러난다.
그렇다면 공적자금 투입을 통한 구제금융을 모두 반대해야 하는가? 그렇지는 않다. 먼저 금융기관 구제와 그 금융기관의 고액 예금자, 채권자, 주주의 구제를 정확하게 구분해야 한다. 우리는 은연중에 두 가지를 섞어서 쓰지만 전자와 후자는 그 성격이 전혀 다르다. 공적자금으로 고액 예금자, 채권자, 주주를 구제하는 것은 이른바 시장 원칙에도 맞지 않을뿐더러 자산 불평등을 키우고 금융 세력에게 힘을 보태주는 강력한 지렛대 역할을 한다는 점에서 문제가 있다. 특히 고액 예금자 보호의 경우 위기가 다가올 때 통상 그 한도의 철폐를 불가피한 조치로 받아들이지만 정말 그러한지는 따져보아야 한다.
금융기관 자체의 구제는 이와 다른 형태이다. 부실 금융기관이라 하더라도 그것을 유지할 필요가 있다고 사회가 인정하는 경우에는 언제든 공적자금을 투입하여 구제할 수 있을 것이다. 국내외의 저명한 여러 학자들은 구제금융을 받은 은행을 아예 공공은행으로 전환하자는 제안을 한다. 그들은 구제금융을 받은 은행을 민주적으로 운영되고 대중에게 책임을 지는 공공은행으로 전환함으로써 은행 산업의 본질을 회복하고 나아가 소상공인, 서민, 중소기업에 대한 금융 지원을 늘릴 수 있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제안은 대형 은행들의 공공성이 사라지고 서민금융과 지역금융이 무너진 우리나라의 현실에도 시사점을 준다.
다음으로 공적자금 투입의 방식이 다양할 수 있다는 점을 인식하는 것이 중요하다. 금융당국은 보통 납세자의 부담을 통한 고액 예금 보호, 부실자산 매입, 출자, 출연 등의 방식을 사용해서 부실 금융기관을 구제한다. 이러한 방식으로 공적자금을 투입하여 생긴 혜택의 대부분은 주주, 채권자, 고액 예금자에게 돌아간다. 이와 다른 공적자금 투입 방식도 있을 수 있다. 예컨대, 한때 우리나라에서는 금융기관들의 신용불량자에 대한 채권을 평균 회수율에 준하여 평가된 가격으로 공적자금을 투입하여 인수하자는 논의가 있었다. 이러한 방식의 공적자금 투입은 저소득층의 부채 고통을 줄이면서도 금융기관을 간접적으로 지원하는 효과를 낼 수 있다. 2008년 글로벌 위기 당시 미국에서는 서브프라임 모기지 대출을 해준 금융기관이 아니라 대출을 받은 이용자들에게 공적자금을 투입함으로써 간접적으로 금융기관을 지원해주자는 논의가 있었는데, 이것도 마찬가지 맥락이다. 결국 중요한 것은 누구에게 혜택이 돌아가는 공적자금 투입인가 하는 문제이다.
도움을 받은 자료
정신동, <도드프랭크 금융규제 개혁과 그 이후>, 애플북스, 2008.
高田太久吉, <マルクス經濟學と金融化論>, 新日本評論社, 2015.
Frederic S. Mishkin, 이명훈 외 옮김, <미쉬킨의 화폐금융론>, 2021.
Gari A. Dymski, "Genie out of Bottle: The Evolution of Too Big To Fail Policy and Banking Strategy in the US", 2011.
George G. Kaufman, "Too Big To Fail in Banking: What Does It Mean?", 2013.
Joseph E. Stiglitz, "America's socialism for the rich: Corporate welfarism", The Jakarta Post, June 9 2009.
임수강 금융평론가
임수강 금융평론가(linsk@hanmail.net)는 정치경제학을 전공한 독립 연구자이다. 증권회사에서 채권 트레이더로 일했고 은행 경제연구소와 금융경제연구소 등에서 연구 활동을 했다. 최근 국제결제은행(BIS)의 역사를 다룬 <바젤탑>을 번역해서 출판했다.
미국 정보기관의 도·감청 의혹으로 인한 파문이 이어지고 있다. 미국 정부가 기밀문서 유출의 심각성을 밝힌 가운데, 우리 정부는 한미 동맹관계의 중요성을 부각하며 파문을 진화하려는 모습이다.
김태효 국가안보실 1차장은 미국 현지시각으로 11일 워싱턴DC에서 기자들을 만나 “동맹국인 미국이 우리에게 어떤 악의를 가지고 했다는 정황은 발견되지 않고 있다”면서 “어제 제가 말씀드린 (문건 상당수가 위조) 사실은 미국이 확인을 해줬고, ‘어떤 것이 어떻다’는 것은 시간을 갖고 기다려봐야 할 것 같다”고 했다.
▲4월13일자 주요 신문 1면
미국 당국은 문건유출을 “매우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있다”는 입장이다. 로이드 오스틴 미 국방장관은 11일 기자회견에서 2월28일, 3월1일자 자료가 유출됐다며 “(유출) 경위와 범위를 찾아낼 때까지 샅샅이 조사할 것”이라고 했다. 동아일보 <美국방 “문건유출 매우 심각하게 인식…경위 샅샅이 조사”> 기사는 “그간 조 바이든 미 행정부는 물론이고 한국, 영국, 프랑스, 이스라엘, 캐나다, 이집트 등 문건에 등장한 주요국들은 모두 “문건 일부가 허위”라는 태도를 보였다. 하지만 이날 NYT는 “대부분 진본이며 조작된 일부 또한 애초 유출본은 수정 없이 (온라인에) 게재됐다”고 보도해 바이든 행정부와 동맹을 당혹스럽게 하고 있다. 유출 과정을 조사하는 데도 최소 수개월이 걸리는 등 당분간 후폭풍이 가라앉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한겨레는 3면 <문서 ‘상당수 위조됐다’는 정부…미국선 ‘대부분 원본’에 무게> 기사에서 “미국 관리들은 주로 우크라이나 전쟁과 관련된 100여쪽의 문서 중 일부는 원본과 다른 내용도 있다고 말하고 있다”며 “원본대로 유출된 문서가 퍼져나가는 중간에 일부 변조가 가해졌다는” 뉴욕타임스·전문가 분석을 전했다. 뉴욕타임스는 유포된 문서 일부는 러시아군 전사자는 줄이고 우크라이나군 전사자를 늘렸다며, 유포 경로를 추적한 전문가들은 디스코드에 올라온 기밀 문서 사진들이 확산되는 과정에서 일부가 변조된 것으로 본다고 보도했다. 로이드 오스틴 장관의 기자회견 발언, 같은 날 빌 번스 중앙정보국(CIA) 국장이 이번 사태에 유감을 밝힌 점 등을 들어서는 “유포된 문서들이 대부분 원본 내용임을 인정한 것으로 받아들여진다”고 봤다.
한국일보의 경우 ‘유출 문건’이 도감청으로 취득한 신호정보(시긴트·SIGINT) 외에 “스파이나 내부 협조자를 통해 얻은 인간정보(휴민트·HUMINT) 바탕으로 만든 보고서일 가능성”을 제기했다. 1면 <“미 유출 문건, 감청 아닌 전언 짜깁기 정황”>과 이어진 기사의 내용이다. 한국일보는 ‘유출 문건’이 일례로 김성한 당시 국가안보실장과 이문희 외교비서관 대화에 ‘직접 인용’ 부호가 없고, 대화내용을 ‘보고된 바’(reportedly)로 표현하고 있다고 했다. 다만 문건 상단에 다양한 통신장비가 동원된 ‘SI-G’(SI-Gamma) 분류기호가 적힌 점 등을 들어 “신호정보에 다른 방식으로 얻은 정보나 작성자의 판단을 섞어 재가공했다는 것이다. 이 경우에도 내부자 연루 가능성은 남는다”고 했다.
▲4월13일자 동아일보 사설
12일 조현동 주미대사 신임장 수여로 외교라인 재정비를 마친 윤석열 대통령실을 향해선 “외교라인의 공백을 빠르게 메웠지만, 최근 불거진 미국 정보기관의 한국 안보실 도·감청 의혹은 쉽게 떨쳐내지 못하고 있다”는 진단이 나온다. 국민일보 <방미 앞둔 尹, 외교라인 초고속 정비…도·감청 의혹 진화 주력> 기사는 “대통령실은 대통령실 내부에서는 돌출 악재인 도·감청 의혹이 혹시라도 이번 방미에 재를 뿌리지 않을까 걱정하는 분위기”라며 “국빈방미 일정을 최종 조율하기 위해 미국을 방문한 김태효 안보실 1차장이 11일(현지시간) 워싱턴 인근 덜레스공항에서 기자들의 도·감청 의혹 질문에 날카로운 반응을 보인 것도 이 같은 대통령실 분위기와 무관치 않다”고 했다.
도감청 의혹에 대한 대통령실 대응은 비판을 사고 있다. 대통령실이 앞서 유출문건 상당수가 위조됐다며 야권의 비판을 “허위 선동”으로 규정한 가운데, 김태효 1차장은 미국에서 만난 기자들 질문에 “구체적으로 묻지 말라. 같은 주제로 물어보려면 떠나겠다”며 불쾌감을 드러냈다.
동아일보는 <[사설] 美도 인정한 기밀 유출, “묻지마” 대응은 의구심만 키울 뿐>에서 “미국 기밀문서 유출 사건을 다루는 대통령실의 태도를 보면 너무 성급하고 서투르기 짝이 없어 오히려 의구심을 키우는 모양새”라며 “한미가 이번 논란을 두고 갈등을 드러낼 이유는 없다. 그렇다고 해도 동맹 간 신뢰에 의문을 갖게 한 의혹에 대해 양국이 제대로 살펴보고 따질 것은 따지는 게 당연하다. 이런 문제로 한미동맹이 흔들릴 만큼 허약하지도 않다”고 했다. 이어 “‘동맹 최우선’을 내세워 모든 사안을 묻어둘 수만은 없다. 가능한 범위에서라도 국민에게 설명하고 공개가 어렵다면 이해를 구하는 노력을 해야 한다”며 “그것 없이는 늘 미국에 기대 매사를 동맹 핑계만 대는 정부의 태도에 국민적 자괴감만 깊어질 뿐”이라고 했다.
한겨레 <국민 인식과 동떨어진 한국 외교안보 실세> 기사는 그간 김태효 1차장의 ‘한·미·일 협력 최우선주의’ 외교 인식이 논란을 부른 사례들을 지적했다. 이번 도감청 질문에 대한 대응 외에도 한-일 정상회담(3월16일) 직후 강제동원 피해자 ‘제3자 변제안’에 대해 “일본이 깜짝 놀랐다. (일본 쪽에서) ‘우리로서는 학수고대하던 해법인 것 같다’(고 반응했다)”고 말한 사례 등이다. 한겨레는 “이명박 정부에서도 청와대 외교안보 실세였던 김 차장은 2012년 여론과 동떨어진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지소미아) 밀실 처리를 주도하다 물러났다”며 “대통령실 안에서는 김 차장의 입지가 더욱 강해졌다는 관측이 많다”고 전했다.
검찰, 불법 정치자금 혐의로 민주당 현역 의원들 압수수색
검찰이 2021년 더불어민주당 전당대회를 앞둔 불법 정치자금 의혹 관련해 윤관석, 이성만 민주당 의원 압수수색에 나섰다. 당시 전당대회를 앞두고 윤 의원 등이 이정근 전 민주당 사무부총장을 통해 강래구 한국공공기관 감사협회장에게 6000만 원을 받아 민주당 현역 의원 10명에게 건넨 정황에 대해서다. 서울중앙지검 반부패수사2부(부장 김영철)는 12일 정당법 및 정치자금법 위반 등 혐의 관련해 두 의원과 강래구 한국수자원공사 상임감사위원의 사무실과 자택 등 20여 곳을 동시 압수수색했다. 주요 신문들은 1면에 관련 기사를 배치했다.
경향신문: 불법 정치자금 의혹 민주당 윤관석 압색
국민일보: 檢, 하루 새 의원 2명 압백…野전대 수사확대
동아일보: ‘민주당 全大 돈봉투 의혹’ 윤관석-이성만 압수수색
서울신문: 檢, 하루에 민주당 의원 2명 동시 압수수색
세계일보: 野 전대 ‘돈봉투 의혹’ 윤관석·이성만 압색
조선일보: “의원엔 300만원”…민주당 전대 때 돈 살포 정황
중앙일보: 민주당 전대 돈봉투 의혹, 윤관석·이성만 의원 압수수색
▲4월13일자 중앙일보 기사
검찰은 민주당 일부 의원의 불법 정치자금 혐의를 사업가로부터 10억 원을 받은 혐의로 기소된 이정근 사무부총장 수사에서 파악했다. 이 전 부총장은 이날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7부(부장 김옥곤) 심리로 진행된 1심 재판에서 징역 4년6개월 선고(9억8680만8700원 추징 명령) 받았다. 중앙일보 <이정근 징역 4년6개월 중형…민주당 불법자금 수사 탄력> 기사는 “검찰은 이 전 부총장과 강 회장이 전당대회에서 특정 후보를 지지하기 위해 윤 의원에게 돈을 전달했을 것으로 보고 있다. 당시 당 대표 경선에는 송영길 전 의원과 우원식·홍영표 의원이 출마해 송 전 의원이 당선됐다”고 했다.
윤 의원은 자신의 혐의를 부인하며 “사건 관련자의 진술에만 의존해 이뤄진 검찰의 비상식적인 야당 탄압 기획수사”라고 했다. 이 의원은 “어떠한 사실 확인 요청이나 사전 조사 없이 들이닥친 황당한 압수수색에 강한 유감을 표한다”고 했다.
정부 학교폭력 대책, 신문들이 제기한 우려는
정부가 12일 한덕수 국무총리 주재로 제19차 학교폭력대책위원회를 열고 ‘학교폭력 근절 종합대책’을 공개했다. 현 고1 대상 2026학년도 대입부터는 대학들이 학교폭력 전력에 대해 수능 위주 정시와 논술, 실기, 실적 전형에서 불이익을 줘야 한다. 중대사안의 경우 학교생활기록부에 4년 동안 학교폭력 기록을 남겨야 한다. 취업까지 이어지는 불이익 관련 내용은 포함되지 않았다.
13일자 신문 다수는 정부가 내놓은 대책의 한계와 논란을 짚었다. 국민일보 <치유보다 엄벌…대입 정시 뿐 아니라 논술·실기도 불이익> 기사는 “대입 전형과 소송이 동시에 진행될 경우 소송 결과에 따라 당락이 바뀔 수 있어 입시 현장에 혼란이 가중될 수 있다. 하지만 교육부는 이를 ‘대학의 문제’로 넘기는 분위기”라며 “학폭 기록 4년 유지는 전문대에 진학하는지, 4년제 대학에 진학하는지 여부에 따라 취업에 미치는 영향이 다를 수 있다. 소년범 또는 학교 내에서 교권침해 행위를 해 징계를 받은 학생과의 형평성 논란도 있다”고 했다. 가해학생과 피해학생 분리 기간을 3일에서 7일로 연장하고, 피해학생이 분리를 요구할 수 있도록 한 방안 등은 진전이 있다는 평가다.
▲4월13일자 세계일보 기사
한국일보 <“학폭 잘잘못 법정서 가르자” 불복소송·맞신고 증가 우려> 기사는 정부 대책에 대해 “학폭이 대입과 직결되면서 가해자의 불복 소송이나 피해자를 상대로 한 ‘학폭 맞신고’가 더 많아질 수 있고, 저연령화하는 학교폭력 추세에도 민감하게 대응하지 못했다”는 우려 섞인 평가를 전했다. “사회봉사(4호), 특별교육(5호), 출석정지(6호), 학급교체(7호) 조치는 각각 졸업 후 2년(4,5호)과 4년(6,7호) 생활기록부에 보존되는 게 원칙이지만, 졸업 직전 심의를 통해 예외적으로 삭제가 가능하다”며 “삭제 심의 역시 대입 이후에 진행되는 과정이라 대입 불이익을 피하기 위한 가해자 측 소송을 막기에는 충분치 않다는 지적이 나온다”는 것이다. 입시 불이익 위주 대책이 저연령화하는 학교폭력을 막기에 부족해 “종합대책이라 부르기에 부족하다”(송경원 정의당 정책위원)는 비판도 있다.
세계일보 사설(<학폭 정시 반영한다면서 교육부 ‘감점’ 가이드라인은 없어>)은 “정시 반영과 관련해 ‘대입에 필수 반영하도록 한다’는 수준의 가이드라인은 제시했지만 어느 정도 수준으로 감점할지는 전적으로 대학 자율에 맡겼다”며 “같은 처분이라도 대학마다 감점 기준이 다를 경우 형평성 등의 혼란이 초래될 소지가 다분하다”고 지적했다. 아울러 “학폭에 대한 경각심을 일깨우는 일만큼 무너진 교권 강화도 중요한 사안”이라고 당부했다.
서울신문 사설(<관료적 사고 한계 보여준 정부 학폭 근절대책>)은 “대통령이 특단의 대책을 요구하면서 정부가 지나치게 서두른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예방이나 교화에 대한 고민은 없이 가해 학생의 손발을 묶는 데만 골몰한 행정편의주의 대책으로는 학폭을 줄이기 어렵다”며 “사과와 반성보다는 소송을 선택하는 ‘학폭 처벌의 역설’이 이미 심각한 현실이다. 피해자도 가해자도 보호와 교육이 필요한 학생들이다. 정부가 이 정도 대책을 최종안으로 내세울 수는 없는 일이다. 학폭 근절을 위해 보다 거시적 해법 찾기에 나서야 한다”고 했다.
일본 오염수 방류 관련 IAEA 4차 보고서 ⓒ국제원자력기구
지난 6일 대다수 국내언론은 국제원자력기구(IAEA)가 일본의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 방류 감시체계에 대해 “신뢰할만하다”는 평가를 내놨다고 보도를 쏟아냈다. 여당은 이 국내언론 보도를 근거로 ‘오염수 방류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를 “괴담”으로 치부하거나 비난하고 있다.
그런데 보도내용은 다소 사실과 거리가 있었다.
IAEA의 이번 4차 중간보고서에서 일본 도쿄전력의 후쿠시마 오염수 해양 방류 감시체계에 대해 “신뢰한다” 또는 “신뢰할만하다”라고 평가한 부분은 찾아볼 수 없었다. 일본 도쿄전력의 ‘환경 모니터링’에 대해 “더 잘 이해했으며, 포괄적이라는 데 동의했다”라고 밝혔을 뿐이다. “신뢰할만하다”는 표현은 방사선으로부터 도쿄전력 직원들을 보호하기 위한 프로그램을 평가하는 대목에서 등장했다.
서균렬 서울대 원자핵공학과 명예교수도 11일 기자와의 통화에서 “확대 해석된 것 같다”라며, IAEA가 일본의 오염수 방류 감시체계를 신뢰한다고 밝힌 것은 아니라고 설명했다.
유상범 국민의힘 수석대변인 자료사진 ⓒ뉴스1
IAEA, 일본 ‘환경 모니터링 프로그램’ “포괄적”
“신뢰할만하다” 또는 “신뢰한다” 어디에 있나?
“IAEA는 후쿠시마 현장 조사를 토대로 작성한 보고서를 통해 ‘오염처리수 방류에 대한 일본의 모니터링 프로그램을 신뢰할 수 있다’고 밝혔다.”
이는 지난 7일 유상범 국민의힘 수석대변인이 ‘더불어민주당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 방류 저지 대응단’(오염수대응단)의 방일 일정을 비판하며 한 말이다. 유 대변인의 말만 보자면, IAEA라는 국제기구가 일본의 방류 모니터링 프로그램을 신뢰한다고 결론 내린 것처럼 보인다. 전날 열린 국회 국방위원회 전체회의에서도 신원식 국민의힘 의원은 “4월 5일 날, 올해이다. IAEA의 후쿠시마 현장 조사 보고서에서 방류 신뢰 가능하다(고 했다)”라며, ‘오염수 방류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를 “괴담”으로 치부했다.
여당 의원들의 이 같은 주장은 지난 6일 IAEA 중간보고서에 관한 언론보도에서부터 시작됐다. 주요 통신사를 시작으로 대다수 언론은 “일본 당국의 오염수 방류 감시체계가 ‘신뢰할만하다’는 IAEA 보고서가 나왔다”고 보도했다. “일본에 힘 실어준 IAEA”라는 표현도 등장하는가 하면,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 방류에 관한 여러 후속기사에서도 이 같은 취지의 서술이 반복해서 등장하고 있다.
포털을 도배한 IAEA 중간보고서 국내언론 보도 ⓒ포털 네이버 검색 화면 갈무리
이에, IAEA가 지난 5일(현지시간) 공개한 4차 보고서를 살펴봤다. 보고서는 IAEA가 현재도 홈페이지를 통해 공개하고 있다. (▶IAEA 보고서 바로가기)
해당 보고서를 살펴본 결과, IAEA 테스크포스는 “도쿄전력의 ‘환경 모니터링 프로그램’을 더 잘 이해했으며 ‘포괄적’이라는 데 동의했다”(the Task Force better understands TEPCO’s environmental monitoring programmes and agrees that it is ‘comprehensive’)고 보고서 내용을 요약했다. 일본 당국의 ‘환경 모니터링 프로그램’에 대해 “더 잘 이해”(better understands)했고 “포괄적”(comprehensive)이라는 데 동의했다고 했지, “신뢰한다”(trust)라거나 “신뢰할만하다”(reliable)고 적진 않은 것이다.
“신뢰할만하다”(reliable)라는 표현이 등장하는 대목이 있긴 하다. “IAEA 테스크포스는 도쿄전력이 필요한 헌신과 주인의식을 가지고 신뢰할 수 있고 지속 가능한 ‘방사선 보호 프로그램’을 보유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The Task Force is able to confirm that TEPCO has a reliable and sustainable radiation protection programme with the necessary commitment and ownership)라는 문장이다. 하지만 여기서 언급된 ‘방사선 보호 프로그램’은 도쿄전력 직원들을 위한 프로그램이지, 오염수 방류 감시 체계에 관한 것이 아니었다.
이 부분은 IAEA가 4차 보고서를 설명하는 보도자료에서 더 분명히 나타난다. 보도자료에서 IAEA는 “도쿄전력 직원들을 위한 신뢰할 수 있고 지속 가능한 방사선 보호 프로그램을 가지고 있음을 확인했다”(The Task Force confirmed that TEPCO has a reliable and sustainable radiation protection programme for its employees)라고 보다 분명한 문장으로 적었다.
4차 보고서에 대한 IAEA 보도자료 ⓒ국제원자력기구 홈페이지 화면 갈무리
이와 관련해, 양이원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지난 10일 민주당 오염수 대응단 방일 활동 보고 자리에서 “몇 번씩 봤지만 ‘신뢰할만하다’거나 ‘신뢰한다’는 표현은 없는 것으로 확인했다”며, 오히려 “투명성 등을 위해 추가 설명 및 자료 제공이 필요하다는 식으로, 실제 보도된 것과 뉘앙스가 다르게 나와 있다”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최초에 ‘신뢰하고 있다’고 보도한 언론사가 무엇을 보고 그런 보도를 했는지 밝히는 게 필요하다”라고 지적했다.
서균렬 교수 또한 기자와의 통화에서 “제대로 전달이 안 됐다”라며, ‘포괄적’이라는 말과 ‘신뢰할만하다’는 표현은 구별해야 한다는 취지로 설명했다.
신은섭 민족위 운영위원장은 “전단을 향해 북한에서 사격을 했으면 전쟁이 시작되었을 것이다. 전단 살포 사실을 밝히지 않으면 북한이 남침한 것으로 보도가 됐을 것이다. 우리가 모르는 사이 전쟁이 시작될 수 있는 끔찍한 상황이 벌어졌다. 전쟁을 부르는 전단 살포 행위를 반드시 막아내자”라고 말했다.
이날 행진 참가자들은 미 대사관 근처에서 자기의 전쟁 정책 수행을 위해 불법 감청을 자행한 미국, 전단 살포의 진짜 배후 미국을 규탄하는 시간을 가졌다. 참가자들은 “인권을 무기화하는 미국이 제일 심한 인권 침해국이다. 미국을 규탄한다!”, “도청이 인권 침해다. 인권 침해국 미국을 규탄한다!”, “불법 감청 주권침해 미국은 사죄하라!”와 같은 구호를 외쳤다.
1월 세수 감소액이 6조 8천억 원, 2월은 9조 원 감소했다. 세금 납부 시기 연장에 따른 1~2월 기저효과를 감안하더라도 세수 감소액은 심각한 상황이다.
올해 국세 수입을 400조 5천억 원 예상하는데, 2월까지 세수진도율(세수 목표치 대비 실제 세수)이 13.5%에 불과했다. 세수진도율은 최근 5년 평균 16.9%보다 훨씬 밑도는 것으로, 2006년(13.5%) 이후 최저치다. 이런 식이면, 2019년 이후 4년 만에 20조 원 이상의 세수 결손이 확정적이라고 봐야 한다.
세수 부족의 심각성은 지난 7일 추경호 부총리가 삼성전자 평택 캠퍼스를 방문한 자리에서 공식화되었다. 추경호 부총리는 이날 기자들과의 만남에서 “애초 세입 예산을 잡았던 것보다 세수가 부족할 가능성이 커 보인다”라고 언급하고 “전반적인 일반 경기 흐름과 자산시장 흐름이 좋지 않은데, 그 영향으로 기업의 실적도 좋지 않아 올해 세수 상황은 상당히 좋지 않다”라고 우려를 표명한 바 있다.
정정훈 기재부 조세 총괄정책관은 경기침체, 자산폭락, 기업실적 부진이 세수에 악영향을 준다고 인정하면서도 “하반기 이후 경제가 회복되면 세수 부족분을 만회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아직도 비가 오기만을 기다리는 천수답식 농사를 짓고 있다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이다. 하반기 경제가 좋다고 전망하는 전문가는 현재 한 사람도 없다.
‘건전재정’이라는 주술
사실 세수 부족은 윤석열 정부가 ‘건전재정’ 운운할 때부터 예고되었다. 후보 시절부터 ‘확대재정’을 비판하고 ‘건전재정’을 외쳐온 윤석열은 작은 정부, 감세, 정부지출 축소정책을 추구해왔다. 이러한 윤석열 정부의 견해는 감세를 통한 민간경제의 활성화와 그에 따른 세수 증대를 노린다는 전형적인 시장주의 정책에 입각한 것이었다.
그러나 결과는 어떠한가.
양도소득세는 1월 2조 6천억 원, 2월 누적 4조 1천억 원 세수가 감소하였다. 주택거래가 감소한 탓이다. 증권거래세 역시 1월, 2월 각 4천억 원씩 누적 8천억 원 세수가 줄었다. 주식거품이 꺼졌기 때문이다. 3대 세목이라고 할 수 있는 소득세 6조 원, 부가가치세 5조 9천억 원, 법인세 7천억 원이 감소했다. 여기에 관세 7천억 원, 교통세 5천억 원 등 모든 분야에서 세수 부족 상황이 심각하다.
올해 세수 상황은 3월 납부된 법인세에 의해서 좌우된다. 올해 국세 수입 400조 4,570억 원 중 법인세는 104조 9,969억 원으로 예상된다. 그런데 이 법인세가 삼성, SK 등 실적 쇼크로 비상이 걸린 상황이다.
법인세는 8월에 절반 정도를 선납(중간예납)하고, 다음 해 3월에 나머지 절반을 낸다. 문제는 지난해 4분기 국내 500대 기업 중 262개 대기업 영업 이익이 69.1% 감소했다는 사실이다.
올해 1분기 삼성전자 당기순이익은 6천억 원에 불과해 작년 1분기에 비해 95.8%가 줄어들었다. 그렇다면 올해 8월 법인세 전망은 볼 것도 없다. 경기 전망과 전혀 연계하지 않은 채, 우파 경제학 교과서에서 몇 줄 외운 것으로 ‘감세→민간경제 활성화→세수 증대’라는 유치한 논리로 나라 살림을 하겠다고 하니, ‘건전재정’이 아니라 ‘거덜재정’이는 소리를 들어도 싸다.
앞뒤가 안 맞는 정책
일관성 없는 윤석열 정부의 건전재정 논리는 앞뒤도 맞지 않는다.
정부는 지난달 28일 국무회의에서 ‘2024년도 예산안 편성 및 기금 운영계획안 작성 지침’을 의결했다. 670조 원 정도의 예산지침을 작성했는데, 당초 예상한 700조 원을 밑도는 수준이었다. 이에 윤 대통령은 “세금이 한 푼이라도 낭비되지 않도록 강력한 재정혁신을 추진해 건전재정 기조를 견지할 것”이라고 강변했다.
이어 윤석열 정부는 ‘돈으로 푸는 복지는 안된다’, ‘총선이 다가오지만 퍼주기 복지는 없다’라면서, 복지 관련, 서민생계 관련 지출 삭감에 나섰다. 공공부문 구조조정, 공기업 인원 축소, 공공주택 지원 삭감, 장애인 복지지원 삭감, 양곡법 거부 등 서민 지원예산을 골라 삭감, 축소했다. 모두 나라 예산을 아껴야 한다는 재정건전성 논리의 후과다.
반면 지난달 28일 의결한 ‘2023년도 조세지출 기본계획’에 따르면 감세 규모가 역대 최대규모인 70조 원에 이른다. 소득세, 법인세, 종합부동산세 등 윤 정부의 각종 세금 감면정책의 결과이다.
정부지출도 아껴야 하지만, 정부 세수도 잘 챙겨야 한다. 그런데 부자들에 걷어야 할 세금은 다 깎아주고, 돈이 없으니 서민복지를 줄이겠다는 식으로 나온다. 그래서 재정건전성이 달성되었나? 재정건전성을 달성하는 것이 아니라 세수 결손, 재정위기를 자초하고 있다. 게다가 ‘K칩스법’으로 대기업 감세 규모는 더 커지게 되었으니 내년 법인세 세수 감소는 더 심각해질 전망이다.
경기부양, 금융위기 대처할 재정 여력 부족
정부가 재정을 건전하게 관리하는 데 반대할 사람은 없다. 하지만 세수결손 상태는 국채 발행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고, 도로 정부 부채가 증가하는 결과를 낳게 된다. 정부 부채가 많다고 난리 치던 윤석열 정부가 오히려 부채를 늘리는 정책을 추진하는 꼴이다.
더 큰 위기는 하반기에 닥친다. 경기침체와 금융위기가 이어지면 정부 차원의 경기 부양책이나 재정정책이 필요한데, 세수 부족으로 인해 정부에 실탄이 없다. 결국, 경제 위기는 증폭하고, 국민 고통은 가중한다. 나라살림은 관심 없고 부자 감세에만 눈이 먼 윤석열 정부가 모든 책임을 져야 할 것이다.
그을린 잔해만 남아… 강원 강릉시 난곡동에서 11일 발생한 산불이 번져 사근진 해변 일대 건물이 검게 타 있다. 강릉 | 조태형 기자 phototom@kyunghyang.com
집·숙박시설 등 100여채 불타
수백년 된 소나무 숲도 훼손
주민 530여명 긴급 대피
“관광시설 피해 너무 커 걱정”
동해안 최대 관광지인 강원 강릉시 경포 해변 인근 마을과 관광시설이 화마에 깊은 상처를 입었다.
11일 오전 8시22분쯤 강릉시 난곡동의 한 야산에서 발생한 산불이 초속 30m 안팎의 강풍을 타고 동해바다 쪽으로 급속히 번지면서 경포관광단지 인근인 안현동·저동·경포동 일대는 삽시간에 아수라장으로 변해버렸다. 해변 소나무숲 옆에 자리 잡고 있는 전원주택뿐 아니라 펜션 수십채와 소규모 호텔 등이 불에 타 앙상한 몰골을 드러냈고, 이를 지켜보던 주민들은 눈물을 머금은 채 온몸을 떨고 있었다.
보물 2046호인 경포대 정자에서 도보로 4분 거리에 위치한 객실 16개 규모의 한 한옥펜션은 산불에 초토화돼 검게 그을린 잔해만 남아 있었다. 20년 전부터 이 펜션을 운영해온 김남수씨(57)는 “이날 오전 10시쯤 시루봉 줄기의 야산에서 우리 마을 쪽으로 산불이 번지는 모습을 보고 아내, 자녀 2명과 함께 피신했다가 1시간30여분 만에 돌아와 보니 집과 펜션이 전소된 상태였다”고 말했다. 그는 “막대한 재산 피해를 입어 어떻게 복구해야 할지 정말 막막하다”며 망연자실했다. 이어 “관광시설 피해는 복구하면 되지만 경포 일원의 수백년 된 소나무숲이 불타면서 아름다운 풍광이 훼손된 것이 더 큰 문제인 것 같다”고 했다.
이곳에서 5분 거리에 위치한 저동골길 126번지 일대 관광숙박단지의 펜션 10여동도 모두 불에 탔다. 불탄 펜션에서 잔해를 치우고 있던 한 업주(52)는 “관광시설 피해가 너무 커 올여름 피서철 관광객 유치에도 큰 차질을 빚을 것 같다”며 “산불이 강풍을 타고 ‘휙’ ‘휙’ 소리를 내며 도깨비불처럼 번져 미처 손쓸 틈도 없었다”고 말했다.
안현동 주민들은 “작은 불덩이가 삽시간에 골짜기를 뛰어넘어 700~800m가량 떨어진 주택과 펜션으로 날아들었다”며 “공무원들이 총동원되고, 놀러왔던 젊은 관광객들까지 진화작업을 도왔으나 불길이 워낙 거세 피해를 줄이는 데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었다”고 전했다.
산불 확산 속도가 너무 빠르다 보니 이날 주민 530여명은 어쩔 수 없이 삶의 터전을 뒤로한 채 대피할 수밖에 없었다. 경포호 주변에 사는 주민 박영수씨(78)는 “목숨을 건진 게 다행”이라며 “피해를 입은 이웃이 절규하는 모습을 보니 눈물이 절로 나온다”고 말했다. 경포해변 인근 상인들은 “하루빨리 관광시설이 복구되지 않으면 관광경기 침체 등 2차 피해가 장기화될 것”이라는 반응을 보였다.
사방으로 거세게 휘몰아치던 불길은 이날 오후 3시30분쯤 천둥·번개와 함께 비가 내리며 잦아들기 시작했다. 이후 오후 4시30분쯤 주불이 진화됐다. 진화 과정에서 80대 주민 1명이 숨진 채 발견됐고, 16명은 부상을 입어 치료를 받았다. 주택, 펜션, 호텔 등 100여채가 불에 탔고, 산림 379㏊가 소실됐다.
독자 여러분 안녕하세요. 저는 정치·선거·공공정책 여론조사와 데이터 컨설팅을 전문으로 하는 '티브릿지'의 대표, 박해성입니다. 오늘부터 한 달에 두 번 '박해성의 여의대교'라는 칼럼을 통해 여러분을 만날 예정입니다.
한강을 건너 여의도로 들어오려면 세 개의 다리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합니다. 원효대교, 마포대교, 서강대교입니다. 저는 주로 마포대교를 이용해 집과 회사를 오갑니다. 국회대로 76가길에 자리한 회사 사무실에서는 시원하게 한강을 가로지르며 놓인 서강대교의 모습이 창밖으로 보입니다. 날씨와 계절의 변화가 언제나 새로운, 참 아름다운 풍경입니다.
여의도. 한국의 정치와 금융을 상징하는 섬입니다. 여의도공원을 가운데 두고 서쪽은 국회의사당을 중심으로 한 정치의 공간, 동쪽은 최근 다소 옅어진 느낌이지만 아직까지는 여전히 금융의 중심지라고 할 수 있습니다. 여의도 사람들끼리는 편의상 서여의도, 동여의도라 부르곤 합니다. 티브릿지는 2009년 설립 이후 서여의도를 떠나본 적 없는 토박이라고 소개하겠습니다.
저의 주 업무는 어떤 문제와 관련해 가설을 세우고, 이를 검증할 방법을 설계하고, 여론조사나 데이터를 분석하고, 숫자로 표시된 결과에 의미를 부여하는 등의 일입니다. '숫자로 세상을 읽는 일'이라 할 수 있습니다. '여론조사 전문가' 또는 '데이터 컨설턴트'라고 불립니다.
그러나 저는 또한 정치적 현상이나 이슈에 관해 이야기하는 데에도 많은 시간을 씁니다. 오랫동안 국회와 정당에서 일한 경험이 지금의 저를 만들었기 때문입니다. 데이터나 정치처럼 골치 아프고 어려운 내용을 알기 쉽게 설명해주는 '여의도 아저씨'라고 생각해주시면 좋겠습니다. 여의도와 여러분을 직접 연결하는 가상의 다리, '여의대교'를 자처하고자 합니다.
'천 원의 아침밥'이라는 '스몰 딜', 그 뒤에 숨겨진 것은…
최근 이슈인 '천 원의 아침밥'부터 시작해 보겠습니다. 정부는 예산을 늘리겠다고 약속하고, 여당 대표는 한달음에 대학으로 달려가 학생들과 밥 먹는 장면을 홍보합니다. 야당은 정책 확대에 속도를 내라고 주문하고, 우리는 연일 관련 기사와 보도를 접하고 있습니다. 대학생들의 아침을 책임지겠다는 정책은 청년들의 환영을 받은 것은 물론, 기성세대에게도 따뜻하고 흐뭇하게 느껴집니다.
지난해 취임 초, 윤석열 정부는 인사와 외교 분야 등을 중심으로 비판 여론에 직면하며 지지율이 반토막 나는 경험을 합니다. 이에 대한 타개책으로 시작된 시리즈가 일종의 감성형·생활형 접근들이었습니다. '작은 접근방식'(small deal·스몰 딜)이라고 불러도 좋습니다.
"고생은 선수들이 했는데 왜 축구협회가 배당금을 더 많이 가져가느냐" 대통령의 이 발언, 기억하시나요? 작년 12월 9일 축구 국가대표팀 포상금 관련 메시지였습니다. '만 나이' 도입, 화물연대 파업 강경 대응, 석가탄신일·성탄절을 포함하는 대체공휴일 확대, 노조 회계장부 공개 압박 등도 같은 맥락의 정책들입니다.
최근 '천 원의 아침밥'은 이러한 흐름이 이어져 오는 가운데 등장한 새로운 아이템입니다. 윤석열 정부는 노동·교육·연금 등 3대 개혁을 국정과제로 내세우지만, 정작 떨어진 지지율을 회복시킨 건 이런 작은 접근법이었습니다.
특징이 뭘까요? 일단 시민들의 생활 체감도가 높습니다. 만 나이, 대체공휴일, 아침밥 등을 떠올려 보시면 됩니다. 또한 구조적인 문제 해결을 위해 갈등을 불사하는 '어려운 길'을 피하는 대신, 상황에 대한 감성적 프레임을 통해 즉자적으로 대응하는 방식은 체감효과가 높습니다. 축구 포상금, 화물연대 파업, 노조 회계장부 등이 여기 해당합니다.
이러한 접근방식이 옳은지에 대한 논란이 있을 수 있지만, 지금은 잠시 접어두겠습니다. '효과가 분명했다'는 점을 말하기 위해서입니다. 스몰 딜은 지나치게 야심찬 계획이 아니므로 실현 가능성에 대한 기대가 높습니다. 광범위한 분야를 포괄하는 게 아니므로 정책 효능감이 상승합니다. 전면적 변화를 추구하지 않으므로 저항이 적습니다. 사소하다고 느낄 수 있지만 당사자 만족도는 크게 높아집니다.
취임 직후부터 하락하기 시작해 20% 수준까지 떨어졌던 윤 대통령 국정지지도는 연말·연초를 거치며 30%대 중반까지 회복됩니다. 그러다 일제 강점기 강제징용 피해자 배상 문제, 주 69시간으로 촉발된 근무제 논란, 일본 역사 교과서 왜곡이나 후쿠시마 오염수 해양 방류 대응 등에 대한 실망으로 최근 다시 하락 추세입니다. 지난 5일 재보궐선거 성적표를 받아든 여권은 어지간히 긴장한 기색입니다. 어쩌면 조만간 또 다른 스몰 딜이 등장해 국면 전환의 계기를 마련하는 건 아닐까요?
뉴스와 숫자 뒤에 숨겨진 이야기, 시작해 보겠습니다
내년 국회의원 선거가 4월 10일이니 1년을 앞둔 시점에서 칼럼 연재를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독자 여러분은 주로 다양한 언론과 소셜미디어(SNS), 인터넷 커뮤니티 등을 통해 정치권 소식이나 여론조사 결과를 접하실 겁니다. 크고 작은 뉴스들, 때맞춰 쏟아져 나오는 여론조사 결과들, 그에 대한 해석들이 이러쿵저러쿵 넘쳐날 시기입니다.
누군가의 주장이나 의견을 믿고 따르기에 앞서 표면화된 이슈의 속사정, 발표된 숫자 이면의 속뜻을 이해할 수 있도록 가급적 어렵지 않게 '안내'를 해보겠습니다. 여의도의 소식이 왜곡되지 않고 한강을 잘 건너가 여러분을 만날 수 있도록, 여러분이 사실에 근거해 바른 판단을 할 수 있도록 든든한 다리 역할을 잘해보고 싶습니다.
ⓒ박해성 티브릿지 대표 박해성 티브릿지 대표는 여론조사 전문가이자 정치·선거, 빅데이터, 공공정책 분야의 컨설턴트입니다. 2019년부터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위원으로 활동하고 있으며, 2022년 대통령직속 자문기구인 국가균형발전위원회 위원으로 위촉돼 지역산업·경제분과위원장을 맡아 국가적 과제 해결에 참여하고 있습니다. 직업인으로서, 비판적 시민으로서의 감수성과 현실을 직시하는 균형감각을 신념으로 삼고 있습니다.
▲ 전국민중행동이 11일 용산 대통령실 앞에서 미국의 불법도청을 비판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미국의 불법도청을 표현한 상징의식. [사진제공-전국민중행동]
[사진제공-전국민중행동]
미국의 불법 도청 파문이 커지는 가운데 대통령실은 11일 유출된 문건 상당수가 위조됐다는 것에 한미 양국 견해가 일치했다고 발표했다.
대통령실의 이 같은 발표에 미국의 불법 도청 사건을 ‘문건 위조’로 본질을 흐리려는 의도라는 비판이 제기됐다.
박성준 더불어민주당 대변인은 이날 “양국 국방부 장관의 견해가 일치되었다는 말은 무슨 뜻인가. 위조됐다는 문서를 직접 원본 문서와 대조해서 확인했는가. 미 정보기관의 도청이 없었다는 것도 분명히 확인했는가”라며 “이 같은 물음에 답하지 못한다면 여론을 무마하기 위한 거짓 해명이고 ‘날리면 시즌2’에 불과하다”라고 비판했다.
미국의 불법 도청 문제가 밝혀진 이후 윤석열 정부는 미국에 항의하고 사과를 요구하기는커녕 ‘미국과 협의하겠다’, ‘한미동맹의 큰 틀 안에서 도감청 문제를 해결하겠다’라는 친미굴욕적인 모습을 보여 손가락질을 받고 있다.
전국민중행동은 이날 오후 1시 서울 용산의 대통령실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미국 정부에 도감청에 대한 사실 규명을 요구해도 부족할 판에 미국을 대신하여 불법을 자행한 미국 정부의 입장을 대변하고 있는 셈”이라며 “주권국가로서 자존심까지 내버리면서 미국의 편을 드는 윤석열 정부는 과연 어느 나라의 정부인가”라고 질타했다.
계속해 “정상적인 국가라면 미국 대사를 초치하여, 엄중히 책임을 묻고 미국 정부의 사과와 재발 방지 약속을 받아내는 것이 상식”인데 “불법적인 도감청에 항의조차 못 하는 윤석열 정부의 굴종적인 대미 외교정책이 개탄스럽다”라고 비판했다.
또한 전국민중행동은 미국의 불법적인 도청행위는 주권 침해라면서 이에 대한 사죄와 재발 방지를 촉구했다.
전국민중행동은 미국 정보원이 대한민국 정부를 불법 도청하고 있는 모습을 표현하는 상징의식을 한 뒤에 기자회견을 마쳤다. 한편 이날 서울 이외에 부산과 울산에서도 미국의 불법 도청을 규탄하는 기자회견이 진행됐다.
▲ 울산에서 열린 기자회견 모습. [사진제공-전국민중행동]
그리고 각계는 미국의 불법적인 도청 사실이 폭로된 이후 미국의 행태와 미국에 항의조차 못 하는 윤석열 정부를 규탄하는 성명과 논평을 발표했다.
민주노총은 지난 10일 논평을 통해 “(미국의 불법 도청 문제는)과거 몇 차례의 폭로와 적발로 인해 미국 정부의 공식적인 사과와 중단 약속이 있었음에도 이는 진정성 없는 말뿐이었음이 드러난 것”이라며 미국의 행태를 비판했다.
그러면서 “자국민의 안위와 경제적 이해득실 나아가 심각한 주권 침해 행위에도 미국과의 동맹 강화에만 집착해 즉각적인 항의조차 하지 못하는 윤석열 정부의 행태를 그 누가 이해하고 지지할 수 있을까”라고 윤석열 정부 행태를 꼬집었다.
함께 만드는 통일세상 평화이음도 같은 날 성명에서 “(미국의 불법 도청은) 절대로 묵과할 수 없는 명백한 주권 침해 행위”라면서 “자국의 전쟁 정책 수행에 한국을 끌어들이기 위해 도청이라는 불법 행위까지 일삼으며 안보에 위해를 가하는 미국을 과연 동맹이라 부를 수 있겠는가”라고 성토했다.
계속해 “미국은 불법 도청 주권 침해 행위의 진상을 철저히 밝히고 사죄하라. 그리고 우리나라의 주권을 침해하며 펼치는 전쟁 정책을 당장 거두라”라고 촉구했다.
(사)겨레하나도 이날 성명에서 불법적인 도청을 하는 미국을 향해 “깡패가 따로 없다”라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미국이 대통령실, 국가안보실까지 도감청하고 있다는 것은 한국 정부에 대한 미국의 정보활동이 일상적으로 들어와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라면서 “한국 정치 내부까지 깊숙이 개입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국민주권포럼은 이날 논평에서 “미국은 즉각 대한민국 정부와 국민에게 사과해야 하며, 불법 도감청 행위에 관련한 국제 규범에 따라 제재 조치를 받아야 하고, 재발 방지도 약속해야 한다”라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미국의 불법 도청을 문제 삼지 않는 윤석열 정부의 행태에 대해서는 “참으로 한심하고 주권국가로서 최소한의 자존마저 내팽개치는 것”이라며 “대통령실의 입장은 미국의 해명과 사과도 없이 굴욕적으로 한미정상회담에 매달리겠다는 것에 다름이 없다”라고 주장했다.
국민주권포럼은 “윤석열 정부의 연이은 외교 참사가 매국적인 외교 참화로 계속되고 있으며, 대한민국 주권이 미국의 손아귀에서 농락당하고 있다”라면서 “윤석열 정부는 한미정상회담을 구걸하지 말고 미국에 강력히 항의해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전국민족민주유가족협의회(이하 유가협)와 민주유공자법제정추진단이 11일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주최한 민주유공자법 제정 촉구 및 유가협 부모님 단식농성 돌입 기자회견에서 단식농성에 돌입할 예정인 장현구 열사의 부친 장남수 유가협 회장이 발언을 하고 있다. 2023.04.11 ⓒ민중의소리
민주유공자법 제정을 촉구하며 민주화운동 열사들의 부모들이 11일 기어코 곡기를 끊기로 했다. 국회 앞에서 천막농성을 벌인 지 이날로 552일째였다. 하지만 민주유공자법 제정을 논의할 국회에선 여전히 감감 무소식이다. 이런 상황에서 돌입하게 된 단식은 자식을 위해 부모가 할 수 있는 마지막 수단이나 다름 없었다.
전국민족민주유가족협의회(유가협)과 민주유공자법제정추진단은 이날 오전 국회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민주유공자법 제정을 촉구하기 위해 열사들의 부모들이 단식 농성에 돌입한다고 밝혔다.
한현우 민주유공자법제정추진단 상황실장은 “이제는 (민주화운동) ‘관련자’가 아니라 떳떳한 ‘국가유공자’로 내 자식과 내 남편과 내 형제자매들에게 새로운 이름을 주자고 싸워오고 계신다”며 “어쩔 수 없는 상황과 참담한 심정으로 80세, 83세, 85세 어르신들께서 곡기를 끊으신다고 한다”고 밝혔다. 그는 “안전하게 단식이 종료되길 바란다”며 “그 단식의 종료 시점은 민주유공자법이 통과되는 시점일 것”이라고 강조했다.
유가협은 1986년 창립 이후부터 ‘국가가 나서 민주화운동 과정에서 희생당하신 분들의 진상규명과 명예회복을 시켜야 한다’고 주장해왔다. 그 과정에서 422일간의 농성으로 2000년에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와 ‘민주화운동관련자 명예회복 및 보상심의위원회’를 출범시키면서 민주유공자법에 대한 기대도 높아졌다. 하지만 그로부터 20년이 훌쩍 넘는 시간 동안 민주유공자법은 국회에서 제대로 논의조차 되지 못하고 있었다. 매 국회 때마다 민주유공자법은 발의와 자동 폐기를 반복해왔던 것이다.
이번 국회에서는 2020년 9월 22일 더불어민주당 우원식 의원을 비롯해 의원 20명이 ‘민주유공자 예우에 관한 법률안’을 대표 발의했다. 이는 ‘민주화운동과 관련하여 사망 또는 행방불명, 상이를 입은 사람으로서 민주화운동 관련자 명예회복 및 보상 등에 관한 법률에 따라 민주화운동 관련자로 심의·결정된 사람(민주유공자)’을 예우 대상자로 규정하고 있다. 하지만 법안이 제출된 지 3년 만인 지난달 9일 소관 상임위원회인 정무위원회의 법안심의1소위에서 단 한차례 논의를 한 것이 전부이다. 그 뒤로는 아무런 소식이 없는 상태다. 열사들의 부모들이 애끓는 심정으로 결국 곡기를 끊기로 결심한 배경이다.
단식 농성은 장현구 열사의 아버지인 장남수(85) 유가협 회장이 시작한다. 다가오는 6월 10일 범국민 추모제가 열리는 날까지 유가협 회원들이 릴레이 단식 농성을 벌인다는 게 기본 계획이다.
전국민족민주유가족협의회(이하 유가협)와 민주유공자법제정추진단이 11일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주최한 민주유공자법 제정 촉구 및 유가협 부모님 단식농성 돌입 기자회견에서 고(故) 안치웅 열사 어머니 백옥심 여사, 고(故) 김귀정 열사 어머니 김종분 여사, 고(故) 김윤기 열사 어머니 정정원 여사가 눈물을 흘리고 있다. 2023.04.11 ⓒ민중의소리
장남수 회장은 “과거 독재 정권에서 우리 국민은 권리를 찬탈당하고 수십 년 동안 살았다. 그 과정에서 민주주의를 되찾기 위해서 많은 분들이 죽었다. 분신하고 투신하고, 고문으로 죽고 최루탄에 맞아 죽고 토끼몰이로 죽었다”며 “이처럼 죽은 분들과 부상을 당한 분들 만을 위해서라도 우선 민주유공자법을 만들어달라는 게 우리의 요구”라고 밝혔다.
장 회장은 “민주주의를 위해서 자기 몸을 불사르고 투신했던 분들 덕에 대한민국에 민주주의가 올 수 있었다”며 “그런데 왜 그들이 민주유공자가 되서는 안 되는가”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우리는 이 법을 제정할 때까지 농성을 계속할 것이고 단식도 계속하겠다”며 “이 법을 만들어서 우리가 열사들에게 진 빚을 갚자”고 목소리를 높였다.
장 회장의 결의에 찬 발언이 끝나자, 한 상황실장은 “오늘부터 장남수 아버님이 민주유공자법이 통과될 때까지 단식을 하시겠다고 하는 걸 저희들이 많이 말렸다”며 “마음이 무겁다”고 말했다.
유가족들의 단식 선언 소식을 듣고 각계 시민사회 인사들도 이날 국회 앞으로 한달음에 달려왔다. 이들은 “우리가 더 열심히 싸울 테니 단식을 하지 마시라”고 말렸지만 완강한 유가족들에겐 소용이 없었다.
장현일 민주유공자법제정추진단 단장은 “단식하시는 걸 많이 만류했다. 그런데 어느 어머님이 ‘자기가 이제 80세가 넘었는데 내가 언제 죽을지 모르고, 자식의 온전한 명예를 찾아주지 못하고 내가 죽어서 자식을 만나면 무슨 면목이 있겠냐’는 말씀을 하셨다”며 “그 말씀에 저희도 더 이상 만류할 수가 없었다”고 전했다. 그는 “아마 돌아가신 전태일 열사의 이소선 어머니, 박종철 열사의 박정기 아버지, 이한열 열사의 배은심 어머니도 똑같은 마음이셨을 것이라며 “함께 힘을 모으자, 6월 항쟁 (기념일) 이전까지 반드시 끝장 내자”고 호소했다.
이러다보니 단식 농성을 선언하는 기자회견 자리는 내내 숙연한 분위기였다. 80대 고령의 유가족을 거리로 내몬 것도 모자라 곡기까지 끊게 했다며 “입이 열개라도 할 말이 없다”, “죄송하다”는 것이었다. 곳곳에서 눈물을 훔쳤다.
특히 강민호⋅박태순 열사 추모사업회 회원인 정춘영 씨는 편지를 낭송하면서 눈물을 쏟아냈다. 그는 “자식들의 명예를 찾기 위해 자식들의 죽음을 역사에 남기기 위해 민주유공자법 쟁취를 위해 죽음을 각오하고 투쟁하겠다고 하신다. 민주유공자법이 제정되는 그날까지 그 길을 멈추지 않겠다고 하신다. 아직도 두 눈에 먼저 간 자식들의 얼굴이 선해 멈출 수 없다고 하신다”며 “저희는 할 말이 없다. 어머님, 아버님 죄송하다”고 말했다.
기자회견 참석자들은 유가족들이 하루 빨리 단식을 중단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잇따라 다짐했다.
박석운 한국진보연대 상임대표는 “80세가 넘은 고령의 부모님들께서 곡기를 끊고 노상 단식에 들어간다고 하는 말 듣고 몸둘 바를 모를 정도로 죄송하다”며 말문을 열었다.
박 대표는 “사실 우리나라가 이 정도라도 민주주의를 이야기하는 나라가 된 것은 바로 지난 군사독재 시절부터 민족민주운동에 몸을 바쳐 헌신하신 민족민주 열사들 덕분이었다. 그런데 이런 민족민주 열사들이 유공자로 민주유공자로 자리매김하지 못하는 것은 바로 아직도 우리 역사가 바로 서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며 “민주유공자법 제정은 역사를 바로 세우고 정의를 바로 세우는 우리의 투쟁의 중요한 출발점”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진작에 통과됐어야 하는 법이었다. 대표적으로 지연된 정의라고 생각한다”며 “이제는 끝내자. 그리고 내일이라도 모레라도 연세 많으신 우리 부모님들이 단식을 중단할 수 있도록 함께 힘을 모으자”고 호소했다.
이덕욱 전태일재단·민주정신계승연대 이사장도 “배은심 어머님은 얼마 전 돌아가시기 전까지 천막 농성장에 오셔서 민주유공자법을 꼭 만들어 달라고 우리의 손을 잡으셨다”며 안타까움을 감추지 못했다. 그는 “그런데 국회는 왜 20년이 넘도록 민주유공자법을 통과시키겠다고 약속해놓고 여태 지키지 않고 있는 것이냐. 그게 그렇게 힘드냐”며 “민주당 이재명 대표는 오늘 당장 당론으로 민주유공자법 국회 통과를 결정하라”고 촉구했다.
한성규 민주노총 부위원장도 “민주노총은 부모님들의 절규와 호소를 받아 안고 민주유공자법 제정을 위해서 힘차게 투쟁할 것”이라고 밝혔고, 조영선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회장 역시 “정말 참담하고 부끄럽고 어찌 할지 모르겠다”며 힘을 보태겠다고 다짐했다.
전국민족민주유가족협의회(이하 유가협)와 민주유공자법제정추진단이 11일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주최한 민주유공자법 제정 촉구 및 유가협 부모님 단식농성 돌입 기자회견에서 더불어민주당 김성주 의원이 고(故) 안치웅 열사 어머니 백옥심 여사와 대화를 나누고 있다. 2023.04.11 ⓒ민중의소리
야당 국회의원들도 다수 참석해 “죄송하다. 최선을 다하겠다”며 고개를 숙였다.
민주유공자법을 심의하는 국회 정무위원회 1소위원회 위원인 더불어민주당 김성주 의원은 “85년 구로연대 파업으로 구속된 안치웅의 친구”라고 자신을 소개하면서 “우리가 오늘 누리고 있는 이 자유와 민주주의가 안치웅 같은 젊은이들의 희생과 죽음으로 이뤄졌다는 것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고 말문을 열었다.
김 의원은 “그런데 여전히 민주화 열사들이 제대로 유공자로서 인정받고 예우받지 못하는 현실에 놓여 있기도 하다”며 “이 민주화 유공자법은 여러 번 발의된 법안이다. 단 한 차례도 제대로 심의되지 못했다. 이번에 처음으로 국회 정무위원회에서 처음으로 논의를 시작할 따름이다”라고 설명했다.
그는 “이 법에 대해 강한 반대가 있다. 반대하는 이유도 여러 가지다. 그러나 우리는 충분히 논의하면 합의에 이를 수 있다고 확신한다”며 “하지만 국민의힘은 논의 자체를 지연시키거나 기피하거나 질질 끌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어 “이 법의 통과를 책임져야 할 저희들 입장에서는 대단히 미안하고 참담하다”며 “이 법을 통과시키겠다는 저희들의 약속에 대한 기대를 더이상 참을 수 없어서 곡기를 끊으시는 것에 대해서 참담하고 죄송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김 의원은 “전 말리고 싶다”며 “우리가 할 테니 제발 좀 더 기다려 달라. 참아 달라”고 호소했다. 그는 “저희들에게 용기가 부족할 수도 있고 저희들이 더 과감하게 처리하지 못하는 탓도 있다. 그러나 저희들은 끝까지 우리들이 해야 될 과제에 대해서 한순간도 소홀함이 없도록 하겠다”며 “빠른 시간 안에 국회 논의를 진전시켜서 이 법이 통과될 수 있도록, 더 이상 이와 같은 애절한 호소와 고통이 이어지지 않도록 하겠다”고 다짐했다.
이에 한 상황실장은 “국민의힘과 협의하고 합의해서 될 수 있는 법안이 아니다. 국민의힘은 민주유공자법을 ‘운동권세습법’이라고 이야기하고 있다. 하지만 법안을 조금만 들여다보면 얼토당토않는 궤변인 것을 알 수 있다”며 “민주당과 야4당은 힘을 모아서 단독 처리를 해달라”고 요구했다.
유가협과 민주유공자법제정추진단은 기자회견문을 통해 “민주주의를 완성해 나가는 과정에 당신을 버리고 우리 모두를 구했던 열사⋅희생자들. 그런 자식과 남편, 형제⋅자매들이 떠낸 뒤에 그들의 뜻을 이어 남은 인생을 민주화의 완성을 위해 싸워왔던 유가족들이 살아 있을 때 법이 제정되어야 한다”며 “국민의힘은 민주유공자법 제정 반대 입장을 철회하고, 국회는 민주유공자법을 지금 당장 제정하라”고 촉구했다.
전국민족민주유가족협의회(이하 유가협)와 민주유공자법제정추진단이 11일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주최한 민주유공자법 제정 촉구 및 유가협 부모님 단식농성 돌입 기자회견에서 단식농성에 돌입할 예정인 장현구 열사의 부친 장남수 유가협 회장 등 열사의 부모들과 참석자들이 구호를 외치고 있다. 2023.04.11 ⓒ민중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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