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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니씽 벗 문재인'?…尹대통령 "전 정권서 무리하게 추진된 탈원전 폐기"

전날 52시간제, 文케어 되돌리기 이어 이번엔 탈원전…연일 'AB 文' 행보?

 
 

 

 

윤석열 대통령이 14일 문재인 정부의 탈핵 정책을 "무분별한 탈원전 정책"이라고 비판하며 "2022년은 원전(핵발전) 산업이 재도약하는 원년으로 기억될 것"이라고 했다.

 

윤 대통령은 이날 경북 울진에서 열린 신한울 1호기 준공 기념행사에서 "정부 출범 이후 합리적인 에너지 정책을 수립하기 위해 지난 정권에서 무리하게 추진된 탈원전 정책을 폐기하고, 원전 정책을 정상화했다"며 "원전 생태계 복원에 더욱더 박차를 가하겠다"고 축사를 통해 밝혔다.

 

윤 대통령은 이날 한파로 인한 지자체 비상근무 상황 등과 관련, 당초 참석하려던 일정을 취소했으며 이창양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이 대통령 축사를 대독했다. 

 

윤 대통령은 "신한울 1호기는 우리나라가 독자 개발한 APR1400노형으로 계측제어설비와 같은 주요 기자재 핵심기술을 완전 국산화한 최초의 원전"이라고 평가했다. 

 

그러면서 "제가 각국 정상을 만날 때에도 APR1400 브로슈어를 들고 원전 시공의 신속성, 건설 비용의 합리성, 원전의 안전성에 대해 침이 마르도록 자랑을 해왔다"고 말했다. 

 

윤 대통령은 이어 "원전 업계를 위해 올해 1조 원 이상의 일감과 금융, R&D를 긴급 지원했다"며 "내년에는 그 규모를 2조 원 이상으로 더욱 확대할 것"이라고 했다. 또한 "4천억 원 규모의 신한울 3‧4호기 건설 계약이 체결되는 내년 상반기에는 원전건설 시장이 더욱더 활기를 띨 것"이라고 했다. 

 

아울러 "우리나라의 독자적인 소형모듈원전(SMR) 개발에 총 4천억 원을 투자해 미래 원전시장의 주도권을 확보해 나갈 것"이라고 했다. 

 

윤 대통령은 "울진에서 신한울 3‧4호기 건설이 다음 달부터 본격적으로 개시된다"며 "에너지 안보 강화와 탄소중립을 달성할 수 있는 수단으로 원전을 적극 활용할 것"이라고 했다. 정부는 신한울 3·4호기는 환경영향평가 등의 절차를 줄여 2024년 착공을 추진하고 있다. 

 

이어 윤 대통령은 핵발전 안전성 논란을 의식한 듯 "운영 허가가 만료된 원전의 계속 운전은 안전성 확보를 전제로 속도감 있게 진행하고, 원전에서 발생하는 고준위 방폐물은 특별법 제정과 핵심기술 확보를 통해 책임지고 관리해 나가겠다"며 "원전을 건설하고 운영하는 모든 과정에서 안전을 최우선으로 하여 추진해나갈 것"이라고 덧붙였다.

 

윤 대통령은 전날 국무회의에서는 주 52시간제 무력화와 '문재인 케어' 되돌리기를 시사하기도 했다. 야당에서는 "애니싱 벗 문재인(Anything but Moon), 즉 전 정권 부정 말고 대통령이 돼서 뭘 하겠다는 목표가 있기는 했는지 의문"(조응천 민주당 의원. 이날자 <한겨레> 인터뷰)이라는 비판이 나왔다. 김은혜 홍보수석은 당선인 대변인 시절이던 지난 3월 28일 윤 당시 당선인의 인수위 워크숍 발언을 소개하며 "'ABM' 같은 가르기는 않겠다"고 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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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족들이 정치꾼? 너무 억울해서 모였어요"

[유족 인터뷰] 고 송채림씨 부친, 이태원 참사 유가족협의회 송진영 부대표

22.12.14 20:10l최종 업데이트 22.12.14 20:10l
큰사진보기10.29이태원참사 유가족협의회 창립 기자회견이 10일 오후 서울 중구 달개비에서 열렸다.
▲  10.29이태원참사 유가족협의회 창립 기자회견이 10일 오후 서울 중구 달개비에서 열렸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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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10월 29일 오후 10시 15분 경 서울의 이태원 한 골목에서 158명이 압사당하는 대형 참사가 발생했다. 이후 유가족의 삶은 그 날짜에 아직 멈춰있다. 해가 뜨고 지기를 반복할 뿐 여전히 10월 29일이다. 참사 발생 이후 40여일이 지나는 동안 유가족은 슬픔을 넘어 분노를 이야기하게 되었다. 대통령은 끝내 유족들에게 진심어린 사과를 하지 않았고, 누구 한명 제대로 책임지겠다는 사람은 나타나지 않았다.

심지어 유가족을 향한 공격과 가짜뉴스마저 횡행했다. 유족들은 억울함을 풀기위해서, 진실을 밝히기 위해 지난 10일 유가족협의회를 만들었다. 뿔뿔이 흩어져 있던 그들은 모이고 보니 놀랍게도 모두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었다. 지난 11일, 고인이 된 송채림씨의 방에서 그의 부친이자 10.29 이태원 참사 유가족협의회 부대표인 송진영씨를 만났다. 대전 지역 집, 고인의 방은 생전 채림씨가 사용하던 그 모습 그대로였다.

다음은 송진영 부대표와의 일문일답. 

"하고 싶은 게 많았던 아이... 그 방을 정리할 수가 없다" 
 

다재다능하고 꿈 많은 청년이었던 고 송채림씨
▲  다재다능하고 꿈 많은 청년이었던 고 송채림씨
ⓒ 송진영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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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인이 된 송채림씨는 2002년에 태어난 월드컵둥이에 패션디자이너를 꿈꾸던 다재다능한 딸이라고 언론 인터뷰에서 밝히셨어요. 채림씨는 어떤 딸이었습니까?

"세상 어느 부모가 다르겠어요. 가장 귀하고, 가장 예쁘고, 내 목숨을 주어도 바꾸기 싫은 아이입니다. 지금 월드컵이 열리고 있는데요. 우리 채림이는 2002년 4강 신화를 썼던 그 해에 태어난 아이였어요. 만으로 스무 살, 우리 나이로 스물 한 살이죠. 하고 싶은 게 진짜 너무 많은 아이였어요. 벌써 자기가 쇼핑몰을 만들어서 운영하고요. 또 짬이 나면 백화점에서 아르바이트도 하고요. 주말에는 도예 공방 가서 도예를 배우고, 시간 나는 대로 집에서 그림도 그리고 댄스(교습)도 하고요. 21살짜리인데 하는 일이 너무 많았어요."

- 혹시 이 방이 채림씨가 쓰던 방인가요? 작품들이 정말 많네요. 그림도 있고요.

"여기 저기 창가에 놓여 있는 도자기는 다 우리 애가 만든 거예요. 여기 옷이 고등학교 다닐 때 첫 작품이고요. 저쪽 방 작업실에 가면 대회에서 수상한 작품도 있고요. 쇼핑몰을 운영하니까... 정리 못한 재고들이 그냥 있어요. 이 공간이 다 우리 애가 쓰던 공간이에요. 하나도 정리를 못 하고 있어요."
   
- 사고 소식을 듣고, 서울에 갈 때 많이 힘드셨죠.

"기차 타고 올라가면서 설마 설마 했어요. 어느 부모가 믿을 수 있겠어요. 축제에 놀러 갔던 애가... 어떻게, 어떤 부모가 그걸 인정할 수 있겠어요. 지금도 길거리를 지나다가도 눈물이 쏟아지면 꼼짝도 못하고 한 10분씩 그냥 서 있어요. 이런 걸 조금이라도, 조금이라도 이해를 한다면 정부에서 이렇게 하지는 못할 거예요. 저희들은 아이들이 그렇게 된 것도 너무 가슴 아프지만, 지금 정부가 하고 있는 행태가 그거 못지않게 더 가슴 아픕니다. 왜 우리 유족들을 정치꾼으로 몰아가면서 왜곡을 하는지 모르겠어요.

우리가 유족이 되고 싶어서 유족이 됐습니까? 그런데도 정부가 국민들한테 한다는 얘기는 '정부에서 조치하고 있다. 유족들을 만나고 있다. 대화하고 있다'예요. 그 중에 진실인 게 하나도 없습니다. 저희와 함께 하는 유족들이 170여 분 되는데, 그중에 정부와 그런 대화를 나눠본 분이 한 명도 없어요."

"대통령 사과가 시작... 그래야 이상민·오세훈 등도 자세 바꿀 것" 
  
큰사진보기2022년 12월 12일 '10·29 이태원 참사 대전대책회의' 출범 대전지역 종교시민사회단체, 유가족 공동 기자회견에서 발언중인 송진영 이태원 참사 유가족협의회 부대표
▲  2022년 12월 12일 '10·29 이태원 참사 대전대책회의' 출범 대전지역 종교시민사회단체, 유가족 공동 기자회견에서 발언중인 송진영 이태원 참사 유가족협의회 부대표
ⓒ 임재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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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참사 이후 유가족분들께서 모이는 데 시간이 꽤 오래 걸렸습니다. 

"유가족분들 모으는 데도 굉장히 힘들었습니다. 처음에 기사 난 거 보고, 유족들이 알음알음 알아봐서 열 분 정도가 지난달 15일에 모였어요. 그리고 성명서를 냈어요. 유가족 성명서를 민변하고 같이 냈어요. 그 기사를 보고 알음알음 또 찾아 오셨어요. 현재 돌아가신 분 기준으로 97명의 유가족 170여 명이 모인 거예요. 그동안 얼마나 억울하고 답답했겠어요. 

근데 '명단 공개하면 패륜이다'라는 등 말도 안 되는 이유를 들어서, 유족들을 못 만나게 했어요. 시신을 40군데가 넘는 곳에 다 뿔뿔이 흩어놨어요. 이런 상황에서도 억울함이 심하니까 모이는 거예요. 내 새끼 내 자식들 억울함 풀어주려고요. 언젠가 다 공개가 되겠지만, 가슴 아픈 사연들이 너무 많습니다."

- 가슴 아픈 사연들이 많을 것 같습니다.

"저희 채림이도 친구들과 함께 있었어요. 애가 사고를 당하고 나서 (채림이는) 그때 이미 주검으로 변했는데, 그 옆을 지켜주던 친구들을 당국이 귀가 조치해서 내쫓았어요. 그래서 저희는 12시간 동안 이리저리 돌다가, 결국 경기도 평택에서 채림이를 찾았어요. 그동안 무슨 일이 있었는지도 몰라요. 알려주지도 않고요. 

돌아가신 어떤 다른 분은 그 옆에 같이 있던 친구가 '얘 살아있다고, 숨 쉰다고 도와달라'고 그랬는데도 현장에서 분리시켰다고 해요. 결국에 한 시간이 넘어서 사망한 경우도 있어요. 조치를 못 받고 사망했어요. 이런 사연들 아마 국민은 전혀 모를 거예요."
  
큰사진보기고인이 된 송채림님의 방에는 생전에 쓰던 물건이 그대로 놓여있었다. 고인이 생전에 직접 그린 그림들
▲  고인이 된 송채림님의 방에는 생전에 쓰던 물건이 그대로 놓여있었다. 고인이 생전에 직접 그린 그림들
ⓒ 김선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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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약 의혹 부검을 하자고 했다는 얘기도 있습니다. 

"'마약 부검' 이야기를 들으신 분들 많아요. 이게 애초부터 마약 수사에 초점이 잡히면서, 그래서 통제하는 경찰이 투입되지 않아 발생한 사고잖아요. 그런데 그 유가족들한테 와서 마약 부검을 하자는 게 인간이 할 말입니까?"

- 정부가 유가족과 계속 연락을 하고 있나요. 

"공무원이 연락하던 것은 장례식과 동시에 끝났어요. 지난주에는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 연락도 종료됐어요. 그걸 없애려면 당연히 유족들한테 의견을 물어봐야 될 거 아니에요? 그런데 거기에 대해서 말을 들어본 사람도 없고요. 종이 한 장 날아온 적이 없어요. 우리 유족들은 다른 것보다도 대통령의 사과, 정부의 사과, 진심 어린 사과가 시작이라고 봅니다. 이상민 해임 건의안은 대통령이 거부하면 끝입니다. 탄핵 소추안을 발의해도 정치적인 책임, 도의적인 책임 이런 거를 가지고는 헌법재판소에서 인용되기가 힘들어요."
  
큰사진보기스무살이었지만 직접 쇼핑몰을 운영할 정도로 패션에 관심이 많고 다재다능했던 故 송채림님
▲  스무살이었지만 직접 쇼핑몰을 운영할 정도로 패션에 관심이 많고 다재다능했던 故 송채림님
ⓒ 송진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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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부가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건가요?

"(제가 보기엔) 뻔뻔한 거짓말들을 하고 있어요. 사고 나고 바로 이틀 후에 서울시에서는 행안부에다 희생자 명단을 줬다고 했잖아요. 그런데 행안부 장관은 한 달이 지난 후에도 명단이 절대 없다고 했죠. 왜 장관인 자기 말을 못 믿느냐면서요. 너무 황당하지 않나요? 거짓말, 거짓말, 모두 다 국민을 호도하는 거짓말이에요.

국민들은 원스톱 지원이니 다 지원된다고 알고 계시잖아요. 전혀 아닙니다. 심지어 보상금 이야기를 하는데요. 그것도 정치적인 거예요. 여론을 호도해서 아주 악질적인 유가족으로 몰아가려는 것 같아요. 저희들이 처음 기자회견을 한 날에 대통령의 발언이 보도됐어요. 대통령의 입에서 처음 보상 이야기가 나옵니다. 이건 아주 정치적인 거예요. 유족 중 누구 한 명도 보상 얘기 꺼낸 사람 없습니다."

"당해보니 알겠다, 세월호 유족에 내가 무심했구나" 

- 윤석열 정부가 이 문제를 정치적으로 해석하고 있다는 지적이 있습니다. 

"저희는 평범한 소시민들이에요. 정치도 잘 몰라요. 우리 지역에 해당 국회의원이 누군지도 모르시는 분들도 많아요. 근데 어떻게 저희가 정치색을 띠고 뭐를 하겠습니까? 그런데 우리가 억울함을 좀 밝혀달라고 얘기를 하면 (그걸로) 정치적이라고 하고, 그쪽으로 몰고 가요. 그러면 우리 유족들은 아무 말도 말라는 건데요. 우리 애들이 그렇게 됐는데, 그렇게 억울한데, 아무 말도 하지 말고 정부가 시키는 대로만 가만히 있습니까?

답답해서 소리 내는 거예요. 그걸 어떻게 정치적이라는 식으로 몰고 갑니까? 어제도 권성동 의원이 '세월호의 길을 따라가지 마라' 말했지요. 세월호가 어떻게 됐는데요? 저희는 그것도 몰라요. 얘기를 한번 해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사실 저희 유족들도 세월호 유족들이 지금 어떻게 하고 계신지 몰라요. 원래 대부분의 국민들이 그렇잖아요. 뉴스 한 번 나오면 그걸로 그냥 끝이잖아요. 저희도 다 그런 시민이었어요. 세월호 유가족들이 어떻게 지내고 있는지, 뭘 그동안 했는지도 몰라요. 우리가 너무 무심했구나. 당해 보니까 알겠어요."
  
큰사진보기고인의 방은 생전에 쓰던 모습 그대로 남아있었다. 고인이 직접 빚은 도자기
▲  고인의 방은 생전에 쓰던 모습 그대로 남아있었다. 고인이 직접 빚은 도자기
ⓒ 김선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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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치권의 대응에 많이 속상하실 것 같습니다.

"장례가 끝남과 동시에 아무도 관심이 없어요. '명단 공개는 패륜', 그 말에 언론까지 취재도 안 해요. 그게 왜 패륜입니까? 말도 안 되는 거예요. 그게 바로 정치적인 거예요. 유족들도 그것 때문에 불안해서 못 나오셨던 분들이 굉장히 많아요.

그래서 제가 먼저 공개하자고 그랬어요. 우리 채림이가 나는 너무 자랑스러우니까요. 누구든지 볼 수 있게 공개한다고요. 여기저기 공개하고 다 했습니다. 나한테는 너무나 자랑스럽고 소중한 그런 자식인데, 왜 창피해 하고 왜 숨겨야 됩니까? 그런 프레임 자체가 너무 정치적인 거죠.

정진석 (국민의힘) 비대위원장에게 처음 찾아갔더니 앞에서는 눈물을 글썽이며 '다 들어드리겠다. 정부와 협상해보겠다'라고 했어요. 이러고서는 그 다음 날 나와서는 '유족을 대표할 수 없다'는 식으로 이렇게 말을 바꿨어요. 너무 뻔뻔하지 않아요?

우리 유족들이 그때 10여 분 계셨는데요. 우리 중 누가 유족을 대표한다고 그랬습니까? 정진석 비대위원장의 그 말에 분노해서 이제 유가족협의회를 만들었어요. 이제 정 비대위원장이 뭐라고 하는지 한 번 듣고 싶습니다."
  
"유가족이 원하는 건 진상규명과 진정한 사과" 
 
큰사진보기패션디자인으로 상을 받은 생전 송채림씨 모습
▲  패션디자인으로 상을 받은 생전 송채림씨 모습
ⓒ 송진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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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가족분들께서 현재 원하는 것이 있다면요?

"저희가 원하는 게 어려운 것은 아닙니다. 진정한 사과와 그날 그 현장에서 있었던 우리 아이들이 왜 목숨을 잃어야만 했는지에 대한 진상 규명을 원합니다. 잘못한 사람들이 있으면 벌을 받는 게 기본 상식 아닙니까? 이상민 장관 지금도 뻔뻔하게 헛소리들 하고 다닙니다. 서울시장은 들어가서 숨어가지고 나오지도 않아요. 그리고 앞으로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게끔, 그렇게 만들어야 할 거 아닙니까? 저희들이 원하는 것은 그것뿐이에요.

학교 다니던 아이들이, 열심히 직장 다니던 아이들이 한순간에 길바닥에서 주검이 됐습니다. 유족이 원하는 건 진정한 사과 한 마디, 그날 있었던 진상을 밝혀주고, 잘못한 사람이 있으면 처벌해 주고, 우리나라에 다시는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제도적으로 만들어주는 것입니다. 어느 인터뷰든 들어보세요. 그거 외에는 바라는 거 하나도 없습니다."

- 49재가 다가오고 있는데요. 그 날 유가족분들과 시민대책위에서 추모제를 여신다고 들었습니다.

"돌아오는 16일 금요일이 아이들 49재입니다. 서울 이태원 앞에서 모두 모여서 49재를 진행하려고 합니다. 시민 여러분들, 국민 여러분들 많이 도와주세요. 저희는 여러분들의 도움이 진짜 절실합니다. 저희 유족들이 할 수 있는 일은 오로지 그거 하나뿐입니다."

- 진상규명의 길을 결심하셨습니다. 얼마가 걸릴지 알 수 없는 힘든 일인데요. 두렵거나 막막하지는 않으세요. 

"어제(10일) 출범식 기자회견하면서도 결국 119구급차가 왔었어요. 어머니 한 분이 쓰러지셔서요. 기자회견 자리 자체가 아비규환이었어요. 어머니들 울음 때문에요. 하지만 억울하기 때문에, (진상규명 시일이) 언제가 되더라도 끝까지 갈 겁니다. 자식 잃은 부모가 못 할 게 뭐가 있겠습니까? 거기에 모이셨던 170분 모두 다 같은 의지, 같은 생각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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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남 직장인들…“너도나도 윤석열 퇴진 선언 참여”

김영선 통신원 | 기사입력 2022/12/14 [2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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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윤석열 퇴진 100만 범국민선언’에 참여하는 시민들.  © 김영선 통신원


최근 ‘윤석열 퇴진 100만 범국민선언’(아래 범국민선언)에 참여하는 국민이 느는 속에서 직장인들의 높은 참여가 눈길을 끈다. 

 

매서운 바람이 부는 14일, 강남촛불행동(아래 강남촛불)은 퇴근 시간에 맞춰 서울 강남구에 있는 선릉역 앞에서 촛불집회를 진행했다.

 

강남촛불의 김지선 씨는 “불과 한 시간 만에 3백여 명이 범국민선언에 참여하는 열띤 분위기가 이어졌다. 집회와 행사를 정리하는 순간조차도 선언에 참여하려는 분들이 계속 오셨다”라고 현장의 분위기를 전했다. 

 

이어 “앞으로도 열심히 범국민선언과 촛불집회를 병행해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 김영선 통신원

 

한편 범국민선언은 지난 13일 기준으로 17만 3천 명을 넘어서며 가속도가 붙는 상황이다. 

 

서울지역에서는 강남촛불을 비롯해 강북과 용산 등지에서 활발하게 범국민선언이 진행되고 있으며 전국 각 지역에서도 촛불집회와 함께 범국민선언 참여 열기가 한껏 고조되고 있다.

 

  © 김영선 통신원

 

  © 김영선 통신원

 

  © 김영선 통신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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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태원 참사 생존자의 죽음 경향·한국·한겨레 “정치의 책임”

[아침신문 솎아보기] 청소년 생존자 죽음…“생전 2차가해 발언에 분노” 유가족들, 영정과 위패 놓고 분향소 설치

10·29 이태원 참사 희생자들의 영정이 놓인 합동분향소가 14일 서울 녹사평역 앞 광장에 차려졌다. 참사 47일 만이다. 이태원 참사 생존자인 청소년이 숨진 채 발견되면서 피해자 중심의 참사 수습과 심리적 지원이 이뤄지지 않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15일 일부 신문은 이들 사건을 중점적으로 다뤘다.

10·29 이태원 참사 유가족협의회와 이들을 지원하는 시민대책회의는 14일 서울지하철 녹사평역 3번출구 앞 광장에 시민분향소를 마련했다. 분향소에는 유족이 동의 뜻을 밝힌 희생자 70여명의 영정과 위패가 안치됐다. 숨진 158명 중 76명의 영정사진과 이름이 분향소에 놓였고, 16명은 이름만 공개했다.

경향신문은 “지난 10일 출범한 유가족 협의회는 창립 기자회견에서 정부에 참사 피해자들끼리 소통할 통로와 희생자 추모공간을 마련해달라고 요구했다”며 “그러나 정부는 지금까지 별다른 응답을 하지 않았고, 이에 유가족협의회가 자체적으로 분향소 설치에 나선 것”이라고 밝혔다.

▲15일 한국일보

▲15일 아침신문 갈무리

경향신문은 “정부는 참사 이튿날인 지난 10월30일부터 11월5일 밤 12시까지를 국가애도기간으로 선포했다. 서울 시내에는 30여곳의 합동분향소가 설치됐다”며 유가족들의 의사 확인 없이 분향소를 차렸고, 명칭도 ‘이태원 사고 사망자 합동분향소’라 밝혔다가 애도기간 마지막 날에야 ‘사고’를 ‘참사’로 바꿨다고 했다.

유가족들이 헌화를 마친 뒤 시민들이 추모했다. 한 유족은 “우리들이 아이들 찾아 헤맬 때 용산구청, 경찰서, 행안부, 대통령실, 저 아이들 158명 얼굴 눈동자 똑바로 보십시오. 우리 아이들을 잊지 말아주세요”라고 말했다고 한겨레는 전했다. 극우단체 회원들이 유튜브 생중계를 하며 2차 가해를 가하기도 했다. 한국일보는 “분향 도중 보수단체 회원 등 일부 시민이 욕설을 퍼붓다 격분한 유족 측 관계자와 언성을 높였다”고 했다.

▲15일 한겨레

▲15일 동아일보

이태원 참사를 겪은 고등학생 A군은 지난 12일 서울 마포구의 한 숙박업소에서 홀로 숨진 채 발견됐다. 외부 침입 흔적이나 범죄 혐의점, 유서는 업었다. A군은 10월29일 참사 당일 친구 두 명을 잃었다. 서울시교육청은 A군이 교내 심리 상담과 병행해 매주 두 차례 정신과 치료를 받았다고 밝혔다. 한국일보는 “이후 학교에 복귀했지만 상당한 어려움을 겪은 것으로 알려졌다”고 했다.

한국일보는 “국가적 비극을 정쟁화하고 온-오프라인에서 이뤄지는 2차가해도 독약”이라며 “이태원 참사 역시 이태껏 책임지는 고위 공직자 하나 없는 데다, ”나라 구하다 죽었느냐“며 희생자들을 향해 막말을 퍼붓는 정치인까지 나오는 실정”이라고 했다.

▲15일 한국일보

경향신문은 “A군은 특히 악성 댓글에 상처를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A군 어머니는 이날 MBC와 인터뷰하며 ‘아들이 11월 중순 정도에 울면서 얘기한 적이 있다. 연예인 보러 갔다가 죽은 것 아니냐고 모욕하는 댓글을 보면서 굉장히 화를 많이 내더라’고 했다”고 했다.

한겨레는 이 사건을 다루며 “생존자 및 유족에 대한 심리치료와 상담 중요성이 부각되고 있다”며 “트라우마를 겪는 이들은 치료·상담을 거부하는 경우도 많아 정부의 적극적 개입이 필요한 상황인데, 국민의힘에서 쏟아지는 막말과 2차 가해가 오히려 상처만 키우고 있다”고 했다.

한겨레에 따르면 수도권을 관할하는 국가트라우마센터의 경우 심리상담을 제안한 유족·부상자·목격자 620여명 가운데 12%가 상담을 거절했다. 한겨레는 “정신건강 ‘고위험군’인 생존자들 중 적지 않은 이들이 아무런 치료와 상담을 받지 않고 있는 상태일 것으로 추정된다. 연락처가 없는 이들한테는 상담 권유조차 못하는 상황”이라고 했다.

▲15일 경향신문

경향신문도 “참사를 정쟁적 사안으로 대하는 여권의 태도, 거기에서 비롯된 일부 여권 인사들의 막말이 제대로 된 수습과 치유를 저해하고 유족과 생존자의 심리적 외상을 키운다는 지적도 나온다”고 했다.

이태원 참사 유가족협의회는 전날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국민의힘 권성동·송언석 의원의 막말을 비판하며 “최근의 막말이 국민의힘 공식 입장인지”를 물었다. 윤석열 대통령의 측근인 권성동 의원은 유족들이 협의회를 꾸리자 “세월호처럼 정쟁으로 소비되다가, 시민단체의 횡령수단으로 악용될 가능성이 있다”고 막말을 했다. 송언석 의원은 근거 없이 참사 희생자와 마약 관련성을 언급해 유족들의 거센 반발을 불렀다.

경향신문은 사설 ‘이태원 참사 10대 생존자의 죽음, ‘애도 없는 정치’의 책임’에서 “온전한 회복에는 사회의 지지가 필요하고, 진정한 애도는 직무유기에 대한 책임 규명과 사과에서 출발했어야 한다”며 “그러나 서울 시내 중심가에서 158명이 숨진 참사가 박근혜 정권의 세월호 참사처럼 정치적 후폭풍을 낳을 것을 우려한 정부·여당은 파장 축소에만 급급했다. 유족들이 모이는 것을 극구 꺼리던 정부는 참사 발생 한 달 만에 일방적으로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를 해체했다”고 했다.

경향신문은 “이러한 2차 가해가 노리는 것은 피해자를 침묵시킴으로써 자신들의 책임을 회피하는 일”이라며 “너무 늦었지만 지금이라도 정치가 답할 차례다. 대통령은 공식 사과하고, 책임자를 경질하고, 생존자와 유가족에 대한 지원을 늘려야 한다”고 했다.

▲경향신문 사설

협의회와 시민대책회의는 16일 참사 49재를 맞아 오후 6시부터 참사 현장을 비롯해 부산, 대구, 광주 등 전국 13개 지역에서 시민추모제를 개최할 예정이다. 대한불교조계종도 같은 날 오전 서울 종로구 조계사 대웅전 앞에서 ‘10·29 참사 희생자 추모 위령제(49재)’를 봉행한다.

윤 “문케어 폐기”에 “목욕물 버리려다 아이까지”


윤석열 대통령이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 정책인 ‘문재인 케어’ 폐기를 공식화한 것을 놓고 신문들이 전날에 이어 사설을 냈다. ‘문재인 케어’는 환자가 100% 부담하던 3800여개 진료 항목에 단계적으로 건보를 적용하는 정책이다. 일부 신문은 ‘건보 지출 증가’를 이유로 윤 대통령의 발언을 뒷받침했다. 지출이 곧 환자 입장에선 보장성 강화이자 의료비 부담 경감이라는 점은 언급하지 않았다.

윤 대통령은 13일 국무회의에서 ‘문재인 케어’를 “포퓰리즘 정책”으로 규정하면서 폐기를 공식화했다. 윤 대통령은 “지난 5년간 보장성 강화에 20조원 넘게 쏟아부었지만 정부가 의료 남용과 건강보험 무임승차를 방치했다”고 말했다.

▲15일 한겨레

한겨레는 사설에서 “보장성 강화(보장률 상승)는 곧 국민의 의료비 부담이 낮아졌다는 걸 의미”한다며 “지금처럼 ‘지출 효율화’만 강조하다가는 가뜩이나 취약한 건보 보장성을 더 후퇴시킬 가능성이 높아 우려가 적잖다”고 했다.

한겨레는 “2017년 62.7%였던 건보 보장률(총 진료비 대비 건보 부담 비율)이 2020년 65.3%로 높아졌다. 특히 의료비 부담이 큰 중증질환과 아동·노인·저소득층에 대한 보장성이 상대적으로 더 강화됐다”고 했다. 그러면서 “‘문재인 케어’의 목표는 보장률을 70%까지 올리는 것이었으나, 목표 달성에 실패했다”고도 했다.

한겨레는 “(윤석열 정부가) ‘지출 조정’만 내세울 뿐, 건보 재정 확충을 통해 보장성을 높이려는 의지가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라며 “재정 위기를 거듭 강조하면서도 ‘건보 국고 지원’(보험료 예상수입액의 20%) 의무 이행에 대해선 전혀 언급하지 않는 게 단적인 예”라고 했다. 그러면서 “한국의 건보 보장률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평균(80%)과 견줘 여전히 낮다. ‘재정 효율’을 이유로 보장성을 낮출 때가 아니라는 얘기”라고 밝혔다.

한겨레는 ‘팩트체크’ 코너에서 윤 대통령의 건보 재정 파탄 발언을 검증했다. 한겨레는 재정 누수가 없는 것은 아니라면서도 “윤석열 정부가 들어선 이후 감사원이 내놓은 보고서에는 문케어로 인한 재정 누수 금액을 2천억원으로 추산했다. 이는 건보 재정에서 한해 진료비로 지출하는 약 100조원의 0.2%에 불과하다”고 했다.

▲15일 한겨레

서울신문은 문재인 케어가 건보 근간을 위협한다고 주장하면서 이 근거로 ‘건보 지출 증가’를 들었다. 건보 지출 증가가 국민들에게는 곧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와 의료비 부담 경감이라는 점은 언급하지 않았다.

▲15일 서울신문

서울신문은 사설에서 “문케어 추진 이후 건보 지출 증가는 심각한 수준”이라며 “올해 상반기에만 건보 가입자의 진료비 총액이 50조원을 넘었고 연말까지 100조원을 넘길 게 확실시된다”고 했다. 그러면서 “보장성 확대로 불필요한 검사가 남용되고 의료쇼핑이 횡행한 탓이 크다”고 주장했다.

 

 김예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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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드 코로나' 시작한 중국 대혼돈…때아닌 '황도 통조림' 사재기도

'의료 자원 부족' 호소에도 발열 진료소 긴 줄…전문가 추정 확진자 수 中 공식 통계 4배 달해

김효진 기자  |  기사입력 2022.12.13. 17:22:46 최종수정 2022.12.14. 08:02:44  

 

중국이 '백지 시위' 뒤 엄격한 방역 조치를 빠르게 해제하고 있는 가운데 급격히 전환된 메시지에 진료소 방문이 폭증하고 황도 통조림 사재기가 횡행하는 등 주민들은 혼란을 감추지 못했다. 방역 완화 이후 코로나19 감염자가 급감하며 당국의 공식 통계 신뢰성에 대한 의문도 제기된다.

 

<로이터> 통신은 12일(현지시각) 중국 당국이 코로나19 고위험 지역 방문 여부를 식별하고 이동을 제한하기 위해 사용했던 '전자 방역 통행증' 애플리케이션을 13일부터 비활성화하기로 했다고 보도했다. 중국은 지난달 말 '제로 코로나' 폐지를 요구하며 상하이, 베이징 등 중국 곳곳에서 시위가 열린 뒤 지난주 상시 PCR 전수 검사 폐지, 경증 감염자 자가 격리 허용 조치를 발표하는 등 빠르게 방역 완화에 나서고 있다. 다만 중국 당국은 시위의 존재를 공식 인정하진 않았다. 

 

그러나 주민들은 당국의 빠른 방역 완화 속도에 쉽게 적응하지 못하고 병원으로 달려가고 있다고 외신은 전했다. <로이터>는 12일 베이징 차오양에 위치한 한 발열 진료소에 80명 가량이 줄을 서 있었다고 보도했다. 베이징시 당국은 11일 발열 진료소 방문자 수가 한 주 전 일일 평균에 비해 16배나 증가한 2만2000명에 달했다고 밝혔다. <AP> 통신은 주민들이 진료를 받기 위해 최대 6시간 가량 줄을 서는 것으로 나타났으며 소셜미디어(SNS)에 일부 병원은 경증 환자 진료를 거부하고 있다는 게시글이 올라오고 있다고 전했다. 

 

환자 수가 급증하며 의료 기관은 자원 부족에 시달리고 있다. <워싱턴포스트>(WP)는 12일 현지 언론을 인용해 진료소들이 인력 부족을 호소하며 지방 당국이 주민들에게 증상이 심각하지 않을 경우 응급 서비스를 부르지 말 것을 당부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AP> 통신은 중국 관영 언론이 전문가들을 인용해 의료시설의 부담을 경감하기 위해 가벼운 증상은 집에서 치료하거나 진료를 연기할 것을 권고하고 중증 환자를 위해 의료 자원을 남겨둘 것을 호소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통신은 중국이 확보한 중환자 병상 수는 13만8000개에 불과해 인구 1만 명 당 1명 미만인 데다 의료 자원이 베이징·상하이 등 대도시에 집중돼 있는 실정이라고 지적했다. 

 

이에 더해 <워싱턴포스트>는 12일 병원에 환자가 폭증하며 의료진 감염도 늘고 있다고 우려했다. 자신의 성을 얀이라고 밝힌 베이징의 한 의사는 매체에 "병원들이 전례 없는 발병에 압도당하고 있다. 발열 진료소를 찾는 환자가 지난 주보다 몇 배는 늘었고 몇 주, 혹은 몇 달 동안 지속될 것 같다"며 지난주 자신의 병원 직원 중 절반 이상이 확진됐다고 설명했다.

 

주민들은 방역 완화 뒤 감염에 대한 두려움과 자가 치료에 대한 부담감 탓에 마스크·감기약·자가검사키트 등 의료 용품을 대거 사들인 데 이어 황도 통조림까지 사재기 중이다. 13일 홍콩 매체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는 평소 그다지 인기가 없었던 황도 통조림이 최근 며칠 간 중국 전역에서 품귀 현상을 빚고 있다고 보도했다. 매체는 설탕과 비타민이 풍부하며 보존성이 높은 이 통조림이 코로나19 감염 대비책으로 불티나게 팔리며 일부 온라인 상점에서 품절됐다고 전했다. 광저우 주민인 한 여성은 매체에 황도 통조림이 "감기와 발열이 효과적이라는 글을 읽은 적 있다. 가족이 코로나에 감염됐을 경우를 대비해 몇 캔을 샀다"고 말했다. 매체는 현지 언론을 인용해 제조사가 해당 통조림은 약이 아니라는 공지를 내보내고 있는 실정이라고 덧붙였다. 중국 관영 매체들도 이 현상에 주목하며 한 때 황도 통조림이 중국 동북부와 북부 지역에선 감기에 걸린 아이들이 먹는 '특별식'이었지만 '약'은 아니라고 강조했다.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는 주민들의 사재기 열풍 배경엔 다시 봉쇄가 이뤄질 수 있다는 불안 또한 존재하고 있다고 짚었다. 광저우의 한 주민은 매체에 "감염자가 너무 많아서 무섭다. 왜 정부가 갑자기 (방역 정책을) 전환했는지 모르겠다"며 봉쇄에 대비해 감자 5kg을 비롯해 많은 고기와 채소를 사들여 비축했다고 말했다.

 

의료 자원 부족 호소에 더해 중국 각지의 사업체에서 직원 감염이 속출한다는 보고가 잇따르며 방역 완화 이후 코로나 감염이 늘고 있다는 정황이 있지만 중국 정부의 공식 통계상으로는 오히려 확진자가 급감하고 있다. 지난달 말 4만 명을 넘어섰고 대대적 방역 완화 조치가 발표됐던 지난 7일 기준 2만 명이 넘었던 일일 확진자 수는 12일 7679명으로 줄었다. 방역 완화 조치 뒤 일주일도 안 돼 일일 확진자 수가 거의 3분의 1로 줄어든 것이다. 방역 완화로 검사 자체가 줄었고 주민들이 자가 검사를 활용하고 있기 때문에 확진자 일부가 통계에 잡히지 않는 것이 어느 정도 불가피하다는 해석이 나온다. 

 

반면 외신은 오히려 지난달 말 '백지 시위' 뒤 방역 빗장이 풀리기 시작한 이후 감염자가 훨씬 늘었을 것으로 짐작한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아시아에 중점을 둔 거시경제 자문업체 위그램캐피털자문의 자료를 인용해 지난달 8일 기준 중국의 일일 확진자 수가 8만6141명에 달할 것으로 추정했다. 8일 기준 1만6797명이었던 중국 정부 공식 발표 수치와 괴리가 크다. <파이낸셜타임스>는 현 상황은 코로나 발병 초기 공식 정보가 부족했던 우한에서의 상황을 떠올리게 한다고 지적했다. 로드니 존스 위그램캐피털자문 대표는 "우리가 실제 사례 데이터를 다시 볼 수 있을지 모르겠다. (확진자 수의) 급격한 감소가 검사 수가 줄어든 것을 반영하는 것인지 혹은 사례 데이터에 정치적 관리가 작동한 것인지 알 수 없다"고 매체에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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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찰은 민주주의를 어떻게 파괴하는가

브라질 경우와 윤석열의 닮은 꼴

초대형 부패 스캔들의 탄생과 세차 작전의 시작

모루가 주도한 세차 작전, 룰라를 겨누다

룰라의 구속, 호세프 대통령 탄핵 그리고 민주주의의 파괴

수사와 재판이라는 법치의 탈을 쓴 사법 쿠데타

모루와 윤석열의 닮은 꼴

브라질 룰라가 2023년 1월 1일 세 번째 대통령 임기를 시작한다. 룰라의 정치 이력은 화려하다. 1975년 금속노조위원장, 1979년 브라질노동자당 창당, 그 후 수 차례 대선 도전과 낙마, 2002년 역대 최다득표로 대통령 당선, 2006년 재선 성공 등 룰라의 정치 인생은 브라질 진보정치의 역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룰라 집권 8년 동안 브라질의 빈민계층은 눈에 띄게 줄어들었고, 세계 8위의 경제대국의 반열에 오르게 되었다. 3연임 금지법에 따라 2010년 대선에 출마를 못했지만, 그의 후임인 지우마 호세프가 대통령에 당선되었으니 브라질 진보정치는 탄탄대로처럼 보였다.

▲ 브라질 대통령(오른쪽)이 2010년 1월 1일 브라질 수도 브라질리아의 대통령궁에서 거행된 대통령 취임식에서 지우마 호세프 신임 대통령에게 대통령 휘장을 걸어주고 있다.

그러나 룰라 퇴임 이후 브라질의 정치는 혼란의 연속이었다. 지우마 호세프가 탄핵을 당하고, 위기를 느낀 룰라는 탄핵 직후 열린 대선에 출마하여 진보정치를 부활시키려 했다. 그러나 룰라는 부패 스캔들에 연루되어 구속되고, 대선 출마는 좌절되었다. 룰라에게는 ‘브라질 부패의 최고사령관’이라는 오명이 덧씌워졌다. 그 후 독재 시절 고문과 암살로 악명높았던 보우소나루가 대통령에 당선된다. 진보정치가 무너지고 독재정치가 부활한 것이다. 도대체 룰라 퇴임 이후 브라질에서는 어떤 일이 있었던 것일까.

초대형 부패 스캔들의 탄생과 세차 작전의 시작

호세프가 첫 임기를 시작하던 2011년부터 브라질은 경제난에 시달리기 시작했다. 브라질 화폐인 헤알화의 달러 대비 가치가 한 해 동안 22% 하락했다. 물가 상승률은 역대 최고로 치솟았다. 교통 요금과 식료품 요금이 인상되는 등 민생이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대개 대중들은 먹고 사는 것이 힘들어지면 집권여당에게 그 일차적 책임을 묻는다. 호세프와 집권여당인 브라질노동당에 대한 지지율은 떨어지기 시작한다.

여기에 대중의 분노를 폭발시키는 치명적인 사건이 발생했다. 2014년 3월 브라질의 거대 국영석유회사인 페트로브라스(Petrobras)를 매개로 하여 다수의 기업인들과 정치인들이 연루된 초대형 부패사건이 적발된 것이다. 페트로브라스 임원들이 건설업체와 공급업체를 상대로 뇌물을 요구하여 비자금을 마련하고, 로비스트와 환전상을 통해 비자금을 세탁하고, 정치인들과 여러 정당에게 뇌물로 건네고, 뇌물을 받은 정치인들은 다시 페트로브라스 간부 인사에 영향력을 행사하는 구조였다.

대중들의 분노는 폭발했고, 정치개혁과 부패세력 척결을 요구하는 시위가 확산되었다. 위기에 처한 호세프 정부는 강력한 반부패캠페인을 벌였고, 일명 ‘세차(라바 자투, Laba Jato) 작전’을 시작했다. ‘라바 자투’는 세차용 고압 분사기를 의미한다. 고압 분사기로 자동차에 있는 오물을 씻어내듯이 부패 세력을 척결하겠다는 취지였다.

모루가 주도한 세차 작전, 룰라를 겨누다

세차 작전은 브라질의 수사 판사인 세르지오 모루라는 인물이 진두지휘했다. 수사 판사(investigative judge)는 검찰의 역할을 일부분 담당한다. 즉 수사를 담당하는 검사와 유무죄를 판결하는 판사가 동일인물인 셈이다.

모루는 대중의 분노를 파악하고 대중이 환호하는 요소를 포착하는 데 능수능란했다. 그는 예비구금 제도를 활용해 적극적인 구속 수사를 펼쳤으며, 수사 중인 내용을 언론에 흘려 여론화함으로써 대중의 관심을 집중시켰다. 모루에 의해 주도되는 기습적이며 대대적인 체포 장면은 언론사와 TV를 통해 생중계되었고, 각 수사 단계마다 ‘카사블랑카’, ‘최후의 심판’과 같은 코드명을 붙임으로써 대중의 환호를 받았다. 모루 검사의 인기는 하늘을 찔렀고, 브라질 대중들은 모루를 지지하는 집회를 개최하기에 이른다. 모루의 지지가 올라가는 만큼 정치인들에 대한 분노지수는 높아졌다.

그러나 모루가 척결하고자 했던 것은 부패 정치보다는 브라질 진보정치였다. 브라질은 1964년 군사쿠데타 이후 군사독재정권이 20년 넘게 지배하는 곳이었다. 한국의 군사독재정권이 그러했듯이, 브라질 군사독재세력과 기업은 광범위한 부패 네트워크를 구축했다. 당시 부패 스캔들에 가장 많이 연루된 정치인들은 브라질노동당이 아니라 부통령 미셰우 테메르가 소속된 브라질민주운동당이었다. 이 당은 군사정권 시절 여당을 제외한 유일한 합법정당이었다. 그만큼 군사정권에 우호적이었던 것이다. 브라질에서 가장 부패한 정당으로 악명이 높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루의 수사는 룰라에게 집중되었다.

룰라의 구속, 호세프 대통령 탄핵 그리고 민주주의의 파괴

2016년 3월 모루 검사는 룰라 전 대통령에게 구속영장을 발부했다. 페트로브라스로부터 800만 달러를 받았다는 혐의였다. 룰라는 불구속으로 재판을 받게 되지만, 구속영장이 발부되었다는 사실만으로 대중들은 룰라와 호세프를 비난하기 시작했다. 수사의 방향과 여론의 동향을 감지한 야당은 야합하여 대통령 탄핵을 결행한다.

여기서 부통령을 배출함으로서공동정부를 구성하고 있던 브라질민주운동당(가장 부패했다는 그 정당!)의 탄핵 지지가 결정적이었다. 브라질민주운동당은 수사의 칼날이 본인들에게 집중될 것을 우려해 탄핵에 동참하기로 결정한 것이다. 결국 2016년 8월 호세프 대통령은 탄핵된다.

2018년 대선은 진보정치가 살아남느냐 과거 독재정치가 부활하느냐 중대 갈림길이었다. 룰라는 이미 대선 출마 의사를 밝히고 있었다. 룰라는 거의 모든 여론조사에서 지지율 1위를 기록하는 가장 유력한 대선 주자였다. 그러나 세차 작전은 계속되고 있었다. 모루수사팀과 연방대법원은 2018년 4월 룰라를 구속시킨다.

룰라는 2017년 1심에서 9년 6개월, 2018년 1월 2심에서 12년 1개월 징역형을 각각 선고받았다. 룰라는 불구속 상태에서 상고 중이었다. 상고 중에 있던 룰라를 구속시킨 것은 대선 출마를 저지하기 위함이었다. 룰라의 대선 출마는 좌절되고 브라질 노동자당은 대선 후보를 교체하지 않으면 안되었다.

그 결과 2018년 대선에서 브라질노동자당은 패배하고, 보우소나루 후보가 당선되었다. 보우소나루는 군사독재를 옹호하고, 사형제 부활 등 포퓰리즘정치를 표방했다. 정당을 8번이나 옮긴 브라질의 대표적인 철새정치인이다. 동성애자, 여성, 흑인에 대한 혐오 발언을 서슴치않는 차별주의자였으며, 범죄자를 사살할 경찰의 권리를 옹호하는 파시스트였다. 그런 자격 미달의 후보가 대통령으로 당선될 정도로 세차 작전은 탈정치, 정치혐오를 부추겼던 것이다.

정치검사 모루가 주도하는 세차 작전은 반부패 캠페인이 아니라 정치혐오 캠페인이었던 셈이다. 세차 작전이 무너뜨린 것은 부패정치세력이 아니라 브라질 민주주의였다. 이 모든 것은 정치검사 모루의 기획에서 나왔다. 보우소나루 당선의 일등공신은 정치검사 모루와 세차작전이었다. 보우소나루 대통령은 모루를 법무부 장관에 앉힘으로써 보은한다.

▲ 2019년 11월 석방된 룰라가 지지자들에게 연설하고 있다.

수사와 재판이라는 법치의 탈을 쓴 사법 쿠데타

2019년 11월 룰라는 580일 만에 석방되었다. 연방대법원이 2심 결과만으로 구속할 수 없다는 새로운 결정을 내린 것이다. 룰라는 2022년 대선에 출마할 수 있었고, 상대후보인 현직 대통령 보우소나루를 제치고 당선된다. 이로써 브라질의 진보정치는 다시 추진될 수 있는 동력을 확보하게 되었다.

이같은 결과는 세차 작전의 종료와 함께 예견된 것이었다. 세차 작전은 2021년 2월에 종료되는데, 종료됨과 동시에 무리한 정치수사였다는 것이 입증되기 시작했다. 2021년 3월 브라질 연방대법원은 룰라에 대해 실형을 선고한 2018년의 재판이 편파적이었으므로 무효라는 판결을 내렸다. 룰라에게 유죄를 선고한 모루의 재판이 부당하다는 판결인 것이다.

또한 대법원은 수사 과정에서 수집한 룰라 관련 증거를 향후 재판에서 사용하지 못하게 하는 결정도 내렸다. 룰라 재판에서 유죄 판결을 이끌어내기 위해 모의한 정황이 드러났기 때문이다. 재판 자체를 취소하는 판결이 내려진 것이다.

결국 모루가 주도한 ‘세차 작전’은 진보 정권을 무너뜨리기 위한 사법 쿠데타였던 셈이다. 수사와 재판이라는 ‘법치’의 탈을 쓰고 룰라와 호세프라는 대표적인 진보정치인을 부패와 비리의 온상으로 낙인찍고, 무리하게 구속하고 유죄판결을 내려 대선 출마 자체를 불가능하게 만들려는 정치적 목적을 가진 수사였다.

모루와 윤석열의 닮은 꼴

브라질 검사 모루와 한국 검사 윤석열은 닮았다. 두 검사는 ‘수사권’이라는 강력한 무기로 전직 대통령을 구속시켰다. 그러나 수사권이라는 칼날은 민주주의를 위해서도, 정치개혁을 위해서도 사용된 것이 아니었다. 모루는 진보정치세력을 제거하는 데 검찰의 권력을 집중시켰다. 윤석열은 문재인 정부를 무력화시키는데 검찰의 권력을 집중시켰다. 두 검사 모두 사실상 사법쿠데타를 감행한 것이다.

모루의 사법쿠데타는 브라질 진보정치 죽이기에 집중되었다. 윤석열 사법쿠데타는 민주당 정부를 죽이는데 집중되었다. 두 검사는 ‘법치’의 가면을 쓰고 민주주의를 위협하고 파괴했다. 검찰이 작심하면 민주주의는 무참히 짓밟히고 파괴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전직 대통령을 구속시키는 과감한 수사는 대중의 지지를 받았다. 두 검사는 대중의 지지를 기반으로 대통령에 도전했다. 모루는 보우소나루 정부에서 법무장관을 하다가 보우소나루를 배신하고 2022년 대선에 독자 출마했다. 윤석열은 문재인 정부에서 검찰총장을 하다가 국민의힘에 입당하여 대선에 출마했다.

그러나 모루와 윤석열은 큰 차이가 있다. 모루는 대통령이 되지 못했지만 윤석열은 대통령이 되었다. 따라서 모루의 민주주의 파괴는 완료형이지만 윤석열의 민주주의 파괴는 진행형이다. 대통령이 된 이후에도 윤석열의 사법 쿠데타는 계속되고 있다. 아니 이제는 그가 권력자가 되었기 때문에 사법 쿠데타는 옛말이다. 검찰독재라고 불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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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나지 않은 질문, 그래서 화물기사는 사업자인가 노동자인가?

[화물연대 파업 자세히 보기 ⑦] 사업자 간 계약 맺었어도, 전속·종속 관계면 노동자

 

운행을 멈춘 화물차 자료사진 ⓒ뉴시스
지난 2일, 공정거래위원회 조사관 수십명이 화물연대본부 사무실에 들이닥쳤다. 화물연대 조합원들을 사업자로보고, 이들이 공정거래를 위협하는 담합 행위를 했는지 조사하겠다는 것이었다. 상식적인 일 같아 보이지만, 실상은 매우 몰상식한 일이다. 거칠게 비유하자면, 식당 위생을 점검하겠다고 소방 공무원이 출동한 꼴이다.

화물연대 조합원은 사업자가 아닌 노동자다. 멀리 국제노동기구와의 협약까지 갈 일도 아니다. 한국 법원은 화물자동차 운전자가 사업자가 아닌 노동자라는 판결을 꾸준히 내려왔다.  

 

 

 

대법원이 ‘사업자 같은 화물운송 노동자’라고 판결한 이유


2018년 대법원의 ‘나라손 화물기사’ 판결이 대표적이다. 운송사 나라손은 깨끗한나라 물류를 담당했다. 차모 씨는 2.5톤 화물차를 구입해, 나라손으로부터 깨끗한나라 화물을 배차 받아 운송했다. 

출근 중 교통사고로 십자인대파열 등 부상을 당한 차 씨는 근로복지공단에 요양급여를 신청했다가 거절되자, 행정소송을 제기했다. 쟁점은 차 씨를 근로기준법과 산업재해보상보험법상 나라손 노동자로 인정하는지 여부였다.

재판부는 차 씨 손을 들었다. 차 씨는 운송사업자로 등록해 표면상 사업자이나, 실질적으로는 나라손 소속 노동자로 보는 게 합당하고 재판부는 판단했다. 노동자 해당 여부는 계약 형태, 즉 고용계약인지 도급계약인지를 따지기보다, 종속성에 따라 판단해야 한다는 대법원 판례를 반영했다.

법원 판결에서 화물기사를 노동자로 인정하는 추세가 확산하고 있다. 지입차주 노동자성을 인정하는 판례가 각급 법원의 20여개 사건에서 인용되고 있다. 대법원이 지난 2018년 10월 선고한 이른바 ‘나라손 화물기사’ 사건이다. 재판부는 지입계약을 맺은 화물기사도 노동자로 봐야 한다고 판결했다. 지입제는 화물차를 소유한 기사가 운송회사와 계약을 체결해 운송 업무를 위탁받아 일하는 형태다. 서류상으로는 사업자 간 계약이지만, 화물기사는 전적으로 회사의 지휘·감독에 따라 작업한다.

재판부는 차 씨가 나라손 지시에 따라 업무를 했다는 점을 강조했다. 나라손이 지정하는 물품 외에는 운송할 수 없었다. 차 씨의 배송 횟수와 휴가 일수도 나라손이 결정했다. 나라손이 유류비, 도로통행비, 주차비 등 차량 운영비를 부담했다는 점도 차 씨 노동자성을 뒷받침했다. 차 씨는 운송 물량과 관계없이 고정급을 받았다.

재판부는 “원고(차 씨)는 임금을 목적으로 종속적인 관계에서 소외 회사(나라손)에 근로를 제공하였다고 봄이 상당하다”며 “원고가 영업용 화물차의 소유자로서 사업자등록을 했다거나 고용보험에 가입하지 않았다는 사정 등은 위 인정에 방해가 되지 않는다”고 판시했다.

2014년 1심 판결 이후 근로복지공단 측은 항소와 상고로 법정 다툼을 이어갔으나, 법원은 받아들이지 않았다. 2018년 10월 대법원이 상고를 기각하면서 사건이 마무리됐다.

‘나라손 화물기사’ 사건은 2021년 4월 대법원의 ‘삼표 화물기사’ 사건 판결에서도 인용됐다. 구조는 비슷하다. 화물기사 ㄱ 씨는 삼표로부터 트랙터와 트레일러를 임대보증금 200만원에 빌려, 삼표피앤씨 제천공장 제품을 삼표가 지정한 공사 현장으로 운송하기로 하는 운송계약을 맺었다. 화물차를 회사가 소유한다는 정도가 다르다. 화물기사의 노동자성 판단 여부에는 큰 영향을 미치지 않았다. 재판부는 ㄱ 씨가 삼표 통제하에 작업해야 했다는 점을 근거로 전속적·종속적 관계가 성립된다고 판단해, ㄱ 씨를 노동자로 인정했다.

노동자성 여부 입장 오락가락 하는 가운데 강행된 졸속행정

유엔 국제노동기구(ILO)도 화물기사를 명확하게 노동자라고 규정한다. 나아가 노동자로서 화물기사 파업권이 침해돼서는 안 된다고 강조한다.

ILO 제87호(결사의 자유), 제98호(단결권 및 단체교섭권) 협약은 화물기사를 협약 적용 대상으로 삼고 있다. 지난해 한국 정부가 비준하면서, 협약은 국내법과 같은 효력을 가지게 됐다.

ILO는 지난 10여년간 수차례에 걸쳐 한국 정부에 “화물차 차주 겸 기사와 같은 특수고용노동자를 포함한 모든 노동자가 자신의 권익 증진, 방어를 위해 결사의 자유를 전적으로 향유할 수 있도록 하는 데 필요한 조치를 취하라”고 권고해왔다.

정부는 ILO 협약을 무시하면서 원칙 없는 졸속행정이 자행했다. 화물연대 파업 국면에서 화물기사 노동자성에 대한 정부 입장은 오락가락했다. 화물기사 정체성은 정부의 노동 탄압 유불리에 따라, 노동자에서 사업자로 바뀌었다. 국토교통부가 업무개시명령을 내릴 때는 노동자로 규정했다가, 공정거래위원회 조사를 추진할 때는 사업자로 규정했다.

불과 보름 전만해도 윤석열 대통령은 화물연대 사안을 놓고 ‘노동문제’라고 언급했다. 윤 대통령은 업무개시명령 국무회의 심의가 있던 지난달 28일, “노사 법치주의를 확실히 세워야 한다”며 “노동문제는 노측의 불법행위든 사측 불법행위든 법과 원칙을 확실하게 정립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발언했다.

ILO 협약대로 화물기사를 노동자로 인정하면 화물연대 파업은 단체행동권에 기반한 정당한 행위가 된다. 화물자동차 운수사업법상 업무개시명령은 ‘정당한 사유 없이’ 운송을 거부할 때 발동할 수 있다.

ILO는 지난 2일, 국토교통부가 화물연대 파업과 관련해 업무개시명령을 내린 데 대해 긴급개입에 돌입했다. 노동계의 개입 요청 나흘 만으로, 유례없이 신속한 조치가 이뤄진 것이다. ILO는 한국 정부에 보낸 공문을 통해 “운송 서비스 및 유사한 부문의 업무 복귀 명령이 노동자의 결사의 자유를 제한한다고 간주하며, 평화적 파업에 참여한 노동자에 대해 형사 제재를 가해서는 안 된다”고 지적했다.

 

 

 

윤석열 대통령이 13일 오전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열린 국무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대통령실통신사진기자단) 2022.12.13 ⓒ뉴시스

‘화물기사 파업권 보장하라’ 명확히 권고한 ILO

정부는 ILO 긴급개입의 의미를 자의적으로 축소하기에 이르렀다. 노동부는 12일 설명자료를 내고 “ILO 사무국은 ‘개입(intervention)’이 ILO 공식 감독기구의 절차가 아니라는 입장을 밝혔다”고 전했다.

노동부는 카렌 커티스 ILO 국제노동기준국 부국장의 성명을 인용했다. 커티스 부국장은 이날 성명을 통해 “국제운수노동자연맹,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등의 개입 요청에 따라 한국 정부에 서한을 보냈다”며 “이는 비공식 절차로 ‘결사의자유위원회’나 ‘협약적용·해석에 관한 전문가위원회’ 등 ILO 감독기구 절차를 대신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정부는 ‘비공식’ 운운하며 축소 해석했지만, ILO는 공문에 화물기사 파업권 보장의 당위성을 명백하게 강조했다. 공문에는 “파업권은 노동자와 그들의 조직이 경제적·사회적 이익을 증진하고 지킬 수 있는 필수적인 수단”이라고 명시됐다.

노동부 설명자료를 두고 “동문서답”이라는 비판이 제기됐다. 공공운수노조는 성명에서 “누구도 긴급개입이 감독기구 절차를 대신한다고 주장하지 않는다”며 “다만, 긴급개입은 감독 절차와 같이 ILO가 권리구제를 위한 방안으로 안내하고 있는 권위 있는 절차”라고 바로잡았다. 그러면서 “ILO 담당자가 노동분쟁 해결 가이드를 소개하는 것 자체가, 정부의 노동기본권 침해가 얼마나 심각한 것인지 강경하면서도 외교적으로 드러내는 말”이라고 지적했다. 노동부는 커티스 부국장이 이번달 중 방안 일정에서 한국 정부와 비공식 면담을 갖고 ILO 감독기구가 제시하는 노동분쟁 해결 가이드를 소개할 예정이라고 전했다.

ILO 협약에 따르면, 공정위 조사도 번지수를 잘못 찾은 졸속행정이다. 화물연대는 “공정위가 화물연대를 노동조합으로 인정하지 않고 사업자단체로 규정하면서 공정거래법 위반 조사를 하겠다고 하는 건, ILO 협약을 위반하는 행위이자, ILO 감독기구의 십수년 동안의 권고를 무시하는 행위”라고 지적했다.

화물연대에 대한 공정위 조사는 지난 2일 시작됐다. 경찰 경비병력(버스 3대)을 동원한 공정위 조사관 17명이 화물연대 사무실이 있는 서울 강서구 공공운수노조 건물을 들이닥쳤다. 공정거래법 등 공정위 소관 법률의 적용 대상은 노동자가 아니라, 사업자다. 이번에는 화물기사와 화물연대를 노동자와 노종조합이 아닌, 사업자와 사업자단체로 규정한 것이다.

공정위는 화물연대 파업 철회 이후에도 공정거래법상 사업자와 사업자단체의 부당한 공동행위(담합) 위반 여부 조사를 이어간다는 방침이다.

앞서 한기정 공정거래위원장은 지난 2일 언론 브리핑에서 “향후 파업이 종료될 시에도 법 위반 여부에 대한 조사는 계속 진행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공정거래위원회가 지난 2일 화물연대 파업을 조사하겠다며 서울 강서구 공공운수노조 건물에 진입하려고 하자 공공운수노조 간부들이 이를 막아서고 있다. ⓒ이봉주 화물연대 위원장 페이스북

‘화물기사=사업자’ 주장 이면의 정부 속내

화물연대 파업 철회에도 윤 대통령은 ‘법적 책임’을 언급하며 공세를 퍼붓고 있다. 그는 이날 국무회의에서 “우리 경제에 깊은 상처를 남기고 두 차례 업무개시명령이 발동된 후에야 파업이 끝난 것을 유감스럽게 생각한다”며 “파업 기간 발생한 불법행위에는 끝까지 책임을 물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국민과 함께 법과 원칙이 바로 서는 나라를 만들 것”이라며 “정부는 가용 자원을 총동원해서 파업으로 인한 경제적 피해를 복구하는 데 전력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정부가 화물연대 사안을 실질적으로는 노동문제로 인식하면서도, 형식적으로는 사업자로 규정하면서 왜곡된 행정이 발생했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법률원 황규수 변호사는 “정부는 노동조합을 탄압해 사회적 영향력을 제거하려는 의도로 화물연대 사안에 접근하는 것으로 보인다”며 “반면 공정위 조사를 보면 화물기사를 사업자로 간주하고 있다”고 짚었다. 또한 “법원이 화물기사를 노조법상 노동자로 판례 하는 경향이 늘고 있는 상황과도 어긋난다”고 비판했다.

황 변호사는 “공정위가 개입해 ‘화물기사는 사업자니까 공동행위를 하지 말라’고 하면, 화물기사가 결집해 교섭할 수 없다”며 “공정위를 앞세워 노조법상 노동자로서 교섭을 막는 행위”라고 말했다. 이어 “노조법에 공정거래법을 들이대면, 노조법의 규범력이 훼손된다”며 “이런 식으로 법 운용을 하면 안 된다”고 했다. 그러면서 “외국에서 한국의 공정거래법에 해당하는 경쟁법을 노동관계법에 적용하는 사례는 없다”며 “정부 행태는 구시대적”이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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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 관저 천공 개입설, 내 취재는 이랬다

  • 분류
    아하~
  • 등록일
    2022/12/14 10:19
  • 수정일
    2022/12/14 10:19
  • 글쓴이
    이필립
  • 응답 RSS

[조성식의 통찰] 허위라 속단할 수만은 없는 이유

22.12.14 05:07최종 업데이트 22.12.14 05:40
 
사실과 진실은 늘 일치하지 않는다. 일반적으로 사실은 진실의 전제조건이자 부분집합이다. 하지만 사실 너머에 진실이 기다린다는 보장이 없다. 사실은 진실의 필요조건이지만 충분조건은 아니다. 사실이지만 진실이 아닐 수도 있고, 진실이지만 사실이 아닐 수도 있다. 진실이 사실에 앞서면 혼란에 빠질 수 있다. 
4월 대통령 관저를 결정하는 과정에 '역술인' 천공이 개입했다는 의혹이 제기되자 대통령실이 곧바로 발설자를 고발했다. 이 의혹의 퍼즐을 맞추려 꾸준히 취재해온 처지에서 아쉬움을 떨칠 수 없다. 

언론이라는 공론의 장에서 합리적으로 다뤄져야 할 의제가 일방의 힘이 우세해 보이는 법적 공간으로 이동함으로써 사실과 진실을 연결할 다리가 자칫 끊어질지 모르는 상황에 직면했다. 사실 논쟁이 법적 논쟁, 나아가 정치 논쟁으로 변질하면 논란만 남고 진실은 희석되거나 사라질 수 있다. 
무엇보다도 이 중대한 논쟁이 사실과 추측, 오인과 과장이 뒤섞인 상태에서 촉발됐다는 점이 유감스럽다. 둘째, 미확인 사실이 확인된 사실로, 미완성 진실이 완성된 진실로 유포된 점이 안타깝다. 셋째, 정돈되지 않은 의혹을 자극적으로 제기함으로써 사실과 진실보다는 진영주의에 복무한다는 세간의 비판을 정당화하는 데 이 사건이 이용당할 수 있다는 점이 걱정스럽다. 

두 개의 관문
 

▲ 서울 용산구 한남동 대통령 관저. ⓒ 권우성

 
천공이 대통령 관저 선정에 관여했다는 의혹은 '아직' 사실이 아니다. 진실도 아니다. 현 단계에서는 그저 의혹일 뿐이다. 다만 근거가 없는 의혹은 아니기에 언제든 사실로 바뀌거나 진실로 직행할 가능성이 있다. 

의혹의 출발점은 대통령 관저가 육군참모총장 공관에서 외교부 장관 공관으로 바뀐 사실이다. 3월 20일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은 기자회견을 열고 대통령실 이전 계획을 직접 발표했다. 집무실은 용산 국방부 청사로, 관저는 한남동 육참총장 공관으로 옮긴다는 계획이었다.

그런데 한 달 뒤 육참총장 공관이 낡아서 물이 샌다는 둥 석연찮은 이유로 관저가 외교부 장관 공관으로 바뀌었다. 그 과정에 김건희 여사가 비밀리에 현장을 답사했다는 사실이 언론에 보도돼 의혹을 키웠다. 

이 사건의 진실에 다가서려면 두 개의 관문을 통과해야 한다. 첫 관문은 천공 관련 군 내부 보고의 실체다. 관저로 지정된 육참총장 공관과 육군 서울사무소에 천공이 윤 당선인 쪽 고위관계자와 함께 나타났다는 내용이 군 고위관계자에게 보고됐다는 의혹이다. 두 번째 관문은 현장 확인이다. 보고내용대로 천공이 실제로 현장을 답사해 관저 선정에 영향을 끼쳤는지다. 그게 그 얘기 같지만 엄밀하게 보면 차이가 있다. 

두 관문은 유기적으로 연결돼 있지만 각자 독립된 영역이기도 하다. 즉 첫 번째 의혹이 사실이라고 해도, 두 번째 의혹이 자동으로 사실이 되지는 않는다는 얘기다. 합리적 추론은 가능하지만, 추론은 추론일 뿐이다. 진실에 가까울지는 몰라도 사실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현시점에서 군 내부 보고 의혹은 사실에 가까워 보인다. 하지만 두 번째 의혹의 진위는 당장 판별하기 어렵다. 더욱이 대통령실에서 강력히 부인하면서 법적 대응까지 한 마당이라 진실 공방이 불가피하다. 

첫 번째 의혹과 관련해서는 신분이 확실한 증언자 A씨가 있다. A씨는 당시 천공 관련 보고를 받은 것으로 지목된 군 고위관계자 B씨와 직무상 밀접한 관계였다. 증언 내용은 구체적이다. B씨로부터 '천공 보고'에 관한 얘기를 들었다는 일시와 장소도 선명하다. 증언과 관련된 '간접증거'도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B씨가 한때 가까웠던 A씨의 증언을 밀어내고 있다는 점이 변수다. 

나는 이 문제로 B씨와 몇 차례 통화했는데 그는 "기억나지 않는다"라거나 "모르는 일"이라고 비켜 갔다. 최근에는 좀 더 논쟁적인 대화가 오갔다. 그는 내게 "소설 쓰지 말고 그만하라"고 했다. 내가 "OO님(B씨)에게 직접 그 얘기를 들은 사람(A씨)을 유령 취급하려는 거냐"고 따지자 더는 답하지 않았다. 

첫 번째 관문을 통과했다고 두 번째 관문이 자동으로 열리는 건 아니다. 천공이 나타났다는 보고가 있었다는 것과 실제로 천공이 나타났다는 것은 별개일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군 조직의 특성상 확인되지 않은 엉터리 보고가 지휘부에 올라갈 개연성은 작다는 점에서 두 가지 의혹은 거의 한 몸으로 보인다. 

그렇긴 해도 증언, 그것도 다른 사람에게 들은 얘기는 아무리 그럴듯해도 전문(傳聞) 증거이기에 증거력 면에서 한계가 있다. 게다가 어떤 사정에서든 발설자가 이를 시인하지 않는다면 섣불리 사실로 단정할 수 없다. 

보고가 이뤄졌다면 보고자가 있게 마련이다. 보고자와 목격자가 일치할 수도 있고 다를 수도 있다. 나는 군 주변을 수소문해 보고자로 추정되거나 보고내용을 알 만한 몇몇 사람에게 물어봤다. 현역 신분임을 감안해 별 기대도 안 했지만, 역시 A씨의 증언을 뒷받침하는 답변은 나오지 않았다. 그들은 부인하거나 모른다고 했다.

이와 관련해 눈길을 끄는 것이 육군본부의 입장문이다. 대통령실의 고발 조치가 이뤄진 날 당사자도 아닌 육군본부가 "전혀 사실이 아니다"라며 "거짓주장으로 군에 대한 가짜뉴스를 유포하고 해당 부사관과 군의 명예를 실추한 것에 대해 강한 유감을 표명한다"고 입장문을 발표한 것은 매우 이례적인 일로 평가된다. 

천공과 함께 현장에 나타났다는 의혹이 제기된 정부 고위관계자에게는 오래전에 사실 확인을 요청했다. 그는 문자메시지를 통해 "전혀 사실이 아니다"라고 강하게 부인하면서 "사실이 아닌 내용이 보도되는 일이 없도록 해달라"고 당부했다. 나는 그의 말이 거짓이라고 볼 증거가 부족했기에 그의 답변과 상관없이 보도를 유예하고 보완취재를 계속했다. 

논란의 주인공인 천공은 거듭된 질문에도 아무런 답변을 하지 않았다. 용산에 있는 정법시대 사무실 직원과 통화하고 이메일로 질의서를 보낸 다음 수신을 확인한 것이 몇 달 전 일이다. 답은 오지 않았다. 천공 측 내부사정을 잘 알 만한 사람한테 '천공 답사'와 관련된 얘기를 들었으나 역시 전언이라 내세울 정도는 아니었다. 

이후 어떤 일을 계기로 천공 측 고위관계자와 연결된 후 정법시대 법무팀장에게 질의서를 다시 보냈다. 법무팀장은 몇 차례 "스승님을 직접 만나 질의서를 건네고 답변을 받아주겠다"고 약속했으나 실현되지 않았다. 최근까지 대화의 끈이 이어졌는데, 법무팀장의 마지막 답변은 "스승님이 답변하지 않을 것 같으니 편하게 보도하시라"였다. 

정보공개 거부한 군
 

▲ 천공이 자신의 유튜브 채널 'jungbub2013'에 올린 영상 갈무리. ⓒ jungbub2013 갈무리

 
천공 관련 의혹을 허위사실이라고 속단하기에는 이르다. 반대로 진실이라고 주장하기에는 역부족이다. 다만 치밀한 검증을 통해 의혹을 뒷받침하는 증거가 좀 더 구체적으로 제시된다면 사건의 양상이 달라질 수도 있다. 물론 1단계의 사실이 2단계의 진실로 나아가지 못한 채 미궁에 빠질 개연성도 배제할 수 없다. 설사 가짜뉴스의 오명을 벗지 못하더라도 의문은 여전히 남을 것이다. 도대체 그때 왜 그런 보고가 군 고위층에 올라갔다는 거지? 

11월 하순 정보공개 포털을 이용해 국방부에 정보공개를 청구했다. 청구 대상은 옛 한남동 육참총장 공관(현 대통령 비서실장 공관)과 외교부 장관 공관(현 대통령 관저) 및 육군 서울사무소의 출입자 명부와 CCTV 영상. 시점은 '보고일'을 기준 삼아 일정 기간으로 특정했다. 

12월 11일 정보공개 요청에 대한 결정통지서가 날아왔다. 답변 기관은 육참총장 공관을 관리하는 국방부 근무지원단. 아래와 같은 내용인데, 날짜는 가렸다. 
 
2022. *.**. ~ *.**. 중 국방부 청사 내 육군서울사무소/ 한남동 육군참모총장 공관/ 외교부 장관 공관의 출입기록 및 CCTV 영상은 개인정보 보호법, 국방 정보공개 운영 훈령, 국방보안업무훈령에 따라 공개가 제한됨을 안내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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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영세, "내년 北 도발중지 설득하면서 당국간 접촉 여건 만들겠다"

기자단 간담회서, '내년 초 민간 협력 바탕' 계획 주목..양립 가능할지 의문

  • 기자명 강화=이승현 기자 
  •  
  •  입력 2022.12.13 20:04
  •  
  •  수정 2022.12.13 20:54
  •  
  •  댓글 1
 
권영세 통일부장관이 13일 강화도에서 진행된 통일부 출입기자단 워크샵에서 기자간담회를 갖고 '북한이 도발을 멈추도록 꾸준히 설득하면서 남북 당국간 접촉이 시작되도록 하겠다'는 등 내년 중점 업무추진 방향을 제시했다. [사진제공-통일부]
권영세 통일부장관이 13일 강화도에서 진행된 통일부 출입기자단 워크샵에서 기자간담회를 갖고 '북한이 도발을 멈추도록 꾸준히 설득하면서 남북 당국간 접촉이 시작되도록 하겠다'는 등 내년 중점 업무추진 방향을 제시했다. [사진제공-통일부]

"북한이 도발을 멈추도록 꾸준히 설득하면서 남북 당국간 접촉이 시작되도록 만드는 일"

권영세 통일부장관이 밝힌 2023년도 중점 업무추진 방향이다. 

권 장관은 13일 오후 인천광역시 강화군에서 진행된 통일부 출입기자단 워크샵에서 기자간담회를 갖고 양립이 쉽지 않아 보이는 두가지 업무를 2023년에 중점 추진하겠다고 제시했다.

"북한이 만약 7차 핵실험을 강행한다면 전례없는 수준의, 되돌리기 어려운 억제와 제재에 직면하게 될 것"이라는 거듭된 경고와 함께 "정부는 아주 소소하고 낮은 단계라고 해도 북한과 신뢰를 쌓을 수 있는 조치들을 찾아나가면서, 북한이 대화를 선택하고 당국간 접촉이 이뤄질 수 있도록 제반 여건을 바꿔나갈 것"이라는 병행조치가 언급됐다.

여건 조성과 관련해서는 "특히 내년 초에 사회문화, 인도교역 부분의 민간단체 협력이 재개될 수 있도록 하여 당국간 협력 여건을 조성해 나갈 생각"이라고 밝혔다. 민간 협력을 바탕으로 하여 당국간 접촉으로 확대되는 기대할만한 구체적인 진척이 가시화되고 있는 것은 아닌지 관심이 쏠린다.

권 장관은 "현재 북한이 소위 강대강 기조를 이어가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앞으로 한반도 정세가 유동적이고, 북한도 내부 정세나 각종 군사훈련 등의 동향을 주시하면서 향후 방향을 고민하고 있을 것"이라며, 북측 정책 기조를 고정된 것이 아니라 변화 가능성이 있을 것으로 기대했다.

그러면서 "정부로서는 한반도의 향후 정세를 특정하여 예단하기 보다는, 대북정책 기조를 견지하는 가운데 여러 가지 가능성에 능동적으로 대처해 나갈 계획"이라고 말했다.

북측이 거부의사를 명백히 한 '담대한 구상'에 대해서는 내년에도 '정책 추진 동력을 지속적으로 강화하고 이행 단계로 나아갈 수 있도록 외교부 등 관계부처와 협력해 집중력을 높여갈 것'임을 거듭 강조했다.

정책추진 환경에 대해서는 올해 '대북정책의 기초체력을 다지는 데 주력한 시간'이었다며, "우리가 할 수 있는 조치들을 차곡차곡 쌓으면서 언제든 북한이 우리의 제의에 호응해 오기만 하면 즉각 힘있게 정책을 추진할 수 있는 체력을 갖춰가고 있다"고 자평했다.

그러나 북측이 지금까지 강력한 무력대응으로 거부의사를 반복적으로 분명히 해온데 대해 안일하게 판단한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통일부 고위당국자는 기자들의 질문에 "북한이 우리의 정당한 방어훈련에 도발을 해 오더라도 우리가 끊임없이 방어적 성격의 훈련이라는 점을 밝히고 이에 북한이 민감하게 대응할 필요없다는 점을 이야기하면서 계속 대화의 문을 두드린다면 언젠가 열릴 때가 있을 것"이라는 기대를 표시했다.

그러면서 "(한미연합)군사훈련은 방어적 성격의 훈련으로 우리가 여태까지 해왔던 부분인데, 상대 요구에 따라 흔들리면 원칙이 무너지기때문에 양보할 수 없는 부분"이라고 강조했다.

지난 9월말부터 11월까지 북측이 한미연합훈련 등에 대응해 강력한 군사대응을 전개한데 대해서는 '핑계', '다분히 의도적으로 계산한 도발', '변칙적 대응' 등 부정평가로 일관했다.

또 북에서 비핵화가 아니라 군축을 요구할 경우 한미 당국의 입장을 묻는 질문에는 "우리 목표는 북한 비핵화이지 군축 이런 건 아니"라고 일축하고는 "미국 고위 관료 중 한 분이 군축 얘기를 해서 언론의 관심을 끈 적이 있는데, 미국 정부에서 그 부분은 부인했다"고 덧붙였다.

한편, 권 장관은 내년에 '윤석열표 탈북민 정책'이라고 불릴만한 수준까지 탈북민 정착제도를 본격 정비해 추진해 나가고, '10~30년을 내다보는 통일미래비전 전략을 재정립'하는 사업을 구상중이라고 설명했다.

윤석열표 탈북민 정책에 대해서는 '분절적으로 관리되던 탈북민 관련 정보를 취합해서 위기징후를 선제적으로 발견할 수 있는 분석시스템을 개발하고 종합적인 서비스를 즉각 지원할 수 있도록 만들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이산가족, 국군포로, 납북자, 억류자 문제의 근본적 해결을 위해 남과 북에서 관련 사안을 하나로 묶어 보다 근본적이고 큰 틀에서 해결을 추진하는 방안을 강구해 볼 생각이라고 덧붙였다.

이와 더불어 국제정세의 근본적인 변화와 기후변화, 질병 등 새로운 안보환경까지 등장한 상황에서 통일부는 '자유, 인권 등 가치와 원칙에 기반해 새로운 미래의 청사진'을 제시하겠다고 하면서 신설을 추진하는 '통일미래전략기획단'이 이를 뒷받침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같은 내용은 세부사항을 가다듬어 내년 연두 업무보고에서 공식화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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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대급 경제위기, 윤 정부는 언제까지 전 정부 탓만 할 건가

[소셜 코리아] 경제위기 사령탑 안 보여... 통합의 리더십 절실

  • 경제

  • 강명구(soko)

  • 22.12.13 05:26최종 업데이트 22.12.13 05:26

한국의 공론장은 다이내믹합니다. 매체도 많고, 의제도 다양하며 논의가 이뤄지는 속도도 빠릅니다. 하지만 많은 논의가 대안 모색 없이 종결됩니다. 소셜 코리아(https://socialkorea.org)는 이런 상황을 바꿔 '대안 담론'을 주류화하고자 합니다. 구체적으로는 ▲근거에 기반한 문제 지적과 분석 ▲문제를 다루는 현 정책에 대한 날카로운 비판을 거쳐 ▲실현 가능한 정의로운 대안을 제시하고자 합니다. 소셜 코리아는 재단법인 공공상생연대기금이 상생과 연대의 담론을 확산하고자 학계, 시민사회, 노동계를 비롯해 각계각층의 시민들과 함께 만들어가는 열린 플랫폼입니다. 기사에 대한 의견 또는 기고 제안은 social.corea@gmail.com으로 보내주시기 바랍니다.[기자말]

▲ 윤석열 대통령이 26일 오전 세종시 정부세종청사에서 열린 국무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오른쪽은 추경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왼쪽은 한동훈 법무부 장관. 2022.5.26 ⓒ 연합뉴스

 

이미 다들 안다. 세계 경제도 어렵고 한국 경제도 어렵다는 것을. 따라서 가계와 기업은 이미 씀씀이를 줄이고 있다. 하지만 모두가 허리띠를 졸라매면 경제는 더욱 어려워진다. 이런 위기 상황일수록 유능한 정부가 필요한데 경제 사령탑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것 같다.

정부는 가계나 기업에 비해 파산 위험이 현저히 낮다. 그런데 어찌된 영문인지 윤석열 정부는 정부도 허리띠를 졸라매겠다고 한다. 초부자 감세 정책을 천명하고 재정건전성 강화를 위해 재정준칙 입법화를 예고했다. 기존 복지예산도 줄줄이 삭감하거나 폐지하고 있다. 대규모 감세 정책을 내걸며 대처 총리를 흉내내던 영국 트러스 총리가 취임 45일 만에 사임한 사실은 까마득히 잊은 걸까.

국민들의 마음을 모아 경제위기 극복을 위해 총 매진해도 어려운 상황에서 대규모 감사와 검찰 수사로 전임 정부의 잘못을 들춰내기에 바쁘다. 하지만 '전 정부 탓'의 유효기간도 빠르게 끝나가고 있다. 이미 역대급 위기의 한복판에 들어서 있기 때문이다.

현재 세계 경제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최대 위기에 봉착해 있다. IMF는 내년도 세계 평균 인플레이션율을 6.5%로 전망하며 전 세계 3분 1 이상 국가의 경제가 침체의 늪에 빠져들 것이라고 경고했다. 2024년에도 평균 4.5% 수준의 인플레이션을 전망한다. 세계은행도 2008년 금융위기나 1970년대 스태그플레이션 위기 때보다 위기의 진폭이 더 크고 길어 최소한 2024년까지 지속될 것으로 전망한다. 장기전이 불가피하다.

핵심 원인은 전 세계적 수준의 수요와 공급의 불균형 심화 때문이다. 2008년 금융위기 이후 미국, 유로존 등 선진 경제권 중심으로 대규모 유동성 공급 정책이 추진되어 오다가 코로나로 더 막대한 천문학적인 돈이 풀렸다.

IMF 통계에 따르면 2021년 7월 말 현재 코로나 위기 대응을 위해 전 세계적으로 약 17조 달러의 돈이 풀렸다. 전 세계 GDP의 16.4%에 해당하는 막대한 금액이다. 반면 코로나와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전 세계 생산과 공급량은 확 줄었다. 에너지 및 식량위기도 폭발했다. 고물가로 전 세계가 신음하는 이유다.

특히 선진국들 책임이 크다. G20 국가 중 한국 포함 상위 10개국들은 평균적으로 GDP 30.2%의 돈을 풀었다. 이 중 경제 규모 대비 가장 많이 돈을 푼 상위 3개국은 독일(46.2%), 이탈리아(45.1%), 프랑스(43.1%)다.

물론 금액으로는 미국의 유동성 공급이 제일 컸다. 미국 정부는 한국의 재난지원금과 같은 현금성 지출로 5.8조 달러(미 GDP의 약 28%)를 풀었고 이에 더해 연방준비은행도 5조 달러(한화 약 6경 5천조 원)가 넘는 채권을 매입해 유동성 공급을 늘렸다. 고금리 기조가 장기화할 수밖에 없다.

문재인 정부도 돈을 풀었다. 하지만 상대적으로 적었다. 재난지원금 등 현금성 지원으로 GDP의 6.4%, 금융기관들에 대한 지급보증 등을 통해 GDP의 10.1%의 유동성이 공급됐다. 이 현금성 지원은 선진국 평균(13.7%)의 반도 되지 않고 가난한 나라들을 포함한 전 세계 평균(6.2%)과 비슷한 수준이다. 정부 재정은 2년 연속 흑자였다. 2021년엔 20.6조 원이나 덜 썼다. 사실 좀 이해하기 힘든 재정 운용이다.

고통 분담 관련 갈등 폭증

 

▲ 13일 미국 뉴욕증권거래소(NYSE) 입회장의 종목 시세판 밑에서 한 트레이더가 업무를 보고 있다. 이날 뉴욕 증시는 미국의 인플레이션이 예상보다 장기화할 것이란 공포 속에 추락했다. 다우존스30 산업평균지수와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 500지수는 각각 3.94%, 4.32% 폭락했고 나스닥 지수는 5.16% 폭락한 11,633.57에 각각 장을 마감했다. 2022.9.13 ⓒ 연합뉴스

 

 

그런데도 윤석열 정부는 무분별한 확장 재정 정책이 비정상이었으니 바로 잡겠다고 한다. 정부 부채 문제가 가장 심각한 문제인 양 호도한다. 길게 봐서 정부 부채는 당연히 잘 관리해야 한다. 미래 재정 수요는 분명 빠르게 증가하고 있고 연금개혁 등 할 일도 많다. 하지만 현재 한국 경제가 직면한 가장 중요한 문제가 정부 부채일까? 결코 동의하기 어렵다.

간단히 통계를 보자. 한국은행은 올해 들어 지난 11월까지 기준금리를 2.25%P 올렸다. 이에 따라 빚 부담이 확 늘었다. 지난 7월 발표된 한은의 국민대차대조표 통계에 따르면 2021년 말 현재 모든 경제 주체들의 금융부채 총액은 2경 291조 원에 달한다. 단순히 2.25%P 기준금리 인상만으로도 최소 456조 원의 부채상환 부담이 증가했다. 모두들 자금 경색으로 아우성인 이유다. 머지않아 이 아우성이 절규로 바뀔 것이다.

부동산 관련 대출도 마찬가지다. 주택담보 대출 금리는 이미 최고 8%를 넘어섰다. 빚 상환 부담도 급증하고 있다. 다들 알듯이 부동산 가격이 꺼지면 재앙 수준의 경제 참사가 불가피하다. 부동산(건물+토지)은 가계자산의 3분의 2, 국부(國富)의 약 75%를 차지하기 때문이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2021년 말 주택 시가총액은 6534조 원이다. 흔히들 2017년 수준으로 집값이 다시 떨어져야 한다는 얘기를 한다. 만약 그렇게 된다면 주택자산 감소액만 2220조 원을 넘는다. 2021년의 GDP보다 큰 금액이다.

설마 그런 일이 가능할까. 1990년대 일본은 더 참담했다. 1990년대 초 버블경제 붕괴 후 3~4년 사이에 부동산 가격이 50% 이상 하락했고, 이후 20년 동안 지속적으로 하락해서 2010년 전후의 부동산 가격은 1980년대 초반과 비슷한 수준으로 되돌아갔다. 물론 주식과 금융시장도 꺼졌다. 일본이 1990년대의 '잃어버린 10년'을 넘어 장기불황에 시달리는 핵심 이유다.

이런 위기 상황에선 고통 분담 관련 갈등이 폭증한다. 생존이 걸린 절박한 문제를 법과 힘을 동원해 찍어 누른다고 해결될 리도 만무하다. 다들 '선택할 자유'가 없는 상황으로 내몰리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한정된 국가 가용 자원으로 모두를 구제할 수도 없다. 결국 선택적 지원과 개입이 불가피하다.

그래서 경제 한파로 모두들 힘들 땐 오히려 더 따뜻한 공감과 통합의 리더십이 절실하다. 도덕적 해이와 시장 규율 강화 사이에서 사회적 합의를 이뤄내야 한다. 사회는 유기체와 같다. 발목의 작은 인대 부상 하나로 우리가 제대로 걷지 못하게 되듯, 경제위기로 가장 심하게 직격탄을 맞을 취약계층을 완전히 잘라내고 나아갈 수 없다.

장기적으로는 고통을 분담해 최대한 일자리를 유지하면서 서서히 경제 체질 개선을 도모하는 것이 승자독식, 각자도생의 생지옥보다 낫다. 결국 문제는 정치다. 정부와 여야 정치권 모두의 각성을 촉구한다.

 

▲ 강명구 / 뉴욕시립대 정치경제학 종신교수 ⓒ 강명구

 

필자 소개 : 이 글을 쓴 강명구 교수는 뉴욕시립대에서 국제정치경제 및 미국과 아시아 국제관계를 가르치고 있다. 일본 재무성 및 프린스턴의 고등과학연구소(Institute for Advanced Study)에서 방문학자를 역임했다. 주요 연구 및 관심 분야는 경제안보와 금융위기에 대한 정부의 정책 대응 문제이다.

덧붙이는 글 이 글은 <소셜 코리아>(https://socialkorea.org)에도 게재됐습니다. <소셜 코리아> 연재글과 다양한 소식을 매주 받아보시려면 뉴스레터를 신청해주세요. 구독신청 : https://socialkorea.stibee.com/subscribe

#경제위기 #리더십 #한국경제 #인플레이션 #사령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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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 69시간도 가능”...연장근로시간 관리단위 넓히는 윤석열 정부

권순원 교수 등 미래노동시장연구회가 12일 서울 중구의 한 호텔에서 미래노동시장연구회 권고문을 발표하고 있다. 정부의 노동시장 개혁안을 논의해 온 미래노동시장연구회는 연장근로시간 관리 단위를 현행 1주 외에 '월 단위 이상'으로 관리할 수 있도록 하는 개편안을 발표했다. 2022.12.12. ⓒ뉴시스

정부의 노동시장 개편안을 논의해온 미래노동시장연구회가 연장근로시간 관리단위를 현행 ‘1주’ 외에 ‘월 단위 이상’으로 관리할 수 있도록 하는 방안을 발표했다. 이를 두고 ‘장시간 노동’ 사회가 될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다.

연구회는 12일 서울 프레지던트호텔에서 지난 7월부터 검토해온 ‘근로시간·임금체계 개혁 최종 권고안’을 공개했다. 연구회는 지난 6월 이정식 고용노동부 장관이 ‘노동시장 개혁 추진방향’을 발표한 이후 구성된 전문가 논의기구다.

연구회는 우선 연장근로시간 관리단위를 현행 ‘1주’ 외에 ‘월‧분기‧반기‧연’ 단위로도 관리할 수 있도록 해 노사의 선택 재량을 넓힐 것을 권고했다.

현행 근로기준법은 연장근로시간을 1주일에 12시간으로 제한하고 있다. 이에 따라 사용자는 기본 주 40시간에 12시간의 연장근로시간을 더해 최대 주 52시간까지 노동자에게 일을 시킬 수 있었다.

만약 연구회의 권고대로 연장근로시간 관리단위가 길어진다면 주 52시간을 훨씬 초과하는 ‘과로’를 할 수 있는 상황이 발생할 것으로 보인다. 이에 대해 이용우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노동위원회 위원장은 이날 성명에서 주 92시간까지 장시간 노동도 가능해질 것이라고 우려했다. 연장노동시간을 ‘월 단위’로 관리할 경우 월(4.345주) 52시간(=1주 12시간*4.345주)의 연장노동을 1주에 집중되도록 하여 결국 주 92시간(=40시간+52시간)의 노동이 가능해진다는 추산이다.

이 위원장은 “연장노동시간 관리단위가 확대될 경우 특정 주에 지금보다 훨씬 과도한 장시간 노동이 집중되고, 불규칙한 노동이 반복되어 노동자의 건강권을 심각하게 침해하게 된다”고 비판했다.

이에 연구회는 연장근로시간 관리단위를 ‘월’ 단위 이상으로 할 경우, 근로일 간 11시간 연속휴식을 부여하는 등의 근로자 건강권 보호 방안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연구회 좌장인 권순원 숙명여대 교수는 “‘월’ 단위로 연장근로시간을 관리하는 경우 ‘11시간 연속 휴식’ 등을 모두 고려해 주당 최대 69시간까지 가능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는 다만 “예외적이고 극단적인 상황이기 때문에 빈번하리라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선을 그었다.

하지만 이 위원장은 ‘근로일 간 11시간 연속휴식 보장제’에 대해서도 “장시간·집중 노동과 불규칙 노동의 반복을 실효적으로 막을 수 있는 제도가 전혀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그는 “예를 들면, 근로일 간 11시간 연속휴식이 보장되더라도 매일 13시간의 근로가 이어지게 된다면 노동자의 건강권 침해는 마찬가지”라고 우려했다. 민주노총도 이날 성명을 통해 “보편적 적용이 아니기도 하고 24시간 내 11시간 휴식제가 아니라서 장시간 노동으로 빠져나갈 구멍이 여전하다”고 꼬집었다.

연구회가 내놓은 또 다른 대책인 연장근로시간의 총량을 비례적으로 감축하라는 방안도 효과가 없을 것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연구회는 관리 단위를 ‘월’로 정할 경우 연장근로시간은 52시간, ‘분기’로 정할 경우 월 단위 대비 90%인 140시간, ‘반기’로 정할 경우엔 80%인 250시간, ‘연’으로 정할 경우엔 70% 수준인 440시간으로 제한하라고 권고했다.

민주노총은 “노동조합조차 결성하기 힘들고 사용자의 재량에 의해서 노동시간이 강제될 것이 뻔한 상황에서, 중소영세사업장·비정규직 노동자에게 ‘선택’, ‘자율’이란 말 자체가 허황”이라며 “연장근로총량제도 겉으로는 분기·연 단위로 가면 총량을 줄이는 방식으로 구색을 맞췄지만, 실제 시행 가능성이 가장 많은 월 단위 기준은 총량을 그대로 유지했다. 그야말로 ‘그림의 떡’, ‘눈 가리고 아웅’”이라고 비판했다.

나아가 연구회는 연장근로시간 관리단위 개편에 발맞춰 유연근로제도 중 하나인 ‘선택근로제’의 정산기간과 적용대상을 전 업종에서 3개월 이내로 확대할 것을 권고하기도 했다. 현재는 연구개발 분야에만 한정하고, 한 달 이내의 정산기간을 평균해 주당 근로시간이 40시간을 초과하지 않는 범위에서만 연장근로가 가능하다.

이에 대해 이 위원장은 “3개월 단위의 선택적 근로시간제가 작년 초 연구개발 업무에 한정되어 신중하게 도입된 지 얼마 되지 않은 시점에서 또다시 노동자의 선택권이라는 수사(rhetoric, 레토릭)까지 동원해 전 업종으로 확대하는 것은 매우 위험하다”며 “사업장에서 선택적 근로시간제의 시행은 사용자가 주도한다는 점에서 노동자의 선택권은 ‘강요된 선택’일 가능성이 높고, 정산기간을 3개월로 확대할 경우 장시간·집중 노동의 폐해가 심각하게 우려된다”고 밝혔다.

연구회는 사업장의 다양한 직군만 유연근로제를 도입할 수 있도록 ‘부분 근로자대표’를 선출하는 방식도 제안했는데, 이를 두고는 ‘노조 패싱’이라는 비판이 나온다. 민주노총은 “’부분 근로자대표’ 도입은 그나마 있는 노조와 근로자대표의 합의권 마저 강탈하고 무력화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노동자의 휴식 기회를 늘리기 위해 연장‧야간‧휴일근로 등에 대한 보상을 시간으로 저축해 휴가로 사용할 수 있도록 하는 ‘근로시간 저축계좌제’를 도입하는 대안도 내놨다. 이 경우 가산수당 기준보다 높은 수준으로 적립하는 방안을 통해 휴가 사용 유인을 높일 필요가 있다고 연구회는 강조했다.

이 밖에 연구회는 원·하청 기업 간 과도한 임금 격차를 줄이고 임금체계에 직무와 숙련도를 반영하기 위한 ‘임금체계 개혁과제’도 권고했다. 연공(여러 해 근무한 공로) 등을 토대로 정해지는 호봉제를 직무·성과급제로 전환하자는 것이 골자다.

이에 대해 이 위원장은 “현재의 상황에서 연공급 폐지는 임금의 하향평준화로 귀결될 가능성이 매우 높고, 직무·성과 평가의 한계로 혼란만 가중될 것”이라고 비판했다. 이어 “한국의 임금체계에서 가장 큰 특징은 연공급이 아니라 기업별 임금체계”라며 “동일 직무에 대한 기업별 임금격차는 연공급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원·하청 구조의 노동시장 양극화 등으로 인한 것”이라고 꼬집었다.

연구회 활동은 최종 권고안 발표를 끝으로 종료된다. 정부는 이를 토대로 필요한 입법 조치 등에 나서게 된다. 이정식 고용노동부 장관은 이날 페이스북에 “노동시장을 위한 개혁을 본격적으로 시작하겠다”며 “권고문에 구체적으로 담겨 있는 임금과 근로시간 제도는 이른 시일 내 입법안을 마련하겠다”고 적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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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전'은 평화가 아닌 폭력 상태…한국서 '영구 전쟁 '유지하려는 건 누구인가"



[인터뷰] 노벨평화 월드서밋상 받는 위민크로스DMZ 크리스틴 안 대표

전홍기혜 기자 기사입력 2022.12.13. 07:57:25

 

올해 18번째인 노벨평화상 수상자 월드서밋이 강원도 평창에서 12일부터 14일까지 열린다.

 

"함께라서 더 강한"(Stronger Together)이라는 주제로 열리는 이번 월드서밋에 한국계 미국인이자 평화운동가인 크리스틴 안(Christine Ahn)은 '노벨평화 월드서밋상'을 받기 위해 한국을 찾았다.

 

'디엠지 세계 여성 횡단 운동(Women Cross DMZ, 이하 WCD)'의 설립자이자 대표인 크리스틴 안은 10일 프레시안과 인터뷰에서 "노벨 평화상 수상자들이 주는 이 상을 받게 돼 정말 영광"이라고 소감을 밝혔다.

 

2015년 전 세계 15개국 30여명 여성평화운동가들이 한반도의 전쟁 종식과 평화 정착을 위해 북한에서 비무장지대를 넘어 남한으로 건너왔다. 노벨평화상 수상자인 메어리드 맥과이어, 리마 보위, 미국 여성운동의 대모격인 글로리아 스타이넘 등이 함께 했고, 안 대표는 이런 아이디어를 처음으로 제시하고 실현하는데 앞장 섰다.

 

비무장지대 양쪽에서 1만여 명의 한국 여성들도 평화를 기원하는 이 걸음에 함께 했다. 영화 <크로싱(Crossing)>은 당시 여성들의 평화 기원 횡단 운동을 기록했다.

WCD는 미국 정부와 의회를 상대로 '한반도 평화법' 등 평화 정책에 대한 청원 활동, 2016년 인도네시아 발리에서 남북한 여성들과 공동 회의 개최와 같은 국제 연대 활동 등을 이어오고 있다.

▲크리스틴 안 대표. ⓒ크리스틴 안

한국계 '미국인'인 그가 한반도 평화 운동에 매진하고 있는 것에 대해 안 대표는 한반도가 아직도 '종전'이 아닌 '정전' 중인 책임이 궁극적으로 미국에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2021년 9월 유엔 총회에서 종전 협정, 평화 협정의 중요성에 대해 연설했습니다. 어느 누구도 화답하지 않았죠. 한국전쟁은 남한과 북한 사이의 '내전'이 아니었습니다. 미국, 중국 뿐 아니라 유엔 연합군에 참여한 21개 나라들의 공동 전쟁이었습니다. 따라서 종전 협정을 체결하기 위해선 남한과 북한만의 의지로 되는 일이 아닙니다. 정전 협정에 서명한 미국과 중국의 동의가 필요합니다.

저는 미국인들이 한국전쟁이 한국의 전쟁이 아니라는 것을 이해하고 책임감을 갖는 일이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이것은 미국의 전쟁, 미국의 가장 오랜 전쟁입니다."

하와이에서 살고 있는 안 대표는 한반도 평화의 문제가 자신의 안전 문제와도 직접적인 연관이 있다고 말했다. 많은 이들에게 유명 '신혼 여행지' 중 하나로 인식되는 관광지인 하와이는 미국 내에서 주요한 군사요충지로 기능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하와이 땅의 25%가 군 관련 시설입니다. 해안가를 따라 미 해군이 보유하고 있는 수백만 갤런의 연료 저장고(레드힐 저장창고)가 있습니다. 항공모함과 제트기에 연료를 대기 위한 이 시설들이 노후해 연료가 누출됐고, 이로 인해 9만3000명의 식수원이 오염됐고 유독 물질에 중독됐습니다. 그러나 이런 사실들은 잘 알려지지 않고 관광지로 하와이만 부각되지요."

"냉전의 최전선 한국…윤석열 정부의 한미일 동맹 가속화는 위험"

안 대표는 조 바이든 정권에서도 가중되는 미국과 중국의 경쟁 구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등으로 오히려 한반도의 평화가 더 위협 받는 상황에 대해 크게 우려했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직후 열린 지난 3월 유엔 총회에서 북한은 러시아의 침공을 규탄하는 결의안에 반대표를 던진 5개국(러시아, 북한, 벨라루스, 시리아, 니카라과) 중 하나였고, 이후에도 노골적으로 러시아의 침공을 정당화하는 편에 서고 있다.

반면 남한은 북한과 중국에 대해 적대적인 윤석열 정부가 집권하면서 미국이 중국의 경쟁 구도를 염두에 두고 압박하는 한미일 동맹 구도에 자석처럼 끌려 들어가고 있다. 윤석열 정부 들어 한국과 미국은 합동군사훈련의 규모를 더 키웠고, 미국의 핵항모까지 동원되는 군사훈련에 자극을 받은 북한은 그 기간 동안 2-3일에 한번꼴로 미사일을 쐈다.

"저는 한국전쟁이 냉전의 최전선이었다는 사실을 아는 게 중요하다고 봅니다. 이 해결되지 않은 전쟁이 이 지역의 대규모 군사화의 일부라는 사실, 계속되는 긴장감도 이로 인해 기인합니다.

최근 한국 해군이 일본의 관함식에 참석해 일본 군함을 향해 거수 경례를 하는 것을 보고 두 눈을 의심했습니다. 저는 민족주의자는 아니지만, 일본의 식민통치를 경험한 한국이 어떻게 일본 군국주의의 상징인 욱일기를 단 군함을 향해 경례를 할 수 있는지 놀라울 따름이었습니다."

남북 사이의 긴장이 고조되자 윤석열 정권 내부를 포함해 보수 일각에서 다시 '핵 무장론'이 고개를 들기 시작했다. 이에 대해 안 대표는 "안보가 군사적 수단을 통해 달성될 것이라는 패러다임을 바꿔야 한다"고 반박했다.

국방기술진흥연구소가 발표한 '2022 세계 방산시장 연감'을 보면 지난해 세계 국방비 지출은 총 2조1130억 달러(약 2270조원)으로 전년 대비 7% 증가했다. 이중 1위는 미국(8010억 달러)로 전세계 국방비 지출은 38%를 차지했다. 중국은 2위(2930억 달러)이며 한국은 10위(500억)를 차지했다.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더 경쟁적으로 증가하고 있는 각국의 국방비 지출은 결국 민간인들의 목숨을 빼앗고 일상을 파괴하는데 쓰인다. 70년째 '정전' 상태인 한국인들의 삶도 마찬가지라고 안 대표는 강조했다.

"인지부조화라는 말로 설명될 수 있습니다. 정전체제에서 살고 있는 우리는 현재가 평화롭다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폭력적인 상황에서 살고 있습니다. 우리는 한미군사훈련에도, 북한이 연일 쏘아대는 미사일에도 익숙해지고 둔감해졌습니다. 전쟁이 끝난 것이 아니라 중단된 상황이 우리 일상을 규정하는 일은 이것만이 아닙니다. 이산가족들의 삶, DMZ 주변의 여성들, 한국인 디아스포라들의 삶, 한국전, 베트남전, 이라크전 등 전쟁에 참전한 뒤 트라우마로 고통받는 제대 군인들과 가족들 등 전쟁이 우리 삶을 망가뜨린 이야기는 먼 과거의 이야기들만이 아닙니다.

영구적인 전쟁 상태를 유지하는 것을 통해 가장 이득을 보는 이들은 결국 록히드마틴 등 군산복합체라는 사실은 너무나 잘 알려져 있다. 안 대표는 과도한 국방비 지출로 경제, 환경, 교육 등 지출이 줄을 수 밖에 없는 등 기회 비용의 상실에 대해 지적했다.

"한국은 '섬'이 아니지만 분단 때문에 섬나라가 됐습니다. 제가 사는 하와이도 섬이기 때문에 물류비용이 30% 정도 더 비싸다고 합니다. 한국도 마찬가지로 분단 때문에 유럽으로 가는 육로가 막혔습니다.

한반도의 통일을 주장하는 것이 아닙니다. 평화적인 공존, 서로가 정상적인 국가의 상태로 돌아가는 것에 대해 이야기 하는 것입니다.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우크라이나의 영세중립국안이 대안 중 하나로 떠올랐습니다. 한국도 스위스와 같은 영세중립국으로 가는 것이 그토록 힘든 일일까요?

결국 이를 가로막는 것은 미국과 중국의 대립과 같은 큰 나라들의 국익의 문제입니다. 한국인들의 운명은 한국인들이 결정해야 합니다. 한국은 5000년을 하나의 국가로 살았습니다. 한국은 실제로 다른 나라를 침략한 적인 없는 가장 평화로운 나라 중 하나입니다. 21세기 한국이 세계에 자랑할 것은 방탄소년탄과 같은 케이-컬쳐뿐만이 아닙니다. 자연과 인간, 다른 나라 사람들과 조화롭게 살아온 역사에 기반한 평화의 정신도 있습니다."

▲미국 연방의회를 상대로 브리핑하는 크리스틴 안. 대표 ⓒ위민크로스디엠지 홈페이지 갈무리

노벨평화상 월드서밋, 평창을 평화도시로 선포

노벨평화상 수상자 월드서밋은 1990년 냉전 해체 등의 공로를 인정받아 노벨평화상을 수상한 고(故) 미하일 고르바초프 옛 소련 대통령이 노벨평화상 수상자들을 통해 세계 평화에 이바지하고자 창설했다.

올해 18회째인 월드서밋은 남북 올림픽 공동팀을 구성하는 등 동계올림픽을 통해 평화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해 평창을 평화도시로 선포할 예정이다.

14일까지 열리는 이번 월드서밋에는 한반도와 세계평화 증진 등을 위한 국제 포럼, 패널 토론 등의 프로그램이 마련된다. 또 국내외 대학생들이 노벨평화상 수상자와 함께 평화에 대한 담론을 나누고 평화 활동에 참여하는 '솔선수범 리더 프로그램'도 진행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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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홍기혜 기자 

2001년 프레시안 공채 1기로 입사한 뒤 정치, 사회, 경제, 국제 분야를 취재했습니다. 프레시안 편집국장, 워싱턴 특파원 등을 역임했습니다. <삼성왕국의 게릴라들>, <한국의 워킹푸어>, <안철수를 생각한다>, <아이들 파는 나라-한국의 국제입양 실태에 관한 보고서> 등 책을 썼습니다. 국제엠네스티 언론상(2017년), 인권보도상(2018년), 대통령표창(2018년) 등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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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 52시간 사실상 해체 권고”에 '역주행' vs '불가피'

[아침신문 솎아보기] 주52시간 사실상 해체 권고…“주69시간 노동 가능”

노동계 반대 넘자는 신문들…조중동, 국민‧서울

대통령, 이상민 장관 해임건의안 거부 방침…민주당 탄핵 추진할 듯

고용노동부 의뢰로 노동시장 개편안을 준비해온 미래노동시장연구회가 초과근무 관리 단위를 현행 ‘주 단위’에서 ‘연 단위’로 바꾸는 방안을 권고했다. 현행 52시간에서 최대 69시간까지 노동시간이 늘어날 수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 또한 호봉제 임금체계를 직무와 성과 중심의 임금체계로 바꿀 것 등을 권고했다. 노동계는 “임금과 노동시간 결정권을 사용자에 맡기는 것”이라며 반발하고 있다.

해당 권고안에 경향신문은 ‘주 69시간’, 한겨레는 ‘최대 주 80시간’까지 언급하면서 한국의 노사관계 상황을 따져볼 때 노사 합의로 노동시간이나 임금체계가 정해지기 보다 사용자가 원하는 방향대로 바뀔 가능성이 높다고 비판했다. 반면 그 외 신문들은 노동 유연화가 필요하다는 방향의 기사나 사설을 실었다.

윤석열 대통령이 이상민 행정부장관의 해임건의안을 사실상 거부하는 방침을 밝혔다. 더불어민주당은 장관 탄핵 소추를 추진할 것으로 예상된다.

▲12월13일 주요 종합일간지 1면 모음.

다음은 13일 주요 종합일간지 1면 머릿기사 제목이다.

경향신문 “노동자 초과근무 ‘주12시간’ 깨진다”

국민일보 “‘당심이 승패 가른다’ 與당권주자 ‘우향우’”

동아일보 “전국 모든 2주택자 종부세 중과 안한다”

서울신문 “52시간제 유연화 호봉제 대폭 축소”

세계일보 “인구절벽 한국경제 印尼에 추월당한다”

조선일보 “파견기간 늘리고 주휴수당 손본다”

중앙일보 “주52시간제 유영화 1년 단위도 허용 추진”

한겨레 “주80시간 노동시간 단축에 역주행”

한국일보 “런던 탄소 39% 감축할 때 서울은 8% 찔끔”

주52시간 사실상 해체 권고…“주 69시간 노동 가능해질 것”


정부의 노동시장 개혁 자문기구인 미래노동시장연구회가기본 40시간 외 최대 12시간까지 허용되는 연장근로시간 관리 단위를 ‘월·분기·반기·연’ 단위로 개편하라고 권고했다. 연구회는 권고문에서 관리단위에 따라 월 52시간, 연간 440시간까지 연장근로가 가능케 하는 안을 제시했다. 노동자가 원할 경우 연장·야간·휴일근로 등에 대한 보상을 시간으로 저축해 휴가로 사용할 수 있도록 한다는 ‘근로시간 저축계좌제’도 제안했다.

▲13일 한겨레 1면.

▲13일 한겨레 만평.

한겨레는 이날 1면 기사 제목을 “주80시간 노동시간 단축에 역주행”이라고 뽑고 “현행 1주 최대 52시간인 노동시간이 80.5시간까지 가능해지는 등 노동시간 단축 흐름에 역행한다는 비판이 제기된다”고 비판했다. 한겨레는 주80시간 노동이 가능해진다고 계산했고 경향신문은 69시간까지 늘어날 것이라 계산했다.

경향신문은 이날 사설에서 “사실상 ‘주 52시간제’ 해체를 권고한 것”이라며 “산술적으로 주당 69시간까지 장시간 노동이 가능해진다”고 썼다. 그러면서 “노동자 건강권을 악화시킬 게 분명하다”고 비판했다.

경향신문이 이러한 방향을 비판하는 이유는 “주 52시간제가 도입된 지 5년째임에도, 노조 있는 사업장에서조차 10곳 중 4곳꼴로 장시간 노동이 계속되는 실정이고 노조 조직률이 14%에 불과한 데다, 30인 이상 사업체에서 사측과 교섭할 ‘근로자 대표’ 제도도 미비하다”는 것과 “근로시간 저축계좌제도 악용될 가능성이 있다. 사측에서 ‘저축’을 명목으로 초과근로에 따른 가산임금을 주지 않을 경우 무임금 노동으로 이어질 우려가 있다”는 점이다.

▲13일 경향신문 사설.

한겨레 역시 이날 사설에서 “‘주 52시간제’를 무력화하려는 의도”라고 비판했다. 한겨레도 경향신문과 같이 노사관계가 사쪽으로 기울어진 상황을 우려했다.

한겨레 사설은 “노동부와 연구회는 ‘노사 합의’와 ‘자율적 선택’을 강조한다. 연장근로 정산 기간을 확대하려면 과반수 노조 또는 ‘과반수 노동자를 대표하는 자’(근로자대표)와의 서면합의를 거치도록 하겠다는 것”이라며 “그러나 한국처럼 노사관계가 사쪽으로 기울어져 있는 상황에서 노사 합의는 허울에 그칠 공산이 크다. 한국의 노조 조직률은 14%로 다른 선진국과 견줘 턱없이 낮다. 근로자대표 제도도 대표를 뽑는 절차 등이 전혀 마련돼 있지 않아 민주적 정당성이 취약하다. 사용자 뜻대로 ‘노동시간 선택권’이 오남용될 우려가 크다는 얘기”라고 비판했다.

▲13일 한겨레 사설.

노동계 반대 넘자는 신문들…조중동, 국민‧서울


조선일보는 해당 이슈를 1면에 다루면서 “고용노동부 장관에게 권고하는 형식이지만 이미 정부와 상당한 공감대를 이룬 상태에서 나온 것이라 이를 바탕으로 개혁이 추진될 전망”이라고 봤다.

중앙일보는 1면과 3면에서 해당 이슈를 다루고 “개혁의 관건은 국민적 공감대 형성이다. 특히 노동계 반발을 넘어야 한다”고 전했다.

▲13일 조선일보 1면.

▲13일 중앙일보 1면.

동아일보는 이날 사설 “정부자문硏 노동개혁 권고… 입법 비전 없인 희망고문일 뿐”에서 “미래연의 권고는 설득력이 있다. 청년 세대는 나이, 연차가 아니라 성과에 근거한 공정한 보상을 원하고 있다”며 “여성의 경제활동 확대, 필요할 때 원하는 만큼 일하는 ‘긱(Gig) 워커’ 증가 등 노동시장의 변화를 따라잡기 위해서도 개혁은 피할 수 없다. 권고안이 충분히 다루지 않은 고질적 노동시장 이중구조의 개선에도 정부는 박차를 가해야 한다”고 전했다.

이어 “문제는 개혁을 위해서는 근로기준법 등 다수의 노동관계법을 고쳐야 한다는 점이다. 노동계와 야당을 설득하지 못하면 갈등만 키우고, 개혁은 공염불에 그칠 가능성이 적지 않다”며 “개혁안 마련보다 중요한 건 개혁의 필요성을 국민에게 납득시키는 것이다. 말로는 강한 의지를 보이다가 희망고문으로 끝난 과거의 개혁 실패를 되풀이하는 일은 없어야 한다”고 밝혔다.

▲13일 동아일보 사설.

국민일보는 사설을 통해 “노동시장의 자율성을 확대하고 수십 년간 유지돼 온 경직된 임금체계를 개선하자는 주문인데 노사 당사자들의 이해와 직결된 사안들이다. 노동 환경이 급변하고 있어 관련 제도를 그에 걸맞게 개혁하자는 필요성에는 국민 다수가 공감하고 있다”며 “하지만 워낙 민감한 사안들이라 일방적으로 밀어붙이다가는 노정 간 충돌과 극심한 사회적 갈등의 새로운 불씨가 될 수 있다는 점을 유념해야 한다”고 전했다.

서울신문은 이날 사설 “근로시간 유연화 마땅하나 부작용도 살피길”에서 주 52시간제에 대해 “근로시간 단축에 일정 부분 효과를 본 것은 사실이나 업종, 근무 형태를 가리지 않는 획일적이고 경직된 규제 탓에 산업 현장 곳곳에서 불만이 터져 나왔다”며 “연장 근로를 더 해서 더 많은 돈을 벌고 싶어도 그럴 수 없는 근로자들은 경제적 손실을 호소했고, 특정 기간에 일감이 몰리는 정보기술(IT) 업체나 만성적인 인력난에 시달리는 중소기업들의 고통도 컸다”면서 근로시간 유연화 방향에 동의하는 방향을 밝혔다.

▲13일 국민일보 사설.

▲13일 서울신문 사설.

대통령, 이상민 장관 해임건의안 거부…민주당 탄핵 추진할 듯


윤석열 대통령이 12일 국회에서 넘어온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의 해임건의안을 거부하기로 했다. 야당은 크게 반발하며 이 장관에 대한 탄핵소추를 본격 추진할 것으로 보인다. 대통령실 이재명 부대변인은 12일 “오늘 오전 국회에서 정부로 국무위원 이상민 해임건의문이 통지됐다”며 “해임 문제는 진상이 명확히 가려진 후에 판단할 문제라는 기존 입장에 변함이 없다”고 밝혔다.

▲13일 국민일보 4면.

▲13일 경향신문 만평.

더불어민주당은 이 장관 탄핵소추안 발의에 나선다는 입장이다. 민주당 서영교 최고위원은 “재난으로부터 국민을 지켜야 할 장관의 임무를 다하지 못한 사람은 탄핵해야 한다”며 “저희가 충분히 논의해서 그다음 단계(탄핵소추)가 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경향신문은 이날 사설에서 “국민 158명이 목숨을 잃은 이태원 참사는 국가의 직무유기로 발생했다. 주무장관임에도 참사 당일 아무런 역할을 하지 않았고, 이후 책임회피성 망언으로 국민을 분노케 한 이 장관은 경질돼야 마땅하다”며 “윤 대통령이 해임 건의를 거부한 것은 민심에 정면으로 맞서는 일”이라고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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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서 이태원 참사 지역 단위 대책기구 첫 결성

유가족들, 정부와 여당 향해 “2차 가해 말라”

  • 기자명 대전=임재근 객원기자 
  •  
  •  입력 2022.12.12 21:42
  •  
  •  수정 2022.12.13 01:08
  •  
  •  댓글 0
 
대전지역 47개 종교시민사회단체는 12월 12일 ‘10.29 이태원 참사 대전대책회의’를 결성하고, 유가족들과 함께 공동기자회견을 개최했다. [사진 - 통일뉴스 임재근 객원기자]
대전지역 47개 종교시민사회단체는 12월 12일 ‘10.29 이태원 참사 대전대책회의’를 결성하고, 유가족들과 함께 공동기자회견을 개최했다. [사진 - 통일뉴스 임재근 객원기자]

대전지역 47개 종교시민사회단체는 ‘10.29 이태원 참사 대전대책회의’를 결성했다. 지역 단위로는 첫 대책기구 결성이다.

‘10.29 이태원 참사 대전대책회의’는 12월 12일 오후 2시, 대전시청 앞에서 10.29 이태원 참사에 대한 국가 책임 인정과 진상규명 그리고 책임자 처벌을 촉구하며 유가족들과 함께 공동기자회견을 개최했다.

이날 기자회견에는 10여명의 유가족도 참석하면서 취재진들도 몰려들었다.

이날 기자회견에는 10여명의 유가족도 참석하면서 취재진들도 몰려들었다. [사진 - 통일뉴스 임재근 객원기자]
이날 기자회견에는 10여명의 유가족도 참석하면서 취재진들도 몰려들었다. [사진 - 통일뉴스 임재근 객원기자]

이날 기자회견 발언에 나선 성서대전 대표 전남식 목사는 “지난 10월 29일의 이태원 참사는 2014년 세월호 참사 이후 온 국민을 충격에 빠뜨린 사건”이라며, “하지만 이 참사에 대응하는 정부 여당은 그렇게 받아들이지 않는 모습”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유가족과 국민이 분노하는 이유는 윤석열 정부와 여당이 희생자들의 죽음을 가볍게 여기고 있기 때문”이라며, “참사가 발생한 지 6주가 지났지만 정부는 희생자들의 죽음을 기억하고 추모하기는커녕 참사의 기억을 지우려고 발버둥치고 있다”고 비판의 목소리를 높였다.

전남식 목사는 또한 “이태원 참사를 기점으로 새로운 사회, 보다 안전한 사회, 일상적인 시간과 장소에서 예기치 못한 위험에 맞딱뜨리는 일이 없는 사회를 만들어 가는데 우리 국민들과 교회는 유가족 여러분과 함께 할 것”이라며, 어떤 상황에서도 포기하지 말고, 쉽게 타협하지도 말라고 당부했다.

천주교대전교구 정의평화위원장 김용태 신부도 발언에 나서 “이 대규모 참사에 대해 우선적으로 책임을 져야할 국가권력은 도리어 국민들에게 아무 것도 묻지도 말고 따지지도 말라고 강요하고 있다”며, 그 이유에 대해 묻고 따짐으로써 드러나게 되는 실체와 진실이 두려워서고,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하지 않은 국가권력의 방기와 직무유기가 드러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우리는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을 통해서 묻고 따지고 애도하고 추모하며 고인을 떠나보내고 유가족들을 위로하며 더 이상의 참사가 일어나지 않도록 현재의 삶을 정리해 나갈 것”이라고 덧붙였다.

대전지역 희생자 유족이자 유가족협의회 부대표 송진영 씨(故 송채림 부친)가 발언을 하고 있다. [사진 - 통일뉴스 임재근 객원기자]
대전지역 희생자 유족이자 유가족협의회 부대표 송진영 씨(故 송채림 부친)가 발언을 하고 있다. [사진 - 통일뉴스 임재근 객원기자]

유가족들의 발언이 이어지면서 유가족들은 흐느껴 울고, 기자회견 참가자들도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대전지역 희생자 유족이자 ‘10.29 이태원 참사 유가족협의회’(이하 유가족협의회) 송진영 부대표(故 송채림 부친)는 “정부는 유족들에게 ‘2차 가해하지마라’, ‘트라우마 치료를 받아라’고 말하고 있지만 실상은 정부가 유족을 향해서 2차 가해를 하고 있고, 트라우마로 쓰러져 있는 유족들을 또 한 번 짓밟고 있다”고 말했다.

유가족협의회 이종철(故 이지안 부친) 대표는 첫 기자회견에 나선 유가족들에게 ‘158명을 대변할 수 없다’던 국민의 힘 정진석 비대위원장과 ‘세월호의 길을 따라가지 말라’던 권성동 의원의 망언에 대해 규탄의 목소리를 냈다. 그러면서 이만희 국민의힘 이태원 참사 국정조사 특별위원회 간사를 향해 “국정조사 특조위로 복귀하라”고 말했다.

이태원 참사 유가족협의회 이종철 대표가 발언을 하고 있다. [사진 - 통일뉴스 임재근 객원기자]
이태원 참사 유가족협의회 이종철 대표가 발언을 하고 있다. [사진 - 통일뉴스 임재근 객원기자]
이지안의 모친 조미은 씨가 기자회견에서 발언을 하고 있다. [사진 - 통일뉴스 임재근 객원기자]
이지안의 모친 조미은 씨가 기자회견에서 발언을 하고 있다. [사진 - 통일뉴스 임재근 객원기자]

故 이지안의 모친 조미은 씨도 “죽음의 진상이 투명하게 밝혀질 때까지 다른 유가족들과 함께 투사가 될 것을 맹세한다”며 발언에 나섰다. 조 씨는 “그들의 직업은 배우, 선생님, 간호사, 유학생, 디자이너, 미국 공인회계사, 탐험가, 변호사 11월 1일이 생일이었던 아이”라며 희생자들을 언급하며, “왜 못 구했냐고 묻는 게 아니라 지금 저는 왜 안 구했냐고 묻고 있는 것”이라며, 이태원 참사를 ‘부작위에 의한 살인’이라고 규정했다.

158명의 이태원 희생자 중에 뒤늦게 세상을 떠난 156번째 희생자의 고모라고 밝힌 대전에 사는 진창희 씨가 발언을 하고 있다. [사진 - 통일뉴스 임재근 객원기자]
158명의 이태원 희생자 중에 뒤늦게 세상을 떠난 156번째 희생자의 고모라고 밝힌 대전에 사는 진창희 씨가 발언을 하고 있다. [사진 - 통일뉴스 임재근 객원기자]

158명의 이태원 희생자 중에 뒤늦게 세상을 떠난 156번째 희생자의 고모라고 밝힌 대전에 사는 진창희 씨는 “유가족의 첫 번째 2차 가해자는 이상민 장관”이라며, “경찰 소방 병력을 배치해서 해결될 일이 아니라고 말할 때 비수에 꽂히는 기분이 들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쟁점은 현장 대응을 넘어서서 사전 예방까지 가야 되고, 사법적 책임을 묻고 도덕적 도의적 책임까지 물을 수 있어야 하는데, 정부는 은폐와 왜곡을 시도하고 있다”고 말했다. 진 씨는 또한 “간신히 숨을 헐떡이고 있는 우리 유가족의 골든타임을 놓치지 말라”며 국정조사에 이어 특검을 요구하기도 했다.

‘10.29 이태원 참사 대전대책회의’는 마지막으로 결성 선언문을 발표했다. 대책회의는 “윤석열 대통령은 시급히 참사의 국가책임부터 인정하고 대통령의 공식적인 사과문을 발표해야 한다”며, “지금이라도 국가는 국가의 책무를 다 하고, 유가족의 요구에 응답하라”고 요구했다.

그러면서 “또한 책임적 위치에 있던 이상민 행정안전부장관과 한덕수 국무총리, 윤희근 경찰청장 파면을 통해 성역없는 진상규명 의지를 보여야 한다”고 촉구했다.

대책회의는 또한 “지역사회에서 희생자와 피해자, 그 가족들이 고립되지 않고 요구가 흩어지지 않도록 노력하겠다”, “참사에 대한 국가 책임 인정과 진정한 사과가 이루어지고, 성역없는 철저한 진상규명과 책임자처벌이 될 수 있도록 대전시민들의 마음과 실천을 모으는 역할을 하겠다”, “유족들의 소통과 치유를 위한 지원방안을 모색하고, 희생자와 피해자의 입장에서 참사를 바라보고 아픔을 나누며, 유가족들을 보호하는 활동을 해나가겠다”며 희생자와 피해자, 그 가족들과 늘 함께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대전시민들께서도 우리 이웃의 아픔을 보듬고 안전한 사회를 위한 대책 마련까지 유가족협의회와 대전대책회의와 함께해주실 것을 호소드린다”고 덧붙였다.

최명진 대전장애인차별철페연대 공동대표(첫째 줄 왼쪽에서 두 번째)와 문성호 대전시민사회단체연대회의 공동대표(첫째 줄 왼쪽에서 세 번째)가 ‘10.29 이태원 참사 대전대책회의’ 결성 선언문을 낭독했다. [사진 - 통일뉴스 임재근 객원기자]
최명진 대전장애인차별철페연대 공동대표(첫째 줄 왼쪽에서 두 번째)와 문성호 대전시민사회단체연대회의 공동대표(첫째 줄 왼쪽에서 세 번째)가 ‘10.29 이태원 참사 대전대책회의’ 결성 선언문을 낭독했다. [사진 - 통일뉴스 임재근 객원기자]

‘10.29 이태원 참사 대전대책회의’는 이날부터 참사 49일이 되는 12월 16일까지 집중추모주간으로 설정하고, ‘이태원 참사 진상규명 촉구 거리현수막 게시운동’을 펼치고, 15일 저녁 7시에는 유가족과 함께하는 대전시민 추모촛불을 진행하겠다고 밝혔다. 추모촛불은 둔산동 타임월드 맞은편 국민은행 앞에서 진행된다.

추모촛불이 개최되는 15일부터 참사 49일을 맞는 16일 저녁 8시까지는 시민분향소도 설치해 운영할 계획이다. 시민분향소에는 희생자 영정 사진과 위패도 걸 계획이다. 대책회의 관계자는 “시민분향소 설치 장소는 아직 협의 중”이라며, “이후 장소가 확정되면 알리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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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구에 대한 두 시선, 카뮈와 에코…그리고 대통령실 만찬을 보며

[김종구의 새벽에 문득]

김종구 (언론인)  |  기사입력 2022.12.12. 09:27:31 최종수정 2022.12.12. 10:17:19  

 

1957년 노벨문학상 수상자인 알베르 카뮈는 수상 소식이 발표되고 일주일 뒤 프랑스 텔레비전과 인터뷰를 했다. 그런데 인터뷰 장소가 특이했다. 방송사 스튜디오가 아니라 파리의 '파르크 데 프랭스' 축구 경기장이었다. 3만5천여명의 관중이 운집한 가운데 '라싱 클뢰브 드 파리' 팀과 모로코 팀의 경기가 열린 날, 카뮈는 관람석에 앉아 경기를 관전하면서 인터뷰를 했다. 경기 도중 파리팀 골키퍼가 실책을 저질러 실점하자 "너무 몰아붙이지 말라"며 골키퍼를 두둔하기도 했다. 이 인터뷰 장면은 희귀 필름으로 남아 지금도 유튜브에서 시청할 수 있다. 

 

프랑스령 알제리에서 태어난 카뮈는 어릴 때 이 지역의 '라싱 위니베르시테르 알제'(RUA) 클럽 주니어팀의 골키퍼로 활약했다. 카뮈는 가난한 집안 출신이었다. 골키퍼를 맡은 것도 신발이 가장 잘 닳지 않는 포스트가 골키퍼였기 때문이었다고 한다. 카뮈 할머니는 축구 때문에 비싼 신발이 빨리 헤진다고 끊임없이 그를 꾸짖었다. 카뮈는 17살 때 갑작스럽게 폐결핵에 걸려 축구를 중단했으나 축구 사랑은 평생 지속됐다. 파리에 살면서 '라싱 클뢰브 드 파리' 팬이 된 것도 순전히 파란색과 흰색의 유니폼 색상이 자신이 어릴 때 뛰었던 RUA와 같았기 때문이다. 

 

 

 

 
카뮈의 작품 속에는 축구 이야기가 많이 녹아들어 있다. 미완성 자전적 소설 <최초의 인간>에는 주인공 자크 코르므리가 학교 쉬는 시간에 숨을 헐떡이며 축구를 하고 난 뒤 "구두 밑창에 박은 징들이 닳았으리라는 생각에 불안하게 살펴보았다"는 대목이 나온다. 축구 때문에 구두가 닳는다고 할머니한테 야단맞던 어린 시절 카뮈의 모습이다. 소설 <전락>에서 주인공 장-바티스트 클라망스는 이렇게 말한다. "내가 진실로 충실하고 열정적이었던 때는 스포츠를 할 때와 군대에서 재미삼아 상연했던 연극에 출연했을 때뿐이었습니다. 이 두 가지에는 놀이 규칙이 있었는데, 진지하지 않은 것을 진지한 것으로 여기고 즐긴다는 것이었지요. (…) 경기장과 극장은 내가 죄의식을 느끼지 않는, 세상에서 유일한 장소들입니다." 실제로 카뮈는 자동차 사고로 숨지기 1년 전인 1959년 한 인터뷰에서 "극장과 축구 경기장이 나의 진정한 두 대학이었다"고 말하기도 했다.
 
▲카뮈가 쓴 작품들. 자전적 소설인 <최초의 인간>을 비롯해 <전락> <페스트> 등 많은 작품 속에 축구 이야기가 녹아들어 있다. 

 

"도덕과 의무에 대해 내가 아는 모든 것은 축구에서 배웠다." 카뮈가 남긴 유명한 말이다. 1956년 RUA 동문회보에서 선수 시절을 회상해달라는 주문을 받고 기고한 글에 나오는 대목이다. 이 글은 카뮈가 노벨문학상을 받은 뒤 주간지 <프랑스 풋볼>에도 그대로 실렸다. 당시 카뮈는 프랑스 지성계에서 점점 외톨이가 되고 있었다. 나치 반대 운동 때 '한 팀'을 이뤘던 좌파 지식인들과는 소비에트 및 알제리 독립전쟁에 대한 입장 차이로 사이가 점점 멀어졌다. 장 폴 사르트르와도 결별했다. 그래서 축구에 대한 카뮈의 말에는 파리 생활에 대한 환멸이 담겨 있는 듯하다. 카뮈는 언젠가 이런 말을 했다. "(골키퍼를 하면서) 공은 항상 내가 예상한 방향에서 오지 않는다는 것을 배웠다. 그것은 뒷날 아무도 공정하게 풀레이하지 않는 프랑스 본토에서 살아가는 데 큰 도움이 됐다." 카뮈는 축구 경기의 단순한 도덕성이 지식인들의 이념적 사상적 논쟁보다 더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담배 연기 자욱한 파리의 카페보다 땀투성이 축구 경기장이 더 정직한 윤리적 공간이라고 여겼다. 카뮈가 말한 "도덕과 의무"는 자신이 보기에 프랑스 지성계에는 없는 축구의 미덕, 즉 서로 믿고 의지하는 진한 동료애, 정직하게 최선을 다하는 페어플레이 정신을 지칭한 것으로 해석할 수도 있다.

 

▲“도덕과 의무에 대해 내가 아는 모든 것은 축구에서 배웠다”는 카뮈의 말은 1956년 RUA 동문회보에서 선수 시절을 회상해달라는 주문을 받고 기고한 글에 나온다. 이 글은 카뮈가 노벨문학상을 받은 뒤 주간지 <프랑스 풋볼>에도 그대로 실렸다.

 

영국의 논픽션 작가 M. M. 오웬은 <카뮈는 축구의 부조리를 통해 어떻게 위안을 얻었는가>라는 글을 통해 '부조리' '반항' 등 카뮈 사상의 핵심 단어를 사용해 그의 축구 사랑을 분석했다. 카뮈의 대표적 저서 <시지프 신화>에서처럼, 축구는 카뮈에게 "신을 부정하고 바위를 끌어올리는 일"이었다. 경기 시작 휘슬이 울리면 선수들은 그라운드에 내던져진 시지프와 같은 존재가 된다. 어찌 보면, 90분간 목숨을 걸고 미친 듯이 공을 쫓아 달리는 것, 공을 네트 안에 넣는 숫자를 그 어떤 가치보다 우위에 두는 것 자체가 '우스꽝스러운'(부조리한) 일일 지도 모른다. 축구는 부조리한 삶의 축소판이다. 경기장은 그 자체로 부조리한 공간이다. 공은 언제나 의도와 달리 원치 않는 방향으로 튀어버린다. 특히 골문을 지키는 파수꾼인 골키퍼는 가장 외로운 존재다. 선수들은 경기 시간 내내 커다란 바위를 가파른 언덕 위로 끌어올려야 한다. 한번 경기에서 이긴다고 해도 계속 이길 수는 없다. 바위를 다시 언덕 위로 굴려야 한다. "카뮈는 몸으로 하는 이 육신의 드라마에서 삶의 충만함과, 모든 비애와, 모든 구원의 은총을 목격했다. 카뮈는 절망이나 망상에 굴복하지 않고 세상과 정면으로 마주하기를 원했다. 그는 축구의 그 즐거운 비합리성을 즐겼다"고 오웬은 짚었다. 

 

소설가 김훈은 유명 사진작가 그룹 매그넘의 축구 사진들에 글을 붙여 <공치는 아이들>이란 책을 펴냈고, '공차기의 행복' 등 축구에 대한 적지 않은 글을 남겼다. 그의 글을 읽다 보면 문득문득 카뮈가 겹쳐져 다가온다. "공을 차는 아이들은 땅속에서 솟아오르는 풀싹처럼 어여쁘다. 공을 쫓는 아이들의 동작에서, 생명으로 태어난 것들의 기쁨의 언어가 터져나오고 있다." "뜬 공을 향해 몸을 날릴 때, 그리고 다시 땅에 내려와 닿을 때, 나는 내 몸의 한계와 속박에서 자유로웠다. 속박과 그 속박을 벗어나려는 꿈이 이 아름다운 동작을 빚어낸다. (…) 공은 억압할 수 없는 생명의 충동으로 높이 솟아올랐다." 

 

그중에서도 2006년 그리스 크레타 공항 대합실에서 월드컵 경기 텔레비전 중계를 지켜보고 쓴 글은 카뮈, 그리고 시지프의 모습과 선연히 겹쳐진다. "공을 놓친 골키퍼가 홀로 땅바닥에 쓰러져 있었다. 그의 육신이 내뿜는 한 가닥의 맹렬한 적막이 관중의 함성을 뚫고 치솟는 듯했다. 그는 외로워 보였지만, 비참하지는 않았다. 그의 패배와 그의 추락에는 치욕이 스며들어 있지 않았다. 그의 적막은 외로움이라기보다는 순결이었다. (…) 그는 쓰러졌던 두 다리로 쓰러졌던 자리를 딛고 다시 일어섰다. 실패한 골키퍼는 뒤로 돌아섰다. 돌아선 그의 어깨는 정직하고도 단순했다. 혼자서 감당하는 자의 빛나는 어깨였다." 

 

▲소설가 김훈이 세계적 사진작가 그룹인 '매그넘'의 축구 사진들에 글을 붙여 펴낸 <공치는 아이들> ⓒ생각의 나무

 

카뮈는 자신의 고향 알제리를 닮은 남프랑스 루르마랭 지방을 사랑해서 노벨상에서 받은 상금으로 그곳에 집을 한 채 구했다. 일요일마다 들판 가장자리에서 지역 클럽의 아이들이 훈련하거나 이웃 마을 팀과 경기를 하는 것을 지켜보며 시간을 보냈다. 그러다 1960년 1월 불의의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났다. 숨진 자동차 안에는 그가 쓰고 있던 자전적 소설 <최초의 인간>의 미완성 원고가 있었다. 카뮈는 사고가 난 뒤 이틀 뒤 루르마랭에 있는 공동묘지에 안장됐다. 장례 행렬의 선두에는 아내 프랑신, 형 뤼시엥, 오랜 친구인 시인 르네 샤르가 섰다. 그리고 지역 축구 선수들이 그의 관을 운구했다.

 

Ⅱ. 

 

저명한 기호학자이자, 소설가, 문화비평가인 움베르토 에코는 '축구 비판론자'다. '월드컵과 그 화려한 잔치' '스포츠 잡담' 등의 글을 통해 축구에 대한 냉소적인 많은 어록을 남겼다. "내가 축구를 사랑하지 않는 것은 축구가 나를 사랑하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익살스러운 말도 했다. 

 

▲움베르토 에코

 

"많은 독자들은 내가 축구라는 고상한 스포츠를 악의를 갖고 논의하는 것을 보고, 축구가 전혀 나를 사랑한 적이 없기 때문에 내가 축구를 사랑하지 않는 게 아니냐는 통속적 의혹을 품을 것이다. 내가 아주 어린 시절부터 공을 차면 곧바로 자살골로 이어지거나, 아니면 기껏해야 상대편에게 패스하거나, 그렇지 않으면 경기장 밖 울타리나 담장 너머로 공을 날려 보내 지하실이나 개울에 빠뜨리는 바람에 함께 놀던 친구들로부터 따돌림을 당하고 시합에서 쫓겨나는, 그런 아이에 속했기 때문이라고 말이다. 어떤 의혹도 이보다 더 분명하게 사실일 수는 없을 것이다." 이 글을 보면 어쨌든 에코는 카뮈와는 달리 어려서부터 축구에 소질이 없었던 것이 분명하다. 

 

에코가 남긴 여러 글을 토대로 피터 페리클레스 트리포나스라는, 이름을 외우기도 상당히 어려운 학자가 <움베르토 에코와 축구>라는 책을 썼다. 에코에게 축구라는 기호는 무엇을 의미하는지, 문화 속에서 축구가 충족시키는 것은 무엇이며, 축구의 현실적이고 상상적인 폭력의 근원은 무엇인가 등을 에코가 어떻게 기호학적으로 분석했는지를 설명하는 책이다. 

 

축구에 대한 에코의 말을 접하며 약간 유의해야 할 대목이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첫째, 에코는 축구에 대해서도 특유의 풍자와 과장이 넘치는 말을 많이 사용한다. "그것은 현실을 패러디하고, 그 불합리성을 폭로하며, 망치로 때리는 듯한 충격 효과로 핵심을 찌르기 때문"이라고 트리포나스는 해석했다. 또다른 하나는, 한국과는 많이 다른 이탈리아 등 유럽 축구의 분위기다. 축구광팬들이 매주 빠짐없이 축구 경기장을 찾아 열광적으로 응원하고, 때때로 축구장 난동사태까지 벌어지는 그곳 분위기를 염두에 둘 필요가 있다. 

 

에코는 '축구 이야기를 하지 않는 방법'이란 글에서 "나는 축구를 싫어하지 않는다. 다만 축구팬들을 싫어할 뿐이다"고 말을 꺼낸 뒤 "내가 축구광들을 좋아하지 않는 까닭은 그들이 이상한 성격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그들은 다른 사람들이 축구에 열광하지 않는 까닭을 이해하지 못하며, 누구를 만나든 그 사람을 자기네들과 똑같은 축구광으로 간주하고 한사코 축구 얘기를 늘어놓는다"고 꼬집는다. 그리고 축구광 택시기사와 오간 '의사 불통의 대화'를 소개한다. (이 글은 에코의 에세이집 <세상의 바보들에게 웃으면서 화내는 방법>에 실려 있다.) 

 

▲축구에 대한 움베르토 에코의 글들이 실려 있는 책들.

 

에코는 축구팬 이야기를 하지만 사실은 축구만이 아니라 다양성을 부정하는 세력 전반에 대해 말하는 것이다. "그(택시기사)는 축구에 전혀 관심이 없는 사람이 세상에 존재할 수 있다는 사실 그 자체를 이해할 수 없는 사람이다. 문제의 심각성은 거기에 있다. 그는 도대체가 다양성에 대해서는 생각조차 할 수 없는 사람이다." 트리포나스는 에코의 이 글이 "극단적 애국심, 인종 차별, 외국인 혐오증 등"과도 관련있는 것이라고 짚었다. 

 

축구에 대한 에코의 말 중 가장 유명한 것은 축구팬을 '관음증 환자'에 비유한 대목이다. '자기 자신은 섹스를 하지 않으면서 대리만족을 위해 다른 사람들이 하는 섹스를 구경하기 위해 매주 일요일마다 암스테르담(사창가)에 가는 사람이 있다면 과연 정상이라 할 수 있는가.' 그런 사람을 관음증 환자라고 부르는 것처럼, 자기 신체로 직접 놀이(운동)는 하지 않으면서 스포츠 관람에만 정신이 팔린 사람 역시 관음증 환자라는 이야기다. 에코는 프로이트 이론을 이용해 축구를 억압된 욕망의 정신병리 현상으로 파악했다. 에코의 이런 주장에는 많은 반론이 나올 수 있다. 다만 관음화된 스포츠는 구경꾼을 '스포츠 잡담가'로 타락시키고 결국 사회적 위험을 가져올 수 있다는 경고는 귀담아들을 만하다.

 

"재무부 장관이 하는 일을 판단하는 대신 당신은 코치가 하는 일에 대해 논의한다. 의회 기록을 검토하는 대신 당신은 운동 선수의 기록을 검토한다." 

 

"어떤 장관이 외국 권력과 수상한 협정을 체결했는지 추궁하는 대신 결승전 등의 중요한 게임이 선수들의 실력에 의해 결정되는지 아니면 다른 외교적 수완에 의해 결정되는지를 더 질문한다." 

 

에코에 따르면 공적인 영역의 정치적 담화는 "지도자가 무엇을 했어야 하는지, 실제로 무엇을 했는지, 우리는 그가 무엇을 하기를 바라는지,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무슨 일이 일어날 것인지"에 대해 말하는 것이다. 그런데 "스포츠 잡담이 정치적 말하기의 대용품"이 돼버렸고, 심지어 "그 자체가 정치적 말하기"가 됐다는 것이 에코의 진단이다.

 

에코는 축구를 로마 검투사들이 벌였던 '원형경기장 놀이'에 빗대 축구가 전쟁 뒤 벌어진 축제와 방탕, 강탈에 역사적 뿌리를 두고 있다고 말한다. 실제로 기록으로 남아 있는 최초의 축구 경기는 서기 217년, 지금의 영국 더비 지방에서 로마군에 대한 승리를 기념하기 위해 열린 축제의 일환이었다고 트리포나스는 설명한다. 에코는 이런 원형경기장 놀이가 역사적으로 지배자들에 이용돼 왔음을 날카롭게 지적한다. "원형경기장 놀이의 유용성에 대한 로마 황제들의 날카로운 관찰을 거쳐, 아르헨티나를 포함한 독재정권들이 항상 대규모 시합을 교묘하게 이용한 사실"이다.

 

에코가 '월드컵과 그 화려한 잔치'를 쓴 것은 1978년 월드컵대회가 열렸을 때다. 당시 이탈리아에는 '붉은 여단'의 테러 공포가 극심하던 때였다. 그해 붉은 여단은 이탈리아 기독교민주당 소속의 전임 총리 알도 모로를 납치해 살해하는 사건을 저질렀다. 에코는 월드컵이 "테러에 대한 공포와 긴장의 고조로부터 하나의 일시적인 위안"이 됐다고 말한다. 월드컵이라는 화려한 잔치가 짧은 기분 전환을 제공하며, 안전에 대한 공포로부터 잠시 벗어나도록 국민을 진정시키는 효과는 있었다는 이야기다. 이것이 스포츠의 본질적 효능임을 에코는 인정한다. 하지만 그것은 일시적인 위안은 됐을지언정 현실적인 안전 위협의 제거와는 무관했다. 

▲1978년 월드컵대회가 열릴 무렵에 '붉은 여단'은 이탈리아 기독교민주당 소속의 전임 총리 알도 모로를 납치해 살해하는 사건을 저질렀다.

 

트리포나스는 '스포츠와 현실의 착각'의 문제를 보다 상세히 설명한다. 그에 따르면, 월드컵이 지니는 사회적 문화적 영향력은 바로 한 국가가 최소한 4년 동안 자신과 국민을 세계 최강자로 공언하고 과시할 수 있는 기회라는 데 있다. 공을 몇 번이나 골에 넣을 수 있는가 따위의 문제를 한 국가가 다른 국가에 비해 절대적으로 우월하다고 주장할 수 있는 근거로 여긴다. 월드컵 결과를 둘러싼 감정적인 열띤 논쟁, 그리고 대중의 "허풍떨 권리"가 만연하면서 "스포츠에 대한 관심이 만들어낸 착각"이 현실로 보인다. 스포츠 잡담가들은 축구 경기 결과를 '국력'과 연관 짓고, 그런 이야기를 공적인 화제로 여긴다. 그러는 사이 현실의 부조리는 암처럼 커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스포츠는 서구 문화 전반에 스며들어 있으며, 스포츠와 인간·사회 관계를 저지하려는 시도는 서구 시민사회와 민주주의의 윤리적 개념을 무너뜨리려는 것과 유사하다는 것이 에코의 진단이다. 그래서 에코는 이런 유명한 말을 남겼다. "정치적 토론에는 관심을 덜 기울이고 원형경기장 놀이의 사회학에 더 많이 몰두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축구 경기가 벌어지는 일요일에 혁명이 일어나는 것이 가능할까?" 

 

Ⅲ. 

 

2022년 월드컵대회에 출전한 한국 선수들이 16강 진출 성공의 좋은 성적을 거두고 귀국했다. 8강전에서 세계 최강 브라질을 만난 것은 손흥민 선수의 말대로 "불운한 일"이었을 수 있다. 하지만 카뮈의 생각을 빌어 말하자면 축구 경기 자체가 '부조리' 아닌가. 가나와의 2차전 때 납득하기 어려운 심판의 판정 등 축구 경기는 부조리의 연속이다. '영원한 우승 후보' 브라질이 뜻밖에도 크로아티아와 승부차기에서 패배해 8강전에서 탈락한 것도 브라질 눈에서 보면 부조리일 것이다. 이 부조리가 축구의 본질이고 묘미다. 

 

이제 한국 축구는 또다시 무거운 바위를 끌고 산 위로 올라가야 한다. 그것은 이번 대회에서 우리보다 더 높은 산까지 오른 8강, 4강은 물론이고, 앞으로 산의 최종정상에 오를 우승팀도 똑같다. 바위는 산에서 굴러떨어지고 다시 정상을 향해 바위를 끌고 힘겹게 올라가야 한다. 부조리는 우리가 굴하지 않음으로써 의미를 지닌다. '부조리의 처형'에 순응하지 않고 '자기의 운명보다 우위'에 서고자 하는 내면의 힘을 찾아내는 것, 그것이 인간이고 축구다. 그것은 단순한 고행이 아니라 '행복한 시지프'의 모습이다. 

 

한국 선수들의 월드컵 선전을 두고 많은 이들이 "위로와 희망"을 말한다. 극심한 경기침체, 이태원 참사 등으로 우울증에 빠진 국민에게 희망과 감동, 그리고 포기하지 않는 생의 의지를 불러일으켰다고 칭송한다. 이런 말에 어느 정도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스포츠 잡담'과 '정치적 담화'의 그 아득한 거리를 다시 생각한다. 축구 경기 결과를 '국운'과 연관 짓고, 그런 이야기를 정치적 말하기의 '대리담론'으로 삼는 사이 현실의 부조리는 암처럼 커간다. 세월호 참사가 일어난 해에 열린 2014년 월드컵대회가 끝난 뒤 이 땅에서 벌어진 그 참혹한 상황을 뒤돌아보라. 

 

윤석열 대통령도 선수단 만찬에서 "국민에 대한 위로와 희망"을 이야기했다. 과연 대통령이 생각하는 위로와 희망은 무엇일까. 진정 국민에게 위로와 희망을 줘야 할 사람은 축구 선수단이 아니라 자기 자신임을 모르는 것일까. 월드컵 열풍에 편승하는 대통령의 모습을 보면서 "로마 황제들로부터 시작해 독재정권 지도자들에 이르기까지 역사적으로 끊이지 않은 원형경기장 놀이의 교묘한 활용"이라는 에코의 지적이 새삼 다가온다. 

 

브라질 대표팀 감독은 4강 진출 실패에 대한 책임을 지고 대표팀 감독에서 물러날 의사를 밝혔다고 한다. 감독으로서의 '도덕과 의무감'의 발로일 것이다. 현실의 세계에서 '감독의 실책'으로 156명이 목숨을 잃는 것은 단순히 축구 경기의 승부차기 실패와는 비교할 수 없는 일이다. 그런데도 이 땅의 감독과 코치들은 그 누구도 자리에서 물러나려 하지 않는다. 카뮈는 "도덕과 의무를 축구에서 배웠다"고 말했는데, 그 감독과 코치들은 어려서 축구를 해보지 않은 탓인가.

 

월드컵 대표팀 주장인 손흥민 선수는 이번 대회에서 캡틴의 면모를 여실히 보여줬다는 평가를 받았다. 경기 전반의 흐름을 꿰뚫는 넓은 시야, 팀을 위한 헌신과 책임, 자신보다도 팀과 동료를 먼저 생각하고 때로는 조연 역할도 마다하지 않는 겸허함, '월드클래스'의 카리스마와 묵직한 중량감 등등. 그런 손 선수가 청와대 영빈관 만찬에서 윤 대통령에게 대한민국을 잘 이끌어달라며 '주장 완장'을 채워줬다고 한다. 그런데 정작 주장 완장을 넘겨받은 사람은 '캡틴의 능력과 품격'이 무엇인지에 대해 제대로 생각이나 해보고 있을까. 

 

'세상의 바보들에게 웃으면서 화내는 방법'. 움베르토 에코가 쓴 에세이집 제목이다. 그런데 '웃으면서 화를 내는 것'은 말처럼 쉽지 않다. 이 세상에 '권력형 바보들'과 그들의 바보짓이 갑자기 늘어났다. 이탈리아 축구광팬 택시기사의 경우처럼 의사소통 불능의 상황도 이어진다. 개인적 수양 부족 탓인지 몰라도 그 바보들에게 웃으면서 화를 낼 수 없는 요즘이다. 

 

▲8일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축구 국가대표팀 환영 만찬에서 주장 손흥민 선수가 2022 카타르 월드컵 기간 착용했던 주장 완장을 윤석열 대통령에게 채워주고 있다. ⓒ연합뉴스
▲윤석열 대통령이 8일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축구 국가대표팀 환영 만찬에서 주장 손흥민 선수와 건배하고 있다. ⓒ연합뉴스
▲윤석열 대통령이 8일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축구 국가대표팀 환영 만찬에서 볼트래핑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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