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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국민은행의 ‘신남방’, 실상은 ‘서민착취’ 금융사에 7천억 투자

  • 분류
    알 림
  • 등록일
    2021/03/03 08:45
  • 수정일
    2021/03/03 08:45
  • 글쓴이
    이필립
  • 응답 RSS

2019년 캄보디아 프라삭 MFI 지분 7000억원 매입
빈곤층에 소액대출 빈민구제, 고금리 착취금융 변질
현지 인권단체 “담보강탈, 아동노동에 인신매매까지”
신남방·ESG의 이면...동남아 채권추심 핀테크도 투자

캄보디아 인권단체 ‘리카도(LICADHO)’가 2019년 발표한 보고서 'Collateral Damage'에 따르면 캄보디아의 마이크로파이낸스(MicroFinance, MFI)는 빈곤·취약 계층에 고금리 소액대출을 해주고 이들의 토지·건물 등을 담보로 빼앗는 식의 사업을 벌이는 것으로 나타났다. (사진=LICADHO)
▲ 캄보디아 인권단체 ‘리카도(LICADHO)’가 2019년 발표한 보고서 'Collateral Damage'에 따르면 캄보디아의 마이크로파이낸스(MicroFinance, MFI)는 빈곤·취약 계층에 고금리 소액대출을 해주고 이들의 토지·건물 등을 담보로 빼앗는 식의 사업을 벌이는 것으로 나타났다. (사진=LICADHO)

 

KB국민은행이 빈곤·취약 계층을 상대로 고리대금 폭리를 취하는 ‘마이크로파이낸스(Microfinance, MFI)’에 거액을 투자한 사실이 뒤늦게 확인됐다.

 

KB국민은행은 2019년 스리랑카 대기업 LOLC가 보유한 캄보디아의 ‘프라삭(PRASAC) MFI’ 지분 70%를 약 7000억원에 인수했다. 프라삭 MFI는 지난해 12월 말 기준 현지에 183개의 영업망을 갖춘 캄보디아의 최대 예금수취가능 소액대출금융기관이다.

 

그런데 프라삭 MFI를 비롯한 캄보디아의 MFI는 현지에서 착취적 금융 사업을 일삼는 것으로 확인됐다. 캄보디아 인권단체 ‘리카도(LICADHO)’가 2019년 발표한 보고서에서 캄보디아의 MFI는 빈곤·취약 계층에 고금리 소액대출을 해주고 이들의 토지·건물 등을 담보로 빼앗는 식의 사업을 벌이는 것으로 나타났기 때문이다.

 

본래 MFI는 방글라데시 그라민은행의 ‘마이크로크레딧(Micro-credit)’에서 비롯됐다. 저신용·저소득 금융소비자에 소액대출을 제공해 결과적으로 빈곤 문제를 해결한다는 빈민 구제 방식이다. 하지만 취지와 달리 MFI는 인도, 캄보디아 등 해외로 퍼지면서 외려 빈곤층을 착취하는 고리대금업이자 재산 강탈 수단으로 악용되고 있다.

 

KB국민은행은 2019년 스리랑카 대기업 LOLC가 보유한 캄보디아의 ‘프라삭(PRASAC) MFI’ 지분 70%를 약 7000억원에 인수했다. 프라삭 MFI는 지난해 12월 말 기준 현지에 183개의 영업망을 갖춘 캄보디아의 최대 예금수취가능 소액대출금융기관이다. (사진=LICADHO)
▲ KB국민은행은 2019년 스리랑카 대기업 LOLC가 보유한 캄보디아의 ‘프라삭(PRASAC) MFI’ 지분 70%를 약 7000억원에 인수했다. 프라삭 MFI는 지난해 12월 말 기준 현지에 183개의 영업망을 갖춘 캄보디아의 최대 예금수취가능 소액대출금융기관이다. (사진=LICADHO)

 

리카도가 MFI 대출을 이용한 캄보디아 10개 지방 28가구를 조사한 결과, 이들의 79%가 담보를 뺏기고 강제 이주를 당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심지어 지역 관리가 MFI와 결탁해 채무자들의 재산을 뺏고, 그들의 자녀를 아동 노동시장으로 내몬다는 보고도 나왔다.

 

캄보디아의 전체 MFI 약 80개가 이런 방식으로 모은 소액대출 잔액은 2019년 기준 80억달러(한화 8조9560억원)로 캄보디아 국내총생산(GDP)의 3분의 1 규모에 달한다.

 

특히 프라삭 MFI 등 7개 거대 MFI는 2017년 기준 1억3000만달러의 이익을 냈으며, 이익의 상당부분은 거대 MFI 지분 대부분을 가진 프랑스·독일·일본·홍콩 등 외국은행 및 국제투자회사가 가져가고 있다고 보고서는 밝혔다.

 

캄보디아MFI협회(CMA)는 “MFI가 빈곤 퇴치에 도움을 줬다”고 반박하고 있으나, 리카도에 따르면 정부의 대출금리 상한제(연이율 18%)에도 실질 이자율을 초과하는 ‘선불 수수료’까지 나오는 상황이다. 리카도는 지난해 4월 말 “코로나19에도 MFI로 인한 대출액은 100억달러 이상에 250만명 이상이 담보 강탈 및 아동노동, 인신매매 등 인권 침해를 받고 있다”고 설명했다.

 

지난해 기준 캄보디아의 1인당 MFI 부채는 3800달러로 캄보디아 1인당 GDP(2018년 기준 1510달러)의 두 배 이상 규모다. 컨설팅 회사 ‘앙코르 리서치(Angkor Research)’에 따르면 캄보디아인의 약 45%가 MFI 부채를 지고 있으며, 8명 중 1명은 채무 상환을 위해 가축·기계·토지 등 각종 자산을 매각했다. 사진은 KB국민은행이 인수 전 프라삭MFI의 지분을 갖고 있던 스리랑카 대기업 LOLC(란카오릭스)의 지분 보유율 모습. (사진=LICADHO)
▲ 지난해 기준 캄보디아의 1인당 MFI 부채는 3800달러로 캄보디아 1인당 GDP(2018년 기준 1510달러)의 두 배 이상 규모다. 컨설팅 회사 ‘앙코르 리서치(Angkor Research)’에 따르면 캄보디아인의 약 45%가 MFI 부채를 지고 있으며, 8명 중 1명은 채무 상환을 위해 가축·기계·토지 등 각종 자산을 매각했다. 사진은 KB국민은행이 인수 전 프라삭MFI의 지분을 갖고 있던 스리랑카 대기업 LOLC(란카오릭스)의 지분 보유율 모습. (사진=LICADHO)

 

로이터 등 외신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 캄보디아의 1인당 MFI 부채는 3800달러로 캄보디아 1인당 GDP(2018년 기준 1510달러)를 두 배나 넘고 있다. 컨설팅 회사 ‘앙코르 리서치(Angkor Research)’에 따르면 캄보디아인의 약 45%가 MFI 부채를 지고 있으며, 8명 중 1명은 채무 상환을 위해 가축·기계·토지 등 각종 자산을 매각했다.

이에 대해 KB국민은행 관계자는 2일 본지와의 통화에서 “해당 사업부서에 내용을 전달해 확인 중”이라면서 “어떻게 보면 현지 인권단체 주장이지 않느냐”고 답했다.

 

한편 KB금융지주는 캄보디아를 비롯해 베트남·인도네시아·라오스·미얀마 등 동남아 5개국에서 금융 사업을 확대하고 있다. KB국민은행은 2018년 7월 인도네시아 소매금융 전문은행인 ‘부코핀은행’에 4000억원을 투자해 지분 67%를 인수했다.

 

같은 계열사인 KB국민카드는 지난해 인도네시아와 태국에서 차·오토바이 할부금융사 및 채권추심 핀테크 업체의 지분을 거액에 인수했다. 또 2018년엔 캄보디아 특수은행 지분을 100% 인수해 주택담보대출, 자동차 할부금융, 카드 사업 등을 벌이고 있다.

 

[ 경기신문 = 현지용 기자 ]



[출처] 경기신문 (https://www.kg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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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사설에 등장한 조선일보 재난지원금 비난 보도

[아침신문 솎아보기] 대통령 “일본과 대화 가능” 3.1절 기념사에 조선일보 “이것도 외교냐”
‘미나리’ 외국어영화상 수상…‘작품상’ 심사 배제에 비판받은 골든글로브
 
 

 

2일 아침 종합 일간지 키워드는 문재인 대통령의 3.1절 기념사, ‘미나리’ 골든글로브 외국어영화상 이후 논란, 박영선 여당 서울시장 후보 확정, 4차 재난지원금이었다.

문재인 대통령은 1일 3.1절 기념식에서 “우리 정부는 언제든 일본 정부와 마주 앉아 대화를 나눌 준비가 돼 있다”며 “역지사지의 자세로 머리를 맞대면 과거의 문제도 얼마든지 현명하게 해결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올해는 3.1절 102주년이었다.

문 대통령은 “우리가 넘어야 할 유일한 장애물은 때때로 과거의 문제를 미래의 문제와 분리하지 못하고 뒤섞음으로써, 미래의 발전에 지장을 초래한다는 것”이라며 “일본과 우리 사이에 불행했던 역사가 있었고 우리는 역사를 잊지 못한다. 가해자는 잊을 수 있어도 피해자는 잊지 못하는 법이다. 그러나 100년이 지난 지금 양국은 서로에 매우 중요한 이웃이 됐다”고 말했다.

▲3월2일 종합일간지 1면 모음.
▲3월2일 종합일간지 1면 모음.

문 대통령은 “한국 정부는 언제나 피해자 중심주의 입장에서 지혜로운 해결책을 모색할 것이고, 피해자들의 명예와 존엄 회복을 위해서 최선을 다할 것”이라며 “한·일 양국의 협력과 미래발전을 위한 노력도 멈추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 “올해 열리게 될 도쿄 올림픽은 한·일 간, 남북 간, 북·일 간 그리고 북·미 간 대화의 기회가 될 수도 있다”며 “한국은 도쿄 올림픽의 성공적 개최를 위해 협력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신문들은 이 기념사에서 문 대통령이 한일관계를 강조했지만 대안은 내놓지않은 점을 지적하며 임기 마지막해의 한계를 보여줬다고 썼다.

경향신문 1면은 “이날 문 대통령은 한·일관계 개선을 위한 새로운 제안을 내놓지는 않았다”며 “문 대통령의 임기가 사실상 마지막 해에 접어들고 일본의 냉랭한 태도로 돌파구 마련이 쉽지 않은 가운데 상황 관리에 방점을 둔 것으로 볼 수 있다”고 해석했다.

▲2일 조선일보 4면.
▲2일 조선일보 4면.

조선일보는 4면 기사 제목을 “文, 위안부·징용 해법없이 ‘日과 마주앉을 준비돼있다’”로 뽑고 “문 대통령은 징용 판결, 위안부 문제 등 양국 쟁점 현안에 관한 언급이나 새로운 제안은 내놓지 않았다”며 “일본의 태도가 변하지 않는 상황에서 임기를 1년여 남겨둔 문 대통령의 선택지가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는 분석도 나온다”고 썼다.

그러면서 조선일보는 “남북 관계 교착이 계속되고, 미국이 한·미·일 공조를 압박하고 있기 때문”이라며 “이날 기념사가 우리 정부의 한·일 관계 개선 노력을 부각시키면서 미국에 보내는 메시지라는 해석도 나왔다고”고 전했다.

▲2일 조선일보 사설.
▲2일 조선일보 사설.

조선일보는 사설 “4년 反日몰이 文이 돌연 ‘과거사 발목 안돼’ 이것도 외교인가”에서 “아무 대책 없이 한일 문제를 국내 정치용으로 이용할 대로 다 이용한 다음 대통령 말과 태도가 180도 달라졌다”며 “한미일 협력을 중시하는 미 바이든 행정부가 들어서자 말을 뒤집은 것이다. 구체적으로 어떻게 하자는 것도 없다. 국제사회에서 이런 한국을 어떻게 보겠나. 이것도 외교인가. 부끄러울 따름”이라고 비판했다.

반면 한겨레는 문 대통령이 내놓은 기념사에 대한 일본의 반응을 지적했다. 일본 정부는 “중요한 것은 양국 사이 현안을 해결하기 위해 한국 쪽이 책임을 갖고 구체적으로 대응하는 것”이라 답했는데 한겨레는 “실망스럽다”고 썼다. 이어 “어느 한쪽의 일방적 양보로 불가능하다. 우리 정부가 지혜로운 해결책을 모색하더라도, 과거사 문제의 기본 원칙인 ‘피해자 중심주의’를 포기할 수는 없다”고 썼다.

▲3월2일 한겨레 사설.
▲3월2일 한겨레 사설.

 

‘미나리’ 외국어영화상 수상…‘작품상’ 심사 배제에 비판받은 골든글로브

정이삭 감독의 영화 ‘미나리’가 미국 양대 영화상인 골든글로브에서 외국어영화상을 수상했다. ‘미나리’는 한인 가족의 미국 정착기를 담은 영화다. 지난해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에 이어 수상해 주목을 끌고 있다.

경향신문은 수상소식을 전하며 “‘미나리’는 한국계 미국인인 정 감독이 연출하고 배우 브래드 피트가 설립한 영화사 플랜B가 제작한 미국 영화지만, 대사의 50% 이상이 영어가 아닌 경우 외국어영화로 분류하는 규정에 따라 외국어영화상 후보에 올랐다”고 설명했다.

‘미나리’가 작품상이 아닌 외국어영화상을 수상해 논란이 일기도 했다. AP통신은 이날 HFPA(할리우드 외신기자협회)가 “비영어권 대사 때문에 ‘미나리’의 작품상 수상 자격을 박탈해 비판을 받았다”고 전했다.

▲2일 조선일보 3면.
▲2일 조선일보 3면.

한겨레도 “골든글로브를 주관하는 할리우드외신기자협회는 ‘대화의 반 이상이 영어가 아니면 외국어 영화’라는 규정을 내세워 주로 한국어 대사가 나오는 ‘미나리’를 외국어영화상 후보에만 올리고 작품상 심사 대상에서 배제했다”며 “이를 두고 전세계 영화인과 미국 언론 사이에선 골든글로브의 보수성과 폐쇄성을 비판하는 목소리가 쏟아졌다”고 전했다.

조선일보는 3면에서 왜 미나리가 외국어영화상만 받았는지에 대해 썼다. 이 기사에서는 “뉴욕타임스는 ‘이 규정이 인종주의이자 편파적이라는 비판을 받고 있다’고 보도했다”며 “하지만 오는 4월 열리는 아카데미 시상식은 별도의 언어 관련 규정이 없다”고 기대감을 보였다.

박영선 전 장관, 민주당 서울시장 후보로

4월7일 열리는 서울시장 보궐선거 더불어민주당 후보로 박영선 전 중소벤처기업부 장관이 1일 확정됐다. 야권 ‘제3지대’ 경선에선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가 확정됐다. 국민의힘은 4일 후보를 확정한다.

민주당 서울시장 후보 경선 결과, 박영선 후보는 69.56%를 득표, 우상호 후보는 30.44%를 득표했다. 박 후보는 후보 경선 승리 후 수락연설에서 “평당 1000만원대 반값 아파트로 서민에게 내 집 마련의 꿈을 앞당기는 서울시장이 되겠다”고 밝혔다.

야권 ‘제3지대’ 경선에선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가 금태섭 전 민주당 의원에게 이겼다. 안 대표는 4일 결정되는 국민의힘 후보와 야권 단일화를 위한 최종 경선을 치른다.

한겨레, 조선일보가 4차 재난지원금에 보인 반응 비판

한겨레는 사설에서 “세금도 못 내는 노점상은 지원 말라는 얘긴가”라며 조선일보가 4차 재난지원금에 보인 반응을 비판했다.

정부와 여당이 코로나 피해 지원을 위한 4차 재난지원금 규모를 19조5000억원으로 확정하고 4일 추가경정예산안을 국회에 제출하기로 했는데, 4차 재난지원금 규모와 대상이 나오자마자 보수 언론과 야당이 ‘선거용’ 딱지를 붙이며 비판을 했다는 것이다.

▲2일 한겨레 사설.
▲2일 한겨레 사설.

한겨레 사설은 “‘조선일보’는 재난지원금과 전혀 상관없는 가덕도 신공항, 제주 4·3 피해 보상, 제주 2공항 건설 관련법 예산까지 거론하며 ‘선거에 눈이 먼 당정의 무차별 재정 살포’라고 주장했다”며 “급박하고 절실한 코로나 예산까지 선거용 프레임으로 몰아붙이는 정략적 태도로는 민심을 얻기 힘들다”고 조선일보와 야당을 비판했다.

또한 “지원 대상에 노점상이 포함된 것을 두고 ‘세금 한 푼 안 내는 이들을 지원해선 안 된다’는 주장도 나오는데 어불성설”이라며 “현재 전체 자영업자 중 28%는 부가가치세 면세 대상이다. 근로소득세 면세자 비율도 39%에 이른다. 이들도 모두 세금을 내지 않으니 지원 대상에서 제외하자는 말인가. 면세자일수록 소득이 적고 지원이 절실한 경우가 더 많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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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희 회장은 왜 휴대전화 15만대를 불태웠나

등록 :2021-03-02 07:18수정 :2021-03-02 07:27
 
[시간의 극장] 한겨레 아카이브 프로젝트
제35화 삼성 휴대폰
지난 30년 동안 개인용 컴퓨터와 인터넷, 휴대폰만큼 사람 사는 모습을 바꾼 기술이 있을까? 정보통신기술은 우리가 물건을 사고, 남들과 이야기하고, 일하는 방식을 모두 바꿨다. 그 가운데 휴대폰은 더 친근하다. 아침부터 밤까지 항상 곁에 두고 쓰는 물건이라 그렇다. 삼성전자는 이런 흐름 속에, 많은 어려움을 겪으면서도 세계 시장 2위까지 올라갔다. 이제는 애증 어린 존재가 되어버린 삼성 휴대폰의 스마트폰 이전까지의 초창기 발자취를 살펴보았다. /해설 이요훈불량률 무려 11% SH-770휴대전화 최초로 ‘화형’
 
그러곤 모토롤라 아성 무너뜨려다양하고 새로운 제품으로세계시장 2위까지 치고 올라가아이폰 이전엔 모든 게 좋았다
<한겨레> 1993년 7월18일치 6면 기사. 1988년 시작한 이동통신 서비스는 1993년부터 조금씩 쓰는 이가 많아졌다. 이때까지만 해도 휴대폰 시장이 얼마나 커질지 아무도 몰랐다. 당시 예상했던 2000년도 휴대폰 사용자는 약 500만명. 그러나 실제 2000년도 휴대폰 가입자는 약 2500만명이다.(※이미지를 누르면 크게 보실수 있습니다)
<한겨레> 1993년 7월18일치 6면 기사. 1988년 시작한 이동통신 서비스는 1993년부터 조금씩 쓰는 이가 많아졌다. 이때까지만 해도 휴대폰 시장이 얼마나 커질지 아무도 몰랐다. 당시 예상했던 2000년도 휴대폰 사용자는 약 500만명. 그러나 실제 2000년도 휴대폰 가입자는 약 2500만명이다.(※이미지를 누르면 크게 보실수 있습니다)
1993년 7월18일, <한겨레>는 “휴대용 전화기 시대가 큰 걸음으로 다가오고 있다. … 최근 몇년 동안 해마다 100% 정도의 시장 확대 추세를 보이고 있으며… 삼성, 금성, 현대 등 국내 가전 3사와 미국 모토롤라, 유럽산 수입업체 등 모두 17개 업체들이 내놓은 20여개 모델이… 1500억원 규모의 시장 쟁탈에 나서고 있다”(1993년 7월18일치 7면)고 썼다. 1984년에 차량이동전화, 1988년에 휴대전화 개통이 시작되고, 전화기 가격 인하와 더불어 93년에야 전국 74개 시 전역과 읍 등에서 서비스를 제공한 탓이다.지금 생각하면 믿기 어렵지만, 휴대전화 서비스가 시작될 무렵 국산 휴대폰은 없었다. 다행히 88올림픽에 맞춰 삼성전자에서 최초의 국산 휴대전화 ‘SH-100’을 선보였지만, 성능이 나빠 별로 팔리지 않았다. 우리 기술력은 부족했고, 시장은 한동안 외국 기업이 장악하고 있었다. 반전은 삼성의 신경영 선언 이후, 1994년 10월에 출시된 ‘SH-770’부터 일어났다. 이 폰은 휴대전화 최초로 ‘화형’을 당했다.
&lt;한겨레&gt; 1992년 5월31일치 16면에 실린 SH-300 휴대폰 광고. 휴대용 무선전화기라고 쓰인 게 인상적이다. 판매량은 모르지만 유럽에 수출도 했다고 한다. 당시 삼성전자는 자체 개발한 휴대폰과 일본에서 수입한 제품, 카폰과 휴대폰 겸용 제품, 무선호출기를 함께 팔았다. 중간에 SH-200 모델도 개발했으나 성능이 떨어져 출시를 포기했다.(※이미지를 누르면 크게 보실수 있습니다)
<한겨레> 1992년 5월31일치 16면에 실린 SH-300 휴대폰 광고. 휴대용 무선전화기라고 쓰인 게 인상적이다. 판매량은 모르지만 유럽에 수출도 했다고 한다. 당시 삼성전자는 자체 개발한 휴대폰과 일본에서 수입한 제품, 카폰과 휴대폰 겸용 제품, 무선호출기를 함께 팔았다. 중간에 SH-200 모델도 개발했으나 성능이 떨어져 출시를 포기했다.(※이미지를 누르면 크게 보실수 있습니다)
&lt;한겨레&gt; 1994년 5월25일치 20면. 독특했던 삼성 휴대폰 SH-700 광고. 휴대폰 대리점 사장님들 얼굴을 모았다. 당시 삼성전자는 무조건 모토롤라를 고집하는 소비자들의 마음을 돌릴 방법을 찾고 있었다. 신문에 휴대전화 할부판매 광고도 자주 실렸던 시대다.(※이미지를 누르면 크게 보실수 있습니다)
<한겨레> 1994년 5월25일치 20면. 독특했던 삼성 휴대폰 SH-700 광고. 휴대폰 대리점 사장님들 얼굴을 모았다. 당시 삼성전자는 무조건 모토롤라를 고집하는 소비자들의 마음을 돌릴 방법을 찾고 있었다. 신문에 휴대전화 할부판매 광고도 자주 실렸던 시대다.(※이미지를 누르면 크게 보실수 있습니다)
&lt;한겨레&gt; 1995년 1월13일치 24면 광고. 애니콜 광고에서 인기를 얻은 문구는 많지만, 한국 지형에 강하다는 광고문구만큼 판을 바꾼 글은 없다. 당시 휴대폰 이용자들이 불편하게 여기던 통화 품질 문제를 제대로 찔러서 성공했다.(※이미지를 누르면 크게 보실수 있습니다)
<한겨레> 1995년 1월13일치 24면 광고. 애니콜 광고에서 인기를 얻은 문구는 많지만, 한국 지형에 강하다는 광고문구만큼 판을 바꾼 글은 없다. 당시 휴대폰 이용자들이 불편하게 여기던 통화 품질 문제를 제대로 찔러서 성공했다.(※이미지를 누르면 크게 보실수 있습니다)
당시 큰 문제였던 통화 품질 문제를 보강했던 이 기기는, 많은 사람의 기대를 한 몸에 받았다. 이건희 회장이 직접 지인들에게 선물했을 정도다. 문제는 제품 품질. 불량률이 무려 12%에 가까웠다. 1995년 3월 <한겨레> 기사를 보면 이에 화난 이 회장은 직원들을 모아놓고, 반품된 휴대전화 15만대 등을 쌓은 다음 불을 지르기에 이른다.어떻게 됐을까? 1995년 8월18일 <한겨레>에는 이런 기사가 적혀 있다. “격전을 거듭하고 있는 휴대폰 시장에서 마침내 모토롤라의 11년 아성이 무너졌다. 17일 휴대폰 업계에 따르면 지난 7월 한달 동안 삼성전자의 휴대폰 애니콜이 시장점유율 51.5%를 차지해 모토롤라를 누르고 시장점유율 1위에 뛰어오른 것으로 나타났다.”(“삼성휴대폰 ‘애니콜’ 1위/7월 시장점유율 51.5%” 1995년 8월18일치 8면)
휴대폰이 보급되던 초기에는 휴대 공중전화로 많이 쓰였다. 무선호출기로 연락이 오면 휴대폰으로 연락을 하는 식이다. 휴대전화로 바로 연락하는 일에 그리 익숙하지 않아서이기도 하고, 행여 상대방을 방해하지 않을까 조심하기도 했다. 참고로 1997년까진 휴대폰으로 한글 문자메시지를 보낼 수 없었다. 1997년 12월 삼성전자 제공 사진으로 추정된다.
휴대폰이 보급되던 초기에는 휴대 공중전화로 많이 쓰였다. 무선호출기로 연락이 오면 휴대폰으로 연락을 하는 식이다. 휴대전화로 바로 연락하는 일에 그리 익숙하지 않아서이기도 하고, 행여 상대방을 방해하지 않을까 조심하기도 했다. 참고로 1997년까진 휴대폰으로 한글 문자메시지를 보낼 수 없었다. 1997년 12월 삼성전자 제공 사진으로 추정된다.
1996년, 한국은 2세대 이동통신 표준으로 시디엠에이(CDMA) 방식을 쓰기로 한다. 당시 세계에서 많이 쓰이던 지에스엠(GSM) 방식과는 달랐지만, 쉬운 길을 버리고 자체 기술력을 쌓는 기회를 택했다. 거꾸로 남들이 안 쓰기에, 외국 회사가 만든 휴대폰이 한국 시장에 들어오기도 어려웠다. 기술 보호 장벽을 친 셈이다. 그저 휴대폰 사용을 보여주고 있을 뿐인데, 신기한 듯 쳐다보는 행인들의 모습이 이채롭다. 1996년 이용호 기자가 촬영한 비컷이다.
1996년, 한국은 2세대 이동통신 표준으로 시디엠에이(CDMA) 방식을 쓰기로 한다. 당시 세계에서 많이 쓰이던 지에스엠(GSM) 방식과는 달랐지만, 쉬운 길을 버리고 자체 기술력을 쌓는 기회를 택했다. 거꾸로 남들이 안 쓰기에, 외국 회사가 만든 휴대폰이 한국 시장에 들어오기도 어려웠다. 기술 보호 장벽을 친 셈이다. 그저 휴대폰 사용을 보여주고 있을 뿐인데, 신기한 듯 쳐다보는 행인들의 모습이 이채롭다. 1996년 이용호 기자가 촬영한 비컷이다.
성공한 제품만큼이나 실패한 제품도 많다. 사진은 1998년에 나온 삼성 폴더형 애니콜 전화기. 반으로 접어 크기를 줄인 제품이지만 성공하지 못했다. 분명히 다른 인기 제품과 비슷해 보이는 형태를 띠고 있기도 하다. 삼성전자 제공 사진.
성공한 제품만큼이나 실패한 제품도 많다. 사진은 1998년에 나온 삼성 폴더형 애니콜 전화기. 반으로 접어 크기를 줄인 제품이지만 성공하지 못했다. 분명히 다른 인기 제품과 비슷해 보이는 형태를 띠고 있기도 하다. 삼성전자 제공 사진.
1999년 9월15일 강창광 기자가 찍은 휴대폰 이용자 비컷이다. 휴대폰 사용자가 많아지고, 더 싸고 작고 가벼워지면서, 점점 자신을 표현하는 도구가 되었다. 연락을 위해 자주 들여다보게 되면서, 예쁘게 꾸미거나 겉으로 보이게 들고 다니는 사람도 크게 늘었다. 의사소통을 위한 도구가 개인 정체성과 연결된 경우는 처음 아닐까?
1999년 9월15일 강창광 기자가 찍은 휴대폰 이용자 비컷이다. 휴대폰 사용자가 많아지고, 더 싸고 작고 가벼워지면서, 점점 자신을 표현하는 도구가 되었다. 연락을 위해 자주 들여다보게 되면서, 예쁘게 꾸미거나 겉으로 보이게 들고 다니는 사람도 크게 늘었다. 의사소통을 위한 도구가 개인 정체성과 연결된 경우는 처음 아닐까?
핵심 문제에 집중하고, 품질 관리에 신경 쓴 게 적중했다. 이후 국내 2세대 이동통신 방식이 시디엠에이(CDMA) 방식으로 결정되면서 외산 휴대전화가 들어오기 어렵게 되고, 여러 광고가 인기를 얻으면서 삼성 애니콜은 국내 시장 1위 휴대폰 브랜드로 자리 잡게 된다.여기서 끝나면 좋겠지만, 세상은 무정한 법이라, 1997년에는 아이엠에프(IMF) 외환위기와 대규모 디(D)램 업계 구조조정이 찾아왔다. 달러가 필요해진 삼성은 미국 시장 진출을 모색했고, 미 통신업체 ‘스프린트’를 통해 휴대폰을 팔 수 있게 됐다. 이때부터 세계 휴대폰 시장 점유율에 삼성이 등장하지만(당시 스타티스타(Statista) 기준, 1997년에는 기타, 1998년에는 2.7%), 이미지가 좋지 않았다. 외국 소비자는 삼성을 모방 제품을 만드는 회사 정도로 생각했다. 여기서 두번째 반전이 등장한다. 한국과 유럽에서 망한 폰이 미국에서 큰 인기를 얻었다.
미국에서 큰 인기를 얻은 SCH-3500 전화기. 2001년 미국 소비자전문지 &lt;컨슈머 리포츠&gt;에 의해 최우수제품으로 선정됐기도 했다. 한국과 유럽에서 인기를 얻지 못해, 삼성전자가 미국 출시를 망설인 걸 스프린트에서 강하게 밀어붙였다는 일화가 있다. 삼성전자 제공 사진.
미국에서 큰 인기를 얻은 SCH-3500 전화기. 2001년 미국 소비자전문지 <컨슈머 리포츠>에 의해 최우수제품으로 선정됐기도 했다. 한국과 유럽에서 인기를 얻지 못해, 삼성전자가 미국 출시를 망설인 걸 스프린트에서 강하게 밀어붙였다는 일화가 있다. 삼성전자 제공 사진.
‘SCH-3500’은 휴대폰 뚜껑을 위로 올리는 방식으로 만들어진 휴대폰이다. 신선하긴 했지만, 때를 잘못 만난 탓인지 한국과 유럽 시장에서 크게 실패했다. 다른 나라에선 실패했는데 미국에선 큰 인기를 끌었다. 미국 스프린트 통신사의 대표 상품으로 1999년부터 2년간 600만대가 넘게 팔렸다. 덕분에 삼성은 모방품을 만드는 회사라는 이미지를 벗고, 새롭고 멋진 휴대폰을 만드는 회사라는 명성을 얻었다.
한국에서 휴대전화가 빠르게 보급된 데에는 1997년 상용 서비스를 시작한 개인휴대통신(PCS)이 큰 역할을 했다. 휴대폰 가격이 떨어진 점도 있지만, 과도한 단말기 보조금을 지급하는 바람에 처음으로 공짜폰이 등장했다. 덕분에 무선호출기 사용자가 대거 휴대전화로 넘어왔다. 1999년 장철규 기자 촬영.
한국에서 휴대전화가 빠르게 보급된 데에는 1997년 상용 서비스를 시작한 개인휴대통신(PCS)이 큰 역할을 했다. 휴대폰 가격이 떨어진 점도 있지만, 과도한 단말기 보조금을 지급하는 바람에 처음으로 공짜폰이 등장했다. 덕분에 무선호출기 사용자가 대거 휴대전화로 넘어왔다. 1999년 장철규 기자 촬영.
2008년 출시된 애니콜 햅틱폰. 전체 화면을 터치로 조작할 수 있는 휴대전화로, 스마트폰이 출시되기 전까지 이런 풀스크린 터치폰이 인기를 끌었다. 사실 기술적인 면에서 언제라도 스마트폰을 만들 수 있는 상황이었다. 초기 아이폰의 칩을 만든 회사도 삼성전자다. 박미향 기자 촬영.
2008년 출시된 애니콜 햅틱폰. 전체 화면을 터치로 조작할 수 있는 휴대전화로, 스마트폰이 출시되기 전까지 이런 풀스크린 터치폰이 인기를 끌었다. 사실 기술적인 면에서 언제라도 스마트폰을 만들 수 있는 상황이었다. 초기 아이폰의 칩을 만든 회사도 삼성전자다. 박미향 기자 촬영.
예전에는 휴대폰 통화료가 비쌌기에, 통화는 자제하고 문자메시지 단말기로 이용하는 사람도 많았다. 세계에서 드물게, 한글 특성을 반영한 쉬운 문자 입력 방식을 만든 덕에 쓰기도 쉬웠다. 위 사진에 있는 단말기는 애니콜 SCH-X120으로 추정된다. 안팎에 액정 화면 두개를 달고 있으며, 간단한 무선인터넷을 쓸 수 있었다. 그때는 무선인터넷 이용료가 매우 비싸서, 보름 정도 썼는데 370만원이란 요금을 청구받은 중학생이 자살하는 일까지 있었다. 2001년 6월 강창광 기자가 촬영했다.
예전에는 휴대폰 통화료가 비쌌기에, 통화는 자제하고 문자메시지 단말기로 이용하는 사람도 많았다. 세계에서 드물게, 한글 특성을 반영한 쉬운 문자 입력 방식을 만든 덕에 쓰기도 쉬웠다. 위 사진에 있는 단말기는 애니콜 SCH-X120으로 추정된다. 안팎에 액정 화면 두개를 달고 있으며, 간단한 무선인터넷을 쓸 수 있었다. 그때는 무선인터넷 이용료가 매우 비싸서, 보름 정도 썼는데 370만원이란 요금을 청구받은 중학생이 자살하는 일까지 있었다. 2001년 6월 강창광 기자가 촬영했다.
2005년 열린 국제 정보통신 및 이동통신 전시회에서 애니콜 전화기를 이용해 3G 화상통화를 시연하는 모습. 휴대폰에 달린 카메라는 원래 화상통신을 위해 장착된 부품이기에, 3G 핵심 서비스가 되리라 다들 생각했지만, 한국에선 널리 쓰이지 못했다. 2020년이 되기 전에는. 이종근 기자 촬영.
2005년 열린 국제 정보통신 및 이동통신 전시회에서 애니콜 전화기를 이용해 3G 화상통화를 시연하는 모습. 휴대폰에 달린 카메라는 원래 화상통신을 위해 장착된 부품이기에, 3G 핵심 서비스가 되리라 다들 생각했지만, 한국에선 널리 쓰이지 못했다. 2020년이 되기 전에는. 이종근 기자 촬영.
이때부터 삼성 휴대폰은 날아올랐다. 엠피스리(MP3)폰, 카메라폰, 가로본능폰, 손목시계폰 등 다양한 형태를 가진 제품을 선보였고, 이건희폰(SGH-T100)이나 벤츠폰(SGH-E700), 블루블랙폰(SGH-D500)처럼 1000만대 이상 팔리는 기기도 만들어냈다. 2003년에는 영화 <매트릭스2>에 들어가는 매트릭스폰도 만들었다. 잘 알려지진 않았지만, E1100처럼 1억5000만대 이상 팔린 휴대전화도 있다. 휴대폰 시장은 생각보다 훨씬 빠르게 커졌고, 휴대폰은 패션 아이템으로 취급받기 시작했다. 이런 세상에서, 멋진 디자인과 뛰어난 기술력을 가진 한국 휴대폰은 정말 잘 팔렸다. 2009년 8월12일 <한겨레> 기사는 조금 흥분한 목소리로 이렇게 전한다.“휴대전화는 시장 경쟁이 가장 치열한 북미시장에서 압도적 1·2위로 올라섰다. 삼성전자는 올해 2분기에 1170만대를 팔아 4분기 연속 점유율 1위(24.7%) 자리를 지켰다. 2위 엘지(LG)전자(22.6%)의 점유율을 합치면 47.3%에 이른다. 여기에 제조자개발생산(ODM) 방식으로 수출하는 팬택(점유율 3% 안팎)을 더하면, 북미시장에서 팔리는 휴대전화 두대 중 한대가 한국업체 제품인 것이다.”(“전세계 TV·휴대폰 3대 중 1대 ‘한국산’” 2009년 8월12일치 17면)
이제는 많은 사람이 스마트폰을 사용해 영상을 즐기고 있지만, 예전에는 쉬운 일이 아니었다. 사진 속 기기는 2005년에 출시된 애니콜 위성 디엠비(DMB)폰 SCH-B100. 디엠비는 지상파나 인공위성을 이용해 영상을 수신해 볼 수 있는 서비스다. 디엠비는 무료지만 에스케이텔레콤(SKT)에서 서비스하는 위성 디엠비는 유료 서비스여서, 에스케이텔레콤 이용자들의 원성이 자자했다. 류우종 기자 촬영.
이제는 많은 사람이 스마트폰을 사용해 영상을 즐기고 있지만, 예전에는 쉬운 일이 아니었다. 사진 속 기기는 2005년에 출시된 애니콜 위성 디엠비(DMB)폰 SCH-B100. 디엠비는 지상파나 인공위성을 이용해 영상을 수신해 볼 수 있는 서비스다. 디엠비는 무료지만 에스케이텔레콤(SKT)에서 서비스하는 위성 디엠비는 유료 서비스여서, 에스케이텔레콤 이용자들의 원성이 자자했다. 류우종 기자 촬영.
휴대전화 이용자가 늘어나면서 많은 문제도 함께 생겼다. 이동통신요금은 예나 지금이나 문제가 되는 사안이지만, 지금 생각하면 납득할 수 없는 해괴한 일도 많았다. 위피(WIPI)라는 모바일 인터넷 플랫폼을 강제해서, 해외 휴대전화나 스마트폰을 도입할 수 없게 만들었다. 에스케이텔레콤(SKT)에선 지상파 디엠비(DMB)가 탑재된 휴대폰 출시를 막았다. 무선인터넷 요금을 더 받고 싶어서 와이파이도 탑재하지 못하게 했고, 심지어 3.5파이 이어폰 단자도 없어서 전용 이어폰을 꼭 써야 했다. 충전기 모양도 통일되기 전까진 제각각이었고, 휴대폰에 엠피스리(MP3) 파일 듣기 기능을 넣었다고 음반업계에서 반대 집회를 열던 시절이기도 했다. 박승화 기자 촬영.
휴대전화 이용자가 늘어나면서 많은 문제도 함께 생겼다. 이동통신요금은 예나 지금이나 문제가 되는 사안이지만, 지금 생각하면 납득할 수 없는 해괴한 일도 많았다. 위피(WIPI)라는 모바일 인터넷 플랫폼을 강제해서, 해외 휴대전화나 스마트폰을 도입할 수 없게 만들었다. 에스케이텔레콤(SKT)에선 지상파 디엠비(DMB)가 탑재된 휴대폰 출시를 막았다. 무선인터넷 요금을 더 받고 싶어서 와이파이도 탑재하지 못하게 했고, 심지어 3.5파이 이어폰 단자도 없어서 전용 이어폰을 꼭 써야 했다. 충전기 모양도 통일되기 전까진 제각각이었고, 휴대폰에 엠피스리(MP3) 파일 듣기 기능을 넣었다고 음반업계에서 반대 집회를 열던 시절이기도 했다. 박승화 기자 촬영.
휴대폰은 순식간에 일상을 바꿔버렸다. 빨라진 기술 진화는 비슷한 기술을 쓰던 다른 제품을 한데 모으게 만든다. 사진 속에 보이는 2008년의 터치 휴대전화, 전자사전, 캠코더, 피엠피(PMP)는 이제 스마트폰으로 모두 합쳐졌다. 모든 기능을 소프트웨어로 녹여내는 능력은, 컴퓨터가 가지고 있는 가장 중요한 힘이다. 윤운식 기자 촬영.
휴대폰은 순식간에 일상을 바꿔버렸다. 빨라진 기술 진화는 비슷한 기술을 쓰던 다른 제품을 한데 모으게 만든다. 사진 속에 보이는 2008년의 터치 휴대전화, 전자사전, 캠코더, 피엠피(PMP)는 이제 스마트폰으로 모두 합쳐졌다. 모든 기능을 소프트웨어로 녹여내는 능력은, 컴퓨터가 가지고 있는 가장 중요한 힘이다. 윤운식 기자 촬영.
기본기를 다지는 시간을 거쳐, 국내에서 보호받으며 실력을 갈고닦았다. 외환위기를 맞아 세계에 진출했고, 다양하고 새로운 제품을 제시해 세계 시장 2위까지 올라갔다. 끝내 노키아는 잡을 수 없었지만, 모토롤라 같은 경쟁사는 알아서 망가졌다. 2007년 아이폰이 등장하기 전까진, 모든 게 참 좋았다. 이렇게 끝내면 좋겠지만, 그림자도 짙다.2005년 8월 <한겨레21>에선 “국내 협력업체들을 쥐어짜라? 수입부품 늘면서 삼성전자 협력업체 줄고 단가 인하 압력으로 마진도 낮아”라는 글을 통해 협력업체 문제를 지적했다.특허법원에서 휴대전화 관련 중소기업 기술을 빼앗았다는 판정도 받았다.(“삼성전기, 중소기업 기술 뺏었다” 2005년 10월13일치 1면). 출고가보다 높은 판촉비를 지급하며 마케팅을 하기도 했다.(“‘마이너스폰’ 봇물…제조업체 피의 전쟁” 2009년 7월13일치 14면)이에 대해 2009년 11월23일, 삼성전자 40주년을 축하하는 <한겨레> 칼럼(“삼성전자 40주년에 부쳐” 2009년 11월23일치 30면)은 이렇게 말한다. “21세기 삼성과 삼성전자는… 과연, 세계 일류기업 차원은 물론, 자기가 설정한 ‘경영이념·핵심가치·행동규범’에 일치하는지 냉정히 자문해야 할 것이다.”
▶35화 해설자인 이요훈 아이티(IT) 칼럼니스트는 아이티산업이 보여주는 ‘와!’ 하는 순간보다 그것이 가져다줄 삶의 변화에 대해 생각합니다. 민예총 정보화팀장과 <넥스아트> 편집장을 지냈으며, 한국과학기술기획평가원 전문위원을 맡은 적 있습니다. 와이티엔(YTN) 사이언스 ‘스마트 라이프’와 아리랑티브이(TV) ‘비즈테크 코리아’(BizTech Korea)에 출연하고 있습니다. ‘자그니 블로그’를 운영 중입니다.


원문보기:
http://www.hani.co.kr/arti/economy/it/984998.html?_fr=mt1#csidx4b236c038e01f44ab0628d96b0fe7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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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 대통령 “도쿄올림픽은 한·일, 북·미 간 대화 기회”

102년 전 만세운동 시작된 탑골공원서 3·1절 기념식

  • 기자명 이광길 기자 
  •  
  •  입력 2021.03.01 11:02
  •  
  •  수정 2021.03.01 16:24
  •  
  •  댓글 3
 
문재인 대통령이 1일 서울 탑골공원에서 열린 제102주년 3.1절 기념식에 참석했다. [사진제공-청와대]
문재인 대통령이 1일 서울 탑골공원에서 열린 제102주년 3.1절 기념식에 참석했다. [사진제공-청와대]

문재인 대통령이 1일 “올해 열리게 될 도쿄 올림픽은 한·일 간, 남·북 간, 북·일 간 그리고 북·미 간의 대화의 기회가 될 수도 있다”고 내다봤다.

이날 오전 10시 봄비가 내리는 가운데 서울 탑골공원에서 열린 제102주년 3·1절 기념식에서 “한일 양국은 과거와 미래를 동시에 바라보며 함께 걷고 있다”면서 이같이 말했다. “한국은 도쿄 올림픽의 성공적 개최를 위해 협력할 것”이라고 밝혔다. 

7월 23일로 예정된 도쿄 하계올림픽 개막식에 문 대통령이 직접 참석할 가능성이 높다. 지난 2018년 2월 평창 동계올림픽 때 아베 신조 당시 일본 총리가 참석한 전례가 있기 때문이다. 이 경우 문 대통령과 스가 일본 총리 간 첫 정상회담이 이뤄지게 된다.

문 대통령은 “일본과 우리 사이에는 과거 불행했던 역사가 있었”으나 “100년이 지난 지금, 한일 양국은 경제, 문화, 인적교류 등 모든 분야에서 서로에게 매우 중요한 이웃이 되었다”고 말했다.

“우리가 넘어야 할 유일한 장애물은, 때때로 과거의 문제를 미래의 문제와 분리하지 못하고 뒤섞음으로써, 미래의 발전에 지장을 초래한다는 것”이라며, “과거의 문제는 과거의 문제대로 해결해 나가면서 미래지향적인 발전에 더욱 힘을 쏟아야 한다”고 촉구했다.

문 대통령은 “한국 정부는 언제나 피해자 중심주의의 입장에서 지혜로운 해결책을 모색할 것”이고 “피해자들의 명예와 존엄 회복을 위해서도 최선을 다할 것”이나 “한일 양국의 협력과 미래발전을 위한 노력도 멈추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이날 기념식에는 ‘코로나19’ 상황을 고려해 50여명이 참석했다. [사진제공-청와대]
이날 기념식에는 ‘코로나19’ 상황을 고려해 50여명이 참석했다. [사진제공-청와대]

“양국 협력은 두 나라 모두에게 도움이 되고, 동북아의 안정과 공동번영에 도움이 되며, 한·미·일 3국 협력에도 도움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문 대통령은 “우리 정부는 언제든 일본 정부와 마주 앉아 대화를 나눌 준비가 되어 있다”면서 “역지사지의 자세로 머리를 맞대면 과거의 문제도 얼마든지 현명하게 해결할 수 있을 것이라 확신한다”고 말했다.

만일 북한과 미국 고위인사들이 도쿄 하계올림픽 개막식에 참석하면 3년전 평창 동계올림픽 때와 비슷하게 ‘도쿄 데탕트’가 펼쳐질 가능성도 있다.  

이날 문 대통령은 “한반도 비핵화와 항구적 평화를 위해서도 변함없이 노력할 것”이라며 “전쟁불용, 상호안전보장, 공동번영이란 3대 원칙에 입각해 남북관계를 발전시켜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키기 위한 ‘동북아 방역·보건협력체’ 참여를 시작으로 북한이 역내 국가들과 협력하고 교류하게 되길 희망한다”고 말했다. “한반도와 동아시아에 상생과 평화의 물꼬를 트는 힘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날 기념식이 열린 탑골공원은 3‧1운동의 발상지이다. 102년전 공원 내 팔각정 앞에서 시민과 학생들이 독립선언서를 낭독하고 만세를 외쳤다. 3‧1운동 기념탑, 3‧1운동 벽화, 의암 손병희 선생 동상, 한용운 선생 기념비 등이 있다.

제102주년 3·1절 기념사(전문)


존경하는 국민 여러분,
해외 동포 여러분,

3·1독립운동이 시작된 역사의 현장에서, 사상 처음으로, 3·1독립운동 기념식이 열리게 되어, 참으로 뜻깊고 감회가 큽니다.
102년 전 오늘, 이곳 탑골공원에서 민족의 회복과 도약이 시작되었습니다.
천도교, 기독교, 불교가 종교의 벽을 넘어 한마음이 되었고, 학생들이 민족대연합의 선두에 섰습니다.

1919년 3월 1일 오후 2시, 한 청년이 팔각정에 올라 독립선언서를 낭독했습니다.
낭독이 끝나자 만세 소리가 하늘을 뒤덮었습니다.
세계 최대의 비폭력운동, 3·1독립운동이 시작되는 순간이었습니다.
탑골공원에서 시작된 자유와 독립의 외침은 평범한 백성들을 민주공화국의 국민으로 태어나게 했고, 정의와 평화, 인도주의를 향한 외침은 식민지 백성을 하나로 묶는 통합의 함성이 되었습니다.

3·1독립운동은 식민지배의 수탈로부터 민족의 삶을 회복하기 위해 온 국민이 함께한 운동이었습니다.
3·1독립운동으로 우리는 식민지 극복의 동력을 찾았고, 민족의 도약을 시작할 수 있었습니다.
역경을 헤쳐 나가며 대한민국 역사의 반전을 이룬 자랑스러운 선조들께 깊은 존경을 바칩니다.


국민 여러분,

100년의 긴 세월이 흘렀지만, 국난에 함께 맞서는 우리 국민들의 헌신과 저력은 한결같습니다.
한 해를 넘긴 코로나의 위협에 우리는 굴복하지 않았습니다.
지난 1년, 국민들은 방역의 주체가 되어 대한민국을 지켜주셨습니다.
방역 요원과 의료진은 직업적 책임감을 뛰어넘는 놀라운 헌신과 희생을 보여주었습니다.

3·1독립운동 전 해, 일제의 무단통치와 수탈에 신음하던 1918년에도 ‘스페인 독감’이라는 신종 감염병이 우리 겨레에 닥쳤습니다.
당시 인구의 40%가 넘는 755만 명의 환자가 발생해 14만 명 이상이 목숨을 잃었습니다.
‘콜레라’ 역시 ‘죽음’을 의미했습니다.
치명률이 65%에 이르렀고, 1920년에만 만3천500여 명이 목숨을 잃었습니다.

일제는 식민지 백성을 전염병으로부터 지켜주지 못했습니다.
방역과 위생을 구실로 강제 호구조사와 무조건 격리를 일삼았고, 1920년 당시 의사 1인당 담당 인구수가 무려 만7천 명에 달했습니다.
그와 같은 척박한 의료 현실 속에서 의학도들은 3·1독립운동에 가장 적극적으로 참여했습니다.
경성의전과 세브란스의전 학생들이 탑골공원의 만세시위를 주도했고, 세브란스병원 간호사들과 세브란스의전 간호부 학생들 역시 붕대를 가지고 거리로 뛰쳐나와 동참했습니다.
체포된 학생들 가운데 경성의전 학생들이 가장 많았습니다.

가족과 이웃, 공동체의 생명을 지킨 것은 3·1독립운동으로 각성한 우리 국민 스스로였습니다.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수립되자 의료인들은, 독립운동으로 탄압받는 민족의 구호를 위해 상해에서 대한적십자회를 설립했고, 1920년에는 ‘적십자 간호원 양성소’를 세워 독립군을 치료할 간호사들을 길러냈습니다.

콜레라가 유행하자 전국 곳곳의 청년·학생들은 청년 방역단을 조직하여 무료 예방접종과 소독 등의 방역 활동을 벌였고, 큰 호응을 얻었습니다.
서울에서는 열세 개 동, 3천여 가구가 연합 자위단을 조직해 콜레라에 맞섰습니다.
효자동을 비롯한 여덟 개 동 주민들은 전염병 병원 설립을 위한 조합을 결성했고, 1920년 9월 4일, 마침내 최초의 사립 전염병 격리병원 ‘효자동 피병원’이 설립되었습니다.
조선인이 지은 병원에서 조선인 의사와 간호사, 한의사가 전력을 다해 환자를 치료했습니다.
오늘의 코로나 상황에서 보면, 우리 스스로 우리 환자를 돌보려 했고, 우리 스스로 의료체계를 갖추려 했던 선대들의 노력이 참으로 가슴 깊게 다가옵니다.

오늘 우리가 코로나를 이겨내고 있는 힘이 100년 전 우리 의료인들의 헌신과 희생에서 비롯되었다는 것이 매우 자랑스럽습니다.


국민 여러분,

100년이 흐른 지금, 우리 보건의료 체계는 세계적인 수준을 자랑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저소득층은 언제든 연간 80만 원 이하의 자부담으로 건강보험이 적용되는 치료를 받을 수 있고, 중증환자 보장률도 80%까지 올랐습니다.
우리 의료는 대장암과 위암을 비롯한 각종 암과 뇌졸중 치료에서 세계 최고 수준으로 평가받고 있고, 기대수명과 영아 사망률, 암 질환 생존율 등 주요 지표에서 OECD 상위권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놀라울 정도로 발전한 보건의료 체계와 바이오의약품 생산능력이 K-방역의 기반이 되었습니다.

100년이 흘렀지만 한결같은 것이 또 있습니다.
서로를 돌보고 의지하는 ‘포용’과 ‘상생’의 마음입니다.
이야말로 어떤 위기도 이겨낼 수 있게 하는 우리 국민의 힘입니다.
우리는 국민의 힘으로 많은 위기와 역경을 이겨왔고, 지금도 코로나 위기를 이겨내고 있습니다.

3·1독립운동은 민족지도자들이 시작했지만, 온갖 탄압을 이겨내며 전국적인 만세운동으로 확산시킨 것은 평범한 보통 사람들이었습니다.
지금 이웃을 위해 매일 아침 마스크를 챙겨 쓰는 국민의 손길과 사회적 거리두기를 실천하는 국민들의 가슴 깊은 곳에도 국난 극복을 위해 함께한 3·1독립운동의 정신이 살아 숨쉬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웃을 위해 인내하고 희생해온 국민들과, 지금 이 순간에도 격리병동에서 일하는 의료진들의 노력으로 코로나와의 기나긴 싸움도 이제 끝이 보이고 있습니다.
충분한 물량의 백신과 특수 주사기가 확보되었고, 계획대로 접종이 차질없이 진행되고 있습니다.

정부는 끝까지 방역에 최선을 다하며, 국민 한 분 한 분이 모두 코로나로부터 안전할 수 있을 때까지 백신 접종에 만전을 기할 것이며, 다음 겨울에 접어드는 11월까지 집단 면역을 이룰 것입니다.

코로나 방역에 있어서 정부가 시종일관 지켜온 제1의 원칙이 투명성입니다.
정부는 방역에 필요한 모든 정보를 항상 투명하게 공개해왔습니다.
백신 접종도 마찬가지입니다.
백신 접종의 전략과 물량 확보, 접종 계획과 접종 현황을 투명하게 공개하고 있고, 언제나 국제기준을 따르고 있습니다.
국민들께서, 백신 불신을 조장하는 가짜뉴스를 경계해주시고 백신 접종에 적극 협력하여 주실 것을 당부드립니다.


존경하는 국민 여러분,
해외 동포 여러분,

1946년, 해방 후 처음 열린 3·1절 기념식에서 임시정부 국무위원 조소앙 선생은 “우리 동포를 자유민이 되게 하고, 정치적 권리를 갖게 하고, 의식주 걱정 없는, 진정한 광복을 이루겠다”고 선언했습니다.
대한민국 임시정부는 건국이념으로, 우리 스스로 힘이 있을 때 개인과 개인, 민족과 민족, 국가와 국가 간 평등한 발전이 가능하다는 ‘삼균주의’를 공표했습니다.

소박하지만 원대한 꿈이었고, 우리는 이 꿈 위에서 놀라운 성취를 이뤘습니다.
세계 최빈국에서 세계 10위권의 경제로 성장했고, 세계 7대 수출 강국이 되었으며 1인당 국민소득 3만 불 시대를 열었습니다.
반도체, 스마트폰, 디스플레이 등 우리의 첨단 IT 제품이 세계 시장점유율 1위를 차지하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세계 최초의 5G 상용화에 이어, 전기차와 수소차 등 친환경 미래차에서도 앞서가고 있습니다.
소재·부품·장비 산업에서 자립을 이뤄가고, 시스템반도체와 바이오산업의 성장 속도도 자랑할 만합니다.

우리 청년들의 고등교육 이수율도 OECD 국가 중 가장 높습니다.
끊임없이 배우고 지식을 쌓은 우리 국민의 저력이 경제성장의 원동력이었습니다.

우리는 성숙한 민주주의의 힘으로, 코로나 위기 속에서 방역과 경제의 모범을 만들어왔고, ‘K-방역’의 성과와 경험을 세계와 공유하고 있습니다.
개도국과 보건 취약 국가에 대한 지원도 확대하고 있습니다.

100년 전, ‘파리평화회의’의 문턱에서 가로막혔던 우리가, 이제는 G7 정상회의에 초청받을 만큼 당당한 나라가 되었습니다.
올해 G7 정상회의 참여로 우리가 이룬 정치, 경제, 사회, 문화의 모든 성취 위에서 ‘선도국가, 대한민국호’가 출발하는 확실한 이정표를 만들겠습니다.

우리는 국제사회와의 협력 속에서 성장해왔고, 앞으로도 세계와 함께 회복하고 도약할 것입니다.

100년 전, 우리 선조들은 이곳에서 인류 평등의 대의와 함께, 독립선언의 목적이 일본을 미워하고 배척하려는 것이 아니라 나라 간의 관계를 바로잡아 동양평화와 세계평화를 이루고자 함에 있다는 것을 선포하고, 비폭력 평화 운동을 선언하였습니다.

우리는 100년 전의 선조들로부터 나라 간의 호혜 평등과 평화를 지향하는 정신을 물려받았습니다.
100년이 흐른 지금 우리는 코로나에 맞서 연대와 협력, 다자주의와 포용의 정신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다시 한번 절감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힘이 지배하는 일방적인 세계 질서 속에서, 식민주의와 전쟁으로 인류 모두가 불행해지는 시대를 넘어섰습니다.

우리는 글로벌 공급망을 유지하기 위해 국제적 연대와 협력이 얼마나 중요한지 깨달았으며, 백신의 조기개발을 위해 세계 각국이 협력해야 하고, 세계적인 집단 면역을 위해 개도국과 백신을 공평하게 나누어야 한다는 것도 인식하게 되었습니다.

이제 세계는 공존과 새로운 번영을 위해 연대와 협력, 다자주의 정신을 되살려야 합니다.
코로나 극복은 물론, 기후변화 대응 같은 전 지구적 문제에 대해 다자주의에 입각한 해결책을 모색해야 합니다.

이제 우리에게는 다자주의에 입각한 연대와 협력을 선도할 수 있는 역량도 생겼습니다.
지난해 12월 우리는 미국, 중국, 러시아, 몽골과 함께 ‘동북아 방역·보건협력체’를 출범시켰습니다.

일본도 참여를 검토하고 있으며, 나아가 북한도 함께 참여하기를 기대합니다.
우리는 가장 적극적으로 참여국들과 협력할 것입니다.

코로나와 같은 신종 감염병과 가축 전염병의 초국경적인 확산은 한 나라의 차원을 넘어 다자주의적 협력에 의해서만 효과적으로 대응할 수 있습니다.

한반도 비핵화와 항구적 평화를 위해서도 변함없이 노력할 것입니다.
전쟁불용, 상호안전보장, 공동번영이란 3대 원칙에 입각해 남북관계를 발전시켜 나갈 것입니다.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키기 위한 ‘동북아 방역·보건협력체’ 참여를 시작으로 북한이 역내 국가들과 협력하고 교류하게 되길 희망합니다.
한반도와 동아시아에 상생과 평화의 물꼬를 트는 힘이 될 것입니다.


국민 여러분,

일본과 우리 사이에는 과거 불행했던 역사가 있었습니다.
오늘은 그 불행했던 역사 속에서 가장 극적이었던 순간을 기억하는 날입니다.
우리는 그 역사를 잊지 못합니다.
가해자는 잊을 수 있어도, 피해자는 잊지 못하는 법입니다.
그러나 100년이 지난 지금, 한일 양국은 경제, 문화, 인적교류 등 모든 분야에서 서로에게 매우 중요한 이웃이 되었습니다.
지난 수십 년간 한일 양국은 일종의 분업구조를 토대로 함께 경쟁력을 높여왔고, 한국의 성장은 일본의 발전에 도움이 되고, 일본의 성장은 한국의 발전에 도움이 되었습니다.
앞으로도 그럴 것입니다.
우리가 넘어야 할 유일한 장애물은, 때때로 과거의 문제를 미래의 문제와 분리하지 못하고 뒤섞음으로써, 미래의 발전에 지장을 초래한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과거의 역사를 직시하면서 교훈을 얻어야 합니다.
과거의 잘못에서 교훈을 얻는 것은 결코 부끄러운 일이 아니며, 오히려 국제사회에서 존중받는 길입니다.
한국은 과거 식민지의 수치스러운 역사와 동족상잔의 전쟁을 치렀던 아픈 역사를 결코 잊지 않고 교훈을 얻고자 노력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과거에 발목 잡혀 있을 수는 없습니다.
과거의 문제는 과거의 문제대로 해결해 나가면서 미래지향적인 발전에 더욱 힘을 쏟아야 합니다.
한국 정부는 언제나 피해자 중심주의의 입장에서 지혜로운 해결책을 모색할 것입니다.
피해자들의 명예와 존엄 회복을 위해서도 최선을 다할 것입니다.
그러나 한일 양국의 협력과 미래발전을 위한 노력도 멈추지 않을 것입니다.
양국 협력은 두 나라 모두에게 도움이 되고, 동북아의 안정과 공동번영에 도움이 되며, 한·미·일 3국 협력에도 도움이 될 것입니다.

더구나 지금은 코로나 위기를 함께 극복하고, 포스트 코로나 시대를 함께 준비해 나가야 할 때입니다.
이웃나라 간의 협력이 지금처럼 중요한 때가 없었다는 것을 강조하고 싶습니다.

3·1독립선언서는 일본에게, 용감하고 현명하게 과거의 잘못을 바로잡고 참된 이해를 바탕으로
우호적인 새로운 관계를 만들자고 제안했습니다.
우리의 정신은 그때나 지금이나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우리 정부는 언제든 일본 정부와 마주 앉아 대화를 나눌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역지사지의 자세로 머리를 맞대면 과거의 문제도 얼마든지 현명하게 해결할 수 있을 것이라 확신합니다.

한일 양국은 과거와 미래를 동시에 바라보며 함께 걷고 있습니다.

올해 열리게 될 도쿄 올림픽은 한·일 간, 남·북 간, 북·일 간 그리고 북·미 간의 대화의 기회가 될 수도 있습니다.
한국은 도쿄 올림픽의 성공적 개최를 위해 협력할 것입니다.
나아가 한일 양국이 코로나로 타격받은 경제를 회복하고, 더 굳건한 협력으로 포스트 코로나 시대의 새로운 질서를 함께 만들어갈 수 있길 바랍니다.


국민 여러분,
독립유공자와 유가족 여러분,

지금 우리 곁에 계신 생존 독립유공자는 스물네 분에 불과합니다.
모두 아흔을 훌쩍 넘기셨습니다.
독립유공자들은 온몸으로 민족의 운명을 끌어안아 오신 분들이며, 독립유공자들께 명예롭고 편안한 삶을 드리는 것은 국가의 무한한 책임입니다.

정부는 지난해 독립유공자를 위해 찾아가는 재가복지서비스 특별기동반을 운영했습니다.
독립유공자와 유족을 포함하여 모두 4만4천여 가구에 코로나 긴급구호 물품을 전해드렸고, 
몸이 불편하신 분들을 병원에 모시고 다녔습니다.

해외 독립유공자와 후손들께도 마스크 등 방역물품을 지원했습니다.

정부는 이달부터 독립유공자들의 자택으로 직접 찾아뵙는 ‘한방 주치의 제도’를 시행할 예정입니다.

12월부터는 독립유공자를 비롯한 국가유공자들께 ‘자율주행 스마트 휠체어’를 지급하고, ‘인공 망막’, ‘스마트 보청기’ 개발도 본격적으로 착수할 예정입니다.

정부는 그동안 독립유공자 심사기준을 개선해 역대 최고 수준으로 독립유공자를 발굴 포상해왔습니다.

독립운동 사료 수집을 강화하고 공적심사 기준을 더욱 개선해 포상 대상을 확대해 나가겠습니다.

3·1독립운동의 주역이었던 학생들은 1926년 6·10만세운동, 1929년 광주학생독립운동으로 3·1독립운동의 정신을 면면히 이어갔습니다.
정부는 지난해 6·10만세운동을 국가기념일로 지정했고, 올해부터 기념식을 정부 주관 행사로 거행하게 됩니다.
3·1독립운동, 광주학생독립운동과 함께 ‘3대 독립운동’ 모두가 국가기념일이 되어 매우 뜻깊습니다.

임시정부 요인 환국일인 올해 11월 23일, 국립 대한민국임시정부 기념관이 드디어 개관합니다.
목숨을 건 무장투쟁과 의열활동, 필사적인 외교전, 마침내 이뤄낸 광복군의 좌우합작과 국내진공작전의 준비까지 대한민국임시정부 27년의 위대한 대장정을 생생하게 되살릴 것입니다.

우리 독립운동의 역사가 미래 세대에게 커다란 긍지와 자부심이 되길 희망합니다.


존경하는 국민 여러분,
해외 동포 여러분,

3·1독립운동 이후 우리의 100년은 식민지배, 분단과 전쟁, 가난과 독재를 극복해온 100년입니다.
인류 보편의 가치인 자유와 평화, 정의와 인도주의를 향해 전진해온 100년입니다.

우리는 지금 3·1독립운동의 정신과 민주주의, 포용과 혁신의 힘으로 새로운 길을 개척하고 있으며, 세계는 우리의 발걸음에 주목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연대와 협력으로 소중한 일상을 회복할 것입니다.

인도주의와 다자주의, 상생과 포용의 정신으로 국제질서를 선도하는 나라가 될 것입니다.

이곳 탑골공원에는 위기와 역경 속에서 역사의 반전을 이룬 선열들의 정신이 살아있고, 우리는 선열들을 기억하며 앞으로 나아갈 것입니다.

함께할 때 우리는 더욱 강합니다.
더 높이 도약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2021년 3월 1일
대한민국 대통령 문재인

(자료제공-청와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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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명 독주에 이낙연 반등...민주당 역학관계 변화 관심

  • 분류
    아하~
  • 등록일
    2021/03/02 08:41
  • 수정일
    2021/03/02 08:41
  • 글쓴이
    이필립
  • 응답 RSS

- 친문 이재명 견제 본격화 속 '이해찬계' 구당권파 움직임 주목
- '이낙연 퇴진' vs '이재명 출당' 권리당원 투표 등 거부감 여전
- '민주정부 4기 집권론'...이재명 염두(?) 벌써부터 갑론을박
- 차기 당 대표, 원내대표 선거 합종연횡 누가 유리할지도 변수

 

이재명 경기도지사가 사실상 독주 체제를 이어가는 속에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2월 임시국회를 기점으로 반등에 성공했다는 분석이 나오면서 당내 경선을 앞두고 역학관계가 변화될 지 관심이다.

 

특히 과거 '부엉이 모임'으로 통하는 친문 핵심 그룹이 '이재명 견제'를 본격화 한 가운데 이해찬 전 대표 중심의 구 당권파 그룹은 상대적으로 중립·우호적 태도를 보이면서 이미 선명성 논쟁이 불붙으면서 향후 분파 등을 둘러싼 갑론을박이 벌써부터 치열하다.

 

우선 친문 핵심 그룹은 '이재명표 브랜드'인 기본소득론을 정조준하면서 이 지사 견제 목소리가 수면 위로 노골화된 상태다.

 

‘신복지’를 내세운 이낙연 당 대표는 물론, 정세균 국무총리와 임종석 전 비서실장 등에 이어 '친문 적자'로 불리는 김경수 경남지사도 "포퓰리즘 공약"이라며 정책검증에 가세했다.

 

또 트위터 등에서 개인 의견을 활발하게 개진하는 장덕천 부천시장 등의 경우 ‘이재명 기본소득의 전파자’인 최배근 건국대 교수 등과의 논쟁에 맞서 선별지급 등의 구체적인 논리를 제공하는 ‘친문 대표선수’로 이미 유명세를 타고 있다.

 

부엉이 모임 출신의 한 의원은 "기본소득은 현재 상황상 불가능하고 논리도 맞지 않기 때문에 공론화될수록 이 지사의 부담도 커질 것"이라고 말했다.

 

최근 민주당 당원게시판을 뜨겁게 달궜던 ‘이낙연 퇴진’과 ‘이재명 출당’ 권리당원 투표는 물론 대선후보 경선 연기론이나 '벌떼 전략'으로도 불리는 ‘13룡(龍) 제3후보론’도 결국은 '이재명 흔들기'로 요약된다.

 

홍영표, 김종민, 황희, 정태호, 윤건영 의원 등 친문 핵심 그룹 내에서는 일정부분 정서적 반감도 깔린 것 아니냐는 분석이 나온다. 2017년 대선 경선 때 이 지사가 문재인 대통령을 몰아세우는 모습이 각인됐을 수 있다는 것이다.

 

여기에 이미 일부 강성 친문 그룹은 ‘이재명계’로 불리는 정성호, 김영진, 김병욱, 임종성, 이규민, 민형배, 김남국 의원 등을 ‘7인방’이라며 맹폭하고 있는가 하면 이해찬 전 대표를 비롯한 김태년 원내대표, 윤호중, 김경협, 홍익표, 김성환 의원에 양정철 전 민주연구원장 등 ‘이해찬계’로 불리는 구당권파 친문 그룹에 대한 비토도 눈에 띄게 강해졌다.

 

이미 ‘친문’이 아닌 ‘이해찬계’로 부르며, 사실상 분파로 인정하고 있는 분위기도 나오는 가운데 최근의 ‘민주정부 4기 집권론’도 이 지사를 염두에 둔 것 아니냐는 의구심도 나온다.

 

이른바 '20년 집권론'을 강조했던 이 전 대표로서는 당선 가능성 높은 인사를 내세워 정권을 재창출해야 한다는 인식이 강한 것으로 알려졌다.

 

적폐 청산과 새로운 대한민국 건설을 위해서는 민주당이 20년을 집권해야 하고, 그런 차원에서 이 지사의 경쟁력을 평가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 전 대표는 이 지사가 2018년 말 직권남용과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로 기소되면서 제기된 당내 출당 요구에 '당원권 유보'를 결정하면서 사실상 우군 역할을 하기도 했다.

 

이 전 대표는 최근에도 사석에서도 "사람이 없지 않으냐. 지켜야 한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민주당 한 관계자는 "이 전 대표는 어느 진영 사람이라기보다 대선에서 당선 가능성이 높은 후보면 된다는 입장"이라고 전했다.

 

당장 이같은 흐름의 중심축 격인 이해찬 전 대표의 움직임에 주목하는 것도 이 때문으로, 이 지사 측에서는 이 전 대표와 수시로 소통하며 조언받고 있다는 말도 나온다.

 

이와함께 오는 9일 이낙연 대표 퇴임 이후 차기 당 대표 선거와 원내대표 선거도 벌써부터 관심을 모으는데, 차기 총리와 함께 향후 대선 경선의 흐름을 예측할 주요 변수가 될 것이란 예상이다.

 

사실상 차기 당 대표 선거 출마를 굳힌 송영길, 홍영표, 우원식 의원과 원내대표 후보군으로 꼽히는 윤호중, 김경협 의원 등을둘러싼 각 계파간 합종연횡과 치열한 눈치싸움이 이미 절정에 달한 상태여서 당내 역학관계의 재편에 벌써부터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 경기신문 = 박건 기자 ]



[출처] 경기신문 (https://www.kg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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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얀마 군부, 쿠데타 항의 시위 ‘실탄 유혈진압’... 최소 18명 사망, 수십명 부상

현지 SNS, ‘미얀마 전역에서 25명 사망’ 주장도... 서방국가, 미얀마 군부 폭력 진압 일제히 규탄

김원식 전문기자
발행 2021-03-01 08:58:33
수정 2021-03-01 08:58:33
이 기사는 번 공유됐습니다
미얀마에서 최소 18명이 사망하는 최악의 유혈 사태가 벌어진 28일(현지 시간) 군경이 최루가스와 실탄 등을 사용해 시위대를 해산하고 있다.
미얀마에서 최소 18명이 사망하는 최악의 유혈 사태가 벌어진 28일(현지 시간) 군경이 최루가스와 실탄 등을 사용해 시위대를 해산하고 있다.ⓒ현지 트위터 캡처
 
 미얀마에서 군부 쿠데타에 항의하는 시위가 이어지는 가운데, 군경의 실탄 무력 진압으로 최소 18명이 사망하고 수십 명이 부상하는 최악의 유혈 사태가 발생했다.

유엔인권사무소는 28일(현지 시간) 성명을 통해 이날 미얀마 전역에서 쿠데타에 항의하는 시위 도중 군경의 무력 사용으로 최소 18명이 숨지고 30명 이상이 다쳤다고 밝혔다.

라비나 샴다사니 유엔인권사무소 대변인은 이날 “미얀마 시위에서 고조되는 폭력을 강력하게 규탄한다”면서 “평화적인 시위대에 대한 폭력을 즉각 중단하라고 군부에 촉구한다”고 말했다.

‘미얀마 나우’를 비롯한 현지 매체들도 이날 유혈 사태로 최소 18명이 사망하고 수십 명이 부상을 당했다고 보도했다. 또 이 과정에서 많은 시민들이 군경에 무작위로 체포됐다고 덧붙였다.

 

미얀마 시민들이 소셜미디어(SNS)에 올린 사망자 소식에는 이날 양곤 2명, 띤간쥰 1명, 다곤 1명, 다웨이 5명, 만달레이 2명, 바고 3명, 파코쿠 1명, 메익 7명, 라쇼 1명, 머라먀인 2명 등 최소 25명이 숨졌다는 주장도 나온다.

한편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미얀마에서 최악의 유혈 사태가 발생하자 미국을 비롯한 서방 국가들은 미얀마 군부를 일제히 규탄하고 나섰다.

토니 블링컨 미 국무장관은 이날 트위터를 통해 미얀마 군경의 폭력을 비난하면서 “우리는 버마(미얀마)의 용감한 사람들과 굳건히 연대한다”며 “(사태에) 책임이 있는 사람들을 상대로 계속 책임을 따질 것”이라고 말했다.

안토니오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도 이날 성명을 통해 “평화적 시위대에 치명적 폭력을 쓰고 무조건 체포하는 것은 용납될 수 없다”면서 “국제사회가 함께 군부를 향해 선거로 표출된 미얀마인들의 뜻을 존중하고 억압을 멈춰야 한다는 분명한 신호를 보낼 것을 촉구한다”고 밝혔다.

유럽연합(EU)과 영국 등도 이날 외무부 성명 등을 통해 미얀마 군경의 폭력적인 시위대 진압을 강력히 규탄한다고 말했다. EU는 특히, “이런 상황 전개에 대응할 수단을 강구할 것”이라며 제재가 임박했음을 예고했다.

김원식 전문기자

국제전문 기자입니다. 외교, 안보, 통일 문제에 관심이 많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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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장에서 도망가다 잽히믄, 사람들 앞에 옷 베껴 돌렸당께”

등록 :2021-03-01 04:59수정 :2021-03-01 08: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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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국내 강제동원 피해자들
전남 장흥군 장평면 강제동원 피해자 한순임씨. 이국언 근로정신대 할머니와 함께하는 시민모임 상임대표 제공
전남 장흥군 장평면 강제동원 피해자 한순임씨. 이국언 근로정신대 할머니와 함께하는 시민모임 상임대표 제공

“종방(종연방적) 들어가서 밤에도 하고 낮에도 하고, 죽게 일만 했제.”

전남 장흥군 장평면에 사는 한순임(89)씨는 지난 26일 <한겨레>와 한 통화에서 77년 전 기억을 생생하게 떠올렸다. 1932년 1월4일(음력) 태어났지만 3년 늦게 호적에 오른 한씨가 만 12살을 막 넘긴 1944년 음력 2월 하드렛날(초하루)이었다. 풍습에 따라 ‘콩을 큰 솥에 볶으며 잡귀가 ‘연기처럼’ 사라지길 기원’하던 그날, 장동면 봉동리 고향 마을에서 고무줄놀이를 하고 있는데 난데없이 마을에 트럭들이 나타났다.

일제강점기 방직공장 여공들의 복장. 출처: &lt;광주1백년&gt;(박선홍 지음)
일제강점기 방직공장 여공들의 복장. 출처: <광주1백년>(박선홍 지음)

남정네 몇사람이 한씨의 손목을 낚아챘다. 본격적으로 중국을 침략한 직후였던 1938년 일제는 국가총동원법을 제정해 전시 인적·물적 자원 총동원 체제를 갖췄고, 이듬해 국민징용령을 발령해 관 알선, 보국대, 국민징용 등 방법으로 대대적인 인력동원에 나섰다. ‘모집’ 형태였다지만 사실 거짓으로 회유한 강제동원이었다. 1940년대 들어 ‘인력 공출’은 더욱 심해졌다.

 

한씨가 도착한 곳은 광주에 있던 ‘종연방적 전남공장’이었다. 일제강점기에는 ‘가네보 공장’으로, 해방 뒤엔 전방㈜과 일신방직㈜ 임동공장으로 알려진 곳이다.

지난 20일 사단법인 광주마당이 시민 50여명과 함께 광주의 근대산업 유산인 전방과 일신방직 임동공장을 둘러보고 있다. 조계현씨 제공
지난 20일 사단법인 광주마당이 시민 50여명과 함께 광주의 근대산업 유산인 전방과 일신방직 임동공장을 둘러보고 있다. 조계현씨 제공

일본 미쓰이 계열 종방은 1935년 광주 임동 23만1405㎡(7만평)의 터에 공장을 지어 면 제품을 생산했다. 방적기 3만5000추, 직기 1440대, 종업원 3000명에 이르는 조선 최대 규모였다. 여성 노동자들의 평균 나이는 13~14살이었다. 1940년 이후 군복·속옷·양말 등을 만들어내던 종방에서 이들은 하루 12시간 이상 혹독한 노동에 시달렸다.

 ※ 이미지를 누르면 크게 볼 수 있습니다.
※ 이미지를 누르면 크게 볼 수 있습니다.

“미영(무명) 잡고 그놈 올 떨어지믄 디지게(죽도록) 불러다 뚜둘고(때리고), 그런 데로 갔어.”

재래종 면화(목화)에서 실을 뽑아 짠 직물이 무명이다. 하루 절반 이상을 공장에서 일하고, 식사시간을 제외하고는 개인시간도 전혀 없었다. 일제강제동원·평화연구회 대표 정혜경 박사는 “부모들한테 ‘밥도 먹여주고, 기술도 가르쳐주고, 학교도 보내준다’고 해 마지못해 (자식을) 보내도록 했다. 그런데 공장에 갔다가 이게 아니다 싶어 ‘집에 가고 싶다’고 해도 못 가게 했기 때문에 강제동원인 것”이라고 말했다.

광주시 북구 임동 전방, 일신방직 공장 전경. 광주시 제공
광주시 북구 임동 전방, 일신방직 공장 전경. 광주시 제공

고된 노동을 견디다 못한 소녀들은 종종 담장 밖으로 탈출을 시도했다. 하지만 붙잡힐 경우엔 가혹한 ‘형벌’이 기다리고 있었다.

“(도망)가다가 잽히믄 딱 알몸으로 딱 배께(벗겨) 갖고, 알몸으로 해갖고 여자, 남자 다 공장에 있는 사람들 모아놓고 그 가운데로 돌린당께. 한번 두번 아니여. 도망갈께미. 느그도 도망가먼 이런 꼴 본다, 그랑께 느그는 절대 일만 해라. 그것이여.”

한씨는 부모가 어렵사리 공장으로 찾아왔지만 집으로 돌아갈 수 없었다.

“나중에 딸 소식 듣고 얼굴 본다고 그 시골서 아버지하고 엄니하고. ‘홍대새비’(새우) 요만썩 헌 놈 사서 갖고. 공장 문지기한테 줘서 거기서 빼갈라고…. 문지기 좋은 일만 했제. 빼가기는커녕 포도시(겨우) 면회만 허고. 뒤돌아보며 잘 있다가 오라고. 엄니도 울고 아부지도 울고.”

전남 보성군 조성면에 사는 최점덕 할머니. 이국언 근로정신대 할머니와 함께하는 시민모임 상임대표 제공
전남 보성군 조성면에 사는 최점덕 할머니. 이국언 근로정신대 할머니와 함께하는 시민모임 상임대표 제공

긴 시간 노동에도 불구하고 임금은 턱없이 낮았다. 한씨는 “한달 일하고 받은 돈으로 배고픈께 김밥 두줄 사 먹어. 두줄 사 먹으면 딱 맞어”라고 말했다.

한씨는 1945년 8월 해방이 돼서야 공장에서 풀려났다. 그러나 종방 생활은 평생의 부끄러움이었다.

“종방에 잡혀가 맞고 일했다는 얘기 요만치도 누구보고 안 해봤소. 부끄러와 부끄러와. 그런 데 간 것이 부끄러와. 암도 몰라. 내가 말 안 해. 지금까정 누가 물어본 사람도 없고.”

전남 보성군 조성에 사는 최점덕(1934년생)씨도 11살 때인 1945년 봄 종방으로 끌려갔다.

“안 나오면 아버지를 데려간다고. 아버지가 노무자로 잡혀가버리면 우리 식구는 굶어죽게 생겨. 긍께 아버지 대신 내가 간다고. (가보니) 우리는 나이가 어려서 기계 다룰지 모른다고 운동장 같은 데서 누에고치를, 그걸 몽그르게 말리게 널으랍디다.”

 ※ 이미지를 누르면 크게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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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섭고 서럽던 기억을 최씨는 구전 노래로 기억하고 있었다.

“동지섣달 진진 밤에 밤잠 못 자고, 이삼 사흘 긴긴 해에 바람 못 쐬고, 오뉴월 더운 날에 바람 못 쬐고, 인정 없고 사정 없는 쓸쓸한 종방. 문방 놈아 잡지 마라 갈 길 바쁘다. 기차 소리 한번 나면 그만이로시.”

일제 말기 조선엔 방적공장이 137곳 있었다. 국무총리 소속 ‘일제강점하 강제동원 피해 진상규명위원회’(2005~2006년)에 신고된 사례 중엔 공장에서 탈출하다가 붙잡혀 성폭행을 당했거나 정신이상을 일으켜 자살한 사건의 진상을 밝혀달라는 유족들의 신청도 꽤 있었다.

광주시 북구 임동 전방, 일신방직 공장 안 옛 여성 노동자 기숙사 전경. 정대하 기자
광주시 북구 임동 전방, 일신방직 공장 안 옛 여성 노동자 기숙사 전경. 정대하 기자

일제강제동원·평화연구회의 자료를 보면, 일제는 1938년 5월 국가총동원법 제정 뒤 1945년까지 연인원 650만명(1명 2~3회 중복자 포함)이 국내 공장과 탄광 등지로 강제동원했다. 하지만 ‘대일항쟁기 강제동원 피해조사 및 국외강제동원 희생자 등 지원에 관한 특별법’에서 국외 강제동원 피해자와 달리 국내 공장에 강제동원된 이들은 지원 대상에서 제외됐다. 정혜경 대표는 “정부가 1970년대 강제동원 피해자 8500명에게 지원금 30만원씩을 지급할 땐 국내 동원 피해자들이 포함됐던 점을 고려하면 현행 강제동원조사법의 지원금 지급 기준을 바꿔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나마 광주광역시는 2012년 전국에서 처음으로 ‘일제강점기 여자근로정신대 피해자 지원조례’를 제정하고 지난해 ‘대일항쟁기 강제동원 피해여성노동자 지원 조례’로 개정했다. 조례에 따라 국내 강제동원 여성 피해자들을 포함해 8명에게 월 30만원씩 생활보조금을 지급하고 있다. 2013년부터 전남·서울·경기·인천·전북·경남에서도 비슷한 내용의 조례가 제정돼 일부 지원이 이뤄지고 있다.

정대하 김용희 기자 daeha@hani.co.kr

원문보기:
http://www.hani.co.kr/arti/area/honam/984863.html?_fr=mt1#csidx3a5985191ac57b7954cb9879b5a31f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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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문 유료부수 현실화’란 이름의 ‘언론개혁’ 시작됐다

내부고발→정부 조사로 드러난 신문업계 유료부수 ‘사기’ 정황
여당·시민사회 비판 속 신문업계 침묵…광고단가 조정 불가피 
“언론이 먹고사는 방식의 저열함에 주목해야” 사회적 관심 ↑
 

 

 거래되고 있다. 업체가 설명하는 신문지 용도는 ‘단열, 뽁뽁이, 포장, 애견동물, 유리창 청소, 과일·야채 보관’이다. 새 신문지 10~13kg이 5280원에 팔린다. 한국언론진흥재단 ‘2020 언론수용자 조사’ 보고서에 의하면 종이신문 구독률은 6.3%였다. 역대 최저치다.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 10년간 종이신문 이용률은 80%가량 줄었다. 그런데 ABC협회는 같은 기간 일간지 유료부수가 12% 감소했다고 밝혔다. 이 ‘격차’를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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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신문구독률. 2020년은 6.3%다. 

지난해 11월 “일간신문 공사 부정행위를 조사해야 한다”며 ‘부수 조작’을 폭로한 ABC협회 내부 진정서가 문체부에 접수되며 앞선 격차가 가리키는 ‘진실’이 수면 위로 올라오기 시작했다. ABC협회는 신문사 본사로부터 부수 결과를 보고받고, 20여 곳의 표본지국을 직접 조사해 본사가 주장하는 부수와의 성실율(격차)을 따져 부수를 인증하는 국내 유일 공사기구다. 그런데 진정서에는 “지난 5년간 ABC협회 일간신문 공사결과는 신뢰성을 잃었고 공사과정은 불투명해 구성원으로서 도저히 납득할 수 없는 상태”라고 적혀있었다. 

진정서에는 “표본지국 표집은 투명하게 관리돼야 하나 최근 2~3년간 신문사의 교체지국과 교체지국 수, 교체 사유에 대해 공사원이 전혀 인지하지 못해 의도적 부수 왜곡이 가능한 상황”이라고 적혀있었다. “부수 차이에 대한 보정자료 제출은 공사결과에 영향을 주는 것으로 투명하게 관리되어야 하지만 최근에는 보정자료 제출을 협회가 신문사에 요청하는 비상식적인 일이 벌어지고, 한 신문사의 경우 8건의 보정 신청이 받아들여지는 과정에서 조원이 알지 못하게 공사결과가 바뀌는 경우도 있었다”는 내용도 담겨 있었다.

ABC협회 내부관계자는 지난해 미디어오늘과 통화에서 “회장은 우리에게 신문사를 주인으로 모시는 조직이라는 기본 마인드를 강조했다. 우리는 하인 같은 사람이라고 했다”고 털어놨다. 그는 “ABC협회 운영경비 상당수를 신문사들 회비로 담당하는 게 사실이다. 공사원들도 공사를 나가 신문사와 문제를 일으키면 혼나니까 의욕이 꺾여있는 게 사실”이라고 전하며 “신문사들이 회사 경영 차원에서 발행 부수를 줄이고 있지만 유료부수는 줄이고 싶지 않다 보니 지금 같은 비현실적 성실율이 나오고 있다”고 설명했다.

“급기야 협회는 현실 세계에서 발생할 수 없는 공사결과를 버젓이 발표하게 되었다.” 내부 진정서의 결론이었다. ABC협회 2020년(2019년도분) 공사결과에서 조선일보는 95.94% 유가율을 기록했다. 100부를 발행하면 96부가 돈을 내고 보고 있다는 ‘현실 불가능한’ 지표였다. 조선일보만의 문제도 아니었다. 같은 해 한겨레 유가율도 93.73%였다. ABC협회 관리·감독 권한이 있는 문화체육관광부가 조사에 나설 수밖에 없었던 이유다. 그리고 지난달 문체부가 전국의 일부 신문지국을 상대로 현장조사에 나선 결과는 놀라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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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ABC협회. 

미디어오늘이 입수한 문체부의 신문지국 현장조사 결과 모두 9곳의 조선일보 표본지국에서 보고 부수는 15만7730부, 실사 부수는 7만8541부로 평균 성실율 49.8%를 나타냈다.  ABC협회는 조선일보 유료부수가 116만2953부라고 발표했지만, 실제 조선일보 유료부수는 절반 수준인 58만1476부로 추정해볼 수 있다. 지난해 ABC협회 공사에서 표본지국이었던 조선일보 ㄱ지국의 성실율은 98.07%, ㄴ지국의 성실율은 98.12%로 매우 높았지만 문체부 조사에서 드러난 ㄱ지국과 ㄴ지국 성실율은 각각 56%와 48%로 큰 차이를 보였다.

이 같은 지표는 단순히 신문사가 부수를 속여 독자를 ‘기만’한 데에서 끝나지 않는다. ABC협회 내부관계자는 “유료부수가 세금으로 운영되는 정부 광고단가를 정하고 있는데 이걸 왜곡시킨다는 것은 국가적 측면에서도 문제가 있다”며 사안의 심각성을 강조했다. 당장 국회에서는 신문사를 상대로 부당하게 수령 한 정부 광고와 정부 보조금 환수, 보조금법에 따라 5배 이내의 제재부가금을 부과하고 공정거래법 위반혐의 조사 및 사기죄 고발에 나서야 한다는 주장이 나왔다. ABC협회를 상대로 수사 의뢰를 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왔다. 

문체부는 ABC협회 부수 공사결과가 허위 혹은 조작이었다고 결론 나는 경우 ‘설립허가 취소’를 비롯해 ‘정책적 활용 중단’ 등 여러 방안을 검토 중인 것으로 확인됐다. 공정위와의 ‘공조’도 검토 중이다. 공정위 신문 고시에 의하면 ‘실제로는 독자에게 배포되지 않고 폐기되는 신문 부수도 독자에게 배포되는 신문 부수에 포함·확대해 광고주를 오인시킴으로써 자기에게 광고 게재를 외뢰하도록 유인하는 행위’의 경우 불공정거래에 해당해 2년 이하 징역 또는 1억5000만 원 이하의 벌금, 매출액의 2% 이내 과징금이 가능하다. 

 

“ABC협회는 오늘이라도 해산해야 한다”

신문지국장들의 증언은 문체부의 현장조사 결과를 어느 정도 예견하고 있었다. 지난해 취재에 응한 신문지국장 A씨는 “파지가 2분의1이 나오고, 2분의1이 넘는 곳도 있다. 발송 부수의 40%만 작업하고 나머지는 파지다. 요즘 신문지국 먹고사는 방법이 파지 파는 것이다. 파지 가장 많은 곳이 동아일보, 매일경제, 조선일보, 중앙일보, 한국경제 순”라고 말했으며 “아무리 신문사 회비를 받아 운영해도 이렇게 발표하면 안 된다. ABC협회는 오늘이라도 해산해야 한다. 그 사람들 때문에 신문시장이 왜곡되고 있다”고 주장했다.

▲조선일보의 한 신문지국. 기사 내용과 관계없음.
▲조선일보의 한 신문지국. 기사 내용과 관계없음.

신문지국 운영 수십 년 경력의 A씨는 “조중동 세 곳을 합쳐 절대 150만 부를 넘기지 못한다”고 말하며 “수도권 아파트 1000세대에 한 자릿수 신문이 들어간다. 그런데 아직도 116만부를 인증한다? 직업인으로서 그러면 안 된다”고 꼬집었다. 또 다른 신문지국장 B씨 역시 지난해 취재에서 “ABC협회에서 뜬 부수(성실율)를 절대 잡아낼 수 없다”고 강조하며 “지국장들의 파지 수입이 적지 않다. 구독료만 받아서는 운영이 안 된다. 지국에서도 사실대로 (유료부수를) 보고하지 않는다. 본사는 알고서도 부수를 뻥튀기해야 하니까 묵인한다”고 귀띔했다. 

광고업계도 마찬가지다. ABC협회 이사로 인증위원회에 참여 중인 곽혁 광고주협회 상무는 지난해 11월 중앙일보와 인터뷰에서 “지금의 인증 시스템은 형식적인 절차에 불과하다. 독자명부, 수금내역 등 유료부수 산정 기준이나 근거를 검증할 방법이 전혀 없다”고 말했으며 “표본지국 선정에 대한 정보도 없어 특정 매체에 우호적으로 진행될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고 우려했다. 또 다른 광고업계 관계자 역시 미디어오늘에 “ABC협회 부수 결과는 광고업계에서 의미를 상실한 지 오래”라고 말했다. 그렇다면 신문사들은 달랐을까. 

2014년 조선일보가 중앙일보의 제휴 독자 서비스를 두고 “신문업계 전체의 질서를 교란하고 있다”고 공개 비판했다. 조선일보는 사보를 통해 “제휴 독자 서비스는 신문을 다른 서비스에 끼워주는 ‘덤’ 정도로만 여기게 만들어 신문 자체를 ‘공짜’라는 인식을 갖게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자 중앙일보는 “조선일보는 판매지국 체제여서 부수를 할당해 관행대로 부수를 책정할 수 있지만 우리는 판매시스템이 직영체제여서 잘못된 관행을 할 수 없는 환경이다”라고 주장하며 “ABC 표본조사가 객관성이 있는지 의문이다”라고 맞받아쳤다.

더 이상의 ‘확전’은 없었지만, 중앙일보의 주장 가운데 “잘못된 관행”이라는 대목에 주목해야 한다. 이미 신문업계는 ‘잘못된 관행’을 알고 있었으나, 미필적 고의로 이를 지속해왔을 수 있다. 2009년 등장한 총리 훈령에 따라 신문사들은 정부 광고를 받기 위해 ABC협회 인증을 받아야만 했다. 그리고 같은 해 ABC협회는 유료부수 기준을 정가(일부 80% 할인)와 준유가 2개월에서 50% 할인과 준유가 6개월로 개정, 유료부수 범위를 확대했다. 이후 신문업계 공통의 목표는 ‘유료부수 방어’였을 것이다. 실제로 부수는 아주 조금씩 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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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앙, 동아일보. 

한국언론진흥재단 ‘2019 전국 신문지국 실태조사’ 연구를 진행한 심영섭 경희사이버대학교 미디어영상홍보학과 겸임교수는 “2020년부터 최근까지 20여 곳의 신문지국을 직접 인터뷰한 결과 조중동의 잔지(발송은 됐지만 풀지 않고 그대로 버리는 부수) 비율은 가장 보수적으로 봐도 36%(약 100만부 규모)였다”고 말했다. 심영섭 겸임교수는 “만약 구독료를 100% 받는 곳만 유료부수로 판단하면 유가율이 30%로 떨어지는 일간지도 있다. 경제지는 10%대인 곳도 있다”고 말했다. 

심 교수는 “공사원들은 지국이 사전에 준비해놓은 전산 자료와 증빙서류를 확인하고 그냥 인증해줄 뿐이다. 지금 성실율은 엄밀히 말해 유통부수 성실율이다. 그런데 준유가부수 개념이 있다 보니 (유가율을 높이기 위해) 편법을 쓴다”고 지적한 뒤 “지역에서는 주지(종합일간지) 경제지 스포츠지 지역지 4개를 끼워준다. 구독료 내는 사람이 거의 없는 상황에서 유가율을 맞추는 것은 불가능하다”며 “이제 유통부수 인증 방식으로 바꾸고, 신문사는 유가비율을 깨끗하게 밝혀야 한다”고 주문했다. 

심영섭 교수는 “ABC협회 정상화를 위해선 신문사 판매국장 중심의 이사회를 바꿔야 한다. 현재 구조는 고양이에게 생선을 맡긴 꼴이다. 부수 인증위원회가 제대로 작동하지 못하는 지금 ABC협회는 엄밀히 말해 제3자 인증이 없는 상태”라고 강조했다. ABC협회가 신문사로부터 재정 독립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있다. 민주언론시민연합은 지난 24일 “의미 없는 ABC협회 부수 공사 인증제는 폐지되어야 하며, 대안적인 인증기관을 통해 신문·디지털 통합지수 등 새로운 언론 영향력 평가 지표를 개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노웅래 더불어민주당 최고위원이 지난 24일 발언하는 모습.
▲노웅래 더불어민주당 최고위원이 지난 24일 당 최고위원회의에서 발언하는 모습.

 

“최고의 신문 자부한 조선일보의 부수 부풀리기 조작극”

노웅래 더불어민주당 최고위원은 지난 24일 당 최고위원회의에서 “최고의 신문이라 자부하는 조선일보의 부수 부풀리기 조작극이 드러났다. 뻥튀기 부수로 최근 5년간 20억이 넘는 정부 지원금을 부정 수령하고, 정부 광고에서도 1000만 원 대 높은 단가를 받아 부당이득을 챙겼다. 즉각 시정조치 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자신의 이익을 위해 부수 조작도 서슴지 않는 일그러진 언론 행태가 개탄스러울 따름”이라며 “막강한 권력을 누리면서 견제받지 않는 언론 권력의 잘못에 대해 엄정히 바로 잡아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한국언론진흥재단의 광고단가 자료에 따르면 중앙지의 경우 2020년 발표 유료부수 60만 부 이상 언론사가 A군, 20만 부 이하~5만 부 이상은 B군에 포함되는데, 국내에선 조선·중앙·동아일보만 A군에 해당한다. 조선일보는 76억1600여만원, 동아일보는 95억1500여만원,  중앙일보는 83억2000여만원의 정부광고 수입을 올렸다. 문체부 현장조사 결과를 인용한다면 조중동 모두 A군이 아닐 가능성이 높다. 정부 여당이 향후 이 사안에 지속적인 관심을 보인다면, 조중동의 정부광고 단가 변화는 불가피해 보인다.  

이번 사건은 조중동으로 대표되는 ‘신문 권력’ 해체의 분기점이 될 수도 있다. 유력 신문사들은 유료부수를 기준으로 자신들의 매체 영향력을 강조해왔고, 유료부수는 일종의 ‘상징자본’으로 기능하며 각종 협찬 및 광고영업에서 힘을 발휘해왔다. 앞서 정준희 한양대 정보사회미디어학과 겸임교수는 “언론개혁은 우리 뜻에 맞는 언론을 잘 살게 해주는 게 아니라 그릇된 방식으로 먹고사는 언론이 먹고 살지 못하게 하는 것”이라고 강조하며 언론개혁을 위해선 “(문제적 언론이) 먹고사는 방식의 저열함에 주목해야 한다”고 지적한 바 있다. 

민생경제연구소 등 몇몇 시민단체는 이미 일부 신문사 등을 상대로 형사고발 준비를 마친 것으로 전해졌다. 방송사들을 중심으로 지난해 내부고발을 주도한 뒤 최근 해고된 박용학 전 ABC협회 사무국장 섭외요청이 이어지고 있다. 신문사-신문지국 간 ‘부수 밀어내기’ 등 갑을관계 문제도 재조명 될 조짐이다. 그리고 대다수 신문사는 현재까지 약속이나 한 듯 ‘침묵’을 지키고 있다. 이번 사안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높아질수록, ‘징벌적 손해배상제’보다 실효적인 ‘언론개혁’이 눈앞에 다가올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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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서인씨도 와서 느껴보세요" 110년 역사 구포초의 특별한 3.1절

"모든 것이 처음이었다"는 이 학교... 1회 졸업생 윤현진 선생을 기억하는 방식

21.02.27 19:00l최종 업데이트 21.02.27 20:19l
 일제강점기 시기 교목을 바꾸고 친일 시인의 시구를 없앴던 부산 북구 구포초등학교가 이번엔 독립운동가를 기리는 작업에 한창이다. 구포초 학생들이 직접 제작한 윤현진 선생의 캐리커쳐. 스티커로 만들어 무료로 배부했다.
▲  일제강점기 시기 교목을 바꾸고 친일 시인의 시구를 없앴던 부산 북구 구포초등학교가 이번엔 독립운동가를 기리는 작업에 한창이다. 구포초 학생들이 직접 제작한 윤현진 선생의 캐리커쳐. 스티커로 만들어 무료로 배부했다.
ⓒ 윤현진선생흉상건립위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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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제강점기 시기 교목을 바꾸고 친일 시인의 시구를 없앴던 부산 북구 구포초등학교가 이번엔 독립운동가를 기리는 작업에 한창이다. 구포초 학부모와 학생, 교직원들은 내달 27일 윤현진 선생 순국 100주기를 맞아 학교 안에 모금과 기부로 제작한 흉상을 세운다.
▲  일제강점기 시기 교목을 바꾸고 친일 시인의 시구를 없앴던 부산 북구 구포초등학교가 이번엔 독립운동가를 기리는 작업에 한창이다. 구포초 학부모와 학생, 교직원들은 내달 27일 윤현진 선생 순국 100주기를 맞아 학교 안에 모금과 기부로 제작한 흉상을 세운다.
ⓒ 김보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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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때 교목도 바꾸고, 친일 시인 동판도 치우고, 독립운동가를 기리는 일... 모든 것이 처음이었죠"

독립운동가의 흉상 건립 모금 운동을 마무리한 이후 마지막 행사를 준비 중인 부산 북구의 다행복학교(혁신학교)인 구포초등학교 김민선 학부모회 회장이 25일 활짝 웃었다. 110여 년의 역사를 가진 구포초는 최근 2년 사이 학교 구성원 모두가 어느 때 보다 바쁘고, 보람된 날을 보냈다.

"구포초가 가장 먼저 시작했어요. 그런데 가장 늦었어요" 지난 2019년 구포초는 외래종이자 일제강점기에 들여온 기존 교목인 '히말라야시다(개잎갈나무)'를 소나무로 교체한 데 이어 친일 행적을 보인 시인의 시구가 적힌 동판도 없앴다. 일본에 붙어 '부왜' 활동을 한 시조 시인의 작사 교가 또한 변경 작업이 진행 중이다.


"개교가 1907년이니 일본제국주의에 의한 국권피탈 이전, 민족학교(당시 구포 사립 구명학교)가 세워졌어요. 저도 이사를 왔는데 오랜 학교의 역사를 보고 놀랐어요. 바로 옆 구포장터도 일제에 항거한 만세운동이 펼쳐졌던 곳입니다. 그런데 독립운동을 한 학교에 일제강점기 시기 교목이라니."

구포장터 만세운동은 1919년 3월 29일 구포의 장날 자주독립을 외친 만세 시위를 말한다. 일제의 엄혹한 탄압에도 3·1운동이 전국으로 퍼져나간 역사적 증거였다. 당시 구포지역의 상인·농민·노동자, 지역유지까지 등 천여 명 이상이 시위에 나섰고, 일제 경찰은 무차별 발포와 강제해산으로 맞섰다.
      
이러한 항일의 역사를 아는 구포초 학생들과 학부모, 교직원들은 아직도 학교에 남아있는 일제 잔재에 주목했다. 교사와 학부모들이 먼저 팀을 꾸려 그동안 몰랐던 일제의 흔적을 찾아내고 청산 의견을 모아갔다. 비슷한 시기 친일 교가와 교목, 교표 등을 바꾸기 시작한 다른 학교보다 빨랐지만, 결정은 가장 느렸다.
 
 일제강점기 시기 교목을 바꾸고 친일 시인의 시구를 없앴던 부산 북구 구포초등학교가 이번엔 독립운동가를 기리는 작업에 한창이다. 구포초 학부모와 학생, 교직원들은 내달 27일 윤현진 선생 순국 100주기를 맞아 학교 안에 모금과 기부로 제작한 흉상을 세운다.
▲  일제강점기 시기 교목을 바꾸고 친일 시인의 시구를 없앴던 부산 북구 구포초등학교가 이번엔 독립운동가를 기리는 작업에 한창이다. 책읽는 동상 아래 기단부에 있던 친일 논란의 시인 이은상의 시가 보이지 않는다.
ⓒ 김보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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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 안의 일제 잔재 청산은 부산에선 사실 구포초가 가장 먼저 시작했어요. 대신 교목은 가장 늦게 바뀌었죠. 계속 조사해보니 일본의 흔적이 너무 많은 거예요. 집집마다 가정통신문을 보내고, 투표하고 그렇게 모두가 민주적으로 결정했어요. 선생님, 학부모, 아이들과 함께한 생생한 역사 교육이었습니다."

이런 과정을 거치며 교목, 친일시 등은 물론 '차렷'과 '경례', '훈화', '파이팅' 등 학교생활 속 일제 문화의 흔적도 더는 찾아볼 수 없게 됐다. 하지만, 없애는 것이 있다면 되살리는 것도 있었다. 구포초는 올해부터 '잊힌 독립운동가' 윤현진 선생(1892~1921)을 기리기 위한 노력에 한창이다.

구포초 1회 졸업생인 윤현진 선생은 독립에 모든 것을 바친 애국지사다. 집안의 모든 재산과 자신의 능력을 오로지 조국의 자주독립에 쏟아부었다. 중국과 일본에서 유학한 이후 대동청년단, 백산상회 등을 거치며 비밀결사, 경제적 자립, 교육운동에 앞장섰고, 재무차장 등 상해임시정부 활동에 깊숙이 관여했다. 김구 선생과도 의용단을 조직해 활동하기도 했다.

그러나 그는 과로와 중병에 1921년 9월 끝내 해방을 보지 못한 채 타국에서 숨졌다. 그때 나이가 만 29세, 일본의 한 신문이 "그의 죽음은 곧 임정의 패망"이라고 논평할 정도였다.

김민선 회장은 "구포지역의 파평 윤씨 집안은 어마어마한 재산을 가졌지만, 모든 것을 독립에 바쳤다"며 "윤현진 선생님은 임시정부를 세우는 과정에서 사재를 털어 30만 원을 헌납했다(현재 가치로 보면 수백억 원)"고 설명했다.

구포초는 윤현진 선생의 집안에서 설립한 학교이기도 했다. 독립운동을 지원한 민족 자본가인 백산 안희제 선생도 한때 교장이었다. 윤현진 선생은 이제 없지만, 그가 배우며 독립의 의지를 다졌던 학교는 지금도 남았다.

"반일 인사의 가족은 일제의 온갖 박해를 받았고, 독립운동에 모든 자금을 사용한 터라 후손 분들도 초근목피로 연명하면서 지냈어요. 현재에도 후손 한 분이 거창에서 홀로 어렵게 살고 계십니다. 우리가 흉상을 세워야겠다 결심한 이유도 여기서 출발했어요. 후손들을 위해서라도 윤현진 선생님을 반드시 기억해야겠다는 생각에서였죠. 현재의 우린 그분에게 많은 빚을 진 것과 마찬가지예요."
 
큰사진보기 항일 독립운동가인 윤현진 선생의 모습. 1919년에 찍은 대한민국 임시정부 초대 국무원 기념 사진으로 뒤에서 왼쪽으로 두 번째가 윤현진 선생이다.
▲  항일 독립운동가인 윤현진 선생의 모습. 1919년에 찍은 대한민국 임시정부 초대 국무원 기념 사진으로 뒤에서 왼쪽으로 두 번째가 윤현진 선생이다.
ⓒ 윤현진선생흉상건립위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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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사진보기 일제강점기 시기 교목을 바꾸고 친일 시인의 시구를 없앴던 부산 북구 구포초등학교가 이번엔 독립운동가를 기리는 작업에 한창이다. 구포초 학부모와 학생, 교직원들은 내달 27일 윤현진 선생 순국 100주기를 맞아 학교 안에 모금과 기부로 제작한 흉상을 세운다.
▲  일제강점기 시기 교목을 바꾸고 친일 시인의 시구를 없앴던 부산 북구 구포초등학교가 이번엔 독립운동가를 기리는 작업에 한창이다. 구포초 학부모와 학생, 교직원들은 내달 27일 윤현진 선생 순국 100주기를 맞아 학교 안에 모금과 기부로 제작한 흉상을 세운다.
ⓒ 김보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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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의 윤서인, 램지어 안 돼... 역사를 잊지않고 기억해야

구포초 구성원들은 학교가 배출한 독립운동가를 제대로 예우하지 못했다는 점을 미안해하며 흉상 건립운동에 들어갔다. 부산 평화의소녀상을 만든 김서경 작가도 재능기부를 약속했다. 운송·설치, 재료비만 받기로 하면서 모금이 시작됐으나, 바로 코로나19가 들이닥쳤다. 김민선 회장은 "바자회도 열고, 마을잔치도 하고, 기부도 받고 계획이 정말 많았다. 결국 다 취소됐다"며 당시 난감한 상황을 떠올렸다.

그때 나온 아이디어가 독립운동가 굿즈와 펀딩이었다. '독립운동가 윤현진'을 알리는 우산과 물통을 만들고, 배지·스티커 등을 제작하자는 제안에 의견이 모였다. 아이들은 그림으로 힘을 보탰고, 학부모들은 윤현진선생흉상건립추진위원회라는 비영리 단체를 만들어 활동에 나섰다. 학교 구성원은 물론 인근 주민들의 호응에 다른 학교에서도 관심이 이어졌다.

사회적거리두기 단계가 더 강화되자 다음카카오 '같이가치' 기부펀딩의 도움도 받았다. 독립운동가를 위한 노력의 공익적 가치를 인정한 것이다. 800여 명이 넘는 이들이 십시일반으로 소액 기부에 참여했다.

시안을 만들고 흉상을 제작하는 과정도 학생들에겐 보람이었다.

"아이들의 의견을 다 모아서 흉상 시안에 반영했어요. 작가님도 의도를 알고 흔쾌히 응하셨죠. 윤현진 선생님 캐리커쳐 그리기에는 100명이 넘는 학생들이 나섰어요. 그걸 스티커로도 만들었고, 흉상 기단부에도 새겼어요. 윤현진 선생님의 흉상은 되게 낮아요. 아이들이 마주 볼 수 있죠. 키 높이를 맞췄습니다. 비문도 아이들과 함께 적었고요."

그러면서 김민선 회장은 거듭 역사교육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그는 제2의 윤서인, 마크 램지어 교수 같은 사람이 더는 나와선 안 된다고 말한다.

"역사교육이 제대로 되지 않으면 역사왜곡이 판을 친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기억하지 않으면 잊힙니다. 우리도 윤현진 선생님을 잊을 뻔했어요. 더욱더 찾아내고 기억해야 해요."

102주년 삼일절을 앞두고 <오마이뉴스>와 스팟인터뷰에 응한 김민선 회장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가 더 없느냐고 물었다. 그러자 이런 답변이 돌아왔다.

"우리 아이들이 독립운동가 후손보다 친일파 후손이 더 잘 사는 것이 잘못된 것이라 여기고, 지역에 몰랐던 애국지사가 있었다는 것에 감사하며, 역사를 기억하는 건강한 사람으로 자랐으면 해요. 2021년은 윤현진 선생님 순국 100주기인데 오는 3월 27일 구포장터 만세운동 소리가 울려 퍼질 때 후손 분을 모시고 제막식을 엽니다. 혹시 윤서인 씨도 오셔서 느껴보시겠어요?" 
 
 일제강점기 시기 교목을 바꾸고 친일 시인의 시구를 없앴던 부산 북구 구포초등학교가 이번엔 독립운동가를 기리는 작업에 한창이다. 윤현진선생흉상건립위원회가 제작한 굿즈를 들고 있는 김민선(왼쪽) 부산 구포초 학부모회 회장.
▲  일제강점기 시기 교목을 바꾸고 친일 시인의 시구를 없앴던 부산 북구 구포초등학교가 이번엔 독립운동가를 기리는 작업에 한창이다. 윤현진선생흉상건립위원회가 제작한 굿즈를 들고 있는 김민선(가운데) 부산 구포초 학부모회 회장.
ⓒ 윤현진선생흉상건립위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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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1월 12일 웹툰 작가 윤서인씨가 자신의 페이스북에 올린 글. 그는 친일파 후손의 집과 독립운동가 후손의 집을 비교하는 사진이 논란이 되자 사과와 함께 이 글을 삭제했다.

▲  지난 1월 12일 웹툰 작가 윤서인씨가 자신의 페이스북에 올린 글. 그는 친일파 후손의 집과 독립운동가 후손의 집을 비교하는 사진이 논란이 되자 사과와 함께 이 글을 삭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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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직 환경운동가, 막걸리에 미래를 걸다

  • 분류
    알 림
  • 등록일
    2021/02/28 09:20
  • 수정일
    2021/02/28 09:20
  • 글쓴이
    이필립
  • 응답 RSS

[함께 사는 길] '우리술' 막걸리가 뜬다!

이쯤에서 예언 한 마디. 곧 '우리술'이 뜬다. '막걸리 Makgeolli'가 세계인들이 즐기는 술이 되고, '주막 Jumak'이라는 단어를 '펍'이나 '이자카야' 같은 일반 명사처럼 전 세계 사람들이 알게 될 것이다. 저절로 된다는 것은 아니다. 누군가는 그 일을 해야 하고 대중의 관심이 뒷받침되어야 한다. 그리고 이 일은 이미 일어나고 있다.

 

▲ '별주막'의 막걸리들. 우리나라에는 약 900개의 양조장과 2000여 개의 막걸리 상표가 있다. ⓒ서형원

부활하는 막걸리


 

내가 속해 있는 친목모임인 '전통주전문점협의회'에는 날로 회원이 늘어나고 있다. 여기서 전통주전문점이란 진흙 벽에 기와 얹고 양은 주전자에 값싼 막걸리를 내는 민속주점이 아니다. 압구정, 홍대, 강남 등에 가장 깔끔하고 편안하지만 세련된 전문점들이다. 보통의 술집들에 비해 가격도 제법 있고, 음식의 수준도 높다. 그런 전문점들이 급속하게 늘어나고 있다.


 

'별주막'은 경기도 과천의 동네 주점이라 소박하고 편안한 분위기지만, 종종 손님들이 묻는다.

"막걸리 집인데 젊은이들과 여성이 참 많네요."


 

처음 주막을 열 때는 이런 고객층을 예상하지 못했다. 서울의 막걸리전문점은 대체로 여성 고객이 4분의 3 이상이고 대부분 30대, 40대 고객들이다. 미래의 소비 경향을 주도하는 사람들이 막걸리와 우리술을 먼저 소비하고 있는 것이다.

 

막걸리와 우리술의 다양성도 크게 높아지고 있다. 과거에는 정부가 재료와 알코올 도수를 정해주고 공장에서 값싸게 대량생산하게 했다면, 이제는 가장 전통적인 술부터, 상상하기 어렵던 모양과 재료와 이름의 술까지 다양한 우리술이 쏟아지고 있다. 1천 원짜리 대량생산 인공감미료 막걸리부터, 한 병에 11만 원 하는 막걸리, 소주보다 높은 19도 막걸리, 샴페인처럼 산뜻한 탄산이 가득한 스파클링 막걸리 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그런데 대체 막걸리란 무엇인가?


 

막걸리, 넌 누구냐?


 

막걸리는 주로 쌀로 만드는 우리술의 일종이다. 쌀로 밥이나 죽, 백설기를 빚어 누룩과 물과 섞으면 술이 되기 시작하는데, 위에 뜬 맑은 술을 숙성해서 청주, 남은 탁한 부분에 물을 타 걸러서 탁주, 혹은 막걸리라고 부른다. 청주나 탁주를 가열해서 높은 알코올 도수의 술을 만드는 걸 '증류'라고 하는데 이렇게 얻어진 술이 조선 양반가의 사치품이었던 '소주'다. 조선시대 왕들은 "백성들 먹을 쌀이 부족한데 권세 있는 집안들은 귀한 쌀로 소주를 만들어 먹는다"고 자주 한탄했다니, 소주는 마구 마시고 취하는 '쐬주'와는 달리 최고의 사치품이었다는 걸 알 수 있다. 곡물이나 과일을 발효해 얻어지는 청주, 막걸리, 포도주, 맥주 따위의 술을 발효주, 또는 양조주라고 하고 도수는 20도 이내이며, 소주, 위스키, 중국 백주 등은 증류주로 분류되고 대게 20도 이상이다. 

 

우리 술 중에는 '과하주'라는 맛있는 술도 있는데, 여름을 지나는 술이라는 뜻이다. 귀한 청주를 4개절 내내 즐기고 싶은데 여름에는 변질되어 버리게 되기 쉽다. 그래서 발효 중에 소주를 섞어 도수를 높이고 여름에도 즐길 수 있게 만들었다. 여름에 차게 마시는 과하주보다 맛있는 술이 또 있을까? 지금 시중에는 18도에서 20도 정도의 과하주들이 판매되고 있다.


 

쌀농사에 기초를 둔 우리 술은 이렇게 청주, 막걸리(탁주), 소주, 과하주로 분류된다고 이해하면 된다.

 

그런데 막걸리의 '막'이라는 말은 무슨 뜻일까? 첫째, 막 걸렀다는 말은 곱고 섬세하게 거른 술이 아니라, 마구 거칠게 거른 술이라는 뜻이다. 그래서 막걸리는 서민의 술이기도 하다. 곡기를 다 걸러내지 않아 양식이 되고 기운이 나는 술이기도 하다. 배고픈 사람들, 병든 이들에게 도수가 낮고 영양이 많은 막걸리를 먹였다는 기록이 많다. 약간의 알코올은 약해진 몸을 순환시키는 데도 도움이 됐을 것이다. 

 

둘째, 막 걸렀다는 말의 더 큰 의미는 지금 막 거른 신선한 술, 살아 있는 술이라는 것이다. 세계적으로 살균하지 않은 생주 문화는 거의 남아 있지 않다. 상업적으로 유통되는 와인, 맥주, 사케 등은 모두 살균주 들이다. 주문 즉시 따라주는 신선해 보이는 생맥주도 탄산을 주입한 살균 맥주일 뿐이다. 이에 반해 막걸리의 탄산(거품)은 발효 중 발생된 자연 탄산이다.

 

 

우리 막걸리와 청주는 근대화되기 전에 일제에 의해 억압되고 군사정권에 의해 통제된 탓에 도리어 효모가 살아 있는 생주로 남았다. 재밌는 것은 영국의 경우 '리얼 에일' 운동을 통해 다시 생주 문화가 부활했다는 것이다. 생막걸리는 그런 의미에서 오래된 미래이며, 근대의 공산품을 넘어서는 새로운 문화가 될 잠재력을 가지고 있다.

 

막걸리의 지역성에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막걸리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낯선 지역에 놀러 가면 그 동네의 막걸리를 찾는다. 우리나라에는 약 900개의 양조장과 2000여 개의 막걸리 상표가 있다. 막걸리는 지역 농업에 기초한 지역 문화의 중요한 요소다.
 

 

하지만, 그 막걸리들 대부분이 지역 막걸리에 대한 소비자들의 기대를 배신하고 값싼 수입쌀로 만들어진다. 낡은 양조장에 값싼 수입쌀과 인공감미료를 넣어 만든 1000원짜리 술이 사실은 막걸리의 실장이었던 것이고 그 동네의 역사, 문화와는 연관이 없어진 것이다.


 

이런 황당한 일도 있었다. 우리 쌀을 품종별로 맛보고 홍보하는 행사를 어느 지역 농협이 후원하면서, 그 지역의 쌀도 가져와 함께 시식했다. 그 농협은 식사하면서 함께 맛보라고 자랑스럽게 그 동네 막걸리를 들고 오셨는데, 그 막걸리도 수입 쌀 막걸리였던 것이다. 농민들이 '우리 동네 막걸리가 최고여!'라고 말할 때 그 막걸리가 본인들이 그렇게 데모하면서 반대하던 수입 쌀로 만든 막걸리라는 건 도무지 알고 있지 못하거나 아무래도 상관없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막걸리병에 붙은 라벨에 분명히 원산지가 적혀있는데도 말이다.


 

한해 농사를 마치고 가장 좋은 쌀로 술을 빚어 조상과 어르신을 모시고, 식구들, 농부들, 이웃들과 나눈다. 술에는 그런 의미가 있다. 수입 쌀 막걸리는 값싸게 취하는 수단은 될 수 있어도 술의 문화적 의미를 담지는 못한다. 한 예로 서울시가 서울장수막걸리에 '서울미래유산'이라는 명예를 수여했는데, 이것은 마치 파리 시당국이 칠레산 포도로 만든 와인을 파리미래유산이라고 부른 것과 마찬가지다. 물론 파리 시가 그런 짓을 할 리는 없다. 서울에는 서울 강서구의 맛있는 추청 품종 쌀로 만드는 진짜 서울막걸리가 있다. 엄연히 서울의 지역특산주로 등록된 서울의 진짜 미래 유산이다. 제품명은 공개하지 않지만, 그 술도가가 성수동에 있다는 건 밝혀둔다.


 

▲ 수백 년을 이어온 부산 금정산성막걸리의 누룩을 딛는 할머니. 10대부터 70세가 넘은 지금까지 이 일을 하는 자부심이 크다. ⓒ서형원
▲ 금정산정막걸리의 누룩방. 우리 누룩은 밀을 거칠게 빻아 덩어리지게 딛는다. 두께와 모양이 지역마다 조금씩 다르다. ⓒ서형원

막걸리 마실 때 필요한 몇 가지 지식들


 

이쯤에서 막걸리를 마실 때 따져볼 점들을 생각해 보자. 어떤 것이 꼭 좋다고 말하기 이전에 막걸리를 이해하기 위해 필요한 지식들이다.
 

 

첫째, 주원료는 무엇인가? 우리나라 막걸리 생산 상위 10개 기업의 수입쌀 사용 비율은 80%가 넘는다. 반면 최근 계속 늘어나는 작은 술도가들은 우리 쌀을 쓰는 것은 물론 어느 지역 어느 품종의 쌀을 쓸 것인지 고민한다. 충북 옥천에는 100% 우리밀로 아주 맛있는 막걸리를 만드는 곳도 있다.


 

둘째, 발효제로 우리 누룩을 쓰는가 입국을 쓰는가? 우리 누룩은 밀을 거칠게 빻아서 만드는 병국, 떡누룩이다. 맛과 향이 풍부하고 복잡하나 같은 맛과 향을 유지하기 힘들다. 일제강점기 이후 입국이라 부르는 발효제가 들어와 널리 쓰이고 있는데, 쌀알에 특정 곰팡이를 배양하여 효율적으로 술을 빚을 수 있게 한 것이다. 맛과 향이 깔끔하고 안정적이지만 단순하다고 평가할 수도 있다. 일본 사케의 깔끔하고 단순한 맛은 산업화된 누룩인 입국이 빚어낸 것이다.

 

셋째, 무감미료 막걸리인가 인공감미료 막걸리인가? 공업화된 대부분의 막걸리는 좋지 않은 쌀을 쓰고 아스파탐이나 아세설팜칼륨 같은 인공감미료로 단맛을 낸다. 최근의 막걸리들은 감미료 없이 쌀만으로 단맛, 신맛, 과실향 등을 풍부하게 이끌어낸다. 담백한 막걸리에 유자, 오미자, 곤드레, 울금 등 지역 특산물을 넣어 개성을 뽐내기도 한다.

 

넷째, 그 지역과의 문화적 유대를 담고 있는가? 그 지역 농민들의 쌀과 지역특산물을 담고, 주민 삶의 희로애락에 함께 하는 술일까 하는 점이다. 막걸리 한 잔에서 그 지역의 정서를 느끼고 싶다면 이것도 따져볼 점이다. 그런 점에서 제주막걸리는 좀 별나다. 제주에는 쌀 농사의 전통이 없어 좁쌀로 발효주인 오메기술, 증류주인 고소리술을 빚는다. 제주에서 제주막걸리를 맛있게 마셨다는 여행객들이 많은데, 대부분의 땅콩 막걸리, 감귤막걸리가 육지에서 생산되어 제주에서 팔리고 있다. 제주에서 만든 쌀막걸리도 제주의 농산물로 만든 술은 아니다. 제주의 곡물로 만든 진짜 제주 막걸리를 맛볼 날이 곧 올까 궁금하다.


 

▲ 전남 해남의 해창주조장. 일제 강점기에 쌀을 수탈하기 위해 해남에 들어온 일본인들이 만든 주조장이 현재는 최고가의 우리 막걸리를 만드는 양조장이 되었다. ⓒ서형원

전직 환경운동가가 막걸리에 미래를 거는 이유


 

환경운동을 했던 사람으로서 생업으로 막걸리를 택한 데는 이유가 있었다. 늘 환경현장에 다니면서 자기 지역을 사랑하는 환경운동가들이 맛보게 해준 지역의 산물들을 즐겼고 지역의 고유성과 문화, 역사, 그 다양성을 사랑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막상 생업에 뛰어들어 전국의 막걸리를 살펴보니 막걸리는 수입쌀과 인공감미료로 만들어 값싸게 취하는 술이 되어 있었다. 그러나 '막걸리는 값싼 술'이라는 편견에 도전하는 뜻있는 술도가들이 점점 늘어났고, 젊고 미래적인 소비자들이 막걸리와 우리술에 빠져들기 시작했다.


 

우리 문화의 매력이 커질수록 문화 상품으로서 막걸리의 가능성은 커질 것이다. 문화 상품으로서 막걸리의 매력은 매우 다양하다. 세계적으로 드물게 살아남은 생막걸리라는 전통은, 최근 내추럴 와인이나 리얼 에일처럼 작은 양조장의 살아 있는 수제품들이 새롭게 각광받는 흐름을 앞서서 체현하고 있다.
 

 

지역의 자연, 농업, 문화, 역사, 주민의 삶과 함께 하는 지역 문화의 상품으로서도 막걸리가 딱이다. 동네 이름만 단 가짜가 아니라 진짜 지역 막걸리가 확산되길 기대한다.


 

건강을 중시하고 저도수의 술이 선호되는 추세 때문에도 막걸리가 각광받고 있기도 하다. 최근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의 주류 시장 트렌드 보고서에 의하면 부드럽고 순한 저도수의 술에 대한 소비자 선호가 점점 커지고 있으며 특히 막걸리는 '건강에 덜 해로울 것 같아서'가 선호 이유로 나타나고 있다.


 

막걸리 문화, 막걸리 산업은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게 될까? 막걸리 시장이 커지면서, 중고가 막걸리 시장에도 대기업이 뛰어들게 될 것이며, 좋은 술을 빚는 작은 양조장들이 위기에 처할 수도 있다. 그러나 대기업 제품에 비해 특정 지역의 문화를 담거나 장인의 솜씨는 담는 작은 술도가들의 가치는 더욱 빛을 발할 수도 있다. 

 

지역 특산주 등의 전통주는 다른 술들과 달리 온라인 통신판매가 허용되어 있다. 작지만 좋은 술을 빚는 술도가들이 온라인 판매망을 통해 촘촘히 연결되고 협력한다면, 대기업들 못지않게 살아남고 더 발전할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해본다.

 

우리 술 우리 문화가 살아나다


 

우리 문화의 매력이 세계를 홀리고 있는 가운데, 코로나19가 진정된 이후에는 우리 문화의 힘이 더욱 커질 것으로 예상된다. 코로나 팬데믹 사태는 감히 의문을 제기할 수 없었던 서구 전통과 문화의 지배력이 무너지는 계기가 됐다. 고상하고 체계적이고 선진적인 것처럼 보였던 서구의 문명이 사실이 매우 취약했고, 우리의 모범이 될 수 없는 것이었다.

 

프랑스 와인은 5만 원도 비싸지 않고 우리 막걸리는 5000원도 너무 비싸다고 여기던 생각이 변화하고 있다. 쌀이라는 값비싼 재료를 듬뿍 넣어 만든, 더구나 살아 있는 생주가 값싼 술일 이유가 없다. 좋은 쌀, 좋은 누룩으로 풍부한 맛을 낸 다양한 우리술이 이제 세계로 나아갈 것이다.


 

술 문화의 가장 큰 힘은 다양성에서 나온다고 믿는다. 주점마다 음식은 다양해도 술은 '쏘주' 아니면 맥주였던 시절이 과거가 되고 있다. 조선 말기 우리나라에는 20만 개가 넘는 주막이 술을 빚고 있었고, 집집마다 고유의 술을 빚는 가양주 문화가 살아 있었다.

 

 

입안에 푸른 파도가 치는 듯하여 '녹파주', 차마 삼키기 아까워서 '석탄주', 돼지날 돼지시간에 빚는다는 '삼해주', 봄이면 진달래, 솔잎, 송홧가루, 여름에는 연잎과 연꽃, 가을에는 국화를 넣어 빚었다는 수만 수십만 가지의 우리술이 다시 살아나고 있다. 

 

일제 강점에서 분단, 독재, 민주화 투쟁으로 이어진 지난 100년은 이 땅의 사람들에게만이 아니라, 이 땅의 자연과 우리 먹을거리, 우리 술에게도 파괴와 고통의 시간이었다. 고통을 참고 이기고 빚어낸 이 땅의 민주주의와 우리 문화는 더 큰 미래를 누릴 자격이 있다.



출처: https://www.pressian.com/pages/articles/2021022517383123222#0DKU 프레시안(http://www.press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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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절에 제2의 독립선언 ‘한반도 영세중립’ 선포

[인터뷰] 민청학련 사형수 이현배 ‘중추사’ 상임대표

  • 기자명 김치관 기자 
  •  
  •  입력 2021.02.26 19:21
  •  
  •  수정 2021.02.26 23:32
  •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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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현배 상임대표가 이끄는 ‘한반도 중립화를 추진하는 사람들’은 오는 3월 1일 탑골공원에서 제2의 독립선언인 ‘한반도 영세중립 선언’을 발표할 예정이다. [사진 - 조천현]
이현배 상임대표가 이끄는 ‘한반도 중립화를 추진하는 사람들’은 오는 3월 1일 탑골공원에서 제2의 독립선언인 ‘한반도 영세중립 선언’을 발표할 예정이다. [사진 - 조천현]

“우리는 자주적인 한겨레로서 한반도의 영세중립을 선포한다.”

3.1운동 102주년을 기해 ‘제 2의 독립선언’인 ‘한반도 영세중립 선언’이 천 명의 연서명으로 발표될 예정이다. 주관단체는 지난해 6월 창립한 ‘한반도 중립화를 추진하는 사람들’(약칭 중추사)이고, 1일 정오 3.1운동 발상지인 옛 태화관 터, 3.1독립선언광장에서 진행된다. 

지난 22일 중추사를 이끌고 있는 이현배(77) 상임대표를 종로3가에 자리잡은 중추사 사무실에서 만났다. 60년대 한일굴욕외교 반대 시위부터 74년 민청학련 사건으로 1심에서 사형을 선고받은 이래 사회운동을 멈추지 않은 그가 ‘한반도 중립화 통일’의 선두에 선 것.

“우리 민족이 13세기 초 몽고 지배를 받기 시작한 이후로는 한 번도 완전한 자주국가를 이루지 못했다”고 진단한 그는 “우리는 선조들이 이뤄놓은 독립이 불완전하기 때문에 우리는 완전한 독립을 위해 3.1절을 기해서 제 2 독립인 한반도 중립화를 선언하겠다는 것”이라고 밝혔다.

사실 중립화 통일에 관한 논의의 역사는 길고 그 논의의 폭도 넓다는 것은 잘 알려져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추사는 지난해 6월에 새로이 창립했다. 김영임 전 튀니지 대사와 김병길 6.3동지회 부회장, 윤경로 전 한성대 총장, 장영달 전 의원이 공동대표를 맡고 강종일, 이만열, 임재경, 도재영, 이창복 등 쟁쟁한 원로들이 고문이다. 임상우 서강대 전 부총장이 사무총장으로 업무 중심에 있다.

이현배 상임대표는 “‘분단과 외세간섭을 어떻게 하면 해소시킬 수 있느냐’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 차제에 나한테 제일 쇼킹한 것은 사드(THAAD, 고고도미사일방어체제)였다”며 “분단과 외세개입을 배제시키기 위해서는 실현이 어려운 직접적인 통일 보다는 우회적이지만 중립화를 통한 외세 배제와 통일이 우리가 추구해야 될 길이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평화조약 체결과 남북의 중립화 선언’, ‘1민족 2국가와 남북협의체’, ‘코리아 국가연합’ 등 중립화 통일을 위한 개념과 경로에 대한 내부 논의들을 축적하고 있고, 청년, 지역, 부문 등은 물론 해외로까지 조직확대를 모색하고 있다.

특히 “동북아 정치적 역관계의 ‘호각상태’가 도래하고 있다”는 진단과 “남이나 북이나 국력이나 국민들의 의식은 이제는 외세를 배격하고 자주적 국가를 세울 수 있는 만큼 충분히 성장했다”는 진단에 근거해 외세에 휘둘리지 않는 중립화 통일의 가능성을 제시하고 있어 주목된다.

나아가 “만약 종전이 된다 하더라도 미군이 그대로 여기에 주둔하고 있고, 또 북은 북대로 자기 유지를 위해서 핵무기를 그대로 가지고 있다면 근본적으로 아무 것도 해결된 것이 없다”며 “우리는 평화조약과 함께 중립화를 선언하고 이것을 보장받아야 한다”는 논지를 폈다.

평생 사회운동의 길을 걸어온 그는 “6.3운동에서부터 쭉 해봤는데, 명분이 분명하고 진정성이 있을 때는 생각지 않은 사람들이 모인다”며 “우리 명분과 우리 열의가 조만간에 백만, 또 그 이상의 회원 내지 지지자를 모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는 낙관적 전망도 내비쳤다.

그러면서 “북한과의 관계는 전무하다”며 “우리 의사가 북한에 전달되고 진지하게 그들이 검토하기를 바랄 뿐이지만 공식적인 채널은 한국 정부를 통해서, 그리고 비공식적인 채널은 한국 언론을 통해서 접촉하기를 바란다”고 말하기도 했다.

다음은 ‘한반도 중립화를 추진하는 사람들’ 이현배 상임대표와의 22일 인터뷰 내용이다. 인터뷰에는 임상우 중추사 사무총장이 배석했다.


“몽고 지배 이후, 한 번도 완전한 자주국가 이루지 못했다”

이현배 중추사 상임대표와의 인터뷰는 22일 오후 서울 종로3가 소재 중추사 사무실에서 진행됐고 서강대 부총장을 역임한 임상우 중추사 사무총장이 거들었다. [사진 - 조천현]
이현배 중추사 상임대표와의 인터뷰는 22일 오후 서울 종로3가 소재 중추사 사무실에서 진행됐고 서강대 부총장을 역임한 임상우 중추사 사무총장이 거들었다. [사진 - 조천현]

□ 통일뉴스 : ‘한반도 중립화를 추진하는 사람들’, 약칭 ‘중추사’에 대해 간략한 소개를 부탁한다.

■ 이현배 상임대표 : 중추사는 2019년 9월 26일에 이현배, 이종수, 이윤배, 임진택, 박종렬, 유영표, 안양노 등이 ‘한반도 중립화를 추진하는 사람들 창립준비위원회’를 만들었다.

3개월 후에 임상우 교수, 강종일 선생, 노태구 교수, 김경임 전 튀니지 대사 등이 합류했다. 그 다음에 박석무, 강철규, 장영달, 윤경로, 고상만, 조성우, 이종구, 김종철 한겨레 기자 이런 사람들이 모여서 이 운동의 필요성과 가능성 등을 검토하는 확대회의를 했다. 그 필요성을 인정하고 2020년 6월 25일 발기인 200명이 창립총회를 했다.

그 당시에 임원들을 선출했는데, 고문이나 공동대표나 운영위원을 합쳐서 지금 열심히 일하는 분들이 20명쯤 되고, 적극적으로 협조하는 분들이 꽤 있다. 그리고 이번 3.1절 행사에 서명해준 분들이 있다. 한반도 중립화 선언식인데 천 명 가까이 서명했다.

□ 중추사가 오는 3월 1일, 3.1절을 맞아 ‘한반도 영세 중립화 선언’을 발표할 예정인데, 취지나 배경을 설명해 달라.

■ 우리 민족이 13세기 초 몽고 지배를 받기 시작한 이후로는 한 번도 완전한 자주국가를 이루지 못했다. 그래서 이런 비극적 역사를 단절시키고 자주 국가를 수립하는 것이 중추사의 목적이다.

현실적으로는 첫째, 미·중 간의 갈등을 빠져나올 수 있는 길은 중립화 밖에 없다.

중국과의 관계는 경제관계 뿐 아니라 역사, 문화 등 여러 가지로 제일 밀접한 나라다. 또 앞으로 어쨌든 세계 평화를 위해서는 중국과 우리가 같이 협력을 해 나가야 하는 입장인데, 미국의 경우는 자기들 국익에 의해서 소위 ‘쿼드(QUAD, 4개국 안보협의체)’에 한국이 적극적으로 협조하기를 유무언으로 상당히 강요 중이고, 이것은 역으로 중국 쪽에서는 받아들이기 어려운 일이다.

그래서 우리로서는 이 문제를 벗어나는, 그리고 우리의 자주성을 확립하는 가장 좋은 길은 중립화이다.

또 하나는 북한의 핵문제가 있다. 사실 북한의 경우 핵무기는 최종적인 생존수단인데 이것을 쉽게 버리겠나. 그러니까 김정은 위원장이 이야기한 대로 체제를 보장하고 그 다음에 더 구체적인 이야기는 안하지만 ‘국제적 경제시장에 진입하는데 있어서 최대한 협조해 달라. 이것이 되면 핵무기를 포기하겠다’는 것이다.

미국은 완전하고 검증가능한, 그리고 불가역적인 완전한 핵 폐기를 이야기하고 있다. 볼튼 전 안보보좌관의 경우 ‘리비아 모델’을 얘기했는데, 리비아 모델 같은 경우 카다피를 달래 가지고 핵프로그램까지 전부 미국 정부로 넘기게 하고 그 다음에는 죽였지 않나. 그런 모델을 공공연히 이야기하면서 북한에게 핵 폐기하라고 하면 하겠나.

북한의 체제를 보장하고 핵무기를 폐기할 수 있는 것은 중립화 뿐이다.
 

“3.1절 기해 제 2 독립인 한반도 중립화 선언하겠다는 것”

지난해 6월 25일 천도교 수운회관 중앙대교당에서 열린 중추사 창립총회 기념사진. [사진출처 - 중추사 카페]
지난해 6월 25일 천도교 수운회관 중앙대교당에서 열린 중추사 창립총회 기념사진. [사진출처 - 중추사 카페]

□ ‘한반도 영세 중립화 선언’을 3월 1일로 택한 특별한 이유가 있나?

■ 특별한 건 없다. 3월 1일이 우리 독립운동의 가장 중심적인 독립운동이었다. 그래서 우리는 선조들이 이뤄놓은 독립이 불완전하기 때문에 우리는 완전한 독립을 위해 3.1절을 기해서 제 2 독립인 한반도 중립화를 선언하겠다는 것이다.

□ 3월 1일 행사 준비는 잘 되고 있나?

■ 방역 때문에 사람들이 못 모이지, 또 장기 일기예보를 보니까 3월 1일 비온다. 여러 가지가 참 어려운데, 탑골공원 북문 앞에서(추후 옛 태화관 터, 3.1독립선언광장으로 변경-편집자 주) 선언식 행사를 할 생각이다. 정문은 지금 집회를 못하게 돼 있다. 우천에도 불구하고 진행할 예정이고 모든 준비는 거의 다 완료됐다.

□ 선언 참여 인원은 얼마 정도로 예상하나?

■ 서명은 천 명 정도 된다. 지금 850명이 넘었고 25일이 마감일인데 천 명 될 거로 본다. 그런데 참석 인원 예측은 다르더라. 5,60명 오지 않겠나 보기도 하고 나는 100명 이상 온다고 보고 있다.

“남북 대표들과 민간 대표들로 구성된 남북협의체, 또는 민간협의체”

□ 중추사는 ‘코리아 국가연합’과 ‘중립화’를 강조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그 방법론으로 ‘선중립 후통일’을 제창하고 있다. 내용적으로 들어가 보면 국가연합 단계에서의 중립화를 당장의 목표로 내건 건가?

■ 서로 해석하고 비중두기에 달렸는데 우리 중추사가 이야기하는 중립화는 남북한 동시 중립이고, 동시에 또 두 개의 중립국가가 완전 독립국가다. 그래서 뒤집어 이야기하면 1민족 2개 국가다.

1민족 2국가지만 동질성을 담보하기 위해서라든지 그 구체적인 표현인 통일 여건을 조성하기 위해서 우리는 남북 간 대표들과 민간 대표들로 구성된 남북협의체, 또는 민간협의체를 구성하자는 것이다.

그 협의체에서 중립화의 유지라든지 이런 것을 강제력은 없지만 최대한 권고하도록 하고, ‘선중립 후통일’을 이야기하는데 그 가장 큰 이유가 통일을 하기에는 너무나 벅찬, 이질적 요소가 너무 많다. 그래서 이 이질적 요소들이 시간과 노력에 의해서 해소하고, 따라서 동질성을 회복하는 작업을 남북협의체, 민간협의체에서 하도록 하자는 것이다.

이 협의체가 상당한 정도의 강제력도 행사할 수 있는 준정부 형태로 가면 참으로 바람직한데 이것은 결국은 남북 간의 합의에 의해서 만들어져야 되고 운영돼야 한다.

그래서 현재 국가연합에 의한 중립국이라든지 또는 낮은 단계의 연방제에 의한 중립화 통일이 아니다. 중립화를 먼저하고 그것의 효과적인 진행과 앞으로의 통일을 하기 위해서 국가연합 또는 국가연합 협의체를 두어서 하기로 한다. 이런 이야기다.

□ 남북협의체 내지 민간협의체에서 이질화를 최소화하고 동질화를 추진해서 그 다음에 남북연합이나 연방제 단계로 들어가나?

■ 그렇다. 통일 단계로 간다. 연방제 통일이냐 중앙집권적 통일이냐, 이거는 남북과 우리 남북연합협의체에서 결정할 내용이다. 더 구체적으로는 남북 간에 결정될 문제다.

□ ‘코리아 국가연합’을 제안했는데, 국가연합이라면 일반적으로 연합제를 생각하는데 ‘낮은 단계의 연방국가’라고 표현했더라.

■ 남북이 통일문제에 대해서 좀더 구체적으로 얘기가 된 것은 2000년 김대중 대통령과 김정일 국방위원장과의 회담에서 소위 북은 낮은 단계의 연방제를 이야기하고 남은 국가연합을 이야기했다.

북은 낮은 단계 연방제를 이야기할 때 ‘1민족 1국가 2체제’, 그래서 분단된 국가가 아니라 한 개의 국가이면서 체제만 다르게 한다. 마치 중국과 같이 2체제, 두 개의 자치체제를 주장했다. 그리고 남쪽에서의 국가연합은 1민족 2개 국가 이렇게 이야기했다.

서로 두 분이 이야기를 해 가면서 상당한 정도로 모든 면에서 의견이 접근됐다. 그런데 북이 이야기한 연방국가와 자치체와의 관계에서 국방권과 외교권의 문제를 명확하게 이야기하지 못했고, 남의 국가연합론에 대해서 북에서 제기한 ‘1민족 2국가가 될 땐 분단 영구화 아니냐’에 대해 명확한 답변을 못한 것으로 안다. 솔직히 김대중 대통령 쪽에서 이야기를 더 전진시키지 못했다.

그래서 현재는 낮은 단계의 연방제나 국가연합제나 그 내용은 거의 동일하다. 다만 현실적으로는 1민족 2국가 단계가 더 현실적이라고 생각한 거다.

□ 1민족 2국가론은 연합정부까지 포함해 3개의 정부를 상정하고 있지 않나?

■ ‘1민족 2개 국가 3개 정부’는 협의체를 준정부 형태로 상정한 것이고, 내 개인적으로는 그것은 좀더 진전돼 가면서 이야기해야지 좀 어렵지 않나 본다.

우리가 우리 마음대로 준정부 형태라고 해도 큰 권한을 달라고 해서 남과 북이 서로 합의해야 되는데 줄 것도 아니고, 그러니까 우리는 협의체로 해놓고 다음에 우리가 민간이 발언권이 강하면 ‘이만큼 이만큼 더 강화시켜주라’ 이야기를 할 거다. 그런 의미에서다.

“평화조약을 맺으면서 동시에 남북한은 중립을 선언해야 된다”

□ 창립선언문이나 주요 발제문을 보면 ‘한반도 평화조약’이 많이 제기되고 있다. 이 한반도 평화조약이 어떻게 가능한지, 그것이 ‘한반도 영세중립화 보장’과는 어떤 연관이 있는지 설명해 달라.

■ 한반도 평화조약이라는 것도 전후의 강화조약이다.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 중에서도 미국과 북한 간의 전쟁행위 종식, 종전에 초점을 많이 두는데 그것 자체도 우리에게 평화를 가져오는 데서 한 두 걸음 더 진전된 것이다.

그런데 만약 종전이 된다 하더라도 미군이 그대로 여기에 주둔하고 있고, 또 북은 북대로 자기 유지를 위해서 핵무기를 그대로 가지고 있다면 근본적으로 아무 것도 해결된 것이 없다.

북한과 미국 간의 문제가 아니라 교전 주요 당사국이었던 남·북·미·중이 모여서 평화조약을 체결하고 그 평화조약은 상호 주권존중과 불가침, 전쟁의 종식이다.

그런데 이 평화조약을 맺으면서 동시에 남북한은 중립을 선언해야 된다. 그리고 미·중을 비롯한 각국은, 특히 미·중은 이것을 인정해야 한다. 이것이 우리가 이야기하는 평화조약 및 중립화 선언이다.

단순한 평화조약 만으로는 지금 현재의 국제적인 역관계나 우리 지정학적 관계가 보장이 안 된다. 그래서 우리는 평화조약과 함께 중립화를 선언하고 이것을 보장받아야 한다.
 

강대국 해법, 동북아 ‘호각 상태’와 남북의 역량에 달려

민청학련 사형수 이현배 상임대표는 소탈한 웃음을 지었다. [사진 - 조천현]
민청학련 사형수 이현배 상임대표는 소탈한 웃음을 지었다. [사진 - 조천현]

□ 주한미군 철수를 언급하기는 했지만, 실제로 평화조약 과정이든 중립화 선언 과정에서 미국과 중국이 호락호락 넘어가겠나?

■ 그 문제에 대해서 두 가지 방면으로 생각한다.

하나는 지금 현재 동북아의 정치적 역관계가 지난 2차 대전 이후 지금까지의 미국 일방적인 것에서 미국의 세력이 후퇴되고 쇠락되는, 소위 동북아 정치적 역관계의 ‘호각상태’가 도래하고 있다고 본다. 호각상태에서는 상호이익을 수호하면서 남한테 더 달려들지를 못하기 때문에 어느 정도 소위 균형이 이뤄질 수 있지 않겠는가.

두 번째는 잘 되고 안 되고는 우리 국민들의 의식과 우리 국민들의 적극적 행동에 달렸다고 본다. 그래서 쉽게 얘기해서 남이나 북이나 국력이나 국민들의 의식은 이제는 외세를 배격하고 자주적 국가를 세울 수 있는 만큼 충분히 성장했다고 본다.

그럼 이걸 누가 더 각성시키고 누가 더 운동화시키느냐 하는 거다. 그래서 한 마디로 국제 역관계가 호각세로 가고 있고, 그 다음에 남북한을 합쳐서 국민적 역량이 최대로 고양돼 있기 때문에 이것을 활용하고, 그러면서 거기에 따라서 미국도 중국도 다소의 양보를 하지 않을 수 없으리라 본다.

■ 남상우 사무총장 : 미중 입장에서 지금 한반도가 어느 한쪽으로 기우느니 차라리 중립화되는 것이 더 낫다는 것을 인식시켜야겠다는 것이다.

■ 1945년 당시에도 미국 국무성에서는 한반도의 중립화 문제가 이야기됐다가 그냥 틀어지고, 1957년부터는 전쟁 후의 뒤처리에서 미국이 굉장히 오랫동안 열심히 중립화를 이야기했다. 미국은 통일시켜 놓고 통일될 가능성에 대비한 중립화를 쭉 이야기한다.

미국 국가안보회의(NSC)를 중심으로 한 군부 쪽에서는 강하게 반대한다. ‘통일도 불가능하고, 중립화도 불가능하다’ 그래서 또 주저앉고. 카터 대통령 경우는 취임부터 퇴임할 때까지 계속 미군 철수를 주장했다. 그 대안으로 중립국을 검토하라고 이야기를 하고 그랬었다.

쭉 반대해온 것이 군부 측이었고 지금도 미국은 소위 군산복합체의 이익이 최대로 반영되고 있다. 하여튼 미국 국무성도 한국의 중립화에 대해서 상당히 연조도 있고 이해도 깊다고 본다.
 

“우리 명분과 우리 열의가 백만 모을 수 있다”

지난해 중추사 창립총회에 앞서 한반도중립화통일협의회가 5월 28일 향린교회에서 개최한 중립화 통일 관련 토론회 기념사진. [자료사진 - 통일뉴스]
지난해 중추사 창립총회에 앞서 한반도중립화통일협의회가 5월 28일 향린교회에서 개최한 중립화 통일 관련 토론회 기념사진. [자료사진 - 통일뉴스]

□ 시민주도운동을 제창하면서 ‘범세계적 대중운동’에 돌입해서 100만 회원을 확보하겠다고 했는데, 실제 기반이 있나? 어떻게 추진할 계획인가?

■ 그건(실제 기반은) 없다. 200명이 발기를 했고 지금 현재는 천 명을 모으고 있다. 1단계 조직확대는 2배가, 3배가 운동이다. 천 명한테 세 명씩 더 소개를 받아 3천 명을 만들고, 3천명이 만 명이 되는 한편, 두 번째는 각 분야별로 청년 계통이라든지 지역 계통이라든지, 부문 계통이라든지, 해외라든지 각 지부를 설치하면서 확보해 나갈 생각이다.

그런데 언제든지 운동의 이슈가 분명하고 그 이슈를 추구하는 사람들의 열의가, 진정성이 느껴지면 모인다. 촛불집회도 그렇고, 내가 6.3운동에서부터 쭉 해봤는데, 명분이 분명하고 진정성이 있을 때는 생각지 않은 사람들이 모인다. 그래서 우리는 우리 명분과 우리 열의가 조만간에 백만, 또 그 이상의 회원 내지 지지자를 모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 해외지부는 어떻게 구상하고 있나?

■ 남상우 : KAPAC(KOREAN AMERICAN PUBLIC ACTION COMMITTEE​​, 미주민주참여포럼)이 있다. 우리나라 정치인들이 미국 국회의원 끈을 댈 때, 이 사람들 통해서 댄다. 거기에는 물론 미국인이지만 미국 하원에 진출한 사람도 있고, 정치적인 한인단체다.

KAPAC가 굉장히 호의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다. 서명도 들어오고 수평적 연대를 하기로 했다. 워싱턴에 본부가 있는데 워싱턴이 중요하다.

■ KAPAC 외에도 이번 행사를 지나면서 곧 지부를 만들 수 있는 곳이 중국 베이징과 미국 LA, 뉴욕, 그리고 베를린이 있다.

□ 예를 들어 중국이라면, 어떻게 진행하고 있나?

■ 중국은 중심이 되는 단체가 평화통일자문위원회 베이징 간사들 모임이 중심이 될 것이다. 같이 토론도 하고 이야기도 나누고 있다.

□ 북측과 교류가 있나? 핵보유국 북한에게 어떻게 중립화를 설득할 수 있나?

■ 북한과의 관계는 전무하다. 우리는 우리 의사가 북한에 전달되고 진지하게 그들이 검토하기를 바랄 뿐이지만 공식적인 채널은 한국 정부를 통해서, 그리고 비공식적인 채널은 한국 언론을 통해서 접촉하기를 바란다.

나는 북한이 연합제나 연방제에 관해서는 상당히 융통성이 있다고 보고 있고, ‘1민족 2개 국가’도 준비기간을 갖고 논의하는 것이 옳지 않은가 본다.

□ 동북아자유경제지역을 북측지역에 설치하는 안을 제시했다. 왜 북쪽에만 설치하는지, 설치되면 어떻게 운영되는지?

■ 솔직히 중추사가 그것을 원한다. 구체적으로 수용하고 안 하고는 북의 문제다. 우리 중추사에서 가장 이상적인 제안을 하는 것이고, 이 모든 것은 구체적으로 북이나 또 다른 데서 받아들여야 한다.

동북아자유경제지역은 1단계로는 중립화된 북조선의 경제가 원활하게 국제무대에 진입하도록 하자는 것이다. 거기에 우리가 협조하자는 것이다. 기왕에 준비되었던 라진-선봉, 신의주, 남포 등의 특구를 활성화하고, 국제자본의 투자와 운영이 안전하고 효율적으로 이루어지도록 노력하자는 것이다.

이것이 어느 정도 돼서 북 경제에 도움이 됐다든지 하면, 2단계로는 동북아의 동북3성, 시베리아, 몽고, 남한, 일본 등으로 동북아자유경제지역을 확대하고 이들 간의 네트워크를 형성해서 동북아 경제발전에 기여하자는 것이다.

그래서 1단계로 북을 우선 중심으로 하고 북이 소위 국제 경제시장에 안착하도록 최대로 노력하자는 거다.
 

“남은 인생 전부를 이 운동에 바쳐야 한다”

[사진 - 조천현]
이현배 중추사 상임대표는 남은 생을 한반도 중립화 운동에 바치겠다는 의지를 밝혔다. [사진 - 조천현]

□ 3.1절 선언 외에 중추사의 향후 활동 계획에 대해 설명해 달라.

■ 3.1선언 후에는 해외, 청년, 지역, 부문으로 활발하게 조직강화를 할 것이다. 특히 해외지역으로 활발하게 조직확대를 할 것이다.

조직확대와 함께 콘텐츠를 강화하려 한다. 강연, 학술대회, 행사, 어떤 때는 시위가 될 수도 있다.

그 다음에 젊은 사람들에게 효과가 있는지 모르지만 우리는 지금 카페를 이용하는데 별로 시원치 못해 홈페이지를 만들어보려 한다. 홈페이지와 유튜브를 통해서 우리의 주장을 전달하고 우리 주장에 동의하지 않은 사람들과의 활발한 의견교환과 토론도 할 생각이다.

우리 계획은 6개월에 한 번씩은 해외와 국내에 있는 우리 회원과 지지자들과 함께 전체적인 행사를 할 생각이다. 대개 시위일 것이다. 물론, 북에 있는 사람들도 협조한다면 더 좋을 것이다. 단, 3월 지나고 6개월이면 9월인데 올해는 제외다. 내년 가야 된다.

□ 44년생이면, 만 77세인데, 걸어온 길을 간단히 소개해 달라.

■ 전부 우리 운동하고 관계된 데서 일했다. 민청학련 배후 사주로 몰려서 고생하고 사형 언도까지 받았다. 당시 두꺼운 얼음판 정국이라서 유신반대운동은 학생 뿐이 할 수가 없지 않느냐. 그래서 나 대학원 때인데, “너네들이 해야 된다”고 이야기 해줘서 사주자가 됐다.

대학 들어간 게 63년인데, 서울대학교 문리과대학 신문인 <새세대 신문> 기자로 있었다. 거기서 원고청탁을 하고 여러 사람을 만나는 동안에 사회문제에 대해서 안목을 갖게 됐다. 64년에 한일굴욕외교 반대 데모가 있었다.

그 뒤로 대학원 때까지도 오로지 박정희 군사독재를 퇴진시키는 것이 우리 국가의 최대의 발전이라고 생각했다. 박정희 정권이 퇴진되고 또 전두환 정권도 퇴진되고 난 뒤에도 형식적 민주주의가 조금 열매를 맺었지만 사회적인 정의 문제나 경제적인 정의 문제는 제대로 된 것이 없다.

특히 도덕적인 문제, 윤리적인 문제는 더 후퇴되고, 근본적으로 우리한테 모든 것을 이렇게 어렵게 만들고 있는 것은 분단과 외세간섭이다. ‘분단과 외세간섭을 어떻게 하면 해소시킬 수 있느냐’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 차제에 나한테 제일 쇼킹한 것은 사드(THAAD, 고고도미사일방어체제)였다.

사드를 들여오고 중국에서 전면적은 아니지만 제한적인 경제제재 조치를 했을 때 ‘야 이거 우리는 어디로 간단 말인가’하는 생각에 정신이 퍼뜩 나더라.

이 모든 문제, 북의 핵문제, 미군의 철수 문제는 분단의 해소와 우회적이지만 가장 바른 길이 중립화다. 분단과 외세개입을 배제시키기 위해서는 실현이 어려운 직접적인 통일 보다는 우회적이지만 중립화를 통한 외세 배제와 통일이 우리가 추구해야 될 길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남은 인생 전부를 이 운동에 바쳐야 한다. 지금 이것을 중심적으로 하고 있는 사람은 한두 사람을 빼고는 전부 나이가 많다. 대개 70대 중반 대학교수 출신들이다. 나보다 한 10년 정도 아래 60대 쪽에 모든 것을 물려주려고 한다. <끝>

 

한반도 영세중립화 선언(전문)

English version ; https://forms.gle/3cMYa4sJomgr2jkp6
中文版 ;https://forms.gle/benFtBG2ZoMEVFB19

우리 민족의 미래는 우리가 결정한다. 이제 우리는 한반도의 중립화를 선언한다.

우리 ‘한반도 중립화를 추진하는 사람들’은 8000만 겨레의 염원과 의지를 담는 한반도의 영세중립화를 세계 만방에 엄숙히 선언한다. 단언컨대, ‘한반도의 중립화’만이 70년 세월 이 땅에 지속된 한민족내부의 갈등과 대립을 청산하고 강대국들의 이해관계에서 비롯된 전쟁의 위협과 공포에서 벗어나는 길이자, 동북아시아의 공동번영과 세계평화의 초석을 놓는 길임을 확신한다.

우리 민족은 수천년 동안 이 땅에서 독자적인 높은 수준의 문화를 이루어 자주적인 생활공동체로 살아왔다. 그러나 지난 세기 강탈적 제국주의와 억압적 패권주의 아래서 처절한 핍박과 고난을 겪어 왔고, 1945년 2차 대전 종전과 함께 일본 제국주의의 압제에서 벗어났으나, 이내 승전국들의 이해관계에 따라 분단과 전쟁을 겪었고 그 상처와 후유증은 지금까지도 겨레의 숨통을 옥죄고 있다.

그렇지만 세계가 인정하며 주목하고 있듯, 이제 우리 민족은 지난 세기의 부끄럽고 허약했던 약소민족이 더 이상 아니다. 오늘날 우리는 경제적으로나 군사적으로 자립과 자강의 길을 힘 있게 내딛고 있다. 특히 문화민족의 전통을 이어가며 세계 앞에 선도적인 문화역량을 증명하고 있는 창의적 민족임을 상기시키고자 한다. 이제 우리는 국제 사회의 떳떳한 일원으로 당당히 나서고 있는 자주적인 민족이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우리 민족의 미래는 우리가 결정 한다’는 신념을 세계 시민 앞에 선포하는 이유다.

우리 민족은 남북간의 국가연합을 이루어 통일의 길로 나아간다.

한반도의 중립을 항구화하기 위해서, 우선 남·북은 상호체제의 완전한 인정을 전제로 ‘코리아 국가연합’ (Confederation of Korean States)을 이루어야 한다. 이로써 우리는 분단과 전쟁의 상처를 함께 치유하고, 화해와 공존의 길을 모색하며, 이어 민족의 숙원인 통일 국가로 나아가야 한다. 그동안 남북은 이구동성으로 통일을 외쳐오면서 첨예한 남북 대치상황만 되풀이해 왔다. 이제 오롯이 한반도의 중립화만이 통일을 가로막는 상호불신과 군사적 대치라는 장애를 해소하고, 주변 강대국들의 이해관계에서 비롯된 억압의 고삐를 끊는 유일한 길이다. 통일을 이루려는 궁극적 이유가 한민족의 공존과 번영을 이루기 위한 것일진대, 통일로 가는 길에 공존과 번영을 현실적으로 먼저 확보하는 방안이 바로 중립화인 것이다.

이 중립화의 길은 비단 우리 민족의 생존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미국, 중국, 러시아, 일본 등을 포함한 인접 국가들의 공동 이익에도 부합한다. 중립화된 ‘코리아 국가연합’은, 한반도 정세의 불안정에서 비롯한 극한 대치 상황을 해결하고 국제 전략적 이익을 획기적으로 증대시키는 제3의 길을 모색할 것이다. 그 길로 나아가는 통로로서 ‘동북아 자유경제지역’을 운용하여, 여기에서 세계 여러 국가들이 상호 호혜적인 국가 이익을 추구할 수 있다는 깨달음을 우리는 공유하고자 한다.

특히 미국과 중국은, ‘코리아 국가연합’으로 상호대결이 지양된 한반도에서, 최근 그들 간의 분쟁과 갈등이 패권적, 이념적 경쟁을 넘나드는 치열한 전쟁 직전의 대결구도를 평화적으로 화쟁(和諍)해가는 데 하나의 돌파구를 모색해야 한다. 무엇보다도, 엄청난 군사비용을 들여가며 상대국을 압박하여 전략적 목표를 달성하려는 구시대적 행태는 인도적이지도 평화적이지도 경제적이지도 않으며 또한 가능하지도 않기 때문이다.

이와 같이, 우리는 사고의 전환을 통한 한반도와 동북아의 항구적인 평화 정착을 위해, 관련국들과 전 세계 국가들에게 다음 사항을 엄숙히 요구하는 바이다.

대한민국 정부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정부에 촉구한다.

한반도에 존재하는 두 개의 국가는 민족문제의 자주적인 해결을 위한 대화의 장에 허심탄회하게 임해야 한다. 자주성은 모든 생명의 지고지선의 가치다. 민족의 자주를 위해 양국의 정상은 즉각적으로 회동하여, 양국의 동시적 중립화의 의지를 선포하고 자주적인 중립화를 위한 구체적 방안 마련에 착수해야 한다. 아울러 2000년 남북의 정상이 ‘6.15 남북공동성명’에서 공표한 ‘낮은 단계의 연방국가’, 즉 ‘코리아 국가연합’ 구성에 착수해야 한다. 이어서 남북 지도자들은 미국과 중국의 지도자들을 초치하여 70년 전쟁상태를 종식시키고 동북아 평화 체제를 포괄적으로 구축하는 ‘한반도 평화조약’을 일괄 체결할 것을 촉구한다. 동시에 그들이 이러한 평화체제를 항구적으로 담보하기 위한 ‘한반도 영세중립화’를 보장함으로써 세계사에 이정표가 될 역사적 과업에 임하도록 해야 한다.

미합중국의 시민들과 정부에 촉구한다.

미국이 그동안 군사적 동맹과 경제적 동반자로서 한국과 이해를 같이해온 것은 긍정적인 면도 없지 않다. 그러나 미국은, 1945년 다른 강대국과 함께 우리 민족의 의지와는 관계없이 일방적으로 한반도를 분단시켜 그 이후 우리 민족이 입은 처참한 전쟁과 예속의 피해를 기억해야만 한다. 더욱이 앞으로 한반도에서 대치적 긴장을 한층 더 고조시키려 한다면 그 역사적 책임에서 자유롭지 못할 것임을 통렬히 지적한다. 혹여 기존의 호혜적이었던 ‘한미동맹체제’를 새로운 세계 전략의 교두보로 이용하려 한다면 평화를 희구하는 전 세계 시민들의 지탄을 면치 못할 것이고, 무엇보다 한반도 민중들의 거센 저항에 직면하게 될 것이다. 한국의 영토를 활용하여 동북아시아의 평화를 교란하는 전략을 도모한다거나 특히 전쟁을 불사하는 공세적 전략을 취한다면, 이는 지난 세기의 패권주의 관행을 답습하는 시대착오적 정책이라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대신에, 한반도의 중립화를 통해 이 지역에서 적대적 관계를 지양함으로써 미국은 외교적, 군사적, 경제적 이익을 최대화할 수 있는 발상의 전환을 모색할 것을 강력히 촉구한다.

중화인민공화국의 인민들과 정부에 촉구한다.

한국과 중국은 고래로 지정학적 위치와 인연으로 단절할 수 없는 외교관계에 놓여 있다. 그러나 중국은 한국 전쟁에 참전하여 분쟁을 미봉시킨 일말의 책임을 기억해야 한다. 또한 대륙 세력과 해양 세력의 불안정한 전략적 이해관계의 충돌이 한반도를 둘러싸고 있고 여기에 중국이 한 축을 이루고 있는 현실을 우리는 직시한다. 그러나 한반도의 중립화를 통해 불안정한 군사적, 경제적 패권충돌을 해소할 수 있다면 동북아에서 중국의 안보와 경제적 이익을 위해 매우 이로운 일이 될 것이다. 한국과 중국은 가장 가까운 문화적 이해와 새 세기의 경제적 공생관계를 이어가야 하는 대등하고 상호이익의 동반자가 되어야 한다. 따라서 한반도의 중립화로써 동북아지역의 완충지대화를 통해 중국의 외교적, 군사적 세력 균형을 이룰 수 있다는 대안적 정책을 모색할 것을 강력히 촉구한다.

평화를 사랑하는 세계시민들과 각국의 지도자들에게 호소한다.

한반도의 중립화를 통해 이루어질 ‘코리아 국가연합’은 우선 동북아지역의 불안정한 세력 균형을 바로 잡고, 동시에 국제 평화를 교란하는 전쟁의 위험을 일소하는 길이다. 특히 코로나 이후 시대는 인류의 삶의 양식에 근본적 변화를 요구하고 있다. 군사적 힘으로만 유지되던 국제질서도 선린과 평화의 질서를 지향하는 역사적 요구에 부응해야 할 시대가 다가오고 있다. 따라서 한반도의 중립화가 추구하는 화해와 공존의 모델은 세계 평화체제 구축의 선도적 사례로 기억될 것이다. 세계의 평화를 추구하는 모든 국가의 지도자들은, 비동맹 원칙, 외국군 진입금지 및 한반도의 비핵지대화 등을 포함하는 포괄적인 ‘한반도 평화조약’의 일괄적 체결을 전폭적으로 지지해주기를 바란다. 동시에 ‘한반도의 영세중립화’를 지지하여 동북아의 평화, 나아가 세계평화의 초석을 놓는 기념비적 역사에 적극 동참할 것을 정중히 요청한다.

이에 우리 중립화를 추진하는 사람들은 위와 같이 평화와 번영, 통일을 희구하는 한겨레의 통절한 염원을 담아 다음과 같은 한반도 중립화 결의를 전 세계시민 앞에 천명한다.


한반도 중립화를 향한 우리의 결의

하나, 우리는 자주적인 한겨레로서 한반도의 영세중립을 선포한다.

하나. 우리는 한국전쟁의 종전과 동북아의 항구적 평화 정착을 위해 주 참전국(한국, 조선, 미국, 중국) 간에 ‘한반도 평화조약’의 일괄적 체결을 촉구한다.

하나. 우리는 한반도의 중립화와 동시에 남북간의 ‘코리아 국가연합’을 출범시키고, ‘동북아 자유경제지역’을 건설하여, 전쟁 없는 평화의 세계를 실현한다.


2021년 3월 1일

한반도 중립화를 추진하는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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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사·기소 완전 분리 ‘급물살’에 검찰 반발 고조…아랑곳 않는 ‘처럼회’

-추미애·김용민 등 여권 인사, 언론·검찰의 왜곡·반발에도 ‘검찰개혁’ 거듭 강조
-검찰 반발 고조…윤석열, 의견 낼 수도
-‘처럼회’, 아랑곳 않고 검찰·사법개혁 ‘강경책’

검찰의 수사권을 완전히 박탈하기 위한 중대범죄수사청(중수청) 설치가 급물살을 타고 있다.

 

당연하게도 검찰 내부에서는 반발 기류가 감지되고 있다. 특히, 윤석열 검찰총장이 직접 반발할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는 상황이다.

 

그러나 여권 의원들이 검찰·사법개혁 이슈에서 강경론을 주도하고 있어 검찰의 반발이 의미가 있을지는 미지수다.

 

추미애 전 장관 SNS 캡처.
▲ 추미애 전 장관 SNS 캡처.

 

◆ 추미애·김용민 등 여권 인사, 언론·검찰의 왜곡·반발에도 ‘검찰개혁’ 거듭 강조

 

25일 추미애 전 법무부 장관은 수사와 기소의 완전 분리를 부정하는 일부 언론보도를 지적하며 검찰개혁을 재차 강조했다.

 

추 전 장관은 이날 SNS에 ‘일본 검찰도 직접 수사하는데 수사. 기소 분리는 틀렸다?’라는 제목의 글을 게재했다.

 

그는 “검사실을 가 본 사람은 안다. 우리나라 검찰은 무죄추정의 원칙을 제대로 지키지 않는 것이 가장 큰 문제”라며 “심증만 가지고 피의자가 시인할 때까지 신문한다”고 현 검찰의 문제점을 꼬집었다.

 

이어 “집요하게 같은 질문을 장시간 반복하면 대체로 죄 없는 사람마저도 자기확신이 무너지고 급기야 자포자기하는 심정이 되고 만다”며 “이는 헌법에 위배되고, 무죄추정의 원칙을 어기고 인권을 침해하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특히 “검찰에는 아직 수사기관은 그래도 된다는 인식, 즉 일재의 잔재가 남아있다”며 “검사가 수사를 하더라도 분산과 견제 없이는 인권침해적인 수사폐단이 고쳐지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추미애 전 장관. (사진=연합뉴스 제공)
▲ 추미애 전 장관. (사진=연합뉴스 제공)

 

추 전 장관은 또 일본 검찰과의 비교를 통해 한국 검찰의 현주소를 적시했다.

 

그는 “일제는 패전 후 미군정 때부터 수사는 경찰이 하고, 검사는 법률전문가로서 경찰의 수사권 남용을 통제하며 기소와 공소유지에 집중하도록 함으로써 검·경 간 권한을 분산하고, 미국식 분권시스템과 당사자주의 형사절차를 도입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일본은 검사가 직접 수사하는 사건이 연간 5~6000건인데, 우리나라는 연간 약 5만 건이 넘는다”며 “일본 인구 약 1억2000만 명, 우리나라 인구 약 5000만 명인 점을 감안할 때 우리나라 검찰의 직접수사가 지나치다”고 직설했다.

 

또 “일본 검찰의 직접수사는 예외적인 반면 우리나라는 원칙적으로 웬만한 사건은 검찰이 수사한다는 점이 다르다”며 “일부 언론이 ‘수사·기소 분리’가 부당한 주장인 것처럼 왜곡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비판했다.

 

그는 수사와 기소가 분리돼야 하는 이유를 되새기기도 했다.

 

추 전 장관은 “수사의 본질은 인권침해이므로 검사든 경찰이든 분산과 견제를 해야 하는 것이 당연한 이치”라며 “직접수사 건수를 대폭 줄였다고 개혁완수가 된 것이 아니다. 견제 없는 수사시스템과 수사관행을 고쳐야 진정한 개혁의 완성이다”라고 재차 강조했다.

 

이 외에도 일본 도쿄지검 특수부가 몰락한 이유와 한국 검찰의 흑역사 등을 거론하며 검찰개혁의 당위성을 증명했다.

 

그러면서 “그동안 기획수사로 인권을 유린해온 검찰이 ‘살아있는 권력 수사 틀어막기’라고 호도하며 수사적폐를 회피하고 무소불위의 검찰권을 건드리지 말라며 버티기에는 이미 너무 늦었다”며 “촛불주권자는 중도적 개혁에 만족하지 않고, 완전한 개혁을 원하기 때문”이라고 끝맺었다.

 

김용민 의원 SNS 캡처.
▲ 김용민 의원 SNS 캡처.

 

김용민 의원(더민주·남양주병)도 언론과 검찰의 움직임을 예상하며 흔들림 없는 검찰개혁 의지를 내비쳤다.

 

김 의원은 25일 SNS에서 “조만간 언론과 친검 인사들은 여당 내부에 분열이 있는 것처럼 몰고갈 것”이라며 “그러나 검찰개혁특위는 정해진 일정대로 진행되고 있고 수사·기소 분리 원칙에 이견이 없다”고 주장했다.

 

윤 총장이 직을 걸고 반발할 수도 있다는 내용에 대해선 “저희가 만드는 검찰개혁안이 제대로 가고 있나 보다. 윤석열이 직을 걸고 반대하겠다고 했나 보다”라며 “그냥 후배 검사들 앞에서 폼 잡는 것 아닐까. 윤석열에게 그런 배짱과 용기는 없을 것”이라고 적었다.

 

윤석열 검찰총장. (사진=연합뉴스 제공)
▲ 윤석열 검찰총장. (사진=연합뉴스 제공)

 

◆ 검찰 반발 고조…윤석열, 의견 낼 수도

 

여권 인사들의 이 같은 움직임에 검찰에서는 반발 기류가 흐르고 있다.

 

실제로 최근 검찰 내부적으로 검사장회의나 평검사회의 등으로 수사·기소 분리에 대응해야 한다는 의견이 오간 것으로 전해졌다.

 

또 일각에선 윤 총장이 수사·기소 완전 분리 추진에 대해 공개적으로 반발할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오고 있는 상황이다.

 

하지만 검찰은 섣불리 대응하지 못할 것으로 보인다. 검찰이 조직적으로 국회의 입법권에 저항하는 모습이 비춰지면 여론의 역풍을 맞을 수도 있다는 게 이유다.

 

이에 따라 검찰은 즉각적인 대응보다는 여론 추이를 봐가며 대응 시기와 정도를 조절할 것으로 전망된다.

 

수도권의 한 부장검사는 “수사·기소 분리하는 것이 대세라지만, 미국이나 일본 등 검사가 수사·기소를 같이하는 곳이 많다”고 반박하며 “(수사와 기소를 완전 분리하는) 중수청은 검찰총장 압박용 아니겠나”라고 예측했다.

 

더불어민주당김승원 의원을 비롯한 '처럼회'에 소속된 의원들이 지난 9일 서울 여의도 국회 소통관에서 중대범죄수사청법 발의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사진=김승원 의원실 제공)
▲ 더불어민주당김승원 의원을 비롯한 '처럼회'에 소속된 의원들이 지난 9일 서울 여의도 국회 소통관에서 중대범죄수사청법 발의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사진=김승원 의원실 제공)

 

◆ 검찰 반발 무의미할 듯…‘처럼회’의 검찰·사법개혁 ‘강경책’

 

다만, 검찰의 이 같은 반발은 의미가 있을지는 의문이다. 여권 초선 의원들이 결성한 모임 ‘처럼회’가 검찰·사법개혁 이슈에서 강경론을 주도하고 있기 때문이다.

 

처럼회는 최강욱 열린민주당 대표와 민주당 김승원·김남국·김용민·황운하·문정복·민병덕·민형배·이수진·장경태·한준호 의원 등이 모여 결성된 모임이다. 민생과 검찰개혁 등 다양한 정치적 연구를 병행하는 모임으로 알려졌다.

 

이들은 현재 거침없는 검찰개혁 드라이브로 존재감을 과시하고 있다.

 

김용민 의원은 지난해 12월 검찰청을 폐지하는 ‘공소청법 제정안’을 발의했다. 황운하 의원도 당내 검찰개혁특위의 논의와 별개로 중대범죄수사청법 제정안을 발의했다.

 

지난 16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경기신문과 인터뷰를 진행하고 있는 김승원 의원. (사진=조병석 기자)
▲ 지난 16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경기신문과 인터뷰를 진행하고 있는 김승원 의원. (사진=조병석 기자)

 

김승원 의원 또한 지난 16일 경기신문과 진행한 인터뷰에서 수사·기소 완전 분리에 강경한 입장을 드러냈다.

 

김 의원은 “세계적으로도 이례적인 우리나라 검찰의 막강한 권력을 견제할 수 있는 장치가 현재는 없다. 게다가 검찰은 어느 건이든 선택적으로 수사와 기소를 하며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권력을 사용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검찰처럼) 기소권을 가진 사람이 수사까지 하면 진실을 밝히기 보다는 공적을 위해 예단하기 마련이다. 그 예단으로 인해 수사·기소 과정에서 국민의 인권침해가 발생한다”며 “그래서 현재 더불어민주당 검찰개혁특위와 다수 의원들이 수사와 기소의 완전한 분리를 추진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이어 “중수청이 설치되면 공수처, 중수청, 국가수사본부, 특사경 등으로 국가 수사기관이 다원화된다”며 “수사기관 상호 간 견제와 균형이 이뤄지고 각 수사기관은 기관별로 담당하는 범죄 수사 영역에 대해 특화된 전문성을 확보할 수 있게 될 것이다”라고 덧붙였다.

 

[ 경기신문 = 김기현 기자 ]

 



[출처] 경기신문 (https://www.kg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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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부만 시키는 건 해악, 의사와 판검사 사람 만드는 게 교육"

[혁신교육감들 ②] '아이들에게 놀이 밥상' 차려온 민병희 강원교육감의 일

 

21.02.26 19:00l최종 업데이트 21.02.26 19:00l

 

혁신교육 10년 무엇을 남겼나? 이를 알아보기 위해 혁신교육감 인터뷰를 이어갑니다.[편집자말]
 민병희 강원도교육감.
▲  민병희 강원도교육감.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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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의 이익을 관철하려고 코로나19 백신까지 볼모로 삼으려는 일부 의사들. 이들에 대해 50여 년 가까이 교육자 길을 걸어온 민병희(67) 강원도교육감은 어떻게 생각할까? 교사와 해직교사, 전교조 강원지부장, 강원도교육위원을 거쳐 교육감 3선까지 된 범상치 않은 경력 소유자이기에 답변이 궁금했다.

"공부만 잘하는 학생을 최고로 우대해서 키우는 교육은 오히려 사회에 해악이 된다는 것을 지금 일부 의사들이 보여주고 있어요. 저는 사회에 해악을 주고도 반성할 줄 모르는 엘리트들이 바로 능력 만능주의가 키워낸 괴물이라고 생각합니다."

민 교육감의 진단은 '교육자답지 않게' 사나웠다. 민 교육감의 말이 이어졌다.

 

"교육은 '사람을 의사나 판검사로 만드는 것이 아니라, 의사나 판검사를 사람으로 만드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지금이야말로 혼자만 잘난 사람이 아니라 더불어 사는 지혜를 나눌 줄 아는 사람을 키우기 위해 한국 교육계가 머리를 싸매야 할 때입니다."

2007년 미국 하버드대학 최초로 여성 총장으로 취임한 드루 길핀 파우스트 교수는 취임식에서 이렇게 연설한 바 있다. "교육과 학교는 목수를 만드는 곳이 아니라, 목수를 사람으로 만드는 곳입니다." 이 말과 맥이 닿아있다.

"1명의 인재가 10만 명 먹여살린다? 전혀 동의하지 않는다"

고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은 2002년 "한 명의 천재가 10만 명을 먹여 살린다"고 말했다. 이때를 앞뒤로 한국에서는 기다렸다는 듯이 외국어고, 자립형사립고, 과학고, 영재고, 국제고 등이 줄줄이 생겼다. 명분은 '교육 다양화'였지만, 실제는 '부자들을 위한 엘리트교육'이었음을 부정하기 힘들다. 소수 엘리트 인재 양성론이 우리나라 교육계를 휘감은 것이다.

이런 교육론에 대해 민 교육감은 교육감에 처음 당선된 2010년쯤 기자를 만나 "1명의 인재가 10만 명을 먹여 살리지 않겠다고 하면 10만 명에게 어떤 일이 일어나겠느냐. 1명의 인재가 10만 명에게 사기를 칠 수도 있다"고 내다본 바 있다.
 
 민병희 강원도교육감.
▲  민병희 강원도교육감.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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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로부터 10년쯤이 흐른 지난해와 올해 소수의 엘리트 의사들에 의해 전체 국민과 정부가 휘둘렸다. 이에 대해 다시 10년 전과 똑같은 질문을 던져봤다. 답은 이랬다.

"1명의 인재가 10만 명을 먹여 살린다고요? 전혀 동의하지 않습니다. 모든 학생을 자기 삶의 주체가 되도록 교육해야지요. 우선 정부가 자율형사립고(자사고)와 외국어고 등 특권학교를 2025년 일괄 폐지하는 데 한 치의 흔들림도 있어서는 안 됩니다. 더불어 사는 교육을 받지 못한 학생들은 어른이 되어 주변 사람들을 고통에 빠뜨리고, 자기 자신도 행복할 수 없습니다."

여기서 민 교육감이 2010년 취임 뒤 지금까지 11년 동안 강조해온 '행복 교육론'이 나온다. 그는 교육계에서 아이들에게 '놀이밥상을 차려주는 교육감'으로 유명하다. '초등학교에 놀이밥 공감학교를 만들어, 아이들을 왜 놀게 했느냐'는 물음에 다음과 같은 질문이 되돌아왔다.

"윤 기자님은 밥을 왜 먹어요? 아이들의 밥은 놀이예요. 놀이가 밥도 되고 교육도 됩니다. 아이들이 놀지 못하면 몸과 마음에 병이 듭니다. 나는 놀지 못한 학생들이 어른이 되어 흉악한 범죄를 저지를 가능성이 크다고 봅니다."

놀이밥 공감학교 사업은 초등학교가 학생들에게 놀이터와 놀이시간을 주어 하루에 100분 정도 뛰어놀게 하는 것이다. 2018년 40개교로 시작했는데 2020년엔 74개교로 늘어났다.

이쯤 되면 민 교육감이 생각하는 '놀이밥'은 학생의 몸과 마음의 건강을 평생 책임지는 보약이란 생각이 들었다. 민 교육감은 2018년 강원교육청을 강원행복청으로 선포한 바 있다.
 
 민병희 강원도교육감.
▲  민병희 강원도교육감.
ⓒ 강원도교육청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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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 교육감은 1974년부터 2002년까지 28년간 강원지역 중고교 수학교사로 근무했다. 이 기간 동안 3차례에 걸쳐 전교조 강원지부장을 맡아 고교평준화와 무상교육 운동을 펼쳤다. 그 뒤에는 두 차례에 걸쳐 강원도교육위원을 지낸 뒤, 2010년부터 현재까지 3차례에 걸쳐 민선 교육감을 맡고 있다. 교육감 경력만 11년째다.

민 교육감은 47년 교육자 생활 동안 왜 아이들 행복과 돈 안 드는 교육을 강조하고, 특권 엘리트주의 교육을 반대해온 것일까? 이를 알아보기 위한 인터뷰는 2020년 12월 15일과 2021년 2월 24일, 대면과 서면 등의 방식으로 두 차례에 걸쳐 진행됐다. 

직원 인물 사진 직접 찍어주는 교육감

- 교육청 벽에 직원들 웃는 사진이 많이 걸려 있습니다. 대학교 동아리 건물 같기도 합니다. 
"우리 교육청 직원이 360명인데요. 건물에 붙어 있는 사진들은 제가 다 찍은 겁니다. 직원이 전입 오면 서로 인사하고 그 다음에 밖에 나가서 인물 사진을 찍습니다. 직원 인물 사진을 찍다 보면 사진기 렌즈 속에 얼굴이 아니라 마음이 찍히더라고요. 밝게 웃게 하려고 제가 별의별 행동을 다 합니다. 그렇게 해서 서로 마음을 나눕니다."

이 말을 하면서 민 교육감은 일어나서 몸을 바삐 움직였다. 어느 새 물을 끓이더니, 기자 앞에 컵을 내밀었다.

- 여기는 교육감이 차를 직접 타시는군요. 
"10년 넘었어요. 내부 직원이든 외부 손님이든 제가 직접 차를 탑니다."

- 특이하네요. 
"10년 전쯤 3.8 세계 여성의 날에 여러 부서의 여직원들을 교육감실에 모셔놓고 얘기를 나눴어요. 제안문을 받아온 걸 보니 '차 대접' 문제가 여기저기 새카맣게 적혀 있더라고요. 여직원들이 차를 타야 해서 다른 일을 못한다는 내용이 많았습니다. 그 날부터 저는 제가 차를 직접 타고 있습니다. 그랬더니 우리 교육청 부서장들도 차를 직접 타 먹고, 나아가 학교에 교장 선생님들도 직접 차를 타고 있습니다. 여직원들이 차를 타는 문화가 사라지고 기관장이나 부서장이 직접 차를 타 먹는 문화가 생기니까, 권위주의도 많이 사라졌습니다. 이것이 바로 '차의 미학'이더라고요. 허허."

- 요즘 의사협회가 '코로나19 백신 거부' 파업 움직임까지 보이고 있습니다. 의사들은 학생 때 학교에서 우등생으로 대우받던 분들입니다. 
"지금 고통을 받는 국민들이 백신을 얼마나 크게 기대하고 있습니까? 그런데 어떻게 그런 행동까지 하나요? 공부만 잘하는 학생을 최고로 우대해서 키우는 교육은 오히려 사회에 해악이 된다는 것을 지금 일부 의사들이 보여주고 있습니다. 저는 사회에 해악을 주고도 반성할 줄 모르는 엘리트들이 바로 능력 만능주의가 키워낸 괴물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들은 수많은 시험과 선발을 거치면서 학교와 가정, 사회에서 충분한 지원을 받았을 겁니다. 공평하지 못한 사회적 자본, 문화적 자본의 혜택을 받은 것이지요. 고루 돌아가야 할 혜택을 더 받았으면 공동체 안에서 그에 합당한 책임감을 가져야 합니다. 오히려 정반대로 자신들이 특권을 누리는 것을 당연하다 생각하고 있는 듯합니다."  

- 교육이 제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다는 이야기로 들립니다. 
"그렇죠. 그들이 가진 능력이 온전히 자신의 노력만으로 만들어졌을까요? 코로나를 겪으면서 세상 누구도 혼자 잘 살 수는 없다는 인식이 강해졌습니다. 교육에서도 공동체, 협력, 공존 같은 것이 더욱더 중요한 가치로 자리 잡을 것입니다. 이를 위해 우선 제도적으로는 특권교육을 가능하게 하는 구조를 복원 불가능하게 해체해야 합니다. 자사고, 특목고 같은 특권교육이 지속되면 결국 교육에 따른 계급화가 딱딱하게 굳어버립니다. 정부가 추진하는 이들 특권학교에 대한 2025년 일괄폐지 정책에 한 치의 흔들림도 있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 학교와 교육은 어떻게 바뀌어야 할까요?
"하버드대학 최초로 여성 총장으로 취임한 드루 길핀 파우스트는 '교육은 사람을 목수로 만드는 것이 아니라, 목수를 사람으로 만드는 것'이라 했습니다. 우리나라 형편에 맞게 말하면 '교육은 사람을 의사나 판검사로 만드는 것이 아니라, 의사나 판검사를 사람으로 만드는 것'이라 할 수 있겠지요. 지금이야말로 혼자만 잘난 사람이 아니라 더불어 사는 지혜를 나눌 줄 아는 사람을 키우기 위해 한국 교육계가 머리를 싸매야 할 때입니다."

- '한 명의 인재가 10만 명을 먹여 살린다'는 주장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전혀 동의하지 않습니다. 이 말은 모든 사람을 자기 삶의 주체가 아니라 강자에게 예속되게 하는 상황을 당연시하는 주장입니다. 한 사람에 의해 사회가 굴러갈 수는 없습니다. 학교 구성원 모두는 각기 가치와 역할이 있습니다. 그 가치와 역할을 살려주는 것이 바로 교육입니다. 아무리 가진 것이 많아도 자기 삶의 주인이 되지 못하면 행복할 수 없습니다."

"오늘 놀 것을 내일로 미루지 말라"
 
 민병희 강원도교육감.
▲  민병희 강원도교육감.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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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놀이밥 공감학교가 2018년부터 운영되고 있습니다. 2020년 국정감사에서도 칭찬을 받기도 했습니다. 
"지금 초등학생들이 놀 장소도 없고 시간도 없어요. 그래서 학교에서 놀지 못하면 다른 곳에서는 못 놀아요. 다 아는 말이지만 프뢰벨은 '놀이란 아이들이 자라나는 그 자체'라고 했습니다. 잘 노는 아이들이 잘 자랄 수 있습니다. 그래서 2018년에 놀이밥 공감학교를 시작했습니다. '학교는 공부만 하는 곳이 아니라 놀기도 하는 곳이다. 놀이가 곧 교육이다.' 이런 믿음을 갖고 출발한 것이지요. 코로나19 사태 속에서 놀이를 할 수 없는 고립된 아이들이 있어요. 신체와 정신에 얼마나 악영향을 주는지 몰라요."

- 왜 놀이를 교육이라고 생각하는지 궁금합니다.
"윤 기자님은 밥을 왜 먹어요? 아이들의 밥은 놀이예요. 놀이가 밥도 되고 교육도 됩니다. 놀이는 교감능력과 협력, 창의력은 키우고 스트레스는 줄입니다. 아이들이 놀지 못하면 몸과 마음에 병이 듭니다. 나는 놀지 못한 학생들이 어른이 되어 흉악 범죄를 저지를 가능성이 크다고 봅니다. 그러니 놀이는 정말 중요한 교육이죠."

- 학부모들은 아이들 많이 놀면 걱정을 합니다. 
"우리 사회는 노는 것에 대한 편견이 있어요. '놀고 있네', '잘들 논다', '노느니 염불한다', 이런 말만 봐도 그렇습니다. 노는 걸 부정적으로 보는 것이지요. 경쟁과 성과, 효율을 중시하는 문화가 그대로 반영된 것이라고 봅니다. 이게 학교에서는 성적과 맞물려 제대로 놀지 못하는 모습이 굳어져 버렸습니다. PISA(국제학업성취도평가) 결과를 보면 우리나라 아이들 성취도는 늘 최상위인데 학업 흥미도는 꼴찌입니다. 공부는 잘 하지만 즐거움을 느끼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얻은 성적이 무슨 가치가 있습니까? 잘 노는 아이가 잘 자랍니다. "

- 한국 청소년 자살률이 심각합니다. 묘안이 없을까요?
"정책으로 청소년을 살리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교육에서 무한 경쟁 체제를 없애는 것입니다. 현재의 입시 경쟁 체제는 국가 발전에도, 아이들의 안정된 삶에도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그저 최후의 한 사람만 살아남고 나머지는 열패자로 만들 뿐입니다. 우리는 지금까지 인간은 이기적이기 때문에 경쟁은 당연한 것으로 알아왔잖아요. 하지만 많은 행동경제학자들이 연구한 결과를 보면 인간은 경쟁보다 협력에서 더 큰 만족과 성과를 얻는다는 것이 확인됩니다. 입시가 없는 다른 나라 사례를 이상으로 치부하지 말고 우리나라에 어떻게 적용할지 심각하게 고민해야 합니다."

- 경쟁 없애는 것과 함께 학교와 사회는 무엇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십니까. 
"아이들이 혼자라는 생각을 갖지 않도록 안전망을 만들어야 합니다. 자살하는 아이들은 시도 전에 흔적을 남깁니다. 나를 봐달라는 것이지요. 이 외침을 놓치지 않고 다가가 손 잡아주는 시스템을 확고하게 만들어야 합니다. 그리고 학교생활이 즐겁고 행복해야 합니다. 아이들을 위해 놀이밥 사업의 취지가 전국으로 퍼져나갔으면 좋겠습니다."

- 몇 년 전엔 강원행복청을 발족하기도 했습니다.
"지금 행복하지 않은 아이들은 커서도 행복할 가능성이 크지 않습니다. 아무리 좋은 대학을 가고, 아무리 많은 돈을 벌어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해요. 아이들은 내일의 주인공이 아니라 오늘을 사는 시민들입니다. 오늘 행복해야 내일도 행복하고, 그것이 모여 나날이 행복한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우리 아이들에게 이런 말을 하고 싶어요. '오늘 놀 것이 있으면 내일로 미루지 말라'."

국가수준 학업성취도평가 결과 우리나라 중고교생들의 행복도가 최근 6년 사이에 22.6% 뛰어 올랐습니다. PISA(국제학업성취도평가) 결과를 보면 우리나라 학생들의 행복도 순위는 여전히 하위권이고, 향상도는 최상위권입니다. 이유가 어디에 있다고 보십니까. 
"행복도가 여전히 하위권이라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우리 현실입니다. 향상도가 높아졌다는 것은 희망의 근거로 볼 수 있습니다. 진보 교육감이 대거 출현하면서 전국적으로 학교가 많이 바뀌었잖아요. 과거의 권위주의, 살인적 성적 경쟁 같은 것이 많이 사라졌는데 이 효과가 나타나는 것이 아닐까 합니다."

"대통령의 정시 강화 발언 듣고 아찔했다" 
 
 민병희 강원도교육감.
▲  민병희 강원도교육감.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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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학생들 행복을 가로막는 교육제도는 무엇이라고 보십니까. 
"입시가 핵심이죠. 아무리 좋은 교육적 시도도 입시 앞에서는 무력해집니다. 시험에 의한 선발이 정말 평등한 것인지, 개인의 능력이 오로지 개인의 노력에서만 나오는지 성찰이 필요합니다. 시험성적이나 능력이 축적되는 사회적 배경을 무시한 채 모든 것을 개인의 역량 부족으로 돌리면 1%의 승자만 살아남는 현실에서 벗어날 수 없습니다. 고교 과정을 마친 학생이면 어느 대학이든 갈 수 있게 해야 합니다. 대신 고교 과정 이수 자격은 엄정하게 판단해야지요. 이렇게 되면 고교에서는 정말 필요한 것을 제대로 배우게 될 것이고 동료들과 점수 1점으로 경쟁하는 일도 사라질 것입니다. 고등학교까지는 기본 원리를 익히고 생각하는 힘을 키워야 합니다. 진짜 경쟁은 생각하는 힘을 바탕으로 대학, 대학원에서 이루어져야죠. 그게 교육으로 경쟁력을 키우는 길입니다."

- 그런데 교육부는 정시 강화방안, 다시 말해 수능 확대방안을 발표했습니다. 
"문재인 대통령께서 2019년에 국회에서 '정시 강화'를 얘기하시는 걸 보고 아찔했어요. 대통령이 그 발언을 한 순간 되돌릴 수가 없잖아요. 고교 공교육을 강화하고 교육혁신을 이루겠다는 기존 대통령 공약과 거꾸로 가는 것 아닌가 걱정이 되었습니다. 수능 확대 방안은 고교 현장을 속된 말로 '멘붕'에 빠지게 했습니다. 학교교육 정상화를 위한 혁신 노력에 찬물을 끼얹은 셈이 되었습니다. 문 대통령이 잘하고 있는 게 많지만, 교육문제에서만큼은 아쉬움이 있습니다. 주변 참모들이 방향을 잘못 보고하는 경우가 있는 것 같습니다. 오히려 수능 위주 선발이라든지 대학 서열화를 과감하게 혁파해야 한다고 봅니다. 이미 주요 기업들은 단순 점수 위주의 신규사원 선발방식을 바꾼 지 오래입니다."

- 평소 '미래를 이끄는 혁신교육'이란 말씀을 해왔습니다. 혁신교육이 미래지향적 교육이라고 보십니까? 
"당연히 그렇습니다. 전통사회에서는 많은 지식을 쌓은 사람이 변화를 주도하고 사회를 이끌어 갔습니다. 미래사회는 AI(인공지능)를 비롯한 과학기술 발전이 삶의 모습을 바꾸어 놓을 것입니다. 이제 시대에 맞는 새로운 역량이 필요한 것이죠. OECD에서 미래사회의 핵심역량으로 제시한 것이 창의성, 문제해결력, 협동과 공감, 갈등관리, 책임감과 도덕적 인성 등입니다. 이런 역량들을 키우는 것이 기존의 점수 위주, 수능 대비 교육으로는 가능하지 않으리라 봅니다. 아이들을 주체로 놓고 스스로 생각하고 문제를 해결하는 능력을 키우는 교육이 혁신교육이기 때문에 미래를 이끌 수 있다는 얘깁니다."

코로나19로 2020년 상당한 어려움을 겪었고, 올해도 난관이 예상됩니다.
"강원도에서는 2020년 학내 전파가 딱 한 건이 있었습니다. 그나마 다행이지요. 그만큼 학교 구성원들이 방역을 철저히 했다는 얘긴데요. 무엇보다 아이들이 마스크를 쓰고 생활해야 하니 얼마나 답답하겠습니까? 그런데도 급식도 시차를 두고 거리두기를 잘 하는 등 선생님들 지도를 잘 따랐습니다. 오히려 초등학교 저학년일수록 지침을 잘 지켜요. 어린이집에 다니는 손녀딸이 있는데 집에서 밥을 먹을 때도 나에게 '떨어져 앉아야 한다'고 해요. 집에서도 마스크를 쓰라고 하고요. 어린이집에서 배운 바대로 하는 것이죠."

- 교육부의 등교수업 확대 지침에 대해서는 어떻게 보십니까. 
"2020년 초기엔 무조건 등교를 못하게 했잖아요. 강원도는 학생 수보다 교직원이 더 많은 학교도 많은데, 이런 학교들까지 학생들은 학교 못 오고 교직원만 나오는 이상한 상황이 됐죠. 획일적인 전국 통일지침에서 한발 물러나 400명 이하 작은 학교는 등교 여부에 대한 재량권을 줘서 그나마 다행입니다. 강원도는 학교 규모도 작고, 학급당 학생 수도 적어서 대면수업 기회를 많이 가질 수 있어서 정말 다행입니다."

"마스크 지침, 초등학교 저학년일수록 더 잘 지켜... 아이들은 배운대로 한다"
 
 민병희 강원도교육감.
▲  민병희 강원도교육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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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선 교육감으로 10년간 활동을 하셨습니다. 그동안 잘 한 일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무엇인가요?
"민선 1기 교육감에 출마했을 때 선거 사무실 벽에 큰 현수막 두 개를 걸었습니다. 내용은 '고교평준화', '돈 안 드는 교육'. 지금 강원도는 이 두 과제를 거의 해결했습니다. 이 두 약속을 지킨 것이 제일 뿌듯합니다. 고교 평준화 전까지만 해도 고교생들이 교복 색깔로 차별받았습니다. 이른바 명문고라는 곳에 가려고 초등학교부터 고입 사교육에 시달렸어요. 평준화 반대 세력은 '학력 저하'를 얘기했지만, 지금 강원도 고교가 평준화가 된 뒤 서울에 있는 주요대학에 간 숫자가 확 늘어났습니다. 무상급식도 취임하면서 바로 추진했는데, 결국 전국 최초로 유초중고 무상급식을 시작해서 이제는 당연한 것이 되었습니다."

- 학생인권조례는 아직 제정하지 못했습니다만. 
"이것이 제일 마음이 아파요. 사실 이 학생인권조례는 특정교단에서 반대하고 있어서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그 분들이 중심이 되어 학생인권조례 제정을 반대하고, 조례가 통과되면 '성 정체성에 문제가 생긴다'고 트집을 잡았습니다. 조례 제정을 두 번이나 시도했는데, 의회와 반대세력 문턱을 넘지 못했습니다. 2021년에 또 시도할 겁니다."

- 남북 교육교류 사업은 어떻게 되고 있나요? 
"아시다시피 강원도는 유일한 분단도입니다. 강원도에서 평화는 생존의 문제입니다. 지금은 교육교류가 막혀 있지만 미리 준비하지 않으면 기회가 왔을 때 시간을 허비하게 됩니다. 그래서 미리 두 가지를 준비하고 있는데요. 하나는 동해선 최북단 제진역에 전국 학생들이 북한 체험을 할 수 있는 '통일로 가는 평화 열차'를 조성하는 것입니다. 현재 기관차 하나와 객차 다섯 량을 설치하고 2021년 3월에 개장하는 것을 목표로 내부 공사를 하고 있습니다. 두 번째는 교류 관련 연구, 연수, 교류사업 준비하려고 폐교된 거진초 송정분교 자리에 남북교육교류협력 사무소를 설치합니다. 저는 북의 원산과 남의 강릉이 수학여행단을 교환하고, 남과 북의 아이들이 고성에서 만나 토론하고 야영을 같이 하는 모습을 상상하고 있습니다. 이런 상상이 곧 현실이 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민병희 강원도교육감.
▲  민병희 강원도교육감.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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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신교육감들 ①] '일제잔재 청산교육' 나선 김지철 충남도교육감  http://omn.kr/1rz3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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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은, 이스라엘을 배워라

[단번도약, 북조선] 텔아비브 : 월드 와이드 웨이브


 1. 봄의 언덕

오아시스 같은 도시이다. 푸른 바다로 가라앉는 붉은 일몰이 일품이다. 하얀 모래사막을 지나면 파란 지중해가 펼쳐진다. 지중해성 기후, 겨울도 포근한 도시였다. 총천연색 수영복을 입고 서핑을 즐기는 노인도 여럿이었다. 평온한 안식처 같은 장소이다. 본디부터 늘 그러했던 것은 아니었다.

 

부서진 배를 탄 66가구의 유대인 가족이 이곳에 당도한 날이 1909년 4월 11일이다. 아름답고 건강한 히브리 도시를 건설하자는 다짐으로 농가 운동을 발족시켰다. 텔아비브가 출발한 것이다. '텔'(tel)은 언덕을 뜻한다. 아비브(avia)는 봄이라는 뜻이다. 텔아비브는 유대인이 소망하는 '봄의 언덕'이었다. 1948년 이스라엘 건국도 30년 전 ‘봄의 언덕’에서 시작된 것이다. 보금자리가 생기자 유럽에서 박해받은 유대인들의 이주가 줄을 이었다. 홀로코스트를 피해 수많은 유대인들이 지중해의 새로운 고향, 텔아비브를 찾았다. 그들이 가진 재능과 기술, 지혜도 결집되었다. 공동의 선을 위하여 세계 최고의 도시를 만들자는 뜻으로 한마음 한 몸이 되었다.  

 

그 가운데는 바우하우스 운동에 가담했던 사람들도 있었다. 1919년 독일 바이마르에서 처음 설립된 이후 데사우, 베를린까지 세 도시에 거쳐 14년간 이어진 디자인 교육기관이 바우하우스이다. 1차 세계대전의 폐허를 딛고 솟아난 예술과 기술의 통합운동, 소셜 디자인 운동이기도 했다. 대공황과 2차 세계대전으로 유럽에서 바우하우스의 비전은 만개하지 못했다. 대신에일군의 유대인 건축가과 공학자들이 1930년대 집단적으로 텔아비브로 이주하여, 전통의 중력에 구애받지 않고 자유롭게 실험해볼 수 있는 백사장, 백지를 얻은 것이다. 모래 언덕 위에 4000여개의 바우하우스 건물을 지으면서 '화이트 시티'가 탄생하였다. 둥근 발코니, 작고 깊은 창문, 그리고 하얀 벽면 등 독특한 건축양식이 도시 자체를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만들게 하였다. 독일에서 뿌린 씨앗이 바다를 건너 이스라엘에서 꽃을 피운 것이다. 핏빛 역사의 아픔을 백색 미학으로 승화시켰다.


 

▲ 바우하우스 박물관. ⓒ이병한

집을 지은 다음에는 일터를 꾸렸다. 디아스포라의 비감은 비장한 동료애로 진화하였다. 온마음 온몸으로 한 살림 운동에 앞장선다. 집단농장을 만들어 공동소유와 공동육아, 공동식사를 실험하는 터전이 바로 키부츠였다. 키부츠란 '무리, 모임'이라는 뜻의 히브리어에서 기원한다. 국유도 아니요 사유도 아닌 공동체 정신의 구현이었다. 유럽의 박해를 피해 새 보금자리를 구했으되, 그 땅 또한 사방팔방이 이슬람 문명으로 둘러싸인 외딴 곳이었다. 물도 자원도 없는 척박한 모래땅에서 살아남으려면 무엇이든 함께 해결하고, 공평하게 나누는 삶의 방식이 필요했다. 상부상조와 유무상자에 기초한 공동체 의식은 이스라엘 건국의 초석이 되었다.
 

 

공유 오피스 문화를 촉발시킨 '위워크'(we work)가 이스라엘에서 시작될 수 있었던 배경이다. 위워크가 구현한 '서로 돕고 나누면 모두 함께 성장할 수 있다'는 공유 정신의 뿌리에 키부츠의 전통이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전 세계로 확산된 위워크는 단순한 공간 제공에 그치지 않는다. 커뮤니티 형성과 파트너십 구축에 공을 들인다. 시멘트 벽면 대신에 유리창으로 내부를 조성하여 함께 일하는 사람이 누구인지 알 수 있도록 개방적 인테리어를 연출하는 까닭이다.

 

키부츠에서 발원된 혁신산업은 공유경제로만 그치지 않는다. 척박한 땅에서 식량을 생산하기 위해 지혜를 짜냈던 농업 기술이 현재의 바이오메디컬, 대체에너지, 화장품 산업 등으로 진 화했다. 그래서 야채와 과일 등 농산물이 매우 신선하다. 유라시아 곳곳을 여행했지만 탈아비브의 카페와 레스토랑은 단연 최고 수준이었다. 혁신적인 관개시설 덕분에 사막국가라는 태생적 한계를 극복하고 과일과 채소를 직접 재배하는 나라가 되었다. 1년 내내 내리쬐는 강렬한 햇살도 야훼의 축복이 되었다. 이웃한 알라의 석유 국가들과는 식생활이 근본적으로 다르다. 양고기와 유제품에 의존하는 유목민의 식문화와는 판이하다. 텔아비브에만 400개가 넘는 채식 식당이 성업을 이루고 있다. 40만이 넘는 시민들 가운데 채식 지향을 밝힌 숫자가 10만에 이른다. 꼭 비건 전문 레스토랑이 아니더라도 일반 식당이나 베이커리, 카페에서도 채식 선택권은 늘 보장되어 있다. 해마다 비건 페스티벌도 열린다. 세계 최대 규모의 비건 축제로 5만 명이 넘는 참가자가 몰려들어 100가지가 넘는 다양한 채식 음식을 음미한다. 이스라엘 관광청이 자국을 ‘세계 최대의 채식주의 국가’라고 자랑스레 소개하고 있는 까닭이다.


 

처음부터 텔아비브는 다양한 민족이 모여 형성된 디아스포라 도시였다. 뿌리는 유대교였으되, 국적은 다종다양했다. 유럽, 러시아, 아프리카, 아메리카에서 사람들이 모여들었고, 구사하는 언어도 독일어, 아랍어, 루마니아어, 모로코어 등 다채로웠다. 그래서 눈이 맞고 살을 맞대어 한 가정을 이루어도 언어도 문화도 다른 경우가 허다했다. 이렇게 다양한 문화가 뒤섞이는 해방촌과 해방구가 건설되자 성소수자 커뮤니티도 활발하게 형성되었다. 텔아비브 시민의 1/4이 성소수자인 것으로 추산된다. 매년 6월이 되면 수만 명의 군중이 거리에 쏟아져 나와 화려한 퍼레이드를 펼치는 세계 최대 규모의 LGBT 축제가 벌어진다. 주거지와 상점은 물론이요 시청을 비롯한 정부기관까지 온통 무지개 깃발이 펄럭거린다.

 

▲ 바이츠만 연구소. ⓒ이병한
 

이 특유의 공유문화와 개방문화는 과학연구가 만개하는 밑바탕이 되었다. 바우하우스 건축물이 속속 들어서던 1934년에 바이츠만 연구소도 만들어진다. 바이츠만은 1948년 건국된 이스라엘의 초대 대통령이 된 인물이다. 학문의 기초부터 다지고 나라를 만들어낸 셈이다. 그래서 기초공사가 부실한 모래성이 아니 될 수 있었다. 그간 바이츠만 연구소는 3명의 노벨상 수상자와 2명의 대통령을 배출하면서 명실상부 세계 5대 기초과학 연구소로 손꼽히고 있다. 현재 교수와 학생 등 2600명가량이 인류의 삶을 윤택하게 하기 위한 장기적인 안목으로 기초과학 연구에 집중한다. 연구소가 가장 공을 들이는 것은 인재의 발굴이다. 탁월한 사람은 끊임없이 거듭나고자 노력하는 내적 열정으로 활활 타오른다. 그리하여 연거푸 자신의 한계를 뛰어넘어 본인의 잠재력을 극대화시키는 내적 자질을 가지고 있다. 그들을 앞서 찾아내 무한대의 자유를 허여해 주는 것이다. 특정 연구 주제를 제시하거나 성과를 재촉하지 않는다. 자유로워야 창의성이 최적화된다. 한가해야 창조력이 극대화된다. 오로지 비범한 인재가 인류 전체를 위해 기여할 수 있는 놀이터, 플랫폼을 장만해 주는 것에 그치는 것이다. 장기적인 안목으로 잠재된 가능성에 투자하는 것이다.


 

그 무한대의 상상력을 보장해주는 기초연구가 원체 탄탄하기에 텔아비브가 혁신도시, 기업도시로 진화할 수 있었다. 이스라엘은 세계에서 1인당 스타트업 수가 가장 많은 국가이다. 인공지능과 생명공학 등 최첨단 영역에서 7000개가 넘는 스타트업이 들불처럼 들풀처럼 솟아나고 있다. 그 기업들의 대부분이 텔아비브에서 창업한다. GDP 대비 R&B 투자 세계 1위 국가가 이스라엘이고, 혁신지수는 세계 10위 행복지수는 세계 11위인 까닭도 세계에서 가장 창업하기 좋은 도시 5위의 텔아비브 때문이다. 신기술과 엔지니어링 등 혁신 분야에 대한 지원과 관련된 분야의 전문가들과 협업할 수 있는 완벽한 인프라를 제공한다. 유능한 인재와 세계를 바꿀 혁신 기술을 찾는 전 세계의 투자자들이 밴구리온 공항을 분주하게 오고가는 까닭이다. 고로 텔아비브는 이웃한 예루살렘과는 전혀 다른 풍경을 제공한다. 종교인들의 성지 순례가 끊이질 않는 오래된 신의 도시가 아니다. 비즈니스맨들이 시장을 순례하는 글로벌 혁신도시이다. 창조주의 나라가 창업가의 나라로 진화한 것이다. 21세기 이스라엘을 알고자 한다면 필히 예루살렘이 아니라 텔아비브를 방문해야 하는 까닭이다.

 

▲ 더 라이브러리 사무실. ⓒ이병한
2. World Wide Wave
 

 

아무리 개방적 공유문화가 뿌리깊다한들, 또 아무리 기초과학연구가 튼튼하다 한들, 문화와 학문이 곧바로 산업으로 연결되는 것은 아니다. 지식을 시장과 접목시키는 촉매이자 이음매, 커넥터가 바로 금융이다. 바우하우스부터 바우츠만까지 텔아비브가 축적한 저력을 세계 최고의 창조경제 미래도시로 승화시키는 데도 혁신 금융이 혁혁한 역할을 하였다. 20세기에서 21세기로 이행하는 단번도약의 발판에 창조 금융, 요즈마 펀드가 있었다.

 

 

30년 전만 해도 상상하기 힘든 변화이다. 한 세대 만에 완전히 딴 나라가 되었다. 1980년대 이스라엘은 디플레이션을 비롯하여 경제위기의 깊은 수렁에 빠져있었다. 1985년 타개책으로 강구한 것이 수석 과학실(Office of Chief Scientist) 신설이다. 장관급에 해당하는 수석 과학관(Chief Scientist) 직책을 만들어 전권을 주었다. 경제 발전의 근간은 과학과 기술이다. R&D 법안을 만들어 미래 산업의 트랜드를 미리 파악하여 세계적인 수준의 연구와 개발을 추동하는 발판이 되었다. 공무원 특유의 위험 회피 성향과 행정부의 과도한 관료주의에 휘둘리지 않는 독자적인 별동대를 꾸려서 정부 주도형 혁신에 발동을 건 것이다. 단기적인 수익에 연연하지 않을 수 있으므로 장기적인 변화를, 파괴적인 혁신을 꾀하기에도 적합했다. 실용적이고 실무적이며 실리적인 실학국가로 진화한 것이다.
 

 

겨우 반등을 꾀하는 내부 제도를 정비했더니 이번에는 외부에서 엄청난 충격이 가해졌다. 소련이 붕괴한 것이다. 적색 제국이 해체되었다. 냉전이 일방적으로 종식되었다. 파장은 전 세계로 미쳤다. 캘리포니아발 world wide web을 능가하는 시베리아발 world wide wave의 충격파였다. 구소련에는 유대계도 수백만 명을 헤아렸다. 100만 명 이상의 유대계 러시아인들이 이스라엘로 이주하기를 희망했다. 일백만이 넘는 탈소자의 고난의 행군은 당시 오백만 소국 이스라엘에 충격파가 아닐 수 없었다. 이미 높은 실업률에 허덕이고 있던 나라에 이민자 내지는 난민들이 몰려드는 꼴이었다. 나라의 근간이 뿌리째 흔들릴 수 있었다.


 

그러나 위기는 또 기회이기도 했다. 고급 인력이 많았다. 소련의 국책 연구기관과 대학에서 근무하던 이공계 박사들과 교수들이 대거 이스라엘로 이주한 것이다. 지혜롭게 활용하면 축복이 될 수도 있었다. 따뜻하게 맞이하고 각별하게 모시어서 주택과 일자리와 필수품을 제공해 주었다. 무엇보다 이들의 과학 지식과 기술 역량을 극대화하여 발휘할 수 있는 또 하나의 별동대가 절실했다. 그래서 만든 것이 이스라엘 전역에 걸친 24개의 기술 인큐베이터이다. 구소련의 과학자들이야말로 미국과 자웅을 겨누는 학문적 성취를 거두었음에도 그것을 현장에서 구현하는 노하우를 익힐 수가 없었다. 시장이 부재했던 고로 '산학협력' 자체가 불가능했던 것이다. 국가를 위해서, 국익을 위해서 일하는데 익숙한 연구자들이었던지라 실용성과 수익성을 고려해본 적이 없었다. 고로 기술 인큐베이터는 과학지식을 제품과 상품으로 전환시키는 변환 장치였을 뿐만이 아니라, 사회주의 과학자들을 시장의 혁신가, 기업가로 진화시키는 재교육장이기도 했다. 연구자들은 이제 시장의 니즈를 고려하고, 예산을 설계하고, 사업 계획을 수립하고, 마케팅 계획서를 작성하고, 효과적으로 목표를 성취하는 방법을 배우게 되었다.


 

그럼에도 체제 전환과 라이프스타일 전환, 자본주의에 적응하는 일은 녹록한 과업이 아니었다. 역시나 이 방면으로도 이스라엘 정부는 멀리 보고 통 크게 접근했다. 기술 인큐베이터에 투자하는 예산을 수업료라고 생각했다. 그 우수한 과학자와 연구진들이 새 보금자리 이스라엘에 적응하도록 돕고, 세계에 개방된 서구식 비즈니스 환경에 익숙해지도록 여유 시간을 확보해주는 공간이 되었던 것이다. 결과적으로는 이스라엘의 원천 과학기술 확보에도, 시장에서의 경쟁력 제고에도 기술 인큐베이터는 결정적인 공헌을 하게 된다.  

 

수석 과학실 신설과 기술 인큐베이터 설립으로 이스라엘은 1990년대의 세계 신질서에 적응해갈 수 있었다. 내우외환을 성공적으로 극복해낼 수 있었다. 그러나 '단번도약'이라고 평가하기에는 여전히 미흡한 구석이 있었다. 기술 인큐베이터에서 배양된 신생 스타트업이 스케일업을 해서 유니콘으로 성장하는 데는 또 다른, 더 많은 투자가 필요했기 때문이다. 국제 시장과 튼튼하게 연결된 혁신 금융이 필요했다. 바로 이 지점에서 등장한 것이 요즈마 펀드이다. 요즈마는 뜻부터 히브리어로 혁신을 의미한다. 탈소련 이주민을 수습한 1993년에 공식 출범하였다. 세계적으로도 매우 이례적인 조직이었다. 벤처 캐피탈이라고는 하는데 순수 민간 자본이 아니었다. 오히려 국영 기업에 근접했다. 민과 관이 협력했다. 관이 4, 민이 6의 황금비율로 짜여졌다. 공영기업, 공기업이라 함이 더 합당할지 모르겠다. 

▲ 요즈마 그룹 로고.
 

그럼에도 여전히 그 본질은 벤처 캐피털이었다. 자본의 모험, 벤처 금융은 미국 특유의 문화였다. 이스라엘로서는 모험이고 실험이었던 것이다. 지구 반대편 실리콘밸리가 이스라엘 변화의 롤모델이 되었다. 요즈마 펀드는 실리콘밸리를 벤치마킹하여 벤처 기업이 비즈니스 전략을 수립하고, 전략적인 파트너에게 해당 기업을 매칭해주는 시스템을 구축했다.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과감한 자본 투자로 스무 개가 넘는 이스라엘 벤츠 기업들이 나스닥에 상장되었다. 역으로 이제는 전 세계 벤처 자금이 이스라엘로 몰려들었다. 현재 이스라엘 스타트업 투자액의 9할 가까이가 해외 펀드이다. 세계 투자자들이 가장 주시하는 나라가 이스라엘이 된 것이다. 민-관 협력의 상징은 요즈마 펀드의 성공에는 민-군 협동을 대표하는 탈피오트의 기여 또한 다대했다. 10년 가까운 군 생활을 통하여 거대한 혁신을 추구하는 체질을 습관으로 익힌 이들이었다. 창업과 창조가 일상의 연속이었다. 때를 맞춤하여 벤처 펀드가 출범하면서 '체크포인트', 'ICQ', '에코랩' 같은 탈피오트 출신 CEO들이 창업한 혁신 기업들이 혜성처럼 속속 등장할 수 있었다.


 

돌아보면 이스라엘이 경험한 탈냉전이 참으로 공교롭다. 소련에서 탈출한 고급 두뇌에 미국의 벤처 문화를 결합시켜 혁신적인 창업국가로 변모했기 때문이다. 이로써 이스라엘은 구대륙과 신대륙을 아울러 다른 문화와 지식에서 경험을 쌓고 세계를 무대로 활약하는 글로벌 국가도 될 수가 있었다. 냉전의 지정학을 훌쩍 뛰어넘어 글로벌 자본주의, 세계화의 첨병 국가로 진화한 것이다. 지난 사반세기, 한 세대를 걸쳐 축적된 이스라엘의 스타트업 문화가 집약된 장소가 더 라이브러리이다. 이스라엘 최초의 고층 빌딩이라고 하는 샬롬 타워 3층에 자리한다. 이름에서 유추할 수 있듯, 본래 공공 도서관이었던 곳을 혁신파크로 재탄생시킨 것이다. 국가가 주도하여 요즈마 펀드를 성공시켰다면, 더 라이브러리는 텔아비브 시가 주도한 공간이다. 비영리 공간이기에 위워크 같은 공유 사무실보다도 임대료가 훨씬 더 싸다. 중앙정부만큼이나 지방정부 역시 당장의 이익에 연연하지 않고 미래에 투자하고 있는 것이다. 칸막이 없는 넓은 테이블이 군데군데 놓여 있고, 언제든 함께 이야기하고 아이디어를 공유할 수 있는 자유로운 분위기이다. 우연히도 한국 청년도 마주칠 수 있었다. 더 라이브러리에는 해외 창업자와 개발자들을 초빙하여 일정 기간 머물 수 있게 하는 제도가 있다고 한다. 전 세계 창업자들이 상시적으로 교류하면서 비즈니스를 펼쳐나갈 수 있도록 지자체 차원에서 지원하고 있는 것이다. 이스라엘의 몸통은 여전히 지중해, 중동에 뿌리박고 있지만, 이스라엘의 정신과 영혼만은 5대양 6대주를 가리지 않고 전 지구적 파동을(world wide wave)을 일으키고 있었다.


 

3. 다이아스포라 다이내믹(diaspora dynamic)

 

 

물론 천운도 따랐다. 천시가 도왔다. 천신만고 끝의 천재일우가 열렸다. 1990년대 천지인이 딱딱딱 들어맞았다. 미소냉전이 끝나며 중동에도 해빙 분위기가 무르익었다. 오슬로 평화협정 등으로 이스라엘 디스카운트 요소가 덜하게 되었다. 소련과 상대적으로 가깝다는 지리 또한 이점이었다. 구소련의 유대인들 상당수가 대양 건너 미국이 아니라 소양(지중해) 넘어 이스라엘을 택했다. 천군만마 고급 인재가 대거 투입된 것이다.


 

그럼에도 미끄러져나갈 수도 있는 운을 부여잡고 기회로 만드는 일이 바로 사람의 몫이다. 이스라엘에서는 정부가 주도적인 역할을 했다. 수석 과학실도 기술 인큐베이터도 요즈마 펀드도 죄다 국가 프로젝트였다. 정부가 솔선수범하여 가장 담대하고 도전적인 일감을 만들어내고 실현시켜 나갔다. 이스라엘판 흑묘백묘, 정부의 개입에도 불구하고가 아니라 정부의 혁신적인 참여 '덕분에' 세계에서 가장 역동적인 창조경제를 일구게 된 것이다. 모험이 모범적인 모델을 만들었다. 탐험이 탈냉전, 자본주의와 사회주의를 융합시킨 독특한 창업국가로 진화시켰다. 지식기반 경제와 금융자본주의 등 1990년대 이후 30년, 한 세대의 물결이 모두 이스라엘의 변화에 안성 맞춤한 환경을 제공해주었다.

 

2021년부터 앞으로 30년, 다음 세대는 전혀 다른 세계사의 물결 속에 살아가게 될 것이다. 2020년 코로나 팬데믹이 그 분기점이 될 것이다. 실리콘밸리가 독주하던 시절이 저물었다. 미국에 못지않은 혁신의 거점이 중국이 되었다. 미국과 이스라엘을 합한 숫자보다 더 많은 스타트업이 중국에서 명멸하고 있다. 나스닥 등 미국 주식 시장만 바라볼 이유도 사라졌다. 상하이와 베이징, 홍콩을 필두로 싱가포르와 대만까지 범중화권 및 전 세계 화교의 금융 네트워크 역량도 버금갈 정도가 되었다. 무엇보다 지난 150년 세계사의 대반전이 완수된다. 미국에서 중국으로, 서방에서 동방으로, 신대륙에서 구대륙으로 힘의 전이가 완결된다. 바로 그 시대에 북조선은 새로운 길, 단번도약을 시도해보게 되는 것이다. 이스라엘 이상으로 과감하고 도전적이고 모험적이어야 한다. 개발독재국가, 발전국가 모델을 답습할 것도 없이 곧바로 곧장 혁신국가, 창업국가, 미래국가로 도약해야 한다. 천시도 일조할 것 같다. 미중간 국력의 격차가 좁혀질수록 북조선의 지정학적 가치는 G2 양국에 모두 올라간다. 중국에 너무 가까워지지도 말고 미국과는 너무 멀어지지 말아야 한다. 그 절묘한 균형 속에서 남북 평화의 촉진자 및 동북아의 균형자 노릇도 할 수 있다. 자리가 사람을 만든다고 했다. 위치와 위상이 국가의 운명을 만들기도 한다.
 

 

일단 들려오는 말은 조짐이 나쁘지 않다. '자기 땅에 발을 붙이고 눈은 세계를 보라' 했던 선대의 원론에서 한층 진일보했다. '과학기술강국 도약'을 목표로 삼고 있다. '과학기술을 자기 집안일처럼 챙기라'고 독려도 하고 있다. 그래서 조성된 것이 대동강 쑥섬에 자리 잡은 과학기술전당(Sci-Tech Complex)이다. 다만 과학과 공학만으로는 시장과의 접점이 열리지 않음이 이스라엘의 과거가 명료하게 보여주는 바이다. 경영과 금융이 반드시 결합되어야 한다. 기왕이면 처음부터 세계적인 경영과 세계 최고의 금융과 접목되어야 한다. 주체와 세계의 가교를 놓아야 한다. 그때 주목해야 할 대상이 바로 코리안 디아스포라이다. 북쪽의 고려인과 조선족, 남쪽의 자이니치와 코리안 아메리칸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1990년대 '고난의 행군', 북조선을 등졌던 탈북자 1세대의 자녀들이 이제 30대로 진입하고 있다. 전 세계 곳곳에 흩어져서 신조선인, 신세계인으로 성장한 첫 세대이다. 누구도 가지지 못한 경험을 확보하고 있으며, 그 누구도 따라갈 수 없는 열망과 의지를 품고 있기도 하다. 이들과 북조선의 접점을 반드시 만들어내어야 한다. 행정부 기관으로 디아스포라부나 디아스포라청을 신설해 봄직하다.


 

▲ 평양 대동강 쑥섬에 있는 과학기술전당. ⓒ연합뉴스
 

혼자만의 공연한 공상이 아닌 것은 2018년 가을, 뉴욕에서 만난 탈북자 자녀 1세대 엘리트의 고심어린 토로에서 비롯한 발상이기 때문이다. UN 총회가 열리는 시점을 맞춤하여 컬럼비아 대학에서 글로벌 학술회의 <뉴욕평화포럼>이 열렸다. 북조선 및 한반도 평화에 관심이 깊은 전 세계의 지식인들이 결집했다. 한참 남북 및 북미 간 분위기가 고조되어 있던 시점인지라, 새로 부임한 김성 대사가 몸소 만찬장에 모습을 드러내었을 정도였다. 한국에서 참여한 홍익표, 이재정 의원과도 눈인사를 나누고 말을 섞기도 했다. 이 자리에 참여한 하버드대학의 젊은 의사가 바로 탈북자 1세대의 아들이었던 것이다. 가슴 속 깊이 북조선을 돕고 싶다는 열망으로 가득한 청년이었다. 이미 다양한 국적을 가진 그들만의 글로벌 네트워크도 형성되어 있음을 알게 되었다. 적지 않은 숫자에다 작지 않은 역량을 갖추었다. 부모님이 나고 자란 북조선을 번듯한 나라로 변화시키는데 일조하고 싶어 했다.


 

이들은 미국 정부나 한국 정부와도 결을 달리한다. 섣부른 남북통일도 아니요, 어설픈 체제전복을 꾀하지도 않는다. 체제의 진화, 거버넌스의 혁신을 추동한다. 이들은 김정은이나 김여정과도 연배 차이가 크게 나지 않는다. 동년배 동세대이다. 하기에 외국을 상대하는 외교부도 적절하지 않고, 내정을 담당하는 기왕의 부처도 어울리지 않는다. 디아스포라청 같은 제3의 기구를 만들어 접점을 늘릴 것을 제안하는 까닭이다. 중국의 개혁개방에 화인/화교가 지대한 공헌을 하고, 이스라엘의 체제혁신에 유대인 네트워크가 결정적인 역할을 했던 것처럼, 북조선의 단번도약에도 글로벌 코리안 네트워크의 역량을 총결집시킬 수 있는 새로운 허브가 필요한 것이다. '다이아스포라 다이내믹 이니셔티브'이다.

 

조금 더 혁신적으로 상상해보자면, 김정은 위원장의 정책 자문단부터 국제적으로 구성해 봄직하다. 진즉에 동/서양 권력 전이를 예상하고 싱가포르로 거점을 옮긴 세계적인 투자자가 짐 로저스이다. 전 재산을 북조선에 투자하고 싶다는 희망을 오래전부터 피력해 왔었다. 정기적으로 조언을 청하는 인사로 삼아도 하등의 문제가 되지 않을 것이다. 오히려 경청할 정보가 수두룩할 것이다. 이스라엘의 세계적인 미래사학자 유발 하라리를 모실 수도 있다. 그 또한 과거와 전혀 판을 달리하는 미래문명의 실험장으로 북조선을 종종 언급하고 있다. 자문을 구해서 해로울 일이 전혀 없다. 백악관에서 물러난 도널드 트럼프와도 전혀 다른 모습으로 재회할 수도 있다. 미국의 대통령 자격으로 추진하는 북미 간 화해는 지난한 과업이었지만, 비즈니스맨으로 다시 조우한다면 일사천리로 일이 진행될지 모른다. 가까운 이웃나라 중국의 마윈이나 일본의 손정의에게도 자문을 청할 수도 있다.


 

더더욱 파격적인 차세대 지도자라면 남조선, 한국의 기업가들과도 통 크게 폭넓게 교류해야 한다. 임기 5년제 대통령, 실제로 일하는 기간은 3년 남짓에 불과하다. 왔다가 금방 또 물러나는지라 남한의 정책은 조석변개, 불확실성으로 불투명하다. 선경후정(先經後政)이 첩경이다. 최근 5조 재산으로 재단을 만든다는 김범수 카카오 의장도 만날 수 있어야 한다. 한국 재계를 이끌고 있는 최태원 SK 회장과도 핫라인을 개통하면 좋을 것이다. 고향이 북쪽인 기업가 집안을 전략적으로 고려해 볼 수도 있을 것이다. 개성상인의 후예인 아모레퍼시픽의 서경배 회장은 어떠할까. 한방 화장품이야말로 북조선의 고려의학과 의기투합해 볼 수 있는 최적의 비즈니스이다. 오산에 있는 아모레퍼시픽 원료식물원을 방문해 본적이 있다. 오가산(五佳山) 원시림 일대에 더 큰 규모로 더 아름다운 식물원도 조성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오가산은 한반도와 유라시아의 식생물이 만나는 곳이라는 상징성도 내포한다. 20세기 후반 한국의 발전을 이끌었던 태평양(pacific) 연결망을 북조선과의 협력으로 21세기 유라시아까지 더더욱(amore) 확산시키는 world wide wave를 촉발시킬 수도 있을 것이다. 기후재난이 야기하는 전염병도 일시적인 현상이 아닐 것인바, 센트리온 같은 바이오기업과의 협력 또한 적극적으로 도모해 볼만하다.
 

 

디아스포라 부처 창설부터 한국의 기업가를 포함하는 국제자문단 구성까지 창조적 파괴를 거듭 추진하려면 최고 지도자의 리더십이 확고히 구축되어야 한다. 특히나 백두혈통으로 권력의 정당성이 확보되는 북에서는 리더의 자질과 안목이 결정적으로 중요하다. 불행 중 다행으로 이른 나이에 집권했기에 실패를 통해 배울 수 있는 학습 기간도 꽤나 확보가 된 셈이다. 실패를 해보지 않으면 실력도 쌓이지 않는다. 젊어 고생은 사서도 하는 법, 집권 초기의 시행착오는 집권 중기와 후기의 밀알이 되고 밑천이 되어줄 수 있다. 여기서도 참조해 봄직한 인물이 이스라엘에 있다. 20대에 총리 보좌관으로 정계에 입문하여 90대에 대통령까지 역임하며 70년을 국가 경영에 참여했던 정치 10단, 시몬 페레스이다. 중국의 덩샤오핑이나 싱가포르의 리콴유보다 배울 점이 더 많을 것이라 생각된다. 다음 주에 살펴본다.



출처: https://www.pressian.com/pages/articles/2021022611354839791#0DKU 프레시안(http://www.press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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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업에 아예 택배접수 중단한 한진택배...노조 “직장폐쇄와 같아” 본사 점거 농성

택배노조, “고용승계 확인했다” 사측 입장에 “무리한 대리점 분할 자체가 문제” 반박

김백겸 기자 kbg@vop.co.kr
발행 2021-02-26 16:55:51
수정 2021-02-26 17:0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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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택배노동조합 조합원들이 16일 오전 서울 중구 한진택배 본사 앞에서 대리점 기획 위장폐점과 갑질로 택배노동자 부당해고, 노동조합 탄압한 한진택배, CJ대한통운 규탄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2021.02.16
전국택배노동조합 조합원들이 16일 오전 서울 중구 한진택배 본사 앞에서 대리점 기획 위장폐점과 갑질로 택배노동자 부당해고, 노동조합 탄압한 한진택배, CJ대한통운 규탄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2021.02.16ⓒ김철수 기자
 
 파업에 돌입한 한진택배 노동자들이 지역 대리점의 택배 접수를 중단한 사측의 조치를 철회하라며 서울 중구 한진택배 본사에서 무기한 점거농성에 들어갔다.

26일 전국택배노조와 한진택배에 따르면 한진택배는 노조가 파업에 돌입한 지난 23일 직전인 22일부터 다음달 31일까지 파업에 참여한 택배기사들이 소속된 대리점의 운송장 출력 시스템을 막아 택배 접수를 중단시켰다.

이 같은 조치에 울산·진주·분당·이천 등 대리점의 택배 접수가 중단됐고, 그 여파로 파업에 참여하지 않은 해당 대리점의 택배기사들까지 배송업무를 할 수 없게 된 상황이다.

대리점의 택배 접수를 막게 되면 택배기사들의 업무 자체가 중단되는 것으로, 다른 제조업 사업장에서의 '직장폐쇄'와 다름없는 조치다.

택배노조는 사측의 택배 접수 중단 조치가 "불법 직장폐쇄"라고 주장했다.

 

이들은 25일 한진택배 본사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집하금지조치는 현행 하도급법에 따라 원청과 대리점의 계약관계 상 대리점 소장의 요청에 의해서만 가능하다"면서 "그러나 대리점 측에서 택배 접수 중단 요청조차 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한진택배 본사가 직접 개입하고 주도한 것으로 확인됐다"고 지적했다.

또한 "더 심각한 문제는 파업에 참가하지 않은 비조합원의 택배물량 접수중단 조치를 내려 경제적 피해를 발생시키고 있다는 점"이라고 바판했다.

이에 노조는 지난 23일 문제 해결을 위해 면담을 사측에 요청했지만 사측은 26일 현재까지도 면담에 응하지 않고 있는 상황이다.

앞서 한진택배 소속 택배노조 조합원 280여명은 경북 김천과 경남 거제 대리점에서 조합원들에게 부당해고가 잇따르고 있다며 지난 23일부터 파업에 돌입했다.

택배노조에 따르면 2월 초 본래 택배기사 9명 규모의 김천대리점을 남김천·북김천 대리점으로 분할하는 과정에서 북김천대리점에서 조합원 4명에 대한 집단해고가 이뤄졌다.

또한 거제북대리점에서도 지난 21일 조합원에 대해 납득할만한 근거와 내용도 없이 일방적 주장으로 해고를 통보했다.

노조는 이 같은 대리점들의 횡포가 7월 생활물류서비스산업발전법 시행을 앞두고, 노조 활동을 방해하려는 목적으로 이뤄지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전국택배노동조합이 24일 서울 중구 한진택배 본사 앞에서 집회를 열고 택배 노동자 해고 방조 및 사회적 합의를 파기한다며 한진택배를 규탄하고 있다. 2021.02.24.
전국택배노동조합이 24일 서울 중구 한진택배 본사 앞에서 집회를 열고 택배 노동자 해고 방조 및 사회적 합의를 파기한다며 한진택배를 규탄하고 있다. 2021.02.24.ⓒ뉴시스

이에 대해 한진택배 측은 25일 입장문을 내고 김천대리점 소속 택배기사들의 계약해지에 대해 "건강상의 이유로 운영계약을 포기한 대리점장을 대신해 신규 대리점과 계약을 마쳤고, 이곳 대리점장이 100% 고용승계하겠다는 뜻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또한 일부 대리점에 대한 택배 접수 중단 조치에 대해서는 "노조 조합원의 비율이 높아 정상적인 배송이 이뤄지지 않는 지역은 고객 불만의 증가로 일시적인 집하금지를 하는 것이며, 정상적인 배송이 이뤄지면 즉시 해제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택배노조는 "김천대리점의 부당해고는 9명이 있던 대리점을 사실상 운영이 불가능한 수준인 5명과 4명으로 대리점을 분할하면서 발생하게 됐다"면서 "이미 이에 대해 한진택배는 본사가 개입하여 승인한 것이라는 입장을 밝힌 바 있다"고 반박했다.

대리점장의 고용승계 입장보다 애초에 작은 규모의 김천대리점을 사실상 운영이 불가능할 정도로 분할한 데 원인이 있다는 지적이다. 대리점 규모가 작아져 택배 물량이 줄어들면 그만큼 택배 노동자들의 대리점 수수료 등에 대한 부담이 커지기 때문이다.

노조는 "(북김천대리점의) 신규 소장은 4명을 해고하고 4명을 신규 채용한 상황이며 추가로 5명을 더 채용했다고 밝히고 있다"면서 "5명이 일하던 구역을 신규 채용된 9명과 기존 5명이 나눠서 일해야 한다는 것인데 어떻게 100% 고용승계가 가능하느냐"고 되물었다.

이어 "명확히 기존 대리점 수수료율과 배송구역으로 고용승계가 보장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 "거제북대리점에서 발생한 부당해고 또한 철회되어야 한다"고 촉구했다.

노조는 또한 한진택배 측이 노조의 면담에는 응하지 않는 태도에 대해서도 "한진택배는 해결할 의지가 있다면 이런 식으로 일방적인 입장문을 낼 것이 아니라 노동조합과 만나 대화를 통해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고 비판했다.

김백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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