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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볼턴 불러 국정조사하자”는 통합당의 ‘황당’ 발상

국회 운영 입맛대로 하려는 통합당에 민주당 “상임위부터 들어오시라”

김도희 기자 doit@vop.co.kr
발행 2020-06-25 18:14:45
수정 2020-06-25 18:14: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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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통합당 주호영 원내대표가 25일 국회에서 열린 비상대책위원회의에서 모두발언하고 있다. 2020.06.25
미래통합당 주호영 원내대표가 25일 국회에서 열린 비상대책위원회의에서 모두발언하고 있다. 2020.06.25ⓒ정의철 기자  
 
남·북·미 정상 간 회담 내용을 일방적으로 기술한 존 볼턴 전 미국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의 회고록 ‘그것이 일어난 방’에 크게 동조하던 미래통합당이 25일 주호영 원내대표의 당무 복귀와 동시에 국정조사를 본격 요구하고 나섰다. 급기야 당내에서는 ‘볼턴을 국회에 불러 국정조사 증인으로 채택하자’는 황당한 제안까지 등장했다.

주 원내대표는 이날 국회에서 열린 당 비상대책위원회 회의에 10일 만에 참석해 “우리 당이 구성해서 활동하고 있는 외교안보특별위원회에서 (볼턴 회고록 관련) 여러 가지 의문을 제기했고 (청와대에) 공개질의 해놓았다”고 밝혔다.

주 원내대표는 통합당이 제안한 질의 항목에 대해 구체적으로 언급하지는 않았지만 “문재인 대통령께서는 국민들이 의문을 갖고 있는 분식 평화, 남북위장평화쇼와 관련된 여러 가지 의문에 대해서 제대로 설명하고 답변해줄 의무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완전한 북한 비핵화를 위해 대통령은 끊임없이 노력해야 하고 한미동맹에 기반한 노력을 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참으로 의아스럽고 실망시키는 여러 행태들이 회고록에 나오고 있다”며 “만약 청와대에서 성실한 답변이 없다면 국민을 대표해서 우리 국회 차원에서라도 필요한 조사가 불가피하다”고 엄포했다.

이종배 정책위의장 또한 “우리 정부의 대북정책 상당 부분이 (회고록을 통해) 국민을 기만한 것으로 공개됐는데, 통합당이 이를 비판하면서 진실을 요구하자 우리 당에 대해 도리어 ‘토착분단 세력’이라는 기괴한 말로 국민을 호도하고 있다”며 진실규명을 요구했다.

통합당 의원들은 대체로 ‘볼턴 회고록 국정조사’에 긍정적인 분위기이다. 통합당 김은혜 대변인은 전날 브리핑에서 “회고록과 관련해 당 외교안보특위를 중심으로 과연 문제점이 무엇인지, 아직 청와대가 말 못 할 진실이 있는 것인지 국민은 알고 싶어 할 것이다. (청와대에) 4가지 질문을 시작으로 집중 문제 제기할 것”이라며 “국정조사와 관련해서는 의원들의 상당한 공감대가 있는 것이 사실”이라고 전했다.

통합당에서 국정조사 필요성을 가장 앞장서서 제기한 김기현 의원은 자신의 페이스북에서 “회고록을 통해 이 정권이 저지른 위장평화쇼의 진상이 조금씩 드러나고 있다”며 “사안의 심각성과 시급성을 고려하면 즉시 국회가 나서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이날 TBS 라디오에 출연해서도 이와 같은 주장을 설파하며 “볼턴 회고록 내용이 사실이라고 하면 거의 세계 최고의 사기극이 이루어진 것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든다”고 밝혔다.

함께 출연한 민주당 우상호 의원이 “볼턴을 증언대에 세워야 되고,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을 증언대에 세워야 되는데 이런 국정조사가 가능하냐. 전직 보좌관 책 한 권 가지고 나라가 여야 간에 들썩거리고 그럴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고 지적했지만, 김 의원은 “트럼프야 안 올 수 있겠지만 볼턴이 안 온다는 보장은 또 어디 있냐”며 물러서지 않았다.

우 의원이 볼턴과 트럼프 대통령을 증인으로 채택하자는 김 의원의 발상과 관련 거듭 “한미 간 외교 갈등이 된다”, “외교 문제가 될 수 있다”고 비판해도 김 의원은 “외국인이라고 왜 채택을 못 하냐”, “우 의원이 미국의 외교 문제를 왜 걱정하느냐”며 뜻을 굽히지 않았다.

통합당 윤영석 의원도 KBS 라디오와 인터뷰에서 “볼턴 회고록에서 정부의 총체적 난맥상이 드러나고 있는 상황이기 때문에 이런 부분에서 국회가 국정조사를 한다는 것은 당연히 국회 존재 이유”라고 발언했다.

통합당 박대출 의원은 페이스북에서 “원 구성도 못 하고 표류 중인 21대 국회를 국정조사로 풀자”고 가담했고, 무소속 홍준표 의원은 “문 정권의 대북 대국민 사기극이 볼턴의 회고록에서 만천하에 드러나는 것을 보면서 북에 놀아난 트럼프와 문정권의 동시 몰락을 조심스럽게 예상해 본다”고 거들었다.

통합당은 국회 정상화 여부와 관계없이 자신들이 요구하고 있는 이상 ‘볼턴 회고록 청문회’는 추진돼야 한다는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 이들은 청와대 측에 보낸 질의서에 답변이 오는 대로 이를 검토한 뒤 여당에 국정조사 논의를 시도한다는 계획이다.

다만 민주당이 이를 수용할 가능성은 희박하다. 일단 민주당은 통합당이 국회 원 구성 협상 등에 비협조적인 태도로 일관하면서 다짜고짜 ‘볼턴 회고록 국정조사’를 요구하는 태도는 어불성설이라는 점을 분명히 했다.

국회 외교통일위원회 위원장인 민주당 송영길 의원은 MBC 라디오에서 “국정조사는 둘째 문제고 상임위부터 들어오셔야 될 것 아니겠냐”며 “상임위는 안 하고 국정조사하자는 것은 초등학교도 안 나왔는데 중학교부터 가겠다는 소리”라고 질책했다.

민주당 홍익표 의원도 KBS 라디오에서 “국정조사라는 것은 특정하게 뭔가 문제가 있고 책임을 져야 될 상황이 있을 때 생기는 건데 포괄적으로 정책 전반에 대해서 국정조사를 하겠다는 것은 적절치 않다”며 “무조건 국정조사부터 제안하고 보는 것은 저희가 보기에는 정치 공세로 보인다”고 꼬집었다.

김도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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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보다 높다는 ‘한미워킹그룹’의 실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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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자명 강호석 기자
  •  
  •  승인 2020.06.25 17:2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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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평양공동선언’의 남측 이행률 0%라는 오명을 쓰게 된 까닭이 한미워킹그룹 때문이라는 데 재론의 여지가 없다.

금강산‧개성공단 재개와 철도‧도로 연결이 불발된 것은 물론이고 심지어 이산가족 상봉마저 한미워킹그룹의 제동에 걸렸다.

한미워킹그룹이 도대체 어떤 조직이길래 남북 정상의 합의를 제 맘대로 좌지우지한단 말인가.

▲ 한미워킹그룹 미국측 대표 스티븐 비건 미국 국무부 대북정책특별대표, 현 미 국무부 부장관

한미워킹그룹의 탄생 배경

‘한미워킹그룹’은 ‘조선총독부’라는 별칭처럼 한국의 통일외교 정책 전반을 미국이 조절 통제하기 위해 설치되었다.

미국이 워킹그룹 설치를 결심하게 된 두 사건이 있다.

그중 하나는 4.27판문점선언에서 합의한 남북공동연락사무소 개소와 남북철도연결을 위한 시운전이 대북제재 위반이라고 미국이 만류했음에도 문재인 정부가 이를 밀어붙였기 때문이다.

당시 미국이 만류한 이유는 개성 공동연락사무소가 운영되면 통일부 차관을 비롯해 남측 관계자 50여 명이 북측에 숙식비를 달러로 결재하기 때문이었다. 달러가 북측에 가면 제재 위반이라는 소리.

철도 시운전이 막힌 이유는 기관차 연료 때문이었다. 기차 연료인 경유가 북측에 들어가면 제재 위반이라는 소리.

미국의 이런 어이없는 방해 소동에 잠시 주춤하던 문재인 정부가 9월 평양행 직전에 개성 공동연락사무소를 개소하고, ‘9월평양공동선언’에서 철도‧도로 연결을 비롯해 금강산관광과 개성공단까지 당장 재개한다는 약속을 해 버렸다.

이때 미국은 문재인 정부를 체계적으로 완전히 통제하지 않으면 한국이 미국의 손아귀에서 빠져나갈 수 있다는 위기감을 느낀다.

미국이 위킹그룹 설치를 결심한 또 하나의 사건은 ‘9월평양공동선언’에서 ‘판문점선언 군사분야 이행합의서’를 채택하고 ‘남북군사공동위원회’ 설치를 약속한 것이다.

미국으로선 한미군사공동위원회가 버젓이 살아 있는데도 불구하고 남북군사공동위원회를 가동, 한국이 군사상 긴밀한 협의를 북측과 진행할 경우 주한미군을 비롯한 미국의 한반도 지배력에 심각한 손상을 입게 되는 상황.

당시 마이크 폼페오 미 국무장관이 강경화 외교부 장관에게 전화를 걸어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는 것이냐, 누구 마음대로 9월평양공동선언에서 군사분야 합의했냐”며 격노했다는 사실은 이미 세상에 잘 알려져 있다.

트럼프, “한국은 미국의 승인 없이 아무것도…”

‘9월평양공동선언’으로 남북관계가 급진전하자, 다급해진 미 국무부는 한미워킹그룹 설치를 위해 발 빠르게 움직였다.

2018년 10월 10일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은 “그들(한국)은 우리(미국)의 승인 없이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말로 문재인 정부를 압박했고, 12일 문재인 대통령은 “남북관계를 국제제재 틀속에서 저촉되지 않는 범위에서 시작하겠다”며 남북관계 속도 조절에 들어갔다.

이 틈을 비집고 스티븐 비건 미 국무부 대북정책 특별대표가 28일 방한, 차관보 주제에 당시 남북정상선언 이행추진위원장이던 임종석 대통령 비서실장을 비롯해 강경화 외교부 장관, 조명균 통일부 장관, 정의용 국가안보실장, 이도훈 외교부 한반도 평화교섭본부장, 윤건영 국정기획상황실장을 차례로 만나 한미워킹그룹 구성을 단방에 합의해 버린다.

남북관계 파탄이 한미워킹그룹의 설립목적

2018년 11월 20일 워싱턴 D.C. 에서 첫 회의를 가진 후 공식 출범한 한미워킹그룹은 2020년 2월 20일까지 총 12차례 회의를 통해 문재인 정부가 남북 정상이 맺은 공동선언을 이행하지 못하게 한다는 설립목적에 부합하는 활동을 전개했다.

금강산관광, 개성공단 “안돼”

2019년 신년사에서 북측은 금강산관광과 개성공단을 조건 없이 열겠다고 했지만 남측은 한미워킹그룹의 올가미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2019년 3월 7일 미 국무부는 개성공단과 금강산관광의 제재 면제를 검토하냐는 질문에 “No”라고 답했고, 4월 11일 트럼프 미 대통령은 금강산과 개성공단 재개에 대해 “적절한 때(right time)가 되면 내가 지원을 하겠지만 지금은 적기가 아니다”고 밝혔다. 금강산관광과 개성공단은 지금도 재개되지 않았다.

도로 및 철도연결 “안돼”

2018년 12월 26일 철도·도로 연결 착공식 진행했다. 그러나, 당시 문재인 대통령은 한미워킹그룹이 제재에서 면제한 착공식은 단지 ‘착수식’에 불과하다고 선을 그은 이후 한발짝도 나아가지 않았다.

방역,보건,의료 협력 “안돼”

2019년 1월 남북 보건의료협력 회담을 진행, 타미플루 20만 명 분, 신속진단 키트 5만 개를 개성까지 육로로 전달하기로 합의했으나, 전달하는 당일 한미워킹그룹은 “싣고 갈 화물 차량이 대북 제재에 저촉될 수 있다”는 의견을 밝혀 지원이 중단됐다. 당시 북측 관계자는 개성에서 2주나 기다렸다.

이산가족 화상상봉 “안돼”

2019년 1월 설을 맞아 추진한 이산가족의 화상상봉과 영상편지 교환은 스크린과 카메라, 광케이블 등의 반출이 대북제재에 저촉된다는 논란이 일자, 한미워킹그룹이 화상상봉 설비 개보수를 만류, 결국 무산되고 말았다.

한강 하구 공동이용 “안돼”

9월평양공동선언 이후 처음으로 남북은 35일간 한강하구 공동수로 조사를 진행했다. 그러나 한미워킹그룹은 하노이 북미정상회담 결렬 이후 한강하구 공동 이용을 불허했고, 지금까지 관련된 사업은 진전을 보지 못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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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북전단살포금지법”을 한반도 냉전 법령 개폐의 계기로 삼아야

대북전단 살포는 남북교류협력법, 427판문점선언 위반 및 정전협정 위반
이장희  |  tongil@tongil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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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20.06.25  15:44: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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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장희 / 한국외대 명예교수. 평화통일시민연대 상임공동대표 


탈북자단체 대북전단 살포가 오랫동안 인내해온 북측의 미국과 남측에 대한 분노를  드디어 터뜨리는 기폭제가 되었다. 문제의 핵심은 북미정상 합의사항에 대한 미국 트럼프 개인의 재선용 북한 관리 그리고 남북 정상합의에 대한 남측의 UN재재와 미국 국가단독제재 프레임에 갇혀 남북합의 미이행에 허송세월한 남측의 소극성에 있다.  

특히 이번 대북전단 내용이 북측 지도자를 성적 패러디화 하여 북측을 심각하게 자극한 저질내용이다. 또 이것은 남북합의 위반이며. 남북 간 군사적 긴장을 고조시키고, 접경지역주민들의 생명. 안전을 위협하는 행위이다. 바로 이것을 방치한 것을 포함하여  남에 대한 종합적 불만이 6월 16일 오후 2시 50분 개성공단의 남북공동연락사무소 폭파로 나타났다. 
    
6월 4일 조선 노동당 김여정 노동당 제1부부장은 대북전단 살포와 미국의 대북제재 그리고 남측의 4.27판문점선언 불이행에 대한 강한 불만을 제기하면서, 개성공단연락사무소 폐쇄를 포함하여  전체 남북관계를 적대관계로 돌리겠다고 이미 경고했다. 6월 4일 경고 후 10일 지나도록 남측 당국은 대증적 처방만 하고, 비상시 필요한 근본적 출구전략을 강구하지도 않고 안이하게 대응하였다. 
  
그래서 드디어 올 것이 온 것이다. 
  
대북전단 살포가 그동안 우리는 사소한 문제로 보아왔지만, 북측 체제의 입장에서는 북측 김정은 위원장을 성적 패러디화 한 것은 최고 존엄에  대한 심각한 도전이다.  그래서 북은 이것을 금지해달라고 오랜 기간 남측에 요구해왔지만, 남측은 안이하게 방치해온 것에 대해서 강한 분노를 표출할 만하다. 촛불혁명으로 세워진 문재인 정부의 첫 과제는 분단적폐요, 분단 적패의 첫 출발은 냉전 문화와 냉전 법제를 청산하는 것이다. 한반도 평화경제 및 평화공감도 모두 좋지만, 남북한의 기본관계에서 근본적으로 적대관계 법적 종결 없이는 그 진정성을 믿을 수 없다. 그 예로 1948년 제정된 국가보안법의 개폐에 대해서 문재인 정부와 집권여당은 집권 이후 한 번도 그 폐기를 제의한 언급한 적이 없다. 임기 3년을 넘는 동안, 문재인 정부는 최소한 적대적 대북관을 청산하는 데 너무 안이했다.  
  
물론 대북전단 살포의 주체가 남측 정부가 아니고, 자유북한운동연합(대표: 박상학)이라는 탈북자로 이루어진 민간 우성향단체이다. 이 단체는 언론보도에 의하면, 미국국무성의 지원과 박근혜시 총리실 지원도 받았다고 한다. 그러나 남측정부도 이것을 미리 방지해야 할 직접, 간접 책임이 있다.    
    
자유북한운동연합의 대북전단 살포 행위자체는 남북교류협력법이란 국내법을 위반했고, 남북정상의 합의인 4.27판문점선언 그리고 국제법인 1953년 정전협정을 위반하였다.  
    
첫째로  대북전단 살포는 남북교류협력법상 반출, 반입에 해당된다. 반출,반입(남북교류협력법 제2조 3항)이란 매매,교환,임대차,사용대차 증여 등을 원인으로 하는 남북 간의 물품의 이동을 말한다. 대북전단은 북측 지역 북한 주민들에게 쌀과 미국화폐를 포함한 일상 생활품을 무상으로 날려 보내는 것으로서 “증여”로 해석될 수 있다. 대북전단 풍선 속에 포함된 일상 생필품은 증여 형식의 반출로서 남북교류협력법 제13조(반출, 반입의 승인) 위반이고, 제27조(벌칙) 2항은 제13조의 승인을 받지 아니하고 반출 반입한 자는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1,000만원 이하의 벌금을 받는다고 한다.
    
혹자는 대북전단 살포가 표현의 자유를 해친다고 하지만, 표현의 자유란 기본권도 무제한이 아니다. 표현의 자유가 “국가안보”의 본질을 해칠 때는 제한할 수 있다. 대북 전단은 이번 경우에 대북전단 살포로 북이 남북관계를 현재 가꾸어 온 동반자관계에서 다시 적대관계로 전환하는 정도로, 한반도를 무력충돌 상황으로 몰아갈 정도로 국가안보를 위협하는데 충분하므로, 국가안보상 그 제한이 가능하다고 본다. 
  
둘째로, 대북전단 살포는 4.27판문선언 제2조 1항 위반이다. 427판문점선언 전체 조항 총 3조항 가운데 제2조(군사적 긴장완화와 전쟁위험 해소)의 1항에서 “군사분계선 일대에서 확성기방송과 전단 살포 금지“를 명시적으로 합의하였다. 이와 같이 대북전단 살포는 제1조의 ”남북관계의 획기적 전면적 획기적 개선과 발전 조치“ 및 제3조의 ”한반도의 공고한 평화체제 구축”과는 달리 제2조 “직접 군사적 긴장완화와 전쟁위험 해소”에서 다룬다. 제2조는 제2항 NLL 서해평화지대, 제3항 군사적 보장 대책 보다 맨 우선순위로   제2조 제1항에서 “대북전단 살포 금지” 라는 적대행위를 전면 중단시켰다. 
  
또한 9.19평양공동선언 제1조를 위반했다. 동 선언 제1조는 “남과 북은 DMZ를 비롯한 대치지역에서 군사적 적대관계 종식을 한반도 전 지역에서의 실질적인 전쟁위험 제거와 근본적인 적대관계 해소를 합의하였다.  
   
셋째로 대북전단 살포는 정전협정이라는 국제법을 위반했다. 정전협정 전체 규정이 비무장지대의 비무장화(적대관계금지)를 통한 중립완충지대를 유지하는 것이 핵심정신이다. 정전협정 당사자를 비롯하여 민간인도 비무장지대에서는 군사력을 증강하는 일체의 행위 및 남북한 간에 적대행위를 조성하는 일체 행위를 금지하고 있는 것이 핵심정신이다.  그런데 지난 정전기간 70년간 남북한 당국은 모두 이를 위반하고,  비무장지대 내에서 GOP(초소)를 세우는 등 병력과 무장한 초소를 세우는 등 이를 위반하였다.  그런데 9.19평양공선언 이후 처음으로 정전협정정신에 맞게 남북한의 모든 병력과 초소가 철거하여 겨우 정전협정의 원래취지를 복원하여 가는 과정에서  사건이 발생한 것이다.   

종합하면, 대북전단 살포는 남측정부가 직접 행위주체는 아니고, 민간단체의 행위이다. 그러나 대북전단을 살포한 민간단체는 남북교류협력법을 위반하였고, 남측당국은 4.27판문점선언의 전단살포 행위를 방치한 책임, 그리고 민간단체 및 남측당국은 정전협정에서 합의했듯이 적대관계를 조성하는 일체의 행위를 예방하고 방지해야 할 책임이 있다.  그래서 상기 탈북단체 자유북한운동연합은 과거 수차례 대북전단 살포를 행한 단체이다. 북측은 대북전단 살포를 북한체제에서 최고 존엄을 해치는 적대행위로 보고 있다. 이것을 충분히 사전에  미리 알고도 대처하고 예방해야 할 남측정부가 이를 막지 못한 책임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북측의 남북공동연락사무소 폭파의 동기와 심정은 충분히 이해가 가지만, 그러한 절박한 문제를 충분히 다른 평화적 방법으로 해결할 수 있는 길을 택했어야만 했다. 북측도 남측당국에 행한 무례한 언사를 정중히 양해를 구하는 절차를 밟고, 우선 판문점선언과 평양공동선언  합의를 다시 복원하는 데 힘을 모아야 한다.       
   
4.27판문점선언 및 9.19평양공동선언에 규정한 대북전단 살포금지를 방치한 남측 당국은 북한에 대한 정중한 유감표명, 향후 재발방지 보장책 및 관련자 처벌을  약속해야한다. 물론 북측의 남측정부와 문재인 대통령에 대한 대응조치와 무례한 언사에 대해서도 유감표명이 있어야한다. 
    
다행히 북한이 6월 4일 이후 약 20여일 간 대남 군사적 공세분위기를 6월 24일 김정은 위원장의 대남 군사행보계획 보류 결정과 함께 북한태세가 전환됐다. 이로 인해 남북 간 긴장감은 다소 누그러진 모습이다. 그러나 절대 안심해서는 안 된다. 북한이 대남 군사행보계획을 완전하게 취소하거나 철회가 아닌 보류한 것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언제라도 재개될 가능성이 있다. 특히 남북 간 통신 연락선이 모두 끊겨 있으며 특사파견을 공개적으로 거절 한 것을  보면 남북대화와 교류협력이 당장 이뤄지긴 쉽지 않다.  
    
제21대 국회의 “대북전단살포금지법” 입법을 적극 환영한다. 또 현행법 내에서도 최대한 살포자를 엄단해야한다. 그러나 대북전단 살포는 접경지역의 생업과 안전을 위협하는 문제이다. 이것이 일회성으로 끝나서는 안 된다. 집권정당과 정부는 북한 측의 납북공동연락사무소 폭파라는 결과라는 현상만 보지 말고, 더 깊은 심층적 배경을 보고 대처해야한다. 그래서 우리는  당국과 21대 국회에 “대북전단살포금지법” 입법을 계기로 4.27판문점선언 및 9.19평양공동선언의 실천이라는 차원에서 한반도에서 적대관계를 근본적으로 종식하는 한-미 연합군사훈련 중단을 포함하여 “냉전 법령 개폐 대장정”을 치밀하게 지속적으로 발전시키는 획기적 출발점으로 삼을 것을 정중하게 건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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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인들이 ‘소원수리’ 대신 청와대 국민청원을 이용하는 이유

비리 사실 고발해도 변하지 않는 군대
 
임병도 | 2020-06-25 08:16:42 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인쇄하기  메일보내기    
 
 


 

군대에는 ‘소원수리함’, ‘병영신문고’, ‘병사의 소리’ 등 군인들이 복무 중 겪는 부조리나 가혹행위 등의 애로사항을 적어 내면 해결해주는 제도가 있습니다. 그런데 갓 전입 온 신병을 빼고는 모두들 사용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선임병들은 후임병들에게 소원수리를 냈을 때 돌아오는 후폭풍을 더 많이 알려줍니다.

가령 소원수리를 통해 선임병들이 욕설을 하거나 가혹 행위를 했다고 써서 제출하면 일단 당사자들을 불러 조사는 합니다. 조사가 끝난 뒤 가혹행위 사실이 드러나면 가해 선임병은 군기교육대 며칠 갔다 오면 끝입니다. 그러나 소원수리를 한 후임병은 고참을 고발한 배신자로 찍혀 이전보다 더 심한 왕따나 가혹 행위를 당합니다.

지휘관들은 소원수리를 통해 부대 비리가 밝혀지는 것을 감추려고 합니다. 진급에 악영향을 끼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피해 병사를 불러 무마시키거나 부대 외부로 이런 사실이 드러내지 않도록 철저히 입단속을 시킵니다.

군대를 다녀온 사람이라면 누구나 다 아는 이야기입니다. 그런데 요새 병사들은 ‘소원수리’ 대신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을 이용해 부대 내 비리를 고발하고 있습니다.

비리 사실 고발해도 변하지 않는 군대, 청와대 국민청원은 다르다

 

6월 24일 법사위 군사법원 업무보고 자리에서 더불어민주당 김남국 의원은 정경두 국방부 장관에게 군인들이 소원수리 대신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을 이용할 수밖에 없는 이유를 설명했습니다.

김 의원은 청와대 국민청원에 올린 공병여단 부조리에 대해서 이미 해당 부대가 1월에 감찰 조사를 벌였지만 간단한 경고 조치만 했다고 밝혔습니다.

김 의원은 지휘관이 오히려 피해 병사를 공개하고 보복성 조치를 취했다며 “군대 내 부조리를 용기 있게 고발하면 개선되는 것이 아니라 보복이나 불이익을 당한다. 그래서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을 이용할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습니다.

김남국 의원은 정경두 국방부 장관에게 “군대 내부에서 부조리를 신고할 수 있는 시스템을 다시 한번 살펴봐야 한다”라고 요구했고, 정 장관은 김 의원의 지적에 대해 “군대 내 20개 이상의 부조리 고발 시스템이 있지만, 청와대 국민청원 같은 외부 시스템의 도움을 받는 현실에 대해 송구스럽게 생각한다”고 답변했습니다.

정경두 국방장관은 “내부의 시스템이 공정하게 작동할 수 있도록 강조하겠다”고 덧붙였지만, 현재 시스템이 투명하게 공개되는 상황이라 부모의 재력 등으로 인한 특혜는 없었다며 공군 ‘황제병사’ 감찰 결과를 신뢰하고 있음을 내비쳤습니다.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글을 올리기 전에 중대장 확인?

▲육군공병여단장의 부조리와 가혹행위를 고발한 청와대 국민청원게시판에 올라온 글

더불어민주당 백혜련 의원은 “군장병들이 청와대 게시판이라든지 외부 기관에 도움을 요청했을 때 해결될 수 있다는 메시지를 본 부분이 중요하다”고 말했습니다.

백 의원은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글을 올리기 전 중대장이나 대대장에게 먼저 보고하라는 교육이 이루어진다는 언론 보도가 나왔다. 사실인가”라며 정경두 국방장관에게 물었습니다. 정 장관은 “확인 중에 있다”며 “만약 그런 사실이 있다면 잘못된 점이라 응분의 조치를 취하겠다”고 답변했습니다.

정경두 국방장관의 답변을 현장에서 들었지만, 기자부터 그의 말을 신뢰하기 어려웠습니다. 실제로 백 의원도 “공직생활을 해봐서 알지만, 상관들은 모든 게 자유스럽고 투명하다고 생각하지만 사병들의 입장은 다르다. 열린 마음으로 보고 다양한 통로를 만들기 위해서 고민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습니다.

기자가 92년에 군 복무를 할 때도 소원수리를 해봤자 전혀 개선되지 않는다는 얘길 들었고 목격했습니다. 그로부터 28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소원수리를 해도 변하지 않고 있음을 확인했습니다. 그때와 다른 것이 있다면 지금은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이 있다는 점입니다.

현역 장병들이 그나마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을 이용할 수 있으니 다행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그 방법 외에는 뾰족한 수가 없는 군대를 보면 답답하게만 보입니다.

 
본글주소: http://www.poweroftruth.net/m/mainView.php?kcat=2013&table=impeter&uid=20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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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사행동 보류’…, 어쩌면 마지막 기회일지도

  • 기자명 강호석 기자
  •  
  •  승인 2020.06.24 18:56
  •  
  •  댓글 1
    •  
 
김정은 국무위원장 주재로 23일 열린 조선로동당 중앙군사위원회 제5차회의 예비회의에서 대남 군사행동 계획을 보류했다.

앞서 조선인민군 총참모부가 밝힌 대남 군사행동은 ▲금강산관광지구와 개성공업지구 시설 철거와 군부대 재배치 ▲철수했던 비무장지대 초소 재건 ▲중단했던 접경지역 군사훈련 재개 ▲대남 삐라 살포 투쟁 군사적 보장이다.

멈출 것 같지 않던 북한(조선)의 대남 공세가 이날 예비회의를 통해 보류된 이유는 무엇일까?

이례적으로 예비회의를 공개한 점, 안건 심의를 마친 제5차 회의가 조만간 열린다는 점, 폐기가 아닌 ‘보류’라고 한 점 등으로 미뤄볼 때 남측 정부에 마지막 기회를 준 것으로 보인다.

특히 김정은 위원장이 직접 나서 제5차 회의 때까지 말미를 준 만큼 문재인 정부는 절호의 기회를 놓쳐선 안 된다.


무엇보다 과거 통일외교 정책 수립 과정에 나타난 오류부터 바로잡아야 한다.

먼저, 문재인 정부는 ‘미국이 한반도 비핵화와 평화를 바란다’는 환상에서 벗어나야 한다.

미국은 한반도 비핵화는 물론이고 평화로운 한반도를 절대 원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미국으로선 남북이 서로 싸워야 무기도 팔고 주한미군 주둔비(방위비 분담금)도 올릴 수 있는데, 한반도가 비핵화되어 분쟁과 대결이 사라지는 불이익을 미국이 자처할 리 없기 때문이다.

미국이 한반도 평화를 원하지 않는다는 것이야 종전선언을 거부하고 평화협정 체결을 외면 할 때 이미 확인되고도 남았다. 종전선언과 평화협정이 체결되면 주한미군의 주둔 명분이 사라지고, 지금까지 한국에서 누려온 미국의 지배력이 하루아침에 날아가 버릴 수 있는 위험천만한 모험을 미국은 시도할 리 없다.

미국에 대한 환상이 사라지면 문재인 정부가 비핵화와 평화를 위해 누구에게 무엇을 요구해야 하는지 명백해진다. 지금까지 문재인 정부가 미국을 등에 엎고 북한(조선)에 비핵화 실패의 책임을 물은 것은 번지수를 한참 잘못 찾은 것이다. 마치 소경이 개천 나무라는 격이랄까.

다음으로, 친미정권이라는 믿음만 주면 미국이 군사작전통제권 등 대한민국의 자주국방을 보장하고 남북관계 개선도 허락할 것이라는 헛된 꿈을 버려야 한다.

전쟁이 끝난 지 70년이 다 되도록 미국이 군사작전통제권을 돌려주지 않는 이유는 대한민국 역대 정부가 친미를 덜 해서도 아니며, 미국 무기를 적게 사줘서도 아니다.

문재인 정부가 꿈꾸는 일명 ‘친미자주’ 노선은 일제강점기에 ‘친일을 잘하면 독립할 수 있다’는 주장처럼 이 땅에 존재할 수 없는 가설이다.

자주권은 오로지 항전을 통해서만 쟁취할 수 있는 권리임을 우리 민족은 일제강점기를 통해 충분히 배우고도 남았다.

문재인 정부가 ‘친미자주’ 노선을 버리고 4‧27판문점선언에서 약속한 ‘우리 민족의 운명은 우리 스스로 결정한다는 민족 자주의 원칙’을 확인한다면, 자주국방과 남북합의서 이행을 위해 한미 워킹그룹의 승인을 받아야 할지, 미국의 부당한 간섭에 저항하고 워킹그룹을 탈퇴해야 할지 명백해진다.

마지막으로, 북한(조선)이 경제적 어려움을 극복하기 위해 결국엔 미국에 대북제재 해제를 사정할 것이란 착각에서 깨어나야 한다.

미국의 대북제재를 극복하기 위한 북한(조선)의 노선은 이미 여러 차례 밝힌 것처럼 ‘자력갱생’을 통한 정면돌파전이다. 결코 제재 해제를 미국에 사정할 나라가 아니다.

사실 문재인 대통령보다 이런 북한(조선)을 잘 아는 사람도 드물다. 문재인 대통령은 평양에서 시민들에게 “어려운 시절에도 민족의 자존심을 지키며 끝끝내 스스로 일어서고자 하는 불굴의 용기를 보았다”는 말로 과거 북한(조선)이 고난의 행군 시절 미국의 대북제재를 이겨낸 ‘자주노선’을 높이 평가한 바 있다.

하물며 코로나 정국에서 조차 초고속 경제 성장을 거듭하는 북한(조선)이 제재를 피하기 위해 미국에 손을 내미는 일은 있을 수 없다.

문재인 대통령이 이제라도 평양연설 때 기억이 떠오른다면, 미국에 대북 제재 해제를 사정하러 다닐 대신, 개성공단과 금강산관광을 당장 재개하고 철도‧도로 연결 등 이미 합의된 남북 간 경제협력에 매진할 생각이 들 것이다.



출처 : 현장언론 민플러스(http://www.minplus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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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에서 첩자, 남에선 간첩으로 불린 사나이

[한국전쟁 70주년 특집 - 월남민] <아버지의 이메일> 홍재희 감독이 말하는 '아버지의 전쟁'

20.06.25 07:14l최종 업데이트 20.06.25 07:14l
1950년 6월 25일. 식민지시대가 끝난 지 5년도 안돼 한반도에서 전쟁이 발발했다. '한국전쟁' 혹은 '6.25전쟁'은 이후 한국사회의 모든 구조를 주조했다. 그 전쟁이 발발한 지 무려 70년이 흘렀다. <오마이뉴스>는 한국전쟁 70주년을 맞아 전쟁의 또다른 상흔인 화교부대병 2세와 소년병, 월남민 2세의 목소리를 들어봤다.   [편집자말]
 연출자 월남민 2세 홍재희 감독" class="photo_boder" style="border: 1px solid rgb(153, 153, 153); display: block; text-align: center; max-width: 600px; width: 600px;">
▲  월남한 아버지의 이야기를 다룬 다큐멘터리 영화 <아버지의 이메일> 연출자 월남민 2세 홍재희 감독
ⓒ 이희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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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는 '북조선을 떠나고 싶었다'고 했다. 친할아버지가 남쪽에 내려갔다는 이유로 아버지는 차별에 시달렸다. 당시 북한에서는 학교 수업을 마치고 학생들을 모아 자아비판을 시켰다. 친할아버지와 큰아버지가 남한에 있던 아버지는 모든 비판의 대상이었다. 아이들은 아버지를 향해 '남조선의 첩자'라며 손가락질해댔다. 아버지에게 북조선은 희망이 없는 곳이었다.

아버지는 당신의 어머니와 동생에게 '꼭 데리러 오겠다'라고 약속했다. 지킬 수 없을 약속인지도 모르고 그렇게 말했다. 열네 살의 아버지는 세 번의 시도 끝에 38선을 넘어 남한 땅을 밟았다. 황해도 황주에서 해주, 개성을 거쳐 문산에 도착한 것이다.  

1948년, 드디어 기회의 땅, 희망의 땅, 배움의 땅에 다다른 아버지는 친할아버지가 있는 인천으로 향했다. 섣부른 꿈이었을까? 2년 뒤, 한국전쟁이 발발했다. 아버지는 "지긋지긋한 인민군을 2년 만에 또 만나게 되니 억장이 무너졌다"라고 했다.

홍재희 감독은 다큐멘터리 <아버지의 이메일>(2014년)을 통해 이러한 아버지의 삶을 담담히 쫓았다. 한때 아버지가 죽기를 바랐던 딸은 아버지가 세상을 떠나기 전 1년 동안 보낸 43통의 이메일을 하나하나 되새겼다. 1934년 황해도 황주군 출생의 홍성섭. 아버지의 삶에는 한국전쟁과 베트남 파견 노동자, 중동건설 노동자로 지낸 시대가 아프게 새겨져 있었다. 

해외이민을 꿈꾸다
   

 연출자 월남민 2세 홍재희 감독이 보관 중인 아버지의 과거 사진들." class="photo_boder" style="border: 1px solid rgb(153, 153, 153); display: block; text-align: center; max-width: 600px; width: 600px;">
▲  월남한 아버지의 이야기를 다룬 다큐멘터리 영화 <아버지의 이메일> 연출자 월남민 2세 홍재희 감독이 보관 중인 아버지의 과거 사진들.
ⓒ 이희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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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재희 감독 아버지 홍재희 감독 아버지인 홍성섭씨가 베트남에서 일하던 시절. 아버지는 베트남에서 크레인 기술자로 일했다.
▲ 홍재희 감독 아버지 홍재희 감독 아버지인 홍성섭씨가 베트남에서 일하던 시절. 아버지는 베트남에서 크레인 기술자로 일했다.
ⓒ 홍재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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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재희 감독의 아버지 홍성섭씨가 사우디에서 일했던 시절. 홍 감독의 아버지는 중동건설 노동자로 일했다. 아버지는 늘 이민을 꿈꿨지만, 갈 수 없었다.
▲ 홍재희 감독의 아버지 홍성섭씨가 사우디에서 일했던 시절. 홍 감독의 아버지는 중동건설 노동자로 일했다. 아버지는 늘 이민을 꿈꿨지만, 갈 수 없었다.
ⓒ 홍재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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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가 6.25나 베트남전쟁에 군인으로 참전한 적은 없어요. 하지만 6.25로 황폐화된 땅에서 모든 걸 잃고, 베트남전쟁에서 크레인 기술자로 베트남에 살았죠. 전쟁을 피해갔다고 할 수 없는 삶이죠."  전쟁의 상흔은 참전용사에게만 있는 게 아니다. 아버지가 술을 마시면 홍 감독과 언니·동생을 꿇어 앉히고 바짓가랑이를 올려 상처를 보였다. 아버지는 "총탄을 맞고도 끝끝내 38선을 넘어 내가 여기까지 왔다"라면서 훈장처럼 상처를 내보이며 일장연설을 했다. 홍 감독의 눈에는 38선을 넘으며 꿨던 꿈을 이루지 못한 자의 울부짖음으로 들렸다.


"6.25만 아니었다면, 조금은 달랐을지도 모르죠. 전쟁 이후 모든 삶이 무너졌으니까요. 하루아침에 판잣집에 살게 됐고, 모든 걸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했죠. 아버지는 그게 한이 됐을 거예요. 빨갱이를 피해 왔는데, 또 빨갱이를 만났다고 생각하니까 이 나라를 떠나고 싶어 했어요."

실향민이 남한 땅에서 발붙이고 살 방법은 '경찰' '군인'밖에 없어 보였다. 간첩이 아니라는 증거, 인민군을 증오한다는 것을 증명하듯 남한으로 내려온 아버지의 친척들은 모두 경찰이거나 군인이었다. 하지만 아버지는 자유로운 사람이고 싶어했다. 한국전쟁을 겪고 베트남전쟁 당시 기술자로 베트남에 살았던 아버지는 이민을 꿈꿨다.

"아버지는 북한과 남한 땅 어디에도 속하지 못한 사람이었죠. 북한에서는 첩자 소리를 들었고, 남한에서는 간첩이라는 수군거림을 들어야 했으니까요. 누구보다 빨갱이에 치를 떨었지만, 빨갱이라는 낙인이 떨어지지 않았던 거죠. 아버지가 자유로울 곳, 손가락질받지 않을 곳은 외국밖에 없다고 생각했겠죠. 아버지는 이민을 꿈꿨어요."

하지만 아버지의 꿈은 다시 '빨갱이'라는 낙인에 무너졌다. 아버지의 비자는 번번이 거절당했다. 베트남에서는 브라질로 이민을 가려고 했지만 안됐다. 미국 이민도 실패했다. 아버지는 마흔셋에 사우디아라비아 건설 현장으로 일하러 갔고, 오스트레일리아 이민을 알아봤지만 이것도 이뤄지지 않았다.

"아버지는 나중에야 그 이유를 알게 됐어요. 처남들이 보도연맹사건에 연루된 '빨갱이'라 여권도, 비자도 나오지 않았던 거죠. 아버지는 이룰 수 없는 꿈에 실망했고 낙담했어요. 그렇게 매일 술을 마셨어요."

신청하지 않은 이산가족찾기
   
 연출자 월남민 2세 홍재희 감독이 아버지의 과거 사진을 들고 있다. " class="photo_boder" style="border: 1px solid rgb(153, 153, 153); display: block; text-align: center; max-width: 600px; width: 600px;">
▲  월남한 아버지의 이야기를 다룬 다큐멘터리 영화 <아버지의 이메일> 연출자 월남민 2세 홍재희 감독이 아버지의 과거 사진을 들고 있다.
ⓒ 이희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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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민의 꿈이 무너지자 술과 폭력의 강도는 점점 세졌다. 얼굴에 가지 크기의 멍이 든 어머니를 마주해야 했고, 중학생이 된 남동생은 아버지를 말리며 몸싸움을 하기도 했다. 1990년대에도 2000년대에도 아버지는 1950년대를 살았다. 아버지는 한국전쟁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아버지는 전쟁의 2차 피해자였죠. 그 시대를 살았던 사람은 누구든 전쟁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하잖아요. 총탄을 마주한 사람은 돌아와서 제대로 살기 힘들어요. 사회 전체가 6.25라는 총탄을 맞았어요. 그런데 그걸 어떻게 잊겠어요. 아버지는 서운하고 억울했을 거에요. 자기가 열심히 하면 된다고 생각했는데, 시대는 그렇지 않았으니까요. 남북 편을 나누고 어디서 왔는지 사람을 가르고 그렇게 차별했으니까요."

술을 마시며 점점 나락으로 떨어지는 아버지에게서 홍 감독은 전쟁의 상흔을 봤다. 아버지는 왜 술에 의지해야 했을까. 왜 화를 냈을까. 왜 술을 마시지 않을 땐 말이 없을까. 왜 한 줌도 안되는 엄마의 뺨을 때려야 했을까.

하지만 아버지의 분풀이를 온몸으로 겪은 어머니의 원망은 한국전쟁으로 향했다. 어머니는 홍 감독에게 "6.25로 집이 망했고 오빠들이 빨갱이로 몰렸다, 집이 망하지만 않았어도 아버지랑 선보고 결혼할 일 없었다"라고 말했다. 아버지를 만난 걸 한국전쟁 탓으로 돌렸다. 알코올중독인 아버지랑 사는 것도, 가정 폭력에 시달리는 것도, 모두 한국전쟁 때문이었다.
 
홍재희 감독 가족사진 홍재희 감독 가족사진. 아버지의 품에 안겨있는 딸이 홍 감독.
▲ 홍재희 감독 가족사진 홍재희 감독 가족사진. 아버지의 품에 안겨있는 딸이 홍 감독.
ⓒ 홍재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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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굳이 말할 필요도 없이 이상한 논리죠. 그런데요, 어머니는 정말 그렇게 믿었어요. 모든 게 전쟁탓이다, 다 6.25 때문이라고요. 한 때는 그런 어머니랑 싸웠죠. 무슨 말도 안되는 이야기를 한다고요. 그런데 지금은 조금 이해해요. 부모님 세대는 자신의 삶과 인생이 역사 때문에 뒤틀린 세대예요."

2008년 아버지가 세상을 뜨고 홍 감독은 꿈속에서 아버지를 만났다. 꿈속에서 아버지는 살아서는 볼 수 없었던 미소를 지어 보였다. 환한 웃음이었다. 홍 감독은 그곳이 북한 땅이라고 생각했다. '아버지가 드디어 당신의 어머니를 만났구나, 두고 온 동생들을 만나 한풀이를 했구나' 싶었다.

"어렸을 때 KBS에서 이산가족찾기를 했잖아요. 그때 아빠는 종일 그걸 봤어요. 여의도공원을 돌아다니기도 했고요. 하지만 이산가족찾기 신청은 죽어도 하지 않았어요. 다 죽었을 거라고 스스로 체념했죠. 금강산관광 때도 모시고 가려 했는데, 아버지가 싫다고 했어요. 빨갱이가 지배하고 있는 한 그 땅은 밟지 않겠다는 거였어요. 아버지의 머릿속은 여전히 6.25 중이었던 거죠."

지긋지긋한 '빨갱이 프레임' 벗어나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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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월남한 아버지의 이야기를 다룬 다큐멘터리 영화 <아버지의 이메일> 연출자 월남민 2세 홍재희 감독
ⓒ 이희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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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재희 감독은 한국사회 곳곳에 6.25의 흔적이 있다고 본다. 성조기를 들고 광화문을 에워쌌던 어른들도, 북한이라는 말에 거품을 무는 사람들에게도, 한국전쟁의 잔상이 남아 있다고 생각한다.

"아직도 6.25를 겪어내는 게 개인의 잘못일까요. 우리는 한 번도 전쟁을 제대로 직면하고 기억하며 떠나보낸 적이 없어요. 우리 사회가 그럴 시간을 주지 않았어요. 항상 빠르게 성장해야 했고, 누구보다 앞서서 부지런 해야 했으니까요. 200~300년에 걸쳐 전쟁을 돌아보고 반성하고 치유했던 기억이 우리에게는 없어요. 전쟁의 상처에 시달리는 건 어쩌면 당연한 일이에요."

홍 감독은 "더 열심히 더 꾸준히 전쟁을 기억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홍 감독의 가족처럼 한국전쟁으로 인한 상처를 가족이 고스란히 짊어지는 것이 아니다. 사회가 적극적으로 상처를 직면할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는 뜻이었다.

그는 "개인의 이야기를 할 수 없는 사회는 자꾸 병들 수밖에 없어요, 태극기를 들고 보수집회에 참석하는 어르신들의 말을 우리가 제대로 듣기나 하나요?"라고 반문했다. 그리고는 긴 한숨을 내쉬었다.

"지긋지긋한 빨갱이 프레임에서 벗어나려면, 전쟁을 겪은 사람들의 이야기, 상처가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더 열심히 들어야 해요."
 
 연출자 월남민 2세 홍재희 감독이 보관 중인 아버지의 과거 사진들." class="photo_boder" style="border: 1px solid rgb(153, 153, 153); display: block; text-align: center; max-width: 600px; width: 600px;">
▲  월남한 아버지의 이야기를 다룬 다큐멘터리 영화 <아버지의 이메일> 연출자 월남민 2세 홍재희 감독이 보관 중인 아버지의 과거 사진들.

ⓒ 이희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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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삐라 단체' 박상학, 취재진 폭행하고 벽돌 던져...경찰관엔 가스총 쏴

여성PD 머리채 잡고, 취재진에 벽돌 던져...경찰 수사 착수

SBS에 따르면 SBS <모닝와이드> 팀은 지난 23일 밤 대북 전단 기습 살포 경위와 향후 계획 등을 묻기 위해 자유북한운동연합 박상학 대표 집을 찾아갔다. 당시 박상학 대표는 집 앞에서 취재진을 발견한 후 다짜고짜 취재진을 폭행했다.

 

카메라를 든 취재진에 주먹질을 했다. 주먹을 맞은 한 취재진은 입 밖과 입 속이 찢어지는 부상을 당했다. 또한 욕설을 하면서 여성 PD의 머리채를 잡아 당기기도 했다. 벽돌을 취재진에게 던지는 위험천만한 행동까지 나왔다.

 

SBS는 "폭행당한 취재진은 모두 4명, 한 명은 뇌진탕 증세로 2주 진단을 받았고, 부상이 심한 두 명은 병원에서 치료를 받고 있다"고

박 대표의 적나라한 폭행 장면들은 카메라에 고스란히 찍혔다.

 

심지어 박 대표는 폭행을 말리는 경찰관을 향해 소지하고 있던 가스총을 분사하기도 한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은 "피해자 조사 이후 박 대표를 상대로 정확한 범행 동기와 경위를 확인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SBS 취재진을 폭행하고 있는 박상학 대표. 박 대표의 끔찍한 폭행 장면은 카메라에 고스란히 담겼다. ⓒSBS 화면 갈무리

이명선

방송국과 길거리에서 아나운서로 일하다, 지금은 '언론 협동조합 프레시안 기자' 명함 들고 다닙니다.

이명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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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https://www.pressian.com/pages/articles/2020062507292006229 프레시안(http://www.press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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北 김영철, "북남관계 전망 南 태도와 행동에 달려"

  • 분류
    아하~
  • 등록일
    2020/06/25 09:51
  • 수정일
    2020/06/25 09:51
  • 글쓴이
    이필립
  • 응답 RSS
北 김영철, "북남관계 전망 南 태도와 행동에 달려"(전문)
이승현 기자  |  shlee@tongil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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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20.06.25  07:3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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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8년 2월 평양동계올림픽 폐막식 참석차 방남한 김영철 부위원장. [통일뉴스 자료사진]

"조선반도의 군사적 긴장완화는 일방의 자제와 선의적인 행동의 결과만으로는 실현될 수 없으며 호상(상호)존중과 신뢰에 기초한 쌍방의 노력과 인내에 의해서만 비로소 지켜지고 담보될 수 있을 것이다."

김정은 위원장의 '대남 군사행동계획 보류' 지시 이후 하루 만인 24일 저녁 김영철 조선노동당 부위원장은 담화를 발표해 "남조선 당국의 차후 태도와 행동 여하에 따라 북남관계 전망에 대하여 점쳐볼 수"있다며 이같이 밝혔다.

'남조선군부에 주의를 환기시킨다'는 제목의 이날 담화는 형식적으로는 같은 날 정경두 국방부장관이 국회에 출석해 '대남 군사행동 보류가 아니라 철회되어야 한다'는 발언에 대한 경고를 담고 있지만, 격화일로를 걷던 남북관계를 끝내고 긴장 완화 국면으로 전환할 수 있는 가능성을 제시했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김영철 부위원장은 정경두 장관의 국회 발언에 대해 "남조선 당국의 차후 태도와 행동 여하에 따라 북남관계 전망에 대하여 점쳐볼 수 있는 이 시점에서 남조선 '국방부' 장관이 기회를 틈타 체면을 세우는데 급급하며 불필요한 허세성 목소리를 내는 경박하고 우매한 행동을 한데 대하여 대단히 큰 유감을 표하지 않을 수 없다"고 지적했다.

북의 대남 군사행동계획은 '보류'가 아니라 '철회'되어야 한다고 한 정 장관의 언급에 대해서는 '도가 넘는 실언', '매우 경박한 처사'라고 하면서, "위협적으로 들릴지는 모르겠지만 우리(북)의 '보류'가 '재고'로 될 때에는 재미없을 것"이라고 비꼬기도 했다.

남조선군부에 주의를 환기시킨다 (전문)
--김영철 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 부위원장 담화--
 
 
보도된바와 같이 6월 23일에 소집된 조선로동당 중앙군사위원회 제7기 제5차회의 예비회의에서는 조선인민군 총참모부가 제기한 대남군사행동계획들을 보류하였으며 추진중에 있던 일련의 대남행동들도 중지시키는 조치가 취해졌다.
 
남조선당국의 차후태도와 행동여하에 따라 북남관계전망에 대하여 점쳐볼수 있는 이 시점에서 남조선《국방부》 장관이 기회를 틈타 체면을 세우는데 급급하며 불필요한 허세성목소리를 내는 경박하고 우매한 행동을 한데 대하여 대단히 큰 유감을 표하지 않을수 없다.
 
조선반도의 군사적긴장완화는 일방의 자제와 선의적인 행동의 결과만으로는 실현될수 없으며 호상존중과 신뢰에 기초한 쌍방의 노력과 인내에 의해서만 비로소 지켜지고 담보될수 있을것이다.
 
남조선군부는 이 기회에 저들의 《대비태세》선전에 주력하는 모습을 생심먹고 연출해대면서 《철저한 대북감시유지》와 《대비태세강화》같은 대립적인 군사적성격이 농후한 행동강화립장을 두드러지게 표명하는가 하면 우리의 행동에 대해 무턱대고 《도발》이라는 극히 자극적인 표현들을 람발하고있다.
 
24일 《국회》 본청사에서 열린 그 무슨 법제사법위원회 전체회의라는데서 정경두 《국방부》 장관이 우리의 군사행동계획이 보류가 아닌 완전《철회》로 되여야 한다고 도가 넘는 실언을 한데 대하여 매우 경박한 처사였다는것을 경고하지 않을수 없다.
 
앞으로 저들의 철저한 《위기감시노력》과 《군사적대비태세》가 조선반도의 평화와 안정을 보장하는데 기여했다고 생색내기를 해볼 심산이였다면 너무도 부실하고 부적절한 시도라고 말해주고싶다.
 
언제인가 우리는 이번과 류사한 남조선《국방부》의 분별없는 언동을 놓고 겁을 먹은 개가 더 요란하게 짖어댄다고 평한적이 있었다.
 
우리가 공식적인 대남립장발표에서 다시 이런 험한 표현들을 쓰지 않도록 하려면 현명하게 사고하고 처신해야 할것이다.
 
위협적으로 들릴지는 모르겠지만 우리의 《보류》가 《재고》로 될 때에는 재미없을것이다.
 
남조선《국방부》의 때없는 실언탓에 북남관계에서 더 큰 위기상황이 오지 말아야 한다.
 
자중이 위기극복의 《열쇠》라는것을 알아야 한다.
 
  
 
주체109(2020)년 6월 24일
 
평 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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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리랑 애국가'로 민족정기 되살리자

[애국가에 무슨 일이 일어났나] 15

 

애국가에 무슨 일이 일어났나? 지금 우리 애국가에는 두 가지 은폐된 진실과 한 가지 전도된 사실이 있다. 은폐된 진실의 하나는 애국가 작곡자 안익태가 심각한 수준의 친일파이자 친나치 부역자로 그러한 사실을 우리 국민들에게 철저히 숨겨왔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그의 애국가 곡조가 불가리아 민요를 표절한 것임에도 끝까지 감춰왔다는 것이다. 한 가지 전도된 사실은 애국가 작사자 문제이다. 세간에는 윤치호 작사설이 우세하지만 임진택 씨는 도산 안창호 선생이 애국가 작사자임을 명백히 증명할 수 있다고 자신한다. 문화운동가이자 창작판소리 명창인 임진택 씨는 "안익태 애국가는 우리 민족의 수치"이지만 안창호 선생의 애국가 노랫말은 우리 민족의 심금을 울린 위대한 가사로 평가받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지난해부터 안익태 곡조 대신 '아리랑'에 애국가 가사를 얹어 부르는 '아리랑 애국가' 운동을 펼치고 있는 그는 '아리랑 애국가'로 민족 정기를 되찾고 장기적으로는 국민들의 뜻과 지혜를 모아 한국을 진정으로 대표할 수 있는 애국가를 만들어야 한다고 역설한다.(☞ 관련 기사 : "친일파 애국가 대신 '아리랑 애국가' 불러야 할 때")

다음은 연재 순서.(편집자)

1. 두 개의 감춰진 진실과 한 개의 뒤집힌 사실

2. 애국가, 언제 어떻게 생겨났나?

3. 안익태의 두 얼굴 - 애국가 작곡 : 친일·친나치 행각

4. 하나씩 벗겨진 안익태의 거짓말

5. 안익태 애국가 곡조의 불가리아 민요 표절설

6. 애국가 작사자 논쟁 – 안창호인가 윤치호인가?

7. '애국가 작사자 조사위원회(1955)' 활동의 전말(顚末)

8. 윤치호 '애국가 작사설' 물적(物的)증거에 대한 검토

9. '안창호 애국가 작사설' 전문증거(傳聞證據)에 대한 검토

10. 애국가의 원형 '무궁화노래'의 진실

11. 도산 안창호의 애국창가운동과 애국가

12. 애국가 노랫말에 담긴 뜻 – 애국가 시상(詩想)

13. 만신창이가 된 우리의 애국가, 이제 어찌할 것인가?

14. 애국가 교체와 국가(國歌) 제정에 관한 백가쟁명(百家爭鳴)

제 14편 글에서 나는 해방 이후 70여 년 동안 정치 성향이 다른 여러 언론과 학자·지식인, 혹은 관제단체에 의해 제기돼온 '애국가 개체(改替)' 또는 '국가(國歌) 제정'에 관한 갖가지 논란의 이면(裏面)에 숨어있는 의도를 추정해 보았다.(☞ 관련 기사 : 애국가 교체와 국가(國歌) 제정에 관한 백가쟁명(百家爭鳴)) 그 결과 애국가 개체(改替) 또는 국가(國歌) 제정 논란은 단순히 문화적·음악적 논쟁이 아니라 거기에는 정치적·이념적 배후(背後)가 존재한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또한 현행 애국가 가사에 대한 원색적인 불만 또는 무분별한 비판들은 기본적으로는 110년 전 망국(亡國)의 시대 상황과 광복(光復) 후 신국가(新國家) 건설의 시대 상황, 그리고 21세기 현금(現今)의 복잡다기(複雜多岐)한 시대 상황이 같지 않아 제기된 것이지만, 거기에는 적지 않은 '오해'와 '오류'가 개재(介在)해 있음을 발견하였다. 기실(其實) 그 '오해'는 우리 선대(先代)들의 피어린 투쟁의 고뇌와 체험을 깊이 성찰(省察)하지 못한 안이(安易)함에서 비롯된 것이며, 그 '오류'는 애국가 작사자를 친일 민족반역자 윤치호로 잘못 알고 있는 데서 생겨난 일종의 분개심(憤慨心) 또는 자괴감(自愧感)의 발로(發露)임을 발견하였다.

나는 우리 <애국가> 노랫말(후렴과 본가사 모두)의 작사자가 도산 안창호 선생임을 밝혀낸 동시에 그 노랫말에 담긴 깊은 뜻과 시상(詩想)에 관해서는 이 연재 제 12편에서 상세히 소개한 바 있다.(☞ 관련 기사 : 애국가 노랫말에 담긴 뜻 – 애국가 시상(詩想)) 이제 그동안의 애국가 개체(改替)를 둘러싼 여러 논란과 비판들을 충분히 참고하면서 향후 새로운 애국가, 바람직한 애국가를 어떻게 만들어나갈 것인지 그 대안을 모색해 보자.

이에 '새로운 애국가! 가사는 살리고 곡조는 바꾸자'고 하는 나의 관점은 초지일관(初志一貫)함을 다시 한번 천명해 둔다.

1. 새 애국가 또는 국가(國歌)의 가사와 곡조에 대한 제언들

그동안 새로운 <애국가>의 노랫말과 곡조의 방향성에 대한 제언들은 끊임없이 백가쟁명(百家爭鳴)식으로 있어 왔다. 이를 요약해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 우리의 전통과 긍지, 향기와 정조를 새로운 이념으로 재인식하고 새로운 각도로 재음미하여 국가 민족의 영원한 번영을 축복하는 가사로, 곡조는 실내악과 행진곡 자유자재로 활용할 수 있게 하며 특히 씩씩하고도 명랑하고 웅건하고도 경쾌하여 남녀노소 누구나 어디서든지 부를 수 있는 노래 – <동아일보>의 애국가 모집 공고(1945년 12월 15일)

● 애조(哀調)를 피하고, 진취적이고 건설적이며, 민족의 유구성(悠久性)이 있는 웅장한 리듬일 것 – <중앙신문> 애국가 가사 현상모집 공고(1946년 1월 17일)

● 보우(保佑)니 공활(空豁)이니 하는 어려운 가사가 아닌 쉬운 가사 – 아동문학가 윤석중

● 부르면 기뻐지는 희망찬 가사와 곡 – 서양화가 김환기, 소설가 최정희

● 진취적이고 장엄하며 활기에 넘친 가사 – <경향신문> 설문조사에 대한 시민 응답(1964년 2월 11일)

● 헌법 제1장 1조의 '민주공화국', 제2조의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제5조의 '자유 평등 창의'가 가사에 포함되도록 하자 - 음악평론가 박용구

● 백두산의 웅장한 정기를 타고, 삼면 바다의 대양을 내다보고서 멀리 나아가려는 기상과 동방의 새문명의 창조자로서의 이상(理想)을 강조하는 가사 – 한글학자 최현배

● 대중적이면서도 예술적인 국가(國歌) - 동양화가 천경자

● 서양식 찬송가가 아닌 한국적인 곡조... 7·5조를 피하자 - 작곡가 나운영

● 서양적인 작곡이 아닌 우리스러운 리듬 박자, 음계, 화성법에 입각한 우리 분위기가 있는 곡조 – 작곡가 박찬석

● 자유·평화·화합·단결·개국 이념 등을 나타낼 수 있는 새로운 국가(國歌), 겨레의 기백이 담겨 있는 고유의 리듬과 장엄 활기찬 곡조 – 안호상 국가제정추진위원장 명의로 발송한 설문서(1983년 4월)

● 우리의 민족적·역사적 특성을 살려 분단시대를 슬기롭게 극복하고 평화적으로 통일을 달성하는 그 환희와 민족적 자부심을 담아야... – 역사학자 강만길(1994년 <역사비평> 여름호 '통일조국의 국가' 설문에 대한 응답)

● 분단억압에 맞선 민중의 의지와 정서가 담겨야... 너도 살고 나도 살고 모두가 다 함께 잘 사는 세상을 어기차게 달구고 을러대는 위대한 비나리 – 통일운동가 백기완(1994년 <역사비평> 여름호 '통일조국의 국가' 설문에 대한 응답)

● 민족 고유의 정서가 담긴 민족음악 어법으로... 모든 국민이 쉽게 부르고, 우리 국민이 더 잘 부를 수 있는 음악어법으로, 그리고 '예술적으로 완성된' 훌륭한 애국가 – 작곡가 이건용(1994년 <역사비평> 설문에 대한 응답)

● 민족의 기개를 담은 우람하고 유장한 노래, 백두산처럼 하늘로 치솟고 한강물처럼 용틀임으로 굽이쳐 흐르는 그런 가락 – 시인 김준태(1994년 <역사비평> 설문에 대한 응답)

● 3.1 독립운동 100주년을 맞는 해, 친일·친나치 경력이 드러난 안익태 씨의 곡조를 계속 부를지 여부를 매듭지어야 한다. 자라나는 우리 미래세대가 친일 반애국자인 안익태의 애국가 곡조를 계속 부를 것을 생각하니 가슴이 아프다. - 자유언론실천재단 이사장 이부영(2019년 8월 8일 '안익태 곡조 애국가 계속 불러야 하나' 국회 공청회 발제문)

● 현재 애국가는 나라 사랑하는 마음을 일깨우는 노래로써 위상을 상실했다. 애국가를 부를 때 께름칙하다면 이미 그 생명력을 상실한 노래다. 우리 민족 공동체의 위상과 명예를 가슴 펴고 세워나갈 수 있는 애국가가 만들어졌으면 한다. - 광복회 회장 김원웅(2019년 8월 8일 국회 공청회 인사말)

이 많은 제언들을 한꺼번에 다 담아내기란 쉽지 않지만, 요약하자면 새로운 애국가는 '민족의 기개와 민중의 의지를 담아 진취적이고 장엄한 노랫말로 짓되, 민족 고유의 정서가 담긴 음악어법으로, 누구나 다 우러나서 함께 부르며 하나가 될 수 있는 노래'로 만들어져야 한다는 쪽으로 방향이 모였다고 본다.

2. '애국가'로서 손색없는 현대의 노래들

그동안 새로운 애국가 또는 국가(國歌)의 제정 방법에 있어 대부분의 사람들은 공모(公募)에 의한 선정(選定) 방식을 선호하여 왔다.

나는 이 부분이 무척 안이한 발상이라고 생각한다. 우선은 공모에 의해 아무리 빼어난 노랫말을 선택한다 하더라도 그것이 작곡과 결합되어 얼마나 완성된 수준에 다다를 수 있을지 아무도 장담 못 하기 때문이다.

공모에 의한 선정과 의뢰의 방식은 말이 쉽지 그 과정에서 생겨날 갈등과 대립을 조정하는 일부터가 쉽지 않다. 뿐만 아니라 그 결과가 아쉽게도 모든 국민이 받아들일 수준이 되지 못할 때, 돌이킬 방법이 없다.

심사위원회를 구성하여 공모를 통해 애국가 또는 국가를 제정하자는 발상은 사실상 무책임한 발상이다. 심사위원(전형위원)이 누가 될 것인지부터 논란의 대상이 될 수 있고, 무엇보다 국민들의 실질적 검증을 받지 않고 당선된 작품이 과연 진정한 호응을 얻어낼 수 있을지 장담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단도직입적으로 발언하자면, 막대한 현상금을 걸고 애국가 국민공모를 하게 되면, 응모 규정에 맞춘 상투적인 작품이 도리어 높은 점수를 받을 가능성마저 생겨난다. 어쩌면 '나의 조국' 같은 사이비 작품이 당선하게 될지도 모른다. 단언컨대 막대한 현상금을 목표로 그제야 관심을 갖고 응모하는 작사자나 작곡자의 경우 전문성은 있을지 모르나 그들에게서 나라와 겨레, 애국가를 향한 책임감과 진정성을 찾아보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돌아보면 국민 공모 현상모집 이전에 벌써 애국가로서 손색없는 많은 노래들이 자발적으로 만들어지고 불리어 왔다. 그 노래들 중에는 이미 역사의 구비마다 실질적인 '애국가'로서의 기능을 수행해온 작품들도 적지 않다.

국민 공모를 굳이 한다면 지금 특정인을 선정하여 새 작품을 만들기보다는 이미 자발적으로 애국적 의지에 의해 생산되고 보급된 많은 '애국의 노래' 중에서 국민 참여 과정을 통해 애국가 군(群)을 선정하는 것이 차라리 바람직하다.

그 결과는 안익태 애국가의 독점적 구조를 해체함에 있어 대단히 큰 효과를 가져올 수 있고, 각계각층으로 다양한 애국가의 분포와 활용을 유도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또한 그 결과에 바탕하여 압도적인 호응을 얻은 작품이 공식 <애국가> 또는 정식 국가(國歌)의 자리에 자연스럽게 다가갈 수도 있다.


이에 내가 생각하는 ''애국가'로서 손색 없는 현대의 노래들'을 추천해보면 다음과 같다.

유튜브 등으로 직접 노래를 들어보면서 노랫말을 찬찬히 음미(吟味)해보면 더 좋은 느낌과 판단을 가질 수 있을 것이다.

1) <아침이슬> – 김민기 작사·작곡

긴 밤 지새우고 풀잎마다 맺힌

진주보다 더 고운 아침이슬처럼

내 맘에 설움이 알알이 맺힐 때

아침 동산에 올라 작은 미소를 배운다.

태양은 묘지 위에 붉게 떠오르고

한낮에 찌는 더위는 나의 시련일지라

나 이제 가노라 저 거친 광야에

서러움 모두 버리고 나 이제 가노라

* 김민기의 '아침이슬'은 70년대 이후 우리 사회 민주화운동의 상징적인 노래이다. 군사독재정권의 억압 속에서 수많은 학생 청년 지식인들이 이 노래를 혼자 또는 여럿이 함께 부르면서 어두운 밤을 이겨냈다. 억눌려 서러운 자신의 시련을 떨쳐내고 떳떳이 나아가고자 하는 자기정화의 조용한 절규(絶叫)로서, 60대 이상 장년(長年)층의 마음속에 깊이 남아있는 노래이다.

독재시대에 정작 공식 <애국가>는 국가주의적 획일주의를 동원하는 수단이었음에 '아침이슬'은 강요된 국가주의에서 벗어나려는 자기갱신의 노래였다. 그러므로 '아침이슬'은 정부나 지방자치단체의 공식적·관제적 행사에서 강요된 고유명사로서의 '애국가'와는 달리, 애기애타(愛己愛他)의 결단과 연대가 요구되는 각종 모임과 집회에서 자발적으로 불린 보통명사로서의 '애국가'였다.

2) <내 나라 내 겨레> - 김민기 작사, 송창식 작곡

보라 동해에 떠오르는 태양

누구의 머리 위에 이글거리나

피맺힌 투쟁의 흐름 속에

고귀한 순결함을 얻은 우리 위에

보라 동해에 떠오르는 태양

누구의 앞길에서 훤히 비치나

찬란한 선조의 문화 속에

고요히 기다려온 우리 민족 앞에

숨소리 점점 커져 맥박이 힘차게 뛴다

이 땅에 순결하게 얽힌 겨레여

보라 동해에 떠오르는 태양

우리가 간직함이 옳지 않겠나

독백(읊조림)

나의 조국은 허공에 맴도는 아우성만 가득한 이 척박한 땅,

내 아버지가 태어난 이 곳만은 아니다.

북녘땅 시린 바람에 장승으로 굳어버린 거대한 바위덩어리

내 어머니가 태어난 땅,

나의 조국은 그 곳만도 아니다.

나의 조국은 찢긴 철조망 사이로 스스럼없이 흘러내리는 저 물결,

바로 저기 눈부신 아침 햇살을 받아

김으로 서려 피어오르는 꿈 속 그 곳, 바로 그 곳.

* 이 노래는 김민기가 대학생일 때 대중음악 평론가 이백천 씨와 정홍택 씨 눈에 띄어 대중가수 송창식씨와 합류한 자리에서 하룻밤 만에 만들어낸 불후의 명작이다.

이 노래의 처음 제목은 '동해의 태양'이었다는데, 나는 국가(國歌) 공모(公募)를 따로 할 필요도 없이 '내 나라 내 겨레'야말로 지금 바로 국가(國歌)로 지정되어도 전혀 손색이 없다고 생각한다. 그동안 가사와 곡을 놓고 많은 사람들이 지향했던 '바람직한 애국가'가 이미 나와 있지 않은가?

뿐만 아니라 이 노래에 사무치도록 눈부시게 담겨있는 '통일에의 꿈'은 북녘 사람들이 들어도 거부감이 있을 수 없는 순결과 숭고(崇高)의 경지에 다다라 있다. 통일된 후의 '우리 겨레 애국가'로도 손색이 없는 노래이다.

3) <상록수> - 김민기 작사 · 작곡

저 들에 푸르른 솔잎을 보라

돌보는 사람도 하나 없는데

비바람 맞고 눈보라 쳐도

온누리 끝까지 맘껏 푸르다

서럽고 쓰리던 지난 날들도

다시는 다시는 오지 말라고

땀 흘리리라 깨우치리라

거치른 들판에 솔잎 되리라

우리 가진 것 비록 적어도

손에 손 맞잡고 눈물 흘리니

우리 나갈 길 멀고 험해도

깨치고 나아가 끝내 이기리라

* '상록수'는 김민기가 젊은 시절 서울 변두리에서 야학 활동을 하던 중 가진 것 없는 야학 학생들을 위해 지은 노래였다. 아마도 심훈의 농촌계몽소설 '상록수'에서 영감(靈感)을 얻었을 터. 그런데 그 해, 1978년 12월 전라도 광주에서 들불야학을 만들어 활동하던 전남대 여학생 박기순이 불의의 사고로 그만 저세상으로 가고 말았다. 마침 광주 녹두서점에 들렀던 김민기가 이 소식을 듣고 박기순의 영결식에서 처음 직접 부른 노래가 이 '상록수'였다. 그리고 그 자리를 들불야학의 동지이자 선배인 윤상원(1980년 5월 광주항쟁의 마지막 시민군)이 지켜보고 있었다.

'상록수'는 후에 노무현 대통령이 이 노래를 좋아하고 자주 부름으로써 자연스럽게 '국민노래'가 되었다. 노무현 대통령이 서거했을 때도 영결식에서 양희은이 이 노래를 불러 님을 보내었다. 심훈의 소설 '상록수'에서 여주인공 채영신의 죽음을 박동혁이 떠나보냈듯, 박기순의 떠남을 윤상원이 지켜보았고, 노무현의 가심을 '상록수'가 배웅하였다.

'상록수'는 국가 경축일보다는 각급 학교의 공동(共同) 교가(校歌)나 소규모 노동자 집단 또는 사회봉사단체 등의 단체가(團體歌)로 매우 적합한 노래이며, 애국적·헌신적 삶을 산 누군가의 죽음을 떠나보내는 시공간에서도 매우 감동을 주는 노래라 할 수 있다.

4) <터> 한돌 작사·작곡

저 산맥은 말도 없이 오천년을 살았네

모진 바람을 다 이기고 이 터를 지켜왔네

저 강물은 말도 없이 오천년을 흘렀네

온갖 슬픔을 다 이기고 이 터를 지켜왔네

설악산을 휘휘 돌아 동해로 접어드니

아름다운 이 강산은 동방의 하얀 나라

동해바다 큰 태양은 우리의 희망이라

이 내 몸이 태어난 나라 온누리에 빛나라

자유와 평화는 우리 모두의 손으로

역사의 숨소리 그 날은 오리라

그 날이 오면은 모두 기뻐하리라

우리의 숨소리로 이 터를 지켜나가자

* 한돌은 대중가요계에서 혼탁(混濁)에 휩쓸리지 않고 순결한 노래들을 지켜온 선량한 작곡가이자 가수이다. 한돌의 대표작으로는 '터' 외에 '홀로아리랑'이 있는데, 두 노래 다 가사가 건강하고 애국적이다.

'터' 노랫말의 핵심개념을 보면 '산맥' '강물' '오천년' '설악산' '동해바다' '강산' '온누리' 등 국토와 역사에 대한 관심과 더불어 '자유' '평화' 등 민주적 가치에 대한 희망이 숨쉬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유사한 단어개념들을 동원한 박정희의 '나의 조국'이 관제(官製) 사이비 국가(國歌)라면 한돌의 '터'는 하얀 옷을 입은 백성들의 순수한 나라 사랑 노래이다.

한돌의 경우 곡조에 있어 우리 가락을 밑바탕에 깔고 있다는 점에서 특히 유의할 필요가 있다. '홀로아리랑'의 경우 우리 민요나 판소리의 기본 가락인 중머리장단에 전개되는 느낌이 확연하거니와, '터'의 경우 우리 풍물굿 농악의 삼채가락이 바탕에 깔려있다는 사실이 무척 흥미롭다. 하지만 나는 아직 이 노래를 삼채가락으로 해석하여 연주하거나 부르는 것을 듣지 못했다. 비교해서 설명하자면, 2002년 월드컵 축구대회때 수많은 청년들이 외쳤던 '대~한민국!'이라는 노랫말이 바로 사물놀이 농악에 맞춘 '삼채가락 응원가'였다.

5) <우리의 소원은 통일> - 안석주 작사, 안병원 작곡

우리의 소원은 통일, 꿈에도 소원은 통일

이 정성 다 해서 통일, 통일을 이루자

이 나라 살리는 통일, 이 겨레 살리는 통일

통일이여 어서 오라, 통일을 이루자

* 이 노래의 작사자와 작곡자는 부자(父子) 간이다. 1947년에 '우리의 소원'이라는 제목으로 나온 라디오 드라마 주제곡으로, 원래 가사는 '우리의 소원은 독립'이었다고 한다. 해방 후 미·소 점령하에서 독립을 염원하던 노래가, 분단이 고착된 후 통일을 염원하는 노래 가사로 바뀌었다고 한다.

'우리의 소원은 통일'은 이미 수십 년 동안 '애국가'의 기능을 해왔고 사실상 또 하나의 '애국가'로 존재하고 있다. 더욱이 북녘 사람들도 이 노래에 대해서는 거부감이 덜 한 탓에 남북 문화교류 현장에서 함께 부를 수 있는 대표적인 노래로 자리 잡았고 때로는 남북이 함께 국가(國歌)처럼 사용하기도 했다.

이 노래는 통일될 때까지 유효한 '애국가'이자 남북공동 국가(國歌)이다.

6) <그 날이 오면> 문승현 작사·작곡

한밤의 꿈은 아니리 오랜 고통 다한 후에

내 형제 빛나는 두 눈에 뜨거운 눈물들

한줄기 강물로 흘러 고된 땀방울 함께 흘러

드넓은 평화의 바다에 정의의 물결 넘치는 꿈

그 날이 오면 그날이 오면

내 형제 그리운 얼굴들 그 아픈 추억도

아 짧았던 내 젊음도 헛된 꿈이 아니었으리

그 날이 오면 그 날이 오면

(되풀이) 그 날이 오면 그 날이 오면

내 형제 그리운 얼굴들 그 아픈 추억도

아 피맺힌 그 기다림도 헛된 꿈이 아니었으리

그 날이 오면 그날이 오면

* 1980년대는 민중예술운동 진영(陣營) 입장에서 보면 '마당극운동' 그리고 '노래운동'의 시대였다. 수많은 민중가요들이 생겨나 민주화의 파도(波濤)가 되고 민중문화운동의 깃발이 되었다. 젊은 날 우리들의 투쟁과 다짐의 뜨거운 심장이었던 수많은 민중가요들, '타는 목마름으로' '광야에서' '그날이 오면' '이 산하에' '솔아 솔아 푸르른 솔아' '벗이여 해방이 온다' '직녀에게' '임을 위한 행진곡' 등. 이는 1910년 전후 국권강탈에 맞서 싸웠던 이른바 '애국창가운동'의 맥을 잇는, 1980년대 독재폭압의 질곡(桎梏)에 맞서 싸운 처절한 '노래운동'으로서의 '민중가요운동'이었다.

그 중에서도 '그날이 오면'은 서정적이면서도 비장한 노랫말에 음악적으로 절제된 완성도(完成度)로 해서 민중가요를 예술의 반열에 올려놓은 대표적인 곡이라 할 수 있는 바, 영화 '1987'의 마지막 장면을 장식한 엔딩 뮤직(ending music)이 바로 이 노래!

지금 바로 '애국가'로 채택해도 전혀 손색없는 노래이다.

7) <이 산하에> 문승현 작사·작곡

1절 - 기나긴 밤이었거든 압제의 밤이었거든

우금치 마루에 흐르던 소리없는 통곡이어든

불타는 녹두 벌판에 새벽빛이 흔들린다 해도

굽이치는 저 강물 위에 아침 햇살 춤춘다 해도

나는 눈부시지 않아라

2절 - 기나긴 밤이었거든 죽음의 밤이었거든

저 삼월 하늘에 출렁이던 피에 물든 깃발이어든

목 메인 그 함성소리 고요히 어둠 깊이 잠들고

바람 부는 묘지 위에 취한 깃발만 나부껴

나는 노여워 우노라

3절 - 기나긴 밤이었거든 투쟁의 밤이었거든

북만주 벌판에 울리던 거역의 밤이었거든

아아 모진 세월 모진 눈보라가 몰아친다 해도

붉은 이 산하에 이 한 목숨 묻힌다 해도

나는 쓰러지지 않아라

후렴 - 폭정에 폭정에 세월, 참혹한 세월에

살아 이 한몸 썩어져, 이 붉은 산하에

살아 해방에 횃불 아래, 벌거숭이 산하에

* '이 산하에'라는 노래는 1980년대 '노래운동'의 선구자였던 문승현이 뜻 맞는 동료들과 합작하여 만든 '산하 시리즈' 세 편 중 대표작이라 할 수 있다. 이 노래의 1절은 동학농민혁명의 통곡을, 2절은 3.1만세운동의 함성을, 3절은 무장독립투쟁의 고난을 담고 있다.

그리고 이것은 지난 역사 속의 통곡과 함성과 고난이면서 동시에 이 노래를 부르고 있는 1980년대의 압제와 암흑과 폭정의 세월을 헤쳐나가는 불굴의 투지를 담아내고 있다.

이 노래는 1940년대에 광복군 한형석이 지은 독립군가의 전통을 이으면서, 해방 직후 김순남이 지은 일련의 애국가요들의 수준을 넘어서는 우리 시대의 빼어난 '독립군가'요, '민주항쟁가'요, '애국찬가'이다.

'이 산하에' 같은 노래가 1945년~48년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될 무렵 진즉에 발표되었다면 당시의 '애국가 현상모집'에 당선작으로서 가능성이 높았으리라 생각된다. 지금에 와서는 이 노래가 3.1절이나 광복절에 국민 제창(齊唱)으로 불리기는 좀 부담스러울 수 있지만, 다만 전문합창단에 의해 역동적 예술가곡으로 불린다면 충분히 '애국의 노래'로서 기능을 할 수 있다고 본다.

8) <임을 위한 행진곡> 백기완 원작시 '묏비나리'

황석영 각색, 김종률 작곡

사랑도 명예도 이름도 남김없이

한평생 나가자던 뜨거운 맹세

동지는 간 데 없고 깃발만 나부껴

새 날이 올 때까지 흔들리지 말자

세월은 흘러가도 산천은 안다

깨어나서 외치는 뜨거운 함성

앞서서 나가니 산 자여 따르라

앞서서 나가니 산 자여 따르라

* 1980년 5월의 광주민중항쟁이 무참히 진압된 후, 1982년 초 추위가 가시기 전 망월동 묘지에서 항쟁의 마지막까지 전남도청을 사수하다 산화(散華)한 윤상원과 먼저 세상 떠난 들불야학 박기순의 영혼 결혼식이 열렸다. 그리고 얼마 후 작가 황석영의 집에서 광주항쟁의 문화패 동지들이 몰래 모여 윤상원 박기순 두 사람의 영혼 혼례를 소재로 한 '넋풀이'라는 노래굿을 만들어 카세트테이프에 담았는데, 이 노래굿에 담긴 마지막 노래가 '임을 위한 행진곡'이었다.

'넋풀이 노래굿'의 전체적인 집필은 작가 황석영의 몫이었는데, 그 중 '임을 위한 행진곡'의 노랫말은 백기완 선생의 미발표 장시(長詩) '묏비나리'에서 따 왔고, 작곡은 당시 전남대 학생이던 김종률이 했다. 이 카세트테이프는 그 후 전국으로 은밀히 퍼져나가 수년 후에는 대표적인 운동가요로 자리 잡았고, 민주화 운동권 집회나 시위에서 실질적으로 '애국가'를 대신하는 노래가 되었다.

한때 수구정권 하에서 국가보훈처가 광주민주화운동 기념식에서 이 노래가 불리는 것을 가로막기도 했으나, 그러한 모멸과 난관을 뚫고 이제 '임을 위한 행진곡'은 우리 시대 민주와 인권을 대변하는 또하나의 애국가로 자리 잡았으며, 나아가 필리핀 홍콩 등 아시아 여러 나라의 민주화 집회에서도 애창되는 국제적인 '평화와 연대의 노래'로 파급되었다.

9) <우리가 원하는 우리나라> 임동창 작사·작곡

1절 - 하늘은 높고 푸르며 땅은 깊고 기름진 나라

하늘 아래 가장 아름다운 나라

2절 - 서로 서로 도우며 평화를 전하는 나라

하늘 아래 가장 자비로운 나라

3절 - 사람을 널리 이롭게 하여 자연사랑 하는 나라

하늘 아래 가장 한가로운 나라

후렴 : 잃었던 우리 기운 우리 기운

되찾아 되찾아 되찾아

우리가 원하는 우리나라 이루세

* '우리가 원하는 우리나라'는 제목에서부터 백범 김구 선생이 남긴 '나의 소원'이라는 육필 수기(肉筆 手記)에 들어있는 '내가 원하는 우리나라'를 연상시킨다. "내가 원하는 우리나라는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나라이요, 부강한 나라 되기를 원하는 것이 아니요..... 오직 한없이 가지고 싶은 것은 높고 새로운 문화의 힘이라....." 백범 선생이 남기신 '문화국가'를 향한 염원이다. 임동창의 노랫말이 백범 김구 선생의 어록(語錄)을 그대로 가져온 것은 아니지만, 그 시상(詩想)은 동일하다.

그런데 당대의 피아니스트 임동창이 직접 가사를 쓰고 곡을 붙인 이 노래가 독특한 점은 그 곡조가 서양의 것이 아닌 우리 가락 우리 선율로 되어있다는 사실이다. 이 노래는 우리 고유의 굿거리장단(중중모리장단)으로 짜여 있으며 성음(聲音)은 판소리 성음을 구사(驅使)하도록 되어있다. 말하자면 그동안 많은 음악전문가들이 바랬던 새로운 애국가의 필요조건, 민족 고유의 정서가 담긴 음악 어법으로 곡을 붙인 최초의 '나라 사랑 노래'가 바로 이 노래이다.

다만 한가지 아쉬운 것은 이 노래는 일반인들이 따라부르기에는 쉽지 않은 고도의 가창력을 필요로 한다는 점이다. 예술적으로는 훌륭하나 남녀노소 모든 국민이 함께 제창(齊唱)하기에는 좀 부담된다는 것이 문제로 남는다.

이처럼 당장 <애국가>로서 손색없는 현대의 노래들 아홉 편을 추천해 보았다. 여러분들이 한번 직접 노래를 들어보면서 노랫말을 음미해 보시기 바란다.

이 외에도 지금 당장 손색없는 현대의 애국가로서 빠지지 않는 노래가 '아리랑'이다. 여기서 말하는 '아리랑'은 나운규가 감독 주연한 영화 <아리랑>의 주제곡을 말한다. 실제로 이 '나운규 아리랑'은 해외 동포들에게도 널리 알려져 있고, 외국인들에게도 많이 알려져 한국을 대표하는 노래로서 벌써부터 '애국가' 기능을 해왔다고 할 수 있다. 뿐만 아니라 올림픽 등 국제 규모 스포츠대회에서 '나운규 아리랑' 곡조는 '우리의 소원은 통일'과 함께 또 하나의 남북공동 국가(國歌) 역할을 맡기도 했다.

그럼에도 나는 '나운규 아리랑'을 현대의 손색없는 애국가 아홉 편에 포함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주(主) 본가사인 "나를 버리고 가시는 님은 십 리도 못 가서 발병 난다"라는 노랫말이 '애국가' 가사로서 대단히 부적합하기 때문이다. 다만 남북 공동행사 같은 데서 가사 없이 연주만 하는 경우에는 얼마든지 남북 공동 국가(國歌)로 역할을 할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각설하고 다시 한번 강조하건대, 노랫말에 있어서나 곡조에 있어서나 앞서 아홉 편의 작품처럼 빼어나고 진정성 있는 작품은 결코 현상금 걸고 공모하는 방식이나 특정인에게 부담 주는(또는 혜택을 주는) 방식으로는 나오기 어렵다.

3. 새로운 애국가를 위한 대안(代案)

나는 이 연재를 통해 '안익태 애국가 곡조는 민족의 수치이지만, 안창호 선생의 애국가 노랫말은 우리 민족의 심금을 울린 위대한 가사로 평가받아야 한다'고 일관되게 역설한 바 있다.

그러한 관점에서 이제 새로운 애국가를 위한 대안을 모색해보자.

1) 애국가에서 반애국자 안익태 곡조는 이제 그만!

① 국가(國家) 공식행사나 지방자치단체 행사 등에서 안익태 곡조의 애국가를 그만 부르도록 해야 한다.

② 미래 세대 어린이와 학생들에게 더 이상 안익태 곡조의 애국가를 가르쳐서는 안 된다.

③ 국제 스포츠대회의 개·폐막식과 시상식에서 안익태의 곡조가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국가(國歌)로 울려 퍼져서는 안 된다.

2) 안익태 곡조 애국가의 독점적 관행(慣行) 해체(解體)

① '애국가'는 관행으로 진행되어온 대통령 훈령 사항일 뿐 법률상 국가(國歌)가 아니라는 인식을 국민 모두 공유할 수 있어야 한다.

② '애국가'는 원래 '애국가류'를 통칭하는 보통명사였다. 오늘날 '애국가'도 '고유명사' 아닌 '보통명사'로 생성되고 보급될 수 있어야 한다.

③ 민간단체나 각급 학교에서부터 안익태 애국가 곡조의 독점적 구조가 해체되고 곡조 변경이 허용되어야 한다.

④ '애국가' 가사에 또 다른 노랫말의 추가와 변경이 허용되어야 한다.

⑤ '애국가' 공모와 추천을 통해 '애국가류'의 범주를 넓혀나가야 한다.

3) 애국가 논란을 규명하고 해결해야 할 국회와 정부의 책임

① 국회와 정부는 안익태의 친일·친나치 반민족행위를 규명할 조사위원회를 즉시 구성하고 실행해야 한다.

② 국회와 정부는 안익태 애국가 곡조의 표절 여부를 판정할 심의위원회를 구성·가동해야 한다.

③ 국회와 정부는 소위 윤치호 붓글씨 가사지의 진위(眞僞) 여부를 비롯하여 1955년 애국가 작사자 조사 결과에 대한 재조사를 실시하고 진실을 규명해야 한다.

나는 새로운 '애국가'를 위한 대안으로 일단 현행 애국가 가사를 그대로 하면서 곡조를 대체하는 방안과, 나아가 곡조를 대체하되 민요처럼 새로운 애국가 가사를 보완하는 방향으로 '아리랑 애국가'를 제안하고자 한다.

'아리랑 애국가'로 우선 민족정기를 되찾고, 향후 국민의 뜻과 지혜를 모아 국민 모두가 동의하고 대한민국을 진정으로 대표할 수 있는 국가(國歌)를 새로 제정하는 그 날이 오기를 기대한다.



출처: https://www.pressian.com/pages/articles/2020062309412798793 프레시안(http://www.press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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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 대통령 조롱' 다루는 조중동의 자세, 놀라울 따름

[정연주의 한국언론 묵시록 21] 조중동의 쇠락사(3)

등록 2020.06.24 09:01 수정 2020.06.24 09:01
 
수구언론 또는 보수언론이라고 막연하게 칭했던 조선·중앙·동아일보 세 신문을 하나로 묶어서 '조·중·동'이라 쓰기 시작한 건 20년 전인 2000년 10월 25일 한겨레 칼럼을 통해서다. ('정연주 칼럼' '한국신문의 조폭적 행태(2)).

세 신문을 '조중동'이라 묶어서 하나의 신문인 것처럼 표현한 데는 여러 이유가 있었다. 세습이라는 족벌체제, 세상을 보는 눈, 주요 기사와 논설의 방향, 민주개혁세력에 대한 적대감, 수구 기득권·강자의 논리, 냉전·대결 이데올로기 추종, 역사의 가해자 편들기, 군사독재 권력에 굴종하고 부역한 역사, 그 과정에서 특혜를 받으며 자본을 축적해 언론시장에서 '대자본'으로 성장, 대자본을 바탕으로 현금 살포, 자전거 경품 등 신문시장에서 보인 약탈적 시장점유 행태 등 여러 면에서 너무나 닮았기 때문이다.

세 신문사가 공동으로 편집회의와 논설회의를 하는 게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들 정도로 표현과 편집, 논리와 방향, 미움과 적개심 노출 등이 흡사하다. 그냥 하나의 '조중동 신문' 같다.

최근 사례로는 평양 옥류관 주방장 얘기가 있다.

* 조선일보 "국수 처먹을 때는 요사 떨더니..." 옥류관 주방장까지 문대통령 조롱
* 중앙일보 "처먹을 땐 요사 떨더니"... 평화 상징 평양 냉면의 '독한 변신'
* 동아일보 "국수 처먹을 땐 요사 떨더니..." 옥류관 주방장까지 대남 비난


옥류관 주방장 말 가운데 가장 자극적인 부분을 따서 따옴표에 담았다. 품격과 절제 없이 쏟아내는 말의 모양새와 수준이 옥류관 주방장이나 조중동이나 그다지 다르지 않다.

 

▲ 6월 15일자 <조선일보> 보도 ⓒ 조선일보

  

▲ 6월 15일자 <동아일보> 보도 ⓒ 동아일보

  

▲ 6월 15일자 <중앙일보> 보도 ⓒ 중앙일보

 
일란성 세 쌍둥이

조중동이 일란성 세 쌍둥이처럼 생각과 표현, 주장과 논리가 같은 모습은 어제 오늘의 이야기가 아니다. 2002년 4월 29일자 조중동 사설을 보자. 이날 조중동은 ▲노무현 민주당 대통령 후보 확정 ▲ 국방백서의 북한 주적 폐지 ▲ 전교조의 민주화 인정 등 같은 주제를, 같은 순서, 거의 비슷한 논지로 다뤘다.

<조선일보>  
노무현 후보 '과거' '현재' '미래'
북이 요구하니 '주적' 삭제인가
전교조 '민주화 운동 인정' 뒤에 남는 것

<중앙일보>
노무현 후보가 해야 할 일
주적론, 군사회담에서 풀어야
민주화 운동 평가 성급하다

<동아일보>
노무현 민주당 대선후보
주적론 삭제 신중해야
전교조 민주화 인정 문제 있다


그 날의 여러 사안들 가운데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을 사설 주제로 고르는 것이니 사안의 경중에 대한 생각이 비슷할 수는 있다. 그러나 제목, 표현, 배치의 순서, 사설의 논리는 신문사의 철학과 생각이 담긴 것이어서 서로 다른 다양한 결과로 나오는 것이 자연스러운 일이다. 

초록이 동색

이 날짜 조중동의 사설을 두고, 당시 인터넷 신문 <프레시안>은 '조중동이 한통속인 이유는?'이라는 제목의 기사를 다루면서 '초록이 동색'이라고 비판했다.
 
2002년 4월 29일은 '조중동'이란 단어가 고유명사로 국어사전에 오를 수 있는 단초를 제공한 날로 역사에 기록되지 않을까. 29일자 조선 중앙 동아 세 신문은 공교롭게도 각각 노무현 민주당 대통령 후보 확정을 보도한 머릿기사부터 3꼭지로 구성된 사설까지 동일한 주제와 소재를 거의 비슷한 시각으로 다루고 있다. '초록은 동색'이라는 말이 무색할 지경이다.

당시 조중동이 신문시장에서 차지한 독과점의 위치를 생각하면 주요 기사와 사설, 칼럼에서 하나의 신문인 것처럼 비슷한 시각과 논리를 보인다는 것은 수구기득권과 강자의 논리가 압도하는 조중동 이데올로기가 여론시장을 지배한다는 것을 뜻했다. 그 결과는 민주주의의 아름다움이랄 수 있는 다양성은 배제되고 하나의 논리가 압도하는 세상이 되고 만다.

조중동이 하나같은 신문 모습을 보이는 행태는 또 있다. 같은 사안에 대해 시대, 상황, 정권에 따라 정반대의 목소리를 낸다는 것이다. 카멜레온처럼 주장과 논리를 자유자재로 바꾼다.

정권 따라 말 바꾸는 카멜레온
 

▲ 22일 밤 경기 파주에서 탈북단체가 보낸 대북전단 살포용 풍선이 23일 오전 10시께 홍천군 서면 마곡리 인근 야산에서 발견됐다. 발견된 대북전단 살포용 풍선은 2∼3m 크기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 일가의 사진이 부착돼 있다. ⓒ 연합뉴스


최근 대북 전단 살포, 국회 개원 협상, 재정 확대 정책 등에 대해 조중동이 같은 사안을 두고 과거 이명박·박근혜 정권 때와는 정반대의 주장과 논리를 펴고 있는데 대해 페이스북 등에서 구체적 사례를 들며 비판의 소리가 이어지고 있다. 조중동이 같은 사안에 대해 이렇게 손바닥 뒤집듯 정반대의 주장을 할 수 있느냐는 조롱과 한탄이 뒤따른다.

박근혜 정권 때, 대북 전단 살포에 대해 이런 기사들이 나갔다.

- 공개적인 대북 풍선 날리기는 부적절 (중앙, 2012.10.24 사설)
- 대북 전단, 보내려면 조용히 보내라 (중앙, 2013.3.27 시론)
- 위험천만한 대북전단 살포, 자제해야 한다 (중앙, 2014.10.27 사설)
- 여야, "대북전단 살포 자제해야 (조선, 2014.10.27)
- 자유북한연합, 대북 전단 살포 강행 "대체 왜 자꾸 이런 일이" (동아, 2014.9.23)


이렇게 대북 전단 살포를 비판하고 자제를 촉구했던 신문들이 지금은 다른 소리를 내고 있다.

- 군 동원해 우리 국민들 대북전단 살포 제압하자는 발상 (조선, 2020.6.9 사설)
- 미 인권단체들 '전단 금지는 재앙' (조선, 2020.6.12)
- 북에 쌀 추진하면서 '페트병 쌀'은 트집 (조선, 2020.6.11)
- 세계 최악 독재자 남매 위해 우리 국민 고발한 정부 (조선, 2020.6.11)
- 삐라 금지는 북 정권 돕고, 외부 정보 유입은 북 주민 돕는다 (중앙, 2020.6.9)
- "대북 전단 금지, 표현의 자유 억압...통제 대상 확대될 수도" (동아, 2020.6.8)
- 무기력과 비위 맞추기로는 북의 '도발본능' 못 막는다 (동아, 2020.6.16 사설)


정권에 따라 말을 바꾸는 조중동의 카멜레온 같은 변신 사례는 한 둘이 아니다.  '경제위기'를 보는 눈도 정권에 따라 정반대다. 인사청문회 때 동원되는 논리도 정권에 따라 춤을 춘다. 국회 개원협상에 대한 주장도 어느 정권 때인가에 따라 정반대의 논리가 동원된다.  KBS 사장에 대한 얘기도 정권에 따라 판이하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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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은, 당 중앙군사위 예비회의서 “대남 군사행동계획 보류”

  • 분류
    알 림
  • 등록일
    2020/06/24 11:34
  • 수정일
    2020/06/24 11:34
  • 글쓴이
    이필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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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일 조선중앙통신 보도...최근 정세평가 후 보류, 사유는 공개되지 않아

이소희 기자 lsh04@vop.co.kr
발행 2020-06-24 09:11:04
수정 2020-06-24 09:11:04
이 기사는 번 공유됐습니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 겸 노동당 중앙군사위원장(자료사진)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 겸 노동당 중앙군사위원장(자료사진)ⓒ뉴시스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23일 조선노동당 중앙군사위원회(당 중앙군사위) 제7기 제5차 회의 예비회의를 주재했으며, 이 자리에서 조선인민군 총참모부가 제출한 대남 군사행동계획을 보류했다는 보도가 나왔다.

북 관영매체 조선중앙통신은 24일 "조선로동당 중앙군사위원회 제7기 제5차 회의 예비회의가 화상회의로 23일 진행되었다"면서 "당 중앙군사위 위원장이신 김정은 동지께서 회의를 사회했다"고 보도했다.

통신은 이날 예비회의에 당 중앙군사위 부위원장 리병철과 일부 위원들이 참가했다고 밝혔다.

회의 안건은 중앙군사위 제7기 제5차 회의에 상정할 주요 군사정책 토의안 심의, 보고·결정서 등 전쟁억제력을 더욱 강화하기 위한 국가적 대책이 반영된 여러 문건 연구였다고 전했다.

이어 예비회의 주요 내용으로 "당 중앙군사위는 조성된 최근정세를 평가하고, 조선인민군 총참모부가 중앙군사위 제7기 제5차 회의에 제기한 대남 군사행동계획들을 보류했다"고 소개했다.

그러나 조선중앙통신은 조선인민군 총참모부(총참모부)가 제출한 대남군사행동계획이 왜 중앙군사위 예비회의에서 보류됐는지 그 사유에 대해서는 보도하지 않았다.

앞서 지난 16일 조선인민군 총참모부는 대변인 발표를 통해, 탈북민단체들의 대북전단 살포와 이를 제대로 막지 않는 한국 정부에 대한 조치로 △ 금강산관광지구 · 개성공업지구에 부대 배치 △ 비무장지대 초소에 재진출 △ 접경지역 부근서 각종 군사훈련 재개 △ 인민들의 대남삐라(전단) 살포 지원 등 구체적 군사행동계획이 검토되고 있다고 밝혔다. 또 해당 군사행동계획들을 당 중앙군사위원회에서 비준받도록 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총참모부 발표 이후, 북측이 금강산과 개성지구에 병력을 배치하고, 비무장지대 내 초소(GP)를 복구하고, 그간 철거했던 대남확성기를 재설치하는 등의 행보를 하는 것이 우리 군에 의해 포착됐다. 노동신문에는 대남전단을 준비하는 모습과 이를 살포하겠다는 의지를 보이는 북한 주민의 모습도 보도됐다. 군사행동계획을 이행하기 위한 준비를 해 온 셈이다.

이날 예비회의에서 군사행동계획이 보류됨에 따라, 당분간 북한군의 조치도 멈출 것으로 예상된다. 하지만 왜 이같은 결정을 내렸는지에 대해서는, 북측 당국의 추가 발표를 확인해야 정확한 이유를 파악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이소희 기자

작고 약하고 힘없는 이들의 목소리를 담은 따뜻한 기사를 쓰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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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남북관계총파탄을 막아야 할 비상시국에 부쳐

  • 기자명 현장언론 민플러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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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20.06.24 01: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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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남북관계·남북합의가 말 그대로 완전히 파탄날 수도 있는 비상시국이다.
시간은 길어야 한 두달이다. 그만큼 남북정세는 남북관계가 6.15 이전수준으로 완전히 파탄나는 길로 접어드는가? 아니면 남북관계를 복원할 수 있는 최소한의 신뢰를 회복하는가? 하는 급경사의 십자로에 들어섰다. 급경사의 십자로에서는 어디로 뛰어야 안전할지를 순식간에 판단해야 한다. 신중하게 장고할 시간이 없다. 매우 신속하고도 구체적인 조치들이 취해져야 한다.

왜 그런가?
이미 논란이 되고 있는 삐라살포가 행동단계에 들어서고 있기 때문이다.
사실 전단살포가 문제된 것은 문재인 정부가 계속 묵인해 온 데 있으며, 파렴치한 범죄자들이 국회까지 입성하여 그 반북행태가 차후 남북관계를 더욱더 파탄시키는 뇌관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보다 결정적인 것은 그 내용이 최고존엄을 건드리는 저열한 것으로 북 인민들의 분격을 자아내는 것이었다는 점에 있다. 

남북관계의 기초이자 출발점은 상호존중과 신뢰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2018년 9월 19일 능라도 경기장에서 10여 만의 평양시민들 앞에서 연설한 내용을 놓고 보아도 그렇고, 당시 평양시민들이 보여준 자기 지도자에 대한 태도를 놓고 보아도 그렇고, 북 인민들의 사상감정을 모르지 않을 것이다. 그럼에도 대북전단살포행위를 안보라인과 경찰이 비호하는 것을 묵인방치 두었다는 것은 심각한 신뢰의 손상이며, 북의 입장에서는 배신감이 들게하는 행위이다.
삐라내용에는 노무현 대통령도 조롱대상으로 들어가 있다. 이렇게 놓고 보면 문재인 대통령도 당사자일텐데 북이 보면 얼마나 한심해 보였겠는가.

그런데도 대북전단살포행위는 아직도 근절되지 않고 있다. 박상학 등은 22일 파주에서 대북전단을 날렸다고 발표했지만, 실제로는 강원도 홍천에서 발견되었다. 어쨌든 날리긴 날린 것이다. 통일부, 경기도 등이 법적 처벌, 고발 등을 진행하고 있지만, 탈북단체의 대북전단살포행위가 완전히 종식될 것이라는 확신은 없다. 지금 이 마당에 이자들이 계속 대북전달을 살포하는 행위가 자행되고 있는 상황 자체가 어이가 없다. 

이제 긴박한 남북정세는 전주곡이 끝나고 천둥번개가 몰아치는 본막으로 들어서고 있다.
남북연락선 차단, 개성 남북공동연락사무소 폭파 이후, 17일 조선중앙통신은 논평을 통해 “개성공업지구에서 울린 붕괴의 폭음이 북남관계의 총파산을 예고하는 전주곡으로 될 수도 있다”고 경고한 점에서 그렇다. 
같은 날 "우리는 남조선 당국의 태도를 지켜보면서 차후 처신, 처사 여부에 따라 연속적인 대적행동조치들의 강도와 결행시기를 정할 것"이라고 전하고, 구체적 행동내용을 조선인민군 총참모부 대변인 성명을 통해 발표했다. 이에 따라 “금강산관광지구와 개성공단에 연대급부대와 화력구분대 배치”, “철수한 비무장지대 초소 재배치”, “서남해상 전투근무체계로 격상과 군사훈련재개”, “전체 전선에서 대남삐라 살포”를 예고하고 실제로 하나둘씩 착수에 들어갔다.

정세는 엄중하다.
이러한 조치들이 하나둘씩 가시화되게 되면 남북관계와 모든 합의가 총파탄 날 수 있는 비상 상황이다.
현 상황은 갑자기 조성된 것이 아니라, 지난 2년간 문재인 정부의 대북정책의 총파산의 결과이다. 북은 “북남합의보다 《동맹》이 우선이고 《동맹》의 힘이 평화를 가져온다는 맹신이 남조선을 지속적인 굴종과 파렴치한 배신의 길로 이끌었다.”는 것을 겨냥하고 있다. “북남관계가 미국의 롱락물로 전락된것은 전적으로 남조선당국의 집요하고 고질적인 친미사대와 굴종주의가 낳은 비극”이라는 것이다.
최근 발간된 존 볼턴의 회고록은 주관이 반영된 것이긴 하지만 문재인 정부의 ‘남북관계와 북미관계의 선순환, 중재자, 촉진자론’이 결국 ‘미국의 의향에 따라 처신’한 것으로 되고 말았다는 점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앞으로 전개될 남북관계의 총파탄은 ‘평화적 분단관리론’의 환상이 철저하게 깨져나가면서 ‘외세추종은 곧 전쟁의 길’이고, ‘민족공조만이 평화의 길’이라는 것을 엄중하게 인식하는 과정으로 될 것이다.

지금 문재인 정부가 갑자기 ‘친미자주’에 입각한 ‘선비핵화 후남북관계론’, ‘한미동맹에 근거한 평화유지관리론’, ‘자주국방 안보론에 입각한 남북관계론’이라는 뿌리깊은 정책기조를 뒤바꿀 것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그러나 이것을 바꿀 결단을 내려야 한다. 문재인 대통령이 ‘퇴임 후 잊혀지는 대통령’으로 살기는 틀렸다. 조국의 하늘에 핵대결의 먹구름이 가득하고 중미전쟁의 신냉전의 소용돌이 속에서 조용한 퇴임을 준비하는 것은 민족과 촛불민중에 대한 배신으로 될 수 밖에 없다. 이것도 ‘운명’이다. 김대중 대통령의 철학과 경륜, 노무현 대통령의 용기와 돌파력을 자신의 것으로 삼고, 꾸준하고 완강한 문재인 대통령의 속심을 재구성하면 못할 것도 없으리라 본다. 게다가 촛불민중이 있지 않나. 

그러나 당장은 남북관계에서 신뢰를 회복하는 초보적인 비상조치부터 시급히 취해야 한다.
지금 때를 놓치면 연평도 포격사건 이후 가장 위험한 남북간 군사대치상황으로 가게될 것이고, 그 이후에는 그 무엇도 할 수 없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혹시나 북의 대남공세가 대미공세를 위한 사전정지작업이 아닌가 하는 식으로 안이하게 생각하면 안된다. 그건 그것이고 남북관계는 남북관계라는 것이 북의 입장이다. 오히려 미국에게 미국과 계산은 따로 할 것이니, 함부로 남북문제, 즉 남의 일에 끼어들지 말라고 하고 있지 않은가.

문재인 정부가 취해야할 긴급조치는 명확하다. 첫째로, 대북전단살포행위를 철저히 중단시키고 해당 탈북자들은 엄단하고 탈북단체들을 해산시키는 것이다. 둘째로 남북관계파탄의 원흉 한미워킹그룹을 해체하는 것이다. 셋째로 외교안보라인을 신속히 교체하고 분위기를 쇄신해야 한다. 넷째로 개성공단, 금강산관광, 철도도로연결사업 시행을 즉각 천명해야 한다. 철도도로연결사업은 코로나로 인한 사회적 거리두기를 하면서도 진행할 수 있는 유리한 사업이다. 다섯째로 최근 군사적 갈등양상이 한미연합훈련의 재개로 이어지는 것을 막아야 한다.
이 같은 조치정도를 취하고서 특사를 보내도 보냈어야 했다. 7.4든, 7.27이든 이런 내용이 반영된 대통령 특별선언이 나와야 남북관계의 총파탄을 막을 수 있다.

비상시국에 임하여 국민들도 나설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임진란과 구한말 나라를 구하기 위해 나섰던 의병들처럼, 방방곡곡에서 미국으로부터 독립을 위한 제2의 독립운동, 촛불의병으로 나서자. 7월 4일은 미국의 독립기념일이 아니라 미국으로부터 대한민국의 독립을 위해 떨처나서는 제2의 독립운동이 타번지는 날로 만들자. 시국선언, 시국서명, 동네촛불 등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하자. 모두다 ‘한미워킹그룹해체’를 외치며 남북관계 총파탄을 막아내고 포스트코로나의 시대를 평화번영통일의 세상으로 이어가자.

출처 : 현장언론 민플러스(http://www.minplus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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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관계 파탄막는 시작점은 '한미워킹그룹' 해체"

민주노총, 한미워킹그룹은 "美내정간섭 기지 '현대판 조선총독부'"
이승현 기자  |  shlee@tongil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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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20.06.23  17:43: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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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민주노총은 23일 청와대 앞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남북관계 파탄을 막기 위해  '한미워킹그룹 해체와 남북합의 이행'을 촉구했다. [사진-통일뉴스 이승현 기자]

일부 탈북자단체의 대북전단 살포를 계기로 남북관계 위기가 격화되고 있다.

민주노총은 23일 오전 가맹산하 대표자들이 참석한 가운데 청와대 분수대앞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민주노총 100만 조합원들은 현재의 정세를 심각하게 여기고 있으며, 이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정부가 미국의 눈치를 보지 않고 남북합의를 즉각 실천해야 한다"고 밝혔다.

기자회견 참가자들은 기자회견문에서 먼저 역사적인 남북공동선언이 발표된지 2년이 지난 오늘날 남북관계가 파국으로 치닫게 된 까닭은 대북전단 살포 뿐만 아니라 문재인 정부가 남북합의 사항을 거의 이행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더 이상의 남북관계 파탄을 막고 남북공동선언을 이행하려면 미국의 내정간섭에 단호하게 'NO'라고 말해야 한다. 그 시작이 한미워킹그룹 해체를 선언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남북관계가 파국으로 치닫자 한·미 당국은 최첨단 정찰기 글로벌호크와 핵공중지휘통제기 'E-4B' 훈련장면을 공개하고 한미합동군사훈련 개시 일정을 조율하는 등 한반도에 전쟁의 먹구름이 몰려오고 있다고 우려를 표시했다.

이 절체절명의 위기를 막기 위해서는 한시가 급하다고 하면서 지금 당장 남북공동선언 정신으로 행동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명환 민주노총 위원장은 "역사적인 4.27판문점선언은 대북제재의 틀에 갇혀 단 한걸음도 전진하지 못했다. 대북전단 살포를 계기로 시작된 지금의 남북관계 파탄은 남북간 최소한의 신뢰도 구축되지 못해서 발생한 것"이라며, "지금이라도 이 파국을 막는 길은 판문점선언 등 남북합의를 즉각적으로 이행하고 실천해 당사자로서 책임을 다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또 "4.27판문점선언이후 9.19평양공동선언, 남북군사합의가 발표되자 이에 당황한 미국이 더 이상의 남북관계 진전을 막기 위해 한미워킹그룹을 만들었다"고 하면서 "비일비재한 내정간섭을 자행하고 있는 한미워킹그룹은 즉시 해체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 김명환 민주노총 위원장 등 기자회견 참가자들이 남북합의 이행을 가로막는 한미워킹그룹, 대북전단 등을 '민족자주의 가위'로 잘라내는 퍼포먼스를 진행했다. [사진-통일뉴스 이승현 기자]

권종오 전국교직원노동조합 위원장은 "지금까지 여러 남북공동선언이 있었지만 우리 정부가 제대로 이행한 선언이 없었으며, 지난해 아무런 조건도 없이, 대가도 없이 재개하겠다는 북측의 제안에 대해서도 제대로 응답하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그 핵심적 이유는 미국의 내정간섭에 있다. 현대판 조선총독부로 불리는 한미워킹그룹을 즉각 해체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조상수 전국철도노조위원장은 "판문점선언에서 남북철도 현대화·연결 사업이 합의되어 북측은 대륙으로 가는 민족 철도에 대한 염원을 갖고 국가기간교통망의 속살을 보여주는 의지를 보였으나, 우리는 초기 공동조사 사업부터 유엔사의 방해가 있었고 조사 이후 국회와 언론 공개과정에서 물의가 있었다"고 언급했다.

간신히 진행된 공동조사 이후에도 남북철도연결·현대화 사업은 한미워킹그룹의 간섭과 방해로 인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또 "문재인정부는 동아시아철도공동체를 만들어 이 지역에 번영과 평화를 일구겠다는 거창한 구상을 밝혔지만 실천은 너무 미미했다. 미국의 눈치를 보기에 급급해 담대하거나 자주적이지 못한 태도로 일관해 분노를 금할 수 없다"고 꼬집었다.

조 위원장은 "철도노조는 6.15에서 8.15기간까지 매주 전국 주요역사에서 대북제재 해제와 남북철도연결을 촉구하는 1인 시위를 전개하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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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일동안 부역자들 씨 말리겠다며 젖먹이까지 끌고 갔다

등록 :2020-06-23 05:00수정 :2020-06-23 06: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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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전쟁 70년] 학살, 잠들지 않는 기억
1951년 ‘아산 부역혐의 학살사건’
일제 폐탄광서 쏟아진 비녀·구슬…
발굴 유해 대다수가 여성·어린이
아산·천안 곳곳에 ‘보복살해’ 흔적
2018년 봄 충청남도 아산 배방읍 설화산 민간인 학살 유해발굴지에서 어린이 장난감으로 보이는 구슬이 발견됐다. 이곳에서는 6·25전쟁 당시 사망한 208명의 여성과 아이 등의 유해가 발굴됐다. 주용성 사진작가 제공
2018년 봄 충청남도 아산 배방읍 설화산 민간인 학살 유해발굴지에서 어린이 장난감으로 보이는 구슬이 발견됐다. 이곳에서는 6·25전쟁 당시 사망한 208명의 여성과 아이 등의 유해가 발굴됐다. 주용성 사진작가 제공
70년 전 한반도는 적의로 가득 찬 생지옥이었다. 적의 가족이기에 또는 적을 이롭게하거나 동조할 수 있다는 우려만으로 학살이 이뤄졌다. 전세가 역전되자 반대편에서 보복에 나섰다. 피해는 남녀노소 구분이 없었고, 친척끼리도 총부리를 겨눴다. 그런 야만의 세월 동안 이뤄진 민간인 학살로 최소 100만명이 목숨을 잃었다. 이념 차이에서 시작한 한국전쟁은 사실 거대한 보복전쟁이었다. 한국전쟁 발발 70주년을 맞아 <한겨레>는 수많은 민간인 학살 가운데 덜 알려진 여성과 아이들이 희생된 사건에 주목했다. 참혹했던 사건과 함께 유해발굴사업 현주소, 2기 진실·화해위원회의 역할과 올바른 과거청산 해법 등을 2회에 걸쳐 싣는다. 기억하지 않는 역사는 반복된다.
구슬과 비녀.아이들이 죽던 겨울은 많은 눈이 내렸다. 1951년 1월이었다. 동네 친구들과 구슬치기를 하던 아이들이 엄마 손에 이끌려 폐탄광 부지까지 왔다. 겁을 먹은 아이들은 차마 울지 못했다. 온양경찰서 소속 경찰과 치안대의 엠(M)1·카빈이 200여명의 주민들을 향해 불을 뿜을 때, 엄마들이 아이들을 치마폭에 감쌌다. 아이들은 구슬을 손에 꼭 쥔 채 엄마와 함께 죽었다. 아이들은 사회주의가 뭔지 알지 못했다. 엄마와 아이들이 죽은 자리에서 비녀와 구슬이 발굴됐다. 이들은 죽으면서 무슨 생각을 했을까.충남 아산시 배방읍 중3리 마을회관에서 20분 넘게 풀숲을 헤치고 도착한 야산 중턱. ‘부역혐의 사건’이라는 철제 표시판 하나가 이곳이 민간인 학살 현장임을 말해주고 있었다. 이른바 아산지역 부역혐의 학살사건이다.‘한국전쟁기 민간인학살 유해발굴조사단’은 2018년 2월 말부터 4월 초까지 이곳에서 한국전쟁 당시 묻힌 것으로 추정되는 유해 208구를 수습했다. 조사 결과 어른 150명의 유해 중 131구(85%)가 여성이었고, 58구가 어린이 유해였다. 부녀자들이 착용한 (은)비녀 89점과 어린이 장난감, 학살에 사용된 M1·카빈총 탄피도 다수 발견됐다.발굴 작업에 참여한 홍수정 4·9통일평화재단 조사실장이 주변을 가리키며 말했다. “일제 때 폐탄광 구덩이에서 수십구의 유골이 뒤엉켜 발견됐고, 예쁜 은비녀와 꽃단추, 아이 신발 등도 함께 나왔어요. 다른 유해발굴 현장에서는 건장한 남성 유골이 대다수인데 이곳에선 여자와 아이들의 유골이 주로 발견돼 현장 관계자들도 많이 놀라고 마음이 아팠습니다.”
충남 아산 배방읍 설화산 폐탄광터에서 발견된 은비녀들. 한국전쟁기 민간인학살 유해발굴 공동조사단 제공
충남 아산 배방읍 설화산 폐탄광터에서 발견된 은비녀들. 한국전쟁기 민간인학살 유해발굴 공동조사단 제공
지난 2009년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는 아산지역 부역혐의 사건에 대해 다음과 같이 진실규명 결정을 했다. “1950년 9월 말부터 1951년 1월 초까지 김석남(金石男, 사건번호 다-117) 등 최소 77명 이상이 인민군 점령시기 부역했다는 혐의와 그 가족이라는 이유로 온양경찰서 소속 경찰과 치안대(대한청년단, 청년방위대 및 향토방위대, 태극동맹)에 의해 배방면 남리 배방산(성재산) 방공호, 배방면 수철리(세일) 폐금광, 염치면 대동리(황골) 새지기, 염치면 산양1구(남산말) 방공호, 선장면 군덕리 쇠판이골, 탕정면 용두리1구 뒷산, 그리고 신창면 일대 등에서 집단살해되었다.” 발굴된 유해는 진실화해위의 조사 결과보다 실제 피해가 더 컸다는 사실을 방증한다.아산과 천안 일대의 민간인들이 설화산으로 끌려와 집단학살됐다. 주변 마을과 거리가 떨어져 있어 학살 행위가 잘 드러나지 않고, 폐탄광 부지에 많은 구덩이가 파여 있어 주검을 묻기 쉬운 장소였기 때문으로 추정된다. 홍남화 전 민족문제연구소 아산지회장은 “진짜 부역 활동을 한 남성들은 다 도망간 뒤 남은 부인과 가족들만 억울하게 희생된 세계적으로 유례를 찾기 힘든 학살 현장”이라고 했다.
임현재씨가 설화산 민간인 학살 사건의 피해자 유해가 발굴된 터에서 당시 상황을 설명하고 있다. 옥기원 기자
임현재씨가 설화산 민간인 학살 사건의 피해자 유해가 발굴된 터에서 당시 상황을 설명하고 있다. 옥기원 기자
이 마을에 평생 살았다는 임현재(84)씨는 “어머니와 살던 예전 집이 폐탄광으로 가는 길목에 있어서 줄줄이 고개를 숙이고 걸어가는 여자와 아이들의 모습을 봤다”며 “한참 뒤 총소리가 빗발쳤고 군인들이 줄줄이 내려오는 소리가 들릴 때 어머니와 나는 겁에 질려 불을 끄고 이불 속에 숨어 있었다”고 말했다. “수년이 지난 뒤 소 먹일 풀을 베러 뒷산에 갔을 때 흙더미에서 쏟아지는 사람 유골을 보고 놀랐던 기억도 있고, 동네 개가 뒷산에서 사람 뼈를 물고 온 경우도 있었다”고 했다.아산지역 부역혐의 학살사건의 시작은 1950년 9월27일이었다. 인민군이 퇴각하자 충남 아산 염치면(현 염치읍)에는 대한청년단, 태극동맹 등 우익단체를 중심으로 마을 치안대가 급조됐다. “부역자들의 씨를 말리겠다”며 동네 주민들을 불러 모은 치안대는 낫과 삽 등을 이용해 부역 혐의자와 가족 등 80여명을 잔인하게 살해했다. 학살은 3일 동안 계속됐다. 시신들은 마을 공동묘지에 묻혔다. ‘새지기 부역혐의자 학살사건’이었다. 군경이 아산 지역에 배치된 시점은 10월1일이었다. 치안 부재의 상황에서 주민들에 의한 사적인 집단살해가 벌어진 것이었다.
6·25전쟁 당시 학살당한 피해자 후손과 이들의 좌익 혐의를 밀고하고 살해하는 데 앞장선 가해자 후손이 집 울타리를 사이에 두고 살고 있다. 전쟁 이전에는 두 집터와 주변 땅 모두가 피해자 가족 소유였지만, 가족이 몰살당한 뒤 대부분의 땅을 가해자 가족이 빼앗았다. 옥기원 기자
6·25전쟁 당시 학살당한 피해자 후손과 이들의 좌익 혐의를 밀고하고 살해하는 데 앞장선 가해자 후손이 집 울타리를 사이에 두고 살고 있다. 전쟁 이전에는 두 집터와 주변 땅 모두가 피해자 가족 소유였지만, 가족이 몰살당한 뒤 대부분의 땅을 가해자 가족이 빼앗았다. 옥기원 기자
당시 사건을 목격한 마을 주민 이아무개씨는 2008년 진실화해위 조사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희생자들은 젖먹이부터 어른에 이르기까지 줄 세워져 마을 공동묘지 새지기로 끌려갔다. 죽이려고 가는 사람보다 죽으러 가는 사람들이 더 많았는데도 아무도 반항하지 못했다. 끌려가던 중 젖먹이를 업은 여자아이가 무성했던 콩밭으로 몸을 굴려 숨어 있다가 살아나오기도 했다. 그렇게 끔찍한 상황에서 살려고 하니까 젖먹이조차도 울지 않아 들키지 않고 용케 살았다. 끌려간 사람들은 애고 어른이고 할 것 없이 죽을 만큼 몽둥이에 맞은 다음 구덩이에 던져져 흙으로 덮어졌다. 미처 숨이 끊어지지 않은 사람들은 꿈틀거리며 생매장되었다.” 처형과 상관없는 주민들은 희생 장소로 몰려가 구경했다고 한다.새지기 사건은 부역자 처벌이 표면적 이유였지만, 내막에는 집성촌 내 친척 사이의 구원이 자리하고 있었다. 치안대는 홍사학씨가 부역을 했다는 이유를 들어 3대에 걸친 대가족 14명을 살해했다. 학살 주도자는 홍사학씨와 같은 홍씨 집안의 홍○○ 홍○○ 형제로, 동생은 인민군 점령기에 좌익 쪽에서 활동하다가 9·28 수복 직전 우익으로 전향해 좌익 혐의자를 체포하는 데 앞장섰던 인물이었다. 이들 홍씨 형제는 당시 마을 유지였던 홍사학씨 집안과 사이가 좋지 않았다. 홍사학과 그의 가족을 집단살해한 홍씨 형제는 홍사학의 남은 집과 땅, 세간살이를 모두 차지했다. 이때 마을의 채씨와 이씨 가족 수십명도 마을 공동묘지에서 몰살당했다.“세상이 언제 또 바뀔지 알고 그런 걸 말해.” 목격자인 이아무개(87) 할아버지는 70년 전 사건에 대해 끝내 입을 열지 않았다. 사소한 감정으로 수십명의 일가족이 죽임을 당했던 그 미친 세월에 대해 말하는 것은 또다른 원한의 씨앗을 키우는 일이기 때문이었다.당시 학살을 자행한 가해자들은 모두 숨졌지만, 가해자 후손과 일부 살아남은 피해자 후손들이 지금도 한마을에서 마주 보고 살고 있다. 홍사학씨와 같은 문중인 홍남화 전 민족문제연구소 아산지회장은 “전쟁이 만든 좌우익의 갈등이 하루아침에 일가족을 몰살하고 친인척을 원수로 만들었다”며 “이미 돌이킬 수 없는 상황이지만 다시는 이런 아픔이 재발하지 않게 진실이 규명되고 기록되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지난 10일 홍수정 4·9통일평화재단 조사실장이 한국전쟁 당시 마을 주민 간 학살이 자행된 충남 아산시 염치읍 새지기의 유해 매장지 일대를 설명하고 있다. 옥기원 기자
지난 10일 홍수정 4·9통일평화재단 조사실장이 한국전쟁 당시 마을 주민 간 학살이 자행된 충남 아산시 염치읍 새지기의 유해 매장지 일대를 설명하고 있다. 옥기원 기자
새지기 사건은 홍사학씨 양자 홍민선(74)씨가 2006년 진실화해위에 진상규명을 신청하면서 세상에 드러났다. 지난해 5월엔 유해발굴공동조사단이 발굴 작업도 진행했다. 당시 자원봉사자로 참여한 박꽃님씨는 “마을 주민들 간의 갈등이 남아 있어 주민 중 누구도 유해가 매장된 장소나 당시 상황을 말해주지 않아 발굴팀이 매우 고생했다”며 “유해 발굴 추정지가 마을 공동묘지와 밭으로 사용되면서 유해들이 많이 훼손돼 예상보다 적은 수의 유해가 발견됐다”고 설명했다. 발굴팀은 한달 남짓의 작업 끝에 훼손 상태가 심한 팔, 허벅지뼈 일부를 찾았고 조사 결과 한국전쟁 당시 사망한 7명의 유해인 것으로 판정됐다.아산 지역의 유해 매장지는 8곳으로 추정된다. 이 중 배방읍 설화산과 탕정면 용두1리, 염치읍 새지기 등 3곳만 발굴이 진행됐다. 염치읍 새지기에선 7명의 유해가 발굴됐지만, 탕정면 용두1리에서는 도로 공사 등으로 일대가 훼손돼 유해가 발견되지 않았다.
충남 아산 배방읍 설화산 민간인 학살 유해 발굴지에서 한국전쟁 당시 사망한 수십구의 유해가 발견됐다. 주용성 사진작가 제공
충남 아산 배방읍 설화산 민간인 학살 유해 발굴지에서 한국전쟁 당시 사망한 수십구의 유해가 발견됐다. 주용성 사진작가 제공
하지만 배방읍 성재산같이 유해가 나올 가능성이 있는 현장도 남아 있다. 취재 과정에서 만난 김희열(85) 할아버지는 “북한군이 시켜서 (성재산에서) 방공호를 팠고, 국군이 아산을 수복한 뒤 그곳에 많은 사람이 묻혔다. 부역혐의자들이 줄줄이 잡혀가는 모습을 보고 총소리도 들었다”고 증언했다. 행정안전부 과거사관련업무지원단 누리집에 게시된 ‘아산 부역혐의 사건’ 보고서에도 “성재산 방공호에서 많은 사람이 죽었고, 이를 목격했다”는 다수의 증언이 담겼다.잔인했던 학살의 흔적은 70년이란 시간이 흐르면서 서서히 사라지고 있었다. 끌려온 사람들이 학살된 공동묘지는 수풀이 무성했고, 부역혐의자들을 파묻었다는 폐탄광 구덩이들은 모두 유실돼 흔적을 찾아볼 수 없었다. 마을 입구 팔각정에서 만난 주민들은 “동네 뒷산에서 많은 사람이 억울하게 죽었다는 이야기를 듣고 항상 마음이 불편했는데, 유해를 발굴하고 위령제를 지내서 이제야 마음의 짐을 조금 덜었다”고 말했다.홍남화 전 지회장은 “당시를 증언할 수 있는 어른들이 몇명 살아 계시지 않아 진실을 규명할 시간도 얼마 남지 않았다”며 “더 늦기 전에 이념 학살의 아픈 역사를 규명하고, 억울하게 죽어간 유해들을 발굴하는 것이 우리 역사를 바로 세우기 위한 토대”라고 강조했다.아산(충남)/옥기원 기자 ok@hani.co.kr

 



원문보기:
http://www.hani.co.kr/arti/area/area_general/950518.html?_fr=mt1#csidx169dfdab51c824eb403ba5a8b6932e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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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時論] 미래통합당의 국회 보이콧, 국민의 야당 보이콧 부를 것

[時論] 미래통합당의 국회 보이콧, 국민의 야당 보이콧 부를 것
 
 
 
임두만 | 2020-06-22 09:50:59 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인쇄하기  메일보내기    
 
 


 

21대 국회가 개원 되었으나 제대로 운영되지 못하고 있다. 미래통합당은 국회의장이 일방적으로 배치한 상임위원 백지화를 통한 법사위위원장 선임을 철회하지 않는 한 국회에 들어올 수 없다고 국회를 보이콧 중이다. 반면 더불어민주당은 민의가 ‘일하는 국회’라며 일방국회도 불사하고 있다. 

▲국회의 야경 ©신문고뉴스

이는 국회를 민심이 담긴 민의의 전당이라고 말하면서도 선거에 나타난 민의는 간데 없는 모습이다. 특히 야당은 ‘관행’과 ‘협치’를 앞세워 다수 여당의 국회 통법부 화를 비판한다. 그리고 다수 여당의 통법부 화를 막기 위해서는 필연적으로 야당이 법사위원장을 맡아야 한다는 주장을 굽히지 않는다.

하지만, 이는 반대로 뒤집으면 소수 야당이 법사위의 ‘권한’인 법안의 자구와 체계 심사 및 수정을 고리로 정부여당의 국정운영, 나아가 국회운영에 제동을 걸겠다는 생각을 노골적으로 내비친 것이 된다. 이에 이 같은 노골적 의도에 여당은 더더욱 법사위를 내줄 수 없다는 방침을 굳힌 것이다.

그런데 국회 법사위는 야당의 정부여당 견제 기관이 아니다. 국회 법제사법위원회가 국회의원 또는 정부가 제출한 법안에 대해 자구나 체계의 심사 수정을 맡게 된 것은 제헌국회부터다. 당시 국회의원들 중 법조인들이 많지 않고, 또 국회의원 보좌진들도 법조 출신자들이 많지 않았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즉 법조인 보좌진도 없는 비 법조인 출신 국횐의원들이 제출한 법안을 법에 정통한 법조인 출신들로 꾸려진 법사위에서 자구나 체계의 심사 수정을 통해 ‘위헌법률’의 본회의 통과를 막자는 의도였다고 본다. 그래서 법사위는 제헌국회부터 사실상 상원 노릇을 해왔다.

따라서 소수 야당으로선 다수 여당 일변도의 ‘하원’운영을 ‘상원 의장’격인 ‘법사위원장’을 맡아 국회의 여당 일방주의를 막아야 한다고 생각할법하다. 그리고 지난 국회들에서 야당이 법사위원장을 맡았던 사례 또한 그 같은 의미가 담긴 것으로 해석, 이를 ‘관행’이라고 대국민 여론전을 벌였다.

하지만 이 같은 야당의 여론전은 여당은 물론 국민들에게도 먹히지 않고 있다. 이는 국회 역사에서 소수 야당=법사위원장이란 ‘관행’이 아니어서 국민들이 야당의 주장에 힘을 실어주지 않기 때문이다.

▲ 13대 국회 이후 법사위원장 분포도

실제 1987년 개헌에 따라 소선거구제로 치러진 1988년 4월 총선으로 구성된 13대 국회 이후 15대 국회까지는 법사위원장은 아주 ‘당연하게’ 다수 여당이었던 민정당 만자당 신한국당 한나라당 차지였다.

이후 16대 국회에서도 김대중 정권 하의 야당인 한나라당은 국회의 다수를 차지했다며 ‘민의’를 주장, 국회의장부터 법사위원장을 모두 갖겠다고 하다 국회의장을 양보하고 법사위원장을 차지했다.

‘소수 야당’이 국회 법사위원장을 맡은 것은 그 이후다. 노무현 정권 당시인 17대 총선은 여당인 열린우리당이 원내 과반을 차지하며 승리했다. 하지만, 법사위원장은 야당인 한나라당에 내줬다. 전반기 최연희, 후반기 안상수 위원장 등 전후반기 모두였다.

이후 18대 총선은 이명박 집권 후 한나라당이 압승을 거뒀다. 이때 앞서 17대의 전례에 따라 법사위원장은 소수야당인 민주당이 맡았다. 전반기 유선호, 후반기 우윤근 위원장이었다.

이는 19대 총선에서도 이어졌다. 당시 여당인 새누리당이 연승으로 다수당이 되었다. 법사위원장은 소수 야당인 민주당 몫이었다. 전반기 박영선, 후반기 이상민 위원장이었다.

그러나 이는 박근혜 정권이던 20대 국회 전반기에서 깨졌다. 20대 국회에서 당시 여당인 새누리당이 ‘소수’가 되었다. 그런데 법사위원장은 ‘소수 여당’ 새누리당의 권성동 의원이었다.

그런데 2000년 16대에는 반대로 당시 '다수 야당'이던 한나라당이 법사위위원장을 차지했다.

즉 대통령 임기 중에 치러진 총선에서 여당이 소수가 된 적이 2000년 김대중 정권과 2016년 박근혜 정권 2차례인데 법사위원장은 모두 현 통합당 계열 정당이 차지한 것이다.

이로 보면 결국 당시의 정치권 상황 문제이지 권력견제를 위해 야당이 법사위원장을 가져야 한다는 것이 ‘관행’은 아니란 것이 확인된다.

특히 소선거구제로 치러진 13대 국회 이후 지난 32년 동안의 헌정사에서 다수와 소수를 떠나 국회 법사위원장은 현 통합당 계열 정당이 24년을 장악했고, 민주당 계열 정당 소속으로는 단 8년을 맡았다.

따라서 ‘관행’인데 그런 관행을 다수 여당이 존중하지 않은 것은 ‘협치’를 포기한 것이라고 따지는 것은 맞지 않다. 이에 여론 또한 통합당에 유리하지 않게 흐르는 것이다.

그런데 상황이 이러함에도 통합당은 당 내외에서 의윈직 사퇴, 국회 전면 보이콧, 정기국회까지 국회불참 등의 강경론이, 남북관계와 코로나 민생을 고리로 국회 참여라는 온건론을 압도하고 있다.

▲20대 국회 당시 여상규 법사위원장이 모니터를 보고 있다. 법사위 국감현장 중계화면 갈무리 ©임두만

지난 총선 전 황교안 대표 체제의 자유한국당은 강경론 일변도였다. 국회 보이콧은 물론 국회 의사당 내의 농성, 황 대표의 삭발과 의원들의 릴레이 삭발, 청와대 앞 황 대표 단식농성 등 야당으로서 할 수 있는 모든 투쟁수단을 동원했다. 국회는 하염없이 공전되었고, 국민들은 국회 무용론으로 비판했다. 그럼에도 통합당은 이 전면투쟁을 총선 정국으로 끌어들여 총선이슈화를 노렸다.

하지만, 이에 대한 국민들의 답은 민주당에 국회의석 3/5이라는 압도적 다수를 몰아준 것이었다. 국회 무용론이 나올 정도의 강경론에 국민들이 통합당 무용론으로 답한 것이다.

통합당은 2022년 대권 탈환을 노리고 있다. 그들은 지금 경제도 외교도 남북관계도 이대로 문재인 정권에게 맡기면 나라가 거덜날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래서 대권을 탈환, 거덜나기 전에 나라를 다시 살리겠다고 말한다. 과연 그럴까? 지금의 통합당에 그 같은 역량이 있다고 믿는 국민은 적다.

남북관계가 최악으로 빠진 가장 최근의 여론조사인 6월 3주차 리얼미터 여론조사에서 통합당은  27.5%(0.4%p하락)의 지지율로  41.4%(0.9%p하락)의 지지율인 민주당에 13.9%p차이로 밀리고 있다.(조사패널 1,507명, 표본오차 95% 신뢰수준 ±2.5%p, 자세한 내용 리얼미터 홈페이지(http://www.realmeter.net/category/pdf/) 또는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http://www.nesdc.go.kr)를 참조)

▲자료 및 도표출처 : 리얼미터 홈페이지

이 여론조사 결과에 국민들의 답이 있다.

이 조사에서 문재인 대통령의 국정지지율은 전 주에 비해 무려 4.6%p가 빠진 53.6%로 나타났다. 다분히 북한의 남북연락사무소 폭파 등 남북관계가 최악으로 흐르고 있는 요인 때문이다. 이에 민주당 지지율도 0.9%p하락했다. 어쩌면 당연한 여론의 흐름이다.

그렇다면 반대로 통합당의 지지율은 올라야 한다. 그런데 통합당도 0.4%P하락했다. 국민들이 문재인 정권이 나라를 거덜내니까 통합당이 받아서 살려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그래서다. 지금이라도 통합당은 국회로 돌아와야 한다. 돌아와서 정책대결로 승부를 겨뤄야 한다. 국회가 민의의 전당이라고 말하려면 현재의 민의에 따르는 것은 국회 정상화다. 명분, 잠시의 ‘쪽팔림’이 부끄러워 계속 강경론으로 간다면 추후 선거에서 통합당은 아주 버림을 받을 것이다.

 
본글주소: http://www.poweroftruth.net/m/mainView.php?kcat=2028&table=c_flower911&uid=8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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