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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의원 증원 반대 뒤에 ○○○세력이 있다

국회의원 증원 반대 뒤에 ○○○세력이 있다

등록 :2018-09-09 16:07수정 :2018-09-09 16:29

 

성한용 선임기자의 정치 막전막후 227
거대양당 현직 의원들 선거법 개정 소극적
의원 숫자 늘면 1인당 수입 줄어들까 걱정
재벌·관료·언론 등 ‘반정치주의’ 선동 담합
특권 깨려면 의원 수 늘려야…법조계 전례

 

20대 국회 후반기 개원을 맞이하여 국회의원들이 본청앞 계단에서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공동취재사진
20대 국회 후반기 개원을 맞이하여 국회의원들이 본청앞 계단에서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공동취재사진

 

오늘은 좀 예민한 주제를 다루려고 합니다. 국회의원 증원입니다.

 

국회의원 증원은 반대 여론이 찬성 여론보다 훨씬 높습니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국회와 국회의원에 대한 반감이 배경에 깔려 있습니다.

 

국회와 국회의원에 대한 효능감이 낮은 이유는 국회와 국회의원들이 제 몫을 하지 못하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러나 기득권 세력이 퍼뜨리는 반정치주 탓이 더 크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자본주의 체제에서는 정치의 역할이 커질수록 기득권 세력인 부자와 재벌, 대기업이 불편해집니다. ‘1원 1표’로 움직이는 자본주의와 달리 정치는 ‘1인 1표’의 민주주의 원리에 의해 작동하기 때문입니다.

 

현재 우리나라 국회의원 정수는 300명입니다. 공직선거법 21조(국회의 의원 정수) 1항은 “국회의 의원 정수는 지역구 국회의원과 비례대표 국회의원을 합하여 300명으로 한다”고 되어 있습니다.

 

국회의원 정수를 늘리려면 공직선거법을 개정하면 됩니다. 헌법은 41조 2항에 “국회의원의 수는 법률로 정하되, 200인 이상으로 한다”고 하한선만 규정하고 있습니다.

 

국회의원 숫자가 처음부터 300명이었던 것은 아닙니다. 해방 뒤 미 군정 시기 과도입법 의원들이 선거법을 만들어 1948년 5월10일 제헌국회 선거를 치렀습니다. 제헌국회 의원은 200명이었습니다.

 

그 뒤 제헌국회에서 제정한 1948년 헌법은 국회의원 숫자를 따로 규정하지 않았습니다. 1948년 헌법 32조는 “국회는 보통, 직접, 평등, 비밀선거에 의하여 공선된 의원으로써 조직한다. 국회의원의 선거에 관한 사항은 법률로써 정한다”고 했을 뿐입니다. 다만 부칙에 “이 헌법을 제정한 국회는 이 헌법에 의한 국회로서의 권한을 행하며 그 의원의 임기는 국회 개회일로부터 2년으로 한다”고 해, 제헌국회 의원 200명을 임기 2년의 국회의원으로 인정했습니다.

 

그 뒤 1952년 개정 헌법은 양원제를 도입하면서 “국회의원의 정수와 선거에 관한 사항은 법률로써 정한다”고 했습니다. 또 4?19 혁명 이후 개정된 1960년 헌법은 “민의원 의원의 정수와 선거에 관한 사항은 법률로써 정한다. 참의원 의원은 특별시와 도를 선거구로 하여 법률의 정하는 바에 의하여 선거하며 그 정수는 민의원 의원 정수의 4분지 1을 초과하지 못한다”고 했습니다.

 

헌법에 국회의원 수가 들어간 것은 5?16 군사 쿠데타 뒤 3공화국부터입니다. 1963년 헌법은 36조 2항에 “국회의원의 수는 150인 이상 200인 이하의 범위 안에서 법률로 정한다”고 했습니다. 박정희 대통령 3선을 위해 개정한 1969년 헌법은 “국회의원의 수는 150인 이상 250인 이하의 범위 안에서 법률로 정한다”고 상한선을 50명 늘렸습니다.

 

1972년 유신헌법은 다시 국회의원 숫자를 없앴습니다. 76조에 1항에 “국회는 국민의 보통·평등·직접·비밀선거에 의하여 선출된 의원 및 통일주체국민회의가 선거하는 의원으로 구성한다”, 2항에 “국회의원의 수는 법률로 정한다”고 했습니다.

 

1980년 전두환 신군부 쿠데타 뒤 개정된 5공화국 헌법은 77조 2항에 “국회의원의 수는 법률로 정하되, 200인 이상으로 한다”고 규정했고, 1987년 개정된 현재의 6공화국 헌법에 그대로 이어졌습니다. 이 조항은 지난 3월 문재인 대통령이 국회에 제출한 헌법 개정안에도 같은 내용으로 담겼습니다.

 

1948년 우리나라 인구는 2천만 명이었습니다. 당시 국회의원은 200명이었습니다. 현재 우리나라 인구는 5천만 명입니다. 따라서 국회의원도 300명보다는 훨씬 많은 것이 정상입니다. 정치학자들의 계산에 따르면 350~450명 정도가 적정한 규모라고 합니다. 따라서 지금보다 50명에서 150명 정도를 늘리는 것이 옳습니다.

 

국회의원 숫자를 그냥 늘리기만 해서는 안 됩니다. 유권자의 뜻이 가장 정확히 반영될 수 있는 구조로 선거제도를 바꾸면서 늘려야 합니다. 문재인 대통령이 제출한 헌법 개정안에도 “국회의원의 선거구와 비례대표제, 그 밖에 선거에 관한 사항은 법률로 정하되, 국회의 의석은 투표자의 의사에 비례하여 배분해야 한다”고 되어 있습니다.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해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현재 우리나라의 국회의원은 소선거구제로 뽑는 지역구 의원 253명과 비례대표 의원 47명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승자독식을 기본 구조로 하는 이런 선거법은 유권자의 뜻을 왜곡하고 정치 발전과 사회 통합을 가로막는 등 중대한 문제를 안고 있습니다.

 

소수자와 약자의 목소리를 대변하는 정당의 국회 진출을 가로막기 때문입니다. 지역 갈등을 심화시키기 때문입니다. ‘승자의 억지’와 ‘패자의 불복’을 유도하기 때문입니다. 대화와 타협의 정치를 어렵게 만들기 때문입니다.

 

노태우 정부에서부터 문재인 정부에 이르기까지 정치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고 정치적, 사회적, 경제적 불평등이 점점 더 깊어지는 가장 근본적 원인이 바로 승자독식 선거법입니다.

 

6?13 지방선거 서울시의회 선거에서 더불어민주당은 광역 비례대표 정당 득표율이 50.92%였지만 의석은 102석으로 무려 92.73%를 차지했습니다. 자유한국당은 25.24%를 득표했지만 6석(5.45%)에 그쳤습니다. 바른미래당은 11.48%를 득표하고 겨우 1석(0.90%)을 얻었고, 정의당도 9.69%를 득표하고 1석을 얻었습니다.

 

더불어민주당을 지지하는 유권자들은 이런 선거 결과를 좋아할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선거의 승패는 언제든 뒤집힐 수 있습니다. 다음 선거에서 더불어민주당이 25%를 득표했는데도 의석은 5%만 차지했다면 공정하다고 인정할 수 있을까요?

 

정당 득표율과 의석을 가급적 일치시켜야 정치가 발전하고 사회적, 경제적 불평등을 해소할 수 있다는 ‘비례대표 민주주의’를 드러내놓고 반대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반대할 명분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런데도 비례성을 강화하는 선거법 개정은 좀처럼 이뤄지지 않고 있습니다. 왜 안 될까요?

 

‘정치 기득권 세력’과 ‘경제 기득권 세력’의 교묘한 담합 때문입니다. 정치 기득권 세력은 현직 국회의원들과 관료 집단입니다. 경제 기득권 세력은 재벌 대기업 ‘오너’들과 거대 언론사 사주들입니다.

 

이들은 왜 비례성 강화 선거법 개정에 반대하는 것일까요? 비례성을 강화하는 선거법 개정이 그들의 이익을 침해하기 때문입니다. 좀 쉽게 설명하겠습니다.

 

첫째, 현직 국회의원은 기본적으로 선거법 개정에 소극적일 수밖에 없습니다. 현행 선거법에 의해 당선된 기득권자이기 때문입니다.

 

선거법은 법률입니다. 개정 권한을 국회의원들이 가지고 있습니다. 비례성 강화 선거법 개정은 국회의원 증원으로 이어지는 것이 필연입니다. 비례성을 강화하려면 비례대표 의원 숫자를 대폭 늘려야 하는데, 의원 정수를 300명으로 묶어둔 상태에서 비례대표 의원 숫자를 늘리면 253명 지역구 의원 숫자를 그만큼 줄여야 합니다. 지역구 의원 숫자를 줄이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합니다.

 

따라서 비례성을 강화하려면 전체 국회의원 숫자를 늘릴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국회 예산을 동결하고 국회의원 숫자를 늘리면 국회의원 한 사람에게 돌아가는 수당(세비)이 줄어들게 됩니다. 보좌진 숫자도 축소될 가능성이 큽니다. 국회의원 개개인 입장에서 이런 상황을 좋아할 리가 없습니다.

 

 

문희상 국회의장과 각 당 대표들이 5일 국회 사랑재에서 열린 국회의장 주최 정당대표 초청 오찬 간담회에서 손을 잡고 기념사진을 촬영한뒤 자리로 향하고 있다. 왼쪽부터 정의당 이정미, 바른미래당 손학규, 더불어민주당 이해찬 대표, 문의장, 자유한국당 김병준 비상대책위원장, 민주평화당 정동영 대표. 김경호 선임기자 jijae@hani.co.kr
문희상 국회의장과 각 당 대표들이 5일 국회 사랑재에서 열린 국회의장 주최 정당대표 초청 오찬 간담회에서 손을 잡고 기념사진을 촬영한뒤 자리로 향하고 있다. 왼쪽부터 정의당 이정미, 바른미래당 손학규, 더불어민주당 이해찬 대표, 문의장, 자유한국당 김병준 비상대책위원장, 민주평화당 정동영 대표. 김경호 선임기자 jijae@hani.co.kr

 

2017년 3월 당시 바른정당 소속이었던 김학용 의원이 ‘국회의원 정수 감축 방안’을 주제로 토론회를 한 적이 있습니다. 바른정당은 국회의원 정수를 300명에서 200명으로 줄이고 소선거구제를 중대선거구제로 개편하는 방안을 당론으로 채택한 상태였습니다.

 

저는 반대 토론자로 참석해서 “국회의원 숫자를 줄이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오히려 국회의원 숫자를 늘리고 국회의원에게 주는 돈을 줄이는 것이 옳다”고 주장했습니다. 김학용 의원은 “지금도 세비가 적은데 어떻게 세비를 더 줄이라고 하느냐”고 펄펄 뛰며 반박했습니다. 매우 인상적인 장면이었습니다.

 

소선거구제는 어떨까요? 지역구 의원 253명은 소선거구제에 의해 당선됐습니다. 소선거구제로 다음 선거를 치러야 자신이 당선될 가능성이 크다고 생각합니다. 특히 거대 정당인 더불어민주당과 자유한국당 지역구 국회의원들이 그렇습니다. 이들은 중대선거구제나 도농복합형 중대선거구제로 선거제도를 바꾸고 싶어 하지 않습니다. 제도를 바꿔서 위험을 자초할 이유가 없기 때문입니다.

 

더불어민주당과 자유한국당 의원들은 모두 다 악당일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인간은 자신이 손해 보는 일을 하지 않으려고 하는 것이 당연합니다. 그들의 입장에서 생각하면 현상유지를 원하는 것이 매우 합리적입니다. 소선거구제를 중대선거구제나 도농복합형 중대선거구제로 바꾸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합니다.

 

둘째, 관료 집단은 행정부 구성원입니다. 입법-사법-행정 삼권 분립 체제에서 입법부는 행정부를 감시하고 견제합니다. 입법부가 강해지는 것을 행정부 구성원들이 좋아할 수 없습니다.

 

박정희 정부에서 고위 관료를 지냈던 사람 중에는 “대통령 한 사람에게만 충성하면 그만이었던 그 시절이 좋았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런 사람들은 국회를 무력화시키고 국가 권력을 대통령 한 사람이 장악하고 있던 독재체제를 그리워하고 있는 것입니다.

 

셋째, 재벌 대기업 오너들은 독재체제에서 특혜와 정경유착으로 부를 축적한 뒤 이제는 거추장스러운 정치를 밀어내고 대한민국의 주인 행세를 하려는 사람들입니다. 이들도 국회와 국회의원의 힘이 세지는 것을 좋아할 리가 없습니다.

 

더구나 비례성 강화로 늘어나는 국회의원들은 중산층과 서민, 노동자와 농민 등 사회적 약자나 소외계층을 대변할 가능성이 큽니다. 재벌 대기업 오너들로서는 기를 쓰고 비례성 강화 선거법 개정을 막아야 할 이유가 있는 것입니다.

 

넷째, 거대 언론사 사주들은 기득권 세력의 핵심 구성원입니다. 기득권 세력의 이데올로기인 반정치주의를 우리나라 언론이 끊임없이 확대 재생산하는 이유입니다.

 

정리하면 현직 국회의원들의 소극적 자세와 관료, 재벌, 언론 등 기득권 세력의 적극적 반대로 비례성 강화 선거법 개정이 쉽게 이뤄지지 않고 있는 것이 현재 상황입니다.

 

최근 몇 년 동안의 선거법 개정 논의 가운데 꼭 알아야 할 몇 장면이 있습니다.

 

2015년 2월 24일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제안한 공직선거법 개정안은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 지역주의 완화와 유권자 의사를 충실히 반영하는 국회의원 선거제도 개선

 

○(권역별 비례대표제 도입)

 

-전국을 6개 권역으로 구분하고 국회의원 정수 300명을 권역별 인구비례에 따라 배분하되, 지역구와 비례대표 비율은 2:1 범위에서 정함.

 

-권역별로 배분의석을 확정하여 각 의석할당 정당의 득표율에 따라 정당별 의석(지역구+비례)을 배분함.

 

-정당별 배분의석에서 지역구 당선인을 제외한 나머지 인원을 비례대표 명부순위(지역구 후보자의 동시 입후보 가능)에 따라 권역별 당선인으로 결정함.

 

○(지역구 후보자의 비례대표선거 동시 입후보)

 

-같은 시·도 안의 지역구 후보자에 한하여 2명 이상을 비례대표 후보자명부의 같은 순위에 배치할 수 있게 하고, 지역구에서 낙선할 경우 상대 득표율이 가장 높은 후보자를 당선인으로 결정함.

 

-동시 입후보자 득표수가 자신이 입후보한 지역구 유효투표 총수의 3%에 미달하거나 해당 시?도에서 소속정당의 지역구 당선인 수가 그 시·도 전체 지역구 수의 1/5 이상인 경우 당선될 수 없도록 함.

 

→ 권역별 비례대표제에도 적용

 

 

 

권역별 비례대표제를 도입하되 지역구 의원을 200명으로 줄이고 비례대표 의원을 100명으로 줄이자는 의견입니다. 지역구 현역 의원들이 이런 선거법 개정안을 받아들일 수 있을까요?

 

기자들이 따져 물었습니다. 선관위의 답변은 “현역 의원들의 반발로 어려움이 있겠지만, 어차피 위헌 결정으로 선거구를 조정해야 하는 만큼 유권자 의사를 왜곡하지 않고 (인구) 비례성을 높일 수 있게 언론에서 역할을 해 달라”는 것이었습니다.

 

언론에서 압력을 가해 의원들의 반발을 누그러뜨려 달라는 무책임한 얘기였습니다. 저는 이때 선관위의 답변이 너무나 비겁하고 위선적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선관위 사람들은 그 뒤 국회에서 여러 차례 “그런 비현실적 개정안을 내놓은 의도가 뭐냐”고 의원들의 추궁을 받아야 했습니다.

 

 

심상정 정의당 의원. 신소영 기자
심상정 정의당 의원. 신소영 기자

 

2015년 3월15일 정의당 원내대표를 맡고 있던 심상정 의원이 권역별 정당명부 비례대표제 전면 도입을 주장하며 국회의원 정수를 360명으로 확대하고 국회의원 특권을 축소해서 총비용을 동결하자는 제안을 내놓았습니다.

 

 

“선관위가 제시한 안(지역구 200, 비례 100석)은 현행 의원정수를 유지하되 지역구 46석을 축소하는 방안입니다. 그러나 이 안은 현실적으로 실현되기 어려울 뿐만 아니라, 국제적으로 보더라도, 우리나라 의원 정수는 OECD 평균을 밑도는 수준입니다. 그런 점에서 국회의원 정수 확대는 불가피하고도 필요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의원 정수를 늘림으로써, 취약한 대표성을 강화하고 의원 특권을 실질적으로 축소함으로써, 국민의 신뢰를 얻어 미래를 여는 선거법 개정으로 나가야 합니다.

 

의원 세비 등 국회의원 유지에 필요한 비용을 20% 삭감하고 운전비서 지원 등 우리나라에만 있는 특권은 과감하게 폐지하며, 해외 출장 등 의원 활동을 투명하게 개혁함으로써 국회의원 유지에 필요한 총비용을 동결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되면 국회의원 세비 수준 또한 OECD 평균 이하로 낮출 수 있습니다.”

 

 

매우 합리적인 제안이었지만 심상정 의원은 엄청난 비판을 받아야 했습니다. 반정치주의 때문이었습니다.

 

며칠 뒤 새정치민주연합 대표였던 문재인 대통령이 국회의원 증원론에 가세했습니다. 2015년 4월6일 새정치민주연합 정책 엑스포에 참석한 문재인 대표는 ‘국회의원 몇 명이 적당할까요’라는 설문 행사에서 ‘351명 이상’난에 스티커를 붙였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말했습니다.

 

 

“우리나라 국회의원 수가 부족하다. 400명은 돼야 한다. 국민에게는 그렇게 인식되지 않고 있지만, 다른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와 비교하면 (인구수 대비 의원 비율이) 낮다. 국회의원 수를 늘리면 정당명부 비례대표제(권역별 비례대표제)를 하고, 직능 전문가 비례대표를 모실 수 있고, 여성 30%(비례대표 보장)도 가능해진다.”

 

옳은 얘기였습니다. 그러나 파문이 일자 문재인 대표는 “하나의 퍼포먼스였다. 가볍게, 장난스럽게 한 것이다. 다음에 더 준비해 말씀드리겠다”고 진화했습니다.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는 문재인 대표의 발언에 대해 “의원 정수 문제는 지금 우리가 300명인데 이걸 더 늘려선 안 된다고 생각한다”고 했습니다. 반정치 정서에 슬쩍 편승한 것입니다.

 

그 뒤 2016년 국회의원 선거를 앞두고 국회는 지역구 국회의원을 246명에서 253명으로 늘리고 비례대표 국회의원을 54명에서 47명으로 줄였습니다. 헌법재판소의 지역구 인구 편차 ‘2 대 1’ 결정에 맞추기 위해 지역구 의석이 더 필요했기 때문입니다. 국회의원 정수를 늘리지 않으면 비례성이 점점 더 악화할 수밖에 없는 현실을 드러낸 것입니다.

 

자 이제 어떻게 해야 할까요? 국민의 다수가 국회의원 증원을 반대하는 이유는 국회의원들을 특권층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특권은 희소성에서 오는 것입니다. 따라서 국회의원 개개인의 특권을 줄이려면 국회의원 숫자를 오히려 늘려야 합니다.

 

과거 사법시험으로 소수 정예의 법조인을 선발하던 시절, 법조인들은 우리 사회의 특권층이었습니다. 그러나 사법시험 선발 인원을 대폭 늘리고 법학전문대학원(로스쿨) 제도를 도입하면서 법조인은 이제 더는 특권층이 아닙니다.

 

최근 문희상 국회의장, 정동영 민주평화당 대표, 이정미 정의당 대표 등이 국회 예산 및 세비 동결을 전제로 국회의원 정수 증원을 요구하고 나섰습니다. 더불어민주당과 자유한국당 의원 중에서도 양심적인 의원들은 이들의 주장에 찬성하고 있습니다.

 

저는 이들의 제안이 매우 타당하다고 생각합니다. 앞으로 이들의 제안에 반대하는 사람들이 누구인지 자세히 살펴보시기 바랍니다. 우리 사회의 정치 개혁과 경제적 불평등 해소에 반대하는 기득권 세력일 가능성이 매우 크기 때문입니다.

 

성한용 선임기자 shy99@hani.co.kr



원문보기: 
http://www.hani.co.kr/arti/politics/polibar/861305.html?_fr=mt1#csidxb7c88cf770208f9ab350ac0dc738f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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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년 만의 메르스, 왜 공항에서 확인 못 했나?

[안종주의 안전사회] 입국 때 발열 증상 보였는데 정상 입국, 왜?
2018.09.09 14:28:34
 

 

 

3년 만에 메르스(MERS, 중동호흡기증후군)가 다시 국내 상륙했다. 이 불청객을 물리치기 위해 방역당국, 의료기관이 비상사태에 돌입했다. 질병관리본부는 중동의 쿠웨이트를 방문한 뒤 아랍에미레이트 두바이에서 출발한 항공기 EK322편(아랍에미레이트항공)으로 지난 7일 오후 4시51분 입국한 61세 남성이 8일 오후 4시 서울대병원에서 메르스 확진 판정을 받았다고 이날 오후 6시30분께 발표했다. 입국 후 확진까지 24시간, 언론을 통해 공개된 시점까지 27시간이 걸렸다. 

이는 2015년 메르스 대유행 때 느려 터졌던 대응과는 완전히 다르다. 3년 전 메르스 사태는 첫 환자가 입국 후 확진 판정을 받기까지 보름이 걸렸다. 당시 최초의 환자는 카타르에서 출발해 2015년 5월 4일 인천공항을 통해 입국했다. 첫 진료는 12일, 확진 판정은 20일 이루어졌다. 확진판정까지 보름 넘게 걸린 것이다. 그 사이 그는 병원 곳곳에서 재앙의 씨인 바이러스를 퍼트렸다. 

당시 정부는 메르스 유행 병원 비공개 등 잘못된 판단과 부실 대응, 그리고 늑장 조처로 감염병 위기관리에 완전 실패했다. 이러한 초기 대응 실패로 7개월간 활개를 친 메르스는 그해 12월23일 유행 종료를 선언한 날까지 환자 186명, 사망자 38명, 격리조치 1만6693명이라는 부끄러운 기록을 지닌 감염병 재난으로 자리매김했다. 

입국 때 기침, 발열 등 폐렴 증상 보였는데도 정상 입국 

방역당국에 따르면 이 60대 남성은 지난달 28일 설사증상으로 쿠웨이트 현지 의료기관을 방문하는 등 사전에 메르스로 의심할만한 정황이 있었다고 한다. 이는 이미 잠복기 상태를 지나 비행기 탑승 및 입국 당시 타인에게 메르스코로나 바이러스를 전파할 수 있는 상태의 환자였을 가능성이 높았다는 것을 뜻한다. 그는 입국 당시부터 열이 나고 가래, 기침과 함께 폐렴 증상에 시달렸다고 한다. 

한데 그가 인천국제공항에서 검역이 이루어져 곧 바로 서울대병원 등 음압격리병상이 있는 의료기관으로 이송된 것이 아니라 정상적으로 입국해 삼성서울병원 응급실을 찾은 것에 대해서 철저한 조사가 이루어져야 할 것으로 보인다.  

다시 말해 그가 입국하면서 검역 체크 때 중동 현지 의료기관에서 메르스 의심증세로 현지의료기관을 내원한 사실이 있는 것과 자신의 증상을 검역신고서에 적어내지 않은 것인지, 아니면 체크했는데도 공항검역소에서 이를 그냥 지나친 것인지를 조사해야 한다. 이와 함께 그가 어떤 경로로 메르스에 감염됐는지, 쿠웨이트 외 다른 중동국가를 방문한 적은 없는지 등도 추적조사 해야 한다.  

방역당국은 그가 입국하면서 밀접접촉한 사람은 그와 인접한 좌석에서 여행한 승객 10명과 승무원 3명, 검역관 1명, 서울삼성병원 의료진 4명, 가족 1명 등 모두 20명으로 파악하고 이들을 자책 등에 격리해 관찰하고 있다고 밝혔다. 질병관리본부는 또 메르스 환자가 기침을 할 때 침방울(비말, 飛沫)을 통해 감염이 일어날 수 있는 밀접접촉자가 이들 외에 더 있을 가능성이 있다고 보고 놓친 접촉자가 없는지 역학조사를 벌이고 있다고 밝혔다.

감염병 전문가, 2015년처럼 유행 가능성은 낮아 

이는 2015년 대유행 때 엄청난 희생을 치르고 나서 배운 교훈을 바탕으로 취한 자세로 보인다. 바람직한 태도다. 메르스와 같은 위험한 신종감염병을 다룰 때는 최악의 상황을 가정한 시나리오에 따라 역학조사와 이동차단과 격리(콰란틴)를 하는 것이 기본이기 때문이다.

이 환자가 서울삼성병원 응급실을 찾은 까닭도 밝혀내야 한다. 삼성과 관련이 있는 사람인지, 아니면 삼성서울병원이 최고의 치료기관 가운데 하나여서인지, 혹 자신의 증상이 메르스와 유사하다고 보고 2015년 많은 메르스 환자를 진료한 경험이 풍부한 병원을 찾은 것인지를 물어 확인해야 한다. 

만약 삼성서울병원이 메르스 환자 치료 경험이 많은 병원이어서 찾아갔다면 이는 매우 위험한 행위로 그는 도덕적 해이를 비난받아 마땅하다. 2015년 우리 사회에서 메르스 대유행 이후 메르스와 같은 매우 위험한 신종감염병 증상이 의심되면 보건소에 신고하거나 국립의료원이나 서울대병원 등 음압격리병상이 있는 의료기관을 찾아야 한다고 누누이 강조해왔기 때문이다. 

이번에는 다행히 입국 후 메르스 확진까지 매우 짧은 시간에 이루어졌기 때문에 만약에 하나 밀접접촉자에게 바이러스를 옮겼다 하더라도 격리만 잘 하면 더 이상의 확산을 충분히 막을 수 있다. 다시 말해 2015년과 같은 대유행 가능성은 매우 낮다는 것이다. 일반 시민들이 두려움에 떨 필요는 없다. 

감염병 전문가인 한림대 의대 이재갑 교수와 전병률 전 질병관리본부장(차의과대학 교수) 등도 이번에는 신속하게 확진 판정이 이뤄졌고 확진환자 접촉한 사람에 대해서도 신속한 격리 조치를 했으며 접촉 인원도 많지 않아 관리가 어렵지 않기 때문에 2015년도처럼 시민들이 동요하거나 불안할 필요는 없다고 밝혔다.  

위험인식 전문가들은 치사율이 높고 과거 치명적 결과를 보인 역사적 경험이 있는 위험, 즉 한국에서의 메르스 유행과 같은 위험은 실제보다 더 위험한 것으로 인식하는 경향이 있다는 연구결과를 보고하고 있다. 방역당국은 이런 점을 감안해 메르스 위험소통을 할 필요가 있다. 

2015년 우리 사회에서 유행한 메르스는 국제적 관심을 끌어 외국 유명 언론사들이 특파원을 한국에 보내기도 했다. 또 당시에는 중동(Middle East)에서 시작해 유행했던 질환이어서 중동호흡기증후군이라는 이름을 붙인 것에 빗대 의료체계와 의료 수준이 높다고 자부한 대한민국(Korea)에서 중동 국가와는 다른 형태로 대유행을 했기 때문에 한국호흡기증후군, 즉 코르스(KORS)란 신조어까지 필자의 작명으로 탄생하기도 했다.

메르스 창궐은 세월호 참사와 더불어 박근혜 정부 때 일어난 대표적 참사로서 국민의 민심 이반을 가져온 대표적 재난이었다. 문재인 정부 때는 아직 이와 유사하거나 맞먹는 참사나 재난은 일어나지 않았다. 그래서 3년 만에 돌아온 메르스를 어떻게 다루느냐에 더욱 관심이 쏠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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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이 잘못했다고 버리지 말고 매 들어달라"

신학림·김환균 '옥천 언론개혁 토크콘서트'…언론인의 긴장감, 독자의 피드백이 만든다윤수현 기자 | 승인 2018.09.08 18:19
 

[미디어스=윤수현 기자] ‘언론 위기의 해법은 무엇인가’에 대해 김환균 전국언론노동조합 위원장은 “국민이 언론에 매를 들어야 위기를 극복할 수 있다”고 밝혔다.

김환균 위원장은 7일 ‘청암 송건호와 언론개혁’ 토크콘서트에서 지난 정권의 문제는 언론에서 비롯됐다고 강조했다. 김 위원장은 “박근혜 정부 당시 한국 언론은 정권에 장악되어 목줄에 감긴 강아지 같았다”며 “촛불 시위 때 언론노조합라고 소개하면 ‘너희도 공범인데 왜 나왔느냐’는 말을 들었다. KBS와 MBC는 방송사 스티커를 카메라·마이크에 붙이지 못했다”고 회상했다.

▲신학림 전 언론노동조합 위원장과 김환균 현 언론노조 위원장이 '청암 송건호와 언론개혁' 토크콘서트를 진행하고 있다 (사진=미디어스)

김 위원장은 “만약 2014년 정윤회 국정개입 의혹이 있었을 때 언론이 잘했다면 촛불혁명은 일어나지도 않았을 것”이라며 “촛불혁명 때 시민들이 외친 ‘이게 나라냐’는 구호는 ‘너희들도 언론인이냐’라는 뜻으로 들렸다”고 밝혔다.

김 위원장은 “민주주의 사회에서 언론의 자유는 다른 모든 자유를 가능케 하는 자유”라며 “언론인은 자신의 주인인 국민이 행복해지길 바라는 마음으로 언론의 자유를 지켜야 한다”고 역설했다. 이어 “국민은 언론이 잘못 했다고 버리지 말고 매를 들어야 한다”며 “그것이 애정이고 언론인을 잘 부리는 방법”이라고 했다.

신학림 전 언론노조 위원장은 언론이 아니라 세상이 바뀌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신 전 위원장은 “언론을 바로 세우고, 이를 통해 나라를 바로잡는 것은 힘이 든다”며 “차라리 세상을 바꿔서 언론인이 스스로 바뀌길 기대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조선·중앙·동아를 포함한 족벌언론이 사회 지배 세력과 혼맥을 맺고 있다”면서 “국민이 정치를 통해 세상을 바꿔야 한다”고 밝혔다.

신 전 위원장은 “이길 것 같다는 판단이 생겼을 때 싸워야 하는 경우가 있고, 질 줄 알지만 어쩔 수 없이 싸우는 상황이 있다”면서 “언론인은 부당한 일이 닥쳤을 때 결과를 생각하지 말고 지더라도 모든 걸 걸고 싸워야 한다”고 말했다.

정순영 옥천순환경제공동체 사무국장(전 옥천신문 기자)은 “언론의 수준은 언론인이 독자를 얼마나 두려워하는지에 따라 결정된다”고 지적했다. 정 사무국장은 “옥천신문에서 기자를 할 때 독자의 피드백이 활발했다”며 “옥천신문이 작은 신문사이지만 기자들이 가지는 긴장감은 대형 언론사 못지않았다”고 밝혔다. 이어 “신문과 방송이 독자의 요구를 얼마나 수용하는지, 얼마나 무서워하는지가 언론의 수준을 좌우한다”고 설명했다.

윤수현 기자  melancholy@mediaus.co.kr

<저작권자 © 미디어스,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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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 휘호 앞에서 벌어지는 '수상한 미술제'

  • 분류
    알 림
  • 등록일
    2018/09/09 10:09
  • 수정일
    2018/09/09 10:09
  • 글쓴이
    이필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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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 '4대강 사업 미화 강정 대구현대미술제 중단' 촉구 집회 열려

18.09.08 14:25l최종 업데이트 18.09.08 20:15l

 

"MB 아바타 김문오 군수는 엉터리 관제 4대강 홍보쇼를 즉각 멈춰라!" 
"4대강사업 미화하는 강정 대구현대미술제 즉각 중단하라!"
"낙동강을 살려내라!!! 영남의 젖줄 낙동강 다 죽이는 4대강 보를 뜯어내라!!!"

 

 "4대강사업 미화-홍보하는 강정 대구현대미술제 즉각 철회하라!!"구호가 울려퍼지는 강정보 4대강 홍보관 디아크 앞 광장.
▲  "4대강사업 미화-홍보하는 강정 대구현대미술제 즉각 철회하라!!"구호가 울려퍼지는 강정보 4대강 홍보관 디아크 앞 광장.
ⓒ 대구환경운동연합 정수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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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것들아 녹조라떼 어쩔거냐?"라는 문구를 붙인 4대강 기념비 앞에서 강정 대구현대미술제 반대 집회를 벌이고 있다.
▲  "이것들아 녹조라떼 어쩔거냐?"라는 문구를 붙인 4대강 기념비 앞에서 강정 대구현대미술제 반대 집회를 벌이고 있다.
ⓒ 대구환경운동연합 정수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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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동강 강정보 앞 4대강 홍보관인 '디아크'가 서 있는 광장 한쪽. '낙동강 새물결 대통령 이명박'이라는 휘호와 4대강사업에 헌신했다는 수백 명의 관료들 이름이 촘촘히 박힌 기념비가 들어서 있는 곳. 지난 7일, 제 7회째를 맞는 '2018 강정대구현대미술제'라는 수상한 미술제가 오픈식을 앞두고 행사준비로 분주한 모습이었다. 

수상한 미술제에 앞선 또다른 행위예술 "명박이에게 녹조라떼를!"

오전 11시. 이곳에서는 또 다른 '행위 예술'이 진행됐다. 바로 4대강사업을 강행해 영남의 젖줄 낙동강을 녹조라떼가 흐르는 죽음의 강으로 만들어 놓은 이명박 전 대통령과 그의 뜻을 충실히 계승 발전하고 있는 김문오 달성군수의 '치적'을 기리기 위한 퍼포먼스가 펼쳐진 것.

대구에서 오랫동안 예술 활동을 해온 현역 작가들과 낙동강 수계 환경단체와 주민들의 연대체인 '낙동강네트워크' 활동가와 시민이 모여 '4대강사업 미화, 강정 대구현대미술제 강행하는 김문오 달성군수 규탄집회'를 열고 그 자리에서 이명박 전 대통령과 김문오 군수의 '화려한' 업적을 기리는 '소박한' 퍼포먼스를 펼쳤다.
 

 낙동강 새물결이라는 이명박 전 대통령의 휘호가 새개져 있는 기념석에 대구 작가들이 "죽어가는 4대강 눈감은 미술제 반대한다"는 문구가 박힌 시트지를 붙이고 있다
▲  낙동강 새물결이라는 이명박 전 대통령의 휘호가 새개져 있는 기념석에 대구 작가들이 "죽어가는 4대강 눈감은 미술제 반대한다"는 문구가 박힌 시트지를 붙이고 있다
ⓒ 대구환경운동연합 정수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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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명박 전 대통령에게 녹조라떼를 바치고 있는 대구 작가들.
▲  이명박 전 대통령에게 녹조라떼를 바치고 있는 대구 작가들.
ⓒ 대구환경운동연합 정수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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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들은 먼저 인쇄해 온 이명박 전 대통령 사진이 들어간 시트지를 기념비에 붙이고, 그의 입에 녹조라떼를 따랐다.

 

이들이 이런 퍼포먼스를 벌인 이유는 이 미술제가 "예술가들을 동원해 4대강사업을 미화하는 '4대강 홍보쇼'"이기 때문이다.

이 미술제가 4대강 홍보쇼로 불리는 이유는 이 미술제가 시작된 해가 바로 2012년 4대강사업이 준공하던 바로 그 해이고, 이 야외 설치 미술제가 진행되는 장소 또한 '4대강 홍보관' 디아크 앞이라는 점들 때문이다. 이곳이 '낙동강 새물결'이라는 이명박 전 대통령의 친필 휘호가 새겨진 기념석이 서 있는 곳이라는 점도 그런 이유들 중에 하나다. 

또한 이 미술제를 행하는 주체가 대구시민사회에 의해 이른바 'MB 아바타'라 불리는 김문오 달성군수라는 사실도 빠트릴 수 없다.

'MB 아바타' 김문오 달성군수의 화려한 4대강사업 미화 이력

김문오 현 달성군수는 3선 군수로 4대강사업이 한창인 2010년 달성군수로 취임하면서 누구보다 이 사업에 앞장섰다. 그리고 4대강사업이 준공된 이후 보로 막힌 낙동강을 적극 활용해 다양한 사업들을 벌였다.
 
 집회에 참석해 피켓을 들고 있는 배재일 대표. 그는 4대강사업으로 4대째 운영해오던 식당을 잃었다.
▲  집회에 참석해 피켓을 들고 있는 배재일 대표. 그는 4대강사업으로 4대째 운영해오던 식당을 잃었다.
ⓒ 대구환경운동연합 정수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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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적으로 국토부가 화원유원지라는 강변 유원지의 서민 식당들을 철거하며 만들어놓은 이른바 생태공원에 달성군이 직영하는, 이름하여 '사문진 주막촌'이라는 관제 주막촌을 차려 이곳 식당주들의 반발을 샀다. 

그곳에서 4대째 식당을 해왔다는 배재일 '사문진사람들' 대표는 이날 집회에 참여해 다음과 같이 달성군의 행태를 비난했다. 

"이곳은 예전에 사문진나루터가 있던 곳으로 상업의 거점이었다. 그런 까닭에 식당이 많이 들어섰고, 우리 집 또한 이곳에서 4대째 식당을 운영해오던 지역 토박이였다. 그런데 4대강사업으로 그 오래된 가옥도 뜯기고 쫓겨났는데, 그 자리에 달성군이 들어와서 관제 식당을 차려 버젓이 영업을 하고 있다. 군이 군민을 내쫓고 이곳에서 식당을 한다는 것이 말이 되는 소리인가."  

김문오 달성군수는 이뿐만 아니라 낙동강의 강물을 막아 세운 거대한 보로 인해 강에 심각한 맹독성 조류가 창궐하는 녹조현상이 발생하는 등 4대강사업에 대한 비난 여론이 드높던 2014년 난데없이 유람선 사업을 강행했다. 강이 아닌 바다에서 운항하는 24톤 유람선을 들여와 시퍼런 녹조가 창궐한 낙동강에서 유람선을 운항하는 배짱을 보여주었다. 환경단체에서 강하게 반대하는데도 불구하고 무시했다.  
 
 이날 참가자들은 녹조라떼가 된 낙동강에서 유람선 운항을 하고 있는 김문오 군수를 빗댄 피켓을 만들어 들었다.
▲  이날 참가자들은 녹조라떼가 된 낙동강에서 유람선 운항을 하고 있는 김문오 군수를 빗댄 피켓을 만들어 들었다.
ⓒ 대구환경운동연합 정수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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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화원유원지의 산림청 지정 희귀식물인 자생 모감주나무 군락지로 유명한 명소이자, 멸종위기종들의 서식처로 밝혀진 화원동산 하식애 수직 절벽 앞으로 강 안에 100억 원을 들여 강철파일까지 박아 생태탐방로라는 이름의 산책로를 닦으며 물의를 일으키기도 했다. 대구시민사회가 수십 차례의 기자회견과 성명서 등을 발표했지만, 한 차례 대화요청도 응하지 않고 철저히 묵살했다.

대구시민사회로부터 "4대강사업을 적극 찬양하고 이를 적극 활용한 대표적 인물"이라는 평가에 딱 어울리는 행정을 펼친 것이다. 그를 일러 대구시민사회가 'MB 아바타'라 부르는 이유다.

"작가적 양심으로 이 미술제를 더 이상 용인할 수 없다"

이런 달성군수가 벌이는. 
 
 이명박 휘호 글씨 아래 "죽어가는 4대강 눈감은 미술제 반대한다"는 문구가 붙어 있다.
▲  이명박 휘호 글씨 아래 "죽어가는 4대강 눈감은 미술제 반대한다"는 문구가 붙어 있다.
ⓒ 대구환경운동연합 정수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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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대강사업을 강행한 이명박 전 대통령은 재임 중 각종 비리행위와 권력을 재산 증식의 도구로 활용한 문제로 지금 감옥에 들어가 있는 상황이다. 또한 4대강사업은 국가기관인 감사원을 통해서도 전혀 편익이 없는 혈세탕진 사업임과 이 사업이 이명박 전 대통령의 강압적 지시로 이루어졌다는 것이 분명히 밝혀졌다.

이런 현실에서 2018년 올해도 이 미술제를 강행한다는 건 도저히 작가적 양심을 저버릴 수 없다는 것이 이 집회를 제안한 조각가 김기용 작가의 말이다. 그는 다음과 같이 이날 집회와 퍼포먼스를 개최한 배경을 설명했다.

"몇 해 전 이 미술제를 처음 봤을 때 미술작품들을 배경으로 돌에 새겨져 있는 MB와 수천 명의 4대강 관련자 명단을 보고 당황스러웠던 기억이 있다. 댐 형태의 거대한 강정보가 세워지기 40년 전쯤에 젊은 사람 여러 명이 진행했었다는 현대미술제를 2012년부터 대규모로 다시 시작하는 것은 의심의 여지없이 MB의 수많은 악행과 4대강사업을 고무 찬양하고자 기획했다고밖에 볼 수 없다.

4대강사업 결과 생태계가 파괴되고 강은 자정능력을 잃어 식수는 고사하고 농업용수로도 쓸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인간의 이기와 탐욕이 낳은 재앙인 것이다. 이러한 장소에서 예술 활동을 성대하게 치른다는 것은 마땅히 처벌받아야 할 범죄자들의 행위가 정당하다고 대변하는 것이나 다름 없는 일이다. 이것은 반사회적인 예술행위이며 미술이 사회적으로 외면 받게 되는 길을 가는 것이다." 

 
 집회에 참석한 김기용 작가가 발언하고 있다.
▲  집회에 참석한 김기용 작가가 발언하고 있다.
ⓒ 대구환경운동연합 정수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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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김기용 작가의 주장은 이 미술제를 주관하고 있는 '2018 강정 대구현대미술제 조직위'의 홍보글에서도 고스란히 드러난다.

MB 아바타 김문오 군수에 의해 벌어지는 순수 예술 행위?

"강정 대구현대미술제는 1970년대 대구 출신의 젊은 작가들이 기성 미술계의 경직성에 도전하며, 다양한 미술 실험을 펼쳤던 '대구현대미술제'의 정신을 계승하고자 2012년 대구 달성군 강정보 일원에서 처음 시작됐다."

조직위가 밝히고 있는 이 미술제 역사의 일단이다. 그러나 이들이 밝히고 있는 다음 문장을 보면 이 미술제의 성격을 짐작할 수 있다.

"강정 대구현대미술제는 주변환경에 대한 고려를 바탕으로, 예술의 공공성과 이것의 사회적 역할에 집중하여, 대중의 일상에 보다 확장된 예술 경험을 전달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전시가 열리는 강정은 금호강과 낙동강이 만나는 지정학적 위치와 '동양 최대 수문' 이라 불리는 강정보, 그리고 세계적인 건축가 하니 라시드가 디자인한 기하학적 건축물인 디아크 등 다양한 지역, 사회적 요소들을 갖추고 있다." 

 
 강정 대구현대미술제 반대 집회를 이곳에 놀러나온 유치원생들이 바라보며 지나가고 있다.
▲  강정 대구현대미술제 반대 집회를 이곳에 놀러나온 유치원생들이 바라보며 지나가고 있다.
ⓒ 대구환경운동연합 정수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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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기에는 '동양 최대 수문 강정보'라는 명확한 문구가 박혀 있다. 이는 "4대강사업으로 들어선, 강을 막아 낙동강을 죽이고 있는 4대강 보를 여전히 자찬하며 홍보하고 있다"는 이날 규탄집회를 벌이는 이들의 주장을 뒷받침한다.

이들은 또 "세계적 건축가가 만들었다는 디아크라는 거대하고 기이한 조형물 역시 국민혈세 180억이 들어간 '4대강 홍보관'으로서 4대강사업을 미화하는 흉물일 뿐"이라며 이 미술제가 열리는 장소를 주목하라고 말한다.

"이런 곳에서 열리는 미술제란 것이 도대체 뭐냐는 심각한 물음을 던질 수밖에 없다. 이들이 벌이는 미술제는 '기성 미술계의 경직성에 도전하며, 다양한 미술실험을 펼쳤던 '대구현대미술제'의 정신을 계승하고자' 한다는 애초의 대구 작가들의 도전정신을 심각히 왜곡시키고 타락시킬 뿐이다." 

김기용 작가의 주장이다. 

이에 대해 이 미술제를 주관하고 있는 달성군 산하 달성문화재단 최정길 대표이사는 다음과 같이 해명했다.

"4대강을 한 번도 거론한 적이 없고, 강정은 이곳의 고유 지명이다. 그 당시부터 강정미술제라 했다. 그래서 저희들이 순수한 예술 발전을 위해 그것을 계승 발전하는 차원에서 하는 것이다."

그러나 2억원의 달성군 예산이 들어간 이 사업은 미술제를 여는 주체와 이 미술제를 시작된 시점 그리고 장소 선정까지 그 해명을 그대로 받아들이기는 어렵게 만든다.

4대강사업은 재앙, 하루빨리 예산을 들여 왜곡된 구조를 개선해야

이 자리에서는 낙동강의 심각한 수질 문제와 생태계 파괴 문제를 넘어 4대강사업의 위험성에 대한 추가 문제제기도 이어졌다.
 
 전직 전교조 교사이자 현 덕암정가연구회 대표를 맡고 있는 이영희 선생이 거대한 보가 들어선 이후 낙동강의 심각한 위험성을 경고하고 있다.
▲  전직 전교조 교사이자 현 덕암정가연구회 대표를 맡고 있는 이영희 선생이 거대한 보가 들어선 이후 낙동강의 심각한 위험성을 경고하고 있다.
ⓒ 대구환경운동연합 정수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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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교조 지도자문위원이자 현 '덕암정가연구회' 대표를 맡고 있으면서, 강정보 부근에서 살고 있는 지역주민이기도 한 이영희 대표는 다음과 같이 주장하며 4대강사업의 위험성을 경고했다.

"우리 식수원에 창궐한 녹조 문제도 참 심각한데, 더 위험한 것이 있다. 4대강사업 후 제대로 된 태풍이 없어서 그렇지 10여 년 전에 닥친 루사나 매미 정도의 태풍만 와도 낙동강 둑이 다 터진다. 보로 인해 강물이 불어난 것이 더욱 정체돼 강정보 옆 낙동강 둑방 넘치지, 또 금호강에서 낙동강으로 일부러 물길을 내놔 거센 금호강물이 고령 다산면 둑방을 수직으로 들이치지, 그렇게 되면 저 둑방 무사하지 못할 거다. 심각한 물난리가 날 것이다."

멀리 창원에서 이날 집회를 위해 달려온 마창진환경운동연합의 배종혁 의장은 이런 위험한 낙동강을 바로잡기 위해서는 시급하게 지금의 왜곡된 낙동강의 취양수 구조를 개선하라고 강조했다.
 
 창원에서 달려온 마창진환경운동연합 배종혁 의장은 "잘못된 낙동강을 바로잡기 위해서도 빨리 취양수장 시설개선을 통해 낙동강의 보를 열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  창원에서 달려온 마창진환경운동연합 배종혁 의장은 "잘못된 낙동강을 바로잡기 위해서도 빨리 취양수장 시설개선을 통해 낙동강의 보를 열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 대구환경운동연합 정수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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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류 대발생'이라는 국가재난사태를 맞은 낙동강이다. 이 심각한 사태를 더 이상 방치해서는 안 된다. 하루빨리 낙동강 보의 수문을 열든 저 댐 같은 보를 철거하든 해야 한다. 빨리 취수장과 양수장 구조를 개선시켜야 한다. 그러려면 예산이 필요하다. 그 예산을 빨리 확보해 엉터리 구조를 개선해야 한다. 그런 데다 예산을 써야 하는데, 이런 엉터리 미술제에 국민혈세를 쓴다니 분통이 터질 일 아닌가 말이다."

4대강사업은 이미 국민적 지탄의 대상이 된 지 오래다. 국가기관에 의해서도 이 사업은 이명박 대통령이 대운하를 할 목적으로 국토부와 환경부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밀어붙였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조류 대발생이라는 녹색성장을 이룩한 이명박에게 찬사를!!' 집회에 참가한 이들이 이런 피켓을 만들어 들었다.
▲  "조류 대발생이라는 녹색성장을 이룩한 이명박에게 찬사를!!" 집회에 참가한 이들이 이런 피켓을 만들어 들었다.
ⓒ 대구환경운동연합 정수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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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도 이명박씨는 4대강사업에 대한 전혀 잘못된 것이 없는 국책사업이었고, 꼭 해야 할 사업이라고 거듭 밝힌 바 있다. 

심지어 심각한 녹조 문제가 사회적 문제가 되자. "녹조는 거짓 선동일 뿐이고. 오히려 수질이 좋아진 것이다. 그 물에 커피를 타 마시고 싶다"는 궤변을 늘어놓기도 했다.

그래서 이날 집회에 참가한 이들은 지금은 감옥에 가 있는 이명박 전 대통령에게 정성을 다해 녹조라떼를 바치는 행위예술을 펼쳤다.

"자업자득이다. 뿌린 대로 거두는 법"이라면서.
 
 작품명 "자업자득 이명박에게 녹조라떼를!!!"
▲  작품명 "자업자득 이명박에게 녹조라떼를!!!"
ⓒ 대구환경운동연합 정수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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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기자는 대구환경운동연합 활동가입니다. 지난 10여 년간 낙동강을 취재하면서 4대강사업의 진실을 파헤쳐왔습니다. 4대강 관련 비리 환경파괴 제보 환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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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산미군기지 모든 문은 폐쇄되었다. 즉각 떠나라!

용산미군기지 모든 문은 폐쇄되었다. 즉각 떠나라!
 
 
 
김영란 기자 
기사입력: 2018/09/09 [01:23]  최종편집: ⓒ 자주시보
 
 

 

미군강점 73년이 되는 2018년 9월 8오후 3시 서울 용산미군기지 게이트() 8곳에서 미군철수를 위한 투쟁이 진행되었다.

 

국민주권연대 소속 서울경기광주부산대구 본부와 한국대학생진보연합청년당서울 시민들이 미군기지 각 게이트 앞에서 안나오면 쳐들어간다라는 제목으로 행사를 진행했다.

 

각 게이트별로 사진과 주요 투쟁 내용을 소개한다.

 

◆ 1번 게이트, “들어라 양키야대학생들의 외침

 

▲ 미군강점 73년, 이제 지겹다. 나가달라!     © 자주시보, 김영란 기자

  

▲ 대학생들이 용산미군기지 1번 게이트 앞에서 '주한미군철수하라'의 선전물을 들고 있다     © 자주시보, 김영란 기자

 

▲ 주한미군철수! , 대학생들이 흥겹게 미군철수 분위기를 띄우고 있다 © 자주시보, 김영란 기자

 

한반도 정세는 통일을 향해 나아가고 있다남과 북의 정상이 만나서 이제는 서로가 총칼을 겨눌 필요가 없음을 확인했다역사적인 판문점선언을 통해 종전으로통일로 나아가고 있다한반도에 전쟁위험이 사라지고서로가 서로를 이해하고 존중하며 하나 되는 벅찬 새날이 눈앞에 왔다지금이 주한미군이 자기 발로 나갈 수 있는 마지막 기회이다

 

◆ 17번 게이트서울 시민들 특집 생방송주한미군 VS 빨강도깨비

 

▲ 용산미군기지 17번 게이트 앞에서 서울시민들이 미군 out!의 망또를 두르고, 미군은 이 땅에서 나가라고 요구하고 있다.     © 자주시보, 김영란 기자

 

▲ 주한미군 철수하라!!!     © 자주시보, 김영란 기자

 

▲ 서울 시민들이 주한미군 철거를 요구하는 강제퇴거 명령서를 미군기지 담벼락에 붙였다     © 자주시보, 김영란 기자

 

▲ 어린아이가 직접 주한미군 철수를 요구하는 선전물.     © 자주시보, 김영란 기자

 

주한미군 짝짝~짝 짝짝 몰아내자 짝짝~짝 짝짝.

주한미군은 저절로 알아서 철수 하지 않을 것이다국민들의 투쟁이 있어야 한다우리는 박근혜를 몰아낸 국민들이고 한반도의 평화와 통일을 바라는 국민들이기 때문이 가능하다판문점선언시대주한미군철수 투쟁을 더욱더 가열차게 진행하자

 

◆ 21번 게이트 청년당 주한미군 삼진OUT"

 

▲ 청년당 김수근 공동대표가 미군철수의 요구를 담은 선전물.     © 자주시보, 김영란 기자

  

▲ 미군기지에 국민의 이름으로 나가라는 경고장을 붙인 청년당     © 자주시보, 김영란 기자

 

 

▲ 전쟁발언을 일삼는 매티스 미 국무장관을 응징하는 선전물     © 자주시보, 김영란 기자

 

용산미군기지에 탄저균 실험실이 있는데 뿐만 아니라 보툴리늄페스트균까지 들었왔을 거라는 보고서도 나왔다미군이 한국에서 실험하는 이유는 한국은 무슨 짓을 해도 괜찮기 때문이랍니다그래서 한반도를 세균전 실험장으로 만들어버린 것이다이제는 막아야 한다더이상 미군 놈들이 소중한 내 나라를 더럽히는 것을 지켜볼 수 없다남과 북이 평화와 통일번영의 시대로 달려가는 이때주한미군은 더 이상 필요 없다이번에 내쫒자미군철수의 최적기촛불시민의 이름으로 미군을 몰아내자 

 

◆ 16번 게이트 국민주권연대 부산본부 8부두 세균실험실 폐쇄하자!”

 

▲ 국민주권연대 부산본부 회원들이 미군철수로 4행시를 선보였다     © 자주시보, 김영란 기자

 

▲ 미군철수를 바라는 부산 주민들의 '미군철수' 4행시     © 자주시보, 김영란 기자

 

▲ 국민주권연대 부산본부 회원들도 주한미군에게 강제퇴거장을 붙이며, 즉시 철수할 것을 요구했다.     © 자주시보, 김영란 기자

 

위험천만한 미8부두 세균실험장 즉시 폐쇄하고 미군은 이 땅을 떠나야 한다자주의 시대 평화의 시대 미국은 필요 없다 미국 놈들 몰아내자!”

 

◆ 3번 게이트 국민주권연대 대구본부 평화파괴자한미연합사주한미군 철수하라

 

▲ 국민주권연대 대구본부 회원들이 미군의 악행을 상징하는 선전물을 쌓았다     © 자주시보, 김영란 기자

  

▲ 국민주권연대 대구본부 회원들이 미군철수를 요구하며 구호를 외치고 있다     © 자주시보, 김영란 기자

 

▲ 용산미군기지에 강제퇴거 명령장을 붙이는 국민주권연대 대구본부 회원들     © 자주시보, 김영란 기자

 

“4.27 판문점선언시대 한반도 평화를 파괴하는 주한미군주한미군 2만 8천명은 즉시 이 땅을 떠나야 한다떠날 때 성주 사드도 갖고 떠나라

 

▲ 용산미군기지는 온전히 시민들에게 돌아와야 한다.     © 자주시보, 김영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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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 50만원 농민기본소득제, 농촌 붕괴 막고 도시 문제 해결할 대안”

[‘농민수당’ 톺아보기]“월 50만원 농민기본소득제, 농촌 붕괴 막고 도시 문제 해결할 대안”

고재섭

ㆍ해남군 첫 도입 주목…‘농민수당’ 톺아보기

전남 해남군의 ‘농민수당’ 지급 결정으로 농촌은 물론 도시의 고질적 문제를 해결하는 방안으로 ‘농민기본소득제’가 관심을 끌고 있다. 사진은 지난달 22일 올해 부산지역 첫 벼 수확이 이뤄진 강서구 들녘에서 한 농부가 활짝 웃는 모습이다. 연합뉴스

전남 해남군의 ‘농민수당’ 지급 결정으로 농촌은 물론 도시의 고질적 문제를 해결하는 방안으로 ‘농민기본소득제’가 관심을 끌고 있다. 사진은 지난달 22일 올해 부산지역 첫 벼 수확이 이뤄진 강서구 들녘에서 한 농부가 활짝 웃는 모습이다. 연합뉴스

 

지난달 30일, 전남 해남에서 가뭄 속 단비와 같은 기쁜 소식이 들려왔다.

해남군이 내년부터 전국 자치단체 가운데 처음으로, 가장 먼저 ‘농민수당’을 지급하기로 한 것이다. 가구당 연 60만원씩 해남군 전체 농가 1만4579가구가 대상이다. ‘농민수당’ 지급은 농가의 기본소득을 보장하고, 농업·농촌의 공익적 가치를 인정한 것이다. 농업이 농산물의 생산뿐만 아니라 국토환경과 자연경관 보호, 토양유실과 홍수 방지, 생태계 보전 및 지역사회의 지속가능성 유지 등 다양한 역할과 다원적 기능을 하고 있는 것에 대한 지자체 차원에서의 ‘공식 인증’이다.

전남 강진군도 보조금 형태로 지급
건강한 농촌이 있어야 도시도 건강
중앙정부 차원서도 관심 가질 필요

자치단체들 사이에는 최근 이에 대한 공감대도 형성되고 있다. 강진군이 농민수당 비슷한 형태의 보조금을 지급 중이고, 순천과 화순, 장흥, 담양, 영광, 무안, 함평 등에서도 지자체와 농민단체가 농민수당을 두고 협의가 진행 중이다. 해남군의 농민수당은 충분하지는 않지만 농업계의 숙원을 풀어준 것으로 다른 지자체의 선례가 된다는 점에서 그 의미가 크다. 해남군의 농민수당과 같이 농업에 종사하는 농민 또는 농가를 대상으로 일률적으로 기본소득을 지급하자는 것이 ‘농민기본소득제’다. 이 농민기본소득제를 깊이 들여다보면, 우리나라가 직면한 도시 문제를 포함해 복합적인 난제 해결의 길이 보인다. 지자체 차원이 아니라 중앙정부 차원에서 시급히 나서 전국적으로 시행해야 할 핵심 정책인 것이다.

누구나 알다시피, 우리나라는 여러 가지 어려움에 처해 있다. 역대 최고 수준이라는 소득불균형, 최근 다섯달 연속 100만명을 넘어선 실업자 수, 2000년 이후 최고치를 기록하고 있는 청년실업률, 무섭게 상승하는 대도시의 집값, 저출산, 미세먼지, 올해의 폭염 같은 이상기후…. 얼핏 보면 이 같은 문제들이 모두 별개로 보이지만 실제로는 하나의 맥락으로 연계돼 있다. 농촌의 붕괴가 밑바탕에 자리 잡고 있는 것이다.

농촌은 고령화 속도가 빨라져 70세 이상의 노인이 올해 들어 처음으로 30%를 넘어섰다. 일자리 찾기가 힘든 데다 교육·의료 등 기본적 서비스가 부재하고 농산물 가격 또한 형편없어 젊은이들은 도시로 떠난다. 반면 도시는 과밀 인구로 집값 상승, 열악한 환경 등 숱한 문제들로 몸살을 앓는다. 그렇다고 도시의 삶이 안정적인가. 임금소득과 노동소득으로 생계를 이어가는 것이 점점 더 어려워지고 있다. 창업해 성공하기보다 낙타가 바늘구멍을 통과하는 것이 더 나을지 모른다. 실업률은 해마다 치솟고, ‘조물주보다 높은 건물주’가 서민들의 어깨를 짓누르고 있다. 치열한 경쟁과 더불어 미래에 희망이 보이지 않으니 젊은이들은 결혼과 출산을 포기한다. 이런 도시 문제의 상당 부분은 농촌 붕괴에 따른 도시로의 인구 밀집 때문에 생기는 것이 아닐까? 최근 미세먼지, 폭염 문제도 도시 근교의 녹지감소에서도 한 원인을 찾을 수 있다.

농민기본소득제는 이 모든 문제를 관통, 해결하는 핵심 열쇠다. 농촌을 살리지 않고는 도시가 지속가능할 수 없다. 도시에서 농촌으로 사람들을 다시 불러들여 농촌을 살려내야만 도시의 문제는 물론 농촌의 문제도 해결된다.

젊은이들 떠나가 농촌 고령화 심각
인구 밀집에 도시의 삶도 팍팍해져
녹지 줄면 미세먼지·폭염에도 영향
농촌에 청년층 몰려야 근본적 해결

슬로푸드 운동을 하면서 농촌으로 가고자 하는 많은 젊은이를 만난다. 그저 농사가 좋아, 농촌이 좋아 귀촌하려는 젊은이들도 있고, 농촌에서 조그만 카페나 갖가지 공방, 지역문화운동 등을 하고 싶어 하는 젊은이들도 많다. 외국의 유명 조리학교 출신인 한 젊은이는 텃밭 딸린 농가에서 지역농산물로 음식을 만드는 레스토랑을 열고자 한다. 그러나 붕괴된 농촌에서 과연 성공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발목을 잡는다.

이들 많은 젊은이를 농촌으로 모여들게 하는 게 농민수당, 즉 농민기본소득제다. 풍족하지는 않아도 기본생활은 유지할 수 있을 정도라면 젊은이들이 주저 없이 발걸음을 농촌으로 향하게 될 것이다. 스마트폰으로 세계와 연결되니 농촌에 있어도 고립됐다는 느낌이 들지 않는다. 농촌에 다시 아이들 웃음소리가 들리고, 학교가 문을 열고, 서점과 카페를 읍내에서 볼 수 있게 된다. 생계가 안정되니 무리하게 농약을 치며 농사짓지 않고 정성껏 질 좋은 농산물을 생산할 수 있다. 이는 결국 땅과 물을 살리고 미세먼지, 폭염 같은 기후변화 문제의 해결에도 일조한다.

도시는 어떨까? 농촌의 붕괴로부터 몰려오는 과도한 압력이 줄어들면서 집값과 임대료의 거품이 사라질 수 있다. 자영업에서의 치열한 경쟁이 완화돼 연간 문을 여는 10개 중 9개가 폐업하는 비극도 크게 줄어들 것이다. 전국적으로 403만명이나 되는 ‘나 홀로 사장’ 중 많은 사장들이 농촌에 터를 잡고 농사일을 하면서 자신의 직업도 살릴 수 있다. 농민기본소득제가 되면 농업만큼 평생이 보장되는 확실한 생계형 ‘창업’이 없기 때문이다.

농민기본소득제는 원래 농촌 문제의 근본적 해결을 위해 제기된 처방이다. 김성훈 전 농림부 장관, 박경철 충남연구원 책임연구원, 정기석 마을연구소 소장 등에 의해 꾸준히 제기돼 왔다. 특히 지난 6·13 지방선거에서는 각당의 공약으로도 제시됐다.

사실 농민기본소득제는 농민, 농촌을 위해서라기보다도 도시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더 절실하다. 교육, 의료, 복지, 문화 인프라가 무너진 농촌공동체의 붕괴는 우리 모두를 엘리베이터처럼 좁은 도시에서의 삶을 강제하고 있기 때문이다.

도시민 매력 느낄 정도 액수 돼야
6조여원이면 103만명에 ‘월 50만’
일자리 예산으로 재원 확보 가능

농민기본소득제의 지급 대상, 금액은 학자들마다 다소 차이가 있다. 김성훈 전 장관은 농가 단위로, 정기석 소장은 청년농·영세농·고령농 등 주로 개별농업인 단위로, 박경철 박사는 농민의 범위를 넓혀 농촌주민으로까지 대상을 확대하자고 한다. 지원 금액은 농가 또는 농민에게 월 50만원 정도로 모아지고 있다. 제도를 도입해 금액을 정할 때는, 도시민들이 농민기본소득에 충분히 매력을 느껴 이주하고자 하는 마음이 들 정도여야 실효를 거둘 수 있다.

그렇다면 예산 확보는? 농민기본소득을 연구하는 전문가들은 예산 확보에 대해서도 모두 긍정적이다. 농업예산의 조정을 통해 가능한 것이다. 김성훈 전 장관의 경우, 농가 호당 약 월 50만원씩 전국 110만 농가에 일률적으로 지원한다고 할 경우 연간 총 6조6000억원이 소요되는데 기존의 각종 직불금 예산과 농업 관련 기관의 구조조정 등으로 조달할 수 있다고 한다.

그러나 우리가 처한 숱한 난제들을 해결하고자 한다면, 농업예산을 벗어나 보다 큰 틀에서의 접근이 필요하다. 현재처럼 농촌과 도시를 별개로 나눈 칸막이 예산 방식의 처리로는 농촌과 도시의 고착된 문제를 풀 수가 없다. 정부의 재정지출 구조를 바꾸어야 한다. 2019년 정부예산안을 보면 내년 예산의 투자 중점을 일자리 창출, 혁신성장, 저출산 대응, 소득분배 개선 등 구조적 문제 해결에 두었다. 이를 칸막이 사고방식에서 벗어나 농촌과 연계해 보라. 정부가 추구하고자 하는 목표들이 농민기본소득제로 달성될 수 있다는 희망이 보이지 않는가.

정부의 내년 예산을 보면 청년일자리 창출과 고용산업 위기지역 지원에 3조9000억원, 구직급여에 7조4000억원, 지역주도형 청년일자리 사업에 2조5892억원 등 일자리예산만 23조4566억원이나 된다. 지난달 청년실업을 포함, 실업자 수는 총 103만9000명이다. 이들이 평생 보장되는 창업 분야인 농업에 종사한다고 할 때 매월 50만원씩 지원한다고 해도 6조2340억원이면 충분하다.

농민기본소득제는 각 개인의 창조적인 잠재력을 극대화함으로써 경제성장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요즘 수많은 젊은이들은 돈을 적게 받더라도 진정으로 자신이 꿈꾸는 일을 하고 싶어한다. 이들이 홀가분한 마음으로 일할 수 있는 곳이 농촌이 될 수 있다. 낮은 급여에도 일하는 준자원봉사직이라는 새로운 경제 영역이 확대돼 민간분야의 공공활동에도 적지 않은 도움을 줄 것이다.

모두가 알다시피 건강한 농촌 없이는 건강한 도시가 있을 수 없다. 농민기본소득제는 사전예방적인 정책이다. 도시가 받는 압력을 줄여 농촌과 도시 모두가 더불어 더 균형 잡히고 발전하는 사회를 만들어 줄 것이다. 농민기본소득제 도입, 이제는 머뭇거릴 일이 아니다.

 
[‘농민수당’ 톺아보기]“월 50만원 농민기본소득제, 농촌 붕괴 막고 도시 문제 해결할 대안”

고재섭은 (주)김정문알로에 자연의학연구원장, (사)팔당생명살림 상임이사를 거쳐 지금은 국제슬로푸드한국협회 상임이사로 슬로푸드 운동에 힘쓰고 있다. 농업, 음식, 의학의 상관관계를 연구하고 사람과 사회, 생태계가 좀 더 평화로이 소통하고 공존하기를 갈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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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 “김 위원장, 우리는 함께 해낼 것”

폼페이오 “할 일 많다”..비건 대북정책대표 다음 주 방한
조정훈 기자  |  whoony@tongil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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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8.09.07  14:3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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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은 6일(현지시각) 자신의 트위터를 통해 김정은 위원장에게 감사를 표하고 "함께 해낼 것"이라고 입장을 밝혔다. [캡처-트럼프 미 대통령 트위터]

대북 특사단 방북 결과 발표 이후,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은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에게 고맙다며 함께 해낼 것이라고 강조했다. 스티븐 비건 미 대북정책특별대표는 다음 주 방한한다.

트럼프 대통령은 6일(현지시각) 자신의 트위터에서 “북한 김정은이 “트럼프 대통령에 대한 변함없는 신뢰”를 공표했다. 김(정은) 위원장에게 고맙다”며 “우리는 함께 해낼 것이다!”라고 화답했다.

앞서 정의용 대북특사는 6일 방북 결과 브리핑에서 김정은 위원장이 “트럼프 대통령에 대한 자신의 신뢰는 변함이 없다. 최근 북미 간 협상에 다소 어려움은 있지만 그럴 때일수록 자신의 트럼프 대통령의 신뢰는 계속 유지될 것”이라며 “트럼프 대통령의 첫 임기 내에 북한과 미국 간의 70년간의 적대 역사를 청산하고, 북미관계를 개선해 나가면서 비핵화를 실현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고 밝혔다.

이를 두고 트럼프 대통령이 고마움을 표한 것. 하지만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은 다소 신중한 자세를 보였다. 북한이 아직 해야 할 일이 많다는 반응을 내놨다.

인도를 방문 중인 폼페이오 국무장관은 6일(현지시각) 기자들과 만나, “6월 이후 북한이 핵.미사일 시험을 하지 않고 있는 점은 환영하지만, 김 위원장이 해야 할 일은 여전히 많다”고 강조했다.

“북한은 유엔 안보리 제재결의 하에 놓여 있는 국가”이며 “안보리 결의를 준수해야 하고 6월 싱가포르 정상회담에서 김 위원장이 약속한 것을 이행해야 한다”는 것. 구체적으로 북한이 더 내놓아야 할 것은 언급하지 않았다.

그는 거듭 “여전히 해야 할 많은 일이 있다”고 강조하며, “김 위원장이 북한 주민과 국가의 더욱 밝은 미래를 위해 우리가 이야기해 온 전략적 변화를 하도록 설득하는 작업은 계속된다”고 말했다.

이런 가운데, 스티븐 비건 미 국무부 대북정책특별대표가 오는 10일부터 15일까지 한국과 중국, 일본을 순방한다. 비건 대표의 동북아 순방은 지난달 임명된 이후 처음이다.

미 국무부는 “싱가포르에서 김정은 위원장이 합의한 대로 최종적이고 완전하게 검증된 북한의 비핵화를 달성하기 위한 외교적 노력을 위한 것”이라고 순방 이유를 밝혔다.

비건 대표는 첫 방문지로 한국을 택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도훈 외교부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과 비핵화에 대해 논의를 할 것으로 보인다. 또한, 평양 남북정상회담을 앞둔 방한이어서, 문재인 대통령과 만나, 트럼프 대통령의 의견을 전달할 가능성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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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회찬 의원 떠난 지 47일... 정의당, 국회서 추모 문화제 열어

처음부터 터져 나온 이금희의 눈물
"이럴 것 같았다. 노회찬은 진짜였다"

[현장] 노회찬 의원 떠난 지 47일... 정의당, 국회서 추모 문화제 열어

18.09.07 22:19l최종 업데이트 18.09.08 10:16l

 

눈물 훔치는 이금희 아나운서  고 노회찬 국회의원 49재를 앞두고 7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잔디광장에서 열린 추모문화제에서 이금희 아나운서가 사회를 맡아 고인과의 인연을 소개하다 눈물 흘리고 있다.
▲ 눈물 훔치는 이금희 아나운서 고 노회찬 국회의원 49재를 앞두고 7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잔디광장에서 열린 추모문화제에서 이금희 아나운서가 사회를 맡아 고인과의 인연을 소개하다 눈물 흘리고 있다.ⓒ 남소연
 2008년 1월 8일, 국회 의원회관 대회의실에서 노회찬 의원의 '나를 기소하라 - X파일' 출판 기념회가 열렸다. 당시 모습. 노회찬 의원과 부인 김지선씨, 심상정 의원, 이금희 아나운서, 배우 박중훈씨 등이 나란히 앉아 박수를 치고 있다.
2008년 1월 8일, 국회 의원회관 대회의실에서 노회찬 의원의 '나를 기소하라 - X파일' 출판 기념회가 열렸다. 당시 모습. 노회찬 의원과 부인 김지선씨, 심상정 의원, 이금희 아나운서, 배우 박중훈씨 등이 나란히 앉아 박수를 치고 있다.ⓒ 오마이뉴스 이종호

그들은 서로 가까워 보였다.

그의 왼쪽에 부인이 있었다. 다시 그 왼쪽에 동지가 있었다. 또 그의 오른쪽에는 '친구'가 있었다. 또 그 옆에는 친구를 소개해 준 또 다른 '친구', 이금희 아나운서가 있었다.

10년도 더 된 사진 속에서 그들은 함께 박수를 치고 있었다. 남편의, 동지의, 친구의 큰 싸움을 응원하기 위해서. <나를 기소하라 - X파일> 출판기념회가 열렸던 2008년 1월 8일, 그 모습이 꼭 그러했다.

그 친구가 지금 마이크를 손에 쥐고 있다. 그의 목소리는 떨렸다. 노회찬 의원이 떠난 지 47일 된 7일 오후, 이금희 아나운서가 국회 본관 앞 잔디 광장에 마련된 무대에 섰다. 정의당의 '고 노회찬 추모 문화제', 하지만 그는 좀처럼 말을 시작하지 못했다. 말을 떼기도 전에 눈물을 흘렸다. 좀처럼 멈추지 못했다. 그리고 나온 첫 마디는 이랬다.

"이럴 것 같았습니다. (잠시 침묵) 많은 자리에서 무대에 올랐고 꽤 많은 행사에서 마이크를 잡았는데 이런 자리에서 사회를 보게 될 줄은 몰랐습니다. 힘들었지만 올라와야 한다고 생각했기에 심호흡하고 올라왔는데 여전히 쉽지 않습니다."

"제 기억으로는, 유일하게 진짜였습니다"
 
울먹이는 이금희 아나운서 고 노회찬 국회의원 49재를 앞두고 7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잔디광장에서 열린 추모문화제에서 이금희 아나운서가 사회를 맡아 고인과의 인연을 소개하다 울먹이고 있다.
▲ 울먹이는 이금희 아나운서 고 노회찬 국회의원 49재를 앞두고 7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잔디광장에서 열린 추모문화제에서 이금희 아나운서가 사회를 맡아 고인과의 인연을 소개하다 울먹이고 있다.ⓒ 남소연

눈물을 흘리고 목소리는 떨렸지만, "여러분과 같은 마음으로 이 자리에 섰습니다. 이금희입니다"라며 자신을 소개하는 모습은 역시 "아침TV의 대통령"다웠다. 친구가 18년 동안 진행했던 KBS <아침마당>을 그만둔다는 소식을 듣고 노 의원은 자신의 트위터에 이런 말을 남겼다.
 
"이금희 아나운서가 아침마당을 떠나는군요. 그는 지난 18년 간 아침TV의 대통령이었습니다. 국민 모두가 고마워할 것입니다. 시청자의 한 사람으로서 큰 박수 보냅니다 ^^" (2016년 6월 30일)

두 사람의 인연은 2004년 시작됐다. 노 의원이 '삼겹살 판갈이' 발언으로 방송 섭외 1순위로 꼽혔던 때다. 당시 노 의원은 자신의 홈페이지에 "내가 태어나서 여러 가지 일을 많이 해왔는데 아직까지는 성공한 게 결혼밖에 없다"는 글을 올렸다. 그해 5월 4일 부인과 함께 <아침마당> 진행자 이금희 아나운서 앞에 앉았다.

그날 방송을 보고 반한 배우 박중훈이 이 아나운서에게 '노회찬'을 소개시켜 달라고 했다고 한다. 노 의원은 1956년 8월에 태어났다. 이금희 아나운서는 1966년 12월에 태어났다. 그리고 배우 박중훈은 1966년 3월에 태어났다. 그렇게 그 날 방송을 통해 세 사람의 인연은 10년이란 세월을 가뿐히 넘겨 어우러졌다.

[관련기사] 국회로 간 박중훈 "회찬이 형 보러 왔어요"
 
눈물 터진 이정미 대표 고 노회찬 국회의원 49재를 앞두고 7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잔디광장에서 열린 추모문화제에서 이정미 대표가 눈물 흘리고 있다.
▲ 눈물 터진 이정미 대표 고 노회찬 국회의원 49재를 앞두고 7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잔디광장에서 열린 추모문화제에서 이정미 대표가 눈물 흘리고 있다. ⓒ 남소연

현장에서 이 아나운서는 이렇게 돌아봤다.

"14년 전, 건너 편 방송국에서 진행자와 초대 손님으로 처음 만났습니다. 여의도동 1번지에 있는 꽤 많은 분들을 초대 손님으로 모셨는데, 제 기억으로는, 유일하게 진짜였습니다. 그 인연으로 2008년 노원구 선거 현장을 같이 뛰었습니다. 낙선하셨죠. 그 날 저녁, 선거 사무실 달려갔을 때 많은 분들이 울분을 토하고 많은 분들이 우셨습니다. 뉴타운 때문에, 해외 유학 어디 다녀왔다는 어떤 사람 때문에. 시대였죠."

"갑들의 기름진 목소리가 너무 많아 메스껍기까지 한 이 때..."

그 다음날이라고 했다. 이 아나운서는 "낙선 사례를 혼자 하게 할 수 없어, 아침 일을 마치자마자 바로 달려갔다"고 했다. "하루 종일, 시장으로, 아파트로, 거리로 다니는데, 저는 울었지만, 그는 울지 않았다"고도 했다. 그러면서 "오늘도 울지 않고 끝까지 함께 할 수 있으면 좋겠다고, 약속을 하고 올라왔지만 스스로 지킬 수 있을지 잘 모르겠다"고 했다.

"정의당 대표실에서 뵐 때 의원님은 언제나... 따뜻한 미소로 저를 반겨주셨고... 때로는 고무장갑 낀 손을 덥석 잡고 수고한다고 진심 어린 격려를 해주셨습니다. (중략). 의원님, 노회찬 의원님, 의원님의 따뜻한 미소가 그립습니다... 뵙고 싶습니다."
 
노회찬 추모제서 눈물쏟은 청소노동자 고 노회찬 국회의원 49재를 앞두고 7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잔디광장에서 열린 추모문화제에서 국회 환경미화원노조 김영숙 위원장(왼쪽)이 추모사를 마친 후 오열하자 이금희 아나운서가 좇아 위로하고 있다.
▲ 노회찬 추모제서 눈물쏟은 청소노동자 고 노회찬 국회의원 49재를 앞두고 7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잔디광장에서 열린 추모문화제에서 국회 환경미화원노조 김영숙 위원장(왼쪽)이 추모사를 마친 후 오열하자 이금희 아나운서가 좇아 위로하고 있다.ⓒ 남소연

김영숙 국회 환경미화원노조 위원장의 말 역시 이 아나운서의 그것과 비슷했다. 잠시 후 이 아나운서는 떨리는 목소리로 '4.16 합창단'을 소개하고 무대에서 내려갔다.

무대 뒤로 가봤다. 뒤에서 그를 지켜봤다. 무대에 비하면 훨씬 어두운 그 곳에서, 그는 조용히 플라스틱 의자에 앉아 있었다. 두 손을 모아 무릎 위에 올린 채, 허리를 꼿꼿이 세우고, 그는 정면을 응시하며, 그렇게 앉아 있었다. 잠깐 휴대전화를 꺼내 메시지를 확인한 듯, 다시 그는 앞서 그 모습으로 고쳐 앉았다. 무대에서는 합창단이 이렇게 말하고 있었다.

"또 기억할게, 다 기억할게. 잊지 않을게."
 
노회찬 추모공연 하는 416합창단 고 노회찬 국회의원 49재를 앞두고 7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잔디광장에서 열린 추모문화제에서 416합창단이 추모공연을 하고 있다.
▲ 노회찬 추모공연 하는 416합창단 고 노회찬 국회의원 49재를 앞두고 7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잔디광장에서 열린 추모문화제에서 416합창단이 추모공연을 하고 있다. ⓒ 남소연

합창단 '창현 엄마', 최순화씨가 이야기를 시작했다. "노 의원이 첼로 연주를 한다는 사실을 알고 함께 연주할 수 있는 날을 기대했다"고 했다. "자신의 목소리를 가질 수 없는 시대의 약자들에게 그들의 목소리가 되어주고, 그들이 비빌 언덕이 되어주는 분이란 걸 알고 있었고, 그 분이 꿈꾸는 세상 속에 세월호 참사 문제 해결도 포함되어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었다"고 했다. 그 다음, 그의 목소리도 떨렸다.

"우리는 지금도 노회찬 의원님이 절실히 필요한데, 말 한 마디 건네 보지 못하고 떠나 보낸 게 많이 서럽습니다. 가진 게 너무 많아서 도저히 고개가 숙여지지 않는 정치인들을 비롯한 갑들의 기름진 목소리들이 너무도 많아 메스껍기까지 한 이 때, 이 느끼함을 날려줄 노 의원님의 위트 넘치는 한 방이 너무 그립습니다."
 
노회찬 추모공연 하는 416합창단 고 노회찬 국회의원 49재를 앞두고 7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잔디광장에서 열린 추모문화제에서 416 합창단이 추모공연을 하고 있다.
▲ 노회찬 추모공연 하는 416합창단 고 노회찬 국회의원 49재를 앞두고 7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잔디광장에서 열린 추모문화제에서 416 합창단이 추모공연을 하고 있다. ⓒ 남소연

그들은 서로 가까워 보였다

추모 영상이 흐르기 시작했다. 다시 무대 뒤, 담요를 두른 것말고는 이 아나운서 모습은 조금 전 그것과 변함이 없었다. 바람이 제법 차가웠다. 조금 전 그의 말이 떠올랐다. "더위가 거짓말처럼 사라지고 선선한 바람이 부는데, 그는 없습니다". 여전히 그는 꼿꼿하게 앉아 정면만 바라보고 있었다.

이어 무대 위에 오른 손세실리아 시인은 "미안해서, 미안해서 할 말이 없어 도망치려고 했다"면서 "미안한 마음 털어 내라고 해서 올라왔다"며 <추모를 추모하다>라는 시를 낭송했다. 그 뒤에서 이 아나운서는 손을 모으고 조용히 서 있었다. 심상정 정의당 의원(경기 고양시갑)이 무대에 섰다. 그 역시 미안하다고 했다.

"(돌아가시고 나서) 제가 그동안 꿈에서 두 번 만났습니다. 한 번은 무엇이 그렇게 바쁜지, 뭐 엄청 중요한 일을 하나 아주 분주했던 기억이 나고요. 또 한 번은 강연을 하는데 대표님이 안 나타나셔서 애를 태웠던 그런 꿈이었습니다. 이렇게 소중한 동지를... 그토록 허무하게, 그토록 외롭게 보낸 서러움과 회한이 밀려올 때 어쩔 수 없이 하얗게 밤을 지샐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리고 심 의원은 "이렇게 소중한 동지를 지켜내지도 못하면서 무슨 일을 할 수 있을까, 그런 자책감과 미안함에 많은 시간을 보냈다"며 "동지들에게 좀 더 너그럽고 더 깊이 사랑해야 한다는 교훈을 주셨다. 좀 더 인간적이고, 좀 더 우리 동지들을 깊게 사랑하는 그런 정의당이 되겠습니다, 대표님"이라고 말했다.
 
눈물 터진 이정미 대표 고 노회찬 국회의원 49재를 앞두고 7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잔디광장에서 열린 추모문화제에서 이정미 대표가 눈물을 훔치고 있다. 왼쪽은 심상정 의원.
▲ 눈물 터진 이정미 대표 고 노회찬 국회의원 49재를 앞두고 7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잔디광장에서 열린 추모문화제에서 이정미 대표가 눈물을 훔치고 있다. 왼쪽은 심상정 의원. ⓒ 남소연

이정미 대표(비례대표)는 "고맙습니다"를 반복했다. '지금' 함께 있는 사람들에게, 당원들에게, 그리고 시민들에게 거듭 고맙다고 했다. 그러면서 그는 "사회적 약자들을 따뜻하게 보듬는 진보정치가 되어 달라는 뜻, 그리고 더 크고 강한 정당이 되어달라는 그 뜻을 반드시 이루겠다"고 다짐했다.

객석을 바라봤다. 아이를 각자 안고 앉아 무대를 바라보는 젊은 부부가 눈에 띄었다. 이 아나운서처럼 두 손을 모으고 무대를 응시하는 아저씨도 있었고, 아까부터 연신 눈물을 훔치는 아주머니도 있었다. 언제 왔는지 서지현 검사도 조용히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이날 행사 이름은 '그대가 바라보던 곳을 향해, 우리는 걸어갑니다'. 무대에서 이들과의 거리는 어른 걸음으로 스무 걸음 정도였다. 멀지 않았다.

'그들'은 서로 가까워 보였다.
 
노회찬 추모제 참석한 초등학생, 반긴 심상정 고 노회찬 국회의원 49재를 앞두고 7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잔디광장에서 열린 추모문화제에서 심상정 의원이 다가와 인사하는 초등학생과 인사하고 있다. 오른쪽은 이정미 대표.
▲ 노회찬 추모제 참석한 초등학생, 반긴 심상정 고 노회찬 국회의원 49재를 앞두고 7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잔디광장에서 열린 추모문화제에서 심상정 의원이 다가와 인사하는 초등학생과 인사하고 있다. 오른쪽은 이정미 대표. ⓒ 남소연
심상정, 노회찬 추모하는 이들과 '와락' 고 노회찬 국회의원 49재를 앞두고 7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잔디광장에서 열린 추모문화제에서 심상정 의원이 참석자들과 포옹하고 있다.
▲ 심상정, 노회찬 추모하는 이들과 '와락' 고 노회찬 국회의원 49재를 앞두고 7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잔디광장에서 열린 추모문화제에서 심상정 의원이 참석자들과 포옹하고 있다. ⓒ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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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문점선언 국회 비준, 누가 왜 반대하고 있나

11일 비준 동의안 국회 제출…여야 합의 난망
2018.09.07 17:23:07
 

 

 

 

정부가 '4.27 판문점 선언'에 대한 국회 비준동의안을 국회에 제출하기로 했다. 김의겸 청와대 대변인은 7일 브리핑을 통해 "정부는 판문점 선언 비준동의안을 오는 11일 국무회의에서 의결한 뒤, 국회에 제출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판문점 선언 이행에 필요한 '비용 추계서'도 함께 제출한다. 비용 추계서에는 동해선, 경의선 철도와 도로를 연결해 현대화하는 비용 등 판문점 선언 이행에 소요되는 재정 규모가 포함될 것으로 보인다. 청와대와 정부가 판문점 선언 국회 비준에 속도를 붙인 배경에는 남북 정상회담을 앞두고 정치권의 초당적 협력을 이끌어내자는 판단이 깔린 것으로 보인다. 

판문점 선언 국회 비준은 문희상 국회의장이 취임 당시부터 강조한 내용으로, 더불어민주당과 민주평화당, 정의당 등이 적극적으로 찬성하고 있다. 그러나 자유한국당이 완강한 반대 입장을 밝히고 있어 여야 논의 과정에선 진통이 예상된다. 

이양수 한국당 원내대변인은 이날 "판문점 선언이 국회 비준되고 나면, 판문점 선언은 '국내법적 효력'을 갖게 되어 대한민국과 국민에게 향후 대북지원에 들어갈 엄청난 경제적 부담을 지우게 될 것"이라며 "만약 북한 김정은 위원장이 북핵 폐기의 확실한 담보를 제시한다면, 판문점 선언 국회 비준 동의 문제는 자연스럽게 해결될 것"이라고 국회 비준 반대 입장을 재확인했다. 

나경원 의원도 자신의 페이스북에 "판문점 선언에서의 비핵화는 그저 '선언'에 불과하지만 남북경제협력은 우리 국민에게 분명한 의무로 부과되는 일"이라며 "선언의 대전제이자 조건인 비핵화가 한 걸음도 진척되지 못한 상황에서 비준동의를 하는 것은 이치에 맞지도 않기 때문에 동의할 수 없다"고 분명히 했다. 

민주당과 한국당이 평행선을 긋는 가운데, 바른미래당이 어느쪽으로 무게중심을 둘지가 관심이다. 김관영 원내대표는 전날 국회 교섭단체 대표연설에서 "한반도 비핵화와 판문점 선언 지지를 위한 국회 차원의 결의안을 채택할 것을 제안한다"며 "결의안 채택 직후 판문점 선언 비준동의안 처리에 관해 여야가 본격적으로 의논했으면 한다"고 밝혔다. 

법적 구속력이 없는 결의안을 먼저 채택한 뒤에 비준 동의안을 논의하자는 단계적 방법론이다. 당장 다음 주 국회로 넘어올 비준 동의안을 둘러싼 정치적 갈등의 캐스팅 보트를 바른미래당이 쥔 셈이지만, 바른미래당 내에서도 원론적 찬성과 반대 입장이 충돌하고 있어 결론을 낼 수 있을지 불투명하다. 

이처럼 정치권의 원만한 합의 처리가 어려운 상황이어서 판문점 선언 국회 비준안이 장기 표류 할 가능성도 적지 않다. 보수야당이 반대할 경우 국회의장의 직권상정이나, 재적의원 5분의 3 이상 찬성 등의 요건을 갖춰 신속처리 절차를 밟을 수밖에 없지만, 천재지변 등 국가비상사태나 여야 합의가 이뤄진 경우로 한정된 직권상정 요건을 갖추기 힘들고, 민주당과 민주평화당, 정의당 의석만으로는 5분의 3을 채울 수 없기 때문이다.

정의용, 볼턴과 2차 전화통화 갖기로 

청와대는 한편 오는 18일~20일 평양에서 열릴 제3차 남북 정상회담 준비에도 본격적으로 착수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이날 정의용 실장과 서훈 국가정보원장을 각각 중국과 일본에 특사로 파견해 방북 결과를 설명하도록 지시했다.  

이에 따라 정의용 실장은 오는 8일 양제츠 중국 외교 담당 정치국원과 면담하고, 서훈 원장은 10일 아베 신조 일본 총리와 면담한다. 정의용 실장은 이날 오후에는 니콜라이 파트루셰프 러시아 국가안보회의 서기와 통화한다.  

 

정 실장은 또한 북미 대화를 촉진하기 위해 오는 10일 존 볼턴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과 전화 통화를 가질 예정이다. 정 실장은 6일 볼턴 보좌관과 한차례 전화통화를 통해 대북 특사단의 방북 결과를 공유한 바 있다.  

청와대 핵심 관계자는 두 사람 간 통화가 다시 이뤄지는 이유에 대해 "어제 방북 결과를 볼턴 보좌관에게 설명했으니, 그 설명을 가지고 백악관도 그에 대해 어떠한 입장이나 반응을 정했는지 그 상황을 전달받을 수 있지 않을까 예측한다"고 말했다. 

청와대는 또 7일부터 윤건영 청와대 국정상황실장을 실장으로 하는 '남북 정상회담 종합상황실'을 가동하기로 했다. 또 임종석 대통령 비서실장을 위원장으로 하는 '평양 정상회담 준비위원회'는 남북 정상회담의 공식 명칭과 표어를 각각 '2018 남북 정상회담, 평양', '평화, 새로운 미래'로 확정했다.  
 
3차 남북 정상회담의 의미에 대해 김의겸 청와대 대변인은 "이번 정상회담은 2007년 남북 정상회담 이후 11년 만에 평양에서 열리는 남북 정상회담으로, 문재인 대통령의 가을 평양 방문을 약속한 판문점 선언을 이행한다는 의미가 있다"고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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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리아문제에 대한 러시아, 이란, 뛰르끼예 3국 정상회담

러시아, 뛰르끼예, 이란 대표들 3국 정상회담 후 기자회견
 
번역, 기사 이용섭 기자 
기사입력: 2018/09/08 [08:29]  최종편집: ⓒ 자주시보
 
 

러시아, 뛰르끼예, 이란 대표들 3국 정상회담 후 기자회견 

 

▲ 하싼 로하니 이란 대통령의 발언과 러시아 대통령 울라지미르 뿌찐의 3개국 정상회담에서의 발언은 거의 똑같다고 해석이 된다. 반면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간 뛰르끼예 대통령은 이들리브와 그 주변지역에 마지막 거점으로 둥지를 틀고 있는 테러분자들이 정부군 및 그 동맹군들과의 최후 전투에서 패배를 하게 되면 자국인 뛰르끼예로 밀려들 것을 우려하여 매우 조심스러운 발언을 하였다.     ©이용섭 기자

 

현지 시간 9월 7일 이란 테헤란에서는 수리아에서 활동하고 있는 테러분자들의 마지막 거점인 이들리브를 포함한 수리아 북부에 대한 수리아정부군들의 탈환작전에 대한 문제를 두고 러시아 대통령 울라지미르 뿌찐, 이란 대통령 하싼 로하니, 뛰르끼예 대통령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간 등 3국 정상들이 모여앉아 정상회담을 하였다. 그 3국 정상회담에서 러시아, 이란은 테러분자들 소탕작전에 대해 거의 같은 목소리를 내었지만 뛰르끼예 대통령 에르도간은 같은 듯 하면서도 약간 다른 목소리를 내었다.

 

어제 있었던 3국 정상회담에는 러시아의 울라지믈 뿌찐 대통령은 “테러분자들의 마지막 거점인 이들리브에서 테러분자들을 신속하게 그리고 완전하게 소멸을 해야한다고 말했다. 또 뿌찐은 수리아에서 테러분자들이 서 있을 자리가 없다.”고 강경하게 발언을 하였다. 

 

뿌찐의 이와 같은 정상회담에서의 발언에 대해 러시아 관영 스뿌뜨닉끄는 “울라지미르 뿌찐 러시아 대통령에 따르면 가장 먼저 수리아 이들리브에서 테러분자들을 소탕(원문-제거)하는 것을 최우선으로 삼았다. 동시에 러시아 대통령은 그동안 대화를 위해 준비된 이들리브의 사람들(반군 및 테러분자들)과 평화를 정착시키기 위한 대화를 할 수 있는 기회가 많이 있었다는 점을 지적하였다.”고 전하였다.

 

계속하여 스뿌뜨닉끄는 “러시아 대통령은 수리아 이들리브에는 대규모의 민간인들이 거주하고 있으며, 이 점을 테러분자들과 전투를 벌일 때 염두에 두어야 한다고 강조하였다.”면서 “이들리브 지역에는 민간인들이 대규모로 거주하는 지역이고, 우리는 [테러분자들과 싸울 때] 확실히 이점을 명심해야한다.”고 러시아-이란-뛰르끼예 정상회담에서 뿌찐은 말했다고 뿌찐의 말을 전하였다.

 

한편 뛰르끼예 대통령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간 대통령은 뿌찐과는 좀 약한 발언을 하였다. 스뿌뜨닉끄가 보도한 에르도간의 정상회담에서의 발언은 매우 우회적이고 간접적이며 에돌아가는 발언을 하였다.

 

이러한 3개국 정상회담에서 에르도간 뛰르끼예 대통령이 한 발언을 스뿌뜨닉끄는 “뛰르끼예 대통령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간은 자신의 차례에 테헤란에서 하고 있는 수리아에 대한 러시아-뛰르끼예-이란 3국정상회담은 수리아 이들리브에 평화를 정착시킬 수 있는 마지막 기회라고 말했다.”면서 “우리의 목표는 아스타나에서 합의 된 정신에 따라 이들리브 문제를 평화적으로 해결하는 것이고, 이것은 자신의 명예를 증명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이다.”고 전하였다.

 

한편 스뿌뜨닉끄는 9월 7일 테헤란에서 있었던 러시아, 이란, 뛰르끼예 정상들의 3국 정상회담에서 이란 대통령 하싼 로하니의 발언을 아래와 같이 보도하였다.

 

 

수리아 상황에 대한 이란 대통령 견해 (Iranian President on the Situation in Syria)

 

▲ 수리아 문제에 대한 테헤란 3개국 정상회담에서 란 대통령 하싼 로하니는 대단히 강경한 발언을 하였다. 즉 이들립에 많은 민간인들이 거주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따라서 마지막 테러와의 전투를 벌임에 있어 민간인들이 고통을 당해서는 절대로 안 된다. 그러나 수리아의 완전한 안전과 지속가능한 평화를 정착시키기 위해서는 테러집단을 완전하게 소탕해야 한다는 것이 하싼 로하니 이란 대통령 발언의 핵심 요지이다.     ©이용섭 기자

 

그 문제에 대해 이란 대통령 하싼 로하니는 이들리브의 민간인 거주자들은 대 테러작전을 벌이는 동안에 고통을 당해서는 절대로 안 된다고 말했다.

(Addressing the issue, Iranian President Hassan Rouhani said that the civilian population in Idlib should not suffer during the counter-terrorism operations.)

 

“이들리브에서 테러와의 전쟁은 수리아의 평화와 안정을 정착시키는데 핵심이자 전부인 과제이며,민간인 거주자들이 이 싸움에서 고통을 당해서는 절대로 안 된다.”고 로하니는 말했다.

("Fighting terrorism in Idlib is an integral part of the mission of establishing peace and stability in Syria, and civilians should not suffer from this fight," Rouhani said at the  summit.)

 

“수리아와 그 지역에서의 목표는 평화정착일 수 있지만 지속가능하고 완전한 평화를 정착시키기 위해서는 테러와의 심각한 전쟁은 피할 수가 없다.”고 대통령은 덧붙였다.

("The only goal in Syria and the region can only be peace, but to achieve sustainable peace, a serious fight against terrorism is inevitable," the president added.)

 

또한 그는 이스라엘은 “점령한 수리아 영토”에서 떠날 것을 요구하였으며, 그 나라(수리아)에서의 미국의 존재(미군 주둔)를 신랄하게 비난하였다.

(He also urged Israel to leave "the occupied Syrian territories," and criticized the US presence in the country.)

 

“미군은 수리아에 불법·부당하게 주둔하고 있고, 오로지 침략을 촉진하고 있으며, 테러정권[주둔지-그곳]을 지원하고 있다. 그리고 그 과정(수리아 평화과정)에서 그들(미국의 존재)의 긍정적 인 역할은 거의 기대할 수 없다. [미국(군)]의 존재(주둔)는 문제를 해결할 수 없을 정도로 꼬이게 만들고, 수리아의 지속적인 평화정착을 달성하는데 있어 심대한 장애를 조성할 뿐이다.”라고 이란 대통령은 강조하였다.

("It is absolutely clear that the United States is present in Syria illegally and is only fueling aggression and supporting terrorist regime [there]. And its positive role in the Syrian process can hardly be expected. [The US] presence only exacerbates problems, and hampers the achievement of sustainable peace in Syria," Iranian president emphasized.)

 

수리아 문제에 대한 테헤란 3개국 정상회담에서 란 대통령 하싼 로하니는 대단히 강경한 발언을 하였다. 즉 이들립에 많은 민간인들이 거주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따라서 마지막 테러와의 전투를 벌임에 있어 민간인들이 고통을 당해서는 절대로 안 된다. 그러나 수리아의 완전한 안전과 지속가능한 평화를 정착시키기 위해서는 테러집단을 완전하게 소탕해야 한다는 것이 하싼 로하니 이란 대통령 발언의 핵심 요지이다.

 

로하니 대통령은 미국에 대해서도 강력하게 비판을 하였다. 미군이 수리아에 주둔을 하고 있는 것은 불법 부당한 행위이며, 미군의 주둔을 수리아의 안전을 완전히 보장하고 지속가능한 평화를 정착시키는데 아무런 도움이 되기는커녕 오히려 장애물이 된다고 강력하게 미군의 수리아 주둔을 비판하였다. 미군들을 수리아에 주둔하면서 테러분자들에게 수리아 정부에 대항해서 싸울 수 있는 촉진제역할을 하고 있으며, 테러분자들을 지원하고 있을 뿐이라고 미군의 수리아 주둔과 수리아에서의 미국의 존재를 강력하게 비난하였다.

 

결론적으로 테헤란에서 어제 9월 7일(현지 시간)에 있었던 러시아, 이란, 뛰르끼예 3개국 정상회담에서 이란 대통령 하싼 로하니 대통령의 발언은 수리아의 완전한 안전보장과 지속가능한 평화정착을 위해서는 외부세계 특히 미국을 위시한 서방연합세력들이 뭐라고 하던 이들리브와 그 주변지역에 둥지를 틀고 있는 테러분자들을 강력하게 공격을 하여 완전히 그 뿌리를 뽑아야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하싼 로하니 이란 대통령의 발언과 러시아 대통령 울라지미르 뿌찐의 3개국 정상회담에서의 발언은 거의 똑같다고 해석이 된다. 반면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간 뛰르끼예 대통령은 이들리브와 그 주변지역에 마지막 거점으로 둥지를 틀고 있는 테러분자들이 정부군 및 그 동맹군들과의 최후 전투에서 패배를 하게 되면 자국인 뛰르끼예로 밀려들 것을 우려하여 매우 조심스러운 발언을 하였다. 이는 충분히 이해를 할 만한 발언이기도 하다.

 

하지만 본질적으로 서방제국주의세력들의 조종에 의해 중동과 북아프리카 등에의 나라들을 쑥대밭으로 만들어 수억의 인민들에게 고통을 안겨주는 대 테러전을 강력하게 벌여 그 뿌리를 뽑아야 한다. 그리하여 다시는 테러분자들이 제국주의세력의 돌격대가 되어 중동과 북아프리카 그리고 제3세계 국가들의 인민들을 괴롭히는 일이 지구상에서 완전히 사라져야 한다. 그런 점에서 어제 9월 7일에 있었던 러시아, 이란, 뛰르끼예 3개국 정상들의 정상회담에서 러시아 대통령 울라지미르 뿌찐과 하싼 로하니 이란 대통령의 발언은 지당한 것이다.

 

이제 수리아 이들리브와 그 주변지역에 대한 마지막 대 테러소탕작전은 필히 진행이 될 것이다. 그건 러시아 뿌찐 대통령과 이란 하싼 로하니 대통령이 한 목소리로 대 테러소탕전을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아마도 이러한 러시아와 이란의 수리아 이들리브에서 최후의 대 테러소탕작전에서 테러분자들이 패배를 한 다음 서방연합세력들은 수리아에 대해 군사적 공격을 감행 할 것은 확실하다. 그 사전포석으로 “수리아 정부군들이 이들리브에서 화학무기 공격 계획을 포착하였다.”라는 터무니없지만 그들이 전가의 보도처럼 사용하고 있는 자신들이 꾸몄으면서 그 책임을 상대측에 뒤집어씌우는 방법을 세계 인민들에게 내돌리기 시작하였다.

 

우리는 현재 수리아전황 즉 수리아내전이 결코 아닌 자주진영 대 제국주의진영과의 싸움이기 때문에 깊은 관심을 가지고 지켜보아야 한다. 물론 자주진영이 승리를 거둘 것은 확실해 보인다. 그 결과에 따라 미래 세계의 향방이 결정될 수 있기 때문이다. 

 

 

----- 번역문 전문 -----

 

러시아, 뛰르끼예, 이란 대표들 3국 정상회담 후 기자회견 

 

▲ 하싼 로하니 이란 대통령의 발언과 러시아 대통령 울라지미르 뿌찐의 3개국 정상회담에서의 발언은 거의 똑같다고 해석이 된다. 반면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간 뛰르끼예 대통령은 이들리브와 그 주변지역에 마지막 거점으로 둥지를 틀고 있는 테러분자들이 정부군 및 그 동맹군들과의 최후 전투에서 패배를 하게 되면 자국인 뛰르끼예로 밀려들 것을 우려하여 매우 조심스러운 발언을 하였다.     ©이용섭 기자

 

세계 2018년 월 7일, 15시 27분(최종 2018년 9월 7일 15시 47분)

 

러시아 대통령 울라지미스 뿌찐, 레제프 에르도간 뛰르끼예 대통령과 이란 하싼 로하니 대통령은 3국 정상회담을 가졌으며, 수리아의 이들리브 상황뿐 아니라 3국간의 관계에 대해서도 논의를 하였다.

 

울라지미르 뿌찐 러시아 대통령에 따르면 가장 먼저 수리아 이들리브에서 테러분자들을 소탕(원문-제거)하는 것을 최우선으로 삼았다. 동시에 러시아 대통령은 그동안 대화를 위해 준비된 이들리브의 사람들(반군 및 테러분자들)과 평화를 정착시키기 위한 대화를 할 수 있는 기회가 많이 있었다는 점을 지적하였다.

 

더 나아가 러시아 대통령은 수리아 이들리브에는 대규모의 민간인들이 거주하고 있으며, 이 점을 테러분자들과 전투를 벌일 때 염두에 두어야 한다고 강조하였다.

 

“이들리브 지역에는 민간인들이 대규모로 거주하는 지역이고, 우리는 [테러분자들과 싸울 때] 확실히 이점을 명심해야한다.”고 러시아-이란-뛰르끼예 정상회담에서 뿌찐은 말했다.

 

뿌찐은 그는 3 국은 시리아의 인도주의 현안에 대한 3 국간 협력을 강화해야한다는데 대해 이란, 뛰르끼예 동반국들과 합의를 하였다고 말했다.

 

뛰르끼예 대통령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간은 자신의 차례에 테헤란에서 하고 있는 수리아에 대한 러시아-뛰르끼예-이란 3국정상회담은 수리아 이들리브에 평화를 정착시킬 수 있는 마지막 기회라고 말했다.

 

“우리의 목표는 아스타나에서 합의 된 정신에 따라 이들리브 문제를 평화적으로 해결하는 것이고, 이것은 자신의 명예를 증명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이다.”고 정상회담에서 에르도간이 말했다.

 

더 나아가 뛰르끼예 대통령은 이들리브의 긴장완화 지역으로 존재할 수 있게 유지되는 것이 대단히 중요하다고 강조하였다.

 

반군세력들(테러분자들 포함)의 마지막 강력한 주요 거점인 수리아 북서부의 이들립은 이번 정상회담에서 최고의 핵심적인 논제가 될 것으로 예상된다. 크레믈린에 따르면 이들립의 테러분자들의 존재(원문-온상)은 수리아의 상황을 불안정하게 만들고, 분쟁의 정치적 해결을 하려는 노력에 장애(원문-약화)가 되고 있다.

 

거기에 더 해서 러시아 당국자들은 무장테러분자들은 수리아 정부에 대한 서방 보복 공격을 유발하기 위해 이들리브에서 거짓 화학무기 공격을 계획했다고 거듭 경고하였다.

 

 

----- 원문 전문 -----

 

Heads of Russia, Turkey, Iran Hold Press-Conference Following Trilateral Summit

 

▲ 하싼 로하니 이란 대통령의 발언과 러시아 대통령 울라지미르 뿌찐의 3개국 정상회담에서의 발언은 거의 똑같다고 해석이 된다. 반면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간 뛰르끼예 대통령은 이들리브와 그 주변지역에 마지막 거점으로 둥지를 틀고 있는 테러분자들이 정부군 및 그 동맹군들과의 최후 전투에서 패배를 하게 되면 자국인 뛰르끼예로 밀려들 것을 우려하여 매우 조심스러운 발언을 하였다.     © 이용섭 기자

 

WORLD 15:27 07.09.2018(updated 15:47 07.09.2018)

 

 

Russian President Vladimir Putin, Turkish President Recep Erdogan and Iran's President Hassan Rouhani have held a trilateral summit, discussing the situation in the Syrian Idlib province as well as the trilateral ties.

 

According to the Russian President Vladimir Putin, the priority now is to remove terrorists from Syria's Idlib. At the same time, the Russian president noted that there was a lot of opportunity for peacemaking with those in Idlib, who was ready for a dialogue.

 

The Russian president further noted that there is a large number of civilians in the Syrian Idlib and this must be borne in mind when fighting terrorists.

 

"There is a large number of civilians in the Idlib zone, and we certainly need to bear this in mind [when fighting terrorists]," Putin said at the Russia-Iran-Turkey summit.

 

Putin says he agrees with his Iranian and Turkish counterparts that the three countries should boost the trilateral coordination on the humanitarian issues in Syria.

 

Turkish President Recep Tayyip Erdogan, in his turn, said that the trilateral Russia-Turkey-Iran summit on Syria in Tehran is the last opportunity for a peaceful settlement of the situation in the Syrian Idlib.

 

"Our goal is to peacefully solve the Idlib issue in accordance with the spirit of the agreements in Astana, this is the last opportunity to prove their reputation," Erdogan said at the summit.

 

Speaking further, the Turkish president noted that the preservation of Idlib's status as a de-escalation zone was vitally important.

 

The situation in Syria's northwestern Idlib province, the last major insurgency stronghold, is expected to become one of the key topics at the summit. According to the Kremlin, the terrorism hotbed in Idlib destabilizes the situation in Syria and undermines the work toward the political settlement of the conflict.

 

Moreover, Russian officials have repeatedly warned that terrorists were planning a false-flag chemical weapons attack in Idlib with an aim to provoke Western retaliation against the Syrian governm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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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사단에 식사대접 안 했다고 “북한 폭력집단”?

[아침신문 솎아보기] 김정은 ‘트럼프 첫 임기 내’ 비핵화 시한 제시에도 조선 “남북정상회담 개최가 특사단 성과 전부”

강성원 기자 sejouri@mediatoday.co.kr  2018년 09월 07일 금요일

문재인 대통령이 오는 18~20일 2박3일간 평양에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3차 남북 정상회담을 갖는다. 대북특사였던 정의용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은 6일 춘추관 브리핑에서 “정상회담에서는 판문점 선언 이행과 성과점검 및 향후 추진방향을 확인하고, 한반도의 항구적 평화정착 및 공동번영을 위한 문제, 특히 한반도 비핵화를 위한 실천적 방안을 협의하기로 했다”고 발표했다.

아울러 특사단에 따르면 김 위원장이 5일 방북했던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첫 임기가 끝나는 2020년까지는 한반도 비핵화를 완료하겠다는 시간표도 제시했다고 밝혔다. 이에 대다수 언론은 김 위원장의 분명한 비핵화 메시지와 함께 구체적인 시간표까지 받아내며 북미 대화 재개에도 청신호가 켜졌다고 평가했다.  

 

20180907_국민일보_“트럼프 임기 내 비핵화”… 김정은 첫 시간표 언급_종합 01면.jpg
 
다음은 7일자 아침종합신문 1면 머리기사 제목이다.

 

경향신문 “남북 정상, 18~20일 평양서 ‘비핵화 조치’ 논의” 
국민일보 “南北 중단없는 경협 위해 ‘CEPA’ 체결하자” 
동아일보 “김정은 ‘트럼프 첫 임기내’ 비핵화” 
서울신문 “김정은 ‘트럼프 첫 임기내’ 비핵화 시한 첫 제시” 
세계일보 “시한 제시한 김정은 ‘트럼프 첫 임기 내 비핵화’” 
조선일보 “김정은, 비핵화시한 내밀며 ‘종전’ 요구” 
중앙일보 “김정은 ‘미국 동시행동 땐 적극 비핵화’” 
한겨레 “김정은 ‘트럼프 첫 임기내 비핵화’ 이행 시간표 꺼냈다” 
한국일보 “김정은 ‘트럼프 임기 내’ 비핵화 시한 첫 제시” 

 

하지만 유독 이번 대북 특사단 방북 성과를 깎아내리며 날 선 시각을 유지한 언론도 있었다. 조선일보는 “오는 18일부터 2박3일간 평양에서 남북 정상회담을 열기로 했다고 밝혔다. 특사단이 북과 합의하고 온 것은 사실상 그게 전부”라고 비판했다. 특사단이 김 위원장과 ‘북핵 리스트’를 놓고 이것 없이는 아무것도 되지 않는다고 제대로 전달했어야 한다는 얘기다.

 

 

20180907_조선일보_[사설] 김정은 “비핵화” 말만 전하는 대북 특사단_사설_칼럼 35면.jpg
 
특히 조선일보는 사설에서 “김정은은 문재인 대통령의 친서를 전달받고 특사단과 식사도 함께하지 않았다”고 나무랐다. 지난해 12월 문재인 대통령이 중국을 방문했을 때도 ‘혼밥 프레임’을 부각하며 ‘식사 외교’ 홀대 논란을 부추겼던 조선일보는 이번에도 특사단이 식사 대접을 받지 못했다고 발끈했다. 조선일보는 과거 ‘간장 두 종지’ 칼럼 논란 때도 그랬지만 유독 ‘밥’에 집착한다.

 

조선일보는 “심지어 저녁은 우리 특사단 5명끼리만 먹었다고 한다. 국가 정상의 위임을 받아 방문하는 특사단을 이렇게 대접하는 경우가 있나. 아무리 상식이 통하지 않는 폭력집단이라고 해도 도를 넘었다”고 북한을 비난했다.  

반면 동아일보는 “북한이 핵무기·시설 리스트를 제출하고 원자로와 우라늄농축시설의 핵물질 생산 활동부터 중단하는 실질적 이행 조치에 나설 단계”라고 촉구하면서도 “북한 공식 매체가 김정은의 입에서 나온 비핵화 관련 발언을 보도한 것 자체는 진일보한 태도라고 평가할 수 있다”고 했다.  

중앙일보도 “북한 비핵화의 교착상태를 뚫고 남북 협력에 새로운 동력을 마련하기 위한 대북 2차 특사단이 절반의 성공을 거두었다”고 평가했다. 중앙일보는 “이번 방북에서 가장 큰 성과는 김 위원장의 비핵화 의지 재확인이다. 남북은 또 오는 18∼20일 평양에서 3차 남북 정상회담을 열기로 합의했다”며 “문재인 대통령이 김 위원장을 적극 설득해 비핵화의 구체적 행동을 끌어내는 게 중요하다”고 주문했다.  

 

20180907_한국일보_核 신고·종전선언 ‘빅딜 카드’로 절충 가능성_북한_한반도정세 03면.jpg
 
한국일보는 “극도로 신중한 인물인 정의용 실장이 언론에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에 대한 본인의 확고한 의지를 재확인했다’고 자신 있게 언급한 건 특사단이 들고 간 북미 중재안에 대해 김 위원장이 수용 의향을 밝혔다는 사실의 방증일 수 있다”고 분석했다.

 

한국일보는 “특사단이 중재안을 놓고 미국과 미리 협의하지는 않았으리라는 게 전문가들 중론”이라고 전했다. 핵 시설·물질 신고목록 제출이라는 북한의 성의 있는 비핵화 조치와 미국의 대북 안전보장 조치인 종전선언 가운데 뭐가 선행돼야 하느냐를 놓고 양측이 첨예하게 대립하는 가운데 우리가 미국 요구의 대변자처럼 비치면 북한이 반발했을 공산이 크기 때문이라는 것.

한국일보는 “중재안에는 북미 정상 모두 국내 정치적으로 큰 손해를 보지 않으면서도 양보의 명분을 제공하는 방안이 담겼을 것으로 전문가들은 짐작한다”며 “전문가들이 꼽는 대표적 ‘윈윈’ 방안은 북한은 미국이 원하는 비핵화 완료 시한까지 핵 신고를 하도록 하고 미국은 반대급부이자 비핵화 유인책으로서의 조기 종전선언에 합의하게 하는 절충안”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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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사의 갈림길을 지난후 장일순

생사의 갈림길을 지난후 장일순

휴심정 2018. 09. 06
조회수 492 추천수 0
 

*(이 글은 지난 7월14일 서울 옥인동 길담서원에서 무위당 서화전을 연 무위당사람들 구법모 이사가 무위당 장일순과 관련된 어르신이나 무위당에 대해 더 알고싶은 관객들을 초청해 연 대화모임을 월간 <퀘스천>이 녹취해 실은 것입니다.)

 

무위당 사람들

 

장일순1-.JPG» 무위당 장일순(1928~1994)

 

길담서원 <한뼘 갤러리> 서울 옥인동에 있는 길담서원에 '무위당 사람들'이 모였다.  모처럼 서울에서 <무위당 서화전>이 열렸기 때문이었다. 무위당 장일순(1924~1994)은 가톨릭 원주교구장 지학순 주교와 함께 반독재 민주화운동을 했고, 이후 '한살림'을 설립하며 생명평화운동을 개척했던 선구자였다. 그를 스승으로 모시며 원주에서 80년대 학생운동을 주도했던 구법모  이사는  자신의 소장하고 있던 10여 점을 선보였다. 지난 7월  14일, 길담서원에서 있었던 '소장자와의 만남'을 지상중계한다. 

 

구법모 : 존경하는, 장(張) 일(壹)자, 순(淳) 자 선생님에 대해서 제가 말씀을 드린다는 게 사실 어불성설입니다. 81년에 처음 찾아 뵙고, 그때부터 돌아가실 때까지 저를 한 찰나도 피곤한 기색 없이 그렇게 해맑게 대해 주셔서 항상 감사하다는 말씀밖에 드릴 게 없습니다. 

저 고등학교 때, 함석헌 선생님이 “일제 순사가 될 것이냐? 독립투사가 될 것이냐?”라고 물었을 때, 그 앞에서 눈을 부라리면서 “독립투사가 돼야지요.” 했던 말이 시발점이 돼서 오늘 이런 자리까지 오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우선, 이 자리의 큰 어르신으로, 장일순 선생님과 함께 평생을 함께 해오신 김영주 회장님이 원주에서 오셨습니다. 박수로 맞이해 주십시오.

모두 : (박수)

구법모 : 한 말씀해 주셔야지요. 회장님!

김영주 : 원주서 제법 일찍 떠났습니다. 12시 전에 떠났는데 오다 보니까 토요일이고 해서 길이 막히고, 서울 시내 저 청계천 와서는 길을 잘못 들어서 거기서 한 시간 이상 헤맨 거 같습니다. 죄송합니다. 늦게 와서 여러분께 죄송합니다. 

무위당 선생님을 모시고 우리가 일할 때, 선생님께서 여러 가지 좋은 말씀을 많이 해주셨습니다. 제가 옆에서 뵈니까, 그분이 엄청 마음 공부를 많이 하신 분이에요. 

다른 사람 만날 땐 그런 티도 안 내시는데,

예를 들면 당신 댁에서 시내에 나올 때면 이렇게 논둑길을 한참 걸어 나오셔야 해요. 그분 말씀이,  아침에 논둑길 걸을 때 풀을 밟으면 풀이 쓰러질 거 아녜요. 그런데 저녁에 들어갈 때 보면 그게 다시 다 서 있더라는 겁니다. “아, 내가 풀만 못 하구나." 그분도 박정희 때, 전두환 때 어지간히 짓밟혔던 분 아닙니까! "나도 밟히며 살지만, 한 번도 제대로 일어서질 못했는데, 너는 아침에 짓밟혀 쓰러졌다가도 저녁이면 다시 딱 일어서니 내가 너를 따라갈 수가 없구나.” 이런 얘기를 하셨어요.

또, 저녁에 봉산동 댁에 들어가면 뒤에 나무가 우거져 있거든요. 그 나무에서 벌레 우는 소리가 들려요. 다른 사람들이 “벌레 운다.”고 그러면,  “저 벌레가 내 스승이다.” 그러셨어요. 왜냐? “저 벌레는 저렇게 자기 마음껏 자기 소리를 하고 있는데, 나는 내 소리를 못 내고 있으니 저 눔이 내 선생이 아니냐!"고 이렇게 말씀하시면서 절 보고 웃으셔요. 그렇게 마음을 달래셨던 분이지요. 그런 분 밑에서 오랫동안 생활하면서 저도 어떻게 그분을 좀 닮아갈까, 그런 생각도 했었는데, 영 그게 안 되더라고요. 하하하.

모두 : 하하하.

 

만남-.jpg» 서울 종로구 옥인동 길담서원에서 열린 무위당사람들 구법모 이사와의 대화 모임

 

김영주 : 그분이니까 그렇게 사셨던 거지요. 오늘 모처럼 여, 서울서도 그동안 두어 차례 무위당 선생님 작품 전시회를 했어요. 오늘 세 번째 무위당 선생님 모시고 여러분과 한 자리에 같이 하게 됐습니다. 정말 반갑고 감사합니다. 이렇게 여러분과 무위당 작품을 놓고 같이 얘기하고 얼굴을 맞 대는 게 마음이 참 흐뭇합니다. 그런 마음 계속 오래 가지고, 여러분과 같이 오랫동안 사귀고 지냈으면 좋겠습니다. 

특별히 이 자리를 준비해 주신 길담서원의 우리 박성준 선생님, 고생 많이 하시고, 그동안에 애 많이 쓰셨다는 얘기 들었습니다. 저는 뵙기는 오늘 처음 봬요. 말씀만 많이 들었지 정말 이렇게 뵙게 되어 존경스럽고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또, 오늘 여러분들 만나게 된 것을 기쁘게 생각하고, 저희 원주에서 제가 이사장님을 모시고 왔어요. 뒤에서 무위당 일을 이렇게 하시는 이사장님이 여러분한테 좋은 말씀을 해주실 테지요.

모두 : (박수).

성낙철 : 부끄럽습니다. 저는 〈무위당 사람들〉 이사장을 맡고 있는 성낙철입니다. 이런 기회에 여러분들을 만나 반갑고요. 선생님 생전에 서화전을 다섯 번인가 여섯 번 하셨는데, 한번도 당신 작품을 자랑하거나 특별하게 얘기하신 적도 없으셨지요. 

후학들이, 또는 주변에 어려운 분들이, 어떤 일을 할 때 돈이 필요하다고 하면, 선생님이 작품을 써주셨지요. 선생님도 가지신 게 없으니까 돈 가진 분들 끌어내서 우리가 하는 일에 도움을 줄 생각으로 대여섯 번 전시회를 하셨던 거지요.

돌아가신 후에 유작전도 이번까지 하면, 서울, 대전, 광주 다해서 아마 이번이 스무 번째로 제가 알고 있습니다. 지역 주변 분들이 우리한테 요청이 와서 그렇게 했고요. 지금 제주도까지는 아직 못 갔습니다. 올해 아마 준비하고 있는 걸로 알고 있고요. 

작품을 통해서 선생님의 생각을 우리가 어떻게 좀 더 공유할 수 있을까. 김영주 회장님이 말씀하신 대로, 우리가 언감생심 무위당 선생님처럼 살 수는 없지만, 비슷하게나마 따라갈 수 있도록, 생각이나마 그렇게 하고 있는데, 오늘 <길담서원>에서 이런 자리를 마련해 주셔서 고맙고, 구법모 우리 이사님이 많이 애쓰신 거 같은데, 작품 보시면서 무위당 선생님 아시는 분도 계시겠지만, 혹여 그 향을 좀 맡고 가셨으면 하는 바램으로 인사를 드리고요. 오늘 만나 뵙게 되어서 대단히 영광스럽게 생각합니다. 고맙습니다.

모두 : (박수)

 

월입송성-.jpg 

 

구법모 : 이부영 의원님, 한 말씀 해주시죠.

이부영 : 하하하. 이 자리에서 전혀 얘기할 이런… 당황스럽게 저 사람은 상의도 안 하고.

모두 : 하하하.

이부영 : 뭐, 영주 형님 우선 이렇게 오랜만에 뵙게 돼서 좋고요. 저는 그저 장일순 선생님 살아계실 때 70년대부터 가끔 찾아 뵐 일이 있으면 가서 뵙고 그랬지요. 그런데 별 말씀도 안 하세요. 늘 숭늉 마시는 거 같은 그런 얼굴이시고, 막걸리나 한 잔씩……그런데 뭘 똑 부러지게 얘기를 안 하세요. 그 절이 어디죠?

누군가 : 구룡사!

이부영 : 구룡사 계곡에 가서 이제 1970년대 초에 꽉 막혀서 힘들 때입니다. 우린 그냥 속이 막 타들어가고 그럴 땐데, “뭘 걱정해. 곧 열릴 텐데.” 그렇게 위로하시더라고요. 또, 최열이 하고 우리 감옥 나와서 얼마 안 됐을 때에도, “걱정 마. 이게 다 전두환 같은 사람이 세상 잘 되게 하려고, 그런 일을 저지른 거거든.” 그렇게 말씀하시니까 속이 막 이상해지는데, 막걸리  따라 주시면서 막 먹이시더라고요. 하하하. 그 물이 참 좋았잖아요. 거기 발 담그고 앉아서 저희들이 더워하니까 물도 끼얹어 주시고 참! 민주화 성지 원주 같은 데 와서 저런 큰 어른한테 술도 받고, 수건 이렇게 뒤집어쓰고 물도 같이 맞고, 하하하, 그런 기억이 엊그제 같은데 벌써 우리 나이가, 추모 사업은 어떻게 해야 하는 건가 싶고요. 

제가 경복궁역에서부터 더운데 이렇게 걸어올라오면서 곰곰이 이 양반 생각을 했어요. 며칠 전에도 경남 통영에 가서 윤이상 선생님, 박경리 선생님, 제정구 선생님 생각하면서 비가 막 쏟아지는데 걷는 일을 하면서, 원주에는 이 어른이 계시단 말예요. 부산에 가면 요산 김정한 선생님 계시고, 하나같이 그 일제 강점기, 또 한국동란 때 다 곡절을 겪으신 분들이에요. 

윤이상 선생은 얼마 전에 화장해 모셔가지고 와서 그 음악당 통영 바다 보이는 데 모시려고 했는데, 그렇게도 그악스럽게 반대를 하는 거예요. 돌아간 분들 어렵게 고향에 모셔 와서 묘 쓰려고 하는데, 박경리 선생도 생전에 통영 고향 통영에 한 번도 안 가셨지요. 그쪽에서 애초에 그 남편분이 서대문 감옥에서 실종된 거 아시잖아요. 6·25 나던 그때 그런 곡절 다 묻어두고 사셨던 분들이란 말예요. 요산 선생이 어떻게 곤경을 치른 건 아시죠? 김정한 선생은 수장당할 뻔 했어요. 수장할 때,  마침 어떻게 그 현장에 있던 제자가 꺼내준 거란 말예요. 그 바다 주변에 수장을 엄청나게 했습니다. 그때. 

요즘 그런 분들 생각하면서 지역에 가서 이렇게 순례 여행을 하고 있는데, 가는 곳마다 그 지역에 우리 좋은 후배들이 있고, 그들이 생각하고 따르는 그런 분들은 그런 곡절이 있는 모양이에요. 일제 때 감옥 갔거나 물론 그런 어른들을 마음에 두고, 모시고 하는 그런 젊은이들은 뭐 이념 관계없이, 종교 관계없이 모여있는 걸 보면 참 마음이 쏠립니다. 요새 그런 분들 찾아 다니면서 살고 있는데, 진해에 이효재 선생한테도 갔었죠. 올해 아흔 다섯이신데, 가서 절하고 왔습니다. 그런데 다니면서 그러고 나면 마음이 참 좋아요. 

오늘도 여러분들이랑 장 선생님 글 그림 이렇게 보면서 이런 향기를 함께 좀 맡아보려고 합니다. 저도 집에 보면 요만한 거 하나 받아 놓은 게 있더라고요. 그거 가지고 부족할 거 같아서 오늘 여기 나와서……하하하.

모두 : 하하하.

 

종타방-.jpg 

 

구법모 : 저보다도 오랫동안 선생님을 모셔왔던 어르신들이 참 많이 계십니다. 아까도  말씀드렸듯이, 제가 선생님에 대해 논할 수는 없지만, 81년도부터 돌아가실 때까지 저한테 해주셨던 이야기들도 함께 나누는 것이 예의가 아닐까 하는 마음에 이 자리가 만들어졌습니다. 

 

"서울에서 자란 구 이사는 고교 1학년 때부터 흥사단에서 함석헌 등의 강의를 들었다. 재수를 거쳐 1981년 연세대 원주캠퍼스 영문과에 입학한 그는 원주지역 민주인사들의 단골식당이던 ‘천하태평’에서 장일순,·이창복,·김지하,·김민기 등을 통해 민주화운동의 세례를 받았다. 가톨릭 모태신앙인 그는 가톨릭원주교구대학생연합회를 조직했고, 1984년 첫 직선제 총학생회장으로 뽑혀 학내 시위를 주동했다. 물론 감옥행을 각오한 투신이었지만 그때마다 지 주교와 장 선생이 방패막이가 돼 주었다. " 

- 한겨레 신문기사 중에서

 

저는 원래 사고뭉치입니다. 고등학교 때 교장 선생님께서 빨갱이 활동한다고 아버지를 불러다가 야단하시고, 학교 가면 또 왕따를 당합니다. 교무실에 가면 학교 친구들하고 이야기도 못하게 하고, 혹여 이야기를 하면 이야기 한 내용을 그 학생들 통해서 다 듣습니다. 그렇게 저를 감시하고, 그럴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대학교 갈 생각을 아예 안 했어요. 일찌감치 그랬는데, 여기 앉아계신 정준원 선생님, 우리 <흥사단> 지도를 해주셨던 선생님이 계십니다. 오늘 오셨습니다. 정준원 선생님 때문에 제가 학교를 졸업하게 되었어요. 하하하, 아마 한 말씀해 주실 겁니다. 저를 보다듬어 주신 선생님이십니다. 

모두 : (박수)

구법모 : 하하하. 서울 문리대 지리학과 나오셨고, 제 고등학교 담임 선생님이셨습니다.

정진원 : 벌써 40여 년 전 일이네요. 성남고등학교에 선생으로 있었던, 선생이라고 그러죠. 구법모 이사의 선생님입니다. 지금 와선 그냥 생물학적으로 선생이죠. 먼저 태어난 거뿐이지, 지금은 뭐 생각하는 거나 멘탈이 그야말로 ‘구법모 이사가 내 선생’이다, 그런 얘기합니다. 

그때 고등학교 때 ‘흥사단 아카데미’라고 클럽 활동하는 게 있었는데, 그 지도 교사로 있으면서 구 이사를 처음 만나게 됐어요. 어느 날인가 그 수업에 들어가서 고등학교 1학년 때 춘원 이광수 얘기를 제가 했던 거 같아요. 그 ‘민족 개조론’ ,  그분이 쓰신 걸 얘기했는데, 그걸 어떻게 받아들였는지 내 얘기에 대해서 반기를 들고 손을 들고 얘기하더라고요. ‘아, 그래? 좀 남다른 구법모다’ 하하하. 하여튼 어릴 때서부터 조금 가치 지향적이고, 이념 지향적인 그런 특성을 가지고 있었던 구법모가 아니었나 지금 와서 그런 생각이 드네요. 

하여튼 제자를 통해서 이렇게 좋은 자리에 제가 올 수 있게 됐고, 또 훌륭한 분들을 알게 되고 그래서 아주 대단히 영광스럽게 생각을 합니다. 

모두 : (박수)

구법모 : 그리고 이제 81년도에 제가 또 귀중한 한 분을 뵙니다. 학교는 가되 학교 강의실은 못 들어갔습니다. 매일이 바빴습니다. 시위 주도 하느라고. 그럴 때 저한테 이렇게 말씀해 주신 분입니다. “데모를 할 때는 운동화 끈을 잘 매라.” 무슨 뜻인지 아시겠죠? 평소에도 늘 드러나지 않게 저를 보살펴 주시고 학교도 졸업시켜주신 장본인이십니다. 제 4년간 성적에 A 학점 받은 것도 그 과목이 처음입니다. 우리 안삼환 교수님, 말씀 좀 해주세요. 교수님.

안삼환 : 예. 선생님들. 제가 잘못 온 거 같습니다. 이런 데서 얘기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닌데, 전 독일어 선생이올시다. 제가 연대에 있을 때 원주 분교에 출강한 적이 있는데 저 학생이 학점을 달라고 찾아왔어요. 

모두 : 하하하.

안삼환 : 제가 그때는 너무나 깐깐한 사람이고, 공부를 정상적으로 해도 학점을 잘 안 주는 선생이었는데, 이야기를 들어보니까 운동권에서 무슨 학생회장 같은 걸 하는 거 같았고, 데모한다는 걸 아주 자랑스럽게 생각을 하면서 ‘학점을 내놔라’ 그랬어요. 하하하. 그래서 내가 정말 이런 이야기하기 죄송한데, 저 자신도 사실 학교 다닐 때 데모를 하다 죽을 뻔 한 일이 있거든요.

그런 적도 있고, 또 그 당시 독일 갔다가 아주 발달된 민주적인 사회를 보고 한국에 돌아온 때인데, 보니까 참 엉망이에요. 그래서 제가 “학점을 주마. 그런데 그냥 줄 수는 없고, 뭐 좀 써 오너라. 여기서부터 여기까지 하여튼 사전을 찾든 해석을 해갖고 한 페이지만 해오너라.” 그렇게 해서 제가 이 학생이 앞으로 뭣이 될지 모르지만, 기왕이면 A학점을 줘야 되겠다. 뭔가 깨달았으면 좋겠다, 해서 그런 적이 있습니다. 여기서 그런 말씀을……하하하, 너무나 부끄럽습니다. 죄송합니다.

모두 : 하하하. 

구법모 : 안삼환 교수님은 우리 연대에 계시다가 서울대로 가셨습니다. 그런데 제 친구 중에 독문과 친구가 있는데 졸업을 못 해요. 그래서 제가 “아니 너 왜 졸업을 못하니?” 물으니까 “아! 독문과 필수과목을 F 받아서 졸업은 못한다.”고 그래요. 그래서 제가 바로 그냥 교수님한테 끌고 가서 “얘가 제 친굽니다. 졸업 좀 시켜 주십시오.” 하하하. “아, 그래? 그런데 말이야……” 안 교수님은 그런 분이셨지요. 

모두 : (박수)

 

민주화의 성지 원주에서 만난 무위당

민주화 묻자 ‘전두환 사랑하라’ 선문답

 

구법모 : 저는 스승님 복이 많았던 거 같습니다. 장 선생님은 말씀해 주실 때 큰 말씀을 해 주세요. 항상 “저 뜻이 뭘까? 뭘까?” 

제가 81년도부터 항상 제 마음에 가지고 있는 화두가 있어요.  “전두환을 사랑하라” 제가 민주화에 대해 묻자 해주신 말씀이에요. “아니, 사랑할 수 없는 사람인데 어떻게 사랑을 합니까?”, “네가 전두환이었다면 어떻게 하겠니?” 그 말씀에 제가 무너졌습니다. 

아, 그리고 어느 날은 『선가귀감』을 저한테 주시면서 꼭 읽어 보라고 하시는 거예요. 그래서 읽고 갔더니 "그럼, 이야기를 해봐라" 선생님은 굉장히 겉으로는 이렇게 하신 거 같아도 되게 철저하십니다. 책을 주시면 정확하게 독후감을 말씀을 드려야 돼요. 

우리가 뭐든 언어화시키려고 하죠. 그럼 제대로 볼 수가 없다는 거예요. 근본으로부터 분리된다는 거죠. 우리가 장 선생님에 대해서도 뭐 동학이다 뭐다 선생님을 절단합니다. 우리 스타일대로, 그건 절대 아니라고 봅니다. 아무리 우리가 어떤 용어를 가지고 어떤 컨셉을 가지고 선생님을 이야기해도 그것은 선생님일 수 없습니다. 

제가 스무 살 때 원주엘 갔거든요. 얼마나 개구쟁이였겠어요. 얼마나 제가 못 됐냐 하면 아무 때나 찾아가요. 저녁에도 가요. 그때 어떤 분이 왜 그렇게 선생님 댁에 드나드느냐고 저를 혼내는 분도 계셨어요. 그런데 선생님 말씀 들으면 신이 나니까 저녁에도 가고 아침에도 가고 그냥 항상 가는 겁니다. 봉산동 댁에. 그래도 선생님께서는 한 번도 불편해 하신 게 없어요. 아니 그게 느껴졌으면 저도 한참 민감할 때니까 자제를 했겠죠.

그런데 단 한 순간도 “왔니”, “앉아라” 늘, 제가 한겨레신문 인터뷰한 내용도 그거지만, “거울 앞에서 죽도록 뛰어 봐라.”,“니 얼굴이 제대로 보이니?”, “아니요”, “세상이 그렇다. 뛰면, 뛰는 상태에선 아무것도 안 보여.” 화두죠 화두!

그리고 한참 지났어요. “밑으로 기어라, 평생 기어야 한다.” 우리 선생님 그 말씀 많이 들었잖아요. 우리 저 남철이 형도, 우리 항상 하하하… 

그 긴다는 게 단순하게 기는 게 아니에요. 세월이 가면 갈수록 더욱더 절절해져요. 저는. 지난번 한겨레 인터뷰 하는데 그렇게 눈물이 나더라고요. 선생님을 감히 제가 이렇게 말씀드리는 것도 예의에 어긋나지만, 제 나름대로 생각하는 겁니다.  

'풍우기능롱청향(風雨豈能籠淸香)'이란 것은 선생님께서 저한테 써주신 결혼식 할 때 써주신 말씀이십니다. 제가 항상 생각을 합니다. 

'풍우와 향' … 비바람이 어찌 향을 막을 수 있나. 결론은 비바람에 우리 운동권은 너무 익숙해있지 않습니까. 즉 향이 없는 비바람… 그런데 『신심명』이라고 하는 책을 보면 우리가 ‘시비선악유무’에서 시에, 비에, 선에, 악에, 유에, 생에, 무에 취해있는 것도 편견입니다. 동시에 부정을 해야 되는 거지요. 시는 시야니라, 비는 비야니라 그런 관점에서 보면 선생님의 말씀이… 바라보는 관점이 틀리지요. 관조를 하지요. 거 관조할 수 있는 거는 뭐냐. 

선생님도 그런 말씀 많이 하셨어요. 시간이 흐르고 나서 “내가 그때 그러지 않았어야 되는데” “그 있잖어” 그런 말씀 하세요. 그건 뭐냐? 한 찰나에도 선생님이 머뭄이 없으신 거 같다. 끊임없이 들여다보시고. 그게 생명이 갖고 있는 힘이라는 겁니다. 선생님은 평생을 그걸 하신 거예요. 

제가 유일하게 어디 가서나 우리 저 〈몽양 사업회〉 거기 가서도 우리 이부영님께서 저를 이사로다가 추천을 해주셔서 제가 읊은 시가 바로 그겁니다. 서산대사의 시인데 ,

 

만고의 도성은 개미집이요

천하의 호걸은 하루살이다 

밝은 달 베개 삼아 고요히 누었으니 

부는 솔바람 갖은 곡조 아뢰네

 

여기에 풍미는 부는 솔바람 이 역사를 보면 얼마나 시비극이 많습니까. 시비극이 아니라 사실은 극만 있는 거죠. 동전의 양면처럼 우리 역사가 현대사가 증명하고 있지 않습니까. 

대충 선생님에 대한 개괄적인 말씀을 드렸습니다만, 이 또한 제가 갖고 있는 제 편견일 수 있다는 점을 말씀드립니다. 

그럼 이제 같이 이야기하면서 진행을 하겠습니다. 오늘 이 자리는 굉장히 아름다운 자립니다. 여기 돈 있는 사람 하나도 없어요. 돈이 있으면 선생님 말씀이 절대 안 들어옵니다. 권력이 있으면 절대 선생님 말씀이 안 들어옵니다. ‘왜?’ 그렇게 세상은 철저하게 엮여있습니다. 제 주변에 천억을 가지고 있는 친구가 있습니다. 제가 항상 가서 밥을 사고 커피를 삽니다. ‘왜?’ 생각하는 게 항상 1조래요. 1조, 1조만 생각한대요. 인생이 그런 거 같아요. 강박한 사람이 많습니다. 그 돈이라는 것도 선생님께서 그 말씀 해주셨어요. 저한테, “법모야 내가 6·25 때, 아무 것도 소용이 없더라. 물질이라는 건, 전쟁이 일어나니까 아무 의미 없더라.”  

제 얘기는 조금 미루고,  혹시 궁금하신 점 먼저 질문을 받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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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6 쿠데타 비판, 사회안전법에 걸려

평생 원주지역을 벗어나지 못한 채 살아

 

어떤 분 : 자제분이……장 선생님 자제분이 있잖아요.

구법모 : 삼형제십니다.

어떤 분 : 근황이 어떠신지.

구법모 : 다들 잘 살고 계십니다.

모두 : 하하하.

구법모 : 아들이 셋입니다. 큰 아들이 사업하시고요. 둘째 아들도 직장 잘 다니시고, 셋째 아들은 학교 교수님이시고.

어떤 분 : 한 분과 좀 인연이 있는데.

구법모 : 네네.

어떤 분 : 그리고 또 하나 질문은 장 선생님이 ‘대북관’이나 ‘통일’에 대해 이야기한 적이 있으셔요?

구법모 : 있으시죠.

어떤 분 : 요즘 상황에 비춰서 어떤 생각을 하셨는지.

구법모 : 원래 선생님께서는 ‘평화주의자’이십니다. 기본적으로… 평화주의자시기 때문에 뭐든지 다 인정을 해주시죠. 그게 맞지 않습니까? 각자 살아온 삶의 형태들이 다 다른데……

어떤 분 : 그 부분은 조금 제가 설명을 드릴까요. 선생님이 1962년도인가 3년도에 ‘중립국 강화론’을 말씀을 하셨죠. 이를테면 미국과 소련, 자유나 공산 진영이 아닌 대한민국도 중립국으로 가야 한다고 말씀하시면서 아마 그때 아인슈타인하고도 그 서신을 교환하시면서 대한민국은 중립국으로 가야 한다고 주장하셨죠. 그때부터 이제 박정희 씨한테 미움을 받기 시작했고, ‘사회 안전법’에 걸렸었죠. 그래서 당신이 세상 밖을 다니시는데 편안하지 못했고요. ‘사회 안전법’ 다 아시죠? 어디 다니려면 원주에 기거하시는데 서울 가시려면 “서울 어디 구법모를 만나러 간다.” 이런 거까지 경찰서 정보과에다 신고를 하고 다녀야 했었죠.

요즘 문 대통령이 ‘중립국’에 대한 얘기를 조금 하는 거 같은데, 선생님은 62년도인가 3년도에 그 말씀을 하셨어요. “우리 대한민국이 살 수 있는 길은 중립국으로 가야 한다.” 그 얘기를 하셔서 선생님이 그때부터 핍박을 받기 시작한 걸로 제가 들었습니다.

구법모 : 저도 잘 모르지만 화이트헤드(Alfred North whitehead, 1861-1947)라는 사람이 있습니다. 화이트헤드는 ‘과정신학’으로 유명한 철학자인데, 현상을 보고 현상에 고집을 하는 순간 그건 제대로 못 본다는 거죠. 그 현상 또한 큰 프로세스라는 거죠.  우리 동양 사상하고 굉장히 잘 맞습니다.

……전 근본적으로 낙천주의자입니다. 선생님도 낙천주의자셨는데, 눈물을 많이 흘리셨죠. 그렇지만 그 눈물의 의미는 부정적인 것이 아니라 그것을 아우르면서 함께 가야한다는 것이었어요. 

여기 많은 분들이 아시지만, 선생님을 가장 괴롭게 하셨던 분들… 병상에 오셨을 때 도리어 위로해 주셨잖습니까. 선생님을 좌익으로 몰았던 그런 사람이죠. 친구인데. 그래도 뭐 학교도 같이 가고 그런 분이 오셨는데, 선생님께서 “자네 나 때문에 고생이 많았지?” 평생 누구한테나 그랬던 분입니다. 

그런데 “나 때문에 얼마나 힘들었느냐” 이거는 바라보는 견지가 틀립니다. 우리 불교에 유식학이라는 게 있습니다. 거기 보면 프로이트 같은 경우 칠식(七識)을 봤다면, 노자는 팔식(八識)을 봤다고 그래요. 선생님께서 하신 그 말씀은 팔식 단계죠. 선생님은 암이 왔을 때도 “암도 한 생명체인데, 암도 살아야 되지 않겠느냐”고, 이 경지는 다르죠. 일반 사람들이 바라보는 것과는.

어떤 분 : 저……

구법모 : 예, 말씀 하세요.

어떤 분 : 무위당 선생님 책이, 성인들처럼 당대에는 책을 안 쓰시고, 후대에 책이 몇 권 나왔잖습니까?

구법모 : 네네.

어떤 분 : 그런데 얼마 전에 탄허선사의 시종 되시는 분이 『탄허 전집』에서 무위당 선생님을 거론하셨어요. 탄허대사는 <화엄경>을 번역하신 당대의 선지식 아닙니까? 무위당 선생님 역시 관련 책들을 보면 불교뿐만이 아니라 천도교, 그리고 성경에 대한 해석도 탁월하다고 합니다. 개인적으로 리영희 선생님 책에도 언급된 걸 봤는데, 무위당 선생님은 어느 한 사상에 치우치지 않고, 심지어는 서양 철학까지 사상적인 부분에 있어서 타고난 분이었다고 해요. 그런데 단지 드문드문 발견되는, 물론 남다른 인식에 있어서 굉장히 공감을 하게 되는 그런 부분들이 있지만, 어떻게 후대에 책 한 권이 없으니까. 당신의 사상 전체를 집대성한 이런 책이 나와 줬으면 좋겠는데 전혀 그게 없고, 그래서 좀 아쉬움이 있다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그 이유도 좀 알고 싶고요. 또 그걸 계승하신 분도 별로 없는 거 같더라고요. 사상적으로.

구법모 : 제가 아는 대로 부연 설명을 드리면요. 아까 얘기 나온 ‘중립국 강화론’ 을 주장하시면서 ‘사회 안전법’에 걸려 모든 행동에 제약을 받으셨잖아요. 그래서 어딜 가시기보다 찾아오는 후학들이 많고 그랬는데 그때 말씀해 주셨던 것들이죠. 당신이 무슨 글을 하나 쓰면 그 당시는 여러분도 다 아시다시피 박정희 시대 때는 온 문장을 전체 안 보고 문구 하나로 걸어서 사람을 징역 보내고 죽이고 그랬었잖아요. 그래서 당신의 주장을 글로 남길 수가 없었고요. 저희들이 지금 가장 어려운 부분이 뭐냐 하면 지금 선생님 말씀하신 대로 어디서 무슨 책을 보니까 무위당 선생님 말씀이 나오고, 참 귀한 생각인데 싶어서 막 찾아 보다 보면 아무것도 없는 거예요. 참고할 부분이… 리영희 선생님 글 봐도 나오고, 여기저기 글에서 다 튀어 나오는데 아무것도 없어요. 그거를 찾아보려면. 당신이 두 가지 걱정을 하신 거예요. 자기 안위는 차치하고, 내가 글을 남기면 젊은 후학들이 이 글을 보고 또 그 사람이 피해를 보지 않을까 하는 생각, 그런 거 때문에 고의적으로 글을 안 남기시고, 그러시고 후학들이 찾아와서 고민을 털어놓으면 뭐 장자에 나오는 한 구절, 노자에 나오는 한 구절, 선생님 생각을 간접적으로 표현하셨던 거죠. 그래서 지금 선생님 그 책에도 당신의 작품으로 나오는 게 하나도 없습니다. 지금 전국에서 1년에 한 4천 명 가량이 개인 또는 단체로 원주 <무위당 기념관>에 찾아오시는데, 저희들이 제일 어려운 게 바로 그런 거예요. 선생님을 어떻게 소개할 수 있는 책 한 권이 별로 없고, 이를테면 이현주 목사님이 쓴 『노자 이야기』라든가 뭐 『좁쌀 한알』 이라든가 요런 짜깁기 형식으로 밖에 지금 나온 게 없습니다. 

지금 여기 보시면, 선생님한테 작품 받은 작품들입니다. 선생님 작품 소장하고 계신 분들이 많습니다. 지금 책으로, 서화집으로도 만들어졌는데요, 일본에도 있고 약 1,200점이 모아졌습니다. 아직도 ‘나한테도 있다’ 이렇게 해서 내오시는 분들이 지금도 1년에 한 70~80점, 100점씩 들어오거든요. 

그런 분 중에는 당시 선생님을 감시했던 정보과 경찰, 자기가 늘 지켜보기에도 너무나 훌륭한 분이니까 “저도 작품 하나만 써주세요.” 이렇게 해서 갖고 계신 분도 있고, 그때는 그걸 어디다 내놓지도 못했죠. 자기 목숨이 위태로우니까. 이젠 세월이 지나고, 그때그때 작품 받은 분들을 통해서 선생님이 어떤 생각이셨는지 어떤 말씀을 하셨는지 정리하고 있습니다. 

또, 지금 최정연 작가라고 선생님 평전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올 연말쯤이면 나오지 않을까 싶은데, 아마 평전이 나오면 여러분들이 궁금해 했던 사항들을 조금 더 아실 수 있는 기회가 될 것 같습니다. 

 

나라는 것은 찌꺼기일세,

맑은 물같이 그렇게

 

다들 아시겠지만, 선생님 작품은 깊으면서도 쉽습니다. ‘눈물겨운 아픔을 선생이 되게 하라’든지, ‘나라는 것은 찌꺼기일세, 맑은 물같이 그렇게’라든지, ‘한 사람이 한 입씩, 그것이 곧 삶이다’라든지 ‘어머니는 끝이 없네’라든지 뜻은 깊지만, 금방 알아들을 수 있는 내용들입니다.

예를 들어서 조주선사에게 어떤 학승이 물었습니다. 깊을 현(玄)자 현중현(玄中玄), “깊은 가운데 또 깊음이 뭡니까?”라고 질문하죠. 그러니까 조주가 아무 소리 안 해요. 여러분 보세요. 깊을 현 하나면 됐지 거기다가 가운데 중, 또 깊을 현 자를 써요. 조주선사가 한참 있다가 뭐라고 하냐면 “하나, 둘, 셋, 넷” 그럽니다. 그런데 선생님이 바로 그러신 분이세요.

뭐, 노자 같은 경우도 원래는 아무것도 안 쓰고 조용히 산으로 변방을 빠져나가려고 하다가 변방을 지키는 병사한테 걸려서 쓴 글이 ‘道可道 非常道 名可名 非常名’으로 시작하는 그거지 않습니까.

또, 달마대사도 38대죠. 그 당시 수양제가 얼마나 많은 불사를 했습니까. 수양제가 많은 스님들을 불러놓고 자기 자랑을 열심히 하면서 달마에게 진리를 좀 얘기해 달라고 청해요. 

그러니까 ‘무성(無聖)’이라고, 없을 무 자에 성스러울 성 자를 썼어요. 성스러운 게 없다. 수양제가 화가 나서 “도대체 말하는 너는 누구냐?”고 묻자 “나도 모르겠다.” 하하하. 저는 선생님께서 그거 다 보셨을 거라고 봐요. 그렇지 않고서는 선생님 작품에 그런 말씀들이 나올 수가 없어요. 다 보셨을 거예요. 

탄허스님 말씀하셨는데, 제가 88년도 12월 달에 변각성 스님을 모시고 공부를 했습니다. 주역하고 화엄경, 능엄경 너무 좋아서 능엄경 한 질을 선생님께 갖다 드렸더니 “이 귀한 걸 어떻게” 하시면서 즐거워하시더라고요. 그런 것을 보면 이미 다 그쪽에 회통을 하셨다고 봐요. 말씀은 안 하시지만 그래서 그렇게 큰 그런 것이고요. 그리고 선생님 말씀의 위대함이랄지 소중함은 어떤 사상, 어떤 학문 이것이 아니라 “각자가 살아서 한살림을 각자 해라”라고 하는 지금 우리 〈한살림〉이 있지 않습니까? 생산자와 소비자라는 〈한살림〉 구조가 아니라, ‘에브리바디’가 다 한살림이다. 이원론적 세계관에서 살지 말고 일원론적 세계관, 불교식으로 말하면 정등각(正等覺)해서 하나로서 삶을 살아라. 

선생님께서 저한테는 어떤 말씀을 해 주셨냐면, “이제 독재는 간다” 그때가 81년도인데, “니가 밥을 어떻게 먹고 살 것이냐?”그러셨어요. 저는 생각도 못했어요. 이게 무슨 말이지? 

그러다 84년도에 학생회장에 나서게 됐습니다. 그때는 학생회장 다 ‘국가보안법’입니다. 나가지 말아야 하는데, 안 나가면 제가 배신자 낙인이 찍힙니다. 배신자가 될 수는 없잖습니까. 한참 있다가 저를 부르시더니, “주교님과 다 얘기해 놨다. 제적으로만 얘기해 놨다. 감옥은 안 간다. 그렇게 알아라.” 그리고는 어느 날 또 부르시더니, 빨라 사북으로 가라고, 차가 들이닥칠 거라는 거예요. 그래서 제 하숙집에 있는 이상한 책들을 다 옮기고, 곧바로 사북 성당으로 갔어요. 아마 그때 치안본부로 끌려갔다면 제 승질에 아마 저도 지레 갈 수도 있었지요. 이렇게 선생님 보살핌을 제가 받았어요. 그래서 제가 절절합니다. 

여기 저 조카도 있지만, 세 분의 아드님이 계십니다. 그분들이 저한테 하시는 말씀이 저보고 ‘니가 진정한 아들이다’ 그럽니다. 자기들은 아버지이기 때문에 깊은 얘기를 못 나눴대요.  

 

해인삼매-.jpg 

 

질문해 주시죠. 우리 저기 박성준 교수님, 한 말씀도 안 하셨는데, 한 말씀 좀 해주시죠.

박성준 : 아닙니다. 그냥 잘 듣고 있습니다.

구법모 : 네, 하하하. 선생님께서는 항상 자애로우십니다. 제가 말투가 이렇게 못 됐습니다. 도전적입니다.  이렇게 도발적으로 질문을 해도 항상 웃으시면서 ‘그래, 그래’ 그러셨지요. 아이고 회장님 오셨네요. 우리 저 한기호 회장님, 제가 전화를 여러 번 드렸는데.

누군가 : 제가 한 마디 말씀드려도 되겠습니까? 저는 평범한 샐러리맨으로 살았고, 요즘 아시다시피 이제 장수시대니까 열심히 경제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제가 느끼는 거는 이렇습니다. 제가 본래 와이프 덕택에 무위당 선생님 책을 한 세 권 정도 독파했습니다. 그때까지 무위당 선생님이 어떤 분인지 전혀 몰랐고요. 그렇지만 부끄럽다고 생각하진 않습니다. 제가 다른 방면에서 살았기 때문에 몰랐다, 물론 이렇게 자기 방어적으로 말씀드릴 수가 있습니다. 저는 자연과학, 공학을 했습니다. 공학을 해서인지 바른 건 바르고 틀린 건 틀리다 하는 주관적인 잣대가 아주 강합니다. 옛날에 저 EBS ‘정의란 무엇인가’ 이런 것도 싫어합니다. 두루뭉술하니까요. 저는 이게 맞느냐 틀리냐는 게 제 주관입니다. 그러니까 X+Y가 5면 3+2다 이겁니다. 4+1도 좋다. 딱 나와 있는 거를 이야기해야지 다른 쓰잘데기 없는 거는 사기꾼이다. 와이프한테 물어 보십시오 제가 그렇게 말하는 사람입니다.

모두 : 하하하.

누군가 : 그런데 제가 볼 때 무위당 선생님은 정말 좋은 말씀 많이 하셨지만 조금 ‘희미하다’ 이겁니다. 제가 듣기에는 희미해요. 

구법모 : 선생님 말씀이 희미하다?

누군가 : 노자 말씀도 하시고, 장자 말씀도 하시고, 공자 말씀도 하시고, 맹자 말씀도 하시고, 성경 말씀도 하시고… 저도 원불교를 중고등학교 대학교까지 열심히 다녀서 불교 쪽은 좀 압니다만, 제가 봤을 때 요즘 젊은이들이 무위당 선생님을 알겠느냐, 잘 모를 거라고 봅니다. 우리 저 SK 이사까지 하셨다고 들었는데.

구법모 : 죄송합니다.

누군가 : 요즘 젊은이들은 무위당 선생님을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가. 여기 모임에 계신 분들이 생각을 해보셔야 될 거 같다… 이런 생각이 많이 듭니다. 

구법모 : 제가 맑스 공부를 했었는데 맑시스트 클라스의 개념이 뭡니까? 계급 이건 완전히 그냥 콘크리트 같은 거 아닙니까? 그런데 우리 동양에서는 그런 게 없어요. 

누군가 : 제가 드리는 말씀은 이런 겁니다. 저 우리나라에 80% 이상은 좌니 우니 그런 거 아무 관계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일반적으로 자기 생활에 충실한 사람이 많아야 더 사회가 건전하다. 이렇게 보는 사람이거든요. 좌파니 우파니 관계없이 열심히 사는 사람들이 많아야 세상이 튼튼하게 움직인다. 이렇게 생각하고 저도 그렇게 살아왔거든요. 그런데 무위당 선생님 책을 보면 아주 좋은데, 이걸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따라 갈 것인가. 특히 젊은 사람들 위해서 무위당 선생님의 생각을 어떻게 전달할 것인가 고민해 보시라는 거지요.

구법모 : 감사합니다.

모두 : (박수)

용을 : 저는 좀 잠깐 쉬어갈 겸, 저기 우리 따님들 계시나요? 우리 구 회장님 따님들?

구법모 : 네.

용을 : 저는 구 이사님을 형님으로 모시고 있는 후밴데요. 

저 형님께서는 늘상 저런 당당함과 자신감이 어디서 나오는지, 여기 연세 굉장히 많으신 선생님들도 있고, 아주 권력이 세셨던 분도 계신데, 항상 어디가도 당당하세요. 아주 거칠 게 없이 저러다가 다치는 게 아닌가… 하하하. 저 개인적으로는 그런 힘이 어디서 나오는지 궁금하고요. 그다음에 우리 따님들 계시면 한번 앞으로 나오세요. 기왕에 왔으니까 우리 어른들한테 인사도 좀 드리고. 난 큰 딸 누구입니다. 둘째 딸 누구입니다. 정말 큰 스승님들이십니다. 그러니까 인사나 좀…

구법모 : 우리 저 큰 애구요. 둘째…

딸들 : 감사합니다.

모두 : (박수)

용을 : 바깥에서는 정말 당당하신데. 지금 댁에서는 우리 따님들한테 어떻게 하시나, 하하하.

딸들 : 하하하.

용을 : 저희 후배들한테는 굉장히 엄하거든요. 어떨 땐 막 때리기도 합니다. 하하하

모두 : 하하하

용을 : 우리 큰 따님 작은 따님 짧게… 

큰딸 : 아, 저는 큰딸 구현경입니다. 저희 아빠는 집에서도 동일하게 하하하, 동일하게 당당하시고, 지금은 많이 좋아진 거 같은데 저희 어렸을 때는 되게 엄격하게 하셨어요.

용을 :그런 아빠가 괜찮으세요?

모두 : 하하하.

큰딸 : 부모님을 골라서 나오는 건 아니니까…

모두 : (폭소)

용을 : 작은 따님!

작은딸 : 안녕하세요? 저는 스물여섯 살 구화영입니다. 둘째딸이고요, 아빠는 음 … 아, 준비를 해올 걸… 하하하. 늘 같이 살아서 잘 모르겠어요. 하하하

모두 : 하하하.

작은딸 : 저도 그냥 언니랑 똑같이 생각하고 있고요. 저희가 좀 크고 그러니까 오픈마인드가 되셨어요. 대화도 많이 하려고 하시고, 음, 좋은 아빠세요.

모두 : 하하하.

용을 : 아빠가 <무위당 사람들> 또, 도산 안창호 선생님 <흥사단>, 또 몽양 여운형 선생님 이런 데 다 관계하고 계신 건 알고 계셨나요? 큰딸

큰딸 : 아니요.

용을 : 그럼 장일순 선생님이나 이런 이야기를 따님들한테 안 해 주세요?

큰딸 :그냥 저희 집에 걸려있던 작품들 몇 개가 여기 지금 걸려 있는데요. 가끔 말씀해 주셨는데, 저희가 아마 듣고 잊어버렸던 거 같아요. 솔직히 저희가 그렇게 관심 있는 분야가 아니라서, 하하하.

모두 :하하하.

용을 : 아까 선생님께서 걱정하신 게 우리 젊은 세대들에게도 무위당 선생님의 뜻이 잘 전달이 됐으면 좋겠다 말씀하신 건데, 그래서 구 이사님한테 청합니다. 이제 앞으로는 자제분들에게 좋은 얘기 많이 해주시고 계속 지속적으로 힘써 주시기를, 감사합니다. 이상 마치겠습니다.

모두 : (박수)

구법모 : 저기 한기호 회장님 늦게 오셨는데 선생님에 대해서 한 말씀해 주시죠. 우리 다 같이 한 선생님에게……

한기호 : 아, 저는 시간 좀 맞춰서 오느라고 그랬는데 여기(청와대 옆 서촌)데모대가 많더라고요. 그런데 그 중에 하나가 날 딱 붙들더라고. 보니까 아는 사람이에요. 그 사람이 가방부터 끌고 들어가는 거요. 그래 거기 가서 시간 좀 보내고 오느라고 늦었습니다.

모두 : 하하하.

한기호 : 무슨 말씀을 하셨는지 모르겠지만, 제가 이 시간에라도 맞춰서 오느라고 노력한 거는 생각해 주시기 바랍니다.

모두 : 하하하.

구법모 : 제가 이렇게 장 선생님에 대해서 말씀 여쭙는다는 거 자체가 사실 결례라는 거 너무 잘 알고 있습니다. 저한테 비쳐진 상, 저의 생각일 뿐입니다. 그런 점에서 어르신께 죄송하다는 말씀드리고 다른 또 질문 없으시면…

이부영 : 우리 김영주 선배도 아직 한 말씀 안 하셔서… 여러분들 그 장 선생님이요. 여러분들 장일순 선생 그러면 뭐 이렇게 난치고 글 쓰고 그런 모습 생각하시잖아요. 

참 편안해 보이시죠. 그런데 그 어른 청년 시절에 해방이 됐어요. 청년이라면 가장 시대적인 감각이 예민할 때 아닙니까. 그때 서울대 입학을 하고 나니까 국대안 파동(國大案波動, 군정기인 1946년 미 군정청 학무국이 일제시대의 여러 단과대학들을 통폐합하여 단일 종합대학인 국립 서울대학교를 설립하겠다는 안을 발표하자 1948년까지 2년간 통폐합 대상 학교들의 교수, 학생들이 격렬히 반대한 사건) 찬성, 반대 이런 게 막 일어나잖아요. 그러니깐 미군정에서 국립 서울대학으로 만들려던 것은 일제 때 경성대학 그 체제를 그대로 유지하려고 그런 거예요. 서울대를 남한 사회의 지배 엘리트를 양성해 내는 그런 기관으로, 이제 식민지를 벗어났으면 자유로운 지식인이 돼야 하는데, 또 거기에 국가 이데올로기를 집어넣으려 했던 거죠. 그래서 이것 때문에 좌우로 갈라져 찬반이 일었는데 사실은 좌우로 갈라서 생각할 일은 아니었어요. 

저는 그 얘기를 김 선배 얘기 안하세요? 

저는 상상해요. 몽양 여운형 같은 분들의 생각. 그리고 장 선생님은 제가 70년대, 80년대 원주 드나들면서 만나 뵈었을 때 그 어른은 극단적인 거를 추구하는 분이 아니거든요. 그 분은 어떠셨을까, 아직 신탁통치를 받고 있지만, 하나의 독립 정부를 만들어야 한다고 했던 몽양 여운형이나 김규식 선생 같은 분들도 그 건국준비위원회에 가담하셨을 거라고 봐요.

여러분들 몇 년 전에 정연주 씨가 KBS 사장 했을 때 ‘1945년 서울’ 그런 KBS 드라마가 나온 적 있었죠. 그때 그 지식인들 방황하던 모습 그게 어느 정도 좀 그려졌었죠. 나라를 다시 세우는데 어떤 방향으로 세울 것이냐. 그러나 결국 6·25 전쟁이 터지면서 우리 동족끼리 그렇게 싸우고 죽이고 이러면서 우리가 이 짓 하자고 독립 운동한 거냐, 이러면서 그 중간에서 고민하던 사람들이 좌우 양쪽에서 다 당하고 사라집니다. 저는 그때 낙향하셨다고 봐요. 그리고 정말 용하게 살아 남으셨어요. 

예? 그런 고민을 왜 몽양이나 장일순 선생이 화끈하게 얘기를 안 하느냐. 그분한테 누가 그런 얘길 해요. 그때는 이쪽으로 쓰러지고 저쪽으로 쓰러지고 다 죽게 돼 있었어요. 그래서 그렇게 중간에서 고민하던 시기예요. 

제가 아까 윤이상 선생이나 박경리 선생이나 부산의 요산 김정한 선생이나 이런 분들 얘기드렸죠. 그분들이 꼭 우리 장일순 선생하고 비슷한 사고 체계예요. 

제가 이런 얘길 했어요. 

안중근 의사나 윤봉길 열사나 유관순 열사 이런 분들이 자기 목숨 바쳐서 독립운동을 했잖아요. 이건 좀 만약입니다만, 만약에 해방이 됐는데 민족이 서로 갈라져서 서로 죽이고 이런다면 그 독립운동 했겠어요? 아니잖아요. 

결국 그 윤이상 선생님이나 박경리 선생님 뭐 요산 김정한 선생님 이런 분들 머릿속에는 3·8선이 없었던 거예요. 휴전선이 없었던 거예요. 이게 허깨비 같은 일이지. 왜 우리가 이렇게 싸우고 죽여야 되느냐. 

아마 장일순 선생님도 그렇게 생각하셨을 거라고 저는 생각해요. 그런 말을 직접 선생님께 물어보진 못했어요. 70년대부터 장준하 선생님, 저 천관우 선생님이 민주수호국민협의회 성명서 발표할 때 서명 받아오라고 해서 저는 그런 심부름하고 다녔어요. 신문기자는 제대로 안하고 그런 심부름이나 하고 그랬습니다. 그러면서 말씀 들어보면 그분들이 좌익이냐, 아니거든요. 38선이나 휴전선을 인정 안 하고 있는 거예요. 머릿속으로.

장일순 선생님 말씀도 그런 얘기죠. 우리 역사가 분명히 하나로 간다. 참고 가자, 인내해라. 그때 광주학살 난 다음에 펄펄 뛰고 못 견디고 할 때 다독거리시면서 참고 가라고, 맞아 죽지는 말라고, 뭐 이렇게 가르치신 거예요. 이제 저 같은 사람, 이렇게 증언하는 사람도 몇 명 남지 않았을 거예요. 그런 말씀들 전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글로도 남겨야 되겠고, 오늘 구법모 후배가 이런 좋은 자리를 만들어서 또 한 번 장일순 선생님을 생각하는 기회가 됐으면 좋겠고, 

한기호 선배도 잘 아시는데 말씀 안 하시려고 하는데, 하하하.

모두 : 하하하.

 

장일순2-.JPG 

 

이부영 : 요새 굉장한 더위에 여기까지 오신 데는 그 발심해 주신 것만 해도 대단하십니다.  한 선배 얘기 좀 해요. 하하하.

모두 : 하하하.

한기호 : 없습니다. 많이 하셨으니까 이제 됐습니다. 여기 김영주 선생님도 계시고 그러니까.

이부영 : 그럼, 영주 형이…

모두 : (박수)

김영주 : 얘기 자꾸 하라니까 일어서긴 했는데.

모두 : 하하하.

김영주 : 우리에게 무위당은 어떤 사람이냐! 예를 들면 그림으로 따져 봐요. 이런 사람이다. 이렇게 그릴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어요. 내가 보기에는… 또, 어떤 사람이 무위당 선생을 그렸다, 해도 그게 완전한 것이냐. 그게 절대 아녜요. 그거는 자기 의사를 표시해 놓은 거뿐이지, 완전하게 무위당 자체를 그린 것이다. 그건 나타날 수가 없다. 저는 그렇게 보고 있어요. 

이런 자리에서 꼭 말씀드리고 싶은 실화가 있어요. 

무위당이 문리대 3학년 재학 중에 6·25가 나가지고 피난을 갔습니다. 서울에 살 수가 없으니까 고향 원주로 왔어요. 왔는데 피난들 가고 다 흐트러졌어요. 원래 살던 집에서 살 수가 없어요. 다른 데 옮겨가서 살아야 돼. 

무위당 아버지, 할아버지가 아주 덕이 높으셨어요. 옛날에 중농이라고 그럴까. 그러니 소작인들이 많았어. 그 소작인들이 전부 우리 집으로 오시라고……, 그때는 좌다 우다 사람들이 약 오르면 막 고발하고 이런 땝니다. 그런데 거꾸로 자기네 집에 모시려고 이렇게 얘기를 했어. 그게 그 집안 선조들이 굉장히 덕이 있다는 걸 증명하는 거요. 그 재밌는 게 그 집에는 거지가 밥을 먹으러 가면 밥상에다 상을 차려요. 여름에는 마루에, 겨울에는 사랑방에 차려줬다는 거 아닙니까. 그래서 거기 사회에서 그 집엔 너무 많이 가면 안 된다고, 자기네들끼리 얘기해서 숫자를 줄이고 그랬다는 거예요. 그런 집안에서 자랐어요. 그러니깐 원래 그 심성 자체가 보통사람하고 다른 교육을 받은 사람이여. 

그런데 그 양반 인생이 참! 저한테도 자주 그런 얘기를 하셨는데 6·25 때 여름, 요새지, 요새. 그러니까 덥잖아요. 그때는 지금하고 달라서 머리에 서캐도 있고, 뭐 가렵기도 하고 이럴 때요. 그래서 머리를 깎았단 말이오. 헌데 국군이 수복을 하게 돼서 들어온 거예요. 이북 군인 애들이 도망갈 거 아녜요. 딱 포로로 잡습니다. 젊은 사람들이 옷을 갈아입고 숨어 다니니까 누가 인민군인지 잘 분간하기 어렵죠. 그래 “너 인민군 아니냐.” 누가 “나 인민군입니다.”하고  얘기할 리가 없잖아요. 그럼 잡아다 놓고 뭘 보느냐. 머리부터 봐요. 머리, 머리를 깎은 거는 인민군이야. 무위당이 머리를 깎고 있었단 말예요. 길거리에서 잡혔어요. 그때는 잡히면 즉결 처분한 시대요. 잡아다가 순서대로 세워놓고 딱딱 쏴서 죽이는 거여. 뭐, 조서 꾸미고 이런 시대가 아니여. 전쟁 시대니까. 머리 깎은 죄 때문에 붙들려갔어. 그리고 차례가 와서 저 논둑에 선 거요. 신호만 나면 ‘땅’ 쏘는 거지. 그런데 이거 지휘하는 군인이 죽는 마당이니까 한 마디씩을 시켜. 무위당은 그냥 성호만 그었대요. 그걸 보고 그 지휘관이 천주교 신자였는지, 스덥! 총 쏘는 사람덜 스톱시키고, “너 천주교 신자냐?” “예, 그렇습니다.” “증말이야?” “네.” “너, 이리 나와.” 거기서 제외가 됐어요. 그 양반이 죽고 사는 게 뭐 종이 한 장 차이라는 거여.

거기서 국군한테 넘겨져서 그냥 풀려난 게 아니라 저 보국대라고 그래요. 군인들 보급물자를 이렇게 짊어지고 전방에 날라주는 거 그걸 한 달 동안하고 살아서 나왔어요. 나와서 며칠을 잤다는 거 아녜요. 정신이 나가 가지고. 그 긴장을 하다가 풀어지니까 그냥 쓰러진 거야.

“내가 그 생사의 갈림길에서 왔다 갔다 한 사람이다.죽고 사는 게 어떤 것이다.” 그게 몸에 뱄다고. 

 

추운 겨울날 거리에서 

군고구마 파는 사람이 널판지 위에 쓴 

'군고구마 팝니다' 라는 글씨를 

우리 시대 최고의 글씨로 여긴 사람

 

그분의 일화가 재미있는 게 많이 있어요. 영어를 잘했어요. 학생 때부터도 영어를 잘했어요. 그 영어를 아주 개인적으로 교수 받다시피 한 제자가 한기호 사장인데, 그 영어를 잘했단 말예요. 잘해서 아인슈타인한테 편지를 썼어. “완 월드 무브먼트…(one world movement…)” 아이슈타인이 ‘하나의 세계 운동’이라는 걸 할 땐데, 그것을 효시로 해서 우리 한국에서도 그것을 하겠다고, 그때는 영어로 편지하는 사람이 강원도 원주에서는 그 사람 한 분 밖에 없었어요. 하하하, 서울엔 많았겠지만, 그런 생각이, 속이 터있는 사람이여. 

또 원주에는 피난민들이 많아요. 원주라는 데가 지리적으로 그런 데니까. 부모들이 피난민 돼서 고생하는 건 둘째고, 제일 더 고생 많이 하는 게 애들 아닙니까? 학교 다녀야 할 아이들이 학교를 못 다니잖아요. 그 애들을 그냥 놔 둘 수가 없으니까 고등 공민학교라는 걸 만들어서 중학교 과정을 가르쳤어요. 인가 없는 중학교죠. 애들이 너무 불쌍하니까 거기서 학교 선생을 하는 거여. 

그걸 보고 아버지가 “학교 복학을 해서 졸업을 한 뒤에 뭘 하던지 해야 할 게 아니냐. 서울로 가서 복학해라.” 그랬대요. 그러니깐 무위당이 무릎을 딱 꿇었어요. “아부지! 저를 좀 봐 주세요” “뭘?” “지가 서울 가서 공부할 돈이면 여기 원주에서 저 가난한 집 애들 70명이 공부를 할 수 있습니다. 걔들을 위해서래도 내가 선생을 해야 되지 않겠습니까!” 아버지는 아버지대로 “이놈의 자식 무슨 소리를 하느냐” 이럴 분이 아니라고. “그래 네 생각이 정 그렇다면 그래야지.” 그렇게 해서 거기서 애들을 길러 냈는데, 또 그 아이들이 고등학교에 진학을 못 해요. 고등학교 진학하는 서류를 냈더니 고등공민학교는 중학교 졸업할 자격이 없다 이거여. 안 되는 거여. 안 되니까 못 가잖아요. 이 무위당이 약이 오르니까 강원도에서 제일 좋은 학교가 춘천고등학교입니다. 춘고에다 학생을 보냈어. 보내 놓고는 학교에서 안 된다고 그러니까 그 학생들한테 영어 시험을 한 번 쳐 보라고, 너희 학교 졸업생보다도 훨씬 영어를 잘할 테니까. 시험을 쳐 봤어. 그 학생이 학생 영어 웅변대회 가서 1등한 사람이야. 그 장본인이 저 한기호씨! 하하하.

모두 : 하하하하하.

김영주 : 내가 본인이 없으면 이런 얘기 잘 안하는데… 그러니깐 춘고에서 깜짝 놀란 거요. 그래서 춘고에 입학했단 말여. 그러나 이래서는 안 되겠다고 생각해서 유지들한테 돈도 걷고 그래가지고 ‘대성 고등학교’라는 걸 인가를 냈어. 그 인가를 내러 갔는데, 스물여섯 살 때거든. 법인을 만들었는데, 거기서 의결되기를 장일순이 이사장을 하는 게 좋겠다고, 그래서 스물여섯 살 먹은 사람이 이사장이 돼서 학교 인가 신청을 했어. 그때 공무원이 아, 스물여섯 살짜리가 오니까, 그러니까 이게 이 아녀. 애가 왔다. 학교를 만든다고, 그러니까 얼마나 괄세가 심했겠어요. 두 번째 갈 때는 도포를 입고 고무신 신고 그러고 들어갔대요. 내가 어린 사람이 아니고 어른이라고, 하하하. 무위당이 그 얘기를 해요. 그렇게 인가를 내서 스물여덟 살부터 정식으로 학교를, 아직도 그 학교가 있어요. 졸업생이 한 4만 명 돼요.  

그런데 박정희가 정권을 쥔 다음에 끌려가서 재판을 받아요. ‘평화통일 주창자’ 죄목이 그거예요. ‘평화통일 주창자’. 군법회의에 넘어가서 8년 선고 받았어. 강원도에서 딱 한 사람, 그 무위당이 재판 받으러 가기 전에는 한 사람도 재판 받은 사람이 강원도에는 없었어요. 

그때 박정희 정권 때 수사 담당했던 사람이 거기서 말도 안 되는 소리하고 있다고, 그담부터 호통을 치니까 현미경을 놓고 강원도 사람을 조사를 했더니, 청년인데 평화통일을 주창한 사람이 있어. 이 눔이 보통 눔이 아니여. 그 당시에는 생각이 좌다 우다 그런 걸 떠나서 정말 그 민족적인 그런 기준에서 생각한 거야. 젊은 사람이죠. 그 양반이 그런 사람이 하나 발견이 됐어. 그 사람 하나가 대표로 뽑혀가지고 강원도에서 군법회를 한 사람이 딱 한 사람이 있어. 그것도 한 번에 못 가고 현미경으로 찾는 바람에 갔어. 가서 8년을 언도를 받았어. 무위당은 항고를 안 했어요. 나 다시 재판 해달라고 하질 않았어요. 왜 안 했느냐. 다른 사람들이 “ 아, 이 사람이 항고를 해야지 5년이 되든 6년이 되든 할 거 아니냐” 무위당은 “이게 재판이냐고, 애들 장난하는 거지. 맘대로 하라고 차라리 그게 낫지, 어디 가서 또 재판 받고 있냐고, 난 안 한다고.” 

고스란히 8년이 확정돼 가지고 춘천 형무소에 갔어요. 그 형무소에 가서도 유명한 일화가 있어요. 그때 부인이 옥바라지 하느라고 여기 평화시장에서 시다라는 게 있어요. 일본 말 시다, 조수란 말여. 미싱으로 이렇게 해주면, 단추 달고 실밥 뜯고, 시다해서 돈을 받아가지고 남편 춘천 감옥살이 하는데 가서 뒷바라지 한 거여. 이 남편이라는 사람이 보통 사람입니까! 거기 가만있으니깐 안 되잖아. 뭘 공부해야 되잖아요. 그러니까 영어로 돼 있는 책을 좀 사서 나한테 좀 넣어달라고. 그 영어로 된 책이라는 게 그때는 한국에서는 구하기도 어려운 거예요. 진보적인 학문의 책이여. 한국에서 바로 없어. 그러면 서점에서 외국에다가 수입 신청해서 들어오면 그것이 이제 본인한테 들어가는 거죠. 우리나라 옥살이한 분들 되게 많으시겠지만, 감옥에 있는 사람 책 그냥 들어갑니까? 그거 조사 엄중하게 하잖습니까. 성경이나 불경 아니면 다 조사에 들어가는데. 춘천 형무소에서 영어로 된 책을 놓고 좋다 나쁘다 분별할 수 있는 능력이 되는 사람이 없거든요. 하하하. 

모두 : 하하하하하.

김영주 : 자기네들끼리 간부회의를 열어서 어떻게 하면 좋으냐. 설마하니 미국에서 발행된 영문으로 된 책인데 빨갱이야 야 그런 책이겠느냐. 그게 결정이여. 패스가 됐다고. 그러니까 장일순 선생한테 들어가는 영문 책은 다 패스야. 

이거는 3년 동안 옥살이를 했는데 3년 동안 마누라가 보내주는 자기가 이렇게 부탁한 책을 집어 넣어가지고 공부했어. 나중에 원주에 지학순 주교 되는 분이 주교가 돼서 우리 인제 어디서 만났어. 그 얘기를 하는데, 네가 어느 정도 수준인지 서로 탐색해 봤을 거 아녜요. 지 주교는 로마에 가서 3년 동안 공부해 왔어. 그때는 이제 가장 진보적인 그런 책을 많이 읽고 온 사람이야. 공부를 했으니까, 박사학위를 따고 왔으니까. 

그런데 이 양반이 얘기를 해보니까 자기가 알고 있는 진취적인 지식에 대해서 무위당이 아무 막힘이 없이 대답을 하는 거여. “어떻게 된 거냐?” 그러니까 무위당이 웃기는 사람이죠. 껄껄껄 웃으면서 “주교님, 내가 춘천 국립대학에 가서 3년 동안 공부하고 왔잖습니까!” 하하하.

모두 : (폭소)

김영주 : 지 주교라는 사람은 신부니까 그걸 못 알아들었어. 무슨 소린지. 그게 아니고 형무소에 가서 3년 있는 동안에 그 책 읽었다고 그러니깐 지 주교가 자기 책장에서 자기가 공부한 영어 원서의 진취적인 그 책을 꺼내들면서 “이거 봤냐?” “예” “그래? 그럼 이건?” “예.” 자기가 본 거를 다 봤던 거여. 거기서 지 주교가 손 든 거여. 너는 나하고 같이 일할 만하다. 그래 둘이 거기서 합작이 돼서 악수가 돼 가지고, 그럼 넌 이제 정치하고는 떠나라. 모든 일을 나와 같이 종교라는 우산 속에서 일을 하자. 그 사회 개발을 위해서 그런 방향으로 우리가 일을 하면 좋겠다. 거기서 서로 약속을 했어요. 그래 지 주교가 법적으로 보장해 주고 자금도 필요하면 다 대주고, 일은 무위당이 열심히 가르치는 걸 다 했죠. 그래 역사라는 게 다 그렇게 돼서 이뤄져 가는 거 같아요.

그런데 무위당이 항상 얘기하는 게 있어요. 

죽음과 삶을 왔다 갔다 한 그런 경험 때문인지 항상, “그렇게 좁게 생각하면 안 된다. 더 넓게 세상을 크게 보고 봐야 된다.” 저한테 맨날 주문을 했어요. 제가 아주 귀에 다대기가 앉도록 들었어요. 항상 가끔 그런 생각이 나요. 아이고, 또 이거 무위당이 봤으면 이게 잔소리 할 건데, 하하하, 죄송합니다.

모두 : (박수)

 

어머니는-.jpg 

 

구법모 : 아시는 분은 아시겠지만 저 김영주 회장님은 이회창 전 한나라당 대통령 후보하고 경기고등학교 동기십니다. 장 선생님하고 지 주교님하고 인연이 돼 가지고 평생…… 오늘 모시게 돼서 감사드립니다. 

아까 학교 말씀하셨는데 저희 때는 학생운동 할 때 학교를 졸업한다는 게 수치였습니다. 그래서 그냥 제적당하면 그걸로 끝나는 걸로 알았죠. 그런데 어느 날 저를 부르시더니 학교 졸업장은 꼭 있어야 된다. 저는 왜 그렇게 간절하게 그런 말씀을 하시나 그랬더니 선생님 말씀을 해주시는 거예요. “내가 졸업장이 없다. 졸업장이… 무조건 이건 내 말을 들어라. 무조건 들어라. 들어라…” 그때 저는 객기로, 졸업장에 신경을 안 쓰고 있었을 거예요. 그런데 그 말씀 덕택에 제가 대기업에 가서도 일을 할 수 있고, 미국도 갔다 올 수 있었고, 하여튼 제가 막힐 때마다 족족 선생님께서 전부 다 이렇게 들어 주셨습니다. 

김영주 : 한마디만 더, 사모님 얘기를 해드릴게요. 

모두 : 와!

김영주 : 무위당이 장가를 드셨는데 색시가 서울 색시에요. 경기여고 나오고 서울사범대학 나왔습니다. 그런데 잘 아는 사람이 무위당 선생을 소개했어요. 뭐라고 소개를 했느냐. 원주에 아주 훌륭한 총각이 있는데 사립학교 이사장이다. 너는 사범학교 나왔으니까 그 학교 선생하고 남편은 이사장 하면 이게 짝으로 좋지 않겠느냐. 그래서 선을 봤어요. 둘이 만나서 얘기를 하다가 나와서 덕수궁 돌담 있죠. 이렇게 둘이 걸으면서 얘기를 했다는 거요. 그런데 아, 색시 되는 사람이 항상 무위당 오른쪽에만 서서 가는 거여. 무위당은 오른 쪽 귀가 좀 먹었다고 그러니까 잘 안 들린 거여. 조그맣게 들려, 왼쪽만. 그래서 “당신 내 왼쪽에 서서가면 안 되겠느냐?” 그랬다고 “왜, 그러시냐”고 그러니까 “내가 오른쪽 귀가 조금 안 들려서 그런다”고, 첫날 처음 만났는데 신랑감한테 내 오른쪽 귀가 잘 안 들린다고 말하는 사람이 어딨어요? 그 애기를 듣고 색시가 뿅 간 거여. 그건 “진실한 사람이다. 내가 평생 의지해도 될 사람이다.” 이거지. 그래 시집을 왔어요. 원주로 왔는데 그 댁이 봉산동이라고 약간 농촌 지대 있습니다. 원주 시내에서 떨어진 촌에 있어요. 그 동네 여자들이 서울서 대학 나온 색시가 왔다는데, 밥은 어떻게 해먹는지 봐야 되겠다고 저녁 밥 할 시간이 되면 동네 아줌마들이 부엌 바깥에서 장사진을 치고 보는 거여. 이렇게, 하하하. 그러니 얼마나 힘이 들었겠어요. 거기까지는 좋은데 남편이 말이지 학교 이사장이면 뭐부터 해야 되겠어요. 애들 가르치는 것도 중요하지만 마누라 취직을 시켜야 될 거 아녜요. 그런데 하다하다 못 시키고 감옥소에 갔어. 감옥살이 3년 동안 뒷바라지만 했단 말예요. 그리고 나왔어. 그랬더니 다시 학교에서 이사장을 시켰어. 그래 이사장으로 복직한 거여. 그리고 인자 복직했다고. 복직해서 며칠 지나는 동안에 무슨 사건이 났냐. 6·3 사태가 벌어졌어요. 서울에는 문리과 대학을 비롯해서 학생들이 대학에서 전부 한일 국교 정상화 반대 데모를 했는데, 전국에서 유일하게 원주만 고등학교 학생들이 데모를 했어. 그러니까 박정희가 뭐라고 했냐. 서울에서 대학생 나온 것만 해도 골이 아프고 감당하기가 힘든데 원주에서 고등학생들이 나오면 그 불꽃이 서울로 번질 거 아니냐. 서울서 고등학생들까지 들고 일어나면 정권유지 못한다. 이번에 아주 박살을 내자. 그래서 학생들을 몽땅 잡어다가 육십 몇 명을 유치장에 쳐 넣어 버렸잖아요. 그리고 그 배후자를 조사를 했어요. 암만 배후자를 조사를 해도 하룻밤 동안에 조사가 안 돼. 없다. 그랬더니 배후자 없는 일이 어딨냐. 서울서 정보기관에서 그래서 서류를 다 가져오라고, 그래 급송을 해가지고 서울서 조사를 했어요. 뚜껑 첫 페이지 열자마자 이게 배후자가 아니냐 말여. 반공법 위반으로 8년 언도 받은 놈이 여기 있는데 이게 배후가 아니고 어떤 놈이 배후자냐고 말이야. 즉시 조치하라고. 그래가지고 의자에도 별로 며칠 앉아 보지도 못하고… 하하하. 자진해서 내가 사표 내겠다고, 애들 다 내 달라고, 풀어 달라고 그 교섭을 해서 당신이 이사장 그만두고 애들은 주동자 세 사람만 빼놓고 다 석방하고 이렇게 수습을 했어요. 

그렇게 이사장하다 쫒겨 났으니까 이제 다음 사람이 마누라 취직을 좀 시켜줘야 될 거 아녜요. 이게 안 되는 거여. 취직을 시키려면 경찰서 신원 조회를 하는데, 신원 조회 딱 했더니 경찰서에서 남편이 반공법 위반으로 8년 선고 받았는데 무슨 눔의 취직이냐 이거에요. 연좌제에 걸려가지고 안 되는 거여. 그 사정을 알고 그때 강원도 교육감 하던 사람이 있어요. 내가 취직 시켜준다. 자기 교육감이니까 강원도 교육 책임 아녜요. 큰소리 빵빵 쳤어. 그 소리에 부인이 하도 좋아서 시집 올 때 입고온 옷하고 구두, 서울서 유명한 구둣방에서 맞춘 구둔데 그걸 신고 인제 교육감한테 인사를 갔어. 그러니깐 교육감이 걱정 말라고, 춘천여고에다가 배치할 테니까. 그렇게 춘천여고에 선생으로 취직을 하게 됐어요. 그러고 나왔는데 세 시간도 안 돼서 연락이 왔어. 안 된다고. 그 교육감 큰소리 빵빵 쳤는데 세 시간도 못 갔어. 왜 안 되냐고 그러니까 안 되는 이유는 정식으로 말할 수 없고, 하여튼 안 된다고. 그래서 평생을 선생 노릇 못 했어요. 원주에 얘기가 있습니다. “서울사대 나오면 뭘 해? 선생도 못 하는 걸.” 하하하

모두 : 하하하.

김영주 : 그래 서울사대 나와도 원주서는 선생은 못 해요. 하하하 죄송합니다.

모두 : 하하하. (박수)

구법모 : 사모님이 항상 하시는 말씀이 있어요. 선생님에 대해서. “참 인생을 바보처럼 사신 분이라고. 바보처럼 사셨어요. 바보.” 항상 그 말씀을 하셨어요. 그럼, 또 질문이 없으시면 이쯤에서 파할까요? 어떻게……

누군가 : 그 교육감이 누구예요?

김영주 : 아, 그거는 그분의 명예를 위해서 안 되겠습니다. 하하하.

구법모 : 오늘 더운 날인데 많이 와주셔서 고맙고요. 특히 선생님께서 쓰신 ‘無’자가 있습니다. 오늘의 화두는 ‘무’자로서 끝내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무위당 선생은 내가 아닌 "눈물겨운 아픔을 선생이 되게 하라"고 말씀하셨다고 한다. 이런 어른이 살다간 이 세상을 산다는 것만으로도 세상은 살만한 가치가 있다고 느껴질 때가 있다.  기사 제목인 "목에 힘빼 그래야 살아"는 그가 어느 을축년 초가을에 남긴 글씨이다. 

 

구법모 이사는? 

연세대 영문과 졸업. 에스케이와 케이티 상무 등을 지냈으며, 이한열기념사업회, 장준하기념사업회, 몽양여운형기념사업회 등의 이사로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다.

 

이 글은 월간 <퀘스천>에 실린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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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찰, 징역 20년 구형... MB "지금 재산 집 한 채"

최후진술에서 "부정한 돈 탐한 적 없다"... 재판부, 10월 5일 선고 예정

18.09.06 14:51l최종 업데이트 18.09.06 17:18l

 

 

'징역 20년' 구형받은 이명박 뇌물수수 및 횡령 등으로 구속기소 된 이명박 전 대통령이 6일 오후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릴 결심공판을 마치고 구치소로 향하는 호송차로 향하고 있다. 결심공판에서 검찰은 징역 20년과 벌금 150억원, 추징금 111억여원을 구형했다.
▲ '징역 20년' 구형받은 이명박 뇌물수수 및 횡령 등으로 구속기소 된 이명박 전 대통령이 6일 오후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릴 결심공판을 마치고 구치소로 향하는 호송차로 향하고 있다. 결심공판에서 검찰은 징역 20년과 벌금 150억원, 추징금 111억여원을 구형했다.ⓒ 이희훈
'징역 20년' 구형받은 이명박 뇌물수수 및 횡령 등으로 구속기소 된 이명박 전 대통령이 6일 오후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릴 결심공판을 마치고 구치소로 향하는 호송차로 향하고 있다. 결심공판에서 검찰은 징역 20년과 벌금 150억원, 추징금 111억여원을 구형했다.
부축 받으며 호송차로 향하는 이명박 전 대통령.ⓒ 이희훈

[기사대체 : 6일 오후 5시 10분]

검찰이 횡령 및 뇌물 혐의로 구속기소 된 이명박 전 대통령 결심 공판에서 징역 20년을 구형했다. 이에 이 전 대통령은 최후진술에서 "부정한 돈 탐한 적 없다"라며 결백을 주장했다. 재판 결과는 오는 10월 5일 오후 2시 선고 공판에서 나올 예정이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7부(정계선 부장판사)는 6일 오후 417호 대법정에서 이 전 대통령 사건의 결심공판을 열었다. 이 자리에서 검찰은 이 전 대통령에게 징역 20년과 함께 벌금 150억 원을 선고해달라고 재판부에 요청했다. 이어 111억 원의 추징금도 부과해 달라고 요청했다.

검찰은 이날 최종의견에서 "대통령의 총체적 비리행각이 낱낱이 드러난 권력형 비리사건으로 피고인은 다스를 사금고처럼 이용하고 투자금 회수를 위해 국가기관을 동원하는 등 권력을 부당하게 이용했다"라며 "인적, 물적 증거들을 종합하면 피고인이 사건의 궁극적인 책임자임이 명백하다"라고 밝혔다.

이어 "피고인은 국민에게 부여받은 권력을 남용하는 것을 넘어 사유화했고 부도덕한 결정과 이를 바탕으로 한 권한행사를 통해 국가 운영 근간인 법치주의를 심각하게 훼손했음에도 역사와 국민 앞에 잘못을 구하고 참회하는 모습을 보이기는커녕, 진실을 은폐하고 측근에게 책임을 전가하기에 급급하다"라며 "피고인의 반헌법적 행위들에 대한 엄중한 사법적 단죄를 통해 무참히 붕괴된 자유 민주주의, 법치주의 근간을 굳건히 확립할 필요가 있다"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피고인은 헌법가치를 훼손, 다스 관계로 국민을 기만, 대통령 권력을 사유화, 대통령의 본분을 망각했다"라며 "이는 대한민국 역사에 씻을 수 없는 상처로 기록되겠지만 하루빨리 과거의 아픔을 치유하고 심각하게 훼손된 헌법질서를 다시 쌓기 위해 피고인에게 엄중한 책임 물어야 한다"라고 덧붙였다.

이 전 대통령은 특정범죄 가중처벌법상 뇌물 및 국고손실, 특정경제범죄 가중처벌법상 횡령 및 조세포탈, 직권남용 권리행사방해, 대통령기록물법 위반 등 혐의 등을 받는다.

 
호송차 향하는 이명박 뇌물수수 및 횡령 등으로 구속기소 된 이명박 전 대통령이 6일 오후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릴 결심공판을 마치고 구치소로 향하는 호송차로 향하고 있다. 결심공판에서 검찰은 징역 20년과 벌금 150억원, 추징금 111억여원을 구형했다.
부축 받으며 호송차로 향하는 이명박 대통령.ⓒ 이희훈

"전직 대통령으로 매우 송구"... 혐의는 전면 부인

검찰의 구형 장면을 지켜보던 이 전 대통령은 최후진술을 위해 미리 준비해온 A4 용지를 들고 일어섰다. 그는 16분 동안 피고인석에 서서 "성찰의 시간을 보냈다"면서도 "저는 그런 사람이 아니다"라며 자신의 혐의를 조목조목 부인했다.

그는 "전직 대통령으로서 매우 송구하게 생각한다"라며 "지난 시간 동안 남을 원망하기보다는 자기 성찰과 기도를 하며 보냈다"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정치재판이라는 일부 비판에도 불구하고 재판에 꼭 참석한 것은 국민으로서 국법을 지키고, 전임 대통령이 사법부를 존중하는 자세를 보이는 게 도리라고 생각해서였다"라고 덧붙였다.

이 전 대통령은 혐의 중 형량이 가장 높은 뇌물죄를 강하게 부인하고 나섰다. 그는 "검찰 기소 내용이 대부분 돈과 결부돼있다. 제가 세간에서 '세일즈맨 표상'으로 불릴 만큼 전문경영인으로 인정받아 대통령을 지냈기 때문에 돈과 권력을 부당하게 함께 가진 것으로 오해할 수 있다"라며 "제가 그런 상투적인 이미지의 함정에 빠지는 것을 참을 수가 없다"라고 주장했다.

또, "뇌물 대가로 삼성 이건희 회장을 사면했다는 터무니없는 의혹을 근거로 저를 기소한 것은 분노를 넘어서 비애를 느낀다. 여론도 이를 적극적으로 지지했다"라며 "단언컨대 저는 재임 중 재벌 총수를 독대하거나 금품을 건네받은 사실이 없다"라고 항변했다.

특히, 다스에 대해서는 "검찰이 제기한 혐의 내용이 보통 사람 상식으로 도저히 납득하기 어렵다"라고 강하게 부인했다. 이 전 대통령은 "형님이 33년 전 설립해 아무 탈 없이 경영해왔는데 검찰이 나서서 나의 소유라고 하는 것은 정상적이지 않다"라며 "저는 다스 주식을 한 주도 가져본 적도 없고, 따라서 배당도 받은 적이 없다"라고 강조했다.

이 전 대통령은 자신의 재산은 "집 한 채가 전부"라며 "검찰이 말하는 그 돈은 알지 못한다. 제게 덧씌워진 이미지 함정에 빠지지 마시고, 제가 살아온 과정과 문제로 제기된 사안들의 앞뒤를 명철히 살피셔야 이 점을 능히 보실 수 있을 것"이라고 결백을 호소했다.

이 전 대통령은 "지금 경제가 어렵고, 외교·안보 걱정이 많지만, 국민 모두가 하나로 힘을 모아 나간다면 반드시 극복할 것이다. 어디에 있든 깨있을 때마다 이 나라 이 땅의 모든 국민을 위해 기도할 것"이라며 최후 진술을 끝마쳤다. 방청석에 있던 일부 지지자들은 눈물을 흘렸고, 이 전 대통령이 퇴정하자 박수를 치기도 했다.

앞서 이 전 대통령은 지난 2월 349억 원의 다스 자금 횡령 31억 원 대의 법인세 포탈, 110억 원 대 뇌물수수 등의 혐의로 지난 4월 구속기소 됐다. 뇌물수수 혐의는 구체적으로 삼성전자로부터 다스의 미국 소송비 약 68억 원, 국가정보원에서 특수활동비 7억 원 상당, 이팔성 전 우리금융지주 회장과 김소남 전 의원 등에게서 받은 36억여 원 등이다.

이외에도 이 전 대통령은 퇴임 후 국가기록원에 넘겨야 할 청와대 문건을 빼돌린 후 5년 동안 은폐한 혐의 등 모두 16가지 공소사실로 기소됐다.
호송차 향해 손 흔드는 MB지지자들 뇌물수수 및 횡령 등으로 구속기소 된 이명박 전 대통령이 6일 오후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릴 결심공판을 마치고 구치소로 향하는 호송차로 법원을 빠져나가자 지지자들이 버스를 향해 손을 흔들고 있다.
뇌물수수 및 횡령 등으로 구속기소 된 이명박 전 대통령이 6일 오후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릴 결심공판을 마치고 구치소로 향하는 호송차로 법원을 빠져나가자 지지자들이 버스를 향해 손을 흔들고 있다. ⓒ 이희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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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핵화 일정’ 못 박은 김정은, 이제 공은 트럼프에게 넘어갔다

  • 분류
    아하~
  • 등록일
    2018/09/07 07:30
  • 수정일
    2018/09/07 07:30
  • 글쓴이
    이필립
  • 응답 RSS

문 대통령 “기대했던 것 보다 훨씬 더 좋은 성과”...18~20일 평양 방문

정의용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이 이끄는 대북 특별사절대표단이 5일 평양을 방문해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을 만나 문재인 대통령의 친서를 전달하고 의견을 나눴다.
정의용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이 이끄는 대북 특별사절대표단이 5일 평양을 방문해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을 만나 문재인 대통령의 친서를 전달하고 의견을 나눴다.ⓒ청와대
 
 

5일 방북한 대북 특사단이 거둔 최대 성과는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으로부터 직접 "트럼프 대통령 첫 임기 내 비핵화 실현"이라는 확답을 받아온 것이다.

교착 상태에 빠졌던 북미 간 '비핵화-종전선언' 협상을 되살리기 위해 문재인 대통령이 던진 '승부수'가 통한 셈이다. 이에 따라 잠시 멈칫 했던 '한반도 시계'가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한반도 정세를 가를 공은 다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에게 넘어갔다.

비핵화 '의지 표명' 넘어 '일정'까지 못 박은 김정은 위원장

김 위원장은 5일 방북한 대북 특사단에게 거듭해서 비핵화 의지를 밝힌 것으로 전해졌다. 대북특사인 정의용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은 6일 춘추관 브리핑을 통해 "김 위원장은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에 대한 본인의 확고한 의지를 재확인하고, 이를 위해 남북 간에는 물론 미국과도 긴밀히 협력해 나가겠다는 의사를 표명했다"라고 밝혔다.

김 위원장은 특히 "트럼프 대통령에 대한 자신의 신뢰는 변함이 없다"라며 "이런 신뢰 기반 아래 트럼프 대통령의 첫 임기 안에 북한과 미국 간의 70년간 적대 역사를 청산하고, 북미관계를 개선해 나가면서, 한반도 비핵화를 실현하겠다"는 적극적인 의지를 표명했다고 정 실장이 전했다.

김의겸 청와대 대변인은 이날 기자들과 만나 "'트럼프 대통령의 첫 임기 내'라는 말이 가장 중요한 의미를 담고 있다"고 강조했다. 김 위원장이 트럼프 대통령의 첫 임기 만료일인 '2020년 말'을 비핵화 마지노선으로 구체화 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는 것이다.

김 위원장이 비핵화 의지를 대외적으로 표명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심지어 김 위원장은 풍계리 핵실험장과 동창리 미사일엔진 실험장 폐쇄 등 선제적인 조치도 해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국 내 대북강경파를 중심으로 한 일각에선 계속 의문을 제기했고, 북미간 '비핵화-종전선언' 협상은 더 이상 진척을 보이지 못했다.

이런 상황을 두고 특사단에게 답답함을 토로한 김 위원장은 "비핵화에 필요한 조치를 선제적으로 실천해나가는데, 이런 걸 선의로 받아들여 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고 정 실장이 전했다. 김 위원장은 한 발 더 나아가 직접 '비핵화 일정'까지 못 박았다.

특사단 방북 전날인 4일 밤 이뤄진 한미 정상 전화통화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김 위원장에게 전달해 달라는 메시지가 있었던 것으로 확인되면서, 김 위원장의 '트럼프 대통령 첫 임기 내' 언급은 미국의 비핵화 방법과 일정 요구에 대한 답변의 성격으로도 읽힌다.

또 김 위원장은 "선제적 조치들에 대한 상응하는 조치가 이뤄진다면 북한의 비핵화를 위한 보다 적극적인 조치들을 계속 해나갈 수 있다"는 의지를 표명하며 이른바 '동시행동 원칙' 준수를 강조했다고 정 실장이 전했다.

김 대변인은 '김 위원장이 언급한 비핵화가 신고부터 검증까지 모든 단계의 완료를 의미하는 것이냐'는 질문에 "그 단계를 모두 마친 것으로 해석이 된다"고 답했다.

또한 김 대변인은 "보통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를 생각할 때 '종전선언'이라는 게 한반도 비핵화의 입구에 해당되고,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가 이뤄지는 시점에 '평화협정'을 맺는 것으로 안다"며 "그래서 트럼프 대통령의 첫 번째 임기 안에 비핵화를 실현하겠다고 한 것은 평화협정까지 염두에 둔 것으로 생각한다"고 설명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6일 청와대 여민관에서 임종석 비서실장 주재로 열린 평양 남북정상회담 준비위원회 전체회의에 참석해 있다.
문재인 대통령이 6일 청와대 여민관에서 임종석 비서실장 주재로 열린 평양 남북정상회담 준비위원회 전체회의에 참석해 있다.ⓒ뉴시스

문재인 대통령 "기대했던 것 보다 훨씬 더 좋은 성과를 가져왔다"

이러한 김 위원장의 제안을 트럼프 대통령이 수용한다면, 향후 한반도 평화 체제 구축을 위한 수순은 순조롭게 이어질 것으로 기대된다.

정 실장은 6일 저녁 존 볼튼 미국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과 전화통화를 갖고 김 위원장이 전달을 요청한 메시지를 전하기로 했다. 지난달 방북 일정을 전격 취소했던 마이크 폼페이오 미국 국무장관이 이달 중 직접 방북할 가능성도 높다.

문 대통령은 이달 말 유엔총회 참석차 미국을 방문해 트럼프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갖고 관련 논의를 이어나갈 것으로 보인다.

동시에 남북관계도 더욱 깊어지고 있다. 특사단은 김 위원장과 만나 오는 18~20일 평양에서 남북정상회담을 갖기로 합의했다. 남북공동연락사무소도 정상회담 전 개소하기로 했다. 남-북-미 삼각의 선순환이 이뤄질 수 있는 것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이러한 방북 결과를 보고 받고는 '만족한다'는 반응을 보인 것으로 전해졌다. 문 대통령은 특사단 파견 다음 날인 6일 곧바로 '평양 남북정상회담 준비위원회' 첫 회의를 열면서 "특사단 방문 결과는 정말 잘 됐다. 기대했던 것 보다 훨씬 더 좋은 성과를 가져왔다"고 말했다.

문 대통령은 또 "남북정상회담에 대해서도 큰 기대를 갖게 됐고, 그와 함께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 그것을 위한 북미 대화 이런 부분도 좀 촉진될 수 있지 않을까 기대를 갖게 됐다"며 "남북정상회담에서 더 풍성한 결실이 맺어지도록 준비위가 잘 논의해달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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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년 만에 언론인의 축제 열린다"

 

[인터뷰] 오한흥 옥천 언론문화제 조직위원장윤수현 기자 | 승인 2018.09.06 08:39
 

[미디어스=윤수현 기자] 충청북도 옥천군은 언론의 도시다. 김규홍(한중합작 잡지 향강 발행)·조동호(상해임시정부 기관지 독립신문 창간)·정지용(경향신문 주필 역임)·송건호(한겨레 초대 사장) 등 언론계에 한 획을 그은 언론인이 배출됐으며, 안티조선운동의 성지였다. 

한국에서 유일한 언론문화제가 개최되는 곳이기도 하다. 매해 신문의 날(4월 7일)과 방송의 날(9월 1일)에 관련 행사가 열리지만 순수한 의미에서의 언론 축제로 보긴 힘들다. 지역·소속 매체와 상관없이 모든 언론인이 화합할 수 있는 행사는 옥천 언론문화제가 유일하다. 

오는 7~8일, 옥천군에선 ‘2018 청암 송건호 언론문화제’가 개최된다. 오한흥 언론문화제 조직위원장(옥천신문 대표)은 “7년 만에 열리는 문화제”라며 “이번 문화제를 시작으로 옥천을 언론특화도시로 만들겠다”고 밝혔다. 다음은 오한흥 위원장과의 일문일답 내용이다.

▲충청북도 옥천군에는 옥천군 출신 언론인 벽화가 자주 보인다 (사진=미디어스)

Q. 옥천군에서 언론문화제가 열린 것은 2011년 이후 7년 만이다.

A. 처음에는 전국언론노동조합이 ‘옥천에서 언론의 미래를 생각한다’는 취지로 문화제를 열었다. 당시는 안티조선이란 주제가 바탕이었다. 그러다가 2011년을 끝으로 7년간 문화제가 멈췄다. 시대적 환경의 요인이 있었다.

Q. 그만큼 감회가 새로울 것 같다.

A. 행사를 진행하지 않는 동안 그 불씨가 다 죽은 줄 알았다. 그런데 지금 다시 보니 그 불씨가 여전히 살아 있었다. 이번 언론 문화제는 이전에 옥천에서 열렸던 언론 축제를 다시 한번 살려보자는 취지다. 옥천에서 걸출한 언론인이 많이 배출됐는데 이 맥을 이어서 언론 대안 운동으로 나아가자는 것이다.

Q. 문화제를 개최할 때 예산 확보가 필수였을 것 같다 

A. 이번에 한국언론진흥재단에서 언론 관련 사업 공모를 했다. 송건호기념사업회가 언론 문화제 공모를 신청했다. 다행히 선정됐고, 문화제를 열 수 있었다. 미미하지만 아직 살아 있는 옥천의 정신을 계승할 수 있을 것이다.

Q. 한국에서 언론 관련 행사는 옥천 언론문화제가 유일하다.

A. 맞다. 지금 언론을 소재로 한 축제는 작은 축구·야구·족구 대회가 전부다. 축제가 없다. 앞으로는 옥천 언론 문화제와 비슷한 방향의 축제가 자주 열려야 한다. 우리도 지속성을 가질 필요가 있다. 이번 문화제는 그 시작이다. 축제 앞에 ‘2018’이 붙은 이유는 2019년, 2020년에도 계속 이어가겠다는 뜻이다.

Q. 언론문화제가 계속 열린다면 옥천군은 어떻게 변할까 

A. 언론의 도시가 되었으면 한다. 옥천이 언론인, 언론지망생에게 꼭 한번 가 보고 싶어 하는 도시가 되었으면 한다. 그러려면 언론 특화 도시가 되어야 하고, 언론기념관 등도 만들어져야 한다. 한국 언론을 있게 만든 선생님들의 기념관이나 관련 자료를 가지고 있는 그런 기념관 말이다. 이번 축제가 그 시작이다.

▲2018 청암 송건호 언론문화제 일정표 (사진=송건호기념사업회 제공)

Q. 한국 언론의 신뢰도는 회복되지 못하고 있다. 해법이 있을까

A. 모든 사람은 언론이다. 주민들이 나누는 담소도 언론이 될 수 있다. 그런데 일부 주민이 왜곡된 정보를 유통하고, 그 소문이 마을에 퍼진다면 어떻게 될까. 공동체가 붕괴할 것이다. 

 

지금 한국 언론의 상황도 마찬가지다. 언론이 건강하지 못하다. 특히 조선일보로 대표되는 언론의 프레임 설정은 큰 문제가 된다. 이들은 한국 사회와 시민을 바꾸려 든다. 언론과 사회가 그들을 따라간다면 공동체가 붕괴할 것이다.

Q. 이번 행사를 가고 싶지만 망설이고 있는 언론인에게 한 마디 부탁한다.

A. ‘기레기’ 소리를 극복하려면 옥천으로 와야 한다. 그동안 언론인 간의 취재 경쟁은 많았지만, 함께 공유하는 고민을 나누는 여유가 없다. 옥천이라는 한적한 공간에 모여 마음을 정화하고, 이야기를 나눴으면 좋겠다. 그러는 과정에서 언론인으로서의 성찰과 성장이 있을 것이다. 

옥천이 거리상으로 가깝진 않다. 하지만 그건 중요한 게 아니다. 사건이 있고 소재가 있으면 현장에 가야 하는 것이 언론인의 숙명이다. 옥천이 그렇다. 옥천 언론 문화제에서 모이자.

윤수현 기자  melancholy@mediau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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