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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김복동 할머니 훨훨 날으소서” 94개 만장과 노란 나비들의 행진

故 김복동 할머니 노제, 600여명 시민들 참여한 가운데 엄수돼

양아라 기자 yar@vop.co.kr
발행 2019-02-01 12:10:59
수정 2019-02-01 12:14: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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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고 김복동 할머니 운구행렬이 1일 오전 서울 종로구 광화문광장 앞을 지나 영결식이 열리는 옛 일본대사관을 향해 이동하고 있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고 김복동 할머니 운구행렬이 1일 오전 서울 종로구 광화문광장 앞을 지나 영결식이 열리는 옛 일본대사관을 향해 이동하고 있다.ⓒ뉴시스
 

"우리의 영웅! 김복동 당신이 있어서 행복했습니다. 일본군 성노예 책임자 처벌..."

평화·인권운동가이자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인 故 김복동 할머니의 마지막 배웅길. 청년들은 김복동 할머니의 삶을 보여주는 94개의 만장을 들고 서울광장에서 구 일본대사관까지 행진을 펼쳤다. 시민들은 평화를 상징하는 노란 나비를 흔들며 만장 뒤를 따랐다.

고 김복동 할머니의 영면을 기원하는 거리의 제사, 노제가 1일 오전 8시 50분 경부터 서울 중구 서울광장에서 시작됐다. 김 할머니를 배웅하기 위해 시민들은 이날 오전 8시 30분 경부터 서울광장에 모여들었다. 600여명이 넘는 시민들은 "김복동 할머니 사랑합니다. 할머니의 꿈 이뤄드리겠습니다"라는 사회자 최광기 씨의 말에 함성으로 답하며 첫 발걸음을 뗐다.

이날 행렬의 선두엔 환한 웃음을 지은 김복동 할머니가 두팔을 벌리고 나비들과 함께 날아가는 그림이 걸린 차량이 섰다. 해당 차량은 온통 노란 꽃과 나비로 꾸며져 있었다.

윤홍조 마리몬드 대표가 운구차에 앞서 김 할머니의 영정 사진과 위패를 들고 걸었다. 침통한 표정의 윤미향 정의기억연대 이사장과 손영미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쉼터 '평화의 우리집' 소장도 노란 나비를 들고 그 뒤를 따랐다. 진선미 여성가족부 장관도 연신 눈물을 닦아내며, 다른 정부 인사들과 함께 운구차 곁을 따라 걸었다.  

뒤이어 시민들이 "여성인권운동가 고 김복동님 나비되어 훨훨 날으소서"라고 쓰인 현수막을 들고 걸어갔다.  

김복동 할머니의 목소리가 차량의 스피커를 통해 울려 퍼졌다. 만장을 두손으로 꽉 쥐고 선 학생과 시민들은 할머니의 목소리가 들리자 고개를 떨궜다가 천천히 움직였다.

시청광장 벽면에 설치된 시민 게시판에는 일본의 사죄를 요구하는 김복동 할머니의 생전 인터뷰 영상이 나왔다. 시민들은 행진을 잠시 멈추고 할머니의 영상을 지켜보기도 했다.

시청광장-세월호광장-미대사관을 지나 구 일본대사관 인근에 다다르자 행진이 잠시 멈췄다. 사회자는 "김복동 할머니 기억하겠습니다. 그리고 반드시 할머니의 꿈을 이루겠습니다"라고 소리 높여 외쳤다. 시민들도 구호에 맞춰 수차례 힘찬 함성을 질렀다.  

또한 시민들은 "일본은 공식 사죄하고 법적 배상하라"라고 함께 거듭 외쳤다. 일본 정부의 사죄를 요구하는 김복동 할머니의 카랑카랑한 목소리가 다시 스피커를 통해 울려퍼졌다. 시민들은 "김복동 할머니와 끝까지 함께 한다"고 다짐했다.  

노제 행렬은 마지막으로 27년간 일본 정부를 향해 공식 사죄를 요구한 김복동 할머니가 있었던 곳, 매주 수요집회가 열리는 구 일본대사관 앞에 도착했다. 만장을 든 시민들은 구 일본 대사관을 등지고 소녀상을 향해 만장을 들어보였다.  

노제가 끝나고 같은 장소에서 오전 10시 30분부터 여성인권운동가 고 김복동 시민장 영결식이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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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네주엘라에서 석유강탈을 추구하는 미국의 음흉한 목적과 기만성

미국 베네주엘라 사태에서 석유강탈이 진짜 목적이다.
 
번역, 기사 이용섭 기자 
기사입력: 2019/02/01 [11:31]  최종편집: ⓒ 자주시보
 
 

베네주엘라에서 석유강탈을 추구하는 미국의 음흉한 목적과 기만성

 

긴박하게 진행되고 있는 베네주엘라 사태는 미국과 서방제국주의연합세력들 그리고 그 괴뢰국가들에 의해 정치, 경제, 군사, 사회, 언론 등 모든 분야에서 동시적으로 현 베네주엘라를 이끌어가고 있는 니꼴라스 마두로 정부에 대한 압박과 회유 그리고 선전선동이 벌어지고 있다.

 

미국과 서방제국주의연합세력들이 자신들에게 고분고분하지 않은 나라들을 무너뜨리기 위해 상투적으로 사용하는 구호는 바로 “민주주의의 회복”이요, “인도주의 붕괴”요하면서 그 나라를 이끌어가고 있는 지도자를 “독재자” “인민생활을 붕괴시켜 고통을 주는 무능한 지도자” 등으로 매도를 하고 있다. 그러면서 동시에 그 독재정권을 교체(실제로는 강제로 붕괴)만이 유일한 해법이라고 선전전을 벌이면서 동원 가능한 모든 수단을 다 동원하여 압박을 가하고 있다. 

 

물론 그 과정에서 자신들이 키워놓은 해당 나라의 허수아비(주구)를 “탁월한 야당 지도자”요, “민주화의 투사”요 하면서 그를 적극적으로 내세우면서 그 나라에서 정부를 반대하는 대규모 유·무혈시위와 폭동을 일으키도록 사주를 한다. 2017년에 이어 채 2년도 안되어 발발한 베네주엘라 사태가 바로 그렇게 일어난 것이다.

 

대규모 유·무혈시위와 폭동과정에 대해 해당 나라의 정부당국이 강력하게 대응을 하면 또 다시 인권탄압이요, 민주주의파괴요, 자유의 보장이요 뭐요 하면서 해당 나라를 부도덕하고 악랄한 독재국가, 사람이 살 수 없는 지옥같은 나라로 몰아가는 선전선동을 대대적으로 벌인다.

 

서방제국주의연합세력들은 그것도 통하지 않으면 마지막 수단으로 해당 나라 내부적으로 군사쿠데타를 일으키도록 지휘를 한다. 현재 베네주엘라는 군사쿠데타를 일으키기 직전에 돌입한 상태다. 

 

하지만 자신들이 지휘한 군사쿠데타가 성공을 거두지 못하였을 경우 바로 반군세력이요 뭐요 하면서 자신들이 조직한 고용병들을 동원하여 해당나라에 투입을 하여 군사적인 작전을 펼친다. 물론 당연히 자신들이 투입한 고용병들에 대해서도 독재체제에 맞선 정의의 반군세력이라고 치켜세워주는 것은 두 말 할 필요가 없다. 물론 미국과 서방제국주의연합세력들은 베네주엘라에 대한 군사적 조치로 이 단계도 철저히 준비를 마친 상태에 있다.

 

그것도 통하지 않으면 그때에는 드디어 군사력을 동원하여 직접 해당 나라를 침략공격을 한다. 베네주엘라에 대해서 이 역시 준비를 마친 상태에 있다. 바로 그를 위해 볼튼의5,000명의 군대 꼴롬비아 파견”이라는 내용이 적힌 쪽지가 공개되었으며, 미국의 13개 주와 중남미 15개 국가를 담당하고 있는 “미국 남부군 사령관 꼴롬비아 방문” 그리고 “미군 전투기들 꼴롬비아에 계속해서 착륙”이라는 사실들이 공개가 되었다.

 

미국과 서방제국주의연합세력들이 자신들에게 고분고분 하지 않은 나라들에 대해 위와 같은 만행을 저지르고 있는 것은 여러 가지 목적이 존재한다. 먼저 첫째가는 목적은 “신세계질서”구축을 위한 지배주의와 패권주의의 달성이다. 이는 그 세력들의 최종적이며 궁극적인 목표이다. 두 번째는 온 누리를 영원히 식민  배를 하기 위한 것이다. 세 번째는 경제적 목적이다. 즉 해당 나라에 존재하는 무궁무진한 자원 및 노동력을 착취하고자 하는데 있다. 넷째는 현실적이며 즉시적인 목적인데 바로 무기와 군수물자 그리고 생필품 등과 같은 소모품들을 팔아먹으면서 경제적인 부를 계속 쌓아가고자 하는데 있다.

 

이번 베네주엘라의 사태 역시 위와 같은 여러 가지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서방제국주의연합세력들이 벌이고 있는 것이다. 

 

서방제국주의연합세력들이 베네주엘라에서 얻고자 하는 숨겨진 속셈은 바로 세계에서 가장 많이 매장되어 있는 석유자원의 강탈에 있다. 일반인들이 제대로 된 정보를 모르기에 오늘 날 연료시장(에너지 시장)이 수요와 공급에 의해 결정이 된다고 믿고 있을 뿐이지 국제적인 석유수요와 공급은 실질적으로 국제석유연합(카르텔)에 의해 결정이 된다. 당연히 국제유가 역시 그들 결정을 하는 것이지 석유의 수요와 공급의 법칙에 의해서 결정되는 것이 아니다.

 

2015년이 베럴 당 100달러 선이던 국제유가가 석 달만에 그 1/3수준인 36달러 까지 대 폭락을 했던 이유가 바로 그들이 국제석유시장을 완전히 틀어쥐고 통제를 하기 때문에 가능하였다. 당시 서방제국주의연합세력들은 서규에 나라의 경제를 절대적으로 의존하고 있던, 그리고 자신들에 맞서 자주적인 나라를 이끌어가고 있던 러시아, 이란, 베네주엘라의 경제를 붕괴시켜 궁극적으로 해당나라를 무너뜨리고 다시 자신들이 석유와 경제 그리고 정치적인 지배를 하기 위해서 벌인 음흉한 계책에 의해 발생을 했던 것이다. 

 

그러나 그들의 계획은 러시아와 이란에서는 통하지 않고 실패를 하였으나 나라의 경제가 거의 석유에 의존을 하고 있던 베네주엘라는 나라의 경제가 심각하게 타격을 받았다. 그로인해 베네주엘라 인민들의 삶이 피폐해질 수밖에 없었다.

 

서방제국주의연합세력들은 바로 이를 빌미로 마두로 정부가 무능하고 부패해서 베네주엘라의 경제를 붕괴시켰다는 둥, 인민들을 탄압하고 부패한 독재정권이다 보니 경제가 무너져 내려 베네주엘라 인민들의 삶이 궁핍해졌고 또 인도주의의 재난이 닥쳤다는 등 하면서 자신들이 벌인 비열하고 악랄한 책동에 대한 책임을 고스란히 마두로 정부에 떠 넘겼다. 바로 이 과정에서 커다란 역할을 한 것 역시 서방제국주의연합세력들이 소유하고 있는 세계적인 거대 런론들과 이를 고스란히 되받아 물어 나팔을 불어댄 괴뢰국가들의 언론의 역할이 지대하였다. 현재도 그 기조는 전혀 달라지지 않았다.

 

서방제국주의연합세력들은 이를 빌미로 2017년 몇 개월에 걸친 대규모 시위와 폭동을 조장하였으며, 작년도 8월에는 마두로에 대한 암살을 시도하였다. 또 그 과정에서 미미했지만 군사쿠데타를 지휘하기도 하였다.

 

베네주엘라는 1998년 마두로 대통령 이전 우고 차베스는  통령에 당선이 된 후 자국에 무궁무진하게 묻혀있는 석유자원을 서방제국주의연합세력들이 강탈해가는 것을 막기 위해 과감하게 자국의 원유채굴시설들을 국유화해버렸다. 차베스는 거기에서 얻어지는 수익을 과감하게 베네주엘라 인민들에게 돌렸다. 차베스가 시행한 정책은 바로 사회주의 정책이다.

 

이를 대단히 못 마땅해 하던 서방제국주의연합세력들은 그 이후부터 오늘 날까지 다시 석유패권을 가져오기 위해 끊임없이 베네주엘라에서 대규모 시위와 폭동 등을 사주하여 그 나라를 정치적인 위기로 몰아갔다. 또한 그들은 베네주엘라의 지도자를 암살하기 위해 갖은 방법을 다 동원하였다. 위키리키스가 폭로한 바에 의하면 이전 대통령 우고 차베스는 재임 14년 반 동안 무려 135회의 암살에 시달렸으며, 현 대통령 마두로는 겨우 5년 여 기간 동안 무려 36회의 암살 위기에 처했었다.

 

이와 같이 서방제국주의연합세력들이 약 20여 년간 자신들에게 맞서 자주적인 베네주엘라를 이끌어오고 있는 정권들을 붕괴시키기 위해 갖은 수단과 방법을 다 동원하였지만 실패를 하자 이번에 드디어 정치, 경제, 외교, 사회 등에서 벌인 붕괴책동을 넘어 군사적인 방법까지 동원을 하는 만행을 부리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이와 같이 현재 왜 베네주엘라 사태가 발발하게 되었는지에 대해 분명하게 알아야 한다. 결코 서방의 거대 주류언론들이나 현 남쪽의 언론들이 보도하는 내용을 절대로 믿어서는 안 된다. 그들은 서방제국주의연합세력들 더 정확히는 검은 그림자 세력들의 나팔수들일 뿐이지 결코 온 누리 인민들이나 현 남쪽에 살고 있는 우리 겨레 구성원들에게 정의와 진리에 입각한 객관적 사실을 전달하지 않는다.

 

아래 스뿌뜨닉끄 1월 31일 자 두 편의 기사는 바로 위에서 언급한 내용을 명백하게 증명을 해주고 있다. 기사에 대해서는 따로 분석은 하지 않으니 위 내용과 연결하여 읽어보기 바란다.

 

 

----- 번역문 전문 -----

 

미국 국제개발처, 구아이도 베네주엘라의 ‘민주주의 회복’에 대해 동의

 

▲ 마크 그린 미국 국제개발처(US Agency for International Development - USAID) 처장 은 베네주엘라의 자칭 임시 대통령 구아이도와 전화로 회담을 가졌으며, 회담과정에서 라띤 아메리까 나라의 민주주의 "회복을 돕기 위해 함께 노력하는"데 합의를 하였다고 처장이 말했다. 그린은 베네주엘라 국회 뿐 아니라 인권문서 그리고 독립 언론과 관련된 지역 시민사회단체와 같은 핵심 민주적인지지자들에 대한 미국의 변함없는 지지를 재확인하였다. 또한 그린 처장은 미국 정부의 니꼴라스 마두로에 대한 비난을 하고 있는데 대해 강조하고, 베네주엘라에서 완전한(원문-반구) 자유를 추구하는 시민 중심적 통치를 증진시키기 위한 노력에 대해 미국 국제개발처가 적극적으로 홍보를 하겠다는 약속을 재확인하였다."고 미국 국제개발처가 수요일 성명서에서 밝혔다.     ©이용섭 기자

 

라띤 아메리까 2019년 1월 31일 11시 00분(최종 2019년 1월 31일, 11시 04분)

 

모스끄바 (스뿌뜨닉끄) - 마크 그린 미국 국제개발처(US Agency for International Development - USAID)  처장 은 베네주엘라의 자칭 임시 대통령 구아이도와 전화로 회담을 가졌으며, 회담과정에서 라띤 아메리까 나라의 민주주의 "회복을 돕기 위해 함께 노력하는"데 합의를 하였다고 처장이 말했다.

 

"그린은 베네주엘라 국회 뿐 아니라 인권문서 그리고 독립 언론과 관련된 지역 시민사회단체와 같은 핵심 민주적인지지자들에 대한 미국의 변함없는 지지를 재확인하였다. 또한 그린 처장은 미국 정부의 니꼴라스 마두로에 대한 비난을 하고 있는데 대해 강조하고,  베네주엘라에서 완전한(원문-반구) 자유를 추구하는 시민 중심적 통치를 증진시키기 위한 노력에 대해 미국 국제개발처가 적극적으로 홍보를 하겠다는 약속을 재확인하였다."고 미국 국제개발처가 수요일 성명서에서 밝혔다.

 

국제개발처에 따르면 논의를 하는 동안 구아이도는 베네주엘라의 "긴박한 인도주의적 상황"에 대해서 그린에게 말하였으며, 그린(원문-후자)은 미국은 "증가하는 인도주의적인 필요를 충족시키기 위해 베네주엘라 전지역에 긴급 구호를 제공할 준비가 되어잇다."고 되풀이 하여 강조하였다.

 

"처장과 임시 대통령 구아이도는 베네주엘라의 존엄과 인권 및 민주주의 회복을 돕기위해 함께 노력하기로 공동의 약속을 한 후 대화를 마쳤다."고 성명서는 덧붙였다.

 

개발처는 앞으로도 구체적인 계획을 세우기 위해 구아이도파(팀)와 지속적으로 접촉할 것이다고 말하였다.

 

니꼴라스 마두로 베네주엘라 대통령은 워싱턴이 쿠데타를 일으키고 있다고 비난하였다. 러시아, 메히꼬, 뛰르끼예, 우루구아이 등 다른 나라들은 마두로를 합법적으로 선출된 유일한 대통령으로 인정을 하면서 베네주엘라에 대한 외부의 불간섭원칙을 존중해줄 것을 요구하였다.

 

베네주엘라는 국제 유가의 하락으로 촉발된 정치, 경제적 위기로 고통을 받고 있으며, 반정부세력들(원문-야당)은 악화된 인도주의 문제를 말잔치(원문-수사학)를 통해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있다. 1월 23일 베네주엘라 국회의 야당 지도자인 구아이도가 반정부 시위가 진행되는 가운데에 스스로를 임시 대통령이라고 선언을 한 후 위기는 새로운 방향으로 접어들었다. 다음 날 신속하게 구아이도를 인정한 미국은 인도주의지원에 2천만 달러 이상을 제공한 준비가 되어있다고 말했다.

 

 

----- 번역문 전문 -----

 

'기름 강탈" 미국 '베네주엘라 인민들과 함께 서 있다.' 내용 트위터를 뜨겁게 달구었다.

 

▲ '기름 강탈" 미국 '베네주엘라 인민들과 함께 서 있다.' 내용 트위터를 뜨겁게 달구었다. 니꼴라스 마두로 베네주엘라 대통령은 이전에 미국시민들에게 호소하였고 그리고 그를 지지해주고 트럼프 행정부가 자신의 "조국을 라띤 아메리까의     ©이용섭 기자

 

라띤 아메리까 2019년 1월 31일, 10시 03분(최종 2019년 1월 31일, 12시 41분)

 

니꼴라스 마두로 베네주엘라 대통령은 이전에 미국시민들에게 호소하였고 그리고 그를 지지해주고 트럼프 행정부가 자신의 "조국을 라띤 아메리까의 웻남화"하는 것을 막아달라고 하였다.

 

백악관 언론 담당 허커비 사라 센터스는 야당이 주도하고 있는 베네주엘라 국회의장인 구아이도가 올린 내용:" 미국은 베네주엘라 인민들과 함께 한다."는 글을 뉴욕타임스 기사에 연계시켰다.

 

그렇지만 사회관계망(눈) 이용자들은 센더스의 호응에 대해 별로 영향을 받지 않은 것으로 보였고 그리고 그녀의 상관인 도널드 트럼프는 "미국인들과도 함께 서 있지도 않다."고 주장하였다.:

 

일부 누리꾼들의 반응은 마두로의 - 워싱턴은 세계 최대의 석유 매장량을 돌파하였다라는 생각을 반영하였다.:

 

▲ 베네주엘라 누리꾼들은 트위터를 통해 미국이 현재 베네주엘라에서 벌이고 있는 만행의 진짜 목적은 베네주엘라의 민주주의와 인도주의 그리고 인권의 회복을 위한다는 미국의 주장에도 불구하고석유강탈에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용섭 기자

 

▲ 현재 미국이 벌이고 있는 베네주엘라 사태의 진 목적은 베네주엘라에 매장되어 있는 무궁무진한 석유 강탈에 그 진짜 목적이 있다.     ©이용섭 기자

 

1월 23일 스스로 라띤 아메리까 나라의 임시 대통령이라고 선언을 한 구아이도는 베네주엘라 군의 지지는 니꼴라스 마두로를 퇴진시키는데 있어서 “결정적”인 것이라고 말하는 내용을 (트위터에)썼다.

 

"마두로씨에 대한 군부의 지지철회는 정부를 변화시키는데 대단히 중요하며,  관련업무에 종사하는 대다수는 최근 이 나라의 고통스러운 상황을 지지할 수 없다는데 동의한다. 이번의 전환은 핵심 군사파견단의 지지를 필요로 하고 있다. 우리는 군대와 보안군과 비밀협상을 가졌다."

 

센더스의 지지트윗은 마두로가 트럼프 행정부가 까라까스 내정에 개입하지 못하게 하고, 조국은 또 다른 웻남(웻남전쟁)화 하지 말 것을 "미국 인민들"에게 호소를 한 직후에 나왔다.

 

▲ 니꼴라스 마두로 베네주엘라 대통령은 미국이 현 베네주엘라 사태를 일으킨 진짜 목적은 베네주엘라에 매장되어 있는 무궁무진한 석유를 강탈하기 위한 데 있다고 주장하였다.     ©이용섭 기자

 

1원 29일 베네주엘라 대법원은 과도정부의 은행계좌 및 금융거래를 자국 관할내에서 차단을 하고 그의 활동에 대한 조사가 완료될 때까지 연금(여행금지)조치를 결정하였다.

 

화요일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 존 볼튼은 워싱턴은 구아이도를 협박하기 위해 기소한 검찰을 비난하였으며, "민주주의를 파괴하고 야당 지도자를 해치려는 사람들에게 심각한 결과를 초래할 것"이라고 경고하였다고 말하였다.

 

마두로에 대한 압력을 강화하기 위해 미국은 베네주엘라의 국영석유회사인  PDVSA에 제재를 가하였으며, 미국 보험회사(원문-은행)에 동결되어 있던 특정 자산에 대한 통제권을 구아이도에게 넘겨주었다.

 

트럼프 행정부는 "베네주엘라 인민들의 의지를 반영한 합법적인 지도자(구아이도를 지칭)"에 동의를 하고 퇴진을 할 것을 마두로에게 요구하였지만 베네주엘라 대통령은 워싱턴이 쿠데타를 지휘하고 있다고 비난을 하면서 미국과의 외교관계를 단절하는 조치를 취하였다.

 

구아이도의 자칭 대통령직은 곧바로 미국, 카나다, 이스라엘, 그루이자, 알바이나 그리고 남미의 12개 국가들에서 인정을 받았으나 반면 러시아, 중국, 뛰르끼예 그리고 또 다른 여러 나라들은 마두로를 베네주엘라의 합법적인 유일한 대통령으로 받아들였다.

 

 

----- 원문 전문 -----

 

USAID Administrator, Guaido Agree to Work to 'Restore Democracy' in Venezuela

 

▲ 마크 그린 미국 국제개발처(US Agency for International Development - USAID) 처장 은 베네주엘라의 자칭 임시 대통령 구아이도와 전화로 회담을 가졌으며, 회담과정에서 라띤 아메리까 나라의 민주주의 "회복을 돕기 위해 함께 노력하는"데 합의를 하였다고 처장이 말했다. 그린은 베네주엘라 국회 뿐 아니라 인권문서 그리고 독립 언론과 관련된 지역 시민사회단체와 같은 핵심 민주적인지지자들에 대한 미국의 변함없는 지지를 재확인하였다. 또한 그린 처장은 미국 정부의 니꼴라스 마두로에 대한 비난을 하고 있는데 대해 강조하고, 베네주엘라에서 완전한(원문-반구) 자유를 추구하는 시민 중심적 통치를 증진시키기 위한 노력에 대해 미국 국제개발처가 적극적으로 홍보를 하겠다는 약속을 재확인하였다."고 미국 국제개발처가 수요일 성명서에서 밝혔다.     © 이용섭 기자

 

LATIN AMERICA 11:00 31.01.2019(updated 11:04 31.01.2019)

 

MOSCOW (Sputnik) - US Agency for International Development (USAID) Administrator Mark Green held phone talks with Juan Guaido, self-declared interim president of Venezuela, during which they agreed to "work together to help restore" democracy in the Latin American country, the agency said.

 

"Green reaffirmed the United States' commitment to continue supporting the Venezuelan National Assembly, as well as other key democratic actors like local civil society organisations that are involved in human rights documentation and the independent media. Administrator Green also underscored the US government's condemnation of Nicolas Maduro, and reaffirmed USAID's commitment to promoting citizen-responsive governance in Venezuela, in pursuit of a Hemisphere of Freedom", the USAID said in a Wednesday statement.

 

During the talks, Guaido told Green about "the dire humanitarian situation" in Venezuela, while the latter reiterated that the United States was "ready to provide emergency aid throughout Venezuela to help meet this increasing humanitarian need", according to USAID.

 

"The Administrator and interim President Guaidó closed their conversation with a mutual commitment to work together to help restore dignity, human rights, and democracy in Venezuela", it added.

 

The agency noted that it would continue to be in contact with Guaido's team to work out concrete plans in the coming days.

 

Venezuelan President Nicholas Maduro accuses Washington of staging a coup in the country. Russia, Mexico, Turkey, and Uruguay among other countries, continue to recognise Maduro as the country’s only legitimately-elected president and demand that others respect the principle of non-interference in Venezuela's internal affairs.

 

The country has been suffering from a political and economic crisis triggered by the fall of global oil prices, with the opposition actively using deteriorating humanitarian issues in its rhetoric. On 23 January, the crisis took a new turn when the speaker of the opposition-led Venezuelan National Assembly, Guaido, declared himself interim president amid ongoing anti-government protests. The next day, the United States, which swiftly recognised Guaido, said that it was ready to provide the country with more than $20 million in humanitarian assistance.

 

 

----- 원문 전문 -----

 

'To Steal Their Oil?' WH Roasted for US 'Stands With People of Venezuela' Tweet

 

▲ '기름 강탈" 미국 '베네주엘라 인민들과 함께 서 있다.' 내용 트위터를 뜨겁게 달구었다. 니꼴라스 마두로 베네주엘라 대통령은 이전에 미국시민들에게 호소하였고 그리고 그를 지지해주고 트럼프 행정부가 자신의 "조국을 라띤 아메리까의 웻남화"하는 것을 막아달라고 하였다.백악관 언론 담당 허커비 사라 센터스는 야당이 주도하고 있는 베네주엘라 국회의장인 구아이도가 올린 내용:" 미국은 베네주엘라 인민들과 함께 한다."는 글을 뉴욕타임스 기사에 연계시켰다. 그렇지만 사회관계망(눈) 이용자들은 센더스의 호응에 대해 별로 영향을 받지 않은 것으로 보였고 그리고 그녀의 상관인 도널드 트럼프는 "미국인들과도 함께 서 있지도 않다."고 주장하였다.:     © 이용섭 기자

 

LATIN AMERICA 10:03 31.01.2019(updated 12:41 31.01.2019)

 

Venezuelan President Nicolas Maduro previosuly appealed to US citizens and asked them to support him and prevent the Trump administration from turning his "homeland into a Vietnam in Latin America".

 

White House press secretary Sarah Huckabee Sanders has shared a link to The New York Times' article by Juan Guaido, the head of Venezuela's opposition-led National Assembly, with the message: "America stands with the people of Venezuela".

 

Social media users, however, appeared to be unimpressed by Sanders's response and claimed that her boss, President Donald Trump, "doesn't even stand with Americans":

 

Some netizens' reactions reflected Maduro's sentiments — Washington is after the world's largest oil reserves:

 

▲ 베네주엘라 누리꾼들은 트위터를 통해 미국이 현재 베네주엘라에서 벌이고 있는 만행의 진짜 목적은 베네주엘라의 민주주의와 인도주의 그리고 인권의 회복을 위한다는 미국의 주장에도 불구하고석유강탈에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 이용섭 기자

 

▲ 현재 미국이 벌이고 있는 베네주엘라 사태의 진 목적은 베네주엘라에 매장되어 있는 무궁무진한 석유 강탈에 그 진짜 목적이 있다.     © 이용섭 기자

 

Guaido, who declared himself the Latin American country's interim president on 23 January, penned an op-ed, in which he said that support from the Venezuelan military was "crucial" to forcing Nicolas Maduro out of office.

 

"The military's withdrawal of support from Mr Maduro is crucial to enabling a change in government, and the majority of those in service agree that the country's recent travails are untenable. The transition will require support from key military contingents. We have had clandestine meetings with members of the armed forces and the security forces".

 

Sanders's supportive tweet came shortly after Maduro had called on "the people of the United States" to not let the Trump administration interfere into Caracas's internal affairs and turn his motherland into another Vietnam.

 

▲ 니꼴라스 마두로 베네주엘라 대통령은 미국이 현 베네주엘라 사태를 일으킨 진짜 목적은 베네주엘라에 매장되어 있는 무궁무진한 석유를 강탈하기 위한 데 있다고 주장하였다.     © 이용섭 기자

 

On 29 January, the Venezuelan Supreme Court blocked Guaido's bank accounts and financial transactions within the country's jurisdiction, and imposed a travel ban on him until an investigation into his activities is completed.

 

White House National Security Adviser John Bolton stated on Tuesday that Washington condemned Venezuelan prosecutors for threatening Guaido, and warned of "serious consequences for those who attempt to subvert democracy and harm" the opposition leader.

 

In a bid to ramp up pressure on Maduro, the US introduced sanctions against Venezuela's state-owned oil giant PDVSA, and passed control over certain frozen assets held by US-insured banks to Guaido.

 

The Trump adiminstration has been calling on Maduro to step down in favour of a "legitimate leader reflecting the will of the Venezuelan people", while the Venezuelan president has accused Washington of orchestrating a coup and severed diplomatic ties with the country.

 

Guaido's self-proclaimed presidency was instantly recognised by the US, Canada, Israel, Georgia, Albania and over a dozen South American countries, while Russia, China, Iran, Turkey, and several other nations consider Maduro to be the only legitimate president of Venezuel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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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려한 공작 꼬리, 표범은 보지 못한다

  • 분류
    알 림
  • 등록일
    2019/02/01 12:18
  • 수정일
    2019/02/01 12:18
  • 글쓴이
    이필립
  • 응답 RSS

화려한 공작 꼬리, 표범은 보지 못한다

조홍섭 2019. 01. 31
조회수 745 추천수 0
 
1m만 떨어져도 포식자 눈에는 주변과 구분 안 돼
 
513.jpg» 날개 덮개를 부채처럼 펼친 공작 수컷. 암컷의 눈에는 선명하게 보여도 포식자 눈에는 거의 보이지 않는 것으로 밝혀졌다. 터너 호프, 위키미디어 코먼스 제공.
 
“공작 꼬리만 보면 토할 것 같아.” 찰스 다윈은 1860년 동료 과학자에 보낸 편지에 이렇게 적었다. 물론 농담조였지만, 수컷 공작의 꼬리는 공들여 이룩한 그의 진화이론을 망쳐버릴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보석처럼 아름답고 거대한 공작 수컷의 꼬리(실제로는 꼬리가 아니라 확장한 날개 덮개)는 포식자의 눈길을 사로잡고 도망치는 발걸음을 가로막을 뿐이다. 자연은 어떻게 이런 불리한 형질을 선택했을까.
 
이후 다윈은 자연에 앞서 암컷의 선택이 주요하게 작용한다는 ‘성 선택’ 이론을 제시했지만 논란은 계속됐다. 이스라엘 생물학자 아모츠 자하비가 1975년 내놓은 ‘핸디캡(불리한 조건) 이론’은 그런 예다. 천적의 눈에 잘 띄고 움직이기 힘들 정도로 큰 장식을 하는 개체일수록 건강하다는 증거라고 주장한다. 공작 수컷은 이런 허세의 대표적 예이다. 꼬리 장식이 과대한 열대어 구피도 마찬가지다.
 
512 (7).jpg» 거추장스럽게 긴 날개를 끌고 날아가는 공작 수컷. 부담을 감수하는 만큼 능력이 있다는 핸디캡 이론이 있다. 세르보프바브, 위키미디어 코먼스 제공.
 
그런데 이런 주장은 하나같이 수컷 공작을 사람이나 암컷 공작이 보는 것처럼 포식자에게도 보일 것이라는 전제를 깔고 있다. 과연 그럴까. 수잔 아마도르 케인 미국 하버포드대 물리학 교수 등 미국 연구자들은 이런 의문을 풀기 위해 반사율 분광학과 멀티스펙트럼 이미징 등 물리학 기술을 동원해 포식자의 눈에 공작 수컷이 어떻게 보이는지 조사했다.
 
흔히 다른 동물이 사람보다 시력이 좋을 것처럼 생각하지만, 최근 사람 등 영장류의 시력은 동물계에서 맹금류 등 일부 조류를 빼고 최고 수준인 것으로 드러났다(▶관련 기사거미줄에 '조류 충돌 방지' 무늬 넣는 호랑거미). 영장류는 잘 익은 과일과 새순을 찾고 숨어있는 포식자를 가려내기 위해 다른 포유류보다 뛰어난 시력을 간직한다. 
 
대부분의 사람은 빨강, 초록, 파랑 등 빛의 3원색을 본다. 새들은 여기에 더해 자외선까지 본다. 그러나 고양이과 동물 등 대부분의 포식자는 2가지 빛만 보는 적·녹 색맹이다.
 
00502479_20180601.JPG» 동물의 시력 분포. 가로축은 눈 지름이고 세로축은 시력이다. 사람은 최상위에 위치한다. 케이브스 외 (2018) ‘생태학과 진화 동향’ 제공.
 
짝짓기 철 수컷 공작은 푸른색과 초록색이 어울려 보이는 각도에 따라 무지갯빛으로 보이는 현란한 날개깃에 한껏 펴고 흔들어 댄다. 특히 부채처럼 편 공작 깃털의 들어있는 눈꼴 무늬는 암컷의 시선을 사로잡아, 그 무늬가 짝짓기 성공의 절반을 차지한다는 연구도 있다.
 
연구자들은 수컷 공작 꼬리의 색깔, 밝기, 질감의 콘트라스트를 초록색 수풀 배경에서 조사했다. 놀랍게도 포식자의 눈으로는 1m만 떨어져도 이런 무늬와 색깔을 배경 수풀과 거의 구분하지 못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반대로 암컷 공작에게는 깃털의 무늬와 색깔이 푸른 식물에 달린 열매처럼 선명하게 보였다.
 
512 (9).jpg» 숲의 배경 속으로 공작 수컷의 날개가 녹아드는 모습을 그린 테일러의 1907년 그림. 위키미디어 코먼스 제공.
 
연구자들은 “포식자에겐 색깔이 화려한 깃털보다 흑백 깃털이 더 잘 보인다”며 “빨강과 노랑 깃털도 마찬가지 효과가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밝혔다. 또 “사람과 다른 새에게는 화려한 색깔로 보이는 새들도 포식자의 눈에는 단조롭게 칙칙하게 보인다”고 덧붙였다. 공작의 주요 포식자는 표범, 승냥이, 호랑이 등이다. 연구자들은 포식자가 시각 이외에 움직임 감지, 청각과 후각 등을 이용해 사냥할 것이라고 추정했다.
 
공작 날개의 눈꼴 무늬는 가까이에서 가장 도드라지지만 실제로는 주변 배경에 쉽게 녹아드는 것으로 나타났다. 오히려 좀 떨어진 곳에서 가장 선명하게 보이는 부위는 공작의 머리, 목, 가슴에 드러난 푸른 깃털이었다. 부채꼴 꼬리보다 포식자 눈에 더 띄지만, 암컷을 유혹하는 효과는 꼬리보다 더 클 것이라고 연구자들은 밝혔다. 또 실제 공작이 사는 어두컴컴한 숲 속이나 황혼녘에 공작의 화려한 깃털은 이번 실험보다 훨씬 포식자의 눈에 띄지 않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512 (10).jpg» 조금 떨어진 거리에서 공작 수컷의 가장 두드러지는 부위는 큰 날개가 아니라 머리와 목의 푸른 깃털이다. 파보 크리스타투스, 위키미디어 코먼스 제공.
 
이 연구는 미발간된 생물학 분야의 연구를 동료 비평을 듣기 위해 미리 공개하는 누리집인 ‘바이오리시브’에 7일 실렸다.
 
■ 기사가 인용한 논문 원문 정보:
 
Suzanne Amador Kane, How conspicuous are peacock eyespots and other colorful feathers in the eyes of mammalian predators?, bioRxiv preprint first posted online Jan. 7, 2019; doi: http://dx.doi.org/10.1101/514240.
 
조홍섭 기자 ecothin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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靑, 대선공정성 제기에 “이미 국민 판단…전제가 잘못”

김진태 ‘대선무효’, ‘대통령 알고 있었나’엔 답변안해…문 대통령, 한정우 신임 부대변인 임명

조현호 기자 chh@mediatoday.co.kr  2019년 02월 01일 금요일
 

김경수 경남도지사의 드루킹 댓글조작 유죄판결을 두고 자유한국당을 비롯한 야권과 일부 언론에서 대선공정성을 문제삼고 나서고 있으나 청와대는 말을 아끼고 있다.

김진태 자유한국당 의원은 지난달 31일 국회 기자회견에서 “‘바둑이(김 지사의 별칭)’가 구속됐으니 경인선을 알고 있는 김정숙이나 광화문은 공범 아닌가”라며 “지난 대선은 여론조작으로 치러졌으니 무효”라고 주장했다. 김태흠 의원은 청와대 분수대 앞 의총에서 “문재인 정권이야말로 찬탈한 정권”이라고 했고, 김영우 의원은 “이 정도면 문재인 정부는 문을 닫아야 하지 않느냐”고 비난했다.

대선 공정성 문제제기까지 쏟아져나오자 말을 아껴온 청와대는 부적절하다는 입장이다. 한 청와대 관계자는 1일 아침 기자들과 만나 “대선공정성에 대해서요. 이미 국민의 판단을 받은 문제이기 때문에 그 문제에 대한 문제제기 자체가 전제가 잘못됐고, 부적절하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그러나 ‘판결에 대해 동의하지 않는다는 것이냐’는 질의에 다른 청와대 관계자는 “이미 (김의겸) 청와대 대변인이 한 입장이 공식적인 입장이다. (그 외의) 비공식 입장을 이런 자리에서 밝히는 것은 적절치 않은 것 같다. 입장이 정리되면 알려드리겠다”고 말했다.

이번 판결과 관련해 자유한국당 등은 문재인 대통령이 김경수 지사와 드루킹의 댓글활동의 관계를 어디까지 알고 있었느냐도 강하게 따져묻고 있다. 이 문제에 대해 청와대 관계자는 답을 하지 않았다. 

지난달 30일 김 지사가 법정구속됐을 때 ‘드루킹 사건의 대통령 사전인지 여부’에 김의겸 청와대 대변인이 “터무니없다”고 답한 이후 아직 한번도 구체적인 답변을 내놓고 있지 않다.  

 

▲ 나경원 원내대표와 정용기 정책위의장을 비롯한 당 소속 국회의원들은 31일 오전 서울 종로구 청와대 분수대 앞에서 긴급 의원총회를 열고 김경수 경남지사의 드루킹 댓글 조작사건 등의 대통령 입장 표명을 요구했다. 사진=자유한국당
▲ 나경원 원내대표와 정용기 정책위의장을 비롯한 당 소속 국회의원들은 31일 오전 서울 종로구 청와대 분수대 앞에서 긴급 의원총회를 열고 김경수 경남지사의 드루킹 댓글 조작사건 등의 대통령 입장 표명을 요구했다. 사진=자유한국당
 
청와대 관계자는 1일 오전 통화에서 “그런 비판은 사실로 굳어졌을 때를 전제로 해명과 사과를 요구하는 것인데, 대변인이 밝힌 ‘최종심을 지켜보자’는 것 안에 모든 답이 있다. 묻는 모든 사안에 일일이 코멘트할 수 없다”고 말했다. ‘하지만 김경수 지사는 문 대통령의 경선후보 시절부터 대변인을 지내 선거운동 과정 등을 보고하는 위치에 있었기 때문에 드루킹 활동도 보고했을 것이라고 합리적 의심을 할 수 있지 않느냐’는 지적에 이 관계자는 “댓글을 다는 것까지 보고하는 것이 합리적 추정이라고 주장하는데, 과연 대변인이 댓글 달고 왔다는 것까지 보고 했겠느냐. 수많은 선거운동에서 과연 그것이 득표에 대단한 도움이 됐는지도 모르겠다. 그런 보고를 했을 것이라는 것이 과연 합리적 의심인가 하는 의문이 있다”고 주장했다.

 

한편, 청와대는 부대변인을 한 명 더 임명했다. 윤도한 국민소통수석은 1일 신임 부대변인에 한정우 행정관을 내정했다고 밝혔다. 윤 수석은 “오늘 대변인실에 새로 인사가 났다. 부대변인 추가로 한 명 더 임명을 했다. 오늘부터 업무를 한다. 대변인 업무가 과잉이라 한정우 부대변인이 새로 업무를 맡게 됐다”고 설명했다.

한정이 신임 부대변인은 “문재인 정부에서 추진하는 주요 국정 현안에 언론인 여러분께 잘 설명드리는 역할을 하겠다”며 “언론 소통을 강화해 어떤 정책을 어떻게 하는지 잘 알리기 위함이다. 김의겸 대변인과 고민정 부대변인 저 자주 만나 잘 설명드릴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답했다. 

▲ 한정우 신임 청와대 부대변인. 사진=청와대
▲ 한정우 신임 청와대 부대변인. 사진=청와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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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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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도민이 말하는 감귤 따기 알바가 ‘극한 직업’인 이유

감귤은 물론, 한라봉, 천혜향 등 각종 만감류도 꼭 드셔 보시기 바랍니다
 
임병도 | 2019-02-01 08:53:43 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인쇄하기  메일보내기    
 
 


 

2017년 10월 뉴스입니다. 제주도가 감귤 수확 인력을 모집하고 이들에게 항공권과 숙박까지 제공한다는 내용입니다.

비록 2년 전 뉴스이지만, 매년 감귤 수확철만 되면 나오는 뉴스라 아마 올해 10월쯤에도 또 등장할 것 같습니다.

감귤 따는 인력이 없어 제주도가 지원한다는 얘기는 2013년에도 나온 적이 있었습니다. 당시에도 뉴스에 소개됐듯이, 해마다 감귤 수확 인력을 구하고 있습니다.

오늘은 감귤 따기 알바를 극한직업이라고 부르는 이유가 무엇인지 알려드리겠습니다.

▲감귤 농사를 하면서 밭에 비료를 뿌리는 모습. 비료 포대를 메고 좁은 통로를 헤집고 다녀야 해서 그리 쉽지 않은 작업이다.

아이엠피터는 2013년에 제주에서 감귤 농사를 했습니다. 돈을 벌려고 시작한 것은 아니고, 제주에서 살면서 1인 미디어 활동을 하니 제주를 알아야겠다는 생각에 감귤농사를 시작했습니다.

감귤 농사는 다른 농사에 비해 손이 덜 갑니다. 봄에 전정하고, 풀 베고, 비료와 농약을 시기별로 뿌려주면 끝이 납니다. 물론 이 작업도 저와 같은 초보 농사꾼에게는 엄청 힘들었습니다.

특히 감귤밭은 돌이 많습니다. 제초제를 뿌리지 않고 풀을 베려면 돌이 튀는 등 쉽지 않습니다. 친환경농법을 왜 포기하는지 그때 깨닫기도 했습니다. 농약을 쓰지 않으면 그만큼 손이 많이 가서 더 힘듭니다.

감귤 농사 중에서 가장 힘든 작업은 무엇일까요? 바로 감귤 따기입니다.

▲눈을 맞은 감귤과 폭설과 냉해로 밭에 버려진 감귤.

감귤은 수확철이 짧습니다. 11월부터 12월 중순, 특히 눈이 오기 전에는 귤을 따야 됩니다. 왜냐하면 눈이 오면 귤껍질과 알맹이 사이가 떠서 맛이 없어지기 때문인데요.

감귤 수확 전에 폭설이나 강추위가 오면 제주에서는 감귤이 피해를 입습니다. 이때는 감귤을 폐기 처분하기도 합니다. 한 해 농사를 망치게 됩니다.

간혹 제주도에서 보상을 해주기도 하지만 금액이 적어, 농민들은 많은 손해를 봅니다.

▲제주에는 일손이 귀해 벌초 방학이나 감귤방학 같은 이색 방학이 있었다. 지금은 거의 사라졌다.

짧은 수확 시기에 감귤을 따야 하니 감귤 수확철만 되면 제주는 난리가 납니다. 그래서 직장을 다니는 가족들은 월차 휴가까지 받아 감귤을 따기도 합니다.

제주에서는 감귤 수확철에는 ‘감귤방학’까지도 있었습니다. 남원읍이나 서귀포 등 감귤이 많이 나는 지역에서는 일손이 부족해서 아이들까지도 감귤을 따야 하니, 방학을 해서 일손을 도왔습니다.

그래도 감귤 따는 인력이 부족하니 육지, 아 제주 사람들은 제주 이외는 육지라고 부릅니다. 육지 사람들을 비행기표도 보내주고 숙박까지 시켜주며 감귤 따는 인력으로 모집합니다.

▲감귤따기는 나무에서 딴 감귤을 들고 다니는 바구니에 넣었다가 나중에 노란색 컨테이너에 싣는 작업 순서로 이어진다.

제주에서 감귤 따기 알바, 뭔가 꿀알바 같아 보입니다. 감귤도 따고 제주 여행도 하고 아주 좋아 보입니다. 그러나 현실은 아주, 아주 힘듭니다.

일단 육지에서 특히 남자들이 감귤 따기 알바로 가면 감귤을 따는 것이 아닙니다. 감귤은 가위를 이용해서 따서 바구니에 넣고 나중에 노란색 컨테이너로 옮깁니다.

문제는 초보자의 경우 제대로 감귤을 따지 못하니 감귤 따는 일을 시키지 않고, 컨테이너를 나르는 작업만 한다는 점입니다.

▲감귤을 싣기 전인 컨테이너와 트럭에 상차한 감귤 켄테이너

할머니라고 하는 숙련된 할망들이 하루에 혼자서 600킬로 30박스를 땁니다. 5명이서 작업을 하면 30X 5= 150 박스가 나옵니다. 결국 하루에 20킬로 노란색 컨테이너를 150박스를 날라야 한다는 계산이 나옵니다.

그냥 컨테이너를 나르면 되니 쉬울 것 같지만, 한 두 박스도 아니고 수백 박스를 나르는 일은 생각보다 아주 힘듭니다.

감귤밭은 굉장히 좁습니다. 가지가 뻗어서 중간에 서서 걸어가지도 못합니다. 할망들이 밭 사이에 귤을 따 놓고 가면 허리를 숙이고 들어가서 컨테이너를 들고 차가 있는 곳까지 와야 합니다.

여기에 보통 1톤 차량에 가득 상차를 해야 하는데, 처음에는 낮아서 괜찮지만, 컨테이너를 쌓을수록 올리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래서 보통 제주에서 감귤 수확철이 끝나면 남자들은 허리가 아파서 병원을 찾는 일이 많습니다.

▲감귤을 따서 택배로 보내기 위해 박스 작업을 마친 모습

남자는 그렇다 치고 여자들은 어떨까요? 보통 할망들이 하루에 600킬로 땁니다. 600 킬로면 여러분들이 흔히 보는 10킬로 감귤 박스 60개입니다. 혼자서 60개를 작업해야 하는 겁니다.

그런데 그냥 귤을 따는 게 아닙니다. 처음에는 괜찮은 감귤, 즉 팔 수 있는 사이즈가 되는 상품성 귤을 잘 보고 빠르게 따야 합니다.

보통 제주에서는 초보자들은 감귤 따기를 시키지 않습니다. 데려다가 일을 시켜봤자 손이 느리니 일당만 나가고 생산성은 떨어지기 때문입니다.

▲제주에서 감귤 수확 아르바이트를 모집하는 공고

뉴스에 나왔던 감귤 따기 알바 공고를 보겠습니다. 근로시간을 보면 08시에서 17시로 되어 있습니다. 근무시간은 그리 나쁘지 않습니다. 문제는 일당입니다. 임금 수준을 보면 6만 원으로 되어 있습니다.

보통 제주 할망들이 8만 원까지 받는 것에 비하면 낮은 것 같지만, 또 숙련도를 따지면 그리 적다고 볼 수도 없습니다.

하지만 제주에서는 이런 임금을 가지고 사람을 구하기 어렵습니다. 일단 남자들은 노가다를 해도 10만 원씩 받으니 하지 않으려고 합니다. 젊은 여자들은 하고 싶어도 감귤 따기 알바가 쉽지 않으니 갔다가 며칠 만에 포기합니다.

여기에 나온 선과장 알바는 조금 괜찮습니다. 그래서 요새 제주 사람들은 똑같은 돈이면 감귤 따기 알바가 아니라 선과장에서 일을 하는 알바로 대거 몰립니다. 당연히 또 감귤 따기 알바를 할 사람이 없어지는 겁니다.

▲감귤 농사와 따기는 보통 가족들이 많이 한다. 일손을 구하기 힘들어 체험농장으로 운영할 때 모습. 지금은 감귤 농장을 하지 않고 있다. (체험 농장도 하지 않습니다)

저 같은 경우 감귤 수확철에 육지에서 저희 부모님과 장인, 장모님이 오셔서 도와주셨습니다. 그래도 힘들어서 아예 감귤을 체험 농장으로 돌렸습니다. 먹고 싶은 만큼 공짜로 따서 먹고, 사고 싶은 사람은 자기가 따서 10킬로 한 박스에 만원씩 가져가라고 했습니다.

감귤 따는 할망 부르면 최소 6만원씩 3명만 써도 18만원, 여기에 밥값에 교통비까지 주면 남는 게 없습니다. 그래서 인건비로 손해 보느니 아예 싸게 일반 소비자에게 넘긴 겁니다.

예전에 감귤나무를 대학나무라고 불렀습니다. 감귤 농사로 자식들을 대학까지 보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제주에는 카페 이름이 대학나무인 곳도 있습니다.

그런데 요새는 감귤 값은 똥값이 되고, 땅값은 올라 감귤 농사보다 땅을 팔아 다른 일을 하는 게 더 나아졌습니다.

▲1970년대 감귤을 나무 상자로 거래하는 모습과 감귤 따는 장면

감귤 따기 알바가 극한 직업에 속할 정도로 힘듭니다. 과거에는 자식들을 대학에 보내기 위해 힘들어도 참고 버텼습니다.

당시에도 감귤 인력은 부족했습니다. 그래서 전라도 지역에서 많은 인력들이 대거 제주로 오곤 했습니다. 제주에 전라도 지역 분들이 많이 거주하는 이유 중의 하나가 당시에 제주에 왔다가 계속 사는 분들 때문입니다.

제주는 고령화가 되면서 감귤 농사를 하는 사람들이 많이 줄어들었습니다. 감귤 농사 대신 감귤밭을 펜션이나 카페 등으로 만드는 일도 제주에서는 쉽게 볼 수 있습니다.

▲ 1톤 트럭에 감귤을 싣고 선과장에 가다가 전복된 모습. ⓒ제주의 소리

감귤 수확철에 제주를 여행하신 분들은 사진 속 장면을 목격한 적이 있을 겁니다. 밭에서 딴 감귤 컨테이너를 1톤 트럭에 잔뜩 싣고 가다가 사고가 나서 감귤이 몽땅 쏟아진 모습입니다.

저도 길지는 않지만, 짧게 감귤 농사를 했기에 저런 장면을 목격하면 참 마음이 아픕니다.

방송이나 뉴스를 보면 감귤 따는 알바하면 제주 여행도 하고 아주 좋을 듯 포장해서 방송합니다. 방송이나 뉴스만 보고 혹 하시는 분도 있겠지만, 감귤 농사는 그리 쉬운 일이 아닙니다.

▲악마의 알바라고 불리는 택배 상하자 아르바이트 ⓒTV조선 화면 캡처

뭐 다른 일도 힘들겠지만, 감귤 따기도 택배 상하차만큼 어려운 일입니다. 남성들의 경우 쌀 20킬로 150포대를 나른다고 생각해보세요. 허리가 나갑니다.

감귤 따기 알바는 쉽지 않은 일입니다. 진짜로 감귤 따러 왔다가 며칠 만에 도망가신 분들도 많습니다.

혹시라도 감귤 따기 알바를 환상처럼 생각하는 분이 있다면, 신중하게 생각했으면 합니다.

▲택배로 받은 감귤이 터진 경우 모두 골라내야 나머지 감귤도 오래 먹을 수 있다.

마지막으로 혹시 감귤을 택배로 주문하셔서 드신다면 택배를 받자마자 꼭 박스를 열어서 밑에까지 확인해야 합니다.

귤은 상처 나기 쉬운 과일이라 박스에 하나라도 깨진 귤을 방치하면 전부 못 먹는 경우도 종종 있습니다.

감귤은 통풍이 잘되는 곳에 보관해야 오래 먹을 수 있습니다. 냉장고에 보관했을 경우 먹을 만큼만 실온에 일정 시간 놔뒀다가 먹으면 더 맛있습니다.

혹시라도 겨울철에 제주를 여행하시는 분들이 있다면 감귤은 물론이고, 한라봉, 천혜향 등 각종 만감류도 꼭 드셔 보시기 바랍니다. 다만, 1월 이후에는 노지감귤은 모두 수확이 끝났기 때문에 감귤 따기 체험 등은 할 수 없습니다.

제철 과일이 맛있지만, 감귤은 겨울철이 제주에서 먹는 게 더 맛있답니다.

유튜브에서 바로보기:제주도민이 말하는 감귤 따기 알바가 극한 직업인 이유

 
본글주소: http://poweroftruth.net/column/mainView.php?kcat=2013&table=impeter&uid=17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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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수와 드루킹, 처음부터 잘못된 전략이었다

[주장] 네이버 댓글작업이 '업무방해'가 아닌 이유... 인터넷에 혐오글만 남길 것인가

19.01.31 10:38l최종 업데이트 19.01.31 10:38l

 

법정구속된 김경수 경남지사 김경수 경남지사가 30일 오후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드루킹 댓글 조작’ 사건 1심에서 실형을 선고받고 법정구속되어 구치소행 호송차를 타고 있다.
▲ 법정구속된 김경수 경남지사 김경수 경남지사가 30일 오후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드루킹 댓글 조작’ 사건 1심에서 실형을 선고받고 법정구속되어 구치소행 호송차를 타고 있다.
ⓒ 공동취재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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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부터 잘못되었다. 김경수 경남도지사와 드루킹을 분리해서 사고하려는 전략 자체가 힘겨워 보였다. 그렇게 긴 기간, 그렇게 많은 텔레그램 메시지 등이 오는데 (김 지사가) 보지 않았다고 입증하기가 어려워 보였다.

이럴 게 아니라 드루킹의 행위 자체가 중범죄가 될 수 없음을 힘을 합쳐 소명했어야 한다. 드루킹에 대한 유죄판결은 이미 인터넷의 사회적 역할에 조종을 울린 날이었다.

물론 소프트웨어를 이용한 댓글/추천 올리기에 대해서 컴퓨터 업무방해죄를 적용한 사례들이 있지만 내가 아는 한 모두 벌금형 정도였다. 당연하다.

 

첫째, 다른 이용자들에게 피해를 준 것도 아니고 컴퓨터들이 작동하는 방식대로 그 결을 따라 이용을 했고 일일이 손으로 할 것을 자동화한 것뿐인데 이걸 갑자기 범죄로 몰아치는 것은 신뢰 이익에 어긋난다. 미국 교수에게 웹사이트라는 게 원래 막노동으로 하던 걸 자동화한 것인데 웹사이트 만드는 것도 범죄냐고 반문한다. OECD 국가 중에서 매크로 어뷰징을 범죄로 처벌하는 나라 있으면 제발 알려달라.

둘째, 한국의 인터넷 규제가 유별나서 드루킹의 행위도 처벌된다고 치자. 다른 댓글들에 쏠렸을 관심을 가로챘다는 잘못이 있다. 오프라인에 비교하자면 길거리에서 가두확성기를 불법데시벨로 틀어놓은 정도의 일이다. 절대로 징역 살 일이 아니다.

네이버 '업무방해'로 징역 2년?

업무방해? 네이버의 업무에 대한 손해가 정녕 징역 2년어치가 되는가? 네이버의 실명 정책을 어겼다고 한들 그건 네이버의 비지니스모델일 뿐 국가가 개입해서 형사처벌로 보호할 일인가?

더욱이 지인들이 자신의 계정을 제공해준 것이라면 실명정책을 어기기는 한 것인가? 네이버가 각자 스스로 쓴 댓글로 여론을 보여주려고 한다는 것도 네이버의 소망일 뿐 이용자들이 곧이곧대로 안 따라 주면 범죄가 되는가?

교수가 좋은 학생들 키우고 싶어서 제발 하루에 10시간 이상 공부하라고 얘기하는데 학생들이 10시간 공부 안 하면 교수에 대한 업무방해가 되는가? 검찰이 업무방해죄로 노조 탄압할 때 사용자가 피해 없다고 해도 막무가내로 노조에게 업무방해죄 뒤집어씌울 때가 자꾸 생각난다.
 
 19대 대통령 선거 등을 겨냥해 댓글 조작을 벌인 혐의로 기소된 '드루킹' 김동원 씨가 30일 오전 서초구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리는 선고공판에 출석하기 위해 호송차에서 내려 법정으로 향하고 있다. 2019.1.30
▲  19대 대통령 선거 등을 겨냥해 댓글 조작을 벌인 혐의로 기소된 "드루킹" 김동원 씨가 30일 오전 서초구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리는 선고공판에 출석하기 위해 호송차에서 내려 법정으로 향하고 있다. 2019.1.30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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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론 훼손? 네이버 댓글 양상이 언제부터 여론이 되었는가? 사람들이 많이 몰리면 그냥 그건 여론이 되고 거기서 다른 사람이 안 쓰는 도구를 써서 주의를 끌면 여론훼손죄가 되는가?

'미네르바' 사건과 비슷한 냄새가 난다. 페이스북이 나오기 전인 2008년, 다음 아고라에서 활동하던 미네르바는 수십만 명의 팬을 거느렸다. 이 수십만 명이 몰리는 걸 보고 여론을 호도한다며 난리 쳐서 미네르바가 처벌을 당했다.

게다가 여론훼손죄라는 것 자체가 존재하지 않는데 이런 식으로 처벌하는 건 '원님 재판'으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근대국가에 여론훼손죄는 이정현씨가 최근 유죄판결을 받은 방송간섭죄밖에 없고, 방송은 방송에게 주어진 특수하고 독점적인 임무 때문에 그런 보호를 받는 것이다.

국민들이 '좌표' 찍으면 불법인가

언론소비자주권캠페인의 활동이 생각난다. 소비자 불만전화는 소비자 불만을 털어놓으라고 만든 곳이고 소비자들이 전화해서 '당신 물건 팔아줬는데 당신네 회사가 조중동에 광고해서 기분나쁘다'라고 불만 털어놓았더니, 불만을 조금 많이 털어놓았다고 업무방해죄로 처벌당했다.

네이버 게시판은 이용자들이 댓글을 달고 추천하라고 만들어놓았고, 드루킹은 댓글을 달고 추천하는데 더 열심히 하려고 소프트웨어를 이용했더니 업무방해죄로 처벌되고 있다. 애당초 알고리즘의 기능방식을 그대로 이용한 것이므로 원래 컴퓨터 업무방해죄의 입법목표였던 해킹도 아니었다.

인터넷을 통해 대중들이 자유롭게 이합집산하며 의견을 표시했던 날은 이제 종지부를 찍는 것인가? 이제 인터넷은 대중운동의 요람이 되지 못하고, 극우보수의 가짜뉴스와 일베의 혐오글들만 남기자는 것인가?

국정원 댓글과 비교하는 대목이 나오는데, 그때와 다르다. 2012년 국정원 댓글사건은 선거에 영향을 줘서 범죄가 된 게 아니라 국정원 직원들이 선거에 영향을 주려고 해서, 즉 국가의 주인은 국민이고 공무원은 종인데 종이 주인을 오도하려고 해서 범죄가 된 것이다.

국민들이 합법적인 도구를 이용해서 (매크로가 불법이라고 생각하는 분들 있는데 그럼 MS엑셀도 불법이다) 열심히 의사표시를 한 걸 가지고 불법이라고 주장하는 것부터 문제이다.

덧붙이는 글 | 글쓴이 박경신 기자는 고려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입니다. 이 기사는 박경신 교수의 페이스북 글을 본인의 동의를 얻어 편집해 게재한 것입니다. 박경신 교수의 자세한 주장은 '드루킹 '댓글조작' 의 형법 및 공직선거법 적용에 있어서 합헌적 해석의 필요성 ' 논문으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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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 “북미관계 최고, 제대로 된 비핵화 기회” 정보당국 회의론 정면 반박

 
트럼프 “북미관계 최고, 제대로 된 비핵화 기회” 정보당국 회의론 정면 반박
 
 
 
김원식 | 2019-01-31 11:18:07 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인쇄하기  메일보내기    
 
 


 

트럼프 “북미관계 최고, 제대로 된 비핵화 기회” 정보당국 회의론 정면 반박
“진전이 이뤄지고 있고, 김정은 곧 만나길 기대”… 미 조야 대북 회의론 조기 차단 포석

지지자들에게 주먹을 들고 호응하고 있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자료 사진)ⓒ뉴시스/AP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30일(현지 시간) 지금이 어느 때보다도 북미관계가 최고이고 제대로 된 비핵화 기회라며, 전날 댄 코츠 미 국가정보국(DNI) 국장의 의회 청문회 발언을 정면 반박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이러한 언급은 이날 트위터에 이란, 시리아 철군, 북한 등 자신의 외교정책을 비판한 코츠 국장의 언급을 조목조목 반박하며, 정보당국을 향해 “수동적이고 순진하며, 틀렸다”고 비판하는 과정에서 나왔다.

그는 북한 문제와 관련해 “북한과 미국의 관계는 과거 그 어느 때보다도 최고(best)”라면서 “(핵) 실험도 없고 유해들이 송환되고 있으며, 인질들이 돌아왔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지금이) 비핵화의 제대로 된(decent) 기회”라고 강조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어 “북한에 어떤 일이 일어날지는 시간이 말해줄 것이지만, 이전 (미국) 행정부 말기에는 끔찍했고 매우 나쁜 일이 일어나려고 했었다”면서 “지금은 완전히 이야기(story)가 달라졌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나는 곧(shortly) 김정은을 보게 되길 기대한다”면서 “진전이 이뤄지고 있다. (이것이) 큰 차이!”라고 강조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30일(현지 시간) 트위터를 통해 지금이 북미관계가 최고이고 제대로 된 비핵화 기회라며, 미국 정보기관의 최근 평가를 정면 반박했다.ⓒ트럼프 공식 트위터 캡처

트럼프 대통령의 이러한 언급은 특히, 미 정보당국 수장이 북한 비핵화에 대한 불신론을 언급한 것에 관해 미국 조야에서 2차 북미정상회담에 관해 회의론이 이는 것을 조기에 차단하고, 북미협상의 동력을 확보하려는 차원으로 풀이된다.

앞서, 전날 코츠 국장은 미 의회 상원 정보위 청문회에 출석해 “현재 우리는 북한이 그들의 WMD(대량파괴무기) 역량을 유지하려고 하고, 핵무기와 생산 능력을 완전히 포기하지 않을 것으로 평가한다”면서 북한이 핵무기를 완전히 포기하지 않을 것이라고 언급했다.

이에 관해 외신과 미 주류 언론들은 그동안 비핵화에 많은 진전이 있었다면서 대북 낙관론을 펴온 트럼프 대통령의 입장과 상충하는 것이라며, 미국 정보기관 수장들의 입장이 트럼프 대통령과 ‘충돌’했다고 보도했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트위터에 자신의 외교정책과 차이를 빚은 코츠 국장의 언급을 하나씩 비판하며 “정보기관(Intelligence)은 아마도 학교로 돌아가야 할 것!”이라면서, 경우에 따라서는 코츠 국장을 비롯한 정보기관 수장들은 교체할 수도 있음을 시사했다.

*‘민중의소리’에 게재된 필자의 기사입니다.

 
본글주소: http://poweroftruth.net/column/mainView.php?kcat=2021&table=newyork&uid=2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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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한국당의 ‘보이콧 흑역사’를 낱낱이 파헤쳐드립니다

[정치톡] 자유한국당 국회 보이콧 ‘전수조사’해보니…결론은 ‘빈손 회군’

남소연 기자 nsy@vop.co.kr
발행 2019-01-31 08:58:00
수정 2019-01-31 08:58:00
이 기사는 번 공유됐습니다
 
자유한국당 나경원 원내대표
자유한국당 나경원 원내대표ⓒ김슬찬 기자
 
 

조해주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상임위원의 임명을 두고 연초부터 자유한국당이 국회 보이콧을 선언했습니다. 전무후무한 상상력을 발휘한 '5시간 30분 릴레이 단식 농성'으로 덩달아 국회 보이콧도 떠들썩하게 알려졌죠.

그런데 자유한국당의 보이콧 선언에 왠지 모르게 기시감이 듭니다. 왜일까요?

기억을 되짚어보니 일 년 전에도, 불과 몇 달 전에도 자유한국당이 국회를 멈춰 세웠기 때문입니다. 여야 불문 자유한국당을 두고 "습관성 보이콧 정당"이라는 촌평이 나오지만, 자유한국당은 이러한 기억을 잊어버렸다는 듯 되려 역정만 내고 있습니다.

자유한국당의 잃어버린 기억을 되찾아 주기 위해서라도 민중의소리가 20대 국회가 시작된 이후부터 현재까지 자유한국당이 보이콧 흑역사를 꼼꼼히 따져봤습니다. 대체 자유한국당은 얼마나 많은 국회를 멈춰 세웠던 걸까요. 그리고 왜 보이콧을 했고, 보이콧을 통해 자유한국당이 얻은 것은 또 무엇일까요. 

20대 국회만 해도 24번이나 국회가 열렸으나 
자유한국당 보이콧만 무려 11번
 

자유한국당 보이콧에 텅빈 회의장. 자료사진
자유한국당 보이콧에 텅빈 회의장. 자료사진ⓒ정의철 기자

20대 국회 들어 국회는 총 24번 열렸습니다. 정기국회가 3번, 임시국회가 21번인데요. 국회법에서 규정한 정기국회와 2·4·6·8월 임시국회를 제외하더라도 12차례 임시국회가 추가로 열린 것입니다.  

이 중 자유한국당이 국회를 보이콧한 사례는 총 11번으로 절반에 가깝습니다. 매 회기마다 다른 이유로 자유한국당발 국회 파행사태가 이어진 셈이죠. 야당일 때는 물론이고, 심지어 국회 운영을 원만하게 이끌어야 할 여당일 때에도 보이콧을 서슴지 않았습니다.

박근혜 정부 시절 자유한국당의 전신인 새누리당은 '여소야대' 지형 핑계를 대며 여당임에도 불구하고 무려 4번이나 국회 파행 사태를 자초했습니다. 심지어 당시 박근혜 대통령이 임명한 장관들의 인사청문회조차 들어가지 않으면서 야당만 청문회에 참석하는 황당한 상황이 벌어지기도 했습니다.  

촛불혁명으로 여야가 뒤바뀌자 자유한국당의 보이콧은 좀 더 노골적으로 변했습니다. 이번처럼 문재인 대통령의 인사에 반발하며 되려 '협치를 파괴했다'고 주장하는 식이죠. 채용 비리 등에 연루된 자당 의원을 검찰 소환으로부터 지키기 위한 '방탄국회'를 열고, 파행시키고, 곧바로 또다시 방탄국회를 연 사례도 빠져서는 안 됩니다. 이를 바탕으로 자유한국당의 보이콧 흑역사 유형을 총 4가지로 나눠 봤습니다. 

◆유형 1:"헌정사상 처음" 집권여당이 국회 파행의 중심에 

2016년 국회 본회의장에서 열린 정기국회 개회식에서 정진석 새누리당 원내대표가 정세균 국회의장에게 개회사를 문제 삼아 항의하고 있다.
2016년 국회 본회의장에서 열린 정기국회 개회식에서 정진석 새누리당 원내대표가 정세균 국회의장에게 개회사를 문제 삼아 항의하고 있다.ⓒ뉴시스

먼저, '집권여당도 보이콧한다' 형입니다. 여당이 국회 파행의 중심에 서고 야당이 국회를 지키는 이 웃지 못할 상황은 2016년 실제로 벌어졌습니다. 

2016년 7월 임시 국회, 박근혜 정부 당시 여당이었던 새누리당(자유한국당의 전신)은 당시 야당이었던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당이 국회 환경노동위원회에서 결산안을 처리한 데 대한 반발로 국회 보이콧을 선언했습니다. 상임위 한 곳의 문제를 빌미로 전체 국회를 멈춰 세운 것입니다.

당시 새누리당 정진석 원내대표는 "야당의 사과"를 국회 정상화의 조건으로 내걸었는데요, 환노위원장이었던 홍영표 민주당 의원이 원론적인 유감을 표명하자 보이콧 선언 후 겨우 '반나절' 만에 국회 복귀를 선언했습니다.  

2016년 정기국회 첫날에도 '여당발 국회 파행 사태'가 발생했습니다. 정세균 국회의장이 국회 개회사에서 우병우 전 민정수석과 사드 배치 논란을 언급하자, 이를 빌미로 새누리당이 국회 일정을 또다시 전면 거부한 것입니다. 

이때 새누리당이 보여준 모습은 집권여당이라고 하기에는 가히 민망한 수준이었습니다. 의원 수십 명이 국회의장실로 몰려가 항의하고, 정 의장에 대한 사퇴 촉구 결의안까지 제출했을 정도였으니까요. 

이 때문에 박근혜 대통령이 지명했던 김재수 농림축산식품부 장관 후보자에 대한 국회 인사청문회는 여당 의원 없이 진행되는 사태도 벌어졌습니다. 참고로, 이 보이콧이 있기 하루 전날에도 비슷한 상황이 벌어졌었는데요. 당시 조윤선 문화체육관광부 후보자에 대한 국회 인사청문회도 새누리당 의원들이 불참하면서 야당 의원들만 참여한 채 진행됐습니다. 여당이 없는 청문회는 인사청문회 제도가 도입된 이후 처음이라고 하죠? 

새누리당은 국회를 정상화시키기 위해서 정 의장의 사퇴와 본회의 사회권 이양, 재발방지책 등을 요구했고, 일단 정 의장이 박주선 당시 국회부의장에게 사회권을 넘기면서 20대 국회 첫 정기국회가 다시 정상화되는 듯했습니다. 

2016년 국회 본청 앞에서 열린 ‘정세균 사퇴 관철을 위한 새누리당 당원 규탄대회’에서 규탄발언을 마친 이정현 대표가 정진석 원내대표와 포옹하고 있다.자료사진
2016년 국회 본청 앞에서 열린 ‘정세균 사퇴 관철을 위한 새누리당 당원 규탄대회’에서 규탄발언을 마친 이정현 대표가 정진석 원내대표와 포옹하고 있다.자료사진ⓒ정의철 기자

하지만 이후 정기국회는 또다시 파행됐습니다. 이번엔 야당이 제출한 김재수 농림축산식품부 장관 후보자의 해임결의안이 본회의에서 통과되자 국회가 정상화된 지 3주 만에 또 보이콧을 선언한 것입니다. 당시는 국정감사 기간이었는데요, 새누리당은 정 의장의 사과와 즉각적인 사과 없이는 국회를 정상화하는데 협조할 수 없다고 으름장을 놓았습니다. 

이 과정에서 새누리당의 내부 균열로 웃지 못할 해프닝도 많이 발생했습니다. 강경투쟁을 해야 한다는 친박계와 국회에 복귀하자는 비박계가 충돌한 것이죠. 

심지어 국회 국방위원회 위원장이었던 김영우 새누리당 의원은 당론과 달리 국정감사를 진행하겠다고 하자, 새누리당 의원들이 김 의원을 '감금'하는 사태도 발생했습니다. 김 의원은 당시 국방위원들에게 "제가 지금 국방위원장실에 갇혀있다"는 'SOS' 문자를 보내기도 했습니다. 112에도 김 의원이 감금돼 있다는 신고가 접수돼, 경찰이 국회에 출동하는 해프닝도 벌어졌습니다.

새누리당의 강공에도 정 의장이 꿈쩍 않자, 이정현 당시 새누리당 대표는 단식 투쟁에 들어갔습니다. 마침 이 때는 박근혜 전 대통령의 비선실세 의혹이 서서히 드러나는 시점이기도 했는데요. 뜬금없는 이 대표의 단식 투쟁은 박 전 대통령을 향한 의혹 확산을 사전에 차단하기 위한 의도가 아니였냐는 뒷말도 나왔습니다. 

이때부터 새누리당의 출구전략은 꼬이기 시작했습니다. 단식 중이던 이정현 대표가 의원들에게 국정감사 복귀를 당부했지만 이를 의원들이 수용하지 않았고, 오히려 동조 단식에 나서는 등 투쟁 수위는 점차 높아졌습니다. 결국 이 대표가 일주일 만에 단식 중단을 선언하고 나서야 새누리당은 슬그머니 국회로 돌아왔습니다.  

당시 원내 투쟁을 담당했던 정진석 원내대표는 "국회의장의 당파적, 편파적 국회 운영의 횡포를 바로잡으라는 것도 국민의 뜻이고 동시에 집권여당으로서 국정감사에 복귀해 국정 책임을 다하라는 것도 국민의 뜻"이라며 국회 복귀 명분에 대해 설명했습니다. 

새누리당이 당초 요구했던 국회의장의 즉각적인 사퇴는커녕 사과조차 받아내지 못하면서 대다수의 언론은 '빈손 회군'이라는 혹평을 내놓았습니다. 집권 여당이 정치력을 통해 문제를 해결하기보다 주로 야당이 하는 국회 보이콧을 일삼으면서 새누리당 스스로 여당으로서의 무능력을 입증한 꼴이었죠. 

한 해가 지난 2017년 2월 국회에서도 어김없이 새누리당은 상임위 파행 사태를 빌미로 국회 보이콧을 선언했고, 이때에도 야당과 원론적인 합의를 타결한 후 국회로 돌아왔습니다.

◆유형 2:국회 내팽개치는 대신 정부 발목 잡자 

정우택 자유한국당 원내대표와 의원들이 과거 국회에서 열린 자유한국당 의원총회 중 열린 강경화 외교부 장관 임명 문재인 대통령 규탄대회에서 규탄 피켓을 들고 있다.
정우택 자유한국당 원내대표와 의원들이 과거 국회에서 열린 자유한국당 의원총회 중 열린 강경화 외교부 장관 임명 문재인 대통령 규탄대회에서 규탄 피켓을 들고 있다.ⓒ양지웅 기자

이제부터는 여야가 바뀝니다. 야당이 된 자유한국당의 보이콧 선언은 조금 더 황당한 이유로, 더 자주 벌어지는데요. 자유한국당의 보이콧 두 번째 유형은 '정부 힘 빼기' 형입니다.

대선 직후 문재인 정부가 주요 정부 부처 인사들을 잇따라 발표했던 2017년 6월 임시국회와 7월 임시국회에서 자유한국당은 또다시 보이콧 카드를 남발했습니다.

6월 임시국회에서는 강경화 외교부 장관의 임명이 발단이 됐습니다. 당초 이낙연 국무총리와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이 임명될 때부터 보이콧 가능성이 거론됐지만, 집권 초 문재인 대통령의 높은 지지율로 인해 전면적인 대여 투쟁을 나서는 데에는 부담을 느끼는 듯 보였습니다.

그러나 강 장관이 임명되자마자 당시 자유한국당 정우택 원내대표는 '여권과 냉각기를 가져야 한다'는 이유로 하루 이틀 정도 상임위 활동을 전면 중단하기로 합니다. 야당이 반발한 인사를 임명한 데 대한 일종의 항의성 보이콧인 셈이지만, 그야말로 국정을 발목잡기 위한 '몽니'라는 인상을 지울 순 없었습니다.  

보이콧을 할 명분이 부족했던 만큼 국회 정상화를 위한 여야의 합의도 사실상 유의미한 내용이 없었습니다. 당시 자유한국당은 문 대통령의 사과와 인사 검증 책임을 묻기 위한 국회 운영위 개최 등을 요구했지만, 여야는 7월 중에 정부로부터 업무 보고를 받기로 하고 국회 파행 사태를 매듭지었습니다.  

7월 임시국회도 문재인 정부의 인사로 인한 국회 파행 사태가 이어졌습니다. 자유한국당이 당시 '부적격 3종 세트'로 규정한 김상곤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 후보자, 송영무 국방부 장관 후보자, 조대엽 고용노동부 장관 후보자 중 김상곤 사회부총리가 임명되자 또 보이콧을 선언한 것입니다.  

그러나 자당이 정부를 향해 공세를 펼칠 수 있는 안보 관련 상임위원회는 선택적으로 열기로 하면서, 과연 자유한국당의 보이콧이 진정성이 있는 것이냐는 의문이 지속적으로 제기됐습니다.

그러던 중 자유한국당이 반드시 낙마시키겠다고 벼르던 '부적격 3종 세트' 가운데 한 명인 조대엽 후보자가 끝내 자진 사퇴하자 자유한국당은 국회 일정에 복귀하겠다고 선언했습니다.

◆ 유형 3:언론 정상화도 막고, 국회도 막자 

2017년 홍준표 자유한국당 전 대표가 국회를 보이콧 한 채 서울 강남구 코엑스 광장에서 열린 문재인 정권의 ‘5천만 핵인질ㆍ공영방송 장악 저지’ 국민보고대회에서 문재인 정부 규탄 발언을 하고 있다.
2017년 홍준표 자유한국당 전 대표가 국회를 보이콧 한 채 서울 강남구 코엑스 광장에서 열린 문재인 정권의 ‘5천만 핵인질ㆍ공영방송 장악 저지’ 국민보고대회에서 문재인 정부 규탄 발언을 하고 있다.ⓒ정의철 기자

이 사진, 기억하시나요? 자유한국당이 2005년 이후 12년 만에 장외투쟁에 나서기로 하면서 큰 관심을 모았던 바로 그 집회의 한 장면입니다. 

이때도 어김없이 자유한국당은 국회를 보이콧했습니다. 그런데 이 보이콧의 명분은 너무나도 황당해서 따로 유형을 분류해야 했습니다. 바로 '국회도 막고, 언론 정상화도 막자' 형입니다.

2017년 정기국회 당시 자유한국당은 보도통제·부당노동행위 책임자로 지목된 김장겸 MBC 전 사장 체포영장 발부에 반발하며 정기국회 일정을 전면 보이콧했습니다. 자유한국당은 김 전 사장에 대한 체포영장은 언론 탄압, 자유민주주의 파괴로 규정하며 장외투쟁까지 불사했는데요.

너무나도 황당한 명분에 국회를 내팽개치고 언론 정상화를 막았다는 비판이 제기됐습니다. 당시 노회찬 정의당 원내대표가 이러한 보이콧을 두고 "학교 앞에 자기들이 잘 다니던 분식점 가게 주인이 구청에 소환됐는데 수업을 왜 거부하는 것이냐"라며 촌철살인 평가를 내놓기도 했죠. 보수정당인 당시 바른정당마저도 자유한국당의 '국회 파업'을 외면했을 정도였습니다.

그러나 날이 갈수록 자유한국당의 보이콧 명분은 하나씩 더해졌습니다. 공영방송 장악 저지를 외쳤던 보이콧은 북한의 핵실험을 빌미로 사드 추가 배치 완수, 대북정책 기조 전환 등 자당의 필요에 따라 이런저런 명분이 추가돼 도대체 무엇을 요구하는지 가늠하기조차 힘든 상황이었는데요.

이쯤 되면 출구전략을 찾는 것도 어려워집니다. 홍준표 당시 대표는 문재인 대통령의 해외 순방 중에는 장외투쟁을 중단하겠다며 슬슬 발을 뺄 준비를 하고, 정우택 원내대표도 정부가 언론장악 시도를 하지 않겠다는 분명한 의사 표시가 있다면 국회로 복귀하겠다는 국회 정상화 조건을 밝힙니다. 

결국 이 보이콧의 끝은 어떻게 됐을까요. 정우택 원내대표가 국회에서 정부를 향해 강력한 질타를 이어나가겠다는 선언을 하며 또다시 일주일 만에 '빈손 회군'을 했습니다.

그로부터 45일 만에 자유한국당은 여당에서 MBC 대주주인 방송문화진흥회 이사 임명 절차를 밟자 또 반발하며 보이콧을 선언했습니다. 자유한국당은 당초 자신들이 '여당 몫'으로 추천한 방문진 이사가 사퇴해 생긴 공석이니, 자신들이 추천한 인사를 선임해야 한다는 논리였습니다.

그러나 이번 보이콧 역시 명분이 없다는 비판에 직면해야 했고, 자유한국당은 불과 나흘 만에 보이콧 해제를 선언했습니다.  

◆ 유형 4:우리 당 의원은 우리가 지킨다! 방탄국회 

권성동 자유한국당 의원
권성동 자유한국당 의원ⓒ임화영 기자

마지막 유형은 온 국민을 공분하게 했던 '방탄국회' 형입니다. 

2018년 2월 임시국회, 당시 국회 법제사법위원장이었던 자유한국당 권성동 의원은 강원랜드 채용비리 수사 대상이었는데요. 이 때 권 의원이 수사 과정에 외압을 행사했다는 의혹이 불거지면서 법사위 회의도 파행을 면치 못했습니다. 민주당 의원들은 수사외압 의혹을 받고 있는 법사위원장이 법사위 회의를 주재하는 것은 부적절하다며 권 의원의 법사위원장직 사퇴를 요구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자유한국당은 이를 빌미로 국회 보이콧을 시작합니다. 결국 자당 소속 의원을 감싸기 위해 국회 전체를 멈춘 것입니다.  

국회 파행을 이어갈 수 없었던 당시 우원식 민주당 원내대표는 자유한국당의 사과 요구를 받아들여 짤막한 유감 표명을 했고, 이에 흡족했던 김성태 원내대표는 더 이상 문제 제기를 않겠다며 보이콧을 중단했습니다.  

보이콧 선언까지는 아니지만, 자당 의원의 검찰 소환을 막기 위한 국회 파행 사태는 이후에도 반복됐습니다. 2018년 4월 임시국회는 본회의가 한 번도 안 열린, 그야말로 개점휴업 상태로 끝났음에도 자유한국당은 4월 임시국회 회기 종료 이후 단 하루도 쉬지 않고 5월 임시국회를 단독 소집합니다. 

왜 그랬냐고요? 

현역 국회의원은 국회에서 체포동의안을 처리해야만 영장실질심사를 할 수 있는데요, 4월 국회부터 국회 파행 사태가 반복되면서 자유한국당 홍문종·염동열 의원의 체포동의안 처리가 계속 미뤄졌습니다. 그리고 이 파행의 원인은 자유한국당의 몽니로 인해 발생한 경우가 대다수였죠. 국회를 또 다시 열면 국회 파행을 명분으로 두 의원의 체포동의안 표결을 미룰 수 있는 기회가 생기는 셈입니다. 이걸 두고 방탄국회라고 하는 것이죠. 

당연히 5월 임시국회도 제대로 열릴 리가 없었습니다. 더욱이 이 시기는 김성태 원내대표가 드루킹 댓글조작 의혹을 규명하기 위한 특검 도입을 요구하며 단식 농성을 벌이던 때였습니다. 사실상 보이콧 선언을 하지 않았을 뿐 국회는 파행을 거듭했습니다.  

그런데 자유한국당은 6월 임시국회를 또 단독으로 소집합니다. 지난해 6월 13일에는 지방선거와 재보궐 선거가 예정돼 있어 실질적으로 국회가 제대로 운영될 수 없는 상황이지만, "국회가 해야 할 일이 많다"는 이유로 국회를 소집한 것이죠. 이 역시 권 의원을 지키기 위한 방탄국회 만들기라는 비판이 쏟아졌고, 6월 임시국회도 본회의 한번 열지 못한 채 회기를 종료했습니다.

명분 없는 보이콧→출구전략 고심→빈손회군 
반복되는 자유한국당의 보이콧, 결국 피해는 누가?
 

김병준 자유한국당 비상대책위원장과 나경원 원내대표를 비롯한 2.27 전당대회 당 대표 후보들 및 당원들이 27일 국회 본청 앞 계단에서 열린 좌파독재 저지 및 초권력형비리 규탄대회에서 구호를 외치고 있다.
김병준 자유한국당 비상대책위원장과 나경원 원내대표를 비롯한 2.27 전당대회 당 대표 후보들 및 당원들이 27일 국회 본청 앞 계단에서 열린 좌파독재 저지 및 초권력형비리 규탄대회에서 구호를 외치고 있다.ⓒ김철수 기자

자유한국당 보이콧 흑역사를 정리해보니, 고구마를 100개 먹은듯한 답답함이 밀려옵니다. 더 놀라운 사실은 지금까지 정리한 사례들은 국회 자체를 보이콧한 경우에 한정했다는 점입니다. 각종 상임위 파행까지 포함하면 헤아릴 수 없을 정도입니다. 

자유한국당의 보이콧에는 일정한 패턴을 찾을 수 있습니다. 명분이 부족한 보이콧을 남발하고, 이 때문에 출구전략을 찾는 것도 쉽지만은 않았다는 점입니다. 보이콧을 계속하자니 여론의 반발이 심상치 않고, 그렇다고 중간에 포기할 명분 역시 없었던 셈이죠.

이 때문에 당초 자유한국당이 국회 정상화 요건으로 내세운 내용보다 훨씬 부족한 안으로 협상하게 되면서 빈손 회군이라는 비판이 잇따라 나오게 됩니다. 결국 국회를 멈춰 세워놓고 역풍만 자초한 모양새입니다. 

이번 국회 파행 사태도 비슷할 것으로 전망됩니다. 특히 이번엔 자당이 소집하자고 요구한 1월 임시국회에 이어 2월 임시국회 보이콧까지 예고해둔 상태라 더 큰 비판을 불러일으킬 것으로 전망됩니다. 

지금의 자유한국당 보이콧을 두고 국민의 원성이 자자한 이유는 비단 '5시간 30분 단식'이라는 농성 방식 때문만은 아닐 것으로 보이는데요. 오히려 여당일 때나 야당일 때나 민생현안은 뒤로 한 채 국회 파행을 주도해 온 그동안의 자유한국당 행태 탓이겠죠.

당연한 이야기지만 국회 파행으로 필요한 법안이 제때 통과되지 못한다면 그 피해는 온전히 국민들에게 돌아갑니다. 자유한국당은 지금이라도 자신들의 과오를 돌아보고 자성할 수 있을까요. 다가오는 2월 임시국회에 임하는 자유한국당의 태도를 다 같이 지켜보셔야 할 것 같습니다.

 

‘정치톡’은 정치팀 기자들이 여의도 한복판에서 벌어지는 이슈의 전말을 옆 사람에게 이야기하듯 풀어내는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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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 통일에 인디언 추장을 앞세우자!

<기고> 김상일 전 한신대학교 교수
김상일  |  kimsykorea95@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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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9.01.30  20:33: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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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일 / 전 한신대학교 교수

 

역사는 반복하지 않는다고 하지만, 그것을 믿는 것은 바보 사관이다. 역사는 반복하기 때문에 성서 기자들은 역사를 뒤집어쓰고 있다. 창세기가 제일 처음 이야기이고, 출애굽기가 그 다음이 이야기인 것 같지만 사실은 이들 이야기는 기원전 4세기 경 바빌론 포로기에서 당한 처참한 경험을 들어 쓴 것이 창세기이고 출애굽기이다.

우리도 역사를 이렇게 쓰지 않고 편년체로 역사 서술하는 방법은 지양해야 한다. 이런 따위 역사책은 오히려 역사를 말살하는 결과를 초래 할 것이다. 아래 이야기는 아즈텍이 스페인한테 당한 경험이 우리가 일본한테 당한 그것과 너무 같아서 타산지석으로 귀감삼아 쓴 것이다. 아즈텍과 북미주 인디언들은 백인들의 속임수에 망한 경험이 있다. 이들의 경험담을 듣는 것은 우리에게 반면교사가 될 수 있을 것이다.

1969년 7월 20일 아폴로 우주 비행사 닐 암스트롱과 버즈 올드린은 달 착륙 우주여행을 앞두고 미 서부 모하비 사막에서 훈련을 하고 있었다. 이 사막은 지구상에서 가장 달의 표면과 유사한 동시에 나바호와 호피 등 아메리카 원주민들이 가장 많이 살고 있는 지역이다. 어느 날 훈련 중이던 이들 우주 비행사들이 인디언 원주민 노인과 우연히 조우할 기회가 있었다.

이 원주민이 우주비행사들에게 이곳에서 무엇을 하고 있느냐고 묻자, 우주비행사는 달 탐사를 위해 지금 훈련을 하고 있는 중이라고 했다. 그러자 이 노인은 잠깐 침묵을 하다가 달나라에는 정령이 살고 있다고 믿는데 달에 가게 되면 꼭 자기 말을 전해 달라고 했다.

비행사들이 노인에게 “무슨 말을 전하기를 원하느냐”과 하니 노인은 자기들의 고유한 언어로 몇 마디 중얼거렸으나 비행사들은 그 말의 뜻을 이해할 수 없었다. “그것 무슨 뜻이요” 하고 묻자, 그 말은 우리와 정령들 사이에서만 통하는 것이기 때문에 말할 수 없다고 했다.

기지로 돌아온 비행사들은 원주민 어를 할 수 있는 사람을 찾아내 그 말의 의미를 통역해 달라고 했다. 통역사는 원주민의 말을 이렇게 번역을 했다.

“이 사람들이 하는 말은 한 마디도 믿지 마세요. 이들은 당신들의 땅을 훔치러 왔어요.”

위의 글은 유발 하라리의 “사피엔스”(403-4)에 나오는 한 토막의 일화이다. 하라리는 전쟁사로 학위를 받아 전 세계 전쟁이야기들을 많이 알고 있다. 아래 이야기들 역시 그의 책에서 발췌하여 설명을 부연한 것이다.

해방이 되자 “미국놈 믿지 말고 소련놈에 속지 말라”고 했다. 배우지 못한 민중들은 그들의 정체를 알았었다. 그러나 유학까지 갔다 온 이승만 같은 식자들이야 말로 소련에 속고 미국의 거짓말에 다 넘어갔다. 그리고 민중들에게 자기들의 어리석음을 설파하고 주입시켰다.

서울역과 시청 앞 광화문 광장을 휘저으며 양손에 태극기와 성조기를 들고 떠도는 부대들, 이들이 바로 이들 식자들한테 기만당하고 속은 자들이다. 기독교회 안은 이런 우중들의 집합소와 같다. 인디언들은 서구 제국주의에 속은 경험이 있다. 그래서 이들을 앞세우고 그들의 말에 경청을 하면 타산지석으로 통일에 귀감이 될 것이다.

1492년 콜럼버스가 아메리카 대륙을 향해 항해한 것보다 조금 뒤인 1519년 스페인의 코르테스는 멕시코에 상륙했다. 그 사이에 스페인은 이미 카리브제도의 여러 섬들을 이미 다 점령하고 있었다. 멕시코의 카리브 연안에는 마야 인들이, 그리고 지금의 멕시코 시 주변에는 아즈텍 인들이 살고 있었다. 코르테스의 배를 타고 있던 사람들은 고작 4-500여 명에 불과했다. 이들이 어떻게 수백만 명의 아즈텍 인들을 섬멸했는지 그 과정을 알아보자.

아즈텍들은 자기들의 눈앞에 나타난 이 미지의 인간들의 정체를 몰랐었다. 심지어는 하늘에서 내려 온 신들로 여기기까지 했었다. 그러나 스페인들은 아즈텍들이 무지하고 미개하다는 사실을 알았다. 그래서 이들을 철저하게 속이기로 했다. 어떻게 속였고 아즈텍들은 어떻게 속았는가? 이 사실을 아는 것은 우리에게 만 가지로 도움이 된다.

1519년 7월 멕시코 해안에 닻을 내린 날은 화창한 날씨였다. 해변가에 모여 나온 아즈텍들은 이 외지의 인간들을 신기하고 나아가 경외로운 눈으로 바라보았다. 차마 이들이 자기들을 모조리 섬멸할 것이라곤 상상도 못했었다. 코르테스는 이 구경꾼 현지인들에게 “우리는 평화적인 목적으로 왔다. 너희 지도자에게 우리를 안내하라”고 하면서 코르테스 자신은 스페인 왕의 평화 사절단을 이끌고 왔다고 자처했다. 물론 이것은 거짓말이다.

코르테스는 뻔뻔한 거짓말을 하고 있으며, 탐욕스럽게도 잔인무도한 군인들을 끌고 왔으며, 그는 스페인 왕의 사절도 물론 아니었다.

그 당시 아즈텍의 지도자는 몬테주마 2세(1502-1520)였다. 코르테스의 말을 그대로 들은 현지인들은 그의 호위무사가 되어 그를 몬테주마 2세에게 안내한다. 그러나 코르테스는 몬테주마 2세와 접견하는 바로 그 순간에 몬테주마 2세의 경비병들을 모두 학살하고 몬테주마 2세를 고립무원의 상태로 만들고 말았다. 이 때 경비병들은 고작 나무 곤봉과 돌칼 밖에는 가진 것이 없었고, 코르테스의 군인들은 강철무기를 들고 있었다. 그래도 선군정치가 왜 필요한지를 모르는가?

아무리 강철무기를 들고 있다고는 해도 자기 군인들은 기백 명에 불과하고 자기는 수십만 명의 아즈텍 군인들과 수백만 명의 민간인들에 의해 포위당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는데 코르테스는 얼마나 간이 컸으면 어떻게 이 위기를 뚫고 멕시코를 점령할 수 있었던가? 그는 간이 컸을 뿐만 아니라 뱀 같은 지혜를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지금부터 우리는 서양 제국주의자들이 어떻게 우리 아즈텍을 속이고 지금도 우리를 속이고 있는가에 촉각을 세우고 보아야 할 것이다.

코르테스는 수하에 기백 명뿐인 군인들을 거느리고 있었고, 증원군은 무려 1500킬로미터나 떨어져 있었다. 그러나 그는 어떻게 기백만의 아즈텍을 손아귀에 넣을 수 있었던가? 일본이 조선을 먹을 때도 군인 기백 명에 불과했었다.

여기에는 원주민의 무지와 어리석음이 결정적인 원인이 되었다. 코르테스가 계속해대는 거짓말에 몬테주마 2세도 아즈텍 인들도 다 속아 넘어갔다. 그 어떤 무기보다도 ‘어리석음’이야말로 가장 취약하고 아니 가장 위험천만한 침략의 통로가 되었다. 이는 우리나 아즈텍이나, 그리고 예나 지금이나 마찬가지이다.

코르테스는 몬테주마 2세를 궁전에 가두어 놓고 마치 왕은 포로로 잡혀 있는 것이 아닌 것처럼 꾸몄고, 스페인 대사로 위장한 그는 손님인 것처럼 위장하였다. 일본이 고종을 가두어 놓고 자기들은 전권대사인 것처럼 행세하는 것이나 하나 다를 것이 없다.

아즈텍 조직은 중앙집권적이었고 이는 최대의 약점으로 작용했다. 아즈텍의 중추 신경을 건드리고 마비시켜 놓으니 몬테주마 2세는 식물인간으로서 왕권을 구사해 나갔고, 신하들도 그의 말에 맹목적으로 순종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왕만 치면 그 구조는 순식간에 무너질 수밖에 없었다. 중앙집권적이라도 지도자는 인민을 위해 인민은 지도자를 위하는 호혜적인 관계이면 아무런 문제가 없었을 것이다. 여기에 부족장들의 반란은 불에 기름을 붓는 격이었다.

몬테주마 2세(1502-1520)는 영토를 확장하기 위해 지금의 온두라스, 니카라과에 해당하는 지역을 원정해 영토 확장에 성공, 이들 부족들로 부터 공물을 받아왔었다. 그러나 여러 부족들로부터 공물을 받아낸 것 때문에 반감을 사서 코르테스가 이끄는 군대가 아즈텍을 공격했을 때에 여러 부족장들이 오히려 코르테스에게 협력하는 계기가 되었다.

실로 몬테주마 2세도 부족장들도 어리석었다. 코르테스는 먼저 몬테주마 2세를 사로잡고 다음에서는 이들 부족장들도 모두 처형 내지 노예로 삼고 말았다. 남북 어느 쪽도 외세에 의존해서는 안 된다는 교훈이다.

1519년에 에르난 코르테스의 군대가 테노치티틀란을 침공하는 것을 저지하려 했으나 실패하고, 그 대신 코르테스의 군대가 도착하자 그를 환대해 자신들의 권위를 강조하려 했다. 결국 테노치티틀란의 중심부가 점거되었고, 코르테스의 협박으로 아즈텍 병사들이 코르테스의 군대에 맞서기 위해 1만 명의 전사를 소집해 대응했으나, 코르테스가 이끄는 불과 400명에게 제압당하고 말았다. 코르테스는 아즈텍의 내부 분란을 최대 활용해 400여 명으로 수백만 명을 굴복시켰다. 남북 분단 이 자체가 내부 분란이란 사실을 타산지석으로 여겨야 할 대목이다.

코르테스는 먼저 아즈텍 언어 구조를 철저히 연구하기 시작했으며 탐사대를 구성해 아즈텍 구석구석 돌아다니면서 문화 탐방을 철저히 하였다. 어쩌면 이것은 일제가 한 방법과 하나 다를 게 없어 보인다. 드디어 문화 전쟁으로 아즈텍 내부 안에서 스스로 내분이 생기도록 했다. 다시 말해서 아즈텍 지도급 인물들이 사분오열 갈라져 몬테주마 2세를 공격하기 시작한다. 부족 간 문화적 차이를 코르테스는 최대한 이용해 먹었다.

드디어 아즈텍은 내부로부터 무너져 내리기 시작한다. 아즈텍의 지배를 받고 있던 피지배 민족들은 스페인 코르테스와 싸우기는커녕 몬테주마 2세를 향해 화살을 돌렸다. 이들은 카리브 해 일대에서 코르테스가 저질러온 대학살에 대한 정보를 전혀 가지고 있지 않았던 것이다. 오히려 몬테주마 2세로부터 받은 원한으로 한에 사무쳐 있었다. 임진왜란 때에 탐관오리에 억압 받고 있던 토호들이 왜군에 협조한 형국이나 같아 보인다.

이들 부족 토호들은 어리석게도 코르테스의 도움을 받으면 몬테주마 2세의 억압에서 해방될 줄 알았었다. 이것은 큰 착오였고 무지와 어리석음은 언제 어디서나 같은 길을 걸어 왔다. 이들 토호들은 설마 스페인이 자기들을 지배하리라고는 상상도 하지 안하고 몰랐던 것이다. 아니 이들은 코르테스에게 수십만 명의 병력을 지원하기까지 했다. 일본이 우금치에서 동학군을 토벌할 때에 정부군이 일본군을 지원한 것이나 무엇 하나 다른가? 조선의 경우는 조선 왕조가 어리석었고, 아즈텍의 경우는 부족 토호들과 민중들이 어리석었다.

이러한 와중에, 스페인 본토에서 수만 명의 군인들이 들어오기 시작했고 심지어는 스페인 정착민도 같은 배를 타고 들어 왔다. 조선에도 얼마나 많은 일본인들이 군인들과 함께 들어 와 살았던가? 이들은 드디어 창씨개명까지 하면서 동족 말살 정책을 폈다.

아즈텍 현지인들이 이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그 자체를 깨달았을 때는 이미 늦었다. 코르테스가 도착한지 1세기 만에 원주민의 수는 90퍼센트 이상이 줄었다. 겨우 살아남은 10퍼센트마저 심각한 인종차별과 노예 수준의 지배를 받았다. 그 무엇보다 인종 말살의 위험성은 백인들의 혼혈 정책이었다. 북미 대륙의 침략자들과는 달리 멕시코와 남미에서는 혼혈 정책으로 지금 멕시코 인들은 스페인을 아버지 나라라고 부르고 있으며 적대 의식은 찾아볼 수조차 없다. 혼혈 정책으로 창씨개명이 저절로 되 버렸다. 순수 백인들은 지금 멕시코시에 약 10퍼센트 정도 살고 있으며 산간 지대에는 혼혈이 되지 않은 원주민들이 극소수 살아 남아있을 뿐이다. 대부분이 혼혈로 창씨개명 된 멕시칸들이다.

위에서는 스페인의 침략 정책과 일본의 그것을 비교하면서 우리의 처지를 이해하려 했다. 일본은 이미 한 세기 전에 서양의 이런 침략 정책을 철저히 알고 배워오고 있었다. 그 수법을 그대로 우리에게 적용했고, 우리는 아즈텍이 망하듯이 망하고 말았다.

아베는 지금 임진왜란과 구한말 식민통치 때 하던 수법을 그대로 구사하고 있다. 초계기 사건이란 일본의 마각을 드러내고 있는 전초에 불과하다. 지금 자유한국당은 철저하게 일본의 지령을 받고 있는 행동대원들이라고 보면 된다.

반기문이란 자는 외교에는 역사를 앞세우면 안 된다고 공공연히 말하고 있고, 이는 지금 자유한국당의 기본 외교 정책이다. 이들이 정권을 잡으면 아즈텍의 그 어리석은 자들이 하듯이 그 이상으로 고스란히 일본에 넘길 것이다.

위 인디언 추장이 우주 비행사들에게 한 말로 다시 돌아가 생각해 보자.

“이 사람들이 하는 말은 한 마디도 믿지 마세요. 이들은 당신들의 땅을 훔치러 왔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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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남북해외 민간교류의 첫발 ‘새해맞이 연대모임’

2019년 남북해외 민간교류의 첫발 ‘새해맞이 연대모임’
 
 
 
백남주 객원기자
기사입력: 2019/01/31 [10:09]  최종편집: ⓒ 자주시보
 
 
▲ ‘남북공동선언 이행을 위한 2019 새해맞이 연대모임’ 관련 단체들이 기자회견을 진행했다. (사진 : 6.15남측위)     © 편집국

 

‘남북공동선언 이행을 위한 2019 새해맞이 연대모임’ 관련 단체들이 2월 12~13일 금강산에서 열리는 공동행사를 앞두고 관련 구상을 밝혔다.

 

‘남북공동선언 이행을 위한 2019년 새해맞이연대모임 추진위원회(이하 추진위)’은 30일 오전 11시 프레스센터 19층 기자회견장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공동행사 관련 계획과 함께 국민들에게  “평화, 번영, 통일의 가슴 벅찬 미래를 우리의 힘으로 함께 열어”나갈 것을 호소했다.

 

추진위는 6.15공동선언실천남측위원회, 한국종교인평화회의(7대 종단), 민족화해협력범국민협의회, 시민사회단체연대회의, 한국진보연대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각계가 망라된 남북공동행사는 2008년 년 6월 금강산 공동행사 이후 10년 만이다.

 

추진위는 국민 여러분께 드리는 글을 통해 “새해 2019년은 한반도가 지속가능한 평화와 번영, 통일로 나아가느냐를 마느냐를 가늠 짓는 중요한 한 해”라며 “다시는 적대와 대결의 과거로 되돌아가지 않기 위해 한반도 모든 구성원들의 힘과 지혜를 모아야 할 때”라고 강조했다.

 

추진위는 지난해 남북 두 정상간 합의를 한반도의 모든 구성원이 함께 이행하고 발전시켜 나갈 것, 당국 간 협력을 각계각층이 참여하는 다방면의 교류협력으로 발전시켜 나갈 것, 평화·통일의 미래상을 함께 마련하고 합의하기 위한 전사회적 토론을 시작할 것 등을 호소했다.  

 

추진위는 남측대표단 210명을 포함해 기자단 및 집행부 등 260명이 방북할 예정이며, 북측 대표단(100명 내외 추정)과 해외측 15명을 포함하면 총 400여명이 공동행사에 참가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남측 대표단은 12일 오전 6시 서울 경복궁에서 출발해 낮 12시 금강산에 도착, 남북해외 공동단장 오찬회의를 가질 예정이다. 이어 금강산문화회관에서 새해맞이 연대모임 및 축하공연을 갖고 금강산 호텔에서 각 단위별 대표 모임을 진행한다. 이틀째인 13일은 아침 해금강 일출과 금강산 온천, 삼일포, 구룡연 등반 등을 협의 중이며 오후 3시 금강산을 출경해 돌아올 예정이다.

 

참가자 중 공동단장은 이창복 6.15공동선언실천남측위원회 상임대표의장, 김희중 한국종교인평화회의 대표회장, 지은희 시민평화포럼 고문, 한충목 한국진보연대 고문, 김홍걸 민족화해협력범국민협의회 대표상임의장 등이 맡았다.

 

주요참가자로는 7대 종단 수장(김희중 가톨릭 대주교, 이흥정 NCCK 총무, 원행 조계종 총무원장, 오도철 원불교 교정원장, 김영근 성균관 관장, 이정희 천도교 교령, 박우균 한국민족종교협의회 회장)을 비롯해 지자체 및 교육청 관계자, 각계 대표 등이 참여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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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공동선언 이행을 위한 2019년 새해맞이 연대모임> 개최에 즈음하여 국민 여러분께 드리는 글

 

오늘 이 자리에 모인 6.15공동선언실천 남측위원회, 민족화해협력범국민협의회, 시민사회단체연대회의, 한국진보연대를 비롯한 각계각층 시민사회단체와 인사들, 그리고 한국종교인평화회의(7대 종단)는 남북해외 민간이 만나는 <남북공동선언 이행을 위한 2019년 새해맞이연대모임>을 위해 오는 2월 12일, 13일 이틀간 금강산을 방문할 예정입니다. 2008년 6월 금강산 공동행사 이후, 10년 만에 한자리에 다시 모이게 된다는 점에서 무척 뜻깊습니다.

 

2018년, 우리는 남북관계의 획기적 변화를 경험했습니다. 한반도에서 전쟁과 대결을 끝내고, 평화와 번영의 시대로 나가고자 하는 남과 북 두 정상의 담대한 의지와 노력은 새로운 시대를 열었습니다. 4월 27일 남한의 문재인 대통령과 북한의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판문점에서 만나 “한반도에 더 이상 전쟁은 없을 것이며 새로운 평화의 시대가 열리었음을 전 세계에 천명”했습니다. 남북 정상은 9월 19일 3차 정상회담에서 채택한 평양선언을 통해“핵무기와 핵위협이 없는 평화의 터전”을 만들겠다며 “완전한 비핵화” 의지를 거듭 천명했습니다. 또한 남북군사분야합의서가 체결되어 지난해 11월 1일 지상과 해상, 공중에서의 적대행위가 전면 중지됨으로써, 한반도는 정전 이래 가장 평화로운 시대를 맞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넘어야 할 산이 아직 많이 있습니다. 북미 대화가 아직 순탄치 않고 남북간 합의사항 이행에 관해 우리 내부의 정치적 이견도 없다고 할 수 없습니다. 새해 2019년은 한반도가 지속가능한 평화와 번영, 통일로 나아가느냐를 마느냐를 가늠 짓는 중요한 한 해입니다. 다시는 적대와 대결의 과거로 되돌아가지 않기 위해 한반도 모든 구성원들의 힘과 지혜를 모아야 할 때입니다. 이에 다음과 같이 호소합니다.

 

1. 온 겨레가 손 맞잡고 한반도 평화, 번영, 통일의 대전환을 함께 이루어 냅시다.  

 

지난해 남과 북 두 정상이 전 세계와 온 겨레 앞에 확약한 선언들을 통해 한반도 대전환이 시작되었습니다. 이제 한반도의 모든 구성원이 이 합의를 함께 이행하고 발전시켜 나가야 합니다. 한반도에 항구적이고 공고한 평화체제를 구축하고 그 과정에서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를 실현하는 일에 모두 다 주저함 없이 나서야 합니다. 첨예한 군사적 긴장상태를 완화하고 전쟁 위험을 실질적으로 해소하며 단계적 군비축소를 실현하는 일도 우리의 몫입니다. 금강산 관광과 개성공단의 재개, 남북도로와 철도를 잇는 실질적인 조치들을 통해 남북관계를 전면적으로 개선하는 일도 온 겨레가 함께 해결해 나가야 할 시급한 과제들입니다. 온갖 장애물을 걷어내고 작은 차이를 넘어 담대하게 한반도의 새로운 미래를 열어갑시다.

 

2. 당국 간 협력을 각계각층이 참여하는 다방면의 교류협력으로 발전시켜 나갑시다.

 

정부 주도의 대화와 협력만으로 한반도가 처한 문제를 해결할 수는 없습니다. 민간의 역할이 중요합니다. 남북교류협력의 현실적인 장벽이 되고 있는 대북제재를 유예, 완화, 해제할 수 있는 힘과 지혜를 내는 것도 각계각층 다방면적인 만남과 교류, 협력 속에서 가능해 질 것입니다. 개성공단과 금강산 관광을 비롯한 각종 경제협력 논의가 다시 시작되고 있고, 여성, 지역, 종교계, 노동자, 농민, 청년학생, 학계와 법조계, 문화예술인, 시민·평화·환경단체 등 각계각층 시민들이 교류를 희망하고 있습니다. 이제 다양한 경제협력과 사회문화교류의 막힌 물꼬를 터야합니다. 금강산에서 개최되는 남북해외의 새해맞이 모임이 그 돌파구가 되기를 기대합니다. 정부와 민간이 각자의 위치에서 다방면의 교류와 협력을 본격화하여 남북의 협력관계를 새로운 단계로 발전시켜냅시다. 

 

3. 평화·통일의 미래상을 함께 마련하고 합의하기 위한 전사회적 토론을 시작합시다.

 

한반도의 모든 구성원들은 누구나 한반도 문제해결에 주인으로 참여할 자격과 권리를 가지고 있습니다. 분단과 대결로 인해 희생과 고통을 겪어온 당사자도 우리들이고, 한반도 평화와 협력을 통해 더 나은 미래를 열어갈 주인공도 바로 우리들이기 때문입니다. 우리에겐 촛불집회를 통해 입증된 저력이 있습니다. 앞으로 닥칠 안팎의 장애물을 슬기롭게 넘어서고, 주변 강대국의 협력을 이끌어낼 역량도 우리 안에 있습니다. 따라서 우리 내부의 합의가 중요합니다. 아직 우리 사회에는 냉전시대의 낡은 갈등과 퇴행이 지속되고 있고, 다양한 의견이 자유롭게 논의될 공론의 장도 충분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우리 자신의 역량을 믿고, 한반도 평화, 번영, 통일의 미래를 함께 설계하고 준비해 나가야 할 때입니다. 한반도의 미래상은 무엇인지, 어떤 원칙과 경로를 통해 평화와 통일로 나아갈 수 있을 지 전국방방곡곡에서 민주적인 토론마당을 열고 새롭고 공고한 사회적 합의를 만들어 갑시다.    

 

2019년, 뜻깊은 해에, <새해맞이연대모임>으로 남과 북, 해외 민간 교류의 첫발을 내딛습니다. 이 행사는 남한 각계각층의 민간 평화 통일 운동을 더욱 폭넓고 다채롭게 확대하고, 연대와 단합을 북돋우는데 기여할 것입니다. 또한 남북공동선언 이행과 남북관계 발전의 촉매제가 될 것으로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희망과 낙관을 가지고 평화, 번영, 통일의 가슴 벅찬 미래를 우리의 힘으로 함께 열어갑시다.   

 

2019년 1월 30일 

남북공동선언 이행을 위한 2019년 새해맞이연대모임 추진위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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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0년 전통의 공동체 삶

  • 분류
    아하~
  • 등록일
    2019/01/30 13:33
  • 수정일
    2019/01/30 13:33
  • 글쓴이
    이필립
  • 응답 RSS

500년 전통의 공동체 삶

조현 2019. 01. 29
조회수 964 추천수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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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문명을 선도하는 미국에 살면서도 말과 마차를 타고 다니며 단순 소박한 삶을 지켜가고 있는 그리스도인 마을 아미시들을 대상으로 박사학위 연구를 진행한 거투르드 앤더스 헌팅턴을 비롯한 인류학자들은 20세 중반까지도 그들의 문화가 인류역사에서 머지않아 사라질 것으로 예상했다. 그러나 그들은 인류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기는 커녕 매 20년마다 두 배로 인구가 증가하는 뜻 밖의 결과를 보여주었다. 
 지난 19일 서울 종로구 연지동 한국기독교회관에서 열린 ‘아나뱁티스트 컨퍼런스’에서 캐나다 메노나이트 교회선교부 김복기 목사가 발표한 내용이다. 이날 컨퍼런스는 ‘아나뱁티스트들이 살아온 오랜 방식’ <공동체를 말하다!>란 주제로  열렸다. 최근 국내에 마을공동체에 대한 관심이 급중하면서 마을공동체운동의 원조격인 아나뱁티스트 컨퍼런스가 열리자 150여명의 청중들이 참가해 5명의 목사와 교수들의 발표를 경청하고 열띤 질의응답을 펼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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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산상수훈 부르심에 응답한 삶 선택
   김복기-.JPG» 김복기 목사아나뱁티스트는 ‘재세례파’는 뜻이다. 태어나자마자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세례를 받는 것을 거부하고, 성인이 되어 자발적 의지로 세례를 받아 예수의 가르침대로 살아가는 삶을 택하기 때문이다. 이들은 500년 전 루터와 츠빙글리의 종교개혁운동이 관주도개혁에 머무르자 초기교회의 공동체적 모습 그대로 따르려는 이들이 모여 살았다. 이에 대해 발표자인 김난예(침례신학대)교수는 “산상수훈의 부르심에 응답한 이들“로 정의했다. 
 아타뱁티스트들은 전쟁과 폭력을 철저히 반대하고 어떤 명분으로도 살상과 총기와 유아세례를 거부해 군부와 가톨릭, 주류 기독교로부터 모진 박해를 받고 쫓겨다니면서도 예수의 본질적인 사랑과 비폭력의 삶을 이어오며 인류사회에 큰 영감을 주었다. 감리교를 창시한 존 웨슬리는 1735년 영국에서 미국으로 가던중 배가 뒤집어질질뻔한 풍랑을 만나 자신을 비롯한 승객들이 두려움에 떨고있을 때 모라비언들만이 태연하게 찬송을 하고 있는 모습을 보고 회심했다고 한다. 그 모라비안들이 바로 아나뱁티스트의 선조들이다. 2006년엔 미국 필리델피아 아미시의 한 학교에 침입한 범인이 10명에게 총기를 난사에 5명이 죽고, 5명이 부상을 입었는데 아나뱁티스트의 일종인 아미쉬인들이 그날 해가 지기도 전에 범인을 조건 없이 용서하고. 답지하는 성금을 범인의 아내와 세자녀에게 먼저 할애해줄 것을 요청하고, 범인의 가족들을 식사에 초대해 위로해 전세계를 놀라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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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혼삶 시대에도 왜 공동체로 사는 사람이 늘까
 김난예-.JPG» 김난예교수   아나뱁티스트로는 국내엔 부르더호프공동체가 널리 알려져있다. 그러나 더 많은 아나뱁스트들 그룹인 후터라이트와 아미시, 메노나이트 등이 있다. 모라비안의 후예로 미국과 캐나다에 정착해 14가정씩 개인소유 없이 공동으로 살아가는 후터라이트인구는 1980년 2만4천여명이었으나 현재 4만5천여명으로 늘었다. 아미시는 농촌지역에만 거주하며 자동차 등을 거부한채 말과 마차를 타고 다니고 개인보다는 공동체의 건강성과 안녕을 우선시하는 삶을 유지하고 있다. 아미시는 1900년엔 6천명에 불과했으나 현재 33만여명으로 집계된다. 메노나이트는 교회 그룹으로 확산돼 현재 9624개 교회에 146만명의 회원을 두고 있다.설목사-.JPG» 설은주 목사 
 산업화, 도시화와 개인의 자유가 중시되면서 핵가족화와 혼삶화가 진행되는 과정에서도 이렇게 공동체적 삶에 동참하는 이들이 줄기는 커녕 늘어나고 있는 것에 대해 설은주 ‘하늘숲-좋은나무공동체’ 목사는 “관계가 깨져가고 있는데 대한 위기의식이 높아지고, ‘이대로는 도저히 안된다’며 하나님 나라를 이 땅에서 가시적으로 드러내보고 싶은 욕구의 분출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김난예 교수는 “현대사회가 물질적 부만을 추구하며 생긴 불평등으로 인한 온갖 문제의 해결책이 공동체에 있고, 특별히 장애인과 노인 등 어떤 사람도 소외되지않은 사회의 필요성으로 공동체가 더욱 필요해지고 있다”고 밝혔다. 
김복기 목사는 “통상적인 조직들은 실패하면 서로 욕하고 흩어지기 마련인데, 아나뱁티스트들은 성공과 실패까지 공유해왔다”고 지속성의 비결을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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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갈등과 두려움을 넘어 어떻게 함께살까
 최철호-.JPG» 최철호 목사 컨퍼런스에선 서울 인수동과 강원도 홍천 등에서 300여명이 공동체로 살아가는 밝은누리 대표 최철호 목사도 발표했다. 최 목사는 “‘나도 다 해봤는데, 다 부질없는 이야기야!’, ‘생각은 좋은데 현실에 맞지 않아!’라는 생각들은 그 자체가 불신앙, 체념적 삶의 표현”이라며 “일상에서 늘 욕망을 조작하고 불안을 조장해 생명을 고갈시키는 시대 우상이 강요하는 삶에서 탈주해 먹고 입고 자고 즐기는 생활양식과  결혼·임신·출산·육아와 수련, 치유, 교육, 노동, 놀이 등 구체적 삶에서 하나님 나를 증언하는 삶을 살아가는 건 개인이나 가정 단위가 아니라 마을이라는 관계망에서 가능한 일”이라고 밝혔다라이스-.JPG» 크리스 라이스 .
  크리스 라이스 메노나이트 동북아책임자는 인종차별의 본거지라는 미국 미시시피주 수도 잭슨에서 백인과 흑인들이 섞여살던 ‘갈보리의 소리’라는 공동체에서 겪은 갈등 사례를 들려주었다. 그는 “우리는 미국에서 인종적으로 가장 잘 통합된 공동체라는 자부심이 있었는데 흑인들이 ‘화해모임’을 조직해 ‘인종차별은 사회에 있기에 앞서 우리 공동체 안에 있다’고 주장하면서 위기에 봉착했다”며 “고통스런 과정을 거치며 내가 백인으로써 인종문제를 다루는 것은 선택적이었음을 깨달았다”고 했다. 즉 언제든 부유한 백인은 다른 부유한 백인 교회로 옮겨갈 수 있었으나 흑인 형제 자매들은 그런 선택이 없었으며, 백인들이 그런 특권을 이용한 해결은 눈가리고 아웅하는 식이었다는 것이다. 그는 얕은 해결책에 머물지않는 진정한 화해를 위한 3단계 과정을 이렇게 제시했다. “첫째 사회적 긴장과 트라우마의 진실,억압, 특권을 극복하려면 정면으로 부딪히고, 애도의 시간을 필요로 한다. 두번째 진실이 없는 사랑은 거짓이라는 것이다. 즉 우리를 갈라놓고 망가지게 하는 것을 대면하지않는 화해가 있을 수 없으므로 괴로움과 분노의 과정까지 거치면서 진실과 사랑을 함께 결합해야한다는 것이다. 셋째 기독교공동체 화해의 핵심에는 자기부인이 있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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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독의 시대, 공동체는 어떻게 세상을 돕는가
 이날 컨퍼런스에선 아나뱁티스트들이 공동체적 삶의 전통과 지혜를 살려 현대사회인들을 구제하는 사역들이 소개됐다. 6곳에서 운영되는 ‘그린크로프트’라는 ‘돌봄의 공동체’가 대표적이다. 이 공동체 중 한곳은 1922년 인대애나주 뉴 칼리슬의 30만평 숲에 만들어져 150명의 메노나이트 도우미들이 공동체로 살아가면서 배우자를 잃고 홀로 남은 65세 이상 노인들과 함께 총 270명이 살아간다. 또 고센 공동체엔 550명의 전문의료인 및 간호인을 포함해 노인등 1200명이 살아간다. 공동체 내엔 예배당과 소규모 예배실, 상담실, 도서관, 컨퓨터실, 영화관람실, 오락실, 각종 모임방 등이 있고, 건강한 이들은 은퇴 후에도 이곳에서 직업을 갖고 파트타임 일을 하거나 자원봉사에 나선다. 김복기 목사는 “돌봄의 공동체는 양노원이 아니라 메노나이트들이 중요하게 여기는 청지기의 삶으로 함께하는 것”이라면서 “이 공동체들은 외진 곳에 있지않고 도시 끝자라에 위치해 도시 내 자녀들 및 친척들과 공동체성을 잃지안하고 연결되게 한다”고 설명했다. 노령화와 혼삶으로 소외와 고독사가 사회문제가 되고있는 한국사회에도 필요한 돌봄공동체가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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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N, 韓日 군사갈등 심각한 위기 발생할 것

韓日 관계 정상화? 역사적으로 화해한 적 없어
 
뉴스프로 | 2019-01-30 10:41:09 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인쇄하기  메일보내기    
 
 


 

CNN, 韓日 군사갈등 심각한 위기 발생할 것 
-韓日 관계 정상화? 역사적으로 화해한 적 없어 
-日 한국 강점, 많은 한국인 잔인하게 살해 노예화

최근 증폭되고 있는 한국 군함에 대한 일본의 초계기 근접비행을 둘러싼 한국과 일본의 군사적 갈등에 CNN이 미국을 중심으로 한 동북아 동맹관계를 해칠 수도 있다고 경고했다.

CNN은 27일 ‘Why a military spat between Japan and South Korea could snowball into crisis-한미 양국의 군사적 다툼, 재난으로 확대될 수도’라는 제목의 분석 기사에서 최근 벌어지고 있는 한일 군사적 갈등의 내용과 한일 간의 역사적 배경, 한미일 3국 동맹 관계에 대한 영향 등을 분석하며 전문가들의 말을 인용해 한일 간의 군사적 다툼이 심각한 위기로 치달을 수도 있다고 우려했다.

CNN은 특히 양국의 군사적 다툼이 ‘빠르게 확대되어 이제껏 뒷전에 남겨졌던 예전의 역사적 논쟁으로까지 이어지며 그 지역의 안정을 위협하고 있다’고 분석하며 “동아시아 지정학이 마구 흔들려 이제 불안정한 상태에 있다”는 미국 국방부 전 아태지역 담당자였던 반 잭슨의 말을 전했다.

잭슨은 “이 모든 논란의 와중에, 그간 억제되었던 적대적 감정이 허울뿐인 지역 안정을 깨고 드러나기 시작했다.”고 내다봤다.

CNN은 이러한 갈등의 배경에는 역사적 적대감이 있다며 이런 한일 갈등은 미국에게는 아주 좋지 않다며 송영길 의원이 군사정보보호협정에서 한국이 탈퇴할 것을 제안하기까지 했다고 전했다. CNN은 지정학적으로 한일간에는 중국과 북 문제에 대해 유사점을 공유하고 있지만 역사는 큰 역할을 하고 있으며, 많은 한국인들이 잔인하게 취급되고 살해되고 노예화되었던 일본의 한국 강점과 식민지화의 역사는 여전히 매우 감정적인 문제로서 양국 관계를 규정한다고 분석했다.

특히 1965년의 한일 관계정상화에 대해 그 당시 한국은 군사 독재정권 하에 있었으며, 대다수 한국인들은 그 조약이 불공평하다고 여기고 있으며 지금까지도 그 조약에 반대하여 싸우고 있다고 CNN은 전했다.

CNN은 미국의 중요한 동맹국인 한일 간의 갈등에 트럼프 대통령이 적극적으로 중재에 나서지 않고 있는 점을 지적하며 동맹국이 미국의 이익을 지키고 있음을 지적하기도 했다. CNN은 “어떤 면에서 최근에 우리가 목격하고 있는 것은 역사로의 회귀이다. 한일 양국은 1965년에 관계를 정상화했을 당시 결코 완전히 화해하지 않았고 미국과의 협력이라는 명분 하에 많은 이해 충돌을 잠시 보류했을 뿐, 뭔가 바뀌지 않는다면, 불행하게도 언젠가는 심각한 위기가 발생할 것이라고 본다.”는 전 미 국방부 관료인 잭슨의 말을 빌어 우려를 전달했다.

다음은 뉴스프로가 번역한 CNN의 기사 전문이다. 
번역 감수: 임옥

기사 바로가기: https://cnn.it/2S8bN2y

Why a military spat between Japan and South Korea could snowball into crisis 
한일 양국의 군사적 다툼, 재난으로 확대될 수도

By Joshua Berlinger, CNN 
Updated 0552 GMT (1352 HKT) January 27, 2019

A photograph released by the South Korean Defense Ministry appears to show a Japanese plane as seen on board one of its destroyers, the Dae Joyeong, on Wednesday. 
수요일 한국 국방부가 배포한 사진은 구축함 대조영함 선상에서 목격된 일본 항공기를 보여준다.

(CNN) Japan and South Korea are engaged in a heated military dispute that analysts say could damage the already tenuous geopolitical situation in northeast Asia if the two sides do not reach a resolution.

(CNN) 일본과 한국이 뜨거운 군사적 논쟁을 벌이고 있으며, 양측이 해결책을 찾지 못한다면 동북아시아의 이미 불안정한 지정학적 상황에 손상을 입힐 수 있다고 분석가들은 말하고 있다.

The spat began December 20 after an encounter between a Japanese plane, which Tokyo said was collecting intelligence, and a South Korean destroyer, which Seoul said was on a humanitarian mission.

그 다툼은 정보수집 중이었다고 일본 정부가 밝혔던 일본 항공기와 한국 정부가 인도적 임무를 수행하고 있었다고 말한 한국 구축함 사이의 근접상황이 있었던 12월 20일 시작되었다.

Both sides disagree on what happened next — the Japanese said the South Koreans targeted their aircraft with missile-targeting radar, while the South Koreans said the Japanese plane was flying dangerously low and that the radar “was not intended to trace any Japanese-controlled aircraft.”

한일 양국은 그 다음 벌어진 상황에 대해 서로 이견을 보이고 있다. 일본 당국은 한국이 자신들의 항공기를 미사일 목표 추적 레이다로 조준했다고 말한 반면 한국 정부는 해당 일본 초계기가 위험할 정도로 낮게 비행했으며 그 레이더는 “일본 항공기를 추적하기 위한 의도가 아니었다”고 말했다.

The disagreement has quickly escalated, bringing to the fore historical disputes previously on the back-burner and — in turn — threatening the region’s stability.

양국의 이견은 빠르게 확대되어 이제껏 뒷전에 남겨졌던 예전의 역사적 논쟁으로까지 이어지며 그 지역의 안정을 위협하고 있다.

“East Asian geopolitics has been shaken loose and is now unsettled,” said Van Jackson, a former US Department of Defense official specializing in the Asia-Pacific.

미국 국방부 전 아태지역 담당자였던 반 잭슨은 “동아시아 지정학이 마구 흔들려 이제 불안정한 상태에 있다”고 말했다.

“China is seeking to push out the US, North Korea has pulled a jiujitsu move by using summit diplomacy to solidify its status as a nuclear state even as the ostensible purpose is to denuclearize Pyongyang, and the future of the US in the region is less certain now than any time since the 1970s.

“중국은 미국을 밀어내려 하고 있고, 북한은 표면상의 목적은 북한의 비핵화라고 하나, 마치 주짓수를 하듯 정상회담 외교를 통해 핵 보유국으로서의 지위를 확고히 하고 있으며, 그 지역에서의 미국의 미래는 1970년대 이후 어느 때보다도 불확실하다.

“Amid all this tumult, suppressed animosities are started to crack through the veneer of regional stability.”

“이 모든 논란의 와중에, 그간 억제되었던 적대적 감정이 허울 뿐인 지역 안정을 깨고 드러나기 시작했다.”

A marriage of convenience

정략 결혼

South Korea and Japan are historical adversaries locked in a marriage of convenience, which makes for a complex partnership. Their relationship is still very much colored by the legacy of imperial Japan’s occupation and colonization of the Korean Peninsula in the first half of the 20th century.

한국과 일본은 정략 결혼으로 맺어진 역사적 적대국으로서 복잡한 협력 관계를 가지고 있다. 양국의 관계에는 20세기 전반기 제국주의 일본의 한반도 점령과 식민지배의 흔적이 여전히 많이 남아 있다.

This revived tension comes at a terrible time for the United States — the Trump administration is currently preparing for its second summit with North Korea, while also inching towards a key deadline in trade talks with China.

트럼프 행정부가 북한과의 2차 정상회담을 준비 중이고 중국과의 무역회담의 주요 쟁점이 막바지에 이른 현 시점에 이렇게 다시 부활한 긴장관계는 미국에게는 아주 좋지 않다.

Shortly after the initial incident, Japan and South Korea held working-level meetings to try to resolve the issue behind closed doors.

첫 사건 직후에 일본과 한국은 비공개로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실무자급 회의를 개최했다.

It appears to not have worked — and neither side is buying the other’s explanation. 그러나 이는 성공적이지 못한 듯 보이며, 어느 쪽도 상대방의 설명을 수용하지 않고 있다.

Japan released video of the incident from its perspective on December 28. South Korea released its own video on January 4. Each accused the other of misleading the public and distorting the facts.

일본은 12월 28일 일본의 입장에서 사건에 대한 동영상을 공개했다. 이에 한국은 1월 4일 자체 영상을 발표했다. 양측 모두 서로에 대해 대중을 오도하고 사실을 왜곡했다고 비난했다.

Japan has conducted three other flybys over South Korean ships this month — one last week, one on Tuesday and another Wednesday. Seoul publicly condemned the latest as a “clearly provocative act” against a “partner country.”

일본은 이번 달에 한국 선박의 상공에서 지난 주에 한 번, 화요일 한 번, 또 수요일에 한 번 총 세 번의 또 다른 접근 비행을 실시했다. 한국 정부는 가장 최근의 비행이 “동맹 국가”에 대한 “명백한 도발 행위”라고 공개적으로 비난했다.”

South Korea’s Defense Ministry released this radar photo, which it says shows a Japanese patrol aircraft 7.5 kilometers (4.6 miles) away from the South Korean naval destroyer Dae Joyeong.

한국 국방부는 레이더의 사진을 공개하며 일본 정찰기가 한국 해군 구축함 대조영함에서 7.5km(4.6마일) 떨어진 거리에 있었다고 말한다.

Lawmaker Song Young-gil, from South Korea’s ruling Democratic Party, has even gone so far as to suggest Seoul pull out of its General Security of Military Information Agreement, a pact allowing the two countries to share sensitive intelligence.

한국의 집권당인 민주당의 송영길 의원은 심지어 한일 양국이 민감한 정보를 공유할 수 있도록 하는 협정인 군사정보보호협정에서 한국이 탈퇴할 것을 제안하기까지 했다.

Jonathan Berkshire Miller, an analyst at the Tokyo-based Japan Institute for International Affairs, believes historical enmity contributed to the sudden deterioration of relations.

도쿄 소재 국제관계 일본 연구소의 조나단 버크셔 밀러 분석가는 역사적 적대감이 양국 관계의 급격한 악화에 기여했다고 믿고 있다.

“The context is key,” he said.

그는 “그러한 맥락이 핵심이다”라고 말했다.

Historical adversaries

역사적 적대감

Despite their historical differences, South Korea and Japan share plenty of surface similarities. They’re both vibrant democracies with developed economies. Geopolitically, they are both US allies; they both want a denuclearized North Korea; they both support free trade; and they both view China’s rise with trepidation.

역사적으로 서로 상이하긴 하지만 한국과 일본은 많은 표면상 유사점을 공유하고 있다. 양국 모두 경제 대국이며 역동적인 민주주의 국가이다. 지정학적으로 양국은 모두 미국의 동맹국이며, 양국 모두 비핵화된 북한을 원하고 있다. 양국 모두 자유무역을 지지하고 있으며 중국에 불안감을 느끼고 있다.

But history looms large, and the Japanese occupation and colonization of Korea — when many Koreans were brutalized, murdered and enslaved — is still a highly emotional issue that defines their relationship.

그러나 역사는 큰 역할을 하고 있으며, 많은 한국인들이 잔인하게 취급되고 살해되고 노예화되었던 일본의 한국 강점과 식민지화의 역사는 여전히 매우 감정적인 문제로서 양국 관계를 규정한다.

South Korea and Japan signed a treaty in 1965 that normalized relations between the two countries and was supposed to settle most of the wartime issues.

한국과 일본은 1965년 양국 간의 관계 정상화와 전시 사안의 대부분을 해결하기 위한 조약에 서명했다.

But South Korea was a military dictatorship at the time, and many Koreans felt the deal was unfair — and today are still fighting against it.

그러나 그 당시 한국은 군사 독재정권 하에 있었으며, 대다수 한국인들은 그 조약이 불공평하다고 여겼다. 그리고 지금까지도 그 조약에 반대하여 싸우고 있다.

The two countries are still locked in heated debate over statues depicting “comfort women” — Korean women forced into providing sexual services for Japanese soldiers — and recent decisions by South Korea’s Supreme Court allowing citizens to sue Japanese corporations for reparations for forced labor.

일본 군인들에게 성관계를 제공하도록 강요 받았던 한국 여성들 “위안부”를 묘사항 동상, 그리고 시민들이 일본 기업들을 고소하여 강제노동에 대한 배상을 받을 수 있는 길을 열어준 최근 한국 대법원에 의한 판결을 두고 양국은 여전히 뜨거운 논쟁을 벌이고 있다.

Japan contends both issues were settled by the treaty.

일본 정부는 두 문제는 조약에 의해 이미 해결되었다고 주장한다.

Even further, they have been in a heated dispute for more than 50 years over ownership of a group of islands called Dokdo in Korean and Takeshima in Japanese.

또한 한일 양국은 한국어로 독도, 일본어로 다케시마라고 불리는 일군의 섬의 소유권을 두고 50년 넘게 열띤 공방을 벌여왔다.

Despite all this, military-to-military relations between Japan and South Korea often appeared largely unaffected by the ebbs and flows of political disagreements, said Miller, the analyst at the Japan Institute for International Affairs.

일본 국제문제 연구소의 분석가인 밀러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일간의 군사적 관계는 정치적 불일치의 변동에 그다지 크게 영향을 받지 않는 듯 보였다고 말했다.

“That was the one area that was kind of quarantined or immunized before,” he said. “It wasn’t always perfect … but it was one that they both agreed was for the better good for the both of them.”

밀러는 “그 문제는 여지껏 상호 인정하거나 면책을 받은 한 영역이였다”고 말하며 “항상 완벽한 것은 아니었지만, 양국 모두가 합의한 것이 양국 모두에게 더 좋은 일인 바로 그러한 분야였다”고 했다.

Alliance maintenance 동맹 유지 Japan and South Korea’s foreign ministers met on the sidelines of the World Economic Forum in Davos, Switzerland, Wednesday to discuss the issue, but their meeting ended with statements that did not appear to resolve anything.

수요일 한일 외교부 장관들은 스위스 다보스에서 열린 세계경제포럼에서 그 문제를 논의하기 위해 별도로 회동했지만 발표문을 보면 아무 것도 해결되지 못한 듯 보인다.

Not with them at Davos was their shared treaty ally, the Untied States, which typically would help mediate the dispute. President Donald Trump canceled his trip to Davos to deal with the US government shutdown.

한일 양국의 조약 동맹국으로서 보통 양국 간 논쟁을 중재하는 데 도움을 주곤 했던 미국은 다보스에서 양국과 함께하지 않았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 정부 셧다운을 해결하기 위해 다보스 방문을 취소했다.

Some have accused the White House of not placing enough importance on alliance coordination and management. Former Defense Secretary James Mattis pointed to that as a key disagreement between himself and the President in his resignation letter.

어떤 이들은 백악관이 동맹국 조정과 관리에 충분한 중요성을 두지 않는다고 비난했다. 제임스 매티스 전 국방장관은 사임서에서 자신과 대통령 사이의 중대한 의견차이가 있음을 지적했다.

“Our strength as a nation is inextricably linked to the strength of our unique and comprehensive system of alliances and partnerships,” Mattis wrote.

매티스는 “국가로서 미국의 힘은 동맹과 협력이라는 미국의 독특하고 포괄적인 시스템의 강점과 불가피하게 연관되어 있다”고 썼다.

“While the US remains the indispensable nation in the free world, we cannot protect our interests or serve that role effectively without maintaining strong alliances and showing respect to those allies.”

“미국은 자유세계에서 꼭 필요한 국가로 남아 있긴 하지만, 미국이 강한 동맹을 유지하지 못하고 동맹국을 존중하지 않는다면 미국의 이익을 보호하거나 그 역할을 효과적으로 수행할 수 없다.”

Analysts like Jackson, the former Defense Department official, worry that the current spat is a manifestation of declining US leadership, and will play into the hands of North Korea and China — two countries that have historically sought to diminish US influence in the region by causing rifts between Washington and its allies.

전 미 국방부 관료인 잭슨과 같은 분석가들은 현재의 분쟁이 미국 리더쉽의 쇠퇴의 징후이며, 미국과 동맹국들 사이의 불화를 야기함으로써 역사적으로 그 지역에서의 미국의 영향력을 감소시키려고 시도해온 북한과 중국의 손에 미국이 놀아나게 될 것을 우려하고 있다.

“What we’re seeing lately is a return to history in some sense — the two countries never fully reconciled when they normalized relations in 1965, and put a lot of conflicts of interest on the back burner in the name of cooperation with the US,” Jackson said.

잭슨은 “어떤 면에서 최근에 우리가 목격하고 있는 것은 역사로의 회귀이다. 한일 양국은 1965년에 관계를 정상화했을 당시 결코 완전히 화해하지 않았고 미국과의 협력이라는 명분 하에 많은 이해 충돌을 잠시 보류했을 뿐”이라고 말했다.

“If something doesn’t change, I expect some kind of serious crisis to break out at some point, unfortunately.”

“뭔가 바뀌지 않는다면, 불행하게도 언젠가는 심각한 위기가 발생할 것이라고 본다.”

CNN’s Jake Kwon in Seoul and Yoko Wakatsuki in Tokyo contributed to this report

 
본글주소: http://poweroftruth.net/column/mainView.php?kcat=2029&table=c_sangchu&uid=9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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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②] “이명박 때만 에너지 전환했어도...너무 늦었다”

양이원영 에너지전환포럼 사무처장 “에너지전환, 이제 생존 문제”

양아라·고희철 기자
발행 2019-01-29 18:34:14
수정 2019-01-29 19:54: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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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이원영 에너지전환포럼 사무처장
양이원영 에너지전환포럼 사무처장ⓒ이승빈 기자
 
 

'원전 사고 날 거라고 이야기했는데, 결국은 원전 사고가 안 나지 않았냐'고 따져 묻는다면?

양이원영 에너지전환포럼 사무처장은 안도의 미소를 지으며 "그러면 정말 다행이죠"라고 답한다.

그는 영화 '암수살인'에서 인상 깊었던 한 장면을 떠올렸다.

검사:형사님 생각이 끝까지 틀리면요?  
형사:그러면 차라리 다행이지요.  
검사:뭐가요.  
형사:세상에 나 혼자 바보 되면 그만 아닙니까?  
- 영화 '암수살인' 중에서
 

그는 암수살인에 나온 형사의 말에 크게 공감하며 이를 빗대어 말한 것이다. 암수살인은 피해자는 있지만 신고도 시체도 없어 세상에 알려지지 않았던 살인사건에 대해, 오롯이 피해자의 관점에서 다룬 영화다. 

양이원영 사무처장은 "원자력산업계, 학자들, 그 지지자들과 싸워서 이기고 싶은 생각은 없다"면서, "원전사고를 강조하는 건 원전사고가 나기를 바라는 것이 아니라 이 노력의 결과로 원전이 사고가 나기 전에 문을 닫기를 바라는 것"이라고 말했다. 원전 사고는 회복 불가능한 사고다. 그래서 원전으로 '이익'을 보는 업계보다는, 원전으로 인해 '피해'를 보는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생각한다.

그는 원전시장은 더이상 신규가 아니며, 해체 시장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세계는 신재생에너지 전환으로 달려가고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한국은 여전히 원전 반대 투쟁이 지속되고 있다.

그는 1994~1997년에 만난 유럽과 미국의 반핵 활동가들이 있다며 처음에는 시작이 비슷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른 뒤, 그들의 나라는 에너지전환이 급속도로 이뤄지고 있고, 한국은 뒤처지고 있었다.  

"갑자기 원전 왜 위험한지, 왜 안 되는지 쓰려고 보니까... 2000년~2001년에 끝난 논쟁인데 그걸 지금 2019년에 쓰려고 하니까 제가 너무 서글퍼졌다. 참 20년 동안 내가 뭘 했나, 무력감이 들기도 했다."  

원전 반대를 외쳤던 18년전과 달리 세계는 이미 '에너지 전환'이라는 세상을 맞이하고 있다.

풍력의 나라로 유명한 덴마크는 현재 전력 대비 71%를 신재생에너지로 공급하고 있다. 에너지 관련 기술 및 서비스가 덴마크 총 수출액의 약 12%를 차지하고 있다.

독일은 2022년까지 탈원전을 이루겠다고 선언했다. 2018년 독일 전력 생산에서 재생에너지가 차지하는 비율은 40%가 넘었다. 물론 독일도 석탄 발전소와 원전도 보유하고 있다. 지난해 독일 정부는 소위 '탈탄소위원회'를 구성해 논의한 결과 2038년까지 석탈발전소 제로를 준비하고 있다. 전력회사들은 에너지전환의 흐름에 맞춰 변화하고 있다. 

양이원영 사무처장은 "전세계적으로 신규 투자는 재생에너지가 대세"라면서 "석탄과 원전에 있는 노동자들을 어떻게 하면 전환시킬까, 수익구조를 어떻게 보장할 것이냐를 생각하면서 전력회사, 제조회사와 판매회사가 합종연횡이 쭉 일어나고 있다"고 설명했다.

"대만 원전 제포 포기? 자유한국당의 착각"  

차이잉원 대만 총통
차이잉원 대만 총통ⓒAP/뉴시스

하지만 여전히 우리나라 정치권에서는 '탈원전 죽이기'가 이뤄지고 있다. 자유한국당은 지난해 11월 26일 논평을 통해 대만의 국민투표 사례를 들며 "탈원전 정책의 폐지를 가결했다"며 "대만 진보 정부의 탈원전 정책에 사형선고를 내린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양이원영 사무처장은 "대만이 원전 제로 포기했다는 것은 자유한국당의 착각"이라며 "대만 정부는 실속을 챙겼다"고 말했다. 

2008년 집권한 국민당 마잉주 정부는 2011년 11월에 전체 원전의 수명을 연장하지 않겠다는 정부 차원의 선언을 했다. 2011년 일본 후쿠시마 사고 후 전국 각지에서 대규모 원전 반대시위가 일면서, 대만 국민들의 탈원전 요구가 거셌기 때문이다. 결국 마잉주 정부는 2014년 4월 신규 원전 룽먼의 건설을 잠정 중단하기도 했다.  

이후 2016년 대선에서 차이 총통은 "대만을 2025년까지 원전 없는 나라로 만들겠다"는 공약을 내세웠다. 차이 총통은 원전을 없애는 대신 20%는 신재생에너지로, 50%는 천연가스로, 30%는 석탄으로 채우겠다는 구상을 발표했다.  

차이잉원 정부는 집권 2년차인 2017년 1월 전기사업법 95조1항에 '2025년까지 가동 중인 모든 원전을 완전 중단시킨다'는 조항을 신설해 못을 박았다. 운영 중인 전체 6기의 원전 중 2기가 수명이 다해 폐쇄됐다.  

대만 정부는 지난해 11월 24일 실시된 국민투표에서 전기법 95조 1항인 '핵발전소 시설은 2025년까지 모두 중단되어야 한다' 폐지에 동의하냐고 물었다. 총 유권자 대비 찬성률 29.84%로 통과되면서, 해당 조항은 효력을 잃게 됐다. 대만의 국민투표는 지난해 12월 관련법이 개정돼, 유권자 1.5%의 서명만 있어도 발의되며, 가결 조건도 찬성률 50%에서 25%로 낮춰졌다.

하지만 차이 총통은 "'원전 없는 나라 건설'은 환경법에 명기돼 있기 때문에 이번 국민투표 결과에도 불구하고 이 목표는 변함없다"면서 "다만 이번 국민투표는 그 기한, 즉 '2025년까지'를 폐지했다"고 밝혔다.  

또한 대만은 국민투표에서 '석탄화력발전소 생산량을 매년 1%씩 줄이는 것'과 '석탄화력발전소 건설과 신규확대를 중단하는 에너지정책 수립' 동의 의견도 함께 구했다. 이는 각각 총 유권자 대비 찬성률 40.27%, 38.46%로 통과됐다.  

양이원영 사무처장은 "민진당 정부에서는 거버넌스 기구를 만들었는데, 총통 직속으로 사무국이 전 부처의 에너지 정책을 다 관할한다"며 "그래서 굉장히 속도가 빠르다. 그러니까 5.5기가와트 해상풍력을 기획한 지 1년만에 시장을 열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그들은 2001년의 실패를 경험한 뒤 10년이 지난 뒤 후쿠시마 원전사고 이후 이렇게 다시 가고 있는데, 우리는 지금 실패하면 안 될 거 아니냐"고 따져 물었다.  

대만은 2001년 민진당 정부가 처음으로 집권한 뒤 타이페이시 인근에 신규로 건설 중이던 2기 원전을 중단하기로 결정했다가 보수언론과 야당의 반대로 인해 국회 의결까지 간 뒤 다시 공사를 재개한 바 있다. 98% 완공된 이 원전은 후쿠시마 원전사고 이후 국민당 정부에 의해 사업이 취소됐다. 10년 간 신규 원전을 지으면서 석탄발전은 50% 비중이었고, 재생에너지 확대는 제자리 걸음이었다. 그런데 지금 원전 건설을 중단한 대만은 재생에너지 확대가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

양이원영 사무처장은 중국은 원전 많이 짓는 것 이상으로 재생에너지 생산이 폭발적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지난해 중국의 재생에너지 발전량이 원전 발전량의 두 배 가까이로 성장했고, 전체 발전량 비중도 원전은 4.2%인데 재생에너지 전기는 7.8%에 달한다"며 "세계적인 재생에너지 투자액은 화석연료발전 투자액의 두 배, 원전 투자액의 20배 가량"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재생에너지의 증가 이유에 대해 "원전이 없었고, 기존의 기득권 세력이 없으면, 발목잡는 사람들이 없는 것"이라고 꼬집었다.  

특히 그는 10년이 걸리는 원전 건설보다 재생에너지의 공기(工期)가 훨씬 짧다고 설명했다. "원전은 10년이 걸린다. 태양광이나 풍력은 만약 허들만 없으면, 인허가 정식으로 밟고 하더라도 1년 이내에 건설할 수 있다. 덴마크나 독일처럼 환경영향평가가 굉장히 까다로운데도 불구하고 풍력 발전 인허가 절차가 3년 이내에 다 끝난다"면서 "신한울 3, 4호기를 지금 하면 10년은 걸릴텐데, 효과가 빠른 걸 먼저 해야지 않겠냐"고 말했다.  

그는 우리나라가 10년이 넘도록 3메가와트(MW) 풍력발전 터빈에 안주하고 있을 때, 제너럴일렉트릭(GE)는 12메가와트를 개발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GE 최고재무책임자(CFO)인 제프리 번스타인이 2017년 자리에서 물러나면서 "시장이 변했는데 우리는 충분히 빠르지 못했다"며 "전력시장을 잘못 평가해 과잉 투자했다"고 자성의 목소리를 냈다고 전했다. 화석연료를 활용한 기존 발전 방식을 고수하는 것이 문제라고 말한 것이다.  

'원전 제로' 정책 없는 일본이 원전을 멈춘 이유  

후쿠시마 제1원전에는 수소폭발로 떨어져 나간 원자로 벽의 일부가 그대로 남아있는 등 2011년 후쿠시마 원전 사고의 상흔이 7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남아있다.사진은 공동취재단이 제공한 것이다. 2018.02.20.
후쿠시마 제1원전에는 수소폭발로 떨어져 나간 원자로 벽의 일부가 그대로 남아있는 등 2011년 후쿠시마 원전 사고의 상흔이 7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남아있다.사진은 공동취재단이 제공한 것이다. 2018.02.20.ⓒ뉴시스

이웃 나라 일본은 어떨까? 양이원영 사무처장은 "일본은 우리보다 더 기술도 좋고 규제가 엄격해도 후쿠시마 사고가 나지 않냐"고 지적했다. 양이원영 처장은 우리는 후쿠시마의 값비싼 교훈을 잊지 말아야 한다고 다시 한번 강조했다.  

그는 "일본이 '원전 제로'를 정책으로 한 적은 한 번도 없지만 원전 제로가 된 적이 있다"고 말했다. 일본은 2011년 후쿠시마 원전 폭발 사태로 원전 가동을 전면 중단한 바 있다.

"일본은 9.0 규모의 지진과 15미터 쓰나미는 원전 관련 규제 기준에서 상정한 상황이 아니었다. 그런데 후쿠시마 원전 사고가 발생했지 않았나. 이를 감안해서 안전 기준을 높여야 하니까, 그 기준이 마련될 때까지 원래 기준으로 운영허가가 난 원전은 다 가동을 중단하고 상향된 안전 기준으로 재가동 허가를 받아야 하는 것이 일본의 규제 절차다. 그러다보니 사고가 난 원전까지 포함해서 54개 원전이 동시에 문을 닫았다. 원전 전력 비중이 30%였는데 그걸 한꺼번에 가동 중단한 것이다. 그리고 기준을 상향조정하고 원전 설비를 업그레이드해서 재가동 허가를 하나씩 받고 있다. 2년간 원전제로가 된 것이다. 가동 중인 원전이 이제 9기이고, 원전 전기가 2%에 불과하다. 그 사이에 태양광발전이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앞서 후쿠시마 원전을 운영한 동경전력에서는 2011년 원자로 뚜껑에 균열이 간 것을 은폐한 사건이 있었다. 이 사건이 폭로 되면서, 동경전력 소속 핵발전소 17기가 가동 중단돼 점검에 들어간 바 있다.  

"우리나라는 그렇게 안 하고, 가동을 계속한다. 계획예방정비 때 혹시나 하고 들여다 본다. 그것도 전면조사하는 것도 아니고 몇 개 찍어서 보는데, 거기에 구멍이 나 있어. 그래서 주민들이 뭐라고 하니까 민간조사했고, 더 들여다보니까 이번엔 망치까지 나온 거 아니냐."

지난해 8월 28일 '한빛원전 안전성 확보 민관합동 조사단'의 한빛 4호기 격납건물 1~8단 공동조사 중간 조사 결과 발표에 따르면, 원전 사고 시 방사성 물질의 유출을 막는 '최후의 보루'인 격납건물 콘크리트 내부에 최대 30cm까지 공극(구멍)이 발생했다. 또한 냉각 핵심 부품인 증기발생기 내부에서는 20년간 방치된 것으로 추정되는 망치까지 발견됐다. 

그는 "일본은 6~7년 동안 태양광 40기가 늘었다"면서, "일본 환경단체들은 시민들한테 '재생에너지 전기를 판매하는 전력회사로 옮기세요'라는 캠페인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반면, 일본의 해외 원전 수출 사업은 난항을 겪고 있다. 일본 히타치(Hitachi) 사는 영국 '와일파 뉴이드(Wylfa Newydd) 원전 프로젝트'를 중단하기로 결정했다. 히타치 사는 2012년 11월 영국 원전회사인 호라이즌 뉴클리어 파워(Horizon Nuclear Power) 사를 인수해 2700메가와트(MW) 규모의 와일파 뉴이드 원전 프로젝트를 수주, 2020년 가동 개시를 목표로 건설 공사 준비를 진행해왔다. 하지만 안전대책비용 증가 등으로 건설비 마련에 어려움을 겪어 원전 수출은 사실상 백지화된 상태다.  

세계에서 원전 원천기술을 가진 나라는 일본, 미국, 캐나다, 러시아 등 얼마 되지 않는다. 양이원영 사무처장은 "일본의 도시바, 미쯔비시, 히타치가 미국의 원전 원천기술 보유회사들과 합병해 원전수출에 앞장섰다"면서도 "도시바와 히타치가 영국 원전시장에서 손을 들었다. 미쯔비시는 터키 원전수출 시장을 포기했다. 대신에 태양광과 풍력발전 등에 투자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MB 때 에너지 전환정책 시작했으면... 
미세먼지 문제 상당 부분 해결됐을 것"
  

이명박 대통령과 모하메드 빈 자이드 알 나흐얀 아부다비 왕세자가 2011년 3월 14일 오전(현지시간) 아부다비 서쪽 해안의 브라카에서 열린 한국형 원자력발전소 기공식에서 원전 모형 전시물을 둘러보고 있다.(사진=청와대 제공)
이명박 대통령과 모하메드 빈 자이드 알 나흐얀 아부다비 왕세자가 2011년 3월 14일 오전(현지시간) 아부다비 서쪽 해안의 브라카에서 열린 한국형 원자력발전소 기공식에서 원전 모형 전시물을 둘러보고 있다.(사진=청와대 제공)ⓒ뉴시스

이처럼 탈핵운동은 에너지전환의 흐름으로 바뀌고 있다. 그는 2018년부터 에너지전환포럼 일을 새로 시작했다.  

환경운동연합에서도 처장을 맡고 있는 그는 지난 1년 동안 안식년을 보내면서 에너지전환포럼의 사무처장을 맡았다. 에너지전환포럼은 기업, 단체, 개인 누구나 회원이 될 수 있다. '원전과 석탄을 줄이고 에너지 효율을 높이고 재생에너지로 바꾸는 목표'에 동의한 사람들이 회원이 될 수 있다. 양이원영 사무처장은 에너지전환 포럼은 단순히 후원하는 곳이 아닌, 발언권을 가지고 주체가 돼 에너지 전환이라는 목표를 향해 상호 토론하고 방안을 제시하는 단체라고 설명했다.

반대 운동과 함께 변화를 실제 만들어 내고, 전환을 시켜내야 하는 '되게 만드는 운동' 역시 어렵다. 그는 에너지전환 정책과 관련해 다양한 이해관계자들 사이에서 다리 역할과 설득의 역할을 하고자 한다.  

"정부 관료들을 만나야 한다. 그들이 잘 좀 했으면 좋겠고, 그러니 내가 잘 부탁한다고 얘기할 수밖에 없다. 사람 생각이 어떻게 하루 아침에 바뀔 수 있겠나. 사람에게 주어진 하루 24시간은 동일하다. 어떤 사람을 만나고 어떤 얘기를 주의깊게 듣는 지가 중요하다."

탈원전 정책 분야에서 문재인 정부에 대해 어떻게 평가하고 있느냐는 질문에 그는 이렇게 말했다.

"문재인 정부에 대해서 능력이 부족하다고 얘기하는 게 맞지 않겠나. 그렇다고 문 정부를 자유한국당과 똑같이 욕할 수는 없다. 속도 터지고 짜증난다고 해도 박근혜 정부와 같이 평가할 수는 없지 않나. 그래서 더 자주 만나고 얘기하고 최신 정보를 나누고 해결책을 같이 고민하는 것이 중요하다. 에너지전환포럼이 그런 역할을 하고 싶다."  

그러면서 그는 "우리나라 에너지 전환 정책이 이명박 정부 때 시작했으면, 이렇게까지 늦어지지 않았을 것"이라고 한탄했다. 이어 "그때가 우리나라 경제나 에너지 정책 전반이 전환되기에 딱 적합한 시기였다"며 "10년이 지난 지금 미세먼지나 온실가스 문제들이 상당히 많이 해결이 됐을 것"이라고 말했다.  

온실가스 감축이라는 목표 아래 '녹색성장'을 내세운 이명박 정부는 대대적으로 원전 확대 정책에 나섰다. 원전 수주를 위해 아랍에미리트연합(UAE)과 유사시 군 자동개입 등의 내용이 담긴 비밀 군사협정을 맺었다는 사실이 드러나며 논란이 되기도 했다.  

양이원영 사무처장은 이명박 정부 당시 시작한 서남해 해상풍력 2.5기가와트는 10년이 지난 지금도 아직 60메가와트(MW) 실증단계에서 지지부진한 상태라고 지적했다.

그는 "지금이 2008년도만 됐더라도, 이런 논쟁 속에서 세금 좀 축낼 수 있다. 월사금이라고 생각하고 길 잡아가면 된다"며 "그런데 지금은 이 좌충우돌이 생존의 문제가 된 것"이라고 경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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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분 조문 와줬으면... 할머니 가시는 길 외롭지 않게"

[현장] 김복동 할머니 빈소 첫날의 기록... 약 1300여 명 조문

19.01.30 07:58l최종 업데이트 19.01.30 09:41l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길원옥 할머니가 29일 서울 서대문구 신촌세브란스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된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고 김복동 할머니 빈소를 찾아 조문하고 있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길원옥 할머니가 29일 서울 서대문구 신촌세브란스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된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고 김복동 할머니 빈소를 찾아 조문하고 있다.ⓒ 이희훈
 
"생각보다 사람이 없네요."
 
김복동 할머니 빈소를 찾은 조문객의 말이다. 그래서일까? 딸의 제안으로 조문을 왔다는 남성과 여성은 빈소를 앞에 두고 두리번거렸다. 시계를 봤다. 오후 8시 56분이다. 이 가족과 대화하는 사이 빈소에 들어가는 이는 없었다. 가슴에 근조 리본을 단 이들만이 빈소로 향하는 입구를 지키고 서 있었다.
 
인권운동가이자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김복동 할머니가 별세했다. 향년 93세다. 김 할머니는 28일 오후 10시 41분, 세상을 떠났다. 이튿날 할머니가 투병 생활을 해온 병원에 빈소가 마련됐다. 서울 서대문구에 있는 신촌 세브란스 장례식장이다. 29일 오전 11시, 정의기억연대는 기자 설명회를 열고 김복동 할머니의 유언과 '여성인권운동가 김복동 시민장'의 장례 일정을 발표했다.
 
[관련 기사 : "끝까지 싸워달라" 김복동 할머니의 유언]
 
29일, 김 할머니 빈소에서 하루를 보냈다. 이 글은 그 기록이다.

"남은 숙제들은 남겨진 사람들이 잘 해결해야"
  
고 김복동 할머니 영정 모시는 윤미향 대표 윤미향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 대표가 29일 오전 서울 서대문구 신촌세브란스 장례식장에 차려진 고 김복동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빈소로 고인의 영정을 모시고 있다.
윤미향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 대표가 29일 오전 서울 서대문구 신촌세브란스 장례식장에 차려진 고 김복동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빈소로 고인의 영정을 모시고 있다.ⓒ 이희훈
 
김 할머니의 빈소가 처음부터 적막했던 건, 아니다. 낮 동안 검은 옷을 입은 사람들의 발길이 이어졌다. 문재인 대통령을 비롯해 정치인과 시민단체 활동가, 대학생들, 일반인 등이 잇따라 조문했다. 장례위원회에 따르면, 이날 하루 약 1300명(오후 9시 25분 기준)이 김 할머니 영정에 국화꽃을 바쳤다.
 
낮의 분주함이 저녁엔 사그라들었다. 조문객이 밀물처럼 밀려왔다. 오후 6시 40분, 장례식장 건물 앞이 북적거렸다. 가방을 둘러맨 사람들이 삼삼오오 모여 지하 2층에 있는 빈소로 향했다. 개중엔 눈시울이 붉히고, '꺽꺽' 소리 내는 이들도 있었다. 이중 김 할머니 빈소로 가는 이는 적었다.
 
그렇다. 김 할머니의 빈소는 TV 브라운관에 나오는 유명인의 장례식장과 달랐다. 길게 늘어진 조문 행렬도 '퇴근길 추모 물결'도 없었다.
 
조문객 틈에서 낯익은 얼굴을 발견했다. 김 할머니처럼 진실규명을 외치는 이였다. 유경근 4.16 세월호 가족협의회 집행위원장이다. 유 집행위원장은 "(김복동) 할머니와 특별한 인연은 없다, 보도를 통해서 싸우는 모습을 봤을 뿐"이라고 했다.
 
김 할머니에게 하고픈 말을 물었다. 그는 "글쎄요, 조금만 더 살았으면 하는 안타까움이 있죠. 지금은 모든 짐을 내려놓으시고 편안하셨으면 좋겠어요. 이제 남은 숙제들은 남겨진 사람들이 잘 해결해야죠. 그 약속을 하는 것 말고 무슨 말이 필요하겠나"라고 답했다.
 
저녁 7시, 빈소 옆 한 귀퉁이에서 첫 번째 추모의 밤이 열렸다. 평화 나비네트워크가 마련한 자리였다. 김 할머니의 육성이 스피커를 통해 흘러나왔다.

"그 사랑 잊지 않고 그 뜻 기억할 것입니다"
 
"안녕하세요, 올해로 92세 된 김복동입니다."
 
햇수로 2년 전, 김 할머니를 인터뷰 한 영상이었다. 옆에 앉은 조문객이 고개를 숙이고 눈물을 훔쳤다. 모니터 앞에 앉아 있던 소녀는 빨개진 코를 소맷자락으로 문댔다. 김 할머니가 말했다.
 
"올바르게 살면, 언젠가는 좋은 날이 온다. 여러분 힘내세요. 나는 이 세상에 태어나서 여자다운 일을 못 해봤어. 사랑이라는 거가. 자슥들 가진 부모들 좋다고 물고 빨고 하지만 저렇게 좋은가. 난 귀염을 안 해봤어..."

추모식은 김 할머니를 기억하는 자리였다. 사람들 앞에 선 이들은 각자 김 할머니와 얽힌 추억을 꺼내며, 미리 준비한 편지를 읽었다. 때론, 목이 메 목소리를 내지 못하고, 때론, 울먹이면서.
 
편지를 준비하지 못한 이들은 추모글을 남겼다. 빈소 입구 벽면에 있는 '내가 기억하는 여성 운동가 김복동'이라 적힌 펼침막에 색색의 나비 모양 종이에 적은 글을 붙였다.
 

"김복동 할머니! 덕분에 많은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용기 내주셔서 너무도 감사합니다. 영원히 잊지 않을게요. 노란 나비가 되셨으리라 믿습니다. - 이화나비 이연수"
 
"한 행사에서 할머니 옆에 앉아 있었는데 나비~라면서 활짝 웃어주시며 손을 잡아주시던 게 떠오르네요. 그리고 항상 수요시위든 어디든 당차게 이야기해주시던 모습. 존경하고 감사하고 사랑합니다. 부디 평안하세요."
 
"김복동 할머니 그동안 고생 많으셨습니다. 그곳에서는 고통 없이 편안하시길 바라겠습니다. 남은 할머니들이 잘살아갈 수 있도록 또 일본 정부가 정식으로 사과하는 그날까지 기도하며 싸우겠습니다. - 서대문구의 한 젊은 청년이"
 
"역사를 잊은 자 미래는 없다. 김복동 할머니의 행동을 본받아 저희 젊은 세대가 늘 깨어있겠습니다. 편히 쉬십시오. 임재환"
 
"김복동 할머니 1993년부터 할머니를 지켜보았습니다. 제주에서 온 초등학교 친구들에게 그냥 보낼 수 없다며 자장면 사주게 예약하라며 윤미향 대표를 찾으셨죠? 이젠 그 친구들이 그 사랑 잊지 않고 그 뜻 기억할 것입니다. 이젠 편히 안식하소서."


"할머니를 알고 있다면, 조문 와 달라"
  
 29일 밤 9시,  김복동 할머니 빈소를 취해하던 방송 카메라팀이 모두 철수했다.
29일 밤 9시, 김복동 할머니 빈소를 취해하던 방송 카메라팀이 모두 철수했다.ⓒ 정대희
 
조문객은 썰물처럼 빠져나가기도 했다. 오후 7시 55분, 추모 행사에 참여했던 이들이 떠나자 시끄럽던 빈소가 조용해졌다. 조문객만 떠난 건 아니다. 기자들도 자리를 떴다. "고생하세요"란 말을 남기고 방송 카메라 팀이 짐을 꾸렸다. 오후 8시 2분, 김 할머니 빈소 옆에 마련된 기자실이 텅 비었다. 사진 기자 한 명만이 홀로 모니터와 씨름하고 있다. 나머진 '퇴근'이라고 귀띔하고 가방을 둘러맸다.
 
오후 9시, 남아 있던 방송 카메라가 철수했다. 조문객을 세어봤다. 빈소로 들어가는 입구에 서서 딱 10분간만. 화환을 들고 온 아저씨가 빈소로 향했다. 1분 뒤, 조문객 1명이 들어가고 2명이 나왔다. 근조 리본을 가슴에 매단 장례위원회 사람들이 나왔다 들어갔다를 반복했다.

오후 9시 4분, 1명이 빈소로 향하는 입구를 통과했고, 여기서 2명이 밖으로 나왔다. 이렇게 들어가는 사람보다 빠져나오는 사람이 많은 상황이 몇 차례 반복됐다. 오후 9시 18분, 홀로 기자실을 지키던 사진기자도 떠났다.
 
오후 9시 30분, 윤미향 공동장례위원장을 만났다. 그는 "(오늘) 사람들이 많이 와줬다. 대통령도 오고, 정치인과 학생들, 시민단체까지 정말 고맙다"라며 "하지만 그동안 (김복동) 할머니가 만났던 사람들에 비하면 턱없이 부족하다. 수요집회 때 (보통) 50명 정도 만나는데, 지금까지 27년이니 얼마나 많은 사람을 만나겠냐. 못해도 5만 명은 넘을 것이다"라고 했다.
 
이어 윤 위원장은 "많은 분이 조문 와줬으면 좋겠다, 할머니가 가시는 길 외롭지 않게. 할머니가 훨훨 날아 갈 수 있도록 많이들 찾아오길 바란다"라며 "사실 걱정이다. 마지막 영결식을 (옛) 일본대사관 앞에서 하는데, 사람들이 적게 와 목소리를 제대로 못 낼까 봐. 이러면 할머니의 27년 삶을 오히려 축소하는 거다. 할머니를 알고 있다면, 조문을 와 달라"라고 말했다.
 
이 글을 쓰고 있는 오후 11시 50분, 김복동 할머니의 빈소 앞에는 아무도 없다.
 
 김복동 할머니 빈소 입구 앞에 마련된 펼침막에는 조문객들이 쓴 추모글이  붙어 있다.
김복동 할머니 빈소 입구 앞에 마련된 펼침막에는 조문객들이 쓴 추모글이 붙어 있다.ⓒ 정대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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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미대결이 국제질서의 중심축

[아침햇살10]북미대결이 국제질서의 중심축
 
북미대결은 사상대결, 체제대결, 군사대결
 
문경환 기자 
기사입력: 2019/01/29 [20:17]  최종편집: ⓒ 자주시보
 
 

지난 18일 김영철 북한 노동당 부위원장이 미국을 방문해 트럼프 대통령을 만나 2차 북미정상회담 개최를 합의했다는 소식이 나오자 전 세계가 주목하였다. 이제 북미관계는 국제사회가 가장 관심을 갖는 쟁점이 되었다. 북미관계가 어느덧 국제질서의 중심에 자리 잡았다. 왜 북미관계가 국제질서의 중심이 되었을까?

 

▲ 트럼프 대통령과 면담하는 김영철 부위원장 일행     ©자주시보

 

국제관계에서 대결의 기본 영역은 사상·체제·군사 대결

 

사상대결, 체제대결, 군사대결은 국제관계에서 대결의 기본 영역이다. 

 

2차 세계대전까지 국제관계의 기본은 군사대결이었다. 강대국이 약소국을 침략하거나, 강대국끼리 식민지를 차지하기 위해 전쟁을 하는 식이다. 이러한 군사대결은 영토확장이 기본 목적일 뿐 체제대결의 성격은 없었다. 2차 세계대전에서 독일이 구 소련을 침공한 것도 체제대결이 아닌 영토확장의 성격이 기본이었다. 

 

그러다 2차 세계대전 이후 냉전이 시작되면서 국제관계는 군사대결에 체제대결의 성격이 더해졌다. 세계는 자본주의권과 사회주의권으로 나뉘어 체제경쟁을 하였다. 그러다 1980년대 말부터 1990년대 초 기간 구 소련과 동구권이 체제경쟁에서 패배해 몰락하였다. 자본주의권은 체제대결의 승리를 선언했지만 북한, 쿠바 등 사회주의 체제를 고수한 나라도 여전히 존재하였다. 

 

한편 1930년대 김일성 주석이 이끄는 항일무장투쟁은 사상대결이라는 새로운 영역의 시작을 알렸다. 

 

김일성 주석은 인류 역사상 처음으로 사상을 문화 일반에서 분리하여 사상이 모든 것을 규정한다고 제시하였다. 김일성 주석은 항일무장투쟁의 전 과정을 사상의 힘으로 진행하였다. 당시 항일무장세력은 일제에 비해 볼 때 영토도 없었고, 의식주도 열악했고, 정규군도 없었고, 무기도 없었고, 군인 수는 비교도 되지 않았지만 사상의 힘으로 모든 객관 조건의 열세를 극복하였다. 

 

김일성 주석은 해방 후 한국전쟁도, 사회주의 건설도 사상의 힘을 앞세웠으며,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선군영도도 사상의 힘으로 ‘고난의 행군’을 극복하는 것이었다. 오늘날 김정은 위원장도 사상에 결정적인 의의를 부여하며 당과 국가를 이끌고 있다. 북한은 사상대결이 체제대결, 군사대결에 규제적 영향을 미친다고 보며 명실상부 사상전의 영역을 구축하였다. 

 

이런 북한의 모습은 구 소련, 중국과 근본적인 차이가 있다. 구 소련은 사상을 의식 일반에 포함시켰다. 구 소련의 지도사상인 마르크스-레닌주의는 의식 등 상부구조가 물질적 토대에 의해 규제된다고 보고 사상을 부차적으로 대했다. 중국은 사상을 문화 일반에 포함시켰다. 1966년 ‘문화대혁명’이라는 명칭에서도 알 수 있듯 중국은 문화에도 상당한 의의를 부여했으나 구 소련과 마찬가지로 마르크스-레닌주의에 입각해 경제 등 물질적 토대를 결정적으로 보았다. 

 

이런 이유로 구 소련, 중국은 생산력 발전, 즉 경제성장을 위주로 한 정책을 펼쳤다. 물질적 토대를 발전시키는 것이 결정적이라고 보았기 때문이다. 자본주의와 체제대결을 할 때도 마찬가지로 경제대결, 생산력 대결을 하였다. 한 마디로 사회주의가 경제적으로 더 풍요롭다는 걸 보여주면 체제대결에서 승리한다고 여긴 것이다. 이러한 구 소련, 중국의 모습은 북한의 사상대결 노선, 사상이 결정적 요체라는 입장과 분명히 달랐다. 

 

북한은 이러한 사상론에 입각해 민중의 사상을 하나로 모은 수령의 사상을 유일하게 인정하는 유일사상체계를 채택했다. 이에 따라 수령의 사상으로 전 사회를 일체화하자는 목표를 제시하고 이것이 가장 우월한 힘의 원천이라고 주장했다. 북한은 수령, 당, 대중을 하나의 생명체로 인식하고 통일단결을 실현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여기서 체제대결, 군사대결에서 승리할 수 있는 힘이 나온다는 것이다. 이처럼 사상의 힘으로 모든 것을 추동한다는 개념은 북한 외에 어디에도 없다. 

 

중국이나 구 소련은 수령을 집단으로 보는 집단지도체계를 채택했다. 예를 들어 중국 공산당 중앙정치국 상무위원회는 7~9명의 상무위원이 1인 1표를 행사하는데 공산당 총서기도 예외가 아니다. 또 각 상무위원은 국정의 한 분야를 전담하며 다른 상무위원의 영역을 침범하지 않는다. 북한의 유일지도체계와 다른 것이다. 

 

여러 명의 집단이 수령을 구성하면 사상도 유일사상이 아닌 여러 사상을 인정하게 된다. 중국은 지난해 제13기 전국인민대표대회(전인대)에서 개정한 헌법에 국가 지도이념으로 마르크스-레닌주의, 마오쩌둥 사상, 덩샤오핑 이론, 후진타오의 과학적 발전관, 시진핑 신시대 중국 특색 사회주의 사상을 열거했다. 이 이념들은 공통성도 있지만 차이점도 있는 서로 다른 것들이다. 북한에서 김일성주의를 계승, 발전시킨 김일성-김정일주의를 지도이념으로 하는 것과는 다르다. 

 

사상대결이 전 세계에 미치는 영향은 지대하다. 사상은 전파력이 가장 광범위하고 강력한 힘이 있기 때문이다. 마르크스주의와 러시아 혁명이 20세기 인류 역사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생각해보면 잘 알 수 있다. 만약 북미대결에서 북한이 이기면 북한의 사상이 전 세계로 확산될 가능성이 다분하다. 

 

정리하자면 현재 북미대결은 사상대결, 체제대결, 군사대결의 성격을 포괄하고 있으며 이런 대결은 북미대결이 유일하다. 

 

북한과 미국의 사상대결

 

북미 사상대결은 자주와 침략의 대결이다. 북한은 자주권을 수호하려는 사상을 전면에 내세우고, 미국은 북한을 지배하기 위해 이 사상을 변질시키려 한다. 

 

북한은 김일성-김정일주의를 기치로 온 사회의 사상적 일색화를 실현해 이 힘으로 미국에 대항하고 있다. 김정은 위원장은 김일성-김정일주의를 그대로 계승하고 여기서 한 치도 벗어나지 않고 전면적으로 발전시켜 북미대결에 임했다. 북한 국민은 ‘선대 수령’의 사상에 기초한 자주·사회주의·선군 노선을 전폭적으로 지지하고 하나로 똘똘 뭉쳤다. 

 

이에 미국은 북한에 다원주의, 자본주의 사상을 밀어 넣으려 하였다. 인권, 종교의 자유, 사상의 자유, 정파의 자유를 허용할 것을 요구하며 북한을 독재사회라 비난하였다. 미국은 다양한 공작을 통해 이런 사상들을 들이밀려고 시도하였다. 다양한 공작의 앞장에는 탈북자가 있다. 미국은 탈북자를 앞세워 인권공세를 하거나, 탈북자를 훈련시켜 북한에 투입한 뒤 자본주의 사상을 퍼뜨리려 시도하였다. 탈북자 단체들은 미국 민주주의기금(NED)의 자금 지원을 받아 대북전단 살포 등을 하고 있다. 대북전단에는 음란물이 수록된 USB 메모리도 섞여 있다. 이 밖에도 선교사로 가장한 공작원들이 북한에 성경책을 밀반입하거나 북한 선전물을 훼손하기도 한다. 미국은 북한 주변에서 북한 체제를 비난하는 라디오방송도 하고 있다. 

 

북미 사상대결은 기본적으로 북한의 백전백승이라는 평가가 일반적이다. 북한은 미국의 사상 공작에도 불구하고 일심단결을 유지하고 있으며 그 수준이 갈수록 발전하고 있음을 과시하고 있다. 지난해 공화국 창건 70돌 행사나 대집단체조와 예술공연 ‘빛나는 조국’, 2018년 12월 31일 밤부터 2019년 1월 1일 새벽까지 이어진 설맞이 축하무대 등을 보면 유례없는 단결이 실현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반면 미국의 공작은 다른 나라에 비해 북한에서는 힘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다. 아직까지 미국의 공작으로 북한 내부에 혼란이 조성됐다는 증거나 징표는 나타나지 않고 있다. 한편 2016년 북한에 체포된 미국인 오토 웜비어는 북한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자신이 미국 CIA에 이용됐으며 양각도 호텔에서 정치 선전물을 훼손한 범죄를 저질렀다고 인정했다. 그는 선전물 훼손의 목적이 북한 국민의 단결을 약화시키는 것이었다며 “미국 정부는 다시는 나 같은 사람들을 범죄에 이용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다. 웜비어는 2017년 미국에 송환된 뒤 곧바로 사망하였는데 만약 웜비어의 기자회견 내용이 사실이라면 미국 정부 입장에서는 웜비어의 사망이 다행이었을 것이다. 

 

북한과 미국의 체제대결

 

북미 체제대결은 사회주의 대 자본주의의 대결이다. 북한은 사회주의를 지키려 하며 미국은 자본주의를 이식하려 한다. 

 

북한의 노선은 사회주의의 원칙을 강화하고 발전시켜 미국의 공세를 분쇄한다는 것이다. 사회주의의 특징은 생산수단의 개인 소유를 금지하고 국가의 계획경제가 시행되며 경제의 성과가 전 국민에게 돌아가는 것이다. 북한은 생산수단을 국가와 협동조합만 소유할 수 있도록 하고 있으며, 협동조합 소유를 점차 국가 소유로 전환하고 있다. 북한에서 생산수단의 개인 소유는 철저히 금지된다. 

 

또한 국가가 경제를 통일적으로 지도하며 이에 기초해 계획경제를 강화하고 있다. 올해 신년사에서도 경제관리에서 국가의 역할을 높일 것을 강조했다. 북한에서 경제를 시장에 맡기는 일은 일어나지 않고 있다. 또 북한은 경제성과를 전 국민에게 나눠주는 정책을 펼치고 있다. 국유기업의 이익 등 국가수입을 이용해 무상교육, 무상의료, 무상주택 등 높은 수준의 복지정책을 펼쳐 전체 국민에게 혜택을 주고 있다. 북한에서 소수 특권층이 경제성과를 가져가는 일은 일어나기 어렵다. 올해 신년사에서도 간부들의 세도와 관료주의, 부정부패를 아무리 작은 행위라도 엄단하겠다고 강조했다. 

 

이러한 북한의 제도는 같은 사회주의 국가인 중국, 베트남과 완전히 다르다. 중국과 베트남은 이른바 개혁개방을 통해 생산수단의 개인 소유를 인정하였다. 중국은 아예 장쩌민 시기인 2001년, 자본가의 공산당 입당도 허용했다. 이는 2002년 당 강령에 3개대표론(당이 자본가, 지식인, 노동자·농민을 대표한다는 노선)으로 공식화되었다. 중국 최대 부호로 꼽히는 마윈 회장(알리바바그룹 창업자)도 공산당원이다. 베트남도 2006년 당원의 개인사업과 자본가의 입당을 허용하였다. 

 

또 중국, 베트남은 자본주의 요소를 적극 도입해 경제에서 시장의 역할을 높이고 있다. 중국에는 상하이와 선전에 증권거래소도 있다. 베트남은 1991년 제7차 전당대회에서 시장경제 도입을 결정했다. 시장경제의 도입은 필연적으로 불평등과 양극화를 낳는다. 경제의 성과가 전체 국민에게 골고루 돌아가지 않고 소수의 자본가, 관료층에게 상당부분 집중되는 것이다. 중국, 베트남에서 소득불평등과 양극화 문제가 고질적 문제로 된 것은 이미 오래된 일이다. 

 

이런 이유로 중국의 경제성장은 자본주의를 위협하지 않는다. 만약 중국 경제가 미국을 앞지른다 하더라도 그것은 중국이 자본주의 요소를 도입했기 때문이므로 자본주의의 우월성을 입증할 뿐이다. 따라서 중국과 미국이 현재 진행하는 무역전쟁은 체제대결이 아닌 패권경쟁으로 봐야 한다. 

 

반면 북한과 미국의 체제대결은 전혀 다르다. 북한은 사회주의 체제를 철저히 고수하고 있기 때문이다. 북한 노동신문은 지난해 7월 13일 논설을 통해 “세계는 우리 당이 어떻게 경제발전과 인민생활에서 사회주의와 자본주의 차이를 하늘과 땅처럼 만드는가를 똑똑히 보게 될 것”이라고 선언했다. 이게 과연 공허한 말일까? 북한이 경제총집중 노선을 선포하자 많은 이들은 북한의 국방과학기술, 군수산업시설이 민간 경제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주목했다. 올해 신년사를 보면 북한은 이미 군수공장에서 트랙터, 포클레인 등 산업용 기자재를 생산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인류 역사를 돌아보면 전쟁이 과학기술과 경제, 사회문화에 큰 영향을 주었음을 알 수 있다.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24시간 붙들고 있는 컴퓨터, 인터넷 등도 모두 국방과학기술의 산물이다. 북한이 숨겨온 핵기술, 무기 기술을 민간 경제에 도입할 때 얼마나 큰 효과를 낼지는 외부에서 알 수 없다. 

 

만약 북한이 미국과의 체제대결에서 이긴다면 사회주의-자본주의의 기나긴 대결은 끝이 나고 자본주의는 완전히 패배하게 된다. 전 세계에 사회주의가 급속히 확산되는 현실을 가져올 것이다. 

 

북한과 미국의 군사대결

 

북미 군사대결은 핵대결을 핵심으로 하는 군사대결이다. 

 

미국은 북한에 대한 핵전쟁 정책을 유지하고 있다. 지난해 북미정상회담이 있었지만 북한을 향한 핵무기를 철거하지도, 핵정책을 철회하지도 않았다. 전략무기들은 여전히 제자리에서 대기 중이며 북한을 목표로 한 각종 작전계획, 선제핵공격 전략도 그대로 있다. 핵전쟁을 염두에 둔 한미연합훈련도 일시적으로 유예하거나 언론을 피해 조용히 진행하는 로키(low-key)로 할 뿐이다. 

 

북한도 핵전력을 약화시키지 않았다. 지난해 비핵화조치들은 더 이상 핵무기를 늘리지 않을 뿐, 있는 핵무기를 폐기하는 것은 아니었다. 핵미사일을 운용하는 전략군도 그대로다. 또한 미국이 약속 이행에 불성실하게 나오자 병진노선 복귀를 언급하는 등 북미 핵대결에서 강한 의지를 보이고 있다. 이처럼 북미 핵대결은 정책적으로, 군사적으로 엄연히 존재한다. 

 

전 세계적으로 핵대결이 가장 첨예하며 실제적인 곳은 북미대결이다. 핵보유국 중 미국, 영국, 프랑스는 동맹관계에 있어서 서로 대결하지 않는다. 중국, 러시아와 미국은 대결적이기는 하지만 정치적으로 정상관계에 있고 경제적으로 교류하며 상호 의존하는 부분이 있고 인적 교류가 자유롭다. 즉, 핵전쟁을 방지하는 안전장치가 일정하게 있는 것이다. 

 

그러나 북한과 미국은 이러한 안전장치가 없다. 정치적으로 적대관계로 수교도 안 했으며, 경제적으로도 적대관계로 초강력 제재를 하는 상황이고, 인적교류는 차단된 상태다. 종전선언도, 평화협정도 맺지 않고 정전체제가 지속되면서 북미 사이는 기술적으로 전쟁상태에 있다. 언제 전쟁을 개시해도 이상하지 않은 상황이다. 이처럼 북미 핵대결은 다른 나라들의 대결과 성격이 판이하게 다르다. 

 

그렇다면 핵전쟁 능력에서 북미 가운데 누가 우위일까? 흔히 일반적인 전쟁수행능력이라고 하면 군사력, 전쟁 의지, 경제력 등을 꼽는다. 그런데 이 가운데 경제력은 장기전의 경우에 중요하지만 핵전쟁과 같은 단기전에서는 중요도가 떨어진다. 여기서는 군사력을 핵공격력과 핵방어력으로 나누고 전쟁 의지는 지도부와 국민의 의지 모두를 살펴보겠다. 

 

첫째, 핵공격력에서 북한이 우위에 있다. 미국의 핵무기 보유량은 대략 4천 기 정도로 추정된다. 하지만 북한과 핵전쟁을 하면서 북한에 4천 기를 다 쏟아 부을 수는 없다. 애초에 미국이 수천 기의 핵무기를 만든 이유는 광활한 영토를 가진 소련을 겨냥해서다. 좁은 북한 땅에는 4천 기까지 필요가 없다. 그렇다면 핵무기의 양보다 질이 중요한데 미국 내에서도 미국의 핵무기 수준에 대한 불신이 많다. 미국 헤리티지 재단의 ‘2017 미국 군사력 지수’에 따르면 핵탄두 현대화 지수를 5등급 중 4등급인 ‘약함’으로 평가했다. 이미 수십 년 전에 비축한 핵무기를 유지만 할뿐 새로운 기술 개발은 부족하다는 것이다. 

 

미국의 주요 핵무기 탑재 폭격기 B-52는 케네디 대통령 시기 취역한 기종이며 유일한 육상 발사 미사일인 미니트맨3는 1970년 배치돼 80년대 초반 은퇴할 예정이었던 낡은 미사일이다. 보관시설은 대부분 1950년대에 지은 것으로 관리와 발사에 문제가 많다는 지적이 나온다. 미니트맨 발사장치는 2000년대 들어 구경조차 힘든 플로피디스크를 사용할 정도다. 이런 이유로 미국 내에서는 설계수명이 지난 노후화된 핵무기를 개량하기 위해 새로운 핵실험을 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다. 

 

반면 북한은 가장 최근에 핵무기를 개발했다. 후발주자라서 기술이 뒤떨어진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역으로 후발주자의 장점을 살려 첨단 핵무기 개발 시간을 훨씬 단축할 수도 있다. 북한은 이미 핵무기의 경량화, 소형화, 다종화를 실현했다고 발표했다. 더 이상의 개발이 필요 없다며 핵시험장을 폐기하기까지 했다. 

 

북한과 미국의 두드러진 기술적 차이점은 차량이동식 미사일 개발이다. 미국은 일찍부터 차량이동식 대륙간탄도미사일 개발을 추진했으나 1980년대 들어서야 성과가 나오기 시작, 미지트맨이라는 철도 및 차량이동식 대륙간탄도미사일 개발에 본격 뛰어들었다. 그러나 비용 등 여러 이유로 도중에 개발을 중단하고 말았다. 덕분에 미국의 지상 발사 미사일은 오로지 지하격납고에서만 발사한다. 반면 북한은 단기간에 개발에 성공하여 러시아, 중국에 이어 세 번째 차량이동식 대륙간탄도미사일 보유국이 되었다. 

 

둘째, 핵방어력에서도 북한이 우위에 있다. 북한은 수십 년 동안 미국의 핵공격에 대비해 주요 시설을 지하 깊이 건설하였고 전체 주민이 대피할 수 있는 지하대피소도 건설하였다. 평양의 지하철을 핵공격에 대비해 150m 깊이로 건설한 것은 널리 알려진 일이다. 반면 미국은 본토 핵공격에 대한 대비가 거의 없다. 미사일방어(MD)체계는 불완전하고 특히 마하 20배가 넘는 대륙간탄도미사일 탄두를 요격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게 중론이다. 물론 지휘부를 위한 지하벙커는 있다. 하지만 일반 병사와 민간인은 아무런 대책이 없다. 그나마 갑부들은 사설 지하벙커를 만들어 자기들 살 궁리를 하였지만 서민 입장에서는 언감생심이다. 

 

셋째, 핵전쟁 의지에서도 북한이 우위에 있다. 북한 지도부는 전쟁위기가 발생하면 ‘대화에는 대화, 전쟁에는 전면전으로’라는 구호를 들고 전시상태에 돌입하는 것을 주저하지 않는다. 60년대 푸에블로호 사건부터 시작해 2017년에 있었던 전쟁위기까지 시종일관하다. 미국이 아무리 핵항공모함 등 전략자산을 집결시켜 위협해도 동요하지 않는다. 아마 전쟁이 개시된다면 북한 지도부는 아무런 주저 없이 가장 먼저 미국 본토에 핵미사일을 쏟아 부을 것이다. 

 

이런 지도부의 결단을 북한 국민들도 지지한다. 북한 국민에게 미국은 한국전쟁 때 엄청난 피해를 주었고, 대북제재로 수십 년 동안 고통을 주었으며, 통일을 가로막아 민족 전체에게 아픔을 준 ‘철천지원수’다. 따라서 북한의 반미의식은 매우 강하다. 전쟁위기가 고조되면 며칠 사이에 백만 명이 훨씬 넘는 청년들이 군에 입대하겠다고 탄원할 정도다. 한 마디로 전쟁이 나면 미국에게 그동안 쌓인 원한을 철저히 갚겠다는 것이다. 

 

반면 미국은 핵전쟁으로 인한 피해를 계산하느라 쉽게 결단하지 못한다. 미국은 그동안 자신들이 마음껏 공략할 수 있는 상대만 대상으로 전쟁을 해왔기 때문에 진짜 핵미사일을 날려 보낼 나라와는 전쟁을 결단할 수 없다. 북한과 전쟁위기가 고조될 때마다 항공모함을 두세 척씩 한반도에 투입하고도 끝내 전쟁 개시를 하지 못한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미군 병사와 미국 국민의 사정은 더 열악하다. 중동을 비롯해 세계 곳곳에서 오랜 전쟁에 시달려온 병사들의 사기는 땅에 떨어져있으며 미 국민들은 북한의 핵미사일에 대한 공포에 시달리고 있다. 이는 지난해 1월 13일 하와이 미사일 경보 오보사태에서 잘 드러난다. 미 국민들이 지난해 연말 여론조사에서 중미 무역전쟁 대신 북미정상회담을 최고의 뉴스로 꼽은 이유도 여기에 있다. 전쟁이 두렵지 않다는 북한과 정반대의 모습이다. 

 

이처럼 핵전쟁 능력을 비교해보면 북한이 압도적 우위에 있음을 알 수 있다. 

 

사상·체제·군사 대결에서 우위에 선 북한

 

지금까지 살펴본 것처럼 사상전과 군사대결에서 북한은 압도적 우위에 있다. 남은 것은 체제대결, 특히 경제대결이다. 북한은 미국의 제재를 뚫고 경제건설에 전념하고 있으며 실제로 북한 경제가 매우 빠른 성장을 하고 있다는 게 북한을 다녀온 이들의 전반적인 평가다. 북한은 자신들의 경제성장이 적대세력에게 날리는 미사일과 같다는 입장이다. 

 

2017년 4월 13일 준공한 평양 려명거리를 두고 김정은 위원장은 “미제와 그 추종세력들의 제재 속에서도 우리 식대로 보란 듯이 잘 살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정치적 계기”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또 노동당 중앙위원회, 당 중앙군사위원회, 국무위원회는 려명거리 건설에 참여한 군인과 주민들에게 보낸 감사문을 통해 려명거리 건설이 “적대세력들의 제재·압살 책동을 굴함 없는 공격 정신, 사회주의 수호 정신으로 짓부숴버리기 위한 치열한 대격전”이라고 평가했다. 

 

북한은 경제건설에서도 사상전을 앞세운다. 사상의 힘으로 전 국민의 의지를 총동원해 경제건설에 집중하겠다는 것이다. 

 

또한 군사적 우위를 바탕으로 평화를 확보하고 그 토대 위에서 경제에 집중하고 있다. 만약 평화가 위협받고 전쟁 가능성이 높은 상황이라면 국방력에 국력을 집중해야 하므로 자금과 인력 등을 경제개발에 돌릴 수 없다. 또한 대형 건설사업도 진행할 수 없다. 북한에서 가장 높고 큰 건물이 평양에 있는 류경호텔인데 이런 대규모 건축물을 짓는데 국력을 집중했다가 만약 전쟁이라도 발발해 폭격을 받는다면 그 피해가 눈덩이처럼 불어날 것이다. 따라서 대형 건설사업을 하더라도 전쟁에 대비해 방어시설까지 갖춰야 하는데 이로 인해 경제개발에 많은 제약이 따른다. 마치 지진이 잦은 지역에서 건물을 지을 때 내진설계를 해야 해서 건축비가 늘어나는 것과 마찬가지다. 

 

북한의 경제건설에서 주목할 부분은 핵융합발전소다. 아직 북한이 공개적으로 밝히지는 않았으나 핵융합발전에 대한 상당한 기술 축적을 이루고 있음을 암시하는 보도가 나오고 있다. 북한은 국제사회의 철저한 제재 속에서 독자적인 과학기술을 발전시켰고 특히 핵무기 개발을 위한 분야에 많은 투자를 하였으므로 핵융합발전 기술을 완성했을 가능성도 있다. 만약 북한이 가장 먼저 핵융합발전 상용화에 성공한다면 인류 에너지 역사를 다시 쓰게 될 것이며 세계 경제에도 큰 충격을 줄 것이다. 대형 유전 발견과 비교도 안될 만큼 핵융합발전은 그 파급력이 엄청나다. 

 

만약 체제대결에서도 북한이 미국을 올라서기 시작한다면 국제질서는 완전히 뒤바뀔 것이다. 자주가 제국주의를 결정적으로 제압하고 사회주의가 대안으로 부상할 것이다. 또한 북핵을 전 세계가 지지하게 될 것이다. 

 

여기서 주목할 독특한 지점이 있다. 북미대결에서 미국의 힘이 강할 때 미국의 핵은 전쟁을 부르고 약소국을 압박하는 침략의 성격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북한의 힘이 강할 때 북한의 핵은 평화공세의 성격을 보였다. 북한은 핵무기를 가지고 전쟁을 하자는 게 아니라 미국의 핵전쟁을 막고 평화협정 체결과 동시 핵군축을 하자는 것이다. 이렇게 보면 북핵이 반전평화의 무기이자 비핵화의 수단, ‘핵 없는 세계’ 건설의 도구가 되고 있음을 현실에서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이처럼 북미대결에서 누가 승리하느냐에 따라 전 세계에 누구의 사상, 누구의 체제가 확산되느냐가 결정되며 그동안 국제 사회에 막강한 영향을 미치던 미국의 운명도 판가름 난다. 북미대결이 한반도와 동북아를 넘어서 전 세계 질서에 근본적인 영향을 가져오는 가장 중심적, 본질적 대결인 이유다. 

 

※이 글은 주권연구소와 자주시보에 동시 게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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